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세난에…빌라 갭투자자 파산 도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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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보증금 못돌려주게 된
수백채 보유자 잇따라 잠적
세입자, 전세금 못받아 발동동
보증금 지키기 위해 집 떠안기도
수백채 보유자 잇따라 잠적
세입자, 전세금 못받아 발동동
보증금 지키기 위해 집 떠안기도
임대인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잠적하는 일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대구와 수원에 이어 서울 한복판에서도 수백 채의 빌라를 소유한 집주인이 자취를 감췄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에 나섰다가 현금흐름이 막히거나 파산한 경우다. 억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별로 없는 집에 전세로 들어갈 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보증금 못 돌려줘”
28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강서구 일대에 빌라를 수백 채 소유한 A씨가 올해 초 잠적하면서 세입자들이 단체행동을 준비 중이다. 임차인들은 입주 당시 1억1000만~1억7000만원가량의 전세보증금을 냈지만 만기를 앞두고 A씨가 자취를 감췄다. 대부분이 1인가구나 신혼부부인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어졌다. 한 피해자는 “A씨 소유 빌라가 최대 280여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 빌라는 전체 가구의 절반이 그의 임차인”이라고 전했다.
A씨가 사라지자 돌연 B씨가 대리인을 자처하며 나타났다. B씨는 “집주인의 자금흐름이 막혀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며 “집이 하나둘 경매로 넘어가고 있으니 차라리 소유권을 이전받아 보증금이라도 지켜라”고 권유 중이다. 그의 말에 세입자 수십 명이 집을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경매가 진행되면 보증금조차 건질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에서다.
소유권 이전은 집주인의 주소지에서 이뤄졌다. 물론 집주인은 없었다. 위임장을 가진 대리인 B씨가 법무사와 함께 소유권 이전을 진행했다. 세입자들의 보증금만큼을 매매가격으로 정한 뒤 명의만 바꾸는 방식이었다. 한 임차인은 “임대아파트에 청약해 당첨됐지만 계약을 포기해야 했다”며 “집을 떠안게 될 경우 어차피 임대주택에서도 퇴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집주인과 대리인 일당이 핑계로 든 경매는 세입자들을 겁주기 위한 행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가 소유한 것으로 확인된 부동산 가운데 근저당이 잡힌 사례가 없어서다. 경매 개시 예정인 빌라가 세 가구 있지만 모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들이 반환소송을 통해 진행 중인 강제경매다.
대구·수원 등 전국서 피해 발생
최근 대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다가구주택 13가구를 소유한 임대인 C씨가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도주했다. 경찰은 세입자들의 피해 금액만 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와 거래한 공인중개사무소 20여 곳도 수사하고 있다.
수원 영통구에선 원룸 건물 26가구를 가진 임대인 D씨가 사실상 파산하면서 800여 가구의 세입자가 보증금을 날릴 처지다. 대출이자를 제때 갚지 못해 건물 8가구는 이미 경매로 넘어갔다. D씨는 이런 상황에서도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새로 세입자를 들이기도 했다. 임차인들의 피해 규모는 500억원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 인근 삼성전자 직원 50여 명도 피해를 입어 사측이 현황 파악에 나섰다. 수원시는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리기로 했다. 수원시 관계자는 “임대인이 의도적으로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이 있어 피해자 지원 TF를 꾸려 법률 지원에 나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임대인들이 처음부터 전세 사기를 목적으로 집을 매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후속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자금난에 처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갭투자자들은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줄 만큼의 현금을 쥐고 있기보단 투자 규모를 늘리는 성향이 강하다. 현금흐름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후속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면 여러 채의 집에서 한꺼번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빌라전문 개발업체인 가나건설의 탁현정 이사는 “위험관리를 하지 않고 무리하게 집을 늘린 일부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기존 임차인이 전세자금대출(안심대출)을 받은 경우 보증회사가 바로 구상권 행사에 들어가기 때문에 경매 파산 등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28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강서구 일대에 빌라를 수백 채 소유한 A씨가 올해 초 잠적하면서 세입자들이 단체행동을 준비 중이다. 임차인들은 입주 당시 1억1000만~1억7000만원가량의 전세보증금을 냈지만 만기를 앞두고 A씨가 자취를 감췄다. 대부분이 1인가구나 신혼부부인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어졌다. 한 피해자는 “A씨 소유 빌라가 최대 280여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 빌라는 전체 가구의 절반이 그의 임차인”이라고 전했다.
A씨가 사라지자 돌연 B씨가 대리인을 자처하며 나타났다. B씨는 “집주인의 자금흐름이 막혀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며 “집이 하나둘 경매로 넘어가고 있으니 차라리 소유권을 이전받아 보증금이라도 지켜라”고 권유 중이다. 그의 말에 세입자 수십 명이 집을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경매가 진행되면 보증금조차 건질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에서다.
소유권 이전은 집주인의 주소지에서 이뤄졌다. 물론 집주인은 없었다. 위임장을 가진 대리인 B씨가 법무사와 함께 소유권 이전을 진행했다. 세입자들의 보증금만큼을 매매가격으로 정한 뒤 명의만 바꾸는 방식이었다. 한 임차인은 “임대아파트에 청약해 당첨됐지만 계약을 포기해야 했다”며 “집을 떠안게 될 경우 어차피 임대주택에서도 퇴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집주인과 대리인 일당이 핑계로 든 경매는 세입자들을 겁주기 위한 행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가 소유한 것으로 확인된 부동산 가운데 근저당이 잡힌 사례가 없어서다. 경매 개시 예정인 빌라가 세 가구 있지만 모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들이 반환소송을 통해 진행 중인 강제경매다.
대구·수원 등 전국서 피해 발생
최근 대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다가구주택 13가구를 소유한 임대인 C씨가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도주했다. 경찰은 세입자들의 피해 금액만 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와 거래한 공인중개사무소 20여 곳도 수사하고 있다.
수원 영통구에선 원룸 건물 26가구를 가진 임대인 D씨가 사실상 파산하면서 800여 가구의 세입자가 보증금을 날릴 처지다. 대출이자를 제때 갚지 못해 건물 8가구는 이미 경매로 넘어갔다. D씨는 이런 상황에서도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새로 세입자를 들이기도 했다. 임차인들의 피해 규모는 500억원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 인근 삼성전자 직원 50여 명도 피해를 입어 사측이 현황 파악에 나섰다. 수원시는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리기로 했다. 수원시 관계자는 “임대인이 의도적으로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이 있어 피해자 지원 TF를 꾸려 법률 지원에 나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임대인들이 처음부터 전세 사기를 목적으로 집을 매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후속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자금난에 처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갭투자자들은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줄 만큼의 현금을 쥐고 있기보단 투자 규모를 늘리는 성향이 강하다. 현금흐름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후속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면 여러 채의 집에서 한꺼번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빌라전문 개발업체인 가나건설의 탁현정 이사는 “위험관리를 하지 않고 무리하게 집을 늘린 일부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기존 임차인이 전세자금대출(안심대출)을 받은 경우 보증회사가 바로 구상권 행사에 들어가기 때문에 경매 파산 등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