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야담집 《청구야담》에는 ‘시골 유생을 속여 박생이 과거에 합격하다(騙鄕儒朴生登科)’라는 이야기가 있다. 박생이 과거시험 전 거벽(巨擘·대리시험자)과 사수(寫手·대필자)를 찾아내 협박해 급제한다는 내용이다. 박생은 암행어사로 유명했던 박문수를 지칭한다.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과거제도의 실상을 엿볼 수는 있다.숙종실록에는 성균관에서 과장(科場)까지 대나무통이 묻혀 있는 게 적발됐다는 기록도 있다. 시험문제를 끈에 매달아 내보내면 밖에서 답안을 써 돌려보내는 대리시험 수법이었다. 조선시대판 문자메시지 커닝이다. 이런저런 부정행위로 급제한 자들은 ‘뻐꾸기 현감’ ‘뻐꾸기 당상’이란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시험 있는 곳에 빠지지 않는 게 커닝(cunning)이다. 커닝은 일본식 영어(간닝구)에서 유래했는데 본래 ‘교활한’이란 뜻이다. 영어로 시험 부정행위는 ‘cheating’인데, 이는 커닝뿐 아니라 도박 게임 등의 속임수까지 포괄하는 의미다.시험결과에 따른 반대급부가 크면 클수록 커닝은 성행하게 마련이다. 과거급제는 곧 인생역전이었으니 커닝수법은 상상을 초월한다. 송나라 때 만들어진 인쇄본 좁쌀책은 알고보니 커닝용이었다. 청나라 때는 가로 4.5㎝, 세로 3.8㎝, 두께 0.5㎝에 불과한 커닝페이퍼 9권에 10만자를 담은 사례도 있다. 심지어 점심 도시락이나 콧속에까지 커닝페이퍼를 끼워넣기도 했다고 한다.오늘날에도 커닝은 더 기승이다. 최근 중국 일부 학교에선 커닝 통제가 안 되자 학생들을 운동장에 4m 간격으로 앉혀 시험을 치르게 하고, 교사는 망원경으로 감시한 일도 있었다. 또한 IT기기를 이용한 커닝 예방을
1995년 박철수 감독의 영화 ‘301 302’가 개봉됐을 때만 해도 음식 먹기를 거부하는 거식증(拒食症)은 낯설었다. 영화 속 윤희(황신혜 분)는 의붓아버지의 강간과 사고사의 트라우마 탓에 음식과 섹스를 거부하는 여자다. 작가 한강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채식주의자’(2009)에도 아버지의 육식 강요와 가정 내 폭력이 채식 집착, 거식증, 자살기도로 나타난다. 거식증은 심리·정신적 요인이 크다.거식증의 진단명은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 살을 빼려는 강박적 행동이 체중 집착, 살 찌는 두려움으로 인해 섭식장애로 이어진다. 심하면 적정체중 대비 30% 이상 빠지고 치사율도 10%에 이른다.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폭식증(暴食症)을 동반하기도 한다.과거 먹을 것이 태부족이던 시절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류 유전자는 스스로 숨을 참아 죽을 수 없듯이 식욕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먹을 게 풍부해진 20세기에 다이어트와 거식증이 등장한 것은 풍요의 역설이다. 밀의 실질가격(물가상승분 제외)은 부셸(27.2㎏)당 5달러로 100년 전 가격의 4분의 1에 불과할 만큼 먹을 게 넘쳐나는 세상이다.마릴린 먼로 시절만 해도 풍만함이 곧 미(美)였다. 그러나 1959년 바비 인형, 1966년 17살 패션모델 트위기의 등장으로 미의 기준은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인체를 6 대 1로 축소한 바비 인형은 175㎝로 환산하면 체중 50㎏, 36-18-36인치의 비현실적인 몸매가 된다. 트위기는 167㎝, 40㎏였다. 트위기(twiggy) 자체가 ‘잔가지 모양의’란 뜻이다. 다이어트 열풍이 세계를 휩쓴 계기다.거식증이 일반에도 널리 알려진 것은 1983년 남매 팝그룹 카펜터스의 동생 카렌(당시 32세)
봉지 커피처럼 물에 타 마시는 ‘분말 술’이 미국에서 등장해 화제다. 제조사 립스마크가 최근 미 주류담배과세무역청(TTB)으로부터 분말형 알코올인 ‘팔코올(Palcohol)’ 시판을 허가받아 올 여름 선보인다고 한다. 팔코올은 ‘분말로 된(powdered) 알코올’이란 의미다. 미드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주인공이 즐겨마시던 코스모폴리탄, 마가리타 등의 칵테일이나 보드카, 럼주를 분말로 만든 것이다.립스마크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지만 사실 우리나라엔 예부터 분말 술이 있었다. 쌀가루를 수제비처럼 만들어 물에 익혀 식힌 뒤 누룩가루와 엿기름 가루를 버무려 만든다. 여름철 일할 때 물에 진하게 타면 술이고, 묽게 타면 음료수였다. 병도, 마실 것도 귀하던 시절의 휴대용 술인데 지금은 사라졌다고 한다.근래 한 중소업체가 개발한 가루 막걸리도 있다. 물만 부으면 바로 술이 되진 않고 3~4일 숙성해야 한다. 엄밀히 말해 ‘막걸리용 쌀가루’인 셈이다. 업체는 주류가 아닌 식품으로 허가받아 술을 금지하는 중동에도 반입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음식이나 술을 분말로 만들면 휴대·운반·보관이 쉬워진다. 이런 장점을 십분 활용한 게 몽골 기마대다. 엄청난 기동력으로 세계정복에 나선 데는 비상식량인 ‘보르츠’ 덕이 컸다. 보르츠는 소 말 양 등의 고기를 찢어서 말린 육포다. 보르츠를 빻은 가루를 신축성이 좋은 소나 양의 방광에 넣어 갖고 다니다 물에 풀어 마셨다. 10㎏의 보르츠면 1년치 전투식량이어서 보급문제가 해소된 것이다. 지금도 몽골 사람들은 여행할 때 보르츠를 갖고 다닌다.냄새가 강한 한국 장류의 분말화도 꾸준히 이어졌다. 대표
제주 ‘신비의 도로’(일명 도깨비도로)는 오르막길로 보이지만 기어를 중립에 놓아도 차가 슬슬 앞으로 간다. 실제론 3도가량 내리막길이다. 1980년대 초 신혼부부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산록도로 초입엔 제2 도깨비도로도 있다. 도깨비도로는 전국 각지에서 발견된다. 의왕 하우고개, 세종 비암사 입구, 제천 청풍호반, 화천 호음고개, 태백 두문동재, 칠곡 요술고개 등 10여곳이다. 모두 관광명소로 뜬다니 착시가 돈벌이도 되는 셈이다.착시(錯視·optical illusion)는 사물의 크기 방향 각도 길이 등이 실제와 달리 보이는 착각의 일종이다. 독일 수학자 프란츠 뮐러리어가 1889년 고안한 뮐러리어의 도형이 대표적이다. 같은 길이의 두 직선이 양쪽 끝의 화살표시가 안쪽이냐 바깥쪽이냐에 따라 길이가 달라 보이는 것이다. 네덜란드 판화가 에셔는 영국 수학자 펜로즈의 ‘불가능한 도형’을 응용해 착시를 일으키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예부터 착시는 건축의 중요한 고려 대상이었다. 고대 그리스 건축물은 대개 기둥 중간부가 약간 볼록하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엔타시스(entasis) 형태다. 기둥 굵기가 일정하면 중간이 오목해 불안정해 보이는 착시를 유발하는 탓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과 같은 원리다. 석탑의 중심기둥을 모서리보다 높게 하는 ‘귀솟음’, 탑신의 기둥을 안쪽으로 기울이는 ‘안쏠림’도 착시 교정기법이다.일상의 착시는 흔하다. 이발소 표시등의 빗금이 아래로 내려가고, 선풍기가 실제 회전과 반대로 도는 듯한 것도 눈의 착각일 뿐이다. 하이힐, 코르셋은 착시를 응용해 여성을 날씬하고 풍만해 보이게끔 해주는 사례다. 헤어스타일과 줄무
설 연휴 서울 시내 도로는 한산함과 체증이 극과 극이다. 이럴 때마다 이호철의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1966년)가 떠오른다. 그해 서울은 9개구(區), 380만명이었다. 지금 보면 ‘아담한’ 규모지만 당시엔 콩나물 시루 같았다. 1945년 90만명이 20년 새 4배로 불었으니까.50년 전 ‘만원’이라던 서울이 다시 3배가 됐다. 25개구, 1000만 메트로시티다. 인천 경기를 합친 수도권은 2489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49.6%다. 한국인 둘 중 하나는 수도권에 산다. 인천(294만명) 말고도 경기엔 100만 대도시만도 수원 고양 성남 용인이 있다. 부천 안산 안양 화성 남양주가 50만~80만명대, 평택 의정부 파주 시흥 광명 김포는 30만~40만명대다. 서울을 중심으로 메갈로폴리스를 형성한 것이다.도시화와 경제성장은 한묶음어느 나라건 수도권 경쟁력은 곧 국가 경쟁력과 맥을 같이한다. 미국 워싱턴DC와 뉴욕, 영국 런던, 일본 도쿄와 그 주변부가 그렇다. 한국의 경제기적도 세계 유례가 드문 초고속 도시화 덕이다. 밀집해 사는 도시는 노동력과 자본을 공급하고 시장을 제공한다. 기업들이 땅값과 인건비 비싼 도시를 선호하는 이유다.하지만 도시 몰이해의 뿌리도 깊다. 당장 공해 체증 범죄 소외 등 그늘이 눈에 띈다. 도시화 산업화 과정에서 소설 속 서울은 무작정 상경한 무수한 ‘영자’와 ‘어둠의 자식들’이 ‘부초’처럼 떠도는 곳으로 그려졌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는지 도시 혐오자들은 설명하지 못한다.도시는 좁은 지역에 사람과 기술과 아이디어가 모여 빅뱅을 만들어낸다. 1+1이 2가 아니라 3, 4, 5, …10도 될 수 있다. 세계적으로 500년간 부단한 도시화가 진행된 이유는 바로 도
1983년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한 남자가 커다란 기계를 들고 통화를 시도한다. 상대는 라이벌인 벨연구소의 조엘 엥겔 소장이다. “여보게, 난 지금 셀룰러폰(휴대폰)으로 통화하고 있다네!” 전화를 건 남자는 휴대폰을 발명한 모토로라 연구소의 마틴 쿠퍼 이사였다.당시 쿠퍼가 들고 있던 전화기는 최초의 상용 휴대폰인 ‘다이나택 8000X’였다. 무게가 1㎏이 넘고 가격은 4000달러나 됐다. ‘벽돌폰(Brick Phone)’이라는 다소 경멸적인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당시 카폰 장치가 40㎏이었으니 다이나택은 그 자체로 혁명이었다. 2007년 USA투데이가 꼽은 ‘지난 25년간 미국인의 삶을 변화시킨 발명품 25개’ 중 단연 1위에 오른 휴대폰의 탄생 장면이다.무선통신은 곧 모토로라(Motorola)의 역사였다. 모토로라는 폴 갤빈이 1928년 시카고에서 설립한 갤빈제작소로 출발했다. 초기엔 차량용 라디오를 만들었는데 이때 브랜드가 모토로라였고, 1947년엔 아예 회사명이 됐다. 모토로라는 ‘자동차(motor)+축음기(victrola)’를 합친 뜻이다. 2차대전 때 연합군 승리에 기여한 워키토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때 닐 암스트롱이 지구와 교신한 우주통신기기 역시 모토로라의 작품이었다.모토로라는 한때 혁신의 심벌처럼 여겨졌다. 1996년 최초 폴더폰 ‘스타택’은 무전기 크기의 휴대폰을 와이셔츠 호주머니 크기로 줄여 선풍을 일으켰다. 세계시장의 30~40%를 점유할 정도였다. 2003년 얇은 ‘레이저V3’로 또 한번 인기를 모았다. GE 소니 삼성 등이 앞다퉈 도입했던 ‘식스 시그마’도 원조는 모토로라였다.이런 모토로라였지만 몇 차례 판단미스로 급전직하로 추락하고 말았
인류 에너지원은 나무→석탄→석유→가스 순으로 변천했다. 나무는 수소 1개에 탄소 10개로 이뤄져 있고, 석탄은 수소 1개에 탄소 1~2개, 석유는 수소 2개에 탄소 1개, 가스는 수소 4개에 탄소 1개인 구조다. 이는 이산화탄소(CO2)를 적게 배출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것이지만, 화석연료 사용량이 너무 많아 대기 문제를 초래했다. 수소 2개로만 구성된 수소 에너지가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기대되는 이유다.(김미경, ‘수소 혁명의 시대’)수소(水素·H)가 주목받고 있다. 흔하디흔한 물(H2O)이 수소와 산소로 구성돼 있고, 수소를 연소시키면 CO2가 아닌 물이 나오는 청정 순환구조다. 수소 연료가 상용화되면 온실가스나 석유 고갈은 더이상 논란거리가 못 된다.수소(H)를 뜻하는 hydrogen은 ‘물(hydro) 생성물(gene)’이란 뜻이다. 1776년 영국의 헨리 캐번디시가 발견했고, 라브와지에가 hydrogen이라고 명명했다. 수소는 주기율표의 맨 꼭대기 1번 원자인데, 그 이유가 있다. 수소는 가장 단순한 구조(전자 1개, 양성자 1개)이며, 헬륨(He)을 제외한 모든 원자와 분자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우주 빅뱅 초기에 형성된 원자의 92%가 수소, 8%가 헬륨이었다. 우주 공간 물질의 대부분이 수소이고, 모든 별이 수소를 원료 삼아 빛을 낸다. 미국 천문학자 할로 섀플리가 “만약 신이 한 단어로 세상을 창조했다면 그것은 분명 수소였을 것”이라고 할 만했다. 존 리그던도 《수소로 읽는 현대과학사》에서 “수소에 관한 지식 변천사가 곧 현대 과학의 역사”라고 봤다.수소는 지구와 모든 생명체의 7할을 차지한다. 그러나 대기 중 수소는 극히 미미하다. 너무 가벼워 대기 밖으로 소실되는 탓이다. 수소
제주도 여행이 늘 설레는 것은 청정한 풍광에다 다채로운 음식이 있어서다. 가장 제주다운 먹거리가 ‘꺼멍도새기’, 즉 흑돼지 고기다. 자리돔젓을 곁들인 돔베고기(수육)는 별미 중의 별미다. 문화재청이 제주 흑돼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하자 당장 “이제 흑돼지 못 먹는 거냐”는 문의가 쏟아질 만했다. 천연기념물은 순수혈통 260여마리로 한정되고, 식용 유통되는 흑돼지는 무관하다니 다행(!)이다.본래 재래종 흑돼지는 전국에 분포해 왔다. 고구려 때 만주의 돼지가 유입돼 토착종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천의 지례 흑돼지는 조선 때 임금 진상품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번식과 생장이 빠른 외래종이 들어오면서 급속히 사라졌다. 경제성이 떨어진 탓이다. 최근 들어 지리산 주변 함양 산청 남원과 김천, 홍천 등지에서 흑돼지를 되살려 지역 특산품으로 사육하고 있다.그중에서도 제주 흑돼지는 3세기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사육기록이 나올 만큼 유서 깊은 전통종이다. 육지와 격리된 환경 탓에 육지 흑돼지에 비해 작지만 민첩하며 귀가 짧고 위로 뻗은 게 특징이다. 몸 길이 90㎝, 무게 70㎏가량으로 일반 돼지의 3분의 2 정도다. 제주 풍토에 오래 적응하면서 면역력이 강해 구제역도 피했을 정도다.흑돼지 하면 떠오르는 게 돌담으로 쌓은 ‘돝통’ 또는 ‘통시’(돼지우리 겸용 뒷간)다. 이곳에서 인분을 받아먹고 자라 제주에선 똥돼지라고도 부른다. 통시는 제주뿐 아니라 지리산 산골마을에도 있었다. 1970년대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비위생적이란 이유로 제주 통시가 사라졌고 지금은 성읍 민속마을에서나 볼 수 있다.제주민에게 흑돼지는 먹거리를 넘
1990년대 3D게임 ‘둠(Doom)’은 괴물들의 기괴한 소리가 압권이었다. 그런데 괴물 효과음이 치과 환자들의 비명소리를 녹음한 것이라고 한다. 성인도 치과라면 공포스러운데 그럴 만도 하다.치과 가기 겁난다면 평소 자주 양치질을 하는 게 필수다. 하지만 칫솔에 치약을 묻혀 이를 닦는 양치를 한자로 ‘洋齒’로 아는 이들이 많다. 이는 한자를 잘못 유추한 오류다. 고려 때 《계림유사》를 보면 버드나무 가지, 즉 양지(楊枝)를 잘라 이쑤시개처럼 썼다고 한다. 양지가 양치로 변형됐고, 일본으로 건너가 ‘요지’가 됐다.인류 최초의 치약은 기원전 5000년 이집트를 꼽는다. 화산재와 몰약, 소발굽을 태운 재에다 계란·굴 껍데기와 결정이 고운 연마제를 섞어 만들었다. 치아 미백이 유행한 로마에선 소변을 치약처럼 썼다. 비위생적이지만 과학적 근거가 없지 않다. 소변의 암모니아 성분이 치석의 뮤탄스균이 만들어내는 젖산을 제거해 산성에 취약한 치아 법랑질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18세기 유럽에선 가루치약이 등장했다. 그러나 벽돌 도자기를 으깬 가루 연마제가 오히려 치아를 마모시켜 해로웠다. 그러다 차츰 화학, 의학 지식이 축적되며 암모니아 글리세린 탄산염 등의 성분이 추가돼 치아 건강에 도움이 되는 치약으로 발전했다. 1873년 미국에서 새뮤얼 콜게이트가 가루치약을 병에 담아 판매했고, 1908년엔 그의 다섯 아들이 튜브 치약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국내에선 일본 라이온사가 1889년 개발한 가루치약이 들어왔지만 값이 비싸 서민들은 여전히 소금을 썼다. 6·25를 전후해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콜게이트 치약이 판치던 시절에 1954년 락희화학(현재 LG생활건강)
서울 충정로 구세군아트홀 앞길은 밤 10시가 가까워지면 때아닌 체증을 빚는다. 난타전용관에서 공연을 보고 나온 중국 관광객들을 태우려 대기 중인 버스 10여대가 늘어선 까닭이다. 2013년 개관한 충정로 전용관은 540석 규모의 대형 공연장인데도 빈자리가 드물다. 한 해 한국에 와서 공연을 본 외국인 110만명 중 70만명이 ‘난타(亂打)’를 관람했다는 말이 실감난다.1997년 10월 초연한 ‘난타’가 최근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1년 만인 2008년 10월 400만명, 2012년 11월 800만명 돌파에 이어 2년 만에 또 200만명이 늘었다. 18년째 장기공연인데도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요즘엔 8할이 외국인이다. 물론 1억3000만명이 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순수 한국산 공연에 1000만명이 든 것은 엄청난 사건임에 틀림없다.‘난타’의 강점은 세계적 보편성과 한국적 요소를 잘 버무린 데 있다. 언어 장벽이 없는 비언어극, 원시적인 리듬, 주방과 요리사 등으로 보편성을 갖추고 사물놀이 장단과 마당극 형식을 차용해 한국적 특성을 살린 것이다. 영국 ‘스톰프’, 미국 ‘튜브’ 같은 비언어극의 장점을 최대한 수용하되 우리식으로 잘 소화해 대사도 없는 100분간 공연이 지루하지 않다.이에 힘입어 ‘난타’는 작년 말까지 51개국 289개 도시에서 총 3만1290회 공연됐다. 구미 일본 동남아는 물론 중동 아프리카 남미까지 안 간 곳이 없다. 공연에 소모된 칼만 2만2000여개이고 오이와 당근은 각기 31만여개를 썰었다. 공연팀은 1팀(5명)에서 10팀(50명)으로 확대됐고 서울 명동 충정로, 제주와 태국 방콕 전용관에서 연중 공연이 펼쳐진다.하지만 ‘난타’가
영화 한 편이 정치 이슈가 됐을 때 흔히 듣는 말이 있다. “영화는 영화일 뿐!”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는다. 영화보다는 그에 따른 정치적 손익계산에 더 민감하다. 작년 이맘때 ‘변호인’이 불편했던 우파나, 지금 ‘국제시장’에 좌불안석인 좌파나 반응은 엇비슷하다. 이제는 누가 더 많이 보나 관객 수가 초미의 관심사다.두 영화 모두 굴곡진 현대사가 배경이다. 영화와 현실이 수시로 오버랩된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부림사건을 다룬 ‘변호인’은 자막에 허구라고 명시했다. 실제 사실과 다르다고 시비를 걸면 픽션인데 뭐가 문제냐고 퉁칠 안전장치를 해둔 셈이다.‘안티→긍정’이 흥행코드로반면 ‘국제시장’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변호인’이 특정한 누군가(somebody)를 다뤘다면, ‘국제시장’은 어렵던 시절 아무개(anybody)들의 얘기인 까닭이다. 주인공 덕수와 영자는 40대 이상 중년세대엔 너무도 익숙한 인물 유형이다. 나의 개인사와도 무관치 않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게 부모님 피란시절이다. 돌아가신 이모부 세 분은 각기 6·25, 월남전, 중동을 경험했다. 어릴 적 “기브 미 초코레뜨”는 그저 일상이자 놀이였다.문재인 의원도 수긍했듯이 그때는 누구나 그랬다. ‘국제시장’은 개인의 미시사(微視史)를 영상으로 버무려낸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다. ‘쉰들러 리스트’에 감동했다면 흥남 철수의 메러디스 빅토리호 스토리는 그 이상의 감동을 준다. 오히려 여태껏 이런 소재를 영화로 안 다룬 게 의아스럽다.윤제균 감독은 우파도 좌파도 아니다. 그
훈련병 시절 “10분간 휴식, 담배 일 발 장전!”만큼 달콤한 소리가 없었다. 군대와 담배는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입영전야’(최백호)는 “아쉬운 밤, 흐뭇한 밤, 뽀얀 담배연기…”로 가득했고, “한 가치 담배도 나누어 피우는” 사이가 ‘전우’였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선 “담배가 배급될 때 그것은 곧 공격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였다”고 썼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군대 관련 노랫말이 달라졌다. ‘입영열차 안에서’(김민우), ‘이등병의 편지’(김광석) 등에선 담배가 사라졌다.아메리카 원주민이 피우던 담배는 16세기 초 스페인에 처음 전해졌다. 아시아엔 1571년 필리핀에 먼저 들어왔고, 1600년 중국에도 유입됐다. 조선에는 광해군 때인 1610년 전후에 전해졌다. 이수광은 《지봉유설》(1614년)에 “근세에 왜국에서 들어왔다”고 기록했다. 광해군은 담배를 혐오했지만 정조 고종 순종 등은 애연가였다고 한다.군가 ‘전우’에서 담배 한 가치는 본래 성냥개비처럼 ‘한 개비’가 맞다. 담배를 낱개로 파는 ‘가치담배’는 ‘개비담배’가 옳은 표기지만 자주 사용돼 표준어에 포함됐다. ‘까치담배’, ‘개피담배’는 잘못된 표기다. 북한에서는 종이로 만 담배(궐련·卷煙)는 개비 수를 따지지 않고 총칭해서 가치담배라고 한다. 보루(담배 10갑)는 종이상자를 뜻하는 일본말 ‘보루바꾸’에서 왔다. 보루를 ‘포, 줄’로 순화토록 권장하지만 아직 어색하다. 북한에선 30갑을 한 보루로 친다.새해 들어 담뱃값이 대폭 인상되면서 ‘가치담배&rsq
“피녀(彼女)들의 ‘하이힐’이 더한층 가벼움을 늣길 때가 왓다. /육색(肉色)의 ‘스터킹’ /극단으로 짧은 ‘스카트’.”(1933년 김기림 ‘봄의 전령-북행열차를 타고’ 중에서) 여성의 옷차림에서 먼저 계절을 느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시인 김기림도 짧은 스커트, 스타킹과 더불어 하이힐을 ‘짙은 에로티시즘과 발랄한 흥분’이라고 표현했다.여성의 하이힐(high heel)에 대한 로망은 남성의 이해수준을 넘어선다. “지미추를 처음 신은 순간, 넌 네 영혼을 악마에게 판 거야.”(‘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주인공 캐리가 강도에게 외치는 말은 더 노골적이다. “펜디 백이나 반지, 시계는 다 가져가도 좋으니 제발 마놀로 블라닉만은 건드리지 말아주세요.”스틸레토(굽이 뾰족한 힐)를 신으면 마술처럼 몸매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뉴욕에선 스틸레토를 신기 위해 ‘레그 워크’란 준비운동이 유행할 정도다.하이힐의 원조는 16세기 베네치아를 꼽는다.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에 따르면 당시 하이힐은 두 가지 용도였다. 오물로 뒤덮인 길을 건너는 실용적 용도와, 몸매를 최대한 돋보이게 하는 미적 용도다. 하이힐을 신으면 엉덩이가 올라가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배를 들이밀고 가슴은 내밀게 돼 풍만함이 두드러지게 된다는 것이다.과거 하이힐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17세기 절대왕정 시대에 태양왕 루이 14세의 초상화는 초핀(굽 높은 슬리퍼)을 신은 모습이 대부분이다. 귀족들 사이에 초핀이 유행하며 굽이 최대 40㎝에 달한 적도 있다. 굽높이가 곧 신
한류가 어느덧 20년이다. 그래선지 한류 문화상품을 파는 솜씨도 많이 세련돼졌다. 홍콩에서 직접 관람한 ‘2014 MAMA’가 그랬다. ‘Mnet 아시안 뮤직 어워즈’의 약자인 MAMA라는 작명부터 귀에 쏙 들어온다.Mnet의 사전투표 참여자가 6846만명에 달했다. 중국인이 61%(4179만명)에 달했지만 FIFA 회원국(207개국)보다 많은 210개국에서 참여했다니 놀랍다. 한류가 하나의 문화현상임은 분명하다. 혐한류가 생겨났고, 식자층은 심심하면 “한류 이대로 안 된다”며 어설픈 훈수를 뒀지만 이젠 자생력을 갖춰가는 듯하다.MAMA 공연장 1층에 국내 화장품·뷰티 중소기업 56곳의 전시장을 운영하고, 공연 중에는 유네스코와 함께 열악한 처지의 저개발국 소녀들을 교육시키자는 캠페인을 편 것도 높이 평가해 줄 만하다. 단순히 음악잔치를 넘어서 ‘Music makes one’이란 MAMA의 캐치프레이즈가 무색하지 않다.하지만 동시에 문제점과 한계도 또렷하다. 명색이 아시아 음악상인데 내용은 중화권에서 먹히는 K팝 아이돌들의 잔치다. 후보 명단과 대기석을 보면 누가 수상할지도 빤히 보인다. 부문별 상의 인플레이션도 정리가 필요하다. 남녀 가수상이 있는데 베스트 보컬상, 한류팬이 뽑은 아티스트상을 따로 주는 식이다. 그래미상 수준의 권위를 기대하긴 이르지만 10년, 20년 뒤 MAMA를 위해서라도 시상의 공정성이 아쉽다.서울의 흥분과 홍콩의 반응도 두 도시 간 20도나 차이나는 기온만큼이나 다르다. MAMA가 3년 내리 열렸어도 도심에서 먼 공항 인근 공연장만 하룻밤 반짝 뜨거웠다. K팝으로 홍콩 밤거리를 밝혔다는 식의 허풍 보도는 그만 할 때도 됐다.한류에는 미묘한 특징이 있다. 언론이 한국 문화
소주는 한자로 ‘燒酒’일까, ‘燒酎’일까. 사전에는 燒酒인데, 참이슬 등 소줏병에는 燒酎로 표기돼 있다. ‘酎’는 세 번 걸러 빚은 진한 술을 뜻한다. 전통 증류식인 안동소주는 燒酎로 쓰지만, 고구마 등을 발효한 주정을 물로 섞어 희석한 일반 소주는 燒酒라야 맞다. 酒와 酎에 들어간 ‘酉’는 술의 침전물을 거르기 위한 항아리의 형상이다.말 그대로 소주는 불로 만든 술이다. 술의 어원도 ‘수불(水火)’이다. 소주는 불을 이용해 만들어 ‘화주(火酒)’, 이슬처럼 한 방울씩 모아 ‘노주(露酒)’, ‘한주(悍酒)’로도 부른다.소주의 유래는 신라설과 고려설이 있다. 신라설은 아라비아 연금술사들의 증류기술이 당(唐)과 신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신라 괘릉의 서역 무사상(像), 페르시아 유리잔 등이 그 증거다. 반면 고려설은 페르시아를 거쳐 몽골에 전래된 증류술이 몽골의 일본 원정 때 들어온 것으로 본다. 소주가 발달한 개성, 안동, 제주 등이 몽골군 주둔지였다는 것이다.지금 마시는 소주는 1924년 장학엽이 평안도 용강에 진천양조상회를 세워 ‘진로(眞露)’를 생산한 것이 원조다. 진로는 6·25 이후 서울 신길동에 정착하면서 상징마크를 평안도에서 영물로 치는 원숭이에서 두꺼비로 바꿨다. 진로도 처음엔 쌀 보리를 증류해 만들었지만 1965년 정부가 쌀 부족을 이유로 곡물 주정을 금지해 불가피하게 희석식으로 만들게 된다.증류식 소주는 알코올 도수가 35도에 이를 정도로 독하다. 독한 소주는 독(毒)도 되고 약(藥)도 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조의 맏아들 이방우가 소주를 과음하다 술병이 나 죽은 반면, 어린 단종이 허약
11월 정치권을 달군 이슈가 야당의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였다. 소위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에겐 솔깃한 얘기였다. 그러나 허경영식 공약이라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작명은 걸작인데 내용이 졸작인 탓이다. 무상복지가 파탄났는데 또 무슨 돈으로…. 이리저리 해명 끝에 ‘도로 임대주택’이 되고 말았다.전·월세 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집만큼 호소력 있는 게 없다. 역대 정권마다 서민 임대주택 공약을 내건 이유다. 영구임대, 국민임대, 보금자리, 행복주택 등 이름만 달랐지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20여년간 공공·민간 임대주택 160만채를 지었어도 항상 모자란다. 대기자가 4만7000명, 대기 기간은 평균 21개월에 이른다. 전·월셋값이 뛸수록 대기 줄은 더 길어진다.官·건설사 주도 임대주택 한계주거비용 증가는 부동산에 국한된 게 아니다. 소비 위축, 가계부채 등과도 뒤엉킨 숙제다. 전·월세 안정을 위해 임대주택 확대가 시급한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문제는 공급 주체가 없다는 점이다. 세수가 구멍난 정부는 돈이 없고, 139조원의 빚더미(부채비율 460%)에 앉은 LH는 빚부터 줄여야 한다. 건설사들은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발을 뺀다. 당장 급한데 누가 지을 것인가. 관(官) 주도의 공공임대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얘기다.답은 민간에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전·월세 대책으로 민간임대 활성화에 눈을 돌렸다. 지난 5월 인천 도화구역 사례를 보면 가능성이 엿보인다. 민·관 공동투자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가 6개동 540가구를 10년간 임대한 뒤 분양전환하는 방식이다. 리츠 출자금의 48%(197억원)를 민간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2005)에서 전신마비가 된 여자 권투선수는 수시로 자살을 기도한다. 의료진은 진정제를 놓아 자살을 막지만, 그를 딸처럼 여긴 매니저는 끝내 인공호흡기를 떼고 편히 죽음을 맞게 해준다. 의술 발달로 무기한 연명치료가 가능해진 현대의 고민이다.안락사란 뜻의 라틴어 ‘Euthanatos’는 로마의 저술가 수에토니우스가 처음 썼다. 그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아내의 팔에 안겨 빨리 그리고 고통을 맛보지 않고 자신이 바라던 대로 안락사했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Euthanatos’는 ‘eu(좋은)+thanatos(죽음)’의 합성어로, 영어 ‘euthanasia’의 어원이다.안락사는 근대의 산물이다. 중세 기독교 세계관에선 신의 피조물인 인간의 자살과 안락사를 살인으로 간주했다. ‘suicide(자살)’란 단어도 17세기에 등장했고, 그 전까진 ‘self-murder(자기 살해)’로 썼다. 그러나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1515년)에서 중환자가 타인에게 자신의 죽음을 부탁할 수 있는 섬나라 왕국을 그렸다. 철학자 베이컨도 고통을 끊기 위한 안락사를 옹호했다.소생 불가능한 중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계속해야 하느냐는 아직 정답이 없다. 네덜란드(2001년), 벨기에(2002년) 등이 안락사를 법제화했지만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안락사를 도운 의사를 살인죄로 처벌한다. 죽을 권리(right to die)보다는 생명권(right to life)이 우선한다고 보기 때문이다.안락사는 환자의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적극적 안락사와, 환자나 가족의 요청에 따라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영양공급이나 약물투여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가 있다. 적극적 안락사는 불법이지만 소극적 안락
옛 소련에선 국민들이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연간 400억시간을 줄서기로 허비한다는 분석이 있었다. 약 3억명 인구 중 어린이, 학생, 노약자 등을 빼면 1인당 연 200시간 이상 줄을 선 셈이다. 특히 주부들의 줄서는 시간은 하루 5시간을 넘었다고 한다. 줄서기가 습관이 됐기에 어디 가나 줄이 있으면 이유도 모른 채 맨 뒤에 선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하염없는 줄서기는 곧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상징이 됐다.자원배분 방식으로서 줄서기는 매우 비효율적이다. 시간도 돈만큼 가치가 있는데 온전히 허비하게 만드는 탓이다. 따라서 시장경제 체제에선 줄서기 회피수단을 다양하게 강구해 왔다. 은행 번호표, 놀이공원 패스트트랙, 예매, 예약 등이 그런 사례다. 버스나 화장실 한 줄 서기처럼 시민들 스스로 관행화한 줄서기도 있다.그럼에도 줄을 서야 하는 곳에는 암표상이나 줄을 대신 서주는 알바가 등장한다. 비용을 지불할 용의는 낮지만 시간이 많은 사람과 지불용의는 높지만 시간이 없는 사람 간에 거래가 형성되는 것이다. 선착순이 초래하는 비용과 비효율을 줄인다는 점에서 경제학자들은 줄서기보다는 암표가 덜 나쁘다고 본다. 반면 도덕주의자들은 돈으로 새치기 권리를 산다고 비난한다.줄서기는 누구나 짜증나는 일이다. 고객의 불편은 곧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이와 관련해 경영학에선 고객의 대기시간을 이론화한 큐잉이론(queueing theory·대기이론)이 널리 활용된다. ‘queue’는 매표소나 계산대에 늘어선 ‘줄(line)’을 말한다. 본래 덴마크 수학자 A K 얼랑이 1909년 교환원이 연결해주는 전화 통화율을 높이기 위해 고안한 수학이론에서 출발했다. 서비스 수행자(server) 수,
다음 중 정당방위는? (1)폭력을 일삼던 남편을 살해한 아내 (2)정조를 유린한 계부를 남자 친구와 함께 살해한 여성 (3)누나를 성폭행하던 남성에게 중상을 입힌 남동생 (4)성폭행범의 혀를 깨물어 일부를 절단시킨 여성 (5)집에 든 강도의 쇠파이프를 빼앗아 상해를 입힌 남성.실제 벌어졌던 사건들이다. 여기서 정당방위로 인정된 것은 (4)번뿐이다. (1)은 이혼, 경찰신고 등 사전조치가 없었다는 이유로, (2)(세칭 김보은·김진관 사건)는 사전 살해 공모에다 계부가 무력한 상태란 이유로 각기 살인죄가 적용됐다. (3)과 (5)는 방어행위가 과도했다고 봤다.정당방위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法益)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형법 21조1항)다. 자기 보호를 위한 ‘부득이한 가해행위’라면 처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상당한 이유’가 모호해 논란이 잦다. 경찰이 2011년 ‘수사단계에서 정당방위 기준’을 발표했지만 논란은 가시지 않는다. 이 기준으론 상대가 범죄자여도 방어만 가능하고, 상대보다 자신의 피해가 더 커야 하며, 상대가 전치 3주 이상은 안 된다. 아니면 쌍방폭행이 돼, 도둑이 집주인을 폭행으로 고소하고 치료비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정당방위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영미권에서 생겨난 개념이다. 대륙법에선 엄격하고, 피해자의 자력구제도 금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Talio) 원칙에 따른 무한보복을 막기 위한 취지다. 독일법이 일본을 거쳐 국내 형법에 영향을 줬다. 그러나 미국에선 왕따 피해학생이 가해자를 죽였어도 정당방위로 해석할 정도다. 특히 주거침입에는 어떠한 방
“좋은 시절 다 갔다!” 수습기자 때 선배들로부터 자주 듣던 말이다. 갓 들어온 후배기자들도 똑같은 얘기를 듣는다. 예전엔 낭만이 있었는데 각박한 경쟁만 남았다는 푸념과 함께. 사실 어느 직종에서나 “아! 옛날이여~”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더 많은 소득은 언제나 더 센 업무 강도를 의미한다.그렇다면 ‘사(師, 士)’자 붙은 전문직은 어떨까. 고소득이고 정년도 없지 않은가. 의사 사위 보려면 열쇠 3개(아파트, 자가용, 병원)가 필요한 적도 있었다. 최근 국세청 통계는 상반된 두 장면을 보여준다. 전문직 평균 소득이 수억원대라는가 하면, 전문직 10%는 월 200만원도 못 번다고 한다. 전문직의 양극화일까, 소득탈루일까.통계는 비키니와 같아 정작 중요한 건 안 보여준다지만, ‘전문직 자격증=장밋빛 인생’이란 등식은 깨지고 있다. 신랑감 선호도 조사에서 10년 전 2위였던 의사가 지난해 5위, 3위였던 회계사·변리사·세무사는 6위로 떨어진 게 우연이 아니다. 개인회생 쫓아다니는 변호사, 종일 환자가 와줘야 간신히 버틴다는 개업의가 수두룩하다.변호사·의사 등 곳곳서 비명전문직 위기는 수급에 기인한다. 수요는 굼벵이인데 전문직 공급은 뜀박질이다. 매년 변호사 2000명, 회계사 1000명 등이 쏟아진다. 변호사는 2만명을 넘었고, 회계사도 1만7000명에 이른다. 그럴수록 기대소득과 현실소득의 괴리는 갈수록 커져만 간다.로비력 센 전문직 단체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국회에는 전문직 선발인원을 줄이자는 입법안이 여러 건 올라가 있다. 그런 법안의 진짜 임자가 누군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한변협 등 법조계에선 ‘좋은 시절’ 다
그악스런 세상이다. 대통령에게까지 욕설을 퍼부은 사람이나, 그런 그를 욕하는 사람들이나. 입에 담기도, 글로 옮기기도 거북하다. 연휴를 쉬면서도 영 언짢은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안 되는 게 욕이다.몇 해 전 욕에 중독된 10대를 다룬 TV 프로그램이 관심을 모았다. 여고생 네 명이 45분간 대화하는 것을 관찰한 실험 결과 이들은 248번이나 욕을 했다고 한다. 청소년들이 ‘졸라’ ‘18’을 입에 달고 산다고 다들 개탄했다. 하지만 아이들 탓할 일만도 아니다. 어른들도 그 나이 땐 수시로 욕을 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가 문제작이 된 이유다. 멀쩡한 신사도 운전대만 잡으면 돌변하지 않는가. 그 흔한 조폭 영화, 막장 드라마도 욕설과 막말을 빼면 뭐가 남을지 의문이다.만인이 만인을 욕하는 세상저잣거리 욕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얼굴을 맞대야 가능한 것이, 정보화 덕(?)에 만인이 만인에게 욕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 포털이나 트위터 페이스북에는 시시각각 욕설과 막말이 넘쳐난다. 욕설 차단조치를 취해도 ‘새퀴, 색휘, 새ㅣ끼’ 식으로 살짝 바꾸면 그만이다. 스마트폰 등장으로 언제 어디서나 무한 업로드가 가능한 욕설의 유비쿼터스 시대가 열렸다.욕이란 게 뜻을 알고 나면 더욱 거북해진다. 작가 성석제의 표현대로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인간의 어떤 신체기관을 닮았는지, 어떤 짐승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 등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흔한 욕이 ‘말과 사슴을 구분 못하는 바보(바카야로·馬鹿野)’다. 그에 비해 우리말 욕은 다양하고 풍성하다. 여고생 실험에 등장한 욕설만도 15종이나
영국 문호들의 작품 가운데 제목에 돈이 들어간 경우가 종종 있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1919),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1938)가 대표적이다. 영국 화폐단위로 파운드(pound)만 알고 있다가는 펜스, 기니, 실링이 나오는 옛 글을 볼 때 헷갈리기 십상이다.1960년대까지 영국 화폐단위는 12진법과 20진법의 혼합이었다. 고대 로마와 켈트족 계산법이 뒤섞였으니 당연히 복잡했다. 1파운드는 20실링, 1실링은 12펜스였다. 즉 1파운드=20실링=240펜스다. 따라서 6펜스는 현재 원화로 약 42원인 작은 돈이다. 그러나 1971년부턴 10진법을 도입해 실링이 사라지고 1파운드=100펜스로만 쓴다.기니(guinea)는 별개 단위다. 1기니는 21실링(1파운드+1실링)이다. 이런 희한한 단위를 쓴 것은 귀족들이 팁을 얹어주던 관행과 연관이 있다. 지금도 런던의 고급 맞춤양복점에선 가격을 기니로 표시한다. 또한 기니 하면 작고 귀여운 애완동물 기니피그가 연상된다. 16세기 남미 기아나에서 영국으로 들여왔는데, 가격이 당시로선 큰돈인 1기니여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게 정설이다. 물가를 감안할 때 1550년대 1기니는 현재 350파운드(약 58만원) 값어치다.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도 현재 가치로 30만원쯤 된다.파운드 표시는 P가 아닌 L(£)이다. 이는 로마 동전 리브라(Libra)에서 유래했다. 이것이 프랑스 루이14세 때 리브르, 이탈리아의 리라가 됐고 영국에선 같은 질량 단위인 파운드로 불렀다. 1파운드(lb=리브르)는 약 0.45㎏이다.파운드의 정식 명칭은 ‘파운드 스털링’이다. 해가 지지 않는 영연방의 화폐로, 1차대전 전까진 최대 기축통화였다. 지금은 달러, 유로, 엔화에 이어 네 번째다. 1971년 미국이 금 태환을 정지해
20세기는 광기(狂氣)의 시대다. 독재자들은 대중, 특히 10대 청소년을 자주 동원했다. 히틀러 유겐트(Ugend·청소년단), 마오쩌둥의 홍위병(紅衛兵), 캄보디아 크메르루주(Khmer Rouge·붉은 크메르)가 대표적이다. 청소년은 세뇌와 선동이 쉽고, 체격·체력 면에서도 쓸모 있다.히틀러 유겐트는 ‘충성스럽게 살고, 죽음을 거부하고 싸우며, 웃으면서 죽는다’는 게 행동강령이었다. 나치는 순진한 청소년들에게 파시즘을 주입하고 죄의식 없이 사람을 죽이도록 훈련시켜 전쟁터로 내보냈다. 홍위병도 마찬가지다. 권력에 위협을 느낀 마오가 1966년 문화대혁명을 일으키고 1000만 홍위병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했다. 홍위병은 ‘4구(四舊: 낡은 사상·문화·풍속·습관) 타파’란 구호 아래 기존 질서를 깨는 데 앞장섰다.크메르루주는 홍위병의 복사판이다. 지도자인 폴 포트부터 철저한 마오이즘 신봉자였다. 지식인 부유층은 평등한 이상사회를 좀먹는 세균이라며 무차별 학살했다. 1975년부터 불과 3년7개월 동안 전국민의 4분이 1인 2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그러나 폴 포트는 프랑스 유학시절 온순하고 유머가 많으며 이상향을 꿈꾼 학생이었다고 한다. 홍위병과 크메르루주에 앞장 선 청소년들이 처음부터 ‘작은 악마’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미셸 푸코에 따르면 이성이 광적인 비이성의 근원이 된다고 했다. 이상향을 추구할수록 그에 반대되는 주장과 논리를 더욱 잔인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혁명에는 하나같이 광기가 번득인다.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직장인들은 휴가 다녀온 뒤 약간 멋쩍은 느낌이 든다.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회사는 별일 없이 잘 돌아가니까. 하지만 CEO가 휴가도 아니고 아예 공석이라면 어떨까. 어떤 조직이건 사령탑이 없으면 현상유지도 어려워야 정상이다. 그런데 사장·부사장도 없는 회사가 오히려 경영실적이 나아졌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인 강원랜드 얘기다. 사장은 지난 2월 도지사에 출마한다며 갑자기 그만뒀고, 부사장도 감사원 감사 끝에 4월 사표를 냈다. 그럼에도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1376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6.3%, 전분기에 비해선 232.3%나 급증했다. 주가도 21일 3만3050원까지 회복돼 사상 최고치(작년 5월31일 3만7000원)에 근접했다. 증권사들은 올해 실적호전을 들어 ‘매수’ 의견을 쏟아내고, 목표주가로 4만원은 보통이고 5만원을 제시한 곳까지 있다. 노조가 ‘관피아’ 인사와 복지축소 반대를 이유로 1주일 전 파업에 돌입했어도 별 영향이 없다.회사 측은 경영시스템이 잘 갖춰진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딴 데 있다. 작년 6월부터 게임테이블 68대, 슬롯머신 400대를 늘리고 입장료를 5000원에서 7500원으로 인상한 덕이다. 최근 1년간 302만여명이 내장해 고작 0.6% 늘었어도 매출은 10% 이상 증가했다. 좌판이 늘고 구경만 하던 ‘불량’ 고객이 줄었다는 얘기다.강원랜드의 사장·부사장 선임이 늦어지는 것은 물론 관피아 논란의 여파다. 회사는 주무부처(산업부)의 사인을 기다리고, 주무부처는 청와대 눈치만 본다. 사장에 민간 출신 경영인과 전직 국회의원이 거명되지만 빨라야 9월에나 선임이 가능하다. CEO 빈자리가 여기뿐인가.CEO 부재에도
2012년 초 일본에 갔을 때 자주 들은 얘기가 “MB를 수입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선 원전 수주 등 경제세일즈 대통령으로 각인된 탓이다. MB 5년간 6명의 총리가 바뀐 일본이다. 그런데 요즘은 영 딴판이다. 그해 11월 아베 총리 집권 이후 6분기 연속 성장세다. 엔저와 세 개의 화살(통화완화, 재정확대, 성장전략) 덕이다. 지난 1분기엔 6.7%(연율 기준) 깜짝 성장했다.종종 이웃들의 속을 뒤집어놓는 아베지만 경제운용은 영악하다는 느낌을 준다. 금융자산의 70%를 틀어쥔 노인들을 겨냥한 상속세 강화, 증여세 완화가 그렇다. 재산을 미리 증여해 자식·손자들이 쓰게 하라는 독촉이다. 아베를 수입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경제 회생의 치어리더를 자처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새 경제팀 정책수단 총동원령최경환 2기 경제팀이 출범한다. 최 부총리는 “경제 회복에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하겠다”며 자못 비장하다.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의 골자는 내수 활성화다. 부동산 규제완화, 추경, 금리인하, 규제개혁을 총망라할 태세다. 환율 쇼크도 내수진작으로 푼다는 복안이다. 수년간 금기어로 홀대했던 ‘성장’을 내건 것 자체가 반갑다.내수부진 원인으로 흔히 부동산 침체를 꼽고, 일부 언론은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을 든다. 하지만 최근 3년간 평균 3% 성장에 그쳤고, 4년 뒤엔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14%)라는 사실은 잊은 듯하다. 근본 원인은 저성장과 고령화로 귀결된다. 물이 빠지면 온갖 오물이 드러나듯 가계부채, 청년실업, 자영업 문제는 그 횡단면일 뿐이다.당장 LTV(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를 풀면 부동산이 살아날까? 집값 하락은 돈
결속력 강한 범죄조직을 지칭하는 마피아(Mafia)는 대문자로 쓴다. 반면 소문자로 마피아(mafia)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독특한 생활철학과 도덕, 감수성을 가리킨다. 즉, 과격한 반정부·반법률 감정이다. 여기엔 사라센, 노르만, 스페인, 프랑스 등의 지배와 착취에 시달린 뿌리깊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공권력, 외세는 배격하되 가족과 친구는 설사 잘못해도 지켜야 할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마피아가 등장한 밑바탕이다.마피아는 시칠리아 말로 ‘자랑, 호언’ 또는 ‘아름다움’을 뜻한다. 827~1091년 시칠리아를 지배했던 사라센 말이 어원이라고 한다. 마피아의 유래는 19세기 부재 지주들의 사병조직(mafie)설이 유력하다. 두목은 ‘돈(Don)’이란 경칭으로 불리고, 혈연 지연 종교로 단단히 엮인다. 종교와도 같은 ‘오메르타(omerta)’라는 침묵의 계율도 있다. 조직의 비밀을 발설하거나 경찰에 협조해선 안 된다. 시칠리아 속담에 “듣지도 보지도 않고 조용한 자만이 100년을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19세기부터 가난한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간 시칠리아인이 10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얼굴 흉터로 스카페이스란 별명을 얻었던 알 카포네도 그 중 하나다. 금주법은 미국 마피아의 전국적인 확장을 가져왔다. 1920년대 무솔리니 정권이 마피아를 뿌리 뽑으려 했지만 오히려 농촌에서 도시로 퍼져나가는 계기가 됐다.마피아 간 전쟁으로 무고한 시민까지 희생되자 80년대 이래 이탈리아 정부는 수시로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판사 조반니 팔코네, 검사 파울로 보르셀리노 등이 피살된 이후 더는 손을 못 대고 있다. 정권과 마피아가 기묘한 동
쌀은 옥수수 밀과 함께 세계 3대 곡물이다. 옥수수는 주로 사료용으로 쓰여, 실제론 쌀과 밀이 식량 공급을 양분하는 셈이다. 벼농사는 1만년 전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기원은 중국 윈난, 인도 북부 아삼, 동남아 등 설이 분분하다. 한반도에는 약 4000년 전 유입됐다.세계 5대주에서 쌀을 재배하고 먹는다. 쌀이 서양에 전해진 것은 실크로드의 아랍인에 의해서다. 볶은 쌀에 육수를 넣어 조리하는 필라프는 타슈켄트가 발상지다. 쌀이 들어가는 스페인 남부 향토요리 파에야는 이슬람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사토 요우이치로, ‘쌀의 세계사’)쌀의 학명은 라틴어 ‘오리자(Oryza)’다. 오리자가 이탈리아에서 ‘riso’가 됐고, 이탈리아식 볶음밥인 리소토(risotto)도 여기서 나왔다. 영국으로 건너가선 ‘rys’로 변했다가 오늘날 영어 ‘rice’가 됐다. 우리말의 쌀은 고대 인도어 ‘sari’가 어원이다. 쌀이 살(肉)에서 왔고, 식물의 살(쌀)과 동물의 살(고기)을 먹고 사는 게 ‘살암(사람)’이란 속설도 있다.벼속(屬)에는 20여종이 있지만 대개 야생종이다. 재배하는 것은 흔히 안남미로 불리는 인디카와, 우리가 먹는 자포니카 두 종이다. 인디카는 길고 끈기가 없는 장립종이고, 자포니카는 짧고 끈기가 있는 중·단립종이다. 세계 생산·소비량의 90%가 인디카다. 자포니카는 한국, 일본, 중국 동북3성, 미국 캘리포니아 등지에서만 재배된다.찹쌀은 멥쌀에 비해 열성으로, 전분당인 아밀로스가 전혀 없는 쌀이다. 아밀로스가 적을수록 밥이 차지게 된다. 요즘 건강식으로 각광받는 흑미는 껍질(왕겨)만 벗겨내 현미 상태로 먹는데, 씨눈이 살아있어 백미
중앙아시아에는 ‘스탄(stan) 7개국’이 있다. 유럽의 네덜란드 폴란드 등 ‘land’ 돌림과 비교된다. 바람에 썼다는 유목민의 역사는 바람만큼 모질었다. 다리우스, 알렉산드로스, 아틸라, 칭기즈칸, 티무르 등 정복자들이 휩쓸고 지나갔다. 지금은 모두 이슬람 국가다. 하나같이 유혈 내전을 겪은 것도 공통점이다.‘stan’은 페르시아어로 ‘땅, 나라’란 뜻이다. 우즈베키스탄은 곧 ‘우즈베크족의 땅’이다. 한국어 땅의 고어가 ‘ㄸ’을 ‘ㅅ+ㄷ’으로 썼듯이, 땅의 어원이 스탄이란 학설이 있다. 유라시아대륙에 띠처럼 늘어선 이스탄불, 카불, 자이푸르, 쿠알라룸푸르 등의 ‘불, 푸르’와 우리말 ‘벌(너른 땅)’이 고대 공통어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스탄 국가들은 크게 투르크계와 이란계로 나뉜다. 카자흐, 우즈베크, 투르크멘, 키르기스가 투르크계다. 투르크는 고대사에 자주 등장하는 돌궐(突厥)이다. 이들이 서쪽으로 옮겨가며 여러 나라를 만들고, 일부는 터키까지 갔다. 이들 4개국은 타지키스탄과 함께 1991년 소련으로부터 일제히 독립했다.가장 큰 카자흐스탄은 면적이 세계 9번째다. 한반도의 12배다. 가장 작은 타지키스탄조차 남한의 1.4배다. 카자흐족은 투르크어로 ‘반도(叛徒)’를 뜻해 주류에서 이탈한 일파로 추정된다. 카자흐스탄에 사는 120여 민족 중 고려인은 10만명(0.6%)으로 9번째다. 화학 주기율표의 모든 원소를 보유했다고 할 정도의 자원부국으로도 유명하다.우즈베키스탄에는 동서 실크로드의 길목인 사마르칸트, 타슈겐트 등이 있다. 사마르칸트는 8세기 고구려 출신 고선지 장군이 근거지로 삼은 곳이다. 투르크메
오늘날 독일 경제의 초석을 다진 슈뢰더 전 총리의 별명은 ‘쟁기’였다. 젊은 시절 프로축구 미드필더로서 잔디를 파고 다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페스트’ 같은 걸작은 하마터면 못 볼 뻔했다. 그가 17세에 결핵을 앓아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극작가 피터 한트케는 무대 위 연극이 지루하다 싶으면 축구장으로 달려갔다.(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축구란 무엇인가’)축구만큼 단순한 운동도 없다. 공을 골문에 우겨넣으면 그만이다. 오프사이드 외엔 복잡한 규칙도 없다. 그럼에도 세계 최대 스포츠가 된 것은 그런 단순함이 한몫했다. FIFA는 유엔(193개국), IOC(204개)보다 많은 209개 회원국을 거느렸다. 축구가 영어보다 더 큰 만국 공통어인 셈이다. 비록 3대 인구 대국(미국, 중국, 인도)을 정복하진 못했지만….밤잠 설치는 월드컵 시즌이다. 군대 가서 축구한 얘기를 가장 싫어하는 여성들도 이때만은 예외다. 브라질에선 매일 새벽 각본 없는 걸작 드라마가 펼쳐진다. 판 페르시의 16m 다이빙 헤딩 골, 수비수 3~4명을 휘젓는 메시의 골, 드록바의 신과 같은 존재감…. 모든 게 다 놀랍다. 코스타리카의 셋째 골은 물리학마저 연상시킨다. 빠른 속도에 자극이 가해질 때 공이 어떤 궤적을 그리는지.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35세 노장 피를로가 연출했다. 그는 골도 어시스트도 없다. 단지 공을 흘려준 것으로 마법사 반열에 올랐다. ‘급소를 아는 늙은 사자’라는 소설가 함정임의 비유가 와닿는다. 이런 게 축구다.하지만 축구가 처음부터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은 것은 아니다. 얼마 전만 해도 훌리건 난동이 벌어졌고, 폭죽 화염 연기가
몇 해 전 고등학교 졸업 30주년을 기념하는 홈커밍 행사 때였다. 백발이 성성하신 은사님들과 더불어 까까머리 시절 감회에 젖는 것도 잠깐이었다. 불편한 장면이 눈에 들어온 탓이다. 사회를 맡은 친구가 참석한 동기들을 소개하는 순서였다. 맨 처음 고법 부장판사에 이어 고위공무원, 군·경찰 고위간부, 변호사, 의사….다들 ‘출세한’ 동창들부터 소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데 왜 나만 어색할까. 까칠한 생각을 직업으로 하는 기자여서 그런가. 대개의 고교 동창회 행사가 엇비슷하다. 소개는 출세 순인 셈이다. 차라리 찬조금을 많이 낸 순이면 애교로 봐줄 만하다.평준화가 교육사다리 허물어21세기 들어서도 출세 기준은 별로 바뀐 게 없다. 악착같이 공부해 명문대 나오고 공직으로 입신양명하는 것을 출세로 친다. 제사 지방(紙榜)에 ‘학생부군신위’를 면하는 일이니 가문의 영광이다. 사농공상의 신분 질서는 이토록 뿌리가 깊다. 고시를 패스한 자랑스런 동문은 모교에 플래카드로 내걸린다. 앞으로 동문들의 민원을 해결해줄 사람이라는 광고처럼 보인다.요즘 그런 개천의 용이 안 나온다고 개탄하는 이들이 많다. 단순히 개탄 수준을 넘어 고시를 존치하자는 논거로 삼는다. 2017년 사시가 폐지되고, 행시(5급 공채)도 50% 줄이면 가난한 집 수재가 출세할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란 주장이다. 개천의 용이 사라진 증거로 고시 합격자의 절반이 강남3구 출신이라거나 특목고 자사고 출신이란 점을 든다. 이에 편승해 진보교육감들은 평준화 강화만이 해법이라며 자사고를 없애고, 심지어 대학 평준화까지 벼르고 있다.하지만 진짜 원인은 되레 평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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