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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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다주택 양도소득세 중과를 골자로 하는 ‘8·2대책’을 내놓으며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이 한 말이다. 2018년 4월 매매한 주택까지는 적용을 유예할 테니 다주택자는 집을 내놓으라는 말이었다. 지난해 ‘7·10대책’에서는 다주택자 양도세 최고세율을 75%까지 올리며 다음달 1일 전까지 집을 팔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대로 다주택자가 매물을 대거 시장에 던지는 일은 없었다. 이달 서울지역 아파트 매물 건수는 지난달 대비 오히려 감소했고, 집값 상승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대신 보유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증여만 크게 늘었다. 부동산 시장을 왜곡하는 양도세 구조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약발 안 먹히는 증세 카드

"집 팔아 10억 차익에 세금 8억 낼 바엔 차라리 증여"…매물 잠긴다
문재인 정부가 4년간 내놓은 부동산 대책의 가장 큰 줄기 중 하나가 다주택자의 양도차익 줄이기다. 2017년 8·2대책에서는 다주택자 중과세 제도를 부활했다. 조정대상지역에서 2주택자에겐 10%포인트, 3주택 이상은 20%포인트의 양도세 가산세율을 적용했다. 3년 이상 보유 시 보유 기간에 따라 양도차익의 10~30%를 공제했던 장기보유특별공제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지난해 7·10대책에선 올해 6월 1일을 기준으로 중과세 비율을 각각 10%포인트 더 올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양도세 최고세율은 2주택자 65%, 3주택자는 75%에 이르렀다. 해당 세율에 10%를 가산하는 지방소득세를 포함하면 실질 최고 세율이 82.5%에 이른다. 3주택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다주택자가 집을 팔아 10억원의 양도차익을 얻었다면 8억원에 달하는 세금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되는 셈이다.

다음달 1일이면 해당 대책의 유예기간이 끝나지만 다주택자의 매물 출회는 정부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부동산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서울 부동산매물은 4만7000여 건이다. 2월 3만9000여 건에서 4월 말 4만8500여 건까지 늘어났던 게 이달 들어 다시 줄었다. 다주택자 일부가 매물을 내놓긴 했지만 거래량 증가 및 부동산 시장 안정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서울 아파트 가격은 3월과 4월 매주 0.6~0.8% 꾸준히 올랐다. 유거상 아실 공동대표는 “실제로 세금을 회피하기보다 ‘내가 팔고 싶은 가격에 내놓을 테니 싫으면 말라’며 직전 매매가 대비 10~20% 이상 높은 호가의 매물이 많았다”고 분석했다.

서울 부동산 거래량도 올해 들어 계속 감소했다. 지난해 12월 7527건에서 올해 1월 5777건, 2월 3862건, 3월 3757건을 나타냈다. 거래 후 30일의 신고기한이 남아 있지만 4월 거래량은 2530건에 그쳤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보유세 부담을 안더라도) 집을 갖고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라며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가 본격화되는 6월 이후에는 집을 장기 보유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며 거래가 더 얼어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남구에선 증여 ‘역대급’

매매 대신 증여를 택한 다주택자도 많았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서울 강남구의 3월 주택 증여 건수는 832건으로 1월(84건)과 2월(167건) 실적을 크게 넘어섰다. 지난해 3월 114건에 비해서도 여섯 배 이상 많다. 월별 기준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많다. 서울 전체적으로도 3월 한 달간 증여가 3022건 이뤄지며 전년 동기(1693건)의 약 두 배로 늘었다. 지난해 8월 이후 서울지역 증여 취득세가 세 배 뛰었지만 증여 열풍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임성환 ABL WM센터장은 “강남 집값 상승 기대 때문에 세금을 더 물더라도 매도하지 않고 증여로 돌려 보유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도세 부담 강화로 다주택자가 집을 팔 유인이 사라져 6월 이후 매물 잠김은 심해질 수 있다. 가뜩이나 불안한 집값이 더 자극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부동산원이 지난 13일 발표한 주간통계에 따르면 이번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0.09%로 13주 만의 최대치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신규 공급이 막힌 상황에서 다주택자 물건이 나와야 가격 안정도 기대할 수 있다”며 “보유세를 인상한다면 양도세를 낮추는 식으로 퇴로를 열어줘야 하는데 모두 올리고 있는 게 문제”라고 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