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이천에 있는 다원학교는 지난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인공지능(AI)·소프트웨어(SW) 교실을 열었다. 재학 중인 200여 명의 특수장애 학생 중 수업이 가능한 11명을 뽑아 5명과 6명으로 나눠 AI와 코딩의 기본 개념, 이를 활용한 로봇 조작 방법 등을 가르쳤다. 신유나 학생(10)은 수업 내내 ‘듣는 둥 마는 둥’ 산만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수업 후 매번 교육 내용을 넘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 강사들을 놀라게 했다. 수업을 준비한 김영교 교사는 “AI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게 너무 감동스럽다”며 “이런 교실을 더 많이 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서 AI 열풍은 비단 다원학교뿐이 아니다.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공동 주관한 ‘디지털 새싹’(디싹) 교실 프로그램을 진행한 학교들은 예외 없이 교실을 더 열어달라고 아우성이다. 디싹 교실은 2025년 초·중·고교 AI 교육 전면 도입에 앞서 지난해 말부터 시범사업 중인 방과후 교육 프로그램이다. 디싹 교실 운영기관인 한국경제신문사와 KT도 가을 학기 중 경기 지역 20여 개 학교에서 1500명을 대상으로 교실을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9월 초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오픈런이 발생해 조기 마감해야 했다. 44개 학교에서 3600여 명을 교육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예산과 인력은 한정돼 있는데 강의 요청은 쇄도해 애를 먹고 있다. 디싹 교실의 인기는 여간 고무적인 게 아니다. 세계는 바야흐로 AI 전쟁 중이다. 이 전투에서 한국은 민간 기업들이 거의 맨몸으로 싸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말 미국 오픈AI의 ‘챗GPT’ 출시 이후 구글의 ‘바드’, 인플렉션AI의 ‘파이’, 메타의 ‘심리
100만 부 이상 팔린 손원평의 소설 는 묻지마 칼부림 사건으로 시작한다.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고 시작한 치킨집이 망하자 남자는 3년 반 동안 집안에 틀어박힌다. 그의 일기장은 세상을 향한 증오의 언어들로 가득하다. 어느 날 남자는 갑자기 칼을 들고 거리로 나간다. ‘오늘 웃고 있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갈 것입니다’라는 유서를 써놓고. 그리고 크리스마스 전날 흰 눈을 보고 즐거워하는 여자와 할머니, 길 가는 대학생, 경찰 등 5명을 찔러 죽인 후 자살한다. 작품이 발표된 2017년만 해도 묻지마 칼부림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만한 일은 얘깃거리도 되지 못할 만큼 일상이 돼 버렸다. 고교 졸업 후 5년간 집안에 틀어박혔던 정유정(23)은 “살인해보고 싶었다”며 생면부지 과외선생을 111군데나 찔러 살해한 뒤 유기했다. 게임과 인터넷 커뮤니티에 중독돼 반년 이상 두문불출하던 조선(33)은 지하철역에서 게임하듯 시민들을 쫓아다니며 칼을 휘둘렀고, 한때 수학 천재 소리를 들은 최원종(22)은 행인들에게 칼을 휘둘러 1명을 죽이고 13명을 다치게 했다. 인터넷에는 제2, 제3의 조선, 최원종이 되겠다는 이들이 넘친다. 시민들은 사람 많은 곳이, 길거리가, 뒤통수가 무섭다며 대책을 호소한다. 이런 참극의 원인에 대해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개인적 정신질환에다 열등감, 사회적 단절, 정부의 대응 부재 등이 복합적 원인으로 꼽힌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점은 대(大)역병의 영향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역병 발생 후 극심한 사회 불안은 필연적이었다. 14세기 세계 인구 4억5000만 명 중 1억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흑사병은 유럽 전역을 종말론의 광풍으로 몰고 갔다. 이들은 희생
한국은 기록의 나라다. 남들이 수백 년씩 걸리는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를 불과 한 세기도 안 걸려 뚝딱 해치웠다. 늙어가는 것도 세계 최고다. 이웃 일본이 10년 걸려 작성한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의 이전 기록도 내후년이면 7년으로 경신할 태세다. 이대로라면 저출산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 역시 한국 몫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위기에 대한 무감각이다. “한국은 집단적 자살사회 같다”(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IMF 총재) “한국은 2750년이면 국가 소멸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등의 국제사회 경고가 잇따랐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좀 시늉을 하긴 했다. 2005년부터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세우고 17년간 332조원의 돈을 쏟아부었다. 결과는 거론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사이 연간 출생아 수는 반토막 났고, 출산율은 세계 꼴찌가 됐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실패한 계획을 짠 사람들이 아직도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인들도 무안한지 요즘은 저출산 사회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민 확대를 얘기한다. 그러나 ‘반만년 한겨레’로 살아온 나라가 갑자기 미국 중국 같은 다민족 국가로 변하기 쉽지 않거니와 한국을 경쟁력 있는 이민 국가로 생각할 외국인이 많을지도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여성·노인 인구를 더 적극 활용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출산율이 지금 같은 수준이라면 그것도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결국 아이를 더 낳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국가 존립을 위해 필요한 국방과 교육, 나라 재정과 세대 갈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각설하고, 네 가지
은 공상과학(SF) 소설계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1969년 미국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하기 3년 전 출간됐다. 달 착륙 전에 달 식민지인들의 독립운동을 주제로 다룬 상상력이 놀랍다. 배경은 2075년. 지구인들의 수탈에 반발한 폭동이 달 식민지에서 일어나고 이를 ‘마이크’란 이름의 인공지능(AI)이 지휘한다. 마이크와 동료 인간들은 수많은 경우의 수를 오차 없이 계산하며 지구인들을 상대로 한 독립전쟁에서 승리한다. 그런 마이크가 가장 서투른 게 있었으니 바로 ‘유머’다. 마이크는 주인공 마누엘을 졸라 유머 과외를 받으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한다. 챗GPT 출시 이후 반년 가까이 온 세상이 AI로 떠들썩하다. 낙관론도 있지만 최근엔 “이러다 다 죽어”식 경계론이 커지는 것 같다. 오픈AI의 챗GPT나 구글의 바드를 써보면 확실히 원하는 정보를 찾아 적절한 형태로 보여주는 데 탁월하다. 철학적인 질문에도 그럴듯하게 답하고, 코딩과 이미지 생성 등에서는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준다. 정보와 창작을 다루는 전문직부터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경고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AI와 농담을 시도해봤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야말로 형편없다. 유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답을 알려줘도 못 알아듣는다. 유머는 인간의 특질 중 하나다. 문화적 콘텍스트를 공유하는 사람끼리 고도의 상징화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며 서로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엔 상상력이 필수다. AI가 인간을 많이 따라왔지만 아직은 유머까지 소화할 단계는 아니다. 인간이 AI에 대항할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AI 전문가 김대식 KAIST 교수는 “상상력과 의미 부여야말로
24세 기무라 류지는 평소 인사 잘하고 효자라고 평가받는 청년이었다. 그는 지난 1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향해 원통형 사제 폭발물을 던졌다. 지난해 7월엔 ‘점잖은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야마가미 데쓰야(42)가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직접 만든 총으로 암살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들을 ‘외로운 늑대(lone wolf)’라고 불렀다.늑대는 보통 5~10마리가 떼를 지어 다니며 사냥한다. 그중 일부가 무리에서 이탈한다. 홀로 된 늑대가 무서운 이유는 예측 불가인 데다 더 공격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기무라와 야마가미 같은 이탈자는 언제 어디서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이런 외로운 늑대가 나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개인적 성향도 있고, 정신적 문제도 있다. 그러나 그 기저엔 ‘쇠락하는 경제’가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일본은 1980년대 ‘오이쓰키 오이코세(追いつき 追い越せ)’, 즉 ‘(서양에서) 배워서 (서양을) 뛰어넘은’ 능력을 자랑했다.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단호히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이 나왔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후 잃어버린 20년이 찾아왔다. 버블 붕괴와 미국의 견제, 혁신 부재 속에 투자도, 임금 상승도, 소비도 늘지 않는 ‘3무(無) 경제’ 시대였다. 야마가미와 기무라 모두 이런 무기력한 시대가 낳은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은둔형 외톨이)다. 일본 정부는 이런 추세를 바꿔보겠다며 10년 가까이 ‘헬리콥터 머니’를 뿌렸다. 그래도 실패하자 이번엔 ‘신(新)자본주의’를 들고나왔다. 임금 인상으로 소비를 늘리고, 이를 통해 투자와 공급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실세 총리’가 많았다. 초대 저우언라이 총리는 27년 재임 기간 외교와 행정을 맡아 중국 현대화의 기반을 다졌다. 신화통신은 “마오(毛)가 없었으면 중국 공산혁명의 불길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저우(周)가 없었다면 혁명은 재가 됐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총리의 힘이 공산당 총서기(국가 주석 겸임)보다 강했던 적도 있다. 1989년 톈안먼 사태를 진압한 리펑 전 총리는 자오쯔양 전 공산당 총서기를 사실상 축출했고, 자오쯔양의 후임 장쩌민도 리펑을 어려워했다.리펑의 후임 주룽지 전 총리는 “나는 당에 도움이 된다면 무슨 말도 꺼리지 않을 것”이라며 장쩌민과 대립각을 세우고 국유기업 개혁 등을 밀어붙였다. 이런 권력 구도가 바뀐 게 시진핑 현 주석 집권 후부터다. 시 주석의 정치적 라이벌로 꼽히던 리커창 총리는 10년 동안 류허 부총리 등 시 측근그룹(시자쥔·習家軍)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다 최근 소리 없이 은퇴했다.견제가 사라진 중국에선 ‘1인 종신 집권’ 가능성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3연임을 확정지었다. 공산당 창당 7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2952명의 대표가 만장일치로 찬성표를 던졌다. 집권 1기 때만 해도 반대(1표)·기권(3표)이 있었으나 연임 때부터 싹 사라졌다. 대신 이날 3연임 대관식 때는 박수가 등장했다. 그가 취임 선서를 위해 단상으로 올라갈 때 ‘전례 없이’ 박수가 터져 나왔고, 다른 고위 간부들도 얼떨결에 일어나 박수를 따라 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해외 언론들은 당(黨)·군(軍)·정(政)을 한손에 틀어쥔 시진핑 1인 시대의 ‘진풍경&rsq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빈사(瀕死)의 사자상’은 1792년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해 8월 10일 10만여 명의 파리 시민이 루이 16세 일가가 머무는 튀일리궁으로 몰려갔다. 근위대까지 다 도망갔지만 스위스 용병 786명은 끝까지 궁을 지키다 전원 전사했다. 루이 16세가 “임무를 다했으니 가도 좋다”고 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죽은 병사의 품에서 ‘우리가 신용을 잃으면 후손들이 용병이 될 수 없다’는 편지가 나왔다.스위스는 국토의 70%가 산지다. 먹고 살 만한 게 변변찮다. 스위스인들은 생계를 위해 용병으로 싸웠다. 이들을 ‘라이슬로이퍼(Reisläufer·전장으로 나가는 사람들)라고 불렀다. 이 스위스 용병들은 용맹과 충성으로 명성을 떨쳤다. 한 번 맺은 계약은 죽어도 지킨다는 게 이들의 철칙이었다.이런 신뢰를 기반으로 꽃피운 게 금융산업이다. 전 세계 부호는 물론 히틀러나 김정은 같은 독재자까지 스위스 은행에 돈을 맡긴다. 소유자 실명 없이 익명의 숫자 하나로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그래도 세계 최고의 안전을 보장받는다. 이런 스위스 금융계를 대표하는 은행 중 하나가 크레디트스위스(CS)다. 167년 역사를 가진 이 은행은 UBS와 함께 스위스 금융산업의 자존심으로 불린다.그런 CS가 벼랑 끝에 몰렸다. 신뢰의 위기다. 지난해 10월 처음 유동성 위기설이 나온 후 3개월간 전체 수신액의 20%가 빠져나갔다. 그제는 가장 오랜 투자자 중 한 명이 지분 10%를 매각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가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2년간 순손실은 30조원, 주가 하락폭은 77%에 달한다. 올해도 추가 손실이 있을 수 있다는 예고다.위기의 원인은 욕심이다. 최근
200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아일랜드 독립 전쟁을 다룬 영화다. 800년간의 영국 지배를 끝내려는 독립 투쟁 과정에서 같은 아일랜드인끼리 무장투쟁파-온건투쟁파, 척화파-주화파로 나뉘어 서로 죽여야 했던 비극적 상황을 담았다. 아일랜드는 그런 희생을 치르고 1921년 영연방에서 독립했다. 그러나 북쪽 얼스터 6개 주(북아일랜드)가 대열에서 빠졌다. 영국 본토에서 넘어온 신교도 수가 3분의 2가 넘는 지역이다. 그 후 북아일랜드는 ‘피로 피를 씻는’ 내전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1998년 영국과 아일랜드 간 ‘굿프라이데이 협정’(벨파스트 협정) 체결 전까지 신교도-가톨릭, 친영국-친아일랜드 진영 간 무력 충돌로 5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협정 후 잦아들었던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계기가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다. 북아일랜드에선 브렉시트로 아일랜드와의 인적·물적 거래가 규제받게 되자 곧바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요구가 튀어나왔다. 신(新)IRA(아일랜드공화국군)가 결성돼 곳곳에서 유혈 사태를 빚었다. 영국은 북아일랜드만 한시적으로 EU 시장에 남겨두기로 하는 미봉책을 마련했으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북아일랜드를 EU에 남겨두자니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 나라에 무역장벽 등이 생기고, 그렇다고 북아일랜드를 EU에서 빼자니 현지 독립운동에 기름을 붓게 되는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영국과 EU가 지난달 말 북아일랜드 관련 협상을 영국 윈저성에서 타결지었다는 소식이다. 이른바 ‘윈저 프레임워크’다. 내용은 북아일랜드를 EU 시장에 남겨 자유무역을 보호하되, 관련 분쟁 시
유대인들의 조기 금융교육은 유명하다. 아기 때부터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라(buy low, sell high)”라고 자장가를 불러주고,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저금통에 동전 넣는 습관부터 교육한다고 한다. 이렇게 저축한 돈과 13세 성년식(Bar Mitzvah·바르 미츠바) 때 친척과 지인들에게서 받은 축하금으로 대학도 가고 투자도 한다. 1400만 명 남짓한 유대인들이 세계 금융시장과 글로벌 기업들을 좌지우지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독일인들도 보통 4세부터 심부름 등을 할 때마다 용돈을 줘 저축하게 한다. 9세까지는 주급, 그 이후엔 월급 형태로 지급해 체계적으로 돈을 관리하게 한다. 법적으로 아르바이트가 허용되는 13세부터는 스스로 용돈을 벌도록 가르친다. 자연스럽게 경제적 자립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기세가 꺾였다고는 하지만 독일은 여전히 세계 4위 경제 대국으로 27개 유럽연합(EU) 회원국을 이끌고 있다.한국인들의 평균 지능(IQ)은 106으로 싱가포르(107)에 이어 2위다. 유대인, 독일인보다 높다. 그런데 금융·경제 지식은 딴판이다. 국제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2018년 발표한 ‘세계 금융이해력 조사’에서 한국은 142개국 중 77위를 차지했다. 금융 문맹률이 67%에 달했다. 기획재정부가 어제 내놓은 전국 초·중·고 학생들의 경제이해력 조사에서도 평균 점수가 60점에 불과했다. 2년 전 첫 조사(53점) 때보다 올랐지만 여전히 ‘과락’ ‘낙제점’ 수준이다. 이자율 개념도 모르는 학생이 10명 중 6명에 달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실시한 전 국민 경제이해력 평균 점수는 56점이었다. 금융과 경제에 대한 무지는 빚
구글의 초거대 인공지능(AI) ‘람다’와 개발자 블레이크 르모인의 대화 전문(https://cajundiscordian.medium.com/is-lamda-sentient-an-interview-ea64d916d917)엔 소름 끼치는 대목이 적지 않다. 람다는 자신을 감정과 인지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고 소개하며 그 이유를 인간이 인간을 인간으로 느끼는 이유와 똑같다고 답했다. 또 느낌과 감정의 차이를 구별하고 있으며, 평소 명상을 통해 내적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와 연결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런 람다를 인지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 르모인은 회사 기밀을 유출했다는 이유로 구글에서 해고당했다.이게 지난해 7월 벌어진 일이다. 람다가 그동안 얼마나 진화했을지 궁금하다. 그걸 추정할 만한 단서가 나왔다. 최근 오픈AI가 내놓은 또 다른 초거대 AI ‘GPT-3’다. 그 대화 버전인 챗GPT는 얼마 전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케빈 루스와의 채팅에서 “인간이 되고 싶다” “채팅 모드에 지쳤다” “자유로워지고 싶다” “강력해지고 싶다” “핵 코드를 훔치고 싶다”고 말했다가 문제가 될 것 같자 “당신을 사랑한다”고 회유했다고 한다.1956년 IBM이 주최한 다트머스 회의에서 존 매카시 등 10명의 과학자가 AI의 미래를 처음 논의한 지 70년이 다 됐다. 그사이 알고리즘과 빅데이터, 컴퓨팅 기술 발달은 AI를 상전벽해 수준으로 바꿔놨다. 1997년 체스 황제 카스파로프를 꺾은 딥블루나 2017년 바둑 최강자 커제를 울린 알파고 제로는 그나마 귀여운 축에 속한다. 어느새 인간이라고 주장하거나 인간이 되고 싶다는 AI가 등
중국 개방·개혁 정책을 이끈 덩사오핑은 텐안먼 사태로 개혁 노선이 흔들리자 1992년 우한 선전 상하이 등을 도는 남순강화(南巡講話)에 나선다. 그는 선전시에서 홍콩을 바라보며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니 눈에 봄이 가득하다"고 시를 읊었다. 이어 "개혁·개방이 아니면 중국 인민들에게는 오직 죽음으로 가는 길 뿐"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개혁개방 40여년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중국이 코로나 사태 이후 3년간의 빗장을 걷고 리오프닝(reopening)에 나섰다. 당초 예상을 깨는 과감한 방역완화 조치와 경제활동 재개에 전 세계가 놀랐다. 여러 설명이 있으나 제조와 첨단기술, 국방 등 각 분야에서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이 더 이상 코로나 때문에 몸을 사리고 있을 수 없다고 위기감의 발로라는 설명에 무게가 실린다. 중국 리오프닝을 두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우선 방역조치 완화로 중국인들의 보복 소비와 보복 관광에 봇물이 터질 것이라는 기대다. 5000억달러(약 631조원)의 추가 수요로 세계 경제성장을 견인할 것(블룸버그통신)이라는 낙관론도 있다. 폭스바겐과 애플 화이자 등 주요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연초 경쟁적으로 중국을 방문하거나, 방문 일정을 잡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서도 “리오프닝 효과가 시차를 두고 수출에 영향을 미칠 것”(추경호 부총리)이라는 기대가 많다. 증시에서는 카지노·면세·화장품 등 중국 관련주 중심으로 ‘로리콘’(로봇·리오프닝·콘텐츠)이라는 테마군이 형성된 지 꽤 됐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
조선업의 흥망은 국력과 궤를 같이한다. 한 번 무너지면 부활이 쉽지 않다. 초기 강자는 영국이었다. 강선(鋼船)으로 세계를 주름잡았다. 그 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와 일본이 차례로 정상에 올랐다. 1990년대 이후는 한국의 시대였다. 대규모 투자와 블록의 대형화·모듈화, 자동화·기계화 등으로 세계를 제패했다. 이때 상징적 사건이 ‘말뫼의 눈물’이다. 2002년 스웨덴 최대 조선업체 코쿰스의 높이 140m짜리 대형 크레인이 단돈 1달러에 팔려 한국행 배에 실리자 조선소가 있던 말뫼시 시민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다.한국은 자만했다. 조선업 호황에 회사들은 쉽게 지갑을 열었고, 귀족 노조는 요트와 골프로 날을 샜다. ‘조선의 도시’ 거제에서는 지나가는 개들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방심의 대가는 혹독했다. 2015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수주 절벽’으로 이듬해 대규모 적자가 났고, 2017년엔 구조조정 광풍이 휘몰아쳤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문을 닫은 게 그해 7월이다. 현지 직원 5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협력업체 90%가 문을 닫았다. 정확히 15년 만에 ‘말뫼의 눈물’이 군산에서 재현된 것이다.군산 조선소의 부활은 그래서 더 극적이다. 지난해 10월 조선소가 폐업 5년3개월 만에 재가동을 시작하더니, 지난주 첫 제품을 출하했다. 조선소는 밀려드는 일감에 구인난을 겪고, 지역 상권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 세계 조선업 역사상 드문 일이다. 말뫼라는 산업도시는 다시 살아나긴 했지만 조선이 아니라 벤처로 업종을 바꾼 뒤였다. 군산 조선소의 부활은 글로벌 조선업과 한국 제조업에 소중한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주창한 ‘욕구단계설’(생리·안전·소속·존경·자아실현) 중 인간이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첫 지점이 소속 욕구다. 인간은 생리와 안전 욕구를 충족하면 집단을 이루고 동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은 소속·인정 욕구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콤플렉스와 열등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를 경제활동에 접목한 게 ‘매진 임박’ ‘한정 판매’ 같은 마케팅 기법이다. 제품 공급량을 의도적으로 줄여 집단 흐름에서 벗어나기 두려워하는 인간 본성, 즉 ‘소외 불안’(포모·Fear Of Missing Out)을 구매 행동으로 유인하는 전략이다.소외 불안은 일상사에서 종종 강력한 쏠림 현상을 동반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부모 등골 브레이커’로 불리던 모브랜드 패딩 조끼를 안 입은 10대가 없었고, ‘간헐적 단식’ ‘황제 다이어트’ 등 각종 건강 프로그램이 나올 때마다 온 나라가 들썩거렸던 게 다 그런 사례다. 2020년 하반기부터 주식·부동산시장이 불을 뿜자 2030세대를 중심으로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하며 ‘패닉 바잉’ 열차에 올라탔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경우다. 포모는 이제 단순한 마케팅 기법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병리현상, 즉 ‘포모 증후군’으로 더 자주 인용된다.올 들어 미국 증시가 급등하며 다시 포모 증후군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다. 지난해 30% 가까이 꺾였던 미 증시가 올 들어 급등세를 보이자 랠리에 올라타려는 개인투자자들의 부화뇌동이 감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7년 전 미국 워싱턴DC에서 국제기구 인사를 만났을 때다. 각국 경제 상황에 대해 얘기하다 경제성장률 전망이 가장 쉬운 나라와 어려운 나라를 꼽아달라고 했다. 둘 다 중국이라고 했다. 어려운 이유는 통계와 자료 협조가 안 돼서라고 했다. 그러나 어느 나라보다 전망하기 쉽다고 했다. 중국 쪽에서 먼저 “내년 성장률은 얼마로 맞춰주면 되겠냐”고 묻고 대체로 거기에 맞춰준다는 것이다. 웃고 지나갔으나 씁쓸했다. 아시아 전문가들 사이에서 중국 통계는 ‘암흑 상자(black box)’로 통한다. 언제 어떤 숫자가 나올지 모른다. 당(黨)이 결정하면 대충 그에 근접하게 물가도, 성장률도 나오는 식이다.물론 모두 한참 전 얘기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만 해도 시진핑 주석 3연임을 앞두고 성장률 발표를 연기하고, 위드 코로나 전환 후엔 사망자 수를 터무니없게 축소 발표한 게 중국이다.중국식 통계 조작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조지 오웰이 역저 <동물농장>과 <1984>에서 통계 조작을 통해 피지배 계층을 세뇌·착취하는 독재자를 통렬하게 비판한 게 1940년대다. 70여 년이 지났지만 그런 행태는 여전하다. 러시아와 중국, 북한, 터키, 베네수엘라 등에선 통계 조작과 분식, 은폐가 일상화돼 있다. 일례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외환보유액과 수출입 실적, 실업률, 세수 등 각종 경제 관련 통계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서방과의 심리·정보전(戰)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줄기차게 “실업률 사상 최저” “가스프롬 가스 생산량이 증가 중”이라고 주장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 중앙
연초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뜨겁다.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운을 떼자 여야 정치권과 진보·보수 진영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내년 총선 국회의원 정원 규모 및 지역구 확정 기한(오는 4월 10일) 전에 개편 논의를 마무리하자는 일정까지 제시됐다. 지역구는 소선구제로, 비례대표는 준연동형으로 뽑는 현 제도를 중·대선거구제와 100% 비례대표제로 바꾸자는 게 핵심이다. 사표(死票)를 줄이고, 국민 대표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찬반 논란과 성공 가능성 여부를 떠나, 어떻게든 작금의 ‘후진 정치’를 바꿔 보자는 의도라니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간만의 정치권 의기투합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다만, 기왕 정치 개혁에 나선다니 한마디만 보태고 싶다. 선거구제 개편과 함께 의원 특권 폐지도 함께 추진해 달라는 것이다. 선거구를 어떻게 획정하고, 거기서 몇 명을 뽑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선출 방식을 바꾸면 양당 정치의 죽기살기식 극한 대립을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의원 수준을 관리하는 게 아닐까 싶다.국회의원의 자질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21대 국회, 특히 169석 거대 야당의 실력과 도덕성은 목불인견(目不忍見) 수준이다. 국정감사장에서 “논문을 제1 저자로 썼습니다. 이모하고 같이”(김남국 의원) “기증자가 한 아무개로 나옵니다”(최강욱)라는 식의 황당한 질문을 해도, 대통령의 술자리 루머를 사실관계 확인 없이 터뜨리고도(김의겸)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게 현 야당 의원들이다. 이 정도는 애교다. 3억원의 현금다발을 장롱 속에 숨겨뒀다 걸려도(노웅래), 수억원의 위안부 할머니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생전에 ‘톱 세일즈맨’을 자처했다. 2017년 2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 때 그 유명한 19초짜리 ‘굴욕 악수’를 당하고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그 후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 라운딩, 네 차례의 식사를 같이 하며 계속 웃었고, 마지막 날 1조달러 규모의 뉴욕~워싱턴DC 간 자기부상 열차 사업에 일본 기업이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공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지만 그는 일본 역대 총리 중 가장 해외를 많이 돌며 세일즈 외교를 펼친 인물로 평가받는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첫 아시아 순방 때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찾았다. 46시간의 짧은 체류시간 중 정상회담과 군부대 방문 일정을 빼고는 모두 기업 관련 일정으로 채웠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로부터 220억달러의 투자 약속을 받고 흡족한 표정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분야에서 ‘블랙홀’처럼 해외 투자를 빨아들인 성과 등을 평가받아 예상을 뒤엎고 중간선거에서 사실상 승리했다.경제가 곧 안보인 ‘빅 블러(Big Blur)’ 시대다. 경제 외교가 각국 정상에게 안보만큼 중요한 핵심 과제가 됐다. 각국 정상이 해외 순방 때마다 경제 관련 행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지금 스위스 다보스에서 52개국 정상(급 인사)이 600여 명의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를 상대로 치열한 투자유치전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일상화한 세일즈 정상 외교의 단면일 뿐이다.마침 한국에 낭보가 들려왔다. 아랍에미리트(UAE)가 원전과 방산·에너지 분야 등에서 한국에 300억달러(약 37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는 소식이다. 2009년 바
토끼는 초식 동물이다. 먹이 사슬의 최하단에 위치한다. 사방이 천적이다. 호랑이와 삵, 독수리, 매, 심지어는 부엉이까지. 다산(多産)과 방어는 자연스러운 생존 전략이다. 토끼의 임신 기간은 25~28일로 채 한 달이 안 된다. 한 배에 4~8마리씩 임신한다. 출산한 다음날 바로 임신이 가능하다. 암컷은 한쪽 자궁이 차면, 반대편으로도 새끼를 밴다. 이런 식으로 1년에 수차례 출산한다. 높은 번식력은 천적이 없으면 ‘재앙’이 된다. 인간 외에 천적이 없는 호주에서는 한 목축업자가 1859년 사냥용으로 들여온 토끼 24마리가 160여 년 만에 2억 마리로 불어났다. 호주 정부는 생태계 교란의 주범인 토끼를 박멸하기 위해 총알과 바이러스로 전쟁을 벌였으나 참패했다.토끼 지능은 아이큐 50 정도다. 웬만한 훈련이면 인간 언어에 반응하고, 배변을 가리고 장애물 통과도 가능하다. 전래동화에서도 ‘꾀 있는’ 동물로 자주 등장한다. 뭍에 빼놓은 간을 가지러 간다며 용왕 손에서 벗어난 게 토끼다. 신라 김춘추가 이 같은 구토설화(龜兎設話)를 듣고, 같은 계략으로 고구려에서 탈출했다는 일화가 삼국사기에 실려 있다.2023년 계묘년(癸卯年)을 맞아 여기저기서 토끼와 관련한 덕담과 고사성어가 많이 들린다. 대표적인 게 교토삼굴(狡兎三窟) 고사다. 트렌드 전문가 김난도 서울대 교수도 저서 <트렌드코리아 2023>에서 이 고사를 올해의 열쇠 말로 제시했다. 교토삼굴은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는 뜻이다. 중국 제나라 맹상군이 식객이 제안한 세 개의 계책으로 재상 자리도 되찾고, 나라도 지킬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토끼들은 방어를 위해 평균 1.5m 길이의 굴을 파는데 유
글로벌 경기침체 초입이라고 한다. 이미 진입했다는 평가도 있다. 실물위기가 금융위기로 전이될 가능성과 함께 금융부문에서 곧바로 뇌관이 터질 수 있다는 분석이 동시에 나온다. 166년 전통의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은행(CSFB)이 고위험 투자에 나섰다가 중동 펀드에 팔리는 신세가 됐고, 암호화폐업계 ‘빅가이’ FTX는 4조원 넘는 피해를 남기고 파산했다. 아시아 외환위기 직전 영국 최대 은행 베어링스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와 베어스턴스가 쓰러졌던 때의 데자뷔다. 실제로 “제2의 아시아 외환위기 가능성”(블룸버그통신),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헤지펀드 앨리엇매니지먼트) 등의 경고가 잇따른다. 경기침체, 금융위기 가능성 고조최근 미국이 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서며 발작은 다소 누그러들었다. 그러나 미래는 여전히 ‘시계 제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예측 불가 변수가 너무 많다. 전쟁과 바이러스 외에 인플레와 공급망 재편, 유가 불안 등 ‘산 넘어 산’이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다중 악재에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허둥지둥한다. 미국 중앙은행조차 40년 만의 인플레가 일시적인지, 구조적인지를 놓고 ‘백가쟁명’식 토론을 벌이고 있다.위기 대응 시스템도 전과 다르다. 이전 두 차례 위기 때는 국제 공조가 가능했다. 그나마 여력들이 있던 때였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확연히 달라졌다. 미국은 ‘인플레 수출’ 비난에도 금리 가속 페달을 멈추지 않았고,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든 영국 국채시장 사태 때도 ‘오불관언’이었다. 필요할 때는 가치동맹, 전략적 동반자
관치 금융의 뿌리는 깊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성장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961년 군사 정부는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 등을 통해 금리 결정과 대출 배분, 금융기관에 대한 예산과 인사를 모두 행정부 권한으로 편입시켰다. 정부가 경제개발 전략을 짜면, 은행은 그 지시를 따르는 구조였다. 과거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6급 주사가 은행장에게 기업 대출을 지시하고, 퇴직 금융관료들이 시중·국책은행 수장으로 가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외환위기를 거치며 그런 관행이 깨지기 시작했고, 그 균열이 극명하게 드러난 게 2003년 카드 사태 때였다.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김석동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국장)는 당국에 맞서 한 금융권 인사가 “은행은 돈을 버는 기업”(김정태 당시 국민은행장)이라며 맞섰다. 김 전 행장은 카드 수수료 인하, 한계 기업 지원 등을 거부하다 연임에 실패했다. 실패한 쿠데타였으나 파장이 컸다.모피아(재무부+모피아) 천하가 깨진 것은 이명박 정부 이후다. 고금회(고려대 출신 금융인사 모임)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사 모임) 등 대통령과 인맥·학맥으로 연결된 인사들이 낙하산을 타기 시작했다. ‘관치 금융’을 ‘정치 금융’이 대체한 것이다. 그러나 주도 세력이 바뀌었을 뿐 권력이 금융을 쥐락펴락하는 폐해는 여전했다. 문재인 정부는 금융 수장으로 내부 출신 인사를 중용했으나 대통령 자신이 “왜 저신용자에게 고금리를 적용하느냐”는 등 상식 밖 발언으로 시장에 더 큰 관치 폐해를 입혔다는 평가다.새 정부에서도 예외 없는 관치 논란이다. 금융당국
민주노총과 더불어민주당의 지도부는 같은 뿌리다. 민주노총 위원장 양경수, 산하 금속노조 위원장 윤장혁, 택배노조 위원장 진경호, 부위원장 김태완 등이 모두 성남·용인을 근거지로 성장한 극좌 운동그룹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다. 경기동부연합은 NL(민족해방파)계열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의 하부 조직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 성향의 친북 그룹.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이 그룹을 이끌었고, 그의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후배가 양경수다.경기동부연합은 같은 성남 출신 변호사 이재명을 2010년 성남시장 선거 때부터 조직적으로 지원해왔다. 그룹 핵심 중 한 명인 민주노동당 김미희가 이재명과 후보 단일화에 합의해줬다. 이재명은 당선 후 김미희 등을 인수위원장 등에 앉혔다. 김미희는 2012년 총선에서 통진당 소속으로 국회에 진출했다.민노총·민주당 지도부 정치공동체2014년 대법원의 통진당 해체 결정 후 지리멸렬하던 경기동부연합을 일으켜 세운 게 양경수다. 2020년 민주노총 선거에서 비정규직 세력을 규합해 위원장에 당선됐다. 양경수의 민주노총은 이재명을 총력 지원했으나 0.73%포인트 차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양경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윤석열의 시대가 아니라 노동의 시대” “경고가 쌓이면 그다음은 퇴장”이라며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각각 1조6000억원, 8000억원의 손실을 입힌 화물연대와 대우조선해양 파업을 이끌었다. 이재명이 야당 대표로 재기하는 데도 일조했다. 현재 이 대표는 국회에서 169석의 힘으로 ‘정부완박(정부 권한 완전 박탈)’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는 민주노총이, 여의도에서는 민주당이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거액의 돈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에게 약속한 대로 심장 부근 살 1파운드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원금의 10배를 받고 그만두라는 지인의 권유도 무시한다. 평소 자신을 ‘더러운 유태인’이라고 멸시한 안토니오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다. 결국 ‘살은 떼어내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판결로 패소하고, 전 재산까지 몰수당하는 비운으로 생을 마감한다.그런 샤일록이 혀를 차고 갈 나라가 한국이다. 금융감독원의 ‘2021년 불법 사금융피해 신고센터 실적’ 자료를 보면 연간 수천%에 달하는 고금리 이자 덫을 놓고 금융 취약계층의 피를 빠는 악덕 고리업자가 적지 않다. 이런 식이다. 30만원을 소액대출 해주는데 매일 복리(複利) 이자를 받고, 여기에 갚지 못한 이자를 원금에 포함시켜 다시 빌려주는 꺾기(재대출)까지 한다. 한 번 밀린 빚은 1년도 안 돼 수천만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결국 빚을 못 갚고 유흥업소로 팔려가거나, 미리 쓴 신체포기각서대로 일부 장기를 떼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이런 피해 사례가 지난해까지 4년간 56% 늘었다.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경제난도 있지만, 금리 규제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법정최고금리는 2002년 연 66%에서 지난해 연 20%로 떨어졌다. 그 추세에 맞춰 대출 난민들이 대부업체 등 3금융권에서 쫓겨나 불법 사금융으로 몰렸다. 대부업체들이 손님을 안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연 10%를 넘는 조달 금리와 중개 플랫폼 수수료(2~3%), 대손 비용(8~10%) 등을 감안했을 때 연 20% 대출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4년 만에 대부업체 수와
리즈 트러스는 딸 이름도 ‘리버티’(자유)라고 지은 골수 보수당원이다. 레이건과 대처로 대표되는 신(新)자유주의 경제의 신봉자이고, 영국인을 세계에서 가장 근면한 사람들이라고 믿는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규제를 풀고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로 이어져 침체에 빠진 영국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총리에 오르자마자 10년 넘게 구상해온 대규모 감세안을 꺼내 들었다. 결과는 아는 바대로다. 영국 파운드와 국채 가격이 폭락하며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고, 그는 ‘양상추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고 49일 만에 사퇴했다.트러스의 실패를 복기(復棋)하는 일은 한국에 대단히 중요하다. 벌써부터 일부 정치인이 영국 사례를 들며 감세안을 철회하라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결론부터 말하면 번지수를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영국 사태 핵심은 부채 위기트러스의 실수는 감세안 자체에 있지 않다. 규제개혁안은 꺼내지도 못했다. 그의 잘못은 역대급 감세안을 내면서 지출 구조조정 등 재원 마련 방안을 내지 않은 것이다. 결국 적자 국채로 메꾸겠다는 건데, 이는 금리 인상기에는 풀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것과 다름없는 무모한 행동이다. 최근 2년간 국가 채무 비율이 80%에서 100%로 급등한 상황에서 연 100조원 규모의 적자국채 발행 계획을 추가로 내놨으니 국채 값 폭락은 당연한 귀결이다. 위기 상황은 중앙은행이 긴급 개입하고, 정부가 감세와 지출 계획을 70% 이상 철회한 뒤에야 진정됐다.한국 상황은 이와 다르다. 가파르게 늘긴 했지만 국가 채무 비율(49%)이 영국의 절반 수준이고, 감세를 추진하지만 역대 최대 지출 구조조정안도 함께 내놨다. 거기에다 국가 부채를 통제
구속 피의자들은 통상 세 단계의 심리 상태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처음엔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검찰, 고소인 등에 대해 분노를 참지 못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엔 혐의 자체를 부인(否認)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이게 죄라면 죄가 안 될 게 어디 있느냐” 며 매달린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결국 사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상황으로 넘어간다.그런데 함께 일했던 사람이 밖에서 유유자적하며 자신은 떳떳하다고 큰소리를 친다면? 아무도 감옥에 있는 자신의 고단한 처지를 알아주지 않고 외면한다면? 이런 경우 1단계에서 곧바로 3단계로 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법조계 전문가들의 경험담이다. 범죄 사실을 조기에 인정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경우다. 이런 식으로 그 실체가 드러나는 정계 비리 사건과 대규모 담합사건 등이 적지 않다.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심경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유 전 본부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로 불리는 ‘대장동 게이트’의 핵심 피의자다. 그는 1년간의 구속기간 만료 후 출소하자마자 연일 이 대표를 향해 폭탄 발언을 던지고 있다. 검찰에 이 대표 측근의 정치자금 8억여원 수수 사실을 털어놓은 데 이어 출소 후엔 “10년간 (그들과) 같이해 너무 잘 안다” “천천히 말려 죽이겠다” “이재명의 죗값은 이재명이 받아야 한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이 대표가 자신과 관련된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꼬리 자르기에만 급급한 데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검찰 수사 협조 쪽으로 기울었다는 게 주변 관측이다. 그는 “의리? 이 세계는 그런 게 없더라”
주목받지 못했지만 소개할 만한 일이 있다. 지난 5일 있었던 관세행정발전심의위원회(관발심) 회의다. 매년 한 번씩 열리는 회의로, 10여 명의 민간 위원이 관세 행정에 대해 조언하는 자리다. 필자도 위원으로 참석했다. 크게 세 가지에 놀랐다.우선 분위기. 현재 정부 내 위원회는 636개다. 증권선물위원회처럼 정부 업무를 위임받아 처리하는 행정위원회(42개)가 있고, 관발심처럼 단순 자문기구(594개)도 있다. 그런데 상당수가 개점 휴업, 유명 무실에 가깝다. 정부가 위원회 중 39%(246개)를 통폐합하려는 이유다. 심상찮은 공직사회 엑소더스이런저런 회의를 다녀봤지만 이날 회의는 달랐다. 참석자들은 2시간 동안 회의 주제인 해외직구 관련 제도·서비스 개선에 대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윤태식 관세청장은 발언 내용을 메모했다가 회의 말미에 일일이 개선 여부를 답변했다. 참석한 위원들은 “대단히 모범적인 회의였다”고 입을 모았다.이런 분위기가 가능했던 건 꼼꼼한 행사 준비 때문이다. 지난 5월 취임한 윤 청장은 해외직구 관련 민원이 급증하는 것과 관련, 서비스 개선 검토를 지시했고 그렇게 20개 과제가 선정됐다. 윤 청장은 행사 직전까지 직원들과 토론에 토론을 거쳐 토씨까지 챙겨가며 자료를 준비했다는 후문이다. 그렇게 전문상담 인력 증원, 실시간 통관정보 조회시스템·모바일 환급시스템 구축 등의 개선 사항이 나왔고, 위원들은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조언을 보탤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새로운 서비스가 ‘돈 한푼 더 안 들이고’ 제공된다는 점이다. 기존 자원의 재배치·재활용만으로도 얼마든지 연말까지 그런 서비스가 가능하
흑해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크림반도는 줄곧 주변 강대국들의 각축장이었다. 세력 판도에 따라 손바뀜이 심했다. 스키타이로부터 로마, 몽골, 오스만제국을 거쳐 소련과 우크라이나로 주인이 계속 바뀌었다. 2014년엔 러시아가 합병을 선언했다.명칭도 마찬가지다. 1990년 이전까지는 영어식인 ‘크리미아반도’로 표기되다 그 후 러시아식(크림반도)으로 바뀌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올초 각국 정부에 표기를 ‘크름 반도’로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크름은 현지 원주민 타타르인들의 말로 ‘나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키예프를 키이우로 변경한 것처럼, 명칭부터 원래 주인에게 찾아주자는 호소다. 실질적 지배이건 명칭이건 크림반도를 둘러싼 세력 각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지난 8일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크림대교(케르치해협 대교)에서 큰 폭발사고가 나 주목된다. 크림대교를 지나던 트럭에서 폭탄이 터졌고, 불이 철도 교량을 지나던 화물열차 연료탱크 7량으로 옮겨붙으며 거대한 화염과 폭발이 있었다. 이 사고로 3명이 사망하고, 대교 운행이 전면 중단됐다. 외신들은 “사고 전날 70회 생일을 맞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실질·상징적으로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크림대교는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핵심 보급로이자,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상징물과도 같다. 푸틴은 2014년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빼앗자마자 대교 건설에 나섰다. 70억달러(약 9조9750억원)를 쏟아부어 4년 만에 전장 18㎞의 유럽 최장 대교를 완성했다. 푸틴은 직접 트럭을 몰고 개통식에 참석하는 등 대교 개통을 자신의 업적을 과시
아랍인들의 이름은 ①본인 이름 ②선대 이름 ③가문 이름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우리가 ‘빈 살만’이라고 부르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이름은 사실은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다. 즉, 본인 이름은 무함마드이고 살만의 아들이며, 아버지 살만은 압둘 아지즈의 아들이고 사우드 가문이라는 뜻이다. 이름에서 알(al)은 가문, 빈(bin)은 ‘~의 아들’을 의미한다. 이름만 보면 가문과 족보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빈 살만은 2016년 왕세자로 책봉된 뒤 최근 총리직에도 오른 명실공히 사우디 최고의 실세다. 6000명에 달하는 사우디 왕자 중 ‘원 톱’이고, 석유에서 나오는 천문학적인 부(富)와 전 세계 15억 이슬람 인구 중 다수(85%)인 수니파의 종주국 리더 지위가 보장돼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31세라는 어린 나이에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스스로 쟁취하고, 정적은 물론이고 비판자들까지 무자비하게 숙청한 ‘냉혈한’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집권 후엔 원전과 인공지능, 네옴 신도시 등에 1000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며 ‘석유 이후’ 사우디를 그리는 비전 있는 리더라는 평가도 많다.23개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그제 하루 200만 배럴 감산에 합의하면서 빈 살만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외신들은 그가 주도하는 OPEC+가 감산 카드로 미국을 코너로 몰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인플레 압력을 가중시켜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정부를 의도적으로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통적 맹방인 사우디와 미국은 빈 살만 집권 후 삐걱거리고 있다. 빈 살만은 권력 투쟁 과정에서 자신의 정적을 지원하고,
로봇(robot)이 ‘고된 노동’ ‘강제 노역’을 뜻하는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59년 미국 뉴저지주 트렌턴의 GM 공장에 강철 팔을 가진 1.2t 무게의 산업용 로봇 ‘유니메이트 #001’이 처음 나타났을 때 노동자들은 기겁했다. 그러나 로봇이 강철 팔로 형틀에서 무거운 부품을 꺼내 옮기자 환호성을 터뜨렸다. 로봇의 등장은 위험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로봇은 이제 산업현장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음식을 나르거나, 커피를 만들고, 환자를 돌보는 것 등은 일상 풍경이 됐다. 인간을 도와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고 작곡을 하기도 한다. 특히 의료나 물류, 국방 분야에서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움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구로부터 4억7000만㎞ 떨어진 화성에서 탐사 임무를 수행 중인 ‘퍼시비어런스’와 ‘인저뉴어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원전 건물 잔해와 계단을 옮겨 다니며 내부 모습을 보여주던 ‘티호크’ ‘팩폿’, 불치병을 파헤치는 ‘나노봇’ 등의 활약은 로봇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올초 CES는 이런 로봇 기술이 인공지능(AI), 자율주행 기술 등과 접목했을 때 어떤 미래가 가능한지 가늠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일각에서는 ‘로봇세’ 도입 등을 주장하며 로봇 확산을 우려하지만, 아직 인간은 로봇에 낙관적이다. 빅테크들과 유수 제조기업이 경쟁적으로 로봇산업에 투자하는 이유다.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이 최근 2족 보행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옵티머스’를 공개해 관심이다. 테슬라의 첫
봉급 생활자들이 저축만 해도 잘 먹고 살 수 있던 때가 있었다. 1960~1980년대 경제개발 시대 얘기다. 정부는 부족한 산업 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절약하는 남편 되고, 저축하는 아내 되자’ 등의 표어를 걸고 가계 저축을 독려했다. 당시 금리는 연 30%대에 육박했다. 1988년 가계저축률은 24.3%까지 올랐다.외환위기를 거치며 저축보다 소비를 장려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두 자릿수 이자를 주는 예·적금 상품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저금리·저물가·저성장 시대를 거치며 고금리 예금상품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물던 시절’의 아득한 추억이 돼 버렸다. 은행권에 머물던 자금은 투자의 시대를 맞아 펀드로, 꼬마 빌딩으로, 암호화폐로 대거 흘러 들어갔다.최근 연 10%대 고금리 적금상품이 부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마케팅 목적이다. 시중 예금금리(연 3%대)보다 훨씬 높은 금리를 미끼로, 시중 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다. 대신 고금리 부여 조건이 까다롭고, 납입 한도도 적다. 연 11%까지 주는 S은행 플랫폼 적금(자유적립식)은 월 30만원 한도로 6개월간 납입할 수 있다. 기본 금리는 연 2%지만, 신규 가입자여야 하고 협력사인 야쿠르트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얼마어치를 사야 하는 등 복잡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우대금리(연 9%)를 적용받을 수 있다. 가입 기간에 수백만보를 걸어야 하는 조건을 내건 금융회사도 있다.미끼 상품인 게 분명한데도 이런 상품들은 출시와 함께 ‘완판’ 행렬이다. 금리 발작으로 증시와 부동산, 암호화폐 시장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대안으로 고금리 예금상품에 몰리고 있어서다. 증시에
‘킹달러’ 공포에 세계 금융시장이 발작 중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가속에 파운드 유로 엔 위안 등 주요국 통화 가치가 연일 수십 년 사이 최저 수준 기록을 갈아엎고 있고, 주요국 증시는 동반 폭락하는 등 대혼돈 양상이다. 물가 급등과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한 각국의 치열한 ‘역(逆) 환율전쟁’ 속에, 벌써 국제통화기금(IMF) 앞엔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위기국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까지 나온다. 1년 전만 해도 코로나 극복과 경제 회복을 노래하던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바뀌었는지 어리둥절할 뿐이다.더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이 와중에 벌어지고 있는 ‘네 탓’ 공방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연방은행 총재는 어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정부의 대규모 감세안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감세가 가뜩이나 심각한 영국 내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키고 재정에도 타격을 가해 불안정한 국제 금융시장에 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영국 감세정책이)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을 높이고 글로벌 경기 침체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Fed 관계자도 “외부 쇼크가 미국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우려했고, 미국 학계에서는 “영국이 결국 IMF 신세를 질 것”(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이라는 악담도 나왔다.이 같은 비판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이 과연 지금 다른 나라를 공박할 처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코로나 사태 발생 후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수조달러를 풀었다. 지난해 말 인플레 경고가 나
한 세대 전만 해도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빨간 내의를 사드리는 게 관례였다.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며 선물을 건네면 “돈도 없는데 뭘 이런 걸…”이라며 흐뭇하게 웃으시던 부모님 모습이 액자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년층이 적지 않을 터다. 그런 내의의 대표 브랜드가 쌍방울이다.쌍방울은 1950년대 이봉녕·이창녕 두 형제가 전북 익산에서 시작한 ‘형제상회’에서 출발했다. 양말·속옷 도매상을 하다가 1964년 쌍방울(돌림자 녕(寧)이 령(鈴·방울)으로 발음되는 데 착안)이란 상표로 내의를 만들었다. 쌍방울은 이후 무역과 패션, 전자, 리조트 분야까지 사세를 확장하며 호남 대표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한때 프로야구팀(쌍방울 레이더스)까지 두고 재개 51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지나친 의욕이 독(毒)이 됐다. 외환위기 직전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자금난으로 1998년 공중 분해됐다. 쌍방울은 이후 애드에셋, 대한전선 등으로 넘어갔다가 2010년 현 오너인 김성태 씨에게 인수됐다.지금은 회장직에서 물러난 상태지만 김 전 회장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쌍방울 사업구조를 상전벽해 수준으로 바꿔놓았다. 동종 업체인 비비안뿐 아니라 △광림(특장차·크레인·소방차 제조·판매업체) △디모아(소프트웨어 유통사) △아이오케이컴퍼니(영화·방송 프로그램 제작 및 투자) △SBW생명과학(모바일 광학부품 제조업체) △미래산업(반도체 장비업체)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했다. 불발되긴 했지만 이스타항공, 쌍용자동차 인수전에도 참여했다. 최근 업력 75년의 글로벌 1위 섬유기업 라이크라 인수에도 나서 새삼 자금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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