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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유지·발전에는 많은 시스템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시스템은 역시 화폐다. 화폐제도의 기본은 신뢰다. 독립성, 배타성, 불가침성도 확보돼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화폐 발행은 한국은행만 한다. 한국은행법 제4장 ‘한국은행의 업무’ 규정에서 맨 먼저 나오는 조항에 명시돼 있다. 제47조(‘화폐의 발행권은 한국은행만이 가진다’)다. 47조 2항은 더 구체적이다. ‘대한민국의 화폐단위는 원으로 한다. 원은 영문으로 WON으로 표기한다’. 한은법에는 ‘한국은행이 아닌 자는 한국은행 또는 이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도 있다. 국가 화폐는 이처럼 중요하다. 근래 ‘지역화폐’라는 표현이 남용되지만, 한은법을 봐도 잘못됐다. 정확한 용어는 지역사랑상품권이다.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는 지역상품권 발행 주체가 지방자치단체장이라고 명시돼 있다(제4조). 발행에 관한 사항은 조례로 정한다고도 돼 있다. 발행 여부부터 자치행정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예산안을 뒤흔들며 지역상품권 지원에 7000억원을 배정하라는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정부 원안에는 1원도 없는데, 신설하라고 한다. 예산 심의에서 국회가 지출 비목을 신설할 수 없다는 헌법의 위반이다. 예산안 처리에서 국회의 위헌적 구태가 처음은 아니지만 과하다. 지역상품권 발행을 위한 정부 지원이 ‘이재명표 예산’처럼 된 탓이 크다. 지방 경제가 어렵다 보니 이런 인기영합적 예산 배정이 먹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민주당은 이 예산 외에 에너지바우처·새만금 SOC 예산으로 각각 7000억원, 5000억원을 늘리지 않으면 감액 예산을 단독 처리하겠다며 으름장을
무주택 청년(34세 이하)이 주택을 분양받을 경우 연 2%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주택을 담보로 하는 대출은 은행이 빌려주는 돈 가운데 이자가 가장 낮은 편이다. 하지만 신용이 좋아도 통상 연 5~6%(2023년 11월 후반 기준)가량 된다. 이에 비하면 큰 특혜다. 연 소득으로 대상자 제한 규정이 있어 연간 10만 명가량이 이 같은 혜택을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에 대해서는 청약저축의 금리도 더 높게 배정된다. 결혼과 출산에 맞춰 금리는 신축적으로 더 내려간다. 비혼·저출산 타개책의 하나로 정부와 여당이 꺼낸 청년 지원 정책이다. 저출산 재앙에 대처하고 청년층 자산 형성을 지원해준다는 취지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비혼족’, 무직 등 다른 청년층과 격차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온다.[찬성] 주택 마련, 청년 자산 형성에 도움…첫째·둘째 출산 때 지원 늘려가야미래를 책임지는 청년세대의 어려움이 유난히 큰 시대다. 무엇보다 좋은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 결혼과 육아에 대한 부담도 상당히 크다. 자산 형성의 기회도 기성세대보다 월등히 불리한 세대다. 이들 미래세대가 가장 많이 불안해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 게 주택문제다. 청년들이 몰려 있는 대도시일수록 더하다. 서울은 심각한 지경이 됐다. 내 집 마련의 꿈이 이뤄지도록 정부가 지원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그렇게 중산층을 육성해야 사회도 안정되고 건강해진다.결혼 유도와 출산 장려를 위한 정부의 정책은 최근 20년 동안 다각도로 모색돼왔다. 저출산 대책 비용으로 빠져나간 재정자금만 가히 천문학적 규모다. 하지만 성과가 나지 않는다.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체계적으로 지원하지 못한 탓이
고액 세금 체납자에게 국세청이 칼을 뽑았다. 재산 추적조사 대상자는 562명, 이들의 은닉 수법도 다양했다. ‘특수관계인’ 명의로 재산 빼돌리기는 기본이다. 비영리법인이 동원되고 가상자산으로 감춘다. 은밀한 공간의 현금다발 같은 장면은 이제 구식이다. ‘고소득·전문직’에서 세금 체납자가 많다. 유튜버·BJ(인터넷 방송인)·인플루언스 등 1인 미디어 운영자가 이 그룹에 많이 포함된 게 주목된다. 초등학생의 꿈이 연예인에서 유튜버로 바뀐 지 한참 됐으니 놀랄 일도 못 된다.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한 소수 유튜버는 놀랄 만큼 많이 번다. 광고 수익이 매달 수천만원인데 세금을 회피하다 조사 리스트에 오른 경우도 있다. 말이 1인 미디어지 다수의 스태프를 두고 전문성을 확보해 나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치열한 노력으로 수입을 높이는 것에 뭐라고 하기는 어렵다. 국세청이 ‘신종 고소득 및 전문직 종사 체납자’라고 적시한 직업군에서 한의사·약사·법무사보다 앞쪽에 1인 미디어 운영자 트리오가 명시된 것을 보면 인기 직업이 된 것도 확실해 보인다. 국세청 자료를 보면 1인 미디어 사업자는 급증하고 있다. 2019년 2776명에서 2021년 3만4219명으로 2년 새 12배나 늘었다. 수입금도 이 기간 875억원에서 8589억원으로 뛰었다. 그렇다면 세금 납부도 제대로 했어야 했다. 세금 납부를 회피하니 국세청의 쇠주먹을 맞는 것이다. 국세청 발표에서 아쉬운 것도 있다. ‘호화생활 영위자’라는 대목이다. 성실납세자의 공분도 이해되고, 국세청이 고난도의 징세 업무를 수행한다는 측면에도 공감이 간다. 그래도 호화생활 자체가 죄라는 것은 대한민국 어느 법에도 없다. 민주적 행정 개념과도 어울리
가속도가 붙은 AI(인공지능) 시대에 맞춰 한국은행이 의미 있는 연구보고서를 내놨다. “AI와 노동시장 변화”라는 제목 그대로 최근 급성장해온 AI가 일자리에 어떤 변수가 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양상을 보일 것이냐다. 직업별 AI 노출지수로 분석한 결과 보수적으로 봐도 국내 일자리 중 341만 개(12%)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핵심이다. 의사, 화공 기술자, 발전장치 조작원, 금속 재료 기술자, 기관사, 회계사, 자산운용가가 대표적이다. 고학력·고소득 근로자일수록 쉽게 AI로 대체된다는 대목이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수긍도 된다. 이런 종류의 예측이나 분석이 나오면 으레 뒤따르는 것이 신기술 규제론이다. AI 기술에 대한 감시·감독 강화 주장은 이미 나온다. 기존 일자리 소멸 우려가 동반된다. 고용안정을 위한 AI 규제론은 논리적인가, 설득력은 있나.[찬성] 특정 그룹 단기 실업 급증은 사회적 부담…윤리 문제 등 파장 살피며 속도 조절을새로운 기술이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비슷한 개념으로 학계에서는 ‘displacement effect(전위효과)’라는 이론도 나와 있다. 대체되는 일자리에는 생업으로 종사해온 수많은 사람이 있다. 모든 직업은 ‘사회적 소속’이다. 이들은 학생 시기와 직업 준비기, 일자리를 택한 뒤에도 수련기를 거치며 공인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 개인의 삶과 가정을 책임지는 생활자다. 이들이 준비할 기간도 없이 기존 일자리에서 갑자기,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밀려난다면 그 충격은 어떠하겠나. 실업이 단기적으로 급증하면 사회적 손실도 만만찮다. 사회적 비용은 국가 혹은 재정의 부담 증가를 의미한다. 고용보험에 따
금단이 많으면 선진사회가 못 된다. 성역은 적은 게 바람직하다. 교육에선 더 그럴 것이다. 자율·독립 기반에서 다양성과 다원화, 개방이 교육의 큰 가치일진대 24년 된 ‘3불(不)’ 정책은 여전하다. 기여입학제·본고사·고교등급제는 논의조차 쉽지 않다. 한국 공교육과 입시 제도의 근간이라는 이 ‘3금(禁)’이야말로 성역이 됐다. 국가적 3대 개혁과제에 교육을 넣은 현 정부도 3불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않는다. 이 중 적어도 기여입학제에 대해선 시행을 공론화할 때가 됐다. 재정난에 허덕이며 경쟁력을 잃어가는 대학부터 살려야 한다. 부실 대학을 방치한 채 교육개혁은 헛구호다. 학자금 부족으로 쩔쩔매는 우수 학생들도 내버려 둘 수 없다. 대학과 입시가 교육개혁의 전부일 수는 없지만, 변화를 실감하기에 좋은 전략 지대다. 실제로 변화가 절실한 낙후 지대다. 좌우보혁 정권이 거듭 바뀌어도 등록금 동결의 철권 정책은 15년째 이어진다. 이로 인해 대학 재정난은 날로 가중된다. 초·중·고교로 가는 교육교부금이 남아돌아 주체하지 못하는 것과 비교된다. 그 결과 국내 최고 대학들도 국제 평가에서 자꾸 밀린다. 그래도 정부는 보조금을 찔끔찔끔 뿌리며 은연중 굴종을 강요한다. 백발의 총장이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아니 작은 불이익이라도 면하기 위해 젊은 교육부 사무관에게 고개 조아리는 장면은 이미지만으로도 끔찍하다. ‘상아탑’이 작은 지원금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간섭과 통제에 휘둘리는 것이다. 인공지능(AI) 시대, 한국 대학 실상이다. 기여입학제는 나랏돈을 쓰지 않으면서 대학을 대학답게 정상화할 수 있다. ‘정원 외 1%’ 정도로 가면 기여 입학생으로 인해 직접 불이
‘회장님, 왜 마누라는 빼라고 하셨습니까?’ 책의 부제부터가 다분히 도발적이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선언했을 때, 삼성의 한 주재원이 현지에서 던진 질문이다. 그 직원은 일본에서 이 회장이 주재한 ‘삼성 신경영 오사카 회의’를 회장 비서실 전략기획팀과 함께 준비하고 진행했다. 이 전 회장은 삼성의 중역들이 양적 성장과 한국 1위 기업에만 만족하고 있다며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한 말이 그 유명한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였다. 이 전 회장은 주재원의 질문에 “마누라를 바꾸기는 너무 힘들어”라고 답했다고 한다. 사진: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임원진들에게 '신경영' 구상을 설명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TV가 세계 1위로 올라서는 데 일등공신이라고 자부하는 전직 ‘삼성맨’ 이승현 인팩코리아 대표가 쓴 (꽁치북스)에 나오는 내용이다. 저자는 1992년 말 삼성그룹 일본 주재원으로 출국해 약 10년 근무했다. 주재원 근무 때 그는 전자상거래로 삼성 LCD(액정 화면) 모니터 현지 판매에 성공했다. 이 경험은 본사로 돌아온 이후 LCD TV 사업화를 책임지는 업무를 맡는 계기가 됐다. 당시 TV시장은 소니와 도시바 주도의 프로젝션 TV, 파나소닉 주도의 PDP TV, 샤프의 LCD TV가 디지털 TV 표준을 놓고 사생결단 경쟁의 불꽃이 튀었다. LCD TV를 끝까지 밀어붙인 삼성전자가 결국 일본 ‘빅3’를 제압하고 세계 1등 TV 메이커가 되었다. 저자는 그 실무 책임자다. 그가 주재원 시절인 1990년대 삼성의 전자 제품은 일본에서 저가 제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일본 최대 전자상가인 ‘아키하바라(秋葉原)’는 물론이고 전국적으로도
2024년도 나랏살림에서 건전재정의 시금석으로 평가받아온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예산 증액안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단독의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의결됐다. 여당의 반대에도 강행한 것이다. 이 안건은 말이 증액이지 사실은 신설이다. 법에 정해진 대로, 지역상품권 발행은 지방자치단체 고유 사무라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아예 관련 예산 자체가 편성되지 않았다. 거대 야당이 7053억 원에 달하는 예산 항목 하나를 신설에 나선 것이다. 국회의 이런 월권이 처음도 아니지만 명백히 법 위반, 그것도 위헌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절차상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본회의가 남았고, 정부 의지도 중요하지만 일단 상임위에서 의결되면 바로잡기는 쉽지 않다. 핵심은 지역상품권 발행을 위한 예산을 중앙 정부가 지자체에 나눠줘야 하느냐다. [찬성] 이전 정부 때 연간 1조원 넘기도…지역경제 살리기 손 놓을 수 없어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게 된 연원과 취지, 효과 세 가지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의 지역상품권 발행 지원은 2018년에 지역의 근간 산업인 조선업이 심각한 불황에 빠진 네 곳을 긴급 지원할 때 편성됐다. 거제·군산·영암·경남 고성 등이다. 정부가 지원해준 100억 원의 예산으로 사전에 할인된 지역상품권이 발행되면서 지역 내 전통시장 등 소상공인 판매 확대에 도움 됐다. 이용자는 9만 원만 내고 10만 원짜리 지역상품권을 사서 그만큼 물건을 구입하면 차액 1만 원이 발행 비용이 되는데 이를 예산에서 메꿔주는 식이었다. 상품권 사용을 특정 지역 내로 제한해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 기여했다. 그때 네 곳은 실업률이 급등해 정부가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했다. 20
인터넷전문은행 대출금리에 비상식적인 ‘이상’이 생겨 이용자 사이에 논란이 빚어졌다. 카카오뱅크·케이뱅크 같은 한국의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신용대출 금리를 책정하면서 신용등급이 낮은 중·저신용자보다 신용 상태가 좋은 고신용자에게 더 높은 금리를 적용한 것이다. 통상 금융시장에서는 신용도가 높을수록 신용대출 금리가 낮아진다. 금융거래의 기본 논리와 정반대 현상이 이른바 제1금융권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것은 정부가 금리라는 돈 시장의 가격구조에 개입하면서 비롯됐다. 나름대로 명분은 있다. 신용 상태가 좋지 못한 저신용자에게도 자금 대출이 이뤄지도록 한 것이 요인이다. 하지만 금리역전은 오래 신용을 쌓아온 우량 고객에 대한 역차별이다. 신용여건에 반비례하는 금리 책정, 용인될 수 있나.[찬성] 서민 금융지원 과정의 파생적 결과…중·저신용자 대출 확대 노력 필요정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가 의도적으로 신용등급이 좋지 않은 이용자보다 신용등급이 우수한 대출자에게 높은 금리를 부담하게 한 것은 아니다.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 접근, 대출이 보다 쉽게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파생적 결과일 뿐이다. 취지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직전 정부 때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고신용자가 금리 부담을 더 져야 한다는 발언을 해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런 취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신용이 낮은 사람은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국무회의라는 행정부에서 제일 중요한 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대통령의 발언은 고신용자가 높은 대출이자를 부담하고, 저신
사괏값이 치솟아 ‘금(金)사과’가 되면서 수입 사과를 막는 폐쇄적 공급 구조에 관심이 높아졌다. 1년 새 사괏값이 3.5배로까지 오르자 공급탄력성이 적은 농산물의 특성을 감안해도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과 가격이 급등한 것은 국내 사과 작황이 좋지 않은 탓이 크지만, 수요에 맞춰 수입이 용이하지 않은 요인도 적지 않다. 외국산 사과가 공식 절차를 거쳐 한국으로 수입된 사례가 전무할 정도다. 그 결과 사과 농가는 보호되지만, 소비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과를 사 먹어야 한다. 개방 무역의 이점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교역으로 발전해온 데다 수출에 나라 경제를 기대는 개방 국가가 사과에 대해 시장을 열지 않는 행위는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국가로선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과 수입제한, 바람직한가.[찬성] 자유무역 이점, 농업 희생 위에 누려…쌀·사과·배 등 '전략 품목' 지켜야WTO(세계무역기구) 체제에서 각국은 국경 없는 교역을 지향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국가에든 자국이 보호해야 할 전략 산업이 존재한다. 농업도 그중 하나다. 상당수 국가가 자국 농업에 대해 보호정책을 편다. 한국도 농업에 대해서만큼은 보호정책을 유지해왔다. 쌀이 대표적이다. 관세 없이 개방하는 품목을 더 늘리는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국내 쌀 생산 농가를 보호해왔다. 오랫동안 밥(쌀)이 한국인의 주식이었기에 논농사를 보호해야 하는 필요성을 절감했다.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해 국내산보다 월등하게 싼 외국 쌀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그 와중에 논이 쌀 경작지 기능을 상실했다고 치자. 갑자기 쌀이 ‘식량 무기화’의 대상이 되면서 수입에 제한이 생겨 도입
뚜렷한 쟁점도 화끈한 한방도 없이 국정감사가 끝났다. 정기국회는 내년 예산 심의, 후반전에 돌입했다. 예산전쟁 시작이다. 건전재정·긴축을 한껏 내세워온 정부가 ‘2.8% 증액’을 지켜낼지가 관심사다. 추경호 경제팀이 나라 살림 정상화에 기여했다는 호평을 받으려면 2%대는 어떻게든 사수해야 한다. 뒷날 평가에서도 이 숫자가 큰 기준이 될 것이다. 건전재정은 중앙 정부만의 준거 틀이 아니다. 지방 재정을 돕고 감시·감독도 하는 행정안전부가 예산 시즌을 맞아 지방자치단체에도 이를 역설해왔다. 엊그제 보통교부세 운용원칙 발표 때도 강조됐다. 교부세가 11조원이상 줄어드니 지자체마다 비상이다. 건전재정은 명분·취지 다 분명한 시대적 과제지만 재정 현실에선 반기는 이가 없는 무서운 원칙이다. 건전재정 깃발은 추경호 경제팀의 첫 번째 성과다. 어떤 예산 항목이든 집행 기관이 있다. 뒤에는 매달려온 무수한 이익 그룹도 있다. 이른바 ‘예산 주인’들이다. 예산을 둘러싼 도전과 압력은 여권 내부에서도 만만찮다. ‘대통령 뜻’도 앞세울 것이다. 이들을 상대로 ‘칼질’하며 증액을 2%대로 묶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국회 심의, 본 게임이 남았으니 아직 속단은 이르다. 더구나 국회는 차원이 다르다. 여의도 선수들은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 것이다. 예산전쟁에서 야당은 거칠고 일방적이다. 가뜩이나 재정을 한껏 풀라며 별러온 과반 다수당이다. 예산지출에 관한 한 여당 의원도 못 믿는다. 이들도 관심사는 오로지 내년 선거다. 총선은 불과 다섯 달 남았다. 추경호 경제팀장은 용기를 잃지 않고 뚝심을 발휘해낼까. 정기국회 후반전 핵심 관전 포인트다. 2%대가 무너지면 윤석열 정
경제가 나쁘면 정부는 다양한 사업으로 돈을 풀고, 중앙은행은 양적완화로 이런 정책에 보조를 맞춘다. 이때는 금리가 내려간다. 반대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거나 경기과열, 인플레이션이 분명할 경우 중앙은행은 돈을 거둬들인다. 금리인상이 단행되고, 자금시장에서 선제적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한국 경제가 장기 침체 와중에 고물가에 직면해 있다. 전자(불황)로 보면 금리인하가 자연스럽고, 후자(고물가) 관점에선 금리를 올려야 한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인플레이션 대처로 코로나19 때 풀었던 막대한 자금을 거둬들이면서 고금리로 가는 것도 변수다. 증권시장의 자금 이탈, 고환율을 막으려면 미국을 쫓아 금리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경영이 어려운 기업과 빚 많은 가계에 고금리는 부담이다. 그래도 한은은 금리를 올려야 하나. [찬성] 저금리 유지 땐 외자이탈·고환율·고물가…풀린 돈이 야기한 부동산 거품 해소도 절실충격적인 코로나19 대책으로 각국은 경쟁적으로 돈을 풀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정부가 나서 온갖 명목으로 돈을 풀었다. 유례없는 초저금리가 장기간 계속되면서 적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했다. 돈이 돈 가치를 잃게 됐고, 미덕으로 여겨졌던 저축 심리도 많이 사라졌다. 코로나19 충격기에는 돈 풀기와 저금리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해도 이제는 금융을 정상화해야 한다. 돈이 가치를 잃는 것의 다른 측면이 고물가다. 물가가 오르는 데는 억지로 끌어올린 최저임금 등 임금 요인과 국제 지정학적 변화에서 비롯한 원자재 가격 인상 요인 등이 겹친다. 그래도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하게 풀린 돈이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가 이어지던 3년 동안 1조3000억 달러가 풀려나
한국에는 제작된 지 50년이 넘은 미술 작품의 해외 반출을 제한하는 법이 있다. 1962년에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제39, 60조)과 그 시행령에 명시돼 있다. 문화재청이 관할하는 법이다. 문화재청 산하의 심의위원회를 거쳐 승인을 받으면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 미술품의 반출을 막기 위한 법이다. 이 법 때문에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 같은 한국 현대미술 거장들의 명품이 국제 미술품 시장에 내걸릴 수가 없다. 최근(2023년 10월 11~15일)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미술품 장터)인 ‘프리즈 마스터스’에 참가하려던 국내 굴지의 한 화랑도 이 법 때문에 한국 유명 조각가의 작품을 국제 무대에 선보이지 못했다. 문화재 규제가 ‘문화 쇄국’을 만들면서 한국 예술의 세계화를 가로막는 것이다. 국내 미술품의 국제시장 판매 제한, 정당성·합리성이 있나. [찬성] 전반적인 고급 문화재 보호 차원…한국 작가의 명작·걸작 국내 향유 유도국내 미술품의 해외 반출을 막는 문화재보호법의 근본 취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외 판매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는 게 아니라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의 판단을 거쳐 판매하게 한다. 아예 막는다기보다 제한을 가하는 정도다. 원래 이 법의 근본 취지는 국보와 보물 등 ‘지정문화재’를 잘 보호하자는 데 있다. 그러다가 그림·조각 같은 ‘일반 동산 문화재’를 포함시켰다. 큰 틀에서는 한국의 문화재를 한국인들 손이 바로 닿는 곳에서 보호하자는 의지가 깔려 있다. 해외에도 이런 사례는 있다. 아르헨티나 같은 데서는 현존 작가의 해외 전시 자체가 허가제다. 작가 작품의 해외 판매, 수출을 위해서는 정부 승인이 필요하다. 걸작 예술 작품의
2025년에는 한국의 고령인구(65세 이상)가 1000만 명을 넘는다.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11개국뿐인 최고령 국가에 들어서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지만, 고령화 속도는 더 놀랍다. 고령사회(65세 이상 14%)에서 7년 만에 초고령사회로 이행한다. 초고령화가 가장 빨랐던 일본도 11년 걸렸다. 지방은 이미 초고령사회다. 2020년에 벌써 전국 시·군·구 가운데 42%(109개)가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어린이집이 요양원으로 바뀌는 게 낯설지 않다. 고령인구가 급증하면서 사회적 갈등과 세대 충돌도 적지 않다. 건전재정의 당위성과 연금개혁의 시급성을 놓고 벌어지는 ‘세대 착취’ 논쟁이 그렇다. 양대 노총의 정년연장 요구에서도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 입장차가 잘 나타난다. ‘너희는 늙어봤나,우리는 젊어봤다.’ 젊은 노인들 사이엔 이런 말도 유행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세대 갈등은 동서고금 공통이라는 말도 있다. 국민통합위원회가 ‘노년의 역할이 살아있는 사회 특별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특위를 출범시켰다. 대통령 직속의 자문위원회가 그 산하에 또 별동대 격의 자문위원회를 발족시키는 것을 보면 심각하긴 심각한 문제다. 출범식에서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은 “노인 문제가 곧 청년 문제”라고 했다. “젊음이라는 게 벼슬도 아니고 노인이라는 게 주홍글씨가 돼선 안 된다”고도 했는데 공감된다. 세대 공존과 (세대별) 일자리 확보 논의가 특위의 주된 업무다. 일자리 문제로 치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같은 사회적 합의 기구가 각 세대 입장을 두루 반영하는 건설적 논의를 진작 시작했어야 했다. 최소한 국회
‘건전재정 vs. 확장재정’.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한국에서 잦았던 경제정책의 논쟁거리다. 경제에서만이 아니라 정치 쪽에서도 계속된 상반된 주장이다. 한쪽은 경제가 어려운 만큼 정부 역할을 더 확대하자는 것이다. 즉 정부의 지출을 늘려가자는 게 확장재정론이다. 정부 소유의 국가적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에서 지출 예산을 키우는 방안은 세금을 더 걷거나 나랏빚(국채)을 더 내는 것뿐이다. 예산지출 증가가 복지를 확장하고 경제 발전에 마중물이 된다는 논리다. 반면 긴축을 하자는 건전재정론은 정부 지출을 줄여 공공의 효율화를 꾀하자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국가채무를 줄이지는 못할망정 더 치솟지 않도록 일정 수준에서 관리해 더 어려운 시기를 준비하고, 미래 세대가 짊어질 부담도 줄이자는 것이다. 전년 대비 2.8% 증가한 2024년도 정부 예산안이 국회 심의를 기다린다. 예산지출을 줄일 때인가, 더 늘일 상황인가. 긴축재정 주장은 여전히 유효한가.[찬성] 불황 때 재정 확대로 서민 지원해야…미국도 정부 주도 '뉴딜'로 대공황 극복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재정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부동산 담보대출 증가로 가계 빚은 사상 최대 규모이고, 코로나19 충격으로 산업 구조조정이 미뤄지면서 기업의 부실과 부채 역시 무서울 정도로 커졌다. 소비와 투자 확대가 중요하지만 민간 부문에서 그럴 여력이 확 줄어든 것이다. 민간 주도의 내수(소비+투자) 확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그것이 재정의 중요한 기능이다. 정부의 지출예산 확대는 경제 살리기에서 마중물 역할을 한다. 대공황 때인 1933년 미국의 뉴딜 정책은 정부가 나서서 지출을 확대함
한국에서 ‘정치적 해결’은 탈법적 절충을 의미할 때가 많다. 여의도 정치에선 초법적 야합을 종종 그렇게 부른다. 사회 곳곳의 ‘정치적 접근’도 정당한 법절차를 건너뛰자는 말일 때가 잦다. 명문화된 제도적 규범의 무시를 정치적이란 말로 포장하고 합리화한다. 초법적이란 말도 흔하다. 이 역시 법의식 빈곤과 법치·준법에 대한 의지 부족 탓이 크다. ‘정치적’이라는 단어에 통합·소통·사회적 합의 같은 말이 치장처럼 붙을 때 야합, 불법·탈법은 쉽게 정당화된다. 그래서 떼법 정서법이 아직도 먹힌다. 진정한 법치주의로 ‘법의 지배(rule of law)’가 확립되지 않은 탓이 크다. 정치, 곧 국회가 사회 먹이사슬의 정점을 장악한 것도 요인이다. ‘사회적’도 비슷하다. 이 말도 한국 사회 곳곳을 그럴듯하게 파고들며 남발된다. 응용된 사회주의처럼 좌편향 가치와 좌익적 이념을 슬쩍 가릴 때 좌파가 잘 쓰는 일종의 위장막이다. 예산 빼먹기, 공공재원 약탈을 정당화하는 가림막도 된다. 유교 이념 ‘대동사회’와도 비슷하게 연결되니 대중 현혹에 딱 좋다. 그냥 기업이 아니라 사회적기업이 그렇다. ‘사회적 경제’ 토대를 마련하자며 같은 이름으로 5개나 국회에 발의돼 있는 사회적경제기본법안도 마찬가지다. 시행 중인 사회적기업육성법도 같은 맥락이다. 사회적기업은 이제 낯설지도,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그 성과는 어떤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부터 실패다. 보조금 나눠 먹기가 횡행했다.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중간지원기관이 전국 광역단체별로 한 개씩 16곳(대전·세종만 통합)이 있는데, 이런 곳 상당수가 ‘정치적’
가을 취업 시즌이다. 수시 채용 기업이 늘어나고 있지만, 대학·고교 졸업 예정자들에겐 연례행사처럼 된 정기 채용이 매우 중요하다. 공공기관은 채용도 정부 시책에 따를 수밖에 없다 보니 정책이 중요하다. 지역 균형 발전 차원에서 정부는 지방 이전 공기업 등에 대해 일정 비율 이상의 해당 지역 인재를 채용하도록 의무화했다. 기업 이전만으로는 정체된 지방을 살리기에 부족하고, 현지 채용까지 해야 효과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전국 각지 혁신도시로 본사를 옮긴 공기업은 해당 소재지의 고교 및 대학 출신 중에서 30% 이상을 뽑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지역 인재 전형 합격자의 89%가 같은 대학인 곳까지 나왔다. 신입 사원들이 특정 대학 동문회처럼 되면서 쏠림이 심화되고 있다. 특정 학교 편중을 심화하는 지역 인재 의무 할당제, 이대로 둬도 될까.[찬성] 고령화·청년급감 지방 살리기 일환…인구소멸 시·군 89곳, 제도 취지 살려야아직까지는 제도 도입의 초기 단계인 만큼 지역 인재를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이상 채용하도록 한 제도의 근본 취지를 주목해야 할 때다. 지방 인재 활용을 확대하자는 이 제도를 왜 도입했나.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각 지역은 인구 급감과 그에 따른 경제 위축 문제가 심각하다. 인구 소멸 지역으로 행정안전부가 적시한 기초 지방자치단체(시·군)가 89곳에 달할 정도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웬만한 정책으로는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벌어져 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때는 범정부 차원에서 공기업 및 공공기관의 본사를 각 지역으로 내려보내 지역 활성화를 꾀했다. 하지만 공기업을 내려보내도 간부들은 서울에 가족을 둔 채 본인만 지방에서 원룸 생활로
건곤일척 같은 ‘감산 승부수’가 통했나. 지난달 반도체 수출이 99억4000만달러로 1년 만의 최대치였다. 전체 수출(546억6000만달러)에서 비중이 18%로 오르면서 ‘바닥 찍었다’ ‘바닥 탈출’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아직은 성급할 수 있는 평가지만 실적 추이를 보면 무리한 분석도 아니다. 월평균 수출액이 1분기 69억달러에서 2분기엔 76억달러로, 3분기에는 86억달러로 늘었다. 수출에서의 비중이 지난해 연간 평균인 19%(6839억달러 중 1309억달러)에 접근한 것도 주목된다. 연초에는 이 비중이 1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반도체 침체는 그대로 무역적자로 이어지면서 매달 수출입통계가 나올 때마다 위기론, 비관론이 이어졌다. 반도체가 살아나면서 무역수지도 지난 6월 이후 넉 달째 흑자다. 수출 증가보다 수입 감소가 큰 까닭에 아직은 ‘불황형 흑자’라는 진단이 대세이기는 하다. 그래도 살아나는 반도체 수출은 무역·경상수지 개선 이상의 청신호다. 환율 안정과 주식시장에도 좋은 뉴스다. 결국 상반기의 ‘반도체 바닥론’이 상당히 맞았던 셈이다.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생성형 AI(인공지능)로 ‘AI 경제’가 본격 궤도에 오를 가능성이 반도체 수출 증가세에서도 엿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감산과 재고관리 전략이 이제 어떻게 변할지가 관심사다. ‘반도체 편중론’이 여전히 제기되지만 아직은 반도체를 빼고는 말하기 어려운 게 수출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의 반도체는 이미 경제와 산업 차원을 벗어났다. 미국과 중국의 장기 대치 와중의 블록 경제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서 핵심이 반도체다. ‘한국 최대 산업인 반도체를 지키고 초격차를 유지하라’는 국가적 과제 이
윤석열 정부도 과거 정부처럼 지역 균형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인구 감소가 현저해지면서 ‘소멸 위기’ 경고가 반복되는 지방을 살리자는 정부 차원의 청사진에는 다양한 내용이 들어 있다. 핵심은 기업 유치, 인구 감소 저지로 경제 살리기다. 지방 소멸 위기의 핵심은 인구 감소, 특히 청년층 급감이다. 줄어드는 인구의 대부분이 수도권으로 향하는 ‘사회적 이동’이다. 대학 진학을 필두로 졸업생들까지 몰려들면서 수도권은 과밀이 심각한 문제다. 학생·청년들이 진학과 취업을 위해 서울로 몰리는 것은 한국적 현실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문제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서울에 학사·학숙이라는 관급 기숙사까지 지어주며 청년들의 탈지역을 부채질한다는 점이다. 인구가 없다면서 기숙사를 제공해 지방 이탈을 부채질하는 행정을 어떻게 봐야 하나.[찬성] 지역 학생 상경 진학은 오랜 전통…'주거 전쟁' 학생에 기숙사는 현실적 지원책전국 각 지역 학생들이 진학을 위해 서울로 몰리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규모 상경은 진학 자체가 일종의 특혜였던 개발 연대 때부터 비롯된 전통이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우수한 대학이 집중돼 있는 데다 졸업 후 취업할 만한 대기업과 주요 기관들이 서울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공기업들이 대거 지방으로 분산되고 각 지역에 혁신도시를 만들어도 한계가 있다. 이런 실상에서 기왕 지방 학생이 학업차 서울로 간다면 주거비 지원이라도 해주는 게 현실적인 지역 주민 지원책이다. 서울에서 학생들의 주거비 부담은 심각하다. 대학생 경우 ‘주거 전쟁’을 벌인다고 볼 만하다. 기숙사를 운영하는 대학이 적지 않지만 몰려드는 학생 수
‘올해 세수 펑크 59조원’ 관련 논란은 최대한 길게 이어지는 게 좋다. 기획재정부엔 미안하지만 적어도 내년 예산안이 확정될 때까지는 논쟁이 계속돼야 한다. 정기국회를 예산국회라고 하는 말 그대로, 지금은 내년도 나라 살림을 짜고 그 이후 재정추계도 해야 할 중요한 시기다. 657조원 정부 지출의 용처를 확정하고, 예산 조달 방식까지 정해야 한다. 엉터리 같은 ‘유사 단식’에 국가 중대사가 가려져선 안 된다. 3년째 크게 빗나간 세수 예측과 관련된 논쟁점은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왜 이렇게 오차가 큰 것이냐다. 기재부 세제실, 조세재정연구원 다 뭐했는지 확실히 짚어야 한다. 둘째, 원인 규명이다. 법인세수 급감에 소득세·부가가치세도 부진했다. 경제가 나쁘면 세금은 걷히지 않는다는 게 재확인됐다. 요인을 정확히 봐야 바른 대책이 나온다. 감세 반대론자들이 엉뚱한 소리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재정의 세금 의존도가 절대적인 판에 부족 예산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다. 환율 방어를 위한 비상금인 외국환평형기금을 쓰는 게 정상이냐는 문제 제기가 나오는 게 정상이다. 넷째, 그래도 계속되는 재정 지출 만능에 대한 경계다. 긴축의 내년 예산안이 정기국회에서 버텨낼지가 1차 관건이다. 네 가지 논쟁거리 모두 건설적 재정 담론으로 이어갈 필요가 있다. 법적 책임 규명도 필요하다. ‘못 미더운 나라 살림’ ‘주먹구구 재정’ 같은 평가는 여론의 질타일 뿐이다. 문책론이 국회에서 나온 것은 당연하다. 국회에 그럴 권한이 있다. 하지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변상·징계보다 가벼운 시정과 제도 개선을 요구할 모양이다. ‘민원’ 많이 넣는 부처라고 기재부를 봐주
2023년 추석 연휴는 총 6일이다. 정부가 휴일 사이에 끼인 10월 2일(월)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조치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명분은 내수 진작과 국민 휴식권 확대다. 휴일이 늘어나면 많은 직장인은 좋아한다. 정부가 정하는 공휴일은 유급 휴일, 일하지 않아도 급여는 그대로다. 반면 기업 경영 입장이나 직원을 쓰는 사업주 처지에선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정부가 임금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생색만 내는 셈이니 말이다. 나흘인 추석 연휴를 엿새로 늘려도, 내수는커녕 해외 여행객만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찮다. 가뜩이나 공휴일이 많은데, 생산성은 높이지 않은 채 노는 것만 장려한다는 산업계 지적에는 선거용 포퓰리즘 경계 심리도 있다. 기업 부담을 감수하는 임시 공휴일 지정, 어떻게 볼 것인가. [찬성] 소비 활성화·국민 휴식권 확대에 도움…쿠폰 배포·신용카드 유인책도 더해야바닥으로 떨어진 나라 경제가 무척 좋지 않다.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잇달아 열고, 대통령도 자주 이 회의를 주재할 정도로 정부가 다각도로 경기 활성화를 모색해나가지만, 이렇다 할 효과가 나지 않는 상황이다. 경제 전문가들과 언론은 어떤 식으로든 당장 내수 확대와 수출 증대를 도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수출은 갈등 많은 국제 정치·경제 여건과 바로 연계돼 있기 때문에 우리 의지만으로 단 시일 내 확대가 어렵다. 결국 상대적으로 돌파구가 쉬운 내수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내수, 즉 ‘국내에서의 수요’는 소비와 투자의 총합이다. 투자 확대는 규제 혁파 등을 통해 그것대로 가되, 정부와 민간 양쪽에 걸친 소비를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돈을 쓸
세계 각지의 역사가 오래된 도시에는 대개 멋진 가로수들이 있다. 더울 때는 시원한 그늘을 선사해주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도시의 멋을 더해준다. 서울 시내에도 약 30만 그루의 가로수가 있어 밀집 도시의 삭막함을 줄이고 통행자와 시민에게 청량감을 안겨준다. 한여름에는 아스팔트 거리나 콘크리트 건물들의 뜨거운 열기를 식혀준다. 하지만 나무를 학대하는 것 아니냐고 할 정도로 가지치기를 심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신주 접촉으로 인한 감전 위험, 태풍·폭우 시 넘어짐 대비, 꽃가루 날림, 간판을 비롯한 건물 가림 등 이유도 여러 가지다. 하지만 강전지(가지를 과도하게 많이 치는 것 또는 무리한 수형 축소)는 거리 미관을 망치고 가로수를 심는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가지를 마구 자르는 강전지 방식의 가로수 관리에 문제점은 없나.[찬성] 태풍·폭우 대비, 간판 가림 민원 대응…가지 많이 쳐도 바로 자라 '적극관리'잘 가꾼 가로수가 주는 장점과 이점이 적지 않다. 하지만 가로수가 늘 편의와 편리만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한번 잘못 심은 가로수는 관리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고, ‘부작용’이 생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전에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다. 도심 가로수는 대개 잘 자라는 수종을 선택하는데, 키가 커지면 가로의 전신주에 닿게 된다. 전신주의 고압전선에 나뭇가지가 닿으면 전선이 끊어질 수도 있다. 태풍이나 폭우가 쏟아질 때 무성한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전선을 흔들어 전기 합선이 일어날 수도 있다. 1년에 몇 차례나 반복되는 태풍에 대한 대비도 중요하다. 폭우와 비바람이 몰아치면 덩치 큰 가로수도 버티지 못할 때가 허다하다.
정부가 오래전에 폐지된 의무경찰(의경) 부활 방침을 꺼내들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묻지 마 강력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력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낮 도심 등에서 무차별하게 휘두르는 흉기, 다중 인파가 몰리는 곳에서 불특정 다수를 겨냥하는 범죄는 예방이 쉽지 않은 현대사회의 병리적 현상이다. 경계·순찰 등의 업무를 위해 경찰 인력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군 복무를 대신하는 의경을 뽑으면 군 입대 인력이 그만큼 줄어든다. 일각에서는 여성에게도 군 입대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아예 모병제·용병제로 직업군인제를 전면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만큼 청년 인적자원이 부족하다. ‘치안 보강’과 ‘국방 만전’이 부딪치는 모양새가 됐다. 흉악 범죄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차원에서의 의경 부활에 문제점은 없나.[찬성] 강력범죄 급증·치안수요 증가로 경찰력 부족…양질의 치안도 국방만큼 중요무고한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이상동기 범죄(묻지 마 범죄)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사회의 상식과 기본 질서를 깨뜨리는 중대한 범죄로, 다수 국민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에서도 가볍게 볼 수 없는 사회적 문제점이 노정된 것이다. 정부로서는 가용 수단과 재원을 최대한 사용하고, 동원 가능한 모든 제도로 이를 예방하면서 대응해나가야 한다. 기존 경찰 인력과 조직을 총동원할 필요가 있다. 과학수사도 강화해야 한다. 치안상 필요한 곳에 CCTV를 더 설치하고 경찰관서와 연결되는 비상벨이나 보안 전등을 확충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기반시설을 갖춰나가는 데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할
인구 941만 명 대 1362만 명. 올해 예산 47조원과 34조원. 국무회의 발언권이 있는 특별시 수장과 외국인을 포함해 1400만 명을 돌파한 지방자치단체의 장. 서울시장과 경기지사는 여러모로 비교 대상이다. 역대 수장 면면도 그렇고 사회적 비중도 그렇다. 지방 정부냐, 자치단체냐 하는 논쟁은 여전하지만 이들 두 기관장에게 교통·주거·위생·저지대 챙기기나 잘하라고 주문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언론 관계에서도 대중 정치인의 프리미엄을 누린다. 최근 김동연 지사의 증액 추경 발표는 그런 차원에서 일단 주목을 끈 이벤트였다. 올해 경기도 지방세 펑크가 1조9292억원에 달하는 데도 1432억원을 더 지출하겠다며 확장재정을 외쳤다. 정부의 내년도 긴축예산과 비교되면서 대립각이 형성됐다. 사대문 안 고도 규제를 풀어 강남북 균형발전을 꾀하고 한강 수변을 경제·문화 자산으로 키워나간다는 오세훈 시장의 낮은 행보와도 대조적이다. 비교거리는 많다. 일본 방류수 대응에서는 더 분명했다. 오 시장은 야당을 향해 “필요 이상 불안감을 조성하지 말라”며 횟집 회식에 나섰다. 김 지사는 “면죄부 시찰단이 아니라 국민검증단을 보내라”며 정부를 몰아세웠다. 기대 같아서는 ‘정책’에서 비교·경쟁거리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 가령 오 시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안심소득을 역설한다. 취약계층 지원을 소득과 연계해 어떻게든 일하려는 동기를 유도하자는 것으로 오세훈 복지의 상징이다. 김 지사의 기회소득은 결이 다르다. ‘사회에서 가치를 창출하지만 보상을 충분히 못 받는 이들에게 일정 기간 소득을 보전하자’는 것이다. 전임 이재명표 기본소득과의 차이가 모호한 측면은 있다. 전통
근로 형태로 볼 때나 업무 성격상 법정기준 근로시간을 초과한 연장·야간·휴일 근로 등이 예정돼 있는 경우 노사 간 약정으로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미리 정한 후 임금도 미리 산정하는 방식을 포괄임금제라고 한다. 매월 일정 금액의 제반 수당을 기본임금에 포함하는 식이다. 추가근무 수당 계산이 어려운 일에 많이 적용된다. 포괄임금제(포괄임금계약)를 금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나와 경영계는 물론 노동계 일각에서도 걱정하고 있다. 추가근로에 따른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 즉 포괄임금제 악용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직업군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노사 간에 초과·연장 수당을 미리 계산하는 포괄임금제를 법으로 원천 금지하는 게 타당할까.[찬성] 근로시간 시작과 종료 측정 명확해야…'업무 준비·대기'도 근로, 노동착취 안 돼포괄임금제를 활용하는 경우는 통상 ‘전문직’이다. 신문사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칼럼니스트나 방송사 소속의 작가와 전문 앵커, IT산업계의 디자이너, 특정 회사에 소속된 경영자문 컨설턴트 같은 경우다. 생산라인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도록 살펴보는 유지보수 엔지니어도 해당될 수있다. 이들은 사무실이나 작업 공간에 나오는 자체가 근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종류의 사무직, 연구개발직, 특수한 생산현장의 근로자에 대해 추가근무 수당을 주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포괄임금제가 이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한국의 사무직에서는 추가근무수당이 없는 경우가 많다. 있어도 통상 시급의 150%가 아니라 교통비 등 다른 명목으로 임금을 보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회사(
각종 비타민과 홍삼 제품 같은 건강기능식품의 개인 간 거래 허용 문제로 말이 많다. 당근마켓처럼 생활용품을 쉽게 사고팔 수 있는 플랫폼이 잘 구비된 요인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정부가 ‘중고 물품 거래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차원에서 매매의 걸림돌을 제거하려고 하는데, 이를 민간에서 반대하고 나선다는 점이다. 외형적 이유는 국민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고, 기능성 식품과 관련된 안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속내로는 재판매로 인한 해당 업계의 매출 감소를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일반 소비자는 구매권, 선택권 확대 차원에서 정부의 규제 완화를 환영하고 있다. 어떤 분야에서나 다양한 선택권은 소비자의 이용후생을 증대시킨다. 건강식품류의 중고거래에 대한 제한 풀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찬성] 공산품·농림수산식품 모두 자율 거래…소비자 '선택권 확대'가 바람직건강기능식품이 주로 전문 매장이나 약국에서 판매되는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각종 비타민이 그렇고, 홍삼 제품도 전문 매장을 통해 판매된다. 하지만 전문 매장을 통한다고 해서 구매자의 자격이나 구매 방식에 특정한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공산품과 온갖 농산품 거래 과정과 다를 바 없다. 건강식품이라는 이유로 구매나 판매에 유별난 규제를 가한다면 공산품인 햇반·햄·간장 등과 농림수산식품도 모두 복잡한 판매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 비타민을 비롯한 건강기능식품의 제조 안전성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과 거래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제조와 포장 과정, 집합적 물류센터에서 규정 내 관리는 상식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개인 사이의 재판매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에게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부작용은 없을까. 여당인 국민의힘이 이를 추진하고 나섰다. 바로 전면 적용은 아니고 유급휴가, 휴일·야간 수당 지급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하자는 것이지만 파장이 만만찮을 것이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가 “노조의 불법 등에 대해 강경 대응만 하는 게 아니다”라는 차원에서 노동시장 취약 계층 껴안기에 나선 셈이다. 하지만 소규모 자영업자와 영세 소상공인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단순히 인건비 상승으로 그치지 않는다. 300만 명이 넘는 5인 미만 사업체 근로자에게는 일단 희소식이 될 수 있지만, 일자리 소멸을 재촉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이들에게도 장기적으로는 도움 되기 어렵다. 소규모 사업장으로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해야 할까.[찬성] 법 보호 사각지대 근로자 처우 개선 필요…단계적 시행으로 '노동계 껴안기'많은 이가 한국 일자리 시장의 양극화를 걱정한다. 이른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문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거대 노조가 자리 잡은 기업과 영세 사업장,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형 원청 기업과 소규모 협력·하청 업체 등으로 근로자 그룹이 나뉜 것은 어제오늘 지적이 아니다. 기본은 수입(급여) 격차가 크게 나는 것이다. 하지만 임금 외에도 근로시간, 복지, 노조의 보호 여부와 사회적 위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최악은 5인 미만 영세 사업장 근로자들이다. 노조가 없는 데다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에 비롯된 측면이 크다. 모두 걱정하지만 우려만 한다고 풀릴 사회적 고민거리가 아니다.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는 313
3만 명 턱 밑의 봉화·진도·양양부터 2만 명도 위태한 영양·양구·옹진까지 18개 군의 군정(郡政) 제1목표가 인구 3만 명 달성이다. 3만을 겨우 넘는 청양·고령·함평·보은 등 4만 이하 다른 18개 지방자치단체의 ‘3만 명 사수’ 노력도 눈물겹다. 10만 명 둑이 무너진 홍성·보령·완주·상주와 몇백 명 여유로 ‘10만 도시’라는 영주·영천 등의 위기감도 만만찮다. ‘인구절벽’ ‘인구위기’는 고령화까지 겹쳐 지역으로 갈수록 심각하다. 너무 집중돼도 탈, 급감하면 더 걱정인 게 인구다. 소멸경고 지역엔 젊은 층이 없고 빈집만 늘어난다. 서울과 외국인까지 몰려 지난 5월 상주인구 1400만 명을 돌파한 경기도는 과밀이 심해져 난리다. 그렇다고 현대화 산업화 첨단화 분업화와 맞물린 도시화라는 큰 흐름을 억지로 막을 수도 없다. 도시화는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시대기 때문이다. 수도권 인구가 분산되고, 은퇴 대열의 베이비부머가 각 지역으로 적극 이동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거대 도시의 팽창은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안타까운 것은 비합리적 제도가 이를 부채질하는 현실이다. 농지나 주택의 구입·소유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대표적이다. 농경사회에나 어울릴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에 기반한 첩첩 규제의 농지법은 도시인의 농촌 접근을 막는다. 1주택을 넘어서면 취득·보유·양도세의 3종 중과세가 있어 도시민의 양다리 걸치기도 어렵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생활인구’라는 개념으로 새로운 인구통계 작성에 나선 것은 이런 상황에서 고육책 같다. 철원·단양·보령·고창·영암·영천·거창 등 인구감소지역 7개 시·군의 통근·통학·관광 등 유형별 체류인구를 집계한다는
‘칠 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 홍수, 큰물의 무서움 일깨우는 우리 속담이다. 산이 무너지고, 집·도로·농경지가 훼손됐다. 그보다도 수십 명 인명까지 앗아간 유난스러운 올해 장마에 더 실감 나는 말이다. 어제로 32일 장마가 끝났다는 기상청 공식 발표가 있었지만, 폭염 뒤엔 폭우를 동반하는 태풍 시즌이 기다린다. 예부터 나라의 주요 기능으로 치수(治水)를 먼저 꼽았다. ‘종합 물관리’로 보면 현대 국가라고 다를 바 없다. 온실 재배로 농업용수는 사계절 필요하고, 최상급 수질이 필수인 반도체 생산 공정을 비롯해 산업용수도 기하급수로 늘었다. 일과가 된 샤워, 수시로 돌리는 세탁기, 빼곡한 고층 건물들을 보면 생활용수 사용도 막대하다. 한국인의 1인당 수돗물 사용량이 중동 지역의 6배라는 통계도 있다. 독일보다 3배 이상 쓰는데 물값은 3분의 1이라는 비교도 있다. 강수도 장마 때는 집중돼 탈, 가뭄 때는 모자라서 난리다. 댐과 보를 만들어 강 활용도를 높여도 1년 내린 빗물의 28%가량만 활용할 뿐이다. 이번 장마는 댐의 중요성을 되돌아보게 했다. 특히 발전용인 괴산댐을 리모델링해 달라는 괴산군의 대정부 요청에 따라 다목적댐 기능이 재부각했다. 저수용량 초과로 월류가 심각했던 괴산댐에 홍수 조절 기능을 더하자면 댐 용량을 키우는 공사가 시급하다. 언제나 ‘환경 원리주의’ 극복이 난관이다. 다목적댐은 말 그대로 홍수 조절, 농업·공업용수 공급, 수력 발전, 상수원 확보를 위한 중요한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이다. 충주·횡성·소양강댐 등의 멋진 둘레길과 유람선을 보면 ‘관광레저’라는 목적도 이젠 공식화하고, 경제적 효과에 포함해도 좋겠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6월 29일, 62년간 자국 대학 입학 때 인종 문제를 고려해 온 입시 정책인 ‘Affirmative Action(인종 등 소수집단 우대 정책)’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다양성, 인종 간 차별 철폐를 명분으로 흑인·히스패닉 등을 우대하면서 백인과 공부 잘하는 아시아계를 역차별한다는 논란을 불러온 정책이 폐기되게 됐다. 이를 계기로 한국 입시에서 ‘3불(不)’의 하나인 기여입학제를 돌아본다. 입시에서 정원 외 일정 비율만큼 대학에 금전적 기여 등을 할 경우 입학을 허용하는 것이다. 과거 개발 연대에 ‘뒷문’으로 은밀히 입학시킨 것을 양성화하는 측면도 있고, 대학의 재정난을 타개할 현실적 방법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충분한 사회적 공론을 거쳐야 할 것이다. 기여입학제는 냉철하게 토론도 못 할 사안인가, 바로 검토라도 해 볼 만한가.[찬성] '정원 외' 운용 대학 재정에 도움…투명·공개 관리, 시행하면 정부 지원금지한국 대학의 낙후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국내 최고 대학들도 국제 평가에서 뒤로 밀려나 있다. 15년째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대부분 대학이 재정난을 호소한다. 정부는 이런저런 명목으로 대학에 지원금을 조금씩 나눠 주면서 굴종을 요구한다. 대학 총장들이 교육부 관련 부서에 가서 고개를 조아리며 지원금을 받아 오고, 온갖 간섭과 규제에 휘둘린다. ‘진리의 아성’ ‘상아탑’ 같은 표현은 다 옛말이다. 기여입학제는 나랏돈을 쓰지 않으면서 이런 대학을 정상화할 수 있다. 기존의 ‘정원 외 1%’ 식으로 제한하면 기여 입학생으로 불이익을 받는 수험생도 없다. 가령 서울의 유수 사립대에 정원 외로 30~40명 정도 학생을 더 수용하면 학과 배정에 따라 해마
저출산과 고령화는 저성장 한국의 아킬레스건이다. 아쉽게도 사회적 논의나 정책은 계속 저출산에 집중된다. 이제 고령화의 다면성에도 주목할 때가 됐다. 고령화까지 더 걱정하자는 게 아니라 고령인구 활용 방안을 적극 찾자는 것이다. 잘하면 현실적인 저출산 타개책이 된다. 한국의 60세 이상 인구는 1366만 명(6월 말)이다. 퇴장하는 베이비부머들로 60세 이상은 무섭게 늘어난다. 2003년 581만 명에서 2013년 834만 명으로 증가한 데 이어 10년 만에 532만 명 급증했다. 이 연령대 취업자도 꾸준히 늘어 통계청 기준 취업자가 644만 명에 달한다. 1년 새 35만 명 증가했다. 저출산의 큰 문제점은 산업인력 부족에 따른 경제·사회 활력저하,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른 국가의 쇠락이다. 20년간 힘써도 결과가 신통찮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재정 지출로는 한계가 드러났고 그나마 쓸 돈도 없다면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많아서 문제, 급증해서 더 걱정인 60대 이상 인구를 경제활동인구로 무리 없이 잘 활용해야 한다. 가야 할 길이다. 세대 간 일자리 경쟁 우려가 있지만 타협점이 있다. 고무적인 것은 몇 건의 실태조사 결과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를 보면 올해 중장년 채용계획이 있다는 기업이 70%에 달한다. 중장년을 40세 이상으로 잡았지만, 50~60대로 봐도 긍정 답변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중장년 채용이 경영성과에 도움 된다는 응답이 70%에 이른 다른 조사도 있다. 55세 이상 채용공고가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고용의 경직성이 문제일 뿐, 시장에서 고령자가 기피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고령자 취업은 어떤 식이 좋을까. 먼저 제도적 정년 연장이 있다. 하지만 법제화는 부작용이 적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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