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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 만주 하얼빈역.일제하 초대 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 일본 추밀원(일왕의 자문기관) 의장이 탄 열차가 도착했다. 그가 러시아 군대를 사열하고 막 돌아서던 순간,세 발의 총성이 대지를 갈랐다. 안중근 의사가 한반도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순간이다. 안 의사는 1879년 9월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천주교 신자인 부모 덕분에 일찍이 신학문과 개화사상에 눈뜬 그는 독립운동가 이전에 교육자 겸 사상가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향에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는 일본 경찰 심문과정에서 "나는 대한의군(義軍) 중장 자격으로 동양 평화를 해친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것이지,개인의 생각으로 죽인 것이 아니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사형 집행을 앞두고도 한 · 중 · 일 평화공존 구상을 담은 《동양 평화론》을 집필하다 순국한 안 의사.핵무기에 집착하는 북한,이를 방관하는 듯한 중국,갈수록 극우화하는 일본을 보면서 그의 외침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요즘이다.홍성호 기자 hymt4@hankyung.com
건국대(총장 김진규)는 미국 스탠퍼드대,반더빌트대,위스콘신대,존스홉킨스 의대 등의 해외 생명공학 연구 권위자들을 초청,10일 오전 10시부터 건국대 법학관 국제회의장에서 '녹색성장을 위한 생명공학기술'을 주제로 국제 콘퍼런스를 연다. 2006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이자 건국대 초빙 석학교수인 로저 콘버그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독성학 분야의 권위자인 피터 갱그리치 반더빌트대 교수,미국 녹색생명공학기술의 산실인 위스콘신대의 크리스토퍼 브래드필드 교수와 유재혁 교수가 참여해 주제발표를 한다. 또 존스홉킨스 의대의 마리오 암젤 교수,베트남의 호찌민시생명공학연구소 부소장인 구우옌 녹빙 박사 등도 참석한다. 이번 콘퍼런스는 건국대에서 이달 초 바이오 분야 글로벌 협력연구 허브로 출범시킨 생명공학연구센터(CBRU · 센터장 강린우 신기술융합학과 교수) 설립 기념으로 열린다. 생명공학연구센터는 한국연구재단이 해외 우수연구 인프라와 연구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지원하는 해외 거점활용연구센터 사업 일환으로 세워졌다.홍성호 기자 hymt4@hankyung.com
"해외 의료봉사는 선진국과의 '칼싸움'입니다.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듯 의료봉사도 현지에서 다른 선진국 팀들과 경쟁하기 때문이죠.지금보다 더 품격 있는,고품질의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한국얼굴기형환자후원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필훈 서울대 치과대학 교수(56 · 사진)는 방학 중인 요즘 학기 때보다 더 바쁘다. 후원회의 가장 큰 사업인 해외 의료봉사 활동을 위한 막바지 준비 과정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일명 '언청이 수술'로 불리는 얼굴기형환자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은 물론 각종 전문장비와 항공편 일정,현지 아이들에게 전달할 선물까지 일일이 챙긴다. 정 교수를 포함해 모두 12명의 자원봉사자가 참가하는 이번 해외활동은 오는 19일부터 28일까지 필리핀 바기오 지역에서 펼쳐진다. 10년째 해오는 일이다. 후원회는 그동안 2002년 파키스탄 방문을 시작으로 케냐,에티오피아,네팔,베트남,라오스,키르기스스탄 등 모두 10개국에서 20회에 걸쳐 617명의 얼굴기형환자를 치료해 이들에게 '미소'를 찾아줬다. 국내 환자까지 포함하면 798명에 이른다. 한동안 LG전자,포스코 등으로부터 후원을 받기도 했으나 최근엔 회원들이 사비를 털어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 얼굴기형환자의 수술은 비교적 오래된 편입니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지원도 있어 서울대 치대 은사인 남일우 교수님이 전국으로 돌며 환자를 수술했는데,나를 예쁘게 봤는지 학부생인데도 데리고 다니셨어요. "정 교수가 무료 수술을 통해 얼굴기형환자를 본격적으로 돌보게 된 것은 1998년 치과대에 직접 미술동아리를 만들면서부터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던 그림 그리기를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이 모
"선플기자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착한 댓글'로 온라인 세상을 맑게 하는 백기사라고 생각합니다.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이사장 민병철 건국대 교수)가 출범시킨 선플소셜네트워크기자단(선플기자단)이 9일 서울 무교동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중앙발대식을 갖고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양숙희 선플기자단장(19 ·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1년 · 사진)은 10일 "선플기자단은 만 4년이 넘은 선플달기운동이 인터넷 악플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조직한 행동대"라며 "모바일 시대에 걸맞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선플기자단의 활동은 주로 블로그를 비롯해 트위터,페이스북 등 날로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서 이뤄지게 된다. 좋은 기사에 칭찬과 격려의 댓글을 달고 이를 SNS를 통해 전파함으로써 악플을 미리 차단하는 효과를 노린다. 이를 위해 전국적인 조직도 갖췄다. 지난달 24일 부산동아중에서 1000여명의 청소년기자단이 참여한 부산지역 발대식을 연 데 이어 9일 서울에서 중앙발대식을 가졌다. 다음달에는 전북 부안여고에서 800여명이 참여하는 전북지역 발대식이 예정돼 있다. 양 단장은 "초 · 중 · 고 · 대학생이 주력인 선플기자단은 이미 3000여명의 단원을 확보했다"며 "올해 말까지 전국에서 단원 1만명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기사 20개에 댓글을 달면 봉사활동 1시간으로 인정해주는 점도 선플기자를 유인하는 제도다. 한국경제신문이 발행하는 고교 논술지 '생글생글'의 5기 생글기자 출신이기도 한 양 단장은 선플운동에 관해서는 이미 베테랑이다. 고교 2학년 때 아마추어무선사(햄) 동아리 활동
'감독 임권택. 주연 이덕화, 안소영. 산울림의 영화음악 데뷔작. 제25회 아시아영화제 출품작. 미성년자 입장 불가. ' 1979년 3월10일 서울 허리우드극장에 '내일 또 내일'이란 제목의 영화가 걸렸다. 내용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저 여성편력이 심한 주인공 남자가 여러 여자들을 만나며 겪는 사건을 그린 멜로 드라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하제 또 하제'라는 순우리말이었다고 한다. 가뜩이나 내용이 미성년자 관람 불가 등급인 데다 제목이 주는 어감마저 '하기는 뭘 자꾸 하자는지' 야하고 저속한 느낌을 주니 당시 정서에서 공연윤리 심사를 통과할 수가 없었다. 결국 제작사 측은 제목을 평범한 우리말인 '내일 또 내일'로 바꾼 뒤에야 극장에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하제'는 한자어 '내일(來日)'에 해당하는 잃어버린 우리 고유어이다. 우리말에서 일(日) 단위 때를 나타내는 말은 영어나 다른 한자어권 말에 비해 많은 편이다. '어제, 오늘, 내일'을 기본으로 해서 이틀 전은 '그제(그저께)', 사흘 전은 '그끄제(그끄저께)'라고 한다. 또 이틀 뒤는 '모레', 사흘 뒤는 '글피', 나흘 뒤는 '그글피'이다. 이에 비해 영어에서는 yesterday, today, tomorrow만 단어로 있고 나머지는 구(句)로 표현해야만 한다. 가령 '그저께'는 the day before yesterday가 된다. '그끄저께'를 말하려면 three days ago라고 하든지 two days before yesterday 식으로 해야 한다. 앞날을 나타내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모레'는 the day after tomorrow, '글피'는 two days after tomorrow 또는 three days from now 식으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한자도 별 차이가 없다. 어제, 오늘, 내일에 해당하는 '작일(昨日), 금일(今日), 명일
"서울시는 13일 시내 각 요식업소에 대해 모든 메뉴와 그릇 등을 모두 우리말로 쓰라고 강력히 지시했다. 서울시는 오는 11월 말까지 각 업주가 자발적으로 시정토록 했는데 이 기간이 지나도록 이를 지키지 않는 업소에 대해서는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리겠다고 경고했다. 서울시가 지적한 요식업소의 용어는 다음과 같다. 소바→메밀국수,우동→밀국수,돈까스→포크스틱,오뎅→꼬치,뎀뿌라→튀김,다마네기→양파,요지→이쑤시개,시보리→물수건."지금 얘기가 아니다. 1972년 11월 한 신문에 보도된 서울시 지침은 당시만 해도 식당 등에서 쓰는 생활용어 가운데 일본말이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광복 이후 정부 주도로 외래말을 우리말로 순화하는 작업이 광범위하고도 지속적으로 전개돼 왔다. 1995년엔 광복 50돌을 맞아 당시 문화체육부 고시로 '일본어투 생활용어 순화 자료' 702개 단어를 발표했다. 당시 고시에서는 돈까스를 순우리말인 돼지고기너비튀김으로 한 번 더 바꾼 게 눈에 띈다. 요즘 시중에 나와 있는 대사전을 통해 보면 우동은 다시 가락국수로,오뎅은 어묵으로 순화됐다. 또 돈까스 또는 돈가스로 쓰던 말은 '돈가스'로 표기가 통일됐다. 이 말은 '돼지고기 너비 튀김' '돼지고기 너비 튀김 밥' '돼지고기 튀김' 따위로 순화되긴 했지만 '돈가스'도 함께 쓸 수 있게 했다. 그만큼 순화어가 어색하기도 하고 길어서 단어로서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우동이나 오뎅 역시 비록 대체어가 제시되긴 했지만 일본 음식 이름을 적절히 옮기지 못해 '실패한 외래어 순화'의 사례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 가운데에 요지와 이쑤시개
"지난 4월 민사소송 변론 도중 A판사의 발언은 원고 B씨에 대한 인격권 침해이므로 주의조치하라." 2010년 12월15일 서울중앙지법에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한 통의 통지가 날아들었다. 지법에서 진상 파악을 한 결과 당시 A판사는 변론 도중 B씨가 허락 없이 발언을 하자 법정예절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B씨에게 '버릇없다'라는 말을 했음이 드러났다. 인권위는 "통상적으로 '버릇없다'는 표현은 '어른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 나무라며 사용하는 말"이라며 "비록 B씨가 법정질서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 해도 사회통념상 40대인 A판사가 69세인 B씨에게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공복인 A판사가 B씨의 기본적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결정한 것이다. 우리말에서 '버릇없다'란 말은 사전적으로 '어른이나 남 앞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예의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 인권위의 결정은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의 상식적인 판단에 따라 맞게 이뤄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요즘의 기준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우리말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면도 있다. 법정에서 판사나 검사는 '영감님'들이다. 나이가 많아서 '영감'의 호칭을 붙이는 게 아니다. 지난 호에서도 살폈듯이 조선시대 때부터 정3품 이상, 즉 당상관 이상의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을 '영감'이라 불렀다. 지금같이 나이 많이 든 이를 대접해서 부르는 말로 일반화된 것은 나중의 일이다. 당상관 중에서도 정2품(지금의 장관급) 이상의 직책에 있는 사람은 '대감'으로 불렸다. 정3품에서 종2품까지의 당상관을 '영감'이라 했으니 '대
"현 정권의 개혁 대상이 돼야 마땅할 김종필 씨가 개혁 선봉에 서야 할 국무총리가 돼 있는 현실에서 어떻게 개혁을 운운할 수 있느냐.""어떻게 정부의 국무총리를 '씨'라고 부를 수 있느냐. 용어 선택에 주의해 달라."1998년 8월26일 국정의 시시비비를 따져야 할 국회 본회의장에서 난데없이 호칭 문제로 여야 의원 간 공방이 이어졌다. 당시는 호남지역을 정치 기반으로 하는 국민회의와 충청권에 기반을 둔 자민련이 연합해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 김대중 대통령-김종필 국무총리 체제의 공동정부를 구성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시비는 야당인 한나라당 S의원이 먼저 걸었다. 그는 김 총리를 시종일관 '김종필 씨'라고 부르면서 공세를 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일국의 국무총리를 대놓고 '~씨'라 칭함으로써 자신보다 낮거나 대등한 위치로 격하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당석에서 곧바로 "그만해" "당장 나가"라는 고함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본회의장은 험악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우리말에서 '씨(氏)'의 용법은 의외로 까다롭다. 사전적으로만 봐도 이 말은 명사로도, 대명사로도 쓰이는가 하면 의존명사나 접미사로도 쓰이는 등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명사나 대명사로의 쓰임새는 비교적 제한적이므로 젖혀 놓는다 쳐도, 의존명사나 접미사로 쓰이는 경우는 일상적으로도 매우 많다. 하지만 두 쓰임새를 구별하는 게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에 용법을 정확히 알아두지 않으면 헷갈리기 쉽다. 우선 '씨'는 (성년이 된 사람의 성명이나 성, 이름 아래에 쓰여)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해 부르는 말이다. "홍길동 씨" 또는 "홍 씨" "길동 씨" 같은 게 그런 경우이다. 이때는 의존명사이
살림살이가 팍팍해지고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수록 자연스레 늘어나는 게 운세나 점을 보는 풍습이다. 특히 설을 지나면서 새해 금전운이나 애정운,직장운 따위를 보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미신에 지나지 않지만 길흉화복을 헤아려 몸가짐을 다스리려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서울 미아리고개에는 점집이 몰려 있었다. 《미아리고개 아래. 30여명의 맹인 점집이 낮은 지붕을 맞대고 있고 관상사주집이 더러 섞여 있는 점복가(占卜街). 이곳의 특색은 판수가 산통에서 산가지를 뽑아 점치는 육효점이 주류를 이룬다는 것이다. 》 1978년 한 신문이 보도한 이 기사에는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우리말 몇 개가 보인다. 우선 '판수'는 '시각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또는 '점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맹인'을 가리키기도 한다. 일상적으로 쓰는 말로 하면 '장님 점쟁이'쯤 될 것이다. '산통(算筒)'은 '셈 산,대통 통'자로, 맹인이 점을 칠 때 쓰는 통을 말한다. 이 말은 단독으로는 잘 쓰이지 않지만,관용구인 '산통(을) 깨다' '산통(이) 깨지다'란 말은 매우 활발한 쓰임새를 보인다. '산통(을) 깨다'는 '잘되어 가던 일을 이루지 못하게 뒤틀다'란 의미이고 '산통이 깨지다'라고 하면 '잘되어 가던 일이 뒤틀리다'란 뜻이다. '산통'은 산통계나 산통점 같은 합성어를 만드는데,사전에 그밖의 말은 보이지 않아 그다지 생산성이 좋은 단어는 아님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은 '산통 깨지다'란 말의 유래를 산통점이나 산통계와 관련 있을 것으로 설명한다. 옛날에는 주로 맹인이 생계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점을 보았는데 대표적인 게 산통점이다.
"청와대는 앞으로 영수회담이 아니라 청와대 회동으로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지난달 초 '영수회담'의 성사 여부를 둘러싸고 한창 논란이 일던 중 청와대가 갑자기 용어 문제를 들고 나왔다. 정무수석실 관계자는 "영수회담은 예전에 여당이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을 했을 때 여당 대표 대신 대통령이 직접 야당 대표를 상대하면서 나온 용어"라고 설명했다.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당연히 반발했다. "영수라는 것은 각 진영의 우두머리를 뜻하는데 (이를 청와대 회동이라 바꿔 말하는 것은) 야당 대표를 대통령과 동격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영수회담이 됐든, 청와대 회동이 됐든 그 뒤 야당 대표가 조건 없는 등원을 결정함으로써 2월 임시국회가 열리게 됐고, 자연스레 용어 논란은 세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영수회담'이란 말은 사전에 올라 있는 단어는 아니다. 언론에서 '영수(領袖)'라는 단어에 '회담'을 붙여 만들어 쓰는 것일 뿐이다. '영수'는 '옷깃 령, 소매 수'로 이뤄진 단어로 '여러 사람 가운데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니 '영수회담'은 사전적으로만 보면 '지도자들 간의 회담'이지만 경험적으로나 일반적으로 언론에서 쓰는 의미는 '대통령과 야당 총재 간의 회담'을 지칭하는 것으로 더 많이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요즘 일반 언중(言衆) 사이에선 영수회담이란 말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향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 독재시대의 잔재,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영수'는 영어로는 '보스'에 해당하고 비슷한 한자어로는 수뇌, 수장, 지도자 등 여럿 있지만 순우리말로 하면 '우두머리'이다. '령(領)'의
"국토해양부는 외교통상부 등 관계부처와 비상대책회의를 거쳐 24일 이집트항공 소속 여객기를 리비아 트리폴리 공항으로 급파해 현지 교민과 근로자들을 수송하기로 했다고 23일 밝혔다. "리비아에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면서 사상자가 속출하자 우리 정부는 현지 교민들을 철수시키기 위해 특별 전세기를 운항키로 결정했다. 이를 전하는 여러 신문 방송의 보도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교민과 근로자 수송' 부분이다. 사람에 따라 이 표현에서 어딘지 어색한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수송선,수송병,수송기,수송관 등 일상적으로도 흔히 쓰이는 이 말이 '현금 수송,원유 수송,물자 수송' 등에서처럼 주로 짐이나 물건과 어울려 쓰이기 때문이다. '수송(輸送)'은 '보낼 수,보낼 송'으로 이뤄진 단어이다. 1999년 국립국어원이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말을 '기차나 자동차,배,항공기 따위로 사람이나 물건을 실어 옮김'으로 풀이한다. 2004년 나온 금성출판사 간 <훈민정음 국어사전>의 풀이도 마찬가지이다. 용례로는 '현금 수송 차량/귀성객 수송을 위해 임시 열차가 편성되었다. /간밤에 죄수들을 수송 도중…' 등을 올렸다. 그러니 적어도 사전적으로는 '근로자 수송'이니 '교민 수송'이니 하는 말을 모두 쓸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는 그동안 대부분의 사전에서 올리고 있던 것과는 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람'이 추가된 것이다. 그 전에는 '수송'이라 함은 '짐이나 물건을 실어 보냄'이 주된 풀이였다. 한글학회의 <새한글사전>이 그렇고,신기철/신용철의 <새우리말큰사전>(삼성출판사 간),한갑수의 <새
지난 4일은 입춘(立春)이었다. 설 다음 날이었으니 음력으로 치면 새해 초이튿날이다. 입춘은 예로부터 계절의 변화를 살피는 기준으로 삼았던 24절기 가운데 하나이다. 시기적으론 한겨울의 '대한(大寒)' 다음이며 이때가 되면 봄이 시작하는 것으로 여겼다. 곧이어 있는 절기가 '우수(雨水)'로,오는 19일이다. 속담에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라는 말이 있듯 우리 조상들은 우수와 경칩을 지나면 아무리 춥던 날씨도 누그러진다고 보고 서서히 농사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엊그제까지만 해도 맹추위에 떨던 날씨가 많이 풀려 요즘은 한강변처럼 물 많은 곳에서는 안개 끼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새벽녘 고요함 속에 자욱이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해 문인들의 시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사진작가들에겐 놓칠 수 없는 촬영 소재가 되곤 한다. 서울 인근의 물안개 명소로는 양수리 두물머리를 빼놓을 수 없다. 이즈음 이곳의 주말 이른 시간엔 많은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양수리 두물머리는 행정구역상으론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5리에 있다. '두물머리'는 '두 물(남한강의 물과 북한강의 물)이 만나 하나(한강)를 이루는 곳에 삐죽하게 나온 지형'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명이자 동시에 일반명사로도 쓰이지만 아직 정식으로 단어가 된 말은 아니다. 양수리(兩水里)란 마을 이름 역시 '두 물',즉 남한강과 북한강의 물이 합쳐진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때 '머리'는 '사람이나 동물의 목 위의 부분'을 나타내는 말로,어원은 '마리(首)'이다. '마리'가 모음 교체를 이루면서 '머리'가 된 것이다. 이 '마리'는 지금도 여러 형제자매 가운데서 제일 손
드라마 '다모' '이산' 등으로 잘 알려진 배우 이서진씨(38 · 사진)가 자산운용사 상무가 됐다. 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대표 이혁진)은 31일 이씨를 글로벌콘텐츠2본부 본부장(상무)에 신규 임용했다. 이씨는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와 관련된 상품개발 및 펀딩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이씨는 "평소 사업을 비롯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던 터에 집안끼리 서로 알고 지내던 이 대표로부터 제안이 와서 참여했다"며 "시간이 허용하는 한 매일 출근해 글로벌 콘텐츠 개발 등 회사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의욕을 밝혔다. 이씨를 직접 영입한 이 대표는 "이씨가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평소 투자활동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면서 "글로벌 콘텐츠시장에 다양한 펀드를 조성하려는 회사 방침과 맞물려 의기투합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최근 200억원 규모의 영화펀드 조성에 회사가 참여했고 이후에도 투자 자문을 진행 중이며 이씨도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2주일 전부터 회사에 출근해 업무파악을 하고 있는 이씨는 국내 연예계의 대표적인 '엄친아'로 유명하다. 미국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9년 SBS 드라마 '파도위의 집'으로 데뷔했으며 2004년 MBC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면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2009년 MBC 드라마 '혼'을 끝으로 연기활동에선 긴 공백기를 갖고 있다. 평소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쳐 지난해 2월엔 일본 아오모리현 일일 명예지사를 맡기도 했다. 할아버지인 이보형씨는 경성법학전문학교를 나와 서울은행장 · 제일은행장 및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고 부친 이재응씨도 안흥상호신용금고 대표를 역임했다. 2009년 4월에 설립된 에스크베리타
"저는 오늘 감사원장 후보자 지위에서 사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청문절차를 정치행위로 봉쇄한 일련의 과정은 살아있는 법을 정치로 폐지한 것으로 법치주의에 커다란 오점이 될 것입니다. " 지난 12일 감사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진 사퇴했다. 대검 차장 퇴임 직후 로펌에 소속돼 7개월간 7억여원의 급여를 받는 등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과거 행적으로 여론이 악화돼 청문회를 앞두고 결국 낙마한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보다 차원 높은 가치가 분명히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정성을 다해 재판업무에 몰두해 달라." 2004년 8월 17일 조무제 대법관이 퇴임식을 갖고 34년간 몸담았던 법원을 떠났다. 재직 당시 청빈 법관의 대명사로 불린 그는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모교인 동아대 법대 교수로 돌아갔다. 그의 이름 앞에는 지금도 항상 '딸깍발이 판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새해 벽두에 터진 감사원장 후보의 낙마 사태는 우리 사회에 사라져가는 '딸깍발이 정신'을 돌아보게 한다. 눈앞의 이익만을 좇기에 급급한 지식인이 판을 치는 요즈음 조금은 고지식하면서도 기개만은 꼿꼿한 사람이 있다면 그를 가리켜 '딸깍발이'라 부를 만하다. '딸깍발이'란 본래 '일상적으로 신을 신이 없어 맑은 날에도 나막신을 신는다는 뜻에서, 가난한 선비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옛날 가난한 선비들이 돈이 없어 신발을 따로 장만하지 못하고 맑은 날에도 비 오는 날 신는 나막신을 신고 다녔는데, 이때 신발에서 나는 '딸깍딸깍' 하는 소리에서 비롯된 말이다. 또는 '일본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사전적 풀이로만
1999년 9월 미국에서는 새 천년을 앞둔 흥분 속에 또 다른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고 있었다. 항공우주국(NASA)이 1억2500만달러를 들여 쏘아올린 '화성 기후 탐사선'이 286일간의 항해 끝에 마침내 화성에 도달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탐사선은 화성 궤도에 진입하려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사고 원인은 어처구니없게도 '계량단위'에 있었다. 제작을 맡은 록히드마틴사는 미국에서 흔히 쓰는 야드와 파운드 단위로 탐사선 제원정보를 작성했으나 NASA 측이 이를 법정계량 단위인 미터법으로 읽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예정보다 낮은 궤도로 진입한 탐사선은 대기권의 마찰열을 견디지 못해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도량형단위 통일의 중요성을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일화다. 미터법이란 길이와 너비 따위는 미터(m)를,부피는 리터(L)를,무게는 킬로그램(㎏)을 기본 단위로 하는 십진법을 사용한 도량형법을 말한다. 18세기 말엽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법으로 제정됐으며,1875년 각나라 사이에 미터 협약을 맺어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3년 계량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미터법을 채택했다. (표준국어대사전)우리나라에서의 미터법은 학교 교육을 통해 비교적 무리 없이 실생활에서 사용됐다. 그러나 동시에 자(1자=30㎝)나 근(斤 · 1근=600g),돈(1돈=3.75g),평(坪 · 1평=3.3㎡) 따위의 전통적인 척관법 단위도 함께 쓰여 왔다. 특히 부동산이나 고기,귀금속 따위에 통용되는 말로는 오랫동안 전통적인 단위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였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2006년부터 평이나 돈,근 등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비법정단위에 대한 단속과 처벌 방침을 정하고 지속적
"네가 떡국을 먹으면 올해 몇 살이 되는 거지?"신묘년 새해가 밝았다. 예전에 계절의 변화를 음력으로 따질 때는 한 해가 시작하는 첫 달을 '정월(正月)'이라 불렀다. 새해 첫 달의 첫날은 '정초(正初)'다. '원단(元旦)' '원일(元日)'이라고도 한다. 이런 말들은 양력으로 바뀐 오늘날에도 관습적으로 이어져 양력 1월을 여전히 정월, 그 첫날을 정초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새해 첫날, 즉 1월 1일을 명절로 이르는 말인 '설'은 지금도 음력을 기준으로 해서 따진다. 따라서 양력 1월 1일은 '설'이라 하지 않고 그냥 새해 첫날일 뿐이다. 다만 과거 오랜 '이중과세' 시절을 지내온 영향으로 요즘도 이날 떡국을 차려 먹는 사람은 꽤 있는 듯하다. 떡국은 예부터 대표적인 설음식이지만 지금은 평소에도 수시로 즐겨 찾는 보편적인 음식이 됐다. 그러나 정초에 특별한 문맥에서 쓰인 '떡국을 먹다'란 표현은 말 그대로 떡국이란 음식을 먹는다는 게 아니라 '설을 쇠어서 나이를 한 살 더 먹다'란 뜻이다. 이처럼 '두 개 이상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그 단어들의 의미만으로는 전체의 의미를 알 수 없는, 특수한 의미를 나타내는 어구(語句)'를 관용구라 이른다. 가령 '발이 넓다'라고 하면 '발바닥이 크게 생겼다'는 게 아니라 '사교적이어서 아는 사람이 많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 등을 말한다. 정초에 떡국을 먹음으로써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는 의미에서 이날 떡국을 '첨세병(添歲餠)'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가령 "너 떡국 몇 그릇 먹었냐"라고 하면 "너 나이가 몇이냐"라고 묻는 말이 된다. 조선 순조 때 학자 홍석모가 지은 민속 해설서 '동국세시기'는 예부터 전해 오는 우리나라의 연중행사 및 풍속
"대학 진학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1등 할 자신 없으면 다른 데는 눈 돌리지 않습니다.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의 성과도 그런 마음가짐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서울 역삼동 GS타워에서 열린 '2010 바둑대상' 시상식에서 여자기사상을 받은 이슬아 2단(19 · 사진).그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결단식 때부터 '바둑얼짱'으로 주목받았다. 광저우에서는 혼성페어와 여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실력도 '짱'임을 보여줬다. 그 공로로 이날 초단에서 2단으로 특별 승단도 했다. 아직 앳된 모습이 가시지 않은 그를 28일 만나 신세대 바둑기사의 프로근성을 들어봤다. 올해 2월 서울 세명컴퓨터고를 졸업한 이 2단은 지난해 말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처음엔 대학에서 다양한 경험도 해보고 싶었지만 이번에 좋은 성적을 내면서 스스로 깨달은 게 있어요. 간절한 염원을 갖고 열심히 하면 내 나름대로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 그가 바둑에 '올인'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힌 배경이다. 이 2단은 고향 여수에서 작은 건설회사에 다니는,아마바둑 3급 정도의 실력인 아버지를 통해 바둑을 알게 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입문했지만 불과 2년도 안 돼 서울의 전국규모 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기량이 늘었다. 5학년 때 허장회 9단 도장 문하로 들어가면서 아예 서울로 바둑유학을 떠났다. 이후 고1 때인 2007년 당당히 프로에 입단했다. 허장회 도장에서는 바둑공부뿐만 아니라 '공인'인 프로기사로서 지녀야 할 배려심도 배웠다. "당시 한 달 학원비 50만원을 제때 내지 못할 정도로 집안이 어려웠어요. 하지만 허 사범께서 입단 가능성이 충분하니까 걱정 말고 다니라며 격려해 주신
'송구영신(送舊迎新).'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새해를 맞으면서 가장 먼저 듣는 것은 서울 보신각에서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이다. 12월31일 밤 12시 정각 '땡' 소리와 함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새해를 여는 첫 울림인 '제야의 종소리'는 누구에게나 기대와 소망,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새해'와 '제야의 종소리' 사이에는 찬찬히 따져보면 논리적인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 우선 우리가 무심코 말하곤 하는 '제야의 종소리'에서 '제야'는 무슨 뜻일까. '제야(除夜)'는 '제석(除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섣달 그믐날 밤'을 뜻한다. '섣달'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끝 달을 가리키는 우리 고유어이다. '그믐'은 '그믐날'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음력으로 그달의 마지막 날'을 뜻하는 말이다. 한자어로는 '말일(末日)'이다. 그러니 '제야'란 섣달 그믐날 밤, 즉 한 해의 맨 끝 달 마지막 날 밤을 가리킨다. 12월31일 밤을 말한다. 물론 이런 말들은 모두 음력을 사용하던 지난 시절에 쓰이던 것이라 엄격히 따지면 지금도 음력을 기준으로 날짜를 잡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을 빼곤 일상에서 음력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섣달그믐이란 말 자체는 여전히 살아 있어 빈번히 쓰인다. 그래서 우리 인식으로는 양력으로 따진 12월31일 역시 섣달그믐날, 즉 제야라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해 첫날 0시에 맞춰 치기 시작하는 보신각 타종행사에 '제야의 종소리'란 말을 붙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말글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데 애를 쓰는 사람들 가운데 이 같은 주장을 펴는 이들이 있다. 1분이
1992년 위니아만도(당시 이름은 만도기계)는 지금까지 소비자에게 선보인 적이 없는 신제품 개발에 골몰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우리나라 전역의 급속한 도시화로 인한 주거문화 변화에 주목했다. 전통적인 음식문화에 회사가 갖고 있는 냉각 냉동 관련 기술을 접목한 제품이 아이디어로 제시됐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5년 드디어 김치냉장고가 탄생했다. 이제 새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전 마지막 과제로 이름을 달아주는 일이 남았다. 외부 컨설팅과 사내 공모 등을 통해 최종적으로 마케팅부의 한 직원이 제안한 '딤채'라는 제품명이 채택됐다. 그해 11월 우리나라에 김치냉장고 시장을 열면서 등장한 '딤채'는 이후 폭발적인 호응 속에 지금까지 소비자 선호도 1위를 자랑하는 효자품목으로 자리잡았다. 위니아만도는 홈페이지에서 제품명 '딤채'를 조선시대 중종 때 쓰이던 김치의 고어(古語) 형태라고 소개하고 있다. '딤채'냉장고 덕분에 잊혀가던 우리말 하나가 살아난 경우이다. 해마다 겨울을 앞두고 가정의 큰 행사처럼 치르는 '김장'은 순우리말 같지만 어원적으론 한자에서 온 말이다. 김장의 사전적 풀이는 '겨우내 먹기 위하여 김치를 한꺼번에 많이 담그는 일'을 말한다. 옛날에는 '침장(沈藏)'이라 쓰던 것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김장으로 변한 것이다. 김장이 '침장'에서 온 것은 김장의 핵심인 '김치'의 어원 변천과 관계가 깊다. 김치라는 말은 소금에 절인 채소를 뜻하는 '침채(沈菜)'에서 시작됐다. 김치는 <소학언해>에 보면 '沈菜'로 나오는 데 당시는 발음이 '팀채' 정도였던 것이 '딤채→짐채→짐치'를 거쳐 지금의 '김치'로 굳어진 것이다. 그러니 김
그런데 問題中의 拂下한 白沙場이란것은 漢江의 人道橋附近 右岸高水敷地內 즉 河川區域內에 存在하는 一部分이니 이것은 高水時에 冠水하는部分이며 當然히 河川區域으로 取扱되지 않으면 안되는것이다. (중략) 高水敷地內에 私有地를 認定한다는것은 이와같이하여 沿岸住民의 生命을 危殆롭게 할뿐만아니라 一般國民에게 莫大한 被害를 주는 結果가 되는것이다. 1964년 한강 인도교 북단 용산 쪽에 있는 백사장 매각사건이 발생했다. 국유재산이던 한강변 백사장을 관련 당국에서 개인에게 팔아넘기자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수사 결과는 백사장 매각 행위가 정당한 것으로 나왔다. 이 글은 당시 원태상 서울공대 교수가 한 신문에 전문가 기고 형식으로 그 부당함을 지적한 것이다. 불과 50여 년 전 보도 내용인데,지금 기준으로 보면 띄어쓰기는 물론이고 문체도 매우 다르며,특히 접속어나 조사 정도만 빼고 한자가 우리말을 지배하고 있었음이 눈에 띈다. 네이버 '디지털 뉴스 아카이브'에서 뽑은 이 대목은 '고수부지'란 말이 이미 1960년대부터 우리 신문에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후론 나오지 않다가 7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다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당시만 해도 '고수부지'가 전문용어로만 쓰였지,일반인에겐 그리 익숙한 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고수부지'란 단어가 활발하게 언론을 타기 시작한 것은 한강종합개발 사업이 본격화한 1982년 이후이다. 86년 끝난 이 사업으로 한강변엔 공원 및 체육시설 등이 들어서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덩달아 '고수부지'란 용어의 사용도 급증해졌다. 이 말은 90년대까지 많이 쓰이다 2000년대 들어서
'한강복판의 여의도를 둘러쌓는 윤중제(輪中堤) 준공식이 1일오전10시 보슬비내리는 공사현장에서 朴대통령부처를비롯, 3부요인 주한외교사절 金서울시장과 시민등 1萬여명이 참가한가운데 거행되었다. '1968년 6월1일 당시 한 신문은 여의도 개발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윤중제'의 소식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띄어쓰기도 안 돼 있고 한자도 섞어 쓰는 등 어법이 많이 다르지만 특히 눈에 띄는 말은 '윤중제'이다. 우리나라가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던 시절인 1960년대 말, 그 전까지만 해도 한강 한복판의 황량한 모래섬에 불과했던 여의도에 대대적인 개발 공사가 시작됐다. 윤중제 건설 이후 여의도에는 마포대교와 시범 아파트가 건설되고 국회의사당이 이전하는 등 아파트와 사무 빌딩으로 가득 찬 신도시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 덩달아 7.6㎞에 이르는 여의도 윤중제도 빈번하게 인구에 회자되면서 단숨에 우리말 속에 '떠오르는 말'로 자리 잡았다. 수레바퀴 윤(輪), 가운데 중(中), 둑 제(堤)로 이뤄진 이 낯선 말의 출생지는 일본이다. 일제 때부터 쓰이던 작은 군사비행장이 하나 있었을 뿐 별다른 시설 없이 방치되다시피 하던 여의도는 해마다 홍수가 지면 강물에 잠기던 곳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섬 둘레를 따라 제방을 쌓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완성된 것이 높이 16m, 둘레 7533m, 폭 35~50m의 거대한 '둘레 둑' 윤중제이다. '윤중(輪中)'은 원래 우리말에 없던 말이다. 이 말을 일본어 사전에서는 '에도 시대에 홍수로부터 마을이나 경작지를 지키기 위하여,주위를 둑으로 두른 지역'으로 풀이하고 있다. '윤중제'는 '하천 가운데에 있는 섬 주위를 둘러쳐서 쌓은 제
'딱딱한 보수주의는 가라.' 즐겁고 신나는 보수주의 가치를 표방하는 어울림 한마당이 펼쳐진다. 시장경제 전문 연구기관 자유기업원(원장 김정호)은 오는 25일 오후 6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나라사랑 2060 콘서트'를 개최한다. 이 행사를 기획한 김정호 원장(54)은 "대한민국을 지탱해온 보수의 가치는 나이 든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20대부터 60대까지 모든 보수 · 자유주의자들이 함께...
이조 때만 해도 '함잡이'는 봉치잡이라고 하여 사대부집 봉치는 그 행렬이 으리으리해서 구경거리였다. 시각은 초저녁, 등롱잡이 횃불잡이가 늘어서고 함을 진 사람은 예복을 입었다. (중략) 그러던 것이 요즘 와선 신랑의 동창이나 친구들이 함을 택시에 싣고 가서는 신부집에서 술값을 뜯어내고 때로는 적다고 행패를 부리는 일도 있었다. 이런 폐단으로 함잡이를 없앤 것은 잘한 일이다. 1973년 6월 1일 발효된 새로운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및 '가정의례준칙'을 당시 한 신문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관혼상제를 법으로 규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기사를 보면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말이 몇 개 눈에 띈다. 그만큼 시대가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봉치잡이'의 '봉치'는 '혼인 전에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채단(采緞)과 예장(禮狀)을 보내는 일'을 뜻한다. 원래 '봉채(封采)'라는 한자어에서 변한 말이다. 이때 '채단'은 '혼인 때에,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미리 보내는 푸른색과 붉은색의 비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장'이란 '신랑 집에서 예단과 함께 신부 집에 보내는 편지'를 말한다. '봉치'는 국어사전에 단어로 살아있는 말이지만 '봉치잡이'란 말은 없다. 물론 같은 뜻으로 쓰인 '함잡이'란 말도 없다. 언중 사이에 지금도 '함잡이'가 쓰이긴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처럼 '함을 보내고 받는 일'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말에서 '-잡이'는 보통 '무엇을 잡는 일' 또는 '무엇을 다루는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쓰인다. '고기잡이/오징어잡이'나 '총잡이/칼잡이' 같은 게 그 예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서 쓰인 '함잡이'나 '봉치잡이'보다는 차라리 '함들이'가 더 적
"번역원 내 교육원 기능을 강화해 고급 번역 인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겠습니다. " 한국고전번역원 제2대 원장에 임명된 이동환 고려대 명예교수(71 · 사진)는 14일 "우리 고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선 한자문화를 아는 저변이 넓어져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고전 역해 분야의 권위자인 이 신임 원장은 "일상생활에서 한자의 사용이 줄어들면서 고전문화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도 약해지고 있다"며 "번역 사업과 병행해 내부 역량을 우선적으로...
지난 10월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식에서 화젯거리는 단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등장한 셋째 아들 김정은이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 등을 통해 생중계한 이날 행사에서 김정은은 김 위원장의 옆에서 열병식을 참관했다. 이튿날 우리 신문들은 일제히 두 사람이 함께 서있는 사진을 실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군 열병식에서 옆에 앉은 셋째 아들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쳐다보고 있다.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일인 10일 오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을 참관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인 아들 김정은을 바라보고 있다. 신문마다 문장 형식은 다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서로 대동소이했다. 위의 두 문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쓰임새에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두 개의 단어가 눈에 띈다. '쳐다보다'와 '바라보다'가 그것이다. '바라보다'는 말 그대로 '어떤 대상을 똑바로 향하여 보다'란 뜻이다. '바라다보다'라고도 한다. '정면을 바라보다/불러도 돌아보지 말고 앞만 바라보고 뛰어라/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처럼 쓰인다. 이에 비해 '쳐다보다'는 '위를 향하여 올려 보다'란 뜻의 말이다.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다/단상 위의 교장 선생님을 쳐다보다'라고 하는 게 전형적인 쓰임새다. 두 말의 결정적 차이는 대등한 눈높이에서 보느냐, 눈을 위로 올려다보느냐에 따른 것이다. 이는 단어를 형성하는 말을 살펴보면 좀 더 분명해진다. 우선 '바라보다'는 '바라-+-아+보다'의 구성이다. '바라다'는 몇 가지 뜻이 있지만 이
지난 10월4일 헝가리의 서부 데베체르 마을. 평화롭기만 하던 이곳에 '붉은' 재앙이 온 마을을 덮쳤다. 알루미늄 공장의 저수조 댐이 무너지면서 독성 슬러지(산업폐기물)가 유출된 것이다. 붉은 슬러지가 마을을 휩쓰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2분에 지나지 않았다. 헝가리 사상 최대의 환경재앙으로 기록된 이날 사고는 며칠 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에까지 재난의 그림자를 던졌다. #지난 4일(현지시간) 헝가리에서 발생한 알루미늄 공장 폐기물 댐 붕괴 사고로 유출된 독성 산업폐기물 찌꺼기(슬러지)가 마침내 도나우강 지류로 대거 유입되기 시작해 동유럽 국가들에 초비상이 걸렸다. #헝가리 알루미늄 공장에서 유출된 독성 산업슬러지(찌꺼기)가 7일 다뉴브강 본류에 진입함에 따라 수도 부다페스트와 하류 국가들에 비상이 걸렸다. 이번 사고를 통해 가장 크게 우려된 부분은 유럽의 젖줄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도나우'강의 오염 여부였다. 유럽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흑해로 흘러드는 '도나우'강의 또 다른 이름은 '다뉴브'강이다. '도나우,다뉴브,두나이,두나, 두나브,두너레아,두나비우스.' 이들은 모두 도나우 강을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다. 독일 남부의 알프스 북부 산지에서 발원해 여러 나라를 거치며 장장 2850㎞를 흐르다보니 나라마다 이름도 제각각 붙여 부르게 된 것이다. 도나우(Donau)는 발원지에서 가까운 독일/오스트리아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이 강을 체코어로는 두나이(Dunaj)라 하고,헝가리 평야를 적시면서 두나(Duna)라는 이름을 얻는다. 세르비아/불가리아 지역을 흐르면서 다시 두나브(Dunav)라 불리다가 루마니아에서는 두너레아(Duner
"요즘은 SK텔레콤과 함께 새로 시작할 폐자전거 재활용 사업을 구상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주민 입장에 서면 사각지대에 있는 일자리가 눈에 들어오죠."행정안전부가 29일 서울 등촌동 SBS 공개홀에서 개최한 '제14회 민원봉사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정기룡씨(48 · 대전시 복지정책과 주무관 · 사진)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주위에서 CEO 공무원으로 통한다. 지금까지 해온 일이 단순한 주민 봉사행정이라기보다 소외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제안해 사업화한 것만 3~4개에 이른다. 지난해 대전시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채택된 세탁공장 '무지개 클린사업단'에는 23명이 일하고 있다. 모두 장애인이거나 노숙인 출신이다. 대전지역의 기업체 유니폼이나 호텔,찜질방 등의 빨랫감을 수거해 세탁을 대행해주는 사업이다. 아직 한 달 매출이 2000여만원에 불과하지만 취약계층 직원들에게 85만원씩 월급을 주고 있다. 그의 주도로 시에서 2007년 설립한 '드림사업단 야베스공동체'는 직원 60명에게 120만원씩 월급을 줄 정도로 커졌다. 관공서 등에서 버려지는 화분을 수거해 재생 판매한다. 이곳 역시 과거 노숙인이거나 쪽방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근무한다. 그의 일자리 창출사업 취지에 공감,도로공사는 무상으로 터를 내주고 LH(당시 주택공사)는 비닐하우스를,한전에서는 전기시설을 설치해줬다. 연 매출이 10억원대에 이르는 야베스공동체는 현재 사회적 기업으로 고용노동부에 등록돼 있다. 1990년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복지 분야 근무를 자원했다. 그에게 지역주민의 기술을 활용한 봉사활동이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는 곧바로 의사 약사 이 · 미용사 등 상가주민을 중
"리베이트의 우리말 뜻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잘 떠오르진 않지만 불법할인,불법할증,불법수뢰 등으로 통칭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는 정기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국정감사는 말 그대로 국회가 국정 전반에 관해 감독하고 검사하는 것인데,그중에는 우리말과 관련한 것도 해마다 단골 메뉴로 오른다. 지난해 이맘 때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의 보건복지부 감사 자리에선 '리베이트'라는 용어가 화제가 됐다. 당시 보건복지가족위원장을 맡고 있던 변웅전 의원이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리베이트'의 뜻을 물어본 것이다. 갑작스레 받은 질문에 전 장관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자 변 위원장은 "지금은 아파트 이름도 어려운 외래어를 써야만 고급스러운 아파트가 된다고 생각하는 시대"라며 "리베이트도 왜 외래어로 쓰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리베이트에 대해 "국어대사전에는 사례금이나 포상금의 형식으로 돌려주는 뇌물이라고 돼 있다"며 "앞으로 주무부처인 복지부에서도 담당자들은 리베이트라는 영어 단어 대신 '뇌물'이라는 우리말을 썼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그의 주문은 물론 외래어 사용을 자제하자는 취지에서 나왔을 것이다. 아나운서 출신 정치인답게,리베이트를 근절시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외래어를 막고 우리말을 많이 쓰도록 하자는 따끔한 지적이었다. '리베이트(rebate)'와 '뇌물(賂物)'은 물론 같은 말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리베이트는 판매자가 받은 대금의 일부를 구매자에게 돌려주는 행위 또는 그 돈을 말한다. 장기계약이나 대량 계약을 한 구매자에 대한 특별한 할인제도의 하
지난 9일은 한글이 반포된 지 564돌을 맞는 날이었다. 10월9일 한글날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적혀 있는 '세종 28년 9월 상한'이라는 구절을 근거로 정해진 것이다. 한글학회에서 상순의 끝 날인 음력 9월10일을 훈민정음 반포일로 잡고,이를 다시 양력으로 환산한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선 이날을 앞두고 연례행사처럼 우리말 관련 기사를 쏟아낸다. 대개는 외래어 남용이나 우리말 오용실태를 지적하는 내용들이다. 그 중에서도 35년에 걸친 일제 강점기 탓에 우리 말글살이에는 여전히 일본어투가 곳곳에,그리고 별 저항감 없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만땅,다스,기스,뗑깡,가라,곤색,사라,다대기 ….'2005년 국가보훈처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일제 잔재 뿌리 뽑기 캠페인을 벌였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이 캠페인에 올라온 말들은 우리 생활에 스며들어 있는 일본말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잘 보여준다. 누리꾼(네티즌)들은 언어생활에서 뿌리 뽑아야 할 일제 잔재로 '가득'이란 표현의 '만땅(또는 잇빠이)', 영어의 dozen(물건 열두 개를 묶어 세는 단위)을 가리키는 일본식 발음 '다스',상처나 흠집을 의미하는 '기스',간질을 의미하는 '뗑깡(뗑깡부리다)',속이 텅 비고 의미가 없다는 뜻의 '가라',어두운 남색을 가리키는 말 '곤색',접시를 나타내는 '사라',다진양념을 뜻하는 '다대기',깃을 의미하는 '에리' 등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 가운데 다스나 기스,곤색,다대기 같은 말은 비록 순화한 말이 함께 제시되긴 했지만 우리 국어사전에 정식으로 올라 있을 정도로 쓰임새가 광범위하고 빈번하다. 특히 '다스'의 경우 이미 언중이 순화어는 거
"뭔가 눈에 띄는 이름이 없을까?"1992년 야심차게 준비해온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삼립식품 경영진은 브랜드 작명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다. 지금은 예전만 못하지만 삼립식품은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제빵시장의 대표주자였다. 그런 삼립식품이 사업다각화를 위해 과자 생산에 뛰어들면서 내놓는 제품이라 단숨에 소비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이름이 절실했다. "눈에 띄는 이름? …… 눈에 띄네?" 어느 날 중역회의에서 한 임원이 무심코 중얼거린 이 말에 모두의 귀가 번쩍 틔었다. "그래,신제품 이름은 '누네띠네'로 하지."1992년 8월에 처음 생산된 '누네띠네'는 바로 그해부터 폭발적인 판매량을 보이면서 1993년 150억원,1994년 140억원의 매출을 올려 삼립식품의 효자상품으로 떠올랐다. 삼립식품은 당시 안방극장 스타인 탤런트 최수종을 CF 전속 모델로 기용해 적극적인 제품 홍보를 병행해 스낵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크림빵과 함께 삼립식품이 지금도 '전설적인 히트상품' 가운데 하나로 꼽는 '누네띠네'는 이렇게 탄생했다. '누네띠네'라는 작명은 물론 마케팅에서의 브랜드 작명 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연음 처리를 통해 우리말 이름을 마치 영어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특히 '네'라는 음절이 반복되면서 말에 운율을 주고 시각적으로도 대구의 형태를 취해 쉽게 소비자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었다. '누네띠네'의 대중적 성공은 우리말의 흐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 이후 우리말 논쟁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 '누네띠네'가 시장에서 호응을 얻자 이후 각종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는 방식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1993년 대전엑스포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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