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본사를 둔 개발업체 A사는 경기 화성시 동탄에서 진행하는 주택 사업용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이 부족해 보유한 다른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사업비의 40%에 달하는 후순위 PF 대출을 해줄 금융회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받은 선순위 대출 금리도 연 8%로 작년의 두 배로 뛰었다. A사 관계자는 “PF 대출은 덮어놓고 하지 말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커지면서 일부 증권사 정도만 대출을 해주고 있다”며 “대출 회사가 적어 후순위 금리가 연 15~19%까지 치솟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동산개발 시장에서 지난해 하반기 이후 ‘돈맥경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PF 대출이 사실상 막혀 주택 사업을 미루거나 매각하는 사업장이 잇따르고 있다. 금리 상승, 공사비 인상, 기존 아파트값 하락이 맞물린 결과다.

○PF 돈맥경화, 대형 건설사도 안심 못해

10대 건설사 PF도 반토막…"연내 시행사 10곳 중 8곳은 부도 날 것"
PF 시장 돈맥경화의 여파는 재무 건전성이 우수한 대형 건설사에까지 미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삼성물산 현대건설 DL이앤씨 등 10대 건설사를 대상으로 집계한 올 상반기 PF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40% 수준(11조6300억원→4조9600억원)이다. 3곳은 신규 브리지론과 PF 실적이 ‘제로’였다. 비주거 부문만 놓고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비주거 PF는 삼성물산이 경기 성남시 판교에 엔씨소프트 2사옥 등을 짓는 판교복합개발(7800억원)과 대우건설의 서울 양재동 데이터센터 사업(468억원) 등 세 건에 불과했다.

재무구조가 취약한 10위권 밖 건설사와 수도권 외곽 사업의 PF 대출은 사실상 씨가 말랐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금융당국이 대형 시공사가 참여하지 않거나 보증기관 보증이 없는 PF 대출은 하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있어서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보증기관의 기준도 문제로 꼽힌다. 한 시행사 대표는 “보증기관이 시공능력평가 톱5 이외 시공사가 참여하는 사업엔 시공사 연대보증, 자금보충확약 등을 요구하고 있다”며 “시행사에도 통상 5% 수준이던 토지비 지분투자 비율을 20%까지 올리라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정상 사업장 맞춤 지원 절실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연착륙시켜야 한다’며 지난해 말부터 PF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13년 만에 대주단협의체를 구성했고, 금융사에는 기존에 집행한 브리지론 대출을 일괄 연장해주도록 지도하고 있다. 지난 4일엔 1조원 규모의 ‘부동산 PF 사업장 정상화 지원펀드’를 오는 9월부터 가동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하지만 대책이 ‘될성부른 곳을 살리는’ 게 아니라 ‘금융회사의 확정 손실을 뒤로 미루는 데’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업성 있는 개발 사업을 지원하겠다며 HUG와 주택금융공사의 보증 한도를 늘렸지만, 리스크 관리 기준은 더 까다롭게 바꾼 게 대표적이다. 올 1~4월 HUG 등 정부 기관이 신규로 지원한 PF 보증 등 정책금융은 9000억원에 불과했다. 올해 써야 할 보증예산(5조1000억원)을 지키고만 있는 셈이다.

개발업체는 보통 본 PF 대출을 받아 고금리로 조달한 브리지론을 상환한다. 브리지론 상태에서 본 PF로 넘어가지 못하는 이른바 ‘좀비 사업장’이 급증하고 있다. 한 개발업체 대표는 “금융비용을 버티지 못하는 시행사 10곳 중 8곳은 연내 부도가 날 것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고 했다. 하서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부실 우려 사업장은 매각을 지원하되 정상 사업장은 대출 보증을 확대하고, 사업 재구조화를 통해 수익성을 높이는 등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유정/이인혁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