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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조금 더 전통이 있고 조금 더 기술이 발달한 나라." 냉정하게 말하면 숭례문과 인터넷의 결합을 시도하던 외국인들이 보기에 한국은 이도저도 아닌 나라다. 왜 그럴까? 한국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나 상징이 없고 스토리텔링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에펠탑''한국의 자유의 여신상'이 그래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에 후한 점수를 주는 외국인들은 역동성과 성취욕,유대감으로 요약되는 '한국의 정신'을 국가 브랜드로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여기에 좀 더 포용력 있고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곁들인다면 금상첨화라는 것.《세계가 사랑한 한국》은 외국인 전문가 10명이 쓴 다소 까칠하고 냉정한 한국 관련 보고서다. 짝사랑에 가까운 찬사 내지는 감언을 기대했다간 마음 상하기 십상이다. 이들은 한류 · 소비자 · 문학 등 우리 문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양식을 10가지 키워드로 압축해 들여다보고 세계 속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충언도 아끼지 않는다. 저자들이 "불고기 · 비빔밥으로 대변되는 한식(韓食)의 가장 큰 매력은 조화로움이다. 한식은 여러 감각을 아우르는 가히 '밥상의 미학'이라 할 만하다. 한식의 국제화를 위해 양념과 반찬을 줄이자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맛과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나 "가와바타 야스나리,무라카미 하루키 등 일본 현대 문학 거장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라는 번역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는 번역에 달렸다. 해외 동포에게 한국에서 여유롭게 공부할 기회와 장학금을 제공하여 우수한 번역가를 기르는 것도 한 방법이다"고
오래된 성(城)과 대학이 먼저 떠오르는 곳.고풍스런 강변에서 황태자가 하녀와 첫사랑을 나누고 62세의 괴테가 30세 유부녀 마리안네의 연인이 될 만큼 마력을 지닌 곳.600년 된 대학에 300년 된 학사주점과 노벨상 수상자를 17명이나 배출한 막스플랑크연구소가 있고 막스 베버가 수많은 지성인들을 불러들여 난상토론을 하던 곳.독일과 전 세계의 '지식 중심지'이자 영원한 '청춘의 도시' 하이델베르크다. 시골은 신이 만들고 도시는 인간이 만들었다지만 하이델베르크는 도시 안에 자연이 있고,자연 안에 도시가 있는 곳이다. 신과 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곳,영혼의 자유로움 속에서 낭만이 싹트고 학문과 사상이 깊어져 마침내 하이델베르크 신화와 정신이 탄생한 것이다. 이 책 《정신의 공화국 하이델베르크》를 좀더 들여다보자.하이델베르크역 현판에 쓰여진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중세부터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하이델베르크의 정체성은 바로 끊임없는 정신적 · 질적 가치의 추구였다. 이 정체성은 현대에 의해 과거가 파괴되고 양적 팽창만을 거듭해 온 한국 사회엔 구원의 메시지인 동시에 경종과도 같다. 먼저 하이델베르크를 포함한 독일의 도시들은 어떤가. 아인슈타인의 양자역학이 탄생한 괴팅겐은 인구 12만명 규모다. 수많은 시인과 과학자를 배출한 대학과 세계적인 광학업체가 있는 예나도 인구 10만명이 겨우 넘을 뿐이고 로볼트라는 세계적인 출판사가 있는 라인벡은 인구 2만6000명에 불과하다. 독일에는 유서 깊은 문화재와 극장,도서관과 대학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정치 · 경제 · 문화의 기능이 어느 한 곳에 집중돼 있지 않다. 그야말로 전 국토가 역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짐을 싸들고 집을 나가 버렸다면? 한 푼 두 푼 모은 재산이 한꺼번에 전부 날아갔다면? 건강검진 결과 내 몸에서 암덩어리가 발견됐다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일터에서 쫓겨났다면? 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닥쳐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온전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길 만큼 엉망이 된 순간에 무엇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까. 《인생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들》은 삶이 너무 버거워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고도의 심리처방전이자 험로를 헤쳐 나가는 방법을 제시한 인생 나침반이다. 20년 넘게 인간관계 전문가로 활동해오며 '사랑 치료사'로 불리는 저자는 어느 날 아내와 직장을 잃고 재산마저 모두 날려버린 친구가 "이 지독한 절망의 시간들을 이겨내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물어오자 다양한 실제 사례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심리 · 정신적 치유법 10가지를 명쾌하게 제시한다. 10가지 처방 속엔 슬픔과 상실감을 해소할 수 있는 작은 행동부터 심리적 면역력을 키우는 마음가짐,내면에 잠재된 부정적 심리기재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방법,새로운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는 통찰까지 두루 담겨 있다. 네덜란드의 판화가 모리츠 에셔의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작품을 예로 들며 "우주의 모든 것은 복잡하고 광활하듯이 자기 자신과 삶을 무한히 넓은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면서 시련이 주는 의미를 우회적으로 일깨운다. 또 "힘들 땐 울어야 한다. 우는 것은 당신이 나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는 행위 자체가 치유력을 갖고 있으므로 눈물을 흘려야 한다"며 다시 출발점에 서도록 독려한다. "누구나 한 번은 바
1970년대 유럽 신문엔 중세 투구를 쓰고 일본도를 허리에 찬 사무라이가 혼다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을 질주하는 만화가 종종 실리곤 했다. '일본주식회사' 혹은 '이코노믹 애니멀'의 단골 모델이 사무라이였다. 그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과 영화는 언제나 흥행가도를 달렸고 한 · 일전을 앞둔 일본팀 감독은 늘 사무라이식 정신무장을 강조한다. 왜 이토록 사무라이인가. 일본 근대 최고의 지식인 니토베 이나조는 "무사도 즉 사무라이 정신이 일본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이고 정체성의 뿌리"라며 일본 저변에 깔린 의식을 들춰냈다. 잊혀질 뻔한 사무라이 정신이 군국주의 부활과 함께 되살아난 것이다. 이 책 《사무라이》는 사무라이의 기원과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여전히 남아있는 이들의 미스터리를 심도있게 분석했다. '사무라이' 하면 무시무시한 칼잡이가 떠오르지만 그들은 원래 영주인 다이묘가 다스리는 지역 안에서 질서유지를 담당하는 엘리트 계층이었다. '시중드는 자'라는 뜻을 지닌 이들이 처음 등장한 건 10세기 무렵.사무라이에게 무례를 범하면 언제든지 칼로 목을 쳐도 된다는 '키리스테고멘' 권한이 있었던 만큼 규범도 엄격했다. 그 엄격함 속에는 주군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명예를 더럽히지 않는 것 등이 포함돼 있었다. 명예를 더럽힌다는 것은 곧 할복을 통한 죽음을 의미했다. 재미있는 것은 최초의 사무라이는 왕족이었고,기마궁수였으며,그들에게도 종종 하극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사도의 준칙이 조선 선비의 규범과 다르지 않다는 것 또한 흥미롭다. 사무라이 정신이 오늘날 너무 미화되고 있다는 세간의 얘기가 많지만 저자는 일본 전문가답게 실체적 접근을 통
'법이 산을 자르게 하라.'이 말은 무슨 뜻일까.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재판관은 조정과 타협을 위해 소송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일단 판결을 내리면 더 이상 조정해서는 안 되며,법이 산을 자를 만큼 엄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가난하고 궁핍한 일꾼은 그가 너의 형제든 아니든 간에 억압하지 마라.그에게 그날 해가 지기 전에 일당을 주어라.그가 왜 높은 사다리에 올라가고,죽음까지 무릅쓰고 위험한 일을 했겠는가'라는 말은 유대 율법에 기초한 고용주의 윤리에 관한 것이다. 《승자의 율법》은 이런 유대의 오랜 가르침을 92개 장으로 편집해 현대인들이 겪는 삶의 딜레마와 의문을 조목조목 해결해준다. 생명은 왜 중요한가,결혼하면 행복한가,증오는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등 인간 세상의 근원적 의문에서부터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는가,자연은 누구의 것인가,왜 법을 지켜야 하는가 등 철학적인 주제까지 핵심적인 질문과 답변들을 수없이 주고 받는다. 그리고 어떤 민족도 자유로울 수 없는 "전쟁은 왜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가"라는 경고 메시지를 홀로코스트의 역사로 일깨운다. 리더십에 대해 저자는 벌거벗은 왕자가 다시 옷을 입게 되는 과정을 예로 들면서 "만일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동정과 조언으로는 부족하다. 동정과 조언 모두 상대에게 잘못된 점을 인정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리더십에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상대와의 공감"이라고 일갈한다. '드러내지 않고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모세보다 더 위대하다''나 자신의 빵을 추구하는 것은 물질적인 갈구이지만,내 이웃을 위해 빵을 추구하는 것은 영적인 갈구다'라고 말한 러시아의 종교실
로마 시청(카피톨리노궁)에 가면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두 형제'라는 청동상이 있다. 두 형제의 이름은 로물루스와 레무스.로마 건국신화의 주인공들이다. '로마'라는 도시 이름도 이들 형제의 이름에서 비롯됐는데 이들이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곳이 테베레 강 인근의 아벤티노 언덕이다. 아벤티노 언덕은 로마를 지리적으로 구성하는 7개의 언덕(팔라티노,카피톨리노,아벤티노,첼리오,에스퀼리노,비미날레,퀴리날레) 가운데 하나로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전차경기장과 앞뒤 얼굴이 다른 '야누스의 아치'가 있는 곳이다. 《일곱 언덕으로 떠나는 로마 이야기》는 로마의 일곱 언덕을 따라 펼쳐진 수많은 유적지를 소개하고 그곳을 거쳐간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로마제국의 역사가 고작 7개의 언덕에서 시작됐다니 시작부터 흥미롭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신전 · 원로원 · 티투스 황제 개선문….팔라티노 언덕은 고대 로마제국의 유적이 많고 키케로가 실용주의를 전파한 곳이다. 두 번째 카피톨리노 언덕은 가장 작지만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며 로마 시청 본관이 있는 곳이다. 아벤티노 언덕은 주류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이는 장소인데 카라칼라 황제의 목욕장은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칙령'을 발표한 '라테란 성요한 대성당'은 첼리오 언덕에 있다. 에스퀼리노 언덕의 성 베드로성당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역작 '모세상'을 감상할 수 있고 상인들이 모여 살던 비미날레 언덕의 로마국립박물관은 목욕장을 개조해 만들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퀴리날레 언덕.이곳엔 그 유명한 트레비 분수와 현재 대통령 관저인 퀴리날레
이로공명(異路功名 · 다른 길에서 공명을 이룸)의 사주를 타고난 저자가 독문학을 접고 풍수학 교수로 전공을 바꾼 것은 우연이 아니다. '풍수'가 본래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열망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그는 '신들린 듯이' 책을 썼다. 《조선풍수,일본을 論하다》는 그 중 하나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부터 국가 권력과 부를 적절하게 분배하기 위해 풍수를 수용했다.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를,세종이 '풍수 테크노크라트'인 이양달을 중용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 말기부터 국운과 함께 쇠퇴해 살아 있는 사람의 집터를 보는 양기 풍수는 사라지고 묘지를 고르는 음택 풍수만 남았다. 그런데 저자가 '실패한' 조선의 풍수지리 잣대를 일본 왕릉과 정원에 들이댄 이유는 뭘까. 풍수지리가 백제에서 일본으로 전래된 것은 7세기 무렵.그후 오랜 기간을 거쳐 일본화에 성공했다. 11세기 헤이안 시대의 유명한 조경고전인 《작정기》를 보면 일본풍수는 산보다 물을 중요시했다. 우리는 사신(四神)을 사산(四山)으로 여기지만 일본에서는 주산(主山) 이외의 나머지 삼신(三神)은 연못(주작),흐르는 물(청룡),큰 길(백호)로 삼았다. 정원은 일본 풍수가 가장 잘 나타난 예인데 임금과 신하,백성의 3자 관계를 구현했다. 왕릉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조선의 왕릉과 비슷한 모습을 취했다가 점차 배산임수가 아닌 배수임산(背水臨山)의 형태를 띤다. '산은 인심을 나누지만 물은 인심을 합친다'는 걸 알고 난 뒤 일본은 도읍지를 에도(江戶 · 도쿄)로 옮겼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장풍국(藏風局) 지세에서 큰 물로 감싸인 득수국(得水局) 형세로 탈바꿈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유럽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문학과 역사는 별개일 수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박경리의 《토지》나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좋은 예다. 이 책 《문학의 숲에서 동양을 만나다》는 중국의 문학 속에서 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조우하고 풍부해졌는지 보여주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3000년 전 서민의 대중가요였던 악부민가(樂府民歌) '하늘이시여'를 통해 보니 그 당시에도 사랑은 영원한 테마였으며,'열다섯에 군대에 갔다가 여든 살이 되어 돌아왔다오'라고 시작하는 '열다섯에 군대에 갔다가'는 한나라 버전 '이등병의 편지'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포공안》이나 《칠협오의》를 읽으면 '철면무사' 포청천의 진면목을 만나볼 수 있다. 산서성의 전승민가 '서구(西口)를 나가며'는 돈을 벌러 목숨을 걸고 이역까지 떠나는 사람들을 묘사했다. 실제로 가장 뛰어난 상인 뇌리태(雷履泰)는 1800년대에 이미 스톡옵션제를 도입한 중국 최초의 CEO라 할 만하다. 또 익히 알려진 두보의 시와 한말(漢末) 건안 시기의 문학적 특징인 건안풍골(建安風骨)은 시차가 있지만 사뭇 비극적인 인간의 모습을 담아냈다. 당나라 시인 이백 · 이하와 북송의 소동파는 인생이 짧으니 현세를 즐기라는 메시지를 전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분서》와 《항서》에서 공자의 이름만 빌려 위선에 가득찬 당시 도학자들을 비판했다가 이단으로 몰려 면도칼로 자결한 이탁오와 양명좌파였던 김성탄은 인간의 주체성 회복을 주장하고 개인의 자유와 감정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장자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문학사와 역사 속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화석화된 이름을 '사람'으로 되살려 내겠다고 프롤
감옥은 단절을 전제로 한다. 감옥은 그래서 두렵고 고통스러운 곳이다. 하지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쓴 신영복 교수처럼 단절감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의 에너지가 분출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감옥에서 신채호는 《조선상고사》를,홍명희는 《임꺽정》을 세상에 내놨다. 김남주는 우유곽에 못과 손톱을 꾹꾹 눌러 《나의 칼 나의 피》라는 시를 썼다. "사형은 영혼의 모독이다"라고 외친 도스토예프스키는 차가운 옴스크 감옥에서 《죽음의 집의 기록》을 남겼다. 이 책 《가시울타리의 증언》의 저자는 30년간 교도관으로 일하면서 지켜본 감옥 사람들의 단절 극복기와 에피소드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12 · 12 군사반란 사건 관련자들,김지하 · 이부영 · 김근태씨 등 민주화 인사들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1988년 탈옥한 지강헌 등 교도소를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굴곡진 우리 현대사를 조명한다. 아울러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실상이 알려지는 데에는 한 교도관의 결정적인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23년 만에 처음 공개했다. 이 책에 따르면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내가 왜 구속돼 중형을 받아야 하나. 좌익들로부터 나라를 구한 사람이 나인데…"라고 말했다. 고문 피해자였던 김근태 전 의원은 44일간 감방에 머무르며 130여장의 미농지에 글과 그림으로 고문당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했다. "흑산도에서 태어나 스물 넷의 꽃다운 나이에 교도소 망루에 올라간 청년은 어느덧 노인의 형상이 되어 버렸다.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등대와 망루는 둘이 아니고 하나였다. "저자는 자신은 추관(秋官 · 형리)이 아니라 끝끝내 사랑의
1963년 겨울,김포공항엔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귀국.그러나 그는 들것에 실린 채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으로 돌아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7년 후,실어증에다 오랜 병세를 회복하지 못한 영친왕은 끝내 서거하고 말았다. 고종황제의 아들이자 순종과 의친왕의 이복형제인 영친왕은 불과 열한 살에 볼모가 돼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로부터 50여년간 일제의 침탈과 조국의 해방 등 역사적 소용돌이에서 그는 말 그대로 '손발이 묶인' 비운의 황태자였다. 1971년에 나온 책을 한 · 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재출간한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은 '황실판 토지'라 할 만하다. 영친왕뿐만 아니라 침몰하는 왕조의 배에 동승한 주변 사람들의 얘기가 소설보다 흥미롭게 펼쳐진다. 40년의 시차를 보상할 만한 내용의 버전업은 없지만 군데군데 곁들여진 당시의 낡은 사진들과 구체적인 묘사로 인해 감동은 그대로다. 덕혜옹주가 영친왕처럼 정략결혼의 희생자가 될 것을 우려해 고종이 일제 몰래 조선인과 정혼시키려 했던 얘기,헤이그 밀사 사건을 주도했던 헐버트 박사가 '내가 묻힐 곳은 웨스트민스터가 아니라 한국땅'이라며 4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이 땅에 묻힌 눈물겨운 사연,김구의 임시정부가 국권 회복을 위해 상하이를 여행 중이던 영친왕을 납치하려 했던 일 등은 현장감 있게 읽힌다. 한국 정부가 구황실 재산을 국유로 돌리려 하자 소송을 권유하던 변호사에게 '아무리 곤란하더라도 내 나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는 일화는 평소 영친왕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의 가족과 대한제국 황실의 오랜 인연이 이 책
기원전 202년.로마군의 코넷(작은 트럼펫같이 생긴 금관악기)과 나팔 소리가 북아프리카 자마평원을 요란하게 뒤흔들었다. 카르타고군의 선두 대열에 있던 80마리의 코끼리들이 순간 당황하여 자기 진영으로 돌진,전열이 흐트러지자 로마군들은 양쪽 측면에서 창을 찔러댔다. 잘 훈련된 5만여명의 기병과 보병은 마침내 우왕좌왕 도주하기 시작했다. 당시 지중해와 북아프리카를 호령했던 카르타고는 이 전투를 기점으로 서서히 저무는 해가 된다. 패장은 한니발이었다. 알프스를 넘어와 로마를 풍전등화의 지경에 몰아넣었던 고대사 최고의 명장을 누가 무너뜨렸단 말인가. 바로 로마의 애송이 장군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다(아프리카누스란 별칭이 이때부터 생김).그런데 승자만 기억하는 관례를 깨고 역사학자들은 왜 한니발만을 조명하는 것일까.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쓴 리델 하트를 통해 스키피오의 진면목을 살펴보자.기원전 235년에 태어난 그는 17세에 티치노를 시작으로 에스파니아의 카르타헤나 · 일리파,시리아의 안티오코스 전투에서 고비마다 로마를 구했다. 이 일련의 승전보는 로마가 제국으로 치닫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때 그가 보여준 '이중사선 기동작전' 등의 전술은'전투의 천재' 한니발보다 한수 위였다. 그리고 정복민에게 편 관용정책은 사뭇 인간적이었다. 젊은 나이에 커다란 업적을 세운 스키피오는 그러나 로마 원로원의 정치적 파벌과 질투의 희생양이 돼 망명과 다름없는 은둔생활을 하다가 "배은망덕한 조국이여,그대는 내 뼈를 갖지 못할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삶을 마감한다. 같은 해 열두 살 위인 한니발도 패전의 짐을 진 채 독약을 먹
어린 시절과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었다. 좋건 나쁘건 그에 대한 기억은 갈수록 희미해지다가 언젠가는 지워질 위기에 처할 것이다. 그 일부분이라도 되살릴 수 있는 연결고리는 과연 없을까. 《아버지의 정원》을 쓴 저자가 고안해 낸 방법은 그 기억의 편린들을 명화 이미지와 겹쳐 놓고 단단한 '기억의 저장고'를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작품의 설명을 돕기위해 그 때의 모습들을 단지 배경음악으로 깔았을 뿐 일지도 모른다. 명화 이미지와 어린시절의 추억.이 둘은 서로 껴안고 스며들어 색다른 경험을 불러 일으킨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비행기 놀이기구를 타고 빙빙 돌면서 주변이 해체되고 색채가 혼합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 때 칸딘스키의 추상화 '즉흥6-아프리카'를 접목시켜 사물이 구체적인 형상을 상실하고 추상적인 색채의 면들로 전환되는 순간을 포착해 알기쉽게 조목조목 설명해 나간다. 케테 콜비츠의 '죽음의 위로'는 그가 한탄강에 빠져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경험과 데칼코마니(어떤 무늬를 얇은 특수 종이에 찍은 뒤 다른 표면에 옮기는 회화기법)가 된다. 또 조르지오 데 키리코의 '거리의 우울과 불가사의'에 드러난 메타피지컬 이미지와 기하학적 긴장을 드러내기 위해 초등학교 시절 자신의 악몽을 떠올리기도 한다. 저자가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전곡 대구 원주 등으로 떠돌며 12세까지 겪었던 32개의 에피소드에는 모네,뭉크,마티스,프리다 칼로,칸딘스키와 김득신,안도 히로시게 등 익숙한 동 · 서양 화가들의 그림이 이처럼 시간차 없이 쓰윽 편입하게 된다. 이웃 장르인 연극 · 음악 · 영화 등에 관한 예술적 식견도 양념으로 곁들인다. 화
1만원권 지폐 뒷면에 있는 그림은 무엇일까. 1430년대 조선의 왕립 천문 기상대인 서운관에서 만든 천문시계 '혼천의'다. 지폐 앞면에 세종대왕이 있으니 그의 위대한 업적임을 유추하는 게 어렵지 않다. 측우기,자격루,앙부일구 등 우리의 자긍심을 한껏 고취시킨 천문관측기기는 이 밖에도 수없이 많다. 자기 것이 위대하다고 떠들어봐야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소용없는 법.그런 면에서 이 책 《조선의 서운관》을 덮고 나면 왠지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간다. "15세기 조선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첨단 관측기기를 소유했다"는 찬사를 들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쓴 20세기 최고의 과학사 대가 조지프 니덤(1900~1995년)에게서.이 책은 1392년부터 1776년까지 조선 천문학의 위대한 과학적 에너지를 보여주는 천문의기와 성도에 대한 연구 성과물이다. 각종 사진과 복원도를 동원해 작동 원리까지 세밀하게 고증했으니 인문서가 아니라 기술서라 할 만하다. 저자들은 책 머리에서 조선왕조에 대한 역사적 편견부터 통렬히 비판한다. 이들에 따르면 조선이 신유교주의와 관료적 파벌주의로 인해 정체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중국 문화권에 속하는 민족 중에서 한국인은 과학과 기계기술에 가장 관심이 컸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종대왕은 새로운 천문학 기기를 제작하기 위해 엄청난 국고를 썼고,천문학 지리학 수학에 관한 책과 각종 의기의 견본을 입수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저자들은 또 한국의 천문학이 중국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그것들을 변형하여 민족적 독창성을 발휘했다고 찬사를 보낸다. 이 책에서 언급한 각종 의기와 문서 기록들은 한국과 세계
신라와 비잔틴제국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천년 역사다. 비결은 위기에 대응하고 변해가는 것,곧 유연함이다. 고구려와 백제 사이를 줄타기하며 때론 당나라와도 손잡는 절묘한 변용술로 신라는 삼국을 통일했다. 비잔틴제국은 동서문물을 끊임없이 융합하고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역사에 길이 남았다.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은 역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비잔틴제국을 동로마제국으로 부르며 고대 로마의 쇠퇴 과정으로 봤다. 그러나 비잔틴제국 연구의 권위자인 이노우에 고이치 일본 오사카 시립대 교수는 《살아남은 로마,비잔틴제국》에서 기번의 주장을 갈피마다 뒤집어 놓는다. 유럽과 아시아,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경계라는 문명의 교차점에 자리 잡은 비잔틴제국.표면적으로는 로마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웠지만 속은 실용주의로 꽉 차 있었다. 여성의 재산권을 인정하기 위해 불멸의 대법전으로 통했던 로마법을 왜곡했던 것이 단적인 사례다. 또한 비잔틴의 황제들은 절대적 권위자였지만 누구나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유스티누스 1세(450?~527)는 돼지를 키우던 평민이었고 유스티니아누스 1세(483~565)의 아내는 서커스단의 무용수였다. 혈통이나 집안 배경과 상관없이 누구나 출세할 수 있는 열린 사회였던 것이다. 힘 빠진 로마제국이 동 · 서 로마로 분열한 다음,동로마로 쪼그라든 8세기 중반 비잔틴제국의 영토를 보라.바로 지워질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비잔틴은 11세기 초에 거뜬히 회생해 강대국으로 성장한다. 그 후 셀주크 투르크와 십자군 등에 번번이 침략당했으나 그들과 동화하고 융합하면서 13세기 후반까지 건재함을 과시했다. 14세기 중반에 모든 힘을 잃고서도 100여년을
1990년대 후반 햄버거 가게 아르바이트생으로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신인류. 월드컵의 거리응원과 촛불시위를 주도하며 블로그,페이스북,트위터 등의 소셜 네트워킹으로 사회 흐름의 중심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Y세대,구글세대,에코 부머(Echo Boomer),테크세대라고도 불리는 밀레니얼 세대다. 우리는 거리에서,쇼핑몰에서,혹은 거실에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과 문자 메시지를 전송하고 아이튠즈로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는 일을 모두 한꺼번에 처리하는 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새로운 세대가 출현하면 기존 세대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생각해보라.X세대가 처음 나타났을 때에도 이전 세대들은 반신반의하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못마땅하게 여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단순히 밀레니얼 세대를 비판만 하지 않는다. 그들의 장 · 단점과 특징을 동시에 언급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기존질서에 적응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한다. 우선 그들의 특징을 보자.그들에겐 이전 세대와는 다른 7가지 요인이 존재한다. 이 책에서는 이를 'M팩터(factor)'라고 부른다. M팩터는 부모,권능감,의미,높은 기대치,빠른 속도,소셜 네트워킹,협력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직장에 다니면서도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성공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 뿐만 아니라 빠른 속도의 컴퓨터와 소셜 네트워킹에 익숙하며 협력을 통한 의사결정을 존중한다. 그렇다면 직장에서는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끌어야 할까. 답은 자명하다. 그들의 독특함과 열정을 존중해주는 것.그리고 그
"만드는 사람과 파는 사람 그리고 사는 사람까지 모두가 기뻐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기업에서 이익이 나지 않는 것은 사회에 공헌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와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알려진 바와 같이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서 맨주먹으로 창업해 당대 최고의 기업을 일군 전설적인 일본의 '기업영웅'들이다. 도대체 그들에겐 어떤 DNA가 있기에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승승장구하는 것일까. 《경영의 맞수》는 각각 '혁신의 천재'와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두 사람의 성격부터 창업,경영철학,인재육성,기술관,위기관리 전략 및 인생철학에 이르기까지 8가지 범주를 비교하며 그들의 삶과 철학,경영 노하우를 읽어낸다. 우선 혼다 소이치로를 보자.그는 다른 사람,다른 회사를 절대 모방하지 않고 자체 기술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기술관을 견지했다. 기술개발에 관한 한 전폭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현장 근로자들을 늘 우선 배려했다. 사장실 대신 작업복 차림으로 공장으로 출근해 직원들과 자유롭게 토론하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중시했던 그는 "애사심 따위는 필요 없다. 자신을 위해 일하라"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혁신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험난한 도전을 즐기는 '혼다 웨이'(Honda way)가 정착된 것이다. 그에게는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혁신경영의 냄새가 은연 중 배어 있다. 이에 비해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경영관은 한마디로 "맡기면서 맡기지 않는다"로 요약된다. 그는 처음으로 사업부제를 도입해 부하 직원에게 권한을 이양하면서도 경영의 최종 책임은 경영자에게 있음을 항상 잊지 않
'현대과학은 쥘 베른의 뒤꽁무니만 쫓아왔다. '역사학자들이 근대 SF문학의 창시자에게 보내는 이 헌사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가 쓴 《지구에서 달까지》를 읽고 두 명의 천재 로켓 과학자가 탄생했으며 그들이 오늘날 인류의 우주과학시대를 앞당겼으니까. 베르너 폰 브라운(1912~1977년)과 세르게이 코롤리오프(1906~1966년).《로켓,꿈을 쏘다》는 당시 미국과 소련을 대표했던 이들 두 과학자의 삶과 우주를 향한 인생역정을 쥘 베른의 소설보다 더 흥미롭게 전개한다. 노동수용소에서 기사회생한 코롤리오프는 러시아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대륙간탄도탄 'R-7세미오르카'를 개발,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다. 그러자 다급해진 미국은 나치의 추적을 피해 온 독일 출신의 폰 브라운을 불러 '새턴-V'를 만들게 해 아폴로11호를 발사,마침내 우주전쟁에서 승리한다. 인공위성,유인 우주왕복선,달 착륙 등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얻기 위해 양국이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1944년부터 1969년까지 벌인 치열한 우주전쟁의 와중에 걸출한 이 두 로켓 과학자가 있었던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주인이 되겠다는 그들의 순수한 꿈이 현실화된 때는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이라는 극단의 시대였다. 중세 십자군전쟁 당시 다친 병사들을 치료하기 위해 외과수술이 발달했던 것처럼 역사의 아이러니가 재연된 것이다. 로켓의 탄생 과정을 과학자의 눈으로 꼼꼼하게 그려낸 이 책은 지구 밖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인류의 오래된 꿈을 현실로 만든 우주비행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았다. 뿐만 아니라 로켓이 추진력을 얻기 위해 작용 · 반작용 법칙이 적용되는 원리 등 호기심을 풀어주는 이야기가 가
미국의 한 식음료 회사가 임원 20명을 대상으로 유머성 발언의 빈도를 조사했더니 평범한 임원은 시간당 7.5회,뛰어난 임원은 이보다 2배 이상 많은 17.8회였다고 한다. 연봉을 많이 받는 임원이 유머성 발언을 보다 많이 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회의 중의 적대감과 긴장을 해소해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한다는 얘기다. 《유머가 이긴다》는 유머의 필요성은 알지만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리더들을 위한 지침서다. 단순히 유머 화술이나 조크를 모아 놓은 데서 벗어나 '사람은 왜 웃을까'라는 근원적인 문제부터 유머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와 원리까지 조목조목 짚어준다. 저자는 "사람들이 왜 웃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왜 웃는지가 중요하다"며 소통을 위한 장치로서 유머의 쓰임새를 강조한다. 또한 유머 감각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 스킬의 문제이므로 누구나 유머리스트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펀(fun)경영'을 통해 회사의 능률을 배가한 구체적인 사례와 유머를 적절히 구사하는 상황별 매뉴얼을 제시한다.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
"이런 시험은 전 국민이 다 같이 봐야 하는데…."건국대 고사장에서 검은색 헌팅캡을 쓰고 대학생들 사이에서 시험을 치르는 60대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국세청에서 30여년간 일하다 정년 퇴임한 후 세무사로 일하고 있는 남수현씨(62).그는 대학생들이 보는 시험에 어떻게 응시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모든 국민이 경제를 알아야 사회적 비용이 덜 수 있다"며 "테샛이 국민시험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테샛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 7월 중순께. 인터넷을 검색하다 테샛을 우연히 알게 된 그는 그때 어떤 필(?)을 느꼈다고 한다. "경제를 계속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30년 만에 다시 경제학 서적을 집어들고 차근차근 공부하고 있어요. 준비기간이 짧아 내심 다음에 응시하려 했다가 자신감이 생겨 내친 김에 도전하게 되었네요. "학생들 사이에서 밝게 웃는 남씨는 "이렇게 좋은 시험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응시해야 하는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나 승진을 목표로 하는 기업체 사람뿐만 아니라 중학생부터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수준별 시험을 치르게 해서 경제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주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
산시(陝西)성의 성도 시안(西安)에서 3m 깊이의 땅을 파면 당나라 유물이,5m를 파면 한나라 유물이,9m를 파면 진나라 유물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명나라 초기까지 장안(長安)이라고 불리던 3100년 역사의 고도 시안.1100년간 중국 13개 왕조의 도읍지였으며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실크로드의 출발지였다. 중국대륙 한가운데 위치해 중원(中原)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을 차지하는 자가 천하를 호령하였다. 그런 시안에 가면 진시황(秦始皇)을 만날 수 있다. Take 1 2천년 잠에서 깨어난 병마1호용갱 안에 들어서자 자욱한 흙냄새가 시야를 가렸다. 수천년간 먼지로 분화된 살아 있는 사람 냄새 같았다. 눈을 뜨자 소름이 돋았다. 그때였다. 수천의 병마들이 흙먼지를 툭툭 털며 내게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플래시를 연방 터트리며 뒷걸음질칠 때마다 2000년 전 황제의 무덤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타임머신을 돌려보자.진시황(기원전 259~210년)은 자신의 무덤인 여산(驢山)에서 1.5㎞ 떨어진 지하통로에 병마들을 세워 사후세계를 지키게 했다. 동서 길이가 230m 너비가 62m인 1호갱 안에 신장 180㎝ 정도의 기병과 보병 6000여명,32기의 말,8대의 전차를,2호갱 안엔 전차병부대,3호갱 안엔 청동마차에 갑옷을 입은 지휘관 부대를 배치시켰다.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낸 숫자만 도합 8000여명. 1974년 우물을 파던 세 명의 농부에 의해 우연히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병마용(兵馬俑).지금이라도 살아서 막 걸어나올 듯하다. 자세히 보니 얼굴 표정,옷차림,상투 튼 모습도 제각각이다. 일부는 발굴 도중 훼손되고 목 부위가 없는 채로 순장(?)됐는데 마치 전사자처럼 느껴졌다. 갱내 곳곳에선 발굴작업이 지금도 한창
다코야키(문어빵)는 천천히 식혀 가며 먹어야 한다.한입에 넣어 물었다가는 입천장을 데기 십상이다.오사카행 비행기 안에서 멋모르고 다코야키를 먹다 혼쭐이 났던 기억이 떠올랐다.'1시간20분이면 닿을 일본이 다코야키 속처럼 뜨거운 문화적 충격으로 먼나라가 되지는 않을까?' 비행기는 어느덧 오사카 상공에서 숨을 고른다.공항 이용료가 비싸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간사이국제공항이 저 아래 짙푸른 오사카만의 인공섬 위에 하얀 벚꽃처럼 단아하게 떠 있다.거미줄보다 더 촘촘하다는 일본의 전철을 탔을 때 이방인의 낯설음은 금방 사라진다.공항에서 오사카 시내까지 50여분간 펼쳐진 창 밖의 풍경이 친숙하다.망설임 없이 차창을 스치는 건물들과 그 사이에서 빠져나오는 사람들이 어디서 본 듯하다.멀리 솟아 있는 산과 너른 논밭 풍경도 익숙하다.일본이라서 갖게 되는 괜한 거리감이 저만치 물러설 때마다 하품 같은 지루함도 함께 멀어졌다.목적지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USJ),유니버설시티 역까지 전철(JR선 또는 난카이센-니시쿠조역 환상선 경유)로 11분을 더 가야 한다.요금이 1300엔 정도 하는 리무진 버스로는 1시간 내외에 도착한다.전철역 플랫폼을 나와 5분 정도 걸으니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단장한 USJ 정문이 반갑게 마중한다.호텔 긴테스 유니버설시티 등 인근에 있는 공식 숙소들도 크리스마스와 디즈니 캐릭터 장식으로 연말연시 특수 준비에 한창이다.USJ는 연인과 함께 낭만의 크리스마스를 즐기기에 알맞다.9개의 어트렉션별로,영화와 관련된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이벤트를 열어 전 세계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그 중에서도 매년 11월8일부터 12월25일까지 48일
마카오하면 얼른 카지노가 떠오른다. 잭팟의 꿈에 젖은 이방인들을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그러나 아열대성기후 특유의 끈적함이다. 평균기온 섭씨 28도,습도 85%. 태풍 인부도의 접근 소식을 접하고 공항을 빠져나온 차는 어느새 주장강(珠江)위의 다리를 건넌다. 그 옛날 중국대륙을 호령하던 황제의 권위는 붉은색으로 표현된다. 대륙의 그 붉은 기운이 주장강을 타고 난하이(南海)로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대낮에도 장엄하다. # 마카오의 역사 문화 아오먼(澳門) 또는 무역의 관문으로 일컬어지는 마카오는 2개의 섬(타이파,콜로안)과 주도(主都)가 있는 마카오로 구성되어 있다. 2개의 섬은 각각 다리로 주도와 연결된다. 홍콩과 인접한 마카오는 1553년 포르투갈 사람들이 첫발을 들여놓은 후 1999년 1국 2체제의 중국으로 귀속되기까지 사연 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실제로 마카오의 명동 알메이다 리베로 지역을 비롯하여 시내 곳곳엔 동서양문화가 혼재된 건물들이 즐비하다. 세나도광장의 보도블록은 청백이 조화된 독특한 물결무늬다. 이 광장의 주인은 중국사람들과 포르투갈인,그리고 낮선 이방인. 마치 인종전시장을 방불케한다. # 카지노 천국 외지인뿐만 아니라 마카오사람들도 도박을 즐긴다. 그래서 카지노는 대낮에도 문전성시다. 호텔 리스보아(葡京酒店)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호텔에 카지노가 있다. 20대초반의 대학생부터 80대 촌로까지 수백불짜리 칩을 들고 있다. 그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관광객들 처럼 한순간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오늘 아니면 내일이 있다는 식으로 느긋하게 즐기는 것 같다. 또 하나의 볼거리는 경견(競犬). 앞선 토끼를 쫓는 개들이 마
세계 광산업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미국 광산업전문전시회 "OFC 2001(Optical Fiber Communication Conference)"가 지난달 17일부터 22일까지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열렸다. 이번 컨퍼런스에는 전세계 9백70여개 업체,3만8천여명이 참가,8백70여개의 부스를 설치하고 크고 작은 각종 세미나와 심포지엄을 여는 등 규모부터 작년보다 두배이상 커졌다. 특히 이번 컨퍼런스에는 인텔 IBM 루슨트테크놀러지 지멘스 NEC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대거 참가,그 열기를 더했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를 비롯,광모듈전문생산업체인 ATI 화이버프로 루벤틱스 등 32개업체가 부스를 설치하고 5백여명의 참가단을 파견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본 광산업의 흐름은 역시 광통신분야에 집중됐다. 광통신 시스템분야를 주도하고 있는 루슨트테크놀러지 알카텔 등은 예년보다 훨씬 앞선 기술력을 선보였고 투자규모도 크게 늘리는 등 향후 21세기의 주력산업으로 양성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번 컨퍼런스의 특징중의 하나는 아시아 IT강국인 인도 대만 등의 약진이다. 특히 인도는 풍부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광정보분야에서 다양한 첨단기술을 선보였다. 전시회에서 만나 한 대만 정부 관계자는 "전자산업이 발달한 일본 한국 대만 등은 광산업에 모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며 "대만 정부도 광산업에 강력한 지원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신죽(新竹) 과학공원에 광산업 집적단지를 구성해 놓고 세금감면과 저리융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산업 육성을 위해 외국인 등 투자자들을 철저히 보호하는 시책을 펴고 있다고 강조했다. 외국 정부와 기업들이 광산업 육성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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