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증권부 마켓인사이트(IB) 팀장입니다. M&A, IPO, 채권발행, 대체투자, 자산운용 등 자본시장 전반에서 이뤄나는 일들을 커버합니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 <언덕 위의 구름>의 실제 주인공 아키야마 사네유키는 1898년 미국과 스페인이 쿠바 앞바다에서 전쟁을 벌이자 미 해군 함선에 탑승해 참관할 기회를 얻는다. 주미 일본 대사관 무관 자격이었다. 여기서 그는 미 해군이 전함마다 무선 통신 장비를 싣고 본부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무적 스페인 함대를 제압하는 광경을 목도한다. 대형 해도(海圖) 위에 모형 함선을 올려놓고 시뮬레이션을 하며 전략을 가다듬는 ‘워게임’도 이때 배운다.몇 년 후 작전참모로 러·일 전쟁에 참전한 아키야마는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 발틱함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데 크게 기여한다. 우리에겐 한·일 합병으로 이어진 뼈아픈 역사지만, 최신 전쟁의 양상을 직관하고 전략·전술을 연구하는 게 중요한 이유를 일깨우는 고전적 사례다. 첨단 현대전 경험하는 북한군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여러모로 기분 나쁘다. 왠지 모르게 거슬리는 대남 오물풍선 같은 느낌이다. 돈이 급한 김정은이 루블화를 벌기 위해 어린 군인들을 총알받이로 보낸 것쯤으로 치부하고 싶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파병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첨단 핵기술을 전수받을 것이라는 관측보다 더 찝찝한 건 따로 있다. 북한군이 21세기 첫 국가 간 전면전을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1만 명이 넘는 파병 인원 중 장교가 최소 500명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동원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을 모두 동원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게 자폭 드론 등 무인기 기술이다. 값싼 무인기로 상대국의 전략적 요충지를 타격하고 전차와 함정에도 피해를 입히고 있다. 전자전
뮌헨회담에서 아돌프 히틀러에게 속아 나치 독일의 전쟁 도발을 막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은 건 네빌 체임벌린 당시 영국 총리였지만, 히틀러가 은밀히 독일을 재무장시키며 유럽 정복의 야욕을 키울 수 있었던 데는 전임 총리인 스탠리 볼드윈의 책임이 컸다. 독일은 히틀러가 1935년 베르사유 조약을 공식 폐기하기 수년 전부터 이미 조약이 설정한 한도 이상으로 해군력을 복원한 데 이어 공군력도 비약적인 속도로 확장하고 있었다.윈스턴 처칠은 특히 공군력에서의 ‘힘의 균형 상실’을 우려했다. 1934년 공군 예산 증액안을 의회에 제출하면서 “독일은 이미 영국 공군력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강력한 공군을 갖췄고, 1936년쯤이면 독일 공군이 영국보다 강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볼드윈은 “독일의 실질적인 공군력은 영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처칠이 이야기하는 숫자는 상당히 과장된 것”이라고 일축했다."2차 대전은 불필요한 전쟁"볼드윈이 ‘처칠이 옳았다’는 걸 인정하는 데는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1935년 치른 총선에서 그는 재무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동시에 “대규모의 재무장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는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국방력 증대를 원하는 사람과 평화주의자의 표심을 모두 겨냥한 것이었다.이런 선거 전략은 적중해 볼드윈은 그해 총선에서 대승을 거뒀다. 국내 정치에 능통한 그는 나치의 위험을 알면서도 당시 영국 사회를 휩쓴 평화주의 바람에 편승하는 쪽을 택했다. 옥스퍼드대 학생들이 “어떤 경우에도 국왕과 국가를 위해 싸우지 않겠다”고 선언한 마당이었다. 볼드윈은 이후 &ldquo
이마누엘 칸트가 ‘영구 평화론’을 발표한 것은 1795년이다. 모든 국가가 공화정을 채택하고 각 공화정으로 이뤄진 국제연맹이 국제법을 제정해 세계 시민들이 국제법의 보호 아래 안전하고 자유롭게 교류하면 국제사회에 항구적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이론이다. 국제정치학에서 자유주의 사상의 이론적 토대가 됐지만, 불완전하게나마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현실 세계에서 구현된 건 그로부터 200여 년이 흐른 1990년대다. 냉전 종식 후 세계 패권을 거머쥔 미국이 전 세계 국가에 사실상 자유주의를 강요하면서다.한국에는 천운이었다.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냉전 시기 자유 진영에 소속돼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를 다져온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성장하는 천혜의 환경을 제공했다.그런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30여 년 만에 끝나가고 있다. 미국 일극 체제에 균열이 생기면서다.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가 지역 패권을 노리고 저마다 현상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은 자신들이 주창해 온 자유무역주의를 대놓고 부인한다. 자유무역 때문에 미국 내 제조업이 쇠퇴하고 공급망이 불안해졌으며 빈부 격차가 확대됐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지정학적 대변혁의 시기다.한국은 선진국 문턱에서 갈림길에 섰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만들어 놓은 국제 질서 안에서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됐지만, 대변혁기에는 새로운 국제 질서에 적응하며 위기를 기회로 바꿔가야 한다. 필요하면 스스로 국제 질서의 새판 짜기를 시도하는 지혜와 용기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공급망을 구축하고 초일류 선진국으로 도
한국 대기업의 최대주주들이 자녀에게 주식을 물려줄 때 지분 가치의 60%를 상속·증여세로 내야 하는 건 안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50%의 최고세율에 20%의 할증이 붙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최대주주 상속세 할증 제도’는 1993년에 처음 도입됐는데, 나름 논리가 있다. 최대주주 지분에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있으니 일반주주 보유 지분에 비해 높은 가치를 적용해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논리적 허점이 한둘이 아니다. 한국에만 있는 상속세 할증경영권 프리미엄이 최대주주의 재산이라는 인식부터 그렇다. 개념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그 자체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이다. 본래 경영권 프리미엄이란 인수자가 생각하는 피인수기업의 가치와 현재 기업 가치의 차이를 말한다. 예컨대 A사가 시가총액 1조원인 B사를 인수하면서 “우리가 경영하면 1조2000억원짜리 회사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치자. A사는 1조2000억원을 기꺼이 지급할 것이고, 현 시가총액과의 차이인 2000억원이 바로 경영권 프리미엄이다.이 프리미엄을 최대주주만이 아니라 모든 주주가 나눠 갖도록 하자는 게 여야가 공히 추진 중인 의무공개매수제도다.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경영권 프리미엄이 최대주주의 재산이라는 잘못된 인식에 따라 기업 인수합병(M&A) 거래에서 최대주주 지분에만 프리미엄을 붙여왔고, 이런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정부·여당과 야당 모두 의무공개매수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똑같은 논리로 ‘최대주주 상속세 할증’도 폐지하는 게 맞다.이뿐만 아니다. 최대주주 상속 지분에 경영권 프
한동훈 신임 국민의힘 대표가 친윤(친윤석열)계인 정점식 정책위원회 의장을 유임시킬지는 길게 보면 부차적인 문제다.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할 건 따로 있다. 한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이 정 의장의 페이스북과 국민의힘 홈페이지에 몰려가 “꼰대짓 그만하고 사퇴하라”며 댓글 테러를 한 사건이다. ‘한동훈줌’ 혹은 ‘긷줌’이라고 불리는 한동훈 팬덤이 문재인의 ‘문빠’나 이재명의 ‘개딸’처럼 본격적으로 공격성을 드러낸 것이다.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이른바 ‘정치인 빠’의 특징을 강고한 결속력과 공격성으로 규정했는데, 한동훈 팬덤도 이제 이런 조건을 모두 갖췄다고 봐야 한다. 그동안 진보 진영에 머물러 있던 ‘빠’ 현상이 보수 정당에까지 전이된 셈이다. 문재인·이재명의 길 걸을 것인가한동훈줌은 주로 40~50대 아줌마로 구성된 한 대표의 팬덤을 일컫는다. 긷줌은 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사이트 DC인사이트의 갤러리 이름인 ‘기타 국내 드라마’를 줄인 ‘긷’에 아줌마의 ‘줌’을 붙인 말이다. 네이버카페에서 활동하는 팬클럽 ‘위드후니’도 한동훈 팬덤의 또 다른 갈래다.이들은 주로 한 대표 관련 기사에 좌표를 찍고 몰려가 그에게 유리한 댓글을 다는 식으로 활동한다. 이를 댓정(댓글 정화), 댓방(댓글 방어)이라고 부른다. 정 의장처럼 공격 대상으로 삼은 정치인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수백, 수천 개의 댓글 폭탄을 퍼붓기도 한다.전문가들은 한동훈줌은 개딸과 달리 아직은 팬클럽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한 대표의 인식도 비슷한 것 같다. 지난 전당대회 당시 토론회에서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와 KBS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한 여야 간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오는 8월 임기가 끝나는 방문진 및 KBS 이사들을 친여권 성향으로 교체하려는 정부와 이를 저지하려는 더불어민주당이 볼썽사나운 수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장면에 대다수 국민은 시큰둥해하지만, 여야는 절박하다. KBS, MBC를 장악하지 못하면 2년 후 지방선거, 3년 후 대통령 선거를 ‘차·포 떼고’ 치러야 한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같은 순진한 소리는 발붙일 공간이 없다. 야권은 진보 진영의 공영방송 영구 장악을 위한 방송 3법을 무조건 밀어붙일 판이다. 민간 경쟁 저해하는 공영방송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공영방송이 공영(公營)이어야 할 이유는 ‘주인이 없어야 정치권력이 방송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는 민간 사업자들은 수익성 때문에 제공하지 못하는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KBS1TV와 EBS를 제외한 한국의 ‘소위’ 공영방송들은 민영방송과 똑같은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 광고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게다가 KBS는 국민에게서 반강제로 걷은 준조세(수신료)를 KBS2가 그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투입한다. 맨주먹으로 싸워야 하는 민영 방송사 입장에선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지난해 KBS 매출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49.4%. 나머지는 광고·협찬 등 다른 방송사들과 똑같은 수익 구조다. 일본 NHK는 수신료 비중이 95%, 영국 BBC는 70%가 넘는다. 민간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진국 공영방송과 달리 KBS는 공영의 특혜를
얼마 전 칠순을 맞은 집안 어른이 조카들을 모아놓고 몇 가지 당부를 했다. 첫째 노후 준비를 위해 월소득의 일정 부분을 적립식으로 주식에 투자할 것, 둘째 한국 시장이 아닌 미국 시장에서 할 것.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한국 증시는 국민의 자산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기 투자자가 빠져나간 주식 시장은 투기판으로 전락했다. 높은 자본 비용에 기업들은 혁신을 위한 투자도 하기 어렵다. 저성장과 노후 빈곤의 악순환이 불 보듯 뻔하다.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일만큼이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절실한 이유다. 저출생만큼 중요한 국가 아젠다한국 기업 주가 저평가의 원인은 저출생만큼이나 구조적이지만, 해법은 훨씬 명료하다. “투자자가 가장 싫어하는 건 불확실성”이라는 명제만 기억하면 된다. 해외 투자자에게 한국 투자를 꺼리는 이유를 물으면 십중팔구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서”라고 답한다. 뉴욕에 앉아서 온라인 기업설명회만 들어서는 한국 기업이 어떤 의사 결정을 내릴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룰에 따라 주주 가치 극대화를 위한 결정을 내릴 것이란 신뢰가 없다는 뜻이다.우리 기업인들이 유독 탐욕적이어서가 아니다. 비정상적인 세제와 규제 아래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해온 결과다. 한국의 대주주들은 주가가 오르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속·증여세를 각오해야 한다. 배당이라도 하려면 배당 수익의 50% 가까운 돈이 세금으로 나간다. 열심히 주가를 높이고 주주환원을 할 유인이 없다. 대주주와 소수주주 간 이해관계 불일치를 초래하는 근본 원인이다. 재벌에 비판적인 행동주의 진영
하청 노조의 원청에 대한 교섭권을 인정하고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제한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이 2015년 처음 발의했다. 당시 19대 국회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제1당이어서 법안은 힘을 받지 못했다. 이듬해 시작된 20대 국회는 달랐다. 민주당이 제1당을 꿰찼고, 2017년에는 집권에도 성공했다. 21대 총선에서 압승한 2020년부터는 180석 ‘슈퍼 여당’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민주당 단독으로 얼마든지 통과시킬 수 있었다.하지만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이 법안은 국회에서 단 한 번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민주당은 야당이 되고 나서야 기다렸다는 듯 법안을 밀어붙였고, 작년 11월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한 정략적 노림수라는 평가가 많았다.진짜 궁금한 건 민주당이 대선 공약이었던 이 법안을 정작 여당일 때 뭉갠 이유다. 당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에선 파업 손배소 문제가 부각되지 않아 논의가 후순위로 밀렸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2022년 10월 파업을 벌인 하청 노조원에게 손배소를 제기하면서 논의가 다시 급물살을 탔다는 것이다. 민주당, 야당 되니 양곡법 강행하지만 법을 적용할 일이 생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정과제였던 법안을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결과에 책임져야 하는 여당이 산업 생태계에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법안을 추진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민주당이 여당일 때는 소극적이다가 야당이 된 후 밀어붙이는 법안은 이뿐만 아니다. 최근 야당이 일부 문구를 수정해 국회 본회의에 다시 직
미국 경제는 나 홀로 질주 중이다. 지난해 성장률이 선진국 중 가장 높은 2.5%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사상 최저 수준이고, 치솟던 물가도 잡혀가고 있다. 피봇(금리 인하) 기대로 주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른바 골디락스 장세다. 의아한 건 내리막길만 타는 조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이다. 최근 갤럽 조사에서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40%였다. 그중에서도 경제정책 지지율은 37%에 그쳤다. 정치 양극화가 경제 인식 왜곡미국 정치권에선 “문제는 더 이상 경제가 아니야, 바보야”라는 말이 회자된다. 경제 성과와 대통령 지지율 사이의 상관관계가 크게 줄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슬로건으로 1992년 대선에서 승리한 빌 클린턴의 성공 공식이 더 이상 미국 사회에서 먹히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은 버락 오바마 정권 때 시작돼 도널드 트럼프 1기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인을 정치 양극화에서 찾는다. 경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이 실제가 아니라 정치 스펙트럼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것이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총선 프레임 중 하나로 ‘경제 폭망론’을 들고나온 건 그런 측면에서 과연 이재명다운 영민함이다. 정치 양극화라면 미국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한국에서 이 대표가 “경제가 폭망했다”고 하면 지지자들은 실제로 그렇다고 믿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일반적인 경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도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건 사실이지만, 폭망했다고까지 할 만한 수준인가”라며 의
정부가 지난 26일 증시 밸류업 방안을 발표한 뒤 저PBR(주가순자산비율)주 주가가 하락한 건 차라리 다행스럽다. 내놓은 정책이 맹탕이어서가 아니다. 내용이 더 담겼더라도 주가는 빠졌을 것이다. 기업의 내재가치, 즉 펀더멘털은 바뀌지 않았는데 정부 정책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단기 급등했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공매도 한시 금지 조치 후 상한가로 직행한 배터리주가 이튿날 폭락한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정부의 말 한마디에 주가가 오르는 시장은 정상적이지 않다. 주가가 하락한 것은 어쩌면 시장이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제 핵심은 이해관계 불일치그럼에도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을 계획대로 계속 내놔야 한다. 단순한 주가 부양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시스템 장애가 녹아들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증시 활성화에는 필요조건에 불과하지만 저성장, 혁신 저하, 빈부격차, 연금개혁 등 다양한 구조적 문제를 풀 열쇠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정부 혼자 발버둥 쳐서는 해소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미스터 마켓’은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 지지부진한 주가 흐름이 보여준다.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은 이해관계 불일치다. 대주주와 소액주주, 전체 주주와 이사회, 납세자와 비납세자, 경영진과 금융당국 혹은 경영진과 수사당국 간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깔끔하게 일치하지 않는 게 핵심이다. 그런 복잡한 이해관계를 대체로 잘 일치시켜놓은 사회가 혁신을 통해 증시의 장기적 우상향을 이끌어온 미국이다.그런 측면에서 “과도한 상속세를 완화하면 기업인들이 마음 놓고 기업 가치를 높여
이틀 만에 일단 봉합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갈등은 ‘약속대련’이 아니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누가 이기고 지든 결과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패배하면 조기 레임덕이 불가피하고, 한 위원장이 지면 총선 필패가 자명하다. 그래서 여의도 문법에 익숙지 않은 두 정치 신인의 미숙함, 아직 버리지 못한 특수통 검사 기질이 여과 없는 갈등으로 표출됐다는 해석이 보다 설득력 있다. 어쨌든 갈등을 수습한 건 잘한 일이다. ‘분열은 공멸’이라는 목소리를 두 사람 모두 의식했을 것이다. 尹·韓 갈등으로 알게 된 것이번 사태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을 정면으로 언급해온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지난 17일 한 위원장이 깜짝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20일까지 수면 아래서 4일, 21일 이후엔 수면 위에서 3일 등 총 7일간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건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간 갈등이 생각보다 빨리 현실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전부가 아니다. 갈등을 원하고 부추기는 자가 누구인지도 드러났다. 정권의 운명과 나라의 미래가 달린 4·10 총선 결과보다 자신의 안위와 공천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다.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는 인터넷 매체 기사를 당 소속 의원 단체 채팅방에 올린 친윤계 의원이 대표적이다. 해당 의원의 단독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어쨌든 예전 같았으면 힘을 합쳐 연판장을 돌렸을 다른 친윤 의원들의 침묵에 그는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한술 더 뜬 건 대통령실 출신의 한 인사다. 22일 “한동훈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후배” 등 대통령실의 유화 제
‘다극성 장애’ ‘제2차 냉전’ ‘반도체 전쟁’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한국경제신문이 매년 번역·출간하는 이코노미스트 ‘세계대전망’의 2024년 편은 그 어느 해보다 심란한 키워드로 가득하다. ‘비만 치료의 시대가 열린다’는 게 그나마 희망적일까. 목차와 소제목만 둘러봐도 예측 불가의 엄혹한 글로벌 정세가 내년에도 계속될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너무 잦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국내 정치가 골치 아프니 자꾸 해외로 나간다”고 한다. 해외에 가면 화려한 의전을 받으며 상대국 정상과 덕담이나 주고받을 것이란 냉소적 인식이 깔려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늘 듣던 말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누구보다 더 억울할 것 같다. 국내 정치도 암울하지만 국제 정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다단해졌다. 무엇보다 승패의 결과가 훨씬 더 엄중하다. 총선을 이기고 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엄혹한 국제정세 원팀으로 극복윤 대통령은 작년 5월 취임 후 총 16번 해외에 나갔다. 한·미·일 정상회의, G7·G20 정상회의, 유엔총회 등 다자 무대를 포함해서다. 돌이켜보면 버릴 순방이 하나도 없다. 북한의 핵 위협이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일과 함께 핵 억제력을 강화하는 건 생존의 문제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찾아가 우리가 그들과 함께한다는 점을 확인한 건 한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자유세계가 우리와 함께해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이자 요청이다.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 전략은 ‘럭셔리’가 아니다.정부와 기업이 호흡을 맞추는 ‘원팀 코리아’의
기업가치, 즉 주가를 구하는 방식은 기술적으론 복잡하지만 개념적으론 단순하다. 어떤 기업이 미래에 창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잉여 현금 흐름을 적정 할인율로 나눠 현재 가치를 구하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할인율을 적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돈의 시간 가치, 그리고 불확실성을 주가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미래 현금흐름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수록, 즉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투자자들은 더 많은 할인율을 요구한다. “투자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건 불확실성”이라는 말의 이론적 설명이기도 하다. 사적 계약을 무력화하는 정치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포퓰리즘 정책과 발언을 보면서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에 더 많은 할인율(코리아 디스카운트)을 요구하는 이유를 절감하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의 미래 현금흐름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초과이익’에 횡재세를 부과하겠다는 거대 야당의 발상부터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은 고금리·고유가의 혜택을 받은 은행·정유사뿐 아니라 앞으로 외부 변수에 의해 뜻하지 않게 많은 돈을 벌게 될 다른 업종 기업들에도 횡재세를 매기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의적 행세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표를 모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패닉에 빠진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을 떠나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초과이익이고 그중 얼마를 회수하겠다는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한국에선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민간 기업의 사적 계약을 무력화하고 수익을 제한할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는 것이 투자자를 불안하게 하는 진짜 이유다. 더욱 기가 막힌 일은 자유 시장경제를
미국의 대통령선거 때마다 현지 경제 매체에 나오는 단골 기사가 있다. 1926년부터 현재까지 공화당과 민주당 집권 시기 S&P500지수 상승률을 비교하는 흥미성 기사다. 내용은 늘 비슷하다. 평균적으로 민주당 대통령 때 주가 상승률이 공화당 대통령 때보다 높다는 것이다. 기사는 팩트다. 그렇다고 미국의 투자자 중 이 기사를 진지하게 읽는 사람은 없다. ‘드디어 민주당이 재집권했으니 주식 보유 비중을 늘리자’고 주장하는 운용사나 자문사는 더더욱 없다. 이유는 정권과 주가 상승률 사이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굳이 원인을 따지자면 세계 경제가 좋을 땐 민주당이, 안 좋을 땐 공화당이 집권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선거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경제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란 뜻이다. 진보 정권이 경제 잘한다는 文이 기사를 상기시킨 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평화는 경제”라며 주장한 진보 정권 우월론이다. 문 전 대통령은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대북 유화정책을 폈던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 때 모든 경제 수치가 보수 정권 때보다 좋았다고 주장했다. 1인당 국민총소득,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경제성장률, 물가, 환율, 무역수지, 외환보유액, 주가지수 등 웬만한 경제 수치를 모두 언급했다. 그러면서 “경제는 보수 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를 깨야 한다”고 했다. 잠시 팩트 체크 본능이 꿈틀했지만 굳이 하지 않았다.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해서다. 복잡다기한 경제 현상을 대북 정책 하나로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특정 시점의 경제 규모와 무역수지, 외환보유액, 재정건전
“2014년에 변화를 가져오겠다고 약속했고 여러분은 저를 믿어줬습니다. 이후 5년의 성과로 2019년 여러분이 다시 한번 저를 축복해줬습니다. 다음 5년은 ‘2047년 선진국’의 꿈을 위한 골든타임이 될 것입니다. 내년 8월 15일 여기 레드포트에서 더욱 큰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의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지난달 15일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77번째 독립기념일 연설 중 일부다. 내년 봄 총선에서 3연임에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자신과 인도국민당(BJP)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한 것이다. 모디 총리 지지율은 약 75%로 3연임에 성공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의원내각제인 인도는 5년마다 치러지는 총선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의 수장이 총리가 된다. 모디 총리가 이끄는 BJP는 힌두 민족주의 정당이다. 인구의 80%가 힌두교도인 데다 2014년 집권 이후 경제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제1 야당인 인도국민회의 지지율은 30%에 못 미친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정치적 안정성과 정책의 연속성을 인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꼽는 이유다. 다만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라는 별칭을 가진 인도는 중앙과 지방에서 매년 크고 작은 선거가 치러져 경제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한다는 지적도 많다. 모디 정부도 여전히 인구의 40%가 넘는 농민과 수공예 종사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데 상당한 예산을 쓰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민주주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인도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라지브 쿠마 인도 선거관리위원장은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인도는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며 “정치적으로 경쟁이 치열
“보조금과 세제 혜택도 중요하지만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게 더 중요하죠.” 최근 미국 마이크론의 반도체 후공정 공장을 유치한 인도 구자라트주 라즈 쿠마 장관(chief secretary)은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인도의 제조업 투자 유치 전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도는 반도체 공급망 육성을 위해 해외기업이 투자하면 투자 금액의 50%를 중앙정부가, 20%를 지방정부가 지급한다. 일부 외신이 ‘극단적’이라고 평가할 만큼 과감한 보조금이다. 그런데도 규제를 완화해 정책 투명성을 높이고 질 좋은 인프라와 인력을 제공한 것이 투자 유치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게 쿠마 장관의 설명이다. 과거 인도에는 ‘라이선스 라즈(raj·지배)’라는 별칭이 있었다. 영국의 지배(British raj)에서 벗어나자 정부 허가의 지배를 받게 됐다는 자조적 표현이다. 기업이 제조 공장 하나를 짓기 위해서는 80개 정부 부처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1990년대까지 인도 경제가 발전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다. 인도는 이 같은 인식을 불식하기 위해 ‘기업 활동의 용이성’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정치적 고향인 구자라트주가 대표적이다. 모디 총리가 10년 넘게 주 총리로 재직하며 규제 개혁과 인프라 확충을 밀어붙여 인도에서 가장 기업 환경이 좋은 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쿠마 장관은 “구자라트주는 법과 규제를 단순화해 투명성을 높이는 작업을 최우선으로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 번째로는 투자와 관련해 다양한 이슈가 생기면 문의할 수 있도록 전담 공무원을 두는 창구 단일화를 시행했다”고 말했다. 전담 공무원
지난달 20일 인도 구자라트주 주도 간디나가르의 기차역. 한국의 옛 비둘기호를 연상시키는 낡은 기차들 사이로 KTX급 최신식 열차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인도 서부 해안을 따라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까지 가는 반데바라트 익스프레스다. 2019년 운행을 시작한 반데바라트의 최고 속도는 시속 160㎞지만 열악한 인도의 선로 사정상 시속 130㎞까지 달릴 수 있다. 준(準)초고속 열차다. 약 500㎞ 떨어진 뭄바이까지 여섯 시간 넘게 걸렸지만, 열차 내부는 깨끗하고 서비스도 좋았다. 열차 탑승 전 만난 프라디프 아히르카르 인도 초고속열차공사 수석프로젝트매니저는 “같은 구간을 2026년부터는 두 시간 만에 다닐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시속 320㎞까지 달릴 수 있는 인도 최초의 초고속열차 프로젝트가 이 구간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히르카르 매니저는 “인도의 경제 중심지인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에서 뭄바이까지 그동안은 자동차로 여덟 시간, 비행기로도 공항 이동 시간을 포함해 서너 시간 걸렸는데 이를 대폭 단축하게 되는 것”이라며 “교통·물류 인프라 확충에 대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인도는 2047년까지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프라 확충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열악한 인프라가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돼 왔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3.3%를 각종 인프라 투자에 배정했다. 인베스트인디아에 따르면 이 중 7500억루피(약 12조원)가 항만을 개선하고 철도와 도로, 교량을 짓는 100여 개 물류 연결성 강화 프로젝트에 쓰이고 있다. 인도 도로교통·고속도로부에 따르면 2013년 7만
구자라트주 메사나에 있는 모데라 태양사원. 11세기 태양신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힌두교 사원이다. 이 사원이 있는 모데라는 지난해 10월 마을 전체가 태양광 발전소로 변신했다. 주택과 관공서 지붕에 태양광 패널 1300개를 설치했다. 이 패널에서 생산된 태양광 에너지는 낮에는 마을 사람들이 전기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태양사원에서 6㎞ 떨어진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밤 시간을 위해 저장한다. 초과 생산량은 정부가 구입한다.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과거에는 전기료가 너무 비싸 밤에도 전등을 켤 엄두를 내지 못했다”며 “이제는 우리가 생산한 전기를 쓰고 남으면 팔고 있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열악한 에너지 인프라를 확충하고 기후 변화 목표도 달성하겠다는 인도 에너지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지난해 10월 기념식에서 “에너지 수요와 관련한 이런 노력을 확대해야 한다”며 “모데라의 성공 사례가 다른 마을에도 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도는 세계 3위 탄소 배출국이다.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면서 지속 가능한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도전과제다. 인도는 2030년까지 에너지 수요의 절반을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목표다.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해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인도는 그린수소 생산의 허브가 되겠다는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모데라=유창재 정치부장
“인도의 14억 인구 중 13억 명이 디지털 아이디(ID)를 보유하고 있고 스마트폰 이용률은 75%에 달합니다. 12억 명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데이터 이용료는 기가바이트(GB)당 0.7달러에 불과하죠. 이런 나라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상상해보세요.”(아누바브 샤마 인도 내셔널페이먼트코퍼레이션(NPCI) 국제담당 사장) 인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디지털 경제 전환에 성공하고 있다. 2015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디지털 인디아’ 정책을 시작한 뒤 사실상 인도 국민 전체가 간편결제부터 은행 업무, 배달, 쇼핑 등 일상생활 곳곳에서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은 인도의 빠른 경제 성장을 이끌고 있다. 디지털 인디아의 핵심은 13억 명이 사용하는 통합결제시스템(UPI)이다. UPI를 개발한 NPCI의 샤마 사장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UPI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인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고 했다. UPI를 통해 인도는 전 국민에게 12개 숫자로 된 아이디를 부여하고 은행 계좌와 연결했다. 이를 통해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8억 명에게 누수 없이 보조금을 지급했다. 샤마 사장은 “과거에는 정부 복지 예산의 약 10%가 중간에 새어나갔다”며 “UPI를 통해 부패를 없애고 정부 예산을 크게 절감했다”고 말했다. 디지털 인디아는 인도를 세계 3대 스타트업 생태계로 만들었다. 아미타브 칸트 주요 20개국(G20) 인도 실무 대표(sherpa)는 “디지털 인디아 초기인 2016년 인도의 스타트업은 156개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1만 개의 스타트업이 있고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만 111개”라며 “국제결제은행(BIS)은 인도가 지난 8년간 달성한 디지털 전환이 인도의 기술 발전
지난달 15일 인도 뉴델리에 있는 레드 포트(붉은 요새). 타지마할을 건설한 무굴제국의 샤자한 황제가 1648년 완공한 성이다. 1947년 자와할랄 네루 인도 초대 총리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곳이기도 하다. 인도의 77번째 독립기념일인 이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사진)가 의장대를 사열하며 레드 포트 성곽에 모습을 나타내자 전국에서 모여든 3만여 명의 군중이 일제히 환호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주요 20개국(G20)을 대표하는 언론사와 함께 이날 행사에 초청받아 현지 취재했다. 모디 총리는 장장 90분간 이어진 연설에서 ‘암릿 카알(Amrit Kaal)’이라는 단어를 14차례 언급했다. 암릿 카알은 산스크리트어로 ‘영약(靈藥)의 시기’를 뜻한다. 모디 총리 자신이 2년 전 독립기념일에 처음 제시한 용어다. 독립 100주년을 맞는 2047년까지 약 25년이 인도의 미래 1000년을 좌우할 ‘결정적 전환기’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암릿 카알에는 모디 총리가 지난 9년간 이끌어온 경제 개혁과 최근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맞물리면서 경제 대국으로 급부상한 인도의 자신감과 기대가 담겨 있다. 모디 총리는 연설에서 “지정학적 환경이 급변하면서 전 세계가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 인도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미·중 갈등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미국 한국 일본 등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와의 공급망 협력이 인도에 거대한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모디 총리는 또 “세계에서 30세 미만 인구가 가장 많은 인도의 인구구조와 다양성은 강력한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인도의 인구는 14억 명으로 올해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 됐다. 그중 52%가 30세 미만이다.
모빌리티 혁신의 시곗바늘을 과거로 되돌렸다고 평가받는 ‘타다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처음 발의된 건 2019년 7월이었다. 21대 총선을 8개월여 앞두고 김경진 무소속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석 달 후인 같은 해 10월에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법안을 내놨다. 두 법안은 하나로 병합돼 총선을 한 달여 앞둔 2020년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찬성 169표, 반대 7표, 기권 9표였다. 민주당이 발의한 법안을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찬성했다는 희한한 기록도 남겼다. 택시업계 표심을 겨냥해 발의된 타다금지법이 당시 총선 결과에 정확히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모든 이슈를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여야 모두 안전한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 큰 선거를 앞두고 굳이 택시업계와 척지는 리스크를 감수할 이유가 기득권 정치인들에겐 없었다. 혁신이나 소비자 편익은 어차피 표 계산도 안 되는 모호한 가치였다. 당시 타다금지법에 반대한 채이배 전 의원을 인용하자면, 21대 총선은 그렇게 미래로 가는 첫차가 아니라 과거로 가는 막차로 쓰였다. 22대 총선도 과거 회귀형 되나내년 4월 치러지는 22대 총선 역시 ‘과거 회귀형’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다. 총선이 7개월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거대 양당에서 리스크를 지고 미래형 아젠다를 제시하는 정치인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를 위한 3대 개혁도 총선의 아젠다가 되기는커녕 총선 앞에서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반대로 제2의 타다금지법만 속속 발의되고 있다. 정춘숙 민주당 의원이 이달 초 발의한 ‘강남언니 금지법(의료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비급여 진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을 배신한 사람들’ JMS(기독복음선교회) 편을 보고 가장 의아했던 건 교리의 허술함이다. 발음도 분명치 않은 사이비 교주의 헛웃음 나오는 궤변에 명문대 학생들은 왜 빠져들었을까. 한 탈교자는 인터뷰에서 기독교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삶의 문제를 JMS는 해결해줄 것 같았다고 했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기독교는 본래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종교가 아니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만약 어떤 목회자가 “교회에 나오면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한다면 그는 사이비일 가능성이 크다. 기독교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그래서 어렵다. '주가는 올라야 좋다'는 포퓰리즘종교뿐 아니다. 세상 대부분의 진리 혹은 진실은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반대로 이해하기도 쉽고 듣기에도 좋은 말은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예로 ‘주가는 오를수록 좋다’는 말은 듣기에 좋지만, 진실이 아니다. 주가는 기업 가치를 잘 반영할수록 좋다. 고평가된 주가는 언젠가 적정 가치를 찾아 돌아가는 게 진실이다. 우리는 이를 ‘시장의 효율성’이라고 부른다. 주가가 기업의 적정 가치를 더 오랫동안, 더 과도하게 벗어나 있을수록 정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의 고통도 더 커진다. 공매도같이 시장 효율성을 높이는 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주가는 올라야 하고 주가를 떨어뜨리는 공매도 세력은 악마다’란 프레임은 그래서 위험하다. 라덕연 같은 주가 조작 세력이 활개 치는 숙주 역할을 한다. 문제는 그런 프레임이 개미 투자자는 물론 정치인이나 금융당국에도 먹힌다는 점이다. 포퓰리즘이 자본 시장
한 달여 전 정치부장으로 발령받았다. 앞으로 정치면은 정책 기사 60%, 정무 기사 40%로 꾸미겠다고 공언했다. 경제신문 타깃 독자인 투자자와 기업인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 기사로 승부해 종합지 정치면과 차별화하겠다는 포부였다.고백하건대 지난 한 달 동안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어림짐작으로, 정치면의 60% 이상을 정무 기사로 채웠다. 능력 부족을 먼저 탓할 일이지만 핑계를 대지 않을 수 없다. 지면을 채울 이렇다 할 정책 기삿거리가 없었다.전광훈 제일사랑교회 목사가 여당발(發) 뉴스를 과점하는 이유를 어떤 정치 평론가는 “어쨌든 공간은 채워야 하는데 다른 채울 게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간’이 뭘 의미하는 지는 묻지 않았다. 정치적 논의의 장(場)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신문 지면 혹은 방송 뉴스 분량을 말한 것일 수도 있다. “둘 다”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전광훈에게 공간 빼앗긴 이유어쨌든 진단에 고개를 끄덕였다. 연금·교육·노동개혁, 재정 정책, 자본시장 정책 등 국민의 삶, 청년 세대의 미래와 직결되는 아젠다가 치열하게 논의됐다면 일개 목회자의 설 자리가 있었을까.양곡관리법, 간호법, 방송법 등 쟁점 법안도 많은데 왜 정책 기사가 없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물론 중요하게 다뤄왔다. 그런데 이 법안들을 다루는 기사가 과연 정책 기사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영 찜찜하다. 농민을, 의료업계 종사자와 환자를, 시청자를 위한 치열한 논의의 장이 아니어서다. 대통령과 각을 세워 공간을 차지하려는 거대 야당의 정치공학적 노림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야당의 전술은 일부 성공하는 듯했다. 전당대회 돈봉투 사
주인으로부터 의사 결정을 위임받은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인-대리인(principal-agent) 딜레마’는 미시경제학의 오랜 연구 주제다. 이 문제를 기업 지배구조에 처음 접목한 학자는 마이클 젠슨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이제는 고인이 된 윌리엄 매클린 로체스터대 교수다. 두 교수가 1976년 발표한 ‘기업 이론: 경영자 행동, 대리인 비용 그리고 소유 구조’는 경제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 중 하나다.젠슨 교수는 기업들이 스톡옵션 제도를 도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경영진(대리인)이 주주(주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게 하려면 연봉을 얼마나 주느냐보다 어떻게 주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전 세계 기업들의 보상 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그동안 한국의 지배구조 논의는 ‘주인(주주)-대리인(경영진) 관계’보다 ‘주인(최대주주)-주인(소액주주) 관계’가 중심이었다. 주주가 분산돼 있는 미국 기업들과 달리 한국은 최대주주가 직접 경영하는 회사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KT, 포스코, KT&G, 금융지주사 등 특정 최대주주가 없는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주인-대리인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국내 소유분산기업의 경영자는 대부분 회사에 젊음을 바친 애사심 넘치는 엘리트들이다.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리더 자리를 꿰찼을 만큼 능력도 뛰어나다. 회사 성장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이들 경영자의 진심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대리인과 주인 사이에는 필연적
국민연금 기금의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익률의 90% 이상을 좌우하는 자산배분 방식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는 비전문가들이 자산배분을 최종 결정할 뿐 아니라 아무도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구조여서다.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의 자산배분은 보건복지부가 기금운용본부와 국민연금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초안을 만들고 투자정책전문위원회를 거쳐 기금운용위원회가 의결하는 방식이다. 기금위는 정부와 사용자단체, 노동계, 지역가입자단체 등 비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다.권한과 책임이 분명하지 않아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배분은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인 역할로 전락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금운용본부 운용역들도 프런트에서 실제 투자를 집행하는 역할을 선호한다. 개인이 누리는 시장에서의 영향력과 성과에 대한 보상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면 기금위는 기준 포트폴리오만 제시하고 세부적인 중장기 자산배분은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춘 운용 조직에 위임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발전전문위원회 위원들도 대부분 동의하는 내용이다. 기금운용발전전문위 한 위원은 “자산배분의 전문성을 강화하지 않으면 프런트에서 투자팀이 아무리 애를 써도 수익률을 높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이를 위해서는 기금운용의 지배구조를 대폭 손봐야 한다. 이상적인 방안은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처럼 기금운용본부를 공사화하거나 스웨덴처럼 기금을 분할하는 것이다. 캐나다연금은 위험 한도를 감안해 ‘글로벌
“우리는 출구전략도 없이 빚을 내어 번영으로 가는 길을 빌렸다.”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명예교수의 새 책 <초거대 위협>은 영화 ‘돈 룩 업’을 연상시킨다. 거대한 혜성이 지구로 다가오는데 정치인, 기업인 등 엘리트들의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에 해법을 찾을 수 있는데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인류가 멸망한다는 내용의 블랙 코미디다.루비니 교수는 혜성처럼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10가지 거대한 위협(megathreats)이 천천히 우리를 디스토피아로 이끌고 있다고 말한다. 부채 위기, 재정 적자, 고령화와 바닥난 연금, 저금리가 만든 거품의 붕괴, 스태그플레이션, 통화 붕괴, 탈세계화, 일자리를 위협하는 인공지능(AI), 신냉전, 기후 재앙 등이다. 한 가지 위협도 해결하기 어려운데 10가지 위협이 서로 영향을 끼치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자신이 예측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위협이다.책은 저자의 전공 분야인 부채 위기로 시작한다. 전 세계 부채 규모가 현재의 생산량 증가 속도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게 루비니 교수의 주장이다. 2021년 전 세계 부채 규모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50%를 넘어섰다. 1999년에는 220% 수준이었다. 미국의 경우 GDP 대비 민간 및 공공 부채 비율이 1930년대 대공황 당시의 정점보다 훨씬 높다. 지속적이고 강력한 성장이 없다면 전 세계에서 부채 거품이 터질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더 큰 문제는 이같이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는 부채는 ‘암묵적 부채’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세계적인 고령화로 은퇴자들에게 돌려줘야 할 연금보험료
‘건축은 죄악이다.’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구마 겐고가 쓴 책 <구마 겐고, 나의 모든 일>을 관통하는 구절이다. 책만 관통하는 게 아니다. 어쩌면 30년 넘는 그의 건축가로서의 이력을 요약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 책은 2021년 도쿄올림픽이 열린 국립경기장을 설계한 구마 겐고가 자신의 건축에 대한 생각과 작업의 진화 과정을 시기별로 정리한 책이다. 책의 3분 1가량은 텍스트, 3분의 2는 자신이 선별한 55개 작업물의 사진과 설명으로 구성돼 있다.건축을 모르면 지루할 것 같은 소재지만 의외로 몰입감이 있다. 주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이 속한 건축계를 통렬히 비판하면서 새로운 것을 실험해온 남다른 직업 의식이 비건축인에게도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남루함, 저예산, 패배, 사라짐(소거) 같은 비주류적 요소가 결국 그를 세계적인 거장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은 통쾌하기까지 하다.구마 겐고는 1954년생이다. 아버지를 따라 1964년 제1회 도쿄올림픽이 열린 국립요요기경기장을 방문했다가 건축물에 압도돼 건축을 직업으로 삼기로 한다. 그는 “건축은 한계가 있는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해 소중한 토지 위에 건물을 세우는 것이니 그 자체로 범죄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배 건축가들은 건축에 대한 반성과 죄의식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저자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작고, 낮고, 느린 ‘삼저(三低) 주의’ 건축을 계속 시도한다. 그는 미야기현 도메시의 한 마을에서 노가쿠(일본의 고전 연극) 극장을 짓는 일을 맡았는데, 예산이 일반적인 노가쿠 극장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이에 자연과 더 잘 어우러지는 옥외형 극장을 생각해내고 여러 낭비 요소를
지난 2일 국내 7대 상장 금융 지주사를 상대로 주주환원정책 도입을 요구하는 주주행동을 개시한 얼라인파트너스의 프레젠테이션 자료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대만 비교 기업들이었다. 메가파이낸셜홀딩과 대만합작금융지주다. 두 회사 모두 국내 대형 은행 지주사들과 사업 구조 및 자산 규모가 비슷한 금융회사다. 이 회사들의 순자산 대비 주가(PBR)는 지난해 말 기준 각각 1.44배와 1.78배. 국내 대표적 금융지주사인 KB금융과 신한지주는 0.4배,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지주는 0.3배였다. 시장에서 대만 은행들의 몸값을 우리나라 은행보다 4배에서 6배 가까이 더 쳐주는 셈이다. 미국 은행들이야 그렇다 치고, 대만 은행과 비교해도 이토록 저평가된 이유는 뭘까.아무리 살펴봐도 다른 이유는 없다. 한국 은행들은 건실하다. 자본적정성과 자산건전성 모두 대만 은행들 못지않게 우수하다. 돈은 국내 은행들이 더 잘 번다. 메가파이낸셜과 대만합작금융의 최근 4개 분기 자기자본이익률(ROE)은 각각 6.4%, 8.9%였다. 같은 기간 한국 은행들의 평균 ROE는 9.9%다.주가의 차이를 만든 건 단 한 가지, 벌어들인 돈을 주주들에게 얼마나 돌려주느냐다. 2021년 메가파이낸셜과 대만합작금융은 각각 순이익의 76.7%, 55.2%를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해 주주들에게 돌려줬다. 두 회사의 지난 10년간 평균 주주환원율은 56.1%다. 반면 국내 은행 지주사들은 20여 년간 꾸준히 20%가 조금 넘는 주주환원율을 유지해 왔다. 대만 국민들은 자국의 대표적인 은행주에 투자해 안정적인 배당 수익을 얻고 있는 반면, 우리 국민들은 그런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셈이다.비단 은행주뿐일까? 전체 증시를 비교해봐도 부끄러움은 우리
“국내 은행들은 경제 성장에 비해 지나치게 빠르게 대출을 늘려왔습니다. 대출 증가 속도를 줄이고 그 돈으로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확대하면 은행의 만성적인 저평가도 해소하고 금융 시스템 전반의 과도한 레버리지도 줄일 수 있습니다.”주주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의 이창환 대표는 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은행들은 자본적정성과 자산건전성이 높고 이익도 잘 내는데 주가가 해외 은행에 비해 크게 저평가돼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은행들이 매년 10% 가까이 늘려온 대출 등 위험가중자산 증가율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수준(2~5%)으로 줄이고, 현재 25% 수준인 주주환원율(배당+자사주 매입·소각)을 최소 50%로 높이면 자본적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은행주의 매력을 두 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얼라인파트너스는 이날 국내 7대 상장 은행지주사를 상대로 주주 행동(캠페인)을 시작했다. 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JB금융지주, BNK금융지주, DGB금융지주 등이다. 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각 사 상황에 맞는 자본 배분 및 주주환원전략을 도입해 다음달 9일까지 공시할 것을 요구했다. 목표 주주환원율 50%를 예시로 제시했다. 요구에 응하지 않거나 주주환원 계획이 불충분하다고 판단되면 3월 주주총회에서 직접 주주제안에 나선다는 방침이다.얼라인파트너스는 우리금융 지분 1%와 JB금융 지분 14%를 보유하고 있다. DGB금융은 주주들로부터 지분 1%의 의결권을 위임받았다. 상법상 자본금 1000억원 이상 상장사의 주주는 지분 0.5%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하면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이 대표는 “나머지 은행들
워터 해저드를 피하는 최선의 방법은 물이 없다고 스스로를 세뇌하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애써 못 본 척 ‘마인드 컨트롤’을 해봐도, 큼지막한 입을 벌리고 있는 연못에 눈이 가는 순간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린이 물에 둘러싸인 아일랜드 홀이라면 불안감은 더 커진다. 아름답기까지 하면 샷에 집중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경기 이천의 명문 퍼블릭 골프장 사우스스프링스CC의 시그니처홀은 레이크 8번홀이다. 멋스럽기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아일랜드 파3홀이다. 청초록색 연못 위에 떠 있는 그린의 양쪽 옆구리와 뒤에는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자리잡고 있다. 갤러리 20여 명이 지켜보는 홀스윙에 집중하기 위해 풍광은 미리 감상했다. 감탄사를 쏟아낸 뒤 거리측정기를 꺼냈다. 핀은 중핀. 화이트티에서 140m 거리다. 하지만 10m 내리막을 감안해야 한다.살려면 방향보다 거리가 중요한 홀. 핀보다 길게 공이 떨어지면 그린 뒤 해저드로 흘러간다. 짧으면 그린 앞에 있는 두 개의 벙커에 빠지기 십상이다. ‘백팔번뇌’로 불리는 사우스스프링스의 108개 벙커 중 두 개다. 여기에 빠지면 사실상 파는 물 건너간다. 아일랜드홀에선 벙커샷을 치는 게 일반 홀보다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자칫 ‘홈런’이 되면 그린 반대편 물에 들어가는 만큼 스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티샷을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번뇌가 찾아왔다.8번 아이언을 꺼내들었다. ‘물은 없다’고 되뇌었다. 핀은 그린의 정중앙, 티잉 그라운드에서 보기에는 약간 오른쪽이다. 핀을 직접 노렸다가 조금이라도 밀리면 그린 중앙까지 파고든 오른쪽 벙커에 빠질 게 뻔했다. 그래서 왼쪽으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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