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20%가량 떨어지면 수도권에서 하반기 계약 만기가 도래하는 빌라 전세 10건 중 8건은 전세보증보험 재가입이 불가능할 것으로 분석됐다. 빌라 공시가격이 낮게 책정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맞추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 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강화하려던 HUG도 다급하게 예방책을 내놨다. 오는 5월 예정이던 전세 보증보험 가입기준 상향 적용을 갱신계약에 한해 내년 1월로 유예하기로 했다.
공시가 급락…수도권 빌라 80% '보증 불가'

○서울 80%, 인천 94% 전세보증 불가

22일 한국경제신문이 부동산 중개업체 집토스에 의뢰해 수도권 빌라 전세 매물을 조사한 결과 올해 공시가격이 지난해보다 20% 하락함에 따라 하반기(7~12월) 전세 계약이 종료되는 수도권 빌라 5만2632건 중 82%(4만3158건)는 보증보험 계약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경우 82.27%, 경기도는 80%가 재가입이 불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천은 94%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셋값 변동 없이 그대로 갱신계약한다는 전제 아래 분석한 결과다.

집토스는 지난달 공시가 10% 인하를 예상하고 ‘수도권 빌라 재계약 불가’ 비율이 71%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예상을 웃도는 공시가 인하율이 나오면서 보증보험 재계약 불가 추정치가 더 올라간 것으로 풀이된다.

공시가격 변동은 전세보증보험 가입과 관련이 깊다. 올초 정부는 ‘전세 사기 대책’ 일환으로 오는 5월부터 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기준을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 100%에서 90%로 강화하기로 했다. 전세가율 계산에 활용하는 공시가격 기준도 집값의 150%에서 140%로 하향했다. 여기에 공시가격까지 대폭 낮아지면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전셋값 상한선도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구조다.

예컨대 서울 망원동의 전용면적 60㎡ 빌라는 지난해 3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이후 3억3000만원에 전세 세입자를 구했다. 현재 기준대로라면 HUG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하지만 5월부터 공시가격 140%와 전세가율 90% 기준이 적용돼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보증금 상한액이 3억2000만원으로 줄어든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더 내리지 않는 한 새 세입자의 HUG 보증보험 가입은 불가능하다.

○“빌라 임대인 상당수 자금 여력 없어”

HUG는 임차인의 보증보험 가입 문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전세가율 조정 시행 시기를 갱신계약에 한해 내년 1월로 미뤄주기로 했다. 저소득층 임대인에 대한 보증료 할인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HUG는 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상향하는 기본 방침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임차인에게 대위변제한 뒤 임대인에게 받지 못한 보증사고 금액이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서다. HUG에 따르면 지난해 보증사고 금액은 1조1726억원으로. 전년(5790억원) 대비 두 배(102%)가량 증가했다.

HUG 관계자는 “보증보험 가입요건 상향은 무자본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 등 전세 사기를 차단하고 임대인의 과도한 보증금 책정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라며 “최근 전셋값이 하락 추세인 데다 임차인의 월세 선호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 공시가격 급락에 따른 보증보험 가입 어려움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이재윤 집토스 대표는 “빌라 임대인 상당수가 자금 상황이 여의찮아 전셋값을 인하하기가 쉽지 않다”며 “전세 사기로 타격을 받은 빌라시장에 공시가격 후폭풍이 거세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