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올해 업무계획에서 현재 65세인 노인 연령 기준을 높이는 논의를 본격 착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과거와 달리 신체가 건강하고 경제력을 갖춘 노인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노인 연령은 1981년에 제정된 노인복지법을 기준으로 할 때 40년 넘게 만 65세 그대로 유지돼왔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논란이 촉발한 노인 연령 기준과 관련해 대한노인회는 지난해 노인 연령 기준을 75세로 단계적으로 조정하자고 제안했다. 인구 중 65세 이상이 전체의 20%에 육박한다. 늘 제자리를 맴돈 노인 연령 기준 상향 논란이 이번에는 매듭지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찬성] 이대로면 50년 뒤 1명이 1명 부양…기준 개선해 후세대 부담 줄여야사회적으로 ‘노인’이라고 인식하는 연령이 크게 높아졌다. 현행 기준은 평균수명이 60대에 머물던 시대에 만들어졌다. 노인복지법 제정 당시 66.1세이던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3.6세로 늘었다(2023년 기준). 한국 사회는 2017년 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에 접어들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993만8000명으로 전체의 19.2%를 차지했다. 올해 초고령사회(20% 이상) 진입이 확실시된다.수명뿐 아니라 건강도 좋아졌다. 요즘 60대는 자신을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늙었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경제력도 과거 노인과 다르다. 복지부가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새로 노인 연령에 진입한 65~69세 가구의 연간 총소득은 4787만원으로 전체 65세 이상 평균 3469만원보다 38%이나 높았다. 부동산(3억3600만원)과 금융 자산(5500만원) 등 보유 자산도 4억원이 넘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당히 많았다. 요즘 60대는 대
문화 풍속 중 가장 보수적인 게 이름이다. 성명에 관한 관습은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고대 중국에선 항우, 조조, 유비처럼 성 한 글자에 이름 한 글자로 성명이 구성됐다. 전한을 멸망시킨 왕망은 이를 금지(二名之禁)하고 이름을 두 글자로 쓰도록 강제했다. 우리 민족도 중국 문화의 영향으로 ‘홍길동’처럼 성 한 글자·이름 두 글자 체제를 2000년가량 유지하고 있다.성명 체계가 경직된 것은 이름을 둘러싼 정치권력과 사회의 압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원래 유럽에서 성명은 누구누구의 아들이란 뜻의 ‘son’을 붙여 윌리엄 로버트슨의 아들은 토머스 윌리엄슨(윌리엄의 아들)으로 불렸고, 다시 토머스의 아들은 헨리 톰슨(토머스의 아들)으로 칭하는 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근대에 들어 세금 징수와 징병의 필요에 따라 부계의 성(姓)이 이어지도록 바뀌었다.한번 못 박힌 성명 체계는 개인과 민족 정체성의 근간이 됐다. 마크 저커버그(독일어로 설탕산) 메타 최고경영자(CEO)나 마이클 블룸버그(꽃동산) 블룸버그 창업자, 마커스 골드만(황금을 다루는 사람) 골드만삭스 창업자의 성씨에선 재물과 지명을 섞어 성을 만들던 중·동유럽계 유대인(아슈케나짐)의 자취가 묻어 있다.미국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목말 태우고 등장한 그의 다섯 살 난 아들이 독특한 이름으로 주목받았다. 애칭이 엑스(X)인 소년의 정식 이름은 ‘엑스 애시 에이 트웰브(X Æ A-Xii)’. 머스크가 좋아하는 것들의 총집합체다. 엑스는 변수, A와 E를 합쳐 놓은 애시(Æ)는 인공지능(AI)을 뜻한다고 한다. 에이 트웰브는 머스크가 좋아하는 정찰기 ‘A-12’에서 따왔다. 머
6·25전쟁 기간 국군 사망자는 13만7899명, 부상자는 45만742명에 이른다. 민간인 사상자와 실종자는 공식통계만 99만968명에 달한다. 이런 대규모 한국인 인명피해는 누구에 의해 발생했을까.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군이 지리멸렬했던 만큼 3년간 이어진 전쟁의 사상자 대부분은 중공군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중공군은 온정리전투와 현리전투 등 대규모 공세를 펼 때 미군보다 훈련이 부족하고 장비도 빈약한 국군만 집요하게 노렸다. 그런 중공군을 이끈 사령관이 펑더화이였다.펑더화이는 국공내전 당시 서북인민해방군을 이끌며 같은 부대에서 정치장교로 활동하던 시중쉰(시진핑 현 국가주석의 아버지)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펑더화이와 시중쉰은 문화대혁명 때 함께 숙청돼 고초를 겪는 ‘운명 공동체’로 관계가 깊어졌다. 2011년 펑더화이의 고향 집을 찾아가 “대단히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평했던 시진핑 주석이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선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 시 주석 발언에서 한국을 얕잡아 본 펑더화이의 그림자가 느껴진다.한국을 낮춰보는 중국인의 시선은 비단 시 주석이나 펑더화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대다수 중국인은 한국을 자신의 영역으로 여겼다. 1944년 카이로 회담 직후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가 마련한 ‘조선 문제 연구 요강 초안’에도 중국군의 한반도 파견과 한강 이북 지역을 중국군이 관리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금도 적지 않은 중국인이 한반도를 ‘중국 땅’이라고 생각한다. 바이두 같은 중국 인터넷 포털에선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
고대 중국에선 다양한 종류의 달력이 사용됐다. 하력(夏歷), 은력(殷歷), 주력(周歷) 등은 한 해의 시작을 잡는 기점도 모두 달랐다. 하력은 정월을 세수(歲首·설)로 삼았고 은력은 12월, 주력은 11월이 한 해의 출발점이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하력 10월 초하루를 세수로 삼는 ‘표준’을 정했고, 한 무제 때(기원전 102년) 설날이 하력 정월 초하루로 고쳐진 뒤 2000년 넘게 쓰였다. 동양사회의 역법은 한나라 때 큰 틀이 확립됐다.달의 움직임에 기반한 중국 역법은 태양의 위치 변화에 따른 계절의 바뀜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따라 태양의 움직임을 가미해 입춘(立春), 하지(夏至), 처서(處暑), 백로(白露) 등 24절기를 만들어 보완했다. 이들 각 절기 명칭도 전한시대에 편찬된 <회남자(淮南子)>에서 최종적으로 정착됐다. 자연스럽게 24절기는 한나라 도읍인 낙양을 ‘기준’ 삼아 정해졌다.고대 낙양 스탠더드에 맞춰진 절기는 ‘보편성’을 띠기 어려웠다. 지난 2000년간 지구 전체 기후가 크게 변했고, 세차 운동의 영향으로 태양의 위치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위 34도 40분, 대륙 내륙에 자리한 낙양(연평균 기온 14.9도·강수량 731㎜)과 아시아 각 지역의 기후 환경은 크게 달랐다. 자연스럽게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다’는 옛말처럼 절기와 날씨가 맞지 않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다.따뜻한 봄이 떠오르는 입춘에 관한 고정관념과 달리, 이 무렵 한반도에선 매서운 추위가 닥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 터진다’며 늦추위의 매서움을 지적하거나, ‘입춘 추위
1934년 1월 17일자 일본 일간 시사신보에 ‘반초카이(番町會)를 폭로한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대서특필됐다. 도쿄주식거래소 이사장과 일본상공회의소 소장을 지낸 고세이 노스케를 중심으로 한 기업인 모임인 반초카이가 당시 일본 상공대신, 철도대신과 결탁해 섬유회사 제국인견의 주가를 조작해 큰 이익을 봤다는 내용이었다. 사이토 마코토 내각이 총사퇴하는 등 정경유착 스캔들이 미친 후폭풍은 거셌다.265회의 공판 끝에 1937년 10월 반전이 일어났다. 후일 일본최고재판소장이 되는 이시다 가즈토 판사가 사건 관계자 16명 전원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것. 정상적인 주식 거래가 있었을 뿐 범죄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썩어빠진 정·재계를 바로잡고 국가를 혁신하겠다’던 검찰은 고문도 마다하지 않고 ‘허위 자백’을 받았다. 이런 문제점을 간파한 이시다 판사는 “물속의 달그림자를 잡으려 하는 것과 같다”는 판결문을 남겼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범죄 혐의는 ‘공중누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 이 문구는 요즘도 일본 드라마 대사에 나올 정도로 일본인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무엇보다 이 판결은 “법 해석이 세론에 휩쓸리면 위험하다”(미야케 마사타로 전 일본 사법차관)는 말로 대변되는 ‘진중한’ 일본 사법 문화를 이끈 계기로 평가된다.그제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기일에 출석해 계엄 선포 당일 정치인 체포 의혹을 두고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를 쫓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평소 투박하고 직설적인 화법을 애용하는 윤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시적인 비유를 들었기에 주목받았다.
1951년부터 전 세계 언어 정보를 모아 각종 통계를 작성해온 <에스놀로그 연감>(2024년판)에 따르면 현재 사용되는 언어는 7164개라고 한다. 이들 언어 대부분은 로마자나 한자, 아랍문자 등 42종류의 문자로 표기된다. 기원전 3000년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문자가 등장한 이후 인류에게는 지금껏 300개 넘는 문자가 있었고, 그중 100여 개가 여전히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이 중에서 문자의 탄생 시점과 발명자가 확인된 것은 한글이 유일하다. <세종실록>(1443년 12월 30일)에는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를 지었다’는 문장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반면 그리스문자 첫 두 글자 ‘알파’와 ‘베타’에서 이름을 따온 알파벳은 로마자와 키릴문자 등으로 분화하며 널리 쓰이고 있지만, 그 시원은 안갯속이다. 중국 한자도 1899년 갑골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원형(原型)을 상상조차 못 했다. “수수께끼 풀이에 가까웠다”는 일본 한자학 권위자 시라카와 시즈카의 고백은 빈말이 아니었다.한글이 ‘출생’이 명확한 유일한 문자인 만큼 특정 문자를 주제로 삼은 박물관 역시 국내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 안양시에 있는 중국문자박물관 정도가 예외다. 다양한 문자를 다루는 프랑스 뮈제샹폴리옹이나 인쇄물에 집중한 독일 구텐베르크무제움은 지향점이 다르다.2014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바로 옆에 개관한 국립한글박물관은 <월인석보> <정조한글어찰첩> <청구영언> 같은 한글로 쓰인 귀중본을 비롯해 조선 세조 때 만든 한글 활자 ‘을유자’(乙酉字) 등 8만9000점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이런 한글박물관에 지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의 음악에서 ‘선한 청년’의 모습을 떠올리는 이가 적지 않다. 거친 운명에 맞선 베토벤, 중후한 브람스의 음악과는 구별되는 그만의 ‘결’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35세에 요절한 모차르트보다 더 이른 나이(31세)에 세상을 뜬 점도 이런 인식에 힘을 실었다. “음악은 여기에 소중한 보물보다 더 귀한 희망을 묻었다”는 그의 묘비명에선 미처 다 피지 못한 청춘을 향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슈베르트가 남긴 600여 가곡 곳곳에선 ‘젊은이의 감성’을 접할 수 있다. 연인에게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그대가 가졌다”(‘실비아에게’)며 달콤하게 노래하고, 팍팍한 삶에 좌절해선 “지금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 차고, 길은 눈으로 덮였네”(겨울나그네 중 ‘안녕’)라고 푸념하는 식이다. 또 “아버지 마왕이 보이지 않으세요. 왕관을 쓰고 망토를 두른 마왕이?”(‘마왕’)라는 절규로 기성세대가 간과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한다.슈베르트의 삶은 ‘패배자’에 가까웠다. 키가 150㎝를 간신히 넘은 탓에 ‘꼬맹이 버섯’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제대로 된 직업도 없이 친구 집을 전전했다. 작품은 대중의 무관심 속에 제대로 출판도 되지 못했다. 대표작 ‘미완성 교향곡’ 역시 그의 사후 40년 뒤 발견됐다. 당대에 철저하게 ‘무명’이었지만 슈베르트는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은 끝에 998곡의 불멸의 작품을 남겼다.고단했지만 빛나는 성과를 남긴 ‘청년’ 슈베르트의 삶이 오늘날 한국 사회 젊은이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작지 않아 보인다. ‘젊음’이란 태생적으로 고될 수밖에 없
로마 시대 화폐의 표준은 무게 3.65g짜리 데나리우스 은화였다. 트라야누스 황제(재위 98~117년) 시절 은화의 순은 함유량은 90%를 훌쩍 넘겼다. 하지만 160년께부터 은 함유량이 80%로 떨어졌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때인 200년엔 은 함유량이 61%까지 내려갔다. 후기 로마에서 데나리우스화를 대체한 안토니니아누스화의 은 함유량은 ‘은화’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2%(260년)에 불과했다.오랫동안 화폐 가치는 금화, 은화 속 금·은처럼 화폐를 만든 소재의 가치에 기반했다. 프랑스어에서 돈을 의미하는 단어 ‘아르장’이 은이라는 뜻을 지닌 것도 이런 이유다. 금과 은은 한닢 두닢 같은 주조 단위가 아니라 중량으로 가치가 매겨졌다. 프랑스·이탈리아의 옛 화폐 단위 ‘리브르’와 ‘리라’가 금속의 무게를 재던 ‘천칭’(라틴어 리브라)에서 유래했고, 영국 파운드화(£)가 무게 단위 파운드(lb)와 명칭이 동일한 것은 이런 시절의 유산이다.금속 소재의 값이 중요했던 까닭에 화폐의 역사는 위조화폐와의 투쟁사이기도 했다. 비싼 소재로 만든 동전을 갈고, 깎고, 자르는 데 그치지 않고 싸구려 불순물로 가득 채운 위조 주화가 곳곳에서 양산됐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은 ‘역사상 한 번도 도전받지 않은 경제법칙’(존 갤브레이스)으로 불렸다.주화의 액면가와 실질가치 간의 차익을 챙기는 데는 정부도 빠지지 않았다. 기원전 6세기 아테네의 솔론이 6000드라크마어치 은 1달란트로 6300드라크마를 주조하며 주조 차익(시뇨리지)을 남기는 관례를 만들었다. 이후 주조 차익은 오늘날까지 정부나 중앙은행의 독점 권한으로 인식됐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3월 7일. 50대 후반 남성을 태운 검은색 제네시스 차량이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은밀하게’ 드나들었다. 김진욱 당시 공수처장 관용차에 탄 이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의 ‘수사 외압’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직권남용 및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에게 차량을 제공해 졸지에 ‘관용차’를 ‘의전차’로 만든 공수처가 당시 내놓은 해명은 “보안상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떠밀리듯 시행한 면담조사 사실마저 쉬쉬하고, 조서조차 남기지 않은 공수처는 ‘황제 수사’라는 씁쓸한 신조어만 남겼다.‘정치적 편파성’과 함께 공수처를 비판하는 단골 소재는 ‘능력 부재’였다. 2021년 출범 이후 최근 윤석열 대통령 내란 혐의 수사 전까지 공수처는 구속영장을 다섯 번 청구해 모두 기각당한 ‘전패’ 기록을 지니고 있었다. 체포영장은 여덟 번 청구해 세 번 발부받았는데, 그나마 발부받은 세 건도 이미 구속 수감된 단 한 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이런 참담한 실적은 ‘수사 전문성’ 문제에 발목이 잡힌 공수처가 ‘무능’ 딱지를 떼고자 무리한 수사를 남발한 탓이라는 얘기가 많았다.1996년 참여연대가 부패수사 전담 수사기구 설치를 입법 청원한 것이 뿌리인 공수처는 입법 과정에서부터 싱가포르 탐오조사국, 중국 국가감찰위원회 같은 권위주의·공산 체제를 모델로 삼아 논란이 일었다. 공수처의 태생적 DNA가 인권이나 민주주의 같은 보편적 가치와는 거리가 있다는 염려가 끊이지 않은 이유다.공수처
1814년 9월부터 1815년 6월까지 10개월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선 밤마다 무도회가 끊이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전후 질서를 다시 짜는 회의에 참석한 200명이 넘는 정치인과 외교관이 무도회의 주역이었다. 외교 협상 테이블에 쌓인 난제들은 오스트리아 재상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가 마련한 무도회와 만찬장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이런 모습을 리뉴백작 카를 요제프 라모랄은 “회의는 춤춘다”는 표현으로 압축했다.화려한 복장의 선남선녀가 와인잔을 들고 환담하며 왈츠를 추는 무도회는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시절’의 한 장면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서구 주요국에선 여전히 중요한 정치·사회적 행위로 명맥을 이어왔다. 1789년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 대통령 취임 축하 무도회가 대표적이다. 대통령과 부통령 내외가 참석하는 무도회는 20세기 초 일시 폐지된 적이 있지만 1953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취임과 함께 부활한 이후 꾸준하게 규모를 키워왔다.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을 전후해 워싱턴DC에서도 3대 공식 축하 무도회와 17개 비공식 무도회가 줄지어 열린다. 그중에서도 취임식 당일 저녁 열리는 ‘사령관 무도회’(Commander in Chief Ball)와 ‘자유의 취임 무도회’(Liberty Inaugural Ball), ‘스타라이트 무도회’(Starlight Ball)가 핵심으로 꼽힌다. 특히 정·재계 VIP가 모여 트럼프 대통령과 친밀감을 높일 기회가 될 스타라이트 무도회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부부와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등이 참석한다는 소식이다.취임 무도회는 단순한 사교 행사가 아니다. 화려한 무대 뒤
음악은 형체가 없다. 그런데도 종종 강렬한 시각 이미지로 다가온다. 스메타나의 ‘몰다우’를 들으면 한이 서린 블타바(몰다우)강이 눈앞에 그려진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4악장의 힘찬 음향 속에선 광대한 아메리카 대륙의 초원이 펼쳐진다. <음악과 이미지>는 음악·미술 칼럼니스트 박찬이가 쓴 책이다. 악기와 미술이 함께 이뤄온 예술사를 다룬다.때론 악기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14~18세기 제작된 하프시코드엔 화려한 장식과 그림이 필수였다. 악기와 연주자는 ‘그림 속 주인공’으로 영생을 얻기도 했다. 드가, 피카소, 마티스 같은 화가는 악기를 배경으로, 혹은 연주하는 사람을 모델 삼아 음악을 시각예술로 형상화했다.그림 속 악기는 잊힌 역사를 들춰내기도 한다. 4개의 현이 있는 요즘 바이올린이나 첼로와 달리 2~3개의 현을 지닌 레벡, 5개 이상 현의 중세 피들, 6~7개 현이 있는 비올라 다모레 등 옛 악기들을 통해 오랜 기간 켜켜이 쌓인 ‘축적의 힘’을 느낄 수 있다.방랑자와 불한당 그리고 악마의 악기에서 왕이 사랑한 악기로 변신한 바이올린의 역사라든지 가슴 아래, 배 위쪽에 바이올린을 놓고 켜다가 쇄골, 목, 턱 아래로 옮긴 바이올린 연주 위치의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433개의 화려한 화보가 명료한 문체의 본문과 맞물려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한다. 혼자만 알기엔 아쉬운 내용을 가득 담은 콘텐츠 못지않게 책의 장정과 구성도 예술작품에 비할 만큼 화려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책’이라는 홍보 문구가 과해 보이지 않는다.김동욱 기자
형체가 없는 청각예술인 음악은 종종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로 다가오곤 한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몰다우’를 듣다 보면 유장하면서도 한이 서린 블타바(몰다우)강이 눈앞에 그려지고, 안토닌 드로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4악장의 힘찬 음향 속에선 광대한 아메리카 대륙의 초원이 펼쳐진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알렉산드르 넵스키’에서 쉼 없이 튀어나오는 불협화음들은 얼어붙은 호수 위로 쥐새끼처럼 모국을 쳐들어온 사악한 침략자들의 움직임을 피부로 전한다. 그렇게 음악은 단순한 소리에 머물지 않고 눈앞의 이미지로 형상화돼 뇌리에 각인된다.<음악과 이미지-회화와 기보에 깃든 선율들>은 ‘음대생보다 음악도서관에 더 자주 오는 미대생’ 출신 음악·미술 칼럼니스트가 쓴 악기와 미술이 함께 이뤄온 예술사를 다룬 책이다. 하프시코드와 바이올린, 리코더, 트라베소르 플루트, 오보에, 트럼펫과 같은 악기와 회화나 조각 같은 미술이 얽힌 ‘연애사’와 ‘결혼 과정’을 상세하게 담았다.때론 악기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14~18세기 제작된 하프시코드에는 화려한 장식과
그리스 신화 속 ‘아테’는 사람의 눈을 가리는 미망(迷妄)의 여신이다. 흔히 대지가 아니라 사람들의 머리를 밟고 다니면서 해를 끼치는 저주받은 존재로 그려진다. 영웅이나 군주라고 하더라도 그의 거센 발길질을 피할 수 없다. 거침없이 사람을 쓰러뜨리고 다니는 아테 여신은 맹목성에서 오는 판단 착오를 상징한다. 어리석은 결정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메시지는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고대 그리스인들이 ‘아테 여신이 방문했다’고 표현했던, 미망에 빠지는 순간은 어떻게 찾아오는 것일까. 사람이 잘못된 길을 가게 된 근원에는 ‘욕심’과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 속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아킬레스가 얻은 ‘전리품’에 눈이 멀어 미망에 빠졌고, 최고의 영웅 아킬레스는 ‘정당한 자기 몫’을 아가멤논에게 뺏긴 분노에 사로잡혀 합리적 판단을 내던져버린다. “모욕을 받아 가며 그대를 위하여 부와 재물을 쌓아줄 생각은 없다”고 아킬레스가 부르짖는 장면은 분노 탓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미망에 빠진 순간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지난 3일 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호소드린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 곳곳에서도 대통령의 ‘분노’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이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를 발의했고, 22대 국회에서만 10명째 탄핵을 추진 중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계엄 공포에 사용된 표현은 ‘범죄자 집단의 소굴’ ‘패
구와바라 게이이치(桑原敬一)는 가미카제(神風) 특공대 ‘생존자’다. 1945년 5월 4일 규슈에서 오키나와로 향하던 그는 엔진 고장으로 기체가 불시착하면서 ‘죽음의 비행’에서 살아 돌아왔다. 구와바라처럼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이 가미카제 생존자임을 공개한 사례는 많지 않지만 실제로는 적지 않은 이가 살아남았다.제2차 세계대전 말기 격전지 오키나와로 가는 길목인 가고시마현 도카라열도에는 ‘불시착’한 비행기가 줄을 이었다. 특히 스와노세지마, 다이라지마, 나카노시마 세 섬에 중도 착륙이 집중됐다. 그중 나카노시마에만 1945년 4월 16일부터 5월 19일 사이 최소 8대의 가미카제 비행기가 ‘불시착’했고, 대부분 조종사가 제 발로 걸어서 비행기를 빠져나왔다. 가고시마현 지란 항공기지에서 이오지마로 향하던 전폭기 상당수는 이륙하자마자 몇 분 거리에 있는 미시마라는 작은 섬에 비상 착륙했다.가미카제 생존자들을 인터뷰해 <불시착>이란 책을 낸 히다카 고타로(日高恒太朗)에 따르면 세 번이나 불시착했다가 귀환한 한 특공대원은 끝까지 “고의로 불시착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기체에 결함이 있었다고만 주장했다. 일본 군부는 “(가미카제 조종사들이)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았다거나 기체가 고장 났다는 이유를 들지만 정말로 고장 난 것인지 고의로 착륙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고 못마땅해했다.후쿠오카에 있는 ‘무운을 떨친 군인의 숙사’란 뜻의 신부료(振武寮)라는 군 시설에 수용됐던 생환자 일부는 다시 비행기에 올라 목숨을 버렸지만, 많은 수가 정신교육을 받던 중 종전을 맞이했다. 군국주의의 강압 속에 군의 사기를
언제부터인가 인문학이 경영자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으로 꼽힌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리버럴 아트(liberal arts)’의 쓸모를 강조한 이후 성공한 기업인을 위한 단순한 장식품이나 지적 허영의 대상에서 벗어난 모습이다.는 흔히 문학, 역사, 철학을 통칭하는 인문학, 리버럴 아트를 몸에 배게 익히는 것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훌륭한 경영자의 필수 덕목으로 우뚝 섰음을 선언하는 책이다. 저자는 경영 현장을 인문학 이상을 실현할 공간으로 보고 자유, 진리, 존재, 정의, 예술과 같은 키워드로 경영 난제를 풀어나가고자 한다.경영자가 바쁘다는 핑계로 사색과 성찰의 끈을 놓는 순간 사업은 방향을 잃고 성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일갈한다. 책은 특히 기업 경영에 격변을 초래하고 있는 AI의 본질이 무엇인지 밝히는 데 천착한다. 그리고 AI의 산출물이 아무리 완성된 것으로 보여도 그 본질은 제조업의 원재료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또 경영자는 AI가 내놓은 산출물에 속지 않아야 하며 판단은 어디까지나 경영자의 몫이라고 단언한다.김동욱 기자
언제부터인가 인문학이 경영자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으로 꼽힌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리버럴 아트’(liberal arts)의 쓸모를 강조한 이후 성공한 기업인을 위한 단순한 장식품이나 지적 허영의 대상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내면 여전히 인문학으로 대표되는 지식인과 경영자 사이에는 깊이 팬 해묵은 인식단절의 골이 여전하다. <AI 앞에선 경영자의 선택 리버럴 아트>는 흔히 문학, 역사, 철학을 통칭하는 인문학, 리버럴 아트를 몸에 배게 익히는 것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훌륭한 경영자의 필수 덕목으로 우뚝 섰음을 선언하는 책이다. 그동안 지식인(인문학)과 경영자(실업)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탓에 때로는 상대를 과대평가하고, 때로는 멸시하고 폄하해 왔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경영 현장을 인문학 이상을 실현할 공간으로 보고 자유, 진리, 존재, 정의, 예술과 같은 키워드로 경영 난제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인문학적 지식과 시각은 쓸모없는 장식품이 아니다. 비즈니스맨은 바쁘다는 뜻의 영어 단어 ‘비지(busy)’에서 파생된 명칭이지만 경영자가 바쁘다는 핑계로 사색
19세기 말 미국 뉴욕 거리는 말똥 천지였다. 곳곳에 높이가 2m에 달하는 말똥 더미가 쌓여 있었다. 말의 분뇨에서 나는 악취와 셀 수 없이 달려드는 파리떼는 도시의 상징이었다. 1867년 뉴욕에선 1주일에 평균 4명의 보행자가 말에 치여 사망했다. 뉴욕만 이런 것이 아니었다. 1870년 보스턴은 인구 25만 명에 말이 5만 마리나 됐다. 시카고에선 매년 말의 사체만 7000마리씩 나왔다.말은 교통수단 이상이었다. 1872년 말들이 집단으로 감기에 걸리면서 미국 동북부 주요 도시는 말 그대로 마비됐다. 대중교통 역할을 담당하던 마차업체는 운행을 무기한 연기했다. 도시 내 운송을 전담하던 말이 사라지면서 기차역엔 화물이 쌓였고, 도시민의 생활에 필요한 우유와 얼음, 야채, 맥주 등은 동이 났다. 공장들이 멈춰 섰고 소방업무와 쓰레기 처리 같은 도시의 행정업무도 발이 묶였다. 교통과 물류 유통에서 말이 차지하는 위상은 수백 년간 절대적이었다.하지만 자동차가 등장하자 말은 순식간에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원하는 때 움직일 수 있고, 사료를 먹지도 않고 배설물도 없는 자동차는 막강 그 자체였다. 1900년 미국에는 자동차 등록 대수가 8000대에 불과했지만 불과 10년 만에 46만8000대로 치솟았다. 다시 10년이 지난 1920년에는 자동차 수가 900만 대로 폭증했고, 1929년에는 2300만 대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경제사가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미국을 비가역적으로 바꾼 변화’라고 평가했던 자동차의 등장과 확산 과정을 다시 보는 것과 같은 큰 변화가 눈앞에 일렁이고 있다. 생활 속으로 깊이 파고든 인공지능(AI)이 100년 전 자동차가 전했을 법한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아직도 많은 사람은 AI가
석분·석건·석경 부자를 비롯해 위관, 직불의, 주인, 장숙은 중국 한(漢)나라 때 승상직 등 각종 고위직을 역임한 인물이다.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음에도 사마천은 <사기열전(史記列傳)>에서 이들을 한데 묶어 ‘만석장숙열전(萬石張叔列傳)’을 썼다. 출신과 배경, 족적이 제각각인 고만고만한 인사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이다.이들은 개인적으로는 신중하고 예의가 발랐으며 업무에도 충실했다. 하지만 “어떤 원대한 계획도 없었고 백성을 위한 발언도 하지 못했다”거나 “관리가 돼 자리가 승상에 이르도록 가치 있는 것을 제안한 적이 없었다”는 사관의 날카로운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성현의 재능을 지녔지만 곤궁하게 살면서 뜻을 얻지 못한 자가 세상에는 수없이 많다”고 탄식했던 사마천이 ‘적극 행정’보다 ‘보신’을 우선시한 이들을 곱게만 볼 리는 만무했다.황제에게 올리는 문서에 ‘마(馬)’자를 한 획 빼고 쓴 것엔 전전긍긍하면서도 “(관료로 재직하는 동안) 잘못을 바로잡는 말은 황제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사기>의 저자가 꼬집었던, 꼴불견의 관료 군상이 요즘 세상이라고 없을까. 기획재정부부터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까지 19개 주요 정부 부처 수장 이름을 나열한 뒤 각 부처가 내건 주요 정책이 무엇인지를 떠올려봤다.2000여 년 전보다 좋아졌다고 선뜻 자신하기 힘들다. 대다수 국민에게 장관들은 이름과 얼굴 모두 낯설다. 각 부처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더욱 알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의 몇 마디 말을
알베르 카뮈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이방인>을 냈다. 첫 한국어 번역본은 이휘영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6·25전쟁 중인 1953년 청수사(靑樹社)에서 펴냈다. 전쟁 중에 쓰인 책이 전란 중에 다른 언어로 옮겨진 데는 그 시대만의 이유가 있을 터다. 흔히 ‘외부 사람’ ‘국외자’로 번역되는 ‘에트랑제(tranger)’의 역어(譯語)로 일상에서 사용이 드문 ‘이방인(異邦人)’을 택한 데서도 일본 문화의 잔향이 남은 시대상이 엿보인다.시대의 무게는 책의 제목보다, 첫 문장 번역에서 더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Aujourd’hui, maman est morte.’라는 리드문을 두고 이 교수는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로 옮겼다. 곧이어 등장하는 전보의 문구도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경백(儆白).’으로 예스럽다.같은 문장을 1994년 이 교수의 제자인 김화영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보다 원의에 가깝게 번역했다. 모친의 별세를 두고 ‘어머니’와 ‘돌아가셨다’라는 경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1950년대 스승이 직면했던 사회적 제약을 떨쳐낸 것이다. 김 교수 이후 번역가들은 부고에 등장하는 ‘경백’이란 표현마저 ‘근조(謹弔)’(김화영), ‘삼가 애도함’(김예령), ‘삼가 조의’(이기언) 등으로 시대에 맞게 바꿨다.이처럼 언어는 시대의 모습을 담을 수밖에 없다. ‘번역가의 종말’을 선포한 오늘날 인공지능(AI) 번역기들은 카뮈의 첫 문장을 어떻게 번역할까. 파파고와 구글 번역기는 모두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어요’라는 다
“오랜 시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핵심이 무엇인지, 시장경제가 사회주의 경제보다 왜 나은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 논의가 부족했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지식인들이 근본적인 성찰을 할 때입니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러시아 대사)는 지난 3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인간에 대한 교육, 인문교육을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내 1호 러시아사 박사(미국 하버드대)로 고려대와 서울대 교수를 역임한 이 명예교수는 여성 1호 대사(핀란드·러시아)와 KBS 이사장,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등을 거쳤다. 대표적인 보수 인사로 꼽히는 그는 최근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추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4·10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뒀습니다. 여당의 패배가 아닌 보수의 위기, 자유주의의 위기라는 말까지 나옵니다.“보수나 진보 같은 낱말들은 (원뜻과 달리 오용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보수라는 용어보다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소중하게 여기는 세력’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
플라톤의 <국가>에는 가장 바람직한 정체(政體)로 ‘아리스토크라티아’가 거론된다. ‘귀족’을 뜻하는 영어 단어 ‘aristocracy’의 영향으로 아리스토크라티아를 ‘귀족정’으로 옮긴 탓에 원뜻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원래는 ‘최선자들의 지배’(the rule of the best)라는 의미다. ‘좋다’라는 뜻의 희랍어 ‘아가토스’의 최상급 표현 ‘아리스토스’와 ‘지배하다’는 의미를 지닌 ‘크라테인’의 합성어다. 혈통은 물론 능력과 품성에서 최고의 리더가 이끄는 것을 최선의 정치 체제로 봤던 것이다.플라톤은 아리스토크라티아가 타락하면 순차적으로 과두정(올리가르키아), 민주정(데모크라티아), 참주정(티라니스)의 형태를 취한다고 봤다. 사치품 같은 불필요한 것을 원하는 대중의 요구가 거세지고, 이런 요구를 다루는 정부 기능이 비대해지면서 ‘훌륭한 나라’(아가테폴리스), ‘아름다운 나라’(칼리폴리스)는 고름이 부풀어 오른 듯한 ‘염증 같은 나라’(플레그마이누사폴리스)로 전락한다. 플라톤에게 정치 퇴화의 종착역인 참주정은 ‘말기적 질병’으로 불렸다. 현대적인 언어로 재해석하자면 포퓰리즘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저열한 정치 체제가 힘을 얻는다고 본 것이다. 서구 정치학의 첫 장을 차지한 것은 ‘정치의 타락’에 대한 경고였다.가장 훌륭한 자가 국가를 이끌 것인가, 아니면 다수가 사회의 방향을 결정할 것인가는 정치 철학의 영원한 난제였다. ‘가장 뛰어난 자’(호이 아리스토이)의 리더십으로 대변되는 스파르타, ‘군중’(호이 폴로이)의 민의(民意)를 앞세운
“한국의 대(對)중국 외교가 지닌 큰 문제점은 사용하는 정책이 뻔하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한국의 패를 훤하게 읽고 있고 정권별 맞춤형 대응책을 꺼내 쓰기만 하면 되는 상황입니다.”지난 17일 서울 서초동 서울연구원 연구실에서 만난 이민규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사진)의 목소리엔 확고한 원칙 없이 펼치는 대중 외교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최근 중국 대외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정책 기조를 분석한 <국가핵심이익>을 출간한 이 연구위원은 베이징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중국 외교 분야 전문가다. 미·중 관계와 한·중 관계, 중국의 대외정책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이 연구위원이 포착한 ‘국가핵심이익’은 중국이 대외 정책에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소위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는 최상위급 국가이익을 의미한다. 장쩌민 전 주석 시기부터 공식 석상에서 사용되기 시작해 후진타오, 시진핑 체제를 거치며 구체화했다. 옌쉐퉁 칭화대 교수가 ‘인민의 생명과 안전, 국가 정치제도와 경제생활의 장기적인 안정과 관련한 생존이익’이라고 이론화 작업을 마쳤다.이 연구위원은 “구체적으로 중국의 국가핵심이익은 대만·홍콩·마카오·티베트·신장을 포함한 국가 주권, 핵무기를 축으로 한 국가안보, 데이터 주권 등 신전략산업을 다루는 국가발전이익으로 이뤄진다”며 “중국과 외교적으로 협상할 때 어떤 이슈가 국가핵심이익과 연결되는지를 살펴서 회피할 것은 피하고 지렛대로 활용할 것은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중국은 글로벌 차원의 대원칙을 마련해 대외 정책을 운용하는데, 한
적지 않은 일반인들이 역사라는 단어를 들을 때 고대 문명을 떠올린다. 학계에선 이미 낡은 용어가 된 ‘4대 문명’이라는 표현을 통해 과거를 바라보는 이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실제로 접할 수 있는 소위 4대 문명에 대한 정보는 피상적이다. 한국에서 근대 역사학이 이식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세계사의 첫 시작은 한국 학계에선 ‘공백 지대’다. <이집트에서 중국까지: 고대문명 연구의 다양한 궤적>은 고대 이집트와 근동, 고대 인도와 중국 전문가들이 쓴 해당 지역 연구사 서적이다. ‘세계 고대문명 연구를 향한 전초기지’를 자처하면서 2020년 설립된 단국대 고대문명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모은 출판물이다. 현대인에겐 암호와도 같은 이집트 성각문자와 수메르의 쐐기문자, 고대 중국의 갑골문자와 청동기에 새겨진 금문(金文)으로 쓰인 1차 사료를 해독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저자로 참여했다. 비전문가의 중역(重譯)을 거쳐 접하던 그저 그런 정보와는 질적으로 다른 고대 문명의 참모습을 접할 수 있다. 다만 책은 해당 지역 역사에 대한 개설이나 문화사를 기대했던 독자에겐 다소 낯선&n
이집트에서 중국까지: 고대문명 연구의 다양한 궤적김구원·김아리·심재훈 외 지음 / 진인진382쪽 | 3만원적지 않은 일반인들이 ‘역사’라는 단어를 들을 때 ‘고대 문명’을 떠올린다. 학계에선 이미 낡은 용어가 된 ‘4대 문명’이라는 표현을 통해 과거를 바라보는 이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실제로 접할 수 있는 소위 4대 문명에 대한 정보는 피상적이다. 한국에서 근대 역사학이 이식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세계사의 첫 시작은 한국 학계에선 ‘공백 지대’다.<이집트에서 중국까지: 고대문명 연구의 다양한 궤적>은 고대 이집트와 근동, 고대 인도와 중국 전문가들이 쓴 해당 지역 연구사 서적이다. 세계 고대문명 연구를 향한 전초기지’를 자처하면서 2020년 설립된 단국대 고대문명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모은 출판물이다.현대인에겐 암호와도 같은 이집트 성각문자와 수메르의 쐐기문자, 고대 중국의 갑골문자와 청동기에 새겨진 금문(金文)으로 쓰인 1차 사료를 해독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저자로 참여했다. 비전문가의 중역(重譯)을 거쳐 접하던 그저 그런 정보와는 질적으로 다른 고대 문명의 참모습
2019년 11월 18일.일본 도쿄 그랜드프린스호텔다카나와에서는 초대형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네이버 자회사인 라인과 소프트뱅크그룹 산하 일본 포털업체인 야후재팬이 경영 통합에 나선 것을 공식화했던 것입니다.라인과 야후재팬 운영사인 Z홀딩스는 두 회사 경영을 통합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체결하고, 언론에 향후 구상을 대대적으로 밝혔었습니다.이데자와 다케시 라인 대표와 가와베 겐타로 Z홀딩스 대표는 이날 각각 상대 회사를 상징하는 붉은색과 초록색 넥타이를 매고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그들은 “지금까지는 두 회사가 라이벌이었지만 큰 결단을 내렸다”며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AI) 기술 기업이 되는 게 목표”라고 주장했습니다. 두 회사는 통합 이후 매년 1000억엔(당시 환율 기준 약 1조698억원)을 AI 분야에 투자할 계획이었습니다.이데자와 대표는 “최강의 원팀이 되기 위한 도전이 시작됐다”며 자신있어했습니다.그랬던 두 회사의 ‘동거’는 채 5년을 가지 못했습니다.일본 총무성이 앞장서 네이버와의 정보기술(IT) 인프라 위탁 관계를 끊은 데 이어 네이버의 라인야후 지분 매각을 압박하고 나섰습니다.네이버 출신으로 라인을 개발한 신중호 최고프로덕트책임자(CPO)는 라인야후 이사회에서 제외됐습니다.일본 소프트뱅크는 속전속결로 네이버가 보유한 A홀딩스 지분 일부를 7월 초까지 사들이겠다고 밝히고 나섰습니다.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손을 놓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기업 지분을 두고 외국 정부가 나서서 조정하라 말라 나서는 데 제대로 된 대응을 못 하고 있습니다. 어렵사리 구축한 해외 플랫폼이 물거품처럼 손에서 빠져나가기 직전입니
때로는 글자 한 자, 숫자 하나에 목숨을 거는 일이 발생한다. 서구 종교·철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벌어졌던 ‘이오타 논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희랍어(고대 그리스어) 단어 ‘호모우시오스’(동일한)와 ‘호모이우시오스’(유사한)는 영문자 아이(i)에 해당하는 희랍어 철자 이오타(ι)가 있고 없고만 다를 뿐이었다. 하지만 이 미세한 차이는 예수가 ‘신과 동일한’ 신성(神性)을 지닌 존재인지, 아니면 ‘신과 유사한’ 인간에 불과한지를 가르는 기준이 됐다. 스펠링 하나를 두고 ‘정통’과 ‘이단’, ‘삶’과 ‘죽음’이 엇갈렸다. 데이터 외면한 결정흔히 무지몽매하다고 치부되는 고대 세계에서도 이처럼 작은 차이를 두고 존망을 건 논쟁을 벌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합리성의 시대라는 현대에 객관적 근거가 무시되고, 팩트가 배제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지난달 22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이 소위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개혁안(소득보장안)의 손을 들어주는 과정도 그랬다. 구체적 숫자에 기반한 경제와 재정의 논리는 들어설 틈이 없었다.시민대표단이 선택한 ‘소득보장안’은 보험료를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생애소득 대비 노후연금 비율)을 40%에서 50%로 올리는 게 골자다. 이 안을 적용하면 기금 소진 시기를 2055년에서 2061년으로 고작 6년 늦출 뿐이다. 향후 70년간 누적 적자가 오히려 702조원 더 늘어난다. 2078년 미래 세대는 소득의 43.2%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전형적인 조삼모사식 개악이다.어떻게 이런 결론이 다수결
주요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잇따라 치킨 가격을 인상하고 나섰다. 지난 15일 굽네는 배달 수수료와 인건비, 임대료 상승을 이유로 대표 메뉴인 '고추바사삭' 등 9개 치킨 제품 가격을 일제히 1900원씩 인상했다. 굽네가 가격을 올린 것은 2022년 이후 2년 만이다. 치킨·버거 브랜드인 파파이스도 2년여 만에 가격을 올렸다.지난해 4월에는 교촌치킨이, 12월에는 bhc가 주요 제품 가격을 3000원 올렸다. 앞서 BBQ는 2022년에 주요 제품 가격을 2000원 인상했다.한때 '서민 음식'으로 불렸던 치킨에 부담스런 가격이 책정된 가운데,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각종 닭고기 상품에는 공통점이 있다.바로 닭이 부위별로 분리돼 요리된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닭 한 마리가 통째로 식탁 위에 오르는 광경이 적지 않았지만, 어느 때부턴가 다리나 날개, 가슴살 식으로 분리된 형태의 닭고기가 친숙하게 됐다.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래서 별도로 의식하기 힘든 이 같은 현상을 두고 20세기 초 저명한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이라고 이름 붙였다. 손쉽게 표현하자면 닭의 원래 형태를 알기 힘든 오늘날 ‘치킨’이 닭이 양반다리 하고 앉아있는 삼계탕 보다 보다 ‘문명화된’ 음식이라는 식의 주장을 폈던 것이다.엘리아스의 저서인 <문명화 과정>에 따르면 중세부터 근세에 걸쳐 고기 요리를 대하는 서구인들의 태도도 큰 변화를 겪었다.그 흔적은 서구사회의 각종 예의범절의 변화와 발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중세 서양 상류층 식탁에선 요리가 된 동물의 전신이 그대로 올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소나 송아지처럼 동물의 전신이 그대로 식탁 위에 오르기 힘든 경우는 그 동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인도 원정에 즈음해 자신의 친위부대인 히파스피스테스에게 은으로 장식된 방패를 나눠줬다. 이들은 이후 ‘은방패 부대’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아버지 필리포스 때부터 알렉산드로스 대왕 가문과 동고동락한 은방패 부대는 단연코 최강의 부대였다. 그들의 창과 방패 아래 페르시아 제국이 쓰러졌고, 세계 정복은 공상이 아니라 현실이 됐다.수많은 실전 경험과 승리에 대한 기억으로 단련된 이들의 위용은 노년이 돼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 사후인 기원전 317년. 오늘날 이란 가비에네에서 마케도니아 장군들 간의 후계 전쟁이 벌어졌을 때 주로 70대로 구성된 은방패 부대가 전장의 승패를 가르는 역할을 했다. 로마 시대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은방패 부대는 나머지 병사들이 쓰러졌을 때도 똑바로 대열을 맞춰 전장을 누비며 저항하는 자를 모두 쓸어버렸다”고 그들의 노익장을 묘사했다.고대의 은방패 부대에 비견되는 집단이 현대 한국 사회에 있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86세대’로 통칭되는 50대 중반~60대 중반 그룹이다. 은방패 부대가 막강한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렸듯 86세대는 무소불위의 군부 정권에 맞섰다. 마케도니아 군단이 거침없이 이집트와 인도까지 밀고 들어갔던 것처럼 86세대는 정치·경제·문화·사법의 패권을 거머쥐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병사들이 청년기부터 노년까지 쉼 없이 전장의 주역으로 활동했던 것과 같이 대학생 시절부터 ‘어른 대접’을 받았던 이들은 백발이 성성해졌어도 한국 사회의 주인공 자리를 내줄 생각이 없다.야당의 기록적인 압승으로 끝난 22대
1945년 3월 19일 독일의 패망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아돌프 히틀러는 ‘네로 명령(Nerobefehl)’이라고 불리는 ‘자기파괴 명령’을 냈다.“독일 내 모든 군사적 교통수단, 방송 장비, 산업시설과 생활 관련 시설들을 적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즉시, 혹은 가능한 한 단시간 내에 파괴하라”는 것이었다.이 같은 자살·자폭 명령은 1945년 3월 이후까지 독일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던 일부 지역에서 거침없이 수행됐다.전쟁이 막바지로 갈수록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을과 도시를 사수하다 죽어라’라거나 ‘무기를 손에서 놔선 안 된다’라는 비이성적인 명령이 잇따랐다.비합리적 명령에는 도시를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은 사살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히틀러의 비이성적인 명령에 열렬히 따르는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적지 않았다. 여전히 독일 내 상당수 지역에서 총통의 명령은 최고의 규범이었다.나치당과 SS, 열렬한 나치 추종자들은 ‘파괴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들은 6주간에 걸쳐, 적군의 폭격과 포격이 파괴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부숴버렸다.그들은 또 마을을 파괴하는 것을 주저하거나, 반대하는 자, 태업하는 자들에 대해 총살형과 교수형을 취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그리고 전쟁이 끝나기 수 주에 걸쳐 독일인들은 한편으론 적군에 의해서, 다른 한편으론 자국 정부 기관에 의해 조국이 타오르는 모습을 봐야 했다.‘네로 명령’에 앞서 2월 20일엔 제국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가 ‘유대인이 관련된 독일 내 모든 문서(비밀문서이거나 다루기 까다로운 모든 문서)를 조직적으로 파괴하라’고 명령했다.어떻게 이렇게 극단적
밉상도 이런 밉상이 없다. 개인은 무례하고, 국가는 무도하다. 고압적이고 위압적인 언행, 안하무인 방식은 비즈니스건 외교건 별반 차이가 없다. 그렇다. 중국 얘기다.<불통의 중국몽>은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인 저자가 중국의 전방위적인 ‘영향력 공작’ 실상을 전하며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한국의 칼날을 무디게 하기 위해 중국은 한국 사회 속 친중 세력을 적극 활용한다. 친중 세력은 △한반도 통일을 중국이 지지하며 △북한의 비핵화에 중국이 협력하며 △거대 중국 시장은 한국 경제의 목숨줄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다. 중국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의 폐기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중국의 ‘갑질’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저자는 ‘극중팔계(克中八計)’를 제시한다. 외국의 간첩 활동 등을 다루는 국내법을 정비하고, 이적 개념을 정비할 것을 주문한다. ‘사이버 안보법’을 제정하고 우리의 국가 주권을 존중할 것을 분명히 한 대중국 외교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언제까지 한국은 중국에 약점을 무방비로 드러내고 있을지, 언제까지 중국에 휘둘리기만 할지 저자가 던진 질문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김동욱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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