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한 지 422년 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요즘 바쁘다. 수시로 소환되고 있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명량해전의 ‘12척 배’, 거북선횟집, 첫 승전지 저도(猪島) 등으로 이순신을 떠올리게 했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지금 문재인 정부는 서희와 이순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거북선 모형을 배경삼아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났다. ‘이순신...
“나는 연필입니다. 약간의 나무와 흑연, 래커, 인쇄된 라벨, 금속, 지우개로 구성돼 있죠. 미국 오리건 삼나무를 철로를 통해 캘리포니아 제재소로 운반해 다듬죠. 흑연은 실론섬에서 캐오고, 지우개는 인도네시아 평지씨 기름과 염화황을 반응시켜 만듭니다. 지우개를 끼우는 쇠테는 구리와 아연의 황동입니다. 여기에 수백만 명이 애쓰지만 이들 중 몇몇 외에는 서로를 모른답니다.” 미국 경제교육재단(FEE) 창립자 레너드 E 리드의...
아이들은 다 아는데 어른들만 모르는 게 있었다.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는 유튜버가 왜 초등학생 장래희망이 됐는지…. 그 이유를 여섯 살 꼬마 보람이를 통해 어른들도 알게 됐다. 보람이의 일상생활과 장난감을 갖고 노는 영상을 올린 ‘보람튜브’의 월수입이 최대 40억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 가족회사 ‘보람패밀리’가 서울 강남에 95억원짜리 빌딩을 샀다는 소식에 다들 입이 떡 벌어졌다. 긍...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연초 인터뷰에서 “올해 한국 사회는 대전환의 고통을 겪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의 해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을 때 ‘설마’ 했다. 그 말이 새삼 혜안으로 다가온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국 산업의 밑천을 들춰내고, 미국의 오불관언은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때의 쓰라린 기억을 소환한다. 예민한 식자들 사이에는 ‘위기’라는 공감대가 퍼져 있다. 구조적 저성장에...
일본의 경제보복에 분노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불매 리스트가 도는가 하면, 일본여행 취소도 속출한다. 일본차(車) 주유 거부 주유소, 일본 제품 판매 중단 마트도 등장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는 온라인 포스터가 퍼지고 있다. 일본 제품을 사거나 일본으로 여행 가면 ‘매국노’ 취급을 받을 판이다. 여당 국회의원은 “의병을 일으킬...
국정의 요체를 꼽는다면 단연 외교, 국방과 경제일 것이다. 나라의 존속과 국민 생존이 달린 문제들이어서다. 국가역량을 결집하고 대비하는 리더십과, 치열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팔로십이 요구되는 공통점도 있다. 역사를 돌아봐도 외교·국방·경제가 흔들릴 때 어김없이 왜란·호란·망국 같은 국난을 겪었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존재하는지 의구스런 외교, 구멍 뚫린 국방, 활력 잃은 경제 등 어디 하...
2015년 6월 25일 미국 워싱턴DC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엄숙한 행사가 열렸다.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KWVMF) 주관으로 6·25전쟁의 미군 전사자 이름을 일일이 부른 것이다. 전사자 3만6574명을 호명하는 데 사흘이 걸렸다. 이듬해 미8군 한국군지원단(카투사) 전사자 7052명, 2017년 유엔군 전사자 3300명, 지난해에는 실종자 7704명의 이름을 알파벳 순으로 불러줬다. 올해는 국립대전현충원이 그 뜻을 이...
1962년 국교를 맺은 석유부국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의 인연은 남다르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사우디 특수’를 빼놓을 수 없다. 사우디의 사회간접자본(SOC) 현대화에는 한국 기업들이 톡톡히 기여했다. 사우디는 한국의 최대 석유 수입국(29%)이고, 오늘날 사우디인들은 한국 기업이 지은 집에서, 한국 TV·스마트폰으로 한류를 즐기고, 한국 자동차로 한국인이 닦은 도로를 달린다. 사우디가 극동의 개발도상국을 ...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뉴스가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 남녀 3873명을 대면조사한 결과 76%가 ‘세금을 더 걷어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 조사결과는 복지를 더 늘리고 증세를 해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돼 널리 보도됐다. 하지만 보사연 조사는 딱 거기까지였다.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는가’는 묻지 않았다. 그런 질문이 추가됐다면 결과는 딴판이었을 수...
예상이 틀렸기를 바랐는데 정말 그렇게 갈 모양인가 보다. 작년 3월 2일자 이 칼럼(‘정년 65세 연장 담합 시나리오’)에서 예측했던 게 현실이 돼 간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뜬금없이 65세 정년연장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명분도 예상대로다. 고령화와 생산인구 감소, 정년과 연금 수급연령 간 간극 등을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년연장으로 소득과 소비가 늘면 세수 증가, 재정 부담 감소로 이어진다는...
“혹시 ‘한은사(韓銀寺)’라는 절 이름을 들어봤습니까?” 지난해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주열 한은 총재에게 건넨 말이다. ‘한은사’란 절이 진짜 있는 건 아니고, 한은이 절간처럼 조용하고 존재감이 없다는 뜻에서 1990년대 언론이 붙여준 별명이다. 20여 년 전 회자됐던 별명을 박 의원이 끄집어낸 것은 “한은이 박사...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한데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는 ‘안나 카레니나 법칙’은 살기 좋은 곳을 고를 때도 적용할 수 있다. 살기 좋다고 꼽히는 곳들이 대개 비슷한 조건을 두루 갖춘 반면 살기 힘든 곳은 제각기 결격 사유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1751)에서 사대부가 기거할 만한 곳의 필요충분조건으로 풍수, 경제, 인심, 풍광을 꼽았다. 풍수와...
다들 궁금해하면서 납득 못 하는 게 있다. 왜 문재인 정부는 먹고사는 경제문제에 대해 그 어떤 충고나 조언도 들으려 하지 않을까. 소득주도 ‘성장’은커녕 가계 실질소득이 줄고, 성장률은 뒷걸음이고, 실업은 지난 20년 새 최고인 현실을 보면 더 그렇다. 국내외 석학들은 물론 국책연구기관(KDI), 국제기구(IMF, OECD)까지 한목소리로 이대론 안 된다는데도 꿈쩍도 않는다. 경제난은 어떤 정권이든 치명적이다. 민심이 이...
스위스에 가면 세 번 놀란다고 한다. 알프스의 수려한 풍광에 놀라고, 이를 관광자원으로 바꾼 데 놀라고, 살인적인 물가에 놀란다는 것이다. 인구 850만 명의 소국이 시민의식, 기업가정신, 삶의 질 등에서 ‘최상의 나라’(미국 와튼스쿨 조사)로 꼽혔으니 더 놀랍다. 스위스 하면 빙하와 만년설, 소떼와 요들송, 그림 같은 집 등 낭만이 절로 일어난다. 그러나 그 이면에 이미 100여 년 전 융프라우(4158m) 전망대까지 ...
옛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우리 속담에 ‘말은 할수록 거칠어지고, 가루는 칠수록 고와진다’고 했다. 중국 송나라 때 《태평어람》은 “질병은 입을 통해 들어가고, 화근은 입을 쫓아 나온다”고 가르쳤다. 성경 잠언은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한다”고 했다. 요즘 막말과 실언(失言) 콘테스트를 벌이는 한국 정치판을 꼬집은 말들 같다. ‘더 ...
본래 군대용어인 ‘복지부동(伏地不動)’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김영삼 정부 때다. 뉴스 빅데이터인 ‘빅카인즈(Big Kinds)’를 검색해 보면 1993년 6월께 이 말이 언론에 처음 등장한다. 야간에 조명탄이 터졌을 때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엎드려 꼼짝 말라’는 군대구령을 공직사회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에 비유한 것이다. 여기서 파생된 게 엎드려 눈만 굴린다는 ‘복지...
지금쯤이면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도 분명 열어봤을 것이다. 전임자인 장하성 주중 대사가 주고 갔다는 빨강·파랑 주머니 말이다. “올해는 나아진다”고 장담한 게 무색하게 경기 부진에 ‘추경 카드’를 들이밀고, 1분기 ‘-0.3% 성장 쇼크’와 올해 1%대 성장 전망(노무라 1.8%)까지 목도한 마당이다. “어려울 때 열어보라”던 그 주머니에는 뭐가 ...
참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캠퍼스에 꽃이 만발해도 보지 못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외칠 용기가 없음을 부끄러워했다. 주입식 강독과 토론으로 좌경 세례식을 치르고, 거리로 공단으로 달려갔다. 강의실보다는 막걸리주점이 더 익숙했고, 최루가스와 땀에 범벅인 채 젓가락을 두드리며 운동가를 불렀다. 민주(民主)에 대한 갈증에 늘 목이 말랐다. 김지하의 시구대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
자연법칙이 작용하는 과학실험과 달리 사회는 실험이 불가능하다. 실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수시로 행동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학자들이 주목하는 사회실험 대상이 있다. 같은 유전자·언어·문화를 가진 남북한의 분단 74년이 만들어낸 격차다.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경제가 만든 남북한 격차는 23배로 벌어진 1인당 국민소득이 웅변한다. 대런 애스모글루 미국 MIT 교수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지적했듯이, 포용적...
국회의원을 직접 만나보면 세 번 놀라게 된다. 우선 알려진 것보다 훨씬 스마트하다. 복잡한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임기응변으로 돌파하는 내공이 다들 보통은 넘는다. 대화를 해보면 문제의식도 뚜렷하다. 뭐가 잘못됐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안다. 그렇게 똑똑한 이들이 국회에만 들어가면 필부필부(匹夫匹婦)로 균질화하는 데 또 놀란다. ‘부분의 합=전체’라는 명제는 한국 정치판에선 참이 아니다. 오히려 전체가 부분의 합...
국가의 첫째 상징이 국기(國旗)라면 둘째는 화폐다. 누구나 매일 쓰고 외국인도 먼저 접해 사람들에게는 더 친숙하다. 나라마다 화폐 디자인을 종합예술로 여기고, 국가 정체성과 역사·문화를 담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 세계 화폐의 8할은 앞면에 인물이 들어간다. 주로 왕, 대통령부터 사상가, 과학자, 예술가 등 다채롭다. 미국 달러화 인물은 ‘건국의 아버지들’과 역대 대통령이다. 오바마 시절 20달러 지폐인...
평소 기업에 까칠하던 언론들도 이 건(件)만큼은 다소 동정적이다. 번 돈(280만원)의 3214배인 90억원의 과징금을 물게 된 제주항공 사례다. 허가 없이 초소형 리튬배터리가 내장된 손목시계 등을 항공화물로 20회 실어나른 죄다. 위험물은 운송면허가 있어야 실을 수 있다. 리튬배터리도 그중 하나다. 같은 배터리도 승객 위탁수하물은 허용해 규정이 모호한 측면도 있다. 어쨌든 항공사 측 불찰이고, 이의 신청도 기각됐다. 하지만 과징금이 적정한지...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갈등에는 종교·민족·역사적 배경 외에 물 부족이 숨어 있다. 특히 이스라엘 요르단 팔레스타인 등의 주요 젖줄인 요르단강을 둘러싼 갈등은 항시 전쟁의 불씨가 됐다. 스티븐 솔로몬의 《물의 세계사》에 따르면 본래 이 지역은 수자원이 충분했지만 1950년대 이후 인구 증가, 관개농업 확산으로 이젠 물 부족이 상수(常數)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건조하고, 정치적 폭발력을 가진 ‘중동의 화약고&rs...
우리가 동남아시아라고 뭉뚱그리는 나라들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신(新)남방정책’에다 매년 수백만 명이 관광해 잘 안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민족 언어 문화 종교가 제각각이라 동남아를 아우르는 전문가도 거의 없다. 그런 와중에 또 ‘외교 사고’가 터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와 정상회담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친숙함을 표한다고 건넨 오후 ...
권투 경기에서 회심의 훅이나 스트레이트는 상대를 쓰러뜨린다. 그러나 한 방에 경기가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네 번 쓰러진 홍수환의 역전 KO승도 그래서 가능했다. KO 확률이 높은 것은 오히려 잽이 누적될 때다. 가볍게 던지는 잽은 가랑비에 옷 젖듯 상대를 무너뜨린다. 앞으로 고꾸라지면 다시 못 일어난다. 외환위기, 금융위기는 일발필도였지만 제조업의 강한 회복탄력성 덕에 벌떡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라 안팎에서 날아드는 무수한 잽...
‘아랍의 봄’이 2011년 들불처럼 번져갈 때 이슬람권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줄 알았다. 장기독재와 부패, 빈곤 심화와 격차 확대, 살인적 물가, 청년실업 등으로 불붙은 대중의 분노가 철권 독재자들을 몰아냈다. 벤 알리(튀니지), 카다피(리비아), 무바라크(이집트), 살레(예멘) 등 20~40년 철권정권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도화선이 된 튀니지만 ‘재스민 혁명’을 이뤘을 ...
봄이 오긴 왔나 보다. 어제 서울 낮 기온은 15도까지 치솟았다. 기상청은 하루 평균기온이 영상 5도 이상을 9일간 지속하고 다시 떨어지지 않으면 그 첫날을 봄의 출발로 본다. 올해 봄은 이미 지난달 23일(평균 6.7도) 시작됐다. 지난해(3월 6일)보다 열하루나 빠르다. 이런 숫자가 아니어도 따사로운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에서 봄을 체감한다. 겨울 코트·패딩 대신 서둘러 봄옷을 꺼내 입는다. 거리에는 벌써 반팔 티셔츠 차림도 눈...
정치인도 가끔은 옳은 말을 할 때가 있다. “야당과 경쟁하는 정당이 아니라 미국 공화당, 일본 자민당, 중국 공산당, 러시아 통합러시아당과 경쟁하는 ‘글로벌 민주당’으로 발전시키겠다.”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선 송영길 의원의 출사표다. 비록 2위에 그쳤지만 이 대목은 반향이 적지 않았다. 북한을 다녀와서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야당과 싸울 게 아니라 (주변 4강 집권당을)...
한국 정치판에선 어떤 이슈도 대개 열흘을 못 간다. 새롭고 더 센 이슈가 튀어나와 종전 이슈를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여당 의원의 목포 투기 논란이 야당의 ‘5·18 발언’에 묻히더니, 이번엔 여당 의원의 ‘20대 교육 부족’ 설화(舌禍)로 시끄럽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대 남성 국정지지율 하락에 대해 “보수정권에서 교육을 잘못 받은 탓”(21일)이라고 했다가...
“1등 증권회사 사장이 어떻게 도봉구에 사십니까?”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 사장이 현역시절 자주 듣던 말이다. 그 자신도 “주요 상장사 CEO 중에 도봉구에 사는 건 내가 유일하다”고 말하곤 했다. 등산 마니아인 그는 지금도 ‘등산 8학군’인 북한산 자락(방학동)에 산다. 강북 사람들에게 가장 불편한 것 중 하나가 교통체증이다. 홍 전 사장은 방학동에서 여의도까지 기나긴 출근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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