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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副)를 파자(破字)해보면 흥미만점이다. 입(口)에 재물(田), 곧 부귀가 달렸으니 특히 말을 조심해야 한다. 그 입을 잘못 열면 칼(刀)이 날아온다. 그 입 바로 위에는 언제나 1인자(一)가 있다. 글자가 만들어진 그 옛적이나 지금이나 인간사회의 속성은 같은 걸까. ‘부’자 붙는 자리, 2인자란 게 대개 그렇다. 접두어 부가 앞에 붙어 재미없기는 부통령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 바로 다음이지만 미국 부통령도 그렇다. 역사적으로 미국 부통령은 형식적, 의전적 자리에 불과했다. 사표를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생겨난 것이 부통령제라고 하지만 법적 권한도 별로 없다. 명함만 거창한 이 자리가 그나마 찬밥신세에서 벗어난 것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때부터라고 한다. 3선 도전 때 루스벨트가 부통령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선출해온 관행을 깨고 본인이 지명하면서부터 위상이 달라졌다. 미국에서는 부통령을 조롱하는 일화도 많다. 부통령이든 총리든 대통령제에선 한계가 분명한 자리다. 그래도 미국 부통령에게 두 가지 권한만은 명확하다. 대통령 유고 시 대권 승계권과 상원의장 겸임권이다. 전자로 각광받은 대표적인 인물이 린든 존슨과 제럴드 포드다. 존슨은 암살된 케네디를 뒤이었고, 포드는 워터게이트로 닉슨이 전격 사임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 올랐다. 상원의장직은 명예는 대단해 보이지만 양당이 동수로 나뉠 때 캐스팅보트권 외에는 이렇다 할 실권은 없다. 그래도 미국 부통령의 힘은 점차 강해지는 추세다. 루스벨트 급서로 자리를 이어받았으나 국정 현안에서 우왕좌왕했던 트루먼의 대통령 승계 경험에 대비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자리란 게 사람 하기에 달렸다. 아
난세가 영웅을 낳는다고 했다. 전쟁은 더욱 그렇다. 동양고전인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는 모두 난세의 처세술을 가르치지만 그 자체로 전쟁과 영웅들의 흥미진진한 휴먼드라마다. 영웅과 그들에 맞서는 간웅들의 이야기에 빨려들며 긴 겨울밤을 지새웠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온갖 고난 끝에 결국은 승리를 쟁취하는 영웅들의 오디세이는 성장기의 로망이었다. 전쟁이 대스타를 만든 것은 동서와 고금이 마찬가지였다. 일본 전국을 제패한 도요토미가 정명가도(征明假道)라며 임진년에 침략전쟁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불멸의 충무공은 아마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이 없었다면 이순신은 변방의 한직, 수병 부대장으로 생을 마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왜의 침략이 그를 조선의 왕 선조와는 비교가 안 되는 역사의 거인, 성웅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코르시카 출신의 군인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것도, 조지 워싱턴이 미국의 국부가 된 것도 그렇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1950년대에 8년간 냉전시대 세계를 주도한 리더십도 2차대전의 승전 주역이었기에 가능했다. 드골, 미테랑 같은 프랑스 대통령도 레지스탕스전 리더 경력이 대중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데 큰 자산이었다. 모두 전쟁이라는 난세가 만들어낸 영웅들이다. 용맹과 전략, 희생과 전우애, 집념과 모범 같은 군인정신이 승리를 가져오는 것일까. 전차와 보급품이 아니라 이런 정신적 덕목들이 극한의 상황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것인가. 전쟁의 영웅들에게서 후세 사람은 그런 정신의 가치를 배우는 것인지 모른다. 전쟁영웅 가운데 권력자로, 대중정치인으로 변신하지 않고 끝까지 군인의 길만 걸은 이들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신분당선 연장선의 역사 문제로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흥미로운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다. 바깥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 갈등에는 사연이 있다. 2011년부터 민자 1조5343억원이 투입되는 이 노선의 공정률은 현재 41%. 그런데 성남시가 정자(분당)~동천(용인)역 사이에 미금역을 한사코 신설하겠다고 나섰다. 비용중 918억원을 떠안겠다는 것이다. 안전행정부의 제동은 사업취지대로 민자 투입 확대면 모를까 시 예산에서 그만큼 쓸 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겨우 3.9㎞ 구간에 대형 환승역을 더 만들면 역이 다닥다닥 붙어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실제로 용인 주민들이 역 신설에 반대해 국민감사 청구도 했다. 그러나 성남시는 쉽게 물러서지 않고 있다. 중앙투융자심사에서 보류된 사안을 최근 또 상정했다니 떼쓰는 애 같다. 장기 재정 뒷전…내 임기가 중요 제도는 있지만 중앙과 지방이 대립하면 조정이나 판정이 말처럼 쉽지 않다. 용인시는 대형 주민센터를 줄줄이 짓겠다고 해 안행부를 곤혹스럽게 한다. 450억원짜리를 포함해 최대 8개를 세우겠다며 승인요청을 했다. 경전철로 1조원을 날렸고 호화대형 청사로 늘 비판받아온 그 용인이다. 빈약해진 시 재정에 대한 자구계획을 세우라는 안행부 지침에 시 공무원 급여까지 깎겠다면서도 주민센터엔 목을 맨다. 벼랑 끝 전략 같다. 옆동네 수원 영통에는 체육관까지 갖춘 멋진 주민센터가 있는데 우린 왜 없나! 이런 주민들 목소리는 지역의 표심이다. 어디서나 이런 유의 사업들은 대개 지역공약이다. 지역정치 이슈가 되는 순간 타당성 조사니, 경제성이니, 편익비용이니 하는 행정은 통과절차로 전락하고 만다. 2014년 지방선거
결국은 세금이 문제였다. 1773년 뉴잉글랜드 보스턴서도 그랬다. 대제국 영국은 식민지 상인들의 차 밀무역을 금지하고 동인도회사에 독점권을 주는 관세법을 만들었다. 격분한 식민지 주민들, 특히 급진파들이 행동에 나섰다. 인디언으로 가장한 일군의 식민지인들은 정박 중인 동인도회사 배 2척을 습격해 차 박스 342개를 대서양에 내던졌다. 보스턴 차사건(Boston Tea Party)이다. 근대민주주의 3대 혁명으로 꼽히는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은 이렇게 불을 댕겼다. 보스턴은 이미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ve)라고 외쳤던 깨인 지역이었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와 전쟁 뒤라 재정난이 심각했다. 자연히 온갖 새로운 징세법이 만들어졌다. 설탕법, 당밀법 등 상품마다 특별 관세가 붙었다. 신문, 팸플릿에 트럼프 카드까지 모든 출판물에도 과세하는 인지세법(Stamp Act)도 생겼다. 결국 세금은 역사를 바꿨다. 제국에 맞짱을 뜬 티파티 운동가들은 236년 뒤 다시 태어났다. 중과세, 폭정에 맞선 선조들의 독립정신을 이어받겠다는 것이었다. 2009~2010년에 맹활약한 미국의 티파티는 풀뿌리 정치운동단체다. 보스턴 티파티에서 이름을 땄다면서 TEA가 ‘Taxed Enough Already’(세금은 이미 낼 만큼 냈다)라는 의미라고 당당하게 깃발을 흔든다. 그런 티파티가 요즘 미국언론에 연일 오르내린다. 오바마케어(건강보험정책), 복지확대, 국가부채 증액을 꾀하는 오바마표 복지를 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티파티가 다시 움직였던 것이다. 2010년 중간선거 때 당선된 공화당 하원의원 중 3분의 1이 초선이었는데 이중 절반 이상(40여명)이 티파티 소속으로 분류됐다. 자발적 시민단체
세상만사 그렇지만 산도 그렇다. 산이 우리에게 손짓하는 계절이 됐지만 세상에 만만한 산은 없다. 더 높은 하늘, 맑은 공기, 능선의 신선한 바람, 계곡의 물소리, 형형색색으로 치장하는 나뭇잎, 추일서정이 깃든 가을꽃들…. 하지만 가을 산에 여유나 아름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기야 유혹의 향기 뒤에 감춰진 치명적인 위험도 가을 산에서 더욱 높을지 모른다. 산깨나 다녔다는 이들은 이제부터 설악의 공룡능선을 꿈꿀 것이다. 벌써 능선을 따라 단풍이 완연해졌다고 한다. 이 가을 화대종주를 별러온 이들은 지리산 쪽으로 바라볼지 모른다. 백두대간 마니아들은 미탐사 준령코스를 찾을 테고…. 몰리는 인파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서울을 에워싼 불수도북의 능선과 계곡들도 얼마나 멋진가. 산을 바라보며 가슴 설레는 10월이 익어간다. 하지만 하늘이 청명하고 산공기가 맑은 날일수록 계곡 안은 더 어두운 법이다. 준봉들이 압도할수록 거목 우거진 골 아래엔 어둠이 빨리 내린다. 깊은 계곡에선 별들이 더 일찍 선명해지는 게 가을 산의 역설이다. 꼬마 전등을 비추며 재촉하는 초저녁 하산은 푸근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가을 산의 넉넉함과 풍광을 제대로 즐기려면 안전준비를 잘 해야 한다. 무엇보다 본인 체력으로 감내할 만한 등산길을 찾고 코스를 숙지한 채 시작해야 한다. 산에서 길 표시는 아래와는 완전히 다르다. 등반로가 아닌 길로는 아예 들어서지 말 일이며, 가급적 해가 남았을 때 하산하도록 계산하는 게 좋다. 여벌옷 외에 손전등, 무릎보호대와 스프레이 파스, 간단한 비상먹거리와 여분의 물은 언제나 필수다. 준비하고 조심해도 변화무쌍
130년 전, 1883년 10월4일이었다. 파리를 출발한 기차는 6개 나라를 가로질러 터키로 향했다. 유럽 대륙횡단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첫 출발이었다. 이후 유럽의 무수한 부호, 호사가들이 특급 휴가여행으로 애용했던 이 열차의 종착역이 이스탄불이다. 이스탄불은 그렇게 유럽의 끝이면서 아시아의 시작이다.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천혜의 보스포러스 해협 양안으로 서쪽은 유럽, 동쪽은 아시아다. 인구 1300만명, 유럽과 아시아 두 문화권에 걸친 도시다. 역사적으로 이스탄불은 실크로드의 서쪽 끝이었다. 지정학적 요충지여서 한(漢), 당(唐) 때부터 동양의 문물이 전해진 통로였다. 중국의 고도 시안에 집결된 동양의 진귀한 물산이 흘러간 귀착지이기도 했다. 30년 기자생활을 정리하면서 프랑스 언론인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이 길 1만2000km를 3년간 오로지 두 발로 걸어서 주파하기도 했다. 그 출발점이 이스탄불이었다. 그렇게 중국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구도자처럼 걸은 기록이 ‘나는 걷는다’라는 책이다. 국내에서도 3권짜리로 번역된 올리비에의 책은 단순한 기행문을 넘어 실크로드 대탐사기였다. 행정 수도로 앙카라가 있지만 터키의 중심은 단연 이스탄불이다. 유서부터가 다르다. BC 7세기 그리스 시대에 이미 비잔티움으로 이름을 떨친 도시다. 그로부터 1000년 뒤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삼으면서 콘스탄티노플로 명명된다. 1453년 오스만튀르크의 술탄 마흐메드2세에 정복된 뒤 이 도시는 이슬람제국의 수도가 된다. 이렇듯 동양과 서양이 충돌하면서 융합한 역사 때문일까. 곳곳이 유적지다. 어느 골목이든 소설의 무대로, 영화 촬영지로 손색이 없다. ‘다빈치 코드’의 작
무협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가 호위무사다. 옷매무새부터 몸가짐까지 빈틈이 없어 무인의 수양이 배어난다. 팽팽한 긴장이 있을 뿐,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굳게 다문 입은 좀체 떼는 일이 없고 눈빛은 미동까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사방을 주시한다. 무예의 최고수는 육감까지도 왕을, 귀인을 감싸안고 있다. 포청천의 잘생긴 호위무사 전조도 이런 실존인물로 전해진다. 무협극과 사극 속 조연이 더 어울렸던 호위무사는 할리우드 영화 ‘보디가드’로 주연도 됐다. 그러나 이미지만큼은 여전히 냉철하다 못해 차갑다. 주군과 고용주를 위해 몸을 던지는 것은 기본이다. 권력과 도전, 신분 차이, 부귀와 위해가 있는 한 호위무사는 어떤 형태로든 있게 마련이다. 현대의 호위무사들은 어디서나 비슷한 차림새다. 까만 선글라스에 검은 정장, 기름 발라 단정한 머리에 귓속엔 리시버…. 호위무사들이 보디가드, 경호요원이 되면서 엄연히 전문직종이 됐다. 청와대 경호실이 있듯 미국에는 비밀경호국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안위를 총책임지는 비밀경호국은 요원이 3500명이나 된다고 한다. 최근 창설 148년 만에 이곳의 수장에 여성이 발탁됐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민간에서도 현대판 호위무사들의 수요는 늘어나는 추세다. 이젠 어엿한 경호산업이다. 아파트나 일반 사업장의 경비·관리업체까지 합친 숫자이지만 국내의 경호 사업자는 4000곳에 달한다. 이 가운데 1000개가량이 전문 경호업체이다. 국내시장이 4조원에 달한다는 조사도 있다. 중국처럼 경제가 급성장하는 곳에서 이면에 뜨는 신산업 중 하나가 경호업종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고액자산가, 톱스타 연예인, 명망가 후예들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쯤 되면 정말 대단한 과정을 거쳐 엄선되는 걸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상 그렇지 않은 사례가 많다. 과거 정권 교체기 때 장관을 지낸 A씨 경우다. “대통령과는 일면식도 없었는데 조각명단에 들어가 깜짝 놀랐다.” 면담 한 번 없는 장관 기용이 정상인가 하는 게 그의 지적이었다. 수년 전 인사권자와 한 번 조우가 인연이 돼 요직에 발탁된 인사들은 현 정부에도 있다. 장관 인사가 가벼운 이유는 뭘까. 첫째, ‘장관이야 누구든 상관없다. 어차피 청와대가 다 한다’고 여길 수 있다. 둘째, 추천자를 절대 신임해 검증과정을 건너뛴다. 셋째, 측근 실세들의 인사 주무르기가 이유다. 어느 쪽이든 인사가 정권의 성패를 가른다는 사실이 간과된다. 인사파일 자체가 검증 안돼 지금 장관, 수석들 일처리를 보면 솔직히 ‘저 정도라면 대충 누구를 뽑은들…’ 싶다. 정무직이 아니라 사무관 같다. 스타는 아예 없다. 반대로 인사가 정교하지 못해 저런 깜냥들만 포진했나 싶기도 하다. 인사의 묘미는 정권이 바뀔 때다. 때로는 감동도 주지만 실망 이상의 그 무엇까지 안기는 게 인사다. 노무현 정부 때는 먼저 인사에서 세상이 바뀌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 ‘고소영 인사파동’ 이후 계속 밋밋해졌다. 실세라는 측근들이 인사를 좌우하는 건 이제 그러려니 하는 관행으로 굳어진 듯하다. 인사권자가 천하의 뭇 인재를 다 알 수 없다는 게 물론 한계다. 수첩에 빼곡 정리도 됐다지만 그래서 몇 명이나 적었겠나. 결국 이전 정권 흉을 보면서도 인사파일은 참고하게 된다. 그런데 이 인사파일이란 것이 부실하다는 점이 또 문제다. 인사과정이 그렇듯 인사자료 자체가 기밀사항이다 보니 정
가난에 한 맺힌 한인 1033명이 영국 화물선에 실려 멀고 먼 묵서가((墨西哥·멕시코)로 향한 것은 1905년이었다. 짐짝보다 더 못한 화물칸에서의 40일, 그렇게 태평양을 건넜으나 애니깽(용설란) 농장의 생활은 훨씬 더 비참한 고통의 나날이었다. 멕시코로, 나중엔 쿠바로도 옮겨간 애니깽의 눈물 역사는 김영하의 장편소설 ‘검은 꽃’에 실감나게 담겨 있다. 그보다 3년 전, 증기선으로 역시 제물포를 떠난 104명의 한인들 앞에 펼쳐진 것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이었다. 이곳 또한 극한의 근로여건이었다. 한인의 슬픈 이주사가 어디 애니깽과 사탕수수 농장뿐이랴. 1937년 연해주 한인들은 어느 날 화물기차에 실려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로 강제 이주당했다. 역사에 남은 스탈린의 소수민족 탄압사의 한 페이지다. 1960년대엔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로 나가 조국 발전에 기여했다. 유대인의 디아스포라가 슬프면서도 끈질긴 소수 민족의 고난사를 상징하지만 한인도 못지않다. 아직 생존하는 1세대부터 그 후손의 후손까지 한자락 기구한 사연이나 우여곡절이 없는 해외동포들이 없다. 재외동포재단이 집계한 해외동포는 현재 726만7000명이다. 아시아에만 406만명이지만 지구상 어디 진출하지 않은 곳이 없다. 미주엔 252만명, 유럽도 65만6000명이나 된다. 중동과 아프리카에도 1만6000명, 1만1000명씩 나가 있다. 고난과 역경을 넘어 삶의 터전을 잡고 뿌리를 내려가는 인생역정들이다. 한인 이주사 100년을 지나면서 가지는 2세를 넘어 3, 4세로 뻗어간다. 엊그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여름 휴가 중 한인 2세 동포들과 나란히 골프치는 모습이 외신으로 들어왔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함께 현직 미국 대통령과 라운
한자를 제대로 안 배운 세대들에게 가부좌(跏趺坐)는 어려운 말일지 모른다. 한자로만 써두면 읽기조차 힘들 수 있다. ‘절의 불상(佛像)처럼 앉는 방식’이라고 하면 누구라도 금방 ‘아! 그걸…’이라고 반응할 것이다. 종교를 떠나 한국인에게 가부좌는 정말 익숙한 자세다. 가부좌의 본래 말이 결(結)가부좌이거니와 반만, 즉 한쪽 발만 반대쪽에 올려 앉는 방식이 반(半)가부좌다. 결이든, 반이든 가부좌는 불가의 전통적 수행 몸가짐이자, 해탈에 이른 경지의 상징이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은 석가모니 다음으로 부처가 될 미래불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을 미륵보살이 남김없이 구제한다는 게 대승불교 교리의 한 축이다. 이 미륵불이 한없이 깊고 그윽한 생각에 빠져 있다. 그냥 상념이 아니라 아스라한 그 어떤 경지의 사유(思惟)다. 중생 구제의 한없는 염원일까. 영겁의 미래에 대한 지혜의 응시일까. 미소인 듯, 깨달음의 절대경지인 듯 범부들은 저 신비의 표정을 헤아릴 길이 없다. 그런 보살상인데 소재는 금동(金銅)이다. 도금 내지는 금박 입힌 구리다. 11자의 한자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으로 명명된 배경이다. 신라의 미소, 신라의 예술과 종교를 상징하는 이 걸작은 국보가운데 하나다. 같은 모습으로 완벽하게 나란히 남아 있는 반가사유의 두 불상이 바로 국보 78호와 83호다. 지금도 국립중앙박물관의 VIP 자리서 수많은 방문객을 천년의 미소로 맞는다. 제작연대가 조금 더 늦어 7~8세기로 추정되는 국보 83호 불상은 특히 일본의 국보 1호 목조(木造)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원형이라는 연구도 있다. 일본의 이 국보가 한반도땅 적송으로 제작된 사실부터가 흥미롭다.
어떤 상사가 훌륭할까. 크게 봐서 상사는 네 가지로 나뉜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유형, 똑똑하지만 게으른 타입, 멍하지만 부지런한 경우, 멍하면서도 게으른 상사다. 똑똑하면서 부지런한 상사가 최고? 아니다. 다수 직장인들은 두 번째 유형을 좋아했다. 이른바 ‘똑게’다. 왜 그럴까. 기본적으로 상사가 바보 같아선 얘기가 안된다. 부하로서는 매사 불확실, 불명료하다.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향하는지 모르는 상사와의 일이란! 멍하면서 부지런하기만 한 상사는 끔찍하다. 그렇다면 남은 두 타입에서 우열은. 똑똑하며 부지런한 게 좋은가, 똑똑하면서도 느슨하게 일하는 것이 나을까. 여기가 묘미다. 권한남용형 배제하고 '똑게'찾기 많이 알고 부지런한 상사라 치자. 부하에겐 그 자체로 버겁고 피곤한 게 현실이다. 수시로 지시나 추진과제가 떨어진다. 따라가기조차 숨가쁜데 “그때 그것, 어떻게 됐나?”라고 갑자기 채근한다. 여차하면 벼락이다. 직장의 진짜 고수는 따로 있다. 유능, 똑똑하되 스스로 일을 많이 벌이려 하지 않는 상사다. 부서가 우왕좌왕할 일이 없다. 꼭 필요한 때, 반드시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 얼핏 게을러 보이지만 필수 업무를 가려서 한다. 이런 ‘똑게’가 조직 내 강자다. 상사 유형론을 꺼낸 것은 요즘 공무원의 업무행태를 여기에 빗대보자 함이다. 상하 공직들이 국민들을 섬기겠다지만 말일 뿐 실상 그렇지만도 않다. 대통령부터 일선까지 다 그렇다. 제일 말단 9급직에 대졸자가 20만명씩 몰리는 현실을 보라. 감독, 간섭하는 속성을 본다면 공무원집단은 직장 상사와 충분히 비교된다. 그래서 공무원도 ‘똑게’가 주목을 받는다. 다른 각도에서 공무원은 권한남
세리(稅吏)를 인류의 오랜 직업이라고 하는 근거는 성경이다. 요즘으로 치면 공무원 전체를 세리라고 상징화한 것이리라. 예나 지금이나 공직의 본질이 세금을 걷고 규칙과 규제를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면 그 옛날 고대사회에 벌써 세리란 말로 이 직업의 본질을 꿰뚫어본 셈이다. 성경에서는 창녀, 스파이도 오래된 직업(?)으로 거론됐다. 전자를 서비스업의 상징으로 보고, 스파이는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하는 무수한 사이비사업가까지 포함한 국제비즈니스맨 개념이라고 해석하면 무리일까.직업의 흥망사, 발달사는 곧 산업의 부침, 경제의 발전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가령 17세기 초 유럽에선 동인도주식회사가 출범했다. 소유와 리스크를 분산하는 주식회사라는, 인류 경제발전사에 기념비적인 시스템이 이때 등장한 것이다. 주식회사라는 대발명품이 고리가 됐을까. 18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이 치솟는다. 이런 대변혁들은 필연적으로 새 직업들을 대거 만들어냈다. 항해와 기계기술자, 회계와 증권 전문가, 세일즈맨과 창고관리인, 해외주재자…. 20세기 끝무렵 IT혁명도 직업의 세계에 또 한 번 대폭풍을 불러일으켰다. 인터넷과 사이버 공간의 무수한 전문가집단에 온갖 소셜미디어 직종까지. 인류는 그 물결 속으로 전진하며 일신우일신 새 세상을 체험 중이다. 과연 멋진 신세계로 인도할지 의심도 품은 채.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직업은 한층 다양해진다. 정부가 국제표준직업분류(ISCO) 방식을 원용해 한국표준직업분류표를 만든 배경이다. 통계, 고용, 교육정책 등에 두루 활용되는 게 이 분류법이다. 한국직업사전에 따르면 국내에는 1만1655개(2011년)의 직업이 있다. 고용노동부
행복은 일요일 밤 최효종이 익살로나 파는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신용불량자용 행복기금에다 전 국민에게 기초연금 떡을 나눠준다며 국민행복연금위원회가 앞서더니 서민용 행복주택에 행복기숙사도 나왔다. 아! 사방의 행복! 모두 정부가 내건 행복 세례다. 또 어떤 행복을 나눠줄까. 행운학자금융자, 행복백수수당, 사업재기행복지원금…? 세대마다 거리마다 행복, 또 행복! 행복은 넘치는데 슬슬 어지럽다. 도대체 국가가 국민을 직접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무슨 전제국가도 아니고 청렴인자형 국왕이 그저 미소나 짓는 은둔의 소왕국도 아니다. 대통령부터 9급까지 상하 전 공무원들이 법에 딱 정해진 대로의 권한과 의무만큼만 봉사하기로 사회계약이 된 공화국이다. 그런 21세기 현대국가다. 행복! 행복! 사방의 행복마케팅 국가가 국민들에게 행복을 나눠준다는 생각은 애당초 할 필요가 없다. ‘공무원=국가’가 아니니 공무원부터 그런 인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국민들도 행여 그렇게 기대해선 안된다. 선거 때 표와 행복의 교환부터가 나쁜 거래였다. 국가가 국민을 직접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순간, 뒤집으면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의 모든 것을 간섭하고, 관리하고, 지배하려 들 것이다. 무수히 본 광경 아닌가. 그러니 정확히는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것이 싫은 게 아니라 그 과욕의 슬로건 뒤에 감춰진 공공의 악마성이 무서운 것이다.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행정의 결과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시장을 향한 모든 개입도 정당화하려 들 것이다. 이불 속 잠자리 횟수까지 간여할
행원으로 시작해 은행의 본부장이 된 친구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뭐니뭐니 해도 돈 장사가 제일 남는 장사지.” 그러면서도 늘 단서는 잊지 않았다. “단, 떼이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리스크 분석, 여신 관리, 신용도 산정…. 어려운 말들이 많지만 결국은 어떻게 하면 떼이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은행의 본질적인 업무다. 신용질서 유지 등 거창한 명분도 있지만 돈 장사는 워낙 확실하게 남는 사업이다보니 은행업에 대해선 정부가 직접 면허증을 내준다. 남기로만 치면 빌려주는 돈 장사보다 아예 돈을 찍어내는 사업이 더 많이 남을 것 같다. 문제는 그 자체로 불법이고, 붙잡힐 위험이다. 떼일 위험과는 비교가 안된다. 어디서나 화폐 위조는 중죄다. 처벌이 중한 것 역시 국가독점 사업에 대한 침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화폐위조는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끊이지 않았다. 윤리와 준법의식은 별개로 치고 순전히 ‘위험도와 수익성’ 관계에서만 본다면 ‘최고 위험, 최고 수익’ 사업일지도 모른다. 위폐의 역사는 실상 돈의 역사와 같다고 한다. 처벌도 처벌이지만 위조방지의 온갖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화폐제조 역사였다. 늘 당대의 첨단 기술이 최대한 반영됐다. 지폐용 종이 제작 단계에서의 숨은 그림(隱畵)과 복사방지용 은선(隱線)은 요즘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홀로그램 기술에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시변각 잉크, 미세문자 인쇄와 요철 처리 등 위조방지 기법은 일일이 손꼽기도 어렵다. 우리나라 화폐위조는 조선 숙종 연간부터 기록에 나타난다. 상평통보 위조자 일당이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사실이 전해진다. 2차대전때 나치 독일이 위폐공장을 세우고 적국
젊음은 원래 무거운 것이다. 그래서 청춘만이 짊어지고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젊음의 반대가 늙음이 아니라, 조금 더 나아가 죽음이라고 볼 수 있을까. 죽음은 워낙이나 숭엄한 것이다. 그래서 죽음은 인생의 온갖 신고를 다 겪은 노년이 최후에 접하는 것이어야 맞다. 그런데도 죽음에 스스로 찾아가는 이들, 자살자가 늘어나고 있다. 1995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자살은 사망원인 중 계속 9번째였다. 그러던 것이 2005년부터는 사망원인 분류에서 4번째로 뛰어올랐다. 자연히 명예롭지 못한 자살 통계도 한둘이 아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자살률은 8년째 1위다. 10만명당 31.7명(2011년)으로 OECD 평균의 3배에 달한다. 10~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 20대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자살이라는 통계도 있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자살도 최근 10년새 4배가 늘어 역시 범선진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생명체 중 인간만이 자살하는 존재라지만 한국은 좀 심하다. 전문가연 하는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 입시 등 경쟁과열, 생명경시 풍조 등 온갖 이론을 다 댄다. 사회병리적 관점을 넘어 신세대의 DNA 변화설까지 들리지만 명료한 설명이 없다. 이것도 이유, 저것도 원인, 다 합쳐 ‘믹스이론’이라도 낼까.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서울서 제일 많이 뛰어내린다는 마포대교에 최근 서울시와 삼성생명이 ‘생명의 다리’ 자살방지 프로그램을 설치해 나름 성과를 냈다고 들린다. 지역별 자살예방센터나 생명의전화 같은 것도 전부터 있었다. 이번에는 자살 예보시스템이 개발됐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와 소셜미디어 업체인 다음소프트 합작이다. SNS에서 ‘힘들
웬만해서 의사들은 굶지 않는다. 최고의 전문직인데다 사회제도로 신규진입도 엄격하게 규제해준다. 사회발전에 맞춰 업무영역을 스스로 만드는 직업이다. 가령 간(肝)전문의를 보자. 못살던 시절엔 간에 질환이 있어도 아무나 의사를 못 만났다. 사망 직전 한이나 풀어보자는 게 진료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사전 진단부터가 큰 시장이다.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먼 훗날까지 건강한 간을 유지해준다는 예방 컨설팅은 부가가치가 더 높다. 변호사도 비슷하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질수록 송사는 많아지게 마련이다. 법률자문은 더 큰 시장이다. 1, 2년이 아니라 10년 후까지 봐주겠다면 청구서는 더 두터워진다. ‘굶은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더 무섭다’는 말도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각자 역량에 따라 자기 업무를 만들어가니 진짜 프로가 구별되는 세계다. 경제 전반에 공포분위기가 확산될수록, 기업의 미래가 불확실해질수록 율사들의 활동 반경도 커진다. 절망감, 비관론 파고든 컨설팅 의사 변호사 등 전통적인 전문가 대열에 새롭게 등장한 ‘초현대판 프로’들도 가세하고 있다. 국제 컨설팅기업들, 다국적 회계법인, 광고홍보(PR) 전문가들이 움직인다. 경제적 공포기에 접어든 한국의 컨설팅 시장을 노린 행보다. 우리 경제에 새삼 큰 일이 일어난 것처럼, 이대로 가면 한국 기업들이 나라 안팎에서 주저앉을 것인양 일단 겁부터 주는 것으로 영업을 시작한다. 외환위기 때도 겪었던 일이다. 방치하면 중산층이 다 무너진다고 하고 북한 핵보다 경제가 더 큰 위험이라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턱없이 낮은 성장전망치를 제시하는가 하면 기업 이미지가 추락했다고 겁준다. 한
파리를 상징하는 개선문 전망대에 서면 옛 제국의 수도 파리 전경이 일망무제로 들어온다. 계단으로 50m 높이를 오르긴 만만찮지만 야트막한 지붕들을 사통팔달로 내려다보는 맛이 일품이다. 엘리베이터로 후다닥 올라가는 에펠탑의 조망과도 사뭇 다르다. 나폴레옹이 전승 기념물로 세운 이 웅장한 건축 예술물 아래로 드골이 당당하게 행진하는 모습에 프랑스인들은 환호했을 것이다. 1945년, 4년간 독일 치하에서 벗어나 프랑스가 재탄생하고 레지스탕스 영웅 드골이 대중정치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고대 로마의 것에서부터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까지, 전쟁영웅들은 개선문을 통과해 권좌로 나아갔다.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권위의 장소였고 극대화된 정치 공간이었다. 청년시절 미술가냐, 건축가냐로 진로를 고민했던 히틀러가 ‘건축은 시대정신’이라며 거대 대중동원 시설에 집착을 보였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베이징 톈안먼(天安門)도 황제와 제국의 권위 그 자체였다. 자금성의 상징, 톈안먼을 지나 황제가 출병의식을 하고, 조서를 반포했다는 오문을 거쳐 태화문 등을 거치면 자금성 뒤쪽은 지안문이다. 이 대문들은 단순히 성곽시설만은 아니었다. 청(淸)의 국가이념과 시대정신이 응축된 통치 공간이었다. 그래서 청은 자금성 문에 안(安)과 화(和)를 강조한 이름들을 내걸었다. 천자 체제에 온 천하가 평안하고, 그 덕에 이민족들까지 오로지 화합하라는 계시요, 압박이었다. 문이 정치 권위의 상징물이자 국가적 염원의 발로였던 것은 동서양이 마찬가지였다. 유교의 나라 조선을 세운 정도전이 새 수도 한양에 성을 쌓으며 먼저 한 일이 유학이념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었다. 예를 숭상
한국경제신문이 2기 객원 논설위원단을 새로 구성했다. 각계 최고 전문가 21명이다. 객원 논설위원들은 경제 분야는 물론 안보, 법률, 정보기술(IT), 미디어, 의료경영 등 각 분야에서 전문적이고 통찰력 있는 식견과 분석을 보여줄 계획이다. 객원 논설위원들은 시론과 다산칼럼, 한경 사설 등을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제시하게 된다.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은 “안보가 중요한 시기며, 그중에서도 경제안보가 제일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안경태 삼일회계법인 회장은 “좋은 글을 통해 한국 경제를 더 발전시켜 나가자”고 제안했다. 곽태원 서강대 명예교수는 “평생을 조세 분야에서 공부를 해왔는데 세금은 기본적으로 적을수록 좋은 것”이라며 조세철학을 밝혔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한경이 지향하는 대로 나아가면 한국 경제도 잘될 것이 확실하다. 그런 방향으로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상봉 국제무역연구원장은 “한경은 한국의 으뜸가는 경제신문인데, 이제 세계의 으뜸 경제신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기여하겠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소공동 더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객원 논설위원 위촉식에선 북한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긴급 진단도 있었다.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는 김정은 북한체제의 구조에 대해 분석한 뒤 ‘3D 정책(deterrence 저지, diplomacy 외교, dialogue 대화)’의 종합적 병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과거 남북대화 과정에서의 직접 경험담을 소개한 뒤 원칙 대응만이 북한을 바꿀 수 있다고 지적했다.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2기 객원 논설위원 명단 <신임>
지역과 문화에 따라 인사예법은 다양하다. 포옹은 기본이고 뺨을 맞대거나 코를 맞대기도 한다. 우리의 전통은 절(拜)과 읍(揖) 같은 형식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악수가 세계표준을 장악하고 말았다. 어디서건, 어떤 상황에서건 보편적 인사예절이 바로 악수다. 정중하게 손을 맞잡는 인사예의, 악수가 갖는 간편함과 합리적인 스킨십 때문일까. 이 격식은 동서양의 문화 차이나 남녀노소 간의 벽도 넘어서게 해준다. 출근길 무수한 샐러리맨의 차림새, 정장 신사복이 전 세계 도시 남성들의 표준 복장이 된 것처럼 악수도 그렇게 인사의 표준이 됐다. 악수에도 예절이 있다. 악수를 청하는 기준은 여성이 남성에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기혼자가 미혼자에게 청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한다. 상호 대등성을 전제로 서로 존중하고 친근한 정을 담는다는 의미라지만 아무 데서나, 아무 손이나 덥석 잡는다고 예법에 맞는 악수예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하되, 상대 손을 너무 강하게 쥐거나 형식적으로 손끝만 내미는 것은 옳은 악수법이 아니다. 악수를 사양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결례요, 모욕이다. 악수는 고대 로마에서 기원했다는 설도 있고 중세 잉글랜드라는 주장도 있다. 기원이 어디였든 악수가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는 해석은 지금도 썩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래서 당초 남자끼리 인사였던 것이 보편적 인사예법으로 확대됐다는 추론이 맞다면 악수가 ‘안전의 확인’에서 ‘대등한 존중’으로 그 의미가 확대됐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겠다. 최근 신문에 실린 두 장의 악수 장면으로 네티즌이 시끌벅적하다.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한 빌 게이츠
불가의 참선 수행이나 천주교의 피정은 종종 묵언을 중요한 수단으로 삼는다. 그러나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실존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상기해본다면 묵언조차 언어의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이데거의 말은 ‘인간의 사유 방식은 스스로 사용하는 언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언어체계는 그만큼 인간의 존재, 사회의 구성에서 절대적이다. 본질에 꼭 들어맞는 적확한 말, 특정 상황에 어울리는 예리한 개념어를 쓰는 것은 사회가 고도화되고 지식 수준이 높아질수록 중요한 덕목이다. 그래서 문호 플로베르가 이미 167년 전에 언급한 ‘일물일어(一物一語)설’은 지금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일물일어는 세상의 어떤 사물이든지 자신을 표현할 오직 하나만의 단어를 갖는다는 주장이다. 관념이든 형상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어의 오용과 남용, 악용이 심각한 현대사회를 비판한 경고처럼 들리기도 한다. 명백한 요금인상인데 조정, 상향조정, 현실화라며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표현하는 관료들의 행정용어도 적지 않다. 요즘 범람 상태가 된 ‘경제 민주화’란 말만 해도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민주라는 미명 아래 폭력을 정당화는 일이 부지기수다. 좋은 말은 다 가져다 깃발로 내거는 정치구호란 게 원래가 그렇다. 협상결렬이란 말 대신 ‘우리는 상호 이견이 있다는 사실에 합의했다’고 하는 외교용어도 때로는 진실과 실체를 가리는 데 단단히 한몫한다. 중국이 동북공정이란 기치로 역사왜곡을 가려 우리를 당황케 했는데 지금 일본은 스스로 사과까지 한 일을 다시 부인하는 궤변을 연일 내놓으면서 우리를 아연실색하도록 만든다. 일본의 ‘우경화(
1995년 7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장문의 논문이 게재됐다. ‘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비장한 제목의 장장 8페이지에 걸쳐 3만5000단어로 정리된 유려한 현대문명 비판문이었다. 글쓴이는 16세에 하버드대에 입학해 3년 만에 졸업한 천재 수학자 테오도르 존 카진스키.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것은 이 사람이 1978년부터 17년간이나 우편물 폭탄으로 무차별 테러를 가해 수십명을 살상한 얼굴 없는 테러범이었기 때문이었다. “더이상 테러를 않을 테니 내 글을 실어달라”는 요구를 받은 신문사는 미국 정부와 협의해 이 요구를 수용했다. ‘유나바머(unabomber)!’ 대학(university)과 항공사(airlines)에 폭탄(bomb)을 보냈다 해서 FBI는 그 테러범을 그렇게 불렀다. 그는 26세에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종신 교수가 됐으나 반전(反戰)운동 등의 정치사회적 혼돈 속에 1년 만에 교수직을 던졌다. 이후 몬태나 숲속의 작은 오두막에서 은둔형 외톨이, 즉 외로운 늑대로 지내면서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극단적 행동으로 테러를 자행했다. 결국 신문에 게재된 선언문을 본 친동생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됐고. 은둔형 외톨이나 폐쇄적 반항아들은 많은 경우 자신만의 근거지로 도피한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를 사회에 직접 전달하겠다고 나서면 곧바로 끔찍한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들의 메시지는 극단적이어서 대개는 문명 부정적이거나 종말론적이다. 요구는 비타협적이고 교조적이다. 카진스키가 전자라면 1996년 벽두 대규모 인질극으로 시작해 러시아와 시가전을 벌인 자칭 외로운 늑대, 체첸 반군은 후자 쪽이다. 어느 쪽이든 사회적 부적응이나 도덕적 분노가 깔려 있다. 이렇게 ‘외로운 늑대’라
대선 패배 후 영국에서 머물렀던 추억 때문이었을까.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유난히 영국 국빈방문(state visit)을 원했다고 한다. 외교부의 부담이 컸을 만했다. 그러나 정작 영국 국빈방문이라는 호사는 후임자가 누렸다. 영연방의 상징인 여왕이 성대한 만찬을 주최하고, 대영제국의 권위가 흐르는 백마가 끄는 황금마차로 런던 중심 버킹엄 궁전 주변을 누비고, 음악가 헨델이나 바흐처럼 양털 가발을 쓴 런던시장과 3시간짜리 만찬을 나누고…. 외교라인이 이리저리 뛰었지만 결국 DJ의 국빈방문은 불발이었다. 영국 쪽 사정 때문이었다. 영국은 매년 국빈방문국을 극히 제한적으로 정한다. DJ의 방문신청은 ‘대기’명단에 올려져 있다가 2004년 노무현정부 때야 성사됐다. 그나마도 영국의 요구사항을 한두 가지 확실히 들어줬을 것이라는 후문도 있었다. 가령 영국제 해상작전헬기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최근의 기사를 보면서 당시 제대로 한턱 대접받은 국빈방문의 취재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겉만 요란할 뿐이었다는 국빈방문 수행단의 뒷얘기도 적잖게 들었다. 송아지 스테이크가 세계 최고라는 아르헨티나의 국빈만찬장에서 말라빠진 소고기를 썰었다는 불평이며, 카자흐스탄처럼 말고기 요리가 최고의 대접이라는 중앙아시아국에서는 국빈만찬 뒤 대통령 일행이 한밤중에 숙소에서 라면을 끓였다는 얘기도 과장만은 아니었다. 화려한 베이징의 국빈만찬장을 뒤로 하고 기자들과 밤늦게 샌드위치를 먹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청와대 보좌관 시절 모습도 생생한 기억이다. 국빈으로 초대하는 외국 지도자 숫자를 엄격하게 제한하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꼭 10년 전 5월, 대통령 취재로 미국
사람들과 비교할 순 없지만 개들도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하다. 가장 흔한 애완견(犬)에서부터 투견 탐지견 사냥견 안내견 구조견 썰매견 경찰견 야생견…. 군견(軍犬)도 있다. 개를 군사적 목적에서 키웠다는 기록은 2500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고대 페르시아가 이집트와의 전쟁 때 사용했다고 한다. 로마제국, 그리스 스파르타, 옛 중국에서도 개를 전투에 활용했다고 전해진다. 과학적, 체계적인 훈련을 거쳐 경비 수색 운반에 제대로 활용한 것은 1차 세계대전부터다. 그렇게 보면 개가 군에 동원된 것은 군대와 전쟁의 현대화와 궤를 같이하는 셈이다. 개의 후각은 통상 인간의 1만배라고 한다. 최대 100만배라는 분석도 있다. 이렇게 뛰어난 후각에다 민첩하고 용감하다. 충성심은 또 어떤가. 혈통 좋은 개 중에서도 엄격하게 선발해 전문가들이 자질을 더 키우게 한 게 군견이다. 전방부대의 경비, 수색에서 폭발물 탐지까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 초기 독일의 목양견으로 이름을 날렸다가 각국에서 군견으로 각광받는 셰퍼트들은 보기에도 근사하다. 우리 군에서 군견으로 발탁되면 8~9세까지 활동하다 퇴역한다. 사람에 비교하면 65세쯤 된다는데 이때쯤이면 후각이나 탐지, 추적능력이 확 떨어진다고 한다. 군견은 퇴역하면 대개 안락사하거나 수의대 같은 곳에 학술연구용으로 간다는 대목이 흥미롭다. 군인들만큼이나 군견도 명예를 소중히 여긴다는 의미일까. 눈곱이 끼이고, 아무데서나 실례도 하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베테랑 군견의 자존심이라고 해석한다면 견공이라 해서 제복에 비유 못할 바도 아니다. 군견의 마지막 길을 놓고 동물애호가들이 이런저런 시비도 한다지만 군
근래 작고한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과의 인터뷰에서였다. 김영삼 정부 말기, 한보철강이 좌초하면서 정계로 비리연루 의혹이 커져 나갈 때였다. 현직 대통령의 실세 아들까지 신문지면에 오르내리던 상황이었다. “(기업 부도라는) 경제 사고에 정치인들이 왜 연루된다고 봅니까?” 그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이 보시오. 기자 양반, 그게 한국적 전통 아니오.” 그랬다. 경제든 뭐든, 큰 사고가 터지면 정치인, 권력자들은 어김없이 뒤에 서 있었다. 그들 중 ‘재수없는’ 일부가 수사를 받았다. 더 운 나쁜 일부가 사법처리 대상이 됐을 뿐이다. 정경유착의 풍경, 그와 비슷한 낯익은 모습들이 또 재현된다. 청와대 참모, 실세라는 대통령 측근, 정계 원로…. 명망가들이 신문 사회면에 오르내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 또한 다시 확인되는 정권 후반의 한국적 전통이다. 박 전 회장에게서 ‘한국적 전통’이라는 말을 듣고 메모한 것이 15년 전이다. 정경유착과 기업에 붙은 정치권력의 구악 행태가 유독 한국에만 있어온 건 아니지만, 정치판을 경험한 노(老)기업인의 탄식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진화하는 '한국적 전통'유감스럽게도 그가 한탄했던 ‘전통’이 지금도 계속된다. 모습이 조금 변했을 뿐이다. 잘나가던 권력층이 검찰청사로 이미 줄줄이 불려갔다. 검찰 주변에서 거명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정권 후반기면 나타나는 한국적 전통이다. 정권 말기 쏟아지는 부정과 폭로극이 한국적 전통의 1막이라면, 2막은 새 정권 출범 직후 나타난다. 2막은 이전 정부에 대한 단죄, 보복의 성향이 짙다. 그런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이 수감되기도 했고 투신도 했다. 이러니 우리 정치권에선 누구라도 인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한국민족극운동협회 등 진보 성향의 교수, 법조인, 예술가 단체 소속 622명은 22일 “종합편성채널을 상대로 출연 거부 등 ‘3불 운동’을 실천하겠다”고 밝혔다.이들 단체는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 종편 시청과 종편 투자기업의 상품 구매, 종편 출연 및 인터뷰를 거부하겠다”며 “이 같은 3불 운동은 국민의 불복종 선언이자 시대의 양심선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수많은 의혹 속에 탄생한 4개 종편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의한 언론 장악의 결정판이자 방송 관제화의 완결판”이라며 “언론의 다양성이라는 공공적 가치가 심각한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변 관계자는 “종편이 요구하는 일체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취재 거부를 많은 시민단체와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김우섭 기자 huhws@hankyung.com
사흘 뒤,24일 전남 여수시의 운명이 갈린다. 이날 여수시의회 의원 3명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내려진다. 이들이 의원직을 잃게 되면 60일 이내에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 앞서 여수 시의원 4명이 이들과 같이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대법원 최종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터여서 26명의 의원 중 4분의 1 이상 결원으로 시의회 전체를 새로 구성하는 선거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한두 명 결원보충이 아니라 시의회 전체를 새로 뽑는 보궐선거는 지방자치 역사에 유례가 없다. 선거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여수로서는 이런 불명예가 없을 것이다. 지난달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잃은 4명이나 최종판결을 기다리는 3명이나 한결같이 수뢰혐의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전 여수시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것이 문제인데 한국의 지방자치,특히 지방의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 됐다. 여수가 지방의원들의 행태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라면 강원도 태백시는 방만한 지자체의 재정운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준다. 전국 최연소 시장인 김연식 태백시장(43)은 춘천과 서울까지 오가며 동분서주하지만 태백의 재정은 비관적이다. 두 달 전,시살림에서 긴축 의지를 다지고 중앙 정부의 지원도 요청하며 삭발한 김 시장의 머리는 아직도 짧은 그대로다. 오투리조트 개발에 나선 시 산하 태백관광개발공사의 빚이 산더미처럼 늘어나면서 시의 목줄을 죄어 들고 있다. 작은 지방공기업 태백관광개발공사의 빚은 3000억원에 육박한다. 부채비율은 갈수록 늘어 2009년 567%에서 지난해 말 800%를 넘어섰다. 정부가 부실 공기업의 잣대로 삼고 채권발행의 제한 기준으로 정한 선이 400%라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책을 읽지 않는다는 시대,100만권이 팔렸다고 한다. 그것도 8개월 만이라니 놀랍다. 김난도 교수의 신간 '아프니까 청춘이다' 얘기다. 힘들고 지친 이 땅의 청춘들을 얼마나 잘 어루만졌으면 그럴까 싶다. 고3과 중3,수험생을 둘씩이나 키우면서도 수시로 소통장애를 겪는 기자로서는 낮게 다가서는 그의 감성부터가 놀랍다. 근엄한 '서울대 교수'가 아니라 편하고 다정하게 그냥 '난도쌤(김난도 선생님)'이다. 10대와 20대,심지어 30대까지 청년의 정서와 기분을 잡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될 것 같다. 자칭 '시골의사' 박경철 씨와 짝을 이룬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청춘콘서트'도 외형은 일견 비슷해 보인다. 전국을 찾아가는 이 콤비의 순회공연에 대학생,젊은층은 왜 열광할까. 직선적인 대화,소박하고 편한 강연,막힘없는 비판이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들 신(新)명사들의 거침없는 청춘 사로잡기 행보에 일단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대박을 터뜨린 청춘스타란 점에서는 비슷해 보이지만 김 교수와 안 교수의 청춘마케팅은 자못 다르다. 글로 젊은이들을 쓰다듬는 김 교수의 책이 '신(新)청춘예찬론'이라면 안-박의 콤비쇼는 잘 짜여진 청춘 기획물 같다. 한쪽이 '인생'을 논하고 다른 쪽은 '정치'로 다가선 만큼 지향점도 달라보인다. 특히나 청춘마케팅에 정치를 가미한 안 교수는 며칠 만에 유력한 대권주자 반열에 우뚝 서면서 찬사와 견제를 함께 받는 상황이 됐다. 이전부터 인터넷을 기반으로 나름의 공간을 확보한 몇몇 인사들의 청춘마케팅이 안 교수의 돌풍으로 최고점에 달한 것 같다. 신명사들의 청춘마케팅을 바라보지만 어느 경우든 빛나는 성과에 마냥 박수를 보낼
시카고와 휴스턴은 미국의 3,4위 도시다. 시카고는 미국 중북부 일리노이주의 중심지이고 휴스턴은 남부 텍사스주 경제의 핵심지역이다. 일리노이는 경제규모로 미국에서 다섯번째다. 주(州) 하나만으로도 세계 국가순위 20위 안에 든다. 캘리포니아 주 다음으로 큰 텍사스주는 경제규모로 미국의 두 번째다. 최근 시카고와 휴스턴에 다녀왔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미국 하와이대 동서연구소가 함께 지원한 보름 일정의 언론인 교환방문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는데,두 도시에서 나흘씩 머물렀다. 1,2위인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를 염두에 두고 달려나가는 시카고의 발전 노력도 돋보였지만 눈앞의 3위를 노리는 휴스턴의 추격이 더 인상적이었다. 3년 뒤 파나마운하 확장공사만 끝나면 즉각 3위를 빼앗을 것처럼 휴스턴은 특히나 의욕적이었다. 동서연구소에서 두 지역의 경제단체(시카고 투자협회와 휴스턴 상공회의소),공공기관(시카고 상품거래소,연방은행과 텍사스 가축경매장),기업(보잉과 셰브론)을 적절히 연결시켜줬다. 대학(시카고대,텍사스대)과 신문사(시카고트리뷴,휴스턴크로니클)까지 포함시킨 것은 미국식 홍보전략이었다. 곳곳마다 핵심 실무자들과의 만남이 주선돼 현지 경제의 실상을 보는 데 도움이 됐다. 지역경제 간 경쟁이라는 큰 흐름도 보였다. 무엇보다 경제살리기,특히 지역경제 활성화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두 지역 공히 최대 관심사였다. 경제단체들은 한국 기자에게 자기 도시가 투자에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진지하게 설명했다. 구체적인 기업의 투자여건부터 교육환경,도시 기반시설까지,말 그대로 세일즈였다. "미국에 투자하려면 시카고로! 휴스턴으로!" 이
에이브러햄 링컨과 추사(秋史) 김정희는 동(同)시대인이다. 둘의 얼굴을 보여주며 이 얘기를 꺼내면 대개 의외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미국 16대 대통령과 19세기 조선의 선비가 공통점을 많이 가져야 할 이유는 없겠지만,그래도 같은 시대라기엔 너무 다른 모습이다. 양복에 신사 머리의 사진 속 링컨은 일단 현대풍이다. 갓과 도포 속 추사의 초상화는 그 자체로 그의 시대를 함축한다. 민주주의에 앞장 섰던 링컨이 현대의 시작선에 있는 반면,추사는 아무래도 중세의 뒤쪽이다. 직업에선 더 큰 차이가 보인다. 한쪽이 관료출신의 학자 · 문인인 반면 한쪽은 정계 입문에 앞서 오랜 변호사 활동을 했다. 링컨의 흑백사진은 근대성,합리성,전문성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그는 법치와 공화정을 발전시킨 현대적인 변호사였다. 임금 아래 원님재판이 일상이었던 시대,추사 같은 지식인도 있었지만 150년 전 이 땅에는 변호사라는 말조차 없었다. 링컨에게서 변호사의 고전적 이미지를 본다. 그 이미지에는 '현대'와 '서구'가 스며있다. 성숙한 산업사회로 이행되면서 냉혈한,이기심,거만한 엘리트라는 그림자 이미지도 커져가지만 변호사란 직업 자체는 현대와 법치의 산물임이 분명하다. 뒤집어 보면 변호사들은 산업화도 촉진했고 현대를 현대답게 만드는 데 적잖게 기여했다. 링컨과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그랬다. 법과 계약,책임과 권한,자연인과 법인,정부와 기업,시민과 민주주의….이 모두가 변호사를 떼어놓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현대 사회의 기둥들이다. 다른 어떤 직종보다 공공부문과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권력으로 몰려간 집단도 변호사다. 지금 미국 의회 선량 중 절반이 변호사란
미국이 독립할 때 일군의 식민지인들은 지금의 캐나다 땅으로 이주했다. 독립운동에 대한 반발이었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새 나라,공화국을 세우자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그룹이었다. 캐나다는 1951년 자치령에서 현재의 독립국가체제로 바뀐 이후 영국과의 법적 예속관계는 끝났다. 그러나 지금도 캐나다에선 왕국의 흔적이 적지 않다. 캐나다 제 1의 도시 토론토에서 나이애가라 폭포까지 이 나라에서 통행량이 제일 많은 고속도로 이름이 '퀸 엘리자베스 도로'(QEW)다. 돈도 그렇다. 캐나다달러에는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2세의 얼굴이 들어 있다. 형식적으로 아직도 캐나다의 국가원수는 영국 왕이라지만 주권 국가의 모습으로는 다소 생소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전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주요한 특징 중 하나가 왕국에서 공화국으로의 이행이다. 왕정을 유지하는 경우라도 입헌군주제가 큰 흐름이었다. 그렇게 보면 왕정보다는 공화정이 진일보한 체제라 해도 큰 무리는 없어보인다. 물론 사회구조나 정치체제에서 어느 쪽이 나은지 아직까지 입증된 바는 없다. 왕정은 왕정대로,공화국은 공화국대로 특징이 있다. 정치체제는 역사의 산물이기도 하다. 스웨덴,네덜란드,덴마크,노르웨이….모두 왕을 국가통합의 상징으로 유지하고 있는 입헌군주국가다. 군주제도를 유지하는 국가들의 경우도 구체적인 통치형태는 천양지차다. 사우디아라비아 브루나이 모로코 스와질란드처럼 국왕이 직접 통치하는 절대군주제 국가도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입헌군주제인지,절대군주제인지 경계가 모호한 곳도 적지 않다. 회교혁명 이후의 이란이 공화체제인지,신정(神政)체제인지 구분이 잘 안되는 것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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