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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계 최대 FTA 'RCEP' 타결, 경제 영토 더 넓힐 기회다세계 인구의 절반, 세계 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사실상 타결됐다. 인도가 합의를 보류했지만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동의해 내년 최종 타결과 서명 기대가 높아졌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수출에 타격을 받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시장 다변화와 ‘신남방 정책’ 추진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RCEP 협정문에는 눈길을 끄는 대목이 많다. 전자상거래 규범, 한류 콘텐츠 확산에 유리하게 작용할 지식재산권 규범 등이 그렇다. 국가마다 다른 원산지 규정 때문에 애로를 겪어온 국내 기업들로서는 통합 원산지 기준 마련도 환영할 부분이다. 상품·서비스·투자시장 개방과 인력 이동은 보호무역주의 위협 속에서 무역의 새로운 활로를 찾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한국이 경쟁력을 높여야 할 분야도 물론 있다. 농업이 그렇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농산물은 RCEP 국가에 수출하는 양보다 수입하는 양이 더 많지만, 그것은 정태적인 분석일 뿐이다. RCEP을 계기로 한국 농업이 혁신을 한다면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갈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RCEP으로 예상되는 또 다른 기대효과도 있다. RCEP 타결 소식에 미국 국무부가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관여 의지를 재확인한 데서 보듯이 역내 경제질서 변화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누그러뜨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중국과 FTA를 맺고 있지만 다자무역체계라는 규범이 더해지면 사드 보복 같은 중국의 부당한 행위도 제약받
[사설] '불치 포퓰리즘' 중병 깊어가는 아르헨티나, 남의 일 아니다아르헨티나 대선에서 ‘페론주의’ 부활을 내세운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가 이겼다. 4년 전 ‘좌파 포퓰리즘 심판’으로 집권했던 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 대통령은 경제를 살려내지도, 좌편향된 국가 시스템을 개혁하지도 못한 채 물러나게 됐다.경제난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에서 페론주의 부활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5년 12년 만에 우파가 집권했을 때 ‘포퓰리즘 심판’이라고 했던 세계 언론의 평가를 돌아보면, 70년 된 ‘아르헨티나 병’이 얼마나 깊고 무서운 것인지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빚더미를 물려받았던 우파 마크리 정부는 공공부문 축소와 긴축재정, 보조금 감축, 친(親)시장 정책을 시도했다. 하지만 긴축도, 구조개혁도 고통스러웠다. 개혁에 소극적인 국민과 더불어 성장력·경쟁력이 고갈된 경제를 4년 만에 살려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원의 저주’라는 말 그대로, 목축·농업 등의 방대한 자원을 경제 살리기에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했다. 시스템 붕괴는 그만큼 무섭다. 이번 선거로 부통령이 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의 8년 집권기(2007~2015년) 때만 돌아봐도 공무원 수는 두 배로 늘어났고, 지급 조건 완화로 연금 수급자도 두 배로 증가했다. 500만 대의 노트북 컴퓨터를 무상 지급하는가 하면, TV 축구방송 중계료를 세금으로 내주기까지 했다. 현금 살포성 복지, 극심한 저출산의 와중에 미래 세대 부담을 키우는 재정만능주의 경향의 우리 정부와 별반 다를 바 없다.1946년 후안 페론 집권 이래 지속된 마약 같은 포퓰리즘이 이 나라 국민을
[사설] 위기의 자동차업계, '바야돌리드의 결단'이 필요하다자동차업계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판매 부진과 생산 절벽으로 생존 자체가 불확실해지고 있어서다. 쌍용자동차는 3분기 1052억원의 영업손실로 11분기 연속 적자에다 지난 10년 새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수요 감소 속에 주력인 SUV 판매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임원 20% 감축, 순환휴직 등 노사가 비상한 각오를 다졌지만 ‘판매 부진→적자 누적→연구개발(R&D) 차질’의 악순환으로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노조 리스크’까지 겹친 르노삼성자동차와 한국GM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르노삼성은 올 1~9월 생산량이 전년 동기 대비 24.9% 급감했고, 기존 모델 단종으로 판매 부진 장기화가 우려되고 있다. 7년 만에 희망퇴직을 받고 있지만 르노 본사의 물량 배정이 계속 미뤄져 앞날이 불투명하다. 한국GM도 올 1~9월 생산량이 14년 만에 최저다. 5년간 누적 적자가 4조4000억원에 이르는데 올해도 흑자전환은 난망이다. GM 본사가 ‘파업 지속 시 물량 감축’ 경고를 내놨고, ‘철수설’도 다시 고개를 든다.자동차업계가 이제는 생존이 절대 과제가 돼버렸다. 경기침체의 긴 터널에 갇혀 ‘미래차 태풍’까지 맞게 된 마당에 낮은 생산성, 고비용 구조에다 수시로 파업하면서도 회사가 유지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혁신 없이는 회사도, 일자리도 지킬 수 없다.숱한 부침을 겪은 해외 자동차공장 중에는 반면교사도 있고, 모범 사례도 있다. 호주에선 첨예한 노사 대립 속에 해외 업체들이 모두 철수해 연간 18조원의 산업과 5만 개 일자리가 사라졌다. 반면 르노가
[사설] '조국 파동'이 남긴 과제…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조국 법무부 장관이 35일 만에 물러났지만 우리 사회에 남긴 상처가 너무 크다. 지난 8월 9일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 두 달 넘게 연일 제기된 그와 가족을 둘러싼 의혹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본인과 직계가족, 모친, 형제까지 연루된 편법 탈법 불법 의혹들은 ‘조국 블랙홀’이 돼 국회와 대의민주주의 정치까지 마비시켰다. 성난 시민들은 거리로 밀려나왔고 지지층의 옹호집회까지 열리면서 온 나라가 극심한 국론 분열에 빠져들었다. 경제와 안보에 걸친 ‘복합위기’의 경고음이 갈수록 커지는 와중의 사회적 분열과 대립의 한복판에 그가 있었다.그런 상황에서도 좀체 물러날 것 같지 않았던 그가 갑자기 사퇴하겠다고 나섰다. 청와대까지 여론에 맞서며 그를 감싸왔던 것을 돌아보면 만시지탄이라고 하겠지만, 전격 퇴진 배경에 의구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끝까지 가겠다”고 했던 그의 생각을 바꿀 일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기라도 한 것인지 궁금하다.검찰이 추상같은 법의 잣대로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은 채 수사를 마무리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졌다. 행여라도 예전 검찰처럼 ‘정무적 판단’을 하고 적당한 선에서 수사의 모양새나 다듬으려 하다가는 존립 기반을 잃게 될 것이다. 조씨가 물러나며 던진 과제가 ‘검찰 개혁’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조씨의 ‘사퇴의 변’은 그대로 문재인 정부의 숙제가 됐다. 특히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언급에 동의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정책으로 젊은 세대를 살필 책
주가와 환율, 금리와 관련해 ‘마지노선(Maginot Line)’이란 표현이 자주 쓰인다. 이 말이 원래 군사 개념이었던 것을 돌아보면 그럴싸할 때가 많다. 주식이든 외환이든 자본시장 최전선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언제, 어디서 또 뭐가 터질지 모르는 하락장에서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수시로 변하기도 한다. “바닥(마지노선)인가 했더니 지하실이 있고, 지하실이 진짜 마지노선인가 했더니 지하...
[사설] 자영업자까지 산재보험 확대, 재원은 누가 책임지나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산업재해보험 가입 요건을 대폭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그간 제한적으로 허용돼온 1인 자영업자도 업종에 관계없이 모두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하고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등 특수형태근로 종사자(특고 종사자)와 중소기업 사업주까지 적용 대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정부는 이번 조치로 특고 종사자에서 27만4000명, 중소기업 사업주 쪽에서 136만5000명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고 추산했다. 가입자 문턱을 한꺼번에 많이 낮춰 ‘산업재해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산재보험 제도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지게 됐다. ‘개인사업자냐, 근로자냐’는 해묵은 논란이 반복돼온 특고 종사자는 물론 사업주에게까지 가입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산업현장의 각종 재해로부터 더 많은 종사자를 보호하고, 산재보험의 사각지대도 최대한 줄여나가자는 것 자체를 나무라기는 어렵다. 하지만 제도의 지속 가능성이나, 혜택 보는 집단이 갑자기 늘어날 때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하는 등의 현실적 문제에 부딪히면 얘기는 달라진다. 늘어나는 보험금 지출 부담은 먼저 기업과 기존 가입자에게 전가될 공산이 크다. 결국 재정 투입이 불가피해질 것이며, 산재보험료를 아예 정부가 내주자는 선심 정책도 나올 가능성이 크다. 사회보험의 속성이 그렇기도 한 데다 한 번 도입되고 시행되면 빚을 내서라도 계속 굴려가는 게 ‘한국 복지제도의 전통’으로 굳어진 까닭이다.복지 설계가 추가될 때마다 기업 부담이 커지고 재정 지출도 늘어나게 된다. 산재보험 적용을 확대하더라도 충분한 여론
[사설] 1억 배상판결난 악성 댓글…자율정화 없이는 '인터넷 자유'도 없다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거인을 비방하는 댓글을 반복해 쓴 네티즌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났다. ‘사이버 테러’ 격인 ‘악플’을 법원도 무시 못 할 범죄로 본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특정인을 겨냥한 인터넷의 악성 댓글은 대면의 언어폭력 못지않은 공격이다. 익명 공간이 넘치는 현대사회의 사회 병리적 현상으로 봐야겠지만, 한국에서는 유난히 심하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번 재판의 여덟 명 피고인처럼 집단으로 무리지어 한 개인을 공격하는 일도 흔하다. 집단 린치는 온라인상이라고 해서 경시될 수는 없다. ‘왕따 문화’와도 닮은 이런 집단 공격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한 미성숙 사회임을 보여주는 현상이다.업무와 휴식 등 일상생활 모든 면에서 온라인, 사이버 공간의 비중이 커져가는 게 현대사회다. 그만큼 인터넷에서의 절제와 에티켓, 상호존중 문화는 중요하다. 명예훼손이라는 형법상 범죄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상식의 문제다. 하지만 정치권이 더 앞장서는 선동 풍조, 양보·타협·경청의 가치를 삼켜버린 진영논리의 범람, 남녀별·연령별 집단이익 추구 현상 등으로 인터넷의 언어는 거칠기만 하다. 논리 또한 극단을 오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플’ 캠페인을 조롱하는 악플, 무제한 자유의 댓글 문화는 그런 데서 저급 경쟁을 부채질해왔다.이제 달라져야 한다. 남녀노소, 좌우보혁 할 것 없이 모든 네티즌이 자율정화로 기본 예의에 충실해야 인터넷의 익명성이 주는 자유와 편리를 계속 누릴 수 있게 된다. 인신공격에 허위주장과 가짜뉴스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소 입장에서 보면 투우는 전혀 다른 게임이 된다. 제일 먼저 ‘피카도르’가 등장해 소의 목에 창을 찔러대며 힘을 뺀다. 그 다음 ‘반데릴레로’가 나와 어깨에 작은 창 여러 개를 꽂고 빠진다. 소의 체력이 떨어지고 공포심이 극에 달할 때 마지막 투우사 ‘마타도어(matador)’가 나타난다. 붉은 천과 화려한 동작으로 지친 소를 더 현혹시키다 결정적 순간에 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을 꼽는다면 ‘가짜뉴스(fake news)’일지 모른다. 툭하면 트윗을 날리며 직접 여론전을 펴는 그는 불리한 기사가 나오면 가짜뉴스라고 몰아세운다. 트럼프-힐러리 클린턴이 대결한 2016년 선거를 계기로 가짜뉴스가 사회적 관심사가 됐던 것도 기억할 만하다. 일상화된 SNS는 가짜뉴스의 생성-복제·재생산-전파·확산에 좋은 토양이 됐다. 트럼프 대...
[사설] 헛바퀴 돌린 '9.13 부동산대책' 1년…시장 이기는 정부 없다‘9·13 부동산대책’이 나온 지 1년이 됐지만 주택시장은 여전히 안정적이지 못하다. 문재인 정부가 여덟 번째로 내놓은 집값 대책이었는데, 제대로 효과를 냈다고 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서울 일부 지역의 집값은 더욱 올라 양극화가 심화된 데다, 신규 물량 부족으로 8월 이후 전세가격도 꿈틀거린다는 소식이 들린다.9·13 대책은 세제와 금융을 중심으로 강력하고 촘촘한 정부 대응책이 두루 망라된 것이었다. 종합부동산세 및 1주택자 양도소득세 강화, 강력한 대출 규제, 호가(呼價) 담합 엄정 대처, 자금출처 세무조사 확대 같은 내용을 돌아보면 말 그대로 ‘종합대책’이었다. 정부가 유도해왔던 ‘다주택자의 임대사업자 전환’ 정책에서는 세제 혜택을 확 줄여 “정책이 일관성을 잃었다”는 비판까지 받으며 인위적으로 수요 억제에 총력을 기울였다.공급 확대 계획도 없지는 않았다. 3기 신도시 계획이 9·13 대책 때 발표된 ‘수도권 내 공공택지 공급 확대’ 방안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도 수요는 분산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서울 안 특정지역으로 쏠림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앞서 정부가 정책으로 조장해 온 이른바 ‘똘똘한 한 채 보유 전략’의 파장이 그만큼 컸다.무엇이 부동산시장을 계속 불안하게 하고 있는가. 지금쯤 정부는 9·13 대책은 물론 현 정부 집권 이후 일련의 부동산 대책에 대한 ‘검증 리스트’를 만들어 성과와 부작용을 종합 점검해보기 바란다. ‘관변 전문가’들을 배제하고 객관적 검증팀을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 침체에 빠져든
전 세계의 도시거주 인구비율은 2006년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2050년에는 66%에 달할 것이라는 게 유엔 전망이다. 1800년까지 1000년간 2%, 100년 전 15%였던 것과 비교하면 ‘도시화율’의 속도가 놀랍다. 한국은 더욱 극적이다. 1960년 39%에서 2015년에 92%가 됐다. 국토의 17%에 인구, 주택, 차량이 몰려있다. 도시화는 경제와 산업, 과학기술의 발전과 궤를 함께한다. 산업화·...
아르헨티나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은 이 나라 역사에서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기업인 출신인 우파 마크리는 2015년 ‘경제 살리기’를 내걸고 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 아르헨티나는 물가가 급등하고 외환시장은 불안한 와중에 인구의 32%에 달하는 빈곤층이 끼니를 걱정하고 있다. 또다시 국가부도 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과 채무조정 협상을 진행 중이다. 마이너스 경제성장률...
[사설] 1인당 115만원씩 빚 늘리는 내년 예산, 얼렁뚱땅 심의 안 된다정기국회가 개원은 했지만 순탄치 않아 보인다. 어제 여야 원내대표들이 오는 17일부터 교섭단체 대표연설, 국정감사, 정부 시정연설 등의 일정에 합의했다. 하지만 ‘조국 사태’로 여야 관계가 꼬일 대로 꼬인 판에 이 일정이 지켜질지, 그보다 추상같아야 할 정기국회 본연의 모습을 보일지 걱정이 앞선다.가장 큰 관심사는 513조원의 ‘초(超)슈퍼 예산안’에 대한 철저한 심의 여부다. 의혹투성이에 결점이 속속 불거지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혹을 확실하게 밝히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국회의 역할과 책무가 인사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정기국회를 9월로 못 박고 100일씩이나 열도록 법에 규정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여야 간 정치적 쟁점에 대한 논쟁과 협상을 하더라도 국정감사와 법안처리 등 국회 고유의 업무는 이때 집중해 수행하라는 취지일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게 정부예산 심의다.올해 예산안 심의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정부지출은 팽창일변도로 확장돼왔다. 그 결과 ‘재정중독’ 현상이 심해졌고, 고용·복지·보건 분야를 중심으로 한 선심성 지출은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다. 관제(官製) 일자리 만들기, 급등한 최저임금 뒷수습 차원의 중소사업자 지원 등을 비롯해 효과도 검증 안 된 현금 살포성 지출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회가 이 모든 정책의 모순점을 낱낱이 규명하고, 관련 정부지출의 효과 검증도 정기국회에서 해야 한다.내년에 빚까지 끌어들여 513조원을 지출하려면 국민 한 사람당 실질 국가채무는 766만7000원꼴이 된다. 순수 국채발행
지난달 국내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나오면서 경제주체들이 긴장하게 됐다. 곳곳에서 ‘D(디플레이션)의 공포’라는 표현의 빈도가 높아진다. “가보지 않은 나라가 이런 불황을 말하는 것인가”라는 비판 섞인 빈정거림도 들린다. 그래도 디플레이션이나 경기침체(‘R의 공포’)는 굳이 분류하면 ‘부자병(病)’에 가깝다. 아프리카 최빈국들이나 중남미 좌파벨트처럼 높은 인...
‘미·중 무역전쟁’에서 공격자는 처음부터 미국이었다. 중국은 가드를 올린 권투선수처럼 늘 수세적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맹펀치는 옛 소련이나 1985년 ‘플라자합의’ 즈음 일본을 때리던 미국을 연상케 할 정도다. 여러 이유와 노림수가 있겠지만 최근 미국 경제가 상당히 좋았다는 사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 안정이 내부의 지지로 연결되면서 외교, 외치에 힘을 얻은 셈이다. ...
[사설] "성장목표 달성 어렵다"며 내놓는 해법이 재정 살포인가내년도 정부 예산 규모가 윤곽을 드러냈다. 다음주 국무회의 의결을 앞두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513조원대 수준으로 편성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초(超)슈퍼 예산’이라는 올해보다 9% 이상 많다. 올해 9.5% 증가에 이어 2년 연속 과도한 팽창 재정이다.불황기에는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 투자를 유도하고 소비심리를 자극하면서 성장 유망 분야도 키우는 경기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경제가 성장의 선순환 구조에 들어가게끔 하면서 성장 잠재력도 키우도록 효율적으로 쓰는 게 관건이다.문재인 정부 들어 급팽창하고 있는 재정이 그렇게 쓰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7월 중 60세 이상 취업자가 37만7000명 늘어난 덕분에 전체 고용통계가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대부분 일자리가 세금을 퍼부어 급조한 ‘단기·공공 알바’였다.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해가며 돈을 풀고 있는데도 고용시장은 점점 더 곪아가고 있다. 중앙과 지방이 경쟁하듯 쏟아내는 복지 프로그램의 누수 문제도 심각하다. “효과도 확인하지 않은 채 선거를 겨냥해 헛돈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납세자는 화수분이 아니다” “내년에도 이어지는 적자국채는 누가, 어떻게 갚을 건가” “인구는 급감하는데 자녀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세대착취’를 멈춰야 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극대화해 정부 신뢰를 높이되 궁극적으로 재정 지출을 줄이면서도 경제를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 경제 전반에 걸친 규제 혁파와 구조 개혁
[사설] 금융시장 후진성 드러낸 DLS사태, 책임소재 철저히 따져야해외 금리에 크게 영향받는 ‘금리연계형 DLS(파생결합증권)’ 상품의 불완전 판매 논란이 커지고 있다. 원금 전부를 잃을 수도 있는 이런 고위험 상품이 어떻게 ‘돈 장사’를 보수적으로 하는 시중은행에서 대거 판매됐는지 선뜻 이해가 안 된다.문제의 이 파생상품에 개인투자자 3654명의 투자금 7326억원이 물려 있다. 1인당 2억원꼴인데, 독일 10년물 국채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상품은 이미 원금 대부분이 손실되는 구간에 들어섰다. 영국 파운드 등의 이자율에 연동된 상품도 50% 이상 원금 손실이 예상된다고 한다. 금융감독원은 조만간 설계한 증권사와 판매 은행 등을 대상으로 정밀 검사를 벌일 계획이다.1차 쟁점은 ‘불완전 판매’ 여부일 것이다. 해당 상품의 고위험성이 금융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설명됐느냐가 초점이다. ‘정보 비대칭’의 문제는 금융뿐 아니라 어떤 시장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구조적 취약점이다. 그런 만큼 판매 은행이 고지의무를 이행했는지 감독당국이 정확·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정보 비대칭이 투자자의 도덕적 해이나 자기책임의 원칙까지 덮을 수는 없다. 금리 파생상품에 2억원씩 투자할 정도라면 ‘고수익=고위험’이라는 기본원리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독일 국채 금리가 -0.7% 아래로 떨어진 게 불가항력의 상황인지, 글로벌 저금리 국면에서 예상가능한 현상으로 봐야 할지 등은 전문가도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일이다.새로운 상품을 다루는 설계사·운용사·판매사는 물론 투자자들도 더 긴장하고 철저해야 한다. ‘키코(KIKO) 사태’,
에너지·식량자원이 풍부하면 경제성장은 오히려 둔화되고 국민 삶도 떨어지는 것으로 관찰돼 왔다. 이른바 ‘자원의 저주’다. 민주주의 수준은 낮고, 형평과 분배도 좋을 리 없다. 생산의 대부분을 천연자원에 의존하면서 제조업과 서비스업 발전이 더딘 게 저개발의 악순환에 빠지는 주요인으로 지적된다. 영토 대국 브라질도 그런 나라로 꼽혀 왔다. 한반도 면적의 40배에 육박하는 땅에서 나는 사탕수수 커피 같은 농산물 비...
축문(祝文)은 제사 의식에 필수다. 하지만 한문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한자로 된 축문이 암호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제례 축문에 ‘청작서수(淸酌庶羞)’라는 대목이 있다.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이란 뜻이다. 우리 전통주 청주(淸酒)는 이렇게 ‘맑은 술’이란 의미로 중의적으로도 쓰인다. 쌀과 누룩, 물이라는 재료는 같지만 맑은 부분을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낸 게 탁주(濁酒, ...
록펠러센터 카네기홀 포드박물관 밴더빌트대…. 미국에는 저명한 기업인 이름을 이어가는 이런 명소가 많다. 세계인을 불러들이는 미국의 풍성한 문화유산이다. 최강국 미국의 저력이 나오는 곳일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는 ‘슈퍼파워 미국’의 힘의 근원도 기업과 기업가정신을 빼놓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업가정신은 한때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한강의 기적’에서도 핵심적...
가상화폐에 대한 설명과 견제 논리로 ‘화폐의 타락’이 있다. 돈이 돈 구실을 못해 나타난 것이라니, ‘화폐가치의 추락’이라는 의미다. 비슷한 얘기는 부동산시장에도 있다. “집값이 오른 게 아니라 돈 가치가 떨어진 것”이라는 진단이다. 화폐 자체를 사고 팔리는 특수한 재화라고 본다면 일리 있다. 실제로 유통 화폐가 늘어났고 돈값(금리)도 싸졌다. “집값이 내린 지역은 어떻...
[사설] 산업 구조개혁 미룬 대가가 점점 커지고 있다지난 6월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13.5% 감소했다. 7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다. 세계 교역이 위축된 가운데 반도체 수출 단가 하락이 이어진 데다 수출 2위 품목인 석유화학까지 큰 폭으로 감소한 탓이라는 분석이다.정부는 수출상황점검회의를 열어 무역금융 집중 지원 등의 대책을 논의했지만, 수출 부진을 반전시킬 근본 처방이 될지 의문이다. (…) 반도체 탓, 중국 탓으로만 돌릴 게 아니라 새로운 수출 품목을 키우지 못한 구조적인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10대 수출품목에 변화가 거의 없다. 수출 주력품목의 세대교체 실패가 대외 여건이 취약해지면서 수출 부진의 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산업 구조개혁을 미룬 대가는 수출 부진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과 관련한 주요 소재들에 대해 신고 절차 강화 등 까다로운 규제를 들고나왔다. 핵심 소재를 일본에 의존하는 한국 산업의 약점을 겨냥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우리나라 제조업의 부가가치율은 선진국(30% 이상)보다 낮은 25% 수준에서 정체해 있다. 핵심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글로벌 중소기업 육성 등을 외쳐왔음에도 해외 의존도가 높은 탓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의 일본 소재 의존도 축소 우려를 제기했지만, 일본 정부가 이런 조치를 내놓은 것은 한국 산업구조가 그만큼 취약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선진국들이 하나같이 소재·부품 강국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미·중 무역전쟁 휴전이 잠시 안도감을
유럽의 격변기 1980년대 폴란드의 ‘자유연대노조’를 이끌었던 레흐 바웬사는 1990년 대통령이 됐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노조위원장 출신에 노벨평화상 수상자였지만 연임에는 실패했다. 1995년 퇴임 때 지지율은 0.6%. 경제실패 영향이 컸다. 어디서나 정치인의 지지율이란 게 뜬구름 같은 것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국민 스타’의 퇴임 지지율 0.6%에 특별히 주목했던 정치인이...
[사설] "불확실성 한층 커졌다"는 경제, 통화·재정만으론 못 살린다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또 금리 인하 가능성을 내비쳤다. ‘미·중 무역갈등 심화, 반도체 경기 침체’를 다시 거론하며 불과 열흘 남짓 만에 같은 메시지를 시장에 재차 던진 것이다. 평소 ‘선(先) 구조개혁’을 강조해온 이 총재의 그제 언론 간담 내용을 보면 금리 인하의 가능성이 아니라 필요성에 무게가 실렸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어떻든 “경제 어려운 것 왜 모르겠나”는 그의 반문처럼 우리 경제에 안전지대가 없어지고 있다.“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는 이 총재의 총평이 아니더라도 우리 경제가 계속 나빠지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투자와 성장, 생산과 소비, 고용과 세수 등 전방위로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국내 진단뿐 아니라 나라 밖 전문기관들 전망에도 예외가 없다. 악화일로의 지표나 통계는 다시 언급하기도 부담스럽다. 청와대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을 전격 교체한 것이나 통상 6월 말인 기획재정부의 하반기 경제전망이 연기된 것을 보면 정부도 최소한의 위기의식은 갖고 있는 것 같다.문제는 이 난국을 어떻게 풀 것인가다. 한은 입장에서는 금리카드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기 호조에도 인하 쪽으로 방향 잡힌 미국 금리나 안정적인 국내 물가도 금리 인하를 부추길 수 있다. 하지만 장기간 연 1%대 저금리의 부작용도 잘 봐야 한다. 자본 이탈 외에 늘어나는 가계부채, 급증하는 부실기업의 처리 문제까지 봐야 한다. 돈이 돈 구실을 못하면서 저축심리가 사라지고 애로를 겪는 은퇴자도 적지 않다. 꿈틀거리는 일각의 부동산에 대해 “집값이 오른
에콰도르는 한반도 1.3배 크기의 태평양 연안국이다. 스페인어로 ‘적도(Ecuador)’가 그대로 국명이 됐다. 독특한 해양생태계로 유명한 갈라파고스 제도가 이 나라 영토다. 세계의 흐름과 따로 가는 한국만의 규제행정을 비판할 때 인용하는 그 갈라파고스다. 고원도시 키토가 수도지만, 경제의 중심은 커피 수출항 과야킬로 알려져 있다. 에콰도르 최대 도시 과야킬에서 뒤늦은 부고 한 통이 국내로 전해졌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
[사설] '붉은 수돗물' 방치한 채 현금 살포하는 지자체들, 정상 아니다인천 지역 1만여 가구와 150개 학교를 불안하게 만든 ‘붉은 수돗물’ 사태의 파장이 심각하다. 인천광역시의 늑장행정과 뒷북대책 비판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게 근본 문제는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편향되고 준비성 없는 예산 운용 실태, 좀체 바뀌지 않는 노후 인프라에 대한 국가 차원의 안전관리 미비 같은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다.인천의 붉은 수돗물은 예견된 사고라고 봐야 한다. 서울에서도 기본 내구연한인 30년을 넘은 상수도관이 31.5%(2017년)에 달하는 게 현실이다. 수시로 수도관이 터지고 녹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천에 가려졌지만, 같은 시기 전북 익산시 수도에서도 녹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인천시도, 익산시도 낡은 관 교체를 위한 시 예산은 한푼도 없다. 수도요금은 꼬박꼬박 징수하면서도 아파트 관리비를 낼 때 함께 적립하는 수선충당금 같은 비용은 모두가 외면해왔다.붉은 수돗물은 전국 지자체 어디에서나 닥칠 수 있는 ‘일상의 위험’이다. 하지만 광역은 광역대로, 기초는 기초대로 지자체들은 당장 빛나지 않고 선거에도 도움되지 않는 노후시설의 유지보수나 안전 관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지속가능성이 의심되는 온갖 무상지원 프로그램이나 현금살포 방식의 포퓰리즘 복지에 경쟁적으로 나설 뿐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행정에까지 얄팍한 표 계산이 앞서는 ‘과잉 정치’는 어제오늘의 폐단도 아니다. 이번에는 상수도가 도마에 올랐지만, 장마철이면 되풀이되는 물난리에서 보듯이 부실하기는 하수도도 마찬가지다.상하수도 업무를 맡고 있
미국의 힘을 논할 때 ‘다원성의 사회’를 많이 거론한다. ‘팍스 아메리카나’가 이민 국가로 시작해 다인종·다민족·다문화의 장점을 잘 살려낸 것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흑백·빈부·종교의 갈등과 격차를 극복하고 통합과 사회발전 동력으로 승화시킨 나라가 미국이다. 갈등과 분쟁은 다원화·다양성과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그만큼 균형도, 공존도...
‘우직한 곰은 주인을 몹시도 사랑했다. 그날도 주인은 식사 후 잠시 오수를 청했다. 오후 일을 위한 휴식이었다. 그날 따라 웬 파리 한 마리가 주인을 성가시게 했다. 주인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곰은 주인이 안쓰러웠다. 파리가 미웠다. 결국 곰은 그 거대한 앞발로 파리가 앉은 주인의 코끝을 내리치고 말았다.’ 우화(寓話)라면 끔찍한 우화다. 맹목적이고 사리분별 없는 일을 하는 게 우직한 곰뿐일까. 개념을 잃어버리면...
1979년 미국과 중국의 수교는 이른바 ‘죽(竹)의 장막’을 걷어 내기 시작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때 중국이 미국에 요구한 주요 조건이 대만과의 외교관계 단절이었다. 대만과의 단교는 1992년 한국과의 수교 때도 중국이 내건 최대 조건이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의 대외관계에서 그만큼 비중이 크다. 대만이 큰 틀에서 중국의 일부라는 의미로, 미(未)통일 지역이라고 천명하는 일종의 외교 이데올...
‘부실(不實)’의 사전적 의미는 ‘튼튼하지 못하고 약한 상태’ ‘실속이 없고 충분하지 못함’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투입(input)과 산출(output)의 불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 투자한 것에 비해 결과가 신통찮으면 부실이다. ‘한국 학교 교육이 부실하다’ ‘공공의료가 강조되면서 의료산업이 부실해지고 있다’는 식의 문제 제기가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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