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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자동개폐, 온·습도 자동관리 등 스마트팜을 농가 8000곳에 보급할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농업을 혁신하자는 데 누가 반대할까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농민단체들이 떼로 일어나 좌절시킨 동부팜한농의 화성 유리온실은 최첨단 스마트팜이었다. 대기업의 농업 진출은 죽어도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를 방관했다.그런 정부가 스마트팜 보급을 위한 자금지원에 나선다고 한다. 정부출연연구소 동원령도 내려질 모양이다. 하지만 남이 하는 스마트팜은 안 된다는 텃세가 존재하는 한 이 정책의 결과는 뻔하다. 차라리 그럴 돈이 있으면 ICT 없이는 하루도 못산다는 고등학생들을 미래 농민으로 키우는 게 스마트팜으로 가는 훨씬 빠른 길일지 모른다. 실제로 덴마크는 기존 농민에 대한 직접 지원보다 그쪽을 택했다.곳곳에 만연한 내부 저항핀테크라는 스마트금융을 놓고 금융위원회가 뒤늦게 호들갑을 떠는 것도 마찬가지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금융환경이 ‘ICT와 금융의 융·복합’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이했다”며 “핀테크라는 새로운 트렌드 속에서 성장 기회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들 다 아는 걸 금융위만 이제야 깨달았다는 건지.“중국 알리바바나 미국 구글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지급결제부터 투자중개까지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금융과 기술 접목은 제한적인 수준”이라는 발언에 이르면 더욱 기가 차다. 무슨 사돈 남 말 하듯 한다. 외국 기업들이 그럴 때 금융위는 도대체 뭘 했나. 국내 핀테크 업체들은 전혀 스마트하지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애착이 매우 강한 것 같다. 대통령은 대구, 대전은 물론 전주 개소식에도 어김없이 달려갔다. 앞으로 이어질 센터 설립에도 대통령의 참석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대통령이 창조경제혁신센터에 ‘필’이 꽂혔다는 건 지역희망박람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대기업과 연계해서 하면 틀이 잘 짜여진다”(사전 환담)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지역 단위 창조경제 지원을 강화해 지역 발전의 토대를 만들어가겠다.”(개막식 축사) 한마디로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지역발전의 중심이고, 그 형태는 대기업과의 연계라는 선언이다.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면 이는 곧 모두가 따라야 하는 ‘표준’이요,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공식’이 되고 만다.똑같은 얼굴의 창조경제센터당장 17개 시·도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짝이 된 15개 대기업의 부담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지만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심지어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도 뭘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압박감에 스스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든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러다 대기업은 무조건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하나씩 세워야 할지도 모르겠다.창조경제혁신센터가 문을 열 때마다 언론에 대서특필되지만 그 내용은 대기업이 어떤 지원을 해주겠다고 했는지가 거의 전부다. 정작 지역이 자발적으로 뭘 한다는 얘기는 거의 없다. 대기업이 무슨 봉인지 정부는 지역마다 똑같은 얼굴의 센터를 붕어빵처럼 찍어대기 바쁘다. 과거 전국에 걸쳐 창업보육센터, 테크노파크 등을
1997년 외환위기를 사전에 경고한 국내 정책보고서가 일부 존재했다. 1997년 3월26일 한국은행 자금부가 당시 재정경제원 장관에게 제출한 ‘최근의 경제상황과 정책대응 방향’은 외환위기 도래 가능성을 예고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등 민간 경제연구소도 유사한 보고서를 단편적으로 발신했다. 그러나 개별적 정책지식을 통합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나 적시에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안목이 없었다. 우리는 결국 외환위기를 예방하지 못했고, 극복 과정에서도 적잖은 혼선을 감수해야 했다.왜 정책지식 생태계인가삼성경제연구소는 2006년 11월1일 ‘CEO Information’(제576호)에서 외환위기를 상기시키며 다음과 같은 제언을 했다. “좋은 정책지식이 창출되기 위해서는 정책지식을 생산하는 주체들이 다양하고, 정책지식 생태계 내에서 활발한 상호작용이 발생하며, 창출된 정책지식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 가능한 선별 메커니즘을 갖춘 ‘건강한 정책지식 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위기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그렇다. 건강한 정책지식 생태계를 가진 나라가 선진국이다. 대표적인 게 미국이다. 싱크탱크가 2만개가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 워싱턴DC에서 활동하는 독립적 싱크탱크만 수백개다. 정책지식은 싱크탱크를 통해 순환된다. 정부 용역시장은 싱크탱크 간 경쟁의 장이다. 이런 생태계가 미국의 힘이다.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정책지식 생태계는 과연 달라졌을까. 국내에서 정책지식 생산을 주도하던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연구원(KIET) 등 국책연구소의 위상이 급전직하하고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연구소들이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우수
기술금융이 수상하다. 금융위원회가 “모뉴엘 사태와 기술금융은 관계가 없다”고 선을 딱 긋는 것부터가 그렇다.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처럼 들린다. 어떤 사고든 교훈을 찾자고 들면 왜 관계가 없겠나. 얼핏 봐도 중소기업 자금지원이고, 정부가 강력히 밀고, 정책 금융을 동원하고, 은행이 실적 짜내기 경쟁을 벌이고 하는 게 비슷하지 않은가.은행의 기술신용대출 건수와 대출액 잔액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지난 7월 말 486건, 1922억원에서 9월 말 3187건, 1조8334억원으로 확 불어났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이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면 다른 설명이 필요없다.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말했듯이 금융위가 강하게 밀어붙인 결과다. 매일 대출 실적을 보고하라고 다그치는데 어느 은행이 거부할 수 있겠나.은행만 들볶는 금융위은행은 속앓이를 하는 눈치다. 신 위원장은 과거 1년 이상 여신거래 실적이 없었던 신규기업 대출이 늘어나고 있다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럴수록 은행은 더 부담스럽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은행의 고민은 기술금융 대출 중 기존 거래기업이 상당하다는 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금융위의 기술금융은 정부 지정 기술신용평가기관(TCB)이 산출한 평가 등급을 바탕으로 은행이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주라는 제도다. 신 위원장은 이를 통해 은행의 낡은 담보대출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말한다. 취지는 그럴듯하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기술금융의 본질이 원래 은행이고, 대출이냐는 것이다.기술금융의 특성이 기술의 불확실성, 시장의 불확실성인 건 교과서에도 나온다. 그래서 이자율을 통한 중개기능 작동이 어렵다고 한다. 고위험, 고수익 분야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
한국 이동통신 30년을 ‘기술의 진화’ 관점에서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세계 최초 CDMA 상용화에서 세계 최초 LTE-A 상용화에 이르기까지 눈부실 정도다. 그러나 ‘시장 자유화’라는 관점에 서면 적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정인석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한국산업조직학회에서 발표한 ‘이동전화 시장자유화와 규제’라는 워킹 페이퍼에 따르면 단통법은 전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그저 정부가 늘 해 왔던 구태에 불과하다.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면 국내 이동통신 시장구조는 독점에서 복점, 그리고 5사 경쟁으로 갔다가 인수합병(M&A)으로 4사 경쟁에 이어 지금의 3사 경쟁으로 바뀌어 왔다. 얼핏 보면 역동적 변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실은 ‘통제하의 경쟁’이었다는 게 정 교수 주장이다.달콤했던 ‘유효경쟁’사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른바 ‘유효경쟁’도 그런 것이었다. 말만 근사했지 정부의 통신 3사 경쟁관리였다. ‘3사 경쟁체제가 절대 붕괴돼선 안 된다’는 지상과제는 ‘경쟁’이 아니라 ‘경쟁자’ 보호정책으로 구체화됐다. 선발자의 우위 대비 후발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온갖 ‘비대칭 규제’가 쏟아졌다. 요금인가제도 그렇게 정당화됐다. 보조금 규제 역시 3사 체제 유지의 수단이었을 뿐이다.그렇다면 유효경쟁의 결과는 물어보나 마나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통신 3사 시장점유율은 5 대 3 대 2 구도에서 달라진 게 없다. 실질적 경쟁이 억제됐다는 결정적 증거다. 이게 문제의 본질이다. 정부가 아무리 규제를 들고 나와
올해 3분기까지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1~9월 FDI(신고 기준)가 전년 동기 대비 37.9% 증가한 148억2000만달러였다. 그러나 미묘한 시각차가 느껴지는 대목도 있다. 바로 중국의 대한(對韓) 투자다. 10억3000만달러로 무려 230.4%나 급증했다. 중화권으로 치면 30억1000만달러로 89.8% 늘었다. 일각에선 쇄도하는 중국 투자에 경계감을 숨기지 않는다.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등의 투자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다.엄습하는 ‘차이나 포비아’의 근저엔 중국이 한국을 곧 따라잡을지 모른다는 추격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툭하면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1~2년밖에 안 남았다고 주장하는 조사들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추격논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중국 투자를 거부한다고, 또 기술을 안 준다고 그 격차가 유지된다는 법도 없는데 말이다.추격논리, 오히려 '독'될 수도자고 나면 국제적 인수합병으로 기술이 통째로 왔다 갔다 하는 세상이다. 차라리 그럴 시간이 있으면 우리가 원하는 분야에 중국 투자를 전략적으로 유인할 방도를 연구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나.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의 부상도 마찬가지다. 온통 삼성전자가 고전한다는 얘기뿐이다. 어차피 삼성전자가 알아서 할 일인데 웬 훈수꾼이 이리도 많은지. 이 역시 어두운 면만 있는 게 아니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 덕에 물량이 달린다는 국내 소재부품 업체도 적지 않다. 애플, 삼성전자, 그리고 중국이라는 경쟁구도 확장이 기회를 가져다 준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키우려 했던 소재부품산업의 무역흑자가 올해 1000억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다.알리바바를
국회에서 장병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주최로 ‘구글 때리기’ 세미나가 열렸다. 주제부터가 ‘구글 독점, 국내 역차별’이다. 한마디로 ‘구글 규제법’을 만들라는 것이다. 규제 무풍지대에 있는 구글에 비해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받고 있고, 이것이 구글의 모바일 독점을 만들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니 구글도 규제를 받게 하라는 얘기다. 굳이 ‘규제 형평성’을 문제 삼겠다면 국내 정보기술(IT)도 똑같이 규제 무풍지대로 해 달라고 할 것이지 이건 또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다 함께 규제 나락으로 떨어져 너 죽고 나 죽자는 건지.문제는 ‘갈라파고스적 규제’정말 규제 역차별이 있다면 국내 IT는 오히려 구글에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 땅에 얼마나 불합리한 ‘갈라파고스적 규제’가 널렸는지가 구글 덕에 밝혀진 것이니 말이다. 문제를 삼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런 규제이지 구글이 아니다.더구나 구글은 규제 무풍지대라지만 정작 구글이 이에 수긍할지도 의문이다. 구글 글라스를 국내에 들여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도 서비스를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국내에서만 요구하는 전자지급결제대행(PG) 등록 규제, 전기통신사업법·전자상거래법 상 차별조항 등 그들도 입을 열면 불만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국내 IT는 이런 규제로 보호받고 있다는 얘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정치권에서 특정 외국 기업을 때려잡자고 하는 배경에는 꼭 이를 꼬드기는 누군가가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 對 외국 기업’이라는 낡은 프레임을 빼고 나면 손에 잡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당장 구글이 지난해 구글플레이에
고리원전(原電) 1호기, 월성원전 1호기를 두고 야당의 폐로(廢爐)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월성 1호기에 대한 계속운전 여부 결정이 임박해지고, 설계수명 만료 후 계속운전에 들어간 고리 1호기의 만료기한도 2017년으로 다가오면서다.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고리 1호기의 추가 연장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야당의 지난 대선후보로, 당시 ‘탈(脫)원전’을 목표로 내걸었던 문재인 의원은 한 술 더 떴다. 고리 1호기는 이른 시일 내 중단하고, 고리 2호기 등 30년 넘은 원전도 모두 가동을 재검토하라는 요구다. 월성 1호기에 대한 폐로 압박도 사정은 비슷하다.정치인이 원전 안전을 강조하는 것이야 누가 뭐랄 것도 없다. 문제는 언제부터 정치인이 원전 폐로를 하라 말라 결정권을 쥐게 됐느냐는 것이다. 법에 정해 놓은 기준과 절차가 엄연히 있는데 이를 깡그리 무시하겠다는 것 아닌가.정치인이 폐로 결정하나정치인이 문제를 제기하는 수법도 그야말로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이다. 새정치연합 모 의원은 전 세계에서 폐로가 됐거나 폐로 중인 149개 원전의 평균 가동 기간이 23.6년이라는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국내 원전 설계수명 30년, 40년보다 더 빠르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폐로 원전의 종류나 사유 등은 일체 무시한 단순 비교라는 게 금방 드러난다. 더구나 폐로 원전보다 더 많다는 전 세계 계속운전 승인 원전의 가동 연수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이 없나.월성 1호기에 대해서는 경제성이 있느냐 없느냐 논쟁이 한창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을 놓고 정의당과 환경운동연합이 들고 일어났다. 월성 1호기가 적자사업으로 확인됐다며 당장 폐쇄하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학교 때 월반을 거듭할 정도로 ‘공부 수재’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정책 수재’로서의 면모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최근 최 장관 행보가 눈길을 끈다. 창조경제의 변화를 모색한다는 것도 그렇고, 민간 경제연구기관장,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관장 등 비이공계 전문가를 잇달아 만나는 것도 그렇다. 전에는 볼 수 없던 신선한 장면이다.창조경제 ‘수정’ 가능할까미래부는 지금 ‘존재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동안 ‘미래’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이제는 ‘창조’도 없고 ‘과학’도 없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미래창조과학부’는 부처 명칭과는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식물 부처’라는 말밖에 안된다. 게다가 기획재정부 출신이 제1차관으로 오자 ‘기재부 2중대’냐는 비아냥까지 등장했다. 창조경제 예산 때문이라지만 그거야말로 관치시대 발상이라는 비판이다. 박근혜 정부의 상징이라던 미래부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아마 최 장관도 위기의식을 느낀 모양이다.문제는 변화의 방향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지금이라도 부처 명칭에 걸맞은 일을 하면 된다. 먼저 ‘미래’를 되찾겠다면 정책의 ‘시계(time horizon)’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명색이 미래부라면서 당장의 성과, 당장의 일자리를 다그친 건 큰 패착이었다. 그건 미래부가 또 하나의 산업통상자원부, 중소기업청, 고용노동부를 자처한 거나 다름없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내놨지만 미래부는 3년이라는 틀 속에 갇히는 순간 ‘미래’를 잃게 된다. 한국이 지난 20년 동안 정권 내 단기
인터넷 등 오늘의 정보기술(IT)산업이 미국 국방과 연관이 많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의 반을 차지하는 국방이 IT 혁명의 진원지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넥스트 혁명’은 어디서 올 건가. 전문가들은 보건의료 분야를 빼놓지 않는다. 급속한 고령화 추세 등 수요 측면의 트렌드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에서 보건의료가 국방 다음으로 R&D 예산이 많다는 공급 측면의 혁신 가능성도 큰 요인이다.보건의료산업은 이미 ‘혁신’을 넘어 ‘혁명’의 기운이 감지될 정도로 질주하는 양상이다. 기술경제학자 리처드 넬슨은 ‘새로운 기술’ ‘새로운 제도’ ‘새로운 기업가’를 혁명의 ‘세 가지 조건’이라고 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보건의료산업에서 맞아떨어질 조짐이다.“이건 ‘넥스트 혁명’이야”파괴적 혁신기술이 속속 등장한다는 게 그렇다. 빅데이터, 3차원(3D) 프린팅, 웨어러블 기기, 줄기세포 재생의학, 유전체 맞춤의학 등이 보건의료산업에서 게임의 룰을 바꿀 태세다. 기존 제도의 틀도 바닥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당장 일반인과 환자, 건강관리와 치료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국제 의료관광 등 국경도 사라지고, 의료의 시·공간 개념도 통째로 변하고 있다. 한마디로 보건의료의 전통적 경계가 모조리 붕괴되는 추세다. 마지막으로 ‘사용자 혁신(user innovation)’으로 새로운 기업가가 출현하고 있다. 의사의 의료기기 발명은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다. 의대와 이공계의 구분 자체가 구태일 정도다. 약사에 의한 창업, 심지어 환자에 의한 신제품 개발도 줄을 잇고 있다.이 흐
“학부모 여러분, 얼른 동네 치킨집 사장님 이력부터 조사해 과외를 맡기세요.” “지금 프로그래머인데 은퇴하면 학원 강사나 해볼까.” 정부가 소프트웨어(SW) 조기교육을 발표하자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온 반응들이다.SW업계에서는 익히 알려진 공식 하나가 있다. ‘코더→프로그래머→아키텍트→연구소장→닭튀김 사장’이라는, 이른바 ‘닭튀김 수렴 공식’이 그것이다. 그나마 이건 풀코스를 다 거친 경우다. 더 확장하면, 무엇을 전공했건 일단 이 바닥에 뛰어들면 결국 그런 경로를 걷게 된다는 자조 섞인 한탄인지도 모르겠다.SW 조기교육 논란정부 발표에 따르면 중학교는 내년 입학생부터 의무적으로 SW교육을 받게 된다. 또 초등학교는 2017년부터 SW가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되고, 고등학교는 2018년부터 SW가 일반 선택과목으로 들어간다. 언제나 그렇지만 정부가 내세우는 취지 자체는 화려하고 지당하다.하지만 당장 조기교육이 어떻게 흘러갈지 훤히 내다보인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가르칠 선생은 있나” “진도 빼고 연습문제 풀겠지” “사설학원만 양산한다, 끝” “코딩대회 수상 스펙 추가요” 등등. 어떤 교육도 대학 입시를 피해갈 수 없는 우리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아예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SW개발자도 있다. ‘서울버스’ 앱을 내놓아 세상을 놀라게 했던 유주완 씨는 “주먹구구식으로 관심도 없는 학생에게 SW를 가르치면 공부를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SW에 대한 ‘흥미’가 앞서지 않았다면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느냐는 얘기다. 이민석 NHN NEXT 학장
“구글의 식민지가 되고 싶지 않다.”(아르노 몽트부르 프랑스 경제장관) “구글을 분리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지그마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유럽에서 터져 나오는 ‘디지털 식민지’에 대한 우려들이다. 구글에 대항할 마땅한 정보기술(IT) 기업이 없다고 생각하는 유럽으로서는 그 공포감이 더할지도 모르겠다. 미디어들은 일제히 ‘데이터 전쟁’이 시작된 게 아니냐며 분위기를 돋우는 양상이다.이런 상황에서 데이터를 국경 안에 묶어 두는 이른바 ‘데이터 국지화(data localization)’에 대한 보고서가 등장했다. 구글이 후원한 것으로 보이는 유럽국제정치경제연구소(ECIPE)를 통해서다. 데이터 국지화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떨어뜨린다는 게 골자다. 분석 대상은 한국, 유럽연합(EU), 중국,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이다. 데이터 국지화로 구글 비즈니스에 걸림돌이 된다는 국가들이다.상대방은 무조건 ‘악’?이 보고서에서 한국은 EU, 중국과 더불어 데이터 국지화로 치달을 경우 GDP 증가율을 1.1%포인트나 까먹는 국가로 분석됐다. 2014년 GDP 증가율이 2.8%에서 1.7%로 1.1%포인트 감소할 것이라는 추산이다. 이쯤 되면 한국은 데이터 국지화로 자살행위를 하는 국가나 다름없다는 소리다. 아무리 시뮬레이션 결과라지만 과연 그 정도일까 하는 의문이 나올 법하다. 물론 그에 반해 데이터 국지화가 사라졌을 때 구글이 얻을 이익은 전혀 의심할 여지도 없지만 말이다.GDP 증가율에 악영향을 준다는 식의 겁박은 사실 미국의 거대 소프트웨어 업자가 주축이 된 사무용 소프트웨어 연합(BSA)이 잘 써먹는 수법이다. 각국의 불법복제율을
일본이 달라졌다. 과거 아젠다만 무수히 양산하던 일본 정부가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자세다. 엊그제 최종 확정됐다는 이른바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 ‘성장전략’이 그 좋은 사례다.우선 과거와 달리 방향성이 분명하다. 첫 번째 화살(재정지출), 두 번째 화살(양적완화)에 이어 세 번째 화살 ‘성장전략’으로 간다는 게 국민들 눈에도 그럴듯하게 비치는 모양이다. 정부가 경제를 살리는 데 전념한다는 일관성도 돋보인다. ‘감세’와 ‘규제완화’라는 메시지 역시 강렬하다. 그거야말로 정부가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그래서인지 추진 과제들도 법인세 인하를 필두로 노동, 농업, 의료개혁 등 시장친화적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로 추려진 느낌이다. 그동안 일본 경제를 짓눌러왔다는 6중고(엔고, 높은 법인세, 과중한 인건비 부담, 규제, FTA 체결 지연, 전력수급 불안 등)를 확 날리자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정권마다 벌이는 아젠다 게임반면 우리는 반대로 가는 기분이다. 되는 일도 없이 정권마다 아젠다 게임만 벌이고 있다. 아젠다가 얼마나 난무했으면 이제는 방향성도, 메시지도, 손에 잡히는 것도 없을 정도다. 현 정권만 해도 그렇다. 경제민주화를 놓고 오락가락했던 건 제쳐 두자. 대통령직 인수위가 내놓은 5대 국정목표, 21대 추진전략, 140개 국정과제를 기억하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되겠나.3대 목표, 6대 전략, 24개 추진과제라는 거창한 창조경제 실현계획도, 13대 미래성장동력도 희미해진 지 오래다. 심지어 올해 초 발표된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다를 게 없다. 3대 전략, 15개 핵심과제, 100개 실행과제에서 그나마 줄였다는 게 3대 전략, 10
국내 휴대폰 보조금의 규제 역사는 한마디로 기구하다. 논란의 시작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중고 단말기 양산 등을 문제삼아 그해 6월부터 이용약관에 보조금 금지조항을 신설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도 안되겠다 싶었는지 정부는 아예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 2003년 3월27일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보조금 지급을 금지했다.그러던 정부가 3년 뒤에는 입장을 바꾼다. 관련 산업 발전을 지원한다며 2006년 3월27일부터 2년간 통신사가 예외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후 2008년 3월27일 관련 규제가 일몰되면서 보조금 지급은 원칙적으로 허용됐다. 하지만 규제 완화는 오래가지 못했다.금지→예외→허용→27만원방송통신위원회는 규제 일몰에도 불구하고 행정지도 등 시장개입을 멈추지 않았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던 방통위는 전기통신사업법상 부당한 이용자 차별 규제 조항을 들이대며 2009년 3월 통신 3사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여기서 등장한 게 27만원을 초과한 보조금 지급은 위법하다는 기준이다. 가입자 1인당 평균 예상이익(22만2000원)과 가입자 1인당 제조사 장려금(4만8000원) 합계를 넘지 말라는 것이다. 이때 계산된 27만원은 지금도 보조금 위법성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다.방통위는 이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까지 손에 거머쥐게 됐다. 10월 시행인 단통법은 보조금 상한선을 아예 고시에 명시하도록 했다. 새 법에 따라 보조금을 공시해야 하는 통신사는 상한선을 지금보다 더 높이지 말라고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상한선이 올라갈수록 부담은 늘고 운신의 폭은 좁아진다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단말기를 파는 제조사나 단말기를 사
1965년 5월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다. 당시 한·미 공동성명문 말미에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문안 하나가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한국의 공업기술 및 응용과학연구소 설치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과학고문을 한국에 파견하겠다는 린든 존슨 대통령 제의를 환영했다.” 존슨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다고 하자 박 대통령은 연구소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던 것이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판에 연구소라니. 당시 그 의미를 알아차린 사람이 얼마나 있었겠나. 오늘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이렇게 탄생했다.“KIST는 국가 미래의 등불”손뼉도 맞아야 소리가 난다고 했다. 대통령 뜻이 아무리 좋아도 받쳐주는 이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여기서 소신이 뚜렷했던 한 과학자가 등장한다. KIST 초대 소장, 최장수 과학기술처 장관(7년6개월)을 역임한 고(故) 최형섭 박사다. KIST가 어제 최 박사 10주기 추도식을 열었다. 척박한 이 땅에 연구환경을 조성하고 해외 인재를 끌어들인 그의 열정을 잊지 못해서일 것이다. 최 박사는 대덕연구단지 등 한국 과학기술의 터전을 닦은 개척자였다.최 박사 묘비명에 새겨진 연구자 덕목은 지금도 연구자들을 숙연하게 한다. 그의 회고록 일부다. “연구자는 지나치게 부귀영화에 집착해선 안된다.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직책에 충실해야 한다. 연구 자체가 생활이어야 한다. ‘자기가 얼마나 알고 있느냐’를 자랑하기 전에 ‘자기가 얼마나 모르는 게 많으냐’를 반성해야 한다. 연구기기 탓을 해선 안된다. 허위와 과장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최형섭 ‘불이 꺼지지 않는 연
국회가 생산하는 법의 한계효용은 과연 얼마나 될까. 법의 한계효용이 점점 떨어지는 수확체감 단계를 지나 총효용을 아예 깎아먹는 마이너스 국면으로 넘어간 건 아닌가. 19대 국회가 전반기에만 1276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추세라면 19대 입법건수는 16대 948개, 17대 1915개, 18대 2353개보다 훨씬 많은 2500개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다간 국민 1인당 1법 시대도 멀지 않았다.1960~1970년대만 해도 법이 하나 생기면 액션이 바로 뒤따랐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가 된 형국이다. 법이 탄생할 때마다 예산, 조직, 공무원 수는 잔뜩 늘어나는데 정작 되는 일은 없다. 법이 무슨 자기복제하듯 불어나면서 그 복잡성과 상호충돌 가능성이 이미 통제범위를 벗어났는지도 모른다. 국회가 회기 내내 정쟁만 일삼다 막판에 무더기로 의사봉을 두드려대니 이런 게 제대로 체크될 리 만무하다.혁신 죽이는 ‘법 만능주의’미래 성장동력과 관련된 법도 예외가 아니다. ‘입법 제로’라고 질타당하던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는 하루 만에 132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정상이 아니다. 윤지웅 경희대 교수가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련) 오픈포럼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방위 법안은 제안부터 의결까지 평균 약 423일이 걸렸다. 통상적 입법기간인 250일과 비교하면 70%가량 더 소요된 셈이다. 만약 이게 충분한 심의 때문이었다면 누가 뭐라겠나. 그동안 파행만 거듭하다 이랬으니 졸속이라고 욕을 먹는 것이다.법을 만들어 문제가 다 해결되면 세상에 그것처럼 쉬운 일도 없다. 입법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지, 방해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
1995년 일본에서 옴진리교에 의한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 사건이 터졌을 때다. 이 소식이 미국에 날아들자 당시 미국 신문은 워싱턴으로 향하는 메트로 출근길에서 오간 대화를 이렇게 전했다. “여기서 저런 사건이 터지면 어쩌지?” 한쪽에서 백인들끼리 수군댄다. 곧 다른 쪽에 앉아 있던 흑인이 이들을 안심시킨다. “걱정 마시오. 우리에겐 NIH(국립보건원)가 있잖소. 이미 그런 경우를 대비해 뭔가 준비해 두었을 것이오.”“우리는 NIH가 있잖아”미국의 연구개발(R&D) 예산은 덩치 큰 나라치고는 너무 간단하다. 예산의 반은 국방에 할당한다. 그리고 나머지의 절반은 NIH 몫이다.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임무는 확실히 한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이래서 일반 국민도 위기 시에는 국가가 나설 것이란 믿음이 확고한지 모른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또 어떤 대비를 해왔는지는 R&D 예산만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런 게 국가다.재해가 많아 언제나 대비한다는 일본은 또 어떤가. 2012년 일본 과학기술진흥기구가 작성했다는 ‘일본사회의 안전보장과 과학기술’ 보고서는 반성, 반성, 또 반성이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일본 사회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지금까지의 과학기술정책은 첨단과학기술 추진에 편중돼, 안전 등 정작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사회 안전보장을 혁신의 중요 축으로 삼고, 안전보장 관련 연구자 정보를 DB화하며,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관련 분야 연구자가 있다’는 인식과 ‘다양한 연구자에 의한 다양한 연구’로 미지(未知)의 리스크에 대응해야 한다…위기 시 도
누군가 나의 수익모델을 ‘공짜’로 만든다면 그것처럼 끔찍한 일도 없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입장에서는 구글이 바로 그런 존재다. 이른바 구글의 공짜 안드로이드 생태계는 운영체제(OS)를 주 수익원으로 삼아 온 MS에는 그 자체로 큰 도전이고, 위협이었을 것이다. MS가 당장 대응할 수 있는 무기는 안드로이드 진영의 제조사를 대상으로 한 특허 공격이었다. 그러나 특허 수익료만 일부 챙겼을 뿐 상황은 그대로였다. 결국 MS는 노키아와의 인수합병 카드를 던졌고, 급기야 자신의 모바일 운영체제까지 공짜로 내놓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구글·아마존의 ‘공짜’ 공세 구글의 공짜 공세는 어디까지 이어질 건가. 구글은 검색광고 수익에 도움만 된다면 무엇이든 다할 태세다. 안드로이드뿐 아니라 하드웨어라고 공짜로 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렇게 되면 바로 타격을 받을 건 안드로이드 진영 제조사다. 구글과의 수평적 분업을 믿어 온 제조사가 그만큼 수익모델을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구글은 모토로라 인수 당시부터 그런 의도를 가졌는지 모른다. 당시 구글이 삼성전자를 견제한다는 해석이 적지 않았다. 구글로서는 삼성전자의 안드로이드 활용은 백번 환영하지만 독주를 원하지는 않는다. 안드로이드 생태계의 중심축은 어디까지나 구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구글이 모토로라를 중국 레노버에 넘기자 일각에서는 구글이 다시 수평적 분업구도로 되돌아간 것처럼 분석했다. 그러나 정작 구글은 제조사 간 경쟁을 더욱 부추기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을 가능성이 높다. 구글이 모토로라를 레노버에 내준 것도 그렇지만, 그 뒤에 내부적으로 진행해 왔다는 프로젝트 ‘아라
정부가 혁신을 통제·관리하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장관회의를 계기로 공인인증서 문제가 또 불거졌다. 그러나 공인인증서는 단순한 규제개혁 이슈가 아니다. 만약 규제 문제로만 생각했다면 대통령도 관료도 본질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건 기본적으로 정부의 혁신 철학이 잘못됐다는 얘기다. 보안성이 됐건 편리성이 됐건 어떤 기술이 ‘승자’로 등극할지는 마땅히 시장에서 ‘경쟁’으로 가려져야 할 문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특정 기술의 손을 들어주면 새로운 기술에 의한 혁신 기회는 그날로 날아가고 만다. 일각에서는 공인인증서가 외국 기술의 국내시장 잠식을 막는 무슨 애국의 방패막이인 양 떠들어대지만 어불성설이다. 그럴수록 한국은 더 깊은 갈라파고스의 수렁으로 빠져들 뿐이다. “정부는 기술 중립적이어야” 정부가 특정 기술에 ‘편향성(bias)’을 갖는다는 건 그래서 위험하다. 더구나 과거와 달리 기술변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우발적 요인이 워낙 많아 기술경로를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기술 편향성은 자칫 공멸을 몰고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과거의 관성을 좀체 버리지 못한다. 과거에 통했던 선택과 집중전략을 고집하는 것만 해도 그렇다.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는 운 좋게 성공했다지만 와이브로는 실패했다. 그러나 정부는 여기서 어떠한 교훈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아니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게 우리 정부다. 정부의 ‘기술영향평가’라는 것도 걱정스럽다. 말이야 미래기술의 부정적 측면에 미리 대응한다
복잡계 경제학자로 유명한 브라이언 아서는 기술의 진화를 ‘조합적 진화(combinational evolution)’로 봤다. ‘개별 기술’이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기술영역(시스템)’이 통째로 다른 것으로 바뀐다는 얘기다. 이게 맞다면 ‘융합’은 생존의 문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위기의식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국가융합기술 발전전략’을 내놨다. 그전 정부의 융합전략과 뭐가 다른지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융합연구를 떠들지만 기존 연구체제 위에 그저 ‘융합’이라는 숙제 하나를 덩그러니 던져 놓은 형국이다. 정부 출연연구소만 해도 그렇다. 1960~1970년대 개별 업종, 개별 기술을 전제로 만들어진 연구소 체제에서 융합이 가능하겠나. 말이 연구소지 하나의 ‘사일로(silo)’로 전락한 지 오래다. 더 본질적 문제는 융합에 대한 정부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다. 현재 정부의 융합 발전전략은 말만 융합이지 과거 개발전략을 꼭 빼닮았다. 만약 계획적 개발에 의해 융합이 터진다면 이런 전략이 더 유효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융합은 ‘계획’이 아니라 ‘우연’에 의해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미래학자 존 스마트는 ‘우연에 의한 진화(evolution) 모델’과 ‘계획적 개발(development) 모델’의 차이점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불확실성, 다양성 환경에서는 계획적 개발을 통한 기술적 돌파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우연에 의한 진화’ 대 ‘계획적 개발’ 비율이 95 대 5라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단지 5%에 목숨을 걸고 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결국 정부 주도의 계획방식 융합은 한계가 있다는
미국 실리콘밸리를 모방하겠다는 도시가 줄을 잇고 있다. 영국 중국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우리도 그렇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내걸자 온통 실리콘밸리 얘기뿐이다. 실리콘밸리는 과연 미국 밖에서 복제할 수 있는 건가. 불행히도 실리콘밸리를 따라할수록 실리콘밸리의 고유성만 더 도드라지는 양상이다. 연구중심대학, 과학에 대한 정부의 신념, 왕성한 혁신금융에 기업가정신까지 일일이 인용할 수도 없다. 실리콘밸리에서 쏟아지는 창업이 부러워 여기저기서 흉내를 내보지만 결과는 영 신통치 않다. 그 때마다 실리콘밸리 콤플렉스만 더 깊어질 뿐이다.'영어' '달러' '이주 발명가' 급기야 일본의 한 학자는 실리콘밸리의 미국 밖 재현 가능성은 제로라고 단언한다. 국제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고, 기축통화인 달러를 화폐로 쓰며, 전 세계 이주 발명가들이 몰려오는 곳이 실리콘밸리 말고 또 있느냐는 이유에서다. 안 될 꿈은 아예 꾸지도 말라는 얘기로 들린다.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씁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영어와 달러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주 발명가 부분은 특히 뼈아픈 대목이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따르면 2006~2010년 전 세계 이주 발명가의 59.1%가 북미로 흘러들어갔다. 같은 기간 아시아를 떠난 이주 발명가는 41.9%에 달했다. 이주 발명가의 현 거주지도 미국이 57.1%로 단연 압도적이다. 결국 아시아 등 타 지역은 일방적으로 미국에 발명가를 빼앗기는 구도다. 두뇌 유출을 당하는 국가로서는 그냥 두고 보기 어렵다. 실리콘밸리를 흉내라도 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모방으로 과연 실리콘밸리와 경쟁이 가능하겠나. 다급한 나머지 인위적으
지난해 외국인직접투자(FDI) 실적은 충격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년에 비해 신고(-10.7%), 도착(-9.4%) 따질 것 없이 다 줄었다. 특히 제조업 투자가 23.8% 감소했다. 일본 기업의 투자가 줄어든 게 결정타였다. 전년에 비해 40.8%나 떨어졌다. 대일 수출은 아예 12개월째 내리막길이다. 작년 대일 수출 감소세가 두 자릿수대로 올라섰다. 주력 품목도, 농수산품도 일본 시장 점유율이 곤두박질쳤다. 한국이 일본 시장에서 가장 죽 쑤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일본인 관광객도 발길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전년 대비 22% 줄었다. 정부는 이걸 다 엔저 탓으로 돌려버린다. 투자·수출 등 내리막길 한·일 관계 냉각의 불똥이 사방으로 튀는 양상이다. 별 영향이 없을 것 같은 정보기술(IT) 분야조차 예외가 아니다. 일본 1위 통신사 NTT도코모가 지난달 말 ‘타이젠폰’ 출시를 미루겠다고 발표한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삼성전자가 구글에 맞서 ‘제3의 OS’로 추진하는 타이젠은 적지 않은 타격이다. 삼성전자가 유독 맥을 못추는 곳도 일본 스마트폰 시장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편견 탓이라고 분석했다. 양국 관계 냉각이 여기에 기름을 부은 건 아닌지. 지금 일본 정부는 5세대 통신으로 한국을 제치자며 업계를 자극하기에 바쁘다. 이쯤되면 일본에서 대성공을 거둔 네이버의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라인’도 안심하기 어렵다. 이미 일본에서 한국 서비스 아니냐는 논란까지 일었던 터다. 일본 서비스라고 애써 홍보하지만 양국 관계가 나빠지면 일본 사용자들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다른 분야도 벙어리 냉가슴 앓는 듯한 분위기다. 해외 인프라, 플랜
‘사이버 시대를 구석기법으로 통제하나.’ ‘변화를 거부하는 네오 러다이트(neo-luddite)족(族).’ 원격진료 도입을 둘러싸고 1990년대에 제기됐던 비판들이다. 우리 사회가 원격진료 문제로 티격태격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원격진료가 도입됐다면 이미 그 성패가 결론이 나고도 한참 남았을 기간이다. 의사협회는 여전히 원격진료에 반대한다. 그러나 그 반대논리라는 것이 갈수록 당당하지 못하다. 당장 설문조사만 해도 그렇다. 의협은 휴대폰 등을 활용한 원격진료 필요성에 대해 68.3%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고 했다. 환자는 선택권이 없나 문제는 질문 항목이다. “병·의원이 가까워서 의사와 직접 대면진료가 가능한 경우에도 휴대전화 등을 활용한 진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부정적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를 노린 전형적 수법을 동원했다. 만약 “병·의원이 너무 멀어 의사와 직접 대면진료가 불가능한 경우에도 휴대전화 등을 활용한 진료가 전혀 필요 없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으면 어땠을까. 오히려 “필요하다”는 긍정적 대답이 훨씬 많이 나왔을 게 틀림없다. 의협이 국민을 바보로 취급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식의 설문조사로 장난칠 수 있나. 의협은 환자의 선택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동안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의료 접근성이 뛰어나 원격진료가 필요 없다는 게 의협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필요성에 대해 판단할 권한을 의협에 위임한 적이 없다. 그건 환자의 선택으로 가려질 문제이지 의협이 예단할 일이 아니다. 의협의 주장이 맞는지, 과연 오지에서도 그런지는 원격진료를 도입해 보면 보다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의협이
한 명의 학자가 100개의 정의도 내릴 수 있는 게 ‘창조’라고 한다. ‘창조’에 대한 합의된 정의도 없고, 측정도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 ‘창조’가 갖는 의미는 긍정적인 것 일색이다. 정치인이나 관료에게는 이런 마법 같은 용어도 없다. 왜냐고? 일단 아무데나 ‘창조’만 갖다 붙이면 무슨 일이든 다 벌일 수 있다. 실패해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창조’가 어디 쉽게 되느냐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그 사이 어디서 무슨 성과라도 떨어지면 대박이다. 무조건 ‘창조’로 생긴 결과라고 우긴들 그 인과관계를 검증할 사람도,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선 1주년 간담회 때 “창조경제의 씨를 뿌린 지 얼마나 됐나. 시간이 지나면 창조경제를 비판했던 사람들이 후회할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미 ‘창조’의 마법을 다 간파한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옳다. 창조경제 자체를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정부가 창조의 씨를 뿌리겠다면 제대로 뿌리라는 지적을 하고 싶은 거다. '창조'면 뭘 해도 되나 창조경제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신년사를 통해 2014년 정책 방향을 내놨다. 첫째가 온라인 창조경제타운 확대이고, 둘째가 민간 주도 창조경제 추진이다. 그 다음은 들먹일 필요도 없겠다. 벌써 여기서 꽉 막히는 느낌이다. 민간 주도 창조경제를 말하면서 굳이 관(官) 주도 창조경제타운에 목숨 거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혹여 대통령이 구상한 프로젝트라서 그런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미래부가 창조경제타운의 벤치마킹 사례로 든 게 있다. 쿼키(Quirky), 테크숍(Techshop), 이노센티브(I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구글 애플 등 정보기술(IT) 업계 대표들을 만났다. 이번이 두 번째다. 2011년 첫 만남에서는 일자리가 주제였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잘나간다는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에 미국 내 일자리를 늘려 줄 것을 요구했다. 그때는 오바마 대통령이 다급했다. 이번에는 그 반대다. 미 IT 기업들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국가안보국(NSA)의 감시 프로그램을 개혁해 줄 것을 요구했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이후 미 IT 기업들에 대한 불신이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를 점령하라' 미국 안에서는 워싱턴 연방지방법원이 NSA의 정보수집 활동에 대해 처음으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 불똥이 앞으로 어디로 튈지 모른다. 미국 밖의 상황은 더 심상치 않다. 당장 미 IT 기업들이 선도하던 클라우드 컴퓨팅이 된서리를 맞을 조짐이다. 미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급락하면서 클라우드산업이 입을 피해가 향후 3년간 215억~35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유럽은 아예 험악한 분위기다. 미국이 엿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유럽의 데이터센터는 유럽 안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넘쳐난다. 유럽연합(EU)은 즉각 데이터 보호법 정비에 착수했다. 유럽만 그런 게 아니다. 브라질이 새로운 정보보호 조치를 내놓는 등 다른 국가들로도 확산될 기세다. 몇 년 전 중국이 구글과 갈등을 빚었을 때만 해도 비난의 대상은 중국 공산당이었다. 당시 중국이 구글 서버를 자국 내에 설치하고, 저장된 정보가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통제하겠다고 나오자 구글이 반발했던 것이다. 지금은 완전 딴판이다. 중국의 이런 조치가 이해 안될 것도 없다는 식이다. 정보보호주의가 힘을 얻고 있다
4세대 이동통신인 LTE의 신규 주파수가 경매로 나왔을 때다. 통신서비스 사업자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게 누구를 위한 게임이냐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통신장비 업자, 그것도 외산 통신장비 업자만 좋게 생겼다는 수군거림이었다. LG유플러스는 광대역 LTE 통신망 구축을 위해 삼성전자 에릭슨 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NSN) 화웨이 등과 장비 공급계약을 했다. 그런데 미국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영 불편한 모양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중국 화웨이의 한국 시장 진입을 못마땅해 한다는 것이다. 오지랖 넓은 미국 그동안 화웨이가 미국 시장에서 뭔가 일을 좀 해보려고 할 때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놨던 미국이다. 미국 정부나 정치권이 미국 시장 안에서 그러는 거야 누가 뭐랄 것도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미국과 중국의 문제다. 하지만 오지랖이 넓어도 유분수지, 한국이 아무리 미국의 동맹국이라지만 이건 아니다. 더구나 LG유플러스는 민간사업자다. 보안에 전혀 문제없다고 직접 해명까지 한 터다. 백보를 양보해 미국 말대로 보안 우려가 있다고 치자. 일본 소프트뱅크가 화웨이 장비를 도입할 때 미국은 아무 말이 없었다. 영국의 브리티시텔레콤(BT)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이 왜 한국만 문제삼는지 모르겠다. 논란의 불씨를 지핀 데는 우리 정부 책임도 있다. 국정감사에서 LG유플러스의 화웨이 장비 도입 질의가 나왔다. 당시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통신 보안과 국내 장비산업 타격을 우려했다. 아니 그게 문제면 외산 장비 전체가 다 해당되지 어떻게 화웨이만이겠나. 미국 시스코가 들어와도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전 세계 네트워
리처드 왓슨(Richard Watson)의 ‘미래 파일(Future Files)’은 독특하다. 새로이 나타날 것을 예측하는 대부분의 미래학자와 달리 그는 무엇이 사라질지도 상상한다. 이른바 ‘종말의 시간표(extinction timeline)’다. 왓슨은 2018년엔 도서관, 2020년엔 저작권이 각각 사라질 것으로 봤다. 그의 예측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2004년 구글은 ‘라이브러리 프로젝트(구글북스)’를 출범시켰다. 전 세계 도서관 책을 디지털로 만들어 독자들이 언제든 검색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해 미국의 작가 단체와 출판사는 구글을 저작권 침해로 제소했다. 소송이 8년째 접어들면서 마침내 판결이 내려졌다.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이 구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구글북스가 ‘공정한 이용(fair use)’에 해당하며,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구글은 즉각 환영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작가 측은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날개를 단 구글북스 세상이 디지털화되면서 곳곳에서 이런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시장과 기술이 저작권법을 훨씬 앞질러 가면서 법과 갈등하는 양상이다. 구글북스 소송도 저작권법의 실패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예고됐던 일이다. 저작권법이 언제 생겼나. 18세기다. 그때와 지금의 시장과 기술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저작권법이 탄생할 때만 해도 진입장벽이 높았다. 불법복제에 대한 아날로그적 규제도 먹혔다. 이를 두고 윌리엄 패트리 구글 저작권 고문은 저작권법이 ‘인위적 희소성’을 조성, 독점적 가치를 만들었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인터넷과 디지털은 진입장벽을 낮췄다. 아날로그적 규제도 더는 통할 수 없게 됐다. 소수 저작물을 높은 가
2050년 제조업 미래를 그려낸 나라가 있다. 지난 2년간 300명에 이르는 국내외 전문가 자문을 받아 제조업의 장기 비전과 대응전략을 담은 보고서다. 이 나라는 중국도 아니고, 독일 일본 미국도 아니다. 선진국 중 가장 먼저 제조업 공동화를 경험했던 나라. 지금은 제조업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10%로 쪼그라든 나라. 바로 영국이 그 주인공이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선도했던 국가다. 그런 영국이 제조업 주도권을 넘겨주고 부활을 소리 높여 외쳤던 건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이었다. 2007년 초 이코노미스트지는 19세기 면직물의 영국이 21세기 금융의 영국으로 세계 중심에 우뚝 섰다고 평가했다. 그것도 잠시 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천당과 지옥을 다 맛본 영국이다. 그런 나라가 이제 와서 제조업, 그것도 2050년이란 먼 미래에 집착하는 이유가 뭔가. '제조업 다시 보자'는 영국 올 들어 영국 경제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2007년의 재판이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겉으로는 회복세이지만 제조업 위축 등 구조적 문제점은 그대로라는 얘기다. 영국 경제가 나빠질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가 좋아져도 조마조마하는 배경엔 조락해버린 제조업에 대한 미련이 자리하고 있다. 2050 보고서는 제조업이 왜 중요한지로 시작한다. 연구개발투자·혁신·생산성 향상의 선도, 수출 주도, 고숙련 일자리의 창출, 산업연관 효과, 침체 시 경제의 빠른 복원력 등을 제조업 강점으로 내세운다. 과거 제조업 공동화가 시작됐을 때나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때보다 제조업에 대한 절절함이 더하다는 느낌이다. 보고서는 특히 제조업의 가치사슬에 주목할 것을
농촌진흥청이 이직·퇴직 공무원들에게 수백억원대의 연구과제를 지원했다고 논란이다. 국정감사에서 나온 얘기다. 2000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이직하거나 퇴직한 농진청 공무원 99명에게 247개 과제, 310억원을 몰아주었다는 것이다. 워낙 폐쇄적이기로 유명한 농진청이라 별로 놀랄 것도 없다. 의원님들만 모르셨나 보다. ‘그들만의 리그’가 어디 농진청뿐이겠나. 부처마다 이런 돈주머니 하나쯤은 꿰차고 있다. 연구과제 나눠준답시고 ‘평가’니 ‘진흥’이니 하는 관리기관도 다 거느리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 새로운 계획이라도 수립할 때면 이를 놓치지 않고 관리기관을 늘리는 것도 불문율이다. ‘그들만의 리그’ 만들기 경쟁 미래부가 ‘정보통신기술(ICT) 연구개발(R&D) 전략’을 내놨다. 5년간 총 8조5000억원을 투입, 생산유발 12조9000억원, 부가가치 창출 7조7000억원, 일자리 18만개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번에도 어김이 없다. 정보통신기술진흥원을 새로 만든다고 한다. 아니 진흥원이 없어 지금까지 ICT 연구개발을 못했나. 융합, 융합 하더니 결국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쁘다. 부처마다 관리기관이 생길수록 R&D는 더 폐쇄적으로 돌아간다. 규정들이 복잡해지는 건 당연하다. R&D사업을 한다는 19개 부처의 연구관리 규정만 111개다. 근거 법률도 97개에 달한다. 연구자들은 숙지할 엄두조차 안 난다고 말한다. 결국 연구외적 능력이 뛰어나야 유리해지는 구조다. 물론 규정이야 완벽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연구자를 위한 이의제기 제도 같은 건 허울에 불과하다. 찍힐까 두려워 이의를 제기할 연구자도 없고, 권장하는 부처도 없다. 잘못하면 감사원의 감사거리만 된다. 반면
벤처특별법은 김영삼 정부 때 탄생했다. 중소기업청도, 코스닥도 그때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마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이런 게 다 파묻혀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정작 그 공(功)을 차지한 건 김대중 정부였다. 벤처붐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자랑할 정도였으니 역사적 아이러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벤처정책은 너무 나간 게 탈이었다. 기존 대기업을 갈아치울 세력교체의 기회로 판단, ‘오버슈팅’을 했다. 실제로 당시 정부는 벤처기업 수 늘리기에 집착해 도장 찍기에 바빴다. ‘관제 벤처’가 쏟아졌다. 그 후유증 때문에 벤처버블 붕괴의 고통은 더 깊어졌다. 정권 따라 춤추는 벤처정책 그 역풍은 노무현 정부로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는 더 이상 벤처 늘리기가 힘들다고 생각, 새로운 작명에 돌입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혁신형 중소기업이라는 ‘이노 비즈’다. 그러나 정부 주도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벤처나 이노 비즈나 그게 그거였다. 그 다음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친(親)벤처도, 반(反)벤처도 아닌 모호한 이미지를 남겼다. 그렇다고 정부 주도를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녹색성장을 전면에 내세우며 벤처든 뭐든 다 녹색으로 둔갑시키려 했던 정부였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어떠할지 궁금해진다. 마침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이 벤처기업인 5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눈길을 끈다. ‘미래창조과학부’ ‘창조경제’에 대한 벤처기업인의 반응은 한마디로 ‘시큰둥’이다. 조사를 한 쪽에선 이를 토대로 더 큰 정부 역할, 더 많은 지원을 주문한다. 정부만능주의는 이렇게 끈질기다. 그러나 그게 벤처기업인이 바라는 창조경제일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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