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지수가 22% 넘게 떨어지며 연간 기준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16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에 급매물 게시물이 빼곡히 붙어 있다.  /김범준  기자
지난해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지수가 22% 넘게 떨어지며 연간 기준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16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에 급매물 게시물이 빼곡히 붙어 있다. /김범준 기자
무자본 깡통전세 사기로 1000가구 이상의 주택을 소유하다 사망한 일명 ‘빌라왕’ 김모씨의 주택 85가구가 경매시장에 무더기로 나왔다. 김씨가 소유한 것으로 확인된 주택이 1139가구에 달하는 점을 감안할 때 나머지 주택 상당수도 조만간 경매시장에 쏟아져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전세사기 주택 대거 경매로

경매 쏟아져나온 '빌라왕' 주택…세입자들, 눈물의 '셀프 낙찰'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16일까지 전세금 보증 사고로 경매에 나온 빌라왕 김씨의 주택은 85가구인 것으로 확인됐다. 개인 명의가 48가구, 김씨 소유 법인(D하우징) 명의로 나온 물건이 37가구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나머지 1000여 가구도 전세 만기가 돌아오는 순으로 경매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김씨 보유 주택 중 가장 먼저 주인을 찾은 곳은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의 전용면적 54㎡ 빌라다. 감정가 2억6000만원인 이 빌라는 세 번의 유찰 끝에 지난 6일 임차인 신모씨가 1억8400만원에 낙찰받았다. 신씨의 전세보증금은 1억8500만원으로 낙찰가보다 100만원 많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빌라 매매 시세와 전세가는 떨어지는데 기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보증금액이 높아 임차인이 아니고는 낙찰받을 사람이 나타나기 어렵다”며 “빌라왕의 물건은 1139채 중 겨우 한 채가 낙찰된 것이고, 지난해 계약분 종료 시점인 2024년까지 경매 시장에 우후죽순처럼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세입자 울며 겨자먹기 ‘셀프 낙찰’

빌라왕 사건 피해자들은 집주인인 김씨가 사망하면서 경매 신청 절차가 복잡해진 데다 응찰자도 없어 세입자가 집을 떠안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우려된다. 보증보험 미가입 세입자는 경매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전세보증금 반환청구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는 것까지는 기존과 같다. 하지만 경매 개시 결정문 도달 단계에서 법원의 보정명령을 받은 후 상속대위등기 절차를 추가 진행해야 한다. 빌라왕 사건 피해자의 30~40%는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빌라왕 주택은 거래 절벽 속에 전세사기 피해 물건이라는 ‘딱지’까지 붙어 경매시장에서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 매물이 서울 화곡동 쌍문동 등 비인기 지역에 몰려 있는 것도 악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빌라왕 사례처럼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못 돌려줘 경매가 예상되는 주택은 최근 수개월 사이 급증하고 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임차권등기명령이 신청된 주택은 2081건이다. 전년 동월(521건) 대비 3.9배 늘어난 수치다.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작년 7월(907건)까지 세 자릿수를 유지하다 같은 해 8월(1043건) 1000건대로 올라섰고, 지난달에는 2000건을 넘었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세입자가 임대차 계약 기간이 종료된 시점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을 경우 주민등록을 옮기더라도 대항력을 유지해 전세금을 우선해 돌려받을 수 있는 수단이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5월부터 전세사기 피해자가 경매를 통해 매입한 집의 보유 기간은 유주택 기간에서 제외해 청약 당첨에 불이익이 없도록 할 방침이다.

이 선임연구원은 “직접 낙찰받아 시장에 다시 매각이라도 해보기 위해 세입자들이 눈물을 머금고 살던 주택을 경매로 매입하는 사례가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