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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현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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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현실 칼럼] 질문 없는 사회는 혁신이 없다

    “나의 임무는 대통령의 얘기를 과학계에 전하는 게 아니라 과학계의 얘기를 대통령에게 전하는 것이다.”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 때 대통령 과학기술 보좌관 겸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으로 활동한 존 기번스 핵물리학자의 말이다. 한국에서 현장의 얘기를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하는 장관이나 비서관이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다. 메신저 로봇은 대통령을 위험하게 한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현대 사회에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분류한 바 있다. 누군가의 대리인으로 말하는 예언자, 침묵으로 때우는 현자(賢者), 오로지 승인된 것만 말하는 교육자로는 불확실성 시대를 돌파할 수 없다. 대리인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침묵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권력과 대립하는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진실을 말하고 질문을 던지는 파레시아스트는 왜 안 보일까. 사회의 경계나 밖에 위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파레시아스트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퇴보를 알리는 위험 신호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개인·기업·국가가 던져야 할 질문이 많다. 과학기술뿐 아니라 법과 제도, 정치는 물론이고 비즈니스 지형을 완전히 바꾸는 질문이 쏟아져도 부족할 지경이다. 되돌아보면 18세기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전개되기까지 벌어진 일련의 과정이 의미심장하다. ‘철학혁명→과학혁명→정치혁명→기술혁명→산업혁명’의 순서였다. 철학·과학혁명이 무엇인가. ‘지(知)의 해방’을 가져온 질문의 역사 그 자체다. 서울대가 ’SNU 그랜드 퀘스트 오픈 포럼’을 열었다. 기존 로드맵을 벗어나는 근본적 사고 전환을 요구한다는 질문들이 제시됐다. 지식과 무지의 깨달음이 비례한다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대로다

    2023.09.20 17:48
  • [안현실 칼럼] 틀 깨고 경계 없애야 살아남는다

    “그들은 조짐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견하는 데 뛰어나다.” 샐리 셰이위츠 미국 예일대 신경과학자가 실어증 환자를 관찰한 결과다. 야마구치 슈 일본 경영컨설턴트는 패턴 인식이 갖는 한계에 주목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편리하기 짝이 없지만 변화를 인지하고 일으키는 데는 족쇄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에서 “두 번 다시 비극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 슈는 철학적 사고 과정을 학습할 것을 주문한다. 시대의 지배적 사고방식이나 관념을 의심하는 ‘지적반역(知的反逆)’이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때 초래되는 비극을 예방할 수 있는 안전장치라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와 정부가 과거와 싸우고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철학 논쟁이 아니라 난데없는 이념 전쟁이 그렇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다. 전체주의를 때려잡는다는 명분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방식이 정당화되면 그 또한 전체주의와 한통속이 되고 만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공산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갈라치기를 하는 파시즘, 나치즘, 군국주의 또한 전체주의란 점에선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전체주의에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율에서 나오는 혁신이 질식당할 수밖에 없다. 갖은 역풍을 헤쳐나온 자본주의가 미래로 가는 인공지능(AI) 혁명의 변곡점에 선 것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거역할 수 없다는 또 하나의 강력한 증거다. 미·중 충돌 같은 변수는 이런 거대 변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가 2023년 AI 하이퍼 사이클을 내놨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파운데이션 거대 언어모델(LLM)과 생성형 AI가 ‘기대의 최정점’에 올라선 모습

    2023.09.06 17:58
  • [안현실 칼럼] 기술을 공유하는 패권국은 없다

    전 세계 투자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가는 미국과 이를 바라보는 동맹국 입장이 똑같을 수 없다. 특히 경제가 나빠지고 있는 동맹국은 착잡한 맘이 들 것이다. 미국 백악관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1100억달러 이상의 민간투자를 끌어냈다고 밝혔다. 반도체법까지 더하면 각국의 대미 투자는 2240억달러(약 310조원)에 이른다는 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다. 대미 투자를 이끈 것은 한국 유럽 일본 등 동맹국 기업들이다. 미국은 공급망을 찾아오고 있다고 찬가를 부르지만 동맹국으로선 자국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투자였다고 여길 것이다. 한·미·일 초밀착 협력을 표방한 캠프 데이비드 원칙의 안보적 의미를 평가하더라도 경제적으론 긴장감을 높여야 할 이유가 많다. 한쪽 블록을 택한다고 모든 경제적 문제가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국가끼리 동맹관계를 깊게 해도 기업은 죽고 사는 경쟁을 해야 한다. 만약 자국 기업이 블록 안에서 경쟁력을 잃고 산업과 경제가 죽으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안보냐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미·일이 하나의 국가가 아닌 이상 이해관계가 같을 수 없다. 한·미·일이 보여주는 경제 실상부터 다르다. 역대급 자국 중심주의로 투자·일자리를 싹쓸이하는 미국, 엔저 흐름으로 기업 실적이 좋아지고 임금이 오르기 시작하는 일본이다. 반면 한국은 올해 1%대 중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성장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집중 겨냥하고 있지만, 한·일은 동북아시아 경제 안정이 국익에 더 부합한다. 싫든 좋든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특히 그렇다. 게다가 한·일은 여전히 산업경합도가

    2023.08.23 17:42
  • [안현실 칼럼] '인구학적 자살국' 원하는가

    미국 반도체업계가 인력 부족 때문에 산업 진흥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블룸버그통신 보도가 그 어느 때보다 심상치 않게 들린다.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에 올인하고 있지만 인력 확보는 또 다른 이슈다. 미국 내에서 반도체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예상은 벌써부터 제기돼 왔다. 자격을 갖춘 미국인이 충분하지 않은 가운데 미국으로 유학 와 자격을 갖춘 외국인이 미국을 떠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존 뉴퍼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 회장이 이민 개혁을 촉구하고 나선 이유일 것이다. 이민 수용국인 미국이 이 정도로 나올 때는 인재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이민을 필요로 하는 국가가 사람을 가려 뽑는 시대가 아니라 이민 희망자로부터 선택받는 시대로 가고 있다. 이민 유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낮은 임금 국가는 이민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어느 순간 이민 희망자를 더는 구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면 그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인재난은 세계적 현상이다. 자국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인재 양성을 기다려 줄 인내심을 가진 기업은 없다. 기업 간 인재를 뺏고 빼앗기는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국가 간 인재를 둘러싼 전쟁 유혹도 더욱 커진다. 2064년 세계 인구가 97억 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란 미국 워싱턴대 전망이 현실이 되면 더욱 그럴 것이다. 세계 주요국이 첨단산업 인재 확보에 혈안이 된 상황에서 ‘겉은 영토 빼앗기, 속은 인재 빼앗기’ 전쟁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역사는 인구 문제가 어떤 결과를 몰고 오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의 역사인구학자이자 가족인류학자인 에마뉘엘 토드는 1976년 옛 소련 붕괴를 예견

    2023.08.09 17:15
  • [안현실 칼럼] AI 강국 싱가포르의 지혜

    싱가포르가 글로벌 인공지능(AI) 강국으로 급부상했다. 2023년 영국 미디어 회사 토르토이스가 62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글로벌 AI 인덱스에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로 올라섰다. 경제 규모와 인구 대비 AI 역량을 보는 집중도(intensity)에서는 이스라엘도 제친 세계 1위다. 이번 평가는 세계적으로 스타트업 투자가 냉각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챗GPT 등 초거대 생성형 AI 붐이 불고 있는 시기여서 특히 눈길을 끈다. AI 잠재력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싱가포르는 인재(4위), 인프라(3위), 연구(3위), 스타트업·투자·비즈니스(4위)에서 최상위권 국가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스타트업·투자·비즈니스의 경우 한국은 18위를 기록, 싱가포르와의 격차가 가장 크게 났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64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하는 국가 경쟁력 4위(2023년), 디지털 경쟁력 4위(2022년)인 싱가포르를 두고 역사적 행운이 겹쳤다는 해석도 있을 수 있다. 영국이 아편전쟁 후 중국과 인도를 연결하는 중계항으로 싱가포르 개발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전환점에서부터 최근 중국이 홍콩국가안전유지법을 시행하면서 ‘1국 2제도’가 사실상 붕괴돼 홍콩이 싱가포르에 밀리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하지만 싱가포르가 미·중 충돌 상황에서 AI 강국으로 약진한 데는 더 큰 요인이 있다. 세계 권역마다 관문 역할을 하는 허브 도시가 있다. 바로 미국 뉴욕, 영국 런던이 떠오르겠지만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최적지로 꼽힌다, 홍콩이 중국화되면서 더욱 그렇다. 기후와 치안, 생활의 질만 따진다면 경쟁할 도시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인 비즈니스의 자유나 용이함을 따지는 순간, 싱가포르를 능

    2023.07.26 17:37
  • [안현실 칼럼] R&D 예산 재배분 소동을 보며

    “인공지능(AI) 암흑기일 때 정부가 미래를 내다보고 연구개발(R&D)을 지원했다.” 대통령 일행이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제프리 힌튼 토론토대 교수가 한 말이다. 대통령실은 “AI 강국 캐나다의 성공 요인이 안정적·장기적 투자에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미국 같은 국가마저 포기하는 상황에서 캐나다처럼 정부가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연구를 지원할 수 있을까. 정권이 새로 들어설 때마다 R&D 예산 재배분 소동이 벌어지는 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 대통령실 주장대로 정부 R&D 예산을 갈라먹기·나눠먹기 하는 관행이 기득권의 부당이득이라면, 이게 어디서 비롯됐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현상적 원인이 아니라 구조적 원인을 제거해야 시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권 카르텔이라면 그 자체로 심각한 담합이요, 범죄다. 관련 조직을 해체하고 관계자들을 문책해야 할 일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정부 연구비를 받은 과학기술계만 죄인처럼 내몰리는 형국이다. 갈라먹기·나눠먹기로 예산을 배분해준 기획재정부와 과학기술혁신본부는 말이 없다. 정부 R&D 예산을 가장 많이 집행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도 묵묵부답이다. 부처와 관료의 유체 이탈에 말문이 막힌다. R&D 예산을 제로베이스에서 재배분하겠다면 방향성·전략성이 먼저 나와야 한다. 번갯불에 콩 볶듯 해치우는 어떤 재배분도 또 하나의 갈라먹기·나눠먹기가 되고 만다. 세계 최고 연구기관 및 연구자와 국제협력을 확 늘리라는 대통령실 지시만 해도 그렇다. ‘외교를 위한 과학(science for diplomacy)’과 ‘과학을 위한 외교(diplomacy for science)’는 서로 다른 얘기다. 만약 연구를 위한 국제협력이라면 돈으로만

    2023.07.12 18:04
  • [안현실 칼럼] 죽고 사는 경쟁력의 위기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당연시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대(對)중국 경상수지가 21년 만에 적자로 떨어졌다. 2021년 234억1000만달러 흑자에서 약 312억달러 감소한 77억8000만달러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대미국 경상수지 흑자가 222억5000만달러 늘고, 대일본 경상수지 적자가 44억2000만달러 줄었지만 대중국 경상수지 감소폭에 미치지 못했다. 정부 설명대로 외교적 갈등이 아니라 중국이 중간재 등의 경쟁력을 키운 결과라면 이는 곧 한국의 경쟁력 상실을 의미한다. 스스로 탈(脫)중국하는 것과 경쟁력을 상실해 탈중국당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대미국, 대일본 경상수지 개선이 앞으로 계속되리란 보장도 없다. 미국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제 또 경상수지 흑자를 문제 삼을지 모른다. 반도체의 경쟁 구도가 달라지고 있는 점도 변수다. ‘칩4’라고 하지만 미·일만 이로운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다. 한국으로선 경쟁 상대가 늘어난 형국이다. 초거대 인공지능(AI)을 앞세운 미국 빅테크가 글로벌 비즈니스 생태계를 장악하는 순간 대미국 경상수지 패턴이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엔화 약세도 심상찮다. 대일본 경상수지를 악화시킬 요인인 데다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해외 시장에서 불리하다. 한국의 경쟁력 고민이 한층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경상수지는 298억3000만달러 흑자였지만 전년에 비해 554억달러 줄었다. 올해는 경상수지가 164억달러 흑자에 그칠 것이란 게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망이다. 상품 흑자로 서비스 적자를 메우던 경상수지 구조에 한계가 오자 당장 서비스업을 수출산업으로 키우자는 주장이

    2023.06.28 18:35
  • [안현실 칼럼] 동맹조차 'GPT 독립' 외치는 이유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 영국이 초거대 인공지능(AI) 언어모델의 독립을 외치고 있다. 생성형 AI 챗봇 서비스를 선도하는 미국 오픈AI의 챗GPT, 구글의 바드 등에 맞서 ‘자체 능력(sovereign capability)’을 강화하는 이른바 ‘브릿GPT(BritGPT) 전략’이 그것이다. 영국 보수당 정부는 GPT4 같은 파운데이션 모델 훈련을 위해 1억파운드, 첨단 슈퍼컴퓨터에 9억파운드를 투입한다고 밝혔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미국 빅테크 의존 구조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눈길을 끌기는 야당인 노동당도 마찬가지다. 노동당 싱크탱크는 10억파운드를 누구 코에 붙이겠느냐며 100억파운드를 더해 110억파운드를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와의 경쟁을 넘어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이 투자할 유인이 약한, 의료·에너지 등 모두를 위한 AI(AI for good)나 AI 안전 연구는 정부가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까지 추가됐다. 영국이 좌우 가리지 않고 위기감을 갖는 배경엔 18세기 1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경험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골드만삭스는 생성형 AI가 향후 10년 세계 총생산(GDP)을 7%(약 7조달러) 끌어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보수적 추정치로 보이지만 미국과 중국의 GDP 차이가 7조달러란 점을 생각하면 국가 간 판도를 뒤집고도 남을 변수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추락, 추격, 추월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GPT 독립에 부심하는 영국에 비하면 한국은 미국 빅테크에 대항마로 나설 기업이 있다는 점에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벤처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네이버, 카카오 같은 플랫폼이다. 다른 국가라면 플랫폼 기업을 국가전략자산으로 활용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국내

    2023.06.14 18:01
  • [안현실 칼럼] 美·中보다 무서운 놈이 나타났다

    “과거 어느 세기가 예감이나 할 수 있었는가.” “경탄할 만한 예술을 창조해냈다.” “그 이전의 모든 시대와 구별해준다.” “새로 생겨나는 모든 것조차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에 이미 낡은 것이 되고 만다.” <공산당 선언(1848년)>에 나오는 대목들이다. 당시 부르주아에 대한 이 표현들을 지금 초거대 인공지능(AI) 언어모델(LLM)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오픈AI의 챗GPT 공세에 맞서 구글의 반격이 본격화됐다. 챗GPT와 구글 바드(Bard)의 비교가 쏟아지는 가운데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게 있다. 바드가 영어 외 언어로 한국어를 우선 지원한 점이다. 상대를 알지 못하면 경쟁을 하든 협력을 하든 번지수를 잘못 찾기 십상이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움이 없을 것이고, 상대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반드시 위태롭다”는 손자병법까지 소환해야 할 지경이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기술 수용도(피드백)가 빠른 한국은 시장 가치가 크다”고 했다. 더없이 좋은 테스트베드란 뜻이다. 실제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데이터 가용성 측면에서 비영어권 국가 중 구글의 안드로이드 점유율이나 검색 점유율이 높은 국가를 먼저 골랐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다른 한편으로는 구글의 전략적·의도적 배치란 해석도 가능하다. 미국 중국 러시아를 빼면 독자 검색엔진을 가진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구글이 중국 러시아는 어차피 못 들어간다고 계산한다면 나머지 세계의 통일이 달성되는 것이다. 구글 바드의 한국어 출시가 다음 타깃 시장의 예고라면 당장 네이버 등 정보기술(IT) 기업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검색시장은 물론이고 연관 서비스

    2023.05.17 18:33
  • [안현실 칼럼] 또 하나의 공급망 전쟁 '新전력망'

    세계는 지금 두 가지 공급망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중 충돌이 상징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하나의 전쟁이라면,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전력망 혁신이 또 하나의 전쟁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이 가운데 전기 생산에서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를 모두 수용할 전력망을 ‘궁극의 공급망(ultimate supply chain)’으로 표현했다. 인공지능(AI) 등 미래 첨단산업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핵심이 되고 있지만, 새로운 전력망 없이는 아무리 화려한 산업 비전도 그림의 떡이란 얘기다. 2042년까지 삼성전자가 300조원을 투자한다는 용인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만 해도 어디선가 끌어올 전력망이 최대 과제로 떠오른 현실이 그렇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지각 변동으로 2050년 넷제로 선언 국가들이 약속을 지킬지 회의론·지연론이 나오지만, 탈(脫)탄소 방향성이 바뀔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없다. 러시아 의존 탈피를 선언한 유럽연합(EU)은 넷제로 노선을 견지한다는 방침이다. 정권 교체에 따라 탈탄소정책이 왔다 갔다 한다는 미국은 화석연료든 재생에너지든 양쪽 패를 다 쥐고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대응이 가능한 나라다. 2060년 넷제로를 선언한 중국은 에너지 백년대계를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문제는 에너지 지정학에 매우 취약한 한국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50년 넷제로 필수조건으로 강조하는 게 세 가지다. 국민 행동 변화와 유례없는 기술혁신, 그리고 전력망이다. 한국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국민 행동 변화를 가져올 소비자 선택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전기요금 정상화다. 시그널이 돼야 할 가격이 정치 포퓰리즘 탓에 배가 산으

    2023.05.03 18:16
  • [안현실 칼럼] 정치는 전기요금에서 손 떼라

    자본주의를 시장과 에너지의 함수로 보는 학자도 있다. 18세기 산업혁명은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에너지로 가능했다. 모든 산업혁명은 예외 없이 에너지 혁명과 동행했다.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23, 그리고 독일 하노버 메세 2023은 공통점이 있다. 디지털 전환(DX)과 인공지능(AI)이 변화의 한 축이라면, 에너지 전환과 친환경은 또 다른 축이다.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에너지를 향한 대전환이다. 기회(시장)와 비용(에너지)이 진화의 방향성을 결정한다는 관점과도 맥이 통한다.“당에서 최종 판단할 부분이다.” 전기요금 인상 여부와 폭은 집권여당에 달렸다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다. “정치가 전기값을 정한다”는 얘기다. 에너지 대전환 앞에서 한국의 현실이 이렇다. 시장경제를 한다는 국가에서 정치가 가격 시그널을 봉쇄하고 있는데 경제부총리는 허수아비로 있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국민을 위한다는 정치 논리는 언제나 함정을 숨기고 있다.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물가안정 논리만 해도 그렇다. 에너지도 ‘상품(commodity)’이다. 전기요금이 제때 비용을 반영하지 못한 채 폭탄 돌리기로 가면 나중에 급격히 올라 물가 충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원가보다 낮은 비정상 가격으로 인해 에너지 수입이 증가하고 무역적자가 가중되면 환율이 올라가고, 이는 다시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유발된다. 중장기 물가 상승으로 실물경제 타격이 길어지면 국민은 더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선진국들은 국민을 위할 줄 몰라서 인상 요인을 가격에 즉각 반영하는 게 아니다. 가격 인상으로

    2023.04.19 18:07
  • [안현실 칼럼] 초거대 AI 게임 끝나지 않았다

    이 세상에 ‘정의의 전쟁’이 있을까. 중세시대 종교전쟁은 선악의 정의를 내세웠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전쟁과 정의는 분리됐다. 전쟁도 국익의 도구가 된 것이다. 하물며 연구개발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기술전쟁은 선전포고도 없다.마이크로소프트(MS)와 오픈AI가 챗GPT에 이어 GPT4.0으로 초거대 인공지능(AI)을 치고 나가는 상황에서 윤리성·책임성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구글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쟁 기업이 눈앞에서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위협하는 판국에 윤리성·책임성은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해석이다.지난해 11월 말 챗GPT를 공개한 타이밍은 아마도 시장의 반응 등을 미리 알아보는 치밀한 내부 실험 끝에 잡혔을 것이다. 초거대 AI 모델의 기술적 한계가 있지만 활용 가능성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선공개 후 피드백을 통해 문제를 줄여나가는 전략’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한국에서 기업이 이런 전략을 감행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최소 6개월 동안 GPT4.0보다 강력한 AI 훈련을 중단하자.” 전문가 1000명의 서명으로 ‘퓨처 오브 라이프 인스티튜트(Future of Life Institute)’ 사이트에 공개된 제안이다. 참여자들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정작 이들부터 이 제안의 실현 가능성을 믿을까 싶다. 오픈AI의 기술 공개 중지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그들이 말하는 ‘오픈(open)’이 공짜(free)도, 자유(free)도 아님을 보여준다. 오로지 내게 이익이 될 때까지만의 오픈이다. 오픈의 무서운 진실이다.그렇다면 초거대 AI 시장은 결국 미국 빅테크의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으로 갈 수밖에 없는

    2023.04.05 17:35
  • [안현실 칼럼] 서비스업, 글로벌화냐 식민지화냐

    2003년 노무현 정부는 미래 성장 동력 찾기에 부심했다. 미래학자들이 잇달아 한국을 찾았다. <메가 트렌드>의 저자 존 나이스빗도 그중 한 명이었다. 당시 나이스빗이 한국의 성장 동력으로 꼽은 것은 ‘기업가정신을 함양하라’는 등 전략이 대부분이었다. 업종으로 꼽은 유일한 것은 관광이었다. 거창한 제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 사람들로서는 실망스러운 주장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관광을 키우라는 나이스빗의 혜안이 느껴진다.당장의 절박한 이유가 있다. 미·중 충돌이 반도체를 넘어 제조업 전반에 악영향을 몰고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미·중 충돌 이전의 제조업에서 한국이 아니면 안 되는 고기술,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 전략적 재편이 불가피해 보인다. 구조조정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과정은 저성장의 고통이 될 것이다. 이때 성장과 일자리의 충격을 흡수하고 경제 구원투수 역할을 해줄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서비스업의 존재는 생존의 과제가 된다.최근 야놀자리서치 출범 세미나에서 장수청 원장은 “한국이 디지털 전환을 무기로 트래블 테크 기업과 관광산업의 글로벌화에 나서지 않으면 관광 식민지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부킹홀딩스, 에어비앤비, 익스피디아, 트립닷컴 등 이른바 글로벌 OTA(Online Travel Agency) ‘빅4’의 과점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외국인의 국내외 관광은 말할 것도 없고, 내국인의 해외 관광에 이어 내국인의 국내 관광마저 위협받는 지경이다. 서비스업에 대한 차별과 산업 전략의 부재, 글로벌 스탠더드와 따로 노는 갈라파고스 규제 등의 필연적 결과란 게 장 원장의 진단이다.

    2023.03.22 17:47
  • [안현실 칼럼] 한국은 미국에 '노(NO)'할 수 있는가

    미국이 산업정책의 본색을 다시 드러냈다. 전기차 육성 등을 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이어 미국 내 반도체 제조를 위한 칩스(CHIPS)법이 그렇다. 산업정책은 정부 개입을 일삼는 국가나 하는 하수(下手) 놀음이라고 비난하던 미국이 이럴 수 있느냐고 하겠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은 원래 산업정책의 DNA를 가진 나라다. 독립전쟁 후 알렉산더 해밀턴 미국 재무부 장관의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가 그 상징이다. 영국 타도를 외친 국내 산업 보호론이다.그 후 일본의 성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차원에서 산업정책에 관심을 갖는 계기를 제공했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선진국이 구조조정에 직면한 사이 일본이 치고 나간 배경이 궁금했던 것이다. 198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자유주의자와 개입주의자 간 뜨거운 논쟁은 그 연장선상이다. 일본의 위협을 묵과할 수 없다는 미국 내 개입주의자는 1990년대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로라 타이슨의 ‘경제안보론’이 그것이다.제조업에서 밀리던 미국이 정보기술(IT) 신경제로 주도권을 쥐자 세계는 다자 간 자유무역으로 가는가 싶었다. 1990년대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보조금을 앞세운 각국 산업정책은 규범을 찾아가는 시기가 도래했다. 보조금 남발이 공정한 경쟁을 해치고 국제무역을 왜곡하면 안 된다는 논리에서였다. 이 규범하에서 미국은 세계 최고 연구개발 투자로 신산업 창출을 선도하며 부러움을 샀다. 미래 지향형 신산업정책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급부상하자 상황이 돌변했다. 미국은 WTO가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비토했고 다시 경제안보론이 등장했다. 첨단기술로부터의 중국 차단이 최우선 정책으로 올

    2023.03.08 18:07
  • [안현실 칼럼] 경쟁의 본질은 관치(官治) 철폐다

    “국민연금이 정치적 목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KT 차기 대표 선임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어이없는 광경과 주주가치 훼손에 뿔난 외국인 투자자의 목소리다. “3년만 하면 됐지, 왜 더 해?” 이게 권력의 의중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 KT 대표 공모에 30명이 넘는 후보가 지원했다. 면면을 보면 개그가 따로 없다. 정부가 최고경영자(CEO)를 낙점한다고 일반이 인식하는 공기업·공공기관처럼 후보들이 어디에 줄을 대려 할지 자명하다. KT 포스코 등 이른바 ‘주인 없는 기업’으로 불리는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가 문제라면 제도부터 고치는 게 순서일 것이다. 회사법의 전제가 소유분산기업이고 CEO 선임은 주주의 몫이란 관점에서 보면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우려스럽다. 21세기, 그것도 4분의 1이 다 돼가는 시점에 이런 장면이 한국에서 연출된다는 것 자체가 슬프다.은행과 통신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는 과점체제가 문제라지만 해당 업종은 난방비 유탄을 맞고 있다고 여긴다. 여기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보자. 은행·통신사업자가 과점인 탓에 경쟁을 하지 않아 문제인 것인가. 그들이 담합을 하고 있다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면 될 텐데, 그렇다면 공정위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이게 아니라면 물음은 또 이어진다. 인사와 가격을 누가 좌지우지하는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은행이 자유롭게 경쟁과 혁신을 할 수 있는가. 통신 가격을 누가 정하는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를 찾아가지 않고 통신사업자가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는가.독점보다, 완전경쟁보다 그 중

    2023.02.22 18:01
  • [안현실 칼럼] 정치가 소프트파워 망칠까 두렵다

    “미국인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재앙이 아니다. 미국 역사에서 단일한 국민적 정체성(identity)은 일반적인 상황도 아니었다.” 인종 문제, 분열과 분단, 양극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미국을 놓고 정치학자 새뮤얼 골드먼이 <내셔널리즘(국민국가주의) 이후(After Nationalism)>를 통해 내린 진단이다. 내셔널리즘 하면 분열이 아니라 통합의 정체성 이미지가 바로 떠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깨는 신선한 주장이다. 골드먼은 하나의 내셔널리즘 잣대로 억지로 통합을 이루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오히려 분열을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마다 다른 정체성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지역 공동체를 통해 활발한 실험과 해법을 모색하고 확대하자는 게 그의 제안이다.단일 민족이라고 자랑하지만 정치적 분열과 세대 간 등 다양한 갈등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것은 서구의 소프트파워”라고 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한국이 가진 3대 소프트파워로 K팝 등 문화, 합리적 경제·외교정책과 더불어 민주주의 가치를 들었다. 한국에서는 누가 선거에서 이길지 모를 정도로 권위주의 국가들과 다르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런 21세기 한국에서 여당 대표 경선이 초등학생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민주주의 실험장이자 본보기가 돼야 할 정당 선거가 ‘다름’ 자체를 일절 인정하지 않는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채찍(강제와 위협)과 당근(대가와 회유)만 난무할 뿐, 공감·비전·소통의 소프트파워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과거로 가는 시대정신도 문제다. 21세기 정치가 툭하

    2023.02.08 17:35
  • [안현실 칼럼] 모든 게 무기요, 안보자산이다

    지금은 전시(戰時)나 다름없으니 ‘항구적 전시경제체제’를 준비해야 한다고 누가 주장하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세계화는 끝났다고 말하는 일본의 평론가 나가노 다케시는 이번 인플레가 역사적으로 볼 때 제5파라고 분석한다. 세계 정치경제 질서가 현저히 불안정하고, 에너지·식료·물·전략기술에 노동력까지 희소해지고 있어 전시경제체제로 가지 않으면 국가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단도 주장도 과장됐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그럼에도 위기를 돌파하려면 과거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달 탐사 계획처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담대한 투자나 그 이상의 비상한 대응이 요구된다는 제안은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안보가 경제”, “경제가 안보”란 표현이 일상이 돼버린 지금, 안보도 경제도 과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게 됐다. 이시카와 아키토 모모야마가쿠인대 교수가 쓴 <모든 게 무기가 된다>의 저서명 자체가 시대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어디까지 무기가 아니고, 어디부터 무기가 되는지 불명확하다.” “개별적으로는 악(惡)이 아닌 물건과 기술, 지식을 응용하거

    2023.01.25 18:09
  • [안현실 칼럼] 다음 게임체인저는 누구인가

    “혁신은 경기 침체기에 속도를 내면서 무리를 이루다가 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하면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튀어 나가면서 새로운 기술 변화의 강력한 파도를 몰고 온다.” ‘국가혁신체제(national innovation system)’ 개념을 세운 영국의 경제학자 크리스토퍼 프리먼의 얘기다.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3을 주관한 소비자기술협회(CTA)는 프리먼의 발언을 인용하며 세계 경제 위기 극복의 기대를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2008~2009년) 때 스마트폰 혁명처럼 지금의 경기 침체 위기를 벗어나게 해줄 게임체인저가 나타날 것이란 주장이다.스마트폰 이전에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가 있었다. 애플이 원조 PDA로 불리는 뉴턴을 1992년 CES에서 발표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다. 그 후 IBM 소니 등이 잇달아 뛰어들었다. 스마트폰 혁명의 여명기인 1990년대 후반 PDA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한 것은 팜이었다. 이런 혁신의 전조 과정을 거치면서 애플이 아이폰으로 모바일 혁명의 문을 연 게임체인저로 우뚝 섰다.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자본주의의 위기감이 상당했다. 당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조지프 슘페터를 소환했다. ‘빅4 경제학자’ 관점에서 조명한 금융위기 기사가 큰 주목을 받았다. 미래를 향한 낙관론은 슘페터 쪽에서 나왔다. 슘페터가 살아있다면 “자본주의의 위기가 아니다. 창조적 파괴가 온다는 강한 신호”라고 말했을 것이란 내용이다.공급망 문제, 반도체 재고 증가, 노동 공급 부족,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등 곳곳의 위기 신호로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신기술의 경연장 CES 2023에 ‘

    2023.01.11 17:54
  • 웹3.0·메타버스·혼합현실…'新비즈니스 혁명' 이끈다

    “‘넥스트 빅싱(next big thing)’이 모습을 드러낸다.”위기의 세계 경제를 구해낼 구세주는 정부의 경제정책도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도 아닌 ‘차세대 혁신’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 CES 2023을 앞두고서다. 넥스트 빅싱은 처음에는 장난감처럼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되는 변화를 의미한다.새로운 장르를 여는 신(新)비즈니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장난감을 ‘빅싱’으로 만들어줄 주변 기술과 핵심 인프라가 발전하고 기기와 서비스 간 불균형이 해소돼야 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이런 과정을 예의 주시하던 파괴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사전에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사후적으로 절묘했다고 평가할 만한 타이밍에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지배적 표준을 마련한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번져나간 스마트폰·모바일 혁명도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CES 2023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것은 파괴적 넥스트 빅싱 후보군이 과거보다 구체적인 모습을 갖춰가고 있어서다. AI는 디지털 전환으로 가는 핵심 인프라로, ESG는 기본적으로 추구할 공통 가치로 모든 비즈니스에 공기나 전기처럼 스며들어 더 이상 단일 주제로 다루기 어렵다.시장의 관심은 문제를 해결하고 수익도 낼 수 있는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쏠려 있다. 가트너의 하이퍼 곡선을 빌리면 ‘혁신의 촉발’ ‘기대의 정점’ ‘현실과의 갭 성찰’ 단계가 지났다는 얘기다. 시장의 인정을 받으려면 ‘기대와 현실의 접점’을 찾거나 &lsquo

    2023.01.02 18:28
  • [안현실 칼럼] 스타트업 무너지면 성장 빙하기 온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위기란 단어에 ‘소생(甦生)’의 의미를 담았다.” 일본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말이다. 고대 로마인에게 ‘인프라’는 수요가 확실해서가 아니라 수요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행하는 대사업이었다는 해석도 눈길을 끈다. 인프라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란 얘기다.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이 땅의 정치는 어떤 인프라를 구상하고 있는가. 정부가 내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신(新)성장 4.0’을 내놨다. 성장 1.0 농업(빈곤 극복), 성장 2.0 제조업(중진국 진입), 성장 3.0 IT산업(선진국 진입) 성장 경로를 업그레이드해 성장 4.0 미래 산업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지난 60년간 기획만 갖고 먹고살아온 경제관료들의 수준이 여기까진가 보다. 독일의 ‘인더스트리(industry) 4.0’(지금은 인더스트리 5.0으로 진화), 일본의 ‘소사이어티(society) 5.0’은 철학적 고민이라도 담고 있다. 신성장 4.0은 그 정체성을 알 수 없다. 과거 산업 육성·정부 주도 방식에서 벗어나 민간 중심으로 프로젝트로 추진한다고 했지만, 프로젝트는 이미 다 정해졌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신성장 전략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이행 상황을 점검한다고 한다, 말만 민간 중심이지 과거 산업 육성·정부 주도 방식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신성장 전략에 맞춰 금융·인재·글로벌 협력 등 인프라를 정비하겠다는 대목에 이르면 정부가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고나 있는지 의문이다. 관이 투자 방향을 정하면 민간 금융이 따라가야 한다는 발상이 아직도 활개를 친다. 첨단 분야 인재 양성 방안을 마련한다지만, 인구도 줄고 있는데

    2022.12.28 17:58
  • [안현실 칼럼] 세계화의 재구성…수출 패러다임 바꿔라

    분업은 자본 축적과 함께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말하는 ‘번영의 원리’로 통한다. 스미스는 분업은 인간 본성의 하나인, 거래하고 교환하고 교역하는 성향, 이른바 ‘교환성향(propensity to exchange)’의 필연적 결과라고 말한다. 분업이 교환을 낳는 게 아니라 교환이 분업을 낳는다는 얘기다. 개인과 기업, 국가 단위 전문화도 교환성향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의미가 된다.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충돌로 ‘탈(脫)세계화’가 시작됐다는 전망이 많았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가 이런 전망과 사뭇 뉘앙스가 다른 현실이 전개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지식 등 무형재와 서비스, 인재가 만들어내는 글로벌 교역이 상품의 바통을 이어받아 팬데믹 중에도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데이터 흐름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는 분석은 자본주의가 ‘데이터주의’로 가고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또 각국의 자급 선언과 달리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중요 제품이나 자원을 수입에 의존하는 분업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 안보를 내세운 자국 중심주의로 글로벌 가치 사슬이 변화에 직면해 있지만, 탈세계화가 아니라 ‘세계화의 재구성’으로 봐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무형재와 서비스, 인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교환성향이 만들어낸 분업이 출현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새로운 교환성향의 진원지가 데이터주의를 이끄는 ‘디지털 전환’임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한국의 수출 엔진이 식어가고 무역적자 행진이 이어지면서 비상이 걸리고 있다. 정부는 내년에 수출 살리기에 올인하

    2022.12.15 00:39
  • [안현실 칼럼] 지정학 제약 깰 경제전략 제시하라

    지난 60년(1960~2019년) 동안 미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평균 2.0%로 나타난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성장모형에서 말하는 기술 진보율이 이 성장률이다. 총요소생산성이 미국을 1로 할 때 60% 수준인 한국이 구매력 기준 미국 소득수준으로 수렴하려면 어떤 성장 속도로 가야 할까. 분명한 것은 성장률 2.0% 수준으로는 미국 소득수준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점이다(김지욱 <성장의 재역설>).1960년대 이후 코로나 확산, 글로벌 금융위기, 외환위기, 2차 오일쇼크 때를 제외하면 2.0% 이상 성장률로 달려온 한국 경제 앞에 저성장이 현실로 닥치고 있다. 나라 안팎 전망기관이 잇달아 내년 한국 성장률을 1%대로 내리고 있다. 당초 2.5%로 전망했던 정부도 1%대를 받아들일 모양이다. 세계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라지만, 성장률 전망치를 내리는 것 말곤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느냐는 생각에 이르면 저성장 쇼크가 우려된다.“세계가 그렇다”고 해도 정부 경제팀도 똑같은 얘기나 하라고 국민이 혈세를 내는 게 아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할 때 실력이 드러나고 추월·추락·추격의 엇갈림이 일어난다. 직선이 곡선으로 변하는 순간이 그렇다. 세계 경제가 나빠 어쩔 수 없다는 운명론은 추락으로 직행하는 길이다.경제학 모델은 가정과 전제, 조건을 도입하지만,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변수는 시장 과정에서 나온다. 기술 혁신은 물론이고 환경 변화도 예외가 아니다. 엄밀하게 말해 경제 시스템에 외생변수는 없다. 좋든 나쁘든 경제는 벌통 같은 현실에서 움직이는 수많은 주체의 상호작용이다. 팬데믹도, 미·중 충돌도, 전쟁도, 지정학적 블록화도 내생변수로 본다면 운

    2022.11.30 18:40
  • [안현실 칼럼] 이주호는 관료와의 전쟁서 이길까

    “르네상스 시기의 창조성 폭발은 페스트균 감염증 만연과 무관하지 않다.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 발생 다음 해인 1919년 전설적인 창조성 학교 바우하우스가 탄생한 것도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여기에 필연성이 있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역시 새로운 창조성 출현으로 이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일본의 디자인 전략가 다치카와 에이스케는 <진화사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물의 진화처럼 ‘변이’와 ‘적응’을 반복하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진화사고 관점에서 또다시 위기를 뛰어넘을 교육의 진화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 와닿는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AI)과 인간의 분업·협업·공존을 말하는 지금, 인간의 창조성 재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더욱 그렇다.기획재정부가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인 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 예산을 교육부가 관리하는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로 옮기겠다고 했다가 과학기술계의 거센 반발로 철회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KAIST는 그나마 한국에 존재하는, 일반 대학과 다른 변이 모델에 해당한다. 대학이 살아남으려면 변이 모델을 더욱 늘려도 시원찮을 판국에 예산을 무기로 전부 획일 모델 바구니에 담으려고 한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었다. “다 같이 죽어라”는 것에 다름없다.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 교육부가 폐지될지 모른다던 분위기에 비하면 반동(反動)도 이런 반동이 없다. 반동의 주범은 대학을 통제하는 관료주의다. 기재부는 초·중·고교 운영에 쓰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여분을 고등교육으로 돌리는 특별회계로 KAIST가 들어오면 더 많은

    2022.11.16 19:12
  • [안현실 칼럼] 카카오 사태보다 기막힌 국가의 민낯

    ‘국가 경쟁력 27위, 디지털 경쟁력 8위.’ 스위스 국가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22년 한국의 순위다. 국가 경쟁력과 디지털 경쟁력이 저렇게 차이 나는 이유가 궁금했다.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먹통 사태에서 드러난 국가의 민낯이 의문을 풀어줬다.디지털 기술의 진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한 게 플랫폼이다. 소비자는 선호에 따라 플랫폼을 갈아탈 수 있다. 멀티호밍도 가능하다. 특정 플랫폼이 독주하면 독점 시비가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새 플랫폼이 끊임없이 등장하면 특정 플랫폼이 계속 1등을 달리기 어렵다. 자유 시장경제에서는 법보다 시장이 무서운 이유다.불행히도 이 나라 정부와 정치의 플랫폼 인식은 후진적이다. 정부가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유혹에 빠지는가 하면, 이해집단이 특정 플랫폼을 타깃으로 지목하면 정치가 나서 기어이 죽이고 만다. 모빌리티 타다를 몰아낸 것도 여야 정치권과 정부, 검찰의 합작이었다. 그 결과 카카오모빌리티 의존도는 더 높아졌다. 그런 정치와 정부가 독점 폐해를 운운한다. 새 플랫폼 촉진에는 관심이 없고, 플랫폼을 규제할 궁리만 한다. 시장을 왜곡하는 것은 정부와 정치다.카카오 사태가 터지자마자 원인 파악은 뒤로하고 대통령실이 들고나온 것은 뜬금없는 안보 논리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독과점을 언급하며 ‘국민 입장’이란 새 기준으로 카카오를 주파수 국가 자원을 사용하는 기간통신망으로 규정해버렸다. 똑같이 독과점으로 비난받는 네이버의 빠른 복구는 언급조차 없었다. 자율규제가 휴지가 되는 순간이었다. 대통령실은 “해킹을 통해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가정까지 동원해 안보 논

    2022.10.19 17:44
  • [안현실 칼럼] 中 훔치고, 美 판깨고…강대국 실격 시대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위험은 소련과 싸우면서 그들을 닮아가는 것이다.” 미·소 냉전의 설계자이자 대(對)소련 봉쇄정책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캐넌의 경고다. 중국과 디커플링을 불사하겠다는 미국이 어떻게 싸울지 한 번쯤 생각해볼 대목이다. 미국이 중국의 위협에 동맹국과 협력해 대응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면 적어도 동맹국이 미국을 의심하게 하는 일만은 피해야 할 것이다.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1980년대 전략적 무역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다. 국가가 첨단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집중적인 연구개발 투자와 보조금, 보호 조치를 동원해 경쟁 우위를 추구하고 과점화로 상대국 기업을 눌러 시장을 선점한다는 내용이다. 실제 적용에는 문제가 많다고 그가 우려했던 대로 전략적 무역정책이 국제무역을 왜곡시켜 온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의 외면으로 세계무역기구(WTO)가 힘을 상실한 데다 정치와 안보 논리가 경제를 뒤덮는 지금의 상황은 그때보다 훨씬 위험하고 심각하다.말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지 미국은 중국과의 충돌을 이유로 무역의 판을 깨고 동맹국이 애써 키워온 첨단산업과 기술을 미국으로 옮기라고 압박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가장 안전해 투자가 몰려오고 있다지만 그것이야말로 강대국의 일방적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잘 보여야 너희가 산다”는 게 미국이 동맹국에 보내는 시그널이라면, 그래서 동맹국이 타율적으로 첨단산업과 기술의 재배치를 강요당한다면, 21세기판 ‘조공무역’과 다를 바 없다. 경제학도 무역학도 휴지로 만드는, 그냥 막 가자는 것이어서 “미국은 중국과 뭐가 다르냐”

    2022.10.05 17:35
  • [안현실 칼럼] 기업에 내부총질하는 정부 될 건가

    “민영화된 공기업이다.” ‘하늘의 물고기’ ‘바닷속 새’처럼 형용모순의 ‘민영화된 공기업’이 21세기 한국에 실재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영권 리스크로 몸살을 앓는 포스코와 KT가 그렇다. 어쩌면 이 나라 정치권력은 민간기업조차 전부 정부 밑에 있다고 여기는지 모른다. 관치 유령이 죽지도 않고 규제를 숙주로 곳곳을 배회하고 있는 실상이 그렇다. 모든 정권이 처음엔 경제를 살리겠다며 규제개혁을 외치지만 전혀 그럴 의지가 없다고 보는 게 속 편할 것이다.산업통상자원부가 태풍 ‘힌남노’로 침수 피해를 본 포스코에 대한 진상 조사단을 꾸렸다고 발표하면서 경영진 책임 문제를 흘렸다. 조사단이 그냥 조사단이 아니란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여당에서도 경영진 책임을 언급했다. “당정이 사전에 조율한 것 아니냐” “보이지 않는 윗선과 각본이 있다”는 말이 나돌게 된 이유다.“태풍이 계속 예보됐기에 대비가 가능했다.” 신통력을 가진 것도 아닌 당정의 판정은 중증의 ‘사후 확증편향’을 보여준다. “3개월 내 정상화 목표”(포스코) “정상화까지 6개월 소요”(정부)라며 티격태격하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장면이다. 피해 정도와 복구 속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업으로서는 최대한 빠른 정상화를 목표로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구매업체, 협력업체 등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정부가 기업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굳이 엇박자를 보이는 저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정부가 산업의 공급망 사슬 측면에서 철강 수급을 파악하고 대응책을 강구할 순수한 목적이라면 공개적으로

    2022.09.21 17:42
  • [안현실 칼럼] '내일이 없는 긴축'은 공멸이다

    “기업가는 중세 시대의 기사(騎士)와 같다. 이들이 자본주의의 영웅이다.” 수요·공급 그래프를 처음으로 그렸다는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의 말이다. 조지프 슘페터는 “혁신은 기업가의 영웅적 노력의 결과”라고 했다. 영웅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질 리 없다.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경제는 진화 시스템”이라고 주장한 논문으로 유명하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가를 좁은 의미의 영웅으로만 한정하기 어렵다. 특히 지식과 기술, 아이디어가 주도하는 경제 시대에는 누구나 기업가가 될 수 있다. 기업가와 비기업가, 개인과 기업 간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다. ‘유저 이노베이션(user innovation)’으로 사용자가 하루아침에 기업가로 변신하고 있고, 사내벤처 등 창업과 피고용 사이의 회색지대도 많다.슘페터는 기업가의 동반자로서 금융의 역할을 강조했다. 1차 산업혁명 당시 증기기관의 제임스 와트와 투자자 매슈 볼턴은 ‘혁신의 짝’이었다. ‘혁신의 대중화’ ‘기업가의 대중화’를 상징하는 스타트업 시대에 ‘기대의 생태계’로 불리는 금융의 역할이 더욱 필요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금융당국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그린스펀 재임 중 기술 혁신이 촉진됐고 높은 생산성 달성이 가능했다”고 극찬했다. 닷컴버블 붕괴 후 금융이 조정기를 거치고, 다시 혁신의 열차에 동승한 미국과 달리 한국은 기나긴 벤처 빙하기로 접어들어야 했다. 긴축의 시대, 한국의 금

    2022.09.07 17:51
  • [안현실 칼럼] 인구감소의 경제적 귀결에 관하여

    ‘인구 감소의 경제적 귀결’은 무엇일까?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는 “국가 번영의 정도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척도는 인구 증가 수”라고 했다.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인구가 증가하던 유럽에서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그렇게 생각했다. 여기에 토머스 맬서스가 찬물을 끼얹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 반해 식량은 산술급수적(등차수열)으로 늘어나 인구 재앙이 온다는 <인구론>이다. 예상은 빗나갔다. 기술 진보와 생산성 향상이 세상을 ‘맬서스 트랩’에서 구해냈다.맬서스 시대와 달리 20세기 경제학을 이끌었던 존 매이너드 케인스 시대의 영국은 인구 감소로 돌아서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강화회의에서 패전국 독일에 가혹한 배상금을 물리자 훗날 큰 화근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던 게 케인스의 그 유명한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다. “미래는 과거와 완전히 다를 것”이라던 케인스가 인구 감소의 경제적 귀결을 놓칠 리 없었다. 경제 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인구가 감소하면 이를 상쇄할 기술 진보가 일어나지 않는 한 자본주의의 엔진인 투자가 타격을 받을 것이란 게 케인스의 전망이다. 투자가 위축되면 실업이 발생하고 경제는 불황에 빠진다. 맬서스가 인구 재앙을 우려했다면 케인스는 실업 재앙을 걱정했다. 케인스가 진단한 인구 감소의 경제적 귀결은 수요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 투자가 필요하다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과 맞닿는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케인스의 실업 재앙 걱정에 동의하더라도 정부 투자가 수요 부족을 해결할 근본적이고 지속 가능한 처방이냐는 것이다. 맬서스는 상상

    2022.08.24 17:22
  • [안현실 칼럼] 尹 정부의 칩4 딜레마, 원칙이 해법

    윤석열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에 맞춘 최상목 경제수석의 탈(脫)중국 브리핑 장면은 즉각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탈피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정부가 공개적으로 할 말, 안 할 말 구분도 못하나”라고 생각한 기업인이 적지 않았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산업정책은 색깔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최 수석 발언의 여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가입도 그렇다. 어느 국가가 주도하든 무역 확장에 도움이 된다면 다자간 협정에 가입하는 게 한국 국익에 부합한다. 특정국 배제에 찬성할 이유가 없고, 무역 다변화를 추구해온 게 한국이다.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한국은 이게 원칙이다. 이 원칙에 비춰볼 때 IPEF 가입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IPEF를 놓고 대통령실에서 ‘안미경중’에서 ‘안미경세(安美經世·안보는 미국, 경제는 세계)’로 간다는 설명을 굳이 내놓으며 중국을 자극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한국은 처음부터 안미경세였다.애써 의미 부여를 안 해도 될 사안까지 안미경중 탈피라고 하다 보니 윤 정부가 원칙을 갖고 결정하면 끝날 문제 앞에선 머뭇거리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미국 국무부가 제안한 반도체 협의체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가입 여부가 그렇다. 미국도 부처 간 경쟁이 없을 리 없다. 안보·경제 연계로 국무부와 상무부의 관계가 그렇다. 미국 행정부 내 역학이 어떠하든 두 부처 모두 중요한 한국으로선 답을 주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 시간을 끄는 사이 중국은 중국대로 칩4는 중국 견제라

    2022.08.10 17:08
  • [안현실 칼럼] '한 방'으로 되는 경제 없다

    “윤석열 정부를 대표하는 경제 ‘한 방’이 없다.” 윤 정부의 첫 장·차관 워크숍에서 흘러나온 얘기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노무현 정부의 ‘혁신성장’처럼 경제정책을 추진할 캐치프레이즈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운이 좋아 사냥이 잘 되면 잔치판 벌이던 수렵채집민 시대도, 직선으로 성장하던 개발연대도 아니다. 경제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진 현실에서 정부가 한 방 타령을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거론된 캐치프레이즈들이 성공했다면 또 모르겠다.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함께 내걸었던 혁신성장을 짓누르고 말았다. 정부가 주도하는 소주성과 민간이 주도해야 하는 혁신성장은 처음부터 부조합 그 자체였다. 박 정부의 창조경제, 이 정부의 녹색성장, 노 정부의 혁신성장도 그렇다. 민간이 ‘창조적 파괴’의 주체가 될 때 가능한데도 정부가 관치로 주도하겠다고 설치면서 망친 것이다.기술과 지식, 아이디어가 성장을 주도하는 혁신경제가 시대적 과제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수많은 다양한 개인과 기업이 혁신경제를 이끌어가는 것인데도, 환경조성자 역할을 해야 하는 정부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주인공이 되겠다고 나선다는 점이다. 그럴듯한 캐치프레이즈 하나로 안 좋은 경제가 좋은 경제로 확 돌아설 리도 없지만, 아무리 좋은 캐치프레이즈도 관치경제의 병폐가 그대로인 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워크숍에서 ‘한 방’으로 거론됐다는 ‘공정’과 상식’도 그렇다. 윤 정부는 국정과제에 혁신성

    2022.07.2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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