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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뭐 먹을까?” “저는 냉면이요.” 식당에서 들을 만한 대화다. “기름은 얼마나 넣을까요?” “가득이요.” 주유소에선 이런 말이 오간다. 두 장면에서 공통적으로 쓰인 ‘-이요’(냉면이요/가득이요)는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말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규범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했다. 현실언어에서는 활발히 쓰였지만, 공인된 어법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책요?”로 쓰던 말…이젠 “책이요?”도 돼그러던 ‘-이요’가 지난 2월 《표준국어대사전》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보조사’라는 자격을 얻어 표제어로 올랐다. 문장 안에서 ‘주로 발화 끝에 쓰여 청자에게 존대의 뜻을 나타내는’ 일을 한다. 보조사란 체언, 부사, 활용 어미 따위에 붙어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더해 주는 조사를 말한다. ‘-은/는/도/만/까지/마저/조차/부터’ 같은 게 보조사다. 이들은 문장 안에서 때론 주격으로도, 목적격으로도 쓰이는 등 특정한 역할에 머무르지 않아 격조사와 구별해 ‘보조사’라고 부른다.예전엔 그런 보조사 중 존칭보조사인 ‘-요’를 써서 “냉면요” “가득요”처럼 쓰던 말이었다. 이를 ‘-이요’로 하는 것은 비문법이었다. 지금은 두 가지 다 어법에 맞는 말이 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몇 층 가세요?”라고 물어올 때 “10층이요”라고 해도 되고 “10층요”라고 해도 된다. “민준이가 올해 몇 살이지? 여섯 살이요/여섯 살요.” “너는 전공이 뭐니? 국문학이요/국문학요.” 이제는 모두 가능하다.이는 1933년 ‘한글마춤법 통일안’에서 규정한
지난 호에 이어 우리말 문장을 왜곡하는 사례를 좀 더 살펴보자. 관형어를 많이 쓰면 필연적으로 명사구 남발로 이어지고, 이는 문장의 리듬을 깨고 글을 허술하게 만든다. 부사어를 살려 쓰면 동사·형용사가 활성화돼 문장의 구색이 갖춰지고 글에 운율이 생긴다. 짜임새 있는 문장은 그 자체로 힘 있고 매끄럽다. 주어와 서술어 호응하지 않아 비문관형어를 남발하는 현상은 다양하게 발생한다. 다음 문장을 비교해보자.①그는 내일 떠날 ‘계획이다’. ②그는 내일 떠날 ‘전망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명사문인데, 두 문장은 비문 여부의 판단이 좀 다르다. ①은 서술어가 주어의 동작, 속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동사문으로 바꾸면 ‘그는 내일 떠나려고 계획하고 있다’로, 이게 기저문장이다. 그에 비해 문장 ②의 서술어 ‘전망이다’는 주어 ‘그’와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 ①과 같이 ‘그는 내일 떠나려고 전망하고 있다’로 해선 의미전달이 되지 않는다. ‘전망’의 주체는 제3의 누군가로 인식되는데, ‘그’가 주어인 문장에서 서술어로 행세하고 있으니 마치 머리 따로 꼬리 따로인 셈이다. 비문에 지나지 않는다.이런 오류는 글쓰기에서 흔히 일어난다. ‘수출이 급속히 늘어날 전망이다’, ‘아파트 분양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물가가 오를 전망이다’, ‘대북 관계가 악화될 전망이다’ 등이 모두 바른 표현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망이다’ 부분을 ‘~ㄹ 것으로 보인다’, ‘~ㄹ 것으로 전망된다’, ‘~ㄹ 것으로 예상된다’처럼 피동형으로 바꿔 동사문으로
과거와 달리 현명하고 지혜로운 소비를 실천하는 스마트 컨슈머가 늘어나면서 소비자 감동 서비스가 더욱 중요해졌다. 분야별 브랜드들은 소비자 지향 경영 문화에서 나아가 소비자를 우선으로 한 소비자 감동 서비스 문화를 전사적 차원으로 확산하고 있으며 소비자 만족도 제고는 물론 소비자의 권익과 가치를 높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노력은 소비자들로부터 브랜드에 대한 사랑과 신뢰로 돌아온다. 또 폭발적인 브랜드 경쟁력 향상이라는 놀라운 ...
2018년 11월 나온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저출산 극복이 사회적 현안이 된 지 오래된 터라 신문들은 그 내용을 앞다퉈 보도했다. 수많은 관련 기사 가운데 <국민의 절반 이상 ‘결혼은 필수 아닌 선택’>이란 제목이 눈에 띄었다. 혹시 이런 문장을 보면서 아무 이상을 느끼지 않는 이가 있을까? ‘필수 아닌 선택’은 무슨 뜻일까? 이게 어색하게 보였다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라’를 써야 할 데에 ‘아닌’ 남발‘무엇(이) 아니라 무엇’ 또는 ‘무엇(이) 아니고 무엇’이라고 쓰던 말이었다. 이 표현이 요즘은 ‘무엇 아닌 무엇’으로 쓰인다. 이른바 우리말에서 진행되고 있는, 부사어의 관형어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어법의 변화로 봐야 할까, 아니면 단순히 잘못된 글쓰기 습관 탓으로 돌려야 할까.글쓰기에서 관형어 남발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아니라’와 ‘아닌’의 관계는 그런 현상의 대표적 사례다. 부사어를 써야 할 곳에 습관적으로 관형어를 붙이는 것이다. 그런 사례는 너무나 많아 모국어 화자들이 더 이상 어색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다. 예를 들어보자. “전북 익산시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유턴 기업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이게 왜 ‘국내가 아닌 해외’가 됐을까? 이런 표현은 정통 어법에 익숙한 사람에겐 낯설다. ‘해외’를 강조하려다 보니 ‘국내가 아닌’을 수식어로 덧붙였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국내가 아닌 해외’란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적어도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라고 써야 한다. 그게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문법&
최근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 사건은 통칭 ‘아무개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으로 불린다. 약칭으로 ‘아무개 모해위증 사건’이다. 우리 관심은 사건의 내용이 아니라, 글쓰기 방식인 단어들의 선택과 구성에 있다. 이름 대신 인칭대명사 ‘아무개’를 쓴 까닭은 그 때문이다. ‘쉬운 단어’의 선택이 좋은 글쓰기의 출발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단어를 쓰느냐 하는 것(어휘 선택)은 글쓰기에서 우선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다. 단어는 단독으로 의미를 띨 수 있는 최소단위다. 그래서 글쓰기의 시작을 ‘단어의 선택’에 있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선택한 단어들을 얼마나 잘 배치하느냐(문장 구성)가 관건이다. 그에 따라 온전한 문장이 되기도 하고 배배 꼬인 비문이 되기도 한다.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그만큼 국민적 관심을 끌었던 ‘아무개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은 그런 점에서 얼마나 적절했을까? ‘어휘 선택’과 ‘문장 구성’의 관점에서 보면 피해야 할 어휘 조합이다. 사전 정보 없이 표현만 놓고 볼 때 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점에서다.우선 ‘모해(謀害)’부터 막힌다. ‘꾀할 모, 해할 해’ 자다. 그나마 한자를 알면 ‘꾀를 써서 남을 해침’이란 뜻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한자 의식이 흐려진 요즘 한글로 쓴 ‘모해’를 알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법령 용어 순화작업을 해오고 있는 법제처는 2014년 《알기 쉬운 법령 정비기준》을 펴낼 때 ‘모해’를 ‘해침’으로 바꿔 쓰도록 권했다. ‘위증’은 ‘거짓 증언&
‘생글생글’이 이번 호로 700호를 맞았다. 햇수로는 2005년 6월 창간호를 냈으니 만 16년 가까운 세월을 쉼없이 달려온 셈이다. 오는 6월 7일이 생글생글이 세상에 첫선을 보인 지 꼭 16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16주년’이라고도 하고 ‘16돌’이라고도 한다. ‘주년’은 ‘돌’과 같은 말, ‘회’는 ‘번째’와 같아‘돌’은 원래 어린아이가 태어난 날로부터 한 해가 되는 날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기서 의미용법이 확대돼 지금은 ‘특정한 날이 해마다 돌아올 때, 그 횟수를 세는 단위’로도 많이 쓰인다. “올해(2021년) 10월 9일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575돌이 되는 날이다”라고 한다. 이 ‘돌’과 ‘주년’ ‘주기’ ‘회’ ‘번째’ 등이 모두 차례나 횟수, 기간 등 비슷한 의미를 띠는 말이라 그 용법을 헷갈려하는 경우가 많다.‘주년(週年)’은 1년을 단위로 돌아오는 돌을 세는 단위다. 가령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가 열린 것을 기념해 다음 해에 행사를 열었다면 ‘월드컵 1주년 기념 행사’다. 이를 자칫 2주년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주(週)’가 돌아오다, 되풀이하다란 뜻이다. 1년 만에 다시 돌아온 행사이니 1주년이 되는 것이다. 요체는 주년을 따질 때 ‘기준이 되는 해는 세지 않는다’는 것이다.이 주년은 ‘돌’과 같은 말이다. 아기가 태어나서 1년이 지나면 ‘첫돌’ 잔치를 여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2000년 4월1일 태어난 사람이라면, 올해(2021년) 4월1일 생일이 만 21년, 즉 21주년 생일이다. 이를 “스물한 돌”이라고도 한다.‘돌
“吾等은玆에我朝鮮의獨立國임과朝鮮人의自主民임을宣言하노라此로써世界萬邦에告하야….” 1919년 3월 1일 전국 방방곡곡에 독립선언서가 울려퍼졌다. 일제 강점하에서 분연히 떨쳐일어나 민족의 독립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날이다. 우리말글 관점에서는 아쉬움도 많은 글이다. 선언서의 첫머리만 봐도 숨이 막힌다. 어미와 토씨를 빼곤 죄다 한자로 돼 있다. 100여 년 전 우리말글 실태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어미와 토씨 빼곤 한자로 된 3·1독립선언서한자 의식이 점차 약해져 가는 요즘은 아예 이를 읽지 못하는 이들도 꽤 있을 것 같다. 한글로 옮기고 띄어쓰기를 해보면 좀 나을까? “오등은 자에 아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야….” 여전히 어렵다. 독립선언서를 따로 배우지 않은 세대라면 아마 첫 구절부터 막힐 것이다. ‘오등은 자에’? ‘아조선’이라니? 한자어를 단순히 한글로 옮겨쓴 문장이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이태 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정부에서 ‘쉽고 바르게 읽는 3·1 독립선언서’ 작업을 벌였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이제 의미가 또렷해지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민족의 독립을 선언한 지 10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국민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문장으로 바뀌어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이다.‘쉬운 우리말 쓰기’ 개념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 원조는 마땅히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및 반포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훈민정음 서문에 그
올해 치러진 수능국어 13번 문항은 난도 자체가 그리 높은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우리말 용언의 활용법을 전반적으로 꿰고 있지 않으면 답을 찾기 힘든 문제였다. 그만큼 까다로운 활용 예들이 제시됐다. 교착어인 우리말은 어미 활용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잘 구사해야 매끄러운 문장이 나온다. ‘빻다’는 규칙동사…활용 시 어간형태 유지해보기의 예시문 ‘ⓒ갈은(→간) 마늘’은 ‘ㄹ’탈락 용언의 활용 오류를 바로잡은 것이다. 글쓰기에서 흔히 저지르는 오류다. 기본형 ‘갈다’가 ‘갈고, 갈면, 갈지’ 식으로 활용하다가 유독 어미 ‘-네, -세, -오, -ㅂ니다, -ㄹ수록/-ㄹ뿐더러’ 앞에서 ‘ㄹ’ 받침이 탈락한다(한글맞춤법 제18항). 이걸 따로 외울 필요는 없고 그냥 말로 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다만, 관형어미 ‘-ㄴ’이 올 때는 조심해야 한다. ‘갈은→간’을 비롯해 ‘녹슬은→녹슨/거치른→거친/피로에 절은→전/하늘을 날으는→나는/찌들은 삶→찌든/시들은 꽃잎→시든/검게 그을은→그은/떡을 썰은 뒤→썬’으로 활용한다. 무심코 화살표 앞처럼 적기 쉽지만 뒷말이 바른 표기다. 답지의 ‘③살-+-니 → 사니’ 역시 기본형 ‘살다’가 ‘사니’로 활용한 사례이므로 같은 유형이다.‘ㄹ’탈락 현상은 어간 끝 받침이 ‘ㄹ’인 용언은 예외없이 모두 적용된다. 그래서 이를 ‘불규칙’ 현상과 구별해 ‘탈락’이라고 부른다. 한글맞춤법상 용언의 활용에서 탈락 현상으로 분류되는 것은 이 외에 지난 호에서 살핀 ‘으’탈락이 더 있다.
미국 46대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당선인이 승리를 선언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가 국정인수를 준비하기 시작한 지난달 초. 외신을 통해 들어온 한 장의 사진이 우리말과 관련해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국전쟁 기념비 앞에 헌화한 뒤 경례하고 있다.’ 국기에 대한 경례는 목례로 할 수 없어그의 경례 동작은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댄 것이었다. 이를 두고 일부 독자들 사이에서 “이것도 경례라고 하느냐”란 의문을 제기했다. 경례는 손을 이마에 붙여 하는 게 아니냐는 뜻이었다. ‘경례(敬禮)’는 공경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인사하는 행동이다.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의 정의이다. 따라서 경례에는 수많은 동작과 방식이 있다. 사람이 하는 것뿐만 아니라 총이나 대포를 쏘는 예포사격도 있고 의례 비행도 있다. 사람의 동작도 고개를 숙여서 하기도 하고, 오른손을 펴서 이마 오른쪽에 대기도 하고, 왼쪽 가슴에 대기도 한다.일상에서 보는 ‘경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반인이 경의를 표하는 행동으로, 보통 오른손을 펴서 왼쪽 가슴에 댄다. ‘국기에 대한 경례’ 등을 할 때의 동작이다. 또 하나는 좁은 의미의 경례인데, 오른손을 펴서 이마 오른쪽 옆에 대는 것이다. 이걸 따로 거수경례라고 한다. 군인이나 경찰 등 제복을 입은 국민은 거수경례를 하게 돼 있다(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 이것 때문에 경례라고 하면 거수경례를 먼저 떠올리는 것 같다.‘국기에 대한 경례’는 국기법에 따라 규정돼 있어서 이를 지켜야 한다. 그 요건은 ‘①국기를 주목한 상태에서
2010년 영국의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비장한 소식 하나를 전했다. “인쇄판 사전 시장이 연간 수십 %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올 제3판은 인쇄판 대신 온라인판으로만 낼 계획입니다.” 120여 년 역사를 자랑하던 옥스퍼드 종이사전에 종말을 고한 셈이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있었던 일이다. 종이에서 디지털로 진화하는 국어사전한국은 이보다 좀 더 이르게 종이사전의 조종을 울렸다. “국립국어원에서 1999년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의 개정판을 인터넷사전(웹사전)으로만 편찬할 예정입니다.” 국어원은 2006년 한글날을 기해 앞으로 나올 표준국어대사전 개정판을 온라인으로만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그 대신 웹사전의 기능을 한층 강화했다. 컴퓨터와 휴대폰이 일상의 용품이 된 디지털 시대라 ‘내 손안의 사전’이 가능해졌다. 언제 어디서든 더 편리하게 사전을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국어원에서는 표준국어대사전 인터넷판 외에도 온라인 사전인 <우리말샘>도 운영하고 있다. 우리말샘은 국민 누구나 참여해 새로운 말을 올리고 설명을 달 수 있는, 쌍방향 개방형 사전이다. 이와 관련해 국어사전에 관한 일반적인 오해 하나. 우리말샘에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수많은 말이 올라 있다. 이걸 보고 “사전에 나오는데, 써도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은 규범어가 아니다. 아직 정식 단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경험상 그중 상당 부분은 시일이 흐르면서 사라질 말들이다. 단어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 간 광범위성을 비롯해 계층 간/세대 간 통용성, 지속성, 품위성 등 여러
우리말 역사에서 1933년은 꼭 기억해야 할 해이다. 그해 10월 29일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나오면서 비로소 우리말 정서법의 토대가 마련됐다. 당시 통일안을 발표할 때 외래어 표기법과 띄어쓰기는 본문에 함께 다뤄졌다. 표준어와 문장부호는 따로 부록으로 실렸다. 그뒤 1936년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이 나오면서 표준어는 독립 규범으로 떨어져 나왔다. [함쑤]가 예전 표준발음…이젠 [함수]도 허용문장부호는 지금도 한글맞춤법의 부록으로 실려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표준발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표준발음법이 따로 독립 규범으로 자리잡은 것은 그로부터 50년도 더 흐른 1988년 와서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다는 것은 발음의 기준을 세운다는 게 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표기에 비해 발음은 훨씬 더 각양각색이고 불분명하기 때문이다.가)“사람은 제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나)“아는 문제였는데 마지막 ‘분수’ 계산에서 분모와 분자를 헷갈려서 틀렸다.” 두 문장에 쓰인 ‘분수’는 한글 형태도 같고, 한자도 ‘分數’로 똑같다. 하지만 의미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누구나 직관적으로 안다. 가)에선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란 뜻이다. 나)는 수학에서 ‘몇 분의 몇’ 할 때의 그 분수다. 우리는 그 차이를 문맥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별할 수 있다.그런데 구별하는 수단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발음’에 의한 것이다. 가)의 분수는 예사소리로 [분ː수], 즉 ‘분~수’라고 길게 읽는다. 나)의 분수는 [분쑤], 즉 짧게 된소리로 읽는 말이다. ‘분수를 지키다’라고 할 때의 ‘분수[
자식이 커도 부모 걱정은 늘 매한가지다. 그중 하나. “밤늦게 다니지 말고 일찍 들어오너라.” 그런데 어떤 이는 “들어오너라” 하지 않고 “들어오거라”라고 한다. 또 다른 이는 “들어와라” 하기도 한다. ‘오너라/오거라/와라’는 모두 해라체 명령형 서술어다. 같은 뜻을 전하면서 이들은 왜 이렇게 서로 다를까? 틀린 말은 없을까? 예전엔 ‘오너라’만 가능…지금은 모두 허용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은’ 모두 맞는 말이다. 예전에 ‘-너라’ 불규칙 활용이 있었다. 명령형 어미 ‘-아라’가 붙을 때 어미가 ‘-너라’로 바뀌는 현상을 가리켰다. 이 변칙은 특이하게 동사 ‘오다’류(‘오다’와 ‘건너오다, 들어오다’ 등 ‘-오다’로 끝나는 말)에서만 나타난다. ‘오+아라→오너라’로 바뀌는데, 다른 동사에서는 그런 예가 보이지 않는다. 이를 ‘너라’ 불규칙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다’의 명령형은 ‘오너라’ 하나뿐이고, ‘오거라’ 또는 ‘와라’는 인정되지 않았었다.2017년 3월 국립국어원은 이 주제를 놓고 깊이 있게 검토를 했다. 규범과 달리 사람들이 현실 언어에서 ‘오너라’보다 ‘오+아라→와라’를 더 많이 쓰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오거라’도 썼다. ‘너라’ 불규칙 활용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문법이 바뀌어야 할 차례다. 문법은 언중이 실제로 쓰는 용법을 일반화하고 규칙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다’류에도 명령형 어미 ‘-아라’ 및 ‘-거라’가 결합할 수 있
지난 9일은 574돌 한글날이었다. 이날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해 반포한 1446년을 기점으로 삼아 제정됐다. 한글이 탄생한 지 500년이 훨씬 넘었으나 우리 정서법 체계가 제대로 자리잡은 것은 100년이 채 안 된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3년 조선어학회(한글학회의 전신)에서 ‘한글마춤법 통일안’을 내놓은 게 밑거름이 됐다. 종결형으로 쓰인 ‘책이요’는 규범에서 벗어나그 사이 우리 맞춤법은 많이 변했다. 그중 하나로 요즘도 늘 헷갈리는 게 어미 ‘-이요’와 ‘-이오’, 그리고 보조사 ‘-요’ 용법의 구별이다.1933년 한글마춤법 통일안에서는 이를 어떻게 제시했을까? <‘이요’는 접속형이나 종지형이나 전부 ‘이요’로 한다.>고 했다. 가령 “이것은 붓이요, 저것은 먹이요, 또 저것은 소요.”처럼 썼다. 현행 한글맞춤법에서는 다르다. 제15항 어간과 어미를 적는 방식에 관한 얘기다. <종결형에서 사용되는 어미 ‘-오’는 ‘요’로 소리 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 원형을 밝혀 ‘오’로 적는다.>고 했다. “이것은 책이오./이리로 오시오.”(책이요×/오시요×)가 현행 규범이다. 또 <연결형에서 사용되는 ‘이요’는 ‘이요’로 적는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것은 책이요, 저것은 붓이요, 또 저것은 먹이오.”처럼 구별해 써야 한다. 정리하면 ‘-이요’는 연결어미로만, ‘-이오’는 종결어미로만 쓸 수 있게 했다. 이들은 모두 [이요]로 소리 나지만 각각의 쓰임새에 따라 구별해 적도록 한 것이다. 현실언어에서는 쓰임새 활발…규범화 진행 중2019년 5월 국립국
‘도리도리 잼잼’은 몇 해 전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우리말 맞히기 문제로 나와 화제가 된 말이다. 출연자들을 ‘멘붕’으로까지 몰아넣은 이 문제의 정답은 ‘~ 죔죔’이었다. 시청자도 대부분 ‘잼잼’ 또는 ‘젬젬’ 정도로 알고 있었다. ‘물럿거라’나 ‘옛다’ 같은 말도 잘못 쓰는 말이지만 요즘도 틀리게 쓰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준말은 본말의 형태를 반영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준말이라는 것이다. 말을 줄일 때도 원칙이 있다. 본래의 말에서 일부가 줄면서 남은 형태가 어근이나 어간에 달라붙는다. ‘어제저녁→엊저녁, 가지가지→갖가지, 삐거덕→삐걱, 이놈아→인마’ 같은 게 그런 예다. 줄어든 말에서도 본말의 형태를 유지함으로써 본말과 준말의 관련성을 드러내는 것이다.“옜다, 이 돈 받아라”처럼 쓰는 ‘옜다’는 ‘예 있다’의 준말이다. 이때 ‘예’는 ‘여기’의 준말이다. ‘물러 있거라’의 준말인 ‘물렀거라’도 같은 원리다. 모두 본말의 ‘있’에 쓰인 받침을 그대로 이어받음으로써 준말의 유래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단어를 모두 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리를 알고 나면 응용할 수 있다. ‘~하대/~하데’의 구별도 열에 아홉은 헷갈리는 어려운 문제다. 가령 ①“사람이 아주 똑똑하대”와 ②“사람이 아주 똑똑하데”는 어떻게 다를까? 한 가지만 알고 있으면 된다. 즉 ‘-대’는 ‘-다고 해’가 준 말이라는 점이다. 줄었지만 본말의 형태가 반영돼 있다. ①은 누군가가 “A라는 사람이 똑똑하다고 한다&rd
우리말 적기의 규범을 세운 것은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나오면서부터다. 이어 1936년 ‘조선어 표준말 모음’이 마련돼 정서법의 골격이 갖춰졌다. 표준어와 함께 동전의 앞뒤라 할 수 있는 표준발음법은 그뒤로도 50여 년이 더 지난 1988년에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발음의 기준을 세운다는 게 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원칙 [순니익], 현실발음 [수니익]…둘 다 허용서울의 지명에서 아주 멋들어진 이름 가운데 하나가 ‘학여울’이다. 이 말은 ‘학(鶴)’과 고유어 ‘여울’의 합성어다. 여울이란 강 같은 데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을 말한다. 탄천과 양재천이 만나는 한강 갈대밭 부근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그곳에 1993년 서울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강남구 대치동)이 들어섰다.그런데 이 ‘학여울’의 발음이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항녀울]이라 하는가 하면 훨씬 많은 이들은 [하겨울]이라고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항녀울]이 맞는 발음이다. 실제로 역 구내에는 로마자로 ‘Hangnyeoul’이라 표기돼 있다. 만약 [하겨울]로 발음한다면 그 표기는 ‘Hagyeoul’이 됐을 것이다.‘학여울역’의 발음은 어떻게 [항녀울력]으로 됐을까? 우선 ‘학+여울’의 결합부터 보자. 발음할 때 ㄴ음이 첨가돼 [학녀울]로 바뀐다(표준발음법 29항). ‘막일, 늑막염, 내복약, 솜이불’ 같은 합성어를 소리 내 보면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일관되게 ㄴ음이 첨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항녀울]로 바뀌는데, 이는 자음동화(정확히는 비음화) 때문이다. 첨가된 ㄴ음으로 인해
지난 호에 이어 북한말 가운데 특이한 어법을 좀 더 살펴보자. “김정은 동지께서와 문재인 대통령은 회담에 상정된 의제들에 대하여 견해 일치를 보시고 앞으로 수시로 만나….” 2018년 4월 28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남북한 정상 간의 ‘판문점선언’을 전문(全文)과 함께 그 의미를 상세하게 보도했다.체제적 특성이 우리말 용법에 영향 끼쳐주목할 부분은 ‘김정은 동지께서와 문재인 대통령은…’에서 드러나는 어색한 우리말 용법이다. 우리 관점에서는 비문이다. 북한의 유일 영도체제가 국어 어법에 영향을 끼친 모습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북에서는 모든 출판물에 김일성·김정일·김정은과 관련된 얘기가 많이 나온다. 눈여겨볼 것은 이들을 나타낼 때는 언제나 극존칭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수령님께서와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께서는~’ 하는 식이다. ‘와’는 대등한 낱말을 연결하는 조사다. 존칭 조사를 붙일 때는 ‘A와 B께서는’과 같이 뒷말에만 붙이는 게 자연스러운 우리 어법이다. 그러나 북에서는 이른바 ‘최고 존엄’에 대해 항상 극존칭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이처럼 부자연스러운 어투라도 써야만 한다. 체제적 특수성이 우리말 표현에 영향을 미친 결과로 볼 수 있다.북한의 언론이나 교과서 등 출판물을 분석해 보면 남한에 비해 전반적으로 문장 구성과 표현 기법이 뒤처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남에서는 밀려드는 외래어와 자고 나면 튀어나오는 신조어로 계층 간, 세대 간 ‘소통’을 걱정해야 할 판이지만, 북에서는 폐쇄적 체제 특성으로 말글 발달에서도 지체 현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중복
“코로나19로 인한 한국 경제의 충격이 ‘심화되고’ 있다.” “A씨는 이천병원에서 검사를 ‘진행해’ 16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남구보건소에서는 희망자에게 코로나19 선별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코로나19 기사에 투영된, 우리말답지 않은 표현들이다. ‘심화되다’ ‘진행하다’ ‘실시하다’는 서술어로 흔히 쓰인다. 하지만 잘못 쓰면 어색할 때가 많다.‘심화/실시/진행하다’ 등 어색한 표현 많아글쓰기에 왕도는 따로 없다. ‘간결하게, 일상적 언어로 쉽게 쓰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예문에서는 무거운 한자어를 가져다 썼다. 말할 때는 그리 하지 않는데 글로 쓸 때면 무의식적으로 나온다.우선 ‘심화하다(되다)’부터 보자. “반도체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 의존도가 심화된 탓이다.” “××의 ‘갑질’이 점점 심화되는 추세다.” 우리말답게 쓸 때 글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진다. 요령은 어울리는 본래 서술어를 찾아 쓰는 것이다. ‘심화’는 ‘정도가 깊어짐’이다. 그러니 반도체 쏠림 현상이 ‘심화되는’ 게 아니라 ‘깊어지는’ 것이다. 의존도 역시 ‘심화된’ 것이라기보다 ‘높아진(또는 커진)’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이를 좀 더 적극적으로 바꿔 ‘스마트폰 사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식으로 쓰면 글의 리듬이 살아나 더 좋다. 갑질도 ‘심화된다’고 하면 어색하고 ‘심해진다’(정도가 지나치다는 뜻)라고 하면 그만이다.‘진행하다’는 좀 특이한 단어다. “캠
코로나19는 우리말에도 이미 많은 영향을 끼쳤다. 많은 외래어가 새로 유입됐고, 낯선 개념과 그에 따른 용어들도 어느새 우리 곁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 됐다. 그중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말과 관련해 평소 간과해온 또는 잊혀가던 문제 몇 가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 말의 핵심어인 ‘거리’를 제대로 알고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점에서 그렇다.‘공간적 간격’과 ‘차 다니는 길’ 구별해야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잡혀가는 듯하던 지난 4월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가 열렸다. “4월 말부터 5월 초 황금연휴가 예정돼 있습니다. 그동안 잘 지켜주신 사회적 거리두기의 고비가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정 총리는 이날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면서 ‘거리’의 발음을 [거:리]라고 장음으로 했다. 그는 요즘 수시로 입에 오르내리는 이 말을 정확하게 발음하는 몇 안 되는 이 중의 하나다. 방송 아나운서를 포함해 한국인의 대부분이 ‘거리’의 장·단음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하면 지나친 생각일까.우선 ‘거리’의 정체부터 알아보자. 한 시간 거리니, 거리가 머니 가까우니 하는 말을 흔히 쓴다. 또 “그 친구와는 왠지 거리가 느껴진다”고도 한다. 이때의 ‘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의 ‘거리’와 같은 말이다. 이는 공간적·심리적으로 떨어진 간격을 말한다. 이런 걸 누가 모를까? 그런데 이게 ‘비 내리는 명동 거리’라든지, ‘거리의 풍경’이라고 할 때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때의 ‘거리’는 다른 ‘거리’
지난 18일 옛 전남도청 건물 앞.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이 자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5·18을 상징하는 이 노래는 한때 제목의 ‘임’을 ‘님’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원래 제목이 ‘님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임’으로 수렴돼 가는 모양새다. 현행 표준어법상의 표기를 따른 것이다.현행 어법상 ‘님’은 단독으로 못 써우리말에서 ‘님’과 ‘임’의 용법은 의외로 까다롭다. 우선 현행 표준어에서 ‘님’의 쓰임새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사람의 성이나 이름 뒤에 쓰여 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이는 의존명사이므로 앞말과 띄어 쓴다. 요즘 은행 등 접객업소에서 손님에게 “OOO 님” 하고 부르는 게 그것이다. 일부 대기업에서 수평적 사내문화를 촉진하기 위해 도입하고 있는 ‘~ 님’ 호칭도 같은 것이다.다른 하나는 접미사로서의 ‘님’이다. 이때는 높임의 뜻을 더하는 기능을 한다. ‘선생님, 사장님’ 할 때의 ‘님’을 말한다. 또는 대상을 인격화해서 높이기도 한다. ‘해님, 달님, 별님’ 하는 게 그것이다. 특히 이때 ‘해님’을 ‘햇님’으로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해님’은 파생어(단어와 접사의 결합)이기 때문에 사이시옷 규정(합성어에서 발생)과 관련이 없다. ‘님’이 의존명사이든 접미사이든 분명한 것은 현행 어법에서 ‘님’을 단독으로 쓰지 못한다는 점이다. 언제나 앞말에 의존하거나 접사로 붙어서 존재한다.단독으로 쓰이는 말은 따로 있다. ‘사모하는 사람’
공공언어가 어렵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수준의 말이면 독자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일까? 지난 2월 20일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조사 대상 공공용어 140개 중에서 일반 국민이 ‘잘 모르겠다’고 응답한 용어가 97개(69%)에 달했다.신문에서 자주 쓰는 외래어…국민은 어려워해‘산은, 공적 개발 원조, 예타, 일몰제, 라운드 테이블, 싱크탱크, 핀테크, 엠바고, 통화 스와프, 테스트베드, 밸류체인, 컨센서스, 규제 샌드박스, MOU, MICE산업….’ 신문 지상에 수시로 등장하는 외래어 및 한자어, 약어들에 “어렵다”는 응답이 줄줄이 쏟아졌다.외래어·한자어 다듬기는 광복 이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현실 언어와의 괴리는 여전하다. 그것은 ‘우리말 인식’ 수준이 아직 성숙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한편으론 어떤 말이 나와서 퍼지고 자리 잡는 과정이 인위적으로, 특히 하향식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도 새삼 일깨워준다.다듬은말이 언중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형태와 의미 면에서 그 자체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우리말 지키기나 살리기 식의 ‘명분론’ 또는 ‘당위론’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 ‘경쟁력’의 요체는 무엇일까? 10여 년 전 남기심 전 국립국어원장이 한 인터뷰에서 지적한 데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요즘 ‘(병)따개’라고 쓰는 말을 예전엔 ‘오프너’라고 했습니다. 애초 정부에서 순화 작업을 하면서 제시한 말은 ‘마개뽑이’였는데, 그리 호응받지 못했어요. 대신 누군가
21대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25일 오후. 일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참칭’이 올라왔다. 이날 한 정당 대표가 다른 신생 정당에 “○○당을 참칭하지 말라”고 경고한 뒤였다. 네티즌들은 이 말의 뜻을 궁금해했다. 우리 사회 갈등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이 단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주제넘은 짓’ 꾸짖을 때 써‘참칭’은 우리말 어휘 중에서 꽤 어려운 축에 드는 단어다. 일상에서는 쓸 일이 거의 없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유독 여러 차례 입길에 올랐다. ‘참칭(僭稱)’은 ‘분수에 넘치는 칭호를 스스로 이름’이다. ‘참(僭)’이 간단치 않은 말이다. ‘주제넘을 참’, 즉 분수에 넘게 지나침을 이른다. 여기에 ‘일컬을 칭’이 붙었으니 한마디로 ‘주제넘은 짓’을 가리킨다. 누군가 분수를 모르고, 격에 맞지 않는 언행을 할 때 쓴다.이 僭은 어원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본분을 뛰어넘어 직권을 남용하는 것을 말하며, 이로부터 ‘허위’란 뜻이 나왔다(허영삼, <한자어원사전>). 그래서 참칭은 넓게 봐서 ‘사칭’(詐稱: 거짓으로 속여 이름)에 포함시킬 수 있다. 또는 가짜가 진짜인 것처럼 꾸민다는 점에서 ‘행세’이기도 하고 ‘흉내’ 내는 것이기도 하다. ‘행세’란 ‘자격 없는 사람이 당사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짓’을 말한다. 주인이 아닌 사람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고, 공무원이 아니면서 공무원인 척하니 ‘공무원 행세’를 한 것이다. ‘흉내’는 ‘남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그대로 옮기는 짓’이다. 동작이나 행동, 목소리를 모방
합성어와 파생어는 우리말 어휘를 풍성하게 하는 요소다. 합성어는 단어끼리 결합해 새로운 말을 만든다. 파생어란 단어에 접두사나 접미사가 붙어 역시 새 의미를 더한 말이다. 우리말은 단어별로 띄어 쓰므로 합성어와 파생어는 언제나 붙여 쓴다. 문제는 합성어 또는 파생어인지 여부를 구별하는 게 쉽지 않다는 데 있다.합성어는 단어끼리 결합해 새로운 의미 더해우선 사전에 올라 있으면 단어이므로 붙여 쓰면 된다. 원래의 글자 의미에서 벗어나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요령이다. 합성어든 파생어든 무언가 새로운 의미를 더해 이뤄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령 ‘들여다보다’ ‘살펴보다’ ‘되돌아보다’는 합성어다. 사전(표준국어대사전 기준)에 단어로 올라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다’ ‘마주보다’는 없다. 단어가 아니므로 ‘돌이켜 보다’ ‘마주 보다’로 띄어 써야 한다. 앞의 세 단어는 글자 그대로의 뜻 외에 ‘자세히 살피다’ ‘과거를 회상하다’란 의미가 더해진 말이니 합성어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뒤의 두 표현은 원래 단어가 갖는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다.사전에 모든 단어를 올릴 수 없으므로 준거가 되는 말을 보고 나머지는 거기에 맞춰 쓰면 되지 않을까? 가령 ‘들여다보다’가 있으므로 비슷한 형태인 ‘돌이켜보다’도 한 단어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참고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는 ‘돌이켜보다’ ‘마주보다’가 단어로 올라 있다). 이에 대한 국립국어원 견해는 ‘그렇지 않다’이다. 국어원 ‘온라인가나다’에 따르면 “합성어라고 본 경우 사전에
‘먼저 인사하는 공항 가족, 미소 짖는 고객.’ 이 문구를 보는 순간 잘못 쓴 글자를 찾아냈다면 그 사람은 우리말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 해도 될 것이다. 오래전 김포공항 청사 내 안내 전광판에 흐르던 문구다. 당시 한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개가 짖는다’와 ‘미소 짓는다’의 차이도 모르느냐”며 우리말 오용 실태를 질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합성어 여부에 따라 띄어쓰기 달라져‘미소 짓다’는 자칫 표기를 틀리기도 하지만 띄어쓰기는 더 까다롭다. ‘짓다’는 누구나 알다시피 동사다. 보조용언이나 접사로서의 기능은 없다. 이 말이 명사와 어울려 여러 합성어를 낳았다. ‘죄짓다, 한숨짓다, 짝짓다, 농사짓다, 눈물짓다’ 등이 그 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짓다’와 결합한 동사가 20개도 넘게 나온다. 그런데 ‘짓다’와 어울리는 수많은 말 가운데 어디까지가 합성어인지 알 도리가 없다. 대개는 사전에 올랐으니 합성어인 줄 아는 식이다. 가령 ‘한숨짓다’와 비슷한 계열인 ‘미소짓다’는 사전에 없다. 그러니 단어별로 띄어 쓴다는 규정에 따라 ‘미소 짓다’로 해야 한다.‘떼지어 다니다’ 할 때도 심리적으로 ‘떼지어’로 붙여 쓰고 싶지만 ‘떼짓다’란 말은 사전에 없다. ‘떼 지어 다니다’이다. ‘마무리 짓다, 일단락 짓다, 이름 짓다’도 다 띄어 써야 한다. 그런 말이 사전 올림말에 없기 때문이다.수많은 단어를 일일이 외워 써야 한다면 이는 너무도 비효율적인 일이다. 범용성 있는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우선 ‘짓다’에 접사 기능을 부여할
글쓰기에서 띄어쓰기는 종종 ‘사소한 것’으로 치부돼 소홀히 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띄어쓰기는 글을 얼마나 성의 있게 썼는지를 보는 척도가 되곤 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글쓰기의 기본으로 받아들여지는 셈이다.‘한정’ 의미는 조사, ‘동안’ 의미라면 의존명사의존명사와 조사로 쓰이는 ‘만’도 어려워하는 용법 중 하나다. 하지만 각각의 쓰임새가 분명히 달라 구별하는 게 어렵지 않다. 우선 ‘만’이 수량명사 뒤에 와서 시간의 경과를 나타낼 때가 있다. 이때는 의존명사다. “신제품은 개발에 들어간 지 3년 만에 만들어졌다.” 지난 호에서 살핀 의존명사 ‘지’와 어울려 ‘~한 지 ~만에’ 꼴로 많이 쓰인다. 둘 다 ‘시간의 경과, 동안’을 나타낸다. 이 ‘만’은 언제나 시간이나 횟수를 나타내는 수량명사 뒤에 온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알아보기 쉽다. “30분 만에 보고서를 썼다”, “세 번 만에 시험에 합격했다” 식으로 쓰인다.조사(정확히는 보조사) ‘만’은 쓰임새가 전혀 다르다. “그 사람만 왔다.” “놀기만 한다.” “이것은 저것만 못하다.” 이런 데 쓰인 ‘만’은 모두 무엇을 강조하거나 어느 것에 한정하거나 비교하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때는 ‘만’이 조사이므로 늘 윗말에 붙여 쓴다. 같은 ‘만’이지만 “3년 만에 만났다”와 “3년만 기다려라”의 띄어쓰기가 다른 이유다.이제 응용을 해보자. ①집채만 한 파도. ②집채만한 파도. ③집채 만한 파도. 세 가지 띄어쓰기 가운데 맞는 것은 ①번이다. 조사 ‘만’의 용법 중 하
띄어쓰기는 한글 맞춤법 57개 항 가운데 10개 항을 차지할 만큼 비중 있는 부분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책 한 권 분량이 될 정도로 복잡하고 방대하다. 규정을 둘러싼 논란도 많다. 1988년 한글맞춤법 개정 때 최종 심의에 참여했던 원로 언론인 고 서정수 선생은 생전에 “당시 띄어쓰기를 규정하는 작업이 유난히 힘들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의미에 따라 쓰임새 달라지는 것 구별해야띄어쓰기를 어렵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형태는 같은데 문법적 기능은 다른 말’이 많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뿐’ ‘지’ ‘만’ ‘데’ ‘대로’ 등이 있다. 이들이 문장 안에서 때로는 의존명사로, 때로는 조사로, 또는 어미나 접미사로 쓰인다. 띄어쓰기를 공략하려면 무엇보다 이들을 구별하는 ‘눈’을 갖춰야 한다.그렇다고 무조건 외우려고 하면 안 된다. 그것 자체로 헷갈리는 일이다. 모국어 화자라면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감각’으로 익혀야 한다. 다만 그것을 끌어내기 위해 ‘개념’ 정리는 해둬야 한다. 글쓰기에서 자주 나오는, 대표적인 용례를 통해 그 개념이 무엇인지 알아보자.우선 ‘뿐’은 조사와 의존명사로 쓰인다. “믿을 건 너뿐이야” 할 때는 조사로 쓰인 것이다. 의미상 ‘오로지’의 뜻을 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조사는 자립성이 없으므로 늘 윗말에 붙여 쓴다. 이에 비해 ‘~할/~을’ 등의 수식을 받는 형태일 때는 의존명사다. 띄어쓰기는 단어별로 하는 것이므로 이때는 반드시 띄어 쓴다. ‘소문으로 들었을 뿐이다’ 같은 게 그 예다. 문장 구성이 명백히 다르기 때문에 구별하기 쉽
서울지하철 1호선에서 시청역 지하도를 걷다 보면 벽에 걸린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무기를 만들던 군기시유적전시실.’ 서울시청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한글로 쓴 ‘군기시유적전시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겐 무슨 암호처럼 읽힌다. 한참을 들여다봐도 의미 파악이 잘 안 된다.전문용어도 단어별로 띄어 쓰는 게 원칙핵심어는 ‘군기시’다. 그러니 ‘군기시 유적 전시실’이라고 띄어 썼다면 의미 전달이 좀 더 나아졌을 것이다. 앞에서 수식하는 ‘조선시대 무기를 만들던’과 ‘군기시’가 호응해 구성 면에서도 좋다. 지금은 ‘…만들던’이 ‘…전시실’을 꾸미는 형태라 오히려 의미를 왜곡할 가능성마저 있다.‘군기시(軍器寺)’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병기를 비롯한 군수물자 제조를 맡아 하던 관청을 말한다. 이 말이 어려운 것은 ‘시(寺)’ 자가 붙었기 때문이다. 이 글자는 보통 ‘절 사(寺)’로 쓰이는데, 관청을 뜻할 때는 ‘시’로 읽는다.寺는 止(발 지) 자 밑에 又(또 우) 자가 결합해 만들어졌다. 이것은 손으로 발을 받드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어떤 곳으로 가서 일을 처리하다’란 뜻이 나왔다. 그래서 본래 나랏일을 하는 ‘관청’을 뜻하는 글자로 쓰였다. 나중에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뒤로는 불교 사원인 ‘절’도 가리키게 됐다(네이버 <한자사전>, 하영삼 <한자어원사전>). 지금은 오히려 ‘절 사’자로 널리 알려져 있고, ‘관청 시’의 쓰임새는 역사용어로나 남아 있다. 군기시를 비롯해 내자시(內資寺·대궐에서 쓰는
집 근처 족발집은 맛이 좋아 늘 손님이 붐빈다. 어느날 가게 앞에 안내문이 붙었다. 그 문구가 좀 이상하다. ‘품절현상이 자주 발생됩니다.’ 이런 문장은 우리말을 과학적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게 쓴 게 아니다. 그저 한자어에 휩쓸려, 거기에 말을 맞춰 만든 어색한 표현일 뿐이다.‘품절됐다’보다 ‘동났다’가 자연스러워우리말을 비틀어 쓰는 사례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우선 어휘 사용이 자연스럽지 않다. ‘발생하다’는 자동사다. ‘무엇이 발생하다’가 기본형이다. 굳이 ‘-되다’를 쓸 필요없는데 습관적으로 ‘-되다’를 사용한다. ‘사건이 발생했다’ ‘화재가 발생했다’ ‘공사장에서 발생한 소음’ 식으로 쓰는 게 자연스러운 우리 어법이다.‘-되다’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 말을 피동으로 만드는 접미사다. 자동사는 주어의 동작을 나타낼 뿐 객체를 필요로 하지 않아 피동형으로 쓸 이유가 없다. 서술어를 고유어로 바꿔보면 이런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사건이 터졌다’ ‘화재가 일어났다’ ‘공사장에서 생긴 소음’이라 하는 게 본디의 우리말이다. ‘발생하다’란 말은 ‘터지다, 일어나다, 생기다’ 같은 토박이말을 대체한 한자어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품절현상이 자주 생깁니다’라고 하면 훨씬 자연스럽다.‘품절’도 좋은 말이 아니다. 정부에서 고시한 ‘일본어투 생활용어 순화 자료’(문화체육부, 1997년)를 보면 품절 대신 될 수 있으면 다듬은 말 ‘물건 없음’ ‘없음’을 쓰라고 했다. ‘고쳐진 행정용어 고
10월은 유난히 한글과 우리말 발전에 기념비적인 날이 많은 달이다. 우선 지난 9일이 제573돌 한글날이었다. 세종대왕이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3년 뒤인 1446년 이를 반포했다. 그것을 기념하는 날이 지금의 한글날이다. 훈민정음 반포일이 음력으로 ‘9월 상한’이라는 기록(훈민정음해례본)을 토대로 이를 양력으로 환산해 정해졌다.‘조선어 표준말 모음’으로 우리말 바로 세워조선어학회에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한 게 1933년 10월이다. 이는 일제의 식민 지배하에서 우리 고유의 글자인 한글을 지키고 널리 보급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던 노력의 결실이었다. 통일안이 나옴으로써 비로소 ‘우리말을 한글로 어떻게 적을지’에 대한 합리적이고 일관된 기준이 갖춰졌다. ‘한글 맞춤법’의 기초 얼개도 이때 짜였다.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총칙 제1항은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맞춤법 기본정신이다.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쓴다’는 원칙도 마련됐다.3년 뒤 1936년 10월 28일에는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이 나왔다. 83년 전 오늘이다. 당시에는 우리말을 지키고 바루기 위해 표준어 사정작업이 절실했다. 예를 들면 하나의 대상을 두고 ‘하늘, 하눌, 하날’ 식으로 제가끔 쓰였다. 이를 ‘하늘’로 통일한 것이다. 그렇게 사정한 어휘 수가 9547개였다. 그중 6231개가 표준어로 채택됐고 3082개는 비표준어로 분류됐다. 나머지는 약어 134개, 한자어 100개였다.표준어 사정작업은 내용적으로 우리말사(史)에서 두 가지 의의를 지녔다. 하나는 같은 대상을 두고 여러 다른 표기가 쓰
‘까랭이 나마리 발가숭이 안질뱅이 자마리 짬자리 초리 잠드래비….’ 모두 ‘잠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 우리 땅에는 잠자리를 가리키는 말이 전국에 21개나 있었다. 일제의 우리말 말살 정책에 맞서 우리말 표준을 세움으로써 민족어의 기틀을 마련할 필요가 절실했다. 1936년 조선어학회에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내놓은 것은 그 시작점이었다. 그때 지금의 잠자리가 표준어로 자리잡았다.‘호랑이’는 한자어, ‘범’은 순우리말범과 호랑이의 운명도 이때 갈렸다. 범이 표준어로 채택됐고 호랑이는 비표준어로 밀렸다. 비표준어로 분류되면 이후 말의 세력이 약해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범과 호랑이 관계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사람들이 범보다 호랑이를 더 많이 썼다. 그 결과 1957년 한글학회에서 펴낸 최초의 국어대사전 <조선말 큰사전>에서는 범과 호랑이를 함께 표준어로 올렸다. 물론 사전 풀이는 여전히 ‘범’이 주된 말이었다. 호랑이는 쓰임새에 차이를 둬 ‘범을 특히 사납고 무서운 뜻으로 일컫는 말’이라고 풀이했다. 지금은 오히려 호랑이를 압도적으로 많이 쓰고 범은 잘 안 쓰는 말이 됐다.범과 호랑이는 그 연원이 다른 말이다. 범은 순우리말이고 호랑이는 한자어다. ‘虎狼이(범 호+이리 랑+이)’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사람들 입에는 호랑이가 더 익숙해 오히려 호랑이가 순우리말, 범이 한자어인 줄 아는 사람이 꽤 있다. 오랜 시일이 지나면서 한자 의식은 희박해지고 거의 토박이말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됐다.“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다”란 말을 한다. 하도 가난해서 근근이
한글날을 이틀 앞둔 지난 7일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선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처리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해례본은 무엇이고 상주본은 또 뭘까? 우리는 한글의 소중함을 말하지만 막상 한글이 어찌 만들어졌고 어떻게 후대에 전해졌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지난호에 이어 한글과 관련한 상식을 더 살펴보자.‘해례본’은 한자로, ‘언해본’은 한글로 풀어훈민정음을 얘기할 때 흔히 ‘언해본’ ‘해례본’ ‘안동본’ 같은 말을 한다. 우선 훈민정음이라 할 때 이 말은 두 가지를 가리킨다. 하나는 세종대왕이 1443년 창제하고 1446년 반포한 우리말 표기체계(지금은 ‘한글’이라 부르는 자모 체계)를 뜻한다. 다른 하나는 이를 널리 알리고자 1446년 9월 발간한 책을 말한다. 책 이름이 <訓民正音>이다. 이 책은 무려 500여 년을 잠자다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돼 간송 전형필이 입수해 보관(간송미술관)해 오고 있다. 이를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하고 ‘훈민정음 안동본’이라고도 부른다. 국보 제70호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이다.이 책이 세상에 나옴으로써 비로소 한글 창제 원리가 밝혀졌다. 말미에 1446년 9월 상순에 발간했다고 적혀 있어 이것을 토대로 지금의 한글날(양력으로 환산해 10월 9일)이 탄생하기도 했다. 해례본 원본을 최초로 해설한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에 따르면, 해례본은 크게 ‘정음(正音)’과 ‘정음해례(正音解例)’로 나뉜다. 흔히 ‘예의’와 ‘해례’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해례본은 세상에 단 하나만 전해져 왔었다. 그런데 2008년 경북 상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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