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록원이 최근 우리 정부가 1953년 전국적으로 조사해 집계한 일본 식민지 치하 피해자 명부를 공개했다. 누렇게 색이 바랜 서류에는 3·1운동 피살자를 비롯해 관동대지진 피해자와 강제징용자들의 이름이 빼곡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내무부가 주도해 작성한 이들 자료는 1953년 열린 제2차 한·일 회담 준비를 위해 일본으로 옮겨졌다. 당시엔 한국과 일본 사이에 국교가 없던 시절이어서 주(駐)일본 한국대표부가 이 문서를 맡았다. 일제 피해자들의 삶만큼 이 문서의 팔자도 고달팠다. 주일대사관이 장소를 옮길 때마다 여러 차례 이삿짐 신세가 됐다. 지난 5월 주일 한국대사관 직원들은 신청사 입주를 위해 다시 이삿짐을 꾸렸다. 그 과정에서 문서의 존재를 처음 발견했다. 주일대사관은 상세한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 국가기록원으로 문서를 보냈고, 드디어 공식적인 공개 절차를 밟게 된 것이다. 자칫 어둠에 묻힐 뻔했던 자료들이 제 모습을 찾게 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정부가 밝힌 문서의 발견 경위는 아쉬움투성이다. 일단 문서를 작성했던 정부 부처나 보관했던 주일대사관이나 대사관 이전 작업을 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문서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복잡한 이동 경로도 정확하지 않다. 그랬을 거라는 ‘추정’에 불과하다. 여론의 비난에 주일대사관은 억울하다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문서를 직접 만들었던 정부 부처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문서를 만든 정부 부처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 않느냐는 하소연이다. 문서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만큼 1965년 6월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다룬 한·일 협정 당시 이 문서가 활용됐는지
고마쓰는 세계 2위 건설장비 업체다. 미국의 캐터필러 다음이다. 매출은 2조엔을 웃돈다. 덩치도 크지만 더욱 눈에 띄는 건 수익률이다. 고마쓰의 영업이익률은 늘 10%를 넘는다. 올해 전망치도 14.9%에 달한다. 일본 상장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5% 미만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경이적인 수준이다. 늘 잘나갔던 건 아니다. 1990년대 말 일본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터진 이후엔 고전했다. 근근이 버텨내다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결국 창사 80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내기 시작했다. 이때 구원투수가 등장한다. 이름은 사카네 마사히로. 불도저 설계 기술자 출신인 사카네는 2001년 사장으로 선임된 뒤 대대적인 구조개혁을 통해 고마쓰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경영이 보이는 마법의 안경’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사카네의 성공담을 집약한 것이다. 고마쓰를 궁지에서 건져낸 그의 사례는 일본 경영계에 전설처럼 전해진다. 유명세로만 따지면 일본에서 ‘살아있는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의 다음쯤에 해당한다. 지금은 고마쓰의 상담역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사카네는 경영자에게 ‘착안대국(着眼大局) 착수소국(着手少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항상 큰 그림을 그리면서도 임직원에게 지시를 내릴 때는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경영자가 직원들에게 고객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는 식으로 막연한 지침만 내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고객 서비스파트가 제품 생산부문까지 총괄하라’는 등의 명확한 지시를 통해 확실한 선을 그어줘야 한다. 경영자가 구사하는 ‘말의 힘’도 사카네가 늘 강조하는 대목이다. “말의
‘한·중·일 공동 역사 교과서가 가능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동북아 공동 역사교과서 발간을 제안한 데 대해 일본 정치권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4일 국립외교원 설립 기념 국제학술대회 개최식에 참석, “동북아 평화 협력을 위해 먼저 역내 국가들이 동북아 미래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한·중·일 공동 역사교과서 발간을 제안했다. 일본 정부를 겨냥해 양국 관계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던진 것이다. 일본의 첫 반응은 시큰둥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박 대통령의 제안이 나오자마자 “과거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입장과 노력을 한국에 충분히 설명해 왔다”며 “일본의 (이러한)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한국이)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보적인 입장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하루 만에 태도가 바뀌었다. 교과서 관련 주무장관인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다음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동북아 공동 역사교과서 발간에 대해 “대환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 중국 한국의 관계 장관이 대화하도록 박 대통령이 한국 내에서 지시해 주면 (일본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제안을 적극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리한 것이다. 관건은 일본의 ‘속내’다. 공동 역사교과서를 빌미로 오히려 왜곡된 역사 인식의 확산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실제로 시모무라 문부과학상은 박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기자회견에서조차 “사회 교과서의 역사 및 영토 서술에 관한 검정 기준을 개정해 정부의 통일된 견해나 확정 판결이 있는 경우 이를 기반
쌀 소고기 등 민감한 품목을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하려던 일본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교섭 전략이 난항에 부딪혔다. TPP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모든 수입품의 관세철폐를 일본에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올해 안에 TPP 협상을 타결하겠다던 협상 참가국들의 목표도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아사히신문은 17일 TPP 교섭 참가자의 말을 인용해 “마이클 프로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지난달 하순 아마리 아키라 일본 경제재정상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품목에 대한 관세철폐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프로먼 대표는 일본이 관세철폐 예외로 삼고 있는 쌀 보리 설탕 소·돼지고기 유제품 등 ‘중요 5개 품목’에 대해서도 “20년 이상의 유예기간을 설정하는 방식을 통해서라도 ‘전 품목 관세철폐’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가 현재 연간 36만t인 미국산 쌀의 수입 한도를 대폭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한국·중국과의 경색된 외교관계를 개선하려는 일본 정·재계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연일 한국 인사들과 접촉해 관계 개선을 위한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고, 일본 재계는 중국에 대규모 방문단을 보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으로 인한 갈등의 봉합에 나선다. 아베 총리는 15일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한·일협력위원회 합동총회 개막식에 참석했다. 이 모임에 현역 총리가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날 모두 인사말을 통해 “한국과 일본은 모두 미국의 동맹국”이라며 “현재 동아시아 정세를 생각하면 한·일 및 한·미·일 3개국의 긴밀한 협력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3일 이병기 주일 한국대사와 비공개로 만나고, 다음날 한·일협력위원회 한국 쪽 대표단과 면담을 한 데 이어 사흘 연속 한국 관련 일정을 소화했다. 양국 정권 교체 이후 한 차례도 열리지 못하고 있는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분위기 조성 차원이라는 분석이다. 이날 행사에는 한·일협력위원회의 일본 측 신임 회장 자격으로 아소 다로 부총리도 자리를 함께했다. 아소 부총리는 “앞으로도 한·일 양국은 아시아와 동북아에서 가치관을 공유하며 나아가야 한다”며 “양국 사이에 곤란한 문제가 있을수록 대화는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측의 유화 제스처에도 행사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 국회의원들은 합동총회 행사 중 오전 개막식만 참석하고 일본 의원들과의 오찬과 총회는 불참했다. 서병수 새누리당 의원 등 방문단 7명은 “최근 발행된 주간문춘의 기사는 한ㆍ일관계 악화를 초래하는 것으로서 이에 심각한 우려
일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모임인 주일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가 14일 출범 20주년을 맞았다. 한기련은 한·일 양국 간 무역확대와 양국 민간 차원의 친선 도모를 목적으로 1993년 설립됐다. 현재 일본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 320여곳이 가입돼 있다. 지난 3월 한기련 회장에 선임된 양인집 하이트진로 일본법인(진로주식회사) 사장(사진)은 이날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주일미상공회의소와 재일중국기업협회와 같은 외국계 경제단체와의 교류도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희망을 강하게 나타냈다. 한국 국회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지난 13일 이병기 주일 한국대사와 비공개 모임을 가진 데 이어 이틀 연속 유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14일 오후 도쿄 총리관저에서 한·일협력위원회 합동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국회의원 등 한국 측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양국관계의 조기 정상화를 위해 연내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강력하게 희망했다고 서병수 새누리당 의원이 전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한국 측의 언급에 대해 아베 총리는 ‘양국이 같이 노력하자’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본 보수 잡지인 주간문춘은 14일자 ‘한국의 급소를 찌른다’라는 기사에서 “아베 총리가 한국을 ‘어리석은 국가’라 말했다”고 보도해 회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주간문춘은 “양국이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간신’이 있기 때문이고, 그 간신은 윤병세 장관이라고 아베 총리가 말했다”며 일본 정부가 극비의 반격 플랜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도쿄=안재석 특파원/도병욱 기자 yagoo@hankyung.com
일본의 올 3분기(7~9월) 경제성장률이 1%대로 급락했다. 연율 기준으로 4% 안팎을 오르내리던 지난 1, 2분기에 비해서는 반토막 수준이다. 엔화 가치 하락에도 수출기업들의 실적이 기대만큼 좋아지지 않은 것이 성장률 하락의 주요 배경이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가 한계에 부딪힌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일본 내각부는 “지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 대비 0.5% 증가했다”고 14일 발표했다. 연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1.9%에 해당한다. 올 들어 가장 나쁜 성적이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1분기와 2분기에 각각 연율 4.1%와 3.8%를 기록했다. 3분기의 부진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다. 시장의 전망치는 연율 1.7%에 불과했다. 실제 발표치는 오히려 예상을 약간 웃돌았다. 불안 조짐은 수출 부문에서 일찌감치 감지됐다. 일본의 지난 9월 무역수지는 9321억엔 적자였다. 적자는 작년 7월 이후 15개월 연속으로 사상 최장 기록이다. 이로 인해 올 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 상반기(4~9월) 무역수지 적자 규모도 4조9891억엔으로 불어났다.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다. 재무성이 발표한 9월 수출수량지수도 91.6으로 전년 동월 대비 1.9% 낮아졌다. 지수가 하락한 것은 6월 이후 3개월 만이다. 일본의 최대 수출처인 아시아시장 지수 하락 폭은 4.0%에 달했다. 신흥국 시장의 경기 둔화가 엔저(低) 효과를 반감시킨 것이다. 내수를 지탱하는 가계소비가 그나마 플러스를 유지하며 성장률 하락 폭을 줄였지만 그마저도 지속 가능성에 물음표가 달린다. 일본 소비자들의 경기 판단이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10월 소비자태도지수는 41.2로 전달 대비 4.2포
이병기 주일본 한국대사가 13일 오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나 최근의 한·일 관계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일본 총리가 한국대사와 총리 관저에서 별도의 만남을 갖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아베 총리가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양국이 여러 분야에서 협력하기를 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이 대사는 “한·일 관계가 상호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조속히 안정화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과거를 ...
일본의 소비자태도지수가 2년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일본 소비자들의 경기 판단이 그만큼 부정적으로 변했다는 의미다. 일본 내각부는 “경기 전반에 대한 10월 소비자태도지수가 41.2로 전달 대비 4.2포인트 낮아졌다”고 13일 발표했다. 하락 폭은 동일본대지진이 터진 직후인 2011년 4월(5.3포인트) 이후 2년6개월 만의 최대치다. 소비자태도지수는 기준치인 50을 넘으면 경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다는 뜻이고, 50을 밑돌면 그 반대를 의미한다. 경기에 대한 소비자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지표인 셈이다. 지수가 하락하면 그만큼 경기 회복 가능성이 낮아진다. 일본 소비자태도지수는 2006년 1월 50.1을 기록한 이후 근 8년 동안 단 한 번도 기준치를 넘지 못하고 있다. 10월 소비자태도지수는 경기뿐 아니라 지출 및 고용 수입 등 다른 모든 부문에서도 일제히 내림세를 탔다. 소비자태도지수가 급락한 가장 큰 배경으로는 소비세 증세가 꼽혔다. 지난달 1일 아베 총리가 내년부터 소비세율을 현행 5%에서 8%로 인상하기로 최종 결정한 것이 소비심리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기대만큼 가계소득이 늘지 않고 있는 것도 부정적 요인이다. 아베 내각이 기업을 상대로 임금 인상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실제로 월급을 올려 준 곳은 아직 손에 꼽을 정도다. 엔화 가치 하락과 대형 태풍으로 생필품 가격이 들썩이고 있는 것도 불안 요소다. 일본 내각부는 “소비자태도지수가 지난달 들어 급격히 악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지수의 전반적인 수준은 (예년에 비해) 여전히 높은 상태”라고 설명했다.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일본 기업의 동남아시아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이 올 들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일본 기업의 투자가 동남아로 몰리는 양상이다. 마이니치신문은 12일 글로벌 M&A 정보업체인 레코프의 자료를 인용해 “올 1~10월 중 일본 기업에 의한 동남아 기업의 M&A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36% 늘어난 75건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국가별로는 태국이 24건으로 가장 ...
한국과 일본이 11일 오후 도쿄에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차관보급 당국자 간 고위경제협의회를 개최했다. 차관보급을 수석대표로 하는 이 협의회는 양국 간 경제분야 의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1999년 이후 매년 양국에서 교대로 열리고 있다. 올해로 12회째를 맞은 이번 협의회에서 한·일 양국은 경색된 정치·외교관계로 인해 타격을 입고 있는 경제분야의 교류 및 협력 회복 방안에 대해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총기 외교부 ...
지난 7일 오전 8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인근 J빌리지 회의실에 주일 외국인 특파원 공동취재단 21명이 모였다. J빌리지는 일본 축구 대표팀 훈련장이었던 곳. 체내 방사능 수치를 측정한 기자들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음 외신기자단 브리핑 때도 모두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한 외국인 기자의 농담에 잠깐 웃음이 퍼졌다. J빌리지의 방사능 측정 수치는 0.2마이크로시버트(μ㏜). 서울의 약 두 배 수준이었다. 그러나 버스로 J빌리지를 5분 정도 벗어나자 곧바로 수치는 2.08μ㏜로 뛰었고 측정기에선 경고 표시가 깜빡였다. J빌리지에서 북쪽으로 20㎞쯤 떨어진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 향하는 동안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황량한 죽음의 땅’ 그 자체였다. 마치 좀비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 거리마다 잡초가 무성하고,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맥도날드’ ‘세가소닉’ 등의 간판을 내건 가게들은 부서진 건물 속에서 파편과 함께 방치돼 있었다. 도로 한쪽에는 차에 치어 죽은 고양이 주위로 까마귀가 몰려들었다. 10여분을 달리자 3~4μ㏜ 정도를 유지하던 방사능 수치가 갑자기 30μ㏜로 치솟았다. 측정기를 손에 든 도쿄전력 직원이 움찔했다. 평소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40분. 도쿄전력에서 제공한 특수 내의와 특수 양말 두 켤레, 방호복, 면장갑 한 켤레, 고무장갑 두 켤레 등을 겹겹이 착용하고 버스에 탄 채 원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방사능 오염수가 저장된 H4구간 탱크 앞에서 버스가 잠시 멈췄다. 최근 들어 잇따라 오염수 누출 사고가 일어나 물의를 빚은 곳이다. 방사능 수치는 다시 37μ㏜로 올라갔다. 후
일본 도쿄증권거래소가 새로운 주가지수를 추가 도입한다. 재무 구조가 우량한 기업을 선별, 일본 증시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관심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새로 선보이는 지수의 이름은 ‘JPX닛케이지수400’. 이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지수에 포함되는 기업 수는 총 400개다. 이번 지수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들의 재무건전성과 수익성을 중시한 것이다. 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대표적인 선정 기준이다. 일본 증시에서 사용되고 있는 기존의 ‘닛케이225지수’는 시가총액과 유동성 등을 기준으로 업종별 대표 종목을 뽑아낸 것이다. 투자 적합성보다는 전반적인 증시의 흐름에 주목한 것이 특징이다. 도쿄증권거래소는 JPX닛케이지수400에 포함되는 기업을 두 단계에 걸쳐 선별했다. 우선 시가총액이 큰 순서로 100개를 골랐다. 그다음에는 과거 3년간의 ROE와 영업이익 등을 중심으로 300개 종목을 추가했다. 최근 3년간의 ROE가 마이너스인 기업은 원칙적으로 제외했다. 새 지수는 내년 첫 거래일인 1월6일부터 도입된다. 지수는 올해 8월30일의 평균 주가를 10,000으로 상정해 계산되며 매년 8월 마지막 영업일에 종목을 정기 교체한다.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노동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법원의 판결에 대해 일본 재계가 한목소리로 반기를 들고 나섰다. 게이단렌(經團連·한국 전경련에 해당)과 일본상공회의소, 경제동우회 등 일본 재계 3단체는 6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인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명령 판결이 한국 법원에서 잇따르고 있는 것과 관련, “양국 경제관계를 훼손시킬 가능성이 있어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재계가 공동으로 한국 법원의 판결에 반대 입장을 나타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게이단렌 등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세 단체가 6일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노동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법원의 판결을 공개적으로 반박한 것은 경색된 한·일 관계와 앞으로 다른 기업에 미칠 영향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다. 일본 아베 정권은 강제 징용 노동자를 포함한 대일 청구권 문제에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해 왔다. 논리는 단순하다.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해결된 사안이며 개인 배상 책임도 청구권 자금을 받아간 한국 정부에 있다는 주장이다.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이 손해 배상에 응하면 비슷한 소송이 잇따를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일본 재계 입장에서는 자국 정부와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양국 경제계에 미칠 파장이다. 경색된 외교관계와 악화된 여론에 휘둘릴 경우 두 나라 기업 모두에 손해가 될 수 있다. 일본 기업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기업의 규모를 고려할 때 배상금을 지급하지 못할 상황은 아니지만 (분위기상) 양국 외교관계에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일본 재계가 한국 법원의 판결에는 반대하면서 “한국에 대한 투자와 사업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며 “양국 정부와 경제계가 협력해 문제 해결을 서둘러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이유다. 이미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기업들의 한국 투자는 올 들어 40% 가까이 줄었다는 게 대표적인 논거다. 그러나 투자 감소와 한·일 외교 관계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2011년 일어난 대지진으로 작년에 일본의 한국 투자가 평소
일본이 미국 영국 호주에 이어 러시아로부터도 집단적 자위권 도입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지난 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양국 외교·국방장관 연석회담(2+2 회담) 후 기자회견을 통해 “러시아는 국가 안보 및 방어 확보와 관련한 일본의 해명에 만족하며 이 같은 해명을 양국 관계의 개방성 확대 및 신뢰 구축을 위한 기여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집단적 자위권 등 일본의 군사적 역할 강화에 대해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회담에 함께 참석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도입 등을 통한) 적극적 평화주의 정책을 자국 헌법에 명시된 평화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가운데 추진할 것임을 확실히 했다”며 원칙적으로 일본의 정책 변화를 이해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집단적 자위권은 일본이 직접 외부의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동맹국 등이 공격받았다는 이유로 타국에 반격을 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와 함께 양국은 일본 해상자위대와 러시아 해군 간 테러 및 해적 대처를 위한 합동훈련을 실시한다는 데도 합의했다.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뤄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극동 지역 개발을 위해 일본의 기술 및 자본 투자를 요청했고, 일본은 극동 지역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공장 건설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주요 현안이었던 중국 견제와 북방영토 영유권 문제 등에서는 합의점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번 회담에서 중국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서로의 의도가 크게 엇갈렸다”며 “최대 현안인 북방영토 문제에서도 실무를 담당하는 외교 차관
일본 전자기업들이 올해 이익 목표치를 줄줄이 상향 조정하고 있다. 과감한 구조조정 효과에다 엔화가치 하락이라는 호재가 겹친 덕분이다. 추락하던 일본 전자기업의 실적이 이제 바닥을 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파나소닉은 올 회계연도 상반기(4~9월)에 1465억엔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전년 동기 대비 67.8% 늘어난 규모다. 순이익도 작년 상반기 6851억엔 적자에서 1693억엔 흑자로 돌아섰다. 자신감이 붙은 파나소닉은 올해 순이익 목표치도 종전 500억엔에서 1000억엔으로 두 배 늘려 잡았다. 작년엔 7542억엔의 대규모 적자를 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비주력사업을 대폭 정리한 데다 엔화가치 하락 등으로 자동차 및 주택 관련 매출이 늘면서 올해 3년 만에 흑자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히타치의 실적도 개선됐다. 올 상반기 매출은 4조4706억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 불어났고, 영업이익은 6% 증가한 1734억엔을 기록했다. 히타치는 올 회계연도에 5000억엔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상 최대치였던 1991년의 5064억엔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 밖에 미쓰비시 도시바 후지쓰 등도 올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50%가량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 내 주요 가전 8개사의 이익 합계가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전 수준의 70% 정도까지 회복됐다”며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던 전자회사들의 실적이 바닥을 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반면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 효과로 반짝 실적이 개선됐을 뿐 경쟁력을 완전히 회복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부 기업은 오히려 실적이 뒷걸음질치는 추세다. 소니는 올 회계연도 영업이익이 1700억엔
“제 넥타이에 쓰인 글씨가 보이십니까?” 지난 21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 일본 최대 야당인 민주당의 시노하라 다카시 의원이 자신의 넥타이를 흔들어 보이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몰아붙였다. 넥타이에 깨알같이 박혀 있는 글씨는 ‘STOP! TPP’. 아베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반대한다는 뜻이었다. 시노하라 의원은 다시 질문했다. “이 넥타이를 어디서 만든 건지 아십니까?” 아베 총리가 멍하니 바라보자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야마구치현 농업협동조합(JA)입니다.” 야마구치현은 아베 총리의 선거구이고, 그곳의 주요 이익단체 중 하나가 JA다. 아베 총리의 아픈 구석을 제대로 찌른 것이다. 그러나 기세를 올리던 시노하라 의원은 의외의 발언으로 스스로 찬물을 끼얹었다. “총리는 제발 민주당의 전철을 밟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유민주당 정권을 공격하려는 건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민주당을 타박하려는 건지 모호했다. 아베 총리는 질의를 끝낸 시노하라 의원에게 다가가 넥타이를 만지작거리며 여유롭게 한마디했다. “좋은 넥타이네요.” 지난 15일부터 시작된 일본의 이번 임시국회엔 유난히 굵직한 쟁점이 많다. 소비세 증세부터 TPP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까지. 야당 입장에서는 공격할 ‘재료’가 풍성한 셈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창끝은 의외로 무디다. 소비세든 TPP든 모두 전임 민주당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이기 때문이다. 원전의 오염수가 줄줄 새는 것도 초기 대응에 실패한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자민당도 그런 민주당의 ‘원죄의식’을 안다. 그래서 더욱 기세등등하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도 여전히 60%대로 고공행진 중이다. 집단
“북한이 주요 돈줄을 잃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8일 “북한이 과거에 가장 의존했던 소득원 가운데 하나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로부터의 수입이 줄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금융회사 파산 등으로 위기를 맞은 조총련이 북한의 돈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동안 조총련은 재일 한국인 동포에게 친북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동시에 동포로부터 돈을 모아 북한에 송금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 인터넷 매...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동영상을 외무성 명의로 인터넷 공유사이트인 유튜브에 공개했다. 제목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에 관한 동영상’이며 올린 시점은 지난 16일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 정부는 즉각 항의하고 동영상 삭제를 요구했다. 독도에 대한 일본 아베 내각의 야욕이 갈수록 노골화하는 양상이다. 경색된 한·일 외교관계에 또 다른 암초가 등장했다는 우려도 높아졌다. 이번 동영상 제작은 일본 외무성이 주도했다. 외무성 웹사이트에도 이 동영상으로 바로 연결되는 페이지를 마련했다. ‘여러분, 다케시마를 아십니까’라는 멘트로 시작하는 이 동영상은 ‘17세기에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확립하고 이를 1905년 각의 결정을 통해 재확인했다’는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주장을 담았다. 여기엔 ‘한국이 1952년 이승만 라인을 긋고 국제법에 반(反)하는 독도 불법점거를 했다’는 주장과 함께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제안했으나 한국이 거부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끝부분에는 “(앞으로도) 계속 평화적인 방법으로 한국과의 영토문제를 해결할 생각”이라는 내레이션도 들어갔다. 이 동영상 조회 수는 23일 현재 1만건을 넘어섰다. NHK는 “일본 정부가 향후 이 동영상을 한국어를 포함해 총 10개 국어로 번역해 인터넷에 올릴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작년 12월 출범한 자민당 아베 정권은 자국민을 대상으로 독도와 관련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지난 8월1일 결과를 발표하는 등 줄곧 독도 영유권에 대한 주장을 강화해 왔다. 지난 2월엔 그동안 일본 시마네현이 주관해 오던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사상 처음 중앙 정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방사능 오염수 문제와 관련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원전 주변 해역 수질 조사를 요청, 다음달 조사단이 일본에 파견된다고 요미우리신문이 22일 보도했다. IAEA 조사단은 이르면 다음달 하순 일본에 입국해 원자력규제위원회와 도쿄전력의 해수 채취 지점 및 방사성 물질 측정 방법 등을 확인하고 구체적인 조사 방법을 검토한 뒤 내년 1월 이후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전망이다. 대신 한국 등 주변국과의 수질 공동 조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가 한국 등도 가맹한 국제기관인 IAEA의 수질조사를 수용하는 것으로 조사의 신뢰성을 국제적으로 충분히 알릴 수 있다고 판단해 한국 등과의 공동 조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한편 일본 수산청은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현 등 일본 8개 현의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것과 관련, 이르면 이달부터 수산청 홈페이지에 일본 수산물 방사성 물질 검사 결과를 한국어와 중국어로도 올리기로 했다. 수산청은 현재 검사 결과를 일본어와 영어로만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올 들어 4% 안팎을 오르내리던 일본의 분기별 경제성장률이 3분기(7~9월) 들어 1%대로 급락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엔화 가치 하락에도 불구하고 수출 기업들의 실적이 기대만큼 개선되고 있지 않은 것이 성장률 하락의 주요 배경이다. 일본 민간연구소인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는 22일 “일본의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연율 기준으로 1.6%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분기(4.1%)와 2분기(3.8%)에 비해 절반 이하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연구소는 “소비세율 인상에 앞서 가수요가 생긴 덕에 내수 시장은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수출전선은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지표상으로도 수출 부진은 뚜렷하다. 재무성이 발표한 9월 수출수량지수는 91.6으로 전년 동월 대비 1.9% 낮아졌다. 지수가 하락한 것은 지난 6월 이후 3개월 만이다. 일본의 최대 수출처인 아시아시장의 지수 하락 폭은 4.0%에 달했다. 수출수량지수는 2010년을 100으로 놓고 환산한 수치다. 일본은행이 계절적 요인을 감안해 산출하는 실질수출지수도 3분기에 전기 대비 1.1% 하락했다. 수출시장의 이상 조짐은 일본 정부가 최근 발표한 무역수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의 지난달 무역수지는 9321억엔의 적자를 냈다. 적자는 작년 7월 이후 15개월 연속으로 사상 최장 기록이다. 이로 인해 2013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 상반기(4~9월) 무역수지 누적 적자 규모도 4조9891억엔으로 불어났다.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엔저(低)로 수입 연료 가격이 높아진 가운데 수출마저 예상보다 부진하면서 적자 폭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흥국 시장의 경
대기업마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세상이다. 비즈니스맨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블랙베리는 이미 매물로 나왔고, 노키아 소니 파나소닉 등 전설적인 전자기업들도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잘나가던 기업의 발목을 잡은 요인은 무엇일까. 22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다카하시 마사야스 메이지대 경영대학원장은 ‘스토리텔링 부족’이라는 의외의 답을 꺼냈다. 경영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직원들에게 하고자 하는 의욕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CEO)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필수적이라는 진단이다. ▷기업이 스토리텔링과 무슨 관계인가. “어느 조직이든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소통하지 않는 조직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기업도 경영을 하는 ‘조직’이다. 지금까지 경영학에서는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다루면서 정보의 전달 측면에만 주목했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공유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성공한 기업들의 사례가 누적되면서 또 다른 잣대가 등장했다. 그게 바로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조직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소통한다. 일상적인 잡담이라도 대화는 대부분 이야기로 구성된다. 오스트리아의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도 말하지 않았나. 인간의 언어는 본래 문자가 아니라 이야기라고. 지식이나 정보는 문서의 형태가 아니라 ‘스토리’에 담았을 때 전달력이 높아진다. 인간의 이런 특성은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든 기업은 지향점이 있다.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도 대체로 명확하다. 기업의 구성원들도 숙지하고 있는 사항이다. 다만 실천이 동반되지
“형이 안 가면 나라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일본 외무성 부대신이 지난 19일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기시 부대신은 “중의원으로서 지금까지와 마찬가지의 마음으로 참배했다”며 “(아베 총리와는 참배에 관해) 특별히 얘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의원 신분을 내세웠지만 현직 외무성 부대신이 야스쿠니를 참배했다는 점에서 주변국을 배려하지 않은 행동이라는 비판이 예상된다. 아베 총리의 친동생이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형을 대신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크다. 기시 부대신은 외가에 양자로 입적한 탓에 아베 총리와 성이 다르다. 아베 총리도 임기 내 참배를 암시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키웠다. 그는 이날 후쿠시마현을 방문한 자리에서 “제1차 집권기(2006~2007년) 때 참배하지 못한 것이 극도의 통한(痛恨)이라고 말한 마음가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지난달 중순 도쿄 중심 지역인 신주쿠. 일본 대형 부동산투자회사인 노무라부동산이 대규모 아파트 분양에 나섰다. 1차 판매 물량은 총 482가구. 올 들어 도쿄에서 실시된 아파트 분양으로는 규모가 가장 컸다. 1차 판매가 부진할 경우 2차와 3차 분양 물량을 대폭 줄일 예정이었지만 기우였다. 분양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모든 물량이 팔려 나갔다. 로열층 가격이 1억7000만엔(약 20억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 아파트 단지였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일본 부동산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덕분이다. 지난달 아베 총리가 소비세 증세 방안을 최종 확정한 것도 부동산 시장엔 호재로 작용했다. 세금이 오르기 전에 미리 집을 마련해 놓자는 가수요까지 붙은 것이다. 일본 민간 조사회사인 부동산경제연구소는 17일 “지난 한 달 동안 도쿄 등 수도권 지역의 신축 아파트 판매 건수는 총 5968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 77.3%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대지진이라는 특수 요인이 반영됐던 작년 4월을 제외할 경우 1994년 9월(86%) 이후 19년 만에 최대 증가 폭이다. 수도권 신규 아파트 판매 건수는 지난 5월 이후 5개월 연속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최종 계약률도 83%에 달했다. 일본 부동산 시장에서는 계약률이 70%를 넘을 경우 호황이라고 판단한다. 부동산 열기는 수도권 이외 지역으로도 확산되는 추세다. 오사카 고베 등 간사이 지역의 지난달 아파트 판매 건수는 전년 동월 대비 85% 증가했다. 지난달 아파트 판매 건수가 급증한 주요인은 소비세율 인상이다. 주택도 상품이라 소비세가 붙는다. 일본 정부는 내년 4월부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사진)가 야스쿠니신사의 추계 예대제(가을 제사) 참배를 보류했다.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 마찰을 우려한 조치다. 교도통신은 17일 “아베 총리가 추계 예대제 기간을 맞아 ‘마사카키’라는 공물을 이날 신사에 바쳤다”고 보도했다. 직접 참배 대신 공물 봉납이라는 차선책을 선택한 것이다. 야스쿠니의 추계 예대제는 17일부터 20일까지 나흘간 열린다. 이번에 봉납된 마사카키라는 공물은 신사 제단에 바치는 화분 형태의 제사 도구를 말한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야스쿠니의 춘계 예대제 때도 이 공물을 봉납하는 것으로 참배를 대신했다. 지난 8월15일 패전일에는 ‘다마구시(비쭈기 나무에 흰 종이를 단 공물)’의 비용을 내고 직접 참배는 하지 않았다. 요미우리신문은 “야스쿠니 참배가 외교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고 태풍 26호에 대한 재해 대응이 우선이라는 점 등을 감안해 이 같은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한국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동안 아베 총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에게 존숭(尊崇)의 뜻을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외교 문제화된 상황에서 갈지, 가지 않을지를 말하는 것은 삼가겠다”고 확답을 피해 왔다. 아베 총리와 달리 내각의 일부 각료는 이번 예대제 기간 중 직접 참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지난봄 예대제와 패전일에 야스쿠니를 참배했던 신도 요시타카 총무상과 후루야 게이지 납치문제 담당상은 이번에도 참배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일본 정부가 내년부터 외환보유액의 일부를 민간 투자회사에 위탁해 운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그동안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도맡아 운용해 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은행이 민간 투자회사나 신탁은행과 계약을 체결해 외환보유액 일부를 위탁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13일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특별회계개혁법안을 15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외부 위탁 물량은 당분간 외환보유액의 수%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지난달 말 기준 일본 외환보유액이 1조2730억달러라는 것을 감안할 때 많게는 수백억달러 규모의 투자 물량이 신규로 일본 민간 금융시장에 풀리는 셈이다. 일본 정부가 외환보유액의 민간 위탁을 추진하는 근본 이유는 일본은행이 단독으로 주무르기엔 너무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2003년 6000억달러 수준이던 일본 외환보유액은 최근 10년 새 두 배가량으로 증가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 정부의 외환 시장개입 과정에서 달러 매입 물량이 크게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급격한 엔화 가치 상승(엔고)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대거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이는 바람에 외환보유액이 급증했다는 설명이다. 일본은행이 외환보유액의 일부를 외부에 맡기더라도 안전 위주의 자산운용 패턴은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일본은행은 전체 외환보유액 가운데 90%가량을 유동성이 높고, 부실 위험이 적은 미국 국채 등 안전 자산에 묻어두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민간 위탁 물량도 대부분 채권 위주로 운용될 전망”이라고 전했다.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유니클로’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일본 저가 의류체인 패스트리테일링의 연간 매출이 일본 의류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1조엔을 넘어섰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패스트리테일링은 “작년 회계연도(2012년 9월~2013년 8월) 매출이 전년 대비 23.1% 늘어난 1조1430억엔으로 최종 집계됐다”고 11일 발표했다. 전 세계 의류업체 중에서는 스페인 자라(2조1000억엔)와 스웨덴 H&M(1조8600억엔), 미국 갭(1조5800억엔)에 이어 4위에 해당한다. 패스트리테일링의 작년 회계연도 영업이익은 1329억엔으로 전년도에 비해 5.1% 증가했고, 순이익은 26.1% 불어난 904억엔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사상 최대 규모다. 일본 내에서보다 해외에서의 매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자국 내 매출은 전년 대비 10.2% 늘어난 반면 해외 매출은 64% 급증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에 점포 수를 대폭 늘린 전략이 먹혀들었다. 유니클로의 해외 점포 수는 446개로 최근 1년간 154개 늘었다.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사진)은 기자회견에서 “해외 시장 확대를 통해 2020년까지 매출을 5조엔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며 “1조엔 돌파에는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65세가 되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던 과거의 발언은 철회했다. 야나이 회장은 내년 2월에 65세가 된다.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일본 정부가 1996년 한국이 추진하던 유엔 차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막아 달라며 미국을 상대로 적극적인 ‘로비’를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8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의 비밀해제 문건에 따르면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의 한 실무자는 외교전문에서 “일본은 한국이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결의안 제출을 시도하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실무자는 그러면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일본 대사와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이 결의안을 제출하면 우리는 (국무부의) 한국, 일본 담당자들과 함께 미국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3월2일 작성된 외교전문에도 “올브라이트 대사가 일본 대사와 뉴욕에서 만날 예정”이라면서 “일본 대사는 피터 타노프 국무부 차관, 윈스턴 로드 동아태 담당 차관보와도 만나고 싶어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당시 한국이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일본 정부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조직적인 로비를 벌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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