◆48가구 줄줄이 경매
9일 경매전문 로펌인 법무법인 열린에 따르면 동탄2신도시에 거주하는 O씨(46세)가 소유한 동탄1신도시 내 아파트 48가구가 경매 절차를 밟고 있다. 한 사람이 보유한 아파트가 이처럼 대규모로 경매에 부쳐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 중 28가구는 오는 16일 수원지방법원에서 경매될 예정이다. 모두 1회 입찰(신건)이다.
이와 별도로 18가구는 2회차 입찰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1월 30일 1회차 경매에서 모두 유찰됐다. 9일 2회차 경매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변경됐다. 18가구 중 2가구는 경매취하됐다. 2017년 8월 이들 아파트에 근저당을 설정한 H씨와 또다른 O씨가 집을 경매에 부쳤다.
인근 중개업소에선 경매로 나오는 아파트가 더 있을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O씨가 매입한 아파트가 60여채나 된다는 것이다. ◆갭투자의 전형
등기부등본을 보면 O씨가 이들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사들인 시기는 2014년과 2015년이다. 당시는 수도권 외곽부터 집값이 서서히 반등하던 시기였다. 그는 능동과 반송동에 소재한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사모았다. 48가구 중 39가구가 능동 소재 물건이다. 나머지 9가구는 반송동에 있다. 특히 능동 소재 모아미래도아파트, 신인해피트리 등의 아파트를 많이 매입했다.
아파트 개수는 많지만 가구당 매입 비용은 크지 않았다. 전세를 끼고 매입한 탓에 한 가구당 순 투자비는 1000만~2000만원에 그쳤다. 2015년 11월에 매입한 모아미래도 전용면적 59㎡를 예로 들면 매입가격은 2억4000만원, 전세 보증금은 2억3000만원이다. O씨가 투입한 돈은 1000만원과 취등세 중개수수료 등 부대비용이었다.
2015년 11월 매입한 자연앤데시앙 59㎡의 매입가격은 2억7000만원, 전세보증금은 2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그나마 O씨가 많은 돈을 들여 매입한 사례였다. 2016년에는 투자가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2014년 1월 매입한 모아미래도 전용 59㎡를 예로 들어보자. 이 아파트 매입가격은 2억2500만원이다. 한차례 전세를 돌린 후 2016년 3월 새 세입자로부터 받은 전세 보증금은 2억3000만원이었다. 전세 보증금으로 받은 돈이 매입가격을 500만원 웃돈 것이다. 투입한 돈을 모두 회수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입주물량 무시한 게 패인
갭투자 전문가들은 O씨의 실패 원인을 입주물량으로 꼽는다. 갭투자의 가장 큰 원칙은 향후 2년 또는 4년뒤 입주물량이 없는 곳을 공략하는 것이다. 입주물량이 없어야 전셋값이 계속 오르거나 버티는 까닭이다. 그래야 집값도 전셋값 상승에 밀려 계속 올라갈 수 있다.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한 갭투자자는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붙어있다고 하더라도 전세를 한바퀴 돌리고 난 시점의 입주물량이 너무 많으면 전셋값이 떨어져 버틸 수 없다”며 “고수들은 2016년 이후 입주 물량이 쏟아지는 화성, 평택, 용인 등을 철저히 피해 투자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갭투자자도 “하수는 갭 차이가 적은 것만 보고 투자하지만 고수는 2년, 4년 뒤 입주물량도 함께 고려한다”고 말했다.
O씨의 발목을 잡은 것은 인근 동탄2신도시 입주물량이다. 화성에선 작년에만 2만3262가구가 입주했다. 대부분 동탄2신도시 입주물량이다. 이들 물량이 제대로 소화되지도 못한 상태에서 올해에도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 3만1776가구가 입주한다. 입주물량이 많다보니 동탄1신도시 매매가격과 전셋값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O씨가 2015년 11월 매입한 자연앤데시앙 전용 59㎡ 매매호가는 현재 2억5000만원이다. O씨의 매입가격(2억7000만원)보다 2000만원 낮다. 전세가격도 2억원 안팎으로 O씨가 받은 전세보증금(2억5000만원)을 5000만원 밑돈다. O씨 입장에선 전세 만기가 돌아오면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지만 마땅한 돌려줄 방법이 없다. 줄줄이 만기가 돌아오는 까닭이다.
◆의도적인 경매 추측도
경매 전문가들과 능동 일대 중개업소들은 O씨가 의도적으로 집들을 경매에 넣었을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세입자에게 집을 떠넘기기 위해서다. 집이 경매에 들어가면 세입자들은 전세 보증금을 지키지 못할 것을 우려해 매입을 검토하기도 한다. 한 경매 전문가는 “대부분 세입자가 확정일자를 받아둔 상태라 전세 보증금을 뜯길 우려는 낮지만 경매로 집이 넘어가면 새로운 주인과 실랑이를 해야 하는 등 피곤한 일이 많아진다”며 “차리라 집을 사버리는 게 나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세입자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7년 8월 갑자기 특정인들이 근저당을 설정한 뒤 일괄적으로 집을 경매에 부친 것도 이런 의심을 증폭시킨다. 금융회사가 아니라 개인이 실익이 없는 깡통주택에 근저당을 설정한 뒤 경매를 부쳐서다. 정충진 법무법인 열린 변호사는 다만 “부동산이 경매로 넘어가는 사유가 워낙 다양한 만큼 채무자가 의도로 아파트를 경매에 넘겼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