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님 없는 가전 쇼핑몰 > 아파트 ‘거래절벽’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부동산 중개, 이사, 가전 등 후방 산업도 충격을 받고 있다. 1일 서울의 한 대형 가전 쇼핑몰 내부가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 /허문찬 기자
< 손님 없는 가전 쇼핑몰 > 아파트 ‘거래절벽’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부동산 중개, 이사, 가전 등 후방 산업도 충격을 받고 있다. 1일 서울의 한 대형 가전 쇼핑몰 내부가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 /허문찬 기자
“4424가구 대단지(은마아파트)에서 올해 매매 건수가 달랑 3건뿐입니다. 학군 수요가 많은 대치동은 봄 이사철이 최고 성수기인데 한 달에 전·월세 계약서 하나 쓰기도 쉽지 않습니다.”(서울 대치동 K공인 대표)

유례없는 거래절벽에 중개·이사·인테리어·가전업 등 부동산 관련 후방 산업이 때아닌 춘궁기를 맞고 있다. 개학을 앞둔 한두 달이 연중 최고 성수기지만 대형 가전과 인테리어 매출이 급감하고 이삿짐센터 일감은 지난해의 반토막 수준으로 줄었다. 현장에선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고 내놓은 정책 때문에 애꿎은 영세업체만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개업소 개업 8년 만에 최저

1일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2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총 795건으로 집계됐다. 월 거래량이 1000건 밑으로 떨어진 것은 서울시가 통계를 집계한 2006년 이후 16년 만이다.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2021년 10월 2200건 △11월 1363건 △12월 1128건 △2022년 1월 1086건 등 최근 6개월간 감소세를 보였다. 아직 신고기간(계약 후 30일)이 남았지만 3월 거래량도 663건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거래절벽에 중개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2020년 입주한 서울 마포구 대흥동 ‘신촌그랑자이’ 내 상가에서는 올 들어서만 중개업소 3~4곳이 문을 닫았다. 집값이 하락세로 전환한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등 서울 외곽지역은 아예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지난 2월 도봉구와 강북구의 아파트 전체 거래 건수는 각각 16건과 12건에 그쳤다.

강북구 미아동 A공인 관계자는 “노도강 집값이 내리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나온 이후에는 전화 문의조차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다”며 “지난해 부동산 중개 보수 상한이 낮아져 수익이 줄어든 데다 역대급 거래절벽이 겹쳐 폐업까지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손님이 끊기면서 중개업소 신규 개업도 8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중개업소 신규 개업은 1만6806건으로 2013년 1만5816건 후 가장 적은 수치를 기록했다.

아파트 거래 급감으로 이사업계는 찬바람을 맞고 있다. 올 들어 포장이사 주문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서다. 마포구 일대에서 17년째 포장이사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K씨는 “지난해 3월에는 20~25개가량 포장이사 일감이 있었지만 올해는 10개 정도에 그쳤다”며 “일감이 없으니 포장이사 전문 운전기사들이 오토바이 택배 배송으로 업종을 바꾸는 추세”라고 했다.

○대형가전·인테리어도 ‘혹한기’

인테리어 업체들도 거래절벽의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이사간 집에 인테리어를 다시 하거나 가구를 마련하려는 소비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국내 간판 업체인 A사의 인테리어 시공 패키지 상품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20% 줄었다. 이사 수요 급감에 코로나 확산까지 겹쳐 오프라인 매장 방문객도 예년보다 20%가량 줄어들었다는 게 A사의 설명이다.

종합 인테리어 패키지 사업을 제공하는 한솔홈데코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인테리어 시판 출고량이 전 분기 대비 약 14% 떨어졌다. 한솔홈데코 관계자는 “인테리어 상품 출고량은 아파트 매매 거래가 이뤄진 후 두세 달이 지나면 반영된다”며 “거래절벽 추세가 상반기 내내 이어진다면 타격은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1~2월이 대목이던 가전업계도 울상이다. 특히 이사 재구매 수요가 많은 냉장고·세탁기 등 대형 가전 시장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 대형 할인마트 관계자는 “설치가 필요한 대형 가전 판매가 전년 1~2월 대비 10% 이상 급감했다”며 “1~3월은 보통 이사 등으로 인해 대형 가전이 많이 팔리는데 올해는 이사 수요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매출 하락폭이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30~50%의 매출 증가세를 보였을 정도로 가전으로 재미를 본 백화점들도 올 들어 매출 정체 상황을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택산업이 중개·이사·인테리어·가전업 등 관련 업종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큰 만큼 정상적 거래가 가능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주택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폐업 증가 등의 영향으로 관련 산업의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완화,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임대차 3법 개선,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등 주택 거래 활성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현주/민경진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