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 증시와 원유, 금 등 실물자산이 급락하자 국내 부동산 시장에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나타났던 집값 급락 현상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땐…은마 아파트, 두 달 새 26%↓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던 1997년 11월 직후 부동산 시장에는 쓰나미가 몰아쳤다. 서울과 지방 가릴 것 없이 집값이 폭락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998년 한 해 동안 전국 집값은 12.4%, 서울 집값은 13.2% 급락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86년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외환위기에 따른 실업률 증가, 임금 삭감 등으로 주택 매매 수요가 급감했다. 대출금 상환능력이 떨어진 집주인들이 집을 서둘러 매각했다. 당시 대출 금리는 연 20%대로, 중산층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다. 전세 계약이 만료됐는데 새 세입자를 찾지 못하거나 전셋값이 떨어져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도 곳곳에서 발생했다. 수요 급감으로 1998년 주택 건설 물량은 전년 대비 49% 줄었다. 1998년 한 해에만 건설사 3600곳 중 426곳이 부도 처리됐다. 집값은 2001년까지 약세를 보이다 2002년에야 회복되기 시작했다. 집값 정상화까지 4년이 걸린 셈이다.

2008년 금융위기 충격은 집값에 점진적으로 반영됐다. 2008년 5%에 달했던 서울 집값 상승률은 2009년 2.7%로 축소된 데 이어 2010년 하락 전환(-1.2%)했다. 공급 과잉 현상까지 맞물리면서 서울 집값은 2013년까지 긴 조정 과정을 거쳤다.

상대적으로 거품이 심했던 강남아파트는 즉각적인 충격을 받았다. 2008년 3월 평균 10억2000만원이던 대치동 은마아파트(전용 77㎡) 거래가는 12월 7억원으로 떨어졌다. 두 달 전인 10월 평균 9억5000만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2억5000만원(26.3%) 내렸다. 이후 2015년 초까지 8억~9억원 박스권에 머물렀다.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전용 85㎡)도 2008년 4월 15억2000만원에서 11월 11억8400만원으로 3억원 넘게 조정됐다.

금융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서울 강남 아파트는 ‘불패’란 인식이 팽배했다. 2005년 11월 이후 35개월 연속 오를 만큼 인기 투자 자산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조정을 거치면서 무리하게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사업을 추진한 건설회사와 금융회사는 줄줄이 파산했다. ‘하우스 푸어(house poor·집 가진 빈곤층)’라는 말이 널리 회자됐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