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문화부에서 클래식 음악을 비롯한 공연예술 전반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ksoohyun@hankyung.com
“그는 이 시대 최고의 탐구자다.” 프랑스 출신 명피아니스트 피에르 로랑 에마르(1957~·사진)에게 영국의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이 보낸 극찬이다. 현대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특출난 연주력을 갖춘 그의 이름 앞에는 ‘현대 피아노 음악의 수호자’라는 별칭이 붙는다.16세에 메시앙 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는 1977년 세계적 지휘자 겸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의 부름을 받아 현대음악 전문 단체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의 첫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에마르는 전설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와 15년간 작업하며 그의 피아노 작품 대부분을 녹음한 연주자로 기록돼 있다.물론 에마르가 현대음악에만 정통한 것은 아니다. 그가 2003년 거장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와 함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녹음한 앨범은 명반으로 꼽힌다. 2008년 발표한 음반 ‘푸가의 기법’(DG)으로는 빌보드 클래식 음악 부문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국제적 권위를 자랑하는 덴마크 레오니 소닝 음악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19~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시립교향악단 공연에서 협연한다. 에마르는 이번 공연에서 리게티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려줄 예정이다.김수현 기자
피아니스트 손열음(37)에게는 ‘건반 위의 젊은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으레 따라붙는다. 열여섯 살의 나이로 이탈리아 비오티 국제콩쿠르에서 우승(2002)한 뒤 2009년 미국 밴클라이번 국제콩쿠르 2위, 2011년 세계 3대 콩쿠르 가운데 하나인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연주자라서다.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손열음이 모차르트 독주회로 국내 청중을 찾아간다. 다음달 2일부터 6월 25일까지 서울 원주 통영 광주 대구 고양 김해 등 7개 도시에서 공연을 열고 모차르트가 피아노를 위해 지은 소나타 전곡(18곡)을 연주한다. 지난달 프랑스 명문 음반사 나이브 레이블을 통해 같은 레퍼토리의 앨범을 발매한 것을 기념한 무대다. 그는 17일 서울 청파로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이제야 비로소 모차르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손열음은 “모차르트가 처음 피아노 소나타를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탐구하면서 ‘음악 천재’라는 별칭에 가려진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모차르트라고 하면 천부적인 재능으로 처음부터 모든 작품을 쉽게 써낸 인물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그의 어린 시절 작품을 면밀히 들여다보니 새로운 걸 계속해서 시도해보려는 강한 욕구와 창작의 고통이 드러났어요. 음악가로서 고민과 열정을 마주한 것이 모차르트의 작품 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됐어요.”손열음은 수많은 피아노 작품 중에서 왜 하필 모차르트의 곡을 선택했을까. 그는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꾸며내지 않아도, 내 손으로 가장 자연스럽게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건강상의 이유로 밴 클라이번 위너스 콘서트 미국 투어 일부 일정을 취소했다. 15일 공연기획사 목프로덕션에 따르면 미국 스코츠데일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임윤찬의 밴 클라이번 우승 기념 위너스 콘서트 투어 일정이 일부 취소됐다. 지금까지 취소가 확정된 공연 일정은 4월 14, 16, 19, 21, 23일이다.최근 임윤찬은 감기에 따른 중이염 증상으로 2주간 비행기 탑승이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다. 임윤찬은 현재 건강 회복을 위해 치료와 휴식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임윤찬은 "공연을 기대하셨던 분들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사과를 전한다"며 "현재 빠른 회복 중이니 건강한 모습으로 곧 뵙도록 하겠다"고 전했다.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고 추출되는 자원은 석유일 것이라고. 그러나 이는 ‘모래’의 존재를 간과한 얘기다.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매년 채굴되는 모래는 470억~590억t으로 석유 추출량(130억t)의 네 배에 달한다.도대체 모래가 무엇에 사용되기에 이리 많은 양이 들어가는지 궁금하다면 당장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자. 우리를 빼곡히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은 70%가 모래로 이뤄진 콘크리트로 짓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대인의 분신과도 같은 스마트폰, PC 등 전자제품부터 안경 물컵 창문 치약 등 인간이 매일 사용하는 소소한 물건까지 모두 모래가 들어 있다. 모래를 ‘현대 문명의 기반’이라고 부르는 이유다.세계적으로 급격한 도시화가 추진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매년 소비되는 어마어마한 모래의 양을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일본에서 환경전문기자를 지낸 이시 히로유키는 <모래 전쟁>을 통해 모래 고갈의 심각성을 역설한다. 그는 “모래와 물처럼 넘치고 넘치는 자원이 거대한 인류 활동 앞에서 고갈되고 있다. ‘공유지의 비극’ 그 자체”라고 말한다.비극의 화살은 생태계 파괴를 넘어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2004년 스리랑카 국민 3만5322명의 목숨을 앗아간 초대형 쓰나미가 대표적이다.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서부 해안에서 발생한 지진으로부터 파도를 막아줄 맹그로브숲이 모래 채굴로 급격히 축소되면서 다수의 인명 피해를 초래한 것이다. 이에 앞서서는 중국 최대 담수호인 푸양호 주위 습지가 사라지면서 철새들이 보금자리를 잃었고, 양쯔강 돌고래가 멸종 위기에 놓였다. 인간들의 모래 자원 쟁탈전이
“활기차고 아름다운 작품. 미국 작곡가를 위한 강연이다.”1893년 12월 17일 토요일자 미국 뉴욕타임스는 체코 출신의 유명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를 격찬했다. 하루 전 카네기홀에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두 번에 걸쳐 초연한 그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접하고서다. 뉴욕타임스는 “새로운 교향곡을 설명하는 것은 사진에 꽃향기를 담으려는 노력만큼이나 부질없는 것”이라면서도 드보르자크의 신작을 칭찬하기 바빴다. ‘그가 미국에 와서 본 것으로 무엇을 해냈는지 보라’는 것이었다.분명하게도 드보르자크가 오선지에 써낸 것은 단순한 음표의 나열이 아니었다. 체코에서 나고 자란 이방인이 미국이라는 신세계를 발견했을 때 느낀 희열과 환희, 두려움, 충격을 녹여낸 음악적 기록이었다. “미국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교향곡은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남긴 말처럼 미국의 광활한 대자연과 활력 넘치는 대도시를 마주한 경험은 강렬한 영감을 일으키는 원천이었고, 그의 음악적 지평을 넓히는 열쇠였다. 결과적으로 그의 미국행은 옳았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과 9번 ‘합창’,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과 함께 시대를 초월하는 걸작이라 불리는 교향곡을 세상에 남겼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그렇다.미국으로 떠나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당시 프라하 음악원 교수직에 몸담으며 음악가로서 나름 만족스러운 생활을 해오던 터였다. 굳이 타국에서 고생하며 새로운 음악 활동을 펼칠 명분도 마땅치 않았다. 고국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다.드보르자크가 미국행 배에 오르기로 결정한 것은 도저히 뿌
지난 7일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대강당.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도 아닌 평범한 대학 강당에 뉴욕필하모닉 음악감독이자 차기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인 ‘명장’ 얍 판 츠베덴(63)이 지휘봉을 들고 올라섰다. 자신의 제안으로 이뤄진 서울시향의 ‘아주 특별한 콘서트’를 이끌기 위해서다.거장이 이끄는 한국 최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단돈 1만원에 들을 수 있다는 소식에 이날 2800여 개 좌석은 오래전 동났다. 대학생뿐 아니라 엄마 손을 꼭 붙잡은 어린아이부터 머리 희끗한 노부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같은 무대를 바라봤다. 관객석 곳곳에는 이번 공연에 초청받은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눈에 띄었다.오후 7시30분, 무대에 오른 츠베덴은 청중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넨 뒤 빠르게 손을 들어 올렸다. 첫 작품은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 괴테가 쓴 같은 이름의 희곡을 읽고 베토벤이 작곡한 극부수음악 중 일부다. 츠베덴은 명성에 걸맞게 현악기의 깊은 음색과 목관악기의 신비로운 선율, 금관악기의 웅장한 울림을 조화롭게 이끌었다. 그러자 베토벤 특유의 장엄한 서정성이 살아났다.곧이어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공민배(19·화성나래학교)가 등장했다. ‘바이올린계의 우영우’로 불리는 공민배는 청중의 박수에 90도 인사로 화답하더니, 츠베덴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을 시작하겠다는 신호였다. 그는 섬세한 보잉(활 긋기)과 정확한 고음 처리로 멘델스존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한 매력을 잘 표현했다. 쉴 새 없이 활을 긋는 구간에서 강조할 음을 명쾌하게 짚어내는 능력과 악상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역량
“민배야, 이제 시작하자.”지난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립교향악단 리허설룸.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바이올리니스트 공민배(19·화성나래학교·사진)는 어머니의 부름에 미소를 짓더니 능숙하게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그는 다섯 살 때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다.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6년 뒤. 어머니는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바이올린 학원에 보냈다. 공민배는 바이올린과 언제나 함께했다. 지난 9년간 지독한 연습벌레로 살다가 솔리스트까지 됐다.그는 7일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리는 서울시향의 ‘아주 특별한 콘서트’ 무대에 오르기에 앞서 공개 리허설을 했다. 독주로 선보인 곡은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꼽히는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의 1악장이었다. 낭만적이면서도 우아한 바이올린 선율로 유명한 작품이다. 공민배는 첫 소절부터 명료한 음색과 시원시원한 보잉(활 긋기)으로 귀를 사로잡았다. 유려한 악상 표현과 섬세한 터치로 만들어낸 그의 멘델스존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공민배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이어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간중간 눈을 감으며 연주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연주 도중에 모습을 나타낸 한 남성을 보고 활짝 웃어 보였다. 그는 뉴욕필하모닉 음악감독이자 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인 지휘자 야프 판 즈베던(63)이었다. 즈베던은 작은 손짓으로 지휘했고, 공민배는 강렬한 선율로 화답하며 무언(無言)의 앙상블을 연출했다.공민배는 시연을 마친 뒤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음악은 제게 전부”라며 “꼭 멋진 연주를 들려드리겠다”고 말했다. 멋진 연주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2015년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로는 처음으로 세계 3대 콩쿠르 가운데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클래식 음악계를 뒤흔든 연주자가 있다. 섬세한 기교와 강력한 추진력, 안정된 연주력으로 만 20세 나이에 심사위원 만장일치 우승 기록을 세운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28)이다.임지영은 콩쿠르 우승 이후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케빈 케너 등 국제적 명성의 음악가들과 호흡하며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왔다. 2021년에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30세 이하 아시아 리더’ 명단에 클래식 연주자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7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임지영은 예원학교,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고(故) 김남윤 교수를 사사했다. 2017년 독일로 건너가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석사와 전문연주자 과정을 밟은 뒤 쾰른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2023년에는 연세대 음악대학 관현악과 최연소 조교수로 임용됐다.임지영이 오는 2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독일 브레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에서 협연한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첼리스트 문태국과 함께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 협주곡’을 들려줄 예정이다.김수현 기자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새로운 세대의 젊은 현악 거장’으로 꼽히는 한국인 연주자가 있다.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까지 우승하며 세계를 놀라게 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8·사진)다.국제적 권위의 두 콩쿠르에서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가 정상에 오른 건 최초의 일이다. 완벽에 가까운 기교와 깊이 있는 표현력으로 ‘인모니니(양인모+파가니니)’ ‘인모리우스(양인모+시벨리우스)’ 등 수식이 따라붙는 그가 2021년 후 2년 만에 서울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오는 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서다.이번 공연에서 그는 2021년 빈 베토벤 국제콩쿠르 공동 2위에 오른 피아니스트 김다솔(34)과 함께 베베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네 개의 작품’,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푸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가곡’,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7번 등을 들려준다.레퍼토리 절반이 현대음악이다. 양인모는 지난 1일 인터뷰에서 “내 음악만큼은 언제나 지금의 세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를 바란다”며 “바로크, 고전, 낭만 등 특정 시대와 작품에 한계를 두지 않고 레퍼토리를 넓히려는 이유”라고 했다.“안주하는 순간 퇴보한다고 생각해요. 연주자로서 가장 두려운 일이죠. 조금은 실험적이고 과감한 현대음악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를 오래 유지하고 싶어요.”이번 공연의 문을 여는 작품은 제2빈악파를 이끈 작곡가 안톤 베베른의 곡이다. 그는 “표현이 새로운 현대음악임에도 낭만적인 면을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라며 “때로는 굉장히 로맨틱하게
현대음악의 진가(眞價)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자리였다. 실험적인 기법과 극적인 표현, 무질서한 진행 속에서 피어나는 정교한 연주는 마치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본 듯한 짜릿한 전율과 깊은 여운을 자아냈다. 지난달 31일 경남 통영 도남동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개막한 통영국제음악제의 주요 프로그램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TFO) I·II’ 공연 얘기다. 2011년 창단한 TFO는 매년 단원 구성이 달라지는 프로젝트 악단이다. 올해는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 TIMF 앙상블과 영국 로열 노던 신포니아가 단원으로 참여했다. 미국 출신 지휘자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모리스 라벨의 ‘권두곡’(불레즈 편곡 버전)으로 두 시간짜리 공연의 문을 열었다. 로버트슨은 신비로운 목관악기 선율을 따르는 악기군과 이와 완전히 무관한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군의 진행을 섬세하게 조율하면서 라벨 특유의 오묘한 조화를 살려냈다. 곧이어 TFO와 중창단인 노이에 보칼솔리스텐 슈투트가르트가 함께 무대를 꾸미는 루치아노 베리오의 ‘심포니아’가 들려왔다. 뉴욕필하모닉이 창립 125주년을 맞아 위촉한 곡으로 20세기 작품 가운데 가장 독창적이고 깊은 인상을 남긴다는 작품이다. 오케스트라 정중앙에 앉은 여덟 명의 성악가가 ‘이’ ‘아’ 등 단순 모음을 길게 끌며 음산한 분위기를 드러내다가도 성부별로 다른 가사를 중얼대며 만들어내는 거대한 악상은 청중의 귀를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람의 목소리와 관현악이 한데 어우러져 끌어가는 극적인 셈여림 표현과 독특한 억양, 불협화음은 입체적인 인상을 남겼다. 짧게 끊어지는 인성의 음형과 순식간에 숨을 끝까지 불어넣으며 만들어내는 금관악기
진은숙(62·사진)은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를 꼽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첫 번째 바이올린협주곡으로 2004년 음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을 받은 뒤 쇤베르크상(2005년), 시벨리우스 음악상(2017년), 레오니소닝 음악상(2021년) 등 국제적 권위의 상을 휩쓸었다.베를린필하모닉, 런던심포니 같은 세계 정상급 악단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진은숙의 작품을 연주하고 사이먼 래틀, 켄트 나가노 등 지휘 명장들이 아낌없는 신뢰를 보낸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한국 무대를 찾았다. 지난해부터 예술감독을 맡은 통영국제음악제의 막을 올리기 위해서다.음악제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30일 경남 통영시 도남동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진은숙을 만났다. 지난해 바로크, 고전, 낭만, 현대에 이르는 공연 프로그램과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명연으로 호평을 끌어낸 그는 “자화자찬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올해 음악제는 더 대단하다. 한 마디로 대박”이라며 양손 엄지를 세워 보였다.“코로나19 팬데믹 영향에서 벗어나면서 계획한 대로 출연진과 공연 레퍼토리가 이뤄졌어요. 완성도가 남다르죠. 제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조합과 음악, 제가 듣고 싶은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공을 들였습니다.” 올해 음악제의 주제는 ‘경계를 넘어’다. 진은숙은 “다채로운 음악으로 고정관념이나 틀에 박힌 사고를 무너뜨리겠다는 의미를 담았다”며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시대의 음악, 다양한 편성의 음악에 눈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음악제 프로그램에는 그의 두 번째 바이올린협주곡 ‘정적의 파편’ 아시아 초연 무대도 담겼다. 이 작품 영감
한국에서 ‘젊은 거장’이란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음악가가 있다. 2006년 만 18세 나이로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사상 최연소이자 아시아인 최초 우승 기록을 세우며 세계인을 놀라게 한 피아니스트 김선욱(35)이다. 2008년 영국 굴지의 클래식 매니지먼트 회사인 아스코나스홀트와 계약을 맺은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런던 필하모닉 등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세계무대에서 활약해왔다. 지휘자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작곡가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을 녹음한 음반으로 BBC 뮤직 매거진상과 국제클래식음악상을 받았다. 3세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대진을 사사했다. 2010년부터는 오랜 꿈인 지휘자의 길을 걷기 위해 영국 왕립음악원 지휘과에 입학해 콜린 매터스의 지도를 받았다. 이후 영국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KBS교향악단, 서울시향 등 국내외 유수 악단 공연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그가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독일 밤베르크 심포니의 내한 공연에서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다. 다음달 1일에는 통영국제음악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두 번째 무대에 올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려줄 예정이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나는 이 작품을 작곡하며 종종 펑펑 울었다. 아마 이 곡은 나의 작품 중 최상(最上)이 될 것이다.”러시아의 전설적인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가 그의 교향곡 6번 ‘비창’을 두고 남긴 말이다. 그는 그렇게 비통한 감정을 토해낸 선율과 인간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강렬한 악상으로 채워진 명작을 세상에 내놓고는 조용히 숨을 거뒀다. 1893년 11월 6일. 차이콥스키가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연장 단상에 올라 그의 마지막 교향곡 6번을 지휘(초연)한 지 9일 만의 일이었다. 차이콥스키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작품이 다시 연주됐을 때 공연장은 울음바다가 됐다.동료 음악가는 물론 유럽 청중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의사가 발표한 그의 공식적 사인(死因)은 ‘콜레라’. 끓이지 않은 생수를 마시고 병에 전염됐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를 사실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전염병으로 사망했음에도 소독이나 검역 절차가 없었고, 접근이 제한돼야 했던 시신이었음에도 추모객이 허용됐다는 점에서다.한동안 그의 죽음을 두고 음독설, 독살설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차이콥스키가 당시 러시아에서 불법으로 규정한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면서 죽음을 맞았다는 것이었다. 차이콥스키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1900년대 후반 음악학자 알렉산드라 오를로바가 ‘자살설’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그는 차이콥스키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경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법률학교 동문이 연루돼 있다고 주장했다. 영예를 중시했던 이들이 차이콥스키의 동성애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명예 법정을 열어 그에게 명예로운
“한 해 4편에 그쳤던 오페라 제작 편수를 내년에 6편, 2025년에는 최대 8편으로 늘리겠습니다. 단순히 작품 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 바로크, 낭만주의, 현대 등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공연 레퍼토리를 선보일 것입니다.”최상호 국립오페라단 신임 예술감독 겸 단장(61·사진)이 2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우선 국립오페라단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집중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계획에 따라 이미 2024년까지의 공연 작품은 모두 정해진 상태다. 내년 국립오페라단은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을 시작으로 브리튼의 ‘한여름 밤의 꿈’, 코른골트의 ‘죽음의 도시’, 창작 오페라 ‘레드 슈즈’, 바그너의 ‘탄호이저’,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를 무대에 올린다.이날 최 단장은 “10년 안에는 한국을 대표할 만한 오페라가 나올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당찬 포부를 내놓기도 했다. 내년부터 매년 한 편의 창작 오페라를 공연 레퍼토리에 추가할 예정이다. 그는 “지금껏 여러 해외 오페라단 관계자가 우리나라의 오페라가 무엇인지 물을 때마다 내세울 만한 작품이 없었다. 앞으로 창작 오페라를 제작하는 것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젊은 연출가, 작곡가, 지휘자 등 신예 예술가들이 창작 의지를 불태우고 기량을 쌓아갈 기회를 제공하는 데도 소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최 단장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멈췄던 해외 오페라극장과의 교류를 올해부터 재개한다. 그는 “일본의 후지와라 오페라단, 니키카이 오페라단 등 해외 유수 오페라단과
지난해 말까지 3년간 서울시향을 이끈 핀란드 출신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70)가 24일 저녁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올랐다. 이날 공연은 그가 청중에게 건네는 조금 늦은 작별 인사. 작년 12월 불의의 낙상 사고로 임기 내 마지막 공연(베토벤 합창)을 지휘할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의 주특기인 시벨리우스 레퍼토리로 4회에 걸쳐 청중을 만난다. 그는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 시벨리우스 교향곡 1번·4번 음반으로 독일 음반평론가협회상과 그래미상 교향악 부문 최고상을 휩쓴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로 통한다. 첫 공연이 시작된 이날 오후 8시. 오케스트라 뒤편으로 지휘자 벤스케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언제나 꼿꼿이 선 자세로 지휘봉을 휘두르던 그는 이날 단상에 놓인 의자에 앉아 깊은 숨을 몰아쉰 뒤에야 두 팔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첫 작품은 시벨리우스의 ‘카렐리아 모음곡’. 핀란드 민족 문화의 요람이라 불리는 지역 카렐리아를 주제로 한 곡이다. 벤스케의 유려한 지휘에도 시작은 약간 불안했다. 차분하면서도 서늘한 감성을 유발해야 하는 현악기의 트레몰로(한 음을 빠르게 되풀이하는 연주) 구간에서 소리가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여러 갈래로 흩어지는 등 다소 산만한 인상을 남겼다. 2악장부터는 안정을 찾았다. 현악기와 목관악기가 조화를 이루며 토속적 색채를 살려냈고, 3악장에선 경쾌한 음색으로 행진곡 특유의 흥겨운 매력을 펼쳐냈다. 이후 명문 음반사 도이체그라모폰(DG) 전속 아티스트인 조지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리사 바티아슈빌리(44)가 당당한 발걸음으로 등장했다. 시벨리우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그
맑고 순수한 음색으로 유명한 영국 리베라 소년합창단이 7년 만에 내한 공연을 연다. 리베라 소년합창단(사진)은 다음달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뒤 8일 익산예술의전당, 9일 인천문화예술회관, 11일 세종예술의전당에서 관객과 만난다.리베라 소년합창단은 런던 남부에 있는 세인트 필립스 교회 성가대에서 출발해 1999년 종교 단체·음악학교 영향에서 벗어난 합창단으로 재창단하면서 외연을 확장했다. 이때 붙여진 이름이 라틴어로 자유를 뜻하는 ‘리베라(Libera)’다. 리베라 소년합창단은 특정 음악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종교 음악부터 클래식, 팝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소화한다.이번 무대는 2021년 합창단의 창시자 로버트 프라이즈만이 별세한 이후 처음으로 올리는 해외 공연이다. 공연에서 리베라 소년합창단은 이들의 대표곡 ‘상투스’와 ‘리베라’ ‘거룩하신 성체’, 무라마쓰 다카쓰구의 ‘저 멀리’ 등 다채로운 합창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리베라 소년합창단 단원을 지낸 작곡가 조슈아 마딘의 ‘등대’도 초연할 예정이다.김수현 기자
독일의 견고함과 체코의 짙은 호소력. 두 나라 관현악단의 특성을 결합한 독자적인 음색으로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한 악단이 있다. 독일 명문 악단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얘기다. 밤베르크 심포니는 1946년 창설된 이후 요제프 카일베르트, 오이겐 요훔 등 유럽을 대표하는 명지휘자의 손을 거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유럽에서 실력파 악단으로 통하는 밤베르크 심포니가 한국을 찾는다. 오는 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과 슈만 피아노 협주곡(김선욱 협연) 등을 들려준다. 이들의 내한 공연은 2016년 이후 7년 만이다.2016년부터 악단의 수석지휘자를 맡아온 야쿠프 흐루샤(42)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체코와 독일 음악의 공존’이라는 밤베르크 심포니의 정체성을 마음껏 펼쳐내겠다”고 했다. 밤베르크 심포니는 체코에서 활동하던 독일인 음악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바이에른주의 밤베르크로 이주해 꾸린 악단이다. “밤베르크 심포니와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관계는 가까운 사촌과도 같아요. 체코 필하모닉이 말러 교향곡 7번을 초연했을 때 밤베르크에서 온 연주자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듯, 두 악단의 교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죠. 적어도 밤베르크 심포니에서만큼은 체코와 독일을 분리할 수 없어요.”체코 출신 지휘자 흐루샤는 내한 공연 레퍼토리 가운데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했다. 조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음악 세계를 온전히 살려낼 수 있는 작품이라서다. “드보르자크 교향곡은 밤베르
진은숙(62)은 윤이상과 더불어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첫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2004년 음악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쇤베르크상’(2005년) ‘모나코 피에르 대공 작곡상’(2010년) ‘시벨리우스 음악상’(2017년) ‘크라비스 음악상’(2018년) ‘바흐 음악상(2019년)’ ‘레오니 소닝 음악상’(2021년) 등 국제적 권위의 상을 휩쓸면서 클래식 음악계를 주도하는 작곡가로 우뚝 섰다.세계 정상급 악단에서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는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2021년 베를린 필하모닉이 진은숙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고, 지난해 런던 심포니가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초연했다. 진은숙은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이후 독일로 건너가 함부르크 음대에서 작곡 거장 죄르지 리게티를 사사했다. 2006년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2010년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2016년 서울시향 공연기획자문역 등을 지냈다.그가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인 ‘통영국제음악제’가 오는 31일 개막해 4월 9일까지 이어진다.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피아니스트 김선욱, 첼리스트 한재민,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 등이 무대에 오른다.김수현 기자
피아니스트 조성진(28)의 새 음반 ‘헨델 프로젝트(The Handel Project)’가 미국 빌보드 클래식 주간 차트 정상에 올랐다.16일 빌보드에 따르면 조성진의 이 음반은 빌보드 정통 클래식 앨범(Traditional Classical Albums) 차트 1위에 올랐다. 이 음반은 세계적 클래식 음반사인 도이치그라모폰(DG) 레이블로 내놓은 조성진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이다. 고전·낭만주의 작품을 주로 다룬 전작과 달리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헨델의 음악으로 음반 주요 레퍼토리를 채운 것이 특징이다. 음반에는 1720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나온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중 ‘2번 F장조’, ‘8번 f단조’, ‘5번 E장조’와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등이 담겼다.빌보드 클래식 주간 차트에서 1위에 오른 한국인 연주자로는 피아니스트 임현정, 선우예권 등이 있다. 임현정은 2012년 데뷔 음반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으로, 선우예권은 2017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실황 음반으로 각각 정상에 올랐다.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15일 서울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앞 광장. 검정 정장을 차려입은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36)가 붉어진 눈시울을 한 채 악기를 들었다. 그렇게 연주된 곡은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 중 ‘명상’. 애수에 찬 서정적인 선율이 오로지 바이올린의 가냘픈 현 한 줄을 타고 흘러나왔다. 한 음 한 음에 애절한 감정을 쏟아내는 그의 연주를 듣던 군중들은 곳곳에서 흐느꼈다. 목과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북받치는 감정을 삼켜내던 신지아는 연주를 마친 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토해냈다. 세계 무대에 진출한 1세대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평생의 스승을 떠나보내는 제자의 배웅이었다.이날은 사흘 전 별세한 ‘한국의 바이올린 대모(代母)’ 김남윤 한예종 명예교수의 발인일. 경희대, 서울대 교수를 거쳐 1993년 한예종 음악원 창설 멤버로 합류하면서 40여 년간 후학 양성에 힘쓴 고인의 추모식 소식에 300여 명의 음악가가 한예종 앞에 모였다. 김대진 한예종 총장, 이강호 음악원장을 비롯해 ‘김남윤 사단’이라 불리는 그의 제자들이 자리를 채웠다. 신지아, 임지영 등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연주자부터 김현미, 백주영, 유시연 등 중견 교수들까지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로는 정준수, 양고운, 김현아, 이경선을 포함해 신아라, 고(故) 권혁주, 클라라 주미 강, 장유진, 양인모 등 최근 국제 콩쿠르 수상자까지 셀 수 없이 많다.추도사를 위해 마이크 앞에 선 김대진 총장은 “비통하고 황망한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입술을 깨문 채 눈물을 삼킨 그는 “선생님을 보며 어떤 선생이 돼
‘마에스토로’ 정명훈(70·사진)이 이탈리아의 세계적 오케스트라인 라스칼라 필하모닉의 명예지휘자로 위촉됐다.라스칼라 필은 지난 13일 홈페이지에서 “35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온 지휘자 정명훈에게 명예지휘자 칭호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명예지휘자는 오케스트라 발전에 기여한 전임 지휘자의 공적을 기릴 때 부여하는 직책이다. 라스칼라 필 역사상 명예지휘자로 위촉된 것은 정명훈이 최초이자 유일하다고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전했다.1778년 개관한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의 소속 오케스트라로 출발한 라스칼라 필은 1982년 1월 솔로 교향악단으로 데뷔했다. 정명훈은 1989년 라스칼라 필과의 첫 협연을 시작으로 라스칼라 극장과 해외에서 120차례 함께 공연을 펼쳤다.정명훈은 이날 라스칼라 극장에서 라스칼라 필과 함께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과 브람스 교향곡 제4번을 공연했다.라스칼라 필 부사장인 다미아노 코탈라소는 “지휘자 정명훈은 지휘대에 오를 때마다 매번 놀라운 음악을 만들어낸다”며 “우리에겐 친구, 가족, 우리 중 한 사람의 귀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정명훈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장을 맡은 바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등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의 지휘봉도 잡았다.김수현 기자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양인모 등을 길러낸 ‘한국 바이올린 대모’ 김남윤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가 1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서울예고와 미국 줄리아드 음대를 졸업한 김 교수는 1974년 세계적인 권위의 스위스 티보바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경희대와 서울대 교수로 일하던 그는 199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창설 멤버로 합류해 40여 년간 후학 양성에 힘써왔다. 이경선, 백주영 서울대 교수 같은 중견 연주자부터 신아라, 클라라 주미 강 등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바이올리니스트까지 수많은 제자를 길렀다.2001년 한국인 연주자로는 최초로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초빙됐다. 이후 파가니니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등 국제적 권위의 대회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난파음악상, 금호음악스승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장례는 한예종 음악원장으로 열린다.김수현 기자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엘리자베스콩쿠르 본선에 올해 한국인 성악가가 단일 국가로는 가장 많이 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주벨기에 한국문화원에 따르면 8일(현지시간) 발표된 2023년 퀸엘리자베스콩쿠르 성악 부문 결선 진출자는 64명으로, 이 가운데 약 28%인 18명이 한국인이다. 이 콩쿠르에서 성악 부문 대회가 열린 2014년(12명), 2018년(13명) 당시 한국인 본선 진출자를 뛰어넘은 것은 물론, 올해 대회 진출자 국적별로도 최대다.벨기에 왕가가 주관하는 퀸엘리자베스콩쿠르는 매년 피아노 첼로 성악 바이올린 부문 순으로 열린다. 첼로 부문 대회로 개최된 작년 콩쿠르에서는 본선 진출자 66명 중 10명이 한국인이었고, 최하영이 우승했다.역대 성악 부문 한국인 우승자로는 소프라노 홍혜란 황수미가 있다. 올해 대회 본선 진출자 64명은 5월 21~22일 본선, 24~25일 준결승을 거친다. 결선에 진출한 12명은 6월 1~3일 브뤼셀 보자르아트센터에서 마틸드 벨기에 왕비가 참석한 가운데 기량을 겨룬다. 7명으로 구성된 대회 심사위원단에는 소프라노 조수미도 포함됐다.김수현 기자
감미로운 선율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단원들이 연주를 하다 말고 하나둘 무대를 빠져나간다. 현악기 연주자, 관악기 연주자 가릴 것 없이 줄줄이 자리를 뜬다. 단원이 절반 정도 빠져나갔을 즈음에는 급기야 지휘자마저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무대에는 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만 남게 된다. 그들만 끝까지 남아 가냘프고 처량한 바이올린 선율로 무대를 마무리한다.작곡가 존 케이지의 피아노곡 ‘4분33초’와 같은 실험적 현대음악 작품 가운데 하나일까. 아니다.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고 4분여를 침묵으로 보내는 곡처럼 음악적 일탈을 시도하는 작품이 아니다. 무려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클래식 거장이 지은 정식 교향곡이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의 교향곡 45번 ‘고별’이다.하이든이 독특한 구성의 교향곡을 발표한 데는 사연이 있다. 때는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정 오케스트라를 이끌던 1772년. 하이든의 음악을 유난히 좋아한 후작은 오스트리아에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을 본뜬 별궁을 짓고 손님을 초대해 성대한 음악회를 열었다.문제는 음악회를 날마다 열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별궁에서의 생활이 1년을 넘어가자 악단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단원 중에서 가족과 잠시나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네댓 명에 불과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향수병을 앓는 연주자가 늘어나자 하이든은 고민에 빠졌다. 악단의 수장으로서 단원의 어려움을 해소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후작에게 함부로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궁정 음악가라고 하면 고귀한 직함
피아니스트 조성진(29)의 진가와 인기를 실감한 자리였다. ‘아이돌’이란 단어가 K팝 스타의 전유물이 아니란 것을 보여준 무대이기도 했다. 지난 3일 저녁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내한 공연 얘기다.관객의 박수와 환호로만 따질 때 이날 공연의 주인공은 475년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명문 악단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정명훈(70)도 아니었다. 협연자로 나선 조성진이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마지막 건반을 누르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30여분의 연주 시간을 3분처럼 느끼게 해준 조성진의 마법 같은 연주에 양복을 빼입은 점잖은 신사들도 환호성을 내질렀다.공연 시작과 함께 피아노 앞에 앉은 조성진은 고개를 들어 정명훈에게 눈짓을 보냈다.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정명훈의 손짓에 호른이 웅장한 소리를 내자, 조성진은 묵직한 타건으로 격정적인 선율을 뿜어냈다. 얼마나 세게 건반을 내려치는지, 몸에 반동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섬세한 터치로 전환해 차이콥스키 특유의 짙은 애수를 살려냈다.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현악기는 “벨벳 같다”는 조성진의 평가 그대로 피아노 소리를 벨벳처럼 감쌌다. 악단의 다채로운 음색과 피아노의 강렬한 터치가 빚어낸 화음에 청중은 마음을 내줬다. 정명훈은 마치 조성진의 숨 쉬는 타이밍까지 알고 있다는 듯 조금의 오차도 없이 그의 감정과 음악적 흐름에 맞춰갔다. 음색과 음향의 균형도 완벽했다. 조성진의 화려한 기교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저 멀리 밀어내지도 않았고, 반대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응집력 있는 연주가 조성진
“쉰 살이 넘고 나서야 브람스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인생을 살아가면서 삶을 대하는 여유와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생기고 있어요. 이제야 비로소 음악을 대할 때 마음이 편안하달까요.”2일 서울 강남대로 거암아트홀에서 열린 독일 명문 드레스덴슈타츠카펠레의 내한공연 간담회. 2012년부터 이 악단 수석객원지휘자를 맡아온 정명훈(70)이 등장하자 그의 고희(古稀)를 축하하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멋쩍게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한 정명훈은 “음악을 하면서 시간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느끼게 된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도 늘지 않던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채워지고 있다”고 했다.1548년 설립된 드레스덴슈타츠카펠레는 하인리히 쉬츠, 카를 마리아 폰 베버, 리하르트 바그너 같은 전설적인 음악가들이 거쳐간 명문 악단이다. 475년 역사를 자랑하는 드레스덴슈타츠카펠레의 이번 공연은 조금 더 특별하다. 해외 악단들이 보통 아시아 투어의 일부로 한국을 들르는 것과 달리 오직 한국에서만 여섯 번의 공연을 열어서다. 정명훈은 “해외 악단과 일본 중국을 거치지 않고 한국 무대에 단독으로 오르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그만큼 한국의 위상과 음악적 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아주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에이드리안 존스 드레스덴슈타츠카펠레 대표는 악단에서 정명훈의 존재가 각별하다고 했다. “그는 우리 단원들에게 대부와 같은 존재입니다. 독단적으로 악단을 끌고가기보단 연주자들이 음악을 자발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공간과 여백을 만들어주죠. 정명훈과 단원들 사이에는 상호 존중과 두터운 신뢰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54)는 세기의 명반(名盤)을 남긴 피아니스트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시마노프스키 독주곡’(2005년 발매), ‘바흐 영국 모음곡’(2014년 발매),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2권’(2021년 발매)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클래식 음반상인 그라모폰상을 휩쓴 연주자라서다.그의 이름이 전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1990년 영국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자신의 연주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공연 중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 이 사건으로 그는 우승자보다 더 유명해졌다. 맹랑한 태도 뒤에 뛰어난 연주력이 자리잡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국내에서는 비교적 덜 알려진 연주자지만, 해외에서는 독창적인 작품 해석력과 완성도 높은 연주로 각광받는 피아니스트다. “모던 피아노에 부여된 음색의 팔레트를 전부 사용하는 연주자”(뉴욕타임스), “영감이 깃든 화려함”(가디언). 그에게 쏟아진 찬사들이다.지난달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리사이틀 무대에 오른 안데르제프스키는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등장해 아주 잠시 숨을 고른 뒤 곧바로 손을 건반 위에 올렸다.첫 곡은 바흐의 ‘파르티타 6번’. 그는 섬세한 터치로 쉼 없이 변하는 리듬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프랑스 춤곡에 담긴 생동감을 표현해냈다. 뼈대가 되는 음은 강한 타건으로, 나머지 음은 흐르듯 가벼운 터치로 견고한 구조와 짜임새를 살려냈다.그의 연주는 바흐 특유의 정제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뚜렷한 방향성으로 모든 음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연주하면서도 정해진 박자의 틀을 벗어나거나 아티큘레이
미국 그래미상 3회, 독일 에코 클래식상 4회, 영국 그라모폰상 2회 수상…. 세계 최고 권위의 음반상을 휩쓴 메조 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54·사진)가 한국을 찾는다. 다음달 1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현악 앙상블 세종솔로이스츠와 함께 토드 마코버의 신작 ‘오버스토리(overstory) 서곡’을 선보인다. 그가 한국 무대에 오르는 건 2019년 첫 내한 공연 이후 4년 만이다. ‘오버스토리 서곡’은 2019년 퓰리처상을 받은 리처드 파워스의 소설을 토대로 쓴 신작이다. 원시림을 지키기 위해 벌목꾼들에게 맞서 싸우는 아홉 사람의 이야기를 모노드라마(1인극) 형식의 음악으로 풀어낸다. 환경 문제를 다루는 클래식 공연인 셈이다. 디도나토는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사람과 자연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에요. 제가 식물학자인 패트리샤 웨스터퍼드 역을 맡아 인간의 시선을 보여주면 세종솔로이스츠가 나무를 대변하는 음악을 들려주는 형식입니다.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던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거예요.” 디도나토는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온 흔치 않은 성악가다. 2013년 영국 대표 음악축제인 BBC 프롬스가 열린 로열앨버트홀에서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불러 러시아 동성애 금지법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일화는 유명하다. 2019년 첫 내한 공연에서도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전체 레퍼토리를 구성해 화제를 모았다. 그에게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이유를 묻자 “성악가가 해야 할 일은 ‘음악으로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아름다운
“기적 같은 솜씨다. 이런 게 전문가의 연주다.”지난해 2월 러시아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를 대신해 미국 카네기홀 무대에 오른 조성진에게 뉴욕타임스(NYT)가 보낸 찬사다. ‘대타’였기 때문에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없었는데도 완벽한 연주를 선보였다. 그는 이날 빈 필하모닉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했다.조성진은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며, ‘K클래식’의 시작을 알린 피아니스트다. 이후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을 맺고, 세계 3대 교향악단으로 꼽히는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와 협연하며 이 시대 최고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올라섰다. 6세 때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2009년 하마마쓰 콩쿠르 최연소 우승,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 2014년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콩쿠르 3위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서울예고를 거쳐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미셸 베로프를 사사했다.조성진이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고 한국 무대를 찾는다. 3월 2일 세종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롯데콘서트홀(3일), 아트센터인천(4일), 서울 예술의전당(5일)에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함께 연주한다.김수현 기자
피아노는 탄생 초기부터 고급 가구 대접을 받았다. 예술적 소양을 갖춘 격조 있는 집안의 장식품이었다. 세바스티앵 에라르, 존 브로드우드 등 초기 피아노 제작자들이 가구를 만들어 팔던 집안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피아노는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는 악기이지만 인간 세상과 함께 호흡한 동반자였다. 어디 피아노뿐이겠는가. 역사 좀 있다 싶은 악기들은 모두 그렇다.신간 <그림, 클래식 악기를 그리다>는 악기를 소리를 내는 물체로서가 아니라 유럽의 사회와 문화, 경제를 풀어내는 주인공으로 다룬 인문 교양서다.흔히 클래식 음악 하면 세기를 뛰어넘는 명작이나 화려한 무대 위에서 빠른 손놀림을 구사하는 연주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유명 작곡가의 생애도 관심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부분은 개의치 않는다.피아노 바이올린 팀파니 류트 플루트 하프 등 여섯 가지 클래식 악기로 옛날이야기를 전한다. 악기 제작과 개량의 역사, 특정 사건에서의 악기의 역할, 악기를 통해 바라본 사회상 등에 집중한다. 당대 악기 모습이 담긴 50여 점의 회화를 볼거리로 제공한다.그간 잘 다뤄지지 않았던 악기를 주축으로 풍부한 에피소드가 담겨 있어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김수현 기자
기자를 구독하려면
로그인하세요.
김수현 기자를 더 이상
구독하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