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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피플(boat people)은 한때 국제뉴스의 단골 용어였다. 베트남이 공산화된 1975년을 전후해 베트남을 탈출한 난민들이었다. 망국의 한을 안은 채 바다로 탈출한 베트남 난민은 1993년까지 부산으로도 흘러왔다.한동안 뜸했던 보트피플에 세계 여론이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지중해다. 지중해의 보트피플은 주로 리비아에서 고무보트를 탄다. 리비아에서 이탈리아의 섬, 즉 유럽까지는 150㎞ 정도다. 정원의 8배까지 태운 난민선도 18시간이면 건넌다고 한다. 내전이 터졌던 리비아 자체의 난민도 많았지만 아프리카 난민들이 몰려들면서 리비아가 ‘탈출의 허브’처럼 돼버렸다.난민들의 국적은 다양하다. 소말리아 리비아 이집트…. 그중에는 홍해 연안의 신생 소국 에리트레아 같은 나라도 있다. 한번 징집되면 제대란 불가능하고 언론은 완전히 통제돼 북한과 더불어 언론 자유도에서 거꾸로 세계 1등을 다투는 국가다. 오랫동안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다가 2차대전 이후 에티오피아연방에 속했던 곳이다. 30년의 분리독립 운동 끝에 1993년 독립국이 됐으나 가난과 철권 독재를 못 견뎌 사하라사막을 넘고 지중해를 건너기 위해 목숨을 건다. 자유란 그렇게 모든 걸 거는 가치다.최근의 난민으로 치면 복합 내전 상태인 시리아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시리아 난민은 보트 피플뿐 아니라 육로로 이탈하는 랜드피플(land people)도 적지 않다. 인구 1800만명(CIA 통계) 중 400만명 이상이 난민이 되었다는 것이 지난 상반기 통계다. 이젠 유엔도 집계를 포기한 판이니 시리아 난민 수는 헤아릴 길도 없다. 며칠 전 바닷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돼 세계의 양심을 흔든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도 시리
파리의 하수도를 세계적인 명소로 만든 건 무엇보다도 위고의 ‘레미제라블’일 것이다. 장발장의 긴박한 도주로였던 지하 수로의 건설 논의는 나폴레옹 시대로 거슬러 간다. 단순히 오수·폐수의 방출로라기엔 장중한 규모다. 지하 세계의 이 거대한 구조물에 관심 갖는 이들이 많아 실제의 폐수로를 보여주는 하수도박물관까지 있다. 오물 처리와 악취까지도 파리에선 관광상품이 된 것이다.1862년작인 이 소설은 하수도 복원공사의 고증자료로도 쓰인다고 한다. 하수도 묘사가 워낙 자세하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하수도는 파리만 유명한 게 아니다. 런던 하수도도 그에 못지않다. 한때 제국의 수도들은 그 옛적 전성기 때 이미 당대 최고의 인프라를 갖췄다.런던의 간선 하수도는 1859년에 시작돼 16년 만인 1875년에 완공됐다. 3억1800만개의 벽돌이 사용됐고, 당시로서는 최첨단 건축공법인 콘크리트 공사가 적용됐다. 착공 일화가 흥미롭다. 1800년대 들어 런던은 급성장했지만 하수처리가 안 돼 수인성 전염병에다 악취문제가 심각했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부작용이었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 때문에 공사는 늘 의회에서 가로막히곤 했다. 그러던 중 1858년 6월, 폐수로 인한 대악취 소동이 빚어졌다. 템스강변의 의회마저 오염된 강물로 인해 구토에 시달릴 지경이 되자 결국 사업을 승인했다. 칼자루 쥔 의회, 공무원이 절실해야 일이 시작되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다.파리와 몇십 년의 시차는 있지만 140년간 제구실을 다해온 런던 하수도의 핵심구간이 퇴역한다고 한다. 인구 200만명 때 400만명을 내다본 설계가 800만명인 지금까지 역할을 다 했다. 100년 뒤까지 내다본 설계자의 안목이 놀랍다.
이 여름 정부 각 부처 중 가장 바쁜 곳이 예산실이다. 다음해 예산편성이 늘 이때 마무리된다. 400조원에 육박할 2016년 나라 살림 수입·지출의 항목별 내역 구성에다 급증하는 재정적자를 메꿀 국채발행안까지 담는 방대한 작업이 끝나 갈 시점이다. 9월 초 국무회의 의결안으로 올리자면 점검·확인 사항도 많을 것이다. 부처마다 사활을 건 프로젝트도 있고, 공약이어서 물러서지 못한다는 사업도 적지 않다. 이미 100조원을 넘어선 거대 복지예산, 노동 개혁 유도 예산, 경기활성화 지원 예산…. 각 부처와 산하기관, 각급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로 올해도 예산실 문턱은 꽤나 닳을 것이다.4개 국(局), 19개 과(課)의 160여명 예산실 직원들만 애쓰니 격려하자는 게 아니다. 정부예산을 책임지는 예산실의 이런 1년 농사가 올해도 국회로 가는 순간 갈가리 찢길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내년도 예산편성에는 단지 2016년도 것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정부의 수입과 지출은 중기·장기 재정계획에 연계돼 움직인다. 이 틀이 늘 국회에서 뒤흔들린다.‘정부=편성, 국회=심의’ 헌법 위반돈줄을 잡고 있기에 예산실은 막말로 정부 안에서도 완전 갑이다. 자부심을 넘어 배타심도 드러내는 게 이 부서 전통이다. 같은 공무원이라도 ‘업자들’이라며 예산철엔 쉽게 만나주지도 않는다. 그런 ‘특갑’의 예산실도 국회에 가면 허리가 굽혀진다. 대한민국 국회가 그런 데다.예산실의 1년짜리 업무가 국회에서 무장해제 당하는 것은 이제 관행으로 굳어졌다. 예산실도, 기획재정부도, 아니 정부 전체가 으레 그러려니 받아들인다. 사실은 국회와 정부의 위헌적·비정상적 국정운영이다.
전근대식 원님재판과 현대 법치국가의 법정을 구별하는 원칙들이 있다. 죄형법정주의가 그렇다. 법률 없이는 범죄도 없고, 형벌 또한 없다는 이 원리를 국가권력의 자기제한이라고도 설명한다. 설사 아무리 비난받을 행위여도 법률로 규정돼 있지 않다면 처벌할 수 없다. 동시에 명백한 범죄라도 법률에 정해진 처벌만 가능하다는 원칙이다. 현대 국가의 개인은 이렇게 국가권력과 절대권력자로부터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는다.또 하나는 증거에 의한 재판이다. 어떤 재판이든 증거에 따라 유·무죄가 결정된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이실직고할 때까지 매우 쳐라!”는 재판은 금지다. 그 어떤 솔로몬일지라도 심증만으로는 유·무죄의 책임을 가릴 수 없는 게 현대의 민주 법정이다. 많은 판사가 유죄의 개연성을 인정하면서도 종종 무죄를 선고해야 하는 것도 ‘증거 불충분’ 때문이다.검찰과 경찰이 증거물 확보에 전력을 다하는 것도 그래서다. 과학수사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넣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법정을 나서면서 속으로 웃는 범법자들도 없지 않겠지만, 법정증거주의 전통 덕에 다수의 인권이 보장된다. 유죄를 판가름하는 것이기에 법정의 모든 증거품은 과학적이고 합법적인 것이어야 한다. 물론 법원이 발부하는 영장 없이는 수색도, 압수도 엄격히 금지돼 있다.엊그제 서울중앙지법이 무차별적인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집행에 제동을 걸었다. PC 외장하드 USB 등을 통째로 들고가지 못하게 하고 유죄의혹이 있는 문서나 대상물로 압수를 제한한 것이다. 가령 세일즈맨이 여성들 치마 속을 몰래 찍다가 잡혀도 휴대폰에 담긴 영업용 전화번호부는 즉각 돌려줘
할리우드 영화에선 변호사가 빠지지 않는다. 불의와 정의, 지략과 성공, 음모와 배신의 이면에 변호사가 있다. 미국에서 교통사고라도 나면 맨 먼저 변호사가 도착한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변호사 천지다. 전 세계 변호사의 40%가 미국에 몰려 있다는 정도다. 변호사가 구급차보다 먼저 온다는 말은 상당히 냉소적이다. ‘배고픈 변호사가 굶주린 사자보다 더 무섭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저변이 워낙 두텁다 보니 공직 진출도 단연 돋보인다. 연방의원의 40%가 변호사라는 통계도 있다. 클린턴, 오바마 등 전·현직 대통령은 부부가 다 변호사다.미국 변호사는 자격 취득이 상대적으로 쉽다고 볼 수 있다. 기본 자격을 폭넓게 준 뒤 법률시장에서 진검으로 실력을 가리게 하는 문화다. 한 번 합격만 하면 평생이 보장되는 한국의 사시 제도와 대조적이다. 미국에서 변호사를 양성하는 전문교육기관이 로스쿨이다. 1870년 하버드대 로스쿨이 효시다. 2009년 한국이 로스쿨을 도입한 건 사법개혁의 일환이었다. 1995년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 슬로건으로 시작해 우여곡절 끝에 시행됐다.로스쿨 덕에 한국도 변호사 2만명 시대가 눈앞에 왔다. 새내기 변호사, 로스쿨 변호사의 몸값이 뚝 떨어졌다는 소리가 나오지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사무실 유지도 어렵다는 아우성까지 들린다. 뒤집어 보면 사법개혁 구호가 나온 지 20년 만에야 겨우 서민·중산층도 합리적인 비용으로 전문가의 법률조력을 받아볼 만해졌다는 얘기가 된다.엊그제 서울시가 6급 감사직류에 변호사 8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공직에서 변호사를 6급으로 뽑는 게 이젠 낯설지 않다. 앞서 부산시는 7급으로 채용하
‘정규재 뉴스’가 인기 폭발이다. 다른 TV뉴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지식과 심층분석이 쏟아지고 있어서다. 지난 7월1일 오후 7시에 막을 올린 뒤 시청자 수가 수직으로 상승해 14일에는 하루 10만여명을 기록했다. 이 같은 시청자 폭발 현상은 유튜브에서도 마찬가지여서 7월 들어 2주간 유튜브 인기 순위가 수직으로 상승해 교양프로로는 극히 드문 2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인터넷 포털 ‘줌’이 매...
유로(Euro)를 자국화폐로 쓰는 국가를 묶어 유로존이라 한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연합(EU)국들이 주축이다. 모나코 산마리노 바티칸은 EU 회원국이 아니지만 유로화를 쓴다. EU와 그렇게 협약을 맺었다. 단일통화 지대지만 유로존 안에서도 경제력 차이는 상당하다. 그렉시트(Grexit) 문제로 대립하고 있는 독일과 그리스 간 격차도 그렇다. 하지만 그리스보다 못한 유로존의 빈국도 많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3국이 그런 나라다.그리스의 1인당 GDP가 1만6300유로(약 1만8120달러·2014년·유로스태트)인 데 비해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는 각각 1만2100유로, 1만2400유로다. 이들 국민이 희랍인들을 보는 시각이 곱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국민의 월평균 연금수령액은 각각 293유로, 242유로다. 반면 그리스는 833유로에 달한다. 온통 빚 내서 연금잔치에다 복지천국을 만든 나라를 유로존의 빈국들까지 왜 도와야 하느냐는 반발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그것만도 아니다. 라트비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부채로 재정난에 처하자 즉각 정공법대로 대처했다. GDP의 15%까지 정부지출을 줄였다. 그 바람에 2009년 GDP 14% 감축, 실업률 20%라는 빙하기를 지나기도 했지만 2010년부터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리투아니아도 비슷한 시련을 겪었다. 내핍으로 차디찬 겨울을 이겨낸 북극권의 모범국들 눈에 풍광 좋은 에게 해변에서 한담을 즐겨온 희랍인들이 어떻게 비칠까.뱅크런 조짐이 나타나자 그리스 은행들은 지난달 말부터 예금인출을 제한하고 있다. 주당 120유로만 찾게 된 연금생활자들이 절망에 빠졌다는 외신도 많았다. 이에 대한 라트비아인들의 촌평이 특히 정곡을
겉만 번드레한 낡은 집의 지붕이 샌다. 언제 고쳐야 할까. 비오는 날이 문제지만 비 때문에 작업이 어렵다. 맑은 날은 안 새니 고쳐야 할 절박성이 떨어진다. 급할 때 갑자기 안되는 일은 평소에 해두라고 했다. 건강, 지력, 체력이 다 그렇다. 지방재정의 건전화도 같다. 일부에는 노란색 이상의 경고가 켜진 지 한참이다. 하지만 해당 시·도도, 중앙정부도 긴장감이 떨어진다. 최근에는 부동산 호경기에 따른 지방세수 증가로 재정에 반짝 여유가 생겨 더 느슨해지는 분위기다.시·도나 시·군·구의 부채가 예산 대비 25%를 넘어서면 ‘주의’, 40%에 달하면 ‘심각’ 지방자치단체가 된다. 2011년 정부가 경험치와 이론을 종합해 이렇게 지방재정 위기관리제도는 도입했지만 공개적인 경고나 실질적인 제재는 없었다. 훈령과 시행령 차원의 계고뿐이었다.부채비율 39.9% 인천, 대구 부산17개 시·도 중 세 곳에 빚이 많다. 수년째 인천 대구 부산이다. 특히 인천이 요주의 대상이다. 부산은 2011년 부채비율 33%에서 최근 28.1%로, 대구는 38%에서 28.8%로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인천은 35%에서 39.9%로 더 늘었다. 시·군·구 중엔 지방공사를 잘못 운영한 태백시가 제일 문제다.인천시도 변명거리는 있다. 2014년 아시안게임, 청라 영종 등 개발사업 때문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 재정의 건실성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자치도 가능해진다. 39.9%라는 부채비율에는 무언가 작위적인 냄새가 난다. 어떻게든 40%는 넘기지 않으려고 수치를 ‘마사지’했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문제는 이런 곳에 행정자치부가 경고장을 발부하고 강력한 자구를 촉구
난(蘭)과 영지(芝)가 자생하는 섬이래서 난지도였다. 하지만 도시화·산업화의 온갖 부산물들은 이곳을 쓰레기 지대로 만들어 버렸다. 1978년 서울시의 쓰레기매립장으로 지정된 이래 15년간 9200만㎥의 폐기물이 쌓였다. 8.5t 트럭 1300만대 분량이었다. 매립지의 국제기준인 45m의 2배가 넘는 95m로 올라간 쓰레기산은 압축성장 이면의 탑이었다.당시 난지도에는 그 나름의 ‘재생 생태계’도 형성됐다. 1980년대, 빈활(貧活)이라며 대학생들도 달려갔던 혐오지대 난지도는 이제 푸른 숲이 울창한 생태공원이 됐다. 청설모 고라니 너구리 삵이 사는, 세계가 인정하는 도시 재생공원이다. 다시 상전벽해다. 빈활 대학생들은 이제 중견 사회인이 돼 쾌적한 승용차로 난지도숲과 나란한 강변북로로 출퇴근한다. 서울 최악의 막장 난지도를 모범적인 친환경 생태계로 부활시킨 것은 경제와 과학기술의 발전이었다.난지도 이후 서울 경기 인천 3000만명의 쓰레기를 수용 중인 수도권매립지도 종국에는 난지도처럼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할 것이다. 이미 매립이 끝난 제1매립장에는 대중골프장과 녹색바이오산업단지가 들어섰다. 엊그제 서울시장 경기지사 인천시장 환경부장관의 4자 합의로 이곳에서 최소한 10년은 더 수도권쓰레기를 처리하게 됐다. 미봉책 같기도 하지만 유정복 인천시장이 매립지 인근 주민에게서 욕 먹기를 각오했기에 2017년 초 쓰레기 대란은 일단 면했다. 국책사업, ‘님비’사업은 누가 욕 듣기를 각오해야 일이 진행된다.환경위기론자나 환경비관론자들은 쓰레기의 증가추이만 바라본다. 하지만 쓰레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식량이 풍부해졌고, 가격도 싸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
‘모든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다!’라고 어느 크레타 사람이 외쳤다. 이 말이 참말이라면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 반대로 이 말이 거짓이라면 그 자체로 그의 말은 거짓이다. 논리적으로는 성립이 안 되는 상황이다. 유명한 ‘거짓말쟁이의 역설(Liar’s Paradox)’이다. 카드의 한 면에 ‘뒷면의 얘기는 참이다’라고, 반대쪽엔 ‘뒷면의 얘기는 거짓이다’라고 쓰인 경우도 비슷하다. ‘러셀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글을 못 읽는 사람은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주세요’라는 광고의 모순도 같다.모두 논리학 입문 과정에 나오는 사례들이다. ‘일반논리학’이란 대학강의도 대개 이런 얘기로 시작한다. 고대 소피스트들의 궤변에서부터 근대 유럽의 철학자들까지 다양한 명제와 가설, 공리와 정리가 언급된다. 실상은 뻔한 얘기들이기도 하다. 동일률(A는 A다), 모순율(A는 A이면서 동시에 B가 될 수 없다), 배중률(A는 A이거나 A 아니거나 둘 중 하나일 뿐, 그 중간은 없다) 등이 만들어 내는 논리의 세계다. 3단논법은 그렇게 연역법과 귀납법으로 발전했다. 이런 일반논리학 강좌의 사례분석에 매료됐다가 다음 학기 ‘기호논리학’에선 된통 낭패당한 30여년 전 기억이 새롭다. 기호들로 다양한 가정과 순수명제들의 논리적 적합성만 따지는 기호논리학은 실상 고등수학이었다.‘미끄러운 경사면’도 논리학 교과서에서 언급되는 비유다. 인과관계의 설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오류, 특히 원인과 결과 사이의 거리가 너무 먼 경우에 적용된다. 엊그제 대한상공회의소가 대정부 경제정책 과제 제언문을 발표하면서 이 표현을 썼다. ‘최근 한
2009년 5월 소니아 소토마요르(Sonia Sotomayor)가 연방대법관에 지명됐을 때 온 미국이 떠들썩했다. 미국 헌법의 최종 보루인 종신직 대법관에 오른, 사상 세 번째 여성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히스패닉계 대법관이었다. 미국의 소수민족 그룹은 열광했다. 가난한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의 딸이 프린스턴대와 예일대 로스쿨을 거쳐 사법부 최고위직을 맡은 것은 영화나 소설 같은 얘기였다.히스패닉들은 아직도 썩 좋은 이미지로 표현되지는 않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나 ‘미드’에서 폭력과 마약, 빈곤과 범죄 현장에는 히스패닉이 필수 조연으로 등장한다. 히스패닉은 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계 미국 이주민들을 통칭한다. 라티노(Latino)라고도 한다. 고대 로마가 이베리아반도에 식민지를 세우면서 부른 이스파니아(Hispania)에 어원을 두고 있다. 에스파냐(Espaa)의 어원이기도 하다.히스패닉은 흑백 혼혈이 많다. 가톨릭 신자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히스패닉계 미국 인구의 증가는 종교와도 무관치 않다. 가톨릭 교리에 따라 피임과 낙태를 지양하기 때문에 출산율이 높다는 것이다. 3억2000만명에 달하는 미국인 중 15%가 히스패닉이다. 전체 인구의 3분의 2인 백인을 빼면 소수인종 가운데는 최대 그룹이다. 인구로 보면 흑인(13%)보다 큰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문학 음악 등에서 히스패닉 고유의 문화도 형성돼 있다. 매년 9월을 ‘히스패닉 문화유산의 달’로 정할 정도로 미국사회에서 지분도 인정받는다.저학력자와 이주자들이 많기 때문일까. 경제력에서나 사회적으로는 아직 취약한 편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정치에선 얘기가 다르다. 증가 추세인 히스패닉의 인구는 선
대동강물 팔아먹은 김선달 얘기는 단순히 해학을 넘어 골계미에 이른다. 아호부터가 풍자적이다. 스스로 봉이라고 우겨 산 닭을 원님에게 바친 뒤 닭 주인에게 관청에서 맞은 맷값까지 받아내서 봉이다. 주막에 도포를 차려입고 며칠간 물지게꾼과 엽전 몇 닢으로 거래하는 척하며 한양 상인들을 끌어들인다. 그럴듯한 흥정으로 오르고 오른 강물값은 결국 4000냥에 낙찰된다. 황소 60마리 값이었다니 조선 후기 서민들에게 실감날 만한 최대 거금이었을 것 같다. 이런 패러디가 널리 퍼진 걸 보면 위선적 사회상에 대한 당시 민초들의 염증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된다. ‘도성의 잘난 깍쟁이들이 강물을 돈 주고 사다니! 정말 바보야!’라는 조롱의 이면엔 ‘물은 당연히 공짜’라는 인식도 엿보인다.산업화, 도시화에 따라 물도 상품이 됐다. 값도 천차만별이다. 석유보다 비싼 지구 건너편 알프스생수가 들어오는가 하면 지역별로 청정브랜드 경쟁도 치열하다. 국내 생수시장은 지난해 6000억원대로 커졌다. 연간 10% 안팎의 고성장세라니 연간 1조원 시장도 머지않았다.그래도 일상의 생활용수는 말 그대로 ‘물값’이다. 한국의 수돗물은 식수로도 나쁜 편이 아닌데, 값이 ㎥당 660.4원(2013년·전국평균)이다. ㎥당 849.3원인 생산원가에도 훨씬 못 미친다. 공공요금이라는 수돗물값에는 김선달 시대의 물값 관념이 남아 있는 셈이다. 지자체들의 밑지는 계산 덕에 물값은 아직 국제적으로도 싼 편이다. ㎥당 일본이 1277원, 미국 1540원, 프랑스 2521원, 영국 2543원, 독일 3355원, 덴마크 4157원이다.하지만 서로 눈치만 볼 뿐 어느 시·도인들 선뜻 정당한 값을 매기려 들질 않는다. 1조3000억원
정치가 힘의 구도에서 사회의 맨 상층부에 있는 것은 상당히 보편적인 현상이다. 여러 요인으로 한국에서는 좀 더 심하게 부각될 뿐이다.경제가 경제논리에 따라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주요 이유일 것이다. 경제학자가 불합리하고 비능률적인 정치 시스템과 왜곡된 권력 구도를 비판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합리적인 문제 제기일 수 있다. 정당 개혁, 국가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경제학자의 신중한 고언에 주목하는 것도 그래서다.《제자리로 돌아가라》는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그런 관점에서 7년간 써온 글들을 묶은 논평집이다. 글쓰기를 시작한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에게도 새로운 시련이었다.실패를 반복하는 퇴행 정치, 누구도 자기 책임은 없다는 사회 풍조가 우리 경제를 더 크게 흔들었다. 정통 경제학자인 저자가 정치 제도의 부실을 반추하고 정치인들의 오류를 질타한 이유다.정치는 좀 더 나아져야 하고, 정치와 경제·사회는 제대로 연결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무한 국제 경쟁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저자는 다각도로 지적했다.저성장·고령화·불확실성 시대의 경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제각각 민주주의를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기업과 시장을 살려야 한다.하지만 경제정책뿐만 아니라 가치와 신념에서도 무수한 충돌이 빚어지는 게 현실이다. 더 성장해야 하는데 분배에 대한 요구도 갈수록 거세진다. 한국 경제는 이 와중에서 균형점을 찾을 것인가. 아직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지도에도 없는 길을 가야 한다.저자는 경고와 함께 다각도로 해법을 제시한다. 각론에서는 여러 논쟁거리가 파생
‘스스로 늙었다고 느낀다.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한다. 이 나이에 그런 일을 왜 하느냐고 말하곤 한다. 내일을 기약 못 한다고 느낀다. 젊은이들 활동에 관심 없다.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게 좋다.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미국 미네소타의학협회가 정의한 노인의 기준이다. 마음가짐의 차원일 뿐 절대기준은 없다는 얘기다.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란 말과도 통한다.법적, 행정적으로는 65세부터 노인으로 본다. 물론 딱 부러지게 65세라고 규정한 법규는 없다. 기초연금법(옛 기초노령연금법) 제3조에서 65세 이상을 연금 수령자로 삼은 것과 노인복지법 제26조에서 65세부터 경로우대로 각종 할인혜택을 부여한 게 전부다. 65세 기준은 유엔 OECD EU에서도 같다. 65세 이상 인구가 7%면 고령화사회, 14%면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라는 분류도 그렇게 나왔다. 65세는 비스마르크가 1889년 세계 최초로 노령연금을 도입할 때의 기준이라고 한다. 당시 독일인의 기대수명이 40대 중반쯤이었다니 그 시대로는 진짜 노인이다.영양과 위생, 의료의 증진으로 20세기 이후 수명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노년이 확 길어지자 최장수국 일본에서는 한때 ‘0.7 곱하기 나이셈법’도 유행했다. 현재 나이에 0.7을 곱해 실생활 나이로 보자는 것이었다. 50세는 35세로, 60세면 42세로 받아들이는 식이다. 0.7은 과하고, 0.8 정도를 곱하면 꽤 현실적일 것 같다. 요즘은 신체연령이란 개념도 낯설지 않다. 몸기능과 건강의 척도를 재는 ‘신체나이 1분 진단법’ 같은 게 널렸다. 꽃중년이란 말도 자연스럽다. 빈곤과 질병에서 ‘위대한 탈출’(앵거스 디턴)을 해 오래 살고, 젊게 산다. 최근 유
수도권의 근사한 수영장에서 생긴 민망한 일이었다. 한 노인이 그만 풀에서 ‘큰 것’을 실례해버렸다. 소독약과 정수시설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국제 규격의 풀을 새로 채우는 데 드는 물값이 5000만원이라고 했다. 곧 지역의 화젯거리가 됐다. 아마 ‘작은 것’ 정도의 실례는 일상적일 것이란 수군거림도 있었다. “365일 공짜 지하철에, 수영장도 경로우대로 반값 만들어 애들 기피하게 만들고 생돈 5000만원 쓰냐”는 푸념까지 들렸다. 젊은 세대의 이 불만을 과연 나무랄 수 있을까.노인요양원을 오래 운영해온 내 주변의 지적은 고령사회의 다른 모습이다. 의사 판단 능력이 사실상 상실된 상노인까지도 선거라면 무조건 불러내고 당연히 투표장으로 향하게 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온종일 노인들과 함께 보내는 그의 문제제기였기에 더 공감이 갔다.속도붙은 노인票 매수 경쟁고령사회 한국의 걱정거리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좋은 전통인 경로문화가 실상과는 반대로 제도로만 요란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먼저 든다. 실내수영장에서 생긴 그 ‘사고’도 경로우대와 무관치 않다. 반값이라 하니 지하철의 고령자들만큼이나 수요를 만들어낸다. “자라나는 세대들 많이 이용하게 고령층은 다른 취미로 유도하자”고 말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원래부터가 ‘고얀! 너는 늙지 않을 테냐’는 한마디면 대화 자체가 끊어지는 우리 사회였다. 수영장이 충분치 못하다면 미래 세대에 우선권을 주는 게 전통의 미덕에 더 맞지 않을까. 고령자들을 억지로 막아도 안되지만 제값을 내게 해 수요 정도는 조절하는 게 맞다. 틀에 박힌 노
교통사고의 중증환자 소생률을 봤더니 월요일 오전이 가장 높더라는 통계가 있었다. 주말에 푹 쉰 의사들이 좋은 컨디션에서 메스를 잡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로로 만성피로에 젖은 수련의가 지키는 주말 밤 응급환자가 받는 치료는 어떨지….계절별, 월별로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인터넷 매체 폴리티코가 보도한 ‘간호사의 세계를 통해 알아낸 미국 의료계의 비밀’이라는 기사를 보면 그렇다. 가급적 7월에는 아프지 말라는 것이었다. 의대를 졸업한 새내기 의사들이 인턴으로 병원에 나오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만성질환자나 치료 시점을 정할 수 있는 처지라면 귀기울여 볼 만도 하다. 7월에는 오진, 부실진료가 더 잦다는 건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중대 의료사고가 다른 달에 비해 10%나 많았다. 영국은 8월이 의료진 교체시기다. 8월엔 환자사망률이 6~8% 늘어난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죽음의 8월’이라는 말도 있다. 숙련된 전문의가 컨디션 좋을 때 진료받는 것도 환자의 운(?)이다.모두 과학자로 자부하겠지만 의사들 간에도 실력차는 있다. 심폐소생술 한다며 갈비뼈 다 부러뜨린들 잘못을 확인하기도 어려운 게 의사 평가의 한계이긴 하다. 의사 실력은 간호사가 제일 잘 안다고 한다. 폴리티코도 의사나 특정 의료시설의 수준을 알고 싶다면 그 병원 간호사에서 물어보라고 귀띔했다.친절이나 성실성만 본다면 새내기 의사도 나쁠 건 없다. 그래도 의대를 갓 나온 졸업생보다는 산전수전 다 겪은 유능한 의사를 찾는 게 인지상정이다. 막 사제 서품 받은 신부가 부임하면 신도가 몰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새 신부님 기도발이 더 좋다는 신도는 여전히 많다
‘공무원들이 일을 많이 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도 잘못이다. 시장에서 풀 수 있는 문제는 정부가 들어가면 오히려 그르친다.’ NGO 활동가의 주장이 아니었다. 원조 자유주의자의 직설도 아니다. 오랜 공직 경력의 김인호 무역협회장이 최근 기자들에게 역설했던 말이다. 주옥 같은 발언은 더 이어졌다. ‘무슨 일이든 시장에 맡기고 시장에서 풀리지 않는 극히 일부분에만 정부가 개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모두 금과옥조의 지적이었다. 현직들에 대한 강한 비판이기도 했다. 핵심을 짚은 것이어서 한경 사설에서도 다뤄졌다.반복되는 전직 관료의 정부 비판이 발언에 한 번 더 주목해보는 것은 30년 경제관료 출신의 반성이랄까, 고언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현직 때는 과연 몰랐을까. 정말로 민간에 나와서야 뒤늦게 깨달은 것일까 하는 게 먼저 드는 의구심이다. 섬긴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한국 관료들의 관존민비, 선관후민의 DNA는 천년 된 문화다. 공직 전체의 풍토다. 파워엘리트 의식에 함몰돼 있다가 퇴직한 뒤에야 이런 진실을 쏟아낸다? 딱히 김 회장을 지칭해 시비하자는 게 아니다. 공직자들의 이런 변신은 꽤 흔하다. 연구원, 경제단체 등을 맡아 자유주의의 전도사가 됐거나 시장경제의 본산에서 맹활동 중인 중진 저명인사들도 비슷한 변신을 했다. 그들 역시 현역 때는 김 회장이 비판한 그런 관치와 정부 주도의 판을 벌이는 데 전문가였다. 그런데 한결같이 퇴직하고서야 입바른 말을 하고 다닌다. 뭔가 구조적인 허점이 있다.두 번째 의구심은 현직 관료들로 향한다. 선배들의 체험적 호소에 현직들은 귀를 기울일까. 이게 더 중요한 포
2009년 7월 영국의 저명한 지휘자 에드워드 다운스 부부가 스위스에서 자살을 선택했다는 소식은 영국만의 뉴스가 아니었다. 당시 85세의 다운스는 시력에 이어 청력까지 상실해가는 상태였다. 평생의 지휘자가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무용가 겸 안무가였던 74세 부인은 간암과 췌장암 말기였다. 외신들은 이 부부가 소량의 맑은 액체를 마시고 손을 맞잡은 채 두 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54년 부부는 병마와 계속 싸우는 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했으며,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는 유족의 발표도 있었다.영국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는 자살과 안락사는 금지돼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도운 가족과 친구에게 영국 법원은 좀처럼 유죄판결을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생명을 절대가치로 보는 종교계와 고통없이 깔끔하게 삶을 정리하고 싶은 일반인들 사이의 괴리는 어디서나 존재한다. 다운스 부부의 선택을 계기로 스위스가 자살까지 여행상품화했다는 또 다른 비판도 있었지만 수천만원의 비용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가 생의 마감을 위해 스위스로 갔다. ‘웰 다잉’ 역시 현대인의 소망이다.1990년대 미국에서도 ‘죽음의 의사’ 논란이 있었다. 잭 케보르키안이란 의사가 중증 환자 130명의 자살을 도왔다가 8년 징역을 살았다. 케보르키안은 완전 말기 환자만 도왔던 게 아니었다. 3~4년 정도는 생활할 수 있는 50대 알츠하이머 환자가 비참해지기 전에 떠나겠다고 하자 약물투입을 해주기도 했다. 팽팽한 찬반양론으로 그는 타임의 커버 인물도 됐다. 당시 표지 제목이 ‘자비를 베푸는 천사인가, 살인자인가?’였다. 이런 일
워싱턴DC 교외의 마운트 버넌(Mount Vernon)은 미국인들에게 각별한 곳이다.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의 사저로 미국인들에게는 성지 같은 명소다. 조지 워싱턴이 9~10세 때 그의 부친이 지은 이 대저택이 명명된 사연이 흥미롭다. 당시 본토 영국의 유명한 해군제독 버넌의 이름을 땄던 것이다. 버넌은 조지의 큰형 로렌스 워싱턴의 상관으로 ‘로열 브리티시 네이비’(영국 해군)의 현역 중장이었다. 하지만 워싱턴 가문을 친영파, 친왕파라고 비판하는 미국인은 없다. 국부를 기리는 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으니 외국인 방문객도 적지 않다.워싱턴DC에서 자동차로 한두 시간 동쪽으로 달리면 샬러츠빌이란 소도시가 있다. 버지니아주립대학으로 유명한 이곳에도 몬티셀로라는 고풍스런 대저택이 있다. 그리스 신전풍의 이 고택은 미국의 작은 국부격인 토머스 제퍼슨이 58년간 산 곳이다. 미국 헌법을 기초한 3대 대통령의 다양한 유품들이 잘 전시돼 있다. 어릴 때부터 마운트 버넌이나 몬티셀리를 방문하면서 많은 미국인들은 참된 민주주의 가치와 건국 정신을 산교육으로 배운다.너무나 흔해진 게 공화국이지만 공화국에는 대개 국부가 있다. 프랑스에는 드골이, 중국인들에겐 쑨원(孫文)이 있다. 인도에 네루라면 이집트엔 나세르다. 터키의 초대 대통령 아타투르크(케말 파샤)나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도 그렇게 추앙받는다. 이들 나라는 수도의 관문도 아타투르크 국제공항, 벤구리온 국제공항으로 이름 붙였다.몰락한 공산국가에서조차 그 나름대로 국부는 존재했다. 신격화되고 억지로 상징화된 게 차이점이겠지만 나라를 세운 데는 실패라도 실패의 역사는 있었던 것이다. 그
경제가 발전하면서 깨끗한 위생, 균형잡힌 영양으로 수명은 획기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가 나쁘면 산해진미도 소용없다. 틀니 브리지 임플란트 같은 인공 신체가 치아 쪽에서 먼저 발달한 현실적인 이유일 것이다. 입안의 인공장기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자리잡았다. 의족, 의안에다 요즘은 인공관절도 꽤 쓸 만하다. 미국선 인공안구가 실용화됐다는 보도다.하지만 몸속 장기는 현대 의과학으로도 만들기 어려운 모양이다. ‘아일랜드’ 같은 상상도 있기는 하다. 복제된 자기가 격리된 무균지대에서 길러져 진짜 본인에 이상이 생길 때 장기를 교체하는 비즈니스다. 그러나 영화일 뿐 내장 장기는 아직은 이식이 현실적 대안이다. 간도, 심장도 이식된다. 수험생이 부모에게 신장 한 쪽을 떼준 정도는 화제 축에도 못 낀다. 한때 장기이식 희망자들이 법적 논란 등을 피해 중국을 찾더니 요즘은 인도가 각광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생명윤리와 결부되면서 어디서나 논란이 이어진다.이탈리아의 신경외과의가 전신이식 수술이 2년 내 가능하다고 주장해 화제다. 학술지에 전신이식 개념을 소개하고 프로젝트 참여자도 모으겠다고 한다. 살아있는 사람 머리에 숨진 사람의 몸을 붙인다는 것이다. 뇌에서 척추, 온몸의 뼈까지 미세한 신경조직을 연결할 수 있다면 노벨상이 문제일까. 이 의사는 윤리문제가 진짜 걸림돌이라 했지만 윤리는 종종 후행적 문제였다. 복거일의 과학소설 ‘내 몸 앞의 삶’에 나온 대로다. 25년 복역을 마친 40대가 딸 결혼을 위해 거금을 받고 60대와 육신교환 수술을 한다는….이미 1970년대에 미국에서 원숭이의 몸과 머리를 바꾸는 수술이 시도됐다. 지난해
통영에 봉도라는 섬이 있다. 면 소재지 욕지도에 딸린 12만㎡의 무인도다. 이 섬을 개발하는 문제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해를 넘겨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쑥의 자생에 주목한 통영시는 인근 장사도처럼 관광상품으로 개발계획을 세웠다. 한풀 꺾인 열기지만, 힐링이 주제어다. 그러나 개발엔 필요한 게 많다. 선착장에다 수도 전기 도로…. 일단 177억원의 예산이 잡혔다. 나랏돈 62억원, 민간자본 115억원의 공동개발이다.개발·특혜논란 사이에 선 自治문제는 봉도가 100% 개인 소유지라는 점이다. 민간 투자는 자기 땅 가치 올리기라 하겠지만, 공적 투자를 보는 주민들의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도로 선착장은 물론 국유나 시의 시설이 된다. 섬 입장료도 5% 정도는 시 수입이 될 예정이다. 섬 소유주가 누릴 개발이익은 얼마나 될까. 계산도 어렵다. 국비, 도비, 군비가 고루 들어가는 개발에 따른 특혜 논란은 봉도만의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공공투자가 없으면 섬 주인이 개발에 소극적일 것이라는 점도 사실이다. 천혜의 자원인 섬을 개발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통영시 의지는 이해하면서도 행정자치부가 선뜻 동의 못하는 것도 결국 이 때문이다.기장군이 117억원짜리 멋진 정관보건지소를 새로 짓겠다는 것도 중앙과 지방의 또 다른 시소게임이다. 부산 관내이면서 광역시 예산보조도 없이 5층짜리 복합보건센터라니 행자부로선 다른 지자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4층엔 정신건강증진센터가, 5층엔 힐링센터가 들어가는 멋진 주민복지센터다. 근래 지자체 간 지역복리복지 경쟁에도 브레이크가 없다는 점은 모두 잘 아는 그대로다. 한 곳에서 무리해서 공약사업이라도 수행하면 다
밀라노 귀족가문 출신의 체사레 베카리아(1738~1794)는 경제분석에 처음으로 수학을 이용한 저술가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경제학자보다 형법학자로 더 확실한 역사적 위치를 점한다. 26세의 베카리아가 펴낸 ‘범죄와 형벌’은 국가적 형벌시스템에서 근대 이전과 근대를 나누는 저작으로 꼽힌다.이 책은 전통의 종교로부터 세속법률 체계를 해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회계약에 포함되지 않은 형벌은 부당한 것이고,형벌은 입법자에 의해 법률로 규정돼야 한다는 원리를 설파한 저술이었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매우 쳐라!’ 이 땅에서는 어쩌면 이 두 마디면 족했을 원님재판이 횡행하던 시절, 그는 주관적 형법이 아닌 객관적 형법 사상을 확립했다. 서구의 이런 자유주의적, 인도주의적 형법 이론이 없었다면 근대는 없었거나 한참 늦었을 것이다. 사회계약설에 의한 국가형벌권, 죄형법정주의 같은 주요 법원리가 250년 전 베카리아의 책에 가닿는다.형벌의 진화는 인권 확립의 역사이기도 했다. 신체의 자유도 부당한 체포, 잔학한 고문 같은 국가형벌권의 남용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인신의 자유는 그래서 사유재산권과 더불어 근대화 내지는 현대화, 문명 사회를 가능케 한 두 기둥이었다.공동체나 특정 조직의 이름으로 단행된 징벌에는 무자비하고 극악무도한 게 너무나 많았다. 과거엔 국가의 형벌 또한 다르지 않았다. 유럽의 고성과 왕궁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 돋게 하는 갖가지 고문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현대 국가처럼 범법자에 대한 격리나 교화 차원의 징역형이 아니었다. 죽을 때까지 때리는 태형은 기본이고 고문의 종류도 많았다. 사형방식도 잔
말 많고 탈 많았던 제주민군복합항이 올 연말에야 완공된다. 1993년 해양 강국을 위해 해군기지가 시급하다는 국가적 결정이 내려진 지 22년 만이다. ‘강정마을’로 대표된 이 국책사업이 겪은 우여곡절은 낱낱이 기록으로 남겨둬야 한다. 내년부터라도 제주 기지는 제 소임을 해낼까. 무역 1조달러 시대, 해상교역길인 제주~이어도의 바다를 수호하는 역할을 해낼 것인가.강정마을이 신문에선 뜸해졌지만 최근 사정을 보면 또 난관에 부딪쳤다. 1조231억원이 투입되는 크루즈항 겸용의 복합항이 외형만 완성된 채 자칫 제 기능을 수행 못할 처지다. 기지에 맞붙은 관사 아파트 건립이 몇 달째 저지되는 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기지를 건설하고 첨단 군함까지 배치해도 관사가 없으면 헛일이다. 반대 세력들은 지난해 10월부터 공사장을 천막 등으로 막아왔다. 5분 대기조의 장교 부사관들 주거시설이 없어 군항이 가동을 못하는 상황이 빚어질까 걱정이다.다 된 국책사업 뒷다리 잡은 道문제는 제주도가 뒤늦게 개입해 개항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도는 기지 운영에 최소 필수분인 72가구 관사 건립을 철회해야 한다는 공문을 해군에 발송했다. 이런 제동 걸기는 지방자치단체와 국가적 사업의 관계, 지자체가 국책사업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원희룡 지사는 강정기지의 반대파까지 껴안았다는 사실을 널리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도지사를 대선의 징검다리 정도로 여기는 게 야심 있는 지자체장들의 일반적인 정서니 원 지사도 소위 소통 능력이란 걸 내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방자치는 그렇게 휘둘릴 가치가 아니다. 마무리 단계의 국책
2013년 8월23일 ‘워싱턴 행진’ 행사에 미국 공화당 정치인 중에는 참석자가 없었다는 것이 작은 화제였다.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유명한 ‘I have a dream’ 연설 50주년, 노예해방 150년 기념 행사에 공화당 인사들은 이 핑계 저 구실로 참석을 꺼렸던 것이다. 이미 흑인 대통령 시대까지 이른 데다 이 행사가 친민주당 행사라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공화계 인사들의 냉정성이 엿보였다고나 할까. 대중행사라면 성격을 불문하고 얼굴 내밀려는 게 정치인들의 DNA이기에 더욱 이례적이었다.정치인들의 대중 노출증은 연예인 저리가라다. 신문에 이름이 난다면 본인 부음 빼고는 무조건 사양하지 않는다는 우스개도 이미 고전이다. 로마의 황제들도 수시로 대중행사를 열었다. 스스로 ‘제1의 시민’이라며 포퓰리즘을 자극했다. 물론 노출증 DNA와 명예욕이 유독 강한 성격의 인물들이 정치에 나설 것이다. 선거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현대 정치인은 더할 것이다. 대중 속으로! 서민에게로!라지만 실제는 표앞으로!다. 현장을 지킨다는 의무감도 없진 않겠지만 군중에게 손흔드는 맛에 정치한다는 이들도 많다.혁명과 시위의 역사 때문일까. 다문화와 톨레랑스의 전통에 기인한 것인가. 프랑스에서는 유달리 정치인 등 유명 인사들을 앞장 세운 거리 행진이 많다. 종교 차별 반대, 인종 차별 불가, 동성 결혼엔 찬성 따로 반대 따로…. 명분도 다양하다. 말이 행진이지 내용은 시위다. 때로는 세력을 과시하는 것이다.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100만명 규탄 행진이 그제 일요일 파리 도심에서 열렸다. 낯익은 정치인들이 맨 앞줄을 차지했다. 프랑스 대통령 올랑드 바로 옆에 독일 총리와 말리 대
20여년 전, 영천댐을 세워 그 물을 포항으로 보냈을 때 작은 물분쟁이 있었다. 가뜩이나 하상계수가 높은 천정천인 금호강의 수량이 확 줄어들자 영천~대구의 하류지역에서 들고일어난 것이다. 포스코가 수자원공사에 지급하는 하루 1000만원 물값으로 지역지원 방안까지 나왔으나 소용없었다.영천댐 북쪽에 저수량이 6배나 되는 임하댐이 건설되고서야 갈등은 대충 봉합됐다. 임하댐 물을 영천댐으로 보내는 53㎞의 수로까지 완공됐던 것이다. 낙동강 물이 중계댐에서 금호강 물과 섞여 포항으로 가면서 작은 물전쟁이 해소됐다. 물론 빗물을 가둬쓰고, 1만5000명이 상주하는 제철소의 460여개소 화장실·목욕장의 오수 재활용시스템도 돌린 포스코의 물 아껴쓰기도 돋보였다. 아무튼 다목적댐 건설로 ‘윈윈’한 경우다.물길을 새로 내 도시를 진화시키고 산업을 발전시킨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콜로라도 강을 막은 후버댐이 아니었다면 사막의 불야성 라스베이거스는 불가능했다. 한국 기업 동아건설이 시공한 리비아의 대수로도 기념비적 대역사다. 직경 4m 수도관 4000㎞로 사하라사막을 관통한다는 게 카다피식 철권이 아니고서는 애초 시도도 어려웠을 것이다. 물길을 내면서 인류는 점차 생활 한계를 극복해왔다.경제가 발전해 생활 수준이 나아지면 물 사용량은 필연적으로 늘어난다. 단지 식수만이 아니라 목욕·세탁에다 오락·산업시설까지 돌려야 한다. 전기사용량만큼이나 경제활동에 비례적으로 필요하다.지난 주말 양쯔강물이 베이징에 도착했다고 중국이 떠들썩했다. 창장(長江)의 물이 보름간 1200㎞를 달려가 소위 ‘남수북조(南水北調)’가 실현됐다. 물이 부족해진
학생이란 아랍 말 탈레반은 단지 배우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뭔가를 갈구하는’이란 뜻도 있다. 알라와 이슬람만으로 표상되는 신정(神政)체제를 갈망하는 것일까. 탈레반들이 꿈꾸는 세상이 제정(祭政)일치의 사회라면 그것만으로도 전근대적이다. 이성과 합리, 현대와 개방, 이런 개념은 스며들 여지조차 없다. 그래서 탈레반의 이미지는 주로 모자헤딘(무장게릴라), 지하드(성전), 이런 것과 겹친다.탈레반이 세계의 골칫덩이로 부각된 계기는 2001년 9·11테러였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국제 테러리스트 조직인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을 인도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렇게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됐다. 탈레반 정권의 야만적인 행위는 앞서 그해 3월에 이미 세계를 경악시켰다. 힌두쿠시 산맥의 간다라 유적으로 세계 최대인 53m, 37m 높이 마애불상을 파괴한 것이다. 우상을 금지한 이슬람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1500년 된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버렸다. 189개 유엔 회원국이 인류의 문화유산을 훼손 말라고 만장일치로 의결했으나 무위였다.9·11 한 달 만에 미군과 동맹군은 아프가니스탄으로 진군했다. ‘무한 정의 작전’이란 테러소탕전쟁은 한 달 만에 끝났다. 이때 밀려난 탈레반 정부의 잔당들은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산악 오지로 도주했다. 일부는 국경너머 파키스탄으로 달아났다. 이후 탈레반의 보복 테러가 무수히 이어졌다. 엊그제 파키스탄 북부 페샤와르의 학교테러도 파키스탄 팔레반(TTP)의 광신적인 공격이었다.파키스탄 군이 운영하는, 그래서 장교들 자녀가 많다는 게 표적이 된 이유
6·25의 포연이 채 가시지도 않은 무렵의 일화다. 배편으로 도착한 국제 지원그룹은 부산의 멋진 야경에 놀랐다. ‘세계 3대 미항’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도시였다. 더구나 폐허가 된 나라였다. 그러나 이튿날 동이 트자 환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멀찍이 바다서 감탄했던 입체감 넘친 야경은 높고 낮은 산기슭의 게딱지 같은 판잣집 불빛이었다. 도시의 야경은 이렇듯 때로는 치부도 가린다. 밤이면 거듭나는 도시의 마술이랄까.물론 지금 부산의 야경이야 천지개벽했다. 마천루숲 해운대와 광안대교의 멋진 모습은 밤에 더 빛난다. 항도의 밤풍경은 국제적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경제 성장이 억지 화장발을 걷어내고 고혹적인 자태의 밤도시로 재탄생시켰다.국제적 대도시들은 저마다 야경으로 이름값을 한다. 맨해튼, 홍콩섬과 구룡반도, 샹젤리제 거리, 와이탄과 푸둥…. 번쩍이는 네온에 형형색색 LED의 조명과학은 건물 하나하나를 예술작품으로 변모시킨다. 해가 지면 도시는 유혹하고 방문객들은 분위기에 먼저 넘어간다. 브로드웨이와 42번가 일대의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는 극장들을 찾는 기분에 단 며칠이라도 뉴요커가 되려고 전 세계에서 달려가는 것이다. 록펠러센터 고층 클럽에서 다운타운과 뉴욕항의 명멸하는 야경을 즐기기 위해 비싼 맥주값도 기꺼이 지불한다. 야간의 도시는 빛이다.독특한 조명에다 관능적이기까지 한 리도쇼나 물랭루주쇼의 빛이 없다면 세계도시 파리의 명성은 불가능하다. 홍콩 야경이 100년 앞을 내다보며 가꿔왔다는 것도 중국계 특유의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밤에도 불켜둔 건물에 전기요금을 깎아준다. 형형색색 빛의 향연 아래서 먹
서울서 가장 먼 곳은? 부산이나 목포가 아니다. 시간과 접근성을 감안하면 울진 삼척 영덕 쪽이다. 그만큼 오지다. 지역특화라고 할 만한 변변한 산업도 없는 낙후 지역이다. 1970년대 말 9만7000명이던 울진군은 90년대 초 7만명 선으로 줄더니 지금은 5만3000명이다. 주민은 계속 줄고, 대게 오징어 잡이도 전만 못하다. 인구 5만명 사수가 군정(郡政)의 핵심이다. 그런 울진이 대박을 냈다. 사실은 지극히 당연한 선택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삼척의 어리석은 결정 때문에 열흘 전 울진의 선택은 더 빛났다.국책사업인 원전 신한울 3, 4호기 건설을 수용한 것은 백번 남는 장사다. 당장 2800억원을 지원받는다. 매년 260억원씩 지원금은 별도다. 이 돈으로 상수도를 늘리고, 자사고와 종합체육관을 짓는다. 관동명승 망양정에 바로 닿는 교량까지 8대 숙원사업을 펼친다. ‘울진사람들 깨어 있네!’ 전국의 찬사와 감사는 돈 차원을 넘어선다.'원전산업 인식' '선동에 휘둘려'울진의 원전 수용은 두 가지 측면에서 특히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외부 간섭꾼들 개입을 차단한 것이다. 지방자치와 주민자율행정은 단지 중앙정부의 감독에서 벗어나자는 게 아니었다. 지방의 구악 정치꾼들, 시민단체라는 온갖 간섭족들의 관여와 훈수 차단이 더 중요해진 시대다. 밀양 송전탑 건설 때 생생히 봤던 일이다. 울진은 그런 자치의 원칙을 지켜냈다. 주민들이 실리실용을 추구하며 지역경제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많은 시·군이 배울 점이다. 울진은 맞붙은 영덕보다 주민이 1만3000명 많다.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원전이 유입한 인구 때문이라는 인식이 형성돼 있다. 지역언론을 보면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원래 문화 예술에서 근본이나 본질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장식적 요소를 배제하고 단순, 간결하게 표현하는 양식이다. 한 청년이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멋진 디자인으로 서울에 앉아서 애플에 취직한 사례가 최근 SNS에 올랐다. 토종 대학생 김윤재 군의 성공담이다.남대문과 일본의 성, 택시와 지하철…. 디자인 전공자인 김군은 틈날 때마다 작은 아이콘을 그렸다. 깜찍한 디자인에 이미지도 선명했다. 불과 몇 개의 선일 뿐인데 빅벤의 모습 그대로다. 사진보다 나은 타지마할의 아이콘도 있다. 그는 자기 작품들을 특정 사이트에 공개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세계 1등 기업에서 일하러 오라는 제안이었다. 아이까지 딸린 28세 이혼녀, 복사비조차 없어 8만 단어를 하나하나 타이핑해야 했던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성공기만큼이나 감동적이다.통영의 달동네 동피랑이 벽화로 지역관광산업을 주도하는 명소가 된 데도 미술학도들이 단단히 기여했다. 청년들의 창의성과 열정이 제대로 폭발한 성공사례다. 프랑스가 패션과 디자인의 메카로 우뚝 선 것도 무수한 미술학도들이 저변을 깔아줬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있다. 세계에서 몰려든 파리 곳곳의 무명 화가들이 문화예술적 토대를 형성했기에 예술이 산업화할 수 있었다는 논리다. 거리의 무명 작가는 어느날 순수예술(?)을 버리고 샤넬이나 에르메스, 혹은 루이비통에 취업해 ‘외도’를 한다. 이런 재야의 고수가 정규 고등교육을 받은 예술학도들과 융합하면서 프랑스의 예술과 디자인산업은 한걸음 앞서간다.미술도 디자인도 이젠 전시장과 박물관에 갇힌 예술이 아니다. 주택에서부터 온갖 생활용품, 자동차와
소설가 모파상이 생전에 에펠탑을 그렇게 자주 찾았다고 한다. 늘 에펠탑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자 주변에서 물었다. “에펠탑을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가 뭡니까?” 모파상 대답이 의외였다. “파리에서 이 볼썽사나운 흉물덩어리가 안 보이는 데가 이 아래뿐이니 어쩌겠소!” 프랑스의 국민작가에겐 끝내 못마땅했지만 에펠탑은 파리의 상징 같은 명소가 됐다. 파리에선 어디서나 눈에 들어서니 125년째 부동의 랜드마크다.에펠탑 방문객은 연간 700만명. 2억5000만명이 다녀갔다는 집계가 나온 게 벌써 2년 전이다. 세계적 문화관광 도시 파리를 먹여살리는 기본 인프라가 이 거대한 철탑과 개선문, 루브르박물관 정도일 것이다. 에펠탑의 경제학이랄까.랜드마크라는 게 건설 과정에선 논란거리일 때도 많다. 킹콩을 비롯해 70여편 영화의 무대도 되면서 세계의 뉴욕으로 끌어올린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도 그랬다. 이 초고층 빌딩도 건설 때는 많은 인부가 희생되면서 논란이 빚어졌다. 하지만 멋지게 완성해 잘 가꾸면 명물이 된다. 드라마로 뜨고 유명인들도 방문하면서 스토리가 하나하나 입혀지면 글로벌 명소가 된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없는 뉴욕이라면 뭔가 아쉬워질 것 같지 않은가. 70년 이상 뉴욕의 랜드마크로 군림해오면서 지금도 세계인을 이 도시로 유혹한다.서울의 으뜸 랜드마크는 무엇일까. 남산타워? 숭례문? 한때는 63빌딩도 그런 축이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세대를 뛰어넘는 서울의 상징물이라기엔 아쉬움이 있다. 시각적으로 우뚝함, 접근성, 흥미진진한 스토리의 3박자가 두루 갖춰져야 한다. 2년 뒤 잠실의 제2롯데월드가 완공되면 555m의 123층짜리 이 건물이 일단 시선은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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