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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폐지인가, 국공립대 통폐합인가. 민주통합당이 뜨거운 논란을 몰고왔다. 하지만 여론은 민주당에 우호적이지 않다. 민주당은 즉각 국공립대 통폐합이 서울대 폐지로 잘못 전달됐다고 항변했다. 지방에 여러 개의 서울대를 세우는 ‘상향 평준화’라는 게 민주당 주장이다. 그러나 여론은 국공립대 통폐합은 포장일 뿐 서울대 폐지를 본질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울대 폐지가 만병통치약?방향이 맞다면, 또 실현 가능성이 있다면 서울대 폐지가 아니라 그 이상도 못할 게 없다. 문제는 민주당이 서울대 폐지로 기대한다는 효과들이다. 대학 서열주의 해소, 학벌주의 타파, 사교육 해결, 지역 균형 발전, 대학경쟁력 강화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이쯤되면 한국 교육과 지방의 문제점을 일거에 해결할 만병통치약이다. 민주당 말대로만 된다면 찬성표를 던지고 싶을 정도다. 게다가 얼핏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적지 않다. 이렇게 좋은 걸 역대 정권들은 왜 못했을까. 한 가지 카드로 수많은 정책 목표(기대효과)를 달성할 그런 기막힌 수라면 또 모르겠다. 틴버겐 법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많은 목표는 다기망양(多岐亡羊)이 되기 딱 좋다. 목표 간 충돌도 피하기 어렵다. 당장 대학 서열주의 해소와 대학경쟁력 강화가 어떻게 양립하는지 그것부터 의문이다. 민주당이 상향 평준화라고 둘러대는 건 그야말로 말장난일 뿐이다. 이런 다목적, 다차원 함수 문제는 아예 ‘해(解)’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설사 해가 있다 해도 어느 정도 목표치를 달성할지, 또 그 가능성이 얼마일지는 또 다른 얘기다. 목표별로 하나씩 연관지어 보라. 서울대 폐지와 대학 서열주의 해소, 서울대 폐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중소기업부 신설을 장담한다. 여당, 야당이 서로 찾아와 부처 신설을 약속했다는 소식이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정부조직을 미끼로 이익단체 표 구걸에 분주하다. 여당은 이미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 부활을, 민주통합당은 정보미디어부 신설을 공공연하게 말한다. 특정 지역을 의식한 해양수산부 부활 얘기도 나온다. 또 다시 조직개편 대소동이 일어날 모양이다. 행정학회가 ‘국가발전을 위한 과제와 전략’ 학술대회에서 차기정부 조직개편 원칙과 방향을 제시했다. “현 정부가 부처 통폐합을 했으나 시너지 효과 창출에 한계를 보였다. 차기정부는 전문성에 기초해 부처 소관기능을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른바 ‘대(大)부처주의’에서 ‘전문부처주의’로 가자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를 내걸고 당시 18부 4처 정부조직을 15부 2처로 줄였다. 행정학회 논리는 교육과학기술부, 농림수산식품부,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 기획재정부 등 통합부처는 그 전으로 되돌리고, 정통부 등은 부활시키며, 중소기업부 등은 신설하자는 요구에 길을 터주는 것이다.大부처에서 다시 전문부처로? 지금으로부터 딱 5년 전이다. 야당이던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은 비대한 정부조직 축소를 공약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 대선주자들까지 미래형 정부조직을 내걸었을 정도다. 당시 행정학회는 부처와 장관, 공무원 수를 확 줄이는 강력한 감축안을 제시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가 후퇴했을 정도다. 그때 논리는 정반대였다. “정부조직과 인력 확대는 공공지출 낭비와 민간부문에 대한 불필요한 개입을 늘린다. 부처 통폐합을 통한 ‘대부처주의’로 가야 한다”는 얘기였다
전력비상으로 내몰리게 된 건 자업자득이다. 에너지 정책 하나로 물가 기후변화 등 다양한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목표와 정책의 수를 일치시키라는 틴버겐 법칙이 괜히 나왔겠나. 정작 에너지 정책의 본질적 목표인 안정적 에너지 공급이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왜곡된 전기요금이 그렇게 만들었다. 통신도 닮은 꼴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걸핏하면 물가를 들먹인다. 선거 때만 되면 요금 인하가 공약으로 나온다. 그럴 듯한 기금을 만들어 돈 뜯어가는 것도 비슷하다. 통신회사가 아니라 영락없는 공기업이다. 사용한 만큼 내는 구조 돼야 스마트폰이 도입됐을 때 지금처럼 데이터 사용량이 폭증하리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는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말 그대로 ‘데이터 익스플로전(data explosion)’이다. 그러나 요금 인하 요구는 끝도 없다. 카카오톡 등장이 얼씨구나 싶었는지 무료통화를 압박하는 국회의원들이 줄을 잇는다. 그 때문에 망 투자를 못하겠다면 안하면 될것아니냐고 반문한다. 상대가 카카오가 아닌 애플이어도 그렇게 나올지 궁금하다. 망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나. 이러다간 통신이 전기꼴 나는 건 시간문제다. 그때 가서 망 타령 해봤자 늦은 거다. 조만간 ‘스마트폰 하루 꺼 놓기’ ‘통신 피크 시간 피하기’ ‘통신 절약 건물’ 같은 얘기가 들려올지도 모르겠다. 이석우 카카오 공동대표는 “특정 서비스를 차단하는 것은 망 중립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망 중립성 같은 어려운 용어를 쓸 필요조차 없다. 시장경제를 한다는 나라에서 자유로운 경쟁은 당연한 원칙이다. 통신회사들이 그것을 방해한다
2000년의 일이다. 고급 인력이 벤처기업으로 마구 빠져 나가자 삼성전자 등 대기업이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대기업은 “우리가 벤처 인력공급소냐”며 불만을 토했다. 대기업은 법적 소송과 별도로 관료주의 타파, 파격적 연봉 인상 등 자구책을 동원해야만 했다. 지금의 대기업 인사 및 보상시스템은 당시 ‘벤처 엑소더스’와 무관하지 않다.10여년이 지난 지금은 그 반대다. 벤처나 중소기업이 키워놓은 핵심인력을 대기업이 빼간다고 불만이다. 대기업에서 벤처로 인력이 빠져 나갈 때는 팔짱끼고 보던 정부도 가세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중기 핵심인력의 스카우트를 막을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하고, 공정거래위원장 등은 스포츠 시장에서의 이적료를 적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대기업 간 인력분쟁도 급증하는 양상이다. 현대오트론-삼성전자-LG전자-현대차,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삼성전자-LG전자, 삼성전자-KT 등이 그렇다. 여차하면 전직금지 소송도 불사할 그야말로 살벌한 분위기다. 회사 · 종업원 이익균형 찾아야 문제는 이 모든 것을 기업 간 싸움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영업비밀을 갖고 있는 기업의 권리도 있지만 이직을 원하는 당사자의 권리도 있다. 기업과 종업원의 이익도 충돌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15조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 상법상 경업금지의무나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보호에 따른 전직금지 조치라 해도 직업선택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지 않는 범위에서 합리성을 가져야 한다. 소송 때마다 전직금지의 필요성과 기간을 놓고 매번 논란이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정부가 가이드라인이나 이적료를 도입하면 이는
장면 1. 카카오톡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국내 망 사업자들이 속으로 끙끙 앓았다. 지난 2월 KT는 삼성전자 스마트 TV의 접속 제한조치를 취했다. 삼성은 반발했다. 당시 구글 다음 카카오 등 오픈인터넷협의회는 KT를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다음 TV’가 출시됐다. KT는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7만원 이상 요금제 가입자만 모바일 인터넷전화(mVoIP)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시민단체는 mVoIP의 부당한 차단이라고 비난했다. KT 등 국내 유선통신 3사가 네이버 다음 구글 등 인터넷 업체에 망 사용대가를 부과하기로 합의했다. 해외에서는 존 체임버스 시스코 회장이 트래픽 대란 가능성을 경고했다. 통신 트래픽 갈등은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도 이슈로 부상했다.장면 2.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특허전쟁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 법원은 삼성전자와 애플에 합의를 모색하라고 했다. 그러나 1년 이상 이어진 두 회사의 특허전쟁이 종지부를 찍을지는 미지수다. 삼성과 애플은 이 순간 다른 특허괴물로부터도 소송을 당하고 있다. 구글과 오라클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저작권 침해 여부를 두고 법정공방을 벌이는 중이다. 야후와 페이스북 간 특허전은 아예 감정싸움으로 비화됐다. 모토로라는 애플과의 소송 전에서 일부 승소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 제조업자들을 압박해 특허료를 챙기고 있다. 공유지의 비극 첫째 장면에서 망 사업자가 우려하는 건 데이터 폭증이다. 지금의 유·무선 네트워크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헤비 유저의 독점, 무임승차(free-riding)의 문제점이 심각하다고 말한다. 이에 맞서 플랫폼, 콘텐츠, 단말기 사업자
미국 인텔이 국내 정보기술(IT) 기업 올라웍스를 약 360억원에 인수했다. 인텔의 한국 기업 인수는 이번이 처음이다. 2006년 설립된 올라웍스는 ‘스캔서치’ ‘푸딩 얼굴인식’ 애플리케이션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기업을 외국의 거대 기업이 인수했는데도 국내 반응은 호의적이다. 여느 때 같으면 기술의 해외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겠지만 그런 얘기도 별로 없다. 오히려 이런 인수가 더 나와 주길 바라는 눈치다. 만약 인텔 아닌 삼성전자가 올라웍스를 인수했어도 똑같았을지 궁금해진다. 특히 대기업 규제,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외치는 정치권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M&A는 혁신 생태계의 핵심 시장의 변화가 빨라지면서 신기술에 대한 외부 탐색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배타적 ‘NIH(Not Invented Here)’ 신드롬에 빠졌다가는 대기업이라도 한 방에 가는 세상이다. 외부 탐색능력이 곧 기업의 ‘기술지능 지수’가 되고 있다. 인텔에서는 그 촉수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인텔캐피털이다. 일종의 ‘기업 벤처캐피털(CVC·Corporate Venture Capital)’이다. 투자를 통해 재무적 이익을 기대하는 ‘일반 벤처캐피털’과 달리 모기업을 위한 신기술 탐색 목적이 강하다. 올라웍스도 인텔캐피털이 지분투자를 했고 이게 인수로 이어진 케이스다.인텔캐피털은 IT분야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로 꼽힌다. 올라웍스 말고도 여러 한국 기업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인수 사례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인텔의 인수는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기술창업 기업들에 주목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로 인해 피인수기업의 기술가치가 평가받기 시작하면 일반 벤처캐피털의 유입 또한 촉진될
미국 상·하원이 일명 ‘잡스(JOBS)법’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다. 법의 정식 명칭은 ‘Jumpstart Our Business Startups’. 신생기업 지원법이다. 법의 머리글자를 딴 잡스라는 말이 절묘해 보인다. 벤처캐피털의 도움을 받았던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연상케 하는 동시에 일자리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신생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용이하게 해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게 이 법의 취지다. 닷컴 버블 붕괴와 엔론 사태 이후 강화된 기업공개(IPO) 절차와 규제를 신생기업들에 한해 대폭 간소화하고, 소액투자자를 모을 수 있는 ‘크라우드 펀딩(crowd-funding)’을 허용했다. 또 주주 2000명 이하 기업은 증권거래위원회(SEC) 등록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 제3시장의 발전을 기대하는 조치로 보인다. 과연 이 법은 미국에 새로운 혁신과 일자리 창출을 가져다 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버블을 만들어 또다시 위기를 낳을 것인가. 지금 미국에서는 이 논란이 분분하다.새로운 혁신이냐, 버블 예고냐최근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전망이 속속 들려온다. 사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가 저대로 쓰러지리라고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직도 3% 내외인 잠재성장률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이런 잠재성장률의 핵심은 새로운 기업의 창출에 있다. 기술이나 혁신적인 창업에 관한한 미국을 필적할 국가는 아직 없다. 신생기업이 가장 단기간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곳도 미국이다. 이는 다시 창업 동기를 강하게 자극한다. 무엇이 이런 선순환을 가져왔는지 아직도 학자들의 단골 연구주제일 정도다. 지식재산(IP) 보호, 인구 3억명·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라는 거대한 동질적 시장규모에 벤처캐피털이라
“작은 기업이 주류를 이루는 국가가 경제적으로 취약한 경우가 많다.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이 그렇다. 성가신 규제 때문에 성장하기 힘들었던 작은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임금과 생산성이 더 높고, 더 많은 세금을 내는 큰 기업이 부족한 점은 낮은 생산성, 경쟁력 상실 등 유로존 위기의 근본 원인과 관련 있다.” 영국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지가 최근호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제목은 ‘Small is not beautiful’. 독일 태생 영국 경제학자 슈마허의 ‘작은 게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를 뒤집었다. 결국 중요한 건 기업의 ‘성장’이라는 게 요지다. ‘逆성장’ 징후 곳곳에 넘쳐나 총선을 앞둔 여야의 기업정책 공약이 꼭 닮았다. 중소기업은 더 보호, 대기업은 더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기업의 성장 자체를 막겠다고 작심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지식경제부의 ‘중견기업 육성론’ 주창은 지금도 기업 성장경로가 꽉 막혀있다는 고백이다. 성장은커녕 역(逆)성장 징후가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다. 2003년~2008년 사이 중견기업의 40.9%가 중소기업으로 후퇴했다. 지식경제부는 이명박 정부의 2008~2010년 사이 380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고 공개했다. 그러나 주목할 부분은 따로 있다. 2007년 말 중견기업에서 2010년 말 중소기업으로 돌아간 경우가 139개사나 된다. 이 중 61개사는 매출이 줄어들지 않았음에도 중소기업으로 내려갔다. ‘기업 쪼개기’ 등 말 못할 사정이 있었다는 증거다. 매출 감소 이외의 이유로 중견기업이 언제든 중소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얘기다.단서도 있다. 중견기업의 54.5%가 중소기업 졸업 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은 게 조세혜택 축소다. 일종의 금단현
KT가 과도한 트래픽을 이유로 삼성전자 스마트 TV의 접속 차단에 나섰지만 어차피 오래갈 수 없는 싸움이었다. 소비자를 볼모로 한 행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지지를 받지 못한다. 결국 방송통신위원회 개입으로 양사가 논의의 장에 참여하는 것으로 사건은 봉합됐다. 문제는 앞으로다. 사건의 이면에는 복잡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적 측면이 있다. 삼성-KT 갈등은 최근에만 와이브로, 아이폰 도입에 이어 벌써 세 번째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망 사업자의 초조감이 배어 있다. 원래 ‘망 중립성’은 갑의 위치에 있는 망 사업자의 횡포를 우려해 공정경쟁 차원에서 나온 개념이다. 지금은 그 역학관계가 붕괴되고 있다. 음성에서 데이터 서비스로 넘어가면서 특히 그렇다. 트래픽이 폭증하면서 통신사가 망 투자비용 분담을 주장하는 것도 결국 그런 변화의 상징이다. 트래픽 문제는 전통적 망 중립성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다.망 중립성과는 또 다른 이슈막상 트래픽 이슈로 들어가면 통신사-제조사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트래픽이 이용자들로 귀결되면 결국 종량제 논의, 요금구조의 일대 변화로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그리되면 이용자도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게 된다.심지어 국가 간 미묘한 이해도 작용한다. 망 중립성 하면 미국이 떠오른다. 그런 미국도 망 사정이 열악해지자 투자를 위해 이를 완화한 적도 있다. 지금은 다시 망 중립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망 중립성이 애플 구글 등을 앞세워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미국 정보기술(IT)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반면, 유럽은 망 중립성과 함께 트래픽에도 눈을 돌리는 분위기다. 국경을 넘
1988년 대한항공이 독점하던 항공시장에 아시아나항공이 출현했다. 2005년에는 저비용항공사가 진입했다. 지금 서울~제주 노선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이스타 티웨이 등 7개사가 경쟁한다. 대형 항공사는 운임을 동결했고 저비용항공사는 그 80% 수준으로 떨어졌다. 서비스 차별화와 함께 소비자 선택권은 그만큼 확대됐다. 전철도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 9호선, 신분당선 등 경쟁체제다. 급행선 등 서비스와 유지보수(MRO)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통신과 방송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시장이 커졌고 산업은 발전했다.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됐다. 급증하는 부채 결국 국민 부담 예전에는 모두 국영이었던 것들이다. 지금 다시 국영 독점으로 돌아가자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모르는 일이다. 누군가 트위터상에서 조직적으로 그렇게 몰아가면 표에 눈먼 어떤 정당 비상대책위원회가 10분 만에 덥석 물을지도.KTX 운영의 경쟁도입은 특별할 것도 없고, 세상을 뒤집어 놓을 그런 논쟁거리는 더더욱 아니다. 민간 고속버스 회사들이 국가가 깔아놓은 고속도로에서 경쟁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공항과 항만을 국가가 건설하고 그 운영은 항공사 해운사 등 민간이 하는 것과도 똑같다. 참여정부의 철도산업발전기본법과 철도구조개혁 기본계획도 다 그런 취지로 만든 것이다. 선진국들은 오래 전부터 민간 참여를 허용했다. 할 일이 없어 그렇게 한 게 아니다. 일본 영국 독일 네덜란드 미국 등이 경쟁을 도입한 건 독점의 폐해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동일 선로상 복수 운영자가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왜 없는가. 서울 도시철도 1·3·4호선은 서울메트로와
스위스국제경영개발원(IMD), 세계경제포럼(WEF) 등이 매년 국가경쟁력을 발표하지만 그때마다 논란이 뒤따른다. 그만큼 국가경쟁력은 지표 잡기가 어려워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국가에는 경쟁력 개념을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범위를 좁히면 분야마다 경쟁력을 가늠해 볼 간단한 잣대(rule of thumb)가 있다. 산업경쟁력이면 세계적 기업 수, 교육경쟁력이면 세계적 대학 수로 따지면 얼추 맞다. 과학기술경쟁력도 세계적 연구소 수와 거의 비례한다. 무엇이 세계적 연구소인지도 그 체크포인트들이 있다. ‘과학기술자로부터 평판이 높은 곳’ ‘한번 가고 싶은 곳’ ‘그곳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명예스러운 곳’ ‘세계적 과학자를 끌어당기는 곳’ 등이 그것이다. 한국에 세계적 연구소가 있는가. 서구와 경쟁한다는 우리로서는 이것이 늘 숙제였다.이대로 가면 존폐 위기에 직면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소들이 통합 문제로 시끄럽다. 고만고만한 연구소로 경쟁이 안 되면 통합을 해서라도 판을 새로 짜야 하는데 저항이 만만찮다. 하지만 출연연은 지금 그럴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언제부턴가 연구의 비효율성 문제만 터지면 정부가 째려보는 곳은 바로 출연연이 되고 말았다. 기업들은 더 이상 출연연에 기대하는 게 없고, 대학은 출연연에 갈 돈을 차라리 자신들로 돌리라고 난리다. 더 큰 문제는 돈만 쏟아 부으면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데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 국민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비 인플레, 모럴 해저드에 대한 우려가 그렇다. 예산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 언제까지 과학기술이 성역으로 대우받을지도 의문이다. 물리학자 자이먼(J. Zyman)의 ‘GDP 3% 상한’ 가설은 아직
50년 전인 1962년 1월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발표됐고, 2·3·4차로 이어졌다. 제5차부터는 이름을 바꾼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이 추진됐다. 1993년 김영삼 정부는 제7차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1992~96)을 신경제5개년계획(1993~97)으로 수정했다. 그 뒤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경제 전체 5개년계획은 없어졌다. 하지만 분야별 5개년계획은 여전히 쏟아져 나왔다. 노무현 정부도, 이명박 정부도 그랬다. 법이 하나 제정될 때마다 5개년계획이 튀어나왔다. 기획재정부가 서비스 육성법을 만들고 5개년계획을 수립한다는 것도 그런 관성의 산물이다.그렇다면 5개년계획들은 성공적인가. 5년 단위 경제계획의 원조는 구소련 등 계획경제 국가들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들은 철저히 실패했다. 반면 한국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개도국들이 유일한 성공모델로 꼽는다. 1,2,3,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계획경제가 아니라 연속성을 갖는 20년의 비전이나 다름없었다. 1970년 한국 과학기술의 요람 KIST가 작성한 ‘서기 2000년의 한국에 관한 조사연구’가 이를 증명한다. 장기 비전은 수출전략, 기업가정신, 과학기술, 시장경제로 달성됐고, 그 토대 위에 지금의 우리 경제가 일어섰다는 평가다. 장기비전 없는 단기계획만 양산그 후 5개년계획들은 연속성보다 차별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가 5개년을 정권에 맞춰 수정한 것도 그 맥락이었다. 5개년은 곧 정권의 계획이 됐다.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 계획은 일단 부정하고 보는 게 불문율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실상은 3년이라도 가면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새로 만든다고 법석을 떨다 시간 다 보내고, 정권 말로 가면 바로 유명무실해지기 때문이
“고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을 아는가?” 송병준 산업연구원장이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교수에게 물었다. 로드릭 교수는 정확히 알고있었다. “한국 경제발전사는 정말 흥미롭다. 한국은 외국인들의 말에 개의치 않았다. 세계은행과 서구 경제학자들은 당시 한국의 일관제철소 건설을 정신나간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 철강산업은 이윤창출에 성공했고, 수출과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글로벌 경제구조 개편에 따른 새로운 산업정책의 모색’이라는 주제의 국제 세미나에서 오간 대화 한 토막이다.여기서 외국인들의 말이란 전통적 비교우위론을 뜻한다. 리카르도의 비교생산비설, 헥셔-오린의 요소부존이론을 신주단지처럼 여겼다면 한국은 노동집약적 산업이나 했어야 맞지 철강 같은 자본집약적 산업은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그랬더라면 중국의 부상과 함께 국내 산업들은 벌써 줄초상이 났을 게 뻔하다.로버트 헌터 웨이드 런던 정경대 교수도 비슷한 회상을 했다. 그는 박성상 전 한국은행 총재의 말을 기억했다. “비교우위론을 믿지 마라. 우리가 무슨 일을 벌일 때마다 비교우위론 옹호론자들의 결론은 늘 한국은 비교우위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하고 싶은 걸 했고,다 잘해냈다.” 산업연구원 원장까지 지낸 박성상 씨는 비교우위론 대신 ‘견인차 이론(locomotive theory)’을 주창했다.철강만 그런 게 아니었다. 1983년 삼성이 반도체 진출을 선언했을 때 밖에서는 온통 비웃음이었다. 1972년 현대가 울산에 조선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도, 1974년 독자적으로 국산 자동차를 생산하겠다고 했을 때도 밖에서 들려오는 건 역시 비아냥뿐이었다. 안에서도 동조 세력이 있었다. 관료도
행정학자들이 대목을 맞았다. 대선 캠프, 정부부처, 이해단체 등에서 행정학자들을 찾느라 난리다. 차기정부 조직개편안 때문이다. 행정학자들은 각종 거버넌스 이론들로 수요자가 원하는 개편안을 제시할 것이다. 그야말로 맞춤형이다. 행정학자들이 조직개편의 정답을 절대 말하지 않는 건 정권마다 일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대선 캠프의 정부조직 윤곽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 캠프는 과학기술 전담부처를 들고 나왔다. 정통부 출신 변재일 민주당 의원은 과기부, 정통부 부활론을 주장한다. 또 어디선가는 바이오 경제시대에 대비, 바이오산업부 창설론을 말한다. 내세우는 공통적 이유는 국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전 국민의 공무원화도 부족할 만큼 온갖 부처를 다 만들어야 할 판이다. 이해 못할 건 중요하면 왜 꼭 전담부처가 있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행정학자 놀이터가 된 정부조직대선 후보들이 국정의 우선순위를 과학기술로 하겠다는 것이야 백번 환영할 일이다. 모든 부처에 다 걸리는 게 과학기술이다. 하지만 그런 취지라면 지금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만 잘 굴러가도 충분하다. 조직은 조직의 논리라는 게 있다. 전담부처가 또 만들어지면 결국은 부처 간 돈 나눠주기 게임이 되고 만다. 공무원들이 ‘육성’의 나팔을 불어대며 돈을 들고 과학자들을 이리가라, 저리가라 노예집단 부리듯하게 되는 것이다. 진짜 과학자들의 자존심과 사명감은 그렇게 사라져간다.과학기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정부는 지나친 간섭에서 발을 빼는 게 맞는 조합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기초연구 배분은 공무원
한국전력공사 이사회가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10%대 전기요금 인상안을 의결한 것이 논란이다. 전기요금이 지식경제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협의로 결정돼 왔다는 점에서 일단 놀랍다. 전기요금 인상을 적극 추진하지 않았다고 소액주주로부터 소송당한 김쌍수 전 사장은 이사회 결정이 한전의 당연한 권리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물가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재정부 압박용으로 지경부와 한전이 짜고치는 고스톱을 했다는 루머도 나돈다. 어쨌든 공기업 한전이 원가 이하로 전기를 판매하고 그래서 매년 수조원씩 적자가 나는 상황을 우려해 행동에 나선 것이라면, 그 자체는 인정해 줄 만도 하다. 적어도 나몰라라하는 공기업이 되길 거부한 측면은 있다. 그동안 전기요금 결정과정, 수준 및 체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국제 에너지가 상승으로 원가가 치솟아도 요금은 요지부동이었다. 공공요금을 묶어 표를 얻는 '표퓰리즘'이 시장원리를 압도하고 말았다. 그런 판에 수요 조절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가격이 싸니 전기소비가 급등하는 건 당연했다. 심야전기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기름 보일러를 쓰던 식당은 전기난방으로 바꿨다. 여름에는 냉방,겨울에는 난방으로 전기를 마구 써댔다. 그 결과는 지난 9월의 순환단전, 향후 수년간의 만성적 전력부족, 그리고 한전의 엄청난 적자로 나타났다. 규제의 실패,정부의 실패다. 그렇다고 한전이 전기요금을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정부는 더 이상 전기가격 결정에 왈가왈부하지 말라지만 그것은 경쟁의 원리에 의해 시장에서 결정될 때나 가능한 얘기다. 우리도 10여년 전부터 전력산업에 경쟁을 도입,
한국을 방문한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한국이 구글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앞으로도 안드로이드 운영체체(OS)의 개방전략을 유지할 것이냐"고 묻자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안드로이드를 유료화할 계획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로 삼성전자 등 한국의 제조사를 차별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모두 한국에 대한 보답처럼 들리는 약속들이다. 기자간담회에서 슈미트 회장은 경쟁사인 MS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구글은 얼마나 진실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안드로이드의 유료화 여부는 구글의 의지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갖다 쓰는 쪽에서 보면 안드로이드는 이미 유료화 된거나 다름없다. 기능을 추가하거나 새로운 버전에 대응하는 데 돈이 들어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본적 문제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에 기반한 개방형 플랫폼이 지식재산권의 면책지대에 있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오픈소스도 다양한 유형의 저작권이 존재하고,특허는 오픈소스 여부에 상관없이 적용된다. 당장 안드로이드 사용 제조사들은 MS에 대당 얼마씩 특허료를 지불해야 할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방성=무료화'는 그야말로 웃기는 얘기다.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이 늘수록 제조사들에 대한 특허 공세의 가능성도 더욱 커질 게 분명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구글도 소송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썬을 인수한 오라클은 안드로이드가 자바(Java) 관련 특허를 침해하고 있고,일부 자바 코드를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으로 복원한 후 구글의 저작권하에 배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여기서 구글이 패할 경우 그 비용을 전
그래도 다행이다. 미국에서의 데모가 '실리콘밸리를 점령하라'고 외치지 않아서다. 월가의 금융 자본가들을 향한 성난 민심과,실리콘밸리에서 애플을 창업했던 스티브 잡스라는 한 혁신적 기업가의 사망을 애도하는 분위기가 대조적이다. 어디에 길이 있는지 암시해주는 듯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월가 자본가들도 혁신적 기업가 행세를 했다. '파이낸셜 이노베이션'이라는 신조어도 생산했다. 파생상품은 그들이 말하는 금융혁신의 꽃이었다. 혁신은 더 이상 제조업이나 정보기술(IT)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말도 나왔다. 월가 자본가들은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했던 것인가. 혁신이라고 다 같은 혁신이 아니었다. 혁신을 위해서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지만 월가 자본가들은 리스크를 다른 곳으로 전가하고 확산시켰다. 만에 하나 사고가 터져도 그 피해가 무한대일 수 없다면 투자자를 많이 끌어들일수록 위험이 나눠진다는 궤변까지 등장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전통적 리스크 분산론은 그렇게 왜곡됐고,위험이 도미노처럼 전염될 가능성은 무시됐다. 최악의 경우 사고가 부메랑처럼 돌아온다고 해도 월가 금융가들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국민혈세,바로 공적자금이다. 그들이 한 짓은 경제를 볼모로 한 '리스크 놀이(risk-playing)'였다. PC가 타자기를 내몰고 스마트폰이 휴대폰을 대체하는, 산업에서의 창조적 파괴와는 애초부터 그 성격이 전혀 달랐다. 바그와티 미 컬럼비아대 교수의 말처럼 월가의 금융혁신은 경제 전체를 파괴하는 '파괴적 창조(destructive creation)', 그 자체였다. 월가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펠릭스 로하틴은 "이제라도 월가가 산업현
한 국가 안에 있는 대학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미래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글로벌 유니버시티를 말하는 이들은 유럽에서의 대학 통합,미국 명문대의 온라인 공개강좌 확산을 그 증거로 들이댄다. 더 충격적인 것은 2006년 유엔 미래사회보고서다. 한국이 저출산과 해외유학 급증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2020년 초등학생이 단 한명도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하위 15%에 해당하는 43개 대학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교과부는 대학개혁의 신호탄으로 해석해 주길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그 동력이 얼마나 갈지 솔직히 의심스럽다. 어차피 반값등록금에 떠밀려 나온 것이 이번 구조조정이다. 당장 내년에만 1조5000억원을 투입하는 정부로서는 부실대학까지 지원하느냐는 비난을 일단 피해보자는 의도가 더 커보인다. 해당 대학은 반발하고 있다. 지난 20년 사이 100개 이상의 대학들이 생겨났다. 교과부는 모든 책임을 대학으로 돌리지만 대학정책의 실패가 가려질 수는 없다. 43개 부실 대학에 지금까지 국민세금이 흘러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엉터리 평가를 했거나 정치적 로비 또는 부정부패가 있었을 게 틀림없다. 지난해 학자금 대출이 제한됐던 23개 대학에 정부가 그 해에만 수백억원을 지원했다는 것 아닌가. 감사원은 이런 부실대학들에 재정지원이 이뤄진 경위부터 낱낱이 캐야 한다. 벌써 해당 대학들은 재정지원제한으로부터의 조기 해제를 공언하고 있다. 이미 부실대학을 지역적으로 배분하는 등 정치적 고려를 거친 게 이번 구조조정이다. 정치권이 총선, 대선을 앞두고 어떻게 나올지는 뻔하다. 어쩌면 부실대학들은 교과부 공무원들이 퇴직 후 일자리가 줄어
민주당이 정보통신부 부활론을 들고 나왔다. "세계는 스마트폰,아이패드 등 모바일 혁명을 하고 있는데 정통부를 없앴기 때문에 역행 침식이 일어났다"는 게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의 진단이다. 아무리 정치인이라고 해도,또 총선과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지만 사실관계까지 왜곡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밖에서 모바일 혁명이 꿈틀댈 때 한국에는 정통부가 존재하고 있었다. 민주당이 집권했던 참여정부 시절이다. 당시 정통부는 문을 걸어 잠근 채 정보기술(IT)강국이라고 용비어천가를 소리높여 불러댔다. 한국형 표준이 등장했고,이런저런 규제도 생겨났다. 그러나 세계시장으로부터 고립됐을 때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참담한 정부 실패였다. 이게 진실이다. 그나마 정부 실패로부터 벗어난 건 개방과 경쟁 덕분이었다. 정부 실패를 시장이 바로잡았다. 지난 10년,아니 20년 동안 정부가 하지 못했던 많은 변화를 시장이 몰고 왔다. 부처가 없어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발전 못할 나라가 없다. 그런 논리면 미국의 IT 주도는 그야말로 미스테리가 되고 만다. 핵심은 정통부 폐지에 있는 게 아니다. 아직도 정통부 프레임에 갇혀있는 정부 자체에 있다. 세상이 달라지면 정부도 변해야 하는데 이 정부는 마땅히 해야 할 역할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규제개혁,연구개발,인력양성이 다 그렇다. 사회제도를 연구해 왔던 경제학자들은 기술과 제도의 공동진화(co-evolution)가 있어야 혁신이 일어난다고 결론 내렸다. 제도가 동맥경화증에 걸리면 기술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규제개혁에 나서야 할 방통위는 동맥경화증 환자 같다. 방송에 묻혀 통신이 실종된 것도 그렇고,
마이크로소프트(MS)가 잘나갈 때의 일이다. 미국 법무부는 브라우저 전쟁조사에 들어갔다. 넷스케이프 등 경쟁기업에 대한 MS의 불법행위 증거를 포착했던 것이다. 그러나 MS의 대응은 현명하지 못했다. 의회에 로비를 해 법무부 예산을 삭감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오만은 판단력을 흐리게 할 수 있다. 구글이 모토로라의 휴대폰을 인수한다. 특허를 보강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와 이를 이용하는 기업을 특허소송에서 보호하겠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그 방법이 모토로라 인수밖에 없었는지 왠지 석연치 않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진영의 삼성전자 등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모토로라는 독립적으로 운영될 것이고 안드로이드의 개방성도 지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인수는 양날의 칼이다. 애플 등 외부의 적을 막겠다지만 내부 의 신뢰를 베어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글은 지금까지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더 많은 제조사들에 의해 확대되면,더 많은 모바일 사용자들이 온라인에 접속하게 되고,그로부터 광고로 수익을 얻으면 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제 그 의도를 의심받게 됐다. 같은 건물에서 장사를 해도 건물주 소유 중국집과 남이 하는 중국집이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사악하지 말라"는 게 구글의 모토라지만 상대가 그렇게 믿어줄 때나 유효한 것이다. 구글과 삼성은 윈-윈 관계였다. 삼성은 구글을 등에 업고 애플을 맹추격했고,그 덕에 구글은 생태계를 넓혔다. 그런데 구글이 직접 나서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이는 패착일 가능성이 크다. 구글이 뒤늦게 제조의 가치를 느꼈는지 몰라도 그들이 제조를 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가치사
1980년대 미국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회심의 카드로 꺼내 든 것은 특허 중시(pro-patent) 정책이었다. 이것이 레토릭이 아니었음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은 1982년 특허소송 항소심의 관할을 집중시킨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의 설립이다. 그 전에는 12개 지역별 연방항소법원들이 제각각 특허법을 해석하다보니 판결이 서로 달라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소송 당사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려줄 법정을 찾아다니는 이른바 포럼 쇼핑(forum shopping)도 난무했다. 결과는 특허 무용론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CAFC 설립은 이 모든 문제를 해소하는 전환점이었고, 이후 미국이 정보기술(IT) 등 신산업을 주도하는 데 법적 발판이 됐다는 평가다. 우리도 미국처럼 특허 중시로 가자고 대통령 직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출범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식 산업은 큰 산업이고 모든 분야에서 질적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서 아무리 변화해도 후진적 사법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소용없다. 특허소송을 하는 기업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사법제도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1998년 특허분쟁을 빨리 해결하고 판결의 통일성도 기하자고 특허법원을 만들기는 했다. 그러나 특허 유 · 무효 소송만 가능할 뿐 특허침해 소송은 할 수 없게 돼 있다. 반쪽짜리 법원이 되고 만 것이다. 법무부와 법원에서는 특허침해 소송은 민사소송이니 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을 거치라고 주장한다. 그 바람에 기업들은 한쪽에서는 특허 유 · 무효 소송을,다른 쪽에서는 특허침해 소송을 벌여야 한다. 소송기간이 하염없이 길어지고, 심지어 엇갈린 판결까지 나오는 상황이 벌어진다. 특허침해 소송의 경우에도 특
왜 글로벌 서비스 기업은 안 나오는가? 그것도 1등 인재들만 몰린다는 법률 의료 등에서 말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다. 울타리 치기에만 열중하면 결국 국제적으로 열등해지고 마는 것은 그 필연적 결과일 것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밖의 힘을 빌려서라도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내부 동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박 장관은 법률 등의 개방을 이룬 최초의 자유무역협정(FTA),한 · 유럽연합(EU) FTA에 잔뜩 기대를 거는 눈치다. 과연 법률시장에서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낙관하기 어렵다. 변호사협회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고 하지만 정작 국내 변호사의 경쟁력이나 해외진출보다 어떻게 하면 외국법 자문사들에 태클을 걸어 시장을 고수할지에 더 골몰하는 분위기다. 망하는 바보들이 택하는 전형적 수순이다. 손에 쥔 것 때문에 더 큰 떡을 놓치고 마는 것도 그 과정에서 일어난다. 변호사와 변리사들이 갈등하고 있는 특허소송 분야가 바로 그렇다. 미래학자들은 기업 진화의 마지막은 특허 등 지식재산(IP) 회사라고 전망한다. 실제로 기업들은 그쪽으로 가고 있고, 그래서 특허괴물을 괴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갈수록 특허소송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다. 변리사들은 변리사법 제8조에 규정된 대로 소송 대리인 자격을 달라고 요구한다. 특허의 유 · 무효나 권리범위를 판단하는 심결취소소송뿐 아니라 특허침해소송 대리인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특허침해소송은 말도 꺼내지 말라고 말한다. 변리사들은 특허기술에 전문성도 없는 변호사들만 특허침해소송을 맡는 게 말이 되
2008년 미국 대선은 립스틱과 돼지 이야기로 뜨거웠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경쟁자 존 매케인의 정책을 가리켜 "돼지가 립스틱을 발라도 돼지는 돼지"라고 비판했다. 립스틱과 돼지 속담이 유독 정치인들 세계에서 많이 회자되는 이유는 겉과 달리 잘못된 정책이 난무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한국녹색과학기술원 법안'을 발의한다. 국회의장으로선 1954년 이기붕 씨 이후 57년 만이다. 녹색성장 연구와 고급인재 육성을 위한 '녹색과기원' 설립이 골자다. 평소 과학기술에 관심도 없던 국회의장이 갑작스럽게 법안 발의까지 하겠다는 배경이 궁금하지만 정치권은 다 알고 있는 눈치다. 박 의장이 지역구인 양산에 양산과학기술원을 설립하려 한다는 것이다. 선거가 확실히 다가온 모양이다. 국회의장까지 염치 불고할 정도면 모든 의원들이 지역구 표 획득을 위해 물불 안 가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단군 이래 정치인들이 이렇게 과학을 떠든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과학기술원법이 넘쳐나고 있다. 창원과기원법,부산과기원법은 이미 발의된 상황이다. 또 다른 의원은 방사능 의과학분야 과기원도 만들자고 한다. 대구경북과기원도 있는데 우리는 왜 못 만드느냐는 논리다. 대구 · 경북 정치인들이 억지를 부리다시피해 만든 대경과기원이라는 것도 실은 그 전에 광주 · 호남 정치인들이 뭉쳐 탄생시킨 광주과기원을 그 모델로 삼았다. 최근 논란이 됐었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도 고급인력 양성을 말하고 있고,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설립을 제안한 녹색기술센터도 결국 그 방향으로 갈 것이란 얘기가 나돈다. 아마 선거를 몇 번만 더하면 과학기술 대학
"대기업은 단기 이익에 집착하지 말라."(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 "혁신이 아니라 납품단가 등으로 단기 성과를 높이는 기업관료는 해고하라."(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대기업이 거대권력이 됐다. 스스로 혁신할 능력이 없다. 견제수단이 필요하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정책당국자들의 이런 발언은 국내 대기업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표출한 것이지만, 근본 밑바탕에는 대기업은 전혀 혁신적이지 않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기업규모 및 혁신과 관련한 주제는 역사적인 논란거리였다. 1940년대 슘페터가 "큰 기업이 더 효과적인 혁신자"라고 주장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연구개발 규모의 경제,자본 및 시장 접근성,학습효과 등의 이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작은 기업이 큰 기업보다 더 유연하고 기업가적이라고 여기는 쪽에서 바로 공격이 들어왔다. 이들은 규모가 커지면서 나타나는 변화에 대한 저항과 지배구조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그 뒤 수많은 실증적인 연구들이 쏟아졌다. 몇몇 연구는 작은 기업이 종종 혁신의 측면에서 큰 기업을 능가하거나 더 짧은 개발 사이클을 보여준다고 결론 내렸지만, 큰 기업들이 혁신에서 작은 기업을 능가하는 경우를 지지하는 연구들도 나왔다. 한국을 포함해 성장과정이 다른 국가별로 들어가면 그 결과가 더욱 다양해졌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기업규모와 혁신의 관계가 50년도 훨씬 넘게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다 이 때문이다. 만약 중소기업들이 더 혁신적이거나 대기업들이 더 혁신적인 분야들이 딱 갈리는 그런 연구가 발견됐다면, 아마도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찾아다니는 정책 당국자들은 환호성을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술변화가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에서 등록금이 가장 비싼 나라는 단연 미국이었다. 여기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 이유는 미국 대학들이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등록금이 무상이거나 싸다는 유럽 일부 국가들도 내심 미국의 대학 경쟁력만큼은 부러워한다. 그러나 미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한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은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다. 선진국 대학처럼 경쟁력도 없으면서 등록금만 비싸다는 이유에서다. 요즘 현란한 용어를 구사하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반값 등록금과 관련해서도 한마디했다. "다차원의 동태적 최적화 목적함수를 푸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고 "학부모 부담 완화,대학 경쟁력 강화,대학의 자구노력 극대화,재정의 지속가능 설계 등 4개 목적을 30년 정도 시계에서 최적화하는 과제"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4개의 목적이 서로 제약조건으로 작용하는 상대성,이원성을 갖고 있어 풀다 보면 허근(虛根)이 나올 수 있다"며 "허근이 나와서 국민을 실망시켜서도 안 되지만 극단에 치우친 해법은 최적화와 괴리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이쯤 되면 박 장관의 대학교수 경력을 의심할 이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박 장관의 등록금 함수는 문제투성이다. 그는 등록금 문제가 학비부담,대학 경쟁력,대학의 자구노력,재정의 지속가능성 등 4개의 목적이 얽혀있어 풀기 어렵다고 했다. 그가 제시한 4개 모두'목적'이 될 수 있는지가 우선 의문이고,설사 그렇다 해도 이 4개가 똑같은 중요도를 갖는 게 아니라면 그것부터 따지는 것이 정책당국자가 할 일이다. 우선순위란 말은 이를 위해 있는 것이고,박 장관은 그런 정책적 판단을 해야 할 위치에 있다.
"통신요금을 20% 인하하겠다. "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그 후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통신요금 인하문제와 관련해 쏟아낸 일련의 발언들은 이렇다. "향후 5년간 이통요금을 20% 인하하겠다. "(2008년 4월1일) "이동통신 기본료,가입비는 시장자율에 맡기겠다. "(2008년 12월26일) "20% 통신요금 인하는 이미 달성됐다. "(2010년 11월 26일) "기본료와 가입비 인하를 추진하겠다. "(지난 3월28일) "우리나라 통신비는 굉장히 싸다. "(지난 4월6일) "SMS 무료화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 4월13일,그 뒤 곧바로 발언이 와전됐다며 해명) "기본료,가입비까지 손대야 하나. "(지난 5월17일)방통분야 규제당국의 최고 수장이라는 사람이 시장에 어떤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소비자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고,사업자는 차라리 정부가 통신사업을 하라고 말한다. 한나라당이 정부의 통신비 인하방안에 퇴짜를 놓았다. 또 다시 "정치논리냐"고 하지만 정치인들을 탓할 것도 없다. 그들이 선거를 의식해 통신요금 인하를 들고 나온 것은 15대 총선이 있었던 1996년부터 시작해 매번 그랬다. 정치인들이 끼어들 공간을 만들어 준 것은 방통위다. 통신요금이 정치적 소재가 되는 것은 시장경쟁으로 해결이 안되고 있다는 얘기이고,이는 곧 방통위의 경쟁정책 실패를 의미한다. 요금체계를 아무리 사후적으로 손질해본들 또 다른 논쟁의 시작일 뿐이다. 시장구조 변화,경쟁 활성화를 통한 가격인하가 정답이지만 정작 방통위의 정책적 의지는 찾아볼 수 없다. 사업자 수를 늘린다면서도 제4 이동통신사는 겉돌고 있다. 망을 빌려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라도 빨리 도입했어야
클레이튼 M.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노베이터의 딜레마'에서 과거의 성공에 자만하면 후발주자가 앞서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기업이 현재의 관점에서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했더라도 예상치 못한 새로운 시장이 떠올라 주도적 지위를 상실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금 사방에서 공격받고 있는 삼성전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이노베이터의 딜레마일지 모른다. 휴대폰부터 그렇다. 삼성이 휴대폰시장 1위 노키아를 잡겠다고 내달릴 때인 2007년 6월 애플은 아이폰을 들고 나와 경쟁판도를 일거에 엎어 버렸다. 애플은 지난 1분기 매출액 기준으로 휴대폰 시장 1위로 올라섰다. 경쟁자들에 앞서 스마트폰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게 주효했다. 애플은 선발자만이 기대할 수 있는 브랜드 로열티와 기술 리더십,희소자산의 선점,구매자 전환비용의 활용,그리고 학습효과,네트워크 외부성 효과 등 수확체증의 이점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그 여세는 태블릿 PC시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삼성이 다른 경쟁자들보다 재빨리 애플 추격에 나선 것은 다행이다. 애플이 삼성을 특허침해로 제소한 것도 삼성을 의식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나 삼성이 '시장진입의 타이밍'을 놓친 기회비용은 너무나 크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로드맵에서 더 이상 변수가 아니라고 봤던 엘피다도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엘피다의 20나노급 D램 양산 계획이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라고 해도 삼성은 미세화 경쟁의 고삐를 다시 당기지 않으면 안 될 처지다. '연속적 혁신(continuous innovation)'을 이끌고 가는 기업의 숙명이다. "네가 머물기를 원한다면 있는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 " 루
학생들의 자살로 야기된 KAIST 사태에 그냥 묻혀선 안될 사건이다. 촉망받던 KAIST의 한 과학자가 자살했다. 미국 생체재료학회로부터 최고의 영예인 '클렘슨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세계적인 학자였다. 주변에서 그가 자살한 배경으로 꼽은 것은 KAIST에 대한 교육과학기술부의 감사였다. 연구실에 지급된 운영비 1억원 중 2200만원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사실이 적발돼 중징계 및 검찰 고발방침을 교과부로부터 통보받고 심적 압박을 크게 받았다는 얘기다. 과학계에서는 아까운 과학자가 희생됐다며 안타까워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부인하고 싶겠지만 언제부터인가 감사라는 것이 인사교체 등 특정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압박용이 된 지 오래다. KAIST 감사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 적지 않다. KAIST 개혁에 박수쳤던 교과부는 서남표 총장이 국회에 불려왔을 때 선을 긋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것부터 의아스러웠다. 교과부가 지난해 서 총장 연임에 반대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교과부의 한 관료는 서 총장이 행정절차를 무시한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서 총장은 연임에 성공했지만 1년 뒤 물러나기로 했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다. 교과부와의 긴장관계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교과부는 올해 초 KAIST 감사가 4년 만의 정기감사였다고 하지만 KAIST 안팎에서는 서 총장을 잡기 위한 감사라는 시각이 파다했다. 서 총장의 국회 출석을 하루 앞둔 날 교과부는 이례적으로 감사결과를 공개했다. 그리고 감사결과를 두고 교과부와 서 총장은 정면으로 대립했다. 이 과정에서 한 과학자가 목숨을 끊었다. 보복감사였든 아니든 연구비 유용은 잘못된 행위다. 하지만 근저를 파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방사능 공포는 원전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 쪽에서는 "원전이냐, 정전이냐"며 당장 원전을 대체할 마땅한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원전의 안전을 향한 새로운 혁신의 자극제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원전 르네상스는 끝났다"고 단언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사태가 어느정도 수습된 후 일본이 어떤 선택을 하고 나올지 두고 볼 일이지만, 원전 중심의 에너지 프레임으로 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결코 남의 일일 수 없다. 정부가 범부처적인 원전 · 방사능 컨트롤타워를 만든다고 한다. 일본 사태의 파장이 심각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특히 일본 정부의 대응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고, 그 불똥이 우리에게 튈지 모른다는 우려도 깔린 듯하다. 벌써 국내 환경단체들은 반핵 캠페인에 돌입했다. 이에 국내 과학단체도 적극적인 맞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과거와 다른 양상이다. 과학자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미디어나 일반인들의 우려와는 달리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거나 "방사능 공포는 과장됐다"고 말한다. 문제는 국민들이 과학자의 이 말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에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홍역을 치렀던 2008년의 일이다. 당시 과학자들이 제 역할을 못했다고 자책했던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그 해 연말 '과학기술과 사회, 불신과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포럼을 열었다. 그 때 홍성욱 서울대 교수의 주제발표는 지금 읽어봐도 유념해야 할 대목들이 적지 않다. 과학자들은 확률로 위험을 설명하려고 하지만 홍 교
오원철 전 청와대 제2경제수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1974년 중화학공업기획단장을 맡아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고 있는 주력산업들의 비전을 그렸던 인물이다. 한국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모인 공학한림원에서 그에게 2011년 공학대상을 수여했다. 오 수석의 공적을 인정한 것이지만 정작 그는 상금 1억원을 지난 경제성장 과정에서 헌신했던 기능공들을 기억할 수 있는 일에 써달라고 내놨다. 자신보다 기능공들의 기여가 훨씬 컸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요즘 관료들을 만나면 국가적 사명감보다 개인이나 부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한 전직관료는 국장,실장,차관으로 올라가면서 국가보다 부처 이익을 따지는 비중이 80%,90%,100%로 높아지더라고 고백한다. 행정학자들은 관료제의 폐혜가 위험수위를 넘었고,특히 관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혼동하기 시작할 때 그 폐혜는 극에 달한다고 경고한다. 곽승준 청와대 미래기획위원장이 "대기업이 관료제의 함정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기업이 거대해지면서 유연하지도 도전적이지도 않은 조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여느 경영학자들의 얘기와 별반 다를 것도 없다. 문제는 그가 대기업을 창의적 조직으로 바꾸기 위한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한 대목이다. 곽 위원장은 기업지배구조에 변화를 가져올 정책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미안하지만 이것은 곽 위원장이 나설 일이 아니다. 대기업이 관료제의 함정에 빠지면 누구보다 걱정해야 할 사람은 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일 것이다. 시장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을 절대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의 흥망성쇠는 시장의 힘이 그만큼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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