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매년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지난해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이 올랐다. 한국의 중장년 세대 중엔 그의 이름은 몰라도 그가 참여·연출한 TV 만화영화를 보고 자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미래소년 코난’ 같은 작품들이다.40대 중반에 스튜디오 지브리를 세워 독립한 미야자키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잇달아 내놓으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모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은 전 세계에 ‘일본 아니메’ 붐을 일으켰고 한국에도 적지 않은 지브리 팬을 만들었다.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주제로 하는 작품이 많은 지브리의 그림은 소박하면서도 따뜻하다. 심지어 악당조차 어리숙하기는 해도 밉지 않다. 인공지능(AI)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런 그림 스타일이 돌연 오픈AI의 챗GPT에 ‘지브리 모멘트’를 선사하고 있다. 지난달 말 GPT-4o와 이미지 생성 기능을 통합한 업데이트 이후 가입자가 폭증했는데, “내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바꿔줘”라는 명령어가 마법의 주문이 됐다. SNS의 프로필 사진 등을 지브리풍 그림으로 교체하는 게 유행한 덕이다.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는 2년여 전 챗GPT 첫 출시 때 가입자 100만 명 확보에 5일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1시간 만에 100만 명 늘었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역시 X의 프로필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바꿨다. 며칠 새 7억 장의 이미지 변환 요구가 쏟아졌다니 “GPU가 녹고 있다”는 올트먼의 얘기가 과장도 아닌 셈이다.하지만 문
오래전 지인이 지방에 병원을 열었다. 근처에 여행 간 김에 들렀더니 진료실에 야전침대가 놓여 있었다. 웬 침대냐고 궁금해하니 24시간 환자를 본다는 얘기였다. 바닷가 특성상 밤에도 다치는 환자가 많아 집에 들어가는 날이 손에 꼽는다고 했다. 힘들 텐데 그게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환자가 돈으로 보이면 가능하다”는 웃음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 욕망이 진심이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지역 사람들의 의료 접근성과 삶의 질은 높아진 셈이다. 적어도 그 시절, 그 지역에서는 애덤 스미스가 설파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최근 TV의 데이트 프로그램에 출연한 의사가 화제가 됐다. 강원 인제의 개원의인 그는 국회의원에 이어 한국은행 총재에게 “헌신에 존경을 표한다”는 찬사를 들었다. 다른 지역으로 옮길 생각은 없느냐는 여성의 질문에 자기가 동네 유일한 의사라 떠날 수 없다고 대답해 감동했다는 사람이 많았다. 지난해에만 2만6000명의 환자를 봤다는 그의 연수입은 5억원 이상이라고 한다.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리면서도 지역을 지킨다는 이유로 칭송을 받는 건, 의사라면 어디서든 그 정도는 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의사의 몸값은 치솟지만,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의사의 욕망을 넘치도록 채워줄 수도, 헌신적인 의사를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없는 지역은 의료 공백을 메울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필수·지역의료를 살리겠다며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중심으로 한 의료개혁 정책을 발표한 지 14개월이 지났다. 의사 수를 늘리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는 정부에 의대 증원은 &ls
내일 저녁 남산의 N서울타워와 일본 도쿄타워가 동시에 점등한다. 서울과 도쿄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에서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축하하는 특별한 행사가 열리는 것이다. 혼돈의 탄핵정국이 아니었다면 좀 더 주목받았을 수도 있을 텐데 안타깝게 됐다.도쿄타워는 1958년, 서울타워는 1975년 완공됐다. 초대형 타워의 건설이 경제·기술력의 한 가늠자라는 측면에서 과거 두 나라의 격차를 짐작할 만하다. 양국이 수교한 1965년 을사년, 서울과 도쿄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고도 경제성장기를 구가하며 올림픽까지 개최한 일본에 비해 4·19와 5·16을 잇달아 겪은 한국은 여전히 가난한 나라였다.왜 하필 을사년(乙巳年)이었을까. 최근 안중근 의사를 그린 영화 ‘하얼빈’을 보고 나서 엉뚱하게 떠올린 의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인 1905년 을사년은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기고 결국 망국의 길을 걷게 된 해다. 안 의사는 을사늑약 이후 가산을 털어 교육 자강과 의병 활동에 나섰다. 그런 을사년에 일본과의 수교라니, 정치적 감각이 없었던 걸까.6·25전쟁 중이던 1951년 이승만 정부의 제안으로 시작된 한·일 회담은 1965년 최종 타결까지 13년8개월이 걸렸다. 이승만은 “지금 40세 이상 된 한국 사람이 모두 죽어야 국교 정상화가 제대로 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회담을 지시하긴 했지만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세대에서는 타결이 어렵다고 본 것이다.하지만 박정희는 십수 년을 더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조국을 잘 살게 하겠다고 목숨을 걸었고 경제개발 계획의 밑그림도 그려놨는데 돈이 없었다. 자금이 나올 곳은 일본뿐이었다.결국 나라가 발칵 뒤집
무명의 트로트 가수로 가난의 설움을 곱씹어야 했던 송대관은 1975년 ‘해뜰날’을 발표하며 그야말로 ‘쨍’하고 떴다. 노래 한 곡으로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 이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수 있었던 건 당시 시대상이 제대로 투영됐기 때문이다. 경쾌한 멜로디도 좋았지만, 특히 가사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서민의 마음을 움직였다.“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송대관이 직접 지은 가사는 기본적으로 삶의 고단함과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함께 담고 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등의 시대적 격문과도 맞닿아 있었다.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우리 경제의 고속성장은 1970년대 들어서며 제동이 걸렸다. 당시 박정희 정부가 한계에 부딪힌 경공업 대신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경제구조 전환에 나선 이유다. 여기에 중동전쟁 발발로 오일쇼크까지 덮쳤다.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린 사람들의 삶도 팍팍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으로도 반(反)유신 운동이 거세진 어려운 시기였다. 좌절과 희망이 혼재된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해뜰날’은 위로인 동시에 격려이기도 했다.노래가 뜬 뒤 송대관은 어머니와 함께 방바닥에 1만원짜리 지폐를 잔뜩 깔고 잤다고 한다. 돈이 없어 아픈 어머니가 제대로 치료를 못 받은 것이 한이 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이 계속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트로트 침체기가 찾아온 탓에 고생하다가 미국으로 떠나 긴 공백이 있었다. 10년 만에 귀국해 잇따라 히트곡을 내며 전성기
‘입틀막’은 원래 ‘남의 입을 틀어막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오히려 놀라움과 감탄 등으로 벌어진 입을 자기 손으로 가리는 행동에 대한 애교 섞인 표현으로 주로 쓰였다. 이 말의 쓰임새가 결정적으로 달라진 건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이 애용하면서다. 진보당 국회의원, 의사단체 회장, KAIST 졸업생이 윤석열 대통령 참석 행사에서 소리를 지르다가 경호원에게 입을 막혀 끌려 나간 사건이 계기가 됐다. 과잉 경호 논란으로 끝날 일이었지만 총선을 앞둔 민주당이 호재를 놓칠 리 없었다.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 ‘입틀막 정권’이라고 맹공을 퍼부었고 ‘불통 정부’라는 낙인을 찍는 데 성공했다.그런데 요즘 들어 공수(攻守)가 바뀌었다. 민주당이 이제는 ‘입틀막 정치’의 당사자로 비판받고 있다. “내란 선동 가짜뉴스를 퍼뜨리면 고발하겠다”는 말로 ‘카톡 계엄’ 논란을 일으키며 카카오톡 사용자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당 지지율이 떨어지자 여론조사 검증 특위를 설치하고, 법안까지 발의했다.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동영상을 올린 한국사 일타강사를 구글에 신고하기도 했다. 그렇게 강조하던 표현의 자유는 우리 편에 유리할 때만 작동한다.이재명 대표는 한술 더 떴다. 얼마 전 6대 은행장을 소집한 이 대표는 한 매체의 이름을 거론하며 은행권의 광고 집행 상황을 물었다고 한다. ‘중국 간첩, 한·미 부정선거 개입’이라는 기사를 실은 매체다. 공교롭게도 간담회 다음날부터 이 신문 1면 제호 옆에 수년째 들어가던 모 금융그룹 광고가 빠졌다. 이 금융그룹은 “예정됐던 일”이라며 부정했지만, 광고주를 통한 언론 길들
어제는 일본 한신·아와지 대지진(고베 대지진)이 발생한 지 30년 되는 날이었다. 새벽 잠자리를 덮친 규모 7.3의 지진은 6400여 명 사망과 10조엔 이상의 경제적 피해를 가져왔다. 주택 51만 채가 무너지고 7000채 이상이 불에 탔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참상이 워낙 강렬해서 그렇지, 당시 견고함을 자랑하던 한신고속도로(고베~오사카)의 고가도로 부분이 통째로 옆으로 무너진 모습은 여태껏 기억에 남을 만큼 충격적이었다.“패미콤(닌텐도의 오락기기)을 하고 싶어요”. 무너진 건물에서 57시간 만에 구조된 열 살 소년이 기자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그 후 닌텐도는 게임기 5000대를 구호물품으로 지진 피해 지역에 보냈다. 광고 효과를 노린 건지는 몰라도 게임기가 아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을 것이다.그렇지만 재난 지역에서 무엇보다 급한 건 먹고 마시고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음식과 물 그리고 모포다. 고베 대지진 생존자들 역시 물류 단절 속 구호가 늦어져 상당 기간을 고통스럽게 보내야 했다. 크고 작은 자연재해를 겪으며 가정에 비상식량과 물품을 비축하는 일본인이 많아졌다. 정부와 언론도 적극적으로 권한다. 그 방법의 하나가 ‘롤링 스톡’(회전 비축)이다. 보존 기간이 지나면 폐기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의 자연스러운 비축이다. 일정량의 식료품과 식수 등을 비축해 두고 오래된 순으로 소비하고 곧바로 채워 넣는 방식이다. 식품기업들도 보존 기간을 늘린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내놓고 있다. 시장 규모는 수천억원에 이른다.규슈 미야자키현에서 지난해 8월에 이어 며칠 전에도 강진이 발생하자 다시 난카이 해곡 거대 지진에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은 전쟁 포로다. 서울 출신이지만 월북해 인민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남쪽에 남는 것도, 북쪽으로 송환되는 것도 거부하고 제3국행을 택한다. 남과 북의 달콤한 권유와 설득에도 그는 오직 “중립국”이라고만 되뇐다.70여 년이 흐른 지금 또다시 한반도의 청년들이 그런 선택 앞에 설지도 모른다. 이번 무대는 한반도에서 7000㎞ 가까이 떨어진 우크라이나다. 파병 지역인 러시아 쿠르스크에서 포로가 된 북한군 두 명에 대한 처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제 조약인 제네바협약에 따르면 포로는 본국 송환이 기본 원칙이지만, 북한과 러시아가 파병을 공식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변수다. 양국의 입장 변화가 없다면 북한군도 러시아군도 아닌 ‘유령 군인’이 돼 제네바협약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 포로가 아니라면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한국행 여지가 커진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송환 방식 협상 등 넘어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북한인권단체는 이들이 반역자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송환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역시 한국에서 새 삶을 사는 게 최선이라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도 이들의 한국행을 법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헌법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북한 주민을 우리 국민으로 본다. 대법원 판례도 그렇다. 북한이탈주민법으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다.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하고 보호도 한다.현실적으로는 우크라이나가 어떤 선택을 하느
지난해 10월 미국 동부항만은 47년 만에 동시 파업에 들어갔다. 임금 인상폭을 둘러싼 노사간 갈등 때문이었다. 거의 반세기 만의 일인지라 장기화 우려가 있었지만 대선을 앞둔 백악관의 중재로 파업은 3일 만에 싱겁게 끝났다. 하지만 당시엔 임금 합의만 이뤄졌고 단체협상은 이달 15일을 기한으로 계속됐다. 항만 노사는 최근 단협도 극적으로 타결했다. 새 협약의 핵심은 인공지능(AI) 확대에 대응하는 ‘고용 안정 장치’ 도입이다.미국 항만들은 현재 부두 노동자 한 명이 여러 대의 반자율 크레인을 동시에 관리하고 있지만, 이번 합의로 앞으로는 새로운 장비 한 대를 도입할 때마다 노동자 한 명을 고용해야 한다. 노조가 AI로부터 일자리를 지켜낸 셈이다. 하지만 증기자동차를 견제하려는 마부들의 요구로 영국에서 1865년 제정된 적기조례법(붉은 깃발법)을 연상하게 한다. 자동차 앞에서 붉은 깃발을 들고 달리며 마차에 자동차 접근을 경고하는 기수를 고용해야 했던 160년 전이나 AI로 운영되는 장비마다 사람을 써야 하는 지금이나 다를 게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항만노조의 협상은 AI를 둘러싼 노사 간 힘겨루기의 예고편인지도 모른다.문제는 과거 산업혁명은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AI혁명도 그럴 수 있느냐는 점이다. AI가 블루칼라보다 화이트칼라 업무를 먼저 대체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지만, AI와 로봇의 결합이 본격화한다면 어떤 직종도 안심할 수 없을 듯하다. 제조업, 서비스업, 물류·운수업 등 국내 취업자의 절반 이상을 AI가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궁극적으로 AI가 모든 일자리
중국이 힘을 쏟은 ‘굴기’(우뚝 일어섬) 중에 대표적인 실패 사례는 축구가 아닐까 싶다. 중국은 축구광인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시로 10년 전부터 전력 강화에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지난해 월드컵 예선에서 일본에 0-7로 대패하는 등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하지만 과학기술로 눈을 돌리면 얘기가 전혀 다르다. 지난해 말 발표된 세계 상위 1% 과학자 명단에는 중국 본토 연구자 1405명이 이름을 올렸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고 75명이 오른 한국의 19배에 달한다. 기관별로 보면 중국과학원이 미국의 하버드대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이 인공지능(AI), 항공우주, 휴머노이드 로봇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미국의 입지를 위협할 수 있게 된 이유다.그런 중국이 이번에는 ‘양자 굴기’에 나섰다.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가 수백 년에 걸쳐 계산해야 할 연산을 수초 만에 할 수 있을 정도로 미래 산업을 좌우할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다. 이미 양자기술 핵심 인력을 5500명이나 확보한 중국은 60개 대학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향후 5년간 미국의 4배인 150억달러(약 22조원)를 쏟아부을 계획이라고 한다.중국의 인해전술식 인재 확보와 투자 공세를 보면 공포감이 느껴질 정도다. 한편에서는 초저가 제품을 세계 시장에 쏟아내면서, 또 한편으로는 첨단산업의 기술력을 무서운 속도로 쌓아 가고 있는 중국의 두 얼굴이다.미국의 철저한 견제로 고사할 줄 알았던 중국 반도체산업은 오히려 범용제품에서는 한국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테슬라를 턱밑까지 추격한 전기차 업체 BYD는 이제 한국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6.6% 늘어난 1330억달러였다. 2
민주주의와 세계 경제를 이끌며 ‘게임의 룰’을 만들어 온 G7(Group of Seven)이 동병상련의 위기에 처했다. 자유세계를 선도하는 선진국 그룹이라는 명성과 달리 국내 정치 불안에 자기 앞가림도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과 이탈리아를 뺀 5개국이 모두 그렇다.프랑스는 집권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뒤 어렵사리 구성한 내각이 예산안에 반발한 극좌와 극우의 협공에 무너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울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독일은 ‘신호등 연정’ 붕괴에 이어 올라프 숄츠 총리 불신임으로 내년 2월 총선을 치러야 한다. 자민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한 일본도 마찬가지다. 지지율이 낮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7월 총선에서 역사적 대승을 거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역대급 지지율 추락으로 힘이 빠졌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 ‘미국의 51번째 주’ ‘주지사’라고 조롱받은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도 사임 압력에 직면했다.이들의 위기 근원에는 포퓰리즘 정당의 급부상과 재정 악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둘은 서로를 자양분 삼아 점점 더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 와중에 트럼프는 동맹인 이들을 돕기는커녕 정치적 혼란을 즐기고 부채질까지 하는 모양새다. 특히 독일, 영국, 캐나다의 중도 좌파 정부를 향한 공격이 노골적이다. 트럼프의 최측근 일론 머스크는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지지를 표명하고 숄츠에게 “무능한 바보”라며 즉각 사임을 촉구했다. ‘영국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나이절 패라지 개혁당 대표를 만나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우리나
“배를 만들자”고 뜻을 세웠지만,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에겐 조선소를 지을 돈이 없었다. 1971년 차관 도입을 위해 찾은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은 단칼에 거절했다. 정 회장은 굴하지 않고 선박 컨설팅사인 애플도어의 찰스 롱바텀 회장을 만났다. 고개를 가로젓는 그에게 정 회장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권을 보여주며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을 앞서 철갑선을 만들었소. 한번 시작하면 잠재력이 분출될 것이요”라고 설득했다. 결국 롱바텀 회장의 추천으로 차관을 얻을 수 있었다.충무공 덕을 톡톡히 본 K조선의 시작이다. 정 회장의 장담대로 그 후 K조선은 잠재력을 분출하며 세계시장을 호령했다. 중국의 물량 공세 속에 올해 1분기에는 세계 1위 자리를 되찾기도 했다. 세계 조선소 1~3위도 우리 기업(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이 차지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꺼낸 말은 뜻밖에도 조선업과 군함 건조·수리 협력 요청이었다. 한국과의 현안이라고 보좌진이 챙겨줬을 수도 있고, 고(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의 인연으로 1998년 대우 옥포조선소를 방문했을 때 깊은 인상을 받은 영향일 수도 있다. 세계 최강 해군을 보유한 미국이 K조선에 ‘SOS’를 친 건 기분 좋은 일이다.군함 건조 사업이 들어가는 품에 비해 남는 게 별로 없다고 하지만, 지난해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한화오션을 출범시키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 성장과 함께 방산에 강점이 있는 한화가 힘을 쏟자 현대중공업도 맞불을 놓는 모양새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에 이어 해외 잠수함 사업 수주를 놓고 양사가 ‘혈투
한때 중국이 ‘승천하는 용’이었다면 지금은 인도가 ‘질주하는 코끼리’로 세계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세계 1위 인구 대국(약 14억4000만 명)에 오른 인도는 경제 대국으로서의 위상도 급상승 중이다. 2021년은 인도에 특별한 해였다. 식민 지배국 영국을 누르고 국내총생산(GDP) 세계 5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독립한 지 74년 만의 일이다. 3년 뒤엔 독일과 일본을 제치고 세계 3위에 오를 것이라는 게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이다. 2037년에는 중국마저 추월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호주의 싱크탱크 로이연구소가 지난 9월 발표한 아시아·태평양 국가 ‘파워 인덱스’에선 처음으로 일본을 제쳤다. 인도는 구매력을 포함한 경제력과 미래 자산 등에서 약진했다. 올 4~9월 인도의 승용차 판매는 208만 대를 넘어 역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중산층 확대에 따른 소비 증가가 성장의 원동력임을 보여준다. 매년 7%가 넘는 성장률은 물론 증시의 우상향도 꺾일 줄 모른다.인도 경제의 약진 뒤에는 ‘인도판 대처리즘’이라고 불리는 모디노믹스가 있다. 2014년부터 인도를 이끄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경제정책이다. 외국인 투자를 통한 인프라 확충과 제조업 육성, 일자리 창출이 핵심이다. 올해 3연임에도 성공해 5년 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물론 잘나가는 인도 경제에도 아킬레스건은 있다. 정보기술(IT)·금융 등이 성장을 이끌다 보니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있다. 생산가능인구는 가장 많은데 제조업 수출은 세계 19위에 그친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비판과 함께 강성 노조도 넘어야 할 벽이다. 삼성전자 가전 공장은 최근 한 달 넘게 지속된 파
“인간은 석유와 비교도 되지 않는 중요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자원이다. 석유는 한 번 쓰면 없어지지만, 인간의 능력은 사용할수록 향상되고 가치가 커진다.”인재를 키우는 데 진심이었던 SK그룹(당시는 선경)의 선대 회장인 최종현 회장의 지론이다. 최 회장은 취임 첫해인 1973년 광고주를 못 구한 MBC ‘장학퀴즈’ 후원을 결정했다. “청소년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라면 조건 없이 돕겠다”는 뜻이 51년째 이어지는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 중간에 방송사가 MBC에서 EBS로 바뀌는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시청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이듬해인 1974년엔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100년을 내다보고 선경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인재를 키우겠다는 의지였다. 재단 이름에 회사를 드러내지 말라고도 했다. 해외 유학이 하늘의 별 따기였던 인문사회 계열 인재를 선발해 철저한 사전 교육과 함께 파격적인 유학비용과 생활비를 지원했다. 당시 강남의 소형 아파트가 400만원대였는데 연 500만원을 보내줬다. 기업 규모가 지금처럼 큰 것도 아니고 오일 쇼크로 모두가 어려운 때였다. 자기 회사를 이끌 인재도 아닌데 아무 조건 없이 거액을 들이니 임원들이 싫어했을 법하다. 그래서 그는 사재인 남산의 건물과 토지를 내놨다. 그리고 오지의 민둥산을 사서 자작나무, 흑호두나무 등 경제성이 높은 나무를 심었다. 안정적인 장학금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반세기 동안 나무들은 쉼 없이 자랐고 민둥산은 어느새 울창한 숲이 됐다. 올해 50돌을 맞은 고등교육재단의 장학생 중 박사가 1000명에 달할 만큼 대한민국 인재의 숲도 풍요로워졌다. 지금은
‘공기를 읽지 못 한다(空氣が讀めない)’는 일본어가 있다. 한마디로 분위기 파악을 못 한다는 의미다. 내일이면 일본의 102대 총리가 될 이시바 시게루도 ‘공기를 못 읽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득실이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발언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거침없는 발언으로 국민적 인기는 높지만 자민당 내에서 변변한 자기 편이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오죽하면 그는 이번 당 총재 선거 결선투표를 앞두고 “많은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불쾌하게 했다”며 사과 연설까지 했을까.그래도 효과는 있었던 모양이다.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에 이어 2위에 그친 그는 의원들의 표가 좌우하는 결선에서 짜릿한 뒤집기에 성공했다. 자민당이 야당 시절이던 2012년 총재 선거와 정반대다. 당시 1차 투표를 1위로 통과한 이시바는 결선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역전패당했다. 이후 당 간사장이 돼 정권 탈환에도 성공했지만 아베와는 당내 대척점에 설 정도로 멀어졌다. 4년 전 총재 선거에서도 패배한 이시바는 “자민당에 진짜 위기가 오지 않는 한, 이제 내가 나설 차례는 없다”고 되뇌었다. 지지하던 의원들마저 하나둘 그의 곁을 떠났다. 하지만 비자금 스캔들로 당이 흔들리고 당내 파벌들이 해산하자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고 그는 결국 4전5기에 성공했다.이시바 역시 일본 정치권에서 흔한 세습 정치인이지만 쉽게 재단하기 어려운 복합적 캐릭터다. 과거사 문제에는 전향적이지만 평화 헌법은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시아판 나토’ 창설과 미·일의 대등한 지위를 위해 자위대의 괌 주둔까지 주장한다. 당내
폴란드의 ‘국군의날’은 우리의 광복절과 같은 날인 8월 15일이다. 1920년 폴란드를 침공한 소비에트 러시아군을 ‘비스툴라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전투에서 격파하고 수도 바르샤바를 지켜낸 날을 기념해 1923년 제정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날 바르샤바에선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달라진 풍경이다.2년 연속 눈길을 끈 것은 퍼레이드의 주역이 K방산이라는 점이다. 다연장로켓인 천무의 폴란드 맞춤형 버전인 호마르-K가 가장 먼저 등장했고 K-2 흑표 전차, K-9 자주포 등이 위용을 뽐냈다. 폴란드 영공을 수호할 FA-50 경공격기도 빼놓을 수 없다. K방산이 폴란드 국민의 ‘러시아 공포’를 상당 부분 덜어준 셈이다.세계에 자랑할 만한 이들 K방산 주역들이 다음달 1일 광화문에도 등장한다. 이례적으로 2년 연속 국군의날 퍼레이드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건군 75주년이던 지난해에는 국군의날이 추석 연휴와 겹쳐 9월 26일 시가행진을 했다. 무려 10년 만의 행사가 빗속에서 치러져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였을까. 국방부는 올해 국군의날을 프랑스의 ‘바스티유 데이’(혁명 기념일) 군사 퍼레이드처럼 군과 국민이 화합하는 행사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육군, 해군, 공군이 제각각 다르게 기념하던 날을 10월 1일로 통일한 건 이승만 대통령이다. 유엔군이 38선 돌파를 공식 승인한 10월 2일(1950년)이 국군의날이 될 뻔했는데, 하루 전 육군 3사단(백골부대)이 이미 38선 이북으로 진격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기념일도 하루 앞당겨졌다. 1973년부터 공휴일로 지정됐지만, 경제활동에 차질을 준다는 이유로 1991년 한글날과 함께 ‘빨간날’
2011년 미국의 휴렛팩커드(HP)는 컴퓨터 제조 부문 분리·매각과 소프트웨어 중심 기업으로 전환 방침을 밝혀 정보기술(IT)업계를 놀라게 했다. 영국의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기업인 오토노미를 111억달러에 인수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오토노미는 영국의 몇 안 되는 글로벌 기술 기업을 일군 마이크 린치가 1996년 창업한 회사다. ‘영국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그는 회사 매각으로 돈방석에 앉았지만 긴 법정 싸움의 시작이기도 했다.HP는 인수 1년 만에 오토노미의 기업 가치가 부풀려졌다며 88억달러의 감가상각을 발표하고 린치를 회계부정 혐의로 고소했다. 미국에서 15건의 사기 혐의로 송사에 시달린 그는 올해 6월에서야 무죄 판결을 얻어냈다. 그가 기나긴 소송에서 벗어난 뒤 꺼낸 말은 “내가 좋아하는 일, 혁신으로 돌아가고 싶다”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희망을 이룰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무죄 판결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 동료들과 함께 탄 요트가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앞바다에서 폭풍우로 침몰했기 때문이다. 부인 안제라 바카레스 등 15명이 구조됐지만 린치와 딸을 포함한 6명은 실종됐다.지난해에는 대서양 해저 3800m에 잠든 타이태닉호를 보기 위해 심해 잠수정을 탄 영국의 억만장자 해미시 하딩과 파키스탄 재벌 샤자다 다우드와 그의 아들이 수중 폭발로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모험가였다면 린치의 취미는 모형 철도 만들기와 잉어 키우기다. 아웃도어 취미는 없지만 미국에서 1년이나 가택연금 상태로 재판을 받았던 만큼 지중해를 누비며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최근 기록적으로 높아진 지중해의 수온이 요트를 삼킨 폭풍우를 만들어냈다는
스스로 벌인 침략전쟁 외에는 별다른 외침을 겪은 적 없는 일본은 대신 지진·태풍 등 자연재해를 늘 머리에 이고 산다. 그나마 태풍은 특정 시기에 찾아오는 데다 경로도 나름 예측이 가능하지만, 지진은 그렇지 않다. 크고 작은 지진이 연중행사처럼 발생하는 일본에서 초대형 지진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발밑의 폭탄이다. 지난 1월 1일 새해맞이에 들떴던 일본인들을 놀라게 한 규모 7.6의 이시카와현 노토반도 지진처럼 때를 가리지도 않는다. 불확실하다고 대비를 소홀히 했다간 더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1995년 효고현 고베시 등을 강타한 한신·아와지 대지진(고베 대지진)이 그랬다. 도시와 농촌 지역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규모 7.2인 고베 대지진의 사망자는 6300명이 넘었다. 300여 명이 희생당한 노토반도 지진 사망자의 20배에 달한다. 고베 대지진 사망자의 80%가 집에서 희생됐는데 가구를 고정하는 등 대비가 있었다면 압사를 면할 수도 있었다. 당시 효고현 지사는 “고베에는 대지진이 없다”는 속설에 현혹돼 대비를 충분히 못 했다는 후회를 뒤늦게 글로 남기기도 했다.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지진은 도쿄 바로 밑 땅속이 진원이 되는 ‘수도권 직하 지진’과 혼슈 중부의 시즈오카현에서 규슈의 미야자키현에 이르는 태평양 연안의 난카이(南海) 해곡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하는 ‘서일본 대지진’이다. 난카이 해곡에서 규모 8~9의 대지진이 일어나면 쓰나미 등으로 최대 23만 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추정이 나와 있다. 경제·인명 피해 예상치가 13년 전 동일본 대지진의 10배 이상이다.그제 규슈 미야자키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7의 강진이 ‘지진 열도’
“그는 불타는 로마를 보며 악기를 연주한 (네로 황제와 같은)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일본은행(BOJ) 총재로 임명될 때 이미 낡은 인물이었고 더 낡은 인물이 돼 BOJ를 떠난다.” 1998~2003년 BOJ 총재를 지낸 하야미 마사루가 퇴임 직전 국내외 금융 전문가들에게 받은 평가다. 그는 2000년 8월 “저금리는 좀비기업을 연명시킬 뿐”이라며 기준금리를 올렸다. 정부가 처음으로 ‘의결연기청구권’까지 행사하며 반대했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주창하며 금리 인상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닷컴버블 붕괴와 함께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져들자 불과 6개월 만에 다시 제로 금리로 복귀하며 백기를 들어야 했다.블룸버그의 한 칼럼니스트는 일본의 금리 인상이 부른 글로벌 증시 폭락을 다룬 최근 칼럼에서 “경기 침체를 판단하는 데 ‘삼의 법칙’보다 BOJ가 불필요하게 금리를 올리는 타이밍을 기준 삼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2007년 금리 인상 뒤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BOJ의 책임은 없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론 부적절한 타이밍이었다.지난 3월 BOJ가 17년 만에 금리를 올리며 마이너스 금리 탈출을 선언할 때만 해도 별문제가 없었지만 지난주 2차 금리 인상을 단행한 이후에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엔캐리 트레이드의 뇌관을 건드려서다. 저금리의 엔화를 빌려 미국 빅테크 주식부터 부동산, 신흥국 통화까지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 트레이드의 규모는 5000억달러에서 최대 수조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막대한 자금이 일본의 금리와 엔화 가치가 오르자 서둘러 청산에 나서면서 세계 경제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는 것이다.지
“우리는 역사와 문화의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가는 이 작은 잡지를 펴낸다. 그리하여 상처진 자에게는 붕대와 같은 언어가 될 것이며, 폐를 앓고 있는 자에게는 신선한 초원의 바람 같은 언어가 될 것이며, 역사와 생을 배반하는 자들에겐 창끝 같은 도전의 언어, 불의 언어가 될 것이다.”1972년 10월 월간 ‘문학사상’ 창간호에 실린 고(故) 이어령 선생의 창간사 ‘이들을 위하여’의 일부다. 창간 산파이자 13년간 주간을 맡은 그는 문학사상을 ‘현대문학’ ‘창작과비평’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내 대표 문예지로 키워냈다. 창간호 초판 2만 부가 1주일 만에 다 팔려 다시 찍어야 했던 문학사상은 5년 뒤엔 그해 가장 탁월한 작품을 선정해 수여하는 ‘이상문학상’도 제정했다. 소설 <무진기행>을 쓴 김승옥은 시나리오 작가로 외도 중이었다. 그의 재능을 사랑한 이어령 선생은 고급 호텔에 방을 잡아주고 감시역까지 붙여 작품 집필에 매진하도록 독려했다. 그렇게 탄생한 소설이 1호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서울의 달빛 0장>이다. 그 뒤 오정희, 박완서, 이문열, 한강, 김영하 등 국내 대표 작가들이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문학을 꿈꾸는 많은 신인의 등용문이기도 했다. 신인상을 통해 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 수백 명의 문인을 배출했다.하지만 문학사상은 문학조차도 무거움 대신 가벼움을 좇는 세태의 변화를 이기지 못했다. 한때 1만 명을 넘던 정기구독자가 수백 명으로 쪼그라들어 적자가 쌓였다. 결국 이상문학상을 다른 기업에 넘기고 618호를 끝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 게 지난 4월이다. 이대로 오랜 발자취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나 싶은 순
공직자 재산 공개가 시작된 것은 김영삼 정부 때였다. 차관급 이상 모든 공직자가 자진해서 재산을 공개하도록 했다. 이때 심각한 고민에 빠진 것은 차관급 대우를 받는 고위 법관만 103명인 사법부였다. 입법부, 행정부가 모두 재산 공개를 하는 마당에 사법부만 빠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자산가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법관 중 한 명이라도 투기 혐의자가 나오면 사법부 전체에 대한 불신과 함께 재판의 권위까지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당장 첫 재산 공개 후 김덕주 대법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변호사 시절 본인과 자식 명의로 투기지역인 용인 땅을 매입한 것에 비판 여론이 크게 일었다. 절대농지를 산 지방법원장 한 사람도 뒤를 이었다. 과도한 ‘재테크’로 법복을 벗은 첫 사례다.대법관, 헌법재판관 후보들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기기묘묘한 재테크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2015년엔 한 대법관 후보자가 20억원 가까운 재산을 보유하고도 4000만원이 넘는 무이자 학자금 대출을 받아 ‘학자금 대출 재테크’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법관의 재테크 대상은 전통적으로 예금, 부동산 자산이었다가 요즘은 주식으로 재산을 불린 주(株)테크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10억원 가까운 처가가 운영하는 회사의 주식을 재산 공개 때 누락한 사실이 드러나 낙마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아들 부부를 15개월간 공관에 살게 해 ‘관사 재테크’를 도왔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최근 이숙연 대법관 후보자는 비상장 주식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후보자의 20대 딸이 아버지 돈으로 주식을 사고 다시 아버지에게 되팔아 63배의 차익을 거
배달 음식 하면 중국집 철가방부터 떠올리는 사람과 배달앱을 연상하는 사람으로 세대 구분을 할 수 있겠거니 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전자는 50대 이상, 후자는 40대 이하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앱 결제 순위를 보면 50대도 배달앱 이용이 활발하다.음식점이 직접 배달원을 고용하던 시대에도 점주 입장에서는 배달 비용이 추가로 들었겠지만, 고객에게 돈을 따로 더 받는 일은 없었다. 공짜 배달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소비자가 배달비를 낸 것은 2018년이 처음이다. 경기 부천의 한 치킨집이 배달 한 건당 2000원을 받으면서다. 가파르게 치솟은 최저임금이 결정타가 됐다. 그해 최저임금이 16.38% 올라 시간당 7530원이 된 탓에 도무지 배달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없었던 업주가 배달대행업체에 배달을 맡기면서다. 소비자의 반발에도 그 후 유료 배달은 빠르게 확산했다.코로나19와 1~2인 가구 증가는 배달 음식 시장을 키운 일등 공신이다. 2020년께 이미 시장 규모가 20조원을 넘어섰다. 라이더(오토바이 배달원) 구인난에 한때 ‘배달비 1만원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배(음식값)보다 배꼽(배달비)이 더 큰 게 아니냐는 불만이 많았는데 올 들어 조금 상황이 달라졌다. 2위 배달 플랫폼 업체인 쿠팡이츠가 쏘아 올린 무료 배달 경쟁에 소비자는 부담을 덜었다. 반면 업주들은 제대로 뿔이 났다. 업주가 내야 할 배달비는 그대로인 데다 일부 업체의 중개 수수료까지 오른 탓이다. 가뜩이나 경기 부진에 울고 싶은데 뺨을 때린 격이다.정부가 내년부터 최대 20만 명의 영세 소상공인이 내는 배달비 절반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에 대한 대책은 필요하지만 국민 세
1994년 북한의 최광 인민군 총참모장이 중국 베이징으로 달려갔다. 미국이 영변 핵시설 폭격을 준비하던 때였다. 최광을 만난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은 핵무기 개발 자제를 요구하면서도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말로 북한을 안심시켰다. 중국이 6·25전쟁에 참전하며 내세운 이유도 “입술(북한)이 없으면 이(중국)가 시리고, 문이 무너지면 집이 위험하다”였다. 서로에 대한 전략적 필요성이 큰 양국 관계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6·25전쟁을 통해 혈맹이 된 북한과 중국이지만 늘 순탄치만은 않았다. 정전 이후 1인 절대권력 구축에 나선 김일성은 남로당파·소련파에 이어 친중 연안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1956년 연안파 숙청 직후 마오쩌둥 주석은 중국을 찾은 북한 고위층에게 “당신들 당내에는 공포가 넘쳐흐르고 있다. 한국전쟁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김일성에게) 주의를 준 적이 있다”며 불만과 경고를 전했다. 북한은 때마침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자 그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펼치며 이득을 챙겼지만 문화대혁명으로 다시 중국과 충돌했다. 중국의 홍위병들은 김일성을 ‘비곗덩어리 수정주의자’로 비난하고 북한 주민은 마오를 ‘노망든 늙은이’라고 조롱하는 등 양국 관계가 험악해졌다. 그 뒤에도 한·중 국교 수립, 북한의 핵실험 등 여러 차례 큰 고비가 있었지만 북·중 관계가 파국으로까지 치닫는 일은 없었다. 시진핑 주석이 취임한 뒤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해 김정은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기는 했어도 중국에 북한은 버릴 수 없는 카드였다.수교 75주년을 맞은 올해 양국 관계가 다시 파
1980년 이란의 초대 대통령에 오른 아볼하산 바니사드르는 취임 1년4개월 만에 의회 탄핵으로 물러났다.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란 혁명의 지도자이자 동지인 루홀라 호메이니에게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호메이니의 묵인 아래 벌어진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고문과 학살이 횡행하는 현실이 스탈린 체제와 다를 바 없다고 직격한 바니사드르는 결국 혁명감찰부의 체포령 이후 망명길에 올랐다. 그 뒤를 이은 후임자는 28일 만에 폭탄 테러로 사망했고, 이후 3대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 호메이니에 이어 35년째 라흐바르(이란의 최고지도자)를 맡고 있는 알리 하메네이다.이란은 이슬람 종교기구가 행정부와 의회 등 공화국기구를 감독·통제하는 독특한 통치체제를 갖고 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은 명목상 2인자에 불과하고 라흐바르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최종 결정권을 행사한다. 12인의 헌법수호위원회와 최고지도자를 뽑는 전문가회의, 혁명수비대가 신정(神政)을 뒷받침한다.서방과의 핵 합의 복원, 경제난 해소, 히잡 착용 완화 등을 내건 온건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제14대 이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슬람 원칙파와 ‘1 대 5의 싸움’을 벌인 1차 투표 때만 해도 구색 맞추기용 후보라는 말을 들었던 그는 예선 깜짝 1위에 이어 결선에서도 54.8%를 득표, 45.2%를 얻는 데 그친 사이드 잘릴리를 꺾었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경제난과 억압 사회에 지친 청년들과 중도층을 투표소로 이끌었다.역대 개혁파 대통령이 그러했듯 페제시키안의 한계는 분명하다. 당장 하메네이는 “라이시의 길을 따르라”는 메시지를
영국 총선은 1931년 이후 쭉 목요일에 치르는 것이 관례다. 금요일에는 한잔하기 위해 펍에 가야 하고, 주말에는 교회에 가야 하기 때문에 목요일로 정했다는 설도 있다. 한국처럼 소선거구제다. 하지만 비례대표는 없고 650개 선거구에서 650명의 하원의원을 뽑는다. 의회 해산 전 의석 분포는 보수당이 345석, 노동당 206석, 스코틀랜드(SNP) 국민당 43석, 자유민주당 15석, 기타 41석이었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완성’을 내걸고 치른 2019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압승을 거둔 결과다.하지만 4년 뒤 치러진 이번 총선에서는 노동당이 14년 만에 정권을 탈환할 것이 확실시된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는 노동당이 단일 정당 기준 역대 최대인 431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집권 보수당은 102석에 그쳤다.지난 총선에서 노동당은 자신들의 표밭인 ‘레드 월의 반란’으로 보수당에 참패했다. 지역별 불평등을 줄이겠다는 보수당의 ‘레벨링 업’ 슬로건이 제대로 먹혔다. 노동당의 상징인 붉은 색과 벽을 뜻하는 ‘레드 월’은 영국판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로 리버풀, 맨체스터, 셰필드 등이 포함된 잉글랜드 북·중부 지역을 일컫는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보수당은 지난 4년간 헛발질만 했다. 150만 명에 달하는 실업자를 줄이지도, 고물가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생활고를 개선하지도 못했다. 존슨은 코로나 봉쇄 기간 술자리를 즐기다가 ‘파티 게이트’로 물러났고, ‘제2의 대처’로 기대를 모았던 리즈 트러스는 대책 없이 감세안을 밀어붙이다가 45일짜리 초단명 총리에 그쳤다. 경제 전문가로 실력 발휘가 주목
이달 초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중국 해군 증강 분석’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해군력 증강으로 미국이 함정 수에서 열세에 놓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조선업 강국인 한국, 일본과의 협력으로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CSIS가 공개한 중국 전투함은 234척, 미국은 219척이다. 하지만 이 보고서에선 항공모함이 빠졌다. 한·일의 해군 전력을 더할 필요도 없이 미국이 중국을 압도할 수 있는 이유는 항모의 존재다. 미국은 한 개가 웬만한 국가의 전체 전력에 맞먹는다는 항모 전대를 11개나 운용하고 있다. 최근 3호 항모인 푸젠함을 선보인 중국이지만 여전히 미국엔 비교 불가 열세다.미국의 항모 11개 중 해군 제독의 이름을 딴 니미츠함과 정치인 이름을 붙인 칼빈슨함, 존 C 스테니스함 외에는 모두 역대 대통령의 이름이 붙어 있다. 조지워싱턴함, 에이브러햄링컨함, 시어도어루스벨트함을 제외하면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부터 조지 H W 부시까지 비교적 근래의 대통령 이름을 땄다. 이미 건조를 마치고 내년 인도되는 최신 항모 존 F 케네디함도 있다. 하지만 세 명의 대통령이 빠졌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해군 장교 출신이다. 린든 B 존슨, 리처드 닉슨, 지미 카터가 그들이다. 존슨은 베트남전으로 인기를 잃었고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 중도 사임한 탓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잠수함 근무 경험이 있는 카터는 본인의 희망으로 항모 대신 핵잠수함에 이름을 붙였다.지난 22일 미국 핵항모 루스벨트함이 처음 부산항에 들어왔다. 한·미·일 군사훈련인 ‘프리덤 에지’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그런 루스벨트함을 어제 윤석열
한덕수 국무총리는 윤석열 정부 초대이자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총리라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특허청장, 초대 통상교섭본부장,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맡아 관운을 타고났다는 소리를 듣는 그지만 요즘만큼 힘든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최근 관가에선 물집이 생겨 부르튼 입술로 일하는 한 총리 모습이 화제였다. 이미 사의를 밝힌 터이긴 하지만, 대통령 국정 동력이 약해지면서 내각 총괄의 책임이 더 커진 여파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실제 하루 일정은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분 단위로 쪼개야 할 정도로 빠듯하다. 의료계 집단행동, 경제·사회정책 조율, 북한의 오물풍선 도발, 공직 기강 문제 등 챙겨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입술에 생긴 물집은 스트레스성 피부 괴사라고 한다. 서울대병원과 의사협회의 집단 휴진 결정이 스트레스 지수를 최고치로 끌어올렸다는 후문이다. 한 총리는 그동안 물밑에서 의료계를 설득하는 등 4개월째 의·정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맡아왔다. 환자단체와의 간담회에서 만난 한 환자의 하소연 전화를 받고 한 총리가 직원들에게 메신저로 내용을 공유한 시간이 새벽 3시40분이었다는 일화도 있다.한 총리는 당분간 유임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주변에선 1949년생 고령을 들어 건강과 체력 걱정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요즘 건강 나이로 보면 촘촘한 일정을 소화하지 못할 것도 없다. 지난 18일 오후에는 여당 원내 지도부와 장관들을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으로 초청해 저녁을 함께하며 소통의 시간을 마련했다. 그제는 경기 판교에서 콘텐츠산업진흥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관련 기업들의 기술 시연 참관과 애로 사항을
‘히포크라테스의 통곡’이라는 제목을 단 대자보가 분당서울대병원 곳곳에 내걸렸다.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이 17일부터 집단 휴진을 결의한 데 대해 이 병원 노조가 내건 대자보다. 노조는 “휴진으로 고통받는 이는 예약된 환자와 동료뿐”이라며 “의사제국 총독부의 불법 파업 결의를 규탄한다”는 내용을 대자보에 담았다. 오죽하면 한솥밥 먹는 사람들을 ‘의사제국’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비판할까.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 5개 환자단체가 속한 중증질환연합회는 의사들의 행태가 조직폭력배와 다를 바 없다고 규탄했다. 협회는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와 국민을 혼란에 빠트리고 무정부주의를 주장한 의사 집단을 더는 용서해서는 안 된다”며 대규모 고소·고발을 예고했다.당초 정부를 상대로 의대 증원 반대 투쟁에 나섰던 의사 집단은 사실상 법원 판단으로 내년도 증원이 확정되자 이제는 ‘사태 해결을 위한 정부의 가시적 조치’라는 모호한 구호를 걸고 집단 휴진에 나서는 모습이다. 분명한 목표도, 명분도 없는 분풀이식 투쟁이다. 그 바람에 환자, 병원, 노조뿐만 아니라 초기 정부의 일방통행을 비판하던 시민단체들도 모두 등을 돌리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불법 진료 거부는 정당화될 수 없으며 즉각 철회돼야 한다. (정부는) 불법 행동 가담자에게 선처 없이 엄정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시작된 의료 파행이 오늘로 115일째를 맞는다. 일반 국민과 환자는 물론이고 의사들도 이번 사태가 이렇게까지 장기화할 줄 몰랐을 것이다. 정부가 2000명 증원에서 한발 물러섰을
대도시 출신 50대 이상이라면 국민학생(지금의 초등학생) 시절 이사를 한 것도 아닌데 ‘강제 전학’을 겪어야 했던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옆 동네 학교의 콩나물 교실에서 수업받다가 자신이 사는 동네에 학교가 신설되면 대거 전학을 해야 했다. 1970년대 학교 시설이 학생 수 증가 속도를 쫓아가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지금은 정반대 상황이 됐다. 농어촌뿐만 아니라 대도시까지 덮친 ‘폐교 쓰나미’에 어쩔 수 없이 주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지난해 전국에서 폐교한 초·중·고는 총 29곳인데 그중 서울 등 대도시 학교가 절반을 훌쩍 넘는 17곳이다. 올해는 전국 33개 학교가 문을 닫을 예정인데 지난 3월엔 개교 20년밖에 안 된 도봉고가 서울 일반계 고등학교 중 처음으로 폐교의 운명을 맞았다. 1980년 1440만 명을 넘던 학령인구(6~21세)가 올해 714만 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2072년엔 278만 명으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누구도 학교의 역사가 지속될 거라고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저출생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기대도 어려운 만큼 폐교 문제는 계속해서 우리 사회의 고민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지역소멸 가속화나 학생의 학습권 침해 등 논란도 이어질 것이다. 폐교 활용도 당장 해법이 필요한 문제다. 전국 폐교 3955곳 중 팔리지 않고 지역 교육청이 보유하고 있는 곳이 1346곳에 달한다. 그중 367곳은 매각도 임대도 안 돼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고 한다. 교육·사회복지·귀농지원시설 등으로만 쓸 수 있는 폐교재산 특별법의 엄격한 용도 제한 때문이다.매년 450곳 정도의 폐교가 발생하는 일본은 2010년부터 ‘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 사이의 카리브해는 과거 악명 높은 해적의 무대였지만 보물선의 바다이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난파선이 바닷속에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문화부는 2019년 자국에 소유권이 있다며 681척의 난파선 목록을 작성했다. 이 난파선들은 모두 1492년에서 1898년 사이에 아메리카 대륙 근처에서 침몰한 것들이다. 대부분 스페인 제국이 식민지인 중남미에서 수탈한 금과 은을 가득 실은 보물선이다. 스페인이 여전히 카리브해에서 눈을 떼지 못 하는 이유다.한국에도 보물선의 바다는 있다. 서해의 난파선에선 금·은 대신 청자·백자가 쏟아져 나왔다. 값어치로 따지면 귀금속 못지않은 보물들이다. 금과 관련된 보물선 얘기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개 “금괴를 싣고 가다 침몰한 일본 배의 위치를 안다. 자금을 투자하면 일부를 주겠다”는 식의 사기극으로 끝났다. 2000년엔 보물선 소동이 증시를 흔들기도 했다.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근해에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 얘기다. 돈스코이에 150조원어치 금괴가 실려 있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음에도 동아건설 주가는 침몰 위치 확인 소식만으로 17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돈스코이는 2018년 가짜 암호화폐를 내세운 사기 사건에 다시 등장했다. 있을지 없을지 모를 바닷속 보물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이 재산을 날리고 눈물을 흘렸다.콜롬비아가 300여 년간 카리브해에 잠들어 있던 ‘전설의 보물선’ 산호세호 인양에 나섰다. 1708년 콜롬비아 앞바다에서 영국 함선의 공격에 침몰한 산호세에는 금과 은, 에메랄드 등 200억달러(약 27조2700억원)어치 보물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인양 회사가
어릴 적 어머니가 시장에 가실 채비를 하면 만사 제쳐 놓고 따라나섰다. 같이 가자고 한 적도 없는데 어느새 장바구니까지 챙겨 들고 현관에 서 있는 아들 모습에 어머니는 ‘네 속셈을 다 안다’는 듯 웃곤 하셨다. 시장에 따라가면 얻어먹을 수 있는 군것질거리 중 최고는 반찬용인 사각형 ‘덴푸라’였다.생선 살과 밀가루 등을 배합해 만드는 어묵을 예전엔 덴푸라, 오뎅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덴푸라는 야채, 해산물 등에 튀김옷을 입혀 튀긴 일본 요리다. 오뎅 역시 가마보코와 무, 곤약 등을 국물에 끓여 낸 요리를 말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가마보코가 어묵에 해당하니 덴푸라, 오뎅은 정확한 명칭이 아니었던 셈이다. 해방 후 한글학회에서 ‘생선묵’으로 부르자고 제안했지만 널리 통용되지 못했고 1992년이 돼서야 ‘어묵’이라는 이름을 얻었다.한·중·일 모두 즐기는 어묵은 역사가 긴 음식이다. 중국에선 위완(魚丸)이라고 부르는데 생선을 좋아한 진시황을 위해 가시를 뺀 음식을 만들어 진상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일본에선 헤이안 시대인 1115년 한 권력자의 이사 축하연에 나왔다는 것이 첫 등장 기록이다. 우리의 경우 조선 숙종이 진연(왕실 잔치)에 오른 ‘생선숙편’에 반해 모든 음식상에 빼놓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고 전해진다.수라상에나 오르던 어묵이 6·25 이후엔 때론 반찬으로, 때론 술안주로 서민들의 배를 채워준 고마운 음식이 됐다. 그동안 많은 업체가 명멸했고 지금은 100여 곳이 어묵을 공급하고 있다. 그중 절반 정도가 부산에 있는데 가장 오래된 기업인 삼진식품이 ‘부산 어묵의 원조’ 격이다. 그런 삼진식품이 인도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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