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 탓일까. 엊그제 이건희 삼성 회장 빈소에서 마주한 이재용 부회장의 눈빛에는 만감이 담긴 듯했다. ‘아버지의 부재(不在)’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겪어본 이들은 잘 안다. 이 부회장은 부친보다 키가 20㎝나 크다. 그러나 세상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존재를 키로 느끼지 않는다. 삶의 궤적, 존재 자체가 아버지의 진정한 키다. 이 부회장에게 부친의 존재는 얼마나 컸을까. 1993년 “마...
리들리 스콧 감독이 2000년 제작한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등장하는 로마제국의 17대 코모두스 황제는 실존 인물이고, 막시무스 장군은 실제 인물을 토대로 한 가공 인물이다. 코모두스는 오현제(五賢帝)의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로, 부친이 황제일 때 태어나 다음 황제가 된 최초 인물이다. 그전까지는 주로 조카, 양자, 부하 등이 황위를 이었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쓴 스토아학파(금욕주의)의 철학자이기도 해서 ‘철인황제’란 별칭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 코모두스는 야만적이고 잔혹한 황제로 로마 역사에 기록되었다. 코모두스는 어려서부터 공부보다 검투와 격투기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그는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쓴 헤라클레스로 분장하고 검투사로 나서기도 했다. ‘빵과 서커스’라는 번영의 역설지중해 최강국인 로마제국은 왜 급전직하로 추락했을까? 어리석고 힘만 센 황제 한 명이 천년 제국을 망칠 수 있을까?로마가 급성장한 전반기에는 검약과 강건함,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똘똘 뭉친 나라였다. 로마는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바다로 진출하던 BC 8세기에 이탈리아반도 중부의 작은 도시 국가로 뒤늦게 출발했지만, 카르타고와 세 차례나 포에니전쟁을 치르며 집정관과 귀족 자제 등이 수십 명이나 전사할 정도로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당연시된 나라였다.하지만 안정기에 접어들자 로마는 ‘번영의 역설’에 직면했다. 번영의 끝은 곧 쇠퇴의 시작이었다. 본래 로마인은 소식을 했지만, 점점 과식과 폭식을 즐겼다. 또 검투사들의 잔혹한 싸움에 열광했다. 곳곳에 들어선 공중목욕탕, 폼페이유적에서 발견된 홍등가도
‘초콜릿 복근’이 선명한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들과 여심을 흔드는 카리스마의 레오니다스 왕은 프랭크 밀러의 동명 그래픽 노블을 영화화한 잭 스나이더 감독의 2007년 영화 ‘300’의 상징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사들이 온다’란 광고 카피로 유명한 이 영화는 BC 480년 그리스-페르시아전쟁의 격전지였던 테르모필레전투를 그린 작품이다.고대 페르시아 전성기의 왕 크세르크세스 1세는 그리스에 패퇴해 죽은 다리우스 1세의 복수를 위해 30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 원정에 나섰다. 페르시아 대군은 그리스계 식민 도시를 제압한 뒤 헬레스폰투스해협(현재의 다르다넬스해협)을 건너 그리스로 들이닥쳤다. 이에 맞서 그리스 연합군의 1차 방어선으로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과 300명의 용사들이 테르모필레 협곡에 포진했다.영화에서 스파르타 전사들이 불굴의 용기로 방어하다 전멸하고 페르시아군은 후퇴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다르다. 선봉에 선 스파르타의 중무장 보병 300명 외에 다른 폴리스들이 보내온 4000명의 병사가 후방을 맡았다. 이들은 페르시아군을 사흘간 저지했지만, 그리스의 배신자가 페르시아군에 협곡을 우회하는 샛길을 알려줘 포위되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자 레오니다스 왕은 떠날 병사들은 떠나게 하고 스파르타 300명, 테스피아이와 테베의 병사 등 1400명으로 맞섰다. 그러나 급습을 당한 후방의 테베 병사 400명이 먼저 항복하고 말았다. 나머지 병사들은 앞뒤로 몰려든 페르시아 대군에 맞서 싸우다 전원 전사했다.테르모필레 협곡을 통과하면서 군사 2만 명을 잃은 페르시아군은 평원을 지나 아테네에 입성했다. 하지만 아테네의 지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마냥 인구가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이런 문제에 일찌감치 주목했다. 그는 성공회 성직자 출신으로 케임브리지대를 우등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그가 1798년 《인구론》을 발표하기 직전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에서는 전쟁 작황부진 식량 폭동 등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18세기 말에 산업혁명으로 팽배하던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은 《인구론》을 발표했다.맬서스는 인간의 강한 성욕 때문에 인구 증가를 막기 어렵다고 보았다. 인구는 25년마다 두 배로 증가하는 반면, 식량 생산은 천천히 증가해 파국을 맞는다는 것이다. 식량이 늘면 인구가 늘어 노동력이 증가하지만 곧 인구 포화로 임금이 떨어지고 식량이 비싸진다. 임금이 싸지면 지주들은 농업 노동자를 더 고용하게 되어 다시 식량 생산이 늘지만 ‘먹는 입’이 더 빨리 늘어 또 식량 부족에 직면한다. 이런 악순환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을 ‘맬서스 함정’이라고 한다. 생산성 향상 속도가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소득이 정체되고,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맬서스 함정맬서스 함정은 생산을 토지에 의존했던 산업혁명 이전에는 일리 있는 분석이었다. 14세기 중반에 페스트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줄었을 때 임금이 크게 오른 것이나, 16세기 이후에 인구가 늘면서 임금이 떨어진 것과 같은 사례가 즐비했기 때문이다.맬서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인구가 곧 부로 간주되던 농경사회에서는 다산이 미덕이었다. 경제 성장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설사 성장한다고 해도 그것은 인구 증가에 의한 것이었을 뿐 지속 가능하지도 않았다.
‘요리에 백종원이 있다면 주식에는 존 리가 있다.’ 백종원 대표가 누구나 요리할 수 있음을 알려줬다면,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주식 투자로 부자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웠다는 얘기다. 20~30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선 ‘존 리 어록’이 복음처럼 회자되고, 그를 녹두장군 전봉준에게 빗대 ‘존봉준’으로 부른다. 올 상반기 신규 증권계좌 60% 이상이 2030 소유고,...
1872년 7월 9일, 일본 요코하마항에 페루 선적의 마리아루즈호가 기항했다. 마카오를 출발해 페루로 가던 중 폭풍을 만나 수리를 위해 입항한 것이다. 이튿날 밤, 이 배에서 남자 한 명이 몰래 뛰어내려 옆에 정박 중이던 영국 군함으로 옮겨갔다.영국 해군은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일본 관리에게 넘겼다. 일본 정부는 타국 상선에 간섭할 수 없다며 그를 마리아루즈호 선장에게 인계했다. 뒤이어 또 다른 남자가 탈출해 영국 군함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배에서 엄청난 학대를 당했다고 호소했다. 급기야 영국 공사가 군대를 이끌고 마리아루즈호를 조사했다. 이 배에 실린 화물은 다름 아닌 232명의 청나라인이었다. 그들은 페루의 농장과 계약을 맺고 일하러 가던 저임금 노동자였다. 노예와 다름없던 ‘쿨리’의 참상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나라가 쇠하면 국민이 고생쿨리는 ‘머슴, 일꾼’을 뜻하는 인도 힌디어의 ‘kuli’에서 유래했다. 영어로 ‘coolie’인데, 해외에서 일하는 저임금 계약노동자를 가리킨다. 쿨리는 19세기 후반 중국인이 겪은 고통의 상징과도 같다. 열강의 침탈에 속수무책이었던 청나라 황실은 자국민을 보호할 능력이 없었다. 나라가 쇠하면 국민이 온갖 고초를 겪기 마련이다. 쿨리가 그런 경우였다.청나라는 2차 아편전쟁(1857~1858년)에서 패한 뒤 중국인 노동자의 해외 송출을 공식 허용했다. 승전국인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구 열강의 요구 사항이었다. 쿨리는 주로 가난한 농민 출신이었다. 19세기 들어 중국 인구가 급증했는데 경작지는 잦은 가뭄으로 되레 줄었다. 살기 힘들어진 농민들이 돈벌이를 하러 해외로 나갔다. 지금도 세계 어느
1492년 10월 12일은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은 이탈리아 출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그해 8월 3일, 서쪽으로 가는 인도 항로를 개척하러 떠났다가 신대륙, 정확히는 산살바도르섬을 발견한 날이다. 구대륙에 국한됐던 유럽인의 시야가 신대륙 아메리카로 확장된 결정적인 순간이다.그러나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유럽인이 아닌 데다 1506년 죽을 때까지 자신이 발견한 땅을 인도로 알았다.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1507년 두 차례 항해한 끝에 그 땅이 유럽인들이 몰랐던 신대륙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신대륙은 아메리고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로 불리게 됐다. 하지만 콜럼버스가 남긴 업적 하나는 분명하다.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 유럽인의 세계관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영웅인가, 침략자인가?1492년은 스페인이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 세력을 상대로 800년간 벌인 ‘레콩키스타’를 완성한 해이자,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당도한 해다. 이후 스페인은 약 200년간 유럽 최강국으로 번영을 누렸다. 신대륙에서 쏟아져 들어온 금과 은으로 당시 영국·프랑스가 넘볼 수 없는 부를 축적했다.신대륙 발견은 스페인에는 축복이었으나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대재앙의 시작이었다. 콜럼버스를 비롯해 코르테스, 피사로 등이 잇달아 진출해 원주민을 상대로 학살과 약탈을 자행했다. 아즈텍 마야 잉카 문명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스페인 군대는 총과 대포 이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치명적 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유럽인들이 신대륙에 발을 딛자 천연두 수두 콜레라 페스트 장티푸스 디프테리아 홍역 백일해 등의 질병이 마치 지옥문이 열리듯 쏟아져 들어왔다.
생물 종(種)의 존속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종의 다양성이다. 가축 전염병이 치명적인 것은 개체 수가 아무리 많아도 DNA상 단일 종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조류인플루엔자를 옮기는 야생 철새는 별 탈 없어도 사육되는 수만 마리 닭에겐 위험한 이유다. 인간 사회도 예외일 수 없다. 수많은 이들이 똑같은 사고에 갇히면 전체주의로 치닫게 된다. 그런 점에서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최대 맹점은 176석의 일사불란함이 아닐까 싶다. 역대 여당에는 ...
《데카메론》은 14세기 중반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던 시기에 탄생했다. 1346년 흑해 크림반도 카파에서 시작된 페스트는 불과 5~6년 만에 전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보카치오는 이 공포스러운 상황을 《데카메론》 첫머리에 ‘1348년 3~7월의 5개월간 피렌체에서만 인구의 절반이 넘는 10만 명이 죽어나갔다’고 다소 과장해 썼다.페스트는 본래 중국의 오지, 중앙아시아 등의 풍토병이었다. 페스트균을 지닌 검은 쥐에 기생하는 쥐벼룩을 매개로 전염된다. 14세기 중반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는 1330년대 초, 중국에서 돌기 시작해 서쪽으로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페스트가 발생한 중국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줄어들 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이는 몽골이 지배한 원나라가 몰락한 요인 중 하나다. 동서 교역로로 전파된 페스트당시 유럽에서는 페스트로 3~4명 중 1명꼴로 목숨을 잃었다. 전쟁보다 훨씬 높은 사망률이다. ‘걸리면 죽는다’는 공포심이 수많은 괴담을 생산했다. 대표적인 것이 페스트가 몽골의 생화학 무기였다는 속설이다. 몽골계 킵차크한국 군대가 1347년 흑해 연안 크림반도의 카파를 공격할 때, 페스트 환자의 시신을 투석기로 성안에 던져 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진위 여부가 불분명하다. 흑해 연안 일대에는 이미 페스트가 퍼져 있었고, 카파도 그 영향 아래 있었다. 다만 카파에 있던 상인들이 각 나라로 귀국하면서 더 빨리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대역병이 유럽을 순식간에 집어삼킨 데는 그럴 만한 조건이 구비돼 있었기 때문이다. 세균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페스트가 유행한 원인을 농업과 도시화, 교역 활성화에서
정상적인 경제 전문가라면 지금 우리 경제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본능적으로 느낄 것이다.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이미 심각한 위기국면이었고, 이대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저성장, 고령화, 주력산업 노화, 4차 산업혁명 등 상수(常數)에다 코로나까지 덮쳐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다. 여야의 대표적인 경제통 의원들도 그런 점에선 견해가 일치하는 것 같다. 홍성국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수축사회》에서 우리 사회가 ‘구조적 전환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던 문재인 정부의 ‘태평성대’가 급반전하고 있다. 60~70%까지 치솟았던 지지율은 순식간에 신기루처럼 꺼지고 있다. 외려 코로나 사태 장기화와 기록적인 수해, 부동산 등 정책 난맥상, 잇단 미투, 각종 권력형 비리 의혹 등으로 ‘이보다 더 심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4·15 총선 압승은 불과 넉 달 만에 &ls...
노태우,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87 체제’ 이후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1, 2위를 다툴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물태우’ 소리를 들었고, MB는 ‘2MB(메가바이트)’ ‘쥐박이’ 등 좌파진영의 조롱 대상이었다. 재임 때나 퇴임 후 곤경에 처했을 때나 ‘열혈 빠(추종자)’도, 콘크리트 지지층도 변변히 없었다. 국민에게...
요즘 식자(識者)들이 모이면 “정권이 진짜 20년 갈 것 같다”고들 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20년 집권’ 발언이 괜한 천기누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야당은 존재감 상실, 유력 대선잠룡은 여당 일색, 담론의 장(場)은 좌파 독무대인 데다 재난지원금 같은 도깨비방망이까지 쥐고 있어서다. “대통령 열 분 더 당선시켜야 한다”던 이 대표 바람처럼 50년까지는 몰라도 20년은 너...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집단경험은 깊고 오래 간다. 혹독한 경제 위기, 전쟁, 재난, 전염병 등 모두가 함께 겪은 ‘정신적 외상’이 집단기억으로 각인돼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6·25전쟁과 산업화의 경험이 그랬다. 1980년대 민주화 집단경험은 지금도 훈장이지 않은가. 외환위기가 20년 넘게 집단 트라우마가 됐듯이, 코로나 사태도 최소한 한 세대 동안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집단경험에서 생겨나는 ...
기독교 신자가 아닌 이들이 가장 낯설어하는 성서 속 기적이 ‘오병이어(五餠二魚)’가 아닐까 싶다. 오병이어 기적이 4대 복음서에 모두 등장하는 걸 보면 실제 일화로 보인다. 예수가 갈릴리 언덕에 모인 5000명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음식이 열두 광주리를 가득 채웠다는 내용이다. 기독교인은 이를 예수의 전지전능과 신성(神性)의 증거로 믿는다. 반면 비신자들은 음식이 하늘에서 떨어질 리 없으...
어지럽고 불편하고 혼란스럽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중심인 백악관까지 마틴 루서 킹 서거(1968) 이후 52년 만에 연기에 휩싸인 모습이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온다.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은 것도 황당하지만, 경찰 과잉단속으로 인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이 집단시위, 약탈·방화, 블랙호크 헬기 투입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더 믿기 힘들다. 요즘 미국 언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어가 &...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의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한마디는 올 초 유행어였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넉 달 만에 거의 잊혀지고 대신 사람들은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을 떠올린다. “누구나 다 계획이 있다. 한방 얻어맞기 전까진.” 불과 얼마 전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임을 의심하는 관측은 거의 없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최장기 집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
세계가 K방역을 주목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전화 정상 외교만도 29개국에 이른다. ‘왕따, 혼밥’ 논란이 엊그제 같은데 괄목할 만한 변화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라 밖의 커진 관심을 ‘국뽕’ 맞은 듯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38명의 생명을 앗아간 경기 이천 물류창고 공사현장 화재가 우리 사회의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왜 똑같은 후진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참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한국 사회가 ‘성(城)안 사람들’과 ‘성밖 사람들’로 나뉜다는 사실이다.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공무원과 공기업 대기업 금융회사의 정규직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반면 일용할 수단을 잃은 성밖 사람들은 매일 절벽이다. 새벽 버스·지하철 풍경부터 변했다. 인력시장에 나가는 사람들, 밤새 일 마친 대리기사들, 청소&middo...
평소 당연하던 것이 없거나 못하게 될 때 더 아쉽다. 함께 일하고 웃고 먹고 마시고 즐기던 일상의 소중함을 망가진 뒤에야 뼈저리게 실감한다. 활짝 핀 봄꽃들이 올해 유난히 더 화사해 가슴 시리게 다가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첫 확진자 발생 후 벌써 70일이 흘렀다. 의료진의 사투와 시민들의 성숙한 대처를 세계가 괄목하고 있다. 지치고 힘들고 화가 나도 서로 어깨를 다독이며 “함께 이겨내자!”고 격려한...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존 F 케네디만큼 큰 위기가 잦았던 경우도 드물다. 짧은 재임기간(1961년 1월~1963년 11월)에도 취임 두 달 만에 쿠바 공산정권을 전복시키려던 피그만 침공작전 실패로 곤경에 처했고, 소련의 위협으로 베를린 위기가 벌어졌으며, 미국의 턱밑인 쿠바에 소련 핵미사일을 배치하려던 쿠바 사태까지 위기의 연속이었다. 그럴 때마다 40대의 젊은 케네디는 “위기(crisis)를 한자로 적으면 두 글자다. 하나는 위...
'예스맨' 홍남기 부총리가 달라진 걸까 오늘 아침 뉴스 중에 관심을 모은 게 글로벌 증시 폭락과 함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페이스북 글입니다. '예스맨' 홍 부총리가 왜 갑자기 이런 글을 남겼을까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홍 부총리를)관두라고 할 수도 있다"고 했다는 발언이 전해진 데 대한 반응입니다. 왜 여당 대표가 경...
한 달 넘게 국민 스트레스지수를 한껏 끌어올린 ‘마스크 대란’은 문재인 정부의 실력을 드러낸 아킬레스건(腱)이 돼버렸다. 인터넷 댓글 창마다 “스스로 조심합시다. 정부가 지켜주지 않아요”, “시민도 지치고, 약사도 지치고, 생산업체도 지쳤다” 같은 국민의 탄식이 넘쳐난다. 대안이라고 내놓은 ‘마스크 5부제’는 장사진(長蛇陣)의 꼬리를 다소 줄였을 뿐이다. 지...
시인인 이해인 수녀가 10여 년 전 암투병 때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암은 별 거 아니에요. 요즘은 감기랑 똑같아요”라는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다고 한다. “지금이야말로 깊이 있고 영성이 담긴 시를 쓸 때입니다” 같은 말도 그랬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에선 거부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랬던 이해인 수녀가 진정 위로받은 것은 ‘바보’ 김수환 추기경의 한마디였...
어릴 적 할머니께선 TV 뉴스를 볼 때 연신 "참 못났다"고 하셨습니다. 고관대작의 부정부패, 파렴치한, 분노 유발자들이 등장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입니다. 요즘 코로나 사태에서도 참 많은 이들이 서로 '누가 더 못났나' 경쟁을 하는 듯합니다. 국민은 마스크 구하느라 몇시간씩 줄을 서고, 행여 서로 마음에 상처를 줄까봐 조심하는데 '관심받고 싶은 사람들'은 오늘도 대중에게서 잊혀질까봐 숟가...
가장 위험하고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아프가니스탄이 또 한 번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미국과 아프간 무장조직 탈레반이 18년간의 무력충돌을 끝내는 평화협정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합의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아프간 정부가 “협상에서 배제됐고 탈레반 죄수를 석방할 수 없다”고 반발해 산 넘어 산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아프간인(파슈툰족)의 땅’이란 뜻으로, ‘복잡하다’는 의미가 담겨...
“모든 것은 상호 연관돼 있다”는 것은 불교, 도교와 헤겔, 마르크스 등의 일관된 교훈이다. 외계인 출현이 아닌 이상 세상만사는 나비효과든, 인과관계든 서로 얽혀 있다고 보는 게 맞을 듯싶다. 하다못해 ‘발가락이 닮았다’고 하지 않나. 상황은 계속 바뀌지만 변치 않는 게 인간 본성인 때문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지난 1년간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서로 무관한 독립 사건일까. 뭔가 끓어넘칠 ...
모든 분야에서 세상 변화를 실감하지만 신문사만큼 상전벽해인 곳도 드물다. 한 세대 전 원고지와 납활자 조판에서 지금은 웹 기반의 기사전송·편집·조판 시대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이 과정에서 문선공(文選工)이 사라졌고, 조판대는 컴퓨터로 대체됐으며, 두꺼운 스크랩북은 컴퓨터파일과 포털이 대신한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비약적인 발전이 신문사 풍경을 바꿔놓은 것이다. 취재기자들은 편집국에 자기 책상이 없고, 주로 외부에서...
센 놈이 왔다. 모습을 드러내고 다시 숨은 듯 하더니 순식간에 덮쳐왔다. 지난 24일 하루 코스피 시가총액을 67조원이나 빼가고, 미국 다우지수를 1000포인트 이상 끌어내린 걸 보면 '진짜 센 놈'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생명체라기에도 어설픈 단백질과 핵산 덩어리에 이렇게 국가기능이 속수무책으로 마비될 줄이야. 그것도 한 달 만에. 주말을 지나 4배로 불어난 코로나19 확진자수는 이제 네 자릿수가 임박했다. 일본과 크루즈선 ...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국만큼 빠르게 퍼지고 있는 나라가 이탈리아다. 지난 21일 아침까지도 3명뿐이던 확진자가 주말을 거치며 219명으로 불어났다. 중국 한국에 이어 세계 세 번째다. 사망자도 5명 나왔다. 이탈리아 확진자는 독일(16명), 영국(13명), 프랑스(12명, 1명 사망)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을 다 합친 숫자의 4배가 넘는다.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확산은 한국과 닮은꼴이다. 중국과의 교류가 많고, 감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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