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비 대출 만기…이주비 회수 가능성도
조합은 '집행부 해임'·'조합원 제명' 내홍
"이달 말 서울시 2차 중재안이 마지막 기회"
18일 서울시와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3일부터 2주간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여 도정법 위반 사항을 다수 적발했다. 실태점검 확인서에는 일반경쟁 입찰방식을 위반해 제한경쟁 입찰을 받거나 총회를 거쳐야 하는 계약을 대의원회가 임의로 체결했고, 총회에서는 공사비 증액 사실을 알리지 않고 마감재 업체 변경을 의결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총회의 의결을 받지 않아 도정법을 위반한 금액은 업체 계약체결액과 마감재 및 설계변경으로 인한 공사비 증액 등 2170억원 규모에 달한다. 이 외에도 △운영비 예산에 편성되지 않은 상근이사를 추가 임용해 급여를 지급한 건 △이사회 결의를 받지 않은 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직원을 채용한 건 △행정 서류를 작성하지 않은 건, 대의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자문위원회 등을 구성해 조합원에게 부담이 되는 계약에 조합이 관여한 점 등이 지적됐다.
서울시 "도정법 위법 다수 적발"…조합 "부당한 처사"
서울시는 실태조사 결과에 대해 의견이 있는 경우 17일까지 주거정비과로 소명하라고 조합에 통보했으나, 조합은 별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위반사항에 따라 행정지도, 시정명령, 기관통보, 수사기관 고발 등의 조치를 두고 검토할 예정이다.이와 관련해 조합은 "실태조사 종료일 서울시 담당관이 당일 확인서 날인과 5일 뒤 소명자료 제출을 요구했다"며 "(실태조사 확인서는) 일방적으로 작성됐고 서울시의 행정 처리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이해되지 않았다. 조합은 부당한 처사를 당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와 국토부의 실태조사 후폭풍이 예상되는 가운데, 사업비 대출 만기도 다가오고 있다. 24개 금융사로 구성된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대주단은 오는 8월 24일 만기가 예정된 사업비 7000억원에 대한 대출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출 만기를 연장하려면 17개 금융사가 모두 동의해야 하는데, 만기 연장에 찬성한 금융사는 4곳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둔촌주공 조합의 사업비 대출은 시공사업단이 보증을 섰는데, 시공사업단은 보증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여기에 대주단이 만기 회수로 가닥을 잡으면서 둔촌주공 조합은 7000억원의 사업비를 상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조합이 만기 내 상환하지 못하면 보증을 선 시공사업단이 대신 갚게 되며, 시공사업단은 조합에 구상권을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둔촌주공에 돌아선 대주단…"이주비까지 회수할 수도"
조합은 "만기 연장에 찬성한 곳을 중심으로 새 대주단을 꾸리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주단 관계자는 "대다수가 찬성했다면 반대 금융사 채권을 사들이는 리파이낸싱 방식을 추진할 수 있겠지만, 반대가 더 많은 상황에서 새 대주단을 꾸리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업비가 이주비 조기 회수의 방아쇠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사업비를 대신 상환한 시공사업단이 조합을 상대로 채권 추심 절차를 밟아 조합 계좌 가압류 등의 조치가 이뤄지면 대주단이 기한이익상실(EOD) 사유로 판단, 이주비 1조4000억원 회수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EOD는 돈을 빌린 차주의 신용 위험이 커졌을 때 금융사가 계약을 파기하고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대출금을 회수하는 것이다. 이 경우 둔촌주공 조합은 사업비와 이주비로만 2조1000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조합원 1인당 약 3억4500만원 규모다. 시공사업단의 공사비와 이자 등을 감안하면 상환 액수는 조합원 1인당 6억원을 넘어설 정도로 불어난다.
약 2개월 남은 대출 만기 이내에 둔촌주공 조합이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만, 조합 내분도 격화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 성격의 둔촌주공 조합정상화위원회(정상위)가 공사중단 사태의 책임을 물어 현 조합 집행부에 대한 해임을 추진 중이다. 이에 조합은 전체 조합원에게 해임 발의서를 제출한 조합원을 찾아내 제명하겠다는 문자를 보내며 맞섰다. 정상위는 조합 집행부를 협박과 공갈 미수,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하겠다며 재차 각을 세웠다.
업계는 이달 중으로 나올 서울시의 2차 중재안이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의 마지막 정상화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재건축 사업이라 얽히고 설킨 문제가 많은데 시간마저 부족하다"며 "서울시가 이달 말 내놓을 2차 중재안을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조건 없이 수용하면 정상화가 가능하겠지만, 아니라면 파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일대 5930가구를 헐고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총 1만2032가구 '올림픽 파크 포레온'을 짓는 사업이다. 공사비 증액을 두고 조합 집행부와 시공사업단의 갈등이 불거지며 지난 4월 15일 공사가 중단됐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