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휘영청 밝은 달을 보고 소원을 빈 사람이 많아서일까. 추석연휴를 끼고 있던 지난주 564회차 로또는 평소보다 판매액이 늘어 1등 총당첨금 135억원이 7명(1인당 19억3000만원)에게 돌아갔다. 1등 총당첨금이 평균 122억원인 것과 비교해 평소보다 더 팔렸다는 얘기다. 이럴 때일수록 주목을 끄는 게 이른바 ‘로또 명당’이다. 전국 6200여개 판매점 중 부산 범일동 카센터는 10년간 27번, 서울 상계동 편의점은 18번이나 1등 당첨자가 나왔다. 이쯤 되면 신이 점지해준 로또 명당이 과연 있다고 봐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로또 명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확률에 대한 착시와 착각이 있을 뿐이다. 이는 몇 가지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다. 로또의 1등 당첨 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다. 차라리 벼락 맞을 확률(180만분의 1)이 로또 1등보다 5배쯤 높다. 그런데 매주 평균 600만명 안팎이 4200여만장의 로또를 산다. 이 중 1등 당첨자는 평균 5.8명이다. 따라서 전국 판매점 1000곳당 한 곳쯤에서 1등이 나오게 마련이다. 회차가 거듭할수록 이론적 확률에 수렴할 것이다. 평범한 판매점이 로또 명당 소리를 듣게 된 과정은 이랬을 것이다. 2002년 12월7일 로또가 도입된 초기에 우연히 1등이 나오자 가게 앞에 대문짝만하게 ‘로또 1등에 당첨된 집’이란 현수막을 내건다. 손님들이 몰리고 몇 달 만에 우연히 다시 1등이 나와 ‘명당’이란 입소문을 타 판매량이 폭증한다. 매주 주변 교통을 마비시키는 상계동 편의점이 바로 그런 과정을 거쳤다. 기획재정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이 가게는 지난해 로또를 168억원어치나 팔았다. 매주 32만장(1000원 기준) 꼴이니 이 가게에서 1등이 나올 확률이 4%쯤은 되는 것이다. 확률이 높지 않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혼외(婚外) 자녀를 꼽으라면 홍길동이 아닐까 싶다. 동사무소나 은행에 비치된 견본 양식에는 하나같이 그의 이름이 적혀 있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 서자(庶子)였다. ‘홍길동전’의 작자 허균은 정작 동인의 거두 허엽의 적자(嫡子)다. 그럼에도 당시 천대받던 서자, 승려들과 자주 어울렸고, 광해군 5년(1613년) 역모사건인 ‘칠서지옥(七庶之獄·계축옥사)’에 연루된 7명의 서자들과도 교류했다. 허균의 호인 교산(蛟山)의 교(蛟)가 이무기를 뜻하는 것도 흥미롭다. 유교 신분사회였던 조선은 양반 자식이라도 첩의 소생이면 모두 서얼(庶孼)로 차별했다. 모친이 양인이면 서자, 천민이면 얼자였다. 서얼의 자손도 대대로 서얼이었다. 고려나 명나라에도 없던 차별이다. 그 배경에는 서얼 출신 정도전이 있다. 정적 정도전을 제거한 태종은 1514년 서얼금고(禁錮)법을 제정, 서얼의 관직 등용을 제한했다. 뜻을 펴지 못한 서얼들은 자연스레 비주류 학문인 실학으로 기울었다.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이 서얼 출신이다. 정조는 이들을 아꼈지만 규장각 검서관 같은 하급관리로밖에 쓰지 못했다. ‘패관잡기’의 저자 어숙권, 시조 ‘태산가’를 쓴 양사언 등도 서출이었다. 서얼금고법은 380년 뒤인 갑오개혁(1894년)에 가서야 철폐됐다. 오늘날 민법에서 혼외 자녀는 ‘혼인 외의 출생자’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일제시대만 해도 서자(부친이 인지한 자식)와 사생아(인지하지 못한 자식)를 구분했다. 몇 해 전 배우 손지창이 병역비리 루머에 휘말리자 “사생아라서 (당시엔) 입대 불가였다”고 가슴 아픈 해명을 한 적도 있다. 혼외
“그 흔하디흔한 물고기의 이름이 하필 전어(錢魚)라니/ 손바닥만한 게 바다 속에서 은빛 비늘 파닥이는 모습이/ 어쩌면 물속에서 일렁이는 동전을 닮아 보이기도 했겠다” 김신용의 시 ‘전어’의 한 토막이다. 횟집 수족관마다 은빛 나는 가을 전어가 그득해지는 계절이다. 전어가 가을철 ‘국민생선’이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1980년대만 해도 전어는 산지인 3남(호남·영남·충청)에서 주로 먹었다. 1990년대 들어 운송·보존기술의 발달로 전국 어디서나 전어 굽는 냄새가 진동하게 됐다. 이제는 9월이면 온 국민이 전어를 꼭 맛봐야 한다는 강박증까지 생겼다는 게 음식평론가 황교익 씨의 촌평이다. 전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 실학자 서유구는 ‘임원경제지’(1827년)에서 서울의 양반, 서민 할 것 없이 소금에 절인 전어를 ‘돈(錢) 귀한 줄 모르고 먹는 생선’이라고 기록했다. 정약전은 ‘자산어보’(1814년)에서 모양새가 화살촉을 닮았다 하여 전어(箭魚)라고 썼다. 지역에 따라 새갈치, 엿사리, 전어사리 등으로 불리며 동해에선 어설키라고 한다. 봄철 도다리라면 가을에는 단연 전어다. 한자로 ‘가을 물고기’라는 뜻의 추어(鰍魚·미꾸라지)도 가을 전어에는 어림없다. 청어과의 난류성 어종인 전어는 봄에 북상해 7~8월 산란을 마친 뒤 9~10월이 한창 기름기가 오르고 살이 붙을 때다. 11월 중순 이후엔 뼈가 억세진다. 따라서 추석 전후 보름이 전어맛이 가장 좋은 시기다. 실제로 가을 전어는 기름기가 봄철의 3~4배에 달해 고소하기 그지없다. 오죽하면 속담에 가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 말이라고 했다. 집 나간 며느리가 전어 굽는 냄새에 돌아온다지만, 며느리 친정 간 사이에 문 걸어잠
올여름도 한국 사회는 무더위보다 뜨겁다. 127석 제1야당이 국회를 나와 천막을 친 지 벌써 한 달이다. 국가정보원 댓글사건은 이제 진영논리에 따라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인지부조화의 극치가 돼버렸다. 감사원장의 느닷없는 사퇴로 진실게임이 하나 더 추가됐다. 한쪽에선 블랙아웃(대정전)을 걱정하고, 다른 쪽에선 송전탑 결사반대다. 연봉 1억원의 귀족노조들은 더 내놓으라고 으름장이다. 물론 올여름 백미는 봉급쟁이를 봉으로 여긴 ‘봉봉세’ 파동이다. 늘 그렇듯 우리는 상상 이상의 것을 본다. 외국 경제학자나 사회학자가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하다. 사회과학은 실험이 어려운데 한국에서는 온갖 실험이 실제 상황이다. 이런 이슈들을 보노라면 ‘내집 뒷마당에선 안 된다’는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부터, ‘내 임기만 피하자’는 님트(NIMT·not in my term), ‘내 주머니에선 안 된다’는 눔프(NOOMP·not out of my pocket) 현상까지 저절로 머릿속에 정리된다. 지상낙원 약속한 정치권의 업보 세제개편 파동은 경제학의 공공재게임을 연상시킨다. 장하준 교수는 복지를 ‘공동구매하는 공공재’라고 했지만, 공공재는 수혜자를 배제할 수 없기에 무임승차가 우월전략이 된다. 나중에 받을 국민연금보다 한 번 내면 끝인 건강보험료의 체납자가 더 많은 이유다. 정부가 들이민 수정안은 소득 상위 7%(연봉 7000만원 이상)에게 세부담을 전가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복지증세는 반대가 60%이고, 대기업과 고소득층부터 쥐어짜라는 여론이 70%다. 이미 소득세 세수는 상위 20%가 84.7%를, 법인세는 상위 1%가 86.1%를 낸다는 사실쯤은 아무 상관없다. 내 주머니에서 안 나가면 그만이니까. ‘복지는 공짜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 500명의 판결에서 280 대 220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사형을 앞둔 그에게 친구들이 탈옥을 권했지만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대왕이 죽자 적의에 가득 찬 반대파에 의해 재판에 회부될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그는 “아테네 시민이 두 번이나 철학에 죄를 짓게 할 수는 없다”며 재빨리 도망쳤다. 그런 아리스토텔레스였지만 “올바르게 제정된 법은 최고 권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즘 너나없이 법치를 말한다. 올바른 법이란 과연 무엇일까. 무수한 법조계 출신이 국회에 진출했지만 국회는 법률 대량생산공장으로 전락했다. 그에 비례해 헌법소원, 위헌심판 청구 등 법에 대한 불복종은 늘어만 간다. 철학이 없는 법 기술자만 양산한 결과가 아닐까. 법을 알고 싶어도 멀게만 느껴온 이들에게 《법학 이야기》는 ‘법에게 길을 묻다’라는 부제 그대로 길을 보여준다. 법학개론서이면서도 어렵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지식은 책 두께만큼이나 폭넓고 깊다. 법철학과 법 원리부터 헌법 민법 행정법 가족관계법 등 법률 해설, 논쟁이 된 판례, 법률 용어까지 총망라했다. 법학 교수이자 안전행정부 국민권익위 경찰청 등의 자문위원인 저자가 오랜 기간 꼼꼼히 정리한 노력이 엿보인다. 법 모르면 코 베어가는 법 폭주시대에 내비게이션이 될 만하다.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요즘 막말의 진원지는 정치판과 TV의 속칭 ‘떼토크(집단토크쇼)’다. 삼복더위에 수시로 쏟아지는 말의 홍수에 불쾌지수는 한껏 오르기 일쑤다. 자막에 ‘개뿔’이 버젓이 등장하고,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 같은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막말도 막말이지만, 뜻을 모르거나 잘못된 표현을 버젓이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바른 언어생활을 위해선 TV부터 꺼야 할 판이다. 흔히 말도 안 되는 무의미한 주장을 가리켜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잡식성인 개가 초식성인 소처럼 풀을 뜯어먹지는 않는 것이다 보니 그런 식으로 와전됐을 법하다. 개가 풀을 뜯는다는 말의 옳은 표현은 ‘개풀 뜯는 소리’다. 개풀은 개(犬)와는 무관한 ‘갯가에 난 풀’로, 하찮은 것을 가리킨다. 개뿔도 ‘개의 뿔’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개는 뿔이 없으니 아주 보잘것없거나 작은 것을 속되게 비유할 때 개뿔이라고 한다”는 그럴싸한 설명을 버젓이 붙인 책이나 포털검색이 꽤 있다. 하지만 개뿔은 개의 뿔이 아니다. ‘개의 불(불알)’에서 나온 센 말이다. 개뿔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개코는 개의 코가 맞다. 요즘 정치판을 보노라면 “개뿔도 모르면서 개풀 뜯는 소리 한다”고 해야 할까. ‘쥐뿔도 모른다’고 할 때 쥐뿔도 개뿔처럼 ‘쥐의 불’에서 왔다. 본래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사람을 빗대 ‘쥐좆도 모른다’고 한 속담에서 유래했다. 쥐좆의 어감이 좋지 않으니 쥐뿔로 바꿔 부른 것이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만부방’에는 “기껏 둘이 앉아서 개코쥐코 떠들다가…”라는 표현이 나온다. 쓸데없는 이야기로 이러쿵저러쿵하는 모양을 가리켜 ‘개
최측근이라던 남자1호가 서류를 내밀었다. “검찰 인사는 이렇게 하심이…”라는 인사 건의였다. 여자1호는 말이 없었다. 이튿날 비서관의 전화를 받았다. “당분간 전화나 방문을 자제하시랍니다.” 야당 대표가 된 남자2호는 여자1호를 잘 안다고 자신했다. 대통령 딸이 주인공인 소설 ‘여자의 남자’를 썼던 그다. 한데 각을 세울수록 자꾸 이전투구로 말려든다. 국정원 댓글은 어느덧 없는 대화록을 찾느라 낭패다. 이젠 정쟁의 페달을 멈추면 넘어질 자전거의 처지다. 터프한 척하는 남자3호는 도무지 뜻대로 되는 게 없다. 막말도 협박도 안 통하니 차라리 존댓말로 하면 여자1호가 봐줄까 기대했다. “귀측은 답변을 회피하였습니다. 쓴맛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해놓고 보니 스스로도 남사스럽다. 단호함과 여성성의 완급조절SBS ‘짝’을 패러디 한 남자1~3호는 대강 짐작할 것이다. 물론 여자1호는 내일로 취임 5개월인 여성 대통령이다. 남자들은 너나 없이 여성 대통령을 어려워한다. 하긴 마누라, 딸과도 소통에 애를 먹는 남자들이니 오죽하겠나 싶다. 작가 박민규의 표현대로 남자들은 도무지 여자라는 주파수를 잡지 못하는 AM라디오인지도 모른다. 여성 대통령은 남성 전임자들에게선 볼 수 없는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여성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본인만의 특성일 수도 있다. 우선 침묵의 금언을 잘 안다. 말수가 적고 화내는 법도 없다. 당 대표 시절 “왜 그러셨어요”라는 조근조근한 추궁으로 3~4선 중진들도 오금이 저리게 만든 내공이다. 북한의 막말과 욕설도 “우리 국민에게도 존엄이 있다”는 한마디로 잠재웠다. 여성성을 되레 강점으로 활용할 줄 안다. 화사한 색과 미소로 표
“내가 외출할 때는 언제나 아내에게 베르가모식 자물쇠를 채운다. 그렇지 않으면 불타는 듯한 붉은 눈의 악마에게 이 몸을 주어버리는 편이 차라리 낫다.” 16세기 프랑스 작가 라블레의 풍자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 나오는 내용이다. 베르가모식 자물쇠란 정조대(貞操帶·chastity belt)를 뜻한다. 주로 북이탈리아 베르가모 지방에서 생산돼 붙여진 이름이다. 정조대는 ‘비너스대(帶)’, ‘베네치아대’, ‘피렌체대’ 등으로도 불렸다.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은 그가 이탈리아 유학시절 베르가모를 여행할 때 박물관에서 본 철제 정조대의 인상이 워낙 강렬해 곡과 무관하게 제목을 붙였다는 일화가 있다. 정조대의 유래에 대해선 설이 분분하다. 널리 알려진 속설이 중세 십자군전쟁이 한창일 때 장기간 출정 나가는 기사들이 아내의 부정을 막고 성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정조대를 채웠다는 것이다. 십자군이 사라센의 하렘에서 탈취한 것을 토대로 만든 것이란 설명도 곁들여진다. 그러나 중세 기원설을 뒷받침할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가장 오래된 정조대 그림은 15세기에야 등장했고, 14세기 음담패설을 모아놓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는 정조대 언급이 없다. 유럽의 박물관에 전시된 십자군시대 정조대라는 것은 대개 후대에 만들어진 모조품이라고 한다. 독일 역사가 에두아르드 푹스는 르네상스기 발명품이라고 주장했다(‘풍속의 역사’). 장기간 항해를 나가는 베네치아 피렌체 등지의 상인들이 주로 썼다고 한다. 당시 정조대는 상당한 고가품이었고 보석 장식도 들어가 아무나 쓸 물건이 아니었다. 정조대가 여성용만 있는 게 아니다. 영국에서 만든 남성 정
경제위기를 걱정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선진국의 양적완화 축소, 엔저 같은 나라 밖 요인 탓만은 아니다. 정체 모를 무언가의 괴물이 우리 몸체 내부에서 스멀스멀 번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의 징후다.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는 위기의 증거들이 뚜렷했다. 환율 폭등, 주가 폭락에 누구나 쉽게 중병을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각 증상도 거의 없다. 거시지표만 보면 기우로 여겨질 정도다. 경상수지는 흑자행진이고 환율 주가 금리도 걱정거리는 아니다. 부도 사태도 없고 실업률은 사상 최저 수준이다. 물가 상승률은 고작 1%대다. 하반기엔 3%, 내년엔 4% 성장이 가능하다는 게 정부의 전망이다. 6월 국회 ‘乙지키기’ 법안 16개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눈에 안 보이면 없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증거의 부재(不在)가 부재의 증거는 아니다(Absence of evidence is not evidence of absence)’라는 서양 격언도 있지 않은가. 맥킨지의 지적처럼 한국 경제가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가 된 탓인지도 모른다. 8분기 연속 0%대 저성장인데도 1분기 0.8%(전분기 대비) 성장을 ‘선방’이라고 여길 만큼 온통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상장사들조차 1분기 매출과 순익이 줄었고, 10곳 중 3곳이 적자다. 30대그룹 치고 비상경영이 아닌 곳이 없다. 하지만 진짜 위기 징후는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정신적 요인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과연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원인에 천착해 합리적 해법을 도출할 만한 경제 지력(知力)을 가졌다고 볼 수 있을까. 땀 흘리는 사람보다 목소리 큰 사람이 더 기세등등한 세상이 된 지도 오래다. 정치는 이에 편승해 정
왼손잡이, 특히 여성 왼손잡이 시구자는 눈에 확 띈다. 지난달 26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배우 이해인이 왼손으로 던졌다. 앞서 배우 박세영과 복싱을 겸업하는 이시영도 왼손으로 시구했다. 신세경은 TV드라마에서 왼손으로 그림을 그려 관심을 모았다. 왼손잡이는 세계적으로 열 명 중 한 명꼴이다. 서구에선 10~12%, 우리나라는 5% 안팎이다. 왼손잡이는 마이너리티(소수자)여서 그것을 지칭하는 언어에서부터 왼손 터부(taboo)가 확실하다. 우리말의 오른손은 ‘바른 손’이지만 왼손은 ‘그르다’의 옛말인 ‘외다’에서 나왔다. ‘왼고개를 젓다’고 하면 반대, 부정의 의미이고 승진의 반대말이 ‘좌천(左遷)’이다. 서양은 더 심하다. 영어의 ‘right’는 옳다는 뜻이지만, ‘left’는 ‘약한, 부서진’ 등의 뜻을 가진 앵글로색슨어의 ‘lyft’에서 왔다. ‘left-handed wife’는 왼손잡이 아내가 아니라 첩을 가리킨다. 불어에서 왼손잡이 ‘gauche’도 ‘어색한, 꼴사나운’이란 뜻이고, 러시아에서 왼손잡이 ‘levja’는 아예 욕설로도 통한다. 종교의 왼손 터부도 공공연하다. 이브는 왼손으로 선악과를 땄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 왼쪽 도둑은 끝내 회개하지 않았다. 이슬람권에선 왼손을 불결하게 여겨 왼손잡이가 인구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왼손잡이는 쓸모가 많다. 특히 권투 테니스 펜싱 야구 등 마주보고 하는 스포츠일수록 왼손 비율이 높다. 국내 프로야구 투수 중 좌완이 25%이고, 미국 메이저리그는 30%에 이른다. 왼손 투수는 공의 궤적이 타자에게 낯설고 1루 주자 견제가 용이하다. 괴물 류현진도 태생은 오른손잡이였으나 훈련 끝에 왼손 투수가 됐다. 하지만 왼손잡이는 어려서부터 애
“그녀는 좋아하는 떡볶이는 제쳐두고/쳐다본 것은, 쳐다본 것은/ 뮤직박스 안에 DJ라네/ 무스에 앞가르마 도끼빗 뒤에 꽂은/ 신당동 허리케인 박”(DJ DOC, ‘허리케인 박’) 스테레오 전축도 귀하던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7080세대에게 지직거리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보물 1호였다. 공부할 때도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라디오DJ가 인기를 끌자 음악다방은 물론 분식집, 떡볶이집까지 앞다퉈 뮤직박스에 DJ를 뒀다. 신당동 떡볶이집의 ‘허리케인 박’은 그 시절 ‘DJ 오빠’의 전형이었다. 디스크 자키(disc jockey)의 약어인 DJ는 음반(디스크)을 틀어주며 음악을 해설하고 가벼운 화젯거리나 청취자 사연을 전하는 프로그램 진행자다. 자키는 경마기수란 뜻도 있지만 여기선 기기 조작자를 가리킨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왕년의 가수왕이였던 최곤(박중훈 분)은 강원도 영월의 라디오DJ를 맡아 진행하면서 서서히 인생을 깨달아간다. 최초의 라디오 DJ프로그램은 우연찮은 기회에 생겨났다. 1935년 미국 서부의 한 방송사가 어느 밴드의 공연을 중계하려다 공연이 취소되자 시간을 메우기 위해 밴드의 음반을 틀며 중계하듯 방송한 것이다. 뉴욕 방송사의 아나운서였던 마틴 블록이 이 아이디어를 가져다 ‘메이크 빌리브 볼룸’이란 DJ프로그램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국내 첫 라디오 DJ프로그램은 1964년 동아방송의 최동욱이 진행한 ‘탑튠쇼’였다. MBC에선 PD인 이종환을 기용해 ‘탑튠퍼레이드’로 맞불을 놨다. 뒤이어 박원웅 김기덕 황인용 김광한 김세원 장유진 등이 등장해 1970년대 DJ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른바 DJ 문화는 청바지, 통기타와 더불어 청춘의 상징이 됐다. 청취자들은 예쁜 그림과 빼
어린 시절 토네이도에 아버지를 잃은 조는 커서 스톰체이서(토네이도 추적자)가 된다. 토네이도가 잦은 오클라호마주를 찾은 조는 공 모양의 계측기 ‘도로시(Dorothy)’를 토네이도 속에 밀어넣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토네이도 중심으로 들어간다. 1996년 장 드봉 감독의 재난영화 ‘트위스터(Twister)’ 이야기다. 주인공 조(헬렌 헌트 분)는 수백개의 도로시를 끝내 토네이도 속으로 날려보내는 데 성공한다. 도로시란 이름은 바로 ‘오즈의 마법사’에서 따왔다. 캔자스 평원에서 오즈로 도로시를 날려보낸 게 바로 토네이도다. 토네이도(tornado)는 스페인어 ‘tornada(폭풍우)’에서 유래했다. 트위스터, 사이클론으로도 부른다. 기둥이나 깔때기 모양의 매우 강력한 회오리바람이다. 태풍이 지름 수백㎞에 달하는 수평 회오리라면, 토네이도는 수직 회오리다. 기상학 용어로는 스파우트(spout), 즉 용오름이다. 동해에서도 종종 용오름이 목격된다. 유독 미국 중서부에 토네이도가 잦은 것은 지형 탓이다. 로키산맥을 넘은 차고 건조한 대륙성 한랭기단이 멕시코만에서 불어온 덥고 습한 해양성기단을 파고들어 강한 상승기류를 형성하기 쉬운 대평원이기 때문이다. 이때 적란운(비구름)이 형성돼 상승기류가 더욱 가속화되면 지표면 기압이 순식간에 10분의 1로 떨어져 초강력 진공청소기와 같은 토네이도가 생겨난다. 토네이도 강도는 피해 정도에 따라 후지타 규모(F0~F5)로 표시하며, 요즘은 풍속에 따라 EF0~EF5를 쓴다. EF5급 토네이도는 중심풍속이 초속 90m 이상이고, 이동속도는 시속 40~80㎞이지만 100㎞가 넘는 것도 있다. 1931년 미네소타주에선 117명을 태운 83t짜리 기차를 들어올렸을 정도다. 그러니 영화에
“누가 4월을 잔인하다고 했던가요. 현대를 사는 도시인은 5월이 끔찍합니다.” 5월을 맞아 누군가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계절의 여왕인 5월이 한국의 직장인들에겐 ‘공포의 5월’이 돼 버렸다. 이유는 짐작하는 대로다. ‘가정의 달’에 두루 챙기고 선물해야 할 온갖 기념일이 다 몰려있는 탓이다.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21일 부부의 날에다 쌓이는 청첩장, 아이들 소풍까지…. 가족의 생일, 결혼기념일이라도 끼어 있다면 지갑에 구멍이 날 판이다. 당장 어린이날부터 걱정거리다. 각종 설문조사를 보면 어린이들이 받고 싶은 선물 1위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이 스마트폰이다. 이어 게임기, 장난감, 애완견의 순이다. 게다가 다 큰 20대 자녀들마저 은근히 선물을 기대한다. 방정환 선생을 탓할 수도 없어 한숨만 짓는 직장인이 많다. 어린이의 천국이라는 미국엔 정작 어린이날이 없다. 대신 마더스 데이(5월 둘째 일요일), 파더스 데이(6월 셋째 일요일)가 있을 뿐이다. 왜 어린이날이 없는 걸까. 나머지 363일이 모두 어린이날이니까. 차라리 어린이날을 하루 정해 놓은 게 낫다고 여기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곧 이어서는 어버이날이다. 양가 부모 네 분을 챙겨야 할 입장이라면 편치 못한 것도 사실이다. 부모님이 선호하는 선물 1위가 현금이란다. 그래도 고향 부모님이 학수고대하는 것은 선물이나 용돈이 아니라 먼 길 마다않고 달려온 자식들이 아닐까.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스승의 날이다. 이날 재량휴업을 하거나 선물을 금지한 학교가 많다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암묵적으로 5월을 피해 4월이나 6월에 선물하는 학부모도 많다고 한다. 스승의 날을 학년이 끝나는 2월로
빗속에 관을 실은 마차가 공동묘지로 향한다. 천으로 싼 시신이 구덩이로 던져진다. 36세에 요절한 모차르트를 그린 영화 ‘아마데우스’의 한 장면이다. 그의 묘는 끝내 찾지 못했다. 빈의 모차르트 묘는 표지석과 그를 애도하는 천사상만 세워져 있다. ‘OK목장의 결투’ 무대였던 미국 툼스톤에는 부트힐(Boot Hill) 묘지가 있다. 무법자들이 죽으면 부츠도 안 벗기고 묻어 붙여진 이름이다. 툼스톤이란 지명도 금광을 찾아나선 사람들이 묘비(tombstone)만 남긴다는 데서 유래했다. 성서에도 나오듯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시체를 묻는 매장의 시초는 네안데르탈인이었다. 유해 3구가 똑같은 자세로 묻혀 있는 5만년 전 유적이 스페인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매장은 내세신앙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이집트 피라미드 중 가장 큰 쿠푸왕 피라미드는 남쪽 환기구가 오시리스신(저승신)을 상징하는 시리우스를, 북쪽 환기구는 당시 북극성을 향했다. 죽은 파라오가 환생과 영생으로 가는 길을 상징한다. 중국의 매장 이전 장례법은 한자로 알 수 있다. 장사 지낸다는 뜻의 ‘葬(장)’은 시신(死)을 땅위(土)에 놓고 풀(艸)을 덮어놓은 형상이다. 우리나라 서해안 일부 섬에서 행해졌던 풍장(風葬)과 유사하다. 반면 유목민의 장례법은 자연환경의 산물이다. 초원을 떠도니 묘지가 무의미했고 나무가 없어 화장도 어려웠다. 티베트의 조장(鳥葬)도 바위산이 대부분인 고원지대에선 땅을 팔 수가 없었던 탓이다. 몽골족은 이동 중에 일행이 죽으면 낙타 새끼와 함께 묻었다. 모성애가 강한 낙타가 세월이 지나도 새끼가 묻힌 곳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육신의 부활을 믿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에선
“난 하나도 없으니 누군가는 18개를 가졌겠군.” 얼마 전 ‘명품 1인당 평균 9개 보유’라는 기사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다. 심지어 ‘대한민국 1%, 수입명품 100개 이상’이란 기사도 있었다. 제목만 보면 명품 붐을 개탄하거나 박탈감을 느끼기 딱 좋다. 하지만 이는 통계 오독(誤讀)일 뿐이다. 소비자원의 이 조사는 무작위로 추출한 1000명을 조사한 게 아니다. 명품을 구입한 1000명에게, 그것도 온라인으로 물어봤다. 명품 1~3개 보유자가 37.9%, 4~5개가 22.4%, 6~10개가 21.9%로 전체의 82.2%가 10개 이하였다. 50개 이상 보유자 3.4%(34명)가 평균치를 대폭 올린 것이다. 응답자의 중앙값(median)은 평균의 절반인 4.5개쯤이다. 특히 100개를 가졌다는 0.9%(9명)의 응답이 신뢰할 만한지, 이들을 대한민국 1%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의도대로 각색, 입맛대로 해석 통계의 홍수 시대다. 너도나도 통계를 내고, 수시로 인용한다. 하지만 누가(조사주체), 누구를(모집단과 표본), 어떻게(기법), 왜(의도) 조사했는지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다. 통계 해석도 이념지향이나 활용목적에 따라 제각각이다. 그러니 통계가 새빨간 거짓말과 같은 부류로 취급되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대체휴일제에 관한 설문조사부터 그렇다. 문화관광연구원 조사에선 찬성이 76.7%인데, 경영자총협회 조사는 반대가 85.3%다. 대체휴일제를 추진하는 문화체육관광부를 의식한 연구원은 휴일이 많을수록 좋은 직장인 1000명에게 물어봤다. 반면 경총은 휴일이 반갑지 않은 자영업자나 임시·일용직 1140명을 조사했다. 영호남에서 지지 정당을 조사한 꼴이다. 통계를 분식한 듯한 경우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2005년 담뱃값을 500원 인상한 뒤 이듬해 남성 흡연
증기기관 하면 제임스 와트를 떠올리지만 최초의 발명자는 따로 있다. 프랑스 발명가 드니 파팽(1647~1712)이다. 파팽은 1675년 영국으로 건너가 ‘보일의 법칙(기체의 압력과 부피는 반비례)’을 발견한 로버트 보일의 조수가 됐다. 그는 화약을 이용한 진공 실린더 대신 물의 부피가 1300배 이상 팽창하는 수증기의 힘에 주목했다. 파팽은 1679년 증기가 새지 않도록 나사못 2개로 금속용기를 밀폐한 압력찜통을 고안했다. 뚜껑을 열 때 고온의 증기 위험은 작은 구멍을 내 해결했다. 이것이 압력솥의 원조인 파팽의 ‘스팀 다이제스터(증기 찜통)’다. 이 찜통을 응용해 1695년 증기 양수장치를 발명한 것이 증기기관의 시초다. 압력찜통은 아무리 질긴 고기도 부드럽게 익혀줘 요리법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압력솥의 원리는 내부 압력을 평상시 대기압(1기압)보다 높여 짧은 시간 내에 더 많은 열을 가하는 것이다. 보통 음식은 대기압에서 섭씨 100도면 조리되는데 압력을 2기압으로 높이면 물이 120도에서 끓게 돼 더 빨리 밥이 익는다. 반대로 기압이 낮은 산에선 100도 아래에서 물이 끓고 온도가 더 올라가지 않아 밥이 설익는다. 파팽의 찜통은 2차 세계대전 후 조리시간과 연료 절약을 위한 가정용 압력찜기로 재탄생해 주부들에게 만능조리기로 각광받게 됐다. 우리가 쓰는 압력솥은 유럽의 압력찜기를 밥솥으로 개량한 것이다. 실제로 압력솥은 일반 솥이나 전기밥솥보다 비용과 취사시간을 3분의 1 이하로 줄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전통 가마솥이 압력솥의 원리를 빼닮았다는 점이다. 무거운 뚜껑이 가마솥 안의 압력을 높여 충분히 뜸을 들이고, 둥글고 두꺼운 바닥과 얇은 가장자리는 밥이 고루
1980~1990년대 홍콩 영화계는 이른바 ‘4대 천왕(天王)’의 시대였다. 류더화(劉德華), 장쉐여우(張學友), 궈푸청(郭富城), 리밍(黎明)이 그들이다. 이들은 외모와 연기는 물론 노래까지 출중했다. 한류가 뜨면서 장동건 송승헌 이병헌 원빈이 ‘한류 4대 천왕’으로 불렸다.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는 ‘트로트 4대 천왕’으로 장기집권 중이다. 중국에선 실력이 뛰어나고 영향력이 큰 인물들을 흔히 4대 천왕이라고 부른다. 4(四)가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아 기피하지만 4대 천왕은 예외다. 인도 불교에서 유래한 4대 천왕은 불법(佛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는 수호신이기 때문이다. 4대 천왕은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수미산(須彌山) 허리에서 동서남북 4개 문을 지킨다. 동쪽의 지국(持國)천왕, 남쪽의 증장(增長)천왕, 서쪽의 광목(廣目)천왕, 북쪽의 다문(多聞)천왕이 있다. 손에 든 물건(持物)과 얼굴 색깔로 구분된다. 칼을 든 지국천왕은 기쁨과 봄을 관장하며 푸른색을, 용과 여의주를 든 증장천왕은 사랑과 여름을 주관하며 붉은색을 띤다. 흰 얼굴의 광목천왕은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분노와 가을을, 검은색 다문천왕은 비파를 들고 즐거움과 겨울을 각각 상징한다. 국내 사찰에도 예부터 초입의 일주문과 본당 사이에 사천왕문을 세우고 그 안에 사천왕상을 모셨다. 눈을 부릅뜨고 험상궂은 얼굴을 한 4천왕은 부처, 불법, 승려, 불자를 지킨다. 외부의 악한 기운이나 침입자를 막아 청정도량을 유지한다는 의미다. 숫자 4는 완성, 안정감 등의 느낌을 줘 고대부터 중요한 숫자로 취급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를 구성하는 4원소로 흙, 물, 공기, 불을 꼽았다. 성경은 4대 복음이요, 요한계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축이 돼지다. 돼지는 약 1만년 전 신석기 농업혁명기에 중국과 중근동에서 멧돼지를 가축화 한 것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돼지는 1200여종, 9억6300여만마리(2011년)가 사육되고 있다. 식육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며 어느 부위 하나 버릴 게 없다. 그래서인지 돼지를 뜻하는 한자만도 20가지가 넘는다. 상형문자인 시(豕)는 제사용 돼지이며 한자 부수로도 쓰인다. 집 가(家)도 豕에서 유래했다. 옛날에는 돼지를 집에서 길렀기 때문이다. 가축으로서 돼지는 돈(豚)인데, 복어가 하돈(河豚), 돌고래는 해돈(海豚)인 게 흥미롭다. 저(猪)는 주로 암퇘지나 멧돼지, 해(亥)는 12간지의 돼지다.영어도 세분화돼 있다. 돼지는 통상 pig인데 거세한 수퇘지는 hog, 거세 안 한 수퇘지는 boar, 암퇘지는 sow라고 한다. 집합명사로는 swine이어서 돼지독감을 swine flu로 부른다.돼지꿈에서 보듯 돼지는 다복의 상징이다. 수태 4개월 만에 새끼 8~12마리를 낳는 왕성한 번식력 덕이다. 돈(豚)이 돈과 발음이 같아서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불결, 탐욕, 미련함 등 불명예의 대명사 또한 돼지다. 흥청망청했던 남유럽 국가들엔 이니셜을 딴 ‘PIGS’란 별명이 안성맞춤이다.돼지가 불결해 보이는 것은 땀샘이 없어 진창에 자주 뒹구는 탓이다. 그러나 배설도 정해진 곳에서만 할 만큼 의외로 깔끔하다. 이슬람과 유대교에서 돼지고기를 금하지만 고온건조한 사막기후가 사육에 부적합했던 배경도 있다. 돼지는 게걸스러워도 모성애가 강하다. 어미와 새끼를 떼놓지 않으면 어미가 새끼부터 먹이느라 잘 먹지 않을 정도다. 후각은 개보다 뛰어나 프랑스에서는 송로버섯을 찾을 때 돼지를 이용한다.조지 오
널리 알리는 게 직업인 기자가 알고도 안 쓰는 경우가 있다. 바로 엠바고(embargo·보도유예)와 오프더레코드(off the record·비보도)다. 법적 강제는 아니지만 신사협정이자 불문율이다. 기자들은 치열한 특종 경쟁 속에서도 국익과 공익을 생각하고, 장사 한번 하고 끝낼 게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엠바고를 준수한다.엠바고가 언론 관행이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때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연합군은 엠바고를 걸고 언론에 상륙일시와 지점을 미리 브리핑했다. 어떤 기자도 미리 보도하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특종 욕심을 냈다면 사상자가 엄청나게 불어나고 전쟁 양상도 달라졌을 것이다.하지만 1945년 5월 독일군의 항복문서 서명 때는 달랐다. 현장에 있던 기자 17명 중 AP통신의 에드워드 케네디가 기사를 타전하자 타사 기자들은 그와 AP를 배신자라고 맹비난했다. 결국 AP는 케네디를 해고했다. 67년 만인 작년에야 AP는 케네디의 딸에게 공식 사과했다. 상륙작전과 종전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스페인어 ‘embargar’에서 나온 엠바고는 본래 선박의 억류나 출항금지를 뜻한다. 미국의 쿠바 봉쇄가 바로 엠바고다. 미디어 용어로는 일정시점까지 뉴스 보도를 늦추는 뜻으로 쓰인다. 엠바고의 목적은 대략 5가지다. 국가안전·공익용 엠바고(인명 보호 등), 보충취재용 엠바고(전문성 높은 뉴스), 조건부 엠바고(사건 발생 이후 보도), 관례적 엠바고(협정·회담 등), 발표자료 엠바고 등이다. 2003년 추수감사절에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방문은 일정 종료까지 엠바고였다. 누군가 미리 보도했다면 부시가 안 갔을 테니 자동 오보가 됐을 것이다. 이렇듯 엠바고는 종종 취재원과 언론 간 죄수의 딜레마 문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또 다른 별명은 ‘티나(Tina)’였다. “다른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의 약자다. 대처가 11년 총리 재임 중 국가의 근본적 수술을 추진할 때마다 단호히 외쳤던 말이다. 연설문 초안에 ‘아마(maybe)’라는 단어가 있으면 여지없이 지웠던 일화도 있다. 사실 ‘철의 여인’도 소련이 대처를 조롱한 것인데, 되레 “그말 좋네”라며 반겼다고 한다.대처는 1925년 중부 소도시 그랜섬에서 식료품점을 하는 부모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영화 ‘철의 여인’에서 보듯 평생 ‘식료품집 딸(grocery daughter)’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주위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대처를 ‘한번도 소녀였던 적이 없는 소녀’로 기억한다.(박지향 ‘대처스타일’) ‘남에게 기대지 말라’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처는 훗날 개인의 문제를 모두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람들에 맞서 “사회(society)? 그런 건 없습니다. 개인과 가정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대처 집권 이전 1970년대 영국은 이른바 영국병(病)에 찌든 의욕상실 환자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원조 복지국가가 경제난과 만성화된 파업, 고실업, 무거운 세금, 겹겹이 규제에 치여 속절없이 추락했다. 특히 1978년 ‘불만의 겨울’에는 공공노조 파업으로 거리마다 쓰레기가 쌓이고 죽은 사람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에 넌더리가 난 국민은 첫 여성 총리와 보수당을 선택했다.1979년 총리가 된 대처는 감세와 민영화, 노조와의 전쟁을 한치 양보없이 밀고 나갔다. 특히 ‘아서왕’ 아서 스카길이 이끄는 석탄노조와 1년여 대치 끝에 항복을 받아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들고 “악법도 법”이라고 말했다. “내가 지금 감옥을 탈출하면 그동안 내가 말해왔던 것이 뭐가 되느냐”는 말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친(親)알렉산더파 숙청 바람 속에 사형을 맞게 됐다. 하지만 그는 도망쳤다. “아테네 시민들에게 두 번이나 철학에 죄를 짓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을 남기고.누구나 물러날 때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대개는 아쉬움이나 회한이지만 자기합리화나 남은 자들에 대한 경고도 적지 않다.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은 퇴임사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란 호칭보다 위에 있는 유일한 호칭, 즉 시민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통령의 짐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그런 자세가 ‘사상 최고의 전직 대통령’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맥아더의 “노병은 죽지 않는다. 잠시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은 명언이지만, 자신을 해임한 대통령에 대한 독설로도 들린다.짧아서 더 기억에 남는 퇴임사도 있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대통령 직무를 중단한다. 오늘 정오부터”가 전부다. 묘비명도 ‘샤를 드골, 1890~0000’으로 해달라고 유언장에 남겼다. 체코의 하벨 대통령도 울림이 있었다. “제가 실망시킨 국민, 저를 미워했던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용서하십시오.”우리나라에서도 퇴임사나 사퇴의 변이 종종 화제가 된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금감위원장에서 물러날 당시 ‘눈 덮인 산길 함부로 밟지 마라’는 서산대사의 선시를 인용했다. 자화자찬이란 비판도 받았다. “소문이 진실보다 더 그럴 듯하다”는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의 사퇴의 변은 안 하느니만 못했다.불명예 퇴진의 변은 주로 ‘심려를 끼쳐 죄송’이다.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은(중략) 내 아버지 레파토리, 그중에 18번이기 때문에.” 가수 강산에의 노래 ‘라구요’의 가사 일부다. 월남한 실향민 아버지가 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부르던 18번, 즉 애창곡이 ‘눈물젖은 두만강’이었다는 노래다. 그런데 애창곡을 왜 1번, 10번도 아닌 18번이라고 부를까.자주 부르는 노래가 18번이 된 것은 일본 의 전통가극 가부키(歌舞伎)에서 유래했다. 에도시대에 등장한 가부키의 원조 배우인 이치가와 단주로의 7대손이 가부키의 막간에 공연하는 풍자소극 중 재미있는 것을 18가지로 정리했다. 이를 ‘교겐(狂言) 18번’이라고 부르는데, 각기 나무상자에 담아 후손에 전했다고 한다.그래서 일본말로 18번은 ‘주하치방’이지만 상자를 뜻하는 ‘오하코(おはこ)’로도 읽힌다. 뛰어난 재능을 가리킬 때 오하코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이런 18번이 자주 부르는 노래, 자신있는 특기 등의 뜻으로 전용돼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도 널리 퍼지게 됐다.그래서인지 일본에선 대개 뛰어난 사람에게 18이란 숫자를 붙여준다. 중국의 ‘무예 18반’은 검 활 창 등 18가지 무예를 가리키는데, 일본에 건너와선 전설의 무사 미야모토 무사시처럼 무예의 모든 것을 통달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됐다. 또 일본 프로야구에서 18번은 에이스 투수에게만 부여되는 등번호다. 마쓰자카를 비롯해 다르빗슈, 이라부, 와쿠이 등 최상급 투수들의 등번호가 18번이었다.반면 선동열은 해태타이거즈 입단 때 11번을 달고 싶었지만 대선배인 김성한의 등번호여서 대신 18번을 달아야 했다. 하지만 선동열이 국보급 투수로 성장하며 인기를 모으자 다른 팀들도 앞다퉈 에이스에게 18번을 달아줬다고
바누아투 코스타리카 파나마 부탄 방글라데시의 공통점은? 행복지수 1위라는 나라들이다. 행복지수 상위권에는 쿠바 베네수엘라 베트남 등 중남미와 동남아 국가가 대부분이다. 대체로 열대·아열대 지역의 저개발국이다. 반면 미국의 행복지수가 150위라거나, 소득 5만달러인 싱가포르가 꼴찌라는 조사도 있다. 소위 ‘행복은 소득순이 아니다’는 주장이 나오는 근거가 된다.오늘은 유엔이 정한 제1회 세계 행복의 날이다. 국민행복이 화두인 요즘 국내 언론에는 행복지수 관련 기사가 넘쳐난다. 카인즈(기사통합검색)에서 검색해보면 3만7900여건의 기사가 뜬다. 최근 6개월 새 보도된 행복지수만도 줄잡아 6~7종이다. 유엔 세계행복보고서, 영국 신경제재단(NEF)의 행복지수(HPI), 미국 갤럽의 행복도 설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민 삶의 질 지수(BLI) 등이다. 기준 판이한 행복지수 홍수 한국의 행복도 순위는 유엔 조사에서 156개국 중 56위, 신경제재단에선 63위이고 갤럽에선 97위로 처진다. OECD 조사로는 36개국 중 24위, 보건사회연구원은 32위로 매겼다. 행복감이 높은 편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국가별 행복순위를 뜯어보면 당혹스러워진다. 예컨대 신경제재단의 행복지수 톱10은 중남미가 대부분인데, 유엔의 톱10은 덴마크 핀란드 등 선진국 일색이다. 희한한 것은 신경제재단에서 11위인 방글라데시가 유엔에선 114위로, 2위인 베트남은 65위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반면 유엔에서 17위인 아랍에미리트(UAE)는 신경제재단에선 130위에 불과하다. 갤럽 조사는 더 황당하다. 싱가포르는 148개국 중 148위다. 그런데 갤럽이 2010년 148개국 성인 35만명을 조사한 이민가고 싶은 나라(인구대비 잠재적 순이민
키프로스(Cyprus)는 터키 남쪽 65㎞에 있는 인구 80만명의 섬나라다. 지중해에서 시칠리아 샤르데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라지만 면적은 경기도 정도다. 하지만 그리스신화의 주무대 가운데 하나였고, 미케네 문명의 구리(銅) 산지로 유명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구리(copper)의 어원(Cuprum)도 키프로스에서 유래했다. 키프로스를 배경으로 한 신화 스토리는 무궁무진하다. 대표적인 게 미와 애욕의 여신 아프로디테(로마신화의 비너스)다. 흰 거품(아프로스)이 키프로스섬 서쪽 파포스 해안에 닿아 여신으로 탄생한 게 아프로디테다. 보티첼리의 걸작 ‘비너스의 탄생’은 바로 이 장면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키프로스 여인들은 나그네를 박대한 죄로 몸을 팔도록 아프로디테의 저주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로 ‘Cyprian’은 키프로스섬 사람을 뜻하지만 음란한 여자, 매춘부란 의미도 된다. 금욕을 강조한 스토아학파의 창시자 제논이 키프로스 출신인 게 이채롭다.교육학 용어인 ‘피그말리온 효과’도 키프로스왕 피그말리온에서 나왔다. 여성 혐오증을 가진 피그말리온은 상아로 여인상을 만들어 갈라테이아(우윳빛)라고 이름 붙이고 정성껏 사랑했다. 이를 가상히 여긴 아프로디테가 사람으로 만들어줘 결혼했다고 한다.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는 얘기다.신들의 섬이자 장미가 많아 ‘향기의 고장’으로도 불리는 키프로스지만 역사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중동과 터키를 겨눈 비수처럼 생긴 군사요충지이자 교통의 중심지였던 탓이다. 기원전 9세기 이래 그리스, 페니키아, 아시리아, 로마, 비잔틴제국에 이어 7~10세기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12세기 십자군 기사단이 둥지를 틀었고 르네상스기
불을 신성시하는 경향은 동서양이 공통이다.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제우스의 불을 훔쳐다준 죄로 코카서스산에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을 받는다. 아프리카 도곤족에도 비슷한 신화가 있다. 한 대장장이가 태양의 한 조각을 천신에게서 훔쳐냈다는 것이다.조로아스터교는 불 자체가 숭배 대상이다. 불을 뜻하는 아타르는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의 아들로 간주된다. 힌두교에서 불의 신 아그니는 인드라(천계의 지배자), 바루나(하늘과 물의 신)와 더불어 최고신으로 꼽힌다. 지난해 인도가 개발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아그니로 명명한 게 흥미롭다. 불을 숭상하는 이유는 불이 가진 생성력과 정화력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과 인도의 신화에선 불을 남성 생식력의 근원으로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화로나 부엌아궁이를 집안의 상징으로 여겼다. 1970년대만 해도 이사갈 때 반드시 챙기는 게 불 피운 연탄화덕이었을 정도다. 정월대보름 쥐불놀이는 잡귀와 액을 쫓고 1년간 무탈하게 해달라는 민간신앙이 뿌리다.불은 오늘날 인류 문명을 탄생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로 음식을 익혀 먹게 되면서 턱과 치아가 작아진 대신 두뇌가 커져 현생 인류가 등장한 계기가 됐다. 불로 금속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 인류는 청동기, 철기 문명을 일궈냈다.하지만 불은 양날의 칼이다. 잘 쓰면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하지만 잘못 쓰면 모든 것을 파괴하는 화마(火魔)로 돌변한다. 2003년 192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지하철 참사, 2008년 국보 1호 숭례문 전소 등이 모두 방화에서 비롯됐다.불이 주는 충격 때문인지 방화는 소설 소재로도 종종 활용된다. 김동인의 ‘광염소나타’(1930년)에
남미 베네수엘라는 지구 반대편의 먼 나라이지만 낯설지만은 않다. 우선 미인이 많기로 유명하다. 미스 유니버스 역대 우승자 중 미국(8명) 다음인 6명을 배출했을 정도다. 지역마다 수시로 미인대회가 열리고, 미인대회 출전자를 양성하는 미인사관학교가 성업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가장 유명했던 베네수엘라 사람은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다. 차베스는 2006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어제 이곳에 악마가 왔다 갔는지 연단에서 아직도 유황 냄새가 난다”고 일갈했다. 전날 연설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말이다. 차베스는 부시를 향해 비겁자 살인자 술주정뱅이 등 온갖 독설을 퍼붓는 스토커였다. 오바마 대통령도 차베스로부터 사기꾼 소리를 들었다.중남미 반미좌파 동맹의 맹주였던 차베스에겐 혁명가와 포퓰리스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999년 집권한 뒤 자본주의는 죽었다며 석유산업 국유화, 외국기업 몰수에 나섰다. 주변 17개국에 석유를 싸게 주는 ‘페트로 카리브’ 프로그램으로 좌파이념 전파에 주력했다. 또한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빈곤층 우대정책으로, 집권 14년 동안 빈곤율을 50%에서 27%로 떨어뜨린 성과도 올렸다. 빈곤층의 절대 지지는 군부 쿠데타와 국민소환 투표에도 살아남는 원동력이 됐다.세계 1위 매장량을 자랑하는 석유는 차베스에겐 화수분이었지만 국민에겐 독이 됐다. 일찍이 1970년대 베네수엘라 석유장관은 “‘악마의 배설물’이 우리를 파멸시킬 것”이라고 예언했다. 땀흘려 일하기보다는 오일머니로 정부가 공짜로 주는 혜택에 안주하게 만들 것이란 경고였다. 그 결과가 연평균 23%에 달하는 인플레이션, 높은 범죄율과 부패다. 원유
서울 최북단 노원구가 한때 언론의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강남발 집값 상승세가 북상한 끝에 2007~2008년 노원구 일대 아파트값이 많이 뛰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온 신조어가 ‘비발디 4계’와 ‘노도강’이다. 4계는 노원구 상계·중계·하계·월계동, 노도강은 노원·도봉·강북구를 가리킨다. 하지만 노도강은 얼마 전 언론에 다시 등장했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전셋값이 낮은 순으로 맨 밑이라는 내용으로.노원구는 동 이름에 하나같이 ‘시내 계(溪)’자가 들어가 눈길을 끈다. 노원구와 도봉구의 경계가 되는 중랑천(옛 한천)의 위쪽을 상계리, 중간을 중계리, 아래쪽을 하계리라고 칭했던 데서 연유한 것이다. 월계동은 중랑천과 우이천에 둘러싸인 반달 모양 지형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서울시에 따르면 노원구 인구는 60만829명으로 송파구(68만150명)에 이어 두번째다. 인구는 많아도 구(區)의 역사는 길지 않다. 본래 양주군 노원면이 1963년 서울 성북구로 편입됐고 1973년 도봉구로 분리됐다. 1988년 상계신도시가 완공되면서 노원구가 신설돼 오늘에 이른다. 80년대 중반만 해도 노원구는 공릉동 주택가를 제외하곤 논밭과 비닐하우스가 즐비했다. 예부터 갈대(蘆)가 많아 노원이고, 말 방목지여서 마들평야라고 불렸다. 이 곳엔 조선시대 관리에게 마필과 숙식을 제공하던 역원(驛院)이 있었다고 한다.노원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교육열이다. 서민·중산층 베드타운이지만 교육열만은 서울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특히 학교와 학원이 정말 많다. 초등학교가 42개, 중학교가 26개, 고등학교가 25개나 된다. 대학교는 광운대 서울여대 등 5개이고 육사도 있다. 약 300개 학원이 밀집한 중계동 은행사거
링컨의 평생 정적인 스티븐 더글러스가 청중 앞에서 링컨이 두 얼굴을 가졌다고 비난했다. 링컨이 느릿느릿 답했다. “여러분 판단에 맡깁니다. 만일 제게 다른 얼굴이 있다면 지금 이 얼굴을 하고 있겠습니까?”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은 유머감각도 최상이었다. 밥 돌 전 상원의원은 링컨이 풍자를 경구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평했다. 링컨은 남북전쟁 와중에도 “나는 울면 안 되기 때문에 웃는다”고 말했다고 한다.1860년 대선에서 겨룬 더글러스와는 인연이 아주 깊다. 링컨의 부인 메리 토드의 첫 남자가 바로 더글러스였다. 메리는 진작부터 대통령 부인이 되겠다는 야심 찬 여자였다. 전도양양한 더글러스와 틀어진 뒤 링컨을 만났다. 촌뜨기 변호사 출신과 부유한 가문의 딸은 서로 필요했을지도 모른다.사실 링컨에게는 요절한 첫사랑 앤 러틀리지가 있었다. 앤이 묻힌 묘지에 자신의 심장도 함께 묻었다며 2년간 폐인으로 지냈다. 앤과 결혼했다면 행복했겠지만 대통령은 못 됐을 것이란 게 전기작가들의 평이다.반면 메리는 소크라테스의 악처에 비유될 정도였다. 끝없는 히스테리, 잔소리에다 남편 연봉의 세 배에 달하는 빚을 질 만큼 낭비벽도 심했다. 데일 카네기는 ‘링컨 이야기’에서 “메리는 씀씀이가 넉넉했고, 링컨은 마음이 넉넉했다”고 썼다. 링컨은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상대였던 슈어드를 국무장관에 앉혔다. 오바마가 힐러리를 국무장관에 기용한 것도 이를 벤치마킹한 것이다.‘링컨=노예해방’이지만 그는 노예제 폐지보다 국가분열을 막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렇게만 된다면 노예제 폐지든, 존속이든 상관없다고 말한 적도 있다. 이를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의 ‘새 정부에 바라는 중소유통정책’ 심포지엄에서다. 주제발표에 나선 A교수는 유통대기업의 확장을 막기 위해 기존 사업(홈쇼핑 재승인) 철회, 신규사업(쇼핑몰 모바일 등) 규제, 기업분할 명령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소유구조와 경영에도 메스를 가해야 한다고 목청을 돋웠다.이쯤 돼야 효과가 있다는 논리다. A교수의 초법적 발상에 좌중의 중소상공인조차 놀란 표정들이었다.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대학생들에게 강의할 때도 골목상권이 왜 어려운지 물어보면 한결같이 대기업의 탐욕을 이유로 꼽는다. 다시 물어본다. 이마트가 아닌 재래시장에 가는지, 파리바게뜨가 아닌 동네빵집에서 빵을 사는지, 편의점이 아닌 구멍가게를 들르는지, 온라인서점이 아닌 동네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지…. 과밀경쟁에 자영업 ‘동반몰락’ 한두 명쯤 손을 든다. 하지만 대다수는 침묵이다. 물론 대학생들은 순수한 마음이다. 사회정의, 공평 등 ‘정치적 올바름’은 소신을 넘어 신념에 가깝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골목상점에 가지 않는다. 불편하고, 친절하지 않고, 다양하지 않고, 포인트 적립이 안 되고, 싸지도 않고…. 내 돈 내고 사는데 그런 대접받기 싫다고 한다. 유감스럽지만 차는 한 대도 안 사주면서 쌍용차 국정조사 요구하는 국회의원들이 오버랩된다. 요즘 자영업은 참 어렵다. 손님은 줄고 경쟁자는 너무 많다. 서울 변두리의 지하철 OO역 주변 먹자골목엔 반경 30m 안에 치킨집만 7개다. 둘둘치킨, 폼스치킨, 훌랄라치킨, 치킨678, 뚜띠치킨, 핫썬치킨, 치킨뱅이가 줄지어 있다. 불닭, 닭갈비집도 있다. 어
21세기는 온라인 금융사기의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가 피싱(phishing), 파밍(pharming) 등 신종 금융사기와 전쟁 중이다. 미국에선 해마다 200만~300만명이 피싱 사기로 수억달러의 피해를 본다고 한다. 그래서 이 둘을 가리켜 ‘사악한 쌍둥이(evil twins)’ ‘치명적인 이인조(deadly duo)’라고 부를 정도다.피싱은 1987년 아메리카온라인(AOL)에서 처음 발생했으니 더 이상 신종도 아니다. 피싱의 어원은 낚시(fishing)인데 위장수법이 정교해(sophisticated) 철자를 ‘phishing’으로 바꿨다고 한다. ‘ph’와 ‘f’는 발음이 같다. 농사(farming)에서 유래한 파밍 역시 ‘pharming’으로 적는다.피싱 사기범들은 대개 은행 공공기관 등을 발신자로 위장해 받는 사람이 꼭 열어볼 만한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다. 수신자가 무심코 이메일을 열어 비밀번호 인증번호 등을 입력하면 사기범에게 전송돼 예금이나 개인정보를 빼가는 식이다. 전화로 개인정보를 빼내면 보이스피싱, 휴대폰 문자메시지(SMS)를 통한 피싱은 스미싱(smishing)이라고 부른다.2005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파밍은 인터넷뱅킹을 무대로 피싱을 더욱 고도화한 사기수법이다. 피싱처럼 위장 이메일을 보내지 않고 아예 은행 사이트를 중간에 탈취(도메인 하이재킹)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파밍을 ‘미끼 없는 피싱(phishing without bait)’이라고도 한다.파밍은 대개 무료 파일공유(영화, MP3 등) 사이트에 접속한 이용자의 PC에 씨 뿌리듯 트로이목마 같은 악성코드를 미리 심어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면 이용자가 은행 사이트 주소를 정확히 입력해도 가짜 사이트로 연결된다. 여기에 무심코 비밀번호 보안카드번호 등을 노출했다간 예금을 한푼 남김없이 털리게 된
기자를 구독하려면
로그인하세요.
오형규 기자를 더 이상
구독하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