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만들자”고 뜻을 세웠지만,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에겐 조선소를 지을 돈이 없었다. 1971년 차관 도입을 위해 찾은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은 단칼에 거절했다. 정 회장은 굴하지 않고 선박 컨설팅사인 애플도어의 찰스 롱바텀 회장을 만났다. 고개를 가로젓는 그에게 정 회장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권을 보여주며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을 앞서 철갑선을 만들었소. 한번 시작하면 잠재력이 분출될 것이요”라고 설득했다. 결국 롱바텀 회장의 추천으로 차관을 얻을 수 있었다.충무공 덕을 톡톡히 본 K조선의 시작이다. 정 회장의 장담대로 그 후 K조선은 잠재력을 분출하며 세계시장을 호령했다. 중국의 물량 공세 속에 올해 1분기에는 세계 1위 자리를 되찾기도 했다. 세계 조선소 1~3위도 우리 기업(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이 차지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꺼낸 말은 뜻밖에도 조선업과 군함 건조·수리 협력 요청이었다. 한국과의 현안이라고 보좌진이 챙겨줬을 수도 있고, 고(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의 인연으로 1998년 대우 옥포조선소를 방문했을 때 깊은 인상을 받은 영향일 수도 있다. 세계 최강 해군을 보유한 미국이 K조선에 ‘SOS’를 친 건 기분 좋은 일이다.군함 건조 사업이 들어가는 품에 비해 남는 게 별로 없다고 하지만, 지난해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한화오션을 출범시키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 성장과 함께 방산에 강점이 있는 한화가 힘을 쏟자 현대중공업도 맞불을 놓는 모양새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에 이어 해외 잠수함 사업 수주를 놓고 양사가 ‘혈투
한때 중국이 ‘승천하는 용’이었다면 지금은 인도가 ‘질주하는 코끼리’로 세계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세계 1위 인구 대국(약 14억4000만 명)에 오른 인도는 경제 대국으로서의 위상도 급상승 중이다. 2021년은 인도에 특별한 해였다. 식민 지배국 영국을 누르고 국내총생산(GDP) 세계 5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독립한 지 74년 만의 일이다. 3년 뒤엔 독일과 일본을 제치고 세계 3위에 오를 것이라는 게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이다. 2037년에는 중국마저 추월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호주의 싱크탱크 로이연구소가 지난 9월 발표한 아시아·태평양 국가 ‘파워 인덱스’에선 처음으로 일본을 제쳤다. 인도는 구매력을 포함한 경제력과 미래 자산 등에서 약진했다. 올 4~9월 인도의 승용차 판매는 208만 대를 넘어 역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중산층 확대에 따른 소비 증가가 성장의 원동력임을 보여준다. 매년 7%가 넘는 성장률은 물론 증시의 우상향도 꺾일 줄 모른다.인도 경제의 약진 뒤에는 ‘인도판 대처리즘’이라고 불리는 모디노믹스가 있다. 2014년부터 인도를 이끄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경제정책이다. 외국인 투자를 통한 인프라 확충과 제조업 육성, 일자리 창출이 핵심이다. 올해 3연임에도 성공해 5년 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물론 잘나가는 인도 경제에도 아킬레스건은 있다. 정보기술(IT)·금융 등이 성장을 이끌다 보니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있다. 생산가능인구는 가장 많은데 제조업 수출은 세계 19위에 그친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비판과 함께 강성 노조도 넘어야 할 벽이다. 삼성전자 가전 공장은 최근 한 달 넘게 지속된 파
“인간은 석유와 비교도 되지 않는 중요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자원이다. 석유는 한 번 쓰면 없어지지만, 인간의 능력은 사용할수록 향상되고 가치가 커진다.”인재를 키우는 데 진심이었던 SK그룹(당시는 선경)의 선대 회장인 최종현 회장의 지론이다. 최 회장은 취임 첫해인 1973년 광고주를 못 구한 MBC ‘장학퀴즈’ 후원을 결정했다. “청소년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라면 조건 없이 돕겠다”는 뜻이 51년째 이어지는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 중간에 방송사가 MBC에서 EBS로 바뀌는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시청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이듬해인 1974년엔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100년을 내다보고 선경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인재를 키우겠다는 의지였다. 재단 이름에 회사를 드러내지 말라고도 했다. 해외 유학이 하늘의 별 따기였던 인문사회 계열 인재를 선발해 철저한 사전 교육과 함께 파격적인 유학비용과 생활비를 지원했다. 당시 강남의 소형 아파트가 400만원대였는데 연 500만원을 보내줬다. 기업 규모가 지금처럼 큰 것도 아니고 오일 쇼크로 모두가 어려운 때였다. 자기 회사를 이끌 인재도 아닌데 아무 조건 없이 거액을 들이니 임원들이 싫어했을 법하다. 그래서 그는 사재인 남산의 건물과 토지를 내놨다. 그리고 오지의 민둥산을 사서 자작나무, 흑호두나무 등 경제성이 높은 나무를 심었다. 안정적인 장학금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반세기 동안 나무들은 쉼 없이 자랐고 민둥산은 어느새 울창한 숲이 됐다. 올해 50돌을 맞은 고등교육재단의 장학생 중 박사가 1000명에 달할 만큼 대한민국 인재의 숲도 풍요로워졌다. 지금은
‘공기를 읽지 못 한다(空氣が讀めない)’는 일본어가 있다. 한마디로 분위기 파악을 못 한다는 의미다. 내일이면 일본의 102대 총리가 될 이시바 시게루도 ‘공기를 못 읽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득실이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발언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거침없는 발언으로 국민적 인기는 높지만 자민당 내에서 변변한 자기 편이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오죽하면 그는 이번 당 총재 선거 결선투표를 앞두고 “많은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불쾌하게 했다”며 사과 연설까지 했을까.그래도 효과는 있었던 모양이다.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에 이어 2위에 그친 그는 의원들의 표가 좌우하는 결선에서 짜릿한 뒤집기에 성공했다. 자민당이 야당 시절이던 2012년 총재 선거와 정반대다. 당시 1차 투표를 1위로 통과한 이시바는 결선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역전패당했다. 이후 당 간사장이 돼 정권 탈환에도 성공했지만 아베와는 당내 대척점에 설 정도로 멀어졌다. 4년 전 총재 선거에서도 패배한 이시바는 “자민당에 진짜 위기가 오지 않는 한, 이제 내가 나설 차례는 없다”고 되뇌었다. 지지하던 의원들마저 하나둘 그의 곁을 떠났다. 하지만 비자금 스캔들로 당이 흔들리고 당내 파벌들이 해산하자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고 그는 결국 4전5기에 성공했다.이시바 역시 일본 정치권에서 흔한 세습 정치인이지만 쉽게 재단하기 어려운 복합적 캐릭터다. 과거사 문제에는 전향적이지만 평화 헌법은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시아판 나토’ 창설과 미·일의 대등한 지위를 위해 자위대의 괌 주둔까지 주장한다. 당내
폴란드의 ‘국군의날’은 우리의 광복절과 같은 날인 8월 15일이다. 1920년 폴란드를 침공한 소비에트 러시아군을 ‘비스툴라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전투에서 격파하고 수도 바르샤바를 지켜낸 날을 기념해 1923년 제정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날 바르샤바에선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달라진 풍경이다.2년 연속 눈길을 끈 것은 퍼레이드의 주역이 K방산이라는 점이다. 다연장로켓인 천무의 폴란드 맞춤형 버전인 호마르-K가 가장 먼저 등장했고 K-2 흑표 전차, K-9 자주포 등이 위용을 뽐냈다. 폴란드 영공을 수호할 FA-50 경공격기도 빼놓을 수 없다. K방산이 폴란드 국민의 ‘러시아 공포’를 상당 부분 덜어준 셈이다.세계에 자랑할 만한 이들 K방산 주역들이 다음달 1일 광화문에도 등장한다. 이례적으로 2년 연속 국군의날 퍼레이드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건군 75주년이던 지난해에는 국군의날이 추석 연휴와 겹쳐 9월 26일 시가행진을 했다. 무려 10년 만의 행사가 빗속에서 치러져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였을까. 국방부는 올해 국군의날을 프랑스의 ‘바스티유 데이’(혁명 기념일) 군사 퍼레이드처럼 군과 국민이 화합하는 행사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육군, 해군, 공군이 제각각 다르게 기념하던 날을 10월 1일로 통일한 건 이승만 대통령이다. 유엔군이 38선 돌파를 공식 승인한 10월 2일(1950년)이 국군의날이 될 뻔했는데, 하루 전 육군 3사단(백골부대)이 이미 38선 이북으로 진격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기념일도 하루 앞당겨졌다. 1973년부터 공휴일로 지정됐지만, 경제활동에 차질을 준다는 이유로 1991년 한글날과 함께 ‘빨간날’
2011년 미국의 휴렛팩커드(HP)는 컴퓨터 제조 부문 분리·매각과 소프트웨어 중심 기업으로 전환 방침을 밝혀 정보기술(IT)업계를 놀라게 했다. 영국의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기업인 오토노미를 111억달러에 인수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오토노미는 영국의 몇 안 되는 글로벌 기술 기업을 일군 마이크 린치가 1996년 창업한 회사다. ‘영국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그는 회사 매각으로 돈방석에 앉았지만 긴 법정 싸움의 시작이기도 했다.HP는 인수 1년 만에 오토노미의 기업 가치가 부풀려졌다며 88억달러의 감가상각을 발표하고 린치를 회계부정 혐의로 고소했다. 미국에서 15건의 사기 혐의로 송사에 시달린 그는 올해 6월에서야 무죄 판결을 얻어냈다. 그가 기나긴 소송에서 벗어난 뒤 꺼낸 말은 “내가 좋아하는 일, 혁신으로 돌아가고 싶다”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희망을 이룰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무죄 판결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 동료들과 함께 탄 요트가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앞바다에서 폭풍우로 침몰했기 때문이다. 부인 안제라 바카레스 등 15명이 구조됐지만 린치와 딸을 포함한 6명은 실종됐다.지난해에는 대서양 해저 3800m에 잠든 타이태닉호를 보기 위해 심해 잠수정을 탄 영국의 억만장자 해미시 하딩과 파키스탄 재벌 샤자다 다우드와 그의 아들이 수중 폭발로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모험가였다면 린치의 취미는 모형 철도 만들기와 잉어 키우기다. 아웃도어 취미는 없지만 미국에서 1년이나 가택연금 상태로 재판을 받았던 만큼 지중해를 누비며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최근 기록적으로 높아진 지중해의 수온이 요트를 삼킨 폭풍우를 만들어냈다는
스스로 벌인 침략전쟁 외에는 별다른 외침을 겪은 적 없는 일본은 대신 지진·태풍 등 자연재해를 늘 머리에 이고 산다. 그나마 태풍은 특정 시기에 찾아오는 데다 경로도 나름 예측이 가능하지만, 지진은 그렇지 않다. 크고 작은 지진이 연중행사처럼 발생하는 일본에서 초대형 지진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발밑의 폭탄이다. 지난 1월 1일 새해맞이에 들떴던 일본인들을 놀라게 한 규모 7.6의 이시카와현 노토반도 지진처럼 때를 가리지도 않는다. 불확실하다고 대비를 소홀히 했다간 더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1995년 효고현 고베시 등을 강타한 한신·아와지 대지진(고베 대지진)이 그랬다. 도시와 농촌 지역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규모 7.2인 고베 대지진의 사망자는 6300명이 넘었다. 300여 명이 희생당한 노토반도 지진 사망자의 20배에 달한다. 고베 대지진 사망자의 80%가 집에서 희생됐는데 가구를 고정하는 등 대비가 있었다면 압사를 면할 수도 있었다. 당시 효고현 지사는 “고베에는 대지진이 없다”는 속설에 현혹돼 대비를 충분히 못 했다는 후회를 뒤늦게 글로 남기기도 했다.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지진은 도쿄 바로 밑 땅속이 진원이 되는 ‘수도권 직하 지진’과 혼슈 중부의 시즈오카현에서 규슈의 미야자키현에 이르는 태평양 연안의 난카이(南海) 해곡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하는 ‘서일본 대지진’이다. 난카이 해곡에서 규모 8~9의 대지진이 일어나면 쓰나미 등으로 최대 23만 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추정이 나와 있다. 경제·인명 피해 예상치가 13년 전 동일본 대지진의 10배 이상이다.그제 규슈 미야자키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7의 강진이 ‘지진 열도’
“그는 불타는 로마를 보며 악기를 연주한 (네로 황제와 같은)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일본은행(BOJ) 총재로 임명될 때 이미 낡은 인물이었고 더 낡은 인물이 돼 BOJ를 떠난다.” 1998~2003년 BOJ 총재를 지낸 하야미 마사루가 퇴임 직전 국내외 금융 전문가들에게 받은 평가다. 그는 2000년 8월 “저금리는 좀비기업을 연명시킬 뿐”이라며 기준금리를 올렸다. 정부가 처음으로 ‘의결연기청구권’까지 행사하며 반대했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주창하며 금리 인상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닷컴버블 붕괴와 함께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져들자 불과 6개월 만에 다시 제로 금리로 복귀하며 백기를 들어야 했다.블룸버그의 한 칼럼니스트는 일본의 금리 인상이 부른 글로벌 증시 폭락을 다룬 최근 칼럼에서 “경기 침체를 판단하는 데 ‘삼의 법칙’보다 BOJ가 불필요하게 금리를 올리는 타이밍을 기준 삼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2007년 금리 인상 뒤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BOJ의 책임은 없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론 부적절한 타이밍이었다.지난 3월 BOJ가 17년 만에 금리를 올리며 마이너스 금리 탈출을 선언할 때만 해도 별문제가 없었지만 지난주 2차 금리 인상을 단행한 이후에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엔캐리 트레이드의 뇌관을 건드려서다. 저금리의 엔화를 빌려 미국 빅테크 주식부터 부동산, 신흥국 통화까지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 트레이드의 규모는 5000억달러에서 최대 수조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막대한 자금이 일본의 금리와 엔화 가치가 오르자 서둘러 청산에 나서면서 세계 경제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는 것이다.지
“우리는 역사와 문화의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가는 이 작은 잡지를 펴낸다. 그리하여 상처진 자에게는 붕대와 같은 언어가 될 것이며, 폐를 앓고 있는 자에게는 신선한 초원의 바람 같은 언어가 될 것이며, 역사와 생을 배반하는 자들에겐 창끝 같은 도전의 언어, 불의 언어가 될 것이다.”1972년 10월 월간 ‘문학사상’ 창간호에 실린 고(故) 이어령 선생의 창간사 ‘이들을 위하여’의 일부다. 창간 산파이자 13년간 주간을 맡은 그는 문학사상을 ‘현대문학’ ‘창작과비평’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내 대표 문예지로 키워냈다. 창간호 초판 2만 부가 1주일 만에 다 팔려 다시 찍어야 했던 문학사상은 5년 뒤엔 그해 가장 탁월한 작품을 선정해 수여하는 ‘이상문학상’도 제정했다. 소설 <무진기행>을 쓴 김승옥은 시나리오 작가로 외도 중이었다. 그의 재능을 사랑한 이어령 선생은 고급 호텔에 방을 잡아주고 감시역까지 붙여 작품 집필에 매진하도록 독려했다. 그렇게 탄생한 소설이 1호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서울의 달빛 0장>이다. 그 뒤 오정희, 박완서, 이문열, 한강, 김영하 등 국내 대표 작가들이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문학을 꿈꾸는 많은 신인의 등용문이기도 했다. 신인상을 통해 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 수백 명의 문인을 배출했다.하지만 문학사상은 문학조차도 무거움 대신 가벼움을 좇는 세태의 변화를 이기지 못했다. 한때 1만 명을 넘던 정기구독자가 수백 명으로 쪼그라들어 적자가 쌓였다. 결국 이상문학상을 다른 기업에 넘기고 618호를 끝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 게 지난 4월이다. 이대로 오랜 발자취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나 싶은 순
공직자 재산 공개가 시작된 것은 김영삼 정부 때였다. 차관급 이상 모든 공직자가 자진해서 재산을 공개하도록 했다. 이때 심각한 고민에 빠진 것은 차관급 대우를 받는 고위 법관만 103명인 사법부였다. 입법부, 행정부가 모두 재산 공개를 하는 마당에 사법부만 빠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자산가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법관 중 한 명이라도 투기 혐의자가 나오면 사법부 전체에 대한 불신과 함께 재판의 권위까지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당장 첫 재산 공개 후 김덕주 대법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변호사 시절 본인과 자식 명의로 투기지역인 용인 땅을 매입한 것에 비판 여론이 크게 일었다. 절대농지를 산 지방법원장 한 사람도 뒤를 이었다. 과도한 ‘재테크’로 법복을 벗은 첫 사례다.대법관, 헌법재판관 후보들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기기묘묘한 재테크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2015년엔 한 대법관 후보자가 20억원 가까운 재산을 보유하고도 4000만원이 넘는 무이자 학자금 대출을 받아 ‘학자금 대출 재테크’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법관의 재테크 대상은 전통적으로 예금, 부동산 자산이었다가 요즘은 주식으로 재산을 불린 주(株)테크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10억원 가까운 처가가 운영하는 회사의 주식을 재산 공개 때 누락한 사실이 드러나 낙마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아들 부부를 15개월간 공관에 살게 해 ‘관사 재테크’를 도왔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최근 이숙연 대법관 후보자는 비상장 주식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후보자의 20대 딸이 아버지 돈으로 주식을 사고 다시 아버지에게 되팔아 63배의 차익을 거
배달 음식 하면 중국집 철가방부터 떠올리는 사람과 배달앱을 연상하는 사람으로 세대 구분을 할 수 있겠거니 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전자는 50대 이상, 후자는 40대 이하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앱 결제 순위를 보면 50대도 배달앱 이용이 활발하다.음식점이 직접 배달원을 고용하던 시대에도 점주 입장에서는 배달 비용이 추가로 들었겠지만, 고객에게 돈을 따로 더 받는 일은 없었다. 공짜 배달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소비자가 배달비를 낸 것은 2018년이 처음이다. 경기 부천의 한 치킨집이 배달 한 건당 2000원을 받으면서다. 가파르게 치솟은 최저임금이 결정타가 됐다. 그해 최저임금이 16.38% 올라 시간당 7530원이 된 탓에 도무지 배달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없었던 업주가 배달대행업체에 배달을 맡기면서다. 소비자의 반발에도 그 후 유료 배달은 빠르게 확산했다.코로나19와 1~2인 가구 증가는 배달 음식 시장을 키운 일등 공신이다. 2020년께 이미 시장 규모가 20조원을 넘어섰다. 라이더(오토바이 배달원) 구인난에 한때 ‘배달비 1만원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배(음식값)보다 배꼽(배달비)이 더 큰 게 아니냐는 불만이 많았는데 올 들어 조금 상황이 달라졌다. 2위 배달 플랫폼 업체인 쿠팡이츠가 쏘아 올린 무료 배달 경쟁에 소비자는 부담을 덜었다. 반면 업주들은 제대로 뿔이 났다. 업주가 내야 할 배달비는 그대로인 데다 일부 업체의 중개 수수료까지 오른 탓이다. 가뜩이나 경기 부진에 울고 싶은데 뺨을 때린 격이다.정부가 내년부터 최대 20만 명의 영세 소상공인이 내는 배달비 절반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에 대한 대책은 필요하지만 국민 세
1994년 북한의 최광 인민군 총참모장이 중국 베이징으로 달려갔다. 미국이 영변 핵시설 폭격을 준비하던 때였다. 최광을 만난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은 핵무기 개발 자제를 요구하면서도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말로 북한을 안심시켰다. 중국이 6·25전쟁에 참전하며 내세운 이유도 “입술(북한)이 없으면 이(중국)가 시리고, 문이 무너지면 집이 위험하다”였다. 서로에 대한 전략적 필요성이 큰 양국 관계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6·25전쟁을 통해 혈맹이 된 북한과 중국이지만 늘 순탄치만은 않았다. 정전 이후 1인 절대권력 구축에 나선 김일성은 남로당파·소련파에 이어 친중 연안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1956년 연안파 숙청 직후 마오쩌둥 주석은 중국을 찾은 북한 고위층에게 “당신들 당내에는 공포가 넘쳐흐르고 있다. 한국전쟁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김일성에게) 주의를 준 적이 있다”며 불만과 경고를 전했다. 북한은 때마침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자 그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펼치며 이득을 챙겼지만 문화대혁명으로 다시 중국과 충돌했다. 중국의 홍위병들은 김일성을 ‘비곗덩어리 수정주의자’로 비난하고 북한 주민은 마오를 ‘노망든 늙은이’라고 조롱하는 등 양국 관계가 험악해졌다. 그 뒤에도 한·중 국교 수립, 북한의 핵실험 등 여러 차례 큰 고비가 있었지만 북·중 관계가 파국으로까지 치닫는 일은 없었다. 시진핑 주석이 취임한 뒤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해 김정은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기는 했어도 중국에 북한은 버릴 수 없는 카드였다.수교 75주년을 맞은 올해 양국 관계가 다시 파
1980년 이란의 초대 대통령에 오른 아볼하산 바니사드르는 취임 1년4개월 만에 의회 탄핵으로 물러났다.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란 혁명의 지도자이자 동지인 루홀라 호메이니에게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호메이니의 묵인 아래 벌어진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고문과 학살이 횡행하는 현실이 스탈린 체제와 다를 바 없다고 직격한 바니사드르는 결국 혁명감찰부의 체포령 이후 망명길에 올랐다. 그 뒤를 이은 후임자는 28일 만에 폭탄 테러로 사망했고, 이후 3대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 호메이니에 이어 35년째 라흐바르(이란의 최고지도자)를 맡고 있는 알리 하메네이다.이란은 이슬람 종교기구가 행정부와 의회 등 공화국기구를 감독·통제하는 독특한 통치체제를 갖고 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은 명목상 2인자에 불과하고 라흐바르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최종 결정권을 행사한다. 12인의 헌법수호위원회와 최고지도자를 뽑는 전문가회의, 혁명수비대가 신정(神政)을 뒷받침한다.서방과의 핵 합의 복원, 경제난 해소, 히잡 착용 완화 등을 내건 온건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제14대 이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슬람 원칙파와 ‘1 대 5의 싸움’을 벌인 1차 투표 때만 해도 구색 맞추기용 후보라는 말을 들었던 그는 예선 깜짝 1위에 이어 결선에서도 54.8%를 득표, 45.2%를 얻는 데 그친 사이드 잘릴리를 꺾었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경제난과 억압 사회에 지친 청년들과 중도층을 투표소로 이끌었다.역대 개혁파 대통령이 그러했듯 페제시키안의 한계는 분명하다. 당장 하메네이는 “라이시의 길을 따르라”는 메시지를
영국 총선은 1931년 이후 쭉 목요일에 치르는 것이 관례다. 금요일에는 한잔하기 위해 펍에 가야 하고, 주말에는 교회에 가야 하기 때문에 목요일로 정했다는 설도 있다. 한국처럼 소선거구제다. 하지만 비례대표는 없고 650개 선거구에서 650명의 하원의원을 뽑는다. 의회 해산 전 의석 분포는 보수당이 345석, 노동당 206석, 스코틀랜드(SNP) 국민당 43석, 자유민주당 15석, 기타 41석이었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완성’을 내걸고 치른 2019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압승을 거둔 결과다.하지만 4년 뒤 치러진 이번 총선에서는 노동당이 14년 만에 정권을 탈환할 것이 확실시된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는 노동당이 단일 정당 기준 역대 최대인 431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집권 보수당은 102석에 그쳤다.지난 총선에서 노동당은 자신들의 표밭인 ‘레드 월의 반란’으로 보수당에 참패했다. 지역별 불평등을 줄이겠다는 보수당의 ‘레벨링 업’ 슬로건이 제대로 먹혔다. 노동당의 상징인 붉은 색과 벽을 뜻하는 ‘레드 월’은 영국판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로 리버풀, 맨체스터, 셰필드 등이 포함된 잉글랜드 북·중부 지역을 일컫는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보수당은 지난 4년간 헛발질만 했다. 150만 명에 달하는 실업자를 줄이지도, 고물가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생활고를 개선하지도 못했다. 존슨은 코로나 봉쇄 기간 술자리를 즐기다가 ‘파티 게이트’로 물러났고, ‘제2의 대처’로 기대를 모았던 리즈 트러스는 대책 없이 감세안을 밀어붙이다가 45일짜리 초단명 총리에 그쳤다. 경제 전문가로 실력 발휘가 주목
이달 초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중국 해군 증강 분석’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해군력 증강으로 미국이 함정 수에서 열세에 놓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조선업 강국인 한국, 일본과의 협력으로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CSIS가 공개한 중국 전투함은 234척, 미국은 219척이다. 하지만 이 보고서에선 항공모함이 빠졌다. 한·일의 해군 전력을 더할 필요도 없이 미국이 중국을 압도할 수 있는 이유는 항모의 존재다. 미국은 한 개가 웬만한 국가의 전체 전력에 맞먹는다는 항모 전대를 11개나 운용하고 있다. 최근 3호 항모인 푸젠함을 선보인 중국이지만 여전히 미국엔 비교 불가 열세다.미국의 항모 11개 중 해군 제독의 이름을 딴 니미츠함과 정치인 이름을 붙인 칼빈슨함, 존 C 스테니스함 외에는 모두 역대 대통령의 이름이 붙어 있다. 조지워싱턴함, 에이브러햄링컨함, 시어도어루스벨트함을 제외하면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부터 조지 H W 부시까지 비교적 근래의 대통령 이름을 땄다. 이미 건조를 마치고 내년 인도되는 최신 항모 존 F 케네디함도 있다. 하지만 세 명의 대통령이 빠졌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해군 장교 출신이다. 린든 B 존슨, 리처드 닉슨, 지미 카터가 그들이다. 존슨은 베트남전으로 인기를 잃었고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 중도 사임한 탓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잠수함 근무 경험이 있는 카터는 본인의 희망으로 항모 대신 핵잠수함에 이름을 붙였다.지난 22일 미국 핵항모 루스벨트함이 처음 부산항에 들어왔다. 한·미·일 군사훈련인 ‘프리덤 에지’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그런 루스벨트함을 어제 윤석열
한덕수 국무총리는 윤석열 정부 초대이자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총리라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특허청장, 초대 통상교섭본부장,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맡아 관운을 타고났다는 소리를 듣는 그지만 요즘만큼 힘든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최근 관가에선 물집이 생겨 부르튼 입술로 일하는 한 총리 모습이 화제였다. 이미 사의를 밝힌 터이긴 하지만, 대통령 국정 동력이 약해지면서 내각 총괄의 책임이 더 커진 여파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실제 하루 일정은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분 단위로 쪼개야 할 정도로 빠듯하다. 의료계 집단행동, 경제·사회정책 조율, 북한의 오물풍선 도발, 공직 기강 문제 등 챙겨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입술에 생긴 물집은 스트레스성 피부 괴사라고 한다. 서울대병원과 의사협회의 집단 휴진 결정이 스트레스 지수를 최고치로 끌어올렸다는 후문이다. 한 총리는 그동안 물밑에서 의료계를 설득하는 등 4개월째 의·정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맡아왔다. 환자단체와의 간담회에서 만난 한 환자의 하소연 전화를 받고 한 총리가 직원들에게 메신저로 내용을 공유한 시간이 새벽 3시40분이었다는 일화도 있다.한 총리는 당분간 유임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주변에선 1949년생 고령을 들어 건강과 체력 걱정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요즘 건강 나이로 보면 촘촘한 일정을 소화하지 못할 것도 없다. 지난 18일 오후에는 여당 원내 지도부와 장관들을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으로 초청해 저녁을 함께하며 소통의 시간을 마련했다. 그제는 경기 판교에서 콘텐츠산업진흥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관련 기업들의 기술 시연 참관과 애로 사항을
‘히포크라테스의 통곡’이라는 제목을 단 대자보가 분당서울대병원 곳곳에 내걸렸다.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이 17일부터 집단 휴진을 결의한 데 대해 이 병원 노조가 내건 대자보다. 노조는 “휴진으로 고통받는 이는 예약된 환자와 동료뿐”이라며 “의사제국 총독부의 불법 파업 결의를 규탄한다”는 내용을 대자보에 담았다. 오죽하면 한솥밥 먹는 사람들을 ‘의사제국’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비판할까.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 5개 환자단체가 속한 중증질환연합회는 의사들의 행태가 조직폭력배와 다를 바 없다고 규탄했다. 협회는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와 국민을 혼란에 빠트리고 무정부주의를 주장한 의사 집단을 더는 용서해서는 안 된다”며 대규모 고소·고발을 예고했다.당초 정부를 상대로 의대 증원 반대 투쟁에 나섰던 의사 집단은 사실상 법원 판단으로 내년도 증원이 확정되자 이제는 ‘사태 해결을 위한 정부의 가시적 조치’라는 모호한 구호를 걸고 집단 휴진에 나서는 모습이다. 분명한 목표도, 명분도 없는 분풀이식 투쟁이다. 그 바람에 환자, 병원, 노조뿐만 아니라 초기 정부의 일방통행을 비판하던 시민단체들도 모두 등을 돌리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불법 진료 거부는 정당화될 수 없으며 즉각 철회돼야 한다. (정부는) 불법 행동 가담자에게 선처 없이 엄정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시작된 의료 파행이 오늘로 115일째를 맞는다. 일반 국민과 환자는 물론이고 의사들도 이번 사태가 이렇게까지 장기화할 줄 몰랐을 것이다. 정부가 2000명 증원에서 한발 물러섰을
대도시 출신 50대 이상이라면 국민학생(지금의 초등학생) 시절 이사를 한 것도 아닌데 ‘강제 전학’을 겪어야 했던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옆 동네 학교의 콩나물 교실에서 수업받다가 자신이 사는 동네에 학교가 신설되면 대거 전학을 해야 했다. 1970년대 학교 시설이 학생 수 증가 속도를 쫓아가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지금은 정반대 상황이 됐다. 농어촌뿐만 아니라 대도시까지 덮친 ‘폐교 쓰나미’에 어쩔 수 없이 주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지난해 전국에서 폐교한 초·중·고는 총 29곳인데 그중 서울 등 대도시 학교가 절반을 훌쩍 넘는 17곳이다. 올해는 전국 33개 학교가 문을 닫을 예정인데 지난 3월엔 개교 20년밖에 안 된 도봉고가 서울 일반계 고등학교 중 처음으로 폐교의 운명을 맞았다. 1980년 1440만 명을 넘던 학령인구(6~21세)가 올해 714만 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2072년엔 278만 명으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누구도 학교의 역사가 지속될 거라고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저출생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기대도 어려운 만큼 폐교 문제는 계속해서 우리 사회의 고민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지역소멸 가속화나 학생의 학습권 침해 등 논란도 이어질 것이다. 폐교 활용도 당장 해법이 필요한 문제다. 전국 폐교 3955곳 중 팔리지 않고 지역 교육청이 보유하고 있는 곳이 1346곳에 달한다. 그중 367곳은 매각도 임대도 안 돼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고 한다. 교육·사회복지·귀농지원시설 등으로만 쓸 수 있는 폐교재산 특별법의 엄격한 용도 제한 때문이다.매년 450곳 정도의 폐교가 발생하는 일본은 2010년부터 ‘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 사이의 카리브해는 과거 악명 높은 해적의 무대였지만 보물선의 바다이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난파선이 바닷속에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문화부는 2019년 자국에 소유권이 있다며 681척의 난파선 목록을 작성했다. 이 난파선들은 모두 1492년에서 1898년 사이에 아메리카 대륙 근처에서 침몰한 것들이다. 대부분 스페인 제국이 식민지인 중남미에서 수탈한 금과 은을 가득 실은 보물선이다. 스페인이 여전히 카리브해에서 눈을 떼지 못 하는 이유다.한국에도 보물선의 바다는 있다. 서해의 난파선에선 금·은 대신 청자·백자가 쏟아져 나왔다. 값어치로 따지면 귀금속 못지않은 보물들이다. 금과 관련된 보물선 얘기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개 “금괴를 싣고 가다 침몰한 일본 배의 위치를 안다. 자금을 투자하면 일부를 주겠다”는 식의 사기극으로 끝났다. 2000년엔 보물선 소동이 증시를 흔들기도 했다.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근해에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 얘기다. 돈스코이에 150조원어치 금괴가 실려 있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음에도 동아건설 주가는 침몰 위치 확인 소식만으로 17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돈스코이는 2018년 가짜 암호화폐를 내세운 사기 사건에 다시 등장했다. 있을지 없을지 모를 바닷속 보물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이 재산을 날리고 눈물을 흘렸다.콜롬비아가 300여 년간 카리브해에 잠들어 있던 ‘전설의 보물선’ 산호세호 인양에 나섰다. 1708년 콜롬비아 앞바다에서 영국 함선의 공격에 침몰한 산호세에는 금과 은, 에메랄드 등 200억달러(약 27조2700억원)어치 보물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인양 회사가
어릴 적 어머니가 시장에 가실 채비를 하면 만사 제쳐 놓고 따라나섰다. 같이 가자고 한 적도 없는데 어느새 장바구니까지 챙겨 들고 현관에 서 있는 아들 모습에 어머니는 ‘네 속셈을 다 안다’는 듯 웃곤 하셨다. 시장에 따라가면 얻어먹을 수 있는 군것질거리 중 최고는 반찬용인 사각형 ‘덴푸라’였다.생선 살과 밀가루 등을 배합해 만드는 어묵을 예전엔 덴푸라, 오뎅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덴푸라는 야채, 해산물 등에 튀김옷을 입혀 튀긴 일본 요리다. 오뎅 역시 가마보코와 무, 곤약 등을 국물에 끓여 낸 요리를 말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가마보코가 어묵에 해당하니 덴푸라, 오뎅은 정확한 명칭이 아니었던 셈이다. 해방 후 한글학회에서 ‘생선묵’으로 부르자고 제안했지만 널리 통용되지 못했고 1992년이 돼서야 ‘어묵’이라는 이름을 얻었다.한·중·일 모두 즐기는 어묵은 역사가 긴 음식이다. 중국에선 위완(魚丸)이라고 부르는데 생선을 좋아한 진시황을 위해 가시를 뺀 음식을 만들어 진상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일본에선 헤이안 시대인 1115년 한 권력자의 이사 축하연에 나왔다는 것이 첫 등장 기록이다. 우리의 경우 조선 숙종이 진연(왕실 잔치)에 오른 ‘생선숙편’에 반해 모든 음식상에 빼놓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고 전해진다.수라상에나 오르던 어묵이 6·25 이후엔 때론 반찬으로, 때론 술안주로 서민들의 배를 채워준 고마운 음식이 됐다. 그동안 많은 업체가 명멸했고 지금은 100여 곳이 어묵을 공급하고 있다. 그중 절반 정도가 부산에 있는데 가장 오래된 기업인 삼진식품이 ‘부산 어묵의 원조’ 격이다. 그런 삼진식품이 인도네시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게 신기해서 노래의 대상이던 은사들을 한 분 한 분 생각해 본다. 초·중·고 담임만 따져도 열두 분이다. 자상한 분보다 ‘사랑의 매’를 날린 선생님들이 더 기억에 남고 뵙고 싶기도 하다. 한국이 인재 강국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도 교단의 힘이 컸다. 때론 훈육 차원을 넘는 억울한 체벌도 있었지만 학교 일은 학교에서 끝났다. 요즘 같으면 학생 인권 침해로 큰 소동이 날 일이겠지만 그땐 그랬다.2010년 경기교육청이 처음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했다. 그 이듬해부터 광주·서울·전북이 뒤를 이었고. 충남·제주교육청은 2020년대 들어 조례를 제정했다. 일제와 군사독재 잔재가 남아 있는 학교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진보 진영의 주장이 반영된 학생인권조례 시행 후, 조례가 교권 침해를 부추긴다는 논란이 이어졌다. 지난해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던 서울 서이초 교사의 사망이 불을 붙였다. ‘교권 보호 5법’이 개정됐고 올해엔 충남과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통과시켰다.하지만 선생님들 마음의 상처는 여전한 듯하다. “달라진 게 없다”는 탄식도 들린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설문조사에서 전국 교원 1만1320명 중 19.7%만이 “다시 태어나도 교직을 선택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2016년 52.6%와 비교하면 반토막도 더 났고 역대 첫 10%대의 최저치다. 최근엔 수학능력시험 6등급도 교대에 합격, 교직 인기가 추락했음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과 서초구 반포동을 잇는 잠수교는 한강의 아홉 번째 다리로 1976년 7월 개통됐다. 박정희 대통령도 참석한 당시 개통식 영상을 보면 정말 잠수교가 맞나 싶을 만큼 지금과는 판이하다. 중간이 솟아오른 아치 부분도 없이 평평한 데다 그 위를 덮고 있는 반포대교도 보이지 않는다. 수면 바로 위의 다리엔 난간도 없고 거대한 교각들만 촘촘해 영락없이 군사훈련 때 도강 목적으로 놓는 임시 부교 같은 모습이다.강남 개발과 맞물려 건설된 잠수교는 실제로 군사적인 목적도 있었다. 유사시 군 장비의 신속한 이동을 위해 한강 수면 2.7m 위로 낮게 지었고 교각을 15m 짧은 간격으로 둬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했다. 6년 뒤 개통한 반포대교 아래 숨길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처음엔 골재 채취선 등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크레인으로 중간 15m 구간을 들어올리는 ‘승개교(昇開橋)’였지만 1986년 구조변경 공사를 통해 지금의 아치 형태로 바뀌었다. 잠수교는 여름 장마철엔 서울 시민에게 ‘측우기’ 역할도 했다. 비가 좀 많이 내린다 싶으면 어김없이 잠수교가 통제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한강 수위가 6.5m를 넘으면 물에 잠기는 잠수교는 수위 5.5m 땐 보행자·자전거 통행이 금지되고, 6.2m를 넘으면 차량도 통제된다. 2020년 8월 장마 때는 232시간이라는 역대 최장 ‘잠수 기록’을 세웠다.서울시가 잠수교를 ‘세상에서 가장 긴 미술관’으로 만든다고 한다. 2026년 잠수교를 ‘차 없는 보행 전용 다리’로 바꾸기 위한 설계 공모에서 네덜란드 건축 기업의 제안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잠수교와 반포대교 사이에 분홍색 공중 보행 다리를 건설해 강 쪽으로 돌
미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의사 부족 국가다. 10년 내 최대 12만400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는 게 미국 의과대학협회(AAMC)의 전망이다. 1980년대부터 의대 정원 확대를 억제해 온 탓이다. 당시 미국 보건당국은 의사가 7만여 명 남아돌 것이라는 엉터리 전망을 날렸다. 그 결과 미국 의대들은 25년간 인구가 7000만 명 늘어날 때 정원은 채 1만 명도 늘리지 않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외국 의사 수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테네시주는 지난달부터 해외 의대 졸업생에게 ‘임시 면허증’을 발급, 주 내의 병원에서 2년간 근무하면 정식 면허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의료현장을 떠난 국내 전공의들도 ‘미국 이주’에 관심이 크다고 한다.한국 의사들의 집단 미국행은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도 있었다. 미국 정부의 요청과 전문의 공급 과잉이라는 국내 상황이 맞물려 무려 3500명의 의사가 이민을 택했다. 당시 총 활동 의사의 25%에 달하는 숫자다. 이렇게 의사도 수출한 한국이 이젠 수입하는 나라로 바뀌게 됐다. 이르면 이달 말부터 외국 의사 면허가 있으면 국내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 현재와 같은 ‘보건의료 위기 경보 심각 단계’라는 조건이 있지만 외국 의사의 진입 제한 문턱을 거의 없앴다. “전세기를 동원해서라도 환자를 치료해주겠다”던 보건복지부 차관의 말이 단순 ‘엄포’만은 아니었다는 얘기다.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의 출산율도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고급 인재를 유치하려는 이민 전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그 대상이 의사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말도 안 통하는 외국 의사에게 내 건강과 목숨을 맡겨
“엔화 가치는 현재 최저치에 도달했고 조만간 반전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 엔화에 투자하는 것은 훌륭한 의사결정이라고 본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찾은 ‘미스터 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대장성 차관이 한 말이다. 그는 당시 1달러에 150엔까지 내려간 엔화 가치가 2024년 중반께는 달러당 130엔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그의 전망을 비웃듯 엔화는 지난달 29일 34년 만에 달러당 160엔을 찍는 등 기록적인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일본 정부는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해 5조엔(약 44조원)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일 154엔까지 급락한 엔·달러 환율은 다시 157엔대로 올라 160엔을 재돌파할 기세다. 일부에선 160엔이 뚫리면 165엔, 170엔까지도 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슈퍼 엔저’를 부른 달러 강세가 꺾일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하와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기대가 낮아진 것도 엔화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엔화 가치 반등’에 베팅한 국내 투자자들은 속이 타들어 간다. 엔화 예금 규모는 지난 3월 말 현재 98억달러로 불어난 상태다. 구입 단가 대비 10% 떨어졌다고 가정하면 무려 1조4000억원 가까운 평가손실이 난 것이다. 이들은 100엔당 1000원 선을 마지노선으로 여겨 그 이하에서 공격적 베팅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금 환율은 100엔당 880원 근처로 무너져내렸다. 이른바 ‘물타기’로 베팅 규모를 키운 사람들은 더 큰 손실 위험에 노출돼 있다. 전문가적 식견을 자랑하며 엔화 표시 미국채상장지수펀드(ETF)를 사들인 ‘일학개미’들도 미국 국채금리 상승과 엔저에 두 번 울고 있
유교사상이 지배한 조선시대엔 장남이 모든 재산을 물려받는 장자상속이 당연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선 중기까지 남녀, 서열과 관계없이 균분상속이 일반적이었다. 제사는 형제자매가 돌아가면서 지냈고 제사를 모시는 아들이나 딸에게는 상속분의 20%를 가산해 재산을 물려줬다고 한다. 장자상속이 굳어진 건 조선 후기의 일이다. 물론 균분상속이든 장자상속이든 일종의 관습법으로 행해졌다.아들, 특히 장남에게 유산을 몰아주던 세태 속에서 1977년 민법에 ‘유류분(遺留分) 제도’가 도입됐다. 피상속인은 유언 또는 증여로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지만 상속권을 가진 가족들을 위해 일정액을 남겨둬야 하는 제도다. “내 재산은 모두 장남에게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해도 배우자와 다른 자녀도 유류분 내에서 비율대로 자기 몫의 유산을 받을 수 있다. 재산을 가족 공동 소유로 봐 자식들의 동의 없이는 아버지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었던 고대 게르만과 ‘유언의 자유’를 제한한 로마공화정의 관습이 독일과 프랑스 민법에 반영됐고 다시 우리 민법에도 접목된 것이다.일부 자산가 집안의 일인 줄 알았던 유류분 소송이 지난해에만 2000건을 넘었다. 요구액이 1000억원을 넘는 재벌가의 소송도 있지만 부모와 자식이, 형제자매가 서로 “내 몫을 달라”고 드잡이하는 보통 사람들의 법정 싸움도 그 못지않다. 상속 다툼을 하다 소송까지 가고 결국은 가족의 연을 끊고 산다는 사람도 많다. 갈등 완화를 위해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유류분 제도가 도입 47년 만에 수술대에 올랐다. 헌법재판소가
148년 역사의 미국 프로야구(MLB)에서도 손꼽히는 ‘최악의 오심’은 2010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경기 9회 초 투아웃에 나왔다. 타이거스 투수 아만도 갈라라가는 추신수 등 상대 타자들을 꽁꽁 묶고 역대 21번째 퍼펙트게임에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둔 상황이었다. 마지막 타자는 1루수 땅볼, 아웃이 분명했지만 1루심 짐 조이스의 판정은 세이프였다. 그 후 눈물로 사과한 조이스는 “내가 죽으면 부고 기사 첫 줄에 역대 최악의 오심, 퍼펙트게임을 망친 심판이라는 문장이 쓰일 것”이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14년 MLB엔 비디오 판독이 도입됐다.한국 프로야구에서 비디오 판독이 공식 시행된 건 2017년. 하지만 스트라이크-볼 판정 논란은 여전했다. 주심마다 스트라이크존이 상이한 데다 어떤 심판은 특정 팀에 유리한 판정을 내린다는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 주심의 판정에 때로는 타자가, 때로는 투수가 펄쩍 뛰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이런 모습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로봇 심판’(ABS·자동투구판정시스템)을 도입한 효과다. 지금까지 투구 추적 성공률이 99.9%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로봇이 아닌 사람 심판이 큰 오점을 남겼다.NC와 삼성의 경기에서 ABS가 전달한 스트라이크 콜을 제대로 듣지 못한 주심이 볼로 판정을 내렸다. 문제는 그 후의 대처. 4심 합의 중 “음성은 분명히 볼로 인식했다고 하세요. 우리가 빠져나가려면 그것밖에 없는 거야”라는 심판 조장 발언이 중계 마이크에 고스란히 잡혔다. 은폐·조작 논란이 커지자 KBO는 5일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은 994만 명에 육박한다. 총인구 대비 19.2%다. 초고령사회 진입이 목전이다. 압도적 저출산을 겪고 있는 한국은 고령화 속도로는 단연 세계 1위다. 65세 이상 비중이 30%에 육박하는 ‘노인 대국’ 일본마저 머지않아 따라잡을 기세다.올해 초 개봉한 ‘플랜75’는 초고령사회 일본의 고민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속 플랜75는 정부가 장려하는 조력사(死) 프로그램으로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는 국가가 운영하는 조력사 시설에 들어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더 섬뜩했다. 일본에선 몇 년 전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제목의 책이 출간된 적도 있는데 간병 살인을 다룬 NHK 다큐멘터리를 엮은 것이다. 오래전부터 초고령사회를 대비해 온 일본이지만 고령자 돌봄 문제는 그리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모양이다. 노인홈이라고 불리는 요양시설이 도쿄와 그 주변 지역만 해도 3000곳에 달하지만 시설과 돌봄인력 부족은 마찬가지다.한국에선 노인요양시설을 늘리기 위해 님비(NIMBY·혐오시설 기피)와도 싸워야 한다. 서울 시흥동에선 한 새마을금고가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짓고 있는 노인요양시설이 “집값 떨어진다”는 주변 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송파의 실버케어센터는 아예 무산됐고 여의도 등 재건축 단지에서는 용적률을 더 높여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해도 노인요양시설은 결사반대다. 결국 노인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요양원으로 보내라는 말인데 영화 플랜75의 ‘쓸모없는 노인은 사회의 짐’이라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봉이 김선달은 수천냥을 받고 평양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옛이야기 속 사기꾼이다. 그의 사기행각으로 전해지는 여러 일화 중 대동강 물 사건이 대표적인 건 액수도 액수려니와 조선시대에 공짜 강물을 판다는 발상 자체와 깍쟁이 한양 상인들을 속여 넘긴 기발함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물과 공기도 팔고 사는 시대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상상을 뛰어넘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들을 만나게 된다.1980년부터 데니스 호프라는 미국인이 달의 토지를 팔아 140억원을 벌었다. 유엔 ‘외기권조약’에 따르면 우주의 어떤 것도 특정 국가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지만 개인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항이 없다. 그 허점을 이용한 호프는 샌프란시스코법원에 달에 대한 소유권 취득 소송을 내고 일부 승소했다. 그 후 ‘달 대사관’이란 회사를 차려 달 분양에 나섰고 사업은 대성공을 거뒀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톰 행크스 등 유명인들이 구입자 명단에 대거 이름을 올렸고 국내에선 한 팬클럽이 가수를 위해 축구장 두 개 규모의 달 부동산을 사기도 했다.제주에 이어 강원·전북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김선달의 후예를 자처하고 나섰다. 지자체들은 “햇빛과 바람은 우리 지역 것”이라며 신재생사업자에게 태양광·풍력으로 번 돈의 일부를 내놓으라고 요구할 태세다. 특별법으로 이익 공유를 강제하는 것인데 일부 기초지자체는 그마저도 없이 이미 조례만으로 돈을 걷어가고 있다. 태양광발전 이익의 30%를 징수해 주민들에게 ‘햇빛연금’을 지급하는 신안군의 사례를 놓고 다른 지역에서도 “우리는 왜 그렇게 못 하느냐”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고 한다.물
<사전투표 장소도 전략>올 1월 치러진 대만의 총통 선거를 조금이라도 눈여겨본 사람이라면 한 가지 사실에 놀랐을 듯하다. 대만인들은 투표를 위해 후커우(호적)가 있는 고향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집 근처 투표소를 가거나 사전투표일 이틀 간은 전국 어디서나 투표를 할 수 있는 우리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71.86%라는 투표율을 기록했다. 투표의 편리성을 감안하면 한국의 20대 대통령선거 투표율 77.1% 못지않게 높은 수치다.사전투표가 도입된 건 2013년 4·24 재·보선 때부터다. 그 전에도 부재자투표라는 제도가 있었지만 미리 신고를 해야 하는 등 불편이 컸다. 대의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핵심은 선거다. 그런데 투표율이 낮으면 선출된 권력의 정통성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투표의 편리성을 높여 투표율을 끌어올리자고 도입한 것이 사전투표제다.전국 단위 선거에 처음 적용된 건 2014년 지방선거였다. 당시 사전투표율은 11.49%였다. 그후로 2016년 20대 총선 12.19%, 2017년 대선 26.06%, 2020년 21대 총선 26.69%로 꾸준히 높아졌고 지난 2022년 대선 때는 36.93%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사전투표율이 높으면 진보 측이 유리하다는 것도 옛말이 됐다. 실제로 지난 대선에서는 호남을 제외하면 사전투표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윤석열 대통령의 득표율이 높았다.그래서인지 4·10 총선에선 여야 모두 사전투표를 독려했다. 사전투표율이 높을수록 유리하다는 서로 다른 셈법을 보인 것이다. 사전투표 첫날인 어제 여야 지도부가 투표를 한 장소가 더 눈길을 끌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화여대 앞 신촌동 사전투표소를 선택했다. 윤재옥 원내대표가 수원 광교에서 투
올 1월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를 눈여겨본 사람이라면 한 가지 사실에 놀랐을 듯하다. 투표를 위해 대만인은 후커우(호적)가 있는 고향을 찾아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사전투표일 이틀간은 전국 어디서나 투표할 수 있는 우리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71.86%라는 투표율을 기록했다. 한국의 20대 대통령선거 투표율 77.1% 못지않게 높은 수치다.사전투표를 도입한 것은 2013년 4·24 재·보궐선거 때다. 그 전에도 부재자투표라는 제도가 있었지만 미리 신고해야 하는 등 불편이 컸다. 투표율이 낮으면 선출된 권력의 정통성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투표의 편리성을 높여 투표율을 끌어올리자고 도입한 것이 사전투표제다. 전국 단위 선거에 처음 적용된 건 2014년 지방선거였다. 당시 사전투표율은 11.49%였다. 그 후로 2016년 20대 총선 12.19%, 2017년 대선 26.06%, 2020년 21대 총선 26.69%로 꾸준히 높아졌고 2022년 대선 때는 36.93%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사전투표율이 높으면 진보 측이 유리하다는 것도 옛말이 됐다. 실제로 지난 대선에서는 호남을 제외하면 사전투표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윤석열 대통령의 득표율이 높았다.그래서인지 4·10 총선에선 여야 모두 사전투표를 독려했다. 사전투표율이 높을수록 유리하다는 서로 다른 셈법을 보인 것이다. 사전투표 첫날인 어제 여야 지도부가 투표한 장소가 눈길을 끌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화여대 앞 신촌동 사전투표소를 선택했다. 윤재옥 원내대표가 수원 광교에서 투표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이대생 성상납’ 막말을 정조준했다. 반대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전에서 KAIST 학생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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