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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미국이 영국을 추격할 당시 알렉산더 해밀턴 재무장관이 작성한 ‘제조업 육성 보고서’를 보면 미국의 산업정책도 지금의 중국 못지않았다. ‘중국 제조 2025’를 비난하고 있는 지금의 미국은 산업정책을 구사하지 않고 있을까? 미국의 산업정책은 진화를 거듭하면서 국방·과학·기술·혁신·교육·조세·이민정책 등으로 흩어졌을 뿐, 살...
우리나라는 1966년 설립된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를 필두로 한 정부출연연구소들을 갖고 있다. 초대 KIST 소장을 지낸 최형섭 박사는 정부연구소라고 하지 않고 ‘출연’이라는 말을 붙인 이유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기부’라는 말을 쓰는 게 좀 속된 표현 같아서 찾아낸 게 ‘출연’이었다.” 출연은 정부 간섭을 받지 않는 ‘연구 자율성&rsq...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을 들고나오면서 “국가비상 상태”라고 했다. 위기이기 때문에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그런 정부가 위기론이 터져나오자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엔 ‘저성장 위기론’을 펴며 각자도생을 주문하던 김현철 대통령 경제보좌관은 한술 더 떴다. “모든 게 위기라면서 개혁의 싹을 자르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오늘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기업의 애국심 덕분이다. 우리 기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2004년 남미를 순방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브라질 교민과의 간담회에서 했던 말이다. 노무현 정부 2기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는 노 전 대통령의 이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민족주의’ 등 서구학자들 주장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애국심&...
국가별 국제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수가 그 나라 과학경쟁력 평가의 전부일 수 없다는 건 과학자들도 인정한다. ‘SCI 논문 숭배주의’가 낳고 있는 부작용으로 따지면 우리나라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미국·유럽의 대형 학술출판사들이 논문 게재를 독점하면서 야기되는 공정성 논란까지 끌고 들어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기술경쟁력 평가로 활용되는 특허 수도 마찬가지다. 특허 형태로 공개하면 보호를...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뭘 한 건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혁신성장의 청사진을 만들어 내고, 우리 경제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던 위원회다. 밖에서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원회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일자리라면 모든 편견·고정관념을 버리겠다고 나와도 될까 말까 한데 전혀 그렇지 못한 일자리위원회 등 다른 위원회도 ...
“우리나라 운명을 바꿀 기회의 땅입니다. 어디에나 모래·자갈 같은 건설자재가 널려 있어 건설공사 최적지입니다. 뜨거운 낮엔 에어컨 켜놓고 자고, 선선한 밤에 일하면 됩니다. 물은 탱커로 길어오면 되고 사회간접시설이 없으니 그걸 건설해 주면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우리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도 주게 될 것이니 이런 천혜의 기회를 놓쳐선 안 됩니다. 중동에 나가야 합니다.” 1970년대 1차, 2차 오일쇼크로 중동 ...
지방을 순회하며 “지방분권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라고 강조하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저임금의 지역별 차등화 요구에 선을 그었다. “예외를 두면 도미노처럼 번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도 “지역별 차등화는 논의할 틀도 근거도 없다”고 했다. ‘연방제 수준 지방분권’, ‘자치분권’을 ...
15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 연평균 10%의 높은 성장률, 대기업보다 5배나 많은 종업원 1인당 특허 등록 건수,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거의 모든 기업이 살아남은 놀라운 생존율…. 중소기업을 통한 일자리를 외치는 문재인 정부로선 귀가 번쩍 뜨일 얘기다. 중소 규모임에도 세계적 기업인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 연구로 유명한 헤르만 지몬. 그가 얼마 전 하버드 비즈니스 리...
“청문회에 나온 기업인들을 보니 기백이라곤 전혀 없더라.” 일본 기업인들이 한국의 한 사업가에게 했다는 청문회 논평이다. 기업인들이 2, 3세대를 거치면서 창업가정신이 희석된 탓일까. 일각에서는 관료화된 가신들에 의한 포획 가능성을 제기한다. 관료들이 사용한 ‘책상보(bureau)’에서 유래했다는 관료주의. 막스 베버는 이론적·기술적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관료주의의 규범적 ...
“한국은 하드웨어(HW)는 강한데 소프트웨어(SW)가 약하다.” 밖에서 한국 산업에 대해 이렇게 논평하는 건 둘째치고 우리 스스로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얘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4차 산업혁명을 말하며 이런 주장을 내놨다. “한국은 제조업 강국의 이점을 살려 ‘HW+SW 병행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KDI 제안이 전제하는 것도 똑같다. 비교우위론? 숙명론? 그런...
“박정희 대통령과 관료들이 주인공으로 알려진 ‘한강의 기적’도 근원을 추적해 보면 진짜 주인공은 기업가들이다. 또 한국의 진로를 결정한 외자도입형 공업화 전략, 보세가공무역, 중화학공업, 수출제일주의, 울산공업단지, 수출자유지역, 종합상사제도 등도 기업가들이 제안해 채택된 작품들이다. 기업가들이 여론과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여 국가적인 성장동력을 창출한 사례도 부지기수다.” 김용...
아무리 생각해도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의 최고 장사꾼 같다. 그는 한국에서 그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세계 어느 곳보다 한국이 가장 잘 먹힐 곳이란 걸 간파라도 한 듯이. 그는 한국은 4차 산업혁명 준비가 안 됐다며 겁부터 주었다. 그런 수법은 국내에서 벌어지는 4차 산업혁명 호들갑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지금 한국엔 이런 장사꾼이 넘쳐난다. 그런데 이상하다. 자기들이 무슨 용한 점쟁이도 아닐 텐데 무...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는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널리 쓰인 어구다. 당시 빌 클린턴이 현직 대통령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를 누르고 승리하면서 유명해졌다. 중요한 게 경제라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런데 모든 경제정책이 무력화되는 마당이다 보니 자꾸 의문이 깊어진다. 경제가 굴러가지 않는 게 경제 그 자체 때문인지, 아니면 정치 때문인지. 만약 후자라고 ...
“톱다운 조직문화에 너무 익숙하다. 아래로부터 창출되는 창의성과 혁신이 묻히기 일쑤다.”(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밖에서 보기에 실적이 좋아 보이지만 내부 모순이 쌓여가는 단계다.”(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그동안 부실이 누적돼오다 임계점에 이르러 폭발한 것이다.”(이혜훈 새누리당 의원) 정치권이 내놓은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사태에 관한 논평이다....
“우리는 동부그룹에 이어 LG그룹까지 농업 진출을 막은 힘으로 대기업 농업 진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법률 제정 운동으로 나갈 것이다. 농업법인에 대한 비농민 출자한도를 엄격히 하는 농업 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 대기업의 축산 진출을 금지하는 축산법 개정, 비농민 농지 소유 제한을 강화하는 농지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이 'LG CNS의 농업 진출 중단에 대한 입장'이라며 내놓은 성명서의 한 대목이다. ...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정부가 지방자치단체별로 설치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비판했다. 대기업 독점의 ‘동물원’이라고. 센터가 대기업과 연계돼 있는 점을 그렇게 비유했다. 안 전 대표는 자신은 지자체 몇 개, 대기업 몇 개를 묶은 광역 단위 소수의 센터를 제안했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금의 센터가 동물원이면 안 전 대표가 제안했다는 센터도 사이즈만 다를 뿐 동물원이긴 매한가지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
정권 말기가 왔나 보다. 이번에도 어김없다. 또다시 관료들의 ‘영역전쟁’이 시작됐다. 학회들이 정부 조직 개편을 들먹인다는 건 다음 정권에 대비한 부처별 용역 발주가 시작됐다는 얘기다. 행정학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진 것도 그들의 대목이 찾아왔다는 증거일 것이다.당장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가 해양에너지 관할권을 놓고 벌이는 신경전이 그렇다. 포문을 연 쪽은 부처 소멸을 경험한 적 있는 해수부다. ‘해양수산발전 기본법’ 개정을 통해 조력·파력발전 등 해양에너지를 관장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산업부는 해양에너지는 소관 법률 ‘신재생에너지법’에 명시돼 있다며 즉각 반발한다.첨예한 부처간 신경전“바다 업무는 모두 해수부가 관장해야 한다”는 해수부(그럼 육상 업무는 모두 국토교통부 것이냐는 반론도). “산업 육성, 에너지는 절대 내줄 수 없다”는 산업부(에너지정책 신뢰도가 추락한 마당 아니냐는 비판도). 누가 승자가 될까.그러나 이건 약과다. 통상조직을 둘러싼 산업부와 외교부 간 다툼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형국이다. 어떤 통상학회는 통상이 산업부로 넘어가면서 별 볼일 없게 됐다고 주장한다. 언론에서 통상외교가 길을 잃었다는 비판이 나오자 이때다 하고 들고일어난 것이다.현 정부가 조직 개편의 꽃이라고 했던 미래창조과학부는 또 어떤가. 미래부는 출범부터 ‘한 지붕 두 가족’이었다는 지적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의 2차관 쪽은 ‘정보통신부’ 부활을 기정사실로 여긴다고 한다. 창조경제(기획재정부가 장악)·과학기술(옛 과학기술부 관료 일부 잔존) 등 1차관 쪽은 정권이 바뀌면 창조경
미국에서 대학 중퇴자로 성공한 창업가들이 종종 언론의 조명을 받는다. 대학을 중퇴해야 창업에 성공한다는 건 아니지만 중퇴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뭔가 다르다는 건 느껴진다. 하지만 정작 대학 중퇴자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나를 따라 하지 말라”고 했다. 자신은 변화기에 운이 좋았을 뿐, 그래도 대학을 졸업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미국에서 대학 중퇴자가 많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 주목되는 건 중퇴자 가운데 대학에서 배울 게 없다며 그만두는 학생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는 ‘대학 무용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만약 한국에서 대학 중퇴자를 보는 시각이 미국과 같다고 가정한다면 당장 대학을 박차고 나올 학생이 얼마가 될까. 짐작하건대 적지 않을 것 같다.거대한 변화기의 징조이화여대가 ‘미래라이프대학(평생교육 단과대학)’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번 사태가 터진 게 오로지 단과대학 문제 때문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양한 진단이 나온다는 건 그동안 응어리진 다른 복합적 요인들도 한꺼번에 분출됐음을 시사한다. 그중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빼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앞으로 비슷한 일이 봇물을 이룰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지금과 같은 교육부 주도의 대학 구조개혁이 언제까지 통할지 의문이다. 그것도 재정사업을 대학에 미끼로 던지는 방식으로 말이다. 교육부는 재정사업을 대학에 재량권을 주는 쪽으로 바꾸겠다지만 그래 봤자다. 차라리 재정사업을 중단하고 대신 정원, 입시, 등록금 등 규제를 푸는 게 백배 나은 선택일지 모른다. 살 대학은 살 기회라도 줘야 할 것 아닌가.어차피 교육
“외국인 투자 세제 혜택은 국내 기업 역차별이다.” 최근 외국인 투자 인센티브를 손보자는 세미나에서 등장한 주장이다. 찬성하는 쪽 논리는 과거엔 한국이 자본이 부족해 그런 인센티브를 주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 유치는 산업 관점에서 봐야 할 점도 있다. 가령 외국인 투자가 경쟁과 혁신의 압력으로 작용하는 측면이다.역차별 해소가 목적이면 방향은 두 가지다. 외국인 투자 인센티브를 폐지하든가, 아니면 국내 기업에도 같은 인센티브를 부여하면 된다. 여기서 후자로 가자면 세수 우려가 바로 제기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내 기업도 자유롭게 밖으로 나가고, 나간 국내 기업을 다시 불러들이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시대다. 발상을 바꾸면 못할 것도 없다.역차별 해소 방향이 문제다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구글의 지도 반출 신청 논란에 입을 열었다. “세금을 내라”, “공정하게 해라”, “개인정보를 보호해라” 등. 그러면서 이 의장은 반문했다. “만약 네이버가 그랬다면?” 네이버가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이해가 간다. 가뜩이나 보호무역주의가 꿈틀댄다는 판국에 국내 기업이 오히려 차별을 받는다면 그 억울함이 오죽하겠나. 하지만 이 의장이 제기한 세금·공정성·개인정보 이슈는 단순한 역차별이 아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등은 직무유기를 한 것이니 그 책임을 물어야 할 문제다.범위를 지도 반출 문제로 좁히면 이 의장이 제기하는 역차별은 이런 것이다. 국내 기업은 국내에 서버를 두고 지도서비스를 하는데, 왜 구글은 밖에다 서버를 두고 서비
구조조정을 한다는 조선업계가 노조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런데 구조조정을 막는 것이 노조만은 아니었다. 시장에서 구조조정의 물꼬를 튼 기업 간 인수합병(M&A)을 정부가 막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CJ헬로비전 합병 금지명령 심사보고서를 낸 것이 그렇다. 이것이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일명 ‘원샷법’) 등을 통해 산업재편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 그 정부 맞나 싶다.방송은 미래 성장동력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던 미래창조과학부는 한술 더 뜬다. 스탠스로 보면 분명 공정위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할 미래부다. 하지만 공정위의 금지명령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듯하다. 국회에서 “(합병 불허로) 케이블TV업계 위기감이 고조되는데 대책이 있느냐”는 지적에,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균형발전이 미래부의 입장”이라고 했다. 시장의 흐름을 무시하고 균형이라니. 누구를 위한 균형인가. 이런 게 방송의 다양성이라면 소비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지.결론 정해 놓고 빌미 찾은 듯공정위의 합병 금지명령은 합병 반대론자의 예상조차 뒤엎은 것이다. 처음부터 합병은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려놓고 그 빌미를 찾은 것처럼 보일 정도다. 공정위는 잘게 쪼개진 방송권역별 점유율을 걸고 넘어졌다. 정부가 권역별 독과점으로 출발시킨 게 케이블TV이고 보면 이런 자가당착도 없다. 더구나 권역별 좁은 시장 획정은 케이블TV 부실화를 초래한 주범이기도 하다. 어떤 합병도 생각하지 말라는 메시지와 다름없다.도대체 공정위는 무엇이 두려워 그랬을까. ‘보이지 않는 다른 손’이 작용했다면 청문회감이다. 합병 반대론자들은 인수자
여기저기서 4차 산업혁명을 떠든다. 국회, 정부가 더 극성이다. 지금이 몇 차 혁명이냐에 대한 논쟁은 접자. 하지만 혁명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18세기 산업혁명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늘만 쳐다보던 식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전환하며 ‘맬서스의 함정’을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는 점, 그리고 모든 혁명이 그렇듯이 국가 간 대(大)분기(great divergence)가 일어났기에 혁명이라고 한 것이다.말로는 혁명, 행동은 딴판혁명은 기술이나 산업에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청교도혁명, 명예혁명 등 정치적 전야제가 있었고, 자본가라는 혁명을 주도하는 새로운 계급 탄생을 동반했다. 리처드 넬슨의 해석을 차용하면 기술공간의 진화, 정치·법·제도의 진화, 새로운 기업가들에 의한 비즈니스의 진화 등이 어우러졌기에(이른바 ‘공진화’) 혁명이 가능했을 것이다. 혁명을 뒷받침한 사상도 빼놓을 수 없다. 산업혁명-자유(방임)주의 조합이 그렇다. 모든 경제활동이 국가의 인허가로 규제받았으면 혁명이 일어났겠나.지금이 정말 4차 산업혁명이라면 행동도 그쪽으로 가야 맞다. 하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혁명 전야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 포럼’을 출범시켰다는 국회를 보자. ‘혁신’이 아닌 ‘지대’를 추구하는(rent-seeking) 기득권 세력의 입법 로비 온상이 국회다. 국회가 4차 산업혁명을 생각한다면 특권을 내려놓고 정치혁명부터 해야 하지 않겠나. 발의하는 법안마다 온통 지대 추구를 부추기는 규제법 일색이면서 무슨 혁명 운운하는지.‘아젠다 2050’이라는 모임에선 ‘로봇세’ 발상까
지난 3월 방한한 존 홀드런 미국 대통령 과학보좌관 겸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 실장이 생각난다. 홀드런 실장은 KAIST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과학기술을 통한 혁신에 강력한 의지를 지녔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고. 진짜 그런가.1971년부터 하버드대 지구행성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홀드런 실장이 지금의 자리로 온 것은 2009년이다. 무려 8년이 다 돼 간다. 한국에서 홀드런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은 어떤가. 그 사이 미래수석이 또 바뀌었다. 벌써 네 번째다. 대통령 임기가 3년 조금 지났으니 수석당 평균 1년 남짓 한 셈이다. 홀드런 실장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오바마 과학보좌관은 8년째영국 총리의 과학기술 고문 역할을 하는 수석과학자(chief scientist)도 4년 정도는 한다. 최근까지 호주 총리 수석과학자였던 이안 찹 교수만 해도 5년을 했다. 이리 말하면 혹자는 미래수석이 과학만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미래’라는 키워드로 한 번 검색해 볼까.‘글로벌 트렌드(global trend)’는 미국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미래 이슈 리포트다. 작성처는 국가정보위원회(NIC). 크리스토퍼 코즘 NIC 수장은 오바마 대통령과 5년을 함께했다. 그 뒤를 이은 그레고리 트레버튼도 3년째를 맞았다. 바로 밑의 스테핀 카플란 부위원장은 2007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글로벌 트렌드 2030’ 집필 책임자 매튜 버로만 해도 NIC에서 15년 이상 미래 연구를 지휘해온 인물이다.작은 나라라고 다를 게 없다. 싱가포르 총리실 산하 미래전략센터를 보자. 이 센터 고문 피터 호는 1980년대부터 싱가포르의 미래지향적 의사
경쟁도 경쟁 나름이다. ‘사이비경쟁(pseudocompetiton)’도 있다. 크리스토퍼 메이어와 줄리아 커비는 《태양 위에 서서(standing on the sun)》에서 사이비경쟁을 사업자들이 적당히 경쟁하는 척만 하는 시장이라고 규정한다. 껍데기만 경쟁일 뿐 경쟁 효과가 전혀 발현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시장에서는 정부가 사업자와 한통속이기 일쑤고, 사업자 또한 ‘기업 경영’보다 ‘정치 경영’에 몰두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통신시장이 딱 그 꼴 아닌가.통신요금 논쟁이 또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여소야대가 되면서 이동통신 기본요금 폐지 법안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적극적이다. 통신사업자는 결사 반대다. 통신 3사는 기본요금이 폐지되면 연간 7조5000억원의 매출이 날아간다는 분석까지 내놨다.통신요금 정치 개입 논란말할 것도 없이 정치권의 획일적인 기본요금 폐지 움직임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알뜰폰(이동통신재판매) 시장에서 ‘기본요금 제로’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망을 가진 사업자의 처지는 또 다르다. 기본요금 폐지는 당장 망 구축 비용 회수나 지속적 투자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송신자 요금제인 한국에서는 수신만 하는 소비자의 무임승차 문제도 발생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기본요금 자체를 부정하기 어렵다는 것은 맞다.그러나 이를 인정한다고 해도 기본요금 수준이 이대로 좋은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리고 그런 의문은 소비자가 현재의 통신시장이 비정상적이라고 인식할 경우 더할 수밖에 없다.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정부의 기본요금 폐지 반대 논리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이렇게 말
‘중국의 성장이 멈춘다면.’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미국 국가정보회의(NIC)가 4년마다 대통령에게 5년 단위의 ‘글로벌 트렌드’를 보고한다는 건 잘 알려진 일이다. 이 글로벌 트렌드의 집필 책임자 매튜 버로가 재직 중엔 밝히지 못했다며 향후 세계를 변화시킬지 모를 네 가지 파란 요인 중 하나로 든 게 중국의 파탄이다.중국 ‘민주화 없는 혁신’ 한계그가 풀어놓은 보따리엔 눈길을 끄는 게 적지 않다. ‘중국에서는 아이폰이 나올 수 없다’ ’왜곡된 경제성장’ ‘공산당도 억제할 수 없는 인민의 욕구’ ‘중국 공산당도 민주화를 바란다’ 등. 결국 중국이 개인의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하는 ‘혁신 주도 경제’로 이행하려면 민주화는 피할 수 없다는 메시지다. 중국의 제도적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이다.이런 관점은 ‘18세기 산업혁명이 왜 중국에서 일어나지 않았나’에 대한 시각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중국의 주요 발명들을 생각하면 이런 의문은 충분히 나올 만했다. 이른바 ‘니담의 퍼즐(Needham puzzle)’이다.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다양한 분석이 나왔지만 그 해답 역시 제도적 문제에서 찾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과학에 대한 시각, 고등교육제도, 지식의 확산체제, 특허제도와 같은 경제적 유인제도, 지식과 정보의 중심인 도시의 역할 등이 영국과 중국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석탄 발견, 식민지 등 역사적 우연을 배제한 서구 우월적 시각이라고 매도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이 고도성장 과정에서 채택한 제도들을 보면 이를 부인하기도 어렵다.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공급 측 구조개혁을 놓고 내홍을 겪고 있다는 분
이명박 정부 때다. 미국의 ‘특허 괴물’들이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을 상대로 특허분쟁을 벌이며 로열티를 요구한다는 뉴스가 연일 터진 적이 있다. 정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다. 해외 특허 괴물을 상대할 지식재산 전문기업을 세워 국내 기업을 방어하겠다는 것이다. 정작 기업은 정부에 그런 요청을 한 바도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무슨 신바람이 났는지 기업들로부터 돈을 거둬 ‘인텔렉추얼디스커버리(ID)’라는 걸 만들었다. 정부 예산도 퍼부었다. 민간기업인지 공공기관인지 정체가 불분명한 이 기관이 현재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다. 당시 이걸 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떠든 사람들은 지금 아무 말이 없다.인공지능연구소 소동정부가 할 일, 민간이 할 일을 구분 못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구글 알파고 때문에 한국 과학기술정책이 일대 소동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한국판 알파고 개발을 위해 민간 인공지능연구소를 연내 출범시킨다고 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SK텔레콤, KT, 네이버, 한화생명 등이 30억원씩 공동 출자하는 주식회사 형태라는 설명이다. 근데 이상하지 않은가. 정작 돈을 낸 기업들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정부가 연구소 밑그림을 다 그리고 있으니. 충격은 미국의 구글 알파고에서 받았다면서 벤치마킹 대상은 독일 인공지능연구소라는 것도 괴이하기 짝이 없다. 정부는 말로는 연구소 운영에 관여하지 않고 연구비만 지원하겠다지만 아무도 이를 믿지 않는다.지금의 정부출연연구소도 처음엔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되 자율성을 주겠다며 시작하지 않았나. 정부가 기업들의 출자로 만든 이런저런 민간 생산기술연구소들
경제 성장도, 산업 발전도 미분을 하면 결국은 끊임없는 구조조정의 연속이다.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가 어느 나라의 무역 및 산업구조가 변화에 더 유연하게 적응하는지에 주목한 이유다. 이른바 ‘변환능력(capacity to transform)’이다.미국 클린턴 행정부 때 노동부 장관에 발탁된 로버트 라이시와 클린턴 정권 인수팀의 경제담당 보좌역 아이라 매가지너도 같은 주장을 했다. “그 사회가 위기 산업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번영에서 큰 차이가 난다. 금리를 몇 %로 하고 통화 공급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이후 미국은 정보기술(IT) 혁명을 주도했다.“성장은 구조조정의 연속”폐쇄적 경제가 아닌 이상 어느 국가도 동태적 국제 분업체제를 피할 수 없다. 한 국가의 비교우위 산업이 끊임없이 이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은 필연적이다. 신산업으로 이동하든, 산업 내 고부가가치 부문으로 이동하든 어떻게 하면 생산요소의 이동성을 높이고, 구조조정의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것이냐의 과제만 남을 뿐이다.문제는 구조조정은 어느 나라에서나 고통스럽고 인기 없는 과업이라는 점이다. 달콤한 정치적 논리가 똬리를 틀기에 더없이 좋다. 국가에 따라 구조조정이 ‘혁신적’이기는커녕 ‘방어적’으로 흘러가는 건 바로 그래서다. 노조의 반발이 강한 분야, 지역적 집중도가 높은 분야, 국민기업 운운하는 분야, 해운 조선 등 주기적 특성을 가진 분야일수록 더 그렇다. 어차피 도산할 기업을 지원하느라 세금을 퍼붓는 국가와 그 유혹을 떨쳐 내는 국가의 운명이 여기서 갈린다. 하지만 정치는 역사적 학습을 망각하기 일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변신이 놀랍다. MS 제국이 절대 말하지 않을 것 같던 ‘무료’ ‘개방’ 등의 용어를 거침없이 구사한다. 윈도 아닌 다른 운영체제(OS) 사용자는 물론이고 리눅스 같은 오픈소스 고객들에게도 미소를 지으며 다가선다. 그냥 그대로 개방된 MS를 체험해 보라고. 오픈소스 진영을 암적 존재로 여기던 MS가 이젠 대놓고 그들을 유혹한다.MS는 ‘모바일’ ‘클라우드’를 외치며 전통적 비즈니스 모델을 깨는 중이다. 소프트웨어 제품 라이선스 모델을 벗어나 사용한 만큼 지불하는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로 가고 있다. 소프트웨어산업의 또 다른 지각변동이다. 기업 관료주의의 전형 같던 독점기업 MS의 반전이다.누가, 무엇이 MS를 바꿨나혹자는 스티브 발머와는 너무 다른 사티아 나델라에 주목한다. 하지만 제국이 무너질 판에 누가 MS 최고경영자(CEO)로 오든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또 다른 이는 미국 규제당국으로 눈을 돌린다. 이게 미국이 자랑하는 ‘반(反)독점법의 위력’이라고. 그러나 미 정부가 MS에 반독점법 소송을 제기한 적은 있지만 결과적으로 MS를 더 은밀한 ‘혁신의 억압자’로 만들었을 뿐이란 분석도 있다. 법이 무섭다고 해도 기업 스스로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파괴하도록 만들진 못한다.그렇다면 누가 제국을 변하게 했나. 창업자 빌 게이츠가 단서를 제공한다. 게이츠는 반독점법보다 훨씬 무서운 건 밤새 누군가의 혁신이 어느 날 아침 윈도 제국을 파괴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바로 그거다. MS를 변하지 않곤 못 배기게 만든 건 크롬을 앞세운 구글, 끈질긴 오픈소스 같은 파괴자들이다. ‘
대통령은 지난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서비스산업 관계자 간담회에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1531일째 국회에 발이 묶여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 법 통과는 반대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외치는 것은 미스터리이자 한국에만 있는 기현상”이라고 야당을 비판했다.사실 야당의 미스터리로 치면 어디 이뿐이겠나. 의료민영화라는 용어가 단 한 줄도 안 나오는 서비스기본법을 의료민영화법이라고 읽는 놀라운 해독력도 미스터리감이다. 그것도 수많은 서비스업을 포괄하는, 말 그대로 기본에 해당하는 법인데, 마치 의료 분야를 파괴할 것처럼 떠들어대니 이런 선동질도 없다. 이들이 과거 집권 시 의료산업 선진화를 떠들던 바로 그 사람들인가 싶다.미스터리 넘치는 나라그러나 미스터리는 야당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서비스기본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당장이라도 일자리가 쏟아질 듯이 말하는 정부도 미스터리감이다. 서비스기본법은 기획재정부에 위원회를 설치하고, 5년마다 발전 계획을 짠다는 게 핵심이다. 무슨 육성 이야기만 나오면 위원회와 5개년 계획이 단골 메뉴처럼 자동으로 튀어나오고, 그것도 과거 1960~1970년대식 모델로 돌아가자는 판이니 이 역시 한국만의 기현상이요, 미스터리 아닌가. 이 법으로 늘어날 가장 확실한 일자리는 조직 확대 등을 통한 정부 쪽일 것이다. 큰 정부와 산업 발전이라는 시대착오적 조합을 감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미스터리는 또 있다. 의료민영화 등 일각의 괴담이 문제라던 정부가 건강보험의 공공성 수호, 투자개방형 병원 철회, 원격의료 후퇴 등 결과적으로 괴담을 수용하는 쪽으로 가고 말았다는 점이다. 서비스기본법,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
세계 최대 가전쇼(CES)에 이어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것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얘기다. 특히 MWC에서 LG전자가 새 전략폰으로, 삼성전자가 모바일 가상현실(VR) 기기로 주목받자, 기업이 살 길은 퍼스트 무버라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적자(適者)’가 아니라 ‘속자(速者)’가 생존한다는 말까지 회자된다.멜리사 실링 미국 뉴욕대 교수는 《기술경영과 혁신전략》에서 퍼스트 무버 등 시장 진입 타이밍을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퍼스트 무버 훈수꾼은 주로 퍼스트 무버의 이점에 주목한다. 가령 브랜드 로열티, 기술적 리더십, 소비자가 한 번 익숙해지면 쉽게 바꾸지 못하는 전환비용 등에 따른 독점 이익 같은 것이다. 특히 플랫폼 등 수익체증 특성을 가진 분야에서 퍼스트 무버가 지배적 디자인으로 등극하면 그것만큼 강력한 무기가 없다고도 한다.천당과 지옥, 극명한 차이그러나 이것은 퍼스트 무버로 성공할 때나 가능하다. 퍼스트 무버 훈수꾼은 정작 실패 시 도산도 각오해야 하는 위험에 대해선 별 말이 없다.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은 기본이다. 새로운 부품이나 유통채널 개발도 퍼스트 무버의 몫이기 일쑤다. 수많은 보완재와 보완기술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발목이 잡힌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얼마나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 수요가 불확실하다는 것도 큰 변수다.그렇다면 퍼스트 무버의 성공률은 얼마나 될까. 어떤 사례연구는 퍼스트 무버 실패율이 50%에 육박하고, 시장 점유율도 10%에 불과하다고 보고한다. 보기에 따라선 생각보다 좋다고 해석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주의깊게 살펴야 할 부분이 있다. 우리가 아는 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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