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주식시장은 코로나19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시세판을 들여다보다 키다리스튜디오란 종목을 발견했다. ‘이 이상한 이름의 회사는 뭐지’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알아보니 웹툰 업체였다. 중년층은 만화방에서 만화를 봤지만 젊은이들은 돈을 내고 웹툰을 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연간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게 신기했다. 그 신기함을 담아 기사를 썼다. 당시 키다리스튜디오 주가는 5000~6000원 정도였다. 이후 주가는 세 배가량 올랐다.지금은 코로나19가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훗날 코로나19의 한가운데 있던 시절의 한 단면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프랑스의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벨 에포크처럼. 수백조원의 산업이 된 문화이 시기 K컬처는 꽃을 피웠다. 지난해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는 ‘만화(manhwa)’가 새로운 단어로 정식으로 등록됐다. 무한한 상상에 기반한 한국 웹툰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결과다.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도 세계 시장을 휩쓸었다. 드라마에서는 ‘오징어 게임’을 빼놓을 수 없다. 넷플릭스에서 유일하게 모든 국가 차트 1위를 점령하는 기록까지 세웠다. 제이콘텐트리 에이스토리 등 드라마 제작 업체들은 세계적 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게 됐다. 이 회사들의 주가도 코로나19 시기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영화에서는 봉준호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석권하며 국민에게 전율을 선사했다.K팝은 그 선두에 있다. BTS(방탄소년단) 열풍을 배경으로 하이브는 수십조원의 시가총액으로 증
불과 20년 전 일이다. ‘TV 하면 소니’라고 하던 시절. 차도 마찬가지였다. 돈만 더 있으면 외제차를 사지, 현대차는 할 수 없이 산다고들 했다. 제약업체들은 미국·유럽 대형 제약사의 신약을 복제하는 데 열을 올렸다. 한국 영화와 음악은 세계시장에서 말 그대로 제3세계의 낯선 장르 정도로 취급받았다. 나라에는 돈도 없었다. 대우자동차를 비롯한 수많은 기업과 은행을 외국계 사모펀드에 팔아 치울 수밖에 없었다.이때로 돌아가서 지금 상황을 보면 매우 비현실적이다. 소니의 왕좌는 삼성전자가 차지한 지 오래다. 외제차 타다가 현대차로 바꾸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한국의 음악과 영화, 드라마는 글로벌 시장의 중심축이 됐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공개되자마자 각국 넷플릭스 순위 맨 윗자리를 차지했다. 웹툰의 세계적 확산은 만화란 단어를 옥스퍼드 사전에 등록되게 했다. 제약사 가운데서도 글로벌 플레이어가 나올 조짐이다. 자금원천 은행서 자본시장으로이런 비현실적 사건들의 경로를 역추적하다 보면 돈과 마주하게 된다. 원조와 차관 이후엔 은행이 중추적 역할을 했다. 일화 한 가지. 박정희 대통령은 어느 날 정주영 회장에게 조선업을 해보라고 권했다. 정 회장은 주저하지 않고 알겠다고 했다. 청와대 참모가 나중에 “뭘 알고 대답한 거냐”고 묻자 정 회장은 그냥 “할 수 있다”고만 답했다. 정 회장은 해외에서 차관을 들여왔다. 그다음은 은행 차례였다. 청와대는 현대에 돈을 대주라고 은행에 지시했다. 세계를 제패한 조선업의 시작이었다. 다른 대기업의 성장도 마찬가지 경로를 따랐다. 은행은 산업화 과정에서 젖줄 역할을 했다.은행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 의심할 여지 없는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다. 축구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발롱도르를 일곱 번이나 받았다. 역대 최다 수상자다. 파리 생제르망으로 이적하기 전 스페인 FC바르셀로나에서 정규리그인 라리가 10회,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4회 등 35번이나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국가대표로 28년을 뛰며 우승한 것은 고작 한 차례. 올해 코파아메리카 대회에서였다. 메시는 세계 최고인데, 메시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는 왜 세계를 제패하지 못했는가는 경영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될 정도다. 마스크와 요소수의 공통점이 의문을 푸는 힌트를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이 주고 있다. 그는 축구를 ‘약한 고리 스포츠’라고 했다. 메시가 아무리 골을 잘 넣어도 11명 가운데 골키퍼나 수비수 한 명이 약하면 이길 수 없는 스포츠란 얘기다. 농구는 다르다고 했다. 마이클 조던이나 르브론 제임스 같은 스타플레이어 한 명이 팀의 전력을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글래드웰은 스포츠뿐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경제와 사회에서도 약한 고리가 중요해졌다고 강조한다. 미국 뉴욕에서 코로나19 초기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다. 사망자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자 인근 섬 하나를 매장장으로 사용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약한 고리 때문이었다. 수조원을 들여 개발한 신약이나 의료기기 등 강한 고리를 형성하는 요소가 없어 사망자가 쏟아진 게 아니다. 평상시 사소해 보였던 마스크, 허름한 건물만 있으면 되는 병상, 의사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는 간호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약한 고리라고 불렀다.한국에서 코로나19 사망
1987년 대통령선거. 당시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내건 슬로건은 ‘보통사람의 시대’였다. 민주화된 사회에서 특권층이 부당하게 부를 축적하는 일을 막겠다는 정책적 지향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 정치사에 가장 훌륭한 슬로건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의 ‘주택 200만 호 건설’ 공약은 수도권 신도시의 시작이었다.그 이후에는 2012년 민주당 경선에서 손학규 후보가 내건 ‘저녁이 있는 삶’ 정도가 손에 꼽히는 슬로건이다. 장시간 노동의 시대에서 벗어나겠다는 정책적 함의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대통령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 후보가 모두 결정됐다. 오래전 선거를 떠올린 이유는 뭔가 답답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기간 내내 대장동과 고발 사주, 가족관계에 대한 폭로를 보고 들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그 원인일 것이다. 시대의 과제를 논하는 장한국은 미국을 제외한 어떤 선진국도 채택하지 않고 있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다. 그래도 장점은 있었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게임인 만큼 당선을 위해 온갖 문제에 대한 대책을 선거 때 쏟아낸다. 포퓰리즘 논란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때때로 미래를 논하고, 대책을 찾는 장이 되기도 했다.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 의미있는 사회적 메시지가 등장하고, 한국 사회는 그것을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이는 정책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는 행정수도 이전과 지역 균형발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과밀화된 수도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대책이었다. 큰 논란에도 세종시는 제2의 수도로 자리잡고 있다. 2007년 이명박 후보는 ‘7·4·7’을 공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를 만났다. 당시 뜨거웠던 주식 카카오에 대해 물었다. 그는 좋다고 했다. “카카오의 리스크는 국유화밖에 없다”고도 했다. 전쟁이 발생해 정부가 직접 통제하지 않는 한 리스크가 없다는 얘기였다. 이후 카카오 주가는 급등했다.1년 후 카카오는 국유화가 아닌 다른 위기에 처했다. 이 과정에는 평판, 욕망,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일상, 공정성 등의 단어가 등장한다. 다만 이 글은 플랫폼 규제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카카오 혁신의 힘카카오와 혁신이라는 단어는 어울린다. 카카오택시는 비오는 날 거리에서 손을 흔들며 물벼락을 맞는 번거로움을 없애줬다. 카카오뱅크는 ‘금융이 편리할 수도 있구나’라고 느끼게 해줬다. 수조원대 비즈니스로 성장한 선물하기는 마음을 전달하는 새로운 수단이 됐다.혁신이 가능했던 것은 질문이 달랐기 때문이다. 주식은 3일 결제라고 한다. 주식을 팔면 당일 포함 사흘이 지나야 돈을 찾을 수 있다. 카카오 직원들은 “왜 당일 결제는 불가능하지”라고 질문한다. 부동산 담보대출에 대해서도 “왜 많은 서류가 필요할까. 온라인으로 간단히 하면 될 것을”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한다.그렇게 시작된 혁신은 카카오를 권력으로 만들었다.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권력은 조직의 뇌를 바꿔놓았다. 카카오란 이름을 붙이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많은 회사를 인수해 카카오를 붙였다. 권력은 돈으로 이어졌다. 시장에서는 “카카오 내부에서 먼저 상장하려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혁신이 권
1980년대 중·고등학생들은 팝송을 많이 들었다. 가요보다 팝송의 수준이 높다고들 했다. 매주 나오는 빌보드 차트를 달달 외우며 으쓱거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뮤직비디오를 볼 방법이 없던 시절 미군 채널 AFKN은 영상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줬다. 마이클 잭슨, 프린스, 마돈나의 시대였다.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흐른 2012년 어느 주말. 한가하게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한 채널에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부르고 있는 외국인이 나왔다. 장소는 프랑스 파리. 문화적 자부심이 엄청난 프랑스 젊은이들이 아시아 조그만 나라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다니. 강남스타일이 그해 세계적 히트곡이었을지라도 1980년대 팝송에 빠졌던 세대에는 충격이었다. ABBA와 스웨덴 경제또 10년이 흘렀다. 사건은 더 커졌다. BTS(방탄소년단)는 세계 음악시장을 정복했다. 9주 연속 빌보드 차트 1위. 자신의 곡(Permission to Dance)이 또 다른 곡(Butter)을 밀어내고 1위를 차지하는 이변도 일으켰다. 그룹으로는 비틀스와 보이즈투맨 정도가 해냈던 일이다.BTS의 활약은 1970년대 스웨덴을 떠올리게 한다. 1970년대 후반 스웨덴 수출 품목 1위는 볼보자동차였고, 2위는 아바(ABBA)의 음반이었다. 전 세계에 3억7000만 장의 음반을 판매한 ABBA는 볼보와 함께 스웨덴의 상징이 됐다.하지만 1970년대 스웨덴과 2020년대 한국은 다르다. 스웨덴 콘텐츠산업은 음악에 집중돼 있었다. 한국이 갖고 있는 포트폴리오는 다양하다. BTS가 이끄는 K팝, 기생충으로 아카데미를 휩쓴 영화뿐 아니다. 넷플릭스에서 K드라마가 전 세계 순위 상위에 오르는 일이 다반사다. 게임, 웹툰, 웹소설도 글로벌 시장이 주 무대가 된 지 오래다.한국 콘텐츠산업의 성장
“어덜트 슈퍼비전(adult supervision)의 시대는 끝났다.”2017년 구글의 에릭 슈밋 회장이 물러나자 미국 언론들은 이런 해석을 내놨다. 슈밋은 2001년 구글에 합류했다. 1990년대 말 구글은 초라했다. 창업자들이 100만달러에 회사를 팔려고 했을 정도다. 투자자들은 돈을 대고, 회사를 키워보라고 창업자들을 독려했다. 회사는 성장하기 시작했다. 어른스런 관리자하지만 투자자들에겐 숙제가 있었다. 젊은 창업자들의 과도한 패기가 회사를 위기에 빠뜨리지 않게 막는 것. 그들은 경험 많은 슈밋을 구글 최고경영자(CEO)로 추천했다. 슈밋은 이후 어른스러운 관리자이자 코치이자 시스템설계자, 즉 어덜트 슈퍼바이저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를 독려하고 제어하며 구글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냈다.에릭 슈밋만이 아니다. 미국 재무장관 후보자로 거론됐던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도 대표적 케이스다. 2008년 구글을 떠나 아이디어 넘치는 마크 저커버그와 함께 오늘의 페이스북을 만들었다. 고인이 됐지만 실리콘밸리의 위대한 코치로 불렸던 빌 캠벨 역시 어덜트 슈퍼비전의 상징이었다.유니콘 기업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한국에서도 어른스러운 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사업에만 몰두한다. 사회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위기관리는 무엇인지 등에는 관심이 없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들어서면 상황은 달라진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쿠팡은 쿠팡맨들과의 갈등을 시작으로 협력사와의 관계, 상장 과정에서의 잡음 그리고 최근 화재까지 수많은 일을
마네 모네 드가 피사로 르누아르 시슬레 세잔. 중학교 때였던가. 그 이름을 무조건 외웠다. 인상파 화가. 모자라는 미술 실기 실력을 암기로 극복하려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기억의 마술은 지금도 그 이름을 입에서 맴돌게 한다. 의문도 있었다. ‘인상파 화가가 이 사람들밖에 없었나?’ 의문은 수십 년 뒤에 풀렸다. 7명의 작품은 귀스타브 카유보트라는 화가이자 수집가의 컬렉션이었다. 카유보트는 유명하지 않았던 시절 이들의 작품을...
1970년대 중반 골드만삭스는 ‘백만장자의 보이스카우트’로 불렸다. 언제나 고객을 위해 옳은 일을 한다는 의미였다. 당시 미국에 적대적 인수합병(M&A) 열풍이 몰아쳤다. 금융회사들은 돈 되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M&A 대상 회사를 물색하고, 공격하는 것을 도와줬다. 골드만삭스 경영진은 적대적 인수를 돕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수당하는 회사도 고객이며, 고객을 해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취지였다. 적대적 인...
또 칼럼을 써야 하는 날이다. 항상 궁금하다. 왜 칼럼 순서는 이렇게 빨리 돌아올까. 게으름 탓이다. “생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니 쓸 게 없는 것”이란 지적에 동의한다.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이란 표현은 누가 만들었는지 참 적절하다. 이런 표현을 착 달라붙는 ‘스틱(stick) 메시지’라고 하던가. 오랜 시간을 살아남아 지금도 쓰이는 비결이다. 몇 년 전 칼럼 쓰는 ...
지난 3월 코로나 공포가 온 사회로 퍼졌다. 불안에 떨었다. 중첩된 불안이었다. 생명과 안전이 첫 번째였다. 가게 문을 닫게 된 사람들은 생업에 위협을 느꼈다. 직장인들은 일자리가 사라질까 두려웠다. 투자자들은 공포스런 주가 급락을 경험했다. 기업들도 그랬다. 세계적인 마이너스 성장 앞에 대책이 있을 리 만무했다. 기업을 바라보는 제3자는 불안요소 한 가지를 더 떠올렸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이겨낸 이건희 정몽구 구본무 등 장수들이 전장에 없...
2009년 삼성을 취재할 때다. 영상 하나를 보게 됐다. 한 사람이 억센 경상도 억양으로 담뱃재가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연설을 하고 있었다. 때론 침착하게, 때론 격분해 몇 시간째 말을 이어갔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알려진 1993년 이건희 회장의 영상이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1993년은 이마트 1호점이 문을 연 해다. 그해 그는 “복합몰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렇게 됐다. 또 전기차, 수소...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다. 그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이미 이뤄졌고, 이뤄질 예정이다. 오래전 삼성을 출입하면서 이건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전략가 이건희였다. 제3세계의 이름 없는 기업을 세계적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은 전략가 이건희의 가장 큰 무기는 전략적 직관과 생각의 힘이었다. 고독이 그에게 준 선물이었다. 오래전 쓴 책에 기초해 내용을 몇가지로 정리해봤다. 1.전략적 직관 #1 1974년 삼성전자에서 논쟁...
지난봄 우리는 겸손했다. 두렵고 공포스러웠지만 차분하고 이타적이었다. 그 무기로 처음 만나는 바이러스와 싸웠다. 봄의 입구에서 마주친 코로나19라는 낯선 바이러스의 실체를 알기 위해 찬찬히 들여다보려고 애썼다. 자연 속에 잠자고 있던 바이러스를 불러낸 것이 인간의 탐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반성도 했다. 공장이 멈춘 후 깨끗해진 하늘을 보며 자연의 소중함도 생각했다. 코로나19를 확산시킨 사이비 종교집단에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곧 그들에게도 치...
오래전 어느 날 유인원들이 나무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어느 개체에서인가 둔부 비대증이라는 변이가 일어났다. 엉덩이 근육으로 유인원은 두 발로 설 수 있게 됐다. 이후 손을 쓰고, 뇌는 커졌다. 우리들의 조상이 됐다. 자연에 적응하며 호모사피엔스는 지구의 지배자가 됐다. 돌연변이는 진화의 필수적 재료가 된다. 하지만 이런 유익한 변이는 드물다.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 변이는 도태된다. 사고로 다친 새의 날개는 유전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옛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한 말이다. 반혁명 분자로 구분된 2000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발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을 보며 왜 이 문장을 떠올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타인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무감각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듯하다. 물론 공포스러운 우한 폐렴 스토리의 결말은 그런 비극이 되지 않을 것이고, 될 수도...
7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이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전시장 인근 벨네시안타워. 글로벌 뷰티그룹 로레알은 이 건물 34층 209호에 공간을 마련했다. 넓지 않은 공간에는 로레알이 보유한 화려한 브랜드의 제품은 없었다. 대신 네모난 통 몇 개와 화장품 재료, 스마트폰이 전부였다. ‘로레알답지 않은 전시’란 생각이 들었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CES 20...
이동호 현대백화점 부회장, 이원준 롯데쇼핑 부회장, 이갑수 이마트 사장. 올 연말 무대에서 내려온 유통업계 거물들입니다. 10년 가까운 시간 한국 유통산업을 이끌어온 이들의 퇴장 소식을 듣고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가 궁금해졌습니다. 프로필을 뒤적였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삶 자체가 메시지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평생을 ...
삼성전자는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C랩을 통해 선발된 4개 우수 과제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창업을 지원한다고 1일 발표했다. C랩은 삼성전자가 창의적 조직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2012년 12월 시작했다. 2015년 8월 분사(스핀오프) 제도를 도입했다. 지금까지 4년간 C랩을 통해 40개의 스타트업 창업과 200여 명의 신규 고용 창출을 이끌어냈다고 삼성전자 측은 설명했다. 이번에 분사된 4개 스타트업은 인공지능(AI)과 관련된 곳이...
고동진 삼성전자 IM(IT·모바일)부문 대표(사장)는 5일 “인공지능(AI)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 사장은 이날 서울 우면동 삼성전자 서울R&D연구소에서 열린 ‘삼성AI포럼’ 개회사를 통해 “5세대(5G) 이동통신과 AI, 사물인터넷(IoT) 기술로 본격화된 초연결 시대에는 사용자 경험을 혁신하는 기업이 글로벌 비즈니스의 승자가 될 ...
찰스 존스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1998년 <경제성장입문>이란 책을 냈다. 2013년 세 번째 판을 찍으며 책 표지를 바꿨다. 그래프가 아니라 한 장의 사진을 넣었다. 위성에서 찍은 한반도 야경 사진. 반짝이는 남쪽, 어두운 북쪽. 설명은 없었지만 존스 교수는 한국이라는 성장의 아이콘을 보여주고 싶었던 듯하다. <문명의 충돌>을 쓴 새뮤얼 헌팅턴도 한국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문화가 중요하다(cultu...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 세계 게임용 모니터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고 9일 발표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상반기 17.9% 점유율(금액 기준)로 세계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가 2016년 처음 게이밍 모니터를 출시한 뒤 3년 만이다. 삼성전자는 고해상도(QHD)와 커브드 등 프리미엄 제품군에서 각각 30% 이상의 점유율로 2위 업체와 두 배의 격차를 기록했다. IDC는 지난해 500만 대 수준인 글로벌 게이밍 ...
소셜임팩트는 국가·기업·개인의 행위가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말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소셜임팩트의 목표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회 개선’을 제시하고 있다. 아침 일찍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김 부장, 이거 무슨 의도를 갖고 하는 거 아닙니까? 편파적이에요.” 한 기업 임원이었다. 화가 나 있었다. ‘한경-입소스 기업소...
뜻밖이었다. 신동빈 회장이 롯데의 미래를 위한 키워드로 ‘공감’을 던진 것은. 롯데는 2015년 이후 폭풍과 같은 시간을 버텨야 했다. 경영권 분쟁,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비리수사와 신 회장 구속 등이 이어졌다. 신 회장이 경영진과 뉴롯데의 미래를 진지하게 논의할 시간이 없었다. 지난 20일 끝난 사장단회의가 첫 자리였다. 많은 사람은 ‘디지털, 글로벌 전략’ 등의 키워드가 나올...
소니, 파나소닉, 아이와(AIWA). 모두 일본 브랜드다.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1980년대. 중학생들에게 선망의 아이템이었다. 나이를 먹어 TV를 살 때가 된 1990년대 중반. TV 하면 소니였다. 선명한 화면을 따라갈 브랜드가 없었다. 소니의 트리니트론 기술 때문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미국 TV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에미상을 사람이 아닌, 기술이 받은 최초의 사례를 만든 그 기술이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상황이 달라졌다...
2009년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그즈음 낯선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용자 경험. 뭔 소린가 했습니다. 느낌은 오는데…. 그 의미를 깨닫는 데 10년이나 걸린 것은 지적 게으름 탓이었을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좋은 사용자 경험이란 무엇인가’를 느끼는 데 걸린 시간이라고 할까. 30만원짜리 노트북이 만든 감성 두 달 전쯤입니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들어갔습니다. 기사가 될 만한 것을 찾는...
1934년 전남 강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김재철. 공부에 재능이 있던 그였다. 하지만 고3 때 선생님의 한마디에 인생 항로를 바꿨다. “나 같으면 바다로 가겠다.” 그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고작 뱃놈이 되겠다는 것이냐”는 아버지의 호통을 뒤로하고 부산으로 갔다. 수산대(현 부경대)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수많은 청춘이 배를 타다 영원히 바다로 가버렸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
그나마 다행이다. 삶의 터전이자, 추억의 장소이며, 수많은 생명의 안식처인 그 자연을 덮친 산불이 잡힌 것은. 사람들은 각자의 일을 했다. 전국의 소방차는 신속히 집결했고, 군인과 경찰은 재난이 확산되지 않게 막았다. 불이 나자마자 신고하고, 폭발물을 서둘러 옮긴 시민도 있었다. 기업들은 각종 구호물품을 보내 재난 극복을 지원하고 있다. 이제 서둘러 피해를 복구하고 그곳에 있던 산림과 생명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1988년 미...
2014년 중소기업부 기자로 발령 났을 때 일입니다. 직전 취재하던 기업은 삼성전자였습니다. 당시 매출은 대략 200조원. 비교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중소기업도 웬만큼은 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첫 취재 지시를 받고 한 기업 주소지로 차를 몰았습니다. 경기도 어디였습니다. 비포장도로까지 지나 찾아갔는데 간판도 없었습니다. 직원은 사장님과 딸 두 명뿐이었습니다. 매출이 얼마냐고 묻자 3억원이라고 했습니다. “한 달에요?”라고 되묻자 “아니요 1년이요”라고 답했습니다. 착잡했습니다. ‘200조원과 3억원이라. 이런 기업들을 취재해야 한다는 거지….’ 하지만 인터뷰를 끝낸 뒤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200조원에도 스토리가 있고, 3억원에도 스토리가 있구나.’ 중소기업 부장을 하면서도 이런 스토리를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주말에 취재를 갔던 한 행사 얘기를 할까 합니다.남아서 지켜준 직원컴트리는 보안 컴퓨터를 공공기관 학교 등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입니다. 한 대의 PC로 내부망 외부망을 분리할 수 있는 ‘망분리 듀얼PC’ 특허를 갖고 있는 회사입니다. 얼마 전 이 회사의 이숙영 사장을 점심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이 사장은 어려울 때 얘기를 하며 계속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사정은 이랬습니다.2015년 컴트리는 큰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공공기관에 컴퓨터를 납품하기 위해 컴트리에 하청을 준 대기업의 지나친 요구를 견디지 못해 직원들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흔한 말로 ‘갑질’이었겠지요. 남은 직원들도 하나둘 사표를 냈습니다. 수주를 해야 할 영업사원 등 직원 대부분이 그만뒀습니다. 회사는 사실상 가
주변에 ‘타다’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반응은 긍정적이다. “다른 택시는 못 탈 것 같다” “언론에 안 나왔으면 좋겠다. 사용자가 늘지 않아야 쉽게 이용할 수 있으니까” 등. 대화하다 보면 타다를 이용하지 않으면 시대를 못 따라가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많이 언급된 타다 얘기를 다시 꺼낸 이유가 있다. 타다가 던져준 메시지 때문이다. 개혁의 성공 요인이라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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