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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상, 조각, 회화 등 다채로운 장르가 어우러져, 여성의 삶과 고민 그리고 의지를 보여주는 전시 '언퍼밀리어, 모놀로그. 룸'이 지난 7일 서울 연남동 화인페이퍼갤러리에서 개막했다. 민경, 서정배, 황지현 등 여성 작가 3인이 이 시대 여성으로 살아가며 쌓아온 경험과 감정을 표현한 작품 35점을 27일까지 선보인다. 민경의 '언퍼밀리어(unfamiliar)'는 '징조적 서사'에 초점을 맞춘 사진과 조각 작품들이다. 징조적 서사란 사적공간에서 인물이 벌이는 감정이 담긴 행위가 전해주는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다. 거실 소파 등 개인의 집에서 오브제를 머리에 쓰고 있는 인물을 담은 사진은 연극처럼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사진 속 오브제가 사진 작품 옆에 따로 전시돼 있다. 사진 내부의 장면이 밖으로 이어지도록 한 것이다. 서정배의 ‘모놀로그(monologue)’는 영상과 회화를 통해 삶에서 느끼는 어쩔 수 없는 불안과 우울, 외로움과 고독을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묘사한다. 작가의 그림엔 어김없이 소녀 모습의 '키키'가 등장한다. 작가가 창조한 일종의 캐릭터다. 키키는 다양한 차림과 표정과 동작으로 작가의 내면을 드러낸다. 작가는 키키란 이미지로 독백(monologue)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황지현의 작업 '룸(room)'은 여성으로서 체험한 '충돌과 향유의 순간’을 표현한 회화 작품들이다. 긴 머리의 여성 그리고 그 주변과 내부에 상징적 이미지를 덧칠해 작가 내면에 쌓여 있는 감정을 나타냈다. 또한 무너지고 해체된 가옥, 벽을 뚫고 뻗어나가는 식물과 인체, 자궁과 꽃의 뒤얽힘, 캔버스를 벗어나 벽으로 이어지는 길의 형상 등을 통해 견고한 체제와 사회적 틀을 깨고자 하는 의지를 드
1991년 8월 5일, 김포공항은 태극기를 든 푸른 눈의 청소년들로 북적였다. 제17회 고성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에 특별히 초대받은 구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지역 청소년 107명이 입국한 것이다. 이 가운데는 12세 세쌍둥이 자매가 포함돼 언론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원전 사고 이후 가족과 떨어져 집단 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있던 13세~18세 아이들이었다. 고성 잼버리는 이렇게 첫 장면부터 달랐다. 보이스카우트 대원이 아닌 체르노빌 청소년들을 데려오기로 한 주최측의 기획이 행사의 의미를 풍성하게 했다. 체르노빌 청소년들은 잼버리 대회 이후 한국인 가정에서 민박을 하며 올림픽 공원과 용인자연농원(에버랜드) 등을 관광했다. 고성 잼버리 행사 시작 직후인 1991년 8월 8일 구 소련 캠프 대원들과 미국 대원들이 만났다. 냉전시대 적성국가 청소년들은 이 자리에서 서로 기념배지를 달아줬다. 고성 잼버리엔 헝가리, 폴란드, 유고, 체코 등 동구권 8개국 168명이 참가했다. 또한 앙골라 등 비회원 12개국 청소년들도 초청됐다. 동구권 청소년이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에 참가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한국 정부는 서울올림픽 이후 적극적으로 ‘북방정책’을 펼치며 구 소련 공산권 국가들과 국교관계를 수립하고 있었다. 동서 냉전의 상징이었던 한국은 고성 잼버리를 통해 동서화합의 장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고성 잼버리엔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 모레이 유프 모로코 왕자, 알베리 리차노프 구 소련연방최고회의 부의장 등 20여개국에서 53명의 스카우트출신 최고 통치자, 정치인, 국회의원들이 방문했다. 고성이 동서 화해를 상징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대회는 꼼꼼하게 준비
1960~1980년대 한국 학교 교실은 '콩나물 교실'로 불렸습니다. 서울 주택가 국민학교(초등학교) 한 학급 학생 수가 80명이 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하는 '2부제'를 시행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교사들은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유교적 관습에 배어 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매우 순종적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아선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학생에 대한 체벌도 꽤 있었습니다. 숙제를 안 해가면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맞는 일도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벌을 받더라도 대부분의 학부모는 자신의 아이들이 맞을 짓을 해서 그랬다고 여기곤 했습니다.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 일종의 '신뢰'가 형성돼 있었지요.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라 해도 잘못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죠. 엄한 교사들이 많았지만, 졸업식 땐 많은 학생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스승의 날엔 학부모가 찾아와 교사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고, 선생님 대신 일일교사로 수업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물론 그런 학교들이 있지만 예전엔 많은 학교에서 그런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당시 한국인들은 선진국 학교의 한 학급이 30명 수준이라는 것을 부러워했었습니다. 전문가나 일반인 따로 없이 한국 사람들은 '전인교육'을 실현하려면 교육 환경을 선진국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었죠. 이제 한국의 학교는 외형적으로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습니다. 한 학급 학생 수는 30명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컴퓨터와 다양한 디지털 기기가 수업을 돕고, 도시락 대신 급식이 제공되고, 냉난방이 가동되고 있습니
창호지 문에 선비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빛과 인물의 실루엣 그리고 문밖에 쌓여 있는 고서가 어울려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다. 이 장면은 사진가 이동춘의 ‘서가풍경’ 연작의 하나로, 경북 경주 서악서원에서 찍은 것이다. 한옥에 빠진 작가는 2000년대 초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 가옥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문설주, 서까래 기둥, 대청마루 등 옛집의 구석구석과 자연을 시적으로 담아 2010년 ‘오래 묵은 오늘, 한옥’을 발표했다. 이어 그는 경북 안동 등지 종갓집의 문을 두드렸다. 거기에서 수백 년간 이어져온 관혼상제와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들, 고택의 우아함을 촬영해 ‘선비정신과 예를 간직한 집, 종가’(2012)로 집대성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작가는 무형문화재, 붓이나 화살통을 만드는 장인 등 사라져가는 우리의 문화와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을 차곡차곡 담아나갔다. 지난 4월엔 ‘경치를 빌리다-한옥의 차경’으로 자연과 어우러져 멋을 완성하는 한옥의 미학을 보여줬다. ‘서가풍경’ 사진전이 최근 경북 예천 경북도서관에서 개막했다. 서원과 서원의 제향, 궁궐 도서관 등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들이 오는 27일까지 전시된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창호지 문에 선비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빛과 인물의 실루엣 그리고 문 밖에 쌓인 있는 고서가 어울려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다. 이 장면은 사진가 이동춘의 '서가풍경' 연작의 하나로, 경북 경주 서악서원에서 찍은 것이다. 한옥에 빠진 이씨는 2000년대 초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 가옥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문설주, 서까래 기둥, 대청마루 등 옛 집의 구석구석과 자연을 시적으로 담아 2010년 '오래 묵은 오늘, 한옥'을 발표했다. 이어 작가는 경북 안동 등지 종갓집의 문을 두드렸다. 거기에서 수백년 간 이어져온 관혼상제와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들, 그리고 고택의 우아함을 촬영해 '선비정신과 예를 간직한 집, 종가'(2012)으로 집대성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작가는 무형문화재, 붓이나 화살통을 만드는 장인 등 사라져가는 우리의 문화와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을 차곡차곡 담아나갔다. 지난 4월엔 '경치를 빌리다-한옥의 차경'으로 자연과 어우러져 멋을 완성하는 한옥의 미학을 보여줬다. '서가풍경' 사진전이 최근 경북 예천 경북도서관에서 개막했다. 서원과 서원의 제향, 궁궐 도서관 등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들이 27일까지 전시된다. 신경훈 기자
한국 현대사는 '고속성장'의 역사다. 아파트 한 동, 다리 하나를 지을 때도 빨랐다. 경제성장과 도시화가 급속했던 만큼 필요한 주택이나 사회간접자본을 신속하게 확충해야 했다. 그만큼 부작용도 많았다. 가장 심각한 것이 '부실공사'였다. 1970년대 이후, 건물과 교량이 무너지고 주저앉는 사고가 이어졌다. 21세기에 들어선지 23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붕괴'의 조짐이 곳곳에 드리워져 있다. 최근 GS건설이 건설중이던 인천 검단 아파트를 전면 재시공하기로 발표한 것을 계기로 옛 필름 속에서 소환한 과거 부실공사의 잔혹사를 정리해 본다. 1970년 4월 8일 오전 8시 서울 마포구 창천동. 굉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서울시가 건립한 와우아파트 1개 동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었다. 이 사고로 33명이 사망하고 3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당시 서울시는 급격이 늘어나는 무허가 주택을 줄이기 위해 서민용 아파트를 공급하고 있었다. 그래서 1969년 6월에 와우아파트를 착공했고 바로 그해 12월에 완공했다. 단 6개월만에 아파트 단지 하나를 완성한 것이다. 게다가 건축 비용도 통상적 건축비의 반을 들였다. 그러니 부실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사건으로 서울시장, 구청장, 설계자, 현장감독, 건설사 사장 등이 줄줄이 물러나거나 구속됐다. 이 사고는 '한국형 부실공사 사고'의 시발점이었다. 1980년대 대표적인 대형 부실공사 사고는 지하철공사 현장에서 일어났다. 와우아파트 붕괴가 일어나고 딱 12년 지난 1982년 4월9일 공사중이던 서울 지하철 3호선 무악재 구간이 무너져 내렸다. 그 위를 지나가던 시내버스 4대가 추락했다. 이 사고로 11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 여파로 의주로~무악재 구
1929년 3월, 경성이 술렁였다. 한국 최초의 개인 사진전 ‘정해창 예술사진 개인전람회’가 열려서다. 일간지에도 상세히 보도된 이 전시의 주인공 무허(舞虛) 정해창(1907~1968)은 풍경, 정물, 인물 등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서정적으로 담아낸 우리 농촌의 정경(사진), 단아한 조선 여인의 얼굴 등 식민지 시대 예술가의 마음을 담은 작품들이었다. 작가는 일본 도쿄외국어대 재학 중 취미로 시작한 미술에 빠졌고, 전문 교습기관에서 회화와 사진을 배웠다. 귀국 후 사진에 몰두한 정해창은 역사적인 첫 개인전 이후 1931년엔 지방순회전도 열었다. 3년 뒤엔 정물 사진들로 전시를 개최했다. 조선의 보통 사람들 모양의 인형과 일상의 오브제를 함께 담은 작품은 시대를 앞서가는 시도였다. 정해창은 자신의 사진을 ‘살롱픽춰’라고 불렀다. 오직 예술성을 추구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네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120점의 유리건판 사진과 300점의 밀착본을 남겼다. 최근 복원 작업이 진행됐고 70점이 되살아났다. 이 사진들로 꾸민 정해창 사진전 ‘살롱픽춰’가 서울 삼청동 류가헌에서 열리고 있다. 7월 2일까지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대나무 사진가' 원춘호 사진전 '마디마디, 흰 그림자'가 21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인사1010에서 개막했다. 작가가 지난 2012년부터 한국의 담양, 고창, 함양, 부산 그리고 중국 저장성, 안후이성 등지의 눈 내린 대나무 숲에서 촬영한 사진 20점을 26일까지 선보인다. 지난 10여 년 동안 촬영한 대나무 사진 가운데 150 점을 선별해 엮은 사진집 '죽림설화' (하얀나무, 264쪽) 출간 기념전이기도 하다. '화이트 트리' 연작을 시작으로, '블랙 트리', '윈드'를 거쳐 최근 죽순을 담은 '리 본(Re Born)'에 이르기 까지, 그가 담은 대나무숲 연작들 가운데 대표작을 모은 것으로, 대나무 작업 10년을 넘기며, '중간 결산'의 의미로 준비한 책과 전시다. 원씨의 작품들은 자연을 찍었지만, 풍경이라기 보다, 흑과 백이 어우러진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담은 사진들이다. 대나무 줄기와 잎의 짙은 실루엣 그리고 흰 눈이 어우러져 펼쳐지는 추상적 이미지들은 감상자들에게 고요한 '시각적 명상'을 체험하게 한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는 원씨의 작품에 대해 "관람자들이 자신의 내면의 긴 통로를 돌아보게 하고, 스스로 대나무처럼 한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을 들게한다"고 말했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
제주와 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공통점은 무얼까? 바로 샤머니즘이다. 백남준은 샤머니즘을 모든 예술의 뿌리로 여겼다. 그래서 스스로를 '전자무당'이라 불렀다. 제주는 샤머니즘의 섬이다. 제주큰굿, 영등굿, 잠수굿,당굿 등 제주의 다양한 굿은 제주의 자연과 제주인의 삶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샤머니즘을 예술적으로 실현한 백남준의 작품과 신화와 샤머니즘의 섬 제주가 만난 전시 '통(通) : 백남준과 제주, 굿판에서 만나다'가 15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에서 개막했다. 돌문화공원관리소가 주최한 이 행사엔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작품, 회화, 판화, 사진 등과 사진가 최재영이 1990년 백남준이 한국에서 벌였던 굿을 담은 사진작품 등 100여 점이 8월31일까지 전시된다. 1세션은 최재영 사진가 의 백남준 굿 퍼포먼스 사진작품으로 구성됐다. 백남준은 그의 예술적 동반자이자 절친인 독일 화가 요셉 보이스가 죽은 뒤 1990년 그를 위한 추모굿을 서울에서 벌였고, 최씨가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2세션은 백남준 영상 및 비디오 설치작품, 3세션은 백남준 작품 중 오방색과 빛을 활용한 작품과 제주 굿 기메, 4세션은 백남준 음악 관련 작품, 5세션은 백남준 평면드로잉 및 굿을 담은 사진작품 등으로 구성됐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
이발소 앞에서 포즈를 취한 초록과 빨강 원피스의 두 여성. 바로 옆 쇼윈도 속 흑인 남성 그리고 분홍빛 건물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20세기 사진의 물줄기를 바꾼 미국 사진가 윌리엄 클라인(1926~2022)이 1961년 보그에 게재한 작품이다. 스튜디오에서 나와 거리에서 찍은 패션사진은 파격적이었다. 클라인은 2차 세계대전이 터져 군에 입대했지만 전후 돌아오지 않고 프랑스에서 입체파 화가 페르낭 레제로부터 회화를 배웠다. 조각과 사진 작업도 함께한 그는 보그 편집장의 눈에 띄어 1954년 사진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추상미술을 잘 알았던 클라인은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허문 창의적 패션 사진을 쏟아냈다. 그가 촬영한 뉴욕의 풍경과 사람들 사진도 남달랐다. 기존 작가들이 추구했던 ‘안정된 구도’를 버리고 거대 도시의 속도감과 다양성을 강렬하게 담아냈다. 카메라를 향해 총구를 들이댄 소년의 표정 등을 찍은 ‘뉴욕’ 연작은 1957년 당시 최고 사진가에게 주는 나다르상을 받았다. 클라인 회고전 ‘디어 포크스(Dear Folks)’가 서울 삼청동 뮤지엄한미에서 최근 개막했다. 그가 남긴 사진, 회화 등 130점의 작품과 자료가 9월 17일까지 전시된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언론인이 아닌 사진작가가 촬영한 우크라이나 전쟁 사진전이 서울에서 13일 개막했다. 작가는 바로 대학교수이면서 분쟁지역 전문 사진가로 활동해온 김상훈씨다. 그가 지난 2월부터 우크라이나에서 1달 여 동안 찍은 사진으로 꾸민 '일상이 된 전쟁, 우크라이나 1년' 전이 서울 종로 갤러리공간미끌에서 25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접전 지역인 돈바스의 전방, 전쟁 초기 격전지였던 이르핀, 부차, 호스토멜, 체르니히우 등을 다니며 그 지역 사람들과 폐허가 된 마을을 담았다.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시민들과 파괴된 도시를 함께 담은 장면들은 감상자들에게 전쟁의 비극성을 전한다. 또한 지하 벙커 속 휴대폰 불빛에 의지하고 있는 소년, 병사와 여인의 애틋한 만남 등 작가의 감수성이 돋보이는 장면들이 눈길을 끈다. 어둠 속에서 휴대폰 불빛 아래 카드게임을 하는 가족, 허물어진 집을 지키고 있는 개 등 처참한 상황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과 생명체들을 담은 사진들을 통해 김씨는 생명과 삶이 전쟁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미국 9.11테러 현장, 레바논-이스라엘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가자지구 분쟁 등 전세계 분쟁과 전쟁 현장을 30여 년 동안 담아왔다. 해외에선 '키쉬 김(Kish Kim)으로 알려졌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했던 도시 프랑스 아를에선 매년 세계적인 사진 축제 ‘아를국제사진전’이 열린다. 2019년 행사에서 임안나가 포토 폴리오 리뷰 대상을 받았다. 한국인으론 처음이었다. 이때 수상작이 ‘불안의 리허설’(사진)이다. 공원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과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방송 장비를 연출해 찍은 장면이다. 지구 한편에선 재난과 전쟁이 계속되고, 다른 한쪽에선 무심히 그것을 생중계로 바라보는 이 시대의 아이러니를 연극의 한 장면처럼 표현한 것이었다. 임씨는 2010년께부터 무기를 등장시키고 재난 상황을 만들어 담아왔다. 처음 화제를 모은 건 2011년 ‘로맨틱 솔저’ 연작이다. 케이크, 치즈 등 일상의 사물과 장난감 병정들을 함께 찍어 현대인의 삶에 침투한 전쟁과 폭력을 드러냈다. ‘클라이맥스의 재구성’(2011년)에선 탱크, 전투기 등과 방송조명을 함께 찍었다. ‘프로즌 오브제’(2015년)에선 우아한 박물관에 무기와 미술품이 나란히 전시된 장면을 구현했다. 입으론 평화를 외치면서도, 전쟁 영화와 폭력게임을 즐기고, 무기에 열광하는 이 시대를 풍자한 작품들이다. 오는 7월 3일부터 아를에선 팬데믹으로 미뤄졌던 임씨의 수상기념전이 열린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만 레이(1890~1976)는 초현실주의 사진의 선구자다. 입체주의 회화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카메라와 필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사진이란 매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1921년 미국에서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그는 독특한 패션과 광고 사진으로 주목받았고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운동에 빠져들었다. 인화지에 피사체를 올려놓고 빛을 비춰 이미지를 얻는 ‘레이요그램’, 사진의 명암을 반전시킨 ‘솔라리제이션’ 등의 방식으로 세상에 없던 작품들을 쏟아냈다. 그는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난 작가였다. 1924년 여인의 뒤태를 찍은 사진에 바이올린 울림구멍(f홀)을 그린 ‘앵그르의 바이올린’은 세계인을 매혹했고 지난해 사진 거래 역사상 최고가에 낙찰됐다. 무려 1241만달러였다.그가 파리에 살며 찍은 인물 사진을 따로 모은 사진전이 최근 뉴욕 디도나갤러리에서 개막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메레 오펜하임의 초상’(사진)이다. 레이는 1933년 어린 나이에 전위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던 오펜하임의 몸에 잉크칠을 하고 인쇄기 뒤에 세워 사진을 찍었다. 인물, 기계, 그림자, 잉크칠 등 현실의 사물로 환상적 분위기를 극대화한 초상 사진이었다.신경훈 기자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한국 사찰의 풍경을 담은 유병용 초대전 '절로 절로 저절로'가 10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법련사 불일미술관에서 개막한다. 작가가 지난 10여 년 동안 전국 200여 곳의 사찰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 가운데 추린 100여 점을 16일까지 선보인다. 이번 전시작들은 사찰과 주변의 풍경 그리고 승려들의 일상을 찍은 사진들이다. 꽃 속에 휴식을 취하는 와불, 봄 꽃이 피어난 산길을 따라 걷는 두 노스님의 뒷모습, 커다란 바위와 하늘과 무심히 먼 곳을 응시하는 승려 등 그의 작품들은 조형적 완성도와 함께 고뇌와 번민, 깨달음을 향한 간절함을 간결한 구도로 보여준다. 여러해 동안 전국 곳곳에 흩어져있는 사찰들을 찾아다닌 작가의 지치지 않는 의지, 피사체를 구성하는 조형감각, 상상력을 자극하는 함축적 메시지가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석불사 주지 경륜 스님은 유씨의 작품에 대해 "시인이 쓴 시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가수의 노래보다 더 심금을 울려주는 소리를 들려준다"고 말했다. 유병용은 "사진은 아무도 볼 수 없었던 것을 누구라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며 "이 절 저 절 다니며 마주했던 여러 얘기를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공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1988년부터 18 차례의 개인전을 열고 6권의 사진집을 낸 중견 사진가인 유씨는 ‘웅산’(雄山)이란 수계명을 받은 불자이기도 하다. 2017년 석불사 은적당(隱寂堂) 법운 큰스님의 입적부터 49재까지 모든 과정을 촬영해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
섬광이 도시 하늘을 뒤덮었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듯한 이 장면은 한국 아방가르드 사진의 선구자 황규태(1938~)가 1969년 찍은 ‘불타는 도시’ 연작의 하나다. 촬영한 필름을 불에 그을려 얻은 효과인데, 당시 한국에선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작업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일간지 사진기자로 일하면서도 사진 합성, 다중노출 등 다채로운 기법을 쓴 작품을 선보였다. 이런 실험 정신은 1990년대 디지털 사진이 등장한 뒤 물 만난 고기처럼 왕성해졌다. 파일을 확대하면 결국 남게 되는 픽셀들을 재조직한 ‘픽셀’ 연작을 탄생시켰다. 사진을 구성하는 단위들을 순수한 심미적 요소로 변화시킨 시도였다. 그 작품들에 대해 “사진이냐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작가는 그런 구분에 의미를 두지 않았고 아직도 새로운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활동 60년을 기념해 최근 충남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황규태 : 다양다색 60년’ 전이 개막해 10월 8일까지 이어진다. 경기 성남 아트스페이스J에서도 작가와 후배 사진가들이 함께하는 전시 ‘황규태와 친구들’(5월 11일~6월 27일)이 열린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사진의 개념을 뒤집는 사진'을 추구하는 사진가 집단 PPG (Post Photo Group)의 2023년 정기전 '이미지(IMAGE)들의 사유(思惟), 동시대 사진전'이 3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개막한다. 김유선, 김현숙, 이동숙, 이복희, 정인수 등 26명의 사진가들이 참가해 지난 1년 동안 시도해온 '사진을 넘어서기 위한 탐험'의 결과물 80여 점을 전시한다. PPG는 '반 사진운동(Anti-Photo)', '사진 이후의 사진(After-Photo)', '현재의 사진을 뛰어넘는 사진(Trans-Photo)' 등을 추구한다는 깃발아래 지난 2017년 사진평론가 최건수씨의 주도로 시작돼 매년 전시를 열어왔다. 김유선 PPG 회장은 “ 사실적 재현이 사진의 힘이라는 믿음을 넘어서, 사진에 창작성과 유일성을 부여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참가자 각자가 고유의 작업 방식과 주제의식으로 '1인 1파 주의'를 지향하는 PPG는 이번에도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자연에서 취한 색을 디지털작업으로 재구성해 추상적 이미지를 보여주거나, 다양한 형태의 오브제를 뒤섞어 형상을 만들어 촬영하는 등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작업 방식이 눈길을 끈다. 참여 작가인 사진가 이동숙은 "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참여 작가 각자의 영감과 사유에서 나온 작품이라 서로 닮지 않았지만, 전혀 다른 표현방식을 보고 대화하면서, 참가한 작가들이 함께 성장해 나간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제2관에서 오는 5월9일까지 열린다. 신경훈 디자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
고택, 종가, 서원 등 한국의 옛 문화의 원형을 주제로 사진작업을 이어온 이동춘의 사진전 '경치를 빌리다'가 25일 서울 삼청동 류가헌에서 개막했다. 집의 창과 문을 액자처럼 활용하여 밖의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한옥 건축미학의 절정으로 꼽히는 ‘차경(借景)’이다. 차경은 ‘경치를 빌린다’는 의미다. 자연을 건축의 일부로 편입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빌려서 즐긴다는 것으로, 자연과 건축에 대한 한국적 철학이 담겨있다. 시시각각 변하고 계절에 따라 바뀌는 '차경'은 한옥이 제 안에 걸어둔 ‘살아있는 풍경화’다. 이동춘의 이번 전시는 한옥에 담긴 이런 풍경들만을 담은 것이다. 흰 창호지를 바른 문 한쪽에서 푸른 그늘을 드리운 설월당 앞 느티나무, 배롱나무꽃으로 진분홍 물이 든 병산서원의 들어열개문,펄펄 눈발이 날리는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의 사랑채 등 소박한 정취에서부터 빼어난 절경까지, 우리나라 곳곳의 오래된 고택들에서 담은 ‘차경’ 40여 점을 5월14일까지 선보인다. 이씨의 작품 속 우리의 전통 가옥들은 자연의 일부처럼, 주변의 풍경과 부드럽게 이어진다. 한옥에 한국인의 정서가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작들은 국가무형문화재 117호 한지장 김삼식 장인이 직접 만든 ‘문경한지’에 인화했다. 루브르박물관 복원지로 사용되는 문경한지 중에서도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맞춤한지를 사용했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
커튼처럼 벗겨지는 건물 표면 뒤로 또 다른 집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불 켜진 창과 집 앞 가로등 위로 구름이 떠 있다. 이 모든 것의 주변으로 또다시 하늘과 건물과 가로등이 펼쳐졌다. 사진가 한성필이 공사 중인 건물을 둘러싼 가림막과 그 주변을 함께 찍은 ‘파사드’ 연작의 하나인 ‘마그리트의 불빛’(사진)이다. 2000년대 시작한 이 연작은 그림 안과 밖의 사물이 뒤섞여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보였고, 국내외에서 호평받았다.작가는 2010년대 들어 프랑스의 원자력 발전소가 뿜어내는 수증기를 담은 ‘지상 구름’을 발표했다. 초원에서 흰 구름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듯하게 찍은 그 사진은 분명한 현실인데 비현실적으로 보였고, 인생과 사회의 아이러니를 은유하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한씨의 시선은 요즘 극지로 이동했다. 북극과 남극 등지에서 빙하가 줄어 날카롭게 드러난 바위, 만년설과 인류의 개발 흔적 등을 포착해 현실로 다가온 기후변화의 문제를 보여준다. 한씨의 작품들이 올해 해외에서 연이어 초대받고 있다. 최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전시를 시작했고 오는 7월 영국 사치갤러리에서, 9월 중국 충칭에서 초대전이 열린다.신경훈 기자
사진가 김은정의 개인전 '원평관조(元坪觀照)'가 서울 인사동 갤러리강호에서 17일 개막했다. 김씨가 지난 5년 여 동안 재개발이라는 급격한 변화의 와중에 있는 구미의 옛 도심 지역인 원평동에 남아있는 산업화 이전 시대의 풍경과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작품 39점이 23일까지 전시된다. '원평관조'는 격변의 한가운데, '보존지역'으로 남게된 원평시장 일대에서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담은 장면들이다. 김씨는 대도시에선 만날 수 없는 한국인의 온정과 삶의 향기를 포착해 보여준다. 또한 철거 현장을 담은 사진들을 통해, 사라져가는 한 시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시장 상인들의 정겨운 모습, 낡은 저울과 달력, 자전거포 주인의 푸근한 웃음, 금간 벽 아래서 일하고 있는 고물상 아저씨 등을 담은 김씨의 작품들에선 1980년대 이전 한국인의 삶과 정서가 듬뿍 묻어난다. 김씨의 사진들은 그 시대를 살았던 중장년에겐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그 시대를 모르는 청년 세대에게도 '소박한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전시 기획자 원춘호씨는 "'원평관조' 연작은 작가가 원평동 지역 주민들과 오랜 시간 교감을 통해 담아낸 장면들이라서 '진정성' 담겨있고, 그래서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김씨는 "지난 5년 동안 사진작업을 통해, 사라지는 것들의 귀중함을 깨달았다"며 "탄생과 소멸 사이의 모든 순간들에서 의미를 발견했고, 인생을 배우게 됐다"고 말한다. 김씨의 원평동 주제 사진전은 지난 2021년 3월과 4월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
짙은 안개에 휩싸인 숲속, 한 소년이 바위 꼭대기에 올라서 있다. 맨발의 소년은 안개 너머 어딘가를 응시한다. 네덜란드 사진가 에르빈 올라프(1959~)의 새 연작 ‘임 발트(Im Wald)’의 하나로, 문명사회를 벗어나 거대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소망을 표현했다.올라프는 다양한 사람을 작품에 등장시킨다. 그는 인물의 표정과 상황을 정교하게 연출해 현대인의 고민을 드러냈다. 색채와 빛 그리고 인물의 동작이 완벽하게 조화된 그의 사진은 긴 이야기를 압축해 놓은 듯해 감상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비탄’(2007) ‘기다림’(2014) 등의 연작에서 인간의 외로움과 갈등을, ‘호텔’(2011) 연작에선 방에 홀로 있는 여인의 모습으로 인간 소외의 문제를 보여줬다.여러 연령의 인물을 등장시켜 역사적 장소에서 촬영한 ‘베를린’(2012) 연작은 바로크 회화 작품처럼 강렬하다. 올라프는 지난달 예술에 대한 공로로 네덜란드 왕실훈장을 받았다. 활동 35주년을 맞은 올라프는 12일부터 서울 삼성동 코엑스 화랑미술제에서, 5월 3일부터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그의 신작을 선보인다.신경훈 기자
막내를 업고 가던 소녀와 동생들은 셔터 소리에 큰 웃음을 터뜨렸다. 어린 동생은 카메라가 궁금한 듯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렌즈를 바라본다. ‘골목 사진가’ 김기찬(1938~2005)이 1976년 서울 중림동에서 찍은 장면(사진)이다. 김기찬은 1968년부터 30여 년 동안 서울 중림동, 행촌동 등의 골목길 풍경을 흑백으로 담았다. 이 동네들은 허름한 주택이 좁은 골목으로 연결된, 서울의 대표적 서민 주거지였다.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보통 ‘가난’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김기찬은 달랐다. 강아지를 아이처럼 등에 업은 소녀, 트럼펫을 부는 아버지와 그 곁에서 손가락으로 귀를 막고 있는 어린 아들, 낡은 칠판 앞에서 동네 아이들에게 덧셈을 가르치는 소녀 등 보는 사람이 미소를 짓게 하는 사진을 찍었다. 풍요롭진 않지만 행복과 사랑을 나누려고 했던 골목 안 사람들을 담은 그의 작품은 보는 사람을 뭉클하게 한다.김기찬이 남긴 여섯 권의 사진집과 1만여 장의 사진 가운데 대표작을 추린 <골목안 풍경>이 최근 출간됐다. 또한 서울 관훈동 갤러리인덱스가 그중 30점으로 사진전을 시작했다. 작가 사후 갤러리에서 열리는 첫 전시로 4월 3일까지다.신경훈 기자
호수 가운데 작은 나무가 불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밤과 낮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은 이곳은 신비한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이정록의 ‘생명나무’ 연작의 하나다. 컴퓨터 그래픽처럼 보이지만 순수한 사진이다.1990년대 후반부터 신화적 이야기를 표현하기 시작한 작가는 2000년대 중반 ‘생명나무’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어두운 바다, 숲, 들녘 등에 나무를 설치한 뒤 피사체 주변에 작은 불빛을 연속 터뜨리며 이 과정을 긴 노출로 촬영했다. 그 결과물은 신기했다. 작은 불빛으로 둘러싸인 나무가 나타난 것이다. 이어 작가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황량한 벌판 위를 둥둥 떠다니는 불빛을 담은 ‘더 웨이’, 아이슬란드 화산섬을 배경으로 찍은 ‘에너지의 기원’ 시리즈로 작품 영역을 넓혀나갔다.이씨의 작품은 2017년 세계 3대 예술경매인 영국 필립스옥션에서 추정 가격의 3.6배에 낙찰되는 등 세계 시장에서 호응을 얻었다. 홍콩의 한 다국적 체인 호텔은 2021년 객실 전체에 그의 작품을 걸어 화제가 됐다. 활동 25년을 맞아 그는 3월부터 제주, 서울, 부산, 헝가리 등지에서 연이어 전시회를 연다.신경훈 기자
지난해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고래가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이 해결책을 떠올릴 때마다 고래가 등장했다. 주인공이 사무실에 걸린 거대한 고래 사진 앞에서 감동을 받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그 사진이 국내에서 유일한 ‘고래 사진가’ 장남원의 작품이다.일간지 사진기자였던 그는 1990년대 초 일본 오키나와에서 고래를 한 번 촬영한 뒤 심장이 두근거렸다. 작가는 고래 찍는 일을 일생의 작업으로 정하고 남태평양 통가 앞바다로 떠났다. 매년 남극의 혹등고래들이 새끼를 낳기 위해 모이는 곳이었다.혹등고래는 민감한 동물이라 공기통 없이 맨몸으로 물에 들어가야 했다. 숨을 참을 수 있는 1~2분 동안 작가는 고래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담아나갔다. 고래가 수면으로 치솟아 오르거나 바닷속에서 유영하는 모습 등 그가 찍은 사진들은 자연과 생명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작가는 고래를 찍은 지 30년이 되는 해를 맞아 올해 초 경기 남양주에 ‘장남원갤러리’를 열고 작품들을 상설 전시하기 시작했다.신경훈 기자
인간은 모든 사물과 사실을 손쉽게 규정한다. 대상에 이름이나 형용사를 붙여 일반화시킨다. 그런데 그 이름이나 형용사가 진정 그 대상의 본질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신이호는 서울 연남동 화인페이퍼 갤러리에서 개막한 개인전 '보이스 유어 워드(voice your word)'에서 사진과 설치 등의 작업을 통해, 겉으로 드러난 것과 진실 혹은 사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보여준다. 또한 오브제를 찍은 사진이나 설치물로 작가의 세상과 삶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한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마주치는 첫 번째 벽면에 작품 세 개가 세로로 걸려있다. 투명한 사각기둥들 위에 둥글고 푸른 뚜껑이 얹혀 있는 형상의 작품 '메이크 어 위시(make a wish)' 연작이다. 제단이나 고인돌 또는 탑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들은 관람객들을 다소 당혹스럽게 한다. 그런데 작품 제목의 뜻을 보면, 어슴푸레 작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소망을 빌어 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돌과 같은 사물을 쌓으며 소망이 이뤄지길 기원한다. 제사를 지내거나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도 커다란 돌을 사용한다. 작가는 사물들로 이런 형상을 구현해 사진으로 담았다. 작가의 개인적 소망, 예술가로서의 열망,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작품이다. 흰 바탕 위 종이로 접은 비둘기를 찍은 사진과 종이비둘기를 펼쳐 탁본을 뜬 것을 함께 보여주는 '해브 유 에버 위시트(have you ever wished)' 연작은 작가의 삶에 대한 사유의 흔적과도 같다. 종이비둘기와 그 종이를 펼쳐 탁본을 뜬 결과물은 본질적으로 같은 사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는 새라고 부르고, 또 하나는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한다. 아무리 영리하고
마이클 케나의 사진 앞에 서면 생각을 잠시 멈추게 된다. 텅 빈 하늘과 나무 한 그루, 물안개와 흐릿한 하늘 사이의 숲. 지극히 단순한 구도의 흑백 풍경들은 동양의 수묵화를 연상시킨다. 그가 담은 대상은 또한 현실과 비현실의 중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가 없는 시간, 긴 노출로 피사체를 찍어서 그렇다. 그의 렌즈를 통하면 작고 외로운 사물이 빛도 그림자도 없는 신비한 세계의 주인공으로 변신한다.케나는 동서양을 오가며 이렇게 관람자에게 명상의 시간을 주는 듯한 풍경 사진들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2011년 강원 삼척의 소나무 군락지를 찍은 ‘솔섬’ 등의 작품으로 한국에서 ‘철학자의 나무’ 연작을 선보였다. 그의 사진으로 외딴 소나무 섬이 단번에 세계적 명소로 거듭나기도 했다. 풍경 사진 외에도 케나는 아시아의 사찰과 불상을 주제로 작품을 발표했다. 그래서 작가는 영국 출신이지만 동양적 감수성을 깊이 간직한 예술가로 평가받는다.올해는 케나가 활동을 시작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한 사진전 ‘철학자의 나무II’가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25일까지 열린다.신경훈 기자
한국사진작가협회(이사장 김양평)는 7일 제61회 한국사진문화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작품상은 '시선'의 이호근, 출판상은 '삼각산의 요새 북한산성'(사진)의 이재용 등 8명, 공로상은 박광린 등 4명, 지회지부 발전공로상은 양평지부 등 7개 지부, 우수회원상은 박순정 등 24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국사진문화상은 사진예술발전에 헌신한 작가 및 단체의 업적을 기리고 알리기 위해 마련된 상이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
구본창이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980년대 후반, 국내에서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는 매체’일 뿐이었다. 예술의 범주에 사진을 넣는 이는 거의 없었다. 구본창은 여기에 도전했다. 인화지 여러 장을 실로 연결해 인체를 표현한 ‘태초에’ 연작(사진)으로 번민과 갈등에 짓눌린 인간의 모습을 표현했다. 그때까지 국내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이었다. 이어 내놓은 ‘숨’ 시리즈도 그랬다. 포르말린 액에 잠긴 물고기나 박제된 새 등을 통해 구본창은 삶과 죽음을 그렸다. 이후 구본창이란 이름 뒤에는 ‘한국 사진 예술의 문을 활짝 연 작가’란 설명이 붙었다.구본창은 1998년 ‘탈’ 연작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사진예술로 승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선 백자에 포커스를 맞췄다. 절제된 빛으로 촬영한 구본창의 백자는 신비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그의 작품들은 달항아리의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최근 새 단장을 마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립미술관이 재개관 기념작으로 구본창의 백자 연작을 택했다. 다음달 말까지 전시한다.신경훈 기자
사진의 본질은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것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을까? 사진가 이현아는 내면에 숨어있는 욕망과 상처를 사진으로 담아냈다. 마네킹, 블라우스, 치마, 모자, 꽃, 냄비 등 보통의 여성들과 관련 있는 사물들을 재구성해, 여성으로 또한 한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며 숨기고 억눌러야 했던 욕망과 상처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사진전 '내안의 id(이드)'가 서울 경운동 갤러리 강호에서 7일까지 열린다.이씨의 작품들은 오브제들을 연출해 촬영한 소위 '개념사진(conceptual photography)', '메이킹 포토(making photo)'다. 작가는 마네킹과 여러 사물을 조합해 섬뜩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플라스틱 상자 안에 마네킨의 머리와 두 손이 담겨있거나, 풀어 헤친 머리카락 사이로 마네킨의 눈에서 흘러내린 검은 눈물 자국 등 강렬한 연출을 통해 사회적 구조와 통념 아래 억눌러야 했던 자아를 표현했다. 또한, 꽃무늬 치마와 노란 카디건을 입고 머리에 비닐봉지를 쓰고 있는 마네킹을 통해, 순종적이고 어여쁜 여성상을 강요당했던 상황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때론 도발적 장면으로 작가의 억눌린 욕망을 보여준다.작가는 "내면에 저장해 두었던 본능을 솔직하고 과감하게 표출하고 형상화 했다"며 "이 작업은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자아를 확립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마네킹을 사진작품에 처음 등장시킨 것은 1970년대 프랑스의 베르나르 포콩이었다. 마네킹들로 청소년 시절의 추억과 경험을 재구성해 촬영한 포콩의 사진은 동화적이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극대화시켰다. 이씨도 포콩의 개념사진의 계보를 잇고 있다. 그런데 그의 연작에
햇빛이 눈부신 날, 프리다 칼로가 풀밭에 누웠다. 간지러운 햇살에 칼로의 길게 이어진 짙은 눈썹 아래로 옅은 미소가 번졌다.콜롬비아 출신 사진가 겸 화가 레오 마티스가 1941년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를 찍은 작품 ‘태양 아래 프리다’다. 마티스는 고통 속에서 평화를 갈구했던 칼로의 마음을 이렇게 담아냈다. 작가는 당시 멕시코 유명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을 촬영했다. 시대의 아이콘이던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부부의 일상은 그 자체로 뉴스이자 작품이었다. 강렬한 인상, 리베라와의 두 번의 결혼, 32번의 수술, 내면을 반영한 파격적 자화상. 칼로의 작품과 삶은 대중과 다른 예술가들을 매료시켰다. 패션잡지 보그에 등장했고,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그를 카메라에 담았다.영국의 록밴드 콜드플레이는 칼로의 마지막 작품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와 같은 제목의 노래를 발표했다. 슬픈 자화상이 아닌, 타인이 찍은 칼로의 사진들은 서울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문화홀에서 내년 3월 26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신경훈 기자
짙푸른 잎이 무성한 숲. 흰 고드름과 얼음덩어리가 나무와 뒤엉켰다. 날카롭게 자라난 고드름의 끝단이 평온한 숲을 위협한다. 이 비현실적인 장면은 사진가 원성원이 사진을 이어붙이는 포토몽타주 작업으로 완성한 ‘모두의 빙점’ 연작 가운데 하나인 ‘의지를 가진 나무’다.그는 직접 촬영한 수천 장의 사진을 정교하게 맞춰 실제처럼 보이지만 현실에 없는 세계를 창작해왔다. 이번 연작에선 녹음이 우거진 여름 숲을 얼음이 침범하고 있는 장면들을 보여준다.사람들이 수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열등감’을 여름 숲의 얼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거대한 ‘무한경쟁의 쳇바퀴’ 속에서 살아간다.사람들은 성적, 외모, 직업, 소득, 거주지역 등 삶의 세세한 부분을 비교하고 등수를 매긴다. 그래서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사람조차도 열등감에 시달리며 살아간다.세월과 함께 쌓인 열등감은 너무 두꺼워 한여름에도 녹지 않는다. 원씨의 작품들은 2023년 1월 29일까지 서울 삼청동 뮤지엄한미 삼청별관에서 전시된다.신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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