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소위 ‘숨은 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론조사에 우세한 진영은 숨은 표를 경계하고, 불리한 진영은 혹시나 하는 기대심리를 갖는다. 하지만 숨은 표의 존재는 실은 여론조사의 부정확성을 말하는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최근 두 달간 지방선거 여론조사는 805건에 달했다. RDD(임의전화걸기) 등 조사기법을 보완했다지만 같은 후보들을 놓고도 결과가 들쭉날쭉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응답률이 광역단체장은 10% 안팎, 기초단체장은 5% 미만에 불과하다.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꼴이다.숨은 표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 야당 지지자들이 속내를 드러내길 기피했던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지금은 사상의 자기검열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가 흘러넘친다. SNS, 인터넷 등 공론의 장을 진보좌파가 장악해 거꾸로 보수우파가 생각을 숨기는 상황이 됐다. 더구나 보수이념은 설득하는 데 긴 설명이 필요하다. 네거티브가 먹히는 것도 설명이 필요없이 자극적인 한마디로 솔깃하게 만들기 때문이다.젊은층에서 보수적 정견이나 여당 지지를 밝히면 대개 왕따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선거 때마다 20~30대 유권자의 약 30%는 여당 지지자로 나타난다. 물론 60대 이상에서 야당을 지지한다고 드러내면 철 없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그런 점에서 숨은 표는 ‘침묵의 나선(the spiral of silence)’ 이론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침묵의 나선이란 자신의 견해가 우세·지배 여론과 일치하면 적극 표출하고, 그렇지 않으면 침묵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스포츠 경기장에서 원정팀을 따라가 응원할 때 주위를 살피는 심리와 같다. 세월호 쇼크로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 폐막공연에 차기 개최지인 런던을 상징하는 빨간 버스가 등장한다. 버스 천장이 열리면서 여가수 리오나 루이스와 백발의 기타리스트가 나와 헤비메탈 명곡 ‘Whole Lotta Love’를 연주한다.팝송깨나 들어본 7080세대라면 단박에 그를 알아봤을 것이다. 에릭 크랩튼, 제프 벡과 함께 세계 3대 기타리스트라던 지미 페이지(70)다. 70년대 록의 전성시대를 연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리더다. 그는 정작 런던올림픽 공연엔 초대받지 못해 상심했다고 한다.1969년 혜성처럼 등장한 레드 제플린은 록음악의 메인스트림을 금속성 사운드와 고음의 샤우팅, 강렬한 비트의 헤비메탈로 이끌어간 개척자다. 전설적인 밴드 야드버즈의 기타리스트였던 페이지가 로버트 플랜트(보컬), 존 본햄(드럼), 존 폴 존스(베이스)를 영입해 탄생했다. 영화 ‘스쿨 오브 락’에서 가짜 교사 잭 블랙이 칠판 가득히 그린 록그룹 계보도의 한복판에도 이들이 있다.노래도 노래지만 이름부터 인상적이다. 레드(Led)는 완전한 실패를 뜻하는 ‘lead balloon(납 풍선)’에서 따왔고, 제플린은 독일 제펠린 백작이 만든 비행선이다. 데뷔앨범 사진도 1937년 마지막 비행선 힌덴부르크호가 전선탑에 부딪혀 폭발하는 장면을 담았다.70년대를 상징했던 레드 제플린은 총 9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미국에서만 8300여만장을 팔았다. 1973년 플로리다 탬파 공연 때는 5만6800명을 모아 비틀스의 기록을 깼다. 세계 순회공연 때 한국 공연도 추진됐지만 멤버들의 장발 탓에 무산됐다고 한다.레드 제플린은 1980년 존 본햄이 사고로 사망하자 갑작스레 해체돼 사라졌다. 팝음악의 주도권도 그렇게 록에서 디스코로 넘어갔다. 이후 재
영국인 감독 대니 보일이 연출한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는 인도에서 한때 상영금지 운동까지 벌어졌고 인도 정부도 불편해 하는 영화다. 영화는 2002년 힌두교도가 무슬림을 집단 공격한 구자라트 폭동부터 드러내놓고 보여준다. 퀴즈쇼 주인공인 고아 자말과 그가 연모한 라티카는 바로 그 폭동의 피해자들이다.2002년 2월27일 아침, 구자라트주(州) 고드라에서 원인 모를 열차 화재로 힌두교 순례자 5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무슬림의 테러라는 소문이 돌자 과격 힌두교도들이 폭동을 일으켜 1000여명의 무슬림을 학살했다. 경찰도 폭동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샀다. 인도 현대사의 오점으로 남은 구자라트 폭동이다.파키스탄 접경지역 해안에 위치한 구자라트주는 타지마할을 낳은 무굴제국의 영화를 누렸던 곳이다. 그러나 인도 독립 후엔 25%를 차지하는 무슬림이 소수 피지배자로 지위가 역전됐다. 마하트마 간디의 고향이자 면직물 생산 중심지여서 식민지시절 ‘동방의 맨체스터’로 불렸을 만큼 부유하지만 그만큼 빈부격차도 크다. 뉴욕에 사는 인도계의 약 40%는 이 지역 출신이라고 한다.구자라트 폭동이 새삼 관심을 끈 것은 당시 주총리가 인도의 차기 총리로 오는 21일 취임하는 나렌드라 모디(64)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층계급인 ‘간치(상인)’에 속하는 잡화상의 6남매 중 셋째로 1950년 태어났다. 기차역에서 ‘짜이(인도 차)’를 팔다 1965년 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에 자원입대했고 국수주의 단체인 민족의용단(RSS)에도 가입했다. 1985년 RSS의 정당조직인 인도국민당(BJP)에 들어가 전략가이자 선동가로 승승장구해왔다.모디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2001년부
야구팬이라면 이승엽이 2009년 도쿄돔 외야 천장을 맞춘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공은 43m 높이의 천장을 맞고 우익수 앞에 떨어져 인정 2루타로 기록됐다. ‘빅 에그(Big Egg)’로 불리는 도쿄돔은 5만석 규모로 1988년 개장했다. 연간 300일 이상 가동해 1500억원의 흑자를 낸다고 한다.서울시의 골칫거리였던 고척돔이 내년부터 넥센 히어로즈의 홈구장으로 사용될 것이란 한경 보도가 어제 큰 화제를 모았다. 미국이 8개, 일본이 6개 돔구장이 있는데 한국은 프로야구 출범 32년이 되도록 변변한 돔구장 하나 없었다. 고척돔은 비록 2만석 규모지만 사시사철 야구가 가능해 기대가 크다.돔(dome)은 반구형(半球形)의 둥근 지붕을 가리킨다. 라틴어 ‘domus dei(신의 집)’가 어원이다. 주교좌(座) 성당을 뜻하는 ‘두오모(duomo)’도 여기서 유래했다. 돔의 기원은 선사시대의 수목 텐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에스키모의 이글루, 몽골의 파오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건축물에 돔이 등장한 것은 로마시대다. AD 120년께 지어진 판테온은 돔 높이가 22m, 내부 지름이 43.3m에 달한다. 철근을 쓰지 않은 돔 가운데 가장 크다.건축에서 돔은 구조적 안정성과 미학적 아름다움을 모두 갖춰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둥근 지붕이 수직하중을 분산시켜 직벽보다 견고하다. 이스탄불의 성소피아 성당,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에서 런던의 세인트폴 성당, 미 의회의사당까지 돔은 웅장함의 상징이다. 모스크, 타지마할 등 이슬람 건축의 돔은 화려함의 극치다. 물론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생뚱맞은 돔은 예외지만.세계 첫 돔구장은 1965년 개장한 휴스턴 애스트로돔이다. 당시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불렸지만 50년이 흘
세월호처럼 대형 인명피해를 낸 여객선이 대개 로로선으로 알려지면서 로로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로로선의 ‘로로(RO-RO)’는 ‘roll on-roll off’의 약어로, 화물을 싣고 내리는 방식을 가리키는 용어다. 자동차나 짐을 바퀴가 달린 트럭, 트레일러 등에 실어 운반하는 것을 의미한다.로로의 장점은 신속한 선적과 하역에 있다. 부두와 배 사이에 연결 경사판(램프)을 설치하고 뱃머리를 열어 차량을 싣는 자동차 운반선, 여객과 차량을 함께 실어나르는 카페리(car ferry)가 바로 로로선이다. 로로 방식의 바지선도 있다. 반면 크레인으로 화물을 싣고 내리는 컨테이너선 같은 배는 ‘LO-LO(lift on-lift off)선’이 된다.최초의 로로선은 1833년 스코틀랜드의 기차 페리였다. 기차를 통째로 배에 실어 운하를 건넌 것이다. 1차대전 동안 트럭 탱크 대포 등 다양한 화물을 로로 방식으로 운반했고, 2차대전 때는 로로 화물선이 처음으로 도버해협으로 나갔다. 50년대 민간의 로로선 개발이 본격화됐고 60년대 초 자동차 운반선도 등장했다.하지만 잔잔한 강이나 운하에 적합한 로로선이 험한 바다를 누빌 때 문제가 없을 리 없다. 선수나 선미가 열리게 설계된 탓에 한번 물이 들어오면 순식간에 가라앉는 것이다. 더구나 대형 카페리의 등장으로 인명 피해도 대형화됐다.1987년 영국 카페리선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호’는 뱃머리 출입문이 열린 채 출항했다가 바닷물이 들어온 지 불과 몇분 만에 가라앉았다. 193명이 사망해 1차대전 이후 영국 배의 최대 인명사고로 기록됐다.이외에도 1994년 852명이 사망한 에스토니아호, 2006년 사망자가 1000명에 달한 이집트 알살람 보카치오 98호도 모두 로
의로운 죽음은 언제나 뭉클하다.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분노의 역류’(1991년)에는 누구나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 황소(bull)라는 별명의 소방관 커트 러셀은 화재 진압 중 건물이 무너져 추락하던 동료의 손을 붙잡았다. 이대로 가면 둘 다 죽을 상황이다. 대화는 딱 두 마디다. “Let me go, Bull.” “You go, we go.”영화 ‘클리프 행어’(1993년)에선 절벽에 매달려 조난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밧줄 하나에 여럿이 버틸 수 없음을 너무 잘 알기에 아래쪽 사람은 스스로 생명줄을 자른다. 350여년의 세계 등산사에서 수없이 이런 상황에 직면해왔기에 산악인들은 암묵적인 윤리가 있다. 등반보다 조난자 구조가 우선이며, 불가항력의 상황일 때는 동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에베레스트는 등반 정체를 빚을 정도여서 산악윤리도 추락했다고 개탄하는 이들이 많다.자신을 버리고 남을 살리는 의인(義人)이 극한 직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1년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유학생 이수현 씨(당시 26세) 묘소에는 지금도 일본인들의 헌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양국 관계가 아무리 얼어붙어도 의인을 대하는 심정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성서에서 강도를 당한 유대인을 치료하고 돈까지 준 사람은 상류층 제사장도, 축복을 받았다는 레위인도 아니었다. 이교도 하층민이라고 천대하던 사마리아인이었다. 그래서 기독교 전통의 독일 프랑스 등에선 ‘선한 사마리아인 법’도 있다. 구조 위험이 없는데도 구조하지 않으면 불구조죄로 처벌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응급처치를 하다 과실로 피해를 입혔더라도 면책해주는 선한 사
결혼정보업체에 등록한 40대 후반 여교사가 요구한 배우자 조건은 단 하나였다고 한다. 자신보다 연금이 더 많을 것! 노후에 ‘연금 가장’이 되기 싫다는 얘기다. 물론 국민연금 수급자는 웬만해선 예선 탈락이다. ‘연금 디바이드’가 현실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고위 관료가 전관예우나 낙하산으로 재취업하면 공무원연금을 받을까 못 받을까. 근로·사업소득이 연 4000만원 미만이면 연금을 전액 받지만, 그 이상이면 초과소득에 따라 최대 절반까지 줄어든다. 정확히는 공무원연금법 47조2항에 따라 다른 소득이 있으면 연금 지급이 일부 정지되는데, 커트라인이 올해 월 329만8660원이다. 즉, 연소득 3958만원 이하면 연금을 100% 다 받는 것이다. 전관예우·낙하산도 다 챙겨 대학들이 전직 장관을 석좌교수로 모셔갈 때도 마찬가지다. 대개 연봉을 4000만원 미만으로 책정해 연금 손실이 없게 맞춰준다고 한다. 흔한 사외이사라도 꿰차면 월수입 1000만원이 기본이다. 취업제한 2년간 개각 예비군이면서 월급 받고 연금 받으니 꿩 먹고 알 먹기다. 전관예우와 공무원연금은 바늘과 실처럼 보완재다. 교육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이 소위 ‘전문경력 인사’를 3년간 월 300만원씩 주고 지방대학 초빙교수로 보내는 사업이 딱 그렇다. 지난 10년간 파견자의 52%(479명)가 연금만 월 수백만원인 고위 관료와 퇴역 장성들이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도 수혜자였다. 퇴직 관료가 산하단체로 가든, 로펌으로 가든 공무원연금은 어김없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전관예우나 낙하산으로 내려가면서 고액 연봉에다 연금까지 알뜰히 챙긴다. 한국 공무원들은 제 머리를 참 잘 깎는다. 업무 관련업체에 재취업하면 이미 받은
인도의 멀구슬나무 님(neem)은 불교 경전에도 등장하는 ‘축복받은 나무’다. 인도에선 예부터 구충제, 살충제였고 가려움증, 아토피를 순화시키는 데도 유용하게 이용해왔다. ‘마을의 약방’이란 별명도 있다. 그러다 1995년 미국 화학기업 그레이스가 님나무에서 추출한 기름으로 생물농약을 만들어 특허를 취득했다. 생각해 보자. 이 농약은 인도인의 소유인가, 개발회사의 소유인가. 인도 생태운동가 반다나 시바는 이를 ‘생물해적질(bio-piracy)’이라고 맹비난해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선진국 기업들이 제3세계 생물자원을 착취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전해내려온 이용법은 무시되고 연구실에서 흰 가운을 입고 개발해야만 특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결국 특허가 취소됐고, 유엔은 님나무를 화학비료 숙제를 풀 ‘21세기 나무’로 지정했다.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신종플루의 공인 치료제인 스위스 로슈의 타미플루는 중국의 관목인 팔각의 열매에서 추출한 천연물질이 주원료다. 독일 바이엘은 케냐 루이루호수의 변종 박테리아로 만든 당뇨병 치료제 글루코베이의 특허를 냈다. 일본 시세이도는 인도네시아 자생식물인 자무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51종의 화장품 원료 특허를 출원했다. 신물질을 찾는 유전자 사냥꾼(gene hunter)이 오지를 누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제3세계 국가들이 생물자원에 눈을 뜨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지하자원처럼 생물자원도 소유권이 있고, 이를 통한 이익은 해당국과 공유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운 것이다. 1992년 생물다양성 국제협약(CBD)이 태동했고, 2010년 10차 CBD 총회 때 생물자원의 이익공유 지침인 나고야의정서가 긴 논란 끝에 합의됐다. 올 10월 평창
MSG만큼 억울한 식품첨가물도 드물 것 같다. 한번 찍힌 낙인과 편견이 반세기가 지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미국 FDA(식품의약국)조차 안전하다는데 한국에선 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다. MSG는 ‘MonoSodium Glutamate(글루탐산나트륨)’의 약자다. 단백질 아미노산의 일종인 글루탐산에다 나트륨을 붙여 물에 잘 녹게 만든 것이다. 1908년 일본의 이케다 가쿠나에 박사가 짠맛 단맛 쓴맛 신맛 외에 제5의 맛인 감칠맛이 글루탐산에 의한 것임을 발견했다. 그는 값싼 당밀 부산물을 발효시켜 감칠맛을 내는 MSG를 개발하고 조미료회사 아지노모토를 세웠다. 태생부터 MSG는 화학조미료가 아닌 발효조미료였던 것이다. 한국에선 1956년 ‘미원’이 나와 빅히트를 쳤고, 1962년 식품첨가물로도 지정됐다. MSG는 동물 식물 등 단백질 성분의 자연 먹거리에 대부분 존재한다. 모유 우유에도 들어있다. 천연 MSG나 공장에서 만든 MSG나 성분, 화학식이 같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MSG가 해롭다면 메주, 토마토, 치즈도 먹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런 MSG가 유해성 논란에 휩싸인 것은 60년대 말이다. 이른바 MSG가 중국음식점 증후군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음식점 증후군은 심리적 증상일 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1995년 FDA와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체무해성을 인정하면서 서구에선 유해성 논란이 사라졌다. 하지만 국내에선 1993년 후발주자 럭키가 ‘맛그린’을 출시하면서 유해성 논란에 불을 댕겼다. 맛그린의 “MSG를 넣지 않은 천연조미료”라는 광고가 미원 다시다 등 경쟁제품의 유해성을 암시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소비자 뇌리에 MSG에 대한 의심이 깊이 자리잡았다.
“뭔가 잘못됐어. 공기는 깨끗하고 물은 맑고 다들 운동도 많이 하잖아. 먹는 건 죄다 유기농에 방목한 고기이고. 그런데 서른 살 넘게 사는 사람이 없어.” 원시인들이 짧은 수명에 대해 의아해한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에 실린 만평 한 토막이다. 장수 리스크를 걱정하는 현대인은 심각한 인지부조화를 느낄 만하다. 공기와 물은 오염되고 다들 운동 부족에 비만이고, 먹는 것은 죄다 농약 투성이에 억지로 살찌운 고기다. 그런데 원시인보다 3~4배 더 살지 않나. 2009년 선댄스영화제에선 다큐멘터리 ‘노 임팩트 맨’이 눈길을 끌었다. 투덜이 작가 가족이 뉴욕 한복판에서 1년간 자동차, 일회용품, 전기까지 끊고 살면서 예전엔 몰랐던 새 삶을 찾았다고 예찬한다. 그렇다면 생태주의자들 주장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산업화 이전으로 돌아가야 할까. 소로처럼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야 할까. 하지만 환경경제학자인 《누가 마지막 나무를 쓰러뜨렸나》(원제 But Will the Planet Notice?)의 저자는 한마디로 일갈한다. “70억 인류 중 당신 혼자의 노력으로 뭐가 달라지냐”고. 70억명이 모두 바뀌지 않고선 지구가 알아채지도 못할 것이란 얘기다. 분리수거의 달인인 한국 주부들은 당장 열받을 만하다. “그럼, 도대체 어떡하라고!” 하버드대 정치경제학 박사인 저자는 현재 환경보호단체인 환경보호기금(EDF)의 선임 경제학자다. 그도 물론 환경론자다. 기후변화가 지구와 인간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며, 반론의 여지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환경론자들의 해법이 완전히 빗나갔다고 돌직구를 날린다. 금지와 규제가 답이 아니란 것이다. 시장은 물과 같아, 달갑지 않은 규제가 앞을 막아서
신데렐라 하면 떠오르는 게 계모, 금발, 유리구두, 밤 12시 그리고 왕자다. 그러나 본래 북유럽의 구전민담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환상동화가 아니었다. 외려 성인 잔혹·에로물에 가까웠다. 신데렐라가 계모를 죽이고, 언니들은 구두에 맞추려고 발을 잘랐을 정도다. 우리가 아는 신데렐라 동화는 1697년 샤를 페로가 민담을 동화로 순화한 ‘상드리옹, 혹은 작은 유리신’에서 유래했다. 디즈니가 이를 토대로 1950년 장편 애니메이션을 선보여 지금의 신데렐라 이미지가 각인된 것이다. 상드리옹이 영어로 신데렐라가 됐고, 19세기 초 독일 그림형제가 채집한 이야기에선 ‘아센푸텔’로 불렸다. 재투성이 아이란 뜻이다. 놀라운 점은 조금씩 다른 신데렐라 이야기가 세계적으로 1000종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이탈리아 ‘센드라외울라’, 러시아 ‘부레누슈카’, 이라크 ‘가난한 소녀와 암소’, 베트남 ‘카종과 할록’ 등도 모두 고난 끝에 행복해진 이야기다. 우리나라 ‘콩쥐팥쥐’는 콩쥐와 신데렐라, 팥쥐와 언니들, 꽃신과 유리구두 등 신데렐라와 거의 1 대 1로 매칭된다.(주경철,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 이야기는 서양이 아니라 중국 당나라 사람 단성식(?~863년)의 수필집 ‘유양잡조(酉陽雜俎)’에 등장한다. 먼 옛날 계모의 학대를 받던 오씨의 딸 섭한(葉限)이 물고기신령의 도움으로 마을축제에 갔다가 황금신 한짝을 잃었지만 끝내 왕비가 된다는 내용이다. 학자들은 신데렐라 스토리의 분포지역을 토대로 중국의 설화가 실크로드를 타고 서역으로 전래됐다고 본다. 삼국유사에서 신라 경문왕의 당나귀 귀도 그리스신화에서 아폴
서점가와 가구업계가 공포에 휩싸였다. 글로벌 공룡들 때문이다. 세계 최대인 온라인몰 아마존과 가구업체 이케아가 그 주인공이다. 아마존의 작년 매출은 740억달러(약 79조원), 이케아는 279억유로(약 43조원)에 이른다. 이들이 오랜 간보기를 끝내고 한국시장에 진출한다. 아마존은 지난해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올초 대표도 영입했다. 이케아는 오는 11월께 경기 광명에 1호점을 내고 경기 고양, 서울 고덕동에도 점포를 낸다고 한다. 아마존의 공략대상은 우선 전자책이 될 공산이 크다. 아마존은 아이패드 사양에 가격은 160달러(약 17만원)인 고성능 무기가 있다. 전자책 단말기 ‘킨들’이다. 방대한 콘텐츠와 간편한 결제방식은 덤이다. 일본 진출 1년 만에 전자책시장의 38%를 차지했다. 국내에도 킨들을 학수고대하는 사람이 많다. 공룡 진출, 서점·가구업계 멘붕 이케아는 저렴하고 품질 좋은 DIY 조립가구로 유명하다. 깔끔한 북유럽풍 디자인은 국내 가구업계의 교과서나 다름없다. 댄 애리얼리 듀크대 교수는 이케아 매장을 ‘어른들의 장난감 궁전’이라고 묘사했을 정도다. 국내 업계가 멘붕에 빠질 만하다. 교보문고조차 외형과 수익이 뒷걸음이고, 가구업계는 70%가 영세업체다. 공룡을 못 오게 막을 방법도 없다. 과연 그들의 한국 진출은 성공 보증수표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한국시장이 만만했다면 진작에 들어왔을 것이다. 아마존의 당일배송은 해외에선 획기적일지 몰라도 한국은 이미 반나절 배송이다. 언어 장벽도 무시 못한다. 킨들이 뛰어나도 교보문고의 ‘샘’, 예스24의 ‘크레마’도 진화 중이다. 가구도 마찬가지다. 주로 아파트에 사는 바쁜 한국인에게 조립가구는 낯설다. 이
작년 12월 초 독일 슈피겔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마초, 냉혹한 폭군 이미지가 조작됐다고 보도해 푸틴 측이 발끈한 적이 있다. 슈피겔은 푸틴이 부모 사랑을 못 받고 자라 내성적이고, 가장 친한 친구가 래브라도 리트리버종(種) 맹도견(시각장애인 안내견)뿐이라는 러시아 칼럼니스트의 저서를 인용했다. 사실 안내견이라면 푸틴 아닌 그 누구라도 잘 따랐을 것이다. 안내견이 되는 과정은 개의 입장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생후 7주짜리 강아지를 선별해 1년간 키우며 사회화시킨 뒤 6~8개월간 집중 훈련해 양성한다. 개의 본능을 억제하고, 스스로 위험을 판단해 주인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안내견은 스트레스가 심해 대개 열 살이 넘으면 은퇴시킨다. 안내견이 본격 양성된 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다. 처음엔 셰퍼드가 이용됐지만 현재 안내견의 주종은 리트리버다. 영리하고 온순하며 인내심이 강해 어려운 훈련을 잘 소화한다. 리트리버라는 이름 자체가 ‘회수하다’라는 뜻의 retrieve에서 왔듯이, 주로 사냥한 짐승을 물어오는 조렵견(助獵犬)으로 길들여졌다. 캐나다 뉴펀들랜드가 원산인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짧고 조밀한 털이 방수성이 좋아 찬바다에서 어망이나 물고기를 회수해오는 어부의 도우미였다. 그러다 영국에서 지뢰탐지견, 마약탐지견, 안내견, 경찰견 등 만능견으로 훈련시켰다. 스코틀랜드에서 개량한 황금색 골든 리트리버는 주로 새 사냥에 이용됐지만 요즘엔 안내견, 애완견으로 쓰인다. 안내견의 대표답게 리트리버는 일화가 많다. 9·11테러 때 세계무역센터 78층에 있던 시각장애인 마이클 힝슨은 안내견 로젤이 이끄는 대로 걸어내려와 목숨을
혈연 지연 학연보다 더 센 파벌(派閥)이 생겼다고 한다. 바로 ‘흡연’이다. 담배 피울 곳이 사라진 흡연파들이 골목길이나 빌딩 구석에 모여들다 보니 연대감(?)이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졌다는 우스갯소리다. 앞으로 흡연(吸煙)을 ‘吸緣’으로 써야할지도 모르겠다. 파벌은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한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무리짓기는 본능에 가깝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다퉈온 것이 인류 역사인 만큼, 파벌은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어디에나 존재한다. 가장 원초적 파벌은 피붙이들의 족벌주의다. 족벌주의를 뜻하는 네포티즘(nepotism)은 라틴어로 성직자의 사생아(nephew)를 가리키는 ‘nepos’에서 유래했다. 교황들은 종종 사생아들을 중용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칭송했던 체사레 보르자도 그런 경우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 케네디 대통령은 동생 로버트를 법무장관에, 매제이자 훗날 슈워제네거의 장인이 된 사전트 슈라이버를 초대 평화봉사단장에 기용했다. 사마란치는 IOC 위원장 시절 아들은 IOC 위원에, 딸은 스페인 빙상연맹 회장에 앉혔다. 결속력 면에선 시칠리아 마피아를 따라갈 집단이 없다. 마피아에는 ‘오메르타(omerta)’라는 침묵의 계율이 있다. 시칠리아 속담에 “듣지도 보지도 않고 조용히 있는 자만이 100년을 편안하게 살 수 있다”가 곧 오메르타다. 무리짓기가 보편적 현상이라 쳐도 한국인의 파벌의식은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공식조직보다 동창회, 향우회 등 비공식조직이 더 실속 있는 사회가 또 있을까 싶다. 500년 주자학 명분론이 각인된 탓인지, 학계나 종교계에선 정통·이단 논쟁에 민감하다. 다툼은 곧 결
종합상사 하면 ‘라면에서 미사일까지’, ‘이쑤시개에서 인공위성까지’ 같은 슬로건이 연장된다. 취급하지 않는 품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이토추상사는 최대 3만종의 상품을 취급한 기록을 갖고 있다. 종합상사는 이름 뒤에 주로 ‘물산(物産)’ ‘상사(商社)’가 붙는다. 일본 미쓰비시상사, 미쓰이물산이나 한국의 삼성물산, 현대종합상사 등이 그렇다. 한국의 어떤 전직 장관은 별명이 ‘OO물산’인데, 오지랖이 워낙 넓었던 탓이었다. 종합상사는 일본과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기업형태다. 구미의 무역회사(trading company)는 대개 특정 품목을 취급해왔다. 일본 종합상사(sogo shosha)는 1870년 메이지유신 이후 등장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전범(戰犯)기업으로 지목돼 해체됐다 50년대 부활했다. 일본 종합상사들은 한때 포천지(誌) 선정 100대 기업의 1~3위를 독차지했다. 지금도 연간 매출이 100조~200조원에 달하고, 순익 10대 기업 중 4개가 종합상사다. 입사 5년차 연봉이 1억원을 넘어 여전히 인기 직장이다. 한국의 종합상사는 1975년 수출액이 전체 수출의 2% 이상인 상장기업을 종합상사로 지정하면서 본격 등장했다. 이른바 7대 종합상사가 생겨났고, 80년대엔 전체 수출의 50%를 담당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제조업체들의 해외 직수출이 늘면서 고난의 시기를 맞았다. 일본에선 이미 70년대 ‘상사 사양론’, 80년대 ‘상사의 겨울시대’, 90년대 ‘상사 무용론’이 연이어 제기됐다. 한국도 외환위기 이후 부채가 많은 종합상사가 집중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주)대우 현대종합상사 (주)쌍용의 주인이 바뀌었다. 현재 수출비중은 2~3%에 불과하고, 2009년엔 아예 종합상사 지정제가 폐지됐다. 일본 종
디즈니 하면 떠오르는 게 예쁘고 연약한 공주다. 왕자의 키스로 끝맺는 해피엔딩은 디즈니 스토리의 공식이다. 초기작 백설공주(1937년), 신데렐라(1950년), 오로라(1959년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이미지가 굳어진 탓이다. 디즈니 공주는 소녀들의 로망인 동시에 페미니스트들의 혐오대상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디즈니 공주도 달라졌다. 에리얼(1989년 ‘인어공주’), 벨(1991년 ‘미녀와 야수’)은 한결 자유분방해졌다. 백인 일변도에서 아랍 공주(1992년 ‘알라딘’의 재스민), 인디언 공주(1995년 포카혼타스), 중국 공주(1998년 ‘뮬란’의 뮬란), 흑인 공주(2009년 ‘공주와 개구리’의 티아나)로 다양해졌다. 그럼에도 디즈니 공주에겐 왕자, 아니면 적어도 잘생긴 남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디즈니의 53번째 애니메이션 ‘겨울왕국(Frozen)’부터는 그런 선입견을 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렌델 왕국의 자매공주 엘사와 애나는 더 이상 연약하지 않다.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며, 얼음을 녹일 진실한 사랑이 굳이 남자일 필요도 없다. 드림웍스의 ‘슈렉’(2001년)이 한껏 조롱한 디즈니 공식을 스스로 파기한 것이다. ‘겨울왕국’은 전 세계에서 8억달러를 번 연초 최대 흥행작이다. 국내에선 개봉 18일 만에 600만명을 넘겨 애니메이션(‘쿵푸팬더2’ 506만명) 및 뮤지컬영화 흥행기록(‘레미제라블’ 591만명)을 이미 깼다. 2~3번 관람은 흔하고, 심지어 7번 봤다는 중독자도 있다. 이 영화의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빼어난 음악이다. 장정들이 얼음을 가르는 도입부는 ‘레미제라블’의 ‘Look down’과, 자매공주는 뮤지컬 ‘위키드’와 닮았다. 실제로 엘사의 노래는 ‘위키드’의 초대 엘파바인 이디나 멘젤이 불렀
새해 들어 대통령이 기회만 되면 규제총량제를 강조한다. 규제가 더 안 늘어도 다행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글쎄’다. 겨우 시작인데 삐딱한 기자의 야박한 소리일까. 역대 정권마다 규제가 늘어난 이유는 간단하다. 앞에선 없앴지만 뒤에선 더 큰 규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규제를 줄이려면 불필요한 신설을 금하고, 낡고 썩은 것은 솎아내면 된다. 참 쉬워 보인다. 그런데 그게 제일 어렵다. 규제 건수는 작년 말 1만5269건이다. 현 정부에서 380건 늘었다. 하지만 건수는 무의미하다. 분류하기에 따라 규제 1건이 10건도 되고, 10건이 1건이 되기도 한다. 핵심은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 규제와 새로 만들어지는 규제의 강도 및 속도에 달렸다. 그런 점에서 336일 뒤인 내년 1월1일에 쏟아질 규제폭탄들은 모든 노력을 공염불로 만들기 충분하다. 논쟁거리였던 규제들이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환경 6종세트로도 기업들 패닉 그 선봉에 환경부가 있다. 작년부터 쏟아낸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법),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저탄소차협력금 제도, 탄소배출권거래제 등 광폭 규제들이 모두 내년 1월 시행이다. 환구법(환경오염피해구제법), 환통법(환경오염 통합관리법)도 예정돼 있다. 경제민주화와 국민안전 공약에 편승해 숙원사업을 죄다 관철하려는 인상마저 준다. “기업들의 우려를 수용해 상당부분 완화했다”는 조삼모사식 해명이 더 어이없다. 잔챙이 규제를 아무리 없애도, 환경규제 6종 세트만으로 기업들은 패닉 상태다. 국회 환노위는 한술 더 뜬다. ‘국회 최루탄’ 주역 김선동 의원은 이름도 살벌한 ‘기업살인처벌법’을 작년 말 발의했다. 산재사고를 기업살인으로 규정, CEO를 처벌하겠다는
그리스신화에서 이아손의 아르고 원정대가 황금 양털모피를 찾아 콜키스로 항해할 때 가장 위험했던 장면은 ‘충돌하는 바위(심플레가데스)’를 지날 때였다. 두 바위가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배를 난파시켰기 때문이다. 이 신화를 추적한 영국 BBC는 심플레가데스를 흑해의 관문으로 추정했다. 바위투성이에 물살도 거세 무수한 배들이 침몰했다고 한다. 오디세우스가 세이렌들의 유혹을 받은 시칠리아섬 부근 해역도 파도가 사납기로 유명하다. 세이렌이나 심플레가데스는 사나운 해류와 격랑에 대한 신화적 은유인 셈이다. 독일 민요의 로렐라이 언덕도 라인강의 급류지대를 가리킨다. 강력한 지진과 홍수로 하룻새 가라앉았다는 전설속 문명국 아틀란티스도 있다. 플라톤이 ‘대화편’에 그 위치를 ‘헤라클레스의 기둥’(지브롤터 해협) 서쪽이라고 기록해 대서양의 섬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요즘엔 지중해 크레타섬(미노아 문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지중해 바닷속에서 고대 문명도시가 속속 발견된다. 5000년 전 번성했던 그리스 남쪽 해안의 파블로페트리는 수세식 화장실과 배수시설을 갖춘 2층 건물도 있어 ‘수몰된 폼페이’로 불린다. 이집트 북부 해저에선 1200년 전 지진으로 침몰한 헤라클레이온의 유적이 나왔다. 헤로도투스의 기록과 전설로만 전해지던 것이 실제였던 것이다. 해저유물 하면 침몰한 해적선도 빼놓을 수 없다. 18세기 초 영국출신 해적 블랙비어드(검은 털보)의 배가 1996년 인양됐는데 금붙이가 납탄에 섞여 나왔다. 블랙비어드는 만화영화 ‘피터팬’의 후크선장, 영화 ‘캐러비언의 해적’의 모델이다. 17세기 해적 헨리 모건의 배도 2011년 처음 수중 위치가 발견
80년대 후반 할리우드에선 레이더스(raiders·무장 침입자란 뜻)를 다룬 영화가 적지 않았다. ‘월스트리트’(1988년)의 주인공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 분)는 ‘탐욕은 좋은 것’이란 좌우명으로 산 실존인물이었다. ‘귀여운 여인’(1990년)의 로맨틱한 백만장자(리처드 기어 분)도 직업이 기업사냥꾼이다. 레이더스는 월가의 안티히어로다.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의 주식을 단기간에 사모은 뒤 경영진과 협상(?)을 통해 비싸게 되팔아 거액을 챙기는 식이다. 당시 루돌프 줄리아니 검사는 월가 범죄자들을 기소해 정치적 명성을 쌓고 1993년 뉴욕시장에 당선됐다. 월가의 M&A 전문가들이 모두 교도소 담장 위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여, 악명과 함께 명성을 쌓은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모펀드 KKR이다. 설립자인 제롬 콜버그, 헨리 크래비스, 조지 로버츠의 이니셜을 딴 KKR은 1976년 출범했다. 셋은 투자은행(IB) 베어스턴스에서 한 팀으로 일했고, 크래비스와 로버츠는 사촌간이다. 콜버그가 1987년 아들 문제로 인해 KKR을 떠났지만 이름은 그대로 쓴다. KKR의 무기는 차입매수(LBO)다. 인수자금의 80~90%를 차입해 가능성 있는 기업을 산 뒤 가치를 높여 통상 5~7년 뒤 되파는 식이다. 연 평균 수익률이 20%에 달한다. 물론 부채 축소과정에서 구조조정으로 반발도 많아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경영효율과 기업 가치를 높이는 역량이 탁월해 ‘자본주의 정비공장’이란 평가도 듣는다. KKR로 인해 원가의 역사가 바뀐 사건도 있다. 1989년 세계적인 식품·담배업체 RJR내비스코를 KKR이 무려 310억달러에 인수한 것. 이 M&A는 대형 IB들이 모두 참여해 ‘별들의 전쟁’으로 불렸고, 6개
18세 히스패닉 소년이 아버지를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다. 12명의 배심원이 최종평결을 위해 회의실에 모인다. 모든 정황상 유죄가 확실하고, 유죄는 곧 사형이다. 그런데 8번 배심원이 홀로 무죄를 주장한다. 1 대 11이다. 거친 언쟁 끝에 증거를 재검토 하고 사건을 되짚어가면서 1 대 11이 6 대 6이 되고 다시 11 대 1로 뒤집어진다. 시종 유죄를 고집하던 배심원마저 무죄로 돌아서고, 바깥에는 시원한 소나기가 내린다. 시드니 루멧의 걸작 흑백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년)이다. 12명의 남자가 덥고 비좁은 방에서 96분간 오직 대화만 오가는데도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다. 돈이 없어 좋은 영화를 못 만든다는 말이 말짱 헛소리로 들릴 정도다. 8번 배심원(헨리 폰다 분)의 합리적 의심은 민주사회에서 대중이 얼마나 쉽게 편견에 휩쓸리는지, 그리고 다수가 반드시 옳지는 않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법정드라마 전성시대다. 법이 일상 깊숙이 파고든 탓일까. 영화 ‘변호인’이 3주 새 800만명을 끌어모으면서 법정드라마 기획이 봇물이라고 한다.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법정 장면은 법조인들도 리얼리티를 인정할 만큼 수작이란 평가다. 작가가 2년간 법정을 취재하며 발품 팔았다고 한다. 존 그리샴처럼 진짜 변호사가 작가로 데뷔할 날도 머지않았다. 미드에선 ‘보스턴 리걸’ ‘저스티스’ 등에 이어 ‘굿 와이프’가 시즌5까지 제작되며 인기다. 이 드라마는 혼외정사로 퇴진한 스피처 전 뉴욕주지사의 부인이자 변호사인 실다를 모티브로 삼아 관심을 모았다. 어느 나라든 변호사 하면 고수입이 연상된다. 일본드라마 ‘리갈 하이’의 주인공인 백전백승 변호사는 “누구를
지난해 6월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북한당국이 발끈한 적이 있다. 김정은이 생일(1월8일)을 맞아 당 간부들에게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을 선물하며 1차대전 패전국인 독일을 단기간에 재건한 히틀러의 ‘제3제국’을 잘 연구해 적용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명박 정부를 ‘리틀러’라고 비난한 북한이 히틀러를 연구한다니…. WP는 국내서도 생소한 탈북자 매체인 ‘뉴포커스’를 인용했다. 뉴포커스는 기사 말미에 “김정은이 히틀러로부터 정말 배워야 할 점은 (…) 히틀러의 비참한 최후다”라고 썼다. 이에 북 인민보안부가 특별담화까지 내며 협박했다. “존엄과 체제를 중상모독하는 탈북자들을 물리적으로 없애버리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단행하기로 결심했다”고. 설립 2년밖에 안 된 뉴포커스는 북한 권부를 예리하게 분석한 기사로 해외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318개 외신이 뉴포커스 기사를 인용 보도했고 영국 가디언, 일본 산케이 등 24곳에는 유료로 기사를 공급한다고 한다. 최근 장성택 숙청에 관해서도 뉴포커스의 정보력은 남달랐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김정은 1인 지배체제의 완성이라고 봤지만 뉴포커스는 이미 장성택의 실패를 예견했고, 숙청 배경도 달리 해석했다. 장성택·김경희에 의존하려던 김정은의 족벌정치를 끊어버리려는 당 조직지도부(김정일 측근그룹)의 반란이라는 설명이었다. 결국 김정은은 강경파에 완전 포위된 ‘수령 연기자’, ‘허수아비 수령’이라는 분석이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북남대화 재개’ 운운한 것을 놓고도 해석이 달랐다. 뉴포커스는 친북·종북 세력과의 연대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로 김
마크 트웨인은 “진실이 신발을 신을 때 거짓은 지구 반 바퀴를 돈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틈만 나면 난무하는 온갖 괴담(怪談)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괴담이 국민용어가 된 것은 2008년 광우병 괴담부터다. 유언비어나 풍문, 루머 등의 유사어를 모두 압도했다. 천안함 괴담, 신종플루 괴담, 선거부정 괴담, 세무조사 괴담, 방사능 괴담, 민영화 괴담…. 가히 괴담 공화국이다.하지만 희한한 사실은 MB정권을 무력화시킨 광우병 괴담에 비해 민영화 괴담은 우려만큼 파장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뇌 송송, 구멍 탁’에 어린 여학생들이 “열여섯살밖에 못 살았다”고 울부짖던 게 불과 5년 전이다. 반면 최근 ‘지하철 요금 5000원’, ‘서울~부산 KTX 요금 28만원’ 같은 괴담은 코웃음치는 사람들이 다수다. 왜 달라졌을까?괴담은 정보비대칭 상황에서 정보 편식이 심할 때 생긴다. 특히 본인에게 중요한 문제이면서 정보가 부족하고 모호할수록 괴담은 비탈길 눈덩이가 된다. 광우병이 라면스프, 화장품, 생리대, 심지어 공기로도 전염된다는 황당 거짓말에 속절없이 말려든 이유다. ‘피할 수 없는 위험’은 확률이 단 0.00001%라도 주관적 확률은 훨씬 커지게 마련이다.끼리끼리 모이는 트위터나 카카오톡은 괴담의 더없는 번식환경이다. 요즘 최신 야동은 과거 O양 비디오보다 10배, 100배쯤 빨리 퍼진다. 그런데도 민영화 괴담이 힘을 못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학습효과다. 광우병 시위대의 맨 앞줄에 섰던 인사들이 지난 주말 민노총 집회에 또 나왔다.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쁘지만, 두 번 속으면 내가 바보라고 하지 않았나.유포된 괴담도 너무 허술하다. 지하철 요금이 5000원이면 택시, 버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은 비극이다. 이름이 카잔초프스키이고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더라면, 그는 톨스토이 토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해 이보다 더한 극찬은 없을 것 같다. 이 멋진 찬사는 영국의 평론가 겸 작가 콜린 윌슨의 말이다. 윌슨은 약관 24세에 펴낸 ‘아웃사이더’(1956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출간 1년 반 만에 14개국어로 번역됐고, 한국 일본은 물론 아랍권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자고나니 유명해진 셈이다. 그 덕에 윌슨은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의 존 J 오스본, 훗날 노벨문학상을 수상(2007년)한 도리스 레싱 등과 함께 50년대 앵그리영맨의 기수로 떠올랐다. ‘아웃사이더’에서 윌슨은 니체, 헤세, 로렌스, 카뮈, 사르트르, 헤밍웨이 등 19~20세기 대표 작가들의 작품 속 인물들에게서 일관된 아웃사이더 기질을 끄집어 냈다. 아웃사이더란 일상에선 무관심하고 비현실적이지만 존재에 대해선 끝없이 집착하는 정신적 국외자다. 이 책이 등장하자 당시 비평가들은 전기충격을 받은 듯했다고 한다. 대학 문턱도 못 가본 스물네 살짜리 노동자가 독학만으로 그런 해박한 식견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웃사이더’의 성공은 되레 윌슨을 평생 아웃사이더로 살게 만들었다. 언론이 그를 띄웠지만 다시 진창에 밀어넣을 것을 예감하고 은둔한 것이다. 그의 관심사는 비평보다는 살인, SF, 우주, 불가사의 등 오컬트로 기울었다. 때문에 비판자들은 ‘아웃사이더’ 외엔 그의 모든 것을 쓰레기일 뿐이라고 폄하한다. 요즘 말로 ‘듣보잡’이 기성 평단을 휘저은 데 대한 반감도
세계는 다 아는데 한국인만 모르는 세 가지가 있다는 얘기가 지난해 한때 회자됐었다. 북핵이 얼마나 위험한지, 일본과 중국이 얼마나 센지, 그리고 한국이 얼마나 부러움을 사는 나라인지. 지금도 똑같다. 세계가 북핵과 체제급변을 염려해도 한국인은 ‘설마 동족을…’이라는 반응에서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세계 2, 3위 경제대국을 “차이가 나서 ‘차이나”라거나, ‘쪽바리’라고 얕보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최빈국에서 두 세대 만에 선진국 문턱에 다가섰어도 국민 다수는 여전히 늘 배고프고 배 아프다. 자기존중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심한 나르시시즘이자 ‘나는 특별하다’는 자기선택적 편향이다. 이익집단이 더 크게 공익 외쳐 요즘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면 한국인만의 독특한 심리현상이 세 가지쯤 더 있는 것 같다. 이익집단이 더 큰소리로 정의를 외치는 가치의 전도, 문 열면 다 망한다는 쇄국 본능, 그리고 강자는 모두 악(惡), 약자는 무조건 선(善)이라는 언더도그마가 바로 그것이다. 지도층까지 예외가 없는 걸 보면 한국인의 유병률이 두드러진 증상이다. 코레일 노조가 내건 파업 명분은 소위 서민 요금폭탄 등 ‘공공성 훼손’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KTX를 자주 타본 사람들은 요금이 해마다 야금야금 오르고, 할인혜택은 대폭 줄어 불만이 많다. 요금이 안 내려가는 것이 100년 독점 공기업의 방만경영, 과잉인력에 원인이 있음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럼에도 노조는 민영화도 아닌 것을 민영화 프레임에 넣고, 기득권 투쟁을 공익 투쟁으로 가장한 것이다. 의약단체들이 내거는 ‘국민건강 훼손’이 연상된다. 공익을 강하게 외치는 사람 치고 공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갬블’은 1995년 무모한 투자로 233년 전통의 영국 베어링은행을 말아먹은 닉 리슨(당시 28세)의 자서전 ‘악덕 중개인(Rogue Trader)’을 영화화한 것이다. 리슨은 인도네시아 채권으로 2000% 수익률을 올린 덕에 싱가포르지점 수석트레이더로 영전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어느 날 실수로 생긴 손실을 숨기려고 깡통계좌를 만들고, 거래 규모를 키웠지만 손실은 더욱 눈덩이가 됐다. 단숨에 만회하려고 고베지진을 틈타 일본 주가지수선물에 ‘몰빵’했지만 결국 13억달러를 날렸다. 그 충격으로 베어링은행은 단돈 1파운드에 네덜란드 ING은행으로 넘어갔다. 그해엔 또 다른 대형 금융사고가 일본에서 터졌다. 다이와은행 뉴욕지점의 이구치 도시히데가 11년간 장부에 누락한 채 미 국채를 거래하다 11억달러를 날린 것이다. 리슨과 이구치는 출소 후 쓴 자서전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특히 리슨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투자위험을 분석·경고하는 고액 강사로 변신했다. 이들은 각기 1조원이 넘는 손실을 끼쳤지만, 직원 한 명이 낸 금융사고 중 역대 5위 안에도 못 낀다. 2008년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은행의 제롬 케르비엘(당시 31세)은 대규모 불법 선물거래로 무려 71억달러의 손실을 냈다. 파생상품 거래가 활발해진 90년대 이후 대형 금융사고가 잦다. 미국 오렌지카운티 파산(1994년·손실액 17억달러), 헤지펀드 아마란스 파산(2006년·66억달러), 스위스 UBS은행 대규모 손실(2008년·20억달러) 등은 모두 직원 한 명이 초래한 금융사고다. 원금의 수십, 수백배를 거래하는 파생상품의 특성상 터졌다 하면 초대형 쓰나미다. 이에 비하면 연간 손실 총액이 1000억원 안팎인 국내 금융사
지난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2013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베네수엘라 출신 가브리엘라 이슬러(25)가 왕관을 차지했다. 이슬러는 1년간 뉴욕 트럼프타워에 살며 에이즈 퇴치운동과 봉사활동을 벌이게 된다. 이로써 베네수엘라 출신 미스 유니버스는 미국(8명) 다음으로 많은 7명으로 늘어났다. 1952년 시작된 미스 유니버스에서 1회 이상 우승한 나라는 총 34개국이다. 이 중 베네수엘라가 20%를 차지하고, 2000년대 들어선 3회 우승으로 압도적이다. 월드컵의 브라질처럼, 미인대회에선 영원한 우승후보가 베네수엘라인 셈이다. 미스 유니버스와 더불어 3대 미인대회로 꼽히는 미스 월드와 미스 인터내셔널에서도 베네수엘라는 각각 6회씩이나 우승했다. 베네수엘라가 미인대회 강국인 데는 이유가 있다. 본래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다양한 혼혈인종으로 구성돼 있고, 카리브해 특유의 건강미까지 더해져 미인 자원이 풍부하다. 나라이름도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아름다운 수상마을을 보고 ‘작은 베네치아’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베네수엘라는 면적이 한국의 9배에 달하고, 인구가 2900만명이지만 석유 외에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다. 따라서 여성들에게 미인대회는 부와 명예를 얻는 보증수표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1981년 미스 유니버스 아이린 사에스는 차카오시장에 당선됐고, 1998년 대선 후보로도 출마했다. 미인대회를 국가사업으로 여기면서 베네수엘라에는 각종 미인대회만도 2만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수요가 많으니 미인사관학교도 성업 중이다. 세계대회 입상자의 90%를 배출한 ‘킨타 미스 베네수엘라’는 입학 경쟁률부터 수천 대 1에 달하며 합숙을 통해 몸매관리, 워킹,
마피아 소재 영화에는 하나같이 회계사가 등장한다. ‘언터처블’의 그 유명한 기차역 계단 총격 장면도 수사관 네스(케빈 코스트너 분)가 알 카포네를 기소하는 데 결정적 증거를 가진 그의 회계사를 호송하는 과정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카포네가 시카고 밤의 황제가 되기 전, 볼티모어에서 회계사로 일했다는 점이다. 그의 회계사 경험은 사업전반을 장악하는 힘이 됐다. 회계를 ‘비즈니스 세계의 언어’라고 부른다. 만약 회계가 없다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바벨탑 같은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회계의 기원은 고대 수메르,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중세까지도 채권·채무나 재산관리를 위해 기록해두는 단식부기에 머물렀다. 가계부 수준이다. 복잡한 상거래를 한눈에 파악하게 하는 복식부기는 14세기 초 해상무역을 지배했던 베네치아 상인들이 처음 쓰기 시작했다. 이는 아라비아숫자의 전래, 수학 대수와 연관이 깊다. 대수식에서 한 변의 플러스인 것이 다른 변으로 가면 마이너스가 되듯이, 차변과 대변 양쪽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복식부기다. 복식부기가 널리 확산된 것은 ‘회계의 아버지’로 불리는 베네치아의 수도사 루카 파치올리의 저서 ‘대수, 기하, 비율 및 비례총람’(1494년)을 통해서다. 파치올리는 “사업에 성공하려면 사업 전부를 정확히, 그것도 한눈에 알아야 하며, 복식부기를 알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도 복식부기 덕이다. 그는 당시 탐험을 가장한 사기가 성행해 주저하는 투자자들에게 복식부기를 쓰면 속일 수 없다고 설득해 투자를 이끌어냈다. 복식부기는 근대 주식회사와 자본주의 태동의 밑거름이 됐다. ‘수량화 혁
오랜만의 미국 출장에서 가장 거슬렸던 것이 호텔 엘리베이터다. 수도 워싱턴의 중심가 호텔인데도 느려 터지고 덜컹대는 엘리베이터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30년도 더 된 듯한 GE의 엘리베이터는 셧다운(정부 일부폐쇄) 파동을 겪은 미국 정치와 묘하게 오버랩됐다. 셧다운은 한국보다 결코 덜하지 않은 미국 정치의 양극화에 뿌리가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글렌 케슬러 칼럼니스트는 “현실에선 같이 살지만 정치적으로는 각자 완전 딴 세상에 산다”고 지적했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은가 보다. 양극화 뿌리는 게리맨더링 정치 양극화는 우선 제도가 만들어낸다. 하원 선거구는 양당 야합으로 거의 게리맨더링 수준이다. 2년마다 뽑는 하원 435석 중 대략 60석 정도만 주인이 바뀔 뿐, 대부분은 특정 정당의 전유물이다. 최근 작고한 빌 영 의원, 불법시위로 수갑이 채워진 찰스 랭걸 의원처럼 무려 22선(44년)이 가능한 이유다. 당선보다 경선이 더 중요하므로 타협의 인센티브도 없다. 공천 프라이머리(예비경선)가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한다. 일반 국민은 무관심하고 적극적인 관심층만 투표하니 극단적인 주장을 펼수록 유리한 구조다. 게다가 선거자금 사용이 용이해 지난해 대선 선거자금은 60억달러(약 6조4000억원)에 달했다. 이 중 상당액은 극단적이고 선동적인 TV 정치광고에 쏟아부었다. 이익집단들이 맨입으로 정치자금을 냈을 리도 만무하다. 여기에다 정파적인 언론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트위터는 갈등 증폭장치로 작용한다. 이런 배경에서 나랏빚이 해마다 1조달러씩 불어나도 6000억달러짜리 오바마케어가 강행됐고, 티파티는 강경 대치로 되레 입지를 넓혔
세네갈 갈치, 노르웨이 고등어쯤은 이제 주부들도 익숙하다. 에콰도르 새우, 모리타니 문어, 아르헨티나 홍어, 바레인 꽃게 등으로 가면 조금 신기해진다. 대체 모리타니는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식탁에 오르는 수산물 원산지를 보면 가히 다국적군이다. 대형마트의 수산물 중 수입품이 절반에 이른 마당이다. 기업, 관공서 등 구내식당의 원산지 표시를 보면 더욱 다양하다. 서아프리카의 세네갈, 모리타니에서 잡은 갈치, 문어가 밥상에 오를 정도니 먹거리 유엔총회라도 열 판이다. 수입 문어의 국적을 보면 정말 놀랍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문어는 올 들어 8월까지 17개국에서 1322만달러어치가 수입돼 전년 동기 대비 54% 급증했다. 이 중 모리타니(839만달러)가 작년에 이어 부동의 1위이고 중국, 모로코, 세네갈, 인도네시아 순이다. 심지어 탄자니아, 마다가스카르산 문어도 들어온다. 희한한 사실은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흔히 보던 칠레산 홍어·가오리가 자취를 감춘 점이다. 그 자리를 아르헨티나산 홍어, 브라질산 가오리가 차지했다. 칠레산은 흑산도 홍어처럼 차지고 빛깔이 좋아 인기가 높았지만, 현지에선 지진으로 조업이 줄고 한국의 수요로 씨가 말라 3년째 수입이 끊겼다고 한다. 최근 전남 목포에서 미국산 홍어를 칠레산으로 둔갑시켜 판 업자들이 적발된 황당사건도 있었다. 일본 방사능 우려가 확산되면서 수산물을 한국에 수출해 짭짤한 재미를 보는 나라가 러시아다. 명태 연어 대구 임연수어 코다리 대게 등은 러시아산이 수입 1위를 질주 중이다. 이밖에도 중국산 낙지 바지락 아귀 꽃게 등과 대만산 꽁치, 베트남산 주꾸미, 미국산 랍스터 연어 대구 등도 흔히 맛
투표의 기원은 2500년 전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민의 직접투표로 지도자를 선출했고 도자기 조각(陶片)에 이름을 써넣는 비밀투표식 도편추방제로 위험인물을 추방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표권은 성인 남자 자유민에 한정돼 오늘날 투표와는 차이가 크다. 현대의 보통·평등·비밀·직접투표라는 4대 원칙이 확립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18~19세기 유럽에선 시민혁명으로 일반 시민도 투표권을 갖게 됐지만, 여기서 ‘시민’에 여성은 제외됐다. 계몽사상가인 장 자크 루소조차 “여성은 남성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창조됐다”고 했던 시대다. 남녀가 동등한 투표권을 갖는 보통선거는 20세기 들어와서다. 뉴질랜드(1898년), 호주(1902년)에 이어 영국이 1918년, 독일이 1919년, 미국이 1920년 각각 여성 투표권을 허용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여성을 군수산업에 동원한 데 따른 당근인 셈이다. 반면 혁명의 진앙지였던 프랑스는 정작 1946년에야 여성에게 투표권을 줬다. 평등투표 원칙은 1인1표, 즉 투표의 등가성 원칙을 의미한다. 하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납세액 등에 따라 투표권이 달라지는 불평등 투표가 적지 않았다. 프로이센(독일)에선 투표권자를 납세액에 따라 3등분해 투표하게 했는데, 총세수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고액납세자 그룹에서 유일한 투표자인 알프레드 크룹(철강회사 크룹 창업주)의 1표가 중간납세자나 소액납세자 그룹의 수많은 사람들 표와 동일하게 간주됐다. 비밀투표는 1858년 호주에서 처음 도입돼 호주식 투표라고 부른다. 호주는 정당한 이유없이 투표를 안 하면 벌금을 물리는 강제투표제를 시행하고 후보자에게 선호 순위를 매겨 투표하는 보다(Vor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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