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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육, 제육볶음, 감자, 김치, 배추, 고추, 후추.' 이들 말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음식 이름 또는 그 재료가 되는 식물 이름이라 답한다면 그는 우리말에 관해 별로 관심 없는 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붓, 호리병, 지렁이, 사냥, 맹세, 체신머리, 얌체, 상투, 붕어, 초승달, 짐승, 이승/저승, 챙, 보살, 모란, 벽창호 …….'제각각의 말인 것 같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게 있다. 그것은 모두 한자어에서 변한 말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본래 한자어에서 출발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음운 변천을 일으켜 지금의 형태로 굳어진 말들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 고유어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한자를 빌려 표기하다 보니 마치 원래 한자에서 온 말인 양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말도 많다. 가령 '주전자나 남편, 야단법석, 편지, 야속하다, 부실하다' 같은 말은 우리 고유어일까 한자말일까. 사전에서는 이들을 주전자(酒煎子), 남편(男便), 야단법석(野壇法席), 편지(便紙/片紙 ), 야속(野俗)하다, 부실(不實)하다 등으로 올려 한자말임을 드러내고 있다. 원로 언론인이면서 우리말 연구가인 정재도 한말글연구회 회장은 우리 국어사전들의 이런 편찬 행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우리 글자가 없던 옛날에는 한자를 이용해 소리를 옮기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취음(取音)이다. 취음은 우리말을 한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음을 취하여 한자로 적는 것인데 간혹 이를 원말로 잘못 아는 경우가 있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酒煎子니 男便이니, 野壇法席이니, 便紙/片紙니, 野俗하다니, 不實하다 따위의 단어
'오월 농부 ○○ 신선.' 기승을 부리던 늦더위도 물러나고 어느새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었다. 우리 속담에 있는 이 말은 딱 이맘때 쓰는 표현이다. ○○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 이 말이 좀 낯선 이들에게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 한가윗날만 같아라'라는 속담은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에 들어갈 말은 '팔월'이다. '오월 농부 팔월 신선'은 여름내 농사지으면 8월에 편한 신세가 된다는 뜻으로,수고하면 이후에 편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만큼 예전 우리 조상들의 삶에서 8월(물론 음력 8월을 뜻한다)은 '수확'을 나타내는 의미 있는 달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윗날만 같아라.' 역시 결실의 계절 8월을 나타내는 속담이다. 한가윗날이 든 달은 백곡이 익는 계절인 만큼 모든 것이 풍성하고 즐거운 놀이를 하며 지낸 데서,잘 먹고 잘 입고 편히 살기를 바라는 말이다. 이번 주엔 우리 민족의 대표적 명절인 추석이 들어 있다. 음력으로 치면 8월 보름날이다. 보통 '대보름' 또는 '대보름날'이라 하면 설 지나 첫 보름날,즉 정월 대보름(음력 1월15일)을 명절로 이르는 말이지만 '팔월대보름'이라 하여 우리 조상들은 추석을 설에 버금가는 명절로 지냈다. 추석 명절은 신라의 가배(嘉俳)에서 유래한 것이다. 신라 시대에 궁중에서 추석을 앞두고 여자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길쌈(옷감을 짜는 일)을 했는데,그 많고 적음을 견주어 진 쪽에서 음식을 내고 춤과 노래 및 여러 가지 놀이를 했다. 이것을 '가배'라고 한다. 그래서 추석을 가배일,가배절이라고도 한다. 민족의 큰 명절인 만큼 그 밖에도 추석을 뜻하는 말들이 많다. 중추절 또는 한가위,한가윗날도 추석을 달리
'조선 고종 32년(1895) 11월에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상투 풍속을 없애고 머리를 짧게 깎도록 한 명령. 이를 계기로 의병 활동이 확산되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단발령(斷髮令)'에 대한 풀이다. 그 뒤 15년이 흐른 1910년 8월22일 일제의 침탈로 한 · 일 간 강제 병합조약이 체결됐다. 공식 발표는 1주일 뒤인 29일 이뤄졌는데, 이날을 계기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경술국치를 맞았다. 며칠 뒤인 9월10일 매천 황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부터 꼭 100년 전 일이다. '……조정을 생각하면 두 눈물만 흘릴 뿐이지만…… 자리 가득 솔바람에 무릎 안고 앉아 조누나. ' 최근 번역돼 나온 《매천집》에 실린 그의 단발령 소회는 당시 힘없는 민족의 백성으로 겪는 참담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대한제국 말 의병활동의 도화선이 됐던 단발령은 한마디로 '상투를 틀지 말라'는 정부의 명령이었다. '상투'는 '예전에, 장가든 남자가 머리털을 끌어 올려 정수리 위에 틀어 감아 맨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상투를 짜다/상투를 틀어 올리다'처럼 쓰인다. 예전에는 상투를 틀지 않으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른 대우를 받지 못했다. 이런 풍습은 말 속에도 스며들어 관용구로 '상투(를) 틀다'라고 하면 '총각이 장가들어 어른이 되다'란 뜻이 됐다. 상투를 틀기 전에는 머리를 땋아 '댕기머리'를 했는데,'댕기'란 길게 땋은 머리끝에 드리는 장식용 헝겊이나 끈을 말한다. '댕기머리'는 여자만 하는 게 아니라 남자도 한 것이다. '상투'는 요즘은 새로운 뜻을 하나 더 얻었는데, '최고로 오른 주식 시세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정식으로 단어의 지위를 얻은 말이다. 부동
"남성형 탈모의 경우 M자형과 O자형이 있다. 이마가 넓어지기 시작하다 이마 양쪽에서 안쪽으로 진행되는 M자형은 소위 '주변머리'가 없다고 말하는 모양이고,O자형은 정수리 부위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탈모가 나타나 '소갈머리'가 없다고 말하는 모양이다. "현대인의 난치병 가운데 하나인 탈모를 설명한 이 말은 얼핏 보기엔 그럴싸하지만 우리말 사용과 관련해선 옥에 티를 담고 있다. 탈모 양상을 주변머리와 소갈머리에 빗대 설명했기 때문이다. 굳이 탈모 얘기가 아니더라도 근래 머리 모양을 두고 우스갯소리로 '소갈머리(또는 속알머리)'가 없다느니 '주변머리'가 없다느니 하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소갈머리'나 '주변머리'는 '머리(머리카락)'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다. 이런 말의 사용이 걱정스러운 까닭은 자칫 분별없이 남발되다 보면 그것이 건강한 우리말 체계를 흔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에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은 얼마든지 있다. 누군가 "주변머리도 소갈머리도 없는 사람은 대머리다"라고 실제로 생각하는 사태가 온다면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우선 우리말에 '속알머리'란 말은 없다. '속알'도 물론 없다. 굳이 따지자면 '속알'은 '알맹이'의 방언일 뿐이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빗대서 하는 정수리 부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것이다. 주변머리 역시 마찬가지다. 귀 둘레에 머리숱이 많지 않은 사람을 가리켜 '주변머리가 없다'는 식으로 희화화해서 말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실체 없는 말,지어낸 말일 뿐이다. '소갈머리'는 '마음이나 속생각을 낮잡아 이르는 말' 또는 '마음보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그 자식 소갈머리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
"교수님,투자론 시간에 왜 설비투자를 가르치지 않고 증권투자를 가르치시죠?"윤계섭 서울대 경영대 교수(65 · 사진)가 오는 31일 정년퇴임을 맞는다. 윤 교수는 최근 기자와 만나 서울대에 증권 관련 과목을 처음 개설하던 1970년대 초를 떠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1970년 9월 상대에 몸담으면서 맡은 과목이 회계감사였습니다. 이어 1971~1972년 투자론,자본시장론,증권분석 강좌를 잇달아 개설했는데 당시만 해도 증권학이라는 학문이 매우 낯설었습니다.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 그는 "'투자론' 수강을 신청한 일부 학생이 첫 강의 때 내용이 다르다며 항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과목 개설을 허가해준 변형윤 학장으로부터 "학생들에게 투기를 가르치는 건 아니냐"는 우려 섞인 질문을 받기도 했다. 서울대에서 만 40년을 봉직한 윤 교수는 증권학의 토대를 닦은 대표적 학자다. 1979년 전국에서 증권을 가르치는 교수가 채 10명이 안 될 때 한국증권학회를 설립한 이후 증권학회장,재무학회장,세무학회장,금융학회장,FP(재무설계)학회장 등을 지냈다. 코스피 200지수 개발 및 코스닥 창설에 관여했고 자본시장법의 산파역을 담당했으며 금융투자협회와 창의자본㈜ 설립준비위원장을 지냈다. 국내 자본시장 발전의 산증인이라 할 만하다. "고교 시절 부유하게 살던 이웃집 사람이 하루 아침에 집을 팔고 알거지 신세가 되는 걸 보고 충격받았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1962년 증권파동 때 일종의 선물거래로 큰 피해를 입었던 거죠." 이로 인해 그는 증권시장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강한 의문을 갖게 됐고,교수의 길을 걸으면서 평생을 증권 연구에 몰두하는 계기가 됐다. 교수로 임용된 지 얼마 안 됐
가) "그 소설은 박진감 넘치는 구성과 탄탄한 주제 의식으로 생동감을 더해 준다. " "할아버지께서는 산업화가 이뤄지기 전 보릿고개라 불리던 시절의 곤궁했던 삶의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설명하셨다. "나) "여러분과 세계 60억 인류는 오늘부터 한 달 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박진감 넘치는 축구경기를 보게 될 것입니다. " "결승전에서 맞붙은 스페인과 네덜란드는 시종 박진감 있는 경기를 펼쳤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난 6월 중순 개막해 한 달여간 지구촌을 달궜던 월드컵 대회는 스페인의 우승으로 끝났다. 대회 기간 내내 우리는 한국 대표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간의 시합일지라도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에 환호하고 박수를 보냈다. 스포츠는 물론이고 영화나 소설 따위를 설명하는 말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박진감'이다. 주로 '박진감 넘치다/ 박진감이 있다' 식으로 굳어져 쓰인다. 그런데 가)와 나)에 쓰인 '박진감'은 얼핏 보면 구별하기 힘들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의미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1999년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은 '박진감'을 '진실에 가까운 느낌'으로 풀고 있다. 한자로는 '迫眞感'이다. 이 말은 '표현 따위가 진실에 가까움'이란 뜻의 '박진(迫眞)'과 일부 명사 뒤에 붙어 '느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인 '-감(感)'이 어울려 이뤄진 단어다. '-감'은 우월감/책임감/초조감/성취감/만족감 같은 다양한 파생어를 만드는,생산성이 아주 높은 말이다. 따라서 어떤 영화나 소설 따위를 말하면서 '박진감이 있다'라고 하면 이야기 전개가 '진실에 가까운,생생한,사실 같은 느낌을 준다'는 뜻이다. 즉 '리얼리티가 충실하다'는 의미
"일할 수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삶은 없습니다. 이번 취업박람회는 '모두가 일하는 사회'를 꿈꾸는 제 소망이 담긴 작은 첫걸음입니다. "서울 청계천 서울고용센터와 주변 광장에서 오는 20일 열리는 '2010 유통 · 물류 채용박람회'(http://jobfair.zeniel.co.kr) 준비에 바쁜 박인주 제니엘 회장(55 · 사진)을 16일 만났다. 지난해에 이은 2회째 행사이지만 올해는 전문화 · 맞춤화로 내실을 기했다. 고용노동부 후원으로 마련된 이번 박람회에는 아웃소싱업체 제니엘을 짧은 기간에 국내 선두권 업체로 키운 박 회장의 취업 노하우와 경영철학이 반영돼 있다. "유통 · 물류 서비스는 고용 창출 효과가 가장 큰 산업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분야로 잘 안 가려고 해요. 처우가 낮고 전문성도 부족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지요. 이제 이런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박 회장이 일자리 만들기의 돌파구를 유통 · 물류에서 찾고자 한 것은 자신의 인생 역정과도 관련이 깊다. 그는 중 · 고교 시절부터 우유 및 신문 배달로 잔뼈가 굵었다. 20대 초반에는 철공소 직원,주류 배달원,동네 슈퍼 점원 등으로 근무했다. 우유와 신문을 배달하면서 '내 일'의 보람을 느꼈고 주류 배달 시절엔 '많이 파는 것' 못지않게 '돈 받는 방법'의 중요함을 깨달았다. 슈퍼에서 동네 주민을 대한 뒤 핫도그 장사를 하면서 고객의 마음을 읽는 법에도 눈을 떴다. 박 회장은 "지금 생각하면 그때 유통 · 판매 서비스업의 노하우를 체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군 제대 뒤 1980년대 초 김포공항 위탁 경비업체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박 회장은 당시의 경험과 그간 익힌 노하우를 결합해 아웃소싱 사업을 구상하게 됐고 그것은 1996년 제니엘
'북한 어린이 왜 도와야 하나. ' 몇 해 전 한 신문 제목으로 크게 쓰인 이 말은 우리말의 아킬레스건 하나를 잘 보여준다. 당시 이 신문은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고 있는 북한 어린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북한 어린이 왜 도와야 하나'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그 캠페인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제목으로 쓰인 이 문장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명료하지 않은,그다지 잘 만든 표현은 아니라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보는 이에 따라 그 뜻이 도와야 한다는 것인지,돕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지 다르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에서 이처럼 문장 자체만으로 뜻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표현이 꽤 많다. 가령 '우리가 거기에 왜 가나'라고 했을 때 그 말은 가긴 가는데 '왜 가는 것인지'를 묻는 말일까? 아니면 '가지 않음' 또는 '갈 이유가 없음'을 전제로 이를 강조해 표현하는 말일까. 해석하기에 따라 정반대의 의미를 띤다. '초등학교 동창인 철수와 영희가 얼마 전에 결혼했다'란 말도 이중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철수와 영희가 결혼해서 두 사람이 부부가 됐다'는 뜻일까? 아니면 '철수가 누군가와 결혼했다' '영희 역시 다른 누군가와 결혼했다'이 두 사실을 한 데 묶어 말한 것일까?우리말에서 모호한 표현이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이 되는 것을 '중의성'이라 부른다. 이는 우리말만의 특성이 아니라,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언어에서도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뜻을 분명하고 엄격하게 써야하는 글에서는 극복해야 할 표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중의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여러 기법 중의 하나에
"'금융기관'이라는 용어에서 관치금융 시대의 느낌이 난다. '금융회사'로 용어를 변경하는 것을 검토해 보라." "과거 금융이 정부 소유였을 때 금융기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지금 시대에 적합한 용어인지 의문이다. "2009년 5월1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나온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법제처장으로부터 '금융기관 관련 법률 개정안'을 보고 받는 자리에서 '금융기관'이란 용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금융기관'이나 '금융회사'는 그동안 시중에서 혼용해 써오던 말이다. 전통적으로 언론이나 금융권에서 '금융기관'이란 말을 써왔으나 대략 2000년대 들어서면서 언론에서 '금융회사'란 말을 간간이 쓰기 시작했다. '금융기관'의 사전적 풀이는 '예금에서 자금을 조달하여 기업이나 개인에게 대부하거나 증권 투자 따위를 하는 기관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은행,신탁 회사,보험 회사,농협,수협,증권 회사,상호 신용 금고 따위가 있다. 이에 비해 '금융회사'는 '공채 · 사채 · 주식 따위의 유가 증권이 발행되는 경우에,이를 맡아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일을 하는 회사'를 뜻한다. 단자 회사,투자 금융 회사,증권 회사 등을 가리킨다. 그러니 사전적 풀이만 보면 금융기관과 금융회사는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두 말에는 두 가지 큰 차이가 있다. 하나는 금융의 공적 기능을 얼마나 강조하느냐에 따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적인 언어 의식에서 느끼는 '권위주의'의 부정적 흔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른 것이다. 은행 등을 '금융기관'이라 부를 땐 전통적으로 강조돼온 공공성이 반영된 것이다. 이에 비해 '금융회사'란 말에는 주식회사로서의 영리추구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말'로써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이를 꼽으라면 단연 노무현 전 대통령일 것이다. 특히 그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우리 사회 권위주의 청산 작업은 그 공과에 대한 평가와 함께 지금까지 계속 논쟁의 대상이 돼 왔다. 가령 집권 초인 2003년 3월 있었던 평검사와의 대화는 그 자체로 '파격'이었을 뿐만 아니라 오고간 대화 내용은 당시로선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토론을 통해 검사들을 제압하려 한다면 이 토론은 무의미하다. "(검사) "잔재주로 여러분을 제압하려는 것으로 보는 것에 대해 모욕감을 느낀다. "(대통령) "대통령이 되기 전에 부산 ××지청장에게 뇌물사건을 잘 봐달라고 했다는데, 검찰의 중립을 훼손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느냐. "(검사) "이쯤 가면 막가자는 거죠?" (대통령) TV로 생중계된 당시 현장은 검사들의 걸러지지 않은 질문과 이에 응하는 대통령의 직설적 대화로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최근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어록을 엮어낸 한 전직 언론인은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의 어법이 대통령의 언어로는 너무 거칠고 품격에 맞지 않았다"며 "권위주의는 배격하더라도 권위는 지켜야 하는데 권위까지 내팽개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권위주의 언어는 버려야 하지만 권위까지 없애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지난 호에서 살폈듯이 '영부인'은 본래 '남의 부인을 높여 이르는 말'이지만 지난 시기에 '대통령의 부인'을 가리키는 말로 왜곡돼 사용되기도 했다. 물론 그 여파는 계속 이어져와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후유증이 크다. 비록 왜곡된 인식에 의해 오도된 것일지언정 권위주의 언어는 과거 어두
"앞으로 대통령 부인에 대해 '영부인'이라는 용어 대신 '김윤옥 여사'로 호칭하기로 했다. "2008년 3월 갓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박재완 정무수석은 그동안 써오던 '영부인'이란 호칭 대신 '여사'를 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과거 '영부인' 호칭은 의미를 떠나 너무 권위의 냄새가 묻어났던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영부인'이란 말을 버림으로써 권위주의를 탈피하고,이를 통해 국민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정부의 노력은 예전에도 있었다. 10여 년 전인 1987년 12월 사상 최초로 직선제 선거를 통해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 '대통령 상전 영부인 열전'을 쓴 김순희 자유기고가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 역시 자신이 영부인이 아닌 '대통령의 부인'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그에 따라 청와대의 공식문서와 서신에는 '대통령 부인'이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언론도 '대통령 부인'이라고 표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 '대통령 부인 ○○○ 여사' 식의 표현이 언론에 오르내린 지도 벌써 20여년이 흐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부인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인식되기를 여전히 권위적이고 시대에 동떨어진 어감을 갖는 게 사실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오랜 군사정부 시절을 거쳐 오면서 형성된, 정치권과 언론에서 인위적으로 왜곡해 만들어 써온 의미 허상이 아직 짙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부인(令夫人)'이란 말은 원래 권위주의와 상관없는 말이다. 이 말의 본래 뜻은 '남의 부인에 대한 높임말'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 '영(令)'이 남을 높여 이르는 말로,영부인이라 함은 '귀부인(貴夫人)'과 같은 말이다. 그래서 굳이 대통령의 부인을 가리킬 때
"혼자 살기에 ○○○인 오피스텔." "그 양복이 너한테는 딱 ○○○○이로구나. "요구하거나 생각한 대로 잘 된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또는 조건이나 상황이 어떤 경우나 계제에 잘 어울림을 나타내는 말. ○○○○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말이다. 한 가지 힌트를 더하면 경기도 안성에서 유래한 말이다. 안성은 1937년 7월 1일 읍으로 승격되었는데 이때 경기도에서 수원과 개성이 함께 읍으로 승격됐다. 그만큼 안성은 예로부터 번성한 큰 고장이었다. 그 옛날 이곳에서 생산된 유기(鍮器 · 놋그릇)는 다른 지방의 것보다 품질이나 모양에서 단연 뛰어나 궁궐의 진상품으로,관가와 서울 양반가들의 생활용품으로 올라갔다. 유기의 재료가 되는 놋쇠는 비교적 가공하기 쉽고 잘 녹슬지 않아 예로부터 공업 재료로 많이 쓰였다. 특히 안성에서 맞춰온 유기는 주문한 사람의 마음에 꼭 들게 해준다는 데서 자연스럽게 '안성맞춤'이란 말이 생겨났다. 그런데 정작 안성에 가면 이 '안성맞춤' 제품은 없다. 대신 안성의 특산품인 '안성유기'를 비롯해 '안성마춤 포도' '안성마춤 쌀' '안성마춤 인삼' '안성마춤 배' '안성마춤 한우'가 있을 뿐이다. 안성시에서 대표상품으로 집중 홍보 · 육성하고 있는 이들 품목은 안성맞춤의 고장에서 만드는 '안성마춤' 특산품인 셈이다. 현행 맞춤법 이전엔 '맞추다'와 '마추다'를 구별해 썼다. '맞게 하다'란 뜻의 말로는 '맞추다'를, '일정한 규격의 물건을 만들도록 미리 주문을 하다'란 뜻으로는 '마추다'를 썼던 것이다. 가령 '맞추다'는 '입을 맞추다/문짝을 문틀에 맞추다/깨진 조각을 본체와 맞추어 붙이다/분해했던 부품들을 다시 맞추다/시곗바늘을 5시에 맞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함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절었다. 산허리는 온통 ○○○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서른다섯의 나이로 요절한 이효석(1907~1942)이 1936년 그의 작품에서 묘사한 곳은 강원도 봉평이다.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백미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메밀꽃 필 무렵》,○○○에 들어갈 말은 짐작하겠지만 '메밀밭'이다. 이맘 때 심는 여름메밀은 생장기간이 60여일이면 다 자랄 정도로 짧아 7~8월께면 수확을 한다. 매년 9월에 열리는 봉평 메밀꽃축제 때는 7~8월에 뿌리는 가을메밀이 만개한다. 그런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애초엔 제목이 《모밀꽃 필 무렵》이었다. '모밀'은 메밀의 고어이기도 하고 지금은 방언으로 남아 있기도 한 말이다. ('뫼밀→모밀→메밀'로 바뀌었다. ) 지금도 시중에서 여전히 모밀국수니 모밀냉면이니 냉모밀이니 하는 말이 쓰이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물론 표준어는 '메밀'이므로 모밀국수니 모밀냉면이니 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이는 조선어학회가 1936년 '조선표준말모음'에서 모밀을 버리고 메밀을 표준으로 잡은 이래 계속돼 온 것이다. 표준어라는 가치에 밀려 문학작품의 이름까지 바뀐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당시 조선어학회가 '메밀'을 선택한 것은 우리말에서 접두사로서 '메-'와 '찰-'이 활발하게 쓰이고,기본형으로 '메지다'와 '차지다'란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메-'는 (곡식을 나타내는 몇몇 명사 앞에 붙어) '찰기가 없이 메진'의 뜻을 더하는 말이다. 메조/메벼/메밀/메밥
① 그는 옛 여자 친구의 결혼 소식에 저으기 놀란 눈치였다.② 10년 만에 나타난 그는 영판 딴 사람이 되어 모든 이를 감동시켰다.③ 여자들은 약간 까탈스러운 것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④ 서해 바닷가의 아름다운 놀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이 가운데 표준어로만 이루어진 문장은? 2009년 4월 치러진 9급 공채 시험 뒤 시험을 주관한 행정안전부가 홍역을 치렀다. 일부 문제가 오답 논란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가장 큰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국어 표준어 문제였다. 행안부는 ④번을 정답으로 제시했지만 곧바로 수험생들 사이에서 "'잊혀지다'란 말은 이중 피동형인 만큼 표준어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수험생들의 이의신청은 행안부에서 "'표준어 규정'과 '한글 맞춤법'은 서로 다르며,이를 구분하는 능력도 평가 대상인 만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지함으로써 일단락 지어졌다.그러나 이 사건은 우리가 글쓰기에서 무심코 또는 일상적으로 범하기 쉬운 피동 표현의 오류에 관해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글쓰기의 여러 기법 가운데 완곡어법이란 어떤 적절한 용어가 충격적이거나 좋지 않게 보일 수 있을 때,그것을 다른 단어나 우회적 표현으로 대신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일종의 초점 흐리기와 같다. 그 방식은 단어와 같은 어휘 수준에서부터 문장 등 통사적 수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때로는 메시지 전체의 형식 논리 구성을 통해 이뤄지기도 한다. 가령 계층 간,이익집단 간 이해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가 터질 때 '양비론'이나 '양시론' 같은 논리를 펴는 경우가 그런 것이다.글을 쓸 때 피동형 문장을 조
"'야만한 원색'은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고,'서기한 광채'는 아마 '瑞氣한 光彩'인 모양인데 '瑞氣'는 명사다. 명사 밑에 '한'이 붙어도 좋다면 '人間한' '地球한' '赤色한'도 다 말이 되어야 할 것이다."(김동리)"'야만'은 사전을 찾아보면 풀이 끝에 '-하다'라고 되어 있다. '야만'이 형용사로 쓰일 수 있다는 표시이다. '서기하는 광채'는 기호지방, 특히 충청도에서 쓰는 말이다. 어둠 속에서 인광처럼 퍼렇게 빛나는 것을 '서기한다'고 한다. 이에 해당될 만한 표준어가 없기에 방언을 그대로 썼다."(이어령)1959년 3월 한 신문을 통해 전개된 소설가 김동리와 비평가 이어령 사이의 시비는 우리 문단사에서 은유와 비문(非文)에 관한 '험악한' 논쟁으로 기록된다. (남영신,<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50여년 전 대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비문논쟁이지만 요즘의 눈으로 다시 보아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하물며 일반인들의 글쓰기에서 어법을 벗어나는 표현으로 문장이 어색해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서기한 광채'에서 '서기'를 '瑞氣'로 해석한다면 어법적으로 '서기한'은 틀린 표현이다. '瑞氣'란 말 그대로 '상서로운 기운'이므로 여기에 '-하다'를 붙이는 것은 매우 어색하기 때문이다. '야만하다'도 같은 이치로 문법적 틀을 벗어난 말이다. '-하다'는 통상 명사 밑에 붙어 우리말에서 부족한 동사,형용사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다. '칭찬하다'에서처럼 동작명사 밑에 붙어서는 동사를,'만족하다'에서처럼 상태명사 뒤에서는 형용사를 만든다. 하지만 물질명사나 추상명사에는 붙지 않는다. '기운하다'가 어색한 것과 마찬가지로 '서기하다'나 '야만하다'도 바른 어법이 아니라는 뜻이다. 물
"'죄악세'를 대체할 말 없나요?" 2009년 8월 한국조세연구원은 음주자와 흡연자를 범죄자 취급한다는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조세연구원이 술과 담배에 대해 죄악세(sin tax) 관점에서 세율을 인상하자는 의견을 낸 것이 발단이 됐다. 이 용어가 음주와 흡연을 마치 범죄행위(crime)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는 게 비난의 골자였다. 급기야 조세연구원은 번역어인 '죄악세'를 다른 말로 바꾸려고 했지만 끝내 적합한 용어를 찾지 못하고 골머리만 앓았다.말은 언중의 입에 오르내려 일단 세력을 얻게 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 속성을 갖고 있다. '죄악세'처럼 도입 초기에 좀더 폭넓은 공감대를 갖는 말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이는 구(句)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우리말 가운데는 두 개 이상의 단어가 어울려 오랫동안 쓰다 보니 입에 굳어져 특수한 의미를 나타내는 말이 있다. 이를 관용구라 부른다. 이들은 단어 각자의 뜻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띠는 것이다. 가령 '발이 넓다'가 말 그대로 발이 넓은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사교적이어서 아는 사람이 많은 경우를 나타내는 것 따위를 말한다. 일단 관용구가 되면 쓰임새가 제한된다. 관용구의 특성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2층의 눈에 잘 띄는 코너에는 투자입문서 등 주식 투자와 직접 관련 있는 책은 물론 투자의 사회 · 심리적 현상을 다룬 책들까지 진열돼 주식투자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발길을 잡다' '~의 눈길을 끌다' 같은 말은 글쓰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정형화된 표현이다. '오고가는 발걸음을 잡다'라고 하면 '관심을 끌다' '인기가 좋다'는 뜻으로 쓰인 관용적 어구이다. 그런데 이 말을 예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21세 나이에 루게릭병을 진단받고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후 초인 같은 의지와 노력으로 연구에 몰두해 아인슈타인 이후 가장 뛰어난 우주물리학자란 명성을 얻었다. 그가 앓고 있는 루게릭병은 온몸의 운동신경세포가 점차 파괴돼 근육이 마비돼 가는 특이한 질환이다. 사람들은 그 병을 가리켜 '희귀병(稀貴病)'이라 부른다.희귀병이라 붙인 것은 아마도 인구 10만명당 1~2명이 발병하는 정도로 드문데다가,특별한 치료법조차 없이 일단 발병하면 대개 수년 안에 사망하는 치명적 질병이란 뜻을 담은 것일 터이다.그런데 이 말은 사전에 오른 말은 아니다. 아직 단어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말을 언론을 통해서나 일상적인 말글살이에서나 접해온 지는 꽤 오래 됐다. 1990년 1월1일 이후의 종합일간지 기사검색이 가능한 KINDS(한국언론진흥재단 사이트)를 통해 찾아보면 1990년 1년 동안 '희귀병'이란 단어가 쓰인 기사는 1개에 불과하다. 당시만 해도 언론들은 '희귀병'이란 말 대신 대부분 난치병 또는 불치병을 썼다.신문에서 '희귀병'이란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1994년 들어서다. 당시 유럽에서 발생한 괴박테리아 공포(피부가 썩어가는 괴저병 사태)가 한국에 전해지면서 이 낯선 질환에 대해 일반적으로 통칭하길 '희귀병'이라 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증가한다. 우리 입에 오르내린 지가 이미 십수년이 됐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말은 정식 단어가 아니다. 같은 한자어권인 일본이나 중국 사전에서도 '희귀병'이란 단어는 다루지 않는다.'희귀(稀貴)'는 '드물 휘,귀할 귀' 자로 이뤄
가) 장님: '소경'의 높임말. '소경'은 눈이 멀어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이른다. 봉사,맹인은 소경과 같이 쓰이는 말이다.나) 장님: 눈이 먼 사람. 소경이나 봉사 맹인은 모두 같이 쓰는 말이다. 소경은 좀 옛 말투.다) 장님: '시각장애인' 즉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요인으로 시각에 이상이 생겨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소경이나 봉사와 같이 쓰이며 모두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맹인은 '시각장애인'을 달리 이르는 말.가)~다)는 우리 국어사전들에 올라 있는 풀이를 옮긴 것이다. 그런데 각각의 풀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우선 1992년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큰사전>은 '장님'을 소경의 높임말로 풀이하고 있다. 두 번째 나)의 '장님'은 단순히 '눈이 먼 사람'으로 설명된다. 이는 1998년 연세대 언어정보개발연구원에서 엮은 <연세한국어사전>의 풀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1998년 <표준국어대사전>을 냈는데,여기에서 '장님'은 '낮잡아 이르는 말'로 규정된다.우리 사전들이 '장님'이란 단어를 두고 '높임말'에서부터 '낮잡아 이르는 말'까지 양극단으로 다루고 있는 모습은 이 말의 쓰임새가 아직 온전하게 자리잡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장님'의 어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사전에서도 그냥 한글로만 표기하고 있다. 다만 '장님'의 '님'은 지금도 '사장님,선생님'처럼 (직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높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와 같은 게 아닐까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한글학회의 <우리말큰사전>에서 장님을 '소경의 높임말'로 풀고 있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 2005년 민중서관 <새로나온 국어사전> 등 일부 우리 사전들
"한국농아인협회는 청각장애인을 알게 모르게 직간접적으로 차별하는 행위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어 개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가장 쉬운 예로 영어학원에서 이루어지는 원생모집 광고 문구에 영어를 못하는 사람을 빗대어 '꿀 먹은 벙어리'란 용어를 빌려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 … 이외에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등 … 청각장애인을 벙어리라고 표현하며 인권을 짓밟는다면 이는 엄연한 장애인 차별행위로서 법적인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2009년 11월17일 사단법인 한국농아인협회는 장애인 차별행위를 규탄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무의식적으로 '벙어리' 등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가 여전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게 요지였다.우리나라에서 장애인복지법(처음 명칭은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제정 시행된 지도 벌써 30여년이 흘렀다. 그동안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 등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우리 주위에선 무심코 이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던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벙어리를 비롯해 장님,소경,봉사,절름발이 등은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낮잡아 이르는 말'로 풀이한 말들이다. 그런데 개별적 단어는 그렇다 치더라도 성명서에서 제기한 '꿀 먹은 벙어리'나 '벙어리 냉가슴 앓듯' 같은 말은 단순히 장애인 비하어로 처리하기에는 미진한 부분이 남아 있다.'벙어리 냉가슴 앓듯'이란 표현은 '벙어리가 안타까운 마음을 하소연할 길이 없어 속만 썩이듯 한다'는 뜻으로,답답한 사정이 있어도 남에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만 괴로워하며 걱정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또 '꿀 먹은 벙어리'란 '속에 있는 생각을 나타내지
'다 거짓말이야/다 그친 다음에도/더 거친 말들을/내게로 또 다시 돌아와 달라고/너에게 화를 내고 싶었어/말이 없는 벙어리/피해망상 고집덩어리/이런 나라도 너만은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약속할게'2009년 11월 KBS 방송심의위원회는 가수 케이윌의 신곡 '최면'에 방송부적합 판정을 내렸다.이유는 노랫말 중에 쓰인 한 단어가 문제였다. '벙어리'란 말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앨범 발매 직후 각종 온라인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던 케이윌 측은 즉각 "장애인를 비하할 의도를 갖고 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사랑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을 벙어리라 상징적으로 비유한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심의 결과를 존중한다고 밝혔다."대중가요를 접하는 수많은 시민과 청소년들은 '벙어리'란 용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청각장애인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비하용어를 사용할 우려가 있어 이러한 비하용어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며칠 뒤 한국농아인협회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장애인 비하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며 "KBS의 방송불가 판정을 적극 환영한다"는 성명을 냈다.장애인은 비장애인과 차이는 있되 그것이 차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우리 사회에도 이젠 널리 퍼졌다. 1999년 2월 전부 개정된 '장애인복지법'은 '누구든지 장애인을 비하 · 모욕하거나 장애인을 이용하여 부당한 영리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되며 장애인의 장애를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문화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도 '모욕하거나 비하해서는 아니 된다'라는 조항을 뒀다.하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는 때론 알면
2005년 영화 '말아톤'이 처음 나왔을 때 흥행에 성공하리라 예상한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자폐증을 앓는 청년의 마라톤 완주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이야기로 흥행 돌풍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엄마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한 자폐증 청년이 끝내 스스로의 힘으로 정상인도 하기 힘든 42.195㎞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낸 이야기.'언론에서는 앞다퉈 영화와 함께 실제 주인공을 소개하고 나섰다. 그 가운데 일부는 적절하지 않은 말을 사용해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정상인'이란 단어가 문제였다."장애인들이 정상인처럼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문명의 진보를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라고 생각합니다." "정상인들도 하기 힘든…" 식으로 많이 쓰이는 이 말은 최근까지도 무의식적으로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대부분 칭찬하고 격려하기 위해 하는 말이지만 당사자인 장애인들에겐 되레 아프게 들렸을 말이다.'장애인'의 사전적 풀이는 '신체의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 '장애자'와 같이 쓰인다.그렇다면 '장애인'에 대응하는 말,즉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을 만한 신체적 정신적 장애나 결함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장애가 없는 사람,곧 '비장애인'이다.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이미 2001년 중앙일간지 기사 분석을 통해 장애인 비하어들이 여전히 쓰이고 있다는 통계 자료를 내놓은 적이 있다. 당시 자료는 "장애인에 대한 상대어로 많이 사용하는 '
#"100일도 안 됐는데…" 두 전직 대통령 미망인의 동병상련 오열.지난해 우리는 몇 달 사이에 노무현 ·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잇따라 서거하는 불행을 겪었다. 당시 신문 · 방송들은 8월 타계한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두 '미망인'이 서로 슬픔을 나누는 장면을 보도했다.#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회장 왕성원)가 주관하는 '제31회 장한어머니상' 시상식이 11일 서울 여의도 중앙보훈회관 대강당에서 개최됐다.그 해 6월엔 전몰군경미망인회에서 매년 주관하는 '장한어머니상' 시상식이 열렸다. 두 곳에는 공통적으로 '미망인(未亡人)'이 쓰였지만 그 말이 자리 잡고 있는 맥락은 사뭇 다르다. '두 전직 대통령 미망인'에선 제3자가 홀로 남은 남의 부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이에 비해 '전몰군경미망인회'에서는 남편과 사별한 부인들이 스스로를 가리켜 '미망인'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다른 사람이 홀로 된 남의 부인을 가리킬 때'와 '홀로 된 부인이 스스로를 지칭해 말하는 경우'. 우리말에서 '미망인'은 이처럼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 말이 존재하는 정당성이 달라지는,독특한 위치에 있는 말이다.대부분의 사람에겐 전자의 '미망인'이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무심코 입에 굳은 대로 써서 그렇지 사실 '미망인'은 뜻을 알고 나면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말이다. '미망인'에서 망인(또는 망자)은 죽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므로,미망인을 글자 그대로 풀면 '미처 죽지 못한,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춘추좌씨전》의 <장공편(莊公篇)>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밝히고 있는데,본래 남편과 사별한 여인이 남들에게 자신을 말할 때 스스로를 낮추어 이르던 말이다.이 단어는 글
“기술표준원장이 한국산업규격(KS)상 크레파스와 수채물감의 색명을 지정함에 있어서 특정색을 ‘살색’이라고 명명한 것은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으므로 이를 개정할 것을 권고한다.” 2002년 7월 31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그동안 줄곧 써오던 우리말 색 이름과 관련해 중요한 결정 하나를 내린다. 이른바 ‘크레파스 색상의 피부색 차별’ 진정사건에 대한 결정이었다. 당시 한국에 체류하고 있던 외국인 근로자 등 진정인 들은 기술표준원장을 상대로 ‘살색’이란 말이 차별행위를 조장하고 있다며 이의 시정을 요구했다. 국가표준제도를 관장하는 기술표준원에서 ‘살색’을 KS로 받아들임으로써 특정한 색만을 피부색으로 여기게 오도하고 있다는 게 요지였다. ‘살색’ 색명은 우리나라가 1967년 한국산업규격,즉 KS를 제정할 때 충분한 고려 없이 일본의 공업규격을 단순 번역해 도입함으로써 우리말 속에 자리 잡게 된 것이었다. 한국인을 비롯해 황색인종의 피부색을 ‘살색’이라 특정함으로써 다른 피부색의 존재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얼토당토않은 말이었다. 조금만 생각하면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말이었지만,오랜 세월을 무심코 입에 익은 대로 써온 것이다. 물론 그 전부터도 일부 우리말 운동가들은 이 말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해 왔으나,진정 사건을 통해 비로소 공식적으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게 된 셈이다. 기술표준원은 이에 따라 2005년 5월 관용색 이름을 대폭 손질해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 발표했다. 관용색 이름이란 하늘색,개나리색 등처럼 이름만 들어도 빛깔을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색명을 친숙한 동식물이나 외래어 등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때
"유 씨는 언제부터인가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이 아프고 어떤 때는 수면 중에도 통증을 느껴 잠까지 깨는 증상이 나타났다.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뒤 나온 진단은 바로 '팔목터널증후군'이었다.""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호소하는 손발 저림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대표적인 것이 중년 여성에게 흔히 나타나는 '손목굴증후군'이다."컴퓨터 사용이 일반화된 요즘 장시간 반복적으로 컴퓨터 앞에서 손과 팔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현대병'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 손발 저림 증세를 설명하는 말은 '팔목터널증후군' 또는 '손목굴증후군'이다.두 글에 쓰인 각각의 말은 서로 달라도 같은 대상을 나타내는 같은 말이다. 우리 몸에서 '손목'은 손과 팔이 잇닿은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팔목'과 함께 쓰인다. 이때 '목'이란 '통로 가운데 다른 곳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중요하고 좁은 곳'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그런데 여기에 '시계'가 붙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손목시계'만 가능하고 '팔목시계'는 허용되지 않는다. '팔목시계'는 우리 사전에서 '손목시계의 잘못'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를 또 '팔뚝시계'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팔뚝'은 팔꿈치부터 손목까지의 부분,즉 '아래팔'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표준어이다.정리하면 손목(=팔목)과 팔뚝은 각각 가리키는 부위만 다를 뿐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정상적 단어이다. 그러나 이들에 '시계'가 어울려 합성어를 만들 때는 손목시계만 허용되고,팔목시계,팔뚝시계는 인정되지 않는다. 현행 표준어 체계에서 버린 말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선 손목,팔목,팔뚝의 쓰임새는 남한과 같지만 손목시계와 함께
#성묘는 봄에는 한식,여름에는 단오,가을에는 추석,겨울에는 음력 10월 1일에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성묘는 글자의 뜻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산소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이상이 없었는지를 확인하고 살피는 의식의 하나이다. 생존한 어른께는 세배를 하지만 이미 사별한 조상에게도 생존 시처럼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을 설명하는 이 글에서 옥에 티를 찾으라면 어디가 될까. 얼핏 지나치기 쉽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어색한 단어가 눈에 띌 것이다. ‘세배’가 그것이다. 명절 때 집안이 한 곳에 모여 웃어른에게 인사를 드리는 게 우리 풍습이지만,그것을 다 세배라 하지는 않는다. ‘세배(歲拜)’의 사전적 풀이는 ‘섣달그믐이나 정초에 웃어른께 인사로 하는 절’이다. 이때 ‘섣달’이란 음력 12월을 뜻한다. ‘그믐’은 그 달의 마지막 날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 섣달그믐이라 하면 음력으로 12월 말일,즉 ‘설’ 전날을 나타낸다. ‘섣달’은 또 한자로는 ‘랍(臘)’이라 한다. ‘옛 구(舊)’자를 써서 구랍(舊臘)이라 하면 ‘지난 섣달’이란 뜻으로,새해가 되어 ‘작년 12월’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한자어를 많이 쓰던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신문이나 방송 등에서 새해 초에 ‘구랍 30일’ 식으로 이 말을 썼다. 하지만 요즘은 뜻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구랍이란 말보다 쉬운 우리말로 ‘지난해 12월 30일’이라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이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옛날에는 섣달 그믐날 저녁에도 웃어른을 찾아 한 해를 보내는 인사를 드렸는데 그것을 따로 ‘묵은세배’라 불렀다. 그러니 세배는 아무 때나 드리는 게 아니다. 집안에 행사 등이 있어 친지들이
'설 기분이 흐리멍덩한 이유는,어쩌면 음력 과세와 양력 과세의 설날이 우리에게는 둘이나 있어 오히려 이것도 저것도 설 같지 않은 때문인지도 모른다.'청마 유치환은 1963년 내놓은 수필집 <나는 고독하지 않다>에서 설을 두 번에 걸쳐 쇠는 탓에 정작 이도저도 설 같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것을 그는 '음력 과세' '양력 과세'라고 했다.'설'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설' 또는 '설날'은 추석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절이다. 이 날은 정월 초하룻날,즉 음력으로 새해 1월 1일을 가리키는데 '설'이나 '설날'이란 말은 이 날을 명절로 이르는 말이다. '정월(正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첫째 달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첫째 달 첫날을 '정월 초하루'라고 한다. 이 날은 또 한자로 '으뜸 원(元)'이나 '머리 수(首)''처음 초(初)' 자를 써서 '원단(元旦: 설날 아침),원일(元日),세수(歲首),정초(正初)'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유치환이 말한 '음력 과세'와 '양력 과세'를 함께 묶어 '이중과세(二重過歲)'라 한다. '설을 두 번에 걸쳐 쇠다'는 뜻이다. 세금을 이중으로 매긴다는 뜻의 '이중과세(二重課稅)'와는 한글 표기가 같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설을 쇠는 것을 '과세(過歲)'라고 한다. 예전에 정부에서 양력 1월 1일을 명절로 공식화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민간에서는 뿌리 깊은 전통에 따라 여전히 음력 1월 1일에 설을 쇠었다. 그러다 보니 두 번에 걸쳐 설을 쇠는 꼴이 됐는데 양력의 것을 신정(新正),음력의 것을 구정(舊正)이라 해 구별했다.우리나라에서 이중과세의 문제점은 근대 이후 100년 이상을 끌고 온 해묵은 과제이다. 우리말에서 양력설과 음력설을 낳고,신정과 구정이란 말을 구별해 쓰
'발병 후 1~2일이면 입술,혀,잇몸,콧구멍,발,젖꼭지 등에 물집이 생기며 다리를 절고 침을 흘린다. 동시에 식욕을 잃고 젖이 나오지 않게 된다. 이후 24시간 안에 수포가 파열되며 궤양이 만들어진다. 호흡이나 배설물을 통해 전파되며 바람을 타고 수십㎞씩 이동해 전염 속도가 매우 빠르다. 치사율 5~75%인 치명적 전염병.'설명만 들어도 무서운 이 질병은 그나마 다행이랄까,사람에겐 그다지 큰 해를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소나 돼지 따위의 가축에게 걸리는 이 병은 '구제역'이라 불린다. 하지만 한글만으로는 도무지 암호 같은 말이라 어떤 병인지 감을 잡기 힘들다. 한자로는 口蹄疫이라 쓰는데,'입 구,발굽 제,돌림병 역'자로 이뤄진 말이다. 이 병에 걸린 짐승은 입안 점막이나 발굽 사이 등에 물집이 생겨 짓물러 죽게 된다는 데서 이름 붙여졌다. 영어로는 'Foot and Mouth Disease'이니 '구제역'은 이를 직역한 것이다.이 낯설고 어려운 이름의 질병으로 인해 2010년 새해 벽두부터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3월 처음 발생한 이후 2002년에 이어 8년 만에 올해 다시 발생한 것이다.구제역이란 단어가 등장할 때 늘 함께 쓰이는 말이 '우제류(偶蹄類)'다. '짝/배필 우,발굽 제,무리 류'로,발굽이 2개로 갈라져 있는 짐승의 무리를 뜻한다. 소,돼지,양,사슴,기린,하마,낙타 따위의 짐승이 그런 무리에 해당한다. 그래서 구제역이란 말이 쓰일 때는 항상 우제류가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따라 붙는다.구제역이나 우제류 같은 말은 일상의 단어는 아니지만 우리말 어휘 목록에 들어 있는 것들이다. 어쩌다 한번 등장하면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에 무슨 뜻
2010년 1월1일 0시. 경인년 새해가 열리는 순간 서울 퇴계로 제일병원과 강남차병원에선 모두 5명의 새 생명이 동시에 탄생했다. 이미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데다 60년 만에 돌아온 백호(白虎)의 해 첫 아이란 의미가 더해져 이들의 탄생은 언론의 큰 관심을 끌었다.이처럼 사회적 조명을 받는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 조상들은 아기가 태어났을 때 집에다 특별한 장식을 함으로써 그 아기의 탄생을 세상에 알리는 풍습을 갖고 있었다. '금줄'을 내거는 풍습이 그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아기를 낳고 금줄을 매다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금줄의 재료인 새끼줄을 구하기도 어렵고,특히 악귀를 쫓는다는 미신에 뿌리를 둔 풍습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음에 따라 자연스럽게 금줄 문화도 보기 힘들어졌다. 더불어 그 말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말의 대상이 없어지면 그 말도 소멸되는 게 말의 속성이기 때문이다.'금줄(禁-)'의 사전적 풀이는 '부정한 것의 침범이나 접근을 막기 위해 문이나 길 어귀에 건너질러 매거나 신성한 대상물에 매다는 새끼줄'이다. 태어난 아이가 아들일 때는 금줄에 빨간 고추를 숯과 함께 매달고,딸일 때는 솔가지를 매달았다. 이 줄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했는데,예로부터 아이를 낳았을 때,장 담글 때,잡병을 쫓고자 할 때,신성 영역을 나타내고자 할 때에 사용했다. 이를 다른 말로 '인줄(人-)'이라고도 한다. 일부 지방에서는 '검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검줄은 버리고 '금줄'을 쓰도록 했다. 갓난아기가 없는 집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금줄을 공연히 쳐
“집나간 명태를 찾습니다. 살아 있는 상태로 가져오시면 시가의 최대 10배에 달하는 포상금을 드립니다.” 미아 광고도 아니고 우스갯소리도 아니다.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졌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산물로 맛도 좋고 값도 비교적 싸서 예로부터 서민들이 즐겨 찾던 명태가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 만큼 귀해진 것이다. 급기야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에서는 최근 ‘동해안 살아있는 명태를 찾습니다’란 전단을 제작해 배포에 나섰다고 한다. 또 일본과 함께 동해의 주요 어종인 명태 자원을 회복하기 위한 세미나를 여는 등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삶에서 명태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는 우리말에 명태를 가리키는 말들이 수없이 많은 데서도 알 수 있다. 가공방법이나 잡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고,요리방법에 따라 여러 말들을 만들어내 우리말을 풍성하게 하는 데도 일조했다. 우선 ‘명태(明太)’라는 명칭의 유래가 재미있다. 고려시대 때부터 함경도 강원도 연안에서 많이 잡히는 물고기가 있었는데 이름이 없어 그냥 ‘무명어’로 불렸다. 그러다 조선시대에 와서 함경도 명천(明川)이란 곳의 태(太)씨 성을 가진 사람이 생선을 잡았는데 이름을 몰라 지명의 ‘명(明)’자와 잡은 사람의 성을 따서 ‘명태(明太)’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학자 조재삼이 일종의 백과사전 격으로 지은 ‘송남잡지’에 전해지는 얘기다. (디지털강릉문화대전) 명태의 여러 이름 중에서도 동태,생태,북어,황태,코다리,노가리 정도가 우리 실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것들이다. 이 외에도 건태,백태,흑태,강태,망태,조태,왜태,태
"책상머리에서 말로만 '다문화'를 논하는 시기는 지난 지 오래다. 앞서서 미래를 열어야 할 담당 공무원의 다문화 의식은 옅고 현실에 맹목인 채 목소리만 높다. '우리의 참여 없이 우리에 관한 문제를 다루지 말아 달라!'"'다문화 사회'가 우리 사회에서 화두가 된 지도 오래 됐다.한국을 찾는 해외 입양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02년 설립된 '뿌리의 집'(www.koroot.org) 원장 김도현 목사.그가 최근 한 언론매체를 통해 주장한 이 대목은 우리 사회에서 구호만 요란한 '다문화 정책'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그의 표현대로 '다문화'를 책상머리에서 말로만 논하는 것을 한마디로 하면 '탁상공론'이다.'탁상(卓上)'이란 말 그대로 책상,식탁,탁자 따위의 위를 말하는 것이고,'공론(空論)'은 실속이 없는 빈 논의를 뜻한다.그러니 '탁상공론'이란 현실성 없는 허황한 이론이나 논의를 가리키는 말이다.'공리공론(空理空論 · 실천이 따르지 아니하는,헛된 이론이나 논의)'도 같이 쓸 수 있는 말이다.그것이 정부 관료들의 현실적이지 못한 행정을 빗댄 경우일 때는 특히 '탁상행정'이라고 한다.모두 사전에 정식으로 올라 있는 단어이다.현장 실태는 제대로 모르면서 책상머리에만 앉아서 하는 행정이란 뜻에서 '탁상행정'을 다른 말로 '책상머리 행정'이라고도 한다.1922년에 발표된 염상섭의 <만세전>에는 '인생이 어떠하니,인간성이 어떠하니,사회가 어떠하니 하여야 다만 심심파적으로 하는 탁상의 공론에 불과한 것은 물론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탁상공론'은 그만큼 오래 전부터 쓰이던 표현이다.이에 비해 '탁상행정'은 1992년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큰사전>에서도 다루지 않은 것으로 보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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