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서 기존 시공 계약을 해지하고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건설사로 갈아타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13구역 일대. 민경진 기자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서 기존 시공 계약을 해지하고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건설사로 갈아타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13구역 일대. 민경진 기자
사업 규모가 작거나 비교적 사업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 조합에서 시공사를 교체하는 움직임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기존 중견 건설업체와 계약을 해지하고 새 시공사 선정에 나서면서 대형 건설업체까지 수주전에 참여하고 있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등으로 대부분 정비사업이 중단될 상황에 놓이자 먹거리가 부족해진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무리한 시공사 교체로 소송에 묶이면 사업 지연과 막대한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조합원들이 이 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시공사 해지 전에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줄줄이 시공사 교체 나서

서울 서대문구 홍은13구역 재개발 조합은 지난 4일 시공사 선정을 위한 현장 설명회를 했다. 현장설명회에는 GS건설, HDC현대산업개발, 한화건설, 금호산업 등 건설업체 10여 곳이 참여했다. 이 조합은 오는 12월 총회를 열어 시공사를 선정할 방침이다.

홍은13구역은 2017년 라인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내년 상반기 착공과 분양을 앞두고 있었으나 지난달 총회를 열어 시공사 해지를 결의했다. 아파트 브랜드, 마감재 등과 관련해 라인건설과 합의점을 찾지 못해서다. 조합 관계자는 “사업 내용에 대한 합의가 어렵다고 판단해 이미 입찰 보증금을 돌려줬는데도 라인건설이 시공권을 포기하지 않아 총회를 거쳐 해지를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울산 B-05구역 재개발 조합은 지난 9월 시공자 재선정을 위한 입찰 공고를 냈다. 이 조합은 2014년 효성중공업·진흥기업·동부토건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올 7월 동부토건이 컨소시엄에서 빠지면서 시공사를 처음부터 다시 선정하기로 했다. 서울 은평구 신사1구역은 8월 임시총회에서 삼호개발과의 시공계약 해지안을 가결했다. 공사비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됐다고 판단했다. 이 조합은 다음달 3일 시공사를 선정할 계획이다. 대우건설, HDC현대산업개발, 금호산업, 쌍용건설 등 15개 업체가 수주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남양주시 진주아파트 재건축 조합도 최근 시공사 해지를 논의 중이다. 이 조합은 기존 저층 아파트를 허물고 아파트 21개 동, 1843가구를 건립하기 위해 2015년 서희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하지만 수백억원에 달하는 분담금을 놓고 시공사와 갈등을 겪으면서 최근 일부 조합원 사이에서 시공사 해지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형 건설업체들이 지방 중소 정비사업장까지 눈독을 들이는 상황”이라며 “아무도 찾지 않는 사업장에 들어가 사업비를 빌려주고 인허가까지 끝마친 중견 건설업체들의 손실이 심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 지연 우려 커져

최근 시공사 교체에 나선 정비사업장은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획득하고 철거와 분양을 앞두고 있다. 일부 사업장은 시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금융회사 등과 표준사업약정을 맺고 이주비, 사업비 등을 대출받아 사업을 추진했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조합은 시공사의 경영상황 악화 또는 4자 간 협의가 있어야만 시공사를 해지할 수 있다. 시공사 해지는 책임준공의무를 약정한 건설업체를 사업에서 배제하는 사안인 까닭이다.

하지만 조합과 시공사가 사전에 약정 해지 시 적용되는 특약 사항을 설정하지 않았을 경우 조합은 쉽게 시공사를 변경할 수 있다. HUG 관계자는 “조합이 기한이익상실을 통보하고 새로 선정된 시공사와 원리금 회수 절차에 들어가면 표준사업약정서의 효력은 사실상 없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시공권을 잃은 건설업체는 법원 소송으로 대응하고 있다. 라인건설은 지난달 25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시공사 지위확인, 공사도급계약 해지무효 등 가처분 신청을 냈다. 서희건설 역시 조합의 시공사 해지에 대비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서희건설 관계자는 “한번 소송전에 들어가면 대법원까지 가는 데 길게는 10년 가까이 걸릴 수 있어 조합과 협의해 시공사 해지를 최대한 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분양가 상한제가 본격적으로 적용되면서 시공사 변경으로 인한 조합원 분담금도 대폭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박춘서 동양건설산업 개발담당 이사는 “이전 시공단의 손해배상 청구로 1심에서 45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방배5구역 사례가 있다”며 “중견업체를 배제하고 1군 건설업체를 새 시공사로 선정하더라도 분양가 상한제로 분양 수익을 통한 손실 보전이 어려운 구조가 됐다”고 설명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