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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현실 전문위원(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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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누구를 위한 기초연구인가

    정권마다 한국도 이젠 선진국을 모방하기보다 창의적 연구를 해야 한다고 주창한다. 그래서 내놓는 공약이 바로 정부연구개발비에서 기초연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창조경제를 들고나온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 연구현장에서는 그 기초연구비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모르겠다며 난리다. 특히 대학 연구자들의 불만이 거의 ‘민란 수준’이란 얘기도 들린다. 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이명박 정부 시절 ‘단군 이래 최대 국가 과학프로젝트’라는 과학비즈니스벨트가 추진될 때부터 뭔가 불안했다. 기초연구를 억지로 비즈니스와 엮는 것도 석연치 않았고, 이런 거대사업이 추진될 경우 기존사업들이 무사할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던 이들은 특별법에 따른 사업이고 추가적 예산이라며 안심시켰다. 그리고 착한 국민들은 우리도 노벨과학상 한 번 받자는 말에 바로 넘어갔음은 물론이다. 연구비 갈등 예견된 일 하지만 사업을 주도하던 이들이 노회한 예산당국을 미처 몰라봤던 모양이다. 시작이야 어찌됐건 결국 예산당국이 기초연구란 이름의 사업들을 다 한 바구니로 넣고 따질 건 시간문제였다. 지금와서 의도했던 게 아니라지만 궁극적으로 기초연구비 배분 갈등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이대로 가면 과학계 내부 갈등은 갈수록 첨예화될 공산이 크다. 물론 과학비즈니스벨트 덕분에 전체 기초연구비가 늘어난 건 맞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출범했고 기초분야 대형 연구단들도 탄생했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성과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보면 전혀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미래창조과학부는 IBS라는 산하기관이 하나 생겼고, 명망 있다는 과

    2013.09.26 17:42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정부부터 개혁하라

    역대 정부마다 정부개혁은 다 실패로 돌아갔다. 정권이 들어설 때는 규제를 없애겠다고 큰소리치지만 결과는 늘 그 반대였다. 정부 조직과 공무원 수도 계속 커져왔다. 박근혜 정부도 ‘네거티브 규제’로 바꾸겠다고 한다. 원칙적 허용, 예외적 금지로 가겠다는 것이다. 종래 규제시스템으로 보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그런데 벌써 공무원 증원 소식이 들려온다. 네거티브 규제와 공무원 수 증원, 이 역설적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안전행정부는 박근혜 정부 5년간 공무원 수 억제를 공언하지만 안행부부터가 이미 신뢰를 상실한 마당이다.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역할부터 바로잡는 근본적 개혁 없이 아무리 네거티브 규제 운운해봐야 헛일이다. 정권마다 조직개편한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실패한 이유도 다 여기에 있다. 지금도 각 부처가 내놓는 네거티브 규제 로드맵을 보면 그야말로 속빈 강정이 따로 없다. '네거티브 규제' 안 되는 이유 우선 네거티브 규제로 조직 자체의 위기감을 느끼는 부처들이 한둘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환경부 등이 바로 그런 곳들이다. 이들은 지금 정치권에서 쏟아지는 온갖 규제를 내심 고마워할지 모른다. 영양가도 없는 네거티브 규제 시늉만 내는 곳도 수두룩하다. 농민을 의식하는 농림축산식품부, 의료계 눈치를 살피는 보건복지부 등 이미 이해집단에 발목을 잡힌 부처들이 그렇다. 개방은 곧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기득권 세력들은 네거티브 규제 기미라도 보이면 바로 결사투쟁에 돌입할 태세다. 여기에 규제와 진흥이 마구 뒤섞여 있는 부처들은 뭐가 뭔지 그 방향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2013.09.05 18: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원전도 경쟁시켜라

    정치권과 정부가 내놓는 원전 비리대책이 갈수록 가관이다. 원전 비리를 때려잡자는 건지, 원전을 때려잡자는 건지 도무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러다 원전 비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원전의 문을 모조리 닫으면 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당장 새누리당 에너지특별위원회가 발표한 대책만 해도 그렇다. 서류 위·변조 등 불법 행위자에 대해서는 가중 처벌과 양벌 규정을 신설하는 등 처벌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과징금도 현행 최고 5000만원에서 원자력 분야는 50억원, 방사선 분야는 5억원으로 각각 상향 조정하고, 과태료도 3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올린다고 한다. 기기를 검증하는 기관 종사자도 공무원으로 의제해 민·형사상 책임을 강화한다는 방안까지 내놨다. 무슨 포퓰리즘도 아니고 온통 처벌 강화 얘기들로 가득 찼다. 처벌 강화가 능사인가 정부 역시 원전 관련 퇴직자들이 부품회사나 협력사에 재취업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원전 비리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원전 비리 제보자에 대해 공익신고자보호법의 책임감면 규정, 형법의 자수규정 등을 적용해 법적 책임을 감면하고, 최고 10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후속 대책도 나왔다. 죄를 지었으면 처벌받는 거야 당연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어디 살벌해서 앞으로 누가 원전 분야에 뛰어들 마음이 생기겠나. 원전이 아예 기피업종으로 전락하는 것도 시간문제가 될지 모른다. 아무리 대통령이 네 번씩이나 원전 비리를 질타하고 국무총리는 천인공노할 중대 범죄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지만, 이건 원전을 죽여 비리를 없애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더구나 정부가 전력대란이 마치 원전 비리 때문인 양 몰아가는 상황도 본질을 호도

    2013.08.22 16:55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특허괴물 철퇴 맞나

    중국이 어느 날 모든 지식재산권의 공유화를 선언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로 인해 미국 경제가 대혼란에 빠진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도 아니다. 1998년 브루스 스털링은 ‘디스트랙션(Distraction)’이란 소설에서 그런 상상을 했다. 지식재산권을 전략산업으로 여기는 미국으로서는 소름끼치는 얘기다. 지식재산권 강국이 되겠다고 미국을 추격하는 중국이지만 미 ‘특허괴물(patent troll)’들이 중국을 맹폭한다고 해 보라. 중국이 그대로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가정은 충분히 해봄 직하다. 제재 나선 美 정부·의회 특허제도가 혁신을 위해 도입됐지만 그건 이론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디스트랙션 출간 10년 후인 2008년 ‘특허의 몰락(Patent Failure)’이란 책이 프린스턴대 출판부에서 나왔다. 공동 저자 마이클 모이러와 짐 베송은 “특허제도는 대개 혁신에 방해가 된다”고 결론 내린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도 생산하지 않고 오직 특허침해소송이 수익모델인 특허괴물을 보면 근거 없는 주장도 아니다. 특허괴물도 특허제도의 산물이 아닌가. 결국 미국의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들고 일어났다. 특허괴물로 인해 급증하는 특허소송이 혁신을 저해한다며 행동에 돌입한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즉각 화답하고 나섰다. 지난 6월 오바마 대통령은 특허괴물의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한 5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백악관은 미 경제성장의 동력인 하이테크 부문의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빨라진 만큼 특허제도 또한 그 속도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부터 바로 달

    2013.08.01 17:4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미래부를 위한 변명

    출범 100일을 맞이한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시각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창조경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고, 정책의 실효성 구체성도 결여됐다는 평가다. 그래서 해결책이 뭐냐고 물으면 또 늘 나오는 건 ‘컨트롤 타워 기능 부여’ ‘정책조정 권한 강화’ ‘부총리 승격’ 등과 같은 해묵은 타령들이다. 결국 조직을 더 확대하고 권한을 많이 주면 된다는 논리다. 정부가 모든 걸 다해야 하는 시대면 또 모르겠지만 상투적이고 시대착오적 주문들이다. 어찌 보면 이런 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야말로 미래부를 망친 장본인들이다. 미래부의 오늘은 이미 정부 조직개편 때부터 예고됐던 바다. 정작 미래기획 기능보다 물리적으로 이것저것 끌어 모아만든 미래부다. 그러다 보니 우정사업본부 등 ‘미래’나 ‘창조’와는 별 상관도 없는 조직들까지 떠안게 됐다. 조직의 관성은 참 무섭다. 미래부가 개방형 직위를 관료들로 채우고, 민간전문가들을 내보낸 게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누굴 장·차관으로 앉혀도 관료들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미래부는 실패작당초 미래부의 탄생 취지 자체는 나무랄 데 없었다.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건 다음 정권에서도 계속돼야 할 목표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미래부가 이 목표에 충실했다면 ‘미래부가 안 보인다’고 하는 게 오히려 정상이다. 과학기술이 무슨 도깨비 방망이도 아닌데 뚝딱한다고 금방 성과가 나오면 그거야 말로 이상한 것 아닌가. ICT도 정부가 나서 새 시장을 만드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융합도 과학기술이나 ICT 자체보다 결국 이

    2013.07.25 16:59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외국사례 없으면 어쩌나

    우리나라 관료는 외국 사례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외국에 원하는 사례가 있다고 하면 귀가 번쩍 뜨이는 모양이다. 역사적·문화적·제도적 차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우리 현실에 얼마나 적합한지도 둘째 문제로 밀려나기 일쑤다. 논란이 되고 있는 롱텀에볼루션(LTE) 주파수 할당 경매 문제만 해도 그렇다. 무슨 경우의 수를 따지는 것도 아니고 다섯 가지나 되는 할당 경매안을 던졌던 미래창조과학부다. 아무런 철학이 없다는 방증이다. 그러더니 결국 정부가 택한 건 스웨덴식 혼합경매였다. 말이 스웨덴식이지 어느 할당안을 채택할지 그것조차 경매에 부치겠다는 거다. 그럴바엔 정부가 왜 있는지 모르겠다. 정부는 스웨덴식이라고 하지만 그게 정말 스웨덴식인지도 의문이다. 광대역화를 목적으로 연속블록 할당을 위한 스웨덴 방식과 무엇이, 어떻게 같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주파수 할당의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그 나라 현실에 맞게 설계돼야 마땅한 경매방식이다. 주파수·철도 등 온통 외국버전 철도업계는 ‘독일식’ 논쟁에 휩싸였다. 국토교통부가 이명박 정부 때 시도했던 KTX 경쟁 도입 방안을 수정해 독일식의 점진적 경쟁방식으로 가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철도노조는 이마저도 반대다. 하지만 경쟁이 필요하다는 쪽에서 보면 이건 경쟁이라는 말조차 붙이기 부끄러울 정도다. 지주회사와 자회사더러 경쟁을 하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급기야 국토부는 국토부대로, 철도노조는 철도노조대로 독일식을 저마다 견강부회하기 바쁘다. 뭐가 진짜 독일식이냐는 설전이다. 독일식이 실패하면 그 다음에는 어느 나라 식으로 가겠다는 건지. 독일은 독일이고 한국은

    2013.07.11 17:29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외국학자 놀이터 된 한국

    존 호킨스의 ‘창조경제론(The Creative Economy)’이라는 책은 2001년에 나왔다. 당시 논의되던 영국의 창조경제가 그후 어떻게 됐는지는 접어두자. 현재 중국 상하이에서 일한다는 호킨스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초청으로 한국을 다녀갔다. 창조포럼에서 그는 “한국 정부가 방향을 잘 설정했다”고 평가했다. “한국형 창조경제를 만들라”는 충고도 했다. 호킨스가 내뱉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여기저기서 인용되고 있다. 마치 한국에서 ‘창조경제의 아버지’로 등극한 분위기다. 호킨스 자신도 무척이나 놀랐지 싶다. 그가 한국을 얼마나 아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호킨스가 한 말 중 우리가 전혀 모르는 건 단 하나도 없다는 거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주최 세미나에 초청된 이스라엘의 이갈 에를리히 요즈마 그룹 회장도 한국의 창조경제로 바빠진 인물이다. 국회가 연초부터 불러댄 그는 이제 한국을 옆집처럼 들락날락한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요즈마 펀드와 다른 새로운 얘기는 전혀 없다.'봉'으로 전락한 국내 지식시장 지금 연구소마다 요즈마 펀드 관계자를 서로 초청하겠다고 난리다. 한쪽에서 1만달러를 제시하면, 다른 쪽에서는 2만~3만달러를 주겠다는 식이다. 상종가에 놀란 요즈마 펀드는 즉각 한국에 지사를 냈다. 장관들이 만나달라고 줄을 서니 아예 한국에다 판을 깔았다. 이참에 창조경제로 갈아타는 외국학자도 적지 않다. 제롬 글렌은 미국의 미래학자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그를 초청했다. 이번에는 ‘창조경제와 정보기술(IT)의 미래’다. 이명박 정부 때는 ‘녹색성장’에 맞장구쳤던 인물이다. 한국이 외국 미래학자들의 ‘봉’이 된 지 오래

    2013.06.27 17:25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R&D마저 경제민주화?

    대기업들이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을 싹쓸이하는 것처럼 알고 있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다. 2011년 기준 정부 R&D 예산은 15조원 정도다. 이 중 상당 부분은 정부출연연구소(38.4%) 대학(25.4%)으로 가고 기업으로 오는 건 21.7%다. 중소기업이 12.4%, 대기업이 9.3%다. 기업 지원 비중을 100으로 치면 대기업 대 중소기업은 43 대 57이다. 정부는 이마저도 성에 안 차는 모양이다. R&D 예산에서 중소기업 지원 비중을 2017년까지 18%로 끌어올린다고 한다. 현재의 기업 지원 비중이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2017년 대기업 대 중소기업 비율은 17 대 83이 된다. 중소기업 독식이 되는 구조다. 문제는 이 같은 정부 지원이 중소기업의 자발적 R&D 투자를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느냐다. 지금도 민간 R&D 투자에서 중소기업 비중은 30%가 채 안된다. 정부가 중소기업에 대한 R&D 지원 효과가 훨씬 크다는 근거라도 제시하면 또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일절 없다. 중소기업 중심 경제구조로 가야 하니까, 경제민주화를 하라니까 한다는 식이다. ‘좀비 중소기업’이 웃는다 그나마 논리를 제시하는 건 기획재정부 정도다. “민간이 할 수 있는 건 민간의 역할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백번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중소기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대기업은 ‘민간’이고, 중소기업은 ‘민간’이 아닌 ‘공공’이라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선진국들은 어느 분야에 R&D 예산을 투자할지, 어떤 시스템으로 지원할지를 고민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업 규모를 따져 R&D 예산 나눠먹기에 혈안이 됐다. 이러니 정부 예산으로 먹고 사는 ‘좀비 중소기업’이 득실댄다는 지적이

    2013.06.13 17:27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방통위나 미래부나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요금 인하를 들고 나왔다. 그렇게 출발했던 방통위에서 결국 통신산업은 실종되고 말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박근혜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가 가계통신비 인하에 총력전을 펼치는 모습이다. 창의적 아이디어나 서비스가 제값을 받는 창조경제로 가야 한다는 미래부의 통신요금 정책도 달라진 게 없다. 전조가 별로 좋지 않다. 가계통신비라는 말에서부터 정부가 통제해야 할 공공요금이라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겉으로는 경쟁 활성화를 말하지만 동원하는 수단은 구태를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조금 경쟁에 대한 청와대의 경고가 나오더니 결국은 요금 규제, 보조금 규제, 시장개입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이런 통신환경에서는 백날 ‘요금 경쟁’, ‘서비스 경쟁’을 떠들어 봐야 소용없다. 규제와 개입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음을 익히 경험하고서도 정부가 쥐고 있는 권한에 집착하면서 되풀이되는 악순환이다. 통신요금 인하에 목매달고 문제는 정부의 이런 규제와 개입은 시간이 갈수록 그 역효과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데이터 서비스가 중심이라는 시대에서는 특히 그렇다. 이 흐름을 타고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창조적 서비스가 쏟아지고 있다. 데이터 서비스가 폭주해 망의 과부하가 우려될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가계통신비를 인위적으로 찍어 누르면 종국에는 망 사업자도, 새로운 서비스 사업자도 다 망가질 수밖에 없다. 미래부가 즐겨 말하는 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디바이스(CPND) 생태계도 공염불이 되고 마는 거다. 과거 방통위가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 니즈 때문에 통신산업의 미래를 헌납하려는 꼴이다. LTE 주파

    2013.05.30 17:26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누가 의료혁신을 막나

    의료계는 의료산업을 창조경제의 핵심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건복지부도 의료산업이야말로 한국 경제를 이끌 신성장동력이라며 장단 맞추기에 바쁘다. 의료산업은 과연 그럴 만한 조건을 갖춘 것인가. 어떤 산업이 도약하려면 ‘때’를 만나야 한다는 분석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의료산업의 시기가 왔음을 알리는 징후는 많다. 당장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가장 강력한 근거일 것이다. 이에 따른 정치적 지향성의 변화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확대되는 복지 수요’가 장기적으로 의료산업에는 긍정적인 신호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북구 유럽의 복지가 보건·의료 분야 투자 증대와 바이오·생의학 등의 발전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의료산업 기회는 왔는데… 일본의 움직임도 의료산업에 대한 확신을 더해주는 대목이다. 아베 정권이 의료산업에 국가적 베팅을 선언했다. 의료 연구·개발(R&D)을 총괄할 ‘일본판 NIH(미국 국립연구원)’를 설립하는 등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나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 발전 패턴을 보면 일본이 치고 나오는 산업은 죄다 한·일 간 경쟁 산업이 됐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것처럼 보이던 글로벌 의료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도 그렇다. ‘R&D의 글로벌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생산의 글로벌화’가 우리 제조업에 기회가 됐던 것처럼 ‘R&D의 글로벌화’가 새로운 국제 분업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인적자원도 풍부하다. 전국의 의대를 다 채우고 나서야 공대를 간다는 그런 시대다. 이를 두고 이공계 기피가 심각하다고도 하지

    2013.05.09 17:2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박근혜 에너지'는 무슨 색깔?

    박근혜정부 에너지 정책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박 대통령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직접 거론하고 나서면서부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농축’과 ‘재처리’가 전면에 부상하며 오로지 이게 돼야만 사용후핵연료 저장 문제도, 원전 수출도 절로 풀리는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급기야 ‘핵주권론’ ‘핵무장론’까지 덧씌워지기 시작하면서 원전이란 에너지가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모를 지경이 되고 말았다. 당장 이 정부가 약속한 임기 내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 부지 선정과 착공 추진은 물 건너갈 공산이 커졌다. 협정 개정 협상을 2년간 벌인다니 공론화조차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벌써부터 ‘공론화 문제를 공론화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싹수가 노랗다.  기회주의 세력들만 득실 이러다 보니 기회주의 세력만 득실댄다. 대표적인 게 국가 연구비에 재미를 붙인 과학자들이다. 무슨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폐핵연료 재생처리)’ 연구·개발(R&D)만 되면 모든 문제가 싹 사라질 것처럼 떠든다. 심지어 파이로가 안되면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포화로 원전을 세워야 하는 것처럼 겁주는 과학자도 있다. 온 국민이 성공 여부도 모르는 R&D만 쳐다보고 있으란 얘기나 다름없다. 이들에게는 경제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 어떻게 되든, 파이로를 하든 안하든 중간저장시설, 고준위 방폐장은 필요한 것 아닌가. 국민이 무슨 바보도 아닌데 연구비 욕심 채우기에 혈안인 원전 과학자들이 적지 않다. 박근혜정부의 ‘안전우선주의에 입각한 원전’도 빛이 바래졌다. 그렇게 ‘안전’을 강조하던 사람들이 정작

    2013.04.25 17:32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정부의 '창조' 백태

    청와대가 각 부처로부터 제출받은 창조경제 실현방안에 별로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부처들이 기존에 하던 일에 ‘창조’를 덧붙이거나 이름만 바꿔 가져왔다고 불평한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일을 청와대만 몰랐다는 건지 그게 더 놀랍다. ‘창조’로 시작해 ‘창조’로 끝난 각 부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미 예고됐던 바다. 기존에 하던 사업을 ‘창조’로 둔갑시킨 건 그나마 나은지도 모르겠다. ‘창조’를 내세워 정부영역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민간영역까지 치고 들어가거나, 규제개혁을 외면하는 것도 부족해 오히려 규제 늘리기로 가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지원’ ‘규제’로 정부영역 늘리기 공공기관의 ‘인력 효율화’를 외치던 기획재정부가 지금은 공공기관이 일자리 창출을 선도해야 한다고 야단이다. 공공기관 ‘비대화’로 가는 수순이다. 여기에다 기재부는 협동조합 확산의 총대까지 멨다. 국토교통부도 뒤지지 않는다. 민간의 ‘창의성’을 활용하기 위한 철도경쟁방안 대신 ‘합리적’ 경쟁방안을 추진하겠다며 ‘제2철도공사’를 대안의 하나로 내놨다. 적자와 부채로 허덕이는 철도공사가 한 개로도 부족한가. 공사끼리 ‘담합’을 하면 했지 무슨 ‘경쟁’을 한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금융위원회는 아예 민간영역까지 치고 들어간다. ‘창조적 금융’이라는 이름 하에 지식재산권펀드, 인수·합병(M&A) 등을 위한 성장사다리펀드, 미래창조펀드 등을 하겠다고 정책금융의 총동원령을 내렸다. 민간 벤처캐피털을 몰아내기로 작정한 것 같다. 창조를 말하면서 규제를 고집하는 부처도 널려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시장경쟁을 통해 전문화·규모화에 성공한

    2013.04.11 21:39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타이젠, 정부는 빠져라

    “올해 3개 이상의 새로운 모바일 플랫폼이 출현할 것이다. 구글 안드로이드의 시장점유율도 2013년을 정점으로 하락할 것이다.” 시장조사기업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의 예측이다. 이게 맞는다면 올해가 지각변동의 시작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2월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새로운 모바일 운영체제(OS)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타이젠, 파이어폭스, 우분투 등이 그것이다. 지금 모바일 OS 시장은 구글 안드로이드와 애플 iOS가 90% 이상을 차지한다. 이런 독과점 시장 구조에 변화가 일어날지 두고 봐야겠지만 예측의 앞부분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제3 OS, 기회가 왔다” 새로운 모바일 OS 중에서 특히 이목이 쏠리는 건 타이젠이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확산에 일등공신인 삼성전자가 강하게 밀고 있어서다. 삼성전자-인텔을 주축으로 국내외 통신사, 제조사들이 참여한 일종의 ‘탈(脫)구글’ ‘탈애플’ 연합군이다. 타이젠은 과연 ‘제3 OS’로 등극할 것인가.당장은 부정적 반응도 적지 않다. “취지는 좋지만….” “성공 가능성은 미지수다.” 이 밑바탕에는 하드웨어 업체인 삼성전자가 무슨 OS를 하겠냐는 회의론과 구글·애플이 구축해놓은 생태계가 이미 견고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그러나 기회가 왔다는 분석도 있다. 이석채 KT 회장은 “4~5개 OS가 경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어느 시장이건 독과점이 굳어지는 순간 그 폐해를 경험하는 건 시간문제다. 애플, 구글에 대한 피로도가 그만큼 누적됐다는 방증이고, 통신사도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위기감의 표출이다. 이는 다른 나라, 심지어 미국의 통신사들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OS 기술이 더 이상 비밀인 것도 아

    2013.03.28 00: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창조경제? 벌써 식상하다

    “창조경제가 뭔가?”(나성린 새누리당 의원) “융합형·선도형 경제다. 경제민주화가 기반이다.”(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 “구체성이 없다.”(나 의원) 인사청문회에서 오간 얘기다. 현 내정자의 창조경제 답변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 그대로다. 그런 창조경제가 여당 의원조차 와 닿지 않는 모양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설계자로 알려진 윤종록 연세대 교수의 설명도 시원하지가 않다. 윤 교수는 “두뇌를 활용해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게 창조경제”라며 “가장 중요한 건 융합”이라고 한다. 추상적으로 들리긴 마찬가지다. 언제부터인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과거와 다른 경제를 들고 나오는 게 관행이 됐다. 김영삼 정부 ‘신경제’, 김대중 정부 ‘지식기반경제’, 노무현 정부 ‘혁신주도경제’, 그리고 이명박 정부 ‘녹색경제’가 그렇다. 그 때마다 정부는 새 경제로 탈바꿈해야 한다며 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결과는 하나같이 별로였다. 말은 ‘미래’, 행동은 ‘과거’ 이런 경험칙 때문인지 ‘창조경제’ 약발도 그리 오래갈 것 같지 않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과거 정부와는 뭔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면 얘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앞선 정부들과 같은 길을 걸을 조짐이다.당장 ‘정부 주도’ 타성부터 그렇다. 박 대통령은 한 중소벤처기업의 기술 시연을 보다 “왜 미래창조과학부를 안 만드느냐고 (국민들이) 시위할 것 같다”고 했다. 미래부만 만들면 창조경제가 금방 올 것처럼 말하는 게 아슬아슬하다. 현 내정자도 다르지 않다. 청문회에서 “기획재정부는 창조경제의 디자인을 담당한다”고 했다. 과거 경제기획원 시대로 되돌아가는 착각이 든다.

    2013.03.14 00: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빅데이터'도 미국인가

    “이제 구글이야말로 새로운 ‘애플’이다.” 구글과 애플의 주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나온 미국 언론의 반응이다. 구글 주가가 사상 처음 800달러를 돌파했다. 반면 애플 주가는 사상 최고치(705.07달러)를 기록했던 지난해 9월21일에 비해 무려 35%나 급락했다. 기업의 성장 가능성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구글의 야심 어디까지? 눈길을 끄는 구글 뉴스가 또 있다. 비영리기구 ‘오픈 시크릿’이 공개한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로비 금액이다. 여기서도 구글이 단연 1위다. 지난 한 해 정치권 로비에 쏟아부은 돈만 1822만달러(약 196억원)로 애플의 거의 10배다.기업 성장 가능성과 정치권 로비가 무슨 연관성이라도 있다는 건가. 구글이 로비에 나선 이유들이 흥미롭다. 인터넷을 위축시킬 거라고 여기는 온라인 저작권 침해 행위 금지법안 저지, 자신들이 개발한 무인자동차의 실용화에 관계된 각종 법령 정비, 프라이버시 문제 조율, 그리고 우수인재 유치를 위한 이민법 개정 등이다. 신사업들과 관련한 규제 이슈들이 대부분이다. 전년보다 로비 금액을 늘린 아마존이나 페이스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혁신을 선도하는 기업일수록 기술보다 법과 제도가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올해 정보기술(IT) 화두는 단연 ‘빅데이터’다. 구글 등이 경쟁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벤처캐피털들도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미국 등 각국 정부도 빅데이터가 새로운 성장과 일자리를 몰고 올 거라고 장단 맞추기 바쁘다. 과연 그런가. 빅데이터는 모빌리티(이동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클라우드 등 IT의 다른 메가트렌드와 밀접하게 엮여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디지털 기기가 인터넷

    2013.02.21 00: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정부는 산·학협력 손 떼라

    어제까지 한솥밥 먹던 교육과학기술부가 둘로 쪼개지게 되자 집안 싸움이 극에 달하고 있다. 새로 만들어지는 미래창조과학부로 가는 쪽(옛 과학기술부)과 교육부로 떨어져 나오는 쪽이 산·학협력이라는 솥을 두고 서로 차지하겠다고 난리다. 산하단체들도 둘로 딱 쪼개져 총동원되는 양상이다. 이것이 산·학협력에 대한 갈망의 표출이라면 아마도 우리는 벌써 선진국 수준에 올라섰을 거다. 그러나 매년 나오는 국제기관의 국가경쟁력 분석을 보면 한국의 산·학협력은 영 신통치 않다. 교육도, 연구도 다 그렇다. 부처들이 서로 산·학협력을 맡겠다고 난리들인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오나. 산·학협력을 둘러싼 부처 간 이전투구의 본질은 따로 있다. 산·학협력 예산을 서로 거머쥐겠다는 잿밥싸움이다. 왜 그렇게 하냐고? 그 돈이면 대학들 줄 세울 수 있고, 공무원의 힘도 과시할 수 있다. 대학으로서는 로비를 해야 하니 공무원 그만두더라도 일자리까지 기대되는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명목상 지원일 뿐 규제와 다름없는 효과다. 눈먼 돈, 도덕적 해이만 초래 대학에 가면 어느 부처 돈으로 지원됐는지 표시하느라 어지럽게 나붙은 간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산·학협력의 시늉을 낸 것으로 치면 세계 최고다. 말이 산·학협력이지 정작 ‘산’과 ‘학’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대신 정부가 그 중심부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는 게 지금의 산·학협력이다. 미안하지만 이 지구상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나서 산·학협력에 성공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관제 산·학협력’은 돈을 주는 그때만 반짝하는 ‘거품 산·학협력’ ‘가짜 산·학협력’일 뿐이다.역동적인 경제는 예외없이 대학의 ‘과학기술 연구’

    2013.02.07 00: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불안한 미래창조과학부

    그 이름도 화려한 ‘미래창조과학부’의 설계도가 공개됐다. 다음 정부에서 ‘창조경제’를 이끌 거함(巨艦)이다. 차기정부는 정권의 성패라도 베팅하는 양 기대를 불어넣고 있다. 과연 미래창조과학부는 성공할 건가.조직의 얼개를 본 순간 솔직히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단기적으로는 정보통신기술(ICT), 장기적으로는 과학기술로 ‘미래 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잡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당장 여기서부터 문제점이 보인다. 차기정부는 ICT를 산업 담당 지식경제부에서 떼어 내 과학기술과 같은 지붕 아래 갖다 놓았다. 그렇다면 최소한 ICT도 과학기술처럼 장기적이고 도전적으로 접근하겠다고 해야 맞다. 하지만 그런 철학이 없다. 아마도 조직 설계자는 과학기술로는 당장 뭐가 나오기 어려우니 ICT로 단기적 성과를 보여주겠다는 전략적 계산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이는 ICT의 또 다른 실패를 부를 뿐이다.단기적 조급증이 늘 문제였다 한국 ICT의 구조적 불균형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 보라. 왜 우리는 소프트웨어(SW)를 제대로 육성하지 못했고, 운영체제(OS)에서는 아예 기도 못 펴는가. 핵심 장비·부품·소재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건 무엇 때문인가. 콘텐츠, 솔루션, 지식서비스 등은 왜 선진국에 밀리나. 이제는 앞서간다던 인프라 경쟁력에서조차 추락하는 중이다. 모두 단기적 조급증이 빚어낸 결과다. 차기정부는 돈을 퍼부어서라도 ICT에서 창업을 일으켜 일자리를 만들 태세지만 한번 실패로 충분하다. ICT를 단기 성과용으로 삼기 시작하면 장기적으로 접근하겠다는 과학기술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 한 지붕 밑에서 한 쪽은 맨날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시끄러운데 다른 쪽이 태연할 수 있

    2013.01.24 00: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정부가 反원전 키웠다

    ‘탈(脫)원전’을 우려하던 정부가 안도하는 분위기다. 새누리당이 집권하자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래도 국민의 원전 불신은 사상 최고다. 원전에서 무슨 일만 생기면 죄다 의심받는 지경이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건설 수주 때와 비교하면 완전히 딴 세상이다. 정부는 일본 후쿠시마 사고를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원전 르네상스를 한 방에 날려버렸으니. 그러나 정작 원망할 건 따로 있다. 외부변수 하나에 통째로 흔들려버린 취약한 원전정책이다. 그동안 쌓인 내재적 모순이 그만큼 컸다는 반증 아니겠나. 한국수력원자력만 마구 두들겨 팬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비정상적' '불균형적' 원전정책 더구나 지금의 원전 불신은 반(反)원전론자들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반원전론자들은 어디나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후쿠시마 영향을 덜 받는 곳이 있다. 미국이 그렇다. 스리마일 섬 사고까지 겪은 미국이다. 하지만 미국 국민은 원전을 지지한다. 바보라서 그런가. 아니다. 원전사업자는 못 믿어도 독립된 규제당국만은 믿는다. 사실 원전을 가동하는 나라치고 고장이나 사고가 없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언론에서 떠드는 게 문제가 아니다. 규제당국에 대한 신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국민 불안감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아예 규제당국을 믿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말기에 이르러서야 대통령직속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출범했다. 하지만 국민은 원전사업자와 규제당국이 아직도 한통속이라고 의심한다. 원전정책이 지금까지 그래 왔던 업보다.‘비정상적’ ‘불균형적’ 원전정책은 이것만이 아니다. ‘입구’만 있고 ‘출구’가 없는 원전정책도 불신을 키

    2013.01.10 00: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애플이 끝이 아니었다

    서울중앙지법이 삼성전자-애플 특허소송 판결을 처음 내놨을 때의 일이다. 국내 언론에서는 일제히 ‘삼성의 일방적 승리’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애플은 변호사를 칭찬했다는 후문이다. 특허침해를 잘 인정하지 않기로 유명한 국내 법원이다. 그런 곳에서 삼성이 애플 특허를 일부 침해했다는 판결을 이끌어낸 것만으로도 훌륭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애플은 자신들이 삼성의 표준특허를 침해했다는 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애플은 판결이 나오기 무섭게 삼성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삼성의 특허침해소송이 유럽통신표준연구소(ETSI)가 제정한 표준특허의 이른바 ‘프랜드(FRAND,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허법’이 아닌 ‘경쟁법(반독점법)’ 위반을 걸고 넘어진 것이다.'경쟁법'이 더 무섭다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지금 삼성을 문제 삼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삼성이 표준특허를 걸어 유럽에서 제기한 애플에 대한 판매금지소송이 경쟁법 위반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누가 EU당국을 꼬드겼는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삼성은 애플에 대한 판매금지소송을 잇달아 취하하기 시작했다. 애플의 노림수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그동안 삼성이 직면한 리스크는 애플의 소송으로 인한 ‘애플 리스크’였다. 관심도 온통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북부지방법원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의 판결에 쏠려 있었다. 그러는 사이 ‘경쟁법 리스크’가 또 다른 복병으로 등장했다. 그렇잖아도 EU로서는 상실감이 큰 상황이다. 유럽의 대표주자 핀란드 노키아,

    2012.12.27 00: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애플이 삼성전자를 (자신을 위협하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로 키웠다.” 제임스 올워스 미국 하버드경영대 연구원이 한 블로그에서 이렇게 분석했다고 해 화제인 모양이다. 애플의 아웃소싱이 결국 화를 불렀다는 얘기다. 따라서 애플이 아웃소싱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아예 미국에서 직접 제조하라는 게 이 연구원의 주장이다. 제조 가치를 뒤늦게나마 인식했다는 건 인정할 만하다. 문제는 경쟁기업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로 보는 글의 행간에 숨은 고정관념이다. 미국 기업은 언제나 ‘선도자’이고 미국 밖의 기업은 ‘모방자’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미국 밖에서는 맨날 미국 기업을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이나 하며 베끼는 존재들인 것처럼. 이런 전제라면 모방자가 이기면 모두 잘못된 일이 되고 만다. 디자인이든 제조 노하우든 먼저 침 바른 게 임자라면 이 세상에 경쟁이라는 게 존재할 필요가 있나. ‘특허법’과 ‘반독점법’이 공존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영원한 선도자는 없다선도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되리라는 보장은 과거에도 없었다. ‘팔로어’가 ‘퍼스트 무버’를 제친 케이스는 수도 없다. 8㎜ 비디오카메라에서부터 일화용 기저귀, 전자레인지, 스프레드시트, VCR, 비디오게임 콘솔, 웹브라우저, 워드프로세싱, 워크스테이션 등이 죄다 그렇다. 심지어 애플 IBM의 PC만 해도 선도자는 MITS(Altair)였다. PC 운영체제(OS)를 장악한 마이크로소프트(MS) 앞에도 디지털리서치라는 선도자가 있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지배기업은 팔로어로 성공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승리한 이 수많은 추격자들이 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인가. 오히려 이거야말로 경쟁의 묘미

    2012.12.13 00: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미텔슈탄트 열풍

    ‘중소기업이 일자리를 만든다.’ 중소기업청이 하는 주장이다. 미국도 그런 모양이다. 미국 중기청(SBA)은 그 증거로 500명 이하 소기업이 전체 사업체의 99.7%라고 말한다. 마치 우리 중기청이 전체 사업체의 99.9%가 중소기업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미국 학자들은 이렇게 많은 사업체를 한 범주에 집어 넣는 게 말이 되냐고 한다. 이들은 소기업을 세 그룹, 즉 10명 미만 마이크로 기업, 10~49명의 소기업, 50~499명의 중기업으로 나누고 대기업을 추가해 1992~2008년 새 일자리(net job)를 분석했다.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기존 소기업군(群)에서 4%밖에 안 되는 중기업이 전체 일자리의 30%를 창출했다. 반면 79%인 마이크로 기업의 일자리 창출은 그 절반에 불과했다. 대기업이냐, 소기업이냐의 이분법 탓에 정작 중기업의 존재가 가려졌던 것이다. 이쯤 되면 “중간이 아름답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위기에 강한 중기업 재발견 종업원 500명, 연 매출 5000만유로 미만인 ‘독일의 미텔슈탄트(Mittelstand·중견기업)’ 열풍이 불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독일의 빠른 회복세가 미텔슈탄트의 경쟁력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어서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미국은 ‘중기업 재발견’ 분위기다. 미국에서 연 매출 1000만~10억달러의 중기업은 약 19만7000개다. 고용인원만 4000만명이 넘는다. 이 중 82%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닥친 암흑기에도 살아남았다. 소기업의 57%보다 훨씬 높은 생존율이다. 미국 중기업과 독일 미텔슈탄트는 공통점도 많다. 지역 집적, 평균기업연수 31년, 가족소유 형태다. 어려운 시기에 장기투자도 했고, 높은 글로벌화 성향까지 닮았다. 미텔슈탄트가 독일경제의 ‘히든챔피언’이라면 미

    2012.11.29 00: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독한 기업' 전성시대

    마이크로소프트(MS)는 결국 밀려날 것인가. 아직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MS가 모바일 승부수를 던졌다. 윈도8과 이를 탑재한 서피스(태블릿PC), 윈도폰, 뉴오피스 등이 그것이다. 이번엔 반응도 호의적이다. 애플처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수직 통합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다. 영업이익률이 75%에 달하는 윈도와 오피스를 사수하겠다는 MS의 독기가 느껴진다. 사악하지 말자고? PC시대 혁신을 주도한 MS는 독한 기업의 전형이다. 찰스 아서의 ‘디지털 워(Digital Wars)’에서 그려진 MS는 ‘악의 제국(evil empire)’이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MS에 인수당하거나 아니면 그 근처에는 얼씬도 않는 게 최선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경쟁상대다 싶으면 무자비하게 짓밟는 것으로 유명했다. 넷스케이프가 대표적 케이스다. MS는 이 기업의 숨통까지 끊어놓겠다고 했다. 이 때문에 반독점법 위반으로 고소당했고, 기업이 분할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인터넷 검색시장을 뒤늦게 알아챈 MS는 구글 인수를 시도하기도 했다. 구글의 모토 “사악하지 말자(Don’t be evil)”는 MS처럼 되지 말자는 뜻이었다.애플도 MS 못지않다. MS의 눈치를 살피며 디지털 음악에서 승부수를 찾아낸 애플이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의 성공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수직적 통합 모델의 극적 승리였다. 애플의 독기도 무서울 정도다. 하드웨어로부터 이익을 얻는 애플의 납품업자 쥐어짜기는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라는 공짜 점심으로 제조사들을 끌어들이자 무자비한 특허공세에 들어간 것도 그렇다. HTC는 애플에 항복했고, 삼성전자는 끝까지 맞서는 중이다. 애플의 칼은 구글로 향하고 있다.사악하지 말자던 구글도

    2012.11.15 00: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코리안 패러독스

    미국에서는 한때 ‘생산성 역설(productivity paradox)’이 회자됐었다. 정보기술(IT) 투자가 늘어나는데도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는다고 해서 나온 가설이다. 이 가설은 투자와 생산성 향상 사이의 시차 등 다양한 요인들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한국에서는 정부가 연구·개발 예산을 계속 늘리는 데도 창의적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이른바 ‘코리안 패러독스’로 불린다.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정부조직 개편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일 것 같다.철학없는 정부조직 개편언제부턴가 대선후보들이 조직 개편을 들고 나오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 이익단체를 찾아갈 때마다 정부조직을 큰 선물처럼 내놓는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고, 정보통신 전담부처도 검토하겠다고 공약한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과학기술부를 부총리 부처로 복원시키고, 정보통신부도 부활하겠다고 한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과학기술·정보통신·산업·사회 등 미래를 기획하는 미래기획부를 신설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정부조직은 또 다시 개편의 회오리 속으로 휘말리게 됐다.철학과 원칙, 논리가 있다면 또 모를까 그것도 아니다. 한나라당이 전신인 새누리당이 정권을 잡으면 정권 재창출이다. 같은 당에서 정부조직을 붙였다 뗐다 하는 꼴이다. 일관성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민주당 공약은 정부조직을 5년 전 참여정부 때로 되돌리겠다는 발상이다. 당시 큰 정부라는 비판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자기들만 옳다는 오만함이 느껴진다. 안 후보의 미래기획부는 50년 전 경제기획원 부활을 연상시킨다. 그건 아니라고 하겠

    2012.11.01 00: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노벨과학상 콤플렉스

    ‘NIH(Not-Invented-Here)’ 신드롬. 좋은 의미가 아니다. 남들이 연구하거나 발명한 건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들이 최초, 최고라고 믿는 증후군이다. 선진국에서 나타난다고 ‘선진국 병’으로 불린다. 굳이 병이라고까지 말하는 건 그런 자만심이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어서다. 노벨과학상은 이번에도 우리를 비켜가고 말았다. 미국, 유럽은 아예 제쳐두자. 언제부턴가 우리가 노벨과학상을 수상할 가능성보다 일본이 또 받을지 그게 더 큰 관심사가 돼버렸다. 그 때마다 선진국의 NIH 증후군이 차라리 부럽다는 생각이다. 그 덕분에 독창적 연구가 많이 축적됐을 것이라는 추정 때문이다.'NIT' 신드롬이 문제다NIH와 비교되는 개념이 ‘NIT(Not-Invented-There)’ 신드롬이다. 선진국에서 연구했거나 발명했다는 증거가 없으면 아예 시도할 엄두조차 못내는 증후군이다. 선진국을 언제나 쫓아가려고만 하는 ‘후진국병’인 셈이다. 한국연구재단은 노벨과학상이 지금까지 어느 분야에서 나왔고, 앞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은 분야는 또 어딘지 분석했다. 결론은 가까운 장래에 한국에서 노벨과학상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선행연구나 선진국 동향이 구체적이지 않은 연구계획서로는 연구비를 딸 수 없는 게 우리네 풍토다. 세계에서 처음하는 연구라면 딱 불신받기 십상이다. 정부가 이 정도면 기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지난 50년간 ‘캐치 업(따라잡기)’ 발전전략을 채택했다. 그런 전략 아래서 노벨과학상을 못 받은건 당연한 결과다. 싫더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노벨과학상 같은 건 미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수밖에.하지만 언제

    2012.10.18 00: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구글의 말·말·말…

    구글의 자회사인 모토로라모빌리티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기했던 애플에 대한 특허침해 소송을 취하했다. 외신들은 의외라는 반응이다. 당장 구글과 애플 사이에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게 아니냐는 해석부터 나온다. 구글은 “애플과 별도로 합의한 바 없다”며 “앞으로도 안드로이드 진영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애플 간 미국 내 특허소송에서 애플에 승리를 안겨준 배심원단 평결이 나왔을 때도 그런 루머가 돌았었다. 지난 8월 말에는 구글과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속적인 대화를 나눈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구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게 됐다.구글이 '혁신'을 대표한다고?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또 방한했다. 이번에 와서는 “구글은 특허소송이 아닌 혁신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삼성-애플 특허분쟁을 놓고 애플을 겨냥한 말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말은 멋있게 들려도 왠지 공허한 느낌이다. 경쟁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특허소송’과 ‘혁신’을 무 자르듯 구분 짓는 게 과연 가능한지. 더구나 특허소송을 혁신의 대척점에 놓는 건 특허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특허소송으로 고달픈 안드로이드 진영 제조사들을 다독거릴 목적에서 해 본 소리면 또 모르겠지만.정작 삼성에 패배를 안겨준 미국 배심원단 평결 때 구글의 논평은 냉정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 소송은 안드로이드의 본질과는 무관하다.” 안드로이드 가 아니라 삼성의 특허 침해가 문제였다는 얘기다. 이 말 자체는 맞다. 그러나 그 안드로이드가 특허소송의 출발점이 됐다는 사실을 구글이 모를 리 없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2012.10.04 00: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기업성장법'을 만들라

    노무현 정부의 ‘상생’, 이명박 정부의 ‘동반’에 이어 차기 정부에서는 ‘경제민주화’가 기업정책을 지배할 모양이다. 대기업들은 출자, 지배구조, 심지어 기업 내부 경영에 관한 사항까지 더 강한 정부 개입을 각오해야 할 판이다. 반면 정치권이 대기업의 대척점에 있다고 간주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보호와 혜택 공약은 마구 쏟아진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특혜’와 ‘규제’라는 극명한 대칭성이 더욱 확대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현재 중소기업을 졸업하면 160여개 혜택이 없어지고 190개 규제가 새로 생겨난다는 게 중견기업들의 불만이다. 중소기업기본법상 중소기업이 아니면서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지 않은 중견기업들이 경제민주화에 박수를 쳐야 할지, 반대 궐기를 해야 할지 헷갈려한다. 그러나 중소기업 보호는 더 확대하고, 대기업 규제는 더 강화하는 게 경제민주화라면 중견기업이 설 땅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상생' '동반' '경제민주화' 상생이니 동반이니 하는 개념들이 등장했을 때 일단의 경영·경제학자들은 ‘생태계’ 운운하며 이를 정당화하느라 바빴다. 경제민주화가 등장하자 관변학자들이 또 생태계를 주장한다. 재미있는 건 이들이 한결같이 인용하는 게 실리콘밸리라는 점이다. 실리콘밸리처럼 창조적 혁신 생태계로 가자는 것이다. 특혜와 규제의 생태계로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상상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생태계를 너무 좋아하면 대형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자연 생태계의 진화 원리를 파헤친 찰스 다윈에게 누구보다 감동하고 흥분했던 사람 중에는 카를 마르크스도 들어있다. 그의 눈에는 당시 영국 사회가 온통 정글처

    2012.09.20 00: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4000만원 vs 1조2000억원

    삼성전자-애플 특허소송에서 미국 배심원단이 내린 1조2000억원의 배상금 평결에 누구보다 놀란 건 국내 특허권자들일지 모른다. 서울 중앙지법이 애플에 물린 4000만원과는 비교조차 안되는 액수다. 미국에서 1조원이 넘는 배상 케이스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당장 듀폰과 분쟁 중인 코오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듀폰과 몬산토 간 소송에서도 배상금이 1조원을 초과했다. 센토코와 아보트 간 의약품 분쟁에서는 배상금이 무려 2조원에 근접한 적도 있다. 루슨트와 마이크로소프트, 칼린테크놀로지와 메드트로닉스 간 소송도 배상금이 각각 1조7000억원, 1조5000억원에 달해 화제가 됐다. 유명한 폴라로이드와 코닥 간 분쟁에서도 배상금은 거의 1조원에 달했다. 물론 고액 배상은 항소심에 가서 뒤집어지거나 타협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기업에 치명적일 수도 있다. 게다가 미국에서 특허권자의 승소율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홈 그라운드 배심원 평결에서 80%, 나중에 뒤집어진다 해도 66%라는 통계가 있다.“그래도 미국이 부럽다”특허괴물이 미국에서 주로 출몰하는 이유도 특허권의 강한 보호 때문이다. 최근에는 너무 심하다 싶었던지 변화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미 대법원이 특허권자의 과도한 권리행사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 게 그렇다. 특허권의 미흡한 보호는 발명과 혁신 의욕을 감퇴시켜 지식재산 창출 동기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지만, 특허권의 지나친 보호는 발명의 이용을 저하시키고 때로는 공익에 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 경쟁당국도 특허권 남용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미국 내에서 나오는 애플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이와

    2012.09.06 00: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新 제조업 전쟁'이다

    애플이 미국 역사상 최고의 시가총액을 달성했다. 역사는 이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하드웨어에 대한 소프트웨어의 승리’ ‘제조에 대한 서비스의 승리’라고 평가할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애플은 다른 분야도 아닌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가 세운 기록을 갈아치웠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들이 상장 후 죽을 쑤고 있는 현실과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애플의 정상 등극이다. 스티브 잡스의 말이 또 한번 주목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People who are serious about software should make their own hardware.” 잡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따로 보지 않았다. 제조와 서비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역사는 지금의 애플을 ‘제조의 끝없는 진화의 승리’로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것이 미국 경제에 던지는 의미가 작지 않다. 애플 정상등극은 제조의 진화 1980년대 미국 경제는 지금처럼 어려웠다. 당시 미국은 제조업 경쟁력에서 일본 등에 완전히 밀리는 상황이었다.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제조업은 어차피 넘겨 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강했다. 그때 미국이 대안으로 들고 나온 게 지식재산권과 금융같은 서비스였다. 지식재산권은 소프트웨어 산업을 일으키는 밑거름이 됐다. 1990년대 IT 혁명을 이끌며 미 경제의 구원투수 역할도 했다. 하지만 이른바 닷컴버블이 터지면서 경제는 다시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 다음으로 등장했던 건 금융이었다. 금융은 나홀로 성장으로 질주했다. 그러나 끝은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소프트웨어도, 금융도 결코 제조업의 대안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지금 미국에서는 제조업 논쟁에 불이 붙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2012.08.23 00: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한국판 '특허괴물' 소동

    애플이 ‘특허괴물’의 모습을 드러냈다. 이 회사가 최대주주인 록스타비드코가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한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통신 비표준 특허를 침해했다”며 특허료를 달라고 요구했다. 애플 중심의 컨소시엄이 파산한 통신장비기업 노텔을 인수했을 때 이미 알아봤다. 당시 구글이 제시한 9억달러의 무려 5배인 45억달러를 제시할 만큼 이들은 노텔 특허 6000여건에 집착했다.두 얼굴의 애플삼성-애플 간 본격적 소송국면에서 애플이 디자인을 넘어 통신특허 침해를 제기한게 예사롭지 않다. 더 주목되는건 애플의 변신이다. 제조사와, 제조는 하지 않고 소송만 일삼는 특허괴물 간 구분 자체가 모호해져 버렸다. 기업의 또 다른 진화를 예고하는지도 모르겠다.특허괴물의 국내 기업 공격이 갈수록 거세지는 양상이다.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이 세계 양대 특허괴물 인텔렉추얼벤처스(IV)와 인터디지털에 뜯긴 3세대 이동통신 로열티만 지난 6년간 1조3000억원에 달한다. 특허괴물의 소송에 시달리는 건 애플도 마찬가지였다. 모바일 회사로 탈바꿈했어도 정작 통신 등 특허 포트폴리오는 취약했던 애플이다. 그런 애플이 특허를 보강하더니 특허괴물이라는 또 다른 얼굴로 곧바로 공세에 나선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 가능한 해법이다. 공격을 하든 방어를 하든 제조사 스스로 제조와 특허괴물의 두 얼굴을 갖든가, 아니면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기업들과 연합해 별도 특허괴물을 만들어 대응에 나서는 것이다. 어차피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특허괴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특허괴물에 대한 피해 의식이나 부정적 시각을 아예 떨쳐 버리고 정면대결을 선택하

    2012.08.09 00:00
  •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시밀러(similar)는 시밀러다

    바이오시밀러(단백질 복제약)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인가.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셀트리온이 개발한 항체 바이오시밀러 관절염 치료제 ‘램시마’에 대한 품목 허가를 최종 승인했다. 당장 바이오시밀러 시대 개막이라고 난리다. “항체 바이오시밀러는 유럽연합(EU)이나 일본에서 허가받은 1세대 바이오시밀러에 비해 분자량이 크고 구조가 복잡해 여태껏 어느 제약사도 만들지 못했다”는게 식약청 설명이다. 장밋빛 전망들이 마구 쏟아진다. 전 세계 관절염 시장 장악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세계 제약업계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는 찬사까지 등장했다. 우리나라는 램시마 말고도 7개 업체 8개 바이오시밀러가 개발단계에 있다. 현재까지 의약품 허가를 받은 바이오시밀러는 EU(13개), 일본(2개) 등 15개다. 식약청 승인이 잇따르면 우리가 금방이라도 선두주자가 될 분위기다. 식양청 승인은 곧 성공? 해당 업체가 낙관적 기대를 피력하는 거야 이상할 것도 없다. 그렇더라도 식약청 승인을 바로 시장 성공으로 간주하다시피하는 건 너무 나갔다. 바이오시밀러는 화학적으로 합성된 일반 복제약과 다르다. 특성상 오리지널과 똑같은 바이오 복제약은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시밀러(similar)란 말이 붙는다. 오리지널과 효능이 동일하다는, 이른바 ‘동등성’을 완전히 입증하기도 어려워 허가 이후에도 수용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극단적으로 의사와 환자가 못 믿겠다면 그만이다. 오리지널보다 싸다는 것만으로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 특허로 보호받지 못하고 품질로 경쟁해야 하는 것도 변수다.EU, 일본과는 또 다른 게 미국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제일 많다. 오리지

    2012.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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