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승자는 덴마크다. 다보스포럼으로 잘 알려진 세계경제포럼(WEF) 산하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이달 초 전 세계 64개국을 대상으로 순위를 매긴 결과다. 덴마크는 스위스 아일랜드 싱가포르 등 내로라하는 강소국을 제치고 ‘가장 경쟁력 있는 경제’로 평가받았다. 세계 GDP(국내총생산) 37위 수준에, 1인당 소득이 월등히 많은 자원부국을 제치고 덴마크가 1위에 꼽힌 이유는 뭘까.이코노미스트들은 비만치료제 ‘위고비’ 열풍을 몰고 온 제약회사 노보노디스크의 후광 효과가 컸다고 분석한다. 덴마크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당초 전망치(0.6%)의 2배인 1.2%로 예상된다. 로이터통신은 “노보노디스크가 이끄는 제약산업의 약진이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4330억달러로 덴마크 GDP(4054억달러)를 뛰어넘었다.눈여겨볼 대목은 1923년 설립된 노보노디스크가 100년간 창업 이념을 지켜낼 수 있는 지배구조다. 회사의 최대주주는 창업자 부부가 설립한 공익재단이다. 지분율은 28%지만 의결권은 77%에 달한다. 재단이 전적으로 보유한 클래스A 주식의 의결권은 시장에서 유통되는 클래스B 주식의 10배다. 질병 퇴치라는 인류 공공의 선(善)을 추구한다는 기업 가치를 지켜내는 비결이다.재단에 귀속된 지분에 대해선 상속·증여세도 면제된다. 대신 수익의 일부는 기부금 형태로 생명과학 지원 등에 쓰고 있다. 재단이 최근 2년간 기부한 금액만 23억달러가 넘는다. 이는 제약산업 생태계 저변을 넓히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진다. 맥주회사 칼스버그, 완구회사 레고 등 덴마크의 또 다른 대표 기업도 마찬가지다. 가족재단 설립과 차등의결권 제도를 통해 지배력을 유지하고
한국의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은 역설적으로 창업가의 지분 축소와 궤를 같이한다. 산업화 초기엔 자본시장이 존재하지 않았고, 자본 축적도 이뤄지지 않았다. 기술 개발과 투자, 관련 사업 다각화를 위한 계열사 설립과 피라미드식 지배구조는 자본의 제약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창업자 지분이 희석되고, 경영권 보호 장치도 허용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한국의 대기업집단은 계열사 간 상호출자와 지급보증을 통해 사업을 키우면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선단식 경영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냈고, 유례가 없는 성장사를 써내려 왔다. 별반 새롭지 않은 내용을 장황하게 풀어낸 이유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최근 발표가 눈에 걸려서다. ‘기업집단 주식 소유 현황’이라는 17쪽 분량의 자료를 요약하면 “여전히 총수 일가가 소수 지분으로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촘촘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십 년째 달라지지 않는 공정위의 레퍼토리는 식상한 수준을 넘어 자괴감이 들 정도다. 글로벌 산업 재편과 기술 패권 전쟁이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시대 변화를 읽고 있는지 의문이다. 올해 추가된 ‘테마’는 공익법인과 해외 계열사를 통한 ‘우회 지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꼼수’라는 해석도 뒤따랐다. 모두 법률적 판단과는 거리가 먼 용어들이다. 거기에 어떤 위법과 탈법이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공정위가 ‘편법’으로 본 지배구조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보편화한 방식이다. 이들 국가의 경쟁당국이 문제 삼는다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다. 무엇보다 공정위가 비판한 한국의 대기업 지배구조는 정부가 유도한 결과다. 노
“과거의 한국보다 현재의 중국이 훨씬 유리하다. 자본, 기술, 인프라 모든 점에서 한국보다 앞서 있다. 경종을 울려달라.” 국내 최고 권위의 반도체 전문가 A씨는 “한국은 자만에 빠져 혁신을 잃고 있다”며 익명으로 이렇게 요청했다. 최근 중국이 7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반도체 기술을 확보한 것에 대한 평가가 냉소적으로 바뀌자 강한 경계와 우려를 표시했다. 지난달 말 중국 화웨이가 5세대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를 내놓자 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스(AP)를 뜯어본 결과 7나노 공정에서 생산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국내외에서는 “중국이 반도체 굴기에 성공했다. 3년간에 걸친 대중 규제가 무력화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중국의 7나노 양산은 놀랍긴 하지만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고 있다. 아직 4~5년의 기술 격차가 있을 뿐 아니라 미국의 강력한 제재를 부르는 제발 찍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 그러한가. 한국의 반도체 기술을 이끈 1세대 기업인 A씨는 격앙된 어조로 반박했다. 한국이 반도체를 시작할 당시로 돌아가 보자. 1983년 삼성전자가 무수한 반대를 무릅쓰고 반도체 양산에 도전했을 때 자본, 기술, 인프라 중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창업자의 열정과 리더십이 유일한 돌파구였다. 반면 지금 중국은 한국에 없던 세 가지 모두에 더해 시장이라는 확실한 우군까지 갖고 있다.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를 받아들일 수요처가 확보돼 있다. 이번에 화웨이 스마트폰에 들어간 7나노 AP를 만든 SMIC는 중국 파운드리업계의 희망으로 불린다. 중국 정부의 전
인도 정부는 최근 삼성전자에 투자비의 75%를 보조금으로 줄 테니 반도체 공장을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 팹(반도체 생산라인) 하나를 놓는 데만 수조원이 든다는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제안이다. 이면에는 ‘세계의 공장’ 중국을 대체하려는 인도의 야심이 깔려 있다. ‘돈풀기의 막장’은 자유무역의 기치를 내던진 미국이 가장 먼저 보여주고 있다. 조 바이든 정부는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쌓아 올린 관세장벽을 공고히 했을 뿐 아니라 보조금까지 추가해 ‘미국 우선주의’를 더욱 강화했다. 미국 반도체산업 육성을 목표로 한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이 대표적이다.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만 선별적으로 제공하는 보조금 규모만 2800억달러에 달한다. 이에 굴복한 세계 파운드리 1위 기업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 회장은 “세계화는 끝났다”고 말했다. 세계화는 국가 안보에 해를 끼치지 않는 조건에서만 기업이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 있는 것으로 재정의됐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이처럼 글로벌 경제전쟁은 개별 기업 단위에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경제 안보와 기술 패권주의는 국가의 명운을 건 이슈가 됐다. 공급망 재편뿐만 아니다. 유럽연합(EU)의 글로벌 최저한세율 규제가 시행되면 한국 기업의 해외 전략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낮은 세금과 값싼 노동력을 쫓아다니는 한국 기업의 생산거점 최적화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된 한국은 특히 그렇다. 더구나 대외 변수에 취약한 소규모 개방경제의 한계를 숙명처럼 안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합세해 국가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경제계를 대표
일본은 저임금 국가인가. 절대 기준으로는 아니다. 일본은 주요 7개국(G7)의 일원이자 세계 3위 경제 대국이다. 하지만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비교 범위를 좁히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해 일본의 평균 임금(PPP·구매력 평가 기준)은 4만1509달러로 OECD 평균(5만3407달러)보다 30% 낮다. 순위도 38개 회원국 중 26위로 하위권이다. 국가의 위상과 개인 삶의 질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오죽하면 올해 초 일본 정부가 대기업에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를 100% 수용하라고 압박할 정도다. 도요타 등 대기업들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20년간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했지만, 실질임금 상승은 없었다. 일본의 딜레마는 임금을 올리더라도 인플레만 유발할 뿐 가처분 소득이 늘지 않는 데 있다. 재정 악화로 세입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사회보장비는 급속도로 늘면서 국민부담률이 지난해 46.5%까지 올랐다. 소득의 절반을 세금과 연금, 건강보험료로 낸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는 “일본이 경쟁에 뒤처지며 저임금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는 전문가 분석과 기고가 종종 실린다. 장황하게 일본 상황을 풀어낸 것은 곧 닥칠 우리의 미래와 겹쳐 보여서다. 1990년 당시 일본의 평균 임금은 3만8000달러로 OECD 국가 중 12위였다. 북유럽의 노르웨이, 핀란드는 물론 프랑스, 영국보다 높았다. 하지만 10년 뒤 2001년엔 3만8400달러로 단 1% 증가하는 데 그치며 이들 국가에 추월당했다. 한국에는 2015년부터 역전당했다. 지난해 한국의 평균 임금은 4만8922달러로 일본보다 6계단 앞서 있다. 문제는 한국 역시 일본이 걸어온 것처럼 수축사회에 접어드는 변곡점에 섰다는 것이다. 지금 누리는 호황은 확
3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한국 국회는 전 세계 입법부를 통틀어 가장 기이한 집단으로 불릴 만하다. 정치적 이념과 사적 이익을 교묘하게 결합하고, 반대편 진영과 적대적 공생 관계를 이어가면서 집단 이기주의를 유지하는 행태가 대표적인 특징이다. 여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입법 실적과 비상식적 법안 처리 관행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다. 2020년 4월 출범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의원 입법은 2만818건이다. 아직 회기를 11개월 남겨두고 있지만 이미 20대 국회 전체 의원 입법 건수(2만3047건)에 육박한다. 올해만 놓고 보면 벌써 2703건이다. 하루 평균 20건, 한 달에 600건의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21대 국회에서 의원 입법 3만 건을 돌파하는 신기록 달성도 가능할 듯싶다. 다행히 이들 법안이 모두 통과되는 재앙은 벌어지지 않는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의원 입법 중 폐기된 법안만 1만4769건으로 10건 중 7건꼴이다. 하지만 워낙 법안 숫자가 많다 보니 30% 통과율을 감안해도 제·개정 법안만 연간 2000건을 넘는다. 다른 나라 의회는 엄두도 못 낼 수준이다. 미국 의회가 처리하는 법안은 한 해 평균 150건, 일본은 그 절반인 80건 정도다. 의회 민주주의의 전형이라는 영국은 40건이 안 된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의원 한 명당 통과·반영·성립 법안 건수는 한국이 미국의 21배, 프랑스의 49배, 영국의 172배, 독일의 37배에 이른다. 이렇게 쏟아지는 ‘묻지마 발의’는 필연적으로 졸속 심사를 내재하고 있다. 의원들도 법안을 내는 것에 올인할 뿐 심사는 뒷전이다. 정쟁을 일삼다가 벼락치기 하듯 회기 후반에 몰아쳐서 1000건이 넘는 법안을 하루에 처리하는 관행도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더
“미래가 사라졌다.” 최근 만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토로하는 공통된 고민이다. 최근 한 행사장에서 만난 유영상 SK텔레콤 대표는 “과거처럼 10년 후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했다.올 1분기에만 4조원대 적자를 예고한 SK하이닉스가 단적인 예다. 내부에선 누구도 반도체 사이클이 이렇게 급변할지 예측하지 못했다. “올해 이익이 어느 정도 줄 것으로 봤지만 적자를, 그것도 조(兆) 단위 손실을 볼 것이라는 건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시장점유율 40%가 넘는 부동의 메모리 반도체 1위라는 시장 지위를 앞세워 감산 없는 ‘강공 드라이브’를 전개했지만, 예측치를 뛰어넘는 급격한 시장 악화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1분기 어닝 쇼크는 둘째치고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시장 예측력이다.글로벌 기업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불확실성은 상수(常數)가 됐다. 그만큼 기업의 사망률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맥킨지 컨설팅 연구 결과를 보면 1958년 당시 미국 S&P500 기업의 평균수명은 61년이었다. 현재는 20년 미만이다. 인간이 ‘슈퍼 센테니얼’(100세 이상 생존) 시대를 앞둔 것과는 딴판이다. 2027년까지 S&P500 기업의 4분의 3이 소멸할 것이라는 게 맥킨지 예측이다.한국은 어떨까. 2000년과 2020년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 순위 자료를 비교하면 이 기간에 30대 그룹 중 12곳(40%)이 사라졌다. 이들을 대신해 카카오 네이버 미래에셋 셀트리온 등 9곳이 새로 이름을 올렸다. 순위가 급등락한 곳도 있다. 한화는 2000년 8위에서 2010년 16위까지 내려앉았다가 다시 2020년 7위로 복귀했다. 한
“노회한 폴리페서(정치 교수)와 관료들의 마지막 놀이터다.”최근 현직을 떠난 금융권 고위층 인사는 현 사외이사 제도의 난맥상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도입한 사외이사 제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질했다는 지적이다.그가 전한 일부 사외이사의 모습은 퇴행적이기까지 하다. 이들은 이사회 산하 감사위원회, 평가보상위원회 위원장을 돌아가면서 맡는다.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평가와 보수 책정은 물론 CEO 후보의 추천 권한을 갖고 임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CEO를 바꿔가며 장기 집권하면서 후계자 선정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인사에도 개입하고, 이 과정에서 노조와의 물밑 결탁도 이뤄진다.다른 곳에선 사외이사들이 흠결 있는 경영진과 결탁해 외풍을 막아주는 방패막이를 자처하기도 한다. 로비스트와 다를 바 없는 행태다. 학연과 지연, 혈연으로 얽힌 한국 특유의 사회관계망 속에서 전직 장·차관 혹은 정부 산하 위원회의 장(長) 출신 사외이사라는 명함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이들에겐 은밀하게 반대급부가 제공되기도 한다. 고액 연봉은 애교다. 수십억원의 일감이 건너가고, 프로젝트 몰아주기가 횡행한다. 외견상 합법적인 절차와 심사를 거친 것으로 포장되지만 내부자들은 어떤 뒷배경이 작용했는지 알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회사와 대기업 이사회 사무국은 사외이사 의전에 목숨을 건다. 매년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돌아오는 이맘때면 사외이사들의 추문이 외부로 흘러나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이쯤 되면 ‘사외이사=거수기’라는 지적은 본질에 한참 비켜나 있다. 핵심은 사
삼성은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를 원하는가. 반도체 경기가 다운사이클(장기 하락) 국면에 접어들 때 단골로 나오는 외신 기사 제목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보고서에도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세계 1위 기업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담겨 있다.기원전 3세기 그리스 북서부 에피로스의 국왕 피로스 1세는 로마를 침공해 연승을 거뒀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전투에서는 연이어 대승을 거뒀으나 그 역시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로마는 연패를 거듭했지만 즉각적인 충원으로 전쟁을 소모전으로 끌고 갔고, ‘알렉산더 대왕의 재림’이라고 불린 피로스를 고립시켜 패망으로 몰았다. 이후 피로스의 승리는 ‘승자의 저주’와 동의어가 됐다.삼성의 반도체 전략을 피로스의 승리에 빗댄 것은 역설적으로 삼성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삼성의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는 시장을 폐허로 만들면서 싸운 결과다. 세계 최고의 기술과 원가 경쟁력,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물량 공세로 경쟁자를 파산으로 내몰고, 점유율 싸움에서 우위를 확보했다.1997년 23개에 달하던 세계 D램 제조업체는 반도체 불황기를 거치며 절반 이하로 줄었다. 실상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과점체제다. 이들 3곳의 시장점유율이 95%에 달한다. 이 중 삼성전자의 ‘파이’가 41%로 가장 크다. 불황기를 활용해 경쟁자를 무너뜨리며 승자독식 체제를 굳힌 것이다. 반도체업계에선 이를 ‘대학살’로 부른다.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달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연간 50조원이 넘는 투자 규모를 올해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전략을 고수하겠다는 뜻으로 감산
7733명. 지난해 말 기준 100세 이상 인구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집계다. 추정이 아니라 실제 수치다. 지역별 차이나 특이점도 없다. 인구와 비례할 뿐이다. 서울이 1292명으로 전체의 16.7%를 차지했다. 6명 중 한 명꼴이다. 경기도는 이보다 많은 1725명. 인천(423명)을 더하면 수도권에만 3440명(44.5%)이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있으니 비슷한 비율이다.잘사는 지역은 다를까. 어느 정도 맞지만, 절대적인 잣대는 아니다. 서울에서 100세 이상 인구가 가장 많은 구는 송파(83명)다. 강남과 서초, 강동 등 이른바 ‘강남 4구’에 22%(284명)가 몰려 있다. 이 역시 인구를 감안해야 한다.주변에 100세 이상 인구를 말하면 반응은 확연히 갈린다. ‘아직도 1만 명이 안 되느냐’는 의아함과 ‘그렇게나 많냐’는 놀라움이 교차한다. 객관적으로 한국의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많은 수치는 아니다. 전체 인구 5143만 명의 0.015%. 10만 명당 15명이다. 대표적인 장수 국가 일본(62명)의 4분의 1이다.100세 이상인 센티네리언(centenarian)을 장황하게 분석한 이유는 ‘정해진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초고령화 사회는 피할 수 없다. 2008년 말 기준 100세 이상 인구는 2335명. 14년 동안 3.3배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90세 이상 인구도 8만6227명에서 28만5482명으로 정확히 같은 비율로 늘었다. 반면 0~9세 인구는 509만 명에서 353만 명으로 30.6% 급감했다. 156만 명이다.이 추세는 적어도 한 세대, 30년간 이어진다. 당장 기막힌 저출산 해법을 찾는다고 해도 인구 절벽은 해결되지 않는다. 2020년에 태어난 아이는 약 27만 명. 이 중 절반이 여자이니, 이들이 서른 살이 되는 2050년까지 모두 결혼해 자녀를 한 명씩 낳더
올해의 승자는 놀랍게도(혹은 당황스럽게도) 그리스와 포르투갈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매긴 올해 경제성적표에서 나란히 1, 2위에 올랐다. 스페인과 이탈리아까지 더하면 유럽의 골칫덩이로 불렸던 PIGS 국가들이 모두 톱10에 들었다. 독일은 30위까지 밀렸다.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다. 지중해 국가들은 러시아의 가스와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를 피해 갔다. 올해 그리스의 성장률 전망치는 5.6%다. 전 세계 평균의 약 2배다. 아테네 증권거래소 주가지수도 올 들어 2.8% 오르며 글로벌 증시 폭락을 피했다.단연 눈에 띄는 수치는 국가채무 비율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6%나 줄었다. 10여 년 전 국가 부도에 몰리며 유로존을 공멸 상태로 몰고 갔던 것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최근 통과된 내년도 예산은 흑자로 편성했다. 국가부채 상환을 제1 목표로 둔 재정 정책을 확고히 유지하고 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는 “개혁이 실질적인 성과를 냈다. 2023년을 기대하고 있다”고 흥분했다.포르투갈은 올해 월드컵에선 8강에서 탈락했지만, 경제만큼은 ‘승자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우승국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파탄 상태에 몰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수많은 외국 기업이 포르투갈에 제조 공장을 열고, 신생기업이 늘면서 실업률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포르투갈의 성장률을 6.4%로 전망한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국가신용등급도 BBB+로 한 단계 올렸다. PIGS 국가를 따라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눈여겨볼 국가는 4위 이스라엘이다. 올해 정부 붕괴라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지난해 8.1%에
올해로 만 67세인 창업 중소기업인 L회장은 베트남에서 귀국하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우울해진다고 했다. 인천공항에 가까워질수록 “한국 공장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과 베트남에 각각 생산공장을 둔 이 회사는 초경량 고강도 알루미늄 텐트폴 상용화에 성공한 이 분야 세계 1위 기업이다.그는 잘나가던 외국계 은행을 그만두고 35세였던 1988년 인천 주안의 수출산업단지에 회사를 세웠다. 7명으로 시작한 공장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최근의 코로나19 사태까지 견뎌내면서 연간 수출액만 3500만달러가 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L회장의 얼굴엔 근심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생산성과 품질, 비용 모든 면에서 한국과 베트남은 비교가 안 된다”고 했다.대기업은 예외일까. 현대자동차 해외 사업장의 생산성과 수익성은 한국 공장을 추월한 지 오래다. “솔직히 말하면 현대차 국내 근로자의 고임금은 해외 공장 생산직을 착취한 대가나 다름없다”는 게 업계 사정에 밝은 경제단체 고위 관계자의 실토다.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한국무역협회의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1년 새 ‘단위노동비용 증가율’은 비교 국가에 비해 12계단 상승해 10위에 올랐다. 미국, 유럽 선진국을 제외하면 최상위권이다. 일본을 넘어선 지 오래다. 반면 노동생산성은 30위로 뒤처졌다.10년 전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극찬하던 해외의 시각도 사뭇 달라졌다. 2012년 모건스탠리에서 신흥시장을 총괄하던 루치르 샤르마는 10년 후 세계 경제를 주도할 ‘브레이크아웃 네이션(Breakou
경제계의 시간표가 다시 빨라지고 있다. 위기의 징후가 짙을수록 나타나는 현상이다. 올해는 더욱 그렇다. 단적으로 인사가 앞당겨지고 있다. 통상 12월 초중반에나 나오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인사가 이달 초부터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4대 그룹은 내년 경영 계획과 목표까지 사실상 확정했다. 12월은 새로운 진용으로 내년을 앞서 시작하는 첫 달이 됐다. CEO의 머릿속에 2022년은 지나간 숫자다.이목은 삼성에 쏠리고 있다. 10년 만에 부회장 꼬리표를 뗀 이재용 회장이 내놓을 비전이 인사로 구체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달 27일 삼성전자 이사회가 승진을 의결한 뒤 이 회장이 내놓은 메시지는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이었다. 화려한 취임식도, ‘제2 창업 선언’도 없었다.2년 전 현대자동차그룹의 최고 수장에 오른 정의선 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꺼낸 화두는 인류의 행복이었다. ‘양적 성장’ 대신 “인류의 꿈을 함께 실현해 나가는 기업”을 내걸었다. 사업보국이라는 거창한 구호나 장밋빛 미래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고객의 평화로운 삶과 건강한 환경, 자유로운 이동을 꼽았다. 현대차가 올해 세계 3위를 넘볼 정도로 도약한 배경에는 ‘양적 성장’ 대신 보편타당한 기업 가치를 내건 게 역설적으로 주효했다.이 회장의 승진을 지켜본 전직 삼성 고위관계자는 “새로운 ‘삼성 정신’을 불러일으켜야 할 때”라고 했다. 과거 ‘시스템의 삼성’에 집착하거나 옛날 삼성 문화를 숭상하는 시스템이 유지된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삼성이 직면한 안팎의 상황은 엄혹하다. 한국 경제의 ‘안전판’으로 불리
위기는 늑대처럼 다가온다. 지난달 세계 최대 헤지펀드가 원화 선물환을 매도하면서 원화 공격에 나설 때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은 반신반의하며 시장을 주시했다. 역외차액결제 선물환시장(NDF)은 한국의 펀더멘털이 약해지면 어김없이 환투기 세력이 ‘간을 보는’ 놀이터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원화에 대한 역외 투기적 거래 확대 가능성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며 구두 개입에 나섰다. 이례적으로 ‘투기적 거래’라는 표현을 써가며 핫머니 유입을 공개 경고한 것이다.공교롭게도 투기 세력의 공격은 외환당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펀더멘털론’을 꺼낼 때 시작된다. 강한 부정을 위기를 인정하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수치가 이를 말해준다. 지난달까지 무역수지는 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5월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이달 들어 10일까지 무역적자는 38억달러를 넘었다. 연간 누적 적자는 300억달러를 돌파했다.표면적 이유는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수출의 약세다. 반도체는 글로벌 경기의 바로미터다. 경기가 침체로 돌아서면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무역수지가 곧바로 충격을 받는 ‘스몰 오픈 이코노미(Small open economy·소규모 개방경제)’의 비애다. 환율의 경기 자율조정 기능이 먹히지 않은 지도 오래됐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늘고, 국내 경제가 좋아지는 메커니즘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이쯤에서 드는 질문은 ‘금융의 삼성전자’는 왜 없는가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줄곧 제기된 화두이자 역대 정부가 받은 숙제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이
한국에 또다시 위기가 닥친다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비관적 시나리오를 보태보자. 1997년 외환위기의 경고음은 한 장의 보고서에서 시작됐다. 모건스탠리가 그해 10월 “아시아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라”고 전문을 날렸고, 이를 받은 외국계 증권사의 “지금 당장 한국을 떠나라(get out of Korea, right now)”는 보고서가 트리거가 됐다.아직 한국의 구조적 위기는 표면화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징후는 명백하고, 냄새에 민감한 관료들은 사석에서 “시간이 얼마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게 1년인지, 5년인지, 10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지금 상황을 방치하면 언젠가 그때가 올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거의 모든 경제연구소와 이코노미스트의 공통된 견해다.구조적 위기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한다면 트리거는 한국의 크레디트 리스크(신용위험)를 지적하는 보고서가 될 것이다.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예고하는 국제신용평가사 혹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부정적 전망이 예고편처럼 나올 가능성이 크다.지난 1일 무디스는 삼성전자의 신용등급을 Aa2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한국 정부와 같은 수준으로 올린 것이다. 시장에선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반도체 혹한기’라는 시장 상황에 비춰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무디스의 설명은 간결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모바일 및 가전 등 각 사업에서 우수한 시장 지위를 보유한 점을 반영했으며, 업황 변동성에도 우수한 재무적 완충력을 갖췄다”고 했다.국가와 같은 신용등급 대우를 받는 기업은 손에 꼽힌다. 미국에선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일본에선 도요타자동차 정도다. 삼성전
일본 공무원 3명 중 한 명은 비상근이다. 자위대원과 재판관을 제외한 일반직 공무원 숫자는 42만 명(지난해 7월 기준)으로 한국(113만 명·정원 기준)의 40%가 채 안 된다. 그중 15만 명이 이른바 계약직이다. 최근 10년간 늘어난 1만8000명 중 90%를 이렇게 채웠다.공공서비스 부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증원을 요구하는 여론은 없다. 아니 하려야 할 수가 없다. 오히려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고, 부서를 통폐합해야 한다는 요구가 더 크다. 국부를 창출하는 민간에 부족한 인적자원을 우선 투입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 사회의 그늘을 먼저 보여주는 ‘반면교사’ 일본의 모습이다.한국의 관료사회는 어떤가. 지난 8일 전국 공무원 노동조합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연 기자회견은 역설적으로 공공부문 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 자리에서 자신을 9급 공무원이라고 밝힌 청년노조위원장은 “공무원이 되면 적당한 월급을 받으며 승진하고, 퇴직하면 연금도 받을 생각에 든든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9급 6년 차인 본인의 월급 실수령액은 200만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이라고 했다. 요지는 1%로 책정된 내년 인상률을 7.4%로 올려달라는 것이다.이들의 요구를 일회성으로 받아들이더라도 과연 비대해진 관료조직을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까. 올해 공무원 인건비 예산이 처음으로 40조원을 넘었다. 내년 상승률을 1%대로 억제하더라도 호봉 승급분을 더하면 3%에 육박한다. 이대로라면 수년 내 정부 예산의 20%를 공무원 월급으로 지급해야 할 판이다.재정이 떠안는 연금 부담도 비례해서 커진다. 2021년부터 2030년까지 공무원연금 적자는 총 61조원,
‘위험한 생산 현장에서 최저임금도 안 되는 월 200만원 남짓의 월급밖에 못 받는 나라.’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의 파업 현장에 붙은 플래카드 내용이다. 종교계 인사들도 앞다퉈 현장을 방문해 “헐값 노동에 대한 생존권 보장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기엔 대우조선은 산업은행이 운영하는 회사이고, 정부가 주인인 최대 주주가 책임져야 한다는 ‘프레임’이 깔려 있다.‘사회적 약자’인 하청회사 노조원이 가로·세로·높이 1m의 ‘철제 감옥’에 한 달째 들어가 농성하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그만큼 반향도 크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산업은행이 지난해 낸 2조2000억원의 이익 가운데 5%인 1200억원이면 1만2000명 하청노동자 전체의 임금 인상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여론을 등에 업고 민노총은 이번 사태를 110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권 문제로 탈바꿈시켜 전국 단위 파업의 명분을 얻어내는 정치 투쟁의 모멘텀으로 키워냈다.그렇다면 현재 대우조선 옥포조선소에서 벌어지는 비극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시간을 3년 전인 2019년 9월로 옮겨보자. 당시 민노총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를 ‘재벌 특혜’라고 주장하며 매각 저지 전국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면담해 기업결합 반대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조선업을 지키는 길”이라는 명분도 걸었다.당시 정부는 어떠했나. 독과점 이슈가 걸려 있는 국제적인 기업결합 승인 문제는 당사국 정부끼리 외교적으로 매듭을 지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대우조선과 현대중
임기 중 경질은 삼성에는 없던 방식이다. 신상필벌은 중요한 인사원칙이다. 하지만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결과에 따른 책임을 묻는 게 지금까지의 방식이었다. 삼성 최고위 관계자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삼성반도체의 수장인 경계현 사장은 ‘소통왕’으로 불린다. 톱다운 문화가 강한 삼성에서는 듣기 어려운 호칭이다. 그만큼 지난달 단행한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의 문책 인사는 의외였다. 충격요법으로 보기엔 규모도 컸다. 반도체 연구소와 파운드리사업부에서 부사장급 임원 10명 이상이 자리를 옮겼다. 경 사장은 직원들과의 소통 행사에서 “그동안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으니 바꾸고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에둘러 가지 않고 최고경영자(CEO)로서 자신의 결정을 담담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밝혔다.시장 변화에 핑계를 대지 않고 위기의 근본 원인을 내부에서 잡는 것도 삼성의 고유 방식이다. 삼성의 경영 진단은 가혹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매 분기 역대 최대 실적 경신이라는 성과 이면에 자리 잡은 무사안일과 판단 착오, 허위 보고와 실기(失期)에 대한 비판이 뒤따랐을 것이다. 결론은 “앞선 기술력을 갖고도 시장을 주도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업(業)의 본질을 간과했다”는 것으로 요약됐다.삼성전자는 반도체 선행 기술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반도체 초미세 나노 공정 기술을 가장 먼저 개발했고, 시제품도 가장 빨리 내놨다. 하지만 지금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의 지배력을 행사하는 회사는 대만 TSMC다. 삼성전자는 최고의 기술을 갖고도 투자를 주저했고, TSMC는 선행 투자를 감행했다.
지난달 20일 미국 뉴욕경제클럽에서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한 연설은 미국의 지향점이 어딘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핵심은 산업정책의 부활이다. 그는 1791년 알렉산더 해밀턴 미국 초대 재무장관이 작성한 ‘제조업 보고서’를 언급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강력한 산업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기틀을 잡기 위한 조건이라는 것이다.미국 대통령의 경제 자문역을 맡은 NEC 위원장이 월가의 투자자 앞에서 200년이 넘게 지난 보고서를 꺼내 든 이유는 뭘까. 지난 반세기 동안 월가는 산업정책이라는 용어 자체를 혐오했다. 자유 경쟁을 통한 ‘승자 선택’을 철칙으로 여기는 월가에서 산업정책은 정부 개입과 시장 왜곡, 비효율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디스 위원장은 “이제 미국 경제는 변했고, 세계도 바뀌었다”며 월가의 시각 교정을 요구했다. 그는 산업정책 대신 ‘신(新)산업전략’이라는 세련된 용어로 포장했지만, 내용은 230년 전 보고서와 다를 바 없다.과연 무엇이 미국의 현재를 건국 초기로 돌렸을까. 그 이유는 지난주 한국을 찾은 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행보에서 드러났다. 그는 첫 행선지로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을 선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반도체의 심장’이라고 말한 곳에서 삼성전자는 3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의 반도체 웨이퍼를 보여줬다. 미국의 제2 파운드리 공장에서 똑같은 제품을 생산할 것이라고 약속한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한국의 반도체는 미국 산업 생태계를 지키는 핵심 인프라가 됐다.한 경제계 인사는 “이제 삼성전자는 ‘인계철선(tr
일본을 추월하는 게 빠를까, 대만에 따라잡히는 게 먼저일까. 최근 동아시아 3국의 경제성적표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개는 일본의 쇠락과 한국의 선방(?), 대만의 약진을 비교하는 분석이다. 결론은 나와 있다. 한국이 일본을 앞지르기 전에 대만이 한국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내놓은 2022년 통계를 보면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4994달러로 대만(3만6051달러)에 1000달러 이상 뒤처지는 것으로 예상됐다. 2003년 이후 19년 만의 역전이다. 일본(3만9243달러)과의 격차도 3000달러로 좁혀진다. 대만 경제연구소들은 대만의 1인당 소득이 지난해 이미 한국을 넘어섰으며, 2027년께는 일본마저 제칠 것으로 장담하고 있다.실제 ‘값싼 일본’과 ‘나쁜 엔저(엔화 가치 하락)’가 동전의 양면처럼 보도되는 일본의 추락은 심각하다. 엔저가 지금 수준으로 이어진다면 올해 일본의 1인당 GDP는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가 방아쇠 역할을 했지만 ‘엔화=안전자산’이라는 공식을 떠받쳐온 경상수지 흑자가 42년 만인 올해 막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은 허약해졌다.한국도 일본의 침체를 즐길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1분기 GDP는 전기 대비 0.7%(전년 동기 대비 3.1%) 성장했지만, 수출만 증가했을 뿐 소비와 투자는 마이너스 성장에 그쳤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대 이상의 양호한 성장세를 기록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시장의 평가는 냉담하다. 줄곧 마이너스를 헤매던 문재인 정부의 5년 경제성적표가 막바지에 반짝 플러스로 돌아섰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줘 본 사람들만 안다. 매달 돌아오는 월급날의 무서움을….”기업 대표를 만날 때면 기업 규모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자주 듣는 얘기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이런 속내도 꺼냈다. “2월은 28일까지밖에 없다. 1월보다 3일이나 적다. 근무 일수를 따지면 10%나 된다. 그런데 왜 월급은 똑같이 줘야 하는지 의문이다.” 기업뿐만 아니다. 약 550만 명의 자영업자 중 절반 이상이 ‘나 홀로 사장’이다. 영세 자영업자로선 직원 한 명 월급 챙겨주기도 버겁다는 얘기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1일 경제단체장들과 대선 이후 첫 만남에서 꺼낸 얘기도 ‘월급’이었다. 윤 당선인은 “월급을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월급을 주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날 참석한 최진식 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평생 검사 생활하신 분이 맞나 싶은가 할 정도로 기업에 대한 이해가 깊더라”고 반색했다.관심은 새 정부가 월급을 주는 사람의 입장을 ‘어떻게’ 존중할지다. 한국은 대표적인 ‘경영 고비용 사회’다. 법인세율 27%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2%)보다 높다. 가파르게 오른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제 규제는 너무나 많이 지적된 이슈다. 기업이 부담하는 각종 부담금 등 준조세 규모는 약 72조원(2020년 기준·전국경제인연합회)에 이른다. 통계로 잡히지 않는 비자발적 기부금은 그나마 제외한 수치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기업 준조세 금지법’을 약속했지만, 임기가 끝나가도록 감감무소식이다.5년마다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여야, 진보와 보수를 떠나 모든 후보는 “기업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도록 하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기로 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이 들어설 500만㎡ 부지에는 지난달 철제 펜스가 설치됐다. 지난해 11월 말 공장 설립 방침을 발표한 지 3개월여 만에 부지 확보가 끝났다. 기초 공사와 함께 용수, 전력 공급 등 인프라 조성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계획대로라면 2년6개월 후엔 3나노 수준의 최선단 공정의 반도체가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때맞춰 최근 미국 하원은 ‘미국경쟁법안(America Competes Act)’을 통과시켰다. 자국 반도체산업에 520억달러(약 62조원)를 투자하는 것이 골자로, 세계 반도체 패권을 잡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유럽연합(EU)도 ‘EU반도체법’을 통해 430억유로(약 59조원)를 반도체 공급 확대를 위해 쏟아붓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처럼 세계 주요 국가들은 반도체 생산 자급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 기업,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 이런 흐름에 뒤처지고 있다.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지만, SK하이닉스가 추진하고 있는 용인반도체 클러스터 착공이 지연되는 것이 대표 사례다. 2019년 2월 발표 후 3년이 넘도록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과거 삼성전자의 평택 반도체 공장이 그물망 규제와 지역 이기주의에 발목 잡혀 인허가 승인부터 준공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우려된다.정부는 2026년 공장 가동에 문제없을 것이라고 공언하지만 실제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SK하이닉스 내부에선 용인 클러스터의 완공이 지연될 경우 다른 지역의 기존 팹(fab·반도체 생산공장)을 활용해 생산 능력을 키우겠다는 컨틴전시 플랜도 검토하고 있다.최대 걸림돌은 지
“블루프린트(blueprint·설계도)가 내려왔다.”문재인 정부에서 고위 관료를 지낸 A씨는 이전 정부와의 차이점을 묻자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했다. “과거엔 뼈대만 주고 살은 우리(관료)가 붙였다. 하지만 이 정부에선 구체적인 목표 숫자와 실행 방안까지 담긴 도면이 떨어졌다”고 했다. BH(청와대)가 지시를 내리고 부처가 정책을 만드는 건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달랐던 점은 시장과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저돌성에 있었다.“시장은 생명체다. 청와대가 만든 계획대로 움직일 리가 없지 않겠나.” 모든 정보를 틀어쥐고 있다는 자만심에, 시장 오류를 잡겠다는 결기가 더해져서 숱한 정책 참사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그 과정에서 사기가 떨어진 공무원의 민간행은 당연한 수순이었다.시장과의 불화(不和)는 필연적으로 실패를 내재했다. 여당 대선 후보조차 “매우 잘못된, 부족한 정책”이라고 실토한 부동산 정책이 단적인 예다. 이재명 후보는 대선 토론회에서 집값 폭등의 원인으로 “특히 임대사업자 보호 정책 때문에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며 무리한 시장 개입의 실패를 인정했다.산업정책은 달랐을까. 모든 새로운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고민하는 문제는 “다음 5~10년 동안 먹고살 것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고 권력을 쟁취한 국정 최고책임자의 유일한 다음 목표는 ‘국민의 먹거리를 해결한 정치 지도자’로 남는 것이다.문재인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가 키웠다고 자랑할 수 있는 것 세 개만 만들자”는 목표에 맞춰 설정한 타깃이 바이오시밀러와 수소경제, 시스템 반도체다. 이들 산업을 택한 이유
“첫째, 팔 생각이 없다. 둘째, 인수자가 한국 기업이라면 팔 생각은 더욱 없다.”삼성이 수년 전 일본 굴지의 전자회사 TDK 인수를 타진하자 돌아온 대답은 단 한 문장이었다. 얼마에 살 건지 가격은 묻지도 않았다고 한다. TDK는 무라타제작소와 함께 ‘전자왕국’ 일본의 빛바랜 명성을 지키는 몇 안 되는 회사다. 지난해 매출은 약 1조8000억엔(약 19조원). 영업이익률은 9% 안팎으로 견조하다. 시가총액 17조원 정도로 크지 않지만 글로벌 투자자 시각에선 “매력 있는 회사”다.TDK가 삼성의 인수 제의를 거절했다는 얘기를 다시 떠올리게 한 건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실패로 끝났다는 최근 외신 보도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반도체 굴기의 벤치마킹 모델은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다. 중국은 15%대에 불과한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2015년 1조위안(약 170조원) 규모의 투자펀드를 만들어 물량 공세에 나섰지만 지난해 반도체 수입 규모는 889억달러(약 95조원)로 전년 대비 40% 가까이 급증했다.중국이 유독 반도체에서 헤매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우선 복잡한 제조 공정을 꼽았다. 반도체는 원재료 투입 후 완제품 생산까지 2~3개월이 걸린다. 반면 LCD(액정표시장치)는 1주일이면 충분하다. 한국의 LCD가 중국에 손쉽게 함락된 이유 중 하나다. 중국이 2차전지 분야에서 단기간 내 세계적 수준에 오른 것도 기술 장벽이 높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반도체 제조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제품에 따라 300~800개의 공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한두 개 기술을 베끼거나 기술자 몇 명을 스카우트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핵심 장비의 조달도 문제
장례식장에 쓰이는 조화(弔花)의 99%는 중국산이다. 올 3분기까지 수입액은 3050만달러. 국내시장 점유율은 98.9%(무역협회, 관세청 자료)다.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냉장 컨테이너의 일부는 중국 남부 지역에서 재배된 국화송이들로 가득차 있다. 전국 장례식장에 놓이는 근조 화환에 원산지 표기를 한다면 ‘메이드 인 차이나’가 될 것이다. 국산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니 시장 잠식은 피할 수 없다.올 하반기 벌어진 요소수 대란은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로 벌어졌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태와는 전혀 다른 게임의 양상을 보여줬다. 이른바 ‘로테크(low tech)의 습격’이다. ‘트웰브 나인’으로 불리는 사실상 100%의 불화수소가 문제가 아니라 중국산 조화처럼 값싼 제품이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요소수는 고비를 넘겼지만 중국이 ‘수도꼭지’를 잠그면 언제든지 한국 제조현장과 물류는 멈출 수 있다. 차세대 먹거리로 불리는 배터리(2차전지)의 경우 중국산 소재 공급이 끊기면 산업 생태계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 최근 한 달 새 리튬, 코발트, 니켈 등 배터리의 핵심 원재료 가격이 30% 가까이 오르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해당 기업들은 “요소수 파동에서 ‘차이나 파워’를 확인한 중국업체들의 ‘물량 조이기’가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 세계 광물 가공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중국이 한국의 취약한 공급망을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결정적으로 공급망 문제는 미·중 간 경제 패권전쟁의 핵심 이슈로 그 한가운데 한국이 놓여 있다. 최태원 SK 회장은 “과거에는 전 세계
대기업 인사의 ‘꽃’은 최고경영자(CEO)다. 올해는 유독 이변이 많았다. 키워드가 세대교체지만, 데스크로선 신문에 쓰고 싶지 않은 단어다. 나이가 많다는 게 떠밀려 가야 하는 이유의 전부인 것처럼 비쳐서 말이다.하지만 올해는 피할 도리가 없다. 그룹들은 경쟁이나 하듯 1970년대생 CEO를 ‘전략적’으로 포함한 발탁 인사를 단행했다. 충격요법이다. 그저 그런 인사를 했다는 세평(世評)을 듣기 싫어서라는 얘기도 들린다.물론 ‘젊음=경륜 없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각 그룹의 인사평가도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대기업 CEO 인사는 청와대 인사 못지않은 엄격한 내부 평가와 검증, 평판조회를 거친다. 삼성은 정확한 인사 판단을 위해 경쟁사 CEO의 의견까지 청취한다. 한때 삼성에서 사장 되기가 장관 되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었지만, 지금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반면 광풍에 휩쓸리듯 쓸려가버린 대규모 물갈이 인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성과에 기반하기보다는 보여주기식 인사 아니냐는 지적이다. 경영권 승계 추세에 맞춰 기존 경영진을 ‘공과’ 구분 없이 밀어냈다는 지적도 있다. 주요 그룹은 임원의 직급별 연령 상한선을 두고 있다. ‘용퇴’라고 표현하지만 1950년대생 사장급 CEO는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업(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균형이 아쉽다는 목소리도 있다.CEO 인사가 중요한 이유는 변화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압축성장을 이끈 주역은 누가 뭐래도 기업이다. 그중에서도 CEO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이번에 발탁된 신임 대표 모두 내부 승계 프로그램에 따라 ‘잠재적 CEO 후보군’으로 평가받는 S급 인재임에 분명하다
“기업을 움직이려면 페널티가 아니라 인센티브가 필요합니다.”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1일 한국경제신문사가 개최한 글로벌인재포럼의 기조연설에서 말한 내용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기업을 활용하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하면서 꺼낸 얘기다. 그는 “강제적 감축 의무를 부과하거나 탄소세만을 강조하면 규제를 회피하려는 기업의 생리가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최 회장의 발언은 비단 탄소중립을 위한 방법론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을 규제하고 압박해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는 정권의 그 어떤 시도도 성공한 전례가 없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그냥 착한 기업이 돼라, 양심적인 기업이 돼라, 이런 정도의 ‘스케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대한상공회의소를 이끌고 있는 최 회장의 촌철살인이다.기업은 사회적 문제를 ‘내재화’할 인센티브가 주어질 때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각 경제 주체의 합리적 이기주의가 극대화할수록 사회적 편익이 커지는 시장 원리와 마찬가지다.반면 규제라는 채찍을 앞세우면 ‘회피기동’이라는 기제가 작동한다. 규제를 피해 다른 나라로 회사를 옮기는 것이다. 지난 2016년 이탈리아 자동차 업체 피아트는 미국 크라이슬러와 합병한 뒤 본사인 FCA를 네덜란드로 옮겼다. 낮은 법인세와 노동유연성을 찾아 117년간 뿌리를 내리고 있던 이탈리아를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다.충격은 컸다. 이탈리아 의회는 보고서를 통해 FCA의 이전으로 세수가 크게 줄어든 것은 물론 다른 기업의 도미노 이탈을 불러오면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비슷한 사례는 넘친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세계 최대 가
겁이 없는 정부다. 지난 5월 세계에너지기구(IEA)는 ‘2050 넷제로 달성’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2050년 넷제로(탄소 순배출 제로)를 선언한 모든 국가가 계획을 달성하더라도 2100년 지구의 온도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섭씨 2.1도 상승한다는 전망이 핵심이다. 지구가 괴멸적 상황에 처한다는 비관적 시나리오다.보고서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발행 주체가 다국적 오일메이저의 이익을 대변해온 IEA였다는 점이다. IEA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석유 공급의 안정적 보장’을 위해 설립된 단체다. 그동안 에너지 전환에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다.그런 IEA가 “신규 유전·가스전 및 석탄광구의 개발이 불필요하다”고 원유사업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다. 보고서는 ‘2050 넷제로’ 달성을 위해선 탄소 배출량이 2030년까지 현재보다 40% 감축돼야 한다는 경로를 제시했다. 외신들은 “IEA가 화석연료 산업의 목에 비수를 꽂았다”고 평가했다.이 로드맵을 한국 정부가 그대로 따랐다. 26일 국무회의에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40%로 상향조정하는 내용을 확정했다. NDC는 2015년 체결된 파리협정에 따라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취하는 조치다. 직역하면 ‘국가 결정 기여(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다. 말 그대로 자발적 의미의 기여다. 어기더라도 벌칙은 없다. 하지만 구속력이 없다고 해서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국제사회와 한 약속이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이전 정부가 설정한 목표를 낮출 수 없다. 후퇴가 불가능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달 초 영국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직접
태광그룹이 운영하는 예술영화 전용관인 씨네큐브(사진)가 상영관 시설 개선을 완료하고 13일 재개관했다. 이번 개선 공사는 지난해 개관 20주년을 맞아 진행했다. 모든 좌석 의자를 교체했고, 좌석 높이를 조정해 스크린 시야를 개선했다. 로비 내 휴게공간도 개편해 편의시설을 늘렸다. 특히 가죽 소재의 좌석 시트로 교체했고, 좌석 쿠션을 보강해 쾌적하고 편안한 상영관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이 회사 설명이다. 태광그룹 미디어계열사인 티캐스트가 운영하는 씨네큐브는 2000년 12월2일에 개관해 올해로 21년째 운영하고 있다. 현재 가장 오래된 예술영화관으로 총 365석 2개 관을 운영하고 있다. 강경민 기자
‘실질적인 지도자(De Facto Leader).’ 외신들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수식할 때 쓰는 표현이다. 공식 직함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삼성을 이끌고 있다는 ‘팩트’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 부회장이 올 1월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재수감되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삼성이 또다시 ‘리더의 공백’을 맞게 됐다고 제목을 뽑았다. 약 7개월 만인 지난 13일 출소하자 리더가 복귀하게 됐다면서 조기 석방이 옳았음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전했다.이 부회장이 예전보다 몸무게가 13㎏이나 줄어든 핼쑥한 모습으로 서울구치소를 나서면서 내놓은 말은 두 마디였다. “걱정과 비난, 우려, 기대를 잘 듣고 있다. 열심히 하겠다.” 해답은 열하루 만에 나왔다. 24일 ‘코로나19 이후 미래준비’라는 제목으로 삼성이 낸 보도자료를 통해서다. 제목은 간략했다. ‘240조원 투자. 4만 명 고용.’ 12쪽 분량의 자료 어디에도 이 부회장의 이름은 없었다. 단 두 개의 숫자로 삼성에 맡겨진 과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알렸다. 그동안 멈췄던 삼성의 시계가 돌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삼성의 발표문엔 현 상황에 대한 엄중한 인식이 담겨 있다. “반도체는 한 번 경쟁력을 잃으면 재기가 불가능하다. 삼성의 공격적 투자는 ‘생존 전략’이다.”메모리 반도체에서 절대우위를 유지하겠다는 선언의 이면에는 경쟁자들이 턱밑까지 추격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반도체 없는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일본이 반면교사다. 1980년대 세계 반도체산업은 일본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1980년대 후반까지 글로벌 상위 10개사 중 톱3를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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