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후려치는 公共발주 공사…100억짜리 80억 제시해야 '낙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公共공사의 덫
(1) 적자공사 내몰리는 건설업체
공사비 부풀리기 막는다지만…
주52시간으로 엎친 데 덮쳐
"적정 공사비 보장해야 생존"
(1) 적자공사 내몰리는 건설업체
공사비 부풀리기 막는다지만…
주52시간으로 엎친 데 덮쳐
"적정 공사비 보장해야 생존"
S건설이 2016년 7월 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에 준공한 제14초등학교. 공기업 L사가 96억8400만원에 발주한 이 공사에서 S건설은 17억4600만원의 손실을 봤다. 발주 내역상 L사가 28억원으로 산정한 철근콘크리트의 원가가 38억원에 이르는 등 공사단가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S건설은 L사에 부당함을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S건설 대표는 “분하고 억울했지만 공사를 중단하면 학생들까지 피해를 볼 것 같아 울며 겨자 먹기로 공사를 마쳤다”며 “적자를 강요하는 공공 발주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건설사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성토했다.
비슷한 시기에 L사가 발주한 동탄2신도시 학교를 공사한 다른 건설사들도 대부분 15억~20억원가량의 적자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건설사 대표는 “계속 L사의 공사를 따내야 하는 처지라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토목업체 30% 폐업
28일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공공공사에 주력하던 토목업체가 30% 감소했다. 2008년 3626개에 달하던 토목업체는 지난해 2545개로 줄어들었다. 중소 토목업체 1000곳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17년 -7%를 나타냈다. 적자 업체 비중은 40%에 이른다.
지난해 국방부가 약 155억원에 발주한 수도권 남부의 한 훈련장 시설 공사를 수행 중인 J건설사는 적자 공사가 불가피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 회사 대표는 “국방부가 발주 내역보다 더 많은 공무, 안전 분야 등의 현장 관리 인원을 요구하면서 약 4억원의 간접노무비를 고스란히 날릴 판”이라고 토로했다.
공공공사를 수행하는 건설사들이 잇달아 손실을 보는 근본적인 이유는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공사비를 깎는 발주 방식 때문이다. 정부는 국가계약법에 따라 모든 공공공사에 ‘종합심사제’(300억원 이상)와 ‘적격심사제’(300억원 미만) 등의 낙찰제를 시행하고 있다. 공사 규모에 따라 설계금액에 75~87%가량의 낙찰률을 적용해 공사비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100억원 이상의 공공공사에는 설계금액의 80% 안팎 낙찰률로 입찰하도록 돼 있다. 공사를 따낸 업체가 100원짜리 공사를 80원에 끝내야 한다는 얘기다. 건설업계에선 ‘낙찰될 때 하루 웃고, 공사기간 내내 운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될 정도다.
건설업계는 설계금액 자체가 공사원가와 큰 차이가 없어 이 같은 낙찰률을 적용하면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자재비, 노무비, 일반경비 등의 정부 고시가격인 ‘표준품셈’과 ‘표준 시장단가’ 등을 고려한 설계금액이 워낙 보수적으로 산정된 까닭이다. 조준현 대한건설협회 정책본부장은 “정부가 공사비 부풀리기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표준품셈 등의 가격을 해마다 낮춰 이미 공사원가에 근접시켰다”며 “여기에 낙찰률까지 적용하면 원가를 넘어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주 52시간 근로제도 ‘직격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주 52시간 근로제도 공사 원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장에 투입하는 인력을 더 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7월 이전 발주처에서 공사를 따낸 뒤 7월 이후 하도급업체에 공사를 발주한 건설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수도권에서 터널 공사를 진행 중인 B건설사는 하루 2교대 방식으로 공사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뒤 하도급업체가 하루 3교대로 공사방식을 바꿨다. 그만큼 현장 근로자 인건비가 더 들어가게 된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발주처가 투입 근로자 증가에 따른 공사비 증가분을 보전해주지 않고 있다”며 “어쩔 수 없이 예전처럼 임금을 주면서 사람을 더 뽑아 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교량을 시공 중인 K건설 관계자는 “근무 시간이 줄어든 만큼 임금을 덜 주면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떠나버린다”며 “적자를 보더라도 현장 근로자를 더 채용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109개 건설사업의 실태조사를 한 결과 48개 사업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공사 기간이 부족해진 것으로 조사됐다. 최수영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주 52시간이 적용되는 공공공사에 대해 공기업 등 발주처들에 계약 조건을 변경해주라는 지침을 내리긴 했지만,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현장에선 유명무실하다”며 “주 52시간제의 효율적인 적용을 위한 제도적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건설업계 “적정 공사비 반영해야”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공공사 금액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준현 본부장은 “낙찰률을 올려주지 않으면 적자 공사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공사 품질, 현장 안전 등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적정공사비를 보장해줘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공공공사 평균 낙찰률은 2015년 기준 국토교통성 91.8%, 지방자치단체 92.5%였다. 미국 평균 낙찰률도 미네소타 교통부(DOT) 93%(2015년 기준) 등으로 한국보다 높다.
기획재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국가계약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기재부 계약제도과 관계자는 “적정한 공사품질, 작업장 안전 등이 보장돼야 한다”며 “적정 공사비 책정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선 기자 leeway@hankyung.com
비슷한 시기에 L사가 발주한 동탄2신도시 학교를 공사한 다른 건설사들도 대부분 15억~20억원가량의 적자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건설사 대표는 “계속 L사의 공사를 따내야 하는 처지라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토목업체 30% 폐업
28일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공공공사에 주력하던 토목업체가 30% 감소했다. 2008년 3626개에 달하던 토목업체는 지난해 2545개로 줄어들었다. 중소 토목업체 1000곳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17년 -7%를 나타냈다. 적자 업체 비중은 40%에 이른다.
지난해 국방부가 약 155억원에 발주한 수도권 남부의 한 훈련장 시설 공사를 수행 중인 J건설사는 적자 공사가 불가피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 회사 대표는 “국방부가 발주 내역보다 더 많은 공무, 안전 분야 등의 현장 관리 인원을 요구하면서 약 4억원의 간접노무비를 고스란히 날릴 판”이라고 토로했다.
공공공사를 수행하는 건설사들이 잇달아 손실을 보는 근본적인 이유는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공사비를 깎는 발주 방식 때문이다. 정부는 국가계약법에 따라 모든 공공공사에 ‘종합심사제’(300억원 이상)와 ‘적격심사제’(300억원 미만) 등의 낙찰제를 시행하고 있다. 공사 규모에 따라 설계금액에 75~87%가량의 낙찰률을 적용해 공사비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100억원 이상의 공공공사에는 설계금액의 80% 안팎 낙찰률로 입찰하도록 돼 있다. 공사를 따낸 업체가 100원짜리 공사를 80원에 끝내야 한다는 얘기다. 건설업계에선 ‘낙찰될 때 하루 웃고, 공사기간 내내 운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될 정도다.
건설업계는 설계금액 자체가 공사원가와 큰 차이가 없어 이 같은 낙찰률을 적용하면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자재비, 노무비, 일반경비 등의 정부 고시가격인 ‘표준품셈’과 ‘표준 시장단가’ 등을 고려한 설계금액이 워낙 보수적으로 산정된 까닭이다. 조준현 대한건설협회 정책본부장은 “정부가 공사비 부풀리기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표준품셈 등의 가격을 해마다 낮춰 이미 공사원가에 근접시켰다”며 “여기에 낙찰률까지 적용하면 원가를 넘어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주 52시간 근로제도 ‘직격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주 52시간 근로제도 공사 원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장에 투입하는 인력을 더 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7월 이전 발주처에서 공사를 따낸 뒤 7월 이후 하도급업체에 공사를 발주한 건설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수도권에서 터널 공사를 진행 중인 B건설사는 하루 2교대 방식으로 공사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뒤 하도급업체가 하루 3교대로 공사방식을 바꿨다. 그만큼 현장 근로자 인건비가 더 들어가게 된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발주처가 투입 근로자 증가에 따른 공사비 증가분을 보전해주지 않고 있다”며 “어쩔 수 없이 예전처럼 임금을 주면서 사람을 더 뽑아 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교량을 시공 중인 K건설 관계자는 “근무 시간이 줄어든 만큼 임금을 덜 주면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떠나버린다”며 “적자를 보더라도 현장 근로자를 더 채용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109개 건설사업의 실태조사를 한 결과 48개 사업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공사 기간이 부족해진 것으로 조사됐다. 최수영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주 52시간이 적용되는 공공공사에 대해 공기업 등 발주처들에 계약 조건을 변경해주라는 지침을 내리긴 했지만,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현장에선 유명무실하다”며 “주 52시간제의 효율적인 적용을 위한 제도적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건설업계 “적정 공사비 반영해야”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공공사 금액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준현 본부장은 “낙찰률을 올려주지 않으면 적자 공사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공사 품질, 현장 안전 등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적정공사비를 보장해줘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공공공사 평균 낙찰률은 2015년 기준 국토교통성 91.8%, 지방자치단체 92.5%였다. 미국 평균 낙찰률도 미네소타 교통부(DOT) 93%(2015년 기준) 등으로 한국보다 높다.
기획재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국가계약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기재부 계약제도과 관계자는 “적정한 공사품질, 작업장 안전 등이 보장돼야 한다”며 “적정 공사비 책정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선 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