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모습. 사진=뉴스1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모습. 사진=뉴스1
“어제의 직거래 가격이 오늘의 중개거래 시세다.”

지난 9월 경기 하남시 미사강변도시베라체(전용면적 84㎡)는 3개월 전 거래 가격보다 1억1500만원 낮은 8억5500만원에 직거래됐다. 당시 증여성 매매 논란이 일었지만 다음달에 1억원 더 낮은 7억5000만원에 중개거래가 성사되면서 직거래가 실거래가 기준 역할을 한 셈이 됐다. 11월 서울 아파트 매매에서 직거래 비중이 처음으로 30%를 돌파하고 전국적으로도 20%에 달한 것은 직거래가 ‘매매를 가장한 증여’ 수준을 넘어 일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집주인, 매물들고 플랫폼으로

부동산 직거래 비율은 아파트 매매뿐만 아니라 연립·다세대 등 주택 전반에서 늘어나고 있다. 2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연립·다세대 매매의 직거래 비중은 36.77%로 작년 같은 기간의 29.9%를 뛰어넘었다. 역전세난의 영향으로 플랫폼에 올라오는 급전세 물건도 증가하고 있다. ‘피터팬의좋은방구하기’의 유광연 대표는 “전에는 원·투룸 전·월세가 주로 직거래됐는데 최근엔 아파트 매매 물건이 하루에 수십 건씩 올라오고 조회수도 많아 놀랍다”고 했다.

아파트 매물은 거래절벽이 심화하면서 플랫폼에 올라오는 수량이 부쩍 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월평균 6500건이던 서울의 아파트 매매는 올 들어 700~800건 안팎으로 급감했다. 중개업소에 내놓은 집이 수개월 동안 문의조차 없자 집주인이 전국 투자자들이 보는 온라인 플랫폼을 찾아 직접 홍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직거래 카페 ‘파직카’에 올라온 서울 노원구 주공아파트 전용면적 58㎡의 경우 네이버 최저가 수준에 매물을 내놓았다. 플랫폼에 올라온 매물에는 ‘네이버 최저가보다 낮게 거래 가능’ ‘매수희망 시 금액조정 가능’ 등의 설명이 붙었다.

매수자들도 입소문을 타고 직거래 플랫폼으로 몰리고 있다. 플랫폼을 통해 매도인 신분 확인, 등기부등본·건축물대장 확인, 특약사항 검토, 거래신고·등기 업무 등을 꼼꼼히 확인하는 요령을 공유한다. 집 주변 중개업소에 50만원 정도를 내고 거래 입회와 계약서 대필을 부탁하는 게 보통이다.

공인중개사 직인이 찍히지 않은 계약서를 내면 대출을 꺼리던 은행들도 달라지고 있다. 하나은행은 선제적으로 직거래 대출에 나섰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직거래는 추가로 확인할 사항이 많아 다른 은행들은 잘 취급하지 않지만 최근 직거래가 늘어나는 것에 맞춰 대출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플랫폼도 매매대금을 명의이전 때까지 맡아주는 에스크로 서비스와 전자계약서 등 거래 안전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중개업계 위기감

부동산중개업소들은 거래가 끊기다시피 한 상황에 직거래까지 늘면서 이중고에 처했다. 집주인들이 중개업소 대신 플랫폼에 매물을 내놓으면서 ‘매물 장악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중개업계는 직방 등 모바일 플랫폼이 시장 직접 진출을 추진하자 집주인 매물을 공유하지 않는 ‘매물 셧다운 캠페인’ 등을 벌여 시장을 지켰다. 그러나 최근엔 집주인이 오히려 “매수인을 (직거래 플랫폼에서 찾아) 데리고 왔으니 중개해주되 수수료는 반만 받으라”는 식의 요구를 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 협회는 이에 대응해 최근 의무가입 법정단체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결속력을 높이고 징계·감독 권한을 확보해 업계 파이를 키운다는 전략이다. 이종혁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회장은 “플랫폼이 합법적인 영업을 한다면 막을 방법도 없고, 불공정한 방법으로 압력을 가할 계획도 없다”며 “대신 음지에서 일어나는 기획부동산의 토지거래와 분양대행사, 상가·공장 컨설팅 업체 등의 불법 중개를 적극 단속해 업계의 영역을 넓히겠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