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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중국 부상’ ‘디지털 혁명’의 공통점은 인플레이션 억제에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분업에 따른 비용 절감 등 공급망의 효율화를 가져왔다. 싼 공산품의 최대 생산국 중국의 등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지난 25년 동안 세계화와 중국 이상으로 물가 안정에 기여한 것은 디지털 혁명이다.경제학은 ‘부족(shortage)’과 씨름해온 학문이다. 디지털로 네트워크화된 세상은 부족 문제로 고민하는 경제와는 그 작동원리가 다르다. 정보와 데이터, 지식은 누구랑 같이 쓴다고 부족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비용은 낮아지고 효용은 올라간다. 한계비용 상승으로 수확체감 법칙에 구속당하는 경제와 한계비용이 제로로 가면서 수확체증 법칙을 구가하는 경제의 차이다. 경제가 디지털화로 가면 인플레이션이 작동하는 방식도 과거와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다.불행히도 코로나19로 세계화에 제동이 걸리고, 중국의 부상으로 미·중 충돌이 일어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더해지면서 역풍이 불고 있는 모습이다. 인플레이션도 그중 하나다. 그래도 마지막 카드가 남아 있다. 미완의 디지털 혁명이 그것이다.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로 생산성을 더 높인다면 물가 상승 압박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미국에서 플랫폼 규제 담론이 쑥 들어간 이유도 인플레이션 리스크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려면 거시적으로는 금리 인상이 있지만, 미시적으로는 디지털 전환 가속화밖에 없다. 기업 경영자들이 인공지능(AI)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래를 예측하고 싶다” “고객보다 고객 마음을 잘 알고 싶다&rd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는 ‘데드크로스’ 여론조사가 나왔다. “지지율은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집권 초기란 점과 경제위기 속 지지율이란 점을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람을 움직이는 데는 ‘로고스(논리)’만으로는 안 되고 ‘에토스(신뢰)’ ‘파토스(감성)’도 필요하다는 게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이다. 에토스가 떨어져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이라면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 상황이 오면 그것으로 국정은 끝장난다. 특히 지금처럼 경제위기 국면에서 리더십이 흔들리면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대통령 지지율 불안이 야당과의 협치를 더 어렵게 하고 여당 내 조기 권력투쟁을 불러오는 요인이란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정치 상황이다. 정치권의 시계가 벌써부터 2024년 4월 총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진단도 가능하다. 문제는 이대로 나라가 정치투쟁, 권력투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우다. 가뜩이나 글로벌 실물·금융 동반 위기에 처한 경제는 그야말로 희망이 사라질 게 뻔하다.유능한 정부를 강조해온 윤 대통령은 “(세계적 경제 위기라서) 근본 해법을 내기 어렵다”고 했다. 독일의 정치·사회·경제학자 막스 베버가 정의한 바 있는, 하늘이 준 일상적이지 않은 자질을 가진 ‘카리스마’를 국민이 바라는 게 아니다. 국민은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가득한 환경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 속에서도 경제주체들이 희망을 갖고 헤쳐나갈 수 있도록 대통령이 ‘비저너리 리더십’을 보여주길 원한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전략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역대 정부도 비슷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번엔 다르다지만 과거의 관성으로 흐르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부·관료가 그대로란 점이 불안을 더한다. 규제개혁이 또 실패하면,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충격(성장률 감소로 직결)이 오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 닥칠지 상상만 해도 두렵다.“북한 핵보다 무서운 게 한국의 저출산이다.”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할 국가다.” 이런 경고가 설마 하는 사이 리스크로 닥쳐오고 말았다. 출산율보다 출생아 숫자가 감이 잘 온다. 1970년 100만 명, 1987년 62만 명, 2005년 44만 명, 2021년 26만 명. 50년 사이 출생아 수가 4분의 1로 뚝 떨어졌다. 생산가능인구는 2018년부터 하락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20년 사이 1000만 명의 생산가능인구가 사라질 판국이다.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저성장과 떼어내 설명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자원도 없는데 저성장하면 기회가 줄어들고 경쟁이 치열해져 저출산 압박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저성장→기회 감소→저출산→저성장’의 악순환이다. 저출산 해결이 어려운 과제란 점은 지난 경험이 증명해준다. 저출산을 단기간에 되돌리기 어렵다면, 가능한 한 그 속도를 늦추면서 인구 감소가 몰고 올 경제적 충격을 돌파할 대안을 찾는 게 현실적인 대응책일 것이다.1970년대 출생아의 4분의 1에 불과한 지난해 출생아 26만 명이 한국의 운명을 쥐고 있다면 한 명 한 명을 네 배, 아니 그 이상으로 소중히 다뤄나가는 게 출발점이 돼야 할 것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현재의 경제 규모를 유지하려면 생산성 증가가 인구 감
중국 48%, 일본 43%, 미국 41%, 한국 28%. 일본 정부 의뢰로 홍콩 입소스가 아세안 지역 10개국에 ‘G20 국가 중 향후 중요 파트너는 어디인가’를 복수 응답 형태로 물은 결과다. 중국을 견제한다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가 아세안 주요국을 참여시켰지만, 중국과 아세안은 서로 최대 교역국이다. 동아시아 허브는 일본에서 중국으로 이동했다. 일본도 미국도 중국의 역할을 대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상호 의존성의 무기화 카드는 미국과 중국이 다 쥐고 있다. 미국은 첨단기술 우위와 글로벌 금융 허브라는 네트워크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상대국을 감시·통제·차단하는 ‘파놉티콘 효과’와 ‘관문(choke point)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중국은 140개국이 넘는 나라의 최대 교역국이고, 미국조차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려운 세계 최대 제조국이란 점이 무기다. 그 사이에서 제3국은 미국을 따르지 않을 경우 가해질 2차 제재(secondary saction), 중국에 등을 돌릴 경우 수출·수입 제재를 우려하고 있다.글로벌 공급망의 무기화 파장은 가늠하기 어렵다. 글로벌 공급망은 기업들의 비용 절감과 비교우위 등 경제적 효율성 추구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바꾸려면 경제적 손실 감수가 불가피하다. 패권을 우선하는 국가라면 장기적으로 대체 공급망 구축이 가능한지, 또 정치·군사 등 안보 이익이 경제 손실을 능가하는지 따져보고 무기화를 불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은 미국조차 자국 경제 및 기업의 피해를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제3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세계 경제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견실한 성장률을 이어가고 중국은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경제.’ 윤석열 정부가 내건 경제 분야 국정목표다.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로 가자는 구호가 김영삼 정부 이후 줄기차게 나왔지만, 정부의 구조와 행태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정부가 끌고 갈 테니 민간은 뒤에서 밀거나 따라오라는 식이었다. 정부의 ‘경로 의존성’이 이렇게 견고하다.“정부와 관료, 정책은 지적이고 공정하다.” 경제학자 존 매이너드 케인스의 ‘하비 로드의 전제’가 지금도 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부의 오판이 부른 ‘정부 실패’ 비용이 ‘시장 실패’를 능가하는 수많은 사례가 던져준 교훈이다. 윤석열 정부가 ‘공정’은 둘째치고 ‘지적 오만’부터 버릴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경제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식에서 민간이 정부를 압도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공약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청와대 수석 폐지였다. 이게 현실이 됐다면 정부 혁신의 일대 전환점이 왔을 것이다.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식과 권력이 비례하는 게 지식기반경제다. 지식의 이동에 따라 청와대 정부에서 민간으로 권력이 이동할 절호의 기회가 무산됐다. 민관합동위원회가 출범한들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곳곳에서 경제안보, 산업안보, 기술안보의 중요성과 정부 역할론을 말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한국은 강 대 강으로 맞서는 미국, 중국과 똑같은 패권 논리와 전략으로 대응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민간의 경쟁력에서 길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한국의 각료는 어디로 가든 상석
“정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목표와 비전을 정의할 능력이 없다”(지미 카터 연두교서, 1978년) “정부는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정부가 문제다”(로널드 레이건 취임사, 1981년) “큰 정부 시대는 끝났다”(빌 클린턴 연두교서, 1995년). 민주당과 공화당 할 것 없이 이들 미국 대통령은 연방정부에 대한 불신을 경멸에 가까운 레토릭으로 쏟아냈다.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정부에 대한 반감이 커진 현실을 보여주는 발언이란 게 정치학자 마크 헤더링턴의 해석이다.정부가 국민 모두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느끼는 정책을 추진한다면 정치적 신뢰가 굳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누군가의 희생 또는 양보를 필요로 하거나, 첨예한 갈등에 직면한 구조적 개혁과제들이다. 개혁을 추진하려면 그 결과가 모두에게 더 나은 미래일 것이란 확신을 주는 높은 정치적 신뢰가 필요하다. 존 F 케네디가 ‘뉴 프런티어’를, 린든 존슨이 ‘위대한 사회’를 들고나왔을 때만 해도 정치적 신뢰가 높았다. 지금은 정치적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선거 공약 취지에 찬성해도 정부가 그것을 잘해낼 것이란 믿음이 없어 실제 정책 추진에는 반대한다는 사람 또한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슬로건이나 비전을 제시해도 동력을 얻기 어렵다. 불신이 극에 달하면 이를 이용하는 극단적 지도자가 출현할 위험성도 높아진다.로버트 퍼트넘은 미국이 정부 불신 등 위기의 ‘사회적 자본’을 재건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한다. 그래도 미국은 기본적으로 법치주의를 중시하는 사회적 자본이 남아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패권국으로서 미국이 구축한 기존의
1957년 한 경제학자가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1909~1949년 기간 무엇이 경제성장에 기여했나를 분석한 논문을 낸 로버트 솔로였다. 노동의 기여분, 자본의 기여분을 뺀 ‘설명할 수 없는 잔여분(residual), 성장의 85%’ 비밀은 기술 발전에 있었다. ‘총요소생산성’ 개념은 이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애덤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앨프레드 마셜, 조지프 슘페터 등도 전통적 생산요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기술 변화’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솔로가 이들의 통찰력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1957년은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해 미국에 큰 충격을 안겨준 해다. 맞대응에 부심하던 미국 입장에서 솔로의 논문은 왜 과학기술에 투자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보여줬다. 또 하나의 역사적 의미는 기술혁신을 하면 자본과 노동의 이익 공유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진 점이다. 솔로의 논문은 자본의 한계생산성 체감 때문에 지속 성장을 하려면 기술혁신이 필요하고, 기술 포용이 장기적으로 노동자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한마디로 ‘혁신 주도 성장 보고서’였다.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윤석열 정부의 네 가지 중요한 과제로 ‘국익 외교와 강한 국방’ ‘재정 건전성’ ‘국제수지 관리’ ‘생산성 향상’ 등을 적시했다. 기술력과 경제력이 없으면 국익 외교도 강한 국방도 없다. 재정 건전성은 위기 시에 더욱 중요하지만, 쓸 곳이 갈수록 늘어나는 재정지출의 구조조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성장을 통한 세수 기반 확충이 필수적이다. 밖에서 한국 경제를 판단하는 거시경제변수인 국제수지 관리도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2015년 3월 15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 직후 리커창 총리의 내외신 기자회견이 기억에 남는다. 수많은 사람이 창업하고 혁신한다는 ‘대중창업(大衆創業)·만중창신(萬衆創新)’을 강조하던 리 총리에게 질문이 던져졌다. “창업과 혁신은 시장 규칙에 의한 개개인의 자발적 행위다. 정부 간섭으로 될 일인가.” 리 총리는 “정부는 장애물 제거와 플랫폼 구축에 힘쓸 것”이라고 답했다. 지금 중국은 세계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1000개 중 25%를 차지하며 50%를 점유하는 미국을 추격하는 중이다. 4차 산업혁명의 ‘판 기술(GPT·General Purpose Technology)’ 인공지능(AI)의 사회적 수용도에서는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경제 6단체장을 만났다. “기업이 자유롭게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정부는 인프라를 만들어 뒤에서 돕고 기업이 앞장서 커가는 게 나라가 커가는 것이다.” 공산주의 중국조차 정부 역할은 규제개혁과 인프라에 있다고 하는 말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한다는 한국에서 굳이 강조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윤 당선인은 “경제가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 당선인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인수위원회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 게 그다음 수순일 것이다.대통령과 경제단체장이 직접 통화할 수 있는 ‘핫라인(hotline)’이 실효성 있는 대안일지는 의문이다. 기업인 출신 대통령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명박 정부가 시도했지만 결과는 짐작하는 그대로다. 대통령과의
대선이 끝났다. AP통신은 한국 대선을 ‘오징어 게임’에 비유했다. 지면 죽는 선거라는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라면 누구에게 투표했건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정상일 것이다. 이제부터가 더 걱정이다. 비전과 정책이 아니라 미움과 증오로 가득찼던 대선의 후유증 때문이다. 이념·지역·계층·세대·젠더 갈등 등 갈등이란 갈등은 다 쏟아진 게 이번 대선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도 첨예한 갈등 구도가 언제 또 폭발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갈등을 통합으로 이끄는 예술이 정치라는 주장은 지금의 한국 정치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얘기다. 오히려 정치는 갈등 에너지로 폭주하는,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 같다. 이제는 기존 정치로는 도저히 풀거나 제어할 수 없는 수준의 갈등에 이른 게 아닌지 위기감을 넘어 절망감이 들 정도다. 파시즘이 무엇인가. 편을 갈라 상대를 죽이는 정치다.극심한 내부 갈등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라는 외부 위협이 눈앞에 닥쳐도 대응할 수 없다. 국가의 사활이 달린 외부 위협조차 안에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 어떻게 이용할지 골몰한 나머지 왜곡되고 만다. 무장 해제나 다름없다. 그 끝은 파국이고,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대통령 당선인은 외부 위협부터 직시해야 한다. 매우 까다롭고 복합적인 외부 위협이다. 미·중 충돌, 코로나19,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경쟁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신냉전 양상까지 더해지고 있다. 체제 대결, 자국중심주의 공급망 재편과 경제 블록화, 테크노내셔널리즘 등 하나같이 한국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지정학(geopolitics)·지경학(geoeconomics)·기경학(technoeconomics)적 위협
“이것은 인간 활동이 무엇을 이룩할 수 있는지 처음으로 보여줬다. 경탄할 만한 예술을 창조해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로마의 수로, 고딕 성당과는 완전히 다른 기적이었다. 민족의 대이동, 십자군과는 차원이 다른 원정을 해낸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1848)에서 말한 이것은 자본주의다. “이것은 생산도구를 끊임없이 변혁하지 않으면, 생산관계와 더 나아가 사회관계 전반을 혁신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생산도구의 계속적인 변혁, 사회관계의 끊임없는 혁신이 그 이전의 모든 시대와 구별해준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자본주의는 ‘변덕쟁이’라서 ‘자승자박’하고 말 필연적인 운명을 안고 있다는 주장만 빼면.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변화’의 한 방식(form) 내지 방법(method)”이라고 했다. 변화의 지속가능성 문제가 남지만, 자본주의가 변화를 계속해낼 수 있으면 굴러가는 것이고 변화를 더 이상 할 수 없으면 끝나는 것이다. 슘페터가 ‘내부로부터(from within)’ 경제 구조를 끊임없이 바꾸는 산업의 변화 과정, 즉 ‘창조적 파괴’가 자본주의의 본질이라고 한 이유다. 노동도 기업도 변화를 향해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도태당할 수밖에 없다.디지털 전환을 내부로부터 경제 구조를 끊임없이 바꾸는 산업의 변화 과정, 즉 ‘창조적 파괴’로 본다면 어떤 선택이 요구되는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인데도 대선 후보들은 도피할 궁리만 하고 있다. ‘전국 단위 공공 택시 호출앱’(이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쓴 책의 제목이다. “역대 대통령은 하나같이 탐욕 때문에 쓰러졌다”고 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도) 어차피 양당 후보 가운데 한 명이 당선될 텐데 누가 돼도 나라 앞날이 암울하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탐욕 없는 대통령이 들어서면 내일의 세상은 오늘과 다를 것인가.물음을 바꿔보자. 왜 정부는 실패하는가. 오로지 대통령 때문인가.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자칭 보수든 진보든 역대 대통령마다 꼭 하겠다고 약속한 규제개혁은 왜 실패로 돌아갔는가. 전부 대통령 탓인가. 대통령이 모두 실패한 이유가 탐욕을 부르는 정치권력 구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권력은 관료집단에 위임돼 그들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관료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본질적으로 ‘정부에서 민간으로의 권력 이동’을 의미하는 규제개혁이 될 턱이 없다.한국행정학회·한국정책학회 주최 ‘차기 정부 운영 대토론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우스갯소리 같지만 대한민국에 당이 세 개가 있다. 여당·야당·관당(官黨). 오죽하면 ‘관피아’ ‘모피아’ 이런 이야기가 있겠나”라고 했다. 여당·야당이 국민 선택으로 바뀌어도 관료사회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그래서 어떻게 고치겠다는 것인지 청사진이 없다. 개인기로 돌파할 수 있다지만 시스템 개혁 아니면 그때뿐이다. “임명권력은 선출권력을 따르라”고 윽박지른다고 될 일도 아니다. 기획재정부를 해체해도 관료는 남는다. 탄소중립·에너지전환을 위해 기후에너지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쓴 책의 제목이다. “역대 대통령은 하나같이 탐욕 때문에 쓰러졌다”고 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도) 어차피 양당 후보 가운데 한 명이 당선될 텐데 누가 돼도 나라 앞날이 암울하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탐욕 없는 대통령이 들어서면 내일의 세상은 오늘과 다를 것인가.물음을 바꿔보자. 왜 정부는 실패하는가. 오로지 대통령 때문인가.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자칭 보수든 진보든 역대 대통령마다 꼭 하겠다고 약속한 규제개혁은 왜 실패로 돌아갔는가. 전부 대통령 탓인가. 대통령이 모두 실패한 이유가 탐욕을 부르는 정치권력 구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권력은 관료집단에 위임돼 그들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관료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본질적으로 ‘정부에서 민간으로의 권력 이동’을 의미하는 규제개혁이 될 턱이 없다.한국행정학회·한국정책학회 주최 ‘차기 정부 운영 대토론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우스갯소리 같지만 대한민국에 당이 세 개가 있다. 여당·야당·관당(官黨). 오죽하면 ‘관피아’ ‘모피아’ 이런 이야기가 있겠나”라고 했다. 여당·야당이 국민 선택으로 바뀌어도 관료사회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그래서 어떻게 고치겠다는 것인지 청사진이 없다. 개인기로 돌파할 수 있다지만 시스템 개혁 아니면 그때뿐이다. “임명권력은 선출권력을 따르라”고 윽박지른다고 될 일도 아니다. 기획재정부를 해체해도 관료는 남는다. 탄소중립·에너지전환을 위해 기후에너지
권위나 카리스마 리더십을 가진 대통령 후보자를 더는 찾기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통령과 정부가 이끌고 가는 시대가 끝났다면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 이런 고민을 한다면 지금 같은 승자 독식과 권력 집중은 그 자체로 국가적 리스크일 수밖에 없다. 죽기살기식 정파적 양극화가 극심한 가운데 폐쇄적·동질적 대선 캠프가 그대로 권력 독점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시대가 요구하는 다원주의와 협치, 분권화, 자율성 등이 더욱 요원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대선 국면에 이르러서야 집권당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과오를 인정하기 시작한 부동산 정책, 수정 가능성을 열어놓은 탈(脫)원전 정책 등은 ‘집단사고’의 위험성을 보여준 사례다. 응집력 있는 집단 구성원일수록 비판적 의견을 내놓기 어렵다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어빙 제니스의 주장 그대로다. 비슷한 성향을 지닌 구성원들이 모이면 개인으로 있을 때보다 더 극단적인 결정을 한다는 데이비드 마이어스와 헬무트 램의 경고도 남의 일이 아니다.대선 캠프들이 인재를 영입하고 있다지만, 모여든 인간군상의 면면은 실망감을 넘어 위험성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기껏해야 진영의 반쪽에 불과하다. 여당만 해도 이른바 586 인사 아니면 권력의 맛에 한번 취해보겠다는 기회주의자 천지다. 제1 야당 국민의힘도 다를 게 없다. ‘영남법조인당’도 모자라 검사 선후배까지 설치면서 ‘검찰당’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보수 쪽에서도 나온다. 캠프 내 자칭 전문가란 사람들도 의심스럽다. 해당 분야에서 퇴물이거나 함량 미달로 밀려난 이들이 태반이다. 진짜 최고 인재라면 캠프 주변을 서
유럽연합(EU)이 2년 넘게 끌고 온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을 불허했다. 유럽 발주사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는 분석이다. 지난 10년간 EU의 합병 심사로 보면 이례적이다.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가운데 새해 벽두 날아든 이 소식은 국제사회의 공동 번영 가치가 퇴조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 체제를 알리는 또 하나의 신호로 읽힌다.한국공학한림원은 차기 정부를 위한 ‘새로운 산업혁명 100년, 추월의 시대로 가자’는 정책총서에서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게임체인저 코리아’라는 낙관적 시나리오, ‘현상 유지’라는 중립적 시나리오, ‘혼란과 침체’라는 비관적 시나리오다. 한국의 경제성장률 추세선이 3~4%대로 반등하느냐, 아니면 1~2%대 또는 0%대로 미끄러지느냐를 각각 그려낸 것이다. 다음 정부는 어디로 갈까?기획재정부는 세계 경제가 4.9% 성장할 것을 전제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1%로 제시했다. 코로나 이후 희망을 담아낸 것이지만 한국 경제의 진로는 낙관하기 어렵다. 밖의 상황부터 심상치 않다.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4.1%로 끌어내렸다. 오미크론 급증에 따라서는 3.4%까지 떨어진다는 단서와 함께. 억눌린 수요 폭발 등 기저효과와 대규모 재정·금융지원 약효가 사라지고 있는 데다 불투명한 코로나 전개 과정, 공급망 교란 등이 부정적 요인으로 꼽혔다.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으로 지난해 8.1% 성장률을 기록한 중국은 올해 5.1%로 떨어지고, 미국도 지난해 5.6%에서 3.7%로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은 3.2%로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2차 오일쇼크 이후 1980~1984년(평균 성장률 2.3%)
유럽연합(EU)이 2년 넘게 끌고 온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을 불허했다. 유럽 발주사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는 분석이다. 지난 10년간 EU의 합병 심사로 보면 이례적이다.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가운데 새해 벽두 날아든 이 소식은 국제사회의 공동 번영 가치가 퇴조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 체제를 알리는 또 하나의 신호로 읽힌다.한국공학한림원은 차기 정부를 위한 ‘새로운 산업혁명 100년, 추월의 시대로 가자’는 정책총서에서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게임체인저 코리아’라는 낙관적 시나리오, ‘현상 유지’라는 중립적 시나리오, ‘혼란과 침체’라는 비관적 시나리오다. 한국의 경제성장률 추세선이 3~4%대로 반등하느냐, 아니면 1~2%대 또는 0%대로 미끄러지느냐를 각각 그려낸 것이다. 다음 정부는 어디로 갈까?기획재정부는 세계 경제가 4.9% 성장할 것을 전제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1%로 제시했다. 코로나 이후 희망을 담아낸 것이지만 한국 경제의 진로는 낙관하기 어렵다. 밖의 상황부터 심상치 않다.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4.1%로 끌어내렸다. 오미크론 급증에 따라서는 3.4%까지 떨어진다는 단서와 함께. 억눌린 수요 폭발 등 기저효과와 대규모 재정·금융지원 약효가 사라지고 있는 데다 불투명한 코로나 전개 과정, 공급망 교란 등이 부정적 요인으로 꼽혔다.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으로 지난해 8.1% 성장률을 기록한 중국은 올해 5.1%로 떨어지고, 미국도 지난해 5.6%에서 3.7%로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은 3.2%로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2차 오일쇼크 이후 1980~1984년(평균 성장률 2.3%)
“18세기 산업혁명이 왜 중국에서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른바 ‘니담의 퍼즐(Needham puzzle)’ 풀이는 이미 다 나와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관점, 고등교육, 혁신과 확산, 특허제도, 도시의 역할 등이 영국과 중국의 운명을 갈랐다는 것이다. 중국이 영국발(發) 산업혁명을 훗날 동양으로의 진격을 알리는 선전포고로 받아들였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왜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됐느냐도 마찬가지다. 당시 프랑스는 종교적 박해를 피해 자국을 빠져나간 기술 인력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미국 경제사학자 조엘 모커는 이웃 국가들의 기술혁신을 위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자기만족에 빠져 외부 위협을 무시한 강대국의 몰락은 역사가 ‘카드웰의 법칙’으로 알려주고 있다. 과거엔 외부 위협이 전쟁이었고 선전포고가 있었다. 지금은 외부 위협이 기술이고 선전포고가 없다. 미·중 충돌이 바로 그렇다.미국과 중국은 인공지능(AI), 차세대 이동통신, 양자정보과학, 반도체, 바이오, 그린에너지 등 21세기 핵심 기술을 놓고 물러설 수 없는 전쟁에 돌입했다.&n
“18세기 산업혁명이 왜 중국에서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른바 ‘니담의 퍼즐(Needham puzzle)’ 풀이는 이미 다 나와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관점, 고등교육, 혁신과 확산, 특허제도, 도시의 역할 등이 영국과 중국의 운명을 갈랐다는 것이다. 중국이 영국발(發) 산업혁명을 훗날 동양으로의 진격을 알리는 선전포고로 받아들였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왜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됐느냐도 마찬가지다. 당시 프랑스는 종교적 박해를 피해 자국을 빠져나간 기술 인력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미국 경제사학자 조엘 모커는 이웃 국가들의 기술혁신을 위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자기만족에 빠져 외부 위협을 무시한 강대국의 몰락은 역사가 ‘카드웰의 법칙’으로 알려주고 있다. 과거엔 외부 위협이 전쟁이었고 선전포고가 있었다. 지금은 외부 위협이 기술이고 선전포고가 없다. 미·중 충돌이 바로 그렇다.미국과 중국은 인공지능(AI), 차세대 이동통신, 양자정보과학, 반도체, 바이오, 그린에너지 등 21세기 핵심 기술을 놓고 물러설 수 없는 전쟁에 돌입했다. 미국은 중국이 10년 안에 모두 따라잡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10년 안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전략이다. 역사는 훗날 지금의 미·중 충돌을 ‘거대한 10년 기술전쟁’으로 기록할지 모른다.새로운 산업혁명 때마다 국가 간 ‘대분기(great divergence)’ 속에 주도국으로의 쏠림이 일어났다. 코로나19가 신기술 수용을 가속화하면서 미·중으로의 쏠림이 확연하다. 세계 총생산(GDP)에서 미·중이 차지하는 비중은 2
“나는 가상현실이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일종의 거울현실이 되는 상황을 창조하길 원한다.”뉴미디어아트 선구자 제프리 쇼의 말이다. 그는 가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지점, 인터페이스를 탐구해왔다. 모니터 속 황금 송아지가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1994년 작품 ‘황금 송아지(The Golden Calf)’는 증강현실(AR) 개념을 활용한 것이었다. 오는 5일(현지시간)부터 7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온&오프 하이브리드 형태로 열리는 ‘CES 2022’는 증강·가상현실을 넘어 메타버스가 미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굴곡의(nonsmooth) 과정을 거치며 독감 같은 엔데믹(풍토병)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이후 펼쳐지는 글로벌 경제는 ‘과거의 균형’으로 복귀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균형’으로 이동할 것이다.” 국내외 경제전문기관이 내놓은 2022년 글로벌 경제 지형도 전망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동력은 예외 없이 새로운 기술이었다.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세계 경제가 2020년대 중반까지 연평균 2%대 저성장이 불가피하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지만, 기술 혁신은 결국 전환점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가 앞당긴, 생존을 위한 비대면·친환경 기술이 그것이다.신기술 경쟁으로 혁신이 가속화하고 신산업이 예상보다 앞서 주류로 등장하면 구조적 반등이 빨리 찾아올 것이다. 그 반등은 신기술에서 우위를 가진 국가, 창조적 파괴를 이끄는 산업, 혁신 역량이 뛰어난 기업, 변화를 먼저 알아보는 투자자, 새로운 일자리에 준비된 개인이 주도할 것이 분명
“한국 대통령선거 사상 가장 희망과 기대가 없는 우울한 대선이다.”(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정치가 그들만의 진영 간 ‘응징’과 ‘생존’의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국민도 없고 미래에 대한 어떤 비전도 없는 정치라면 사망선고가 내려졌다고 봐야 한다.코로나 사태가 당초 전망과 달리 길어질 조짐이다. 이미 겪은 경제·사회적 충격의 규모와 깊이만으로도 다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불가역적 변화’에 힘이 실리고 있다. 새로운 경제·사회적 질서가 나타나면 국가 거버넌스에도 동시적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게 상식이다. 이게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다. 불행히도 국가 거버넌스, 특히 정치엔 그 어떤 변화도 엿보이지 않는다는 게 한국의 최대 리스크로 고착화되고 있다.경제적 격차 확대를 비집고 들어오는 포퓰리즘은 여야 간 차이가 없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에서 복지국가론이 등장할 때와는 환경이 다른데도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처럼 재정 개입만 부르짖는다. 누가 세금을 부담할지, 어떻게 사회적 동의를 구할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무조건 돈을 퍼붓고 보자는 식이다. 심지어 새로운 경제·사회적 질서와 동행해야 할 노동개혁에서는 여야가 ‘거꾸로 가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한국 사회에서 오직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분야는 딱 하나, 바로 정치다. 민주화 시대 이후에도 모든 정권이 산업화 시대 박정희와 경쟁하는, 이른바 ‘박정희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자칭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들어서는 정권마다 ‘설계사’ ‘해결사’를 자처하는 ‘국가 주도 발전모델’을
“다음 세대는 지금보다 몇 배 생산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50년, 어쩌면 60년간 생산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5세에서 20대 초반까지 낡은 교육 시스템으로 긴 인생을 버티라는 게 말이 되나.” 미누시 샤픽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제기한 문제다. 그가 세대 간 심각한 형평성 이슈로 꺼낸 이 문제는 다음 세대가 저출산 고령화 속에 인공지능(AI)과 공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바로 와닿는다.기술은 사회와의 상호작용 속에 진화한다. 문제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다. 역사는 이럴 때 경계해야 할 세 가지 오류를 가르쳐주고 있다. 먼저 AI는 별게 아니라고 폄하하는 부류다. ‘기회의 창’을 닫는 패배자를 자초하는 길이다. 다음은 AI로 혁신이 금방 현실이 될 것처럼 과잉 기대를 부추기는 부류다. 버블을 낳고 겨울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AI로 일자리가 없어지고 총수요가 급감하고 경제가 파탄난다며 공포를 조장하는 부류다. 역사는 이들의 손을 들어준 적이 없다.대선이 뜨거워지면서 AI가 곳곳에서 소환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디지털 대전환을 이끌겠다”고 하더니, 다른 쪽에 가서는 “AI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 일자리가 대폭 줄어든다. 기본소득은 언젠가의 문제”라고 말한다. 디지털 전환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헷갈린다. 역사 인식이 없기로는 여야 따질 것이 없는 게 이 시대의 비극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당 후보가 갖는 무게감을 생각하면 넘어갈 수 없는 대목이 많다. 미국 디지털 기업의 창업주나 최고경영자(CEO)는 기본소득을 주장하는데 국내 기업인은 뭐 하
코로나19로 불평등이 심해졌다는 분석이 많다.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적으로 스타트업 바람이 불고 있다. 이 두 장면을 어떻게 봐야 할까. 불평등과 기업가 정신 간 관계가 있다면 높아진 불평등이 기업가 정신을 증대시키는 경향이 있다거나, 생존의 필요성이 기업가 정신을 높인다는 가설이 나올 법하다. 실제로 이런 가설을 지지하는 실증연구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그러니까 불평등은 문제가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가설은 불평등을 기업가 정신의 분출로 깨뜨릴 수 있는 ‘기제(mechanism)’가 작동하는 사회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기업가 정신을 알아보는 금융의 역할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불황기나 기술 패러다임 전환기에 ‘기회의 창’이 열린다지만 기업가 정신에 화답해주는 금융이 없다면 소용없다. 불행히도 한국에서 금융은 전투적인 노조와 함께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분야로 꼽혀왔다. 최근 스위스 비즈니스스쿨 IMD 평가에서 금융의 순위가 많이 올라왔다지만 여전히 국가경쟁력에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IMD가 12위로 평가한 2021년 한국의 디지털 경쟁력에서 은행(42위)과 벤처캐피털(39위)은 한참 뒤처진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코로나19 발생 이전 마지막으로 순위를 매긴 2019년 국가경쟁력평가에서도 한국의 금융 시스템은 18위로 전체 경쟁력(13위) 밑이었다. 벤처캐피털 가용성은 51위였다.국내 스타트업 축제 ‘컴업(COMEUP)’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벤처투자액이 역대 최고치에 달하고,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이 15개로 늘어나는 등 ‘제2 벤처붐’이 일고 있다”고 했다. 또 “올해 글로벌 투자액
제2의 ‘스푸트니크 충격’이 온다면 어느 나라, 무슨 분야에서 시작될까. 1950년대 미국은 장거리 미사일 등 무기체계에서 소련보다 앞서 있다고 자신했다. 당시 소련은 “수소폭탄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지만 미국은 허풍으로 간주했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했다. 역사의 기록대로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 소련이 인공위성을 먼저 쏘아 올렸다는 믿고 싶지 않은 사실에,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이 대륙을 넘어 미국으로 날아올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더해진 것이었다. 제2 스푸트니크 충격이 온다면 이번엔 중국으로부터 인공지능(AI)발(發)일 가능성이 높다는 예감이 든다.중국 관영 CCTV 방송이 자국 연구팀이 현재 연산속도에서 가장 빠르다는 슈퍼컴퓨터의 1000만 배에 이르는 초전도 양자 컴퓨터 ‘쭈충즈 2호’를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구글의 최신 양자 컴퓨터 ‘시커모어’보다 100만 배 복잡한 연산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중국의 허풍일까. 미국 내부에서도 경고가 나오고 있다. 공군의 사이버 보안을 총괄하다가 사임했다는 컬러스 차일란이 “(중국의 AI 발전으로) 경쟁은 끝났다”고 한 발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미국 스탠퍼드대 ‘2021 AI 지수’ 보고서는 중국이 AI 논문 출판에 이어 인용에서도 미국을 제쳤다는 사실을 ‘핵심 포인트’의 하나로 뽑았다. 이 모두 중국의 14억 인구가 쏟아내는 빅데이터와 정치 체제가 달라 개인정보를 손쉽게 활용한다는 법적 환경 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영국의 데이터 분석 미디어 토터스 인텔리전스가 발표한 올해 ‘글로벌 AI 지수’ 보고서에는
26년 전이다. 1995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 오찬간담회에서 “우리나라 행정력은 3류, 정치력은 4류, 기업경쟁력은 2류”라고 발언한 것이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정치는 오히려 5류로 뒷걸음질 치고 있고, 행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업에서 1류가 나오고 있다는 게 그나마 희망을 준다. 위기감 속에 한국 경제가 믿을 것은 기업뿐이란 가설은 그래서 더욱 절박하게 와닿는지 모른다.한국을 대표하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100’ 공개가 큰 반향을 몰고 왔다(본지 10월 21일자 A1, 4, 5면). 지금의 주력산업과 대기업을 이을 새로운 산업과 기업에 대한 갈망의 반영이란 해석이 나왔다. AI 스타트업 100은 KT·LG전자 등 AI 원팀과 한국벤처캐피털협회(스타트업 발굴), KAIST(평가모델) 그리고 한국경제신문(기획·커뮤니케이션)의 합작품이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AI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보자는 공감대가 출발점이었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나섰다는 점에서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선정된 스타트업은 자랑스러워했고, 이름을 올리지 못한 스타트업은 다음을 기약하며 미흡한 점을 알려달라고 했다. 대기업과 벤처캐피털(VC), 투자자들은 선정된 스타트업 정보를 요청했다. 대학 창업 클럽들은 동문기업이 몇 개 포함됐는지 후속 분석을 내놨다.AI 스타트업 100이 공개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어떻게 선정할지부터 난제였다. 혁신기업 평가로 유명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츠 못지않은 과학적 모델이 개발됐다. 정량·정성지표가 활용됐고 스타트업의 특성인 잠재력에 대한 가중치 배려가 있었다. 미디어 등 곳
미국이 자국의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40~50%를 넘어서는 국가가 나타나면 손을 본다는 가설은 그럴듯하다. 소련, 일본, 중국을 차례로 대입시켜 보면 말이다. 특허로 눈을 돌리면 더 극적인 장면이 그려진다. 1957년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 발사 당시 소련은 세계 최다 특허 출원국이었다. 충격을 받은 미국은 엄청난 과학기술 투자로 소련을 따돌렸다. 이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다 특허 출원국으로 부상한 국가는 일본이었다.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 등으로 일본을 밀어냈다. 지금 세계 최다 특허 출원국은 중국이다. 미·중 충돌은 올 게 온 것이고, 그 핵심은 기술이다.미국 행정부가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민감한 영업정보 제출을 요구했다. 정부는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를 열어 논의하겠다지만 뾰족한 대응책이 나올지 의문이다. 다음달 8일까지 공급망 정보를 제출하라고 통보받은 기업들만 전전긍긍하고 있다.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요구가) 통상적인 상식으로는 이례적인 조치”라고 했다. 이례적인 조치로 치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처음이 아니다. 직전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외국산 자동차에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부터 통상적인 상식을 깨는 조치였다. 당시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은 모든 정보를 미국에 제공했을 것이다. 지나 러만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반도체 기업의 자발적인 정보 제공”이라고 했지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필요 시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발동해 자료 제출을 강제할 수 있다”는 경고가 따라붙었다.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됐지만, 미국의 &lsq
테슬라와 기존 자동차 회사, 아마존과 월마트, 넷플릭스와 디즈니…. 사방이 플랫폼 대(對) 플랫폼의 경쟁이다. 디지털 전환은 기술·제품·서비스뿐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까지 바꾼다. 그 중심에 디지털 플랫폼이 있다. 컴퓨터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디지털 세상에서 플랫폼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그 어떤 기업도 플랫폼과 따로 놀 수 없다. 플랫폼 간 치열한 경쟁은 다시 디지털 전환을 확산시킨다. 디지털 전환과 플랫폼은 불가분의 관계다. 플랫폼 확산으로 생산성이 올라가고 새로운 성장 시대가 열리면 그게 곧 산업혁명이다. 디지털 전환이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이유다.이런 관점에서 보면 스타트업 플랫폼의 싹을 죽이는 것은 디지털 전환을 거부하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최근 세무·의료·법률·부동산 등 전문서비스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직역단체들의 저항이 그렇다. 이들 단체는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 스타트업 플랫폼을 불법으로 몰아갈 태세다. 시장경제 원칙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경쟁 촉진과 소비자 효용 극대화를 위해 보호할 대상은 ‘경쟁자’가 아니라 ‘경쟁’이기 때문이다. ‘공공의 적’은 플랫폼이 아니라 기득권의 지대를 위한 진입장벽이다. 진입장벽을 허물어야 기존 사업자도 디지털 전환으로 갈 수 있다. 스스로 파괴하지 않고 파괴당하면 사회적 비용은 그만큼 올라간다.플랫폼은 ‘갑’이거나 ‘강자’라서 별도의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발상도 위험하다. 플랫폼은 참여자가 많을수록 가치가 올라간다. ‘네트워크 효과’다. 참여자가 늘어나는 데 따른 한계비용은 거의 없다.
누구는 “위기가 기회”라고 한다. 이게 말이 되려면 전제가 있어야 한다. ‘외부위협’ 인식이 ‘내부갈등’을 압도할 정도로 달라져야 하고, 과거에 없던 행동의 변화가 이어져야 한다. 운도 따라야 한다.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호 1호를 쏘아올렸을 때 미국의 위기감은 엄청났다. 행동의 변화가 바로 일어났다. 국가항공우주법 제정과 사람을 달에 보내겠다는 프로젝트만이 아니었다.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적(敵)으로부터의 기술적 충격에 대응하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인터넷, GPS, 구글 지도, 시리(Siri), 아이폰,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 첨단기술의 산실인 ‘고등연구계획국(ARPA)’이 그때 탄생했다. 패권 도전자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미국이 이번엔 ‘혁신·경쟁법’을 내놨다. ARPA 모델이 국방을 넘어 국토안보, 첩보, 에너지, 바이오의료, 헬스 등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지금부터 타깃은 중국이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월 이후 7개월 만에 나눴다는 전화 대화가 눈길을 끈다. 백악관은 “미·중 경쟁이 충돌로 바뀌지 않도록 양국의 책임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승부가 당장 판가름이 날 게 아니어서 ‘전략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 미·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미·중 경제는 얽혀 있다. 미국이 원하는 정도의 디커플링, 중국이 바라는 수준의 기술자립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그 사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미·중 패권경쟁의 핵심이 첨단기술인 이상 양국은 각자 설정한 시간에 국가 역량을 집중시킬 것이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정부의 재정지원 명단에 있느냐 없느냐가 대학의 생명줄이 되고 말았다. 탈락한 대학들은 반발하고 대학 단체들은 일제히 정부의 재정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이미 10년 전부터 예고된 미래를 무시한 결과다.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정부인가, 대학인가.대학 붕괴는 벌써 시작됐다는 게 조영태 서울대 교수의 진단이다. 조 교수는 지금 같은 대학 재적인구 ‘급감기’가 2027년 말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다음 ‘숨고르기’가 잠시 오지만 2035년부터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폭락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이어 2044년부터 모두가 포기하는 ‘공멸기’에 들어간다는 게 마지막 장면이다. 수도권 대학 정원을 10% 감축해 지역 대학으로 돌린다고 해도 폭풍 전야가 겨우 2년 늘어날 뿐이다. 임시방편으로는 ‘정해진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얘기다. 이것도 2020년 18~24세 인구수와 대학 재학생의 비율이 유지되고, 수도권 대학이 2020년 정원을 100% 채운다는 가정에서 나온 보수적인 전망이다.인구학적 경고에 다른 변수들이 가세하면 상황은 더 비관적으로 변한다. 코로나19가 온라인 비대면 교육을 오프라인과 ‘다른 상품’이거나 ‘보완재’가 아니라 ‘경쟁재’로, 나아가 ‘시장 파괴자’ 반열로 올려놓고 있다. 국경 장벽이 없다는 이점이 부각되면서 해외 명문 대학들이 잇달아 가성비 높은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과목별 가격 책정, 인공지능(AI) 조교 등 그야말로 AI 맞춤형 교육이다. 국내 온·오프라인 교육의 질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해외 온라인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 번 경험한 이상 코로나 이전 상황이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겠다.” “디지털혁신부를 설치하겠다.” 대선주자들이 잇달아 정부 부처 신설 또는 개편 공약을 내걸고 있다. 각 부처는 살아남기 위해 행정학자들에게 용역을 발주하거나 유력 대선주자 캠프에 줄을 대기 시작했다.“세상의 모든 게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정부와 관료사회다.” 미래학자 짐 데이터 하와이대 교수의 말이다. 산업혁명으로 탄생한 근대정부의 관료제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비능률’ ‘저생산성’ 등의 병폐를 상징하는 말이 된 지 오래다. 학자들은 관료주의(bureaucracy)에서 실력주의(meritocracy)로, 실력주의에서 스타트업처럼 문제를 해결하거나(adhocracy) 위계질서를 배제하고 구성원들이 혁신을 도모하는(holacracy) 모델로 갈 것을 제안한다. 정부도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불행히도 한국의 관료주의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기피하고 규정과 절차주의를 고수하는 등 더욱 강해지는 형국이다. 과거 개발연대에서는 ‘계획=실행’이란 효율성이라도 보장됐다. 지금은 정부가 쏟아내는 수많은 계획이 발표로 수명을 다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효율성마저 상실한 것이다. 정부는 세계 1, 2위 ‘전자정부’라고 자랑하지만 기업과 국민의 불만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규제개혁 없는 전자정부는 관료제의 기술적 치장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기존의 정부로는 발생 가능성이 낮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X이벤트’나 ‘와일드 카드’가 터지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증명되고 있다. ‘위기의 상시화’를 전제한다면 코로나19 같은 팬데믹, 기상이변
100주년을 맞은 중국 공산당은 ‘다음 100년의 투쟁 목표를 위한 첫 5년’이란 부제를 단 ‘국민경제·사회발전 제14차 5개년계획’을 제시했다. ‘신창타이(新常態, 뉴노멀)’란 이름하에 구조개혁과 혁신 주도 성장으로 질 높은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중국 경제의 디자인이다. 핵심은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전환(DX)을 통해 신경제로의 이행을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국가주의 계획경제 발상이지만, 중국이 미·중 충돌 형국에 100년을 언급하며 국가전략을 내놨다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중국을 ‘21세기 최대 지정학적 도전’으로 규정했다. 경제와 안보의 교집합을 국가전략으로 속속 올려놓고 있다. 향후 100년의 산업혁명 주도권을 내줄 수 없다는 미국은 1940년대 ‘국가는 왜 과학기술에 투자하는가’에 답한 버니바 부시의 ‘끝없는 프런티어’까지 소환했다. 중국이 타깃인 ‘혁신 및 경쟁법안’은 미국식 산업정책의 대전환이라고 할 만하다. AI 양자기술 등의 연구개발(R&D)에 290억달러(약 33조4000억원)를 배정하고 반도체 공장과 R&D 거점 등에 520억달러(약 59조9000억원)의 보조금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중국을 따돌리기 위해서라면 정부·의회가 기업과 손잡고 뭐든 하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일본은 미·중의 흐름을 ‘경제·산업정책의 신기축(新機軸)’이라고 분석하며 기술·경제·안보 연계를 강화하고 있고, 유럽연합(EU)은 회원국 결속으로 맞대응에 나서고 있다.민·관 역량을 결집하는 ‘국가의 시간’이 찾아왔다. 한국은 어떤 대응을 하고 있는가. 기업이 하는 디지털 전환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캐나다, 칠레 등 인도태평양 국가들과 새로운 디지털 무역협정 초안 마련에 착수했다.” ‘아시아의 짜르’로 불리는 커트 캠벨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효과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디지털 분야 경제 플랜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 데 이어 나온 블룸버그통신의 보도다. 사실이라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이후 미국이 디지털 무역협정으로 아시아 지역 복귀를 선언하는 것이 된다. 미국은 왜 디지털 협정을 들고 아시아 쪽으로 진군하는 것일까?포스트 코로나 시대 글로벌 가치사슬(GVC) 재편은 디지털 전환에 성공하는 국가와 실패하는 국가의 운명을 극명하게 바꿔놓을 전망이다. 코로나로 날개를 단 디지털 전환으로 무역 비용은 더욱 떨어지고 있고, 무역 품목의 지도도 확 바뀌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무역은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가 비교우위를 좌우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에 성공하는 국가가 GVC 재편을 주도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국가는 변방으로 밀려나거나 탈락하고 말 것이란 얘기다. 코로나 이후 필요성이 커졌다는 국내 공급망 확충도 임금 비용을 상쇄할 정도로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국가만이 해낼 것이다. 디지털 무역으로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는 서비스 분업, 상품과 서비스가 결합된 GVC 확대 역시 디지털 전환 국가의 잔치가 될 것 또한 쉽게 예상할 수 있다.디지털 전환이 바꿔놓을 산업과 무역 지형을 상상해 보면 미국이 디지털 협정으로 아시아 지역으로 들어오는 의도가 자명해진다. 상품과 서비스를 분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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