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문화부에서 클래식 음악을 비롯한 공연예술 전반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ksoohyun@hankyung.com
클래식 음악에는 소설 같은 소문이 있다. 300년간 이어진 소문의 내용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와 비슷하다. 악마로부터 신비의 힘을 얻기 때문이다. 루머의 주인공은 주세페 타르티니(1692~1770)의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 바흐나 비발디와 같은 작곡가에 비하면 무명에 가까웠던 타르티니의 이름을 지금까지 회자하도록 해주는 작품이다. 악마가 들려준 바이올린 소리를 옮겨놨다니.작품을 둘러싼 일화는 바로크 시대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이탈리아 작곡가 타르티니가 작곡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던 17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르티니는 어느 날 꿈에서 악마와 마주한다. 악마의 바이올린 솜씨는 경악할 만한 수준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였고 당시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고난도 기교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악마의 연주에 소스라치게 놀란 타르티니는 꿈에서 깨자마자 바이올린을 들고 자신이 들은 음악을 악보로 적어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그의 대표작 ‘악마의 트릴’이다.그러나 정작 타르티니는 세기의 명작을 세상에 내고도 기뻐할 수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적어낸 작품이 악마가 들려준 연주 실황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없다고 생각해서다. 괴이한 일을 겪은 타르티니는 한동안 자괴감에 빠져 자신의 악기를 깨부수고 영원히 음악을 접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이는 영국의 음악학자 찰스 버니가 1771년 출판한 기행서에 기록된 에피소드다. 앞서 타르티니가 사망하기 이전인 1769년에도 프랑스 천문학자 랄랑드가 자신의 서적에 비슷한 내용을 적어낸 바 있다. 실제 ‘악마의 트릴’을 둘러싼 일화가 유럽 전역에 퍼진
오케스트라에서 음악감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똑같은 단원들로 똑같은 레퍼토리를 연주해도 누가 음악감독을 맡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이 실력 있는 지휘자를 영입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유다. 국내 최고 관현악단으로 꼽히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네덜란드 출신 지휘자 야프 판 즈베던(1960~)도 그런 지휘자 중 한 명이다. 그가 거쳐간 오케스트라마다 단원들의 실력이 수직 상승했다는 이유로 ‘오케스트라 트레이너’란 별칭이 붙었을 정도다.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즈베던 감독은 19세에 세계 최정상 관현악단으로 꼽히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의 최연소 악장으로 취임했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권유로 지휘 공부를 시작한 즈베던 감독은 네덜란드 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 미국 댈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거쳐 현재 세계적 오케스트라인 뉴욕 필하모닉과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동시에 맡고 있다.그런 그가 오는 12~13일 한국을 찾는다. 2024년 공식 취임에 앞서 서울시향과 첫 정기 공연을 한다. 즈베던 감독이 만들어낼 서울시향의 하모니에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김수현 기자
1월 1일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페라인 황금홀. 새해 첫날이면 어김없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신년 음악회를 연다. 화려한 금빛 공연장에서 흘러나온 세계 최정상 악단의 선율은 세계 90여 개국에서 울려 퍼진다. 음악회에는 매년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있다. 앙코르곡 자리를 고정으로 꿰차고 있는 두 개의 작품.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도 역시 앙코르곡은 변치 않았다. 오스트리아 출신 최고 거장으로 ‘슈트라우스 전문가’로 불리는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지휘봉을 잡았는데도 그랬다. 그는 음악회 레퍼토리 18곡 가운데 14곡을 새로운 작품으로 채우는 파격을 선보이면서도 앙코르곡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39년 12월 31일 시작해 1941년 1월 1일부터 신년 음악회 명맥을 이어온 이 공연에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새해 인사를 마치는 것은 무언(無言)의 약속으로 통한다. 오스트리아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父子)의 작품은 빈 왈츠 자체를 뜻할 정도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슈트라우스 1세가 즐겁고 리듬감 넘치는 음악으로 농민의 춤에 뿌리를 둔 왈츠의 대중화를 이뤄낸 인물이라면, 그의 아들 슈트라우스 2세는 오스트리아의 대표 음악 장르로 왈츠의 예술적 가치를 끌어올린 인물이다.그러나 단순히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에 대한 애정만이 ‘라데츠키 행진곡’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에 대한 오스트리아인의 오랜 지지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는 피로 물든 황폐한 전쟁
‘대한민국 최고 연주자’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몇 있다. 어떤 기관이 선정하든, 어느 시점에 뽑든, 무조건 들어가는 사람들 말이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4)도 그중 한 명이다. 임윤찬보다 5년 앞선 2017년에 한국인 최초로 미국 밴클라이번 콩쿠르 1위에 오른 ‘국가대표 피아니스트’다.국제 콩쿠르 1위 자리를 여덟 차례나 거머쥔 ‘콩쿠르의 왕’이자 뉴욕타임스로부터 “황홀한 연주”란 평가를 받은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청파로 한경아르떼TV 본사에서 만났다. 5일 오후 9시에 방영하는 ‘임선혜의 옴브라 마이 푸’ 녹화를 위해 방문한 선우예권은 기자가 건넨 어떤 질문도 대충 넘기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이 얼마나 피아노를 사랑하는지, 얼마나 음악에 몰두하고 있는지 등을 담담하게 설명했다.그는 “지금껏 적당히 만족한 연주는 있었지만, 완벽했다고 느낀 연주는 없었다”며 “매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 죽기 전에 만족할 만한 연주를 남기는 게 인생의 목표”라고 말했다. ‘세계가 당신의 실력을 인정하는데, 너무 겸손한 것 아니냐’고 묻자 “아직 멀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좋은 연주에 대한 목마름을 언제나 느낀다”며 “그런 열정을 안은 채 평생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했다.그가 피아노를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누나 손을 잡고 따라 들어간 학원에서 피아노와 사랑에 빠졌다. 이후 엘리트 코스만 걸었다. 서울예고를 수석졸업한 뒤 미국 커티스 음악원과 줄리아드 음대, 메네스 음대를 나와 현재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연주자 과정을 밟고 있다. 그렇게
올해는 세계 무대를 휩쓰는 솔리스트들의 화려한 연주와 섬세한 표현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시간이다. 거물급 아티스트들이 두 시간가량 오롯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리사이틀 공연을 선보이기 때문이다.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이 손꼽아 기다려 온 거장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첫 번째 방한 일정은 오는 4월로 잡혔다. 1960년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 우승을 차지한 그는 완벽한 연주력으로 세계 피아니스트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현존하는 최고의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루돌프 부흐빈더는 6~7월 7회 공연에 걸쳐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32곡)을 연주한다. 2014년 잘츠부르크페스티벌 최초로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을 연주한 그는 독일 베를린, 오스트리아 빈 등에서 50여 회 완주 기록을 쓰면서 클래식 연주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다.세계적 권위의 콩쿠르를 석권하며 클래식 음악계에 돌풍을 일으킨 젊은 피아니스트들도 내한한다. 차이콥스키콩쿠르와 루빈스타인콩쿠르에서 우승한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가 다음달 9년 만에 리사이틀을 한다.제18회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자 브루스 리우는 3월, 제16회 우승자 율리아나 아브제예바는 5월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음악회를 연다. 중국이 낳은 유명 피아니스트 유자 왕(11월)과 랑랑(12월)도 리사이틀 무대에 오른다.세계 유수 오페라 무대를 장악해온 최정상급 성악가들도 목소리를 들려준다. ‘하이 C(테너 최고 음역), 하이 D의 제왕’이란 별칭의 페루 출신 벨칸토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는 2월 내한 공연을 한다. 21세기 최고의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는 5월 서울 롯데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를 묻는다면 대다수가 뇌와 심장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먼저 인간의 몸에 자리하는 기관이 있다. 바로 인간 신체의 배출구이자 숨구멍인 ‘항문’이다. 세포 발달 과정에서 가장 먼저 생겨나는 ‘원구(태아의 항문)’는 태아가 성장하는 데 중심축으로 작용한다.항문은 정신적으로도 인간 발달 과정에서 막중한 의미를 지닌다. 프로이트 이론에 따르면 항문기는 유아가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끼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단계로 정의된다. 정신분석학자 드니즈 브라운슈바이크는 항문을 자아 형성기의 중심 기관으로 평가했다.하지만 이 같은 의의에도 항문은 신체 기관 중 인간이 가장 언급하길 꺼리는 부위다. 더럽고 음습하다는 선입견 탓이다. <애널로그>는 이런 편견에 맞서는 책이다. 저자 이자벨 시몽은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 신체활동에서 항문의 역할과 그를 둘러싼 인류 역사, 문화 등을 조명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역설한다. “항문은 제명당한 상스러운 구멍이 아니다. 이것 없이는 어떤 육체도 숨 쉴 수 없다. 남자와 여자 모두가 가진 중심축이자 생명력으로 팽팽한 이 기둥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상징으로서 남근보다 훨씬 더 적합하지 않을까.”김수현 기자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42·한국명 장영주·사진)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연주자’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시작부터 남달랐다. 1990년 거장 주빈 메타가 이끄는 뉴욕필하모닉과의 협연이 데뷔 무대였다. 그의 나이 여덟 살 때였다. 이듬해엔 음반회사 EMI 역사상 ‘최연소 음반 녹음’ 타이틀을 따냈고, 다시 1년 뒤에는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를 최연소 수상했다. 이후 미국에서 주로 활동해온 그가 3년 만에 한국 무대에 서는데, 클래식 애호가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지난 27일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예매한 이들은 빠짐없이 공연장을 찾았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빈자리가 없었다. 데뷔 33년차 바이올리니스트답게 사라 장의 발걸음과 손놀림에는 여유가 넘쳤다. 그리고 우아했다. 첫 작품은 비탈리의 ‘샤콘’. 사라 장은 풍부한 음색과 날카로운 보잉(활 긋기)으로 왜 이 곡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인지 알려줬다. 비브라토 폭과 보잉 속도를 섬세히 조절하는 식으로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매섭게 연주했다. 표현력만큼이나 기교도 빼어났다. 속주 구간에선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활을 놀렸다. 첫 곡이 안겨준 만족감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이어진 연주(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에선 아쉬움이 남았다. 사라 장만 보면 나쁘지 않았다. 18명의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오는 명료한 음색은 압권이었다. 하지만 급변하는 그의 템포와 표현력에 제2바이올린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서 선율을 주고받는 구간에서 합이 어긋났다. 제2바이올린 소리가 사라 장의 바이올린에 묻힌 것도 바흐의 작곡 취지와 맞지 않았다.
“소리는 청각에 의한 것이기에 직접 보거나 읽을 수 없죠. 그러나 연주를 들었을 때 누군가는 석양을, 누군가는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머릿속에 떠올리잖아요. 그를 두고 ‘눈에 선하다’고 표현하죠. 직관적이면서도 명확한 전달력으로 청중에게 눈앞에 보이는 듯한 연주를 들려주고 싶어 미술적 요소를 접목했어요.”27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금호아트홀 연세. 환한 미소를 지으며 등장한 피아니스트 김수연(28·사진)은 의자에 앉은 뒤 숨을 고르더니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가벼운 터치로 생동감 넘치는 선율의 매력을 살린 김수연은 극적인 순간에 힘 있는 타건을 구사하며 쇼팽의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가 지닌 응축된 에너지를 마음껏 표현했다.지난해 5월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수연이 그림의 요소를 음악에 접목하는 공연으로 청중과 만난다. 2023년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에 선정된 데 따른 무대에서다. 2013년 금호문화재단이 국내 공연장 가운데 처음 도입한 상주음악가 제도는 뛰어난 실력의 연주자에게 1년간 4~5회 음악회를 직접 기획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피아니스트 김다솔 선우예권 박종해,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이지윤 양인모 김동현, 첼리스트 문태국,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등이 거쳐갔다.김수연은 ‘화음(音): 그림과 음악’을 주제로 총 다섯 번의 공연을 선보인다. 모차르트 헌정 무대를 제외한 모든 공연의 제목도 그림 요소로 채워진다. 다음달 5일 신년음악회 ‘스케치’를 시작으로 ‘블렌딩’(4월 27일), ‘명암’(8월 31일), ‘필리아: 모차르트’(9월 7일), ‘콜
“죽는 날까지 피아노를 공부하고 싶어요. 매일 새로운 레퍼토리를 배우면서 저의 연주를 발전시키는 것이 음악가로서 이루고 싶은 단 하나의 꿈입니다.”26일 서울 서초동 스타인웨이 홀. 선한 인상에 당찬 발걸음으로 등장한 피아니스트 이혁(22·사진)은 짧은 인사를 건네고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더니 순식간에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지난달 프랑스 파리의 롱티보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공동 우승을 차지했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선보인 곡은 쇼팽의 폴로네이즈 6번 ‘영웅’. 섬세한 터치로 서정적인 선율을 노래하다가도 금세 힘찬 타건으로 열정에 가득 찬 주제 선율을 소화한 이혁은 자신만의 색깔로 쇼팽의 다채로운 매력을 살려냈다.연주가 끝난 뒤 이혁은 롱티보 국제 콩쿠르 우승 이후 바뀐 것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콩쿠르 등수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많은 연주회에 설 수 있었다는 것 말고 나의 음악적 삶에서 달라진 점은 없다”고 했다.원하는 것은 있었다. 이혁은 지난 20일 자선 공연을 열고 수익금을 중앙대병원 어린이 병동 소아 환우 치료비로 기부했다. 그는 “음악으로 제 개인의 명예를 추구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자선 공연과 같은 연주 활동을 앞으로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체스 그랜드마스터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자리하고 있다. 이혁은 이달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국제 체스대회에서 3등을 차지했다. “체스는 제게 취미 이상의 존재예요. 4시간 동안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피아노 연주
2022년의 마지막 저녁 서울 롯데콘서트홀과 예술의전당, 경기 성남아트센터 등 주요 공연장이 아름다운 선율로 물든다. 롯데콘서트홀은 오후 8시부터 DJ 하임의 진행으로 클래식 음악에 다양한 형식의 춤을 결합한 이색 공연을 선보인다. 스페인 음악가 파블로 데 사라사테(1844∼1908)의 ‘치고이너바이젠’에 맞춰 스트리트 댄서 립제이가 왁킹 댄스를 춘다. 연주는 한경아르떼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최수열 부산시향 예술감독)와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가 맡는다. 또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연주하는 거슈윈의 뮤지컬 넘버 ‘아이 갓 리듬’에 댄서 오민수가 흥겨운 탭댄스를 선보인다. 마르케스의 ‘단손 2번’과 왁스만의 ‘카르멘 환상곡’, 쇼스타코비치 ‘재즈 왈츠 2번’ 등도 연주한다. 마지막 곡인 라벨의 ‘라 발스’ 연주에는 DJ 하임이 참여한다. 예술의전당은 오후 10시부터 콘서트홀에서 3년 만에 제야음악회를 연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홍석원 광주시향 예술감독의 지휘로 생상스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중 ‘바카날레’ 연주로 문을 연다. 피아니스트 신창용이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협연하고, 베이스 박종민이 김효근의 ‘눈’과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 ‘소문을 미풍처럼’을 들려준다. 소프라노 황수미는 드보르자크 오페라 ‘루살카’ 중 ‘달에게 바치는 노래’와 도니체티 오페라 ‘돈 파스콸레’ 중 ‘기사의 눈길’을 부른다. 마지막 곡인 라벨의 ‘볼레로’가 끝나면 예술의전당 야외광장에서 불꽃놀이와 함께하는 신년 카운트다운 행사가 시작된다. 성남아트센터는 오후 5시부터 콘서트홀에서 풍성한 레퍼토리로 올해
‘좋은 어른’이 말씀하는 한마디의 무게감은 묵직하다. 망망대해 속 풍랑을 만난 돛단배처럼 끊임없이 위기를 겪는 인생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는 이들이 바로 앞서 인생의 굴곡을 넘어온 어른들이어서다. 30년 넘게 취재 현장을 누빈 베테랑 기자가 쓴 <인생철학자와 함께한 산책길>은 천문학자 이시우, 의철학자 강신익, 뇌과학자 조장희, 칸트철학자 백종현, 경영과학자 윤석철, 문학평론가 고(故) 이어령 등 노학자 6명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인생관을 들여다본다.살아온 환경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학자로서의 성과 등 여러 면에서 다른 이들이지만, 결국 지키고자 하는 삶의 가치는 하나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온전한 자신의 삶’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시우는 무위(無爲)로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별이 알려주는 인생철학이라고 강조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평상심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별의 일생을 통해 ‘여여(如如)한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조장희는 인간의 뇌를 ‘감정을 집어넣은 컴퓨터’로 정의하면서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아우르는 절제력이 인생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이끄는 동력이라고 얘기한다. 백종현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행복이 아닌 대체 불가능한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말한다. 한 인간의 고유 가치가 다른 인간으로 교환될 수 없다는 진리를 통해 사람을 비교하는 행위의 어리석음을 역설한다.각자 뚜렷한 인생관을 지닌 이들의 여정은 결국 ‘인생의 위기를 맞는 순간 어떤 지혜를 발휘해 헤쳐나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귀결된다. 이들의 답은 “세파 속 자신의 모습을 정면으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세계 클래식 음악계가 주목하는 두 명의 천재가 167년 역사의 프랑스 명문 악단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OPS)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지휘자 아지즈 쇼하키모프(34)는 13세 나이에 우즈베키스탄 국립오케스트라 지휘로 데뷔했다. 18세에 같은 악단의 상임 지휘자 자리에 올라 주목받았다. OPS와는 지난해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며 인연을 맺었다. 협연자로는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프랑스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25)가 자리했다.첫 연주곡 비제의 ‘카르멘 모음곡 1번’에서는 OPS 특유의 다채로운 색깔이 표현됐다. 바이올린의 날카로운 트레몰로 연주와 땅이 꺼질 듯 무겁게 떨어지는 첼로 선율, 단단한 금관악기의 소리가 어우러지는 시작은 집시 여인 카르멘의 비극적 죽음을 암시하듯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로 구현됐다.스페인 아라곤 지방의 춤에서 비롯된 ‘아라고네즈’, 스페인 남부 춤곡 ‘세기디야’에서는 타악기의 경쾌한 리듬과 목관악기의 선명한 음색이 두드러지면서 작품 특유의 화려한 색채가 두드러졌다. 다만 관악과 현악이 선율을 주고받는 구간에서는 서로의 음색이 하나로 섞이지 못하면서 어긋나는 모습을 보였다. 후반부로 갈수록 선율이 경직되면서 쇼하키모프가 OPS의 장점으로 꼽았던 '유연한 연주'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어 연주된 협연곡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기대 이상이었다. 캉토로프에게 콩쿠르 우승을 안겨준 결선 곡으로 피아노 협주곡 1번에 비해 유명하지 않으나, 화려한 기교와 섬세한 악상 표
20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피에타리 잉키넨 KBS교향악단 음악감독(42·사진)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지휘자의 생각을 최대한 빨리 흡수하려는 단원들의 개방적인 태도와 뛰어난 연주 실력이 너무나 인상 깊었다”며 “코로나19 사태로 힘겨운 시간이 이어졌는데도 단원들이 매 공연에서 열정적인 연주를 보여줘 너무나 만족스러운 첫 시즌이었다”고 말했다. 핀란드 출신 지휘자 잉키넨은 현재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거장’으로 통한다. 40대 초반으로 지휘자치고는 나이가 적은 편에 속하지만 직함이 세 개다. 핀란드 명문인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공부한 잉키넨은 독일 자르브뤼켄의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과 일본 재팬 필하모닉 수석지휘자까지 겸임하고 있다. 잉키넨은 “방대한 레퍼토리를 소화하면서 우리만의 색깔과 목소리를 공고히 만들어가는 게 목표”라며 “어떤 객원 지휘자가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독자적 스타일을 명확히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했다. 외적으로는 KBS교향악단의 연주 반경을 세계 무대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 방역 규제가 완화되면서 세계 무대가 다시 열리고 있다”며 “2024년 남미 투어가 예정됐고, 내년 아시아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2025~2026년 유럽 투어에 나서기 위한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잉키넨은 KBS교향악단과 음반 작업에도 나선다. 그는 “시즌당 최소 1장의 앨범을 발매하는 것이 목표”라며 “내년 3월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으로 녹음 작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잉키넨은 2023년 정기공연에서 말러 교향곡 5번과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월튼 교
“피아니스트는 손으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한다.” -작곡가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 “쇼팽은 음악으로 진실한 대화를 한 작곡가다. 그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모든 말은 녹턴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영원불멸의 아름다움으로 무려 두 세기가 지난 현재까지도 전 세계 피아니스트의 무대에서 매일같이 울려 퍼지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전설의 작곡가 쇼팽의 ‘녹턴(야상곡·夜想曲) Op.9 No.2’ 곡이 그 주인공입니다. 한국인 최초의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과 밴 클라이번 콩쿠르 최연소 우승자 임윤찬도 평소 애정하는 작품으로 이미 여러 차례 무대에 올린 곡이기도 합니다. 높은 작품성뿐 아니라 섬세하고도 우아한 선율과 그에서 비롯되는 처연하면서도 감미로운 분위기로 대중성까지 고루 잡은 세기의 명작으로 꼽히죠. 실제로 이 작품은 평소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전혀 없더라도 일단 들으면 "분명히 어디서 들어봤는데"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올 정도로 우리의 귀에 친숙한 곡입니다. 쇼팽이 활동하던 시기가 비르투오소적(기교가 돋보이는) 작품이 성행하던 때였단 점을 감안하면 그의 음악이 지니는 가치는 더욱 귀중합니다. 화려한 기교와 빠른 음표로 점철된 수많은 음악 사이에서 안정적인 템포와 청중의 심금을 울리는 서정적인 선율로 자신만의 아름다움,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한 쇼팽의 녹턴은 음악사적 의의가 크다고 평가받고 있죠. 남들과의 외적 차이에서 자신의 미(美)를 평가하고 본연의 아름다움보다는 보여지는 아름다움이 미의 기준이 된 오늘, 쇼팽의 녹턴을 조명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작품이 전하는 울림은 이전과는 다른 파장을 만들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초 한국인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조성진(28)이 헨델 선율을 담은 음반으로 찾아왔다.음반사 유니버설뮤직은 16일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싱글 음반 '헨델: 하프시코드 모음곡 제1번 내림 나장조 4악장 미뉴에트'를 발매한다고 밝혔다.이번 음반은 내년 2월 3일 발매 예정인 조성진의 여섯 번째 도이치 그라모폰 정규 앨범에 수록된다.조성진은 음반 수록곡으로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 작품은 현대 피아니스트로부터 잘 연주되지 않는 곡이다. 그러나 몇 년 전 우연한 기회로 이 곡을 발견해 연주하면서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이어 그는 "10대 때부터 바로크 시대 음악에 대한 관심이 큰 편이었다"며 "평소 애정한 작품으로 앨범 녹음까지 할 수 있어 무척 기뻤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성진은 내년 2월 하노버를 시작으로 뒤셀도르프, 함부르크, 도르트문트, 런던, 밀라노, 베를린, 빈 등 총 8회의 헨델 리사이틀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다.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같은 바로크 시대 음악이라 하더라도 각 작품이 지닌 특성은 매우 달라요. 바흐 곡의 경우 독일의 고정된 형식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깔끔한 음색이 매력적이죠. 비탈리의 곡은 음악을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낭만적으로 음악을 풀어낼 수 있단 점에서 너무나 좋은 작품이에요. 다양한 색깔의 바로크 음악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42·한국명 장영주·사진)은 15일 서울 도산대로 오드포트에서 기자와 만나 “한국은 나에게 너무나 특별하고 남다른 의미가 있는 나라다. 코로나19로 힘겨운 시대를 살아낸 이들에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3년 만에 한국을 찾는 사라 장이 들고 온 레퍼토리는 비탈리의 ‘샤콘’,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비발디의 ‘사계’ 등 18세기 바로크 음악으로 채워졌다.그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일상이 지닌 가치, 편안함의 중요성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바이올린은 제 삶의 전부였어요. 코로나19 전에는 1년에 연주를 100번 넘게 하면서 바쁘게 살았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어느 나라인지 무슨 곡을 들고 연주해야 할지 헷갈릴 정도였죠.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처음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냈어요. 처음으로 보통의 삶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죠."이번 공연에서 사라 장은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심준호,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등으로 이뤄진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호흡을 맞춘다. 그는 “너무나 실력이 뛰어난 음악가들과 연주를 할 수 있어 영광이다. 배
“제가 연주하는 첫 소절만 들어도 ‘아, 이건 최하영의 음악’이라고 떠올릴 만한 개성 있는 첼리스트가 되고 싶어요. 저만의 색깔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죠.”지난 6월 세계적 권위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최하영(24)의 당찬 포부다. 지난 13일 서울 청파로 한국경제신문사를 찾은 그에게 어떤 연주자가 되고 싶은지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최하영은 13년 전 미국 보스턴에서 레슨을 받았던 첼리스트 버나드 그린하우스를 떠올리며 “첼로 기술자가 아니라 진정한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당시 선생님께서 ‘첼로는 목소리를 표현하는 도구일 뿐, 좋은 첼리스트가 되려면 인간의 모든 감정과 이야기를 진실성 있고 솔직하게 전하는 예술인이 돼야 한다’고 하셨어요. 저만의 소리로 청중의 감정을 움직이고 심금을 울리는 첼리스트가 되기 위해 무대에 오를 때마다 이 말을 항상 마음에 새깁니다.”최하영이 첼로를 처음 손에 쥔 것은 여섯 살 때다. 취미로 첼로를 켜던 어머니에게 “나도 배울 수 있어?”라고 물어본 게 첼리스트의 길을 걷게 된 출발점이다. 그의 특출난 재능이 드러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덟 살이던 2006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했고, 2011년 브람스 국제 콩쿠르와 2018년 펜데레츠키 국제 콩쿠르 우승을 차지하며 음악계에 일찌감치 이름을 알렸다.그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 공부하다가 14세에 영국 퍼셀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고, 16세에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 입학해 프란슨 핼머슨을 사사했다. “유럽에서 첼
지난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고개를 젖히며 건반에서 손을 떼자 2000여 명의 청중이 일제히 일어섰다. 그렇게 시작된 박수 소리는 10분 넘게 계속됐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젊은 천재’에게 앙코르를 부탁하기 위해 흰머리가 성성한 노부부와 중년의 신사는 무려 12차례 ‘커튼콜’을 했다.임윤찬이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감사를 표시하자, 어디선가 ‘꺄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클래식 공연장에선 좀처럼 들을 수 없는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 클래식 음악 역사상 처음으로 열성팬을 몰고 다닌 ‘전설의 피아니스트’ 리스트가 부활한 모습이었다.이날 공연은 임윤찬이 지난 6월 세계적 권위의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해 마련했다. 우승하기 전만 해도 일부 클래식 마니아만 아는 ‘유망주’였던 그는 이제 웬만한 록스타나 아이돌을 능가하는 유명인이 됐다. 이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공연 시작 두 시간 전부터 사람들로 북적였고, 밴 클라이번 우승 후 첫 발매 음반인 ‘베토벤, 윤이상, 바버’를 손에 넣으려는 사람들로 수십m의 긴 줄이 생겼다.오후 5시, 무대에 오른 임윤찬은 박수갈채가 끝나기도 전에 건반에 손을 올렸다. 첫 작품은 올랜도 기번스의 ‘솔즈베리 경의 파반느와 갈리아드’. 좀처럼 듣기 힘든 르네상스 시대 작품을 택한 그는 작품의 맛을 살리기 위해 두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느린 춤곡을 뜻하는 ‘파반느’에선 단순한 선율을 서정적으로 풀었고, 빠른 춤곡 ‘갈리아드’에선 어느 음도 튀지 않게 오른손 움직임을 조절했다. 이렇게 ‘솔즈베리 경의 파반느와
‘곰팡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체로 반갑지 않다. 오래된 빵이나 썩은 음식에서 피어나는 검은색의 포슬포슬한 실타래나 욕실 바닥의 실리콘을 덮고 있는 검정 얼룩이 가장 먼저 머릿속을 채운다. 그러나 곰팡이의 존재를 인간의 청결한 환경을 위해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세균 정도로 치부할 수는 없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르는 우리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바로 곰팡이의 세계여서다.아이가 자궁 안의 양수에서 벗어나는 순간부터 어머니의 젖을 빨 때, 할아버지와 뽀뽀하고 연인을 만나 서로를 쓰다듬는 순간까지. 인간의 모든 행위에서 공유된 곰팡이는 배 속의 소장과 내장에 안착해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마이코스피어(mycosphere)>는 미생물학자인 박현숙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가 다양한 생물의 삶에 스며 있는 곰팡이의 모습과 역할, 개체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 조명한 책이다. 곰팡이의 기원과 생태 등 기본적인 정보를 토대로 생물과의 관계를 맺고 있는 곰팡이의 세상을 들여다본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강조하려는 가치는 ‘공생’.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으며 삶의 방식을 정한다. 이것이 모든 생명 현상의 비밀을 푸는 열쇠다.” 너무나 작아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곰팡이를 통해 ‘자연에서는 누구도 혼자 존재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김수현 기자
서울시립교향악단은 9일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이 최근 낙상 사고로 골절상을 입은 데 따라 오는 14~16일 열리는 베토벤 '합창' 정기 공연 지휘자가 김선욱으로 변경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벤스케 감독은 임기 중 마지막 정기 공연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됐다. 벤스케 감독의 부상 소식은 지난 7일 서울시향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벤스케 감독은 서울시향을 통해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공연이었는데 불가피하게 참여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벤스케 감독을 대신해 이번 서울시향 정기 공연 지휘봉을 잡는 지휘자는 김선욱이다. 앞서 김선욱은 지난 8월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지휘할 기회가 온 이 순간이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저의 음악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이번 공연은 오는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5~1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각각 열린다. 서울시향과 함께 소프라노 황수미,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테너 박승주, 베이스 박종민 등 국내 정상급 성악가들이 무대에 올라 베토벤의 선율을 전할 예정이다.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스트라스부르 국립 오케스트라는 독일과 프랑스의 강점을 모두 가진 관현악단이에요. 악보에 충실한 연주를 기반으로 뛰어난 유연성까지 갖췄죠. 유럽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입니다.”167년 전통의 프랑스 국립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OPS) 내한 공연 지휘봉을 잡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천재 지휘자 아지즈 쇼하키모프(34·사진). 8일 오후 프랑스 현지에서 온라인으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그는 “지휘자로서 변화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음악에 대한 아이디어와 구상을 오케스트라에 잘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2017년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을 찾는 OPS는 오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OPS는 1855년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 지역인 스트라스부르에서 창단한 오케스트라다. 프랑스의 섬세함과 독일의 견고함 등 양국 관현악단 강점을 결합한 음색으로 높은 명성을 얻고 있다. 지난해 OPS 15대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쇼하키모프는 2010년 구스타프 말러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실력자다. 지난 8월에는 서울시향과 우즈베키스탄 피아니스트 베조드 압두라이모프의 협연 무대를 지휘하며 호평받은 바 있다.그는 “서울시향의 수준 높은 연주력과 한국 관객들의 열정에 좋은 인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 이번 내한 공연이 기대되는 이유”라며 “내한 공연 레퍼토리의 첫 곡인 비제의 '카르멘' 모음곡은 프랑스 악단인 저희에게 대표곡과 같은 작품이다. 좋은 연주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어 그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오케스트라와 서로에 대
지난달 23일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시 기세이 분카홀. 일본 출신의 세계적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87)가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휠체어에 의지한 왜소한 몸으로 무대에 올랐다. 2010년부터 식도암 투병으로 공연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그가 지휘단에 선다는 소식에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도 관심이 집중됐다. 미국의 정상급 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를 30년간 이끈 명지휘자로 전 세계에서 그의 연주를 기다리는 클래식 음악 팬이 적지 않았기 때문. 이번 공연이 지상에서 연주되는 오케스트라 선율을 세계 최초로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생중계하는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프로젝트의 일환이란 점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이날 공연은 일본의 명문 관현악단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으로 막을 올렸다. 몸이 불편한 탓에 지휘자에게 으레 기대하는 큰 동작과 강렬한 눈빛은 없었지만, 어깨 아래에서 예민하게 움직이는 오자와의 손짓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절도 있는 그의 지휘에 전체 오케스트라는 마치 한 명의 연주자가 선율을 뽑아내듯 응축된 소리로 반응했다.명장의 실력은 여전히 빛났다. 단 하나의 음도 오자와의 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불편한 몸에도 발까지 구르며 온몸으로 지휘하는 그의 열정에 단원들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 채 연주에 집중했다. 그렇게 오자와의 손에서 탄생한 베토벤의 작품은 웅장하면서도 유려한 선율의 매력을 온 우주에 흩뿌렸다.모두가 프로젝트의 성공을 실감한 순간. 예상치 못한 오자와의 반응에 공연장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그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감격의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
“사랑할 때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아닐까요. 이번 앨범을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마치 사랑하는 연인의 손처럼 놓기 싫은 앨범이 될 거라 자신합니다.”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60·사진)는 6일 서울 세종대로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새 앨범 ‘사랑할 때’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여러 음반을 냈지만, 이번처럼 많은 사랑과 정성을 쏟은 앨범은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새 앨범을 낸 건 어머니께 바치는 음반 ‘마더’를 발매한 지 3년 만이다. 새 음반에는 윤학준의 ‘마중’, 이원주의 ‘연’, 김효근의 ‘첫사랑’ 등 11개 곡이 담겼다. 군포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최영선 지휘), 베이스 길병민, 바이올리니스트 대니구, 첼리스트 홍진호, 해금 연주자 나리 등이 참여했다.조수미는 한국 가곡, 크로스오버, 가요 등 우리 언어와 정서를 전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이번 앨범을 채웠다. 그는 “한국 가곡은 우리 말 노래인데도 많은 사람이 (발음이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며 “가사가 잘 들리도록 발성법 등에 변화를 줘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가곡과 창작곡 위주로 앨범을 채웠다”며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작곡가들이 만든 작품을 어떻게 소화할지에 대해 끊임없이 소통했다”고 덧붙였다.조수미는 가곡 ‘첫사랑’ 등을 소개하며 휴대폰이 없던 40년 전 옛사랑을 추억하기도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나던 (남자)친구와 첫눈 오는 날 경복궁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었어요. 그런데 하필 그날 도서관에서
연말만 되면 어김없이 전 세계 유명 무대에 잇따라 오르는 불후의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담긴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 그 주인공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공연장 문 앞은 부모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12월을 배경으로 밝은 분위기를 자아낼 뿐만 아니라 ‘오네긴’ ‘백조의 호수’ 등 여타 고전 발레 대비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갖추고 있는 것이 인기 요인으로 꼽힙니다. 독일 작가 호프만의 소설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을 각색한 작품으로 크리스마스이브에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 받은 한 소녀가 꿈속에서 왕자로 변신한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생쥐 떼를 물리치며 모험을 떠나는 내용을 그리고 있죠.동화적 요소가 많은 만큼 ‘호두까기 인형’ 무대가 어른의 시선을 끌기엔 역부족일 것이라 예단할 수 있지만 화려한 발레리나의 몸짓과 차이콥스키 특유의 세련된 음악이 거대한 오케스트라로 구현되는 만큼 성인의 시각과 청각을 만족시키기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게 중론입니다. 다만 평소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약간은 생소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평생 애수가 진하게 배어있는 선율을 가득 적어낸 그가 이 작품에서만큼은 천진난만하고도 밝은 선율로 작품 전체를 채웠기 때문이죠. 그 이유는 차이콥스키가 ‘호두까기 인형’ 작곡 당시 놓였던 배경에 있습니다.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동생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에 대한 애틋함으로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동생과의 추억이 녹아있는 어린 시절, 순수한 마음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순
“한국이 유럽에 비해서 바로크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나 관심이 낮은 편이라고 알고 있어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장르일 수 있지만 본능적으로 가슴을 울리는 선율을 가지고 있는 음악인 만큼 마음의 문만 연다면 어느 순간 깊숙이 빠지게 될 겁니다.“러시아 소프라노 율리야 레즈네바(33·사진)는 2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무대에서 나의 음악을 전하는 순간은 값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레즈네바는 3~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한화클래식 2022’에서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그는 “고향이 사할린이기에 한국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됐다”고 했다. “7세까지 사할린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어린 시절 동네에 한국 친구들이 많아서 김치 등 한국식 반찬들을 집에서 자주 먹었어요. 좋은 기억이 있는 만큼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행복합니다.”레즈네바는 엘레나 오브라초바 국제콩쿠르에서 1위, 미리암 헬린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의 실력은 특히 바로크 음악에서 빛을 발한다. 2010년부터 바로크 음악의 거장 마르크 민코프스키와 고악기 앙상블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의 수장 조반니 안토니니 등에게 호평을 얻으며 세계 무대를 누비고 있다. 순수한 음색으로 고난도 기교를 완벽히 소화해내 현재 바로크 음악을 표현하는 최고의 성악가 중 한 명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어릴 적 우연히 접한 음반에 바흐의 곡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음악이 지닌 아름다움에 깊이 빠졌
12월이 되면 세계 공연장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단골 레퍼토리가 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다. 베토벤이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생애 마지막 교향곡 ‘합창’은 고통에서 피어난 환희와 인류애를 그 어느 작품보다 완벽하게 표현한다. 희로애락이 뒤섞였던 한 해를 정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준비한다는 의미에서 이 곡을 능가하는 걸작은 아직 작곡되지 않았다는 게 클래식 음악계의 공통된 평가다. 하이라이트는 4악장에 등장하는 ‘환희의 송가’다. 힘찬 선율로 이뤄진 이 구간은 ‘인류의 형제애’라는 작품 전체의 주제가 응축돼 짜릿하고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올해도 연말 클래식 공연장엔 베토벤의 합창이 곳곳에서 연주된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오는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5~1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의 베토벤 교향곡 합창’ 무대를 올린다.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소프라노 황수미,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테너 박승주, 베이스 박종민 등 국내 정상급 성악가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베토벤의 선율을 노래한다. 피에타리 잉키넨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도 23일 아트센터인천, 2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같은 작품을 연주한다. 소프라노 캐슬린 김, 메조소프라노 김선정, 테너 이범주, 베이스 심기환이 무대에 함께 오른다. 함신익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심포니송은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다. 베토벤 작품만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규모 합창으로 연말 분위기를 만끽할 공연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국립합창단은 1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송년음악회를 연다. ‘겨울 가면
한경아르떼TV가 1~4일 ‘2022 베를린 필하모닉 발트뷔네 콘서트’,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요나스 카우프만 주연의 오페라 ‘카르멘’, 피아니스트 박재홍 독주회 등 풍성한 개국 특집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한경아르떼TV는 개국에 맞춰 세계 최정상급 연주회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더 마스터피스’를 신설했다. 첫 무대는 지난 6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외 원형극장으로 꼽히는 독일 베를린 발트뷔네에서 열린 ‘2022 베를린 필하모닉 발트뷔네 콘서트’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상임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의 지휘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협연 키릴 게르슈타인),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라벨 관현악 편곡) 등을 연주했다. 오페라 걸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어메이징 오페라’와 해외 유명 미술관 작품을 촬영해 선보이는 ‘세계의 미술관’도 국내에서 처음 방송한다. ‘어메이징 오페라’의 첫 작품은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로 이탈리아 오페라의 종가인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무대에 오른 조르주 비제의 대표작 ‘카르멘’이다. 완성도 높은 연주와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등 주역들의 호연으로 찬사를 받은 공연이다. ‘세계의 미술관’ 첫 회는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에 전시된 명작을 감상할 수 있는 ‘프라도, 위대한 미술관’ 편이다. 내레이션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 제러미 아이언스가 맡았다. ‘TV콘서트 클래식 와이드’의 첫 프로그램은 ‘2022 전주비바체 실내악 축제’ 실황 무대. 소프라노 강혜정, 테너 김세일,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등 국내 정상급 연주자들이 다채로운 음악을 들려준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한경아르떼TV의 첫 합작품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 6월 미국 밴 클라이번 국제콩쿠르 우승 이후 처음 내놓은 음반이 발매와 동시에 1만장 이상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유니버설뮤직은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광주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 베토벤 ‘황제’ 교향곡 등이 담긴 공연 실황 음반이 1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리며 공식 플래티넘 앨범으로 등극했다고 30일 밝혔다. 해당 음반의 정식 명칭은 '베토벤, 윤이상, 바버'다.지난달 8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연주 실황을 녹음한 이 음반에는 베토벤 협주곡 5번 ‘황제’와 임윤찬의 앙코르곡 ‘정원의 소녀들’, 스크랴빈 ‘2개의 시곡’ 중 1번, ‘음악 수첩’, 광주시향이 연주한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등이 담겼다.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2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금호아트홀 연세.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등장한 피아니스트 임윤찬(18·사진)은 곧바로 무대 위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눈 아래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건반에 손을 올린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곡은 그가 최근 연주회장에서 앙코르곡으로 자주 연주하는 페데리코 몸포우의 ‘정원의 소녀들’. 가벼운 터치로 단숨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끌어낸 임윤찬은 서정적인 선율이 나오자 딱딱한 박자에 얽매이지 않고 리듬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작품의 멋을 살렸다. 지난 6월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광주시립교향악단(홍석원 지휘)과 협연한 베토벤 ‘황제’ 협주곡 등이 담긴 공연 실황 앨범을 도이체그라모폰(DG) 레이블로 내놨다. 지난달 8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연주 실황을 녹음한 이 앨범에는 ‘황제’와 임윤찬의 앙코르곡 ‘정원의 소녀들’, 스크랴빈 ‘2개의 시곡’ 중 1번, ‘음악 수첩’, 광주시향이 연주한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등이 담겼다. 임윤찬은 이날 시연에 이어 열린 음반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황제’를 선곡한 이유에 대해 “그동안 ‘황제’는 화려하게만 느껴져 애정이 들지 않았지만 최근 코로나19라는 큰 시련이 닥치고 매일 방에서만 연습하다 보니 이 곡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황제’가 베토벤이 꿈꾸는 유토피아와 베토벤이 바라본 우주를 담아낸 곡이란 느낌을 받았다”며 “베토벤이 원했던 자유와 기쁨을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당시 “그리
“다시 앞으로 돌아갑니다. 브람스의 리듬을 조금 더 명료하게 표현해주세요.” 27일 경기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지휘자는 연신 손과 입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음정이나 박자가 조금이라도 엇나가면 과장된 손짓과 함께 타박이 나왔다. 반소매의 지휘자는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63). 그의 손짓을 따라가는 악단은 452년 전통의 독일 명문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다. 이들은 28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과 30일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여는 첫 내한 공연을 앞두고 이곳에서 마지막 리허설을 했다. 당초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첫 내한 공연 지휘자는 30년간 악단을 이끈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80)이었다. 하지만 그가 건강 문제로 활동을 중단하면서 틸레만이 지휘봉을 잡게 됐다. 틸레만도 최근 어깨 문제로 해외 연주를 취소한 탓에 ‘한국 공연도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다행히 한국행(行) 비행기에 올랐다. 이날 리허설에서 본 틸레만의 건강 상태는 괜찮아 보였다. 공연을 한 달 앞두고 지휘자가 교체된 걸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단원들과의 호흡도 좋았다. 틸레만의 몸짓과 손짓에 따라 오케스트라는 하나의 응축된 소리를 만들어냈다. 틸레만이 양팔을 넓게 펼치면 소리가 홀 전체를 감싸듯 커졌고, 지휘자가 몸을 구기면 모든 악기가 숨을 죽였다. 지난달 바렌보임을 대신해 독일 현지에서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무대에 오른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틸레만은 듣던 대로 ‘열정의 지휘자’였다. 온몸을 흔들며 지휘하는 바람에 얼굴은 물론 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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