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문화부에서 클래식 음악을 비롯한 공연예술 전반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ksoohyun@hankyung.com
“아이슬란드의 글렌 굴드.”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후계자로 점찍은 인물은 아이슬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39)이다. 그의 연주는 한번 들으면 쉬이 잊히지 않는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독보적인 해석과 섬세한 표현, 명료한 타건으로 순식간에 청중을 압도하는 능력이 탁월해서다. 국제적 권위의 클래식 음악 전문지 그라모폰이 그를 두고 “가장 고유한 세계를 가진 음악가 중 하나”라고 극찬한 이유다. 세계 클래식 음악계가 주목하는 피아니스트 올라프손이 바흐 음악으로 돌아왔다. 6일 명문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DG)을 통해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내놓으면서다. 이는 2018년 발표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 이은 그의 두 번째 바흐 음반이다. 이번 음반은 올라프손에게 더욱 특별하다. 10대 때부터 간직해온 꿈이 이뤄진 결과라서다. 그는 “지난 25년간 이 작품을 나의 피아노 연주로 녹음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왔다”며 “나의 세계에서 바흐란 작곡가가 없다면 어떠한 의미도 남지 않을 만큼, 바흐의 음악은 내게 엄청난 영감을 준다”고 했다. 바흐 필생의 역작으로 꼽히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작품의 주제 선율인 아리아와 이를 변주한 30개의 짧은 곡으로 이뤄진 작품이다. 바로크적 대위와 변주의 성질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악곡의 전개에서는 바흐 특유의 치밀한 구조와 논리를 엿볼 수 있다. 건반 음악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인 만큼 글렌 굴드, 로잘린 투렉, 제임스 프리스킨, 안드라스 쉬프 등 거장 피아니스트들이 명반을 남겨왔다. 올라프손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건반 음악 중에서도
지난해 도쿄 국제 비올라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비올리스트 박하양이 국내 청중과 만난다. 오는 21일 경기 부천아트센터 소공연장에서 열리는 리사이틀 'BAC 영 프론티어 시리즈: 원더우먼' 무대에서다. 이번 공연에서 박하양은 클라라 슈만, 구르지, 클라크 등 여성 작곡가의 작품들을 대거 조명한다. 슈만의 '세 개의 로망스' 작품번호 94 연주로 문을 연 뒤 구르지의 '창가의 저녁', 다울런드의 '나의 비탄이 열정을 다시 태울 수 있다면', 브리튼의 '라크리메(눈물)', 슈만의 '세 개의 로망스' 작품번호 22, 클라크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등을 차례로 연주할 예정이다. 박하양은 이날 2016년 프라하의 봄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거머쥔 피아니스트 박진형과 함께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박하양은 12세 나이로 파리 레오폴드 벨랑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이름을 알린 연주자다. 지금까지 지휘자 세이지 오자와,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개리 호프만,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크리스티안 테츨라프·안티에 바이타스·콜야 블라허, 비올리스트 이마이 노부코·앙투앙 타메스티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꾸준히 호흡하며 명성을 쌓아왔다. 현재 그는 크론베르크 음악원에서 전문 연주자 과정을 밟고 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무대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예술가다. 청중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객석에 앉아 무대 위에 선 예술가를 올려다봐야 한다. 무대와 객석은 소리가 통하는 하나의 공간이지만, 실상 예술가와 청중 사이엔 뚜렷한 경계(境界)가 있다.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박창수 더하우스콘서트 대표(59)는 연주자와 청중 사이의 칸막이를 허물고 싶었다. 연주자가 청중의 시선을 더 가까이 느끼고, 피아니스트가 두드린 건반과 첼리스트가 활로 그은 현의 진동이 청중의 몸을 타고 그대로 전달되는 공연을 정기적으로 열고 싶었던 것.박 대표가 내린 결론은 ‘마룻바닥에서 여는 콘서트’였다. 이렇게 2002년 시작한 하우스콘서트가 오는 10일 1000회 공연을 맞는다. 장소는 평소 음악회를 여는 서울 동숭동 예술가의집이 아니라 롯데콘서트홀로 잡았다.평소보다 많은 관객이 올 것을 염두에 둬서다. 화려한 무대도, 지정 좌석도 없는 예술가의집처럼 만들 수는 없지만, 최대한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롯데콘서트홀 객석 1층을 모두 비우고 100여 명의 청중이 무대 바닥에 앉아 연주를 듣도록 했다.이날 공연엔 2014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 2015년 부소니 국제 콩쿠르에서 연이어 우승한 피아니스트 문지영과 2021년 체코 프라하의 봄 국제 콩쿠르, 올해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에서 정상을 차지한 아레테 콰르텟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이 이끄는 에라토 앙상블 등 50여 명이 나설 예정이다.그간 하우스콘서트에 참여한 연주자 연인원은 4700명에 달한다.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피아니스트 조성진·임윤찬·김선욱부터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피아노), 이경숙 연세대 명예교수(피아노) 등 중견 음악인까지 마룻바닥
무대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예술가다. 청중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객석에 앉아 무대 위에 선 예술가를 올려다봐야 한다. 무대와 객석은 소리가 통하는 하나의 공간이지만, 실상 예술가와 청중 사이엔 뚜렷한 경계(境界)가 있다.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박창수 더하우스콘서트 대표(59)는 연주자와 청중 사이의 칸막이를 허물고 싶었다. 연주자가 청중의 시선을 더 가까이 느끼고, 피아니스트가 두드린 건반과 첼리스트가 활로 그은 현의 진동이 청중의 몸을 타고 그대로 전달되는 공연을 정기적으로 열고 싶었던 것. 박 대표가 내린 결론은 ‘마룻바닥에서 여는 콘서트’였다. 이렇게 2002년 시작한 하우스콘서트가 오는 10일 1000회 공연을 맞는다. 장소는 평소 음악회를 여는 서울 동숭동 예술가의집이 아닌 롯데콘서트홀로 잡았다. 평소보다 많은 관객이 올 것을 염두에 둬서다. 화려한 무대도, 지정 좌석도 없는 예술가의집처럼 만들 수는 없지만, 최대한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롯데콘서트홀 객석 1층을 모두 비우고 100여 명의 청중이 무대 바닥에 앉아 연주를 듣도록 했다. 이날 공연엔 2014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2015년 부소니 국제 콩쿠르에서 연이어 우승한 피아니스트 문지영, 2021년 체코 프라하의 봄 국제 콩쿠르와 올해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에서 정상을 차지한 아레테 콰르텟,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이 이끄는 에라토 앙상블 등 50여 명이 오를 예정이다. 그간 하우스콘서트에 참여한 연주자 연인원은 4700명에 달한다.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피아니스트 조성진·임윤찬·김선욱부터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피아노), 이경숙 연세대 명예교수(피아노) 등 중견 음악인들까지 마룻바닥 음악회를 거
레오니다스 카바코스(1967~)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는 그리스 출신 연주자다.다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운 그는 아테네 그리스 음악원에서 스텔리오스 카판타리스를 사사했다. 1985년 18세의 나이로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 우승을 차지한 그는 3년 뒤 파가니니 콩쿠르, 나움버그 콩쿠르 정상까지 거머쥐었다. 이후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 등 세계 최정상급 교향악단과 호흡하면서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명연을 남겼다.1991년 BIS 레이블을 통해 발표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오리지널 버전(1903∼1904년작) 녹음 음반으로 그라모폰이 수여하는 ‘올해의 협주곡 음반상’을 차지했고, 2013년에는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와 함께 녹음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음반으로 에코 클래식 ‘올해의 기악 연주자’로 선정됐다. 2017년엔 덴마크 최고 영예인 ‘레오니 소닝 음악상’을 받았다.소니 크래시컬 레이블 전속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카바코스는 오는 17일 경기 아트센터인천에서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와 듀오 리사이틀을 열 예정이다.김수현 기자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조성진, 임윤찬이 나란히 한국을 찾는다. 오는 11월 조성진은 키릴 페트렌코가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고, 임윤찬은 정명훈이 지휘하는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손잡고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에서 주목해야 할 건 두 피아니스트의 레퍼토리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으로 같다는 점. 한 작품을 두고 완전히 다른 색채와 해석을 선보일 조성진, 임윤찬의 연주를 불과 2주 간격으로 만나볼 기회란 얘기다. 물론 이들의 음악 세계를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는 필수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1806년 그의 귓병이 급속도로 악화하던 때 쓴 작품이다. 작곡가에겐 사형 선고와도 같던 난청 진단에 좌절할 만한 상황이었으나, 그는 운명에 쉽게 굴복하지 않았다. “오직 예술, 그것만이 나를 붙들었다. 죽음이여 올 테면 와 보라. 나는 용감하게 그대를 맞이할 것이다.“(베토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中)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통해 예술가로서 식지 않는 창작열과 삶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밝힌 베토벤은 그로부터 10년간 더 치열하게 작곡 활동에 매달렸다. 이때 탄생한 작품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4번,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교향곡 3번 ‘영웅’, 교향곡 5번 ‘운명’ 등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은 이 시기를 ‘걸작의 숲’이라 일컫는다. 이 작품은 베토벤이 쓴 가장 서정적이면서도 활기찬 협주곡이다. 베토벤 작품에 흔히 기대할 만한 투쟁적인 성격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그가 당시 요제피네란 여인과 연애 중이었던 영향으로 해석된다. 누군가를 사랑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이다. 라트비아 출신의 ‘첼로 거장’ 미샤 마이스키가 1992년 내한 공연 당시 열 살짜리 첼리스트 장한나의 연주 비디오를 보고 단번에 천부적인 재능을 확신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사제지간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이 2012년 이후 11년 만에 한 무대에 올랐다. 지난 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장한나 & 미샤 마이스키 위드(with) 디토 오케스트라’ 공연이다. 스승인 마이스키는 첼로를 잡았고, 그의 유일한 제자 장한나는 지휘봉을 들고 포디엄에 올랐다. 디토 오케스트라는 2030세대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악단이다. 오후 5시.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 무대로 걸어 나온 마이스키가 들려준 곡은 ‘첼로 협주곡의 황제’로 불리는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b단조였다. 그의 고향인 체코의 슬라브 문화와 당시 체류 중이던 미국의 민요 정신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마이스키는 과도한 힘을 주기보단 팔의 무게만을 이용해 활을 현에 밀착시키면서 드보르자크 특유의 강렬한 음색을 뽑아냈다. 그는 현에 가하는 장력, 보잉(활 긋기) 속도, 비브라토 폭 등을 예민하게 조절하면서 어떤 때는 파도가 몰아치는 듯한 격렬함으로, 어떤 때는 향수가 깊게 배인 애절함으로 드보르자크의 서사를 풀어냈다. 자칫하면 지루하게 들릴 수 있는 단순한 선율에도 하나하나 풍부한 색채를 덧입히며 만들어내는 입체감, 왼손과 오른손을 긴밀하게 움직이면서 일으키는 유선형의 자연스러운 울림은 그가 ‘왜 대가로 불리는지’ 새삼 일깨워줬다. 다만 디토 오케스트라의 연주력은 아쉬움을 남겼다. 마이스키가 임의로 템포에 변화를 주는 구간에서 악단이 유연하게 반응하지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이다. 라트비아 출신의 ‘첼로 거장’ 미샤 마이스키가 1992년 내한 공연 당시 열 살짜리 첼리스트 장한나의 연주 비디오를 보고 단번에 천부적인 재능을 확신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사제지간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이 2012년 이후 11년 만에 한 무대에 올랐다. 지난 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장한나 & 미샤 마이스키 위드(with) 디토 오케스트라’ 공연이다. 스승인 마이스키는 첼로를 잡았고, 그의 유일한 제자 장한나는 지휘봉을 들고 포디엄에 올랐다. 디토 오케스트라는 2030세대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악단이다. 오후 5시.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 무대로 걸어 나온 마이스키는 의자에 앉자마자 고개를 들어 장한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연주를 시작하자는 신호였다. 그렇게 그가 들려준 곡은 ‘첼로 협주곡의 황제’로 불리는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b단조. 그의 고향인 체코의 슬라브 문화와 당시 체류 중이었던 미국의 민요 정신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마이스키는 과도한 힘을 주기보단 팔의 무게만을 이용해 활을 현에 밀착시키면서 드보르자크 특유의 강렬한 음색을 뽑아냈다. 그는 현에 가하는 장력, 보잉(활 긋기) 속도, 비브라토 폭 등을 예민하게 조절하면서 어떤 때는 파도가 몰아치는 듯한 격렬함으로, 어떤 때는 향수가 깊게 배인 애절함으로 드보르자크의 서사를 풀어냈다. 자칫하면 지루하게 들릴 수 있는 단순한 선율에도 하나하나 풍부한 색채를 덧입히며 만들어내는 입체감, 왼손과 오른손을 긴밀하게 움직이면서 일으키는 유선형의 자연스러운 울림은 그가 ‘왜 대가로 불리는지’ 새삼 일깨워줬다. 다만 디토 오케스트라의 연주
노장과 신예의 만남은 생각만큼 흔치 않다. 합을 맞추기 쉽지 않은 조합이어서다. 연륜이 패기를 이기면 연주의 힘이 떨어지고, 반대로 젊음이 경험을 압도하면 음향은 거칠어진다. 각자 자기 소리 내기에 바쁘면 앙상블은 무너지고, 상대를 지나치게 배려하면 재미없는 앙상블이 된다. 그래서 노장과 신예가 한 무대에 서는 일은 많지 않다. 그 흔치 않은 무대가 오는 26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열린다. ‘첼로의 거장’ 양성원(56)과 ‘실력파 피아니스트’ 유성호(27)의 듀오 리사이틀이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29세. 아버지와 아들이 음악적 파트너가 되는 셈이다. 20일 서울 연세대에서 만난 두 사람은 “나이 차 때문에 조화가 깨질 수 있다는 걱정은 해본 적이 없다”고 자신했다. “무대에선 소리로 말하잖아요. 누구 머리는 까맣고, 누구 머리는 흰 게 뭐가 중요합니까. 나이 차가 많이 나면 좋은 점도 생깁니다. 다른 세대 음악가들의 음색과 감정을 공부할 수 있으니까요.”(양성원) 실제 양성원은 유성호 외에도 피아니스트 문지영 박재홍 등 20대 연주자들과 꾸준히 호흡을 맞춰오고 있다. “저는 후배들에게 ‘너만의 개성을 지켜나가라’고 합니다. 서로 음악적 색채가 달라야 합주의 결과물이 더 좋아지기 때문이죠. 이번 무대도 그렇게 할 겁니다. 다른 음색을 잘 어울리게 맞추는 건 선배인 제 몫이죠.” 유성호는 양성원과의 연주 소식에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처음엔 너무 좋아서 실감이 안 났어요. 그리곤 곧 ‘큰일 났다’고 생각했죠.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부담감 때문에요. 밤낮 가리지 않고 연습했습니다. 이런 기분 좋은 긴장감과 설렘은 처음입니다.” 공연 레퍼토리는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35·사진)이 20일 차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감독으로 선임됐다. 임기는 2024년 1월부터 2년이다. 김선욱이 예술감독 발탁을 계기로 지휘자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키울 수 있을지 클래식 음악계의 관심이 쏠린다. 김선욱은 2006년 만 18세에 참가한 영국 리즈콩쿠르에서 사상 최연소이자 아시아인 최초 우승 기록을 세우며 세계적 반열에 오른 피아니스트다. 지휘자로는 아직 신입이다. 2010년부터 3년간 영국 왕립음악원 지휘과에서 수학했고, 2년 전 KBS교향악단을 이끌면서 지휘자로 데뷔했다. 서울시향, 영국 본머스심포니, 마카오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하며 경력을 쌓았으나 그마저도 연차로 따지면 3년차에 불과하다. 여느 상임지휘자에게 흔히 따라붙는 부지휘자, 수석지휘자 이력도 아직 없다. 경기필 예술감독 선임 결정에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 이유다. 내세울 만한 경력 없이 오로지 지휘자로서의 역량 하나로 예술감독에 적합한 인물임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환경이 녹록지는 않다. 현재 국내 주요 국공립 오케스트라가 얍 판 츠베덴(63·서울시향), 피에타리 잉키넨(43·KBS교향악단), 다비트 라일란트(44·국립심포니) 등 세계 무대에서 충분히 검증된 인물을 음악·예술감독으로 내세우고 있어서다. 이들과 겨뤄서 뒤지지 않을 실력파 지휘자임을 입증하는 게 첫 관문이 될 수 있다. 기대되는 면도 있다. 지휘자 김선욱은 탄탄한 기본기와 우수한 소통력이 강점이다. 경기필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김선욱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작품에 대한 영민한 해석과 단원들과의 긴밀한 교류로 호평받아온 지휘자인 만큼 성과를 기대해볼 만하다”
노장과 신예의 만남은 생각만큼 흔치 않다. 합을 맞추기 쉽지 않은 조합이어서다. 연륜이 패기를 이기면 연주의 힘이 떨어지고, 반대로 젊음이 경험을 압도하면 음향은 거칠어진다. 각자 자기 소리내기에 바쁘면 앙상블은 무너지고, 상대를 지나치게 배려하면 재미없는 앙상블이 된다. 그래서 노장과 신예가 한 무대에 서는 일은 많지 않다. 그 흔치 않은 무대가 오는 26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열린다. ‘첼로의 거장’ 양성원(56)과 ‘실력파 피아니스트’ 유성호(27)의 듀오 리사이틀이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29세. 아버지와 아들이 음악적 파트너가 되는 셈이다. 20일 서울 연세대에서 만난 두 사람은 “나이 차 때문에 조화가 깨질 수 있다는 걱정은 해본 적이 없다”고 자신했다. “무대에선 소리로 말하잖아요. 누구 머리는 까맣고, 누구 머리는 흰 게 뭐가 중요합니까. 나이 차가 많이 나면 좋은 점도 생깁니다. 다른 세대 음악가들의 음색과 감정을 공부할 수 있으니까요.”(양성원) 실제 양성원은 유성호 외에도 피아니스트 문지영 박재홍 등 20대 연주자들과 꾸준히 호흡을 맞춰오고 있다. “저는 후배들에게 ‘너만의 개성을 지켜나가라’고 합니다. 서로 음악적 색채가 달라야 합주의 결과물이 더 좋아지기 때문이죠. 이번 무대도 그렇게 할 겁니다. 다른 음색을 잘 어울리게 맞추는 건 선배인 제 몫이죠.” 유성호는 양성원과의 연주 소식에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처음엔 너무 좋아서 실감이 안 났어요. 그리곤 곧 ‘큰일 났다’고 생각했죠.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부담감 때문에요. 밤낮 가리지 않고 연습했습니다. 이런 기분 좋은 긴장감과 설렘은 처음입니다.” 공연 레퍼토리는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35)이 20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차기 예술감독으로 선임됐다. 임기는 2024년 1월부터 2년이다. 그간 지휘자보단 피아니스트로서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만큼, 김선욱이 국내 주요 국공립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자리에 발탁된 것을 계기로 지휘자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키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선욱은 2006년 만 18세의 나이에 참가한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사상 최연소이자 아시아인 최초 우승 기록을 세우며 세계적 반열에 오른 피아니스트다. 그러나 지휘자로는 아직 신입이다. 2010년부터 3년간 영국 왕립음악원 지휘과에서 수학했고, 2021년 1월 KBS교향악단을 이끌면서 지휘자로 정식 데뷔했다. 이후 서울시향, 영국 본머스 심포니, 마카오 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하며 경력을 쌓았으나 그마저도 연차로 따지면 3년차에 그친다. 여느 상임지휘자에게 흔히 따라붙는 부지휘자, 수석지휘자 이력도 아직 없다. 경기필 예술감독 선임 결정에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 이유다. 결국 내세울 만한 이력 없이 오로지 실력 하나로 자리에 적합한 지휘자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환경이 녹록지는 않다. 현재 국내 주요 국공립 오케스트라가 얍 판 츠베덴(63·서울시향), 피에타리 잉키넨(43·KBS교향악단), 다비트 라일란트(44·국립심포니) 등 세계 무대에서 충분히 검증된 인물들을 음악·예술감독으로 내세우고 있어서다. 이들과 겨뤄서 뒤지지 않을 지휘를 선보이는 게 첫 관문이 될 수 있단 얘기다. 물론 기대되는 면도 있다. 지휘자 김선욱은 탄탄한 기본기와 우수한 소통력을 강점으로 갖고 있다. 경기필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김선욱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연주자로 성공하려면 무조건 솔리스트의 길을 걸어야 한다.’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서 통용되던 성공 방정식에 균열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뛰어난 실내악 연주 하나로 세계무대를 제패해온 이들이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아벨 콰르텟도 그 가운데 하나다. 아벨 콰르텟은 결성 2년 만인 2015년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에서 한국인 현악 4중주단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에 이름을 알린 팀이다. 이탈리아 카잘 마지오레 뮤직 페스티벌, 스위스 티치노 무지카 등 해외 유수 음악제에서 상주 현악 4중주단으로 활동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왔다. 바이올린 박수현(34)·윤은솔(36), 비올라 박하문(25), 첼로 조형준(36)으로 구성된 아벨 콰르텟이 모처럼 한국 청중과 만난다. 하이든 작품으로 전체 레퍼토리를 채운 첫 정규 앨범을 들고서다. 19일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아벨 콰르텟은 “개개인의 화려한 기교와 음색을 뽐낼 수 있는 곡보단 오래도록 쌓아 온 콰르텟의 통일된 호흡, 조화로운 색채를 제대로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을 담아내고 싶었다”며 “현악 4중주의 기틀을 확립한 작곡가 하이든이 쓴 음악보다 더 완벽한 선택지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앨범의 문을 여는 작품은 하이든 현악 4중주 작품번호 64-5 ‘종달새’다. 이후 차례로 74-1, 33-1, 76-3 ‘황제’를 들려준다. “모두 하이든의 작품이지만 성격이 완전히 달라요. ‘종달새’에선 새소리를 연상시키는 바이올린 선율, 반음계적 화성 등이 산뜻하면서도 발랄한 심상을 전한다면 그보다 후기에 쓰인 ‘황제’에선 경건하면서도 날카로운 악상을 들을 수 있죠. 오스트리아 빈 특유의 색채, 하이든 고유의 발음을 살리면서도 각 작품의
‘연주자로 성공하려면 무조건 솔리스트의 길을 걸어야 한다.’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서 통용되던 성공 방정식에 균열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뛰어난 실내악 연주 하나로 세계무대를 제패해온 이들이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아벨 콰르텟도 그 가운데 하나다. 결성 2년 만인 2015년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에서 한국인 현악 4중주단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에 이름을 알린 아벨 콰르텟은 이후 이탈리아 카잘 마지오레 뮤직 페스티벌, 스위스 티치노 무지카 등 해외 유수 음악제에서 상주 현악 4중주단으로 활동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왔다. 바이올린 박수현(34)·윤은솔(36), 비올라 박하문(25), 첼로 조형준(36)으로 구성된 아벨 콰르텟이 모처럼 한국 청중과 만난다. 하이든 작품으로 전체 레퍼토리를 채운 첫 정규 앨범을 들고서다. 18일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아벨 콰르텟은 “개개인의 화려한 기교와 음색을 뽐낼 수 있는 곡보단 오래도록 쌓아 온 콰르텟의 통일된 호흡, 조화로운 색채를 제대로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을 담아내고 싶었다”며 “현악 4중주의 기틀을 확립한 작곡가 하이든이 쓴 음악보다 더 완벽한 선택지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앨범의 문을 여는 작품은 하이든 현악 4중주 작품번호 64-5 ‘종달새’다. 이후 차례로 74-1, 33-1, 76-3 ‘황제’를 들려준다. “모두 하이든의 작품이지만 성격이 완전히 달라요. ‘종달새’에선 새소리를 연상시키는 바이올린 선율, 반음계적 화성 등이 산뜻하면서도 발랄한 심상을 전한다면 그보다 후기에 쓰인 ‘황제’에선 경건하면서도 날카로운 악상을 들을 수 있죠. 오스트리아 빈 특유의 색채, 하이든 고유의 발음을 살리면서도 각 작품
영국을 대표하는 교향악단인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한국을 찾는다. 10월 5일 대구콘서트하우스를 시작으로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7일)에서 차례로 청중과 만난다. 런던 필하모닉이 내한 공연을 여는 건 2019년 이후 4년 만이다. 필하모니아, 로열필하모닉, 런던심포니 등 유수 오케스트라가 많은 영국에서 런던필하모닉은 대중에게 친숙한 교향악단으로 유명하다. 클래식 공연뿐 아니라 영화 사운드트랙 녹음 등 신선한 기획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런던 필하모닉의 역대 수석 지휘자로는 아드리안 볼트 경,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게오르그 솔티 경, 클라우스 텐슈테트, 쿠르트 마주어, 블라디미르 유롭스키 등이 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런던 필하모닉의 수석 지휘자 에드워드 가드너가 지휘봉을 잡는다. 가드너는 현재 베르겐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 노르웨이 국립 오페라 예술감독 등을 겸하며 활발히 활동 중인 영국 출신 지휘자다. 2012년엔 클래식 음악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여왕에게서 OBE(대영 제국 훈장)를 받기도 했다. 런던 필하모닉은 이번 무대에서 독일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와 호흡을 맞춘다. 국내에선 2019년 서울시립교향악단 ‘올해의 음악가’로 활동한 바이올리니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런던 필하모닉은 이번 내한 공연에서 2개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부천아트센터 공연에서는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 서곡으로 문을 연 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을 들려준다. 대구콘서트하우스, 예술의전당 공연에서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차례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 연주를 금지하는 움직임에 반대합니다. 그 음악은 더 이상 러시아 것이 아니라 세계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푸틴의 것은 더더욱 될 수 없죠.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 푸틴에 반대했을 겁니다.”지난 1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는 카랑카랑한 우크라이나 여성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주인공은 우크라이나의 대표 마에스트라(여성 지휘자) 옥사나 리니우(45). 이번에 처음 한국을 찾은 그는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금녀(禁女)의 벽’을 잇따라 허문 지휘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 시립극장 259년 역사상 첫 여성 음악감독,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145년 역사상 1호 여성 지휘자 등 굵직한 기록을 세워서다.이런 리니우가 방한한 건 오는 1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공연을 이끌기 위해서다. 레퍼토리에는 그의 소신에 따라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하차투리안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 러시아 작품이 포함됐다. 리니우는 여기에 우크라이나 음악을 섞었다. 공연의 포문을 여는 우크라이나 작곡가 예브게니 오르킨의 ‘밤의 기도’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그에게 각별하다. 전쟁 희생자를 기리는 음악일 뿐 아니라 리니우가 2016년 창단한 우크라이나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함께 지난 3월 독일 베를린에서 초연한 곡이어서다. 악단은 13∼23세 단원들로 구성돼 있다.리니우는 “단원 중에 아버지가 전사하거나 집이 폭격당하는 등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며 “음악 교육을 위해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위험에 처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 연주를 금지하는 움직임에 반대합니다. 그 음악은 더 이상 러시아 것이 아니라 세계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푸틴의 것은 더더욱 될 수 없죠.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 푸틴에 반대했을 겁니다.” 지난 1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는 카랑카랑한 우크라이나 여성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주인공은 우크라이나의 대표 마에스트라(여성 지휘자) 옥사나 리니우(45). 이번에 처음 한국을 찾은 그는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금녀(禁女)의 벽’을 잇따라 허문 지휘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 시립극장 259년 역사상 첫 여성 음악감독,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145년 역사상 1호 여성 지휘자 등 굵직한 기록을 세워서다. 이런 리니우가 방한한 건 오는 1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공연을 이끌기 위해서다. 레퍼토리에는 그의 소신에 따라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하차투리안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 러시아 작품이 포함됐다. 리니우는 여기에 우크라이나 음악을 섞었다. 공연의 포문을 여는 우크라이나 작곡가 예브게니 오르킨의 ‘밤의 기도’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그에게 각별하다. 전쟁 희생자를 기리는 음악일 뿐 아니라 리니우가 2016년 창단한 우크라이나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함께 지난 3월 독일 베를린에서 초연한 곡이어서다. 악단은 13∼23세 단원들로 구성돼 있다. 리니우는 “단원 중에 아버지가 전사하거나 집이 폭격당하는 등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며 “음악 교육을 위해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위험에 처한 어린 단원들을 대피시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5), 피아니스트 정명훈(70), 첼리스트 지안 왕(55)이 악기 위에 손을 올린 채 마침내 움직임을 멈추자 2000여 명의 청중이 일제히 일어났다. 그렇게 시작된 뜨거운 환호와 박수 세례는 두 번의 앙코르곡을 들은 뒤에도 좀처럼 끝날 줄 몰랐다. 흰머리가 성성한 노부부는 감정에 북받친 듯 연신 눈물을 훔쳤고, 중년의 신사는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한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럴 만한 연주였다. 정명훈이 피아니스트로, 정경화가 바이올리니스트로 함께한 것은 2011년 어머니 이원숙 여사를 기리는 추모 음악회 이후 12년 만이었다. 사실상 연주 활동을 중단한 정명화(79)의 빈자리는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첼리스트 지안 왕이 채웠다. 오후 7시30분. 정명훈과 지안 왕이 들려준 첫 곡은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였다. 정명훈은 시작부터 건반을 힘줘 누르기보다 손가락 자체의 무게를 한 음 한 음 떨어뜨리는 듯한 무심한 타건으로 드뷔시 특유의 신비로운 음색을 펼쳐냈다. 담백하면서도 깨끗한 피아노의 색채와 매 순간 활을 강하게 밀면서 열정을 토해내는 지안 왕의 첼로 음향은 빠르게 소리의 균형을 찾아가면서 다채로운 굴곡을 만들어냈다. 이후 정명훈과 정경화가 함께 등장하자 객석에선 마치 공연 피날레를 연상케 하는 열렬한 환성이 터져 나왔다. 이들이 연주한 곡은 치밀하게 설계된 풍부한 화성과 장엄하면서도 격정적인 악상으로 채워진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정경화는 ‘바이올린 여제(女帝)의 귀환’을 알리듯 특유의 날카로운 색채와 섬세한 보잉(활 긋기)으로 강렬한 서정을 펼쳐냈다. 활을 현에 밀착한 채 아주 빠르게 내려치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5), 피아니스트 정명훈(70), 첼리스트 지안 왕(55)이 악기 위에 손을 올린 채 마침내 움직임을 멈추자 2000여 명의 청중이 일제히 일어났다. 그렇게 시작된 뜨거운 환호와 박수 세례는 두 번의 앙코르곡을 들은 뒤에도 좀처럼 끝날 줄 몰랐다. 흰머리가 성성한 노부부는 감정에 북받친 듯 연신 눈물을 훔쳤고, 중년의 신사는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한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럴 만한 연주였다. 정명훈이 피아니스트로, 정경화가 바이올리니스트로 함께 하는 건 2011년 어머니 이원숙 여사를 기리는 추모 음악회 이후 12년 만이었다. 사실상 연주 활동을 중단한 정명화(79)의 빈자리는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첼리스트 지안 왕이 채웠다. 오후 7시30분. 정명훈과 지안 왕이 들려준 첫 곡은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 세계의 제1차 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였고 본인은 직장암으로 고통받았던 시기에 드뷔시가 강한 창작 욕구를 발휘해 써낸 작품이다. 정명훈은 시작부터 건반을 힘줘 누르기보단 손가락 자체의 무게를 한음 한음 떨어뜨리는 듯 무심한 타건으로 드뷔시 특유의 신비로운 음색을 펼쳐냈다. 담백하면서도 깨끗한 피아노의 색채와 매 순간 활을 강하게 밀면서 열정을 토해내는 지안 왕의 첼로 음향은 빠르게 소리의 균형을 찾아가면서 다채로운 굴곡을 만들어냈다. 이후 정명훈과 정경화가 함께 등장하자 객석에선 마치 공연 피날레를 연상케 하는 열렬한 환성이 터져 나왔다. 이들이 연주한 곡은 치밀하게 설계된 풍부한 화성과 장엄하면서도 격정적인 악상으로 채워진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정경화는 '바이올린 여제(女帝)의 귀환'을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귀도 산타나, ‘격정의 피아니스트’ 김도현, ‘거물 첼리스트’ 양성원….내로라하는 국내외 음악가 900여 명이 서울 마포에 모인다. 5일부터 12월 7일까지 3개월간 열리는 서울 마포문화재단의 음악 페스티벌 ‘M클래식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 M클래식 축제는 국내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클래식 축제 중 가장 크다.여덟 번째를 맞는 올해 축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연은 ‘아시아 3국 스페셜 콘서트-3피스 콘서트’다. 12월 5일부터 7일까지 한국 대만 일본의 실력파 피아니스트가 차례로 마포아트센터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2021년 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에서 준우승한 김도현과 ‘모차르트의 환생’으로 불리는 킷 암스트롱, 2019년 본 텔레콤 베토벤 국제 콩쿠르 준우승자 다케자와 유토가 무대를 채운다. 특히 12월 6일 열리는 리사이틀에선 세 명의 피아니스트가 한 대의 피아노로 함께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6개의 손을 위한 로망스’를 들을 수 있다.김도현은 10월 11일 열리는 ‘메인 콘서트’에서도 만날 수 있다. 창원시향 상임지휘자 김건이 이끄는 M 클래식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이날 공연에서는 오펜바흐 오페라 ‘천국과 지옥’ 서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등도 함께 연주된다.가을밤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야외 공연도 마련된다. 이달 8일 서울 상암 월드컵공원 유니세프 광장 수변 특설 무대에서 열리는 ‘문 소나타’다. ‘달에게 부치는 편지’란 부제가 달린 이번 공연에서 김도현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오는 1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기공연 ‘만프레트 호네크의 차이콥스키 비창’을 연다. 미국 명문 악단 피츠버그 심포니에서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인 오스트리아 지휘자 만프레트 호네크가 2019년 이후 4년 만에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춘다. ‘고(古)음악계 디바’로 불리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임선혜가 협연자로 나선다. 공연은 드보르자크의 ‘루살카 판타지’로 문을 연다.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는 체코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물의 요정 루살카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번에 연주되는 작품은 만프레드 호네크와 체코 작곡가 토마시 일레가 편곡한 곡으로 드보르자크 고유의 음악적 어법과 서정적인 선율, 몽환적인 악상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소프라노 임선혜는 세 곡을 연달아 들려준다. 먼저 폴란드 작곡가 헨리크 구레츠키의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2악장을 노래한다. 아우슈비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곡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에 구금된 한 폴란드 소녀의 기도가 가사에 담겨있다. 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 위촉곡이다. 이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아내에게 결혼 선물로 바친 작품 ‘내일!’과 모차르트 모테트 ‘환호하라, 기뻐하라’를 부른다. 모차르트 작품은 종교적인 가사를 담고 있는 오페라 아리아로 화려한 선율과 풍부한 색채감을 특징으로 한다. 2부는 차이콥스키 최후의 걸작인 교향곡 6번 ‘비창’으로 채워진다. 죽음을 9일 앞두고 초연한 이 작품은 어두운 음색과 비극적 정서가 주를 이루고 있다. 통상 교향곡이 느린 2악장과 빠른 4악장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과 달
장윤성 지휘자(60·사진)가 임기를 9개월이나 남긴 상황에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자리를 내놨다. 국공립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가 이적 등 특별한 사유 없이 자진 사퇴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3일 클래식음악계에 따르면 장 지휘자는 지난 7월 말 사표를 제출했고, 부천시는 한 달 만인 8월 25일 수리했다. 2021년 6월 부천필 제3대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그는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부천시가 밝힌 퇴임 이유는 서울대 교수직 복귀다. 부천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서울대 교수 휴직 기간을 추가로 연장하기 어렵다는 사유로 상임지휘자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며 “전적으로 자의에 의한 결정”이라고 했다. 장 지휘자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해외 공연, 음반 녹음, 단원 채용 등에서 부천시, 부천시립예술단 사무국과 지속적으로 갈등이 있었다”고 했다. 교수직 복귀는 시기적으로 맞물렸을 뿐 사퇴의 직접적 계기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는 “울산시향 창원시향 대전시향 등 국내 지방자치단체 산하 악단을 여러번 이끌어봤지만 부천필처럼 번번이 상임지휘자의 주장이나 제안이 무력화된 곳은 처음”이라며 “예산이 적은 건 백번 이해할 수 있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안 된다는 식의 태도로 일관하는 기관과는 악단의 발전을 도모할 수 없었다”고 했다. 갈등의 정점은 지난해 부천필이 오스트리아 출신 현대 작곡가 헤르베르트 빌리가 한국인의 ‘정(情)’을 주제로 쓴 작품을 잘츠부르크에서 세계 초연할 기회가 무산됐을 때다. 이 곡은 앞서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초연이 예정됐을 만큼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예산의 3분의 2가량
장윤성(60) 지휘자가 임기를 9개월이나 남긴 상황에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자리를 내놨다. 다른 오케스트라로 옮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천시와의 갈등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공립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가 이적 등 특별한 사유 없이 자진 사퇴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2일 클래식 음악계에 따르면 장윤성은 지난 7월 말 사표를 제출했고, 부천시는 한 달 만인 8월 25일 수리했다. 이로써 2021년 6월 부천필 제3대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장윤성은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부천시가 밝힌 퇴임 이유는 '서울대학교 교수직 복귀'다. 부천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서울대 교수 휴직 기간을 추가로 연장하기 어렵다는 사유로 상임지휘자직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이라며 “전적으로 자의에 의한 결정”이라고 했다. 장윤성은 다른 얘기를 했다. 그는 해외 공연, 음반 녹음, 단원 채용 등의 사안에서 부천시, 부천시립예술단 사무국과 지속적으로 갈등이 있었다고 했다. 교수 복귀는 시기적으로 맞물렸을 뿐 사퇴의 직접적 계기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장윤성은 “울산시향, 창원시향, 대전시향 등 국내 유수 지자체 악단들을 이끌어봤지만 부천필처럼 번번이 상임지휘자의 주장이나 제안이 무력화되는 곳은 처음"이라며 "예산이 적은 건 백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작하기도 전에 안 된다는 식의 태도로 일관하는 기관과 악단의 발전을 도모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했다. 장윤성은 지난해 부천필이 오스트리아 출신 현대 작곡가 헤르베르트 빌리가 한국인의 ‘정(情)’을 주제로 쓴 작품을 잘츠부르크에서 세계 초연할 기회가 있었
에스토니아 출신 파보 예르비(1962~)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로 불리는 명장(明匠)이다. 그에겐 여러 개의 직함이 따라붙는다. 예르비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 명예지휘자를 겸하고 있다. 이에 앞서 파리 오케스트라,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등을 이끌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 뉴욕 필하모닉 등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의 포디엄에 오르는 것도 그에겐 예삿일이다. 그만큼 실력이 출중하다는 의미다. 예르비는 2001년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맡아 악단을 ‘미국 5대 교향악단’ 자리에 끌어올린 주역으로 유명하다. 2003년 에스토니안 내셔널 심포니와 함께한 ‘시벨리우스 칸타타’ 음반으로 그래미상을 받았고, 2015년엔 영국 그라모폰과 프랑스 디아파종이 선정한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모두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2019년 오푸스 클래식이 선정한 ‘올해의 지휘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한국을 찾는다. 예르비는 오는 10월 열리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을 이끌 예정이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2021년 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에서 준우승과 현대작품 최고 연주상을 차지하면서 세계의 이목을 끈 피아니스트 김도현부터 지적인 해석과 독창적인 연주로 국제무대를 제패한 거물급 첼리스트 양성원까지. 내로라하는 국내외 음악가 900여 명이 연주로 하나 되는 장(場)이 펼쳐진다. 9월 5일부터 12월 7일까지 3개월간 열리는 서울 마포문화재단 음악 페스티벌 ‘M 클래식 축제’다. 국내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클래식 축제 중 최대 규모다. 올해 여덟 번째를 맞는 축제에서 단연 눈에 띄는 공연은 ‘아시아 3국 스페셜 콘서트-3 PEACE CONCERT’다. 12월 5일부터 7일까지 한국 대만 일본의 실력파 피아니스트가 차례로 마포아트센터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재단 초대 'M 아티스트' 김도현, ‘모차르트의 환생’이라 불리는 킷 암스트롱, 2019년 본 텔레콤 베토벤 국제 콩쿠르 준우승자 타케자와 유토가 무대를 채운다. 6일 열리는 리사이틀에선 세 피아니스트가 한 대의 피아노로 함께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6개의 손을 위한 로망스’도 들을 수 있다. 피아니스트 김도현은 10월 11일 열리는 '메인 콘서트'에서도 만날 수 있다. 창원시향 상임지휘자 김건이 이끄는 M 클래식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이날 공연에서는 오펜바흐 오페라 ‘천국과 지옥’ 서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등도 함께 연주된다. 가을밤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야외 공연도 마련된다. 9월 8일 서울 상암 월드컵공원 유니세프 광장 수변 특설 무대에서 열리는 '문 소나타'다. '달에게 부치는 편지'라는 부제가 달린 이번 공연에서 김도현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드뷔시 '달빛' 등 대
예술가에게 독특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건 일종의 훈장과도 같다. 단순히 기량이 뛰어난 것을 넘어 누구도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독보적 존재란 의미라서다. 일평생 ‘건반 위의 구도자’란 별칭을 달고 자신만의 확고한 음악 세계를 구축해온 피아니스트 백건우(77)처럼 말이다. 백건우가 지난 27일 스페인 출신 지휘자 안토니오 멘데스, 해외 유수 악단에서 활동 중인 연주자들이 주축이 된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함께 ‘2023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 폐막 공연 무대에 올랐다. 열 살 때 해군교향악단(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데뷔한 뒤 명반 ‘스크랴빈 피아노 작품집’(1992년),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집’(1993년)으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음반상인 황금 디아파종상을 휩쓴 거장(巨匠)의 귀환에 이날 서울 예술의전당은 공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인파로 북적였다. 오후 5시. 진중한 표정으로 무대로 천천히 걸어 나온 백건우가 들려준 곡은 간결한 어법과 경쾌한 리듬, 다채로운 악상으로 채워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6번 ‘대관식’. 백건우는 시작부터 건반을 깊게 누르기보단 가볍게 툭툭 끊어치면서 모차르트 특유의 순수한 음색을 살려냈다. 하나의 선율 안에서 예민하게 밀도를 조율하며 움직이는 손놀림과 단단한 음색은 모차르트의 기품과 활기를 동시에 펼쳐내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청아한 음색과 한음 한음 통통 튀어 오르는 명료한 터치로 어릴 적 천진난만한 모차르트를 보여주다가도 돌연 모든 힘을 빼고 처연하면서도 애달픈 색채를 불러오는 그의 연주는 말년에 극심한 생활고로 고통받은 모차르트의 굴곡진 인생을 덤덤히
예술가에게 독특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건 일종의 훈장과도 같다. 단순히 기량이 뛰어난 것을 넘어 누구도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독보적 존재란 의미라서다. 일평생 ‘건반 위의 구도자’란 별칭을 달고 자신만의 확고한 음악 세계를 구축해온 피아니스트 백건우(77)처럼 말이다. 백건우가 지난 27일 스페인 출신 지휘자 안토니오 멘데스, 해외 유수 악단에서 활동 중인 연주자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함께 '2023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 폐막 공연 무대에 올랐다. 열 살 때 해군교향악단(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데뷔한 뒤 명반 ‘스크랴빈 피아노 작품집’(1992년),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집’(1993년)으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음반상인 황금 디아파종상을 휩쓴 거장(巨匠)의 귀환에 이날 서울 예술의전당은 공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인파로 북적였다. 오후 5시. 진중한 표정으로 무대를 천천히 걸어 나온 백건우가 들려준 곡은 간결한 어법과 경쾌한 리듬, 다채로운 악상으로 채워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6번 ‘대관식’. 백건우는 시작부터 건반을 깊게 누르기보단 가볍게 툭툭 끊어치면서 모차르트 특유의 순수한 음색을 살려냈다. 하나의 선율 안에서 예민하게 밀도를 조율하며 움직이는 손놀림과 단단한 음색은 모차르트의 기품과 활기를 동시에 펼쳐내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청아한 음색과 한음 한음 통통 튀어 오르는 명료한 터치로 어릴 적 천진난만한 모차르트를 보여주다가도 돌연 모든 힘을 빼고 처연하면서도 애달픈 색채를 불러오는 그의 연주는 말년에 극심한 생활고로 고통받은 모차르트의 굴곡진 인생을 덤
제1차 세계대전부터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인간의 영혼까지 앗아간 파멸의 시대에 음표를 써 내려가야 했던 음악가들의 고통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자리였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특별음악회-조진주&김규연 듀오 콘서트’ 얘기다. 오후 7시30분. 만 17세 때 캐나다 몬트리올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콩쿠르의 여왕’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와 서울대 음대 교수인 피아니스트 김규연이 당찬 발걸음으로 등장했다. 첫 번째 곡은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가 제1차 세계대전 중 완성한 최후의 작품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조진주는 시작부터 강렬한 음색과 시원시원한 보잉(활 긋기)으로 서늘함 속에 녹아든 열정적인 색채를 펼쳐냈다. 두 연주자 간 호흡에는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서로의 색채, 리듬, 표현 변화에 긴밀히 반응하면서도 작품의 견고한 구조와 짜임새를 살리는 순간은 놓치지 않았다. 다음 곡은 풀랑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FP 119’. 스페인 내전의 희생자인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에게 헌정된 것으로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조진주는 마치 활로 바이올린을 때린다고 생각될 정도의 격정적인 보잉과 견고한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연주하는 것)으로 작품에 담긴 풀랑크의 격앙된 감정을 펼쳐냈다. 비가(悲歌)인 2악장에선 잔잔한 울림을 만들어내는 세련된 터치로 프랑스 음악 특유의 몽환적 감성을 살려냈다. 마지막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기억을 담은 프로코
제1차 세계대전부터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인간의 영혼까지 앗아간 파멸의 시대에서 한음 한음 음표를 써 내려가야 했던 음악가들의 고통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자리였다. 맹렬한 악상과 극적인 표현, 정교한 호흡에서 비롯된 폭발적인 음향은 전시(戰時)에 인간이 느낄 만한 불안정한 감정들의 소용돌이로 단숨에 빠져들게 했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특별음악회- 조진주&김규연 듀오 콘서트’ 얘기다. 오후 7시 30분. 만 17세 때 몬트리올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콩쿠르의 여왕’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와 서울대 음대 교수인 피아니스트 김규연이 당찬 발걸음으로 등장했다. 첫 곡은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가 제1차 세계대전 중 완성한 최후의 작품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조진주는 시작부터 강렬한 음색과 시원시원한 보잉(활 긋기)으로 서늘함 속에 녹아든 열정적인 색채를 펼쳐냈다. 섬세한 터치로 끊길 듯 끊기지 않는 선율의 유려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다가 특정 음에서 돌연 소리를 거칠게 뽑아내면서 청중을 압도하는 역량은 일품이었다. 두 연주자 간 호흡에는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서로의 색채, 리듬, 표현 변화에 긴밀히 반응하면서도 작품의 견고한 구조와 짜임새를 살리는 순간은 놓치지 않았다. 다음 곡은 풀랑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FP 119’. 스페인 내전의 희생자인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에게 헌정된 것으로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조진주는 마치 활로 바이올린을 때린다고 생각될 정도의 격
‘건반 위의 구도자.’ 피아니스트 백건우(1946~)의 이름 앞에는 이런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작곡가의 삶과 작품을 치열하게 파고드는 탐구적인 자세를 일평생 고수하면서 자신만의 확고한 음악 세계를 구축해온 인물이어서다. 1956년 열 살 때 해군교향악단(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데뷔했다. 이듬해엔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한국에서 초연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로지나 레빈을 사사한 그는 1969년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특별상을 차지하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1971년 나움부르크 콩쿠르에서 우승한 백건우는 다음해 뉴욕 링컨센터에서 라벨의 피아노 독주곡 전곡을 연주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무수한 명반을 남긴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하다. 음반 ‘스크랴빈 피아노 작품집’(1992년),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집’(1993년)으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음반상인 황금 디아파종상을 받았다. 2000년에는 세계 클래식 음악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기사훈장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백건우는 이달 27일까지 열리는 ‘2023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에서 연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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