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오형규 한경BP 대표
    오형규 한경BP 대표 한국경제TV
  • 구독
  • [천자칼럼] 한자 공포증

    요즘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가 한자를 물어올 때 난감해진다고 한다. 197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30~40대 초반은 한자를 제대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반면 아이들은 1000만권 이상 팔린 한자 학습만화 ‘마법천자문’ 덕에 한자에 관한 한 부모보다 낫다.언론도 ‘대략난감’이긴 마찬가지다. 뉴스검색 포털 카인즈에서 ‘환골탈태(換骨奪胎)’를 검색해보면 919건의 기사가 뜨지만 ‘환골탈퇴’로도 그 절반이 넘는 476건이 나온다. 골프에서 테니스로 취미를 바꾸면 ‘환골탈테’라는 유머는 웃기기라도 하는데…. 인터넷 포털에선 한술 더 떠 ‘야밤도주’, ‘홀홀단신’, ‘이억만리’ 등이 표준어 행세를 한다.사무관들이 행정·법률용어의 뜻을 모른다는 실·국장들의 개탄을 들은 게 벌써 10여년 전이다. 결제와 결재를 헷갈려하고 조인식(調印式)을 ‘join식’으로 아는 공무원들이 정책을 입안한다는 얘기다. 기업에선 한자 독음조차 못 하는 직원이 많아 골치다. 심지어 한자로 된 명함을 받으면 뒷면의 영문을 보고서야 상대방 이름을 아는 정도다.한글 문맹은 사라졌지만 한자 까막눈은 더 늘었다. 한자 문맹은 6차 교육과정(1992~1997년) 때 필수인 한문이 선택과목이 되고, 7차 교육과정(1998~2007년)에서 한문을 제2외국어로 넣었을 때 중·고교를 다닌 세대에서 두드러진다. 소위 ‘이해찬 세대’다. 이들이 사회 중심에 진입하면서 한자 공포증은 더 확산되는 것 같다.한글의 우수성이야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말의 한자어휘가 7할인데 한자를 모르면 그 뜻이 제대로 통할 리 없다. 안중근 의사(

    2016.08.07 17:38
  • [천자칼럼] 러스트 벨트(Rust Belt)

    드넓은 미국에는 지구상의 모든 지형이 다 있는 것 같다. 만년설(로키산맥)부터 협곡(그랜드캐니언), 사막(데스밸리), 늪지(플로리다)…. 판이한 자연조건에 경제·문화적 특성이 더해져 독특한 지역색이 형성된 게 미국이다.진작부터 미국 언론은 비슷비슷한 지역끼리 벨트(belt)로 묶는 것을 선호했다. 특정 벨트는 정치성향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코튼벨트와 밀벨트란 용어가 사용됐다. 코튼벨트는 남부 면화(cotton) 산지, 밀벨트는 중부 밀(wheat) 산지의 주(州)들을 가리킨다.그 위로는 방대한 콘벨트가 펼쳐진다. 동서로 오하이오에서 네브래스카, 남북으론 미주리에서 미네소타까지 세계 최대 옥수수(corn) 산지다. 이와 밀접한 것이 축산 지대인 소고기(beef)벨트다. 몬태나부터 텍사스까지 세로로 더 폭넓게 이어져 있다. 비프벨트는 사람보다 가축이 더 많은 주들이 적지 않아 주마다 의원이 2명뿐인 상원에서 영향력이 막강하다.종교·기후에 따른 지대도 있다. 성경(bible)벨트는 복음주의가 강한 남부 주들을 가리킨다. 한때 진화론 교육마저 금지했던 주가 있었을 만큼 보수적이다. 요즘 각광받는 것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북위 37도 이남지역을 통칭하는 선(sun)벨트다. 춥고 눈이 많은 북부 스노(snow)벨트에 대칭된다.선벨트는 1970년대까지도 낙후된 농업지대였다. 그러나 온화한 기후, 저렴한 노동력, 파격적인 세제 등으로 기업을 유치해 지금은 미국 인구의 40% 이상이 거주한다. 북부 아이비리그 출신 기득권 세력에 대한 반대 정서도 강하다. 지난 50년간 미국 대통령은 오바마를 제외하곤 모두 선벨트 출신이었다.결전을 100일 앞둔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

    2016.08.01 18:07
  • [천자 칼럼] 사라진 보신탕

    내일이 초복이다. 애호가라면 벌써 몇 그릇은 뚝딱했을 것 같다. 보신탕 얘기다. 그런데 요즘 주위에 먹었다는 사람이 드물다. 먹으러 가자는 사람도 없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 보도처럼 정말 한국의 보신탕 문화가 퇴조하는 걸까. 한편에선 개도둑이 극성이라는데.연령대별로 물어봤다. “개 혀?” 50대 이상은 “없어 못 먹는다”는 반응이 여전히 많다.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환자 영양식 아니냐는 예찬론자도 있다. 40대는 즐긴다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20~30대는 공개적으로 애호가임을 밝히는 경우가 없다. 특히 여성이 낀 자리에선 보신탕의 ‘보’자도 안 꺼낸다.왜 보신탕 인구가 줄었을까. 우선 반려동물족이 1000만명을 넘는다. 관련 시장만도 지난해 1조8000억원, 2020년엔 5조원대를 내다본다. 애완견을 위한 호텔·놀이터·펫카페에다 일명 ‘개모차’도 낯설지 않다. 독(Dog)TV, 반려견 신용카드도 있다. 심지어 뇌와 관절건강에 좋다는 11세 이상 노령견용 사료까지 나올 정도다. 애완견이 있는 집은 홈(home), 없는 집은 하우스(house)라는 마당이다. 이런 판에 복날 보신탕 운운했다간 야만인 취급받기 십상이다.둘째, 대체재가 많아졌다. 애호가들이 주장하는 스태미너 효과는 발기부전 치료제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낯 간지러운 이름의 국산 복제약도 수십종이다. 비아그라와 정관장으로 보약이 타격을 입었듯이 보신탕 수요도 영향을 받은 것이다.셋째, 불법·비위생적 유통과정에 대한 불신이다. 중국에서 약물에 중독된 개고기가 대량 유통되다 적발되는 일이 심심찮다. 국내 유통물량 일부가 중국산이라 찜찜하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한국의 1700여

    2016.07.15 18:15
  • [천자칼럼] 여인천하

    역사적으로 기억되는 여성은 대개 ‘권력을 좇는 악녀’로 각인돼 있다. 장희빈, 장녹수, 정난정 등 ‘조선의 3대 악녀’부터 그렇다. 중국의 양귀비, 서태후도 그런 사례다. 장희빈이 6번이나 TV사극으로 다뤄진 것도 그의 삶이 막장 드라마적 요소를 두루 갖춘 때문일 것이다.사극에서 여인천하라는 말에는 궁중 암투의 뉘앙스가 짙다. 월탄 박종화의 역사소설 《여인천하》도 중종비 문정왕후가 20년 수렴청정으로 정치를 뒤흔든 게 소재다. 서양 사극의 단골인물은 앤 불린이다. 왕비 갈아치우기를 밥 먹듯 했던 헨리 8세의 둘째 왕비다. 앤이 정치에 적극 개입하다 처형되는 과정은 장희빈과 흡사하다. 헨리 8세와 세 왕비, 권력 투쟁과 ‘원조 브렉시트’라는 영국 국교회 설립 등을 그린 미드가 ‘튜더스’다.물론 남성우월시대에 여성이 역사 전면에 나선 경우도 있었다. 선덕여왕, 측천무후, 엘리자베스1세 등이다. 대개는 구중심처에서 왕을 움직이는 음모와 질투의 화신으로 기록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입지전적 삶을 산 여성들을 무조건 악녀로 단정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남성과 승자의 기록이다. 실제 궁중 막장은 연산군, 헨리 8세 등 남성이 만들었다. 그럼에도 비난의 화살을 여성에게 돌리는 것은 동서양이 공통인 듯하다.여성이 남성과 대등해진 것은 불과 얼마 안 된다. 계몽사상가 루소조차 “여성은 남성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창조됐다”고 했다. 투표권부터 철저히 차별했다. 미국의 백인 여성(1920년)은 흑인 남성(1870년)보다 50년 뒤에 투표장에 갈 수 있었다. 인권과 평등의 나라라는 프랑스도 1946년에야 허용해 우리나라

    2016.07.10 17:35
  • [천자 칼럼] 국가브랜드

    최초이자 가장 성공한 국가브랜드로 영국의 ‘Cool Britannia’를 꼽는다. 1997년 집권한 토니 블레어 총리가 ‘새로운 영국, 새로운 노동당’을 표방하며 내건 구호다. 본래 1967년 유행한 올드팝 제목인데, 영국 국가(國歌) ‘Rule Britannia’에 운을 맞춰 살짝 비튼 것이다.1990년대 영국은 오아시스, 스파이스걸스 등 브릿팝과 텔레토비, 해리포터 같은 문화콘텐츠로 창조산업 전성시대를 맞았다. 잘 만든 구호 하나가 영국의 위상을 노(老)제국에서 젊은 국가로 바꾼 셈이다. 일본이 이를 본떠 2009년 소프트파워를 키우는 국가전략으로 ‘Cool Japan’을 내걸었다. 모방의 천재답다.지금은 국가브랜드의 홍수시대다. 줄잡아 80여개국이 국가 또는 관광 브랜드를 내걸고 관광객, 외자 유치와 수출 촉진에 열을 올린다. 국가브랜드는 무엇보다 쉬우면서 그 나라 특징을 잘 살리는 게 관건이다. 이를테면 싱가포르의 ‘당신의(Your) 싱가프로’, 태국의 ‘어메이징(Amazing) 타일랜드’, 말레이시아의 ‘참된(Truly) 아시아’ 등은 입에 감기면서 기억하기도 좋다.자연경관이 강점인 국가들은 색다르다. 스위스의 ‘Get Natural’, 뉴질랜드의 ‘100% Pure’, 캐나다의 ‘Keep Exploring’ 등이 있다. 베트남의 ‘The Hidden Charm(숨은 매력)’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데 미국이 ‘발견하라(Discover)’를 내걸자 일본은 ‘끝없는 발견(Endless Discover)’이란다.밋밋하거나 식상한 경우도 있다. 그리스와 인도네시아는 그냥 ‘원더풀’이다. 대만은 ‘아시아의 심장’이라는데 공감이 잘 안 간다. 차라리 스페인, 호주처럼 그 나라의 상징물(태양, 캥거루)만 그려

    2016.07.07 18:40
  • [천자칼럼] 영국의 해체

    영국의 정식 국호는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다. 줄여서 ‘United Kingdom(연합왕국)’. 본토인 브리튼섬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북아일랜드로 구성돼 있다. 이런 영국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계기로 5년 후엔 분리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미 2년 전 독립 찬반투표를 했던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가 들썩이고 있다.이들은 대외적으로 영국인이지만 정체성은 엄연히 다르다. 영국 자체가 미국 같은 연방이 아니라 여러 민족과 왕국의 연합체다. 예컨대 스코틀랜드인(Scottish)에게 “영국인(English)이냐”고 묻는 것 자체가 실례다. 먼저 영국 역사를 간단히 살펴봐야 한다.로마 지배 이후 7세기께 게르만 일파인 앵글로색슨족이 침입해 기존 브리튼족을 제압하고 잉글랜드를 세웠다. 11세기 지배계급이 노르만족으로 바뀌었지만 이후 역사는 잉글랜드와 켈트족의 나라들인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간의 충돌과 통합의 과정이다. 켈트족은 로마시대 갈리아인으로 불린 선주민이다.그러나 같은 켈트족이어도 잉글랜드와의 통합과정은 판이했다. 남서부 웨일스는 1283년 에드워드 1세 때 정복됐지만 독립의지가 크지 않았다. 웨일스 출신 헨리 7세가 장미전쟁에서 승리하며 튜더왕조를 열었고 헨리 8세 때 웨일스통합법(1536년)으로 완전 통합됐다. 반면 북부 스코틀랜드는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보듯 투쟁과 전쟁의 연속이었다. 1707년 잉글랜드에 복속됐어도 300년간 독립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웨일스가 우호적 M&A라면 스코틀랜드는 적대적 M&A다.북아일랜드는 1649년 호국경 크롬웰이 침공해 아일랜드 전체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영국사에

    2016.06.28 17:37
  • [한경포럼] 김영란법 완화? 기대 마시라

    사회 곳곳의 부패를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지난 20여년간 투명성의 계단을 힘겹게 밟아 올라온 것도 사실이다. 1993년 금융실명제법, 2001년 부패방지법, 2004년 정치자금법(일명 오세훈법)과 성매매특별법…. 부패 척결은 곧 관행(慣行)의 불법화를 의미한다. 저항이 따른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해오던 대로 하면 뭐가 달라질까. 지하경제, 뇌물, 차떼기, 성매매 등을 용인할 수는 없다.이번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차례다. 시행령의 40일간 입법예고가 오늘로 종료된다. 236건의 의견이 접수됐지만 기존 찬반논란 수준이다. 한우, 굴비 등 농어민 피해 우려가 여전하다. 그러나 ‘값싼 청탁은 허용해도 되느냐’는 목소리는 더 크다.잇단 비리에 당위성은 더 커져결론부터 얘기하면 김영란법은 완화나 보류 없이 원안대로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 나오는 법조 비리로 인해 ‘끼리끼리 해먹는다’는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유죄를 무죄로 만드는 전관예우보다 더한 부정청탁이 어디 있겠나. 방산비리, 대우조선 사태, 관피아·정피아·메피아 등도 마찬가지다.김영란법이 법리상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 필요성과 당위성은 더욱 커졌다. “경제도 어려운데…”라는 해묵은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경제가 어렵지 않은 적이 있었나. 이미 꺼진 경기가 김영란법을 시행한다고 죽고, 보류한다고 살아날 리도 만무하다. 법의 완화나 보류는 국민정서법에도 위배된다. 국민정서법에서 가장 큰 죄가 분노유발죄와 기대배반죄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눈치 빠른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반대 목소리가 희미해졌다.남

    2016.06.21 17:32
  • [천자칼럼] LGBT

    최근 미국 올랜도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LGBT’라는 용어가 자주 쓰인다. 범행장소가 게이 전용클럽이어서 동성애 증오범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LGBT는 성(性)소수자를 총칭하는 신조어다.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영어권에서 퀴어(queer)와 같은 뜻이지만 어감은 덜 논쟁적이라고 한다.6월은 미국의 ‘성소수자 인권의 달(LGBT Pride Month)’이다. 지난 주말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것도 그래서다. 지난해 미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유엔은 LGBT 우표까지 발행할 만큼 성소수자를 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LGBT에 대한 편견과 갈등은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여전한 게 현실이다.동성애는 신화와 성서에도 기록될 만큼 뿌리가 깊다.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는 독수리로 변신해 미소년 가니메데스를 납치했다. 구약성서 레위기에는 여자와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고 했다. 이슬람권에선 동성애를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징역형은 물론 사형에 처하는 나라가 적지 않다.성소수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수천년간 금기였다. 19세기 말에야 동성애자 권리운동이 일어났지만 히틀러는 철저히 탄압했다. 나치는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는 동성애자를 절멸 대상쯤으로 여겼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조차 연방정부 공무원이 동성애자이면 해고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을 정도다.그러나 20세기 후반 들어 상황이 반전했다. 195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최초 레즈비언 단체 ‘빌리티스의 딸들’이 조직됐다. 1960년대 인종차별 반대운동이 번지면서 성소수자 인권에도 눈을 돌리게

    2016.06.14 17:24
  • [천자 칼럼] 알렉산더 해밀턴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 헌법 제정 참여, 연방파 지도자. 연방은행 설립자, 뉴욕포스트 설립자, 해안경비대 창설자, 결투와 죽음…. 이 모든 게 ‘건국의 아버지’ 알렉산더 해밀턴(1757~1804)의 이야기다. 풍운아 해밀턴의 일생이 최근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해밀턴은 1757년(일설엔 1755년) 영국령 서인도 제도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곧바로 가족을 버렸고 열세 살 때 어머니마저 사망해 불우하게 자랐다. 그의 재능과 두뇌를 높이 산 동네유지들이 뉴욕 킹스칼리지(현재 컬럼비아대)로 유학시켜 인재로 키웠다.해밀턴은 독립전쟁 때 조지 워싱턴의 최측근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워싱턴은 1789년 초대 재무장관에 33세의 해밀턴을 발탁했다. 해밀턴은 5년 반 재임하며 중앙은행 격인 연방은행을 설립하고 독립전쟁으로 빚더미인 재정을 회생시켰다. 국채를 액면가로 상환하고 주채(州債)를 연방정부가 인수해 신용을 회복하고 금융·자본시장 토대를 다졌다. 그 공로로 미 재무부 앞에 그의 동상이 있고, 대통령이 아니면서도 10달러 지폐 인물이 됐다.그러나 정치일생은 순탄치 않았다. 해밀턴은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향하는 연방파로, 북부 도시와 상공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민주주의란 국민의 변덕과 충동적인 분위기에 좌우되기 쉽다고 봤다. 반면 남부, 농촌 기반의 반(反)연방파 토머스 제퍼슨은 정부가 강해지면 인민의 권리가 작아진다며 정부 권한축소를 주장했다. 프랑스혁명(1789년)을 놓고도 해밀턴은 대중의 폭동, 제퍼슨은 고귀한 투쟁으로 상반된 평가를 내렸다. 두 당파의 대립은 50년 뒤 남북전쟁으로 연결됐고 훗날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체제를 형

    2016.06.10 17:43
  • [천자칼럼] 스위스 국민투표

    스위스는 여러모로 독특한 나라다. 인구 810만명의 소국인데 미국처럼 엄연한 연방국가다. 주(州) 단위인 26개 칸톤(Kanton), 시·군 개념인 2300여개 게마인데(Gemeinde)로 구성돼 있다. 공식 언어만도 네 가지나 된다. 대통령은 7명의 연방각료(장관)가 1년씩 돌아가며 맡는다. 연방각료는 연립정부를 구성한 4개 정당 출신이다. 그러니 지금 누가 대통령을 맡고 있는지 모르는 국민도 많다.스위스 하면 직접민주주의부터 떠오른다. 그 뿌리는 주민집회를 뜻하는 란트슈게마인데(Landsgemeinde)다. 칸톤마다 4월 마지막 일요일에 광장에 모여 토론하고 거수로 결정했다. 과거엔 ‘칼을 찬 성인남자’만 참여했다. 1990년 헌법 개정으로 여성 참여도 허용됐다. 최근까지 8개 농촌지역 칸톤이 이 제도를 유지했지만 비밀투표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 속에 현재는 2개 칸톤에만 남아 있다.스위스 직접민주주의는 지역 간 교류가 쉽지 않은 산악지대의 특수성에서 비롯됐다. 칸톤은 한 곳에 평균 31만명, 게마인데는 3500여명에 불과해 마을 단위의 자치전통이 강하다. 지금도 연방정부는 외교 안보 등만 관장할 뿐, 일반 행정은 모두 칸톤이 결정한다. 미국 주(state)보다 훨씬 강한 자치권을 가져 ‘국가 속의 국가’인 셈이다.근대의 국민투표도 스위스가 처음이다. 1848년 ‘헬베티아 연방공화국’의 헌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친 게 효시다. 그 전까지 스위스는 칸톤 간의 느슨한 연합체였다. 지금도 헌법·법률의 최종 결정, 국가적 중요 정책을 놓고 연간 2~4차례 투표를 한다. 헌법 개정은 18개월간 유권자 10만명(의회 통과 법률은 100일간 5만명)의 서명을 받으면 국민투표에 올릴 수 있다. 대개 국민 과반수

    2016.06.07 17:36
  • [천자칼럼] 쓸모없는 남자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모두가 빵 터진 장면이 있다. 칠순 욕쟁이 할머니가 꽃다운 처녀로 변신해 능청스럽게 내뱉는다. “남자는 그저 처자식 안 굶기고 밤일 잘하면 돼.”이 말엔 남편에 대한 전통적인 기대치가 함축돼 있다. 웬만한 것은 감수할 수 있어도 두 가지만큼은 확실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둘 다 부실한 남편이라면 부부싸움할 때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라는 볼멘소리를 듣는다지 않는가.그러나 요즘에는 남자에 대한 기대치가 부쩍 높아진 것 같다. 소위 ‘오빠’가 갖춰야 할 덕목이 너무 많다고 20~30대 남성들은 푸념한다. TV드라마 주인공들을 보면 능력, 성격, 인물, 체격, 배려에다 재력, 비전까지 7종 세트쯤 갖췄다. 현실에서 그런 사람이 있을까. TV가 조장하는 허상이자 환상이다. 그러니 지레짐작으로 서로들 ‘김치녀’ ‘한남충’이라고 비난해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결혼 상대를 고를 때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신중하다. 아이를 아홉 달 배 속에서 키우고 최소 10여년은 양육해야 하는 여성으로선 남성의 ‘쓸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결혼 때 신랑이 값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워 주는 것도 자신이 쓸모가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란 게 경제학자들의 분석이다. 사용가치는 미미하지만 교환가치는 턱없이 비싼 것으로 다이아몬드만한 게 없다.이제는 근육 대신 감성이 중시되는 시대다. 그럴수록 남자의 쓸모는 과거보다 줄어들게 마련이다. 집안 내 서열이 남편은 강아지 다음이라는 판이다. 전구 갈아 끼우고, 쓰레기 버리고, 무거운 가구 옮길 때나 쓸 만할까. 영국 속어로 쓸모없는 남자를 ‘bad bargain’이라고 한다. 본

    2016.06.05 17:45
  • [천자 칼럼] 이스터섬

    태평양 동남쪽 구석에 해저 화산 폭발로 생긴 라파누이(Rapa Nui), 즉 이스터섬이 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3600㎞, 가장 가까운 핏케언섬에서도 2600㎞ 떨어진 그야말로 절해고도다. 1722년 네덜란드의 로헤벤 제독이 부활절(Easter)에 발견하기 전까진 아무도 몰랐다. 지금은 칠레령이다.라파누이는 ‘커다란 땅’이란 뜻이다. 폴리네시아계 원주민은 자신들이 ‘세상의 배꼽(중심)’이라고 여겼다. 면적은 약 120㎢로 서울의 5분의 1이다. 500m가 넘는 산도 있다. 연중 강수량은 1100㎜로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나무는 거의 없고 방목용 초지가 있을 뿐이다.이스터섬은 곳곳에 산재한 모아이(Moai) 석상으로 유명하다. 현재 877개의 모아이가 남아 있다. 대개 높이 3.5~5.5m, 무게 20t 정도인데 높이 10m에 90t짜리도 있다. 탄소 연대측정 결과 1100~1680년께 제작됐다. 갈라파고스 제도가 고립된 생태계의 보고라면, 이스터섬은 고립된 문화의 변천사를 보여준다.외딴 섬에서 거대 석상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는 아직도 명확지 않다. 외계인설까지 있다. 그러나 모아이는 대개 아후(Ahu·제단) 위에 줄지어 있고 이름도 각각이어서 죽은 왕(부족장)을 기리는 용도라는 게 정설이다. 돌은 섬 동쪽 라노 라라크 화산에서 채취했다. 석기로 조각해 잘라낸 뒤 통나무 위에 얹고 밧줄로 당겨서 몇 ㎞씩 이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본래 섬에는 20m가 넘는 야자수들이 울창했다. 그러나 화전농업과 인구 증가, 모아이 제작용으로 마구 베어내 나무가 사라졌다. 나무가 없으니 배를 만들 수도 없었다. 식량을 구할 방법은 부족 간 전쟁뿐이었다. 1744년 이 섬에 들른 제임스 쿡 선장이 “섬의 모든 사회가 붕괴 일보 직전&

    2016.05.30 17:41
  • [천자칼럼] 미스 사이공

    20세기 후반 최악의 전쟁은 단연 베트남전쟁(1960~1975년)이다. 전쟁이 끝난 지 40년이 넘도록 베트남전은 그 치열했던 양상만큼이나 슬픈 이야기들을 남겼다. 수백만명의 사상자, 고엽제에서부터 생이별, 고아, 보트피플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도 미군 5만8000명이 전사한 이 전쟁을 영화 ‘디어 헌터’, ‘플래툰’, ‘포레스트 검프’ 등으로 되새기고 있다.베트남전이 남긴 또 다른 유산이 미군과 베트남 여성 간의 혼혈인 ‘부이도이(Bui Doi)’다. ‘삶의 먼지’라는 뜻의 부이도이들은 종전 이후 엄마와 생이별한 채 미국 등으로 보내졌다. 이 과정에서 1985년 영국 신문에 실린 베트남 여인과 어린 아들의 이별 장면이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계기가 됐다.‘미스 사이공’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만든 작곡가 클로드 미셸 쇤버그와 작사가 알랭 부브릴 콤비에 의해 1989년 탄생했다.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했고 2년 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로 진출했다. 초대 킴 역을 맡은 필리핀 출신 리아 살롱가는 오디션에서 2000 대 1의 경쟁을 뚫고 발탁돼 세계적 스타가 됐다. ‘미스 사이공’은 10년간 영국에서 4264회, 미국에서 4092회 공연됐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리바이벌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사실 ‘미스 사이공’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배경만 바꿔 뮤지컬로 옮긴 것이다. ‘나비부인’이 그랬듯이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이나 가해자가 구원자로 둔갑하는 설정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롱런하는 비결은 누구나 공감할 극적 요소를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17세 베트남 처녀 킴과 미군 장교 크리스의 운

    2016.05.24 17:35
  • [천자칼럼] 독일 군대

    19세기 중반까지 프랑스는 영국을 라이벌로 여기면서도 독일은 한 수 아래로 봤다. 프랑스가 수백년간 군사·경제강국으로 군림할 때 독일은 낙후된 봉건 연방국가였다. 이런 우열은 1870~71년 프랑스의 보불전쟁 패배로 단숨에 역전됐다. 파리를 점령한 독일(프로이센)군의 행진 모습은 프랑스인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19세기 말 독일은 영국마저 제치고 유럽 최강국으로 떠올랐다. 통일과 산업화, 촘촘한 철도망 등이 원동력이었다. 클라우제비츠, 몰트케 같은 프로이센 전략가들이 전격전, 참모제도 등을 개발해 군사이론을 완성했다. 폴 케네디는 《강대국의 흥망》에서 독일의 보불전쟁 승리는 군사체제의 승리이며, 군사체제는 그 나라의 독립된 부분이 아니라 전체성의 한 국면이라고 지적했다.흔히 융통성 없고 일처리에 철두철미한 사람을 ‘독일 병정’이라고 부른다. 나치 군대의 일사불란함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긴 탓이다. 하지만 독일 군대는 ‘무데뽀’와는 거리가 멀었다. 2차대전 당시 미군이 매뉴얼 중심인 반면 독일 군대는 임무 중심의 지휘체계로 더 효율적이었다. 지휘관이 목표와 우선순위만 정해주고 세부사항은 아래로 위임하는 방식이다. 독일 기업 중에 유독 ‘히든챔피언’이 많은 것과도 일맥상통한다.하지만 강점은 종종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독일은 우수한 군사체제를 과신해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말았다. 2차대전 후 군대가 해체됐으나 공산주의 확산을 계기로 1955년 재무장이 허용됐다. 서독에 연방군(Bundeswehr)이 결성됐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도 가입했다. 서유럽에서 보기 드물게 징병제 국가였다. 독일 연방군은 냉전기 서유럽 방위의 주력

    2016.05.11 18:02
  • [천자칼럼] 지하도시

    터키 카파도키아는 ‘신과 인간의 합작품’으로 불린다. 풍화·침식에 의한 기암괴석들이 마치 외계 행성을 방불케 해 영화 ‘스타워즈’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곳이 새삼 주목받은 것은 1963년 한 농부가 우연히 발견한 거대 지하도시 ‘데린쿠유(Derinkuyu)’ 때문이다.‘깊은 우물’이란 뜻의 데린쿠유는 지하 8층 깊이에 미로 같은 통로가 수천개의 방으로 연결돼 2만~3만명을 수용하는 규모다. 교회 학교 공동주방 마구간 와인공장 등이 있고 정교한 환기시스템까지 갖췄다. 4000년 전 히타이트족이 유사시 피난처로 처음 건설했고 기원전 8세기 본격 거주한 흔적이 있다. 특히 기독교도들이 로마와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이주해 도피처로 삼았다. 카파도키아에서 발견된 지하도시만도 40여개에 이른다.영국 에든버러에는 ‘메리 킹스 클로스’가 있다. 수백개의 막다른 골목길(close)이 흑사병 환자 격리장소로 이용됐는데 1750년대 도시 정비 때 땅에 묻히면서 지하공간으로 변했다. 메리 킹스 클로스는 소녀 유령이 나온다고 해서 유명해졌다.햇볕이 없는 지하공간은 정상 생활이 어려워 과거엔 도피처로나 이용됐다. 로마 카타콤, 《레미제라블》의 파리 하수도가 그런 경우다. 지금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는 차우셰스쿠 정권 붕괴 후 방치된 고아와 부랑자들이 하수도에 숨어 산다. 그 숫자가 6000명에 이른다고 한다.하지만 현대의 지하도시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창출한다. 1960년대 건설된 캐나다 몬트리올의 ‘언더그라운드 시티(Underground City)’는 자족적인 생활·문화공간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총 연장 32㎞, 연면적 1200만㎡에 달하는 이곳은 10개

    2016.05.03 17:35
  • [천자칼럼] 롤스로이스

    “시속 60마일(100㎞)로 달리는 신형 롤스로이스 안에서 들리는 가장 큰 소음은 전자시계 소리입니다.” 미국 광고계의 전설인 데이비드 오길비가 1958년 만든 롤스로이스 광고 카피다. 오길비의 탁월한 카피 덕에 롤스로이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매진 사태를 빚었다. 이 광고를 본 롤스로이스 엔지니어가 “그 망할 놈의 시계를 손봐야겠다”고 해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마이바흐, 벤틀리(또는 캐딜락)와 함께 세계 3대 명차로 꼽히는 롤스로이스(Rolls-Royce)는 20세기 영국의 자존심이었다. 귀족 출신 자동차 딜러 찰스 롤스와 엔지니어 헨리 로이스가 1904년 파리 모터쇼에서 첫 모델을 공개해 ‘조용한 차’로 명성을 얻었다. 이들은 1906년 정식 회사를 설립했다. R이 두개 겹쳐진 롤스로이스 로고는 설립자들의 이니셜이다.‘달리는 성(城)’이란 별명을 가진 최고급 팬텀 시리즈는 크기부터 집채만 하다. 12기통 엔진에 배기량이 6749㏄, 무게는 2.5t에 이른다. 4~5초 만에 시속 100㎞까지 가속하고 최고속도는 240㎞다. 최하위 모델이 4억원이고 팬텀 시리즈는 7억~8억원대를 호가한다. 그럼에도 맞춤 제작(비스포크)으로 ‘나만의 명차’를 꾸밀 수 있어 마니아층이 두텁다.명차다운 특징이 흥미롭다. 앞면 흡기구는 파르테논 신전을 본떴다.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엠블럼 ‘환희의 여신상’은 가격이 500만원을 넘는다. 시동을 끄거나 충격이 가해지면 엠블럼이 후드 속으로 숨어 도난을 예방한다. 차문에 꽂혀 있는 테플론 코팅된 우산은 옵션가격이 200만원에 이른다. 뒷문은 경첩이 달려 있어 마차 문처럼 뒤로 열린다. 머리를 숙이지 않고도 탈 수 있다.롤스로이스는 1930년대 벤

    2016.04.28 17:38
  • [한경포럼] 리디노미네이션 해보자

    한국은행이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라는 화두를 던졌다. 1원, 5원, 10원짜리 동전은 땅에 떨어져도 줍지 않는다. 50원, 100원 동전도 귀찮기만 하다. 동전을 찍어내야 하는 한은으로선 충분히 제안해 봄직한 아젠다다.그러나 ‘동전 없는 사회’에 앞서 생각해 볼 과제가 있다. 화폐 액면단위 절하, 즉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다. 돈의 실질가치는 그대로 두고 액면가만 1000원을 1원(또는 1환)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굳이 ‘동전 없는 사회’를 애써 연구할 이유도 없다.한은이 리디노미네이션을 검토한 지 15년이 흘렀다. 지난해 국감에서 이주열 한은 총재는 “경제 규모에 비해 (화폐) 숫자 크기가 너무 크다”는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기획재정부는 펄쩍 뛰고 한은도 ‘절대 아님’이란 희한한 해명자료를 냈다. 국민은 담담한데 정부·한은이 지레 겁부터 집어먹은 꼴이다.국민은 담담한데 정부 지레 겁먹어일상에서는 이미 리디노미네이션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3500원짜리 커피를 ‘3.5’로 표기하는 식이다. 젊은 층은 이런 가격 표시를 선호한다. 오히려 천문학에나 쓰던 1경(京)이 공식 통계에 등장한 게 더 황당하다. 1경은 10,000,000,000,000,000이다. 0이 16개다. 또한 기업 재무제표는 작성도, 이용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2000년대 들어 유로화가 등장했고 터키와 루마니아까지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다. OECD 국가 중에 네 자릿수 환율은 한국뿐이다. 1달러가 1150원, 1유로가 1300원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가 ‘한국은 조만간 괴이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지적할 만하다. 이런 후진적 화폐단위를

    2016.04.26 18:00
  • [천자칼럼] 맥주보이

    미국 메이저리그(MLB)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 쿠어스필드에는 ‘오페라맨’이라는 유명인사가 있다. 22년 경력의 맥주판매원 하워드 그리어(63)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캔맥주를 팔면서 중후한 바리톤으로 “비~~~~어 히어, 쿠~~~~어스 라이트”라고 외치면 마치 노래하듯 들린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부시스타디움은 버드와이저로 유명한 안호이저부시가 스폰서다. 한국과 일본에서 ‘끝판대장’이던 오승환은 첫 승을 따낸 뒤 팀 동료들이 퍼붓는 맥주로 샤워를 했다.메이저리그는 이렇듯 맥주를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된다. 30개 구단이 로고를 넣은 전용 맥주잔을 경쟁적으로 판매한다. 밀워키는 독일 이민자가 많은 맥주산지의 특징에 맞춰 팀명이 아예 ‘양조업자(Brewers)’이고 홈구장 밀러파크는 밀러 맥주에서 따왔다.흔히 “야구는 맥주를 부르고, 맥주는 야구를 부른다”고 한다. 더운 날씨에 푸른 잔디와 백구(白球), 피말리는 명승부에 환호하다 보면 절로 맥주가 당긴다. MLB에는 구장마다 ‘beer vendor’라는 이동 맥주판매원이 활동한다. 맥주와 핫도그는 한국의 치맥(치킨+맥주)만큼 인기다.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비르걸(beer girl)’로 불리는 젊은 여성들이 맥주 판매를 담당한다. 도쿄돔의 경우 160명의 판매원이 100잔 안팎씩 총 1만5000잔을 판다. 이들은 맥주통을 메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손님에게 무릎을 꿇고 맥주를 건넨다. 한데 맥주통 무게가 25㎏에 달한다니 장난이 아니다.한국 야구장에도 ‘맥주보이’ 또는 ‘맥돌이’로 불리는 감초가 있다. 어디든 달려가 물총처럼 생긴 호스로 시원한 생맥주를 즉석에서 쏴준다. 하지만 15㎏짜

    2016.04.18 18:01
  • [천자칼럼] 파력(波力) 발전

    지구 표면의 약 8할을 차지하는 바다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면 인류는 몇 가지 해묵은 숙제를 풀 수 있다. 바다 조류(藻類)는 식량문제, 해수 담수화는 물 부족의 대안이다. 특히 차고 넘치는 바닷물로 전기를 만든다면 공해 없는 무진장의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다.바다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은 조력(潮力), 해류(海流), 파력(波力), 해수온도차 등이 있다. 19세기 말부터 연구됐지만 아직은 화석연료 발전소를 대체할 수준이 못 된다. 해저 작업이 그만큼 어렵고 비용도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다는 태양광, 풍력보다는 예측가능해 신재생에너지의 보고로 주목받고 있다.밀물과 썰물을 이용한 조력 발전은 1967년 프랑스 랑스(24만㎾)에서 처음 시작됐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우리나라도 2011년 세계 최대 규모의 시화조력발전소를 완공했다. 발전용량이 50만명이 쓸 수 있는 25만㎾급이다. 강화 석모도, 태안 가로림만에도 조력발전소를 건설 중이다.해류 발전은 강한 해수 흐름을 이용해 바닷속에 설치한 터빈을 돌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물살이 빠른 곳에 터빈을 고정하는 게 고난도 작업이다. 2008년 울돌목(명량해협)에 시험 조류발전시설을 설치한 수준이다. 해수온도차 발전은 고온의 표층수를 진공펌프로 감압시켜 얻은 증기로 터빈을 돌려 발전하고 증기를 차가운 심해수로 냉각시켜 담수로 회수하는 방식이다. 프랑스 미국 이스라엘 등에서 이용하고 있다.파력 발전은 바다에 부표나 실린더를 띄워 놓고 파도의 상하운동을 피스톤 운동으로 바꿔 공기 터빈을 돌리는 방식이다. 낮은 수심에서도 발전이 가능해 비교적 경제성이 높다. 전 세계 파도 에너지는 40PW(페타와트, 1PW=10의 15제곱와트)에 달

    2016.04.14 17:41
  • [천자칼럼] 여론조사와 암수(暗數)

    1936년 미국 대선 때 인기 잡지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무려 1000만명에게 발송한 우편엽서 조사로 랜든의 승리를 예측했다. 한데 뚜껑을 열어보니 루스벨트의 압승이었다. 망신살이 뻗친 리터러리는 2년 뒤 폐간했다. 반면 신생업체 갤럽은 불과 1500명을 면접조사해 결과를 정확히 맞혔다. 1948년 대선에선 갤럽이 낭패를 봤다. 듀이 50%, 트루먼 44%로 예측했는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덩달아 성급하게 듀이가 이겼다고 보도한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은 세계적인 오보를 날렸다.오류 원인은 표본 추출(표집)에 있었다. 리터러리의 조사대상은 구독자, 자동차 소유자, 전화가입자 등 중상층에 국한돼 샘플링 편향을 초래했다. 갤럽이 틀린 것은 모든 유권자가 표본에 선정될 확률이 동일한 확률표집이 아니라 지역·성별·연령별로 미리 할당된 숫자만 채운 비확률표집에 의존한 탓이었다.이런 오류를 반성하고 여론조사기관들은 기법의 과학화에 주력하지만 요즘도 틀리는 게 다반사다. 표심을 정확히 반영하는 표본 설정이 어려운 데다 설상가상으로 본심을 감추는 유권자들이 점점 늘고 있어서다. 여론조사에 드러나지 않는 ‘암수(暗數, dark figure)’, 즉 ‘숨은 표’가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영국 총선에서도 모든 여론조사기관이 초박빙을 점쳤지만 결과는 보수당의 단독 과반이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보수파, 즉 ‘샤이 토리(Shy Tori)’가 원인으로 지목됐다.우리나라는 1987년 대선부터 여론조사가 도입된 이래 선거마다 여론조사 홍수다. 20대 총선의 여론조사만도 1404건에 달할 정도다. 그러나 양적 팽창만큼 질적 개선이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조사기

    2016.04.12 17:35
  • [천자칼럼] 빅사이즈

    연예계에서 여가수는 가창력보다 얼굴, 몸매가 돼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었다. 누구나 외모지상주의를 욕하면서도 정작 비주얼 가수에 환호하는 탓이다. 그런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깬 이들이 2003년 데뷔한 4인조 빅마마였다. 빅마마는 외모와 몸매 대신 화끈한 가창력으로 보란 듯이 성공했고 일본에까지 진출했다.한국인은 지난 한 세대 만에 엄청나게 커졌다. 20세 남성 평균키가 174㎝로 아시아 최장신이다. 여성 중에도 170㎝를 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다 보니 평균키를 한참 웃도는 아웃라이어들이 적지 않다. 이른바 ‘빅맨(big man)’, ‘빅사이즈(big size)’의 시대다.하지만 빅맨들은 생활에서 불편할 때가 많다. 버스를 타면 머리부터 숙여야 한다. 특히 몸에 맞는 옷과 신발을 찾는 것도 고역이다. 예전에 가슴둘레 120㎝가 넘는 ‘XXXL’ 이상 옷이나, 290㎝ 이상 신발은 서울 이태원에나 가야 겨우 구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키가 워낙 커 빅사이즈 전문 온라인몰이 늘어난 게 다행이다.하지만 신사복은 여전히 맞춤이 아니고선 몸에 맞는 기성복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키 190㎝, 몸무게 0.1t 이 넘는 청춘들은 미국 출장길에 생전 처음 몸에 딱 맞는 기성복을 발견해 몇 벌이나 산다고 한다. 의류업체들이 재고부담을 의식해 아주 크거나 작은 옷은 잘 안 만들기 때문이다. 유니클로 같은 외국업체가 다양한 사이즈로 국내시장에서 재미를 보는 것과 비교된다.덩치 큰 사람은 대개 손발도 크다. 한의학에서 환자의 손가락 마디 길이로 몸의 혈을 잡는 동신촌법(同身寸法)도 그런 맥락이다. ‘박치기왕’ 김일과 겨뤘던 일본 프로레슬러 자이언트 바바는 210㎝의 거한이면서 ‘16문

    2016.04.05 17:44
  • [천자칼럼] 선암사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정호승 ‘선암사’)순천 조계산 선암사(仙巖寺)에 가면 울고 싶어지는 것은 이 시 때문일까, 누구나 함지박만 하게 이고 사는 근심 때문일까. 정호승 시인이 직접 밝힌 시작(詩作)의 계기가 와닿는다. 시인이 선암사에 갔다 볼일이 급해 부랴부랴 해우소(解憂所)에 들었을 때 본 글귀가 마치 부처님 품속 같더란다. “대소변을 몸밖으로 버리듯 번뇌와 망상도 미련없이 버리세요.” 그는 강의할 때마다 ‘깐뒤(뒷간)’란 간판이 붙은 이 해우소 사진부터 보여준다.천년고찰 선암사는 백제 성왕 5년(527년) 아도 화상이 창건한 비로암을 통일신라 경왕 원전(861년) 도선국사가 재건하고, 고려 선종 9년(1092년) 의천 대각국사가 크게 중건했다고 한다. 국내에 6개뿐인 불교 총림(叢林) 중 태고종 유일의 총림이 선암사다. 총림은 참선도량인 선원(禪院),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이다. 조계종에는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등 5곳이 있다.선암사는 정유재란 때 모든 전각이 불탔으나 숙종 2년(1698년) 약휴대사가 중창불사를 마무리했다. 화재가 잦은 이유가 산강수약(山强水弱)의 지세 탓으로 여겨 한때 ‘청량산(淸凉山) 해천사(海川寺)’로 개명해 불렀다. 지금도 전각마다 환기창에 ‘물 수(水), 바다 해(海)’ 등 물에 관한 한자를 투각한 것을 볼 수 있다.선암사에 가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낄 게 참 많다. 초입 차밭의 은은한 차향은

    2016.03.31 17:37
  • [천자칼럼] 미국 유대인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유대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스페인의 페르난도 왕과 이사벨 여왕은 1492년 3월31일 유대인 추방령을 단행했다. 이교도로부터 국토 회복(레콩키스타)을 명분으로 내건 정치적 결정이었다. 그해 8월2일 마지막 유대인이 추방된 날, 콜럼버스가 대서양으로 출항했다. 박해 없는 새로운 세상이 필요한 유대인들이 그를 후원했고 선원 중에도 유대인이 포함됐다. 심지어 콜럼버스가 유대인이란 주장도 적지 않다.스페인은 유대인 추방으로 지식 공백을 초래했다. 관료 의사 상인 등의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던 탓이다. 반면 유대인이 이주한 네덜란드, 영국, 독일 등은 차례로 패권국가로 올라섰다. 유대인이 유럽에 퍼지면서 근대 자본주의도 싹텄다.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주목한 반면 동시대 독일 역사학자인 베르너 좀바르트는 길드에서 배제된 유대인들이 중세 상업의 ‘동일상품 동일가격’이란 이익 체제를 흔들어놨다고 설명했다. 어음교환소, 환어음, 무기명 채권, 수표 등이 모두 유대인의 발명품이다. 영국 중앙은행도 애초에 유대 거상들의 투자로 설립됐다.유대인은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다. 그러나 상업과 금융은 물론 학문과 과학기술, 예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쇼팽, 채플린 등이 모두 유대인이다. 노벨상 수상자의 20%를 차지한다. 자본가와 혁명가 양 진영 모두에서 유대인은 독보적이다. 로스차일드, 듀폰, 소로스와 마르크스, 레닌,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가 모두 유대인이다.‘시온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테오도르 헤르츨이 “우리가 사회의 밑바닥에 있을 때는 혁명가가 되고 정상에 있을 때는 자본

    2016.03.22 18:11
  • [한경포럼] '덕후' 전성시대

    이세돌 9단이야말로 덕후 중의 덕후다. 머릿속에는 바둑뿐이다. 이긴 날도 맘에 안 드는 수가 있으면 밤새워 복기한다. 그런 이세돌이니 최강의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명승부를 펼쳤지 싶다. 알파고를 만든 데미스 허사비스 역시 체스 신동이자 게임 덕후였다. 덕후 대 덕후의 대결이었던 셈이다.덕후는 일본어 ‘오타쿠(オタク)’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준말이다. 특정 분야나 대상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초기에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같은 부정적 이미지였지만 지금은 전문가를 능가할 정도의 마니아를 지칭한다.초등생부터 장관까지 '덕후 인증'주위에 덕후들이 넘쳐난다. 영화·드라마의 팬을 넘어 ‘셜로키안’(셜록 홈스 마니아) ‘톨키안’(톨킨 마니아) ‘매트릭스빠’들이 생겨났다. 미드 ‘빅뱅이론’과 8년째 동거 중이란 광팬도 있다. 포크가수 박인희가 일흔이 넘어 컴백한 동기도 그의 앨범이 닳아서 못 들을까 봐 똑같은 앨범을 서너 장씩 소장한 팬 덕이란다.해외 프로축구·야구 기사들에 달린 댓글을 보면 기사 오류를 잡아내는 전문가급 덕후들이 즐비하다. 기자 해먹기도 참 힘들다. 미국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대해 이성우 씨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TV에 소개된 초등 4학년의 자동차 ‘덕력(덕후 능력)’은 초능력에 가깝다. 1400여종의 미니카 차종을 모두 구분하고 뺑소니 영상 속의 전조등, 타이어 휠만 보고도 차종을 특정해 경찰에 도움을 줄 정도다.덕후에 의한 덕후를 위한 플랫폼도 생겨났다. 취업준비생들이 술자리서 떠오른 아이디어로 시작한 팟캐스트 ‘철수

    2016.03.15 17:33
  • [천자칼럼] 퍼스트레이디

    미국의 역대 퍼스트레이디 중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일 것이다. 우아하면서 검소했고, 지적이면서 겸손했다. 1948년 UN 총회의 미국 대표로 세계인권선언을 만장일치로 이끌어냈다. 그는 “자신을 다룰 때는 머리로, 남을 다룰 때는 가슴으로 하라” 등 명언도 많이 남겼다.린든 존슨 대통령의 부인 ‘레이디 버드’는 남편보다 더 미국인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의회 연설까지 해가며 고속도로미화법(일명 레이디버드법), 인권법 제정에 앞장섰다. 평생 자연보호에 열정을 쏟아 본명(클라우디아)보다 어릴 적 애칭(버드)으로 불렸다. 고향 텍사스주 오스틴에는 그가 세운 야생화센터가 있다.하지만 퍼스트레이디가 다 이런 모습은 아니다.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은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해 세계적인 가십거리가 됐다. 링컨의 부인 메리 토드는 까칠한 성격과 사치로 유명했다. 쿨리지의 부인 그레이스는 성심리학 용어인 ‘쿨리지 효과’로 더 회자된다. 그레이스가 수탉이 하루 12번 교미한다는 사실을 대통령에게 전해주라고 하자, 쿨리지는 “매번 같은 암탉과 교미하지 않는다고 전해라”고 되받았다고 한다.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들은 화젯거리가 될 때가 많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 세실리아는 2007년 남편의 취임 닷새 만에 정식 이혼하고 엘리제궁을 스스로 나갔다. 사르코지는 가수 믹 재거의 연인이던 슈퍼모델 출신 카를라 브루니와 재혼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특유의 바람기로 인해 한때 퍼스트레이디 교체설이 돌았다. 전처인 루아얄을 환경부 장관에 앉힌 것도 다른 나라에선 상상하기 힘들다.퍼스트레이디란 호칭은 187

    2016.03.07 17:39
  • [천자칼럼] "훅 간다"

    [문제] 다음 신조어의 뜻은?(1) 궁물 ②고답 ③글설리 ④솔까말 ⑤난희골혜 ⑥ㅇㄱㄹㅇ ⑦낄끼빠빠 ⑧쿠크 ⑨복세편살 ⑩제곧내요즘 SNS에 유행하는 신조어 주관식 문제다. 30개인데 10개만 추려봤다. 9개 이상 맞히면 직업이 전문누리꾼인 신급이다. 3~4개면 최소 응팔세대인 ‘아재’급, 2개 이하면 인터넷 갓 개통한 유물급이란다.최근에야 헬조선, 흙수저, 인구론 등 취업난 신조어를 겨우 깨친 어른들은 ‘대략난감’이다. 분명 한국말 같은데 독해 불능이다. 물론 기자도 ‘광탈(광속 탈락)’ 수준임을 미리 고백해 둔다. 혹시 아나. 얼짱, 공주병처럼 많이, 널리, 오래 쓰이면 국어사전에 오를지. 대통령도 통일이 ‘대박’이라고 하지 않았나.외계어 같은 신조어의 범람을 모국어의 타락이라고 개탄하는 이들도 많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고 남을 것은 남는다. 시대의 거울로 이해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중장년층도 학창시절엔 어른들 모르는 은어만으로 대화가 가능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어제 조간신문마다 일제히 1면에 실은 사진이 눈길을 확 끈다. “정신 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 새누리당의 당대표 회의실 배경판에 적힌 글귀다. 국민 쓴소리 공모에서 선정된 23가지 문구 중 하나다. 톡톡 튀는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이 네티즌에게 ‘궁물’한(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다. 그 밑에서 당 지도부가 살생부로 티격태격하니 고구마를 물 없이 먹은 듯 답답(‘고답’)하다.쓴소리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알바를 해도 니들처럼 하면 바로 짤린다”, “청년이 티슈도 아니고 왜 선거 때마다 쓰고 버리십니까” 등은 촌철살인이 느껴진다.

    2016.03.01 17:43
  • [천자칼럼] 청소년 키

    “못생긴 건 용서해도 키 작은 건 용서 못한다”는 세상이다. 몇 해 전 “남자 180㎝ 이하는 루저”라는 소위 ‘루저녀’ 소동도 있었다. 세태를 반영하듯 키 크는 약이나 성장호르몬 주사가 비싸도 불티난다. 하이힐, 킬힐이나 키높이 구두·깔창은 화젯거리도 안 된다.키에 집착하는 것은 인류 공통인 듯하다. 몽테뉴는 큰 키를 “신체적 위엄에서 나오는 권위”로 표현했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은 평균 180㎝ 정도다. 아버지 부시, 클린턴, 오바마 등은 185㎝가 넘는다. 키만 보면 트럼프(188㎝)가 가장 유리(?)한 셈이다. 연예계나 모델, 스포츠도 대개 장신이 유리하다.그러나 키 크면 싱겁다는 말이 허튼소리는 아니다. 장신이 병에 약하고 수명도 짧은 편이다. 차돌 같은 단신이 돋보일 때도 많다. 덩샤오핑은 153㎝였고 사르코지, 메드베데프, 베를루스코니는 165㎝ 이하다. 키 작다고 알려진 나폴레옹(168㎝)은 19세기 초 남성치곤 큰 편이었다. 메시(169㎝), 마라도나(165㎝)처럼 축구도 키로 하는 게 아니다.그래도 부모는 자녀 키가 컸으면 싶어한다. 자녀 예상 키 계산법으로 MPH(midparental height)가 있다. 부모 키 합계에다 13을 더하고(딸은 13을 빼고) 2로 나누는 것이다. 유전적 요인이 80%라지만 최종 키는 후천적 요인이 좌우한다. 남북한 청소년의 평균 키가 9㎝나 차이 나는 것을 봐도 그렇다.의학계 연구에 따르면 키는 영양, 수면, 운동과 연관이 높다. 그중에서도 고른 영양 섭취가 가장 중요하다. 적절히 운동하면 식욕이 살아나고 숙면을 취해 성장호르몬이 잘 분비된다. 하지만 과해서 좋을 건 없다. ‘우유 먹고 키 크고’라는 광고 카피는 영양 부족 시절 얘기다.흔히 농구 수

    2016.02.25 17:42
  • [천자칼럼] 몬다비 가문

    1976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와인 시음대회가 열렸다. 캘리포니아 와인에 반한 영국인 와인숍 운영자 스티븐 스퍼리어가 주도했다. 심사위원단이 눈을 가리고 블라인드 테이스팅한 결과는 이변이었다. 캘리포니아 와인이 쟁쟁한 프랑스 와인들을 누르고 1위에 오른 것이다. 이른바 ‘파리의 심판’이다. 이 사건은 2008년 ‘와인 미라클’이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프랑스 측은 숙성이 덜 된 와인을 비교했다며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와인의 화려한 데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절치부심하던 프랑스 와인업계가 2006년 재대결을 제안했다. 이번엔 캘리포니아 와인이 1~5위를 휩쓸었다.미국 와인의 대명사인 캘리포니아 와인의 출발은 흥미롭게도 골드러시였다. 1850년대 금광 발견에 실패한 유럽 이민자들은 캘리포니아가 기후, 토양 등 와인 생산에 천혜의 입지임을 간파한 것이다. 지금은 1100㎞에 걸쳐 1200여개 와이너리가 들어서 미국 와인의 90%를 생산하고 있다.그러나 우여곡절도 많았다. 1880년대 세계를 휩쓴 포도나무 피록세라(뿌리 진디), 1920년대 금주법 탓에 고사 직전까지 갔다. 미국 와인이 부활한 것은 1960년대 들어서다. 이탈리아에서 이민 와 나파밸리에 자리잡은 몬다비 가문, 소노마밸리의 갤로 가문 등이 그 주역이다. 나파(Napa)는 인디언 말로 ‘많다, 풍요롭다’는 뜻이다. 나파밸리의 와인 생산량은 캘리포니아 전체의 4%에 불과하지만 미국 와인의 대명사나 마찬가지다.1943년 나파밸리의 찰스 크러그 와이너리를 인수한 체사레 몬다비의 두 아들 로버트와 피터는 미국인의 입맛을 싸구려 벌크와인에서 고급 와인으로 바꿔놨다. 부친 작고 후 형제간 이견으로 로버

    2016.02.23 17:30
  • [천자칼럼] 미국 연방대법관

    존 그리샴 원작의 ‘펠리칸 브리프’는 1993년 영화화돼 큰 관심을 모았다. 미국 연방대법관들이 잇따라 살해되고, 그 이면의 엄청난 음모를 법대생 다비(줄리아 로버츠)가 파헤친다는 내용이다. 새삼 이 영화를 떠올린 것은 최근 앤터닌 스캘리아 미 연방대법관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타계한 뒤 음모론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부검 없이 전화로 사망선고가 내려진 점 등이 근거다. 물론 그럴 리야 없겠지만 발표된 것과 다른 사실이 있다면 엄청난 스캔들이 될 것이다연방대법원(Supreme Court)은 워싱턴DC 1번가에 있다. ‘견제와 균형’이란 삼권분립의 상징이다. 연방대법관은 건국 초기 6명으로 출발했지만 1869년이래 9명이다. 230여년간 100여명만 거쳐간 영예로운 자리다. 영국처럼 호칭부터 ‘Justice(정의)’다. 대법원장은 ‘Chief Justice’로 부른다.연방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의 청문회 및 동의를 거쳐 임명된다. 사망, 자진 사퇴 외엔 종신직이다. 탄핵·기소도 가능하지만 그런 사례가 없다. 상고허가를 받아 넘어온 연간 100여건의 사건만 재판한다. 한국 대법관들이 사건의 홍수에 치이고, 임기 6년(연임 가능) 뒤에 전관예우 구설에 오르는 것과는 천양지차다.연방대법원은 미국 사회가 극심한 혼란에 빠질 때마다 사려 깊은 판결문으로 중심을 잡아왔다.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대통령도 법 위에 있지 않다’고 전제한 것이 대표적이다. 표현의 자유, 낙태, 총기규제 등 난제들도 마찬가지였다.대법관들의 논리는 무릎을 치게 할 때가 많다. “외설을 정의할 순 없지만 보면 안다”(포터 스튜어트), “편의라는 새로운 권리를 발명하지 말라”(윌리엄

    2016.02.16 17:39
  • [천자칼럼] 로봇 공포증

    지난 주말 미국 프로골프(PGA) 프로암대회에서 ‘엘드릭’이란 로봇이 파3 홀인원을 기록했다고 한다. 일본 시세이도는 37년 만에 자국에 세우는 공장이 사람 대신 로봇만 쓴다고 해서 논란이다. 9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는 “로봇이 전문가가 되기 위한 경력 쌓기를 방해한다”는 문제 제기성 칼럼을 게재했다. 요즘 하루에도 몇 건씩 쏟아지는 로봇·인공지능 관련 뉴스들이다.세계적으로 ‘로봇 공포증(로보포비아)’이 부쩍 심해졌다.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란 걱정이다. 설상가상으로 다보스포럼은 5년 내 주요 15개국에서 일자리 710만개가 사라진다고 잔뜩 겁을 줬다. 최근 출간된 인간은 필요 없다에선 카지노 딜러 로봇, 커피숍 판매 로봇, 심지어 매춘 로봇까지 소개하고 있다.실제로 산업현장의 위험한 정밀·반복작업은 로봇으로 대체된 지 오래다. 로봇은 휴가나 임금인상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인명구조·군사용 로봇도 투입되고 있다. 이제는 주식투자 로봇 등이 화이트칼라와도 경쟁할 판이다. 지식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체스, 퀴즈, 루빅큐브에서 인간 챔피언을 꺾고 바둑황제 이세돌에게 도전장을 냈다. IBM의 체스 인공지능 ‘왓슨’은 의료분야에 투입됐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 기술 진보를 따라잡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원초적 공포심을 자극한다.로봇이란 명칭은 체코어로 강제노동이란 뜻의 ‘robota’에서 나왔다.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1942년 ‘로봇 3원칙’을 세웠다.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명령에 복종하며, 앞의 두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신을 보호하는 존

    2016.02.09 21:40
/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