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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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개발은 한 번의 실수로도 회사의 명운이 바뀌는 사업이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억원을 벌어 유명해졌더라도 몇 년 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회사가 허다하다. 그만큼 리스크가 크고 경기 부침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부동산 개발 사업이 한때 ‘한탕주의’라는 오명을 썼던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대표 1세대 디벨로퍼 김언식 회장이 이끄는 DSD삼호는 그런 면에서 국내 부동산 개발 시장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다.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등 수차례 위기를 겪으면서도 40년간 안정적으로 회사를 일궜다. 국내 시행사 중 가장 많은 4만여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는 동안 국내 주거문화 수준도 끌어올렸다. 김 회장은 “단기적인 수익의 유혹과 타협하지 않고 소비자의 주거 만족과 단지의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해온 원칙 경영이 지금의 DSD삼호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시행업 가능성 알아본 선구안

김 회장은 1980년 ‘삼호주택’을 설립하며 주택 사업에 뛰어들었다. 삼호(三湖)는 그가 둥지를 튼 경기 수원에 서호 등 3개의 큰 호수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지은 이름이다. 시행 사업에 발을 들인 것은 그로부터 8년 후다. 시공과 시행을 같이하던 종합건설사에서 사업 계획 수립 및 사업 부지 물색과 구입, 설계와 인허가만을 전문으로 하는 디벨로퍼로 방향을 선회했다. 국내 부동산 디벨로퍼의 역사가 외환위기와 함께 시작된 것을 감안하면 10년이나 앞선 결정이었다. 건설사들이 부채 관리를 위해 분양 위험을 분리하면서 반대급부로 나타난 게 시행업이다.

1987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세계적인 건설엔지니어링 기업 벡텔을 접한 게 계기가 됐다. 김 회장은 “시행은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배우와 극본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는 종합예술가와 같다”며 “자신의 공간을 원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개발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고 했다. 이 결정은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 기조와도 맞아떨어지며 회사에 수익을 안겼다. 당시 국내 주택시장은 1기 신도시가 들어서며 주거문화가 아파트로 바뀌는 과도기였다.

1991년 경기 수원 화서동에 화서벽산(238가구) 공급을 시작으로 해 지난해까지 4만여 가구를 공급했다. 국내 디벨로퍼 중 가장 많은 규모다. 경기 성남 판교신도시가 3만 가구인 점을 감안하면 웬만한 신도시 하나를 세운 셈이다.

전화위복된 미분양 아픔

달아오른 주택 경기에 힘입어 탄탄대로를 걷던 DSD삼호도 2008년 금융위기는 피하지 못했다. 가장 큰 공을 들였던 경기 고양 식사1지구 ‘일산자이 위시티’가 대규모 미분양되며 회사를 위기에 빠뜨렸다. 112만여㎡ 부지에 지어진 4683가구의 매머드급 단지였다. 대대적인 할인 분양으로 8000억원을 손해 봤다. 사업비(3조4000억원)의 20%가 넘는다.

이 후유증으로 2009년 2조원 가까이 불어났던 매출이 2012년 2579억원, 2013년엔 763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절반 넘게 인력을 구조조정하고 빌딩 3개를 매각해 힘겹게 위기를 극복했다.

힘든 시기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됐다. 미분양이 해소된 이후에는 ‘집을 제대로 짓는 시행사’라고 입소문을 타면서 기회가 왔다. 미분양이 났던 지역 인근인 고양 식사2지구 A1블록(800가구)과 A2블록(1333가구) 분양을 단기간에 완료했다. 힐스테이트 태전, 동천자이 1차, 동천자이 2차, 힐스테이트 광교산 등 선보이는 단지마다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DSD삼호는 일산자이 위시티 조경에만 600억원을 들였다. 700억원을 기부해 고양국제고를 유치하고 연내 개통 예정인 서울(상암)~문산(임진각) 간 고속도로 개통에도 힘썼다.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단지에서 서울 여의도, 마곡지구까지 10분대 이동이 가능해진다. 김 회장은 “위시티를 강남을 뛰어넘는 최고급 주거 단지로 만들고자 했던 진심이 다른 분양단지에도 전해진 것 같다”며 “고속도로 개통을 계기로 위시티가 경기 북부를 대표하는 고급 주거 단지로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2013년 저점을 찍었던 매출도 2014년 1378억원, 2016년 6521억원, 2018년 7308억원 등 회복세다. 회사 관계자는 “매출 인식이 안 된 분양 물량만 9200억원 규모”라며 “용인 신봉2지구 분양이 시작되는 내년이나 후년께 매출 1조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진짜 디벨로퍼’ 고집…복합 단지 도전 나서

부침이 큰 시행 시장에서 DSD삼호가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원칙’과 ‘정도 경영’이다. 40여 년간 사업하면서 “고객이 내게 지급한 가치보다 더 나은 가치를 돌려준다”는 원칙을 내려놓지 않았다. 1기 프로볼러이기도 한 그는 “볼링도 스트라이크 치는 것보다 스페어를 잘 잡아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며 “개발 사업에서도 끝까지 고객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 게 관건”이라고 믿고 있다.

손쉽게 수익을 낼 수 있는 공공택지 개발은 하지 않는 것도 그의 오랜 원칙이다. 부지 매입부터 기획, 설계, 인허가, 금융, 시공, 마케팅, 분양 등 모든 것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도시개발 방식 사업을 고수한다. 이 방식은 한마디로 위험은 더 크고 돈 벌기는 어렵다. 땅 매입부터 입주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게 보통이다. 경기 김포 풍무에서 공급한 ‘풍무 푸르지오’는 2004년부터 2018년까지 사업을 진행했다. 개발자의 감각과 가치관에 경제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 진짜 디벨로퍼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DSD삼호는 내년까지 9730여 가구를 공급한다. 서울 신길음구역(884가구)을 포함해 경기 용인 신봉·동천, 화성 봉담 등 서울 주요 지역에서 30분 거리의 수도권 단지들이다. 10년 전에 미리 갈무리 농사를 지은 덕분에 경기 악화 영향을 피해 갈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됐다.

그동안 주거 단지의 가치를 올리는 데 주력해왔다면 앞으로는 복합 단지 개발을 꿈꾸고 있다. 아파트뿐 아니라 학교, 병원, 호텔, 위락시설 등을 모두 포함한 풀 서비스가 가능한 단지다. 인도네시아나 이라크 등 개발할 용지가 많은 해외 저개발국에서 복합 단지 개발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최장수 디벨로퍼의 도전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