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반지하 4억 전세, 실상 알고보니…"돈 몽땅 날릴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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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 빌라 중심으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기 수법"
전셋값 급등에 깡통주택 속출…"계약시 꼼꼼하게 살펴야"
전셋값 급등에 깡통주택 속출…"계약시 꼼꼼하게 살펴야"
'서울 반지하 가운데 올해 전셋값이 가장 비싼 곳은 종로구 부암동에 있다. 이 빌라는 지난해 지어진 신축 빌라로, 지난 6월 전용 59㎡ 지하층이 4억원에 전세 계약이 맺어졌다(관련 기사: 한경닷컴 '"서울살이 힘드네"…빌라 반지하가 4억, 전셋값 미쳤다').이처럼 '서울에서 가장 비싼 반지하' 집에 전세로 살고 있지만 정작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확실치 않은 상황인 것으로 확인됐다.
총 8가구로 이뤄진 이 집의 59㎡ 면적대 전세 계약을 맺고 살고 있는 정모 씨(40)는 요즘 집에 들어오면 한숨부터 나온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단란한 가정을 꾸려 신혼인 정 씨지만 집에 문제가 생기면서다.
정 씨는 지난 4월 이 집을 보고 마음에 들어 집주인 A씨와 가계약을 맺었다. 2주 후 정 씨는 가계약금을 제외한 나머지 계약금도 마저 A씨에게 주고 계약을 진행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잔금을 치르기로 한 날이었다. A씨는 '새로운 집주인'이라며 B씨를 데리고 왔다. 분양실장이라는 C씨, 부동산 공인중개업소에서 나왔다는 D씨까지 동석했다.
이날 기존 집주인 A씨는 새로운 집주인 B씨에게 집을 팔았다면서 잔금은 B씨가 아니라 원래대로 자신에게 주면 된다고 설명했다. 정 씨는 단순히 집주인이 바뀐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A씨에게 잔금을 치르고 전세 계약을 맺었다.
이후 정 씨는 전세보증보험에 들려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보험을 신청했다. 하지만 약 한 달 뒤 HUG에서는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새로운 집주인 B씨에게 체납기록이 발견돼 현재 빌라를 세무서에서 압류했다는 이유에서다.
정 씨는 보증보험 가입을 위해 집주인에게 체납을 해결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세금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정 씨를 계속 피하고 있다. 전세 계약이 끝나는 2년 뒤에도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부동산 중개업소 대표는 "최근 신축 빌라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라며 "당장은 피해가 없지만 전세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세입자는 최악의 경우 전세 보증금을 하나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깡통주택 속출하자…전세 사기 잇따라 발생
1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 씨와 같이 전세 보증금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거나, 받지 못하는 전세 사기가 빌라(다세대·연립주택)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임대차3법 시행 이후 전셋값이 빠르게 치솟으면서 빌라의 경우 전셋값이 매맷값에 육박하거나 이를 넘어서는 '깡통주택'이 속출했다. 깡통주택이란 전세가율(매맷값 대비 전셋값 비율)이 높아 집을 팔아도 전세 보증금과 대출금 등을 갚기 어려운 주택을 말한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3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바탕으로 올해 지어진 서울 신축 빌라 상반기 전세 거래 2752건을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26.9%(739건)가 전세가율 90%를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전셋값이 매맷값과 같거나 오히려 전셋값이 더 높은 경우도 19.8%(544건)에 달했다.
깡통주택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강서구다. 전세 거래 351건 가운데 290건(82.6%)가 전세가율 90%를 웃도는 것으로 집계됐다. 100가구 중 82가구는 깡통주택이다. 특히 화곡동에서 252가구로 집계됐다. 도봉구(55%) 금천구(51.2%) 은평구(42.5%) 등에서도 깡통주택 비율이 높았다.
빌라가 밀집한 강서구 화곡동 한 부동산 공인 중개 대표는 "임대차3법 이후로 전세가 귀해지면서 전셋값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며 "특히 신축 빌라를 중심으로 깡통주택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빌라는 아파트처럼 시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특히 신축 빌라의 경우 전세가율이 대부분 높다"며 "전세 계약 시 전입신고와 점유 등을 통해 대항력을 만들어두고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하는 등 보증금을 떼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임대차3법 등 세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 제도는 잘 갖춰져 있지만, 임차인들이 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을 통한 구제 등을 숙지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홍보 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