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가격에 팔면 동네 창피죠. 신상을 공개해서 망신을 줘야 합니다.”

"집 싸게 내놓으면 신상 공개하자"…사나워진 집주인들
전국적인 부동산 경기 침체에 시세보다 수억원씩 떨어진 급매물 거래가 이어지자 주민들의 신경이 예민해지는 모습이다. 일부에선 “내 재산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며 주민들이 매도인에 대한 집단행동까지 나설 태세여서 주변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26일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최근 호가가 수억원 떨어진 아파트 단지들을 중심으로 급매물을 단속해야 한다는 지역 주민의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매도자의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겁박해 부동산 중개 홈페이지상에서 매물을 내리게 하거나, 해당 급매 물건은 ‘시세 흐름과 무관한 친족 간 거래’라는 점을 적극 알려 시세 하락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수도권의 A아파트 입주민은 부동산 거래 전용 모바일 앱에 “전용면적 59㎡를 5억원대에 헐값으로 넘긴 게 누구냐. 본인 급하다고 이런 식으로 같은 단지 주민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글을 올렸다. 해당 글에는 “매수자 신상이라도 공개해 현수막을 공개해야 한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KB부동산에 따르면 동일 면적의 기준 시세가 7억8000만~8억원인 이 아파트는 최근 5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실거래 상황만 보면 ‘급매’인 것은 분명하다.

조용석 우대빵중개법인 대표는 “모바일 앱이 발달하면서 일부 플랫폼에서는 최근 실거래가가 어느 동 어느 층에서 발생했는지까지 나오다 보니 급매자의 신상을 알아내는 게 어렵지 않다”고 전했다.

서울의 B아파트에서도 비슷한 글이 올라왔다. B아파트에서는 지난달 말 전용면적 84㎡ 매물이 14억8000만원에 팔렸는데 올 1월 이 단지의 실거래가는 18억원이 넘었다. 최근 실거래 내역이 뜨자 주민 커뮤니티에서는 “동네의 가치를 훼손하고 헐값에 팔아버린 자가 누구냐”며 매도자를 색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매도인은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려 “개인의 사유재산인데 왈가왈부할 수 있느냐”며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8억원에 분양을 받았으니 14억원을 넘겨 매도한 것도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급매물 거래를 두고 주민들이 민감해하는 것은 국내 자산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한국인에게 아파트란 절대 가치가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는 ‘종교’에 가깝다”며 “집값 상승기에는 구축 아파트들이 노후 배관 공사를 했다는 것을 광고할 정도로 집값 여론몰이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