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에서 산업과 ESG를 담당하는 송형석 기자입니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2023년 9월 베트남을 국빈 방문해 두 나라의 관계가 최고 단계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됐다고 밝혔다. 베트남전에서 적으로 만난 미국과 베트남이 우방이 됐음을 정식으로 선언한 것이다. 당시 베트남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나라는 한국, 인도, 러시아, 중국 등 4개국뿐이었다.바이든 행정부가 베트남을 챙긴 것은 미국과 사사건건 부딪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을 대신해 ‘세계의 공장’ 역할을 맡을 나라가 필요하다고 판단, 베트남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미국의 지지에 힘입어 베트남은 승승장구했다.지난해 이 나라의 대미 무역흑자는 1235억달러(약 176조원)로 전년보다 18.1% 증가했다. 흑자 규모는 중국과 유럽연합(EU), 멕시코에 이어 4위지만, 증가율에선 단연 1위다. 뉴욕 월가에선 ‘미·중 무역분쟁의 최대 수혜자가 베트남’이라는 평가가 나왔다.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이 중국산 상품의 대미 우회 수출 경로로 활용되고 있다며, 46%에 달하는 초고율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공장을 짓고, 미국에 완제품을 수출하는 베트남식 경제성장 모델이 작동을 멈출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베트남은 부랴부랴 미국산 수입품의 관세 철폐를 선언하고, 미국에 세금 부과를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다.중국이 그 틈을 기민하게 파고들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그제 베트남을 방문해 미국의 관세 압박에 공동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베트남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자국 기업이 중국산 부품과 원자재에
국내 유통회사 최초로 연 매출 40조원을 넘어선 쿠팡은 지배구조가 독특하다. 한국에서 사업 대부분을 영위하지만, 모기업 쿠팡Inc는 미국 델라웨어주에 기반을 둔 외국 기업이다. 쿠팡이 ‘국적’을 포기하면서 얻은 이익은 한둘이 아니다. 비전펀드 등 해외 투자자로부터 4조원 이상의 장기 투자금을 유치하고, 뉴욕거래소에서 기업공개(IPO)에 나서는 과정에서 미국 기업이라는 ‘간판’ 덕을 톡톡히 봤다.적용받는 법체계도 국내 기업과 다르다. 델라웨어주 회사법은 이사회 관련 규정이 느슨하다. 이사를 한 명만 둬도 되고, 감사위원회 설치 의무도 없다. 최소 세 명의 이사진을 갖추고, 사외이사를 포함하는 감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한국과 대조적이다.국내 기업은 언감생심인 대주주 차등의결권까지 허용한다.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은 지분 8.8%만 보유하고 있지만, 73.7%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주당 29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클래스B’ 주식을 김 의장만 보유하고 있어서다.쿠팡의 승승장구 때문일까. 자본과 인재 유치, 규제 회피 등을 목적으로 회사의 근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플립(flip) 기업’이 부쩍 늘었다. 플립은 해외 법인을 설립한 뒤 한국 본사의 주식과 맞교환하는 방식 등으로 회사의 국적을 바꾸는 것을 뜻한다.데이터 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해외에 본사를 둔 한국 스타트업은 186개다. 10년 전인 2014년보다 6배 증가한 수치로, 대부분 미국으로 둥지를 옮겼다. 미미박스(뷰티), 센드버드(AI 챗봇), 스윗테크놀로지스(기업용 협업 도구) 등 중견 스타트업 중에도 본사를 이전한 사례가 적지 않다. 최근엔
“치약부터 비누까지, 보관할 공간만 있다면 뭐든지 사놓으세요.”미국프로농구(NBA) 팀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이자 억만장자 사업가 마크 큐번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지난 2일 SNS 블루스카이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유통업체는 미국산이라도 가격을 왕창 올리고 관세 탓이라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큐번 구단주의 주장이 먹힌 것일까. 미국 소비자들이 사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식료품과 의약품 등 일부 품목에서만 사재기 현상이 나타난 코로나19 때보다 비축하는 제품이 훨씬 다양하다. ‘둠 스펜딩(Doom Spendig)’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충동적 소비로 이어진다는 의미다.이미 월마트 등 미국 대형마트에선 ‘9.99달러 할인’ ‘1+1 판매’와 같은 판촉 행사가 대부분 사라졌다. 가만히 있어도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줄을 잇는 상황에서 마케팅 비용을 들일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가격이 오른 뒤 팔기 위해 전략적으로 재고를 비축하는 업체도 적지 않다.특히 스마트폰, TV 등 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만드는 제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블룸버그는 지난 8일 미국 전역의 애플 매장이 연말 성수기처럼 북적였으며, 손님 대부분이 언제 아이폰 가격이 오를지를 물었다고 보도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애플이 미국에서 최상급 모델인 아이폰 16 프로 맥스의 가격을 최대 350달러(약 52만원)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트럼프 행정부는 어제부터 베트남(46%), 태국(36%) 등에서 제조한 대미 수출품에 30~40%대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보복관세가 더해지면서 관세율이 10
“백악관에서 두 건의 폭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상.” 2013년 4월 23일 오후 1시7분(미국 동부시간) AP통신 트위터(현재 X) 계정에 한 줄의 속보가 떴다. 뉴욕증시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3분 후인 1시10분. 다우존스산업지수는 147포인트(약 1%) 급락했다.얼마 있지 않아 “아무 일도 없다”는 백악관 성명이 나왔다. AP통신도 “트위터 계정이 해킹당해 벌어진 일”이라고 다급히 해명했다. 1시14분이 되자 다우지수는 126포인트 반등하며 제자리를 찾았다. 그 7분간 뉴욕증시 시가총액은 1360억달러(약 200조3000억원)나 출렁거렸다.그제 미국에서 벌어진 가짜 뉴스 소동도 2013년과 판박이다. 오전 10시11분 ‘해머 캐피털’이란 X 계정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제외한 나라의 관세와 관련해 ‘90일 일시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는 글이 뜬 것이 시작이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의 인터뷰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었다. 생방송 중이던 CNBC 앵커가 뉴욕증시가 급반등한 이유를 설명하며 해당 게시글을 소개했고, 로이터통신은 이 내용을 뉴스라고 착각해 속보로 보도했다. 사태가 진정된 것은 가짜 뉴스라는 백악관 해명이 나온 10시41분이다. 30분 해프닝에 이날 다우지수는 2595포인트(약 7%) 오르내리며 하루 변동폭 신기록을 썼다.SNS를 통해 유포된 가짜 뉴스가 증시를 뒤흔드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종목 단위에선 하루가 멀다고 사고가 터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기 세력이 의도적으로 거짓 정보를 유포하는 일도 있지만, 해킹이나 오해에서 비롯한 가짜 뉴스도 적지 않다. 최근엔 인공지능(AI) 기술로 만든 챗봇이 사람을 가장해 SN
터치 몇 번으로 주문과 결제를 끝내는 키오스크. 요즘 이 기기는 동네 매장의 필수품이다. 아르바이트 직원 수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매장 주인들이 앞다퉈 키오스크를 도입한 결과다. 국내에 보급된 기기는 2023년 기준으로 53만6602대에 이른다.문제는 키오스크 사용이 쉽지 않은 장애인들이다. 정부는 장애인의 매장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에 배리어프리(barrier-free) 키오스크 설치를 의무화하는 조항을 넣었다. 키오스크 앞에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을 마련하고 기기에 점자블록과 스크린 높이 조절 장치 등도 갖추라는 게 골자다. 계도 기간은 내년 1월까지다. 그 이후에도 배리어프리 제품을 설치하지 않은 사업주에겐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찬성] 사회적 약자 배려는 국가의 의무…IT 인프라 누구나 쉽게 접근해야키오스크 주문은 일반인에게도 쉽지 않다. 수십 개에 달하는 상품을 살피는 것은 기본. 주문 수량과 결제 수단, 포인트 적립 방법 등 선택해야 할 항목이 한둘이 아니다. 화면을 잘못 건드리면 주문이 초기화되기도 한다. 기계를 다루는 데 자신이 없는 중장년 소비자가 “점원이 있는 매장만 골라 다닌다”라고 토로하는 배경이다.장애인에겐 키오스크 장벽이 훨씬 더 높다.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 화면을 터치하기가 쉽지 않다. 터치스크린의 높이가 성인을 기준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은 아예 키오스크 매장을 이용할 엄두를 못 낸다. 음성이나 점자로 메뉴를 안내하는 키오스크가 흔치 않아서다.정부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음성출력, 안면 인식, 점자 기능 등이 내장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의무
일본은 ‘팩스의 나라’로 불린다. 사회 전반의 디지털화가 더딘 것을 비꼬는 말이지만, 실제로도 팩스를 많이 쓴다. 2023년 기준 팩스를 보유한 가구 비중이 30%에 달한다. 이메일 대신 팩스로 서류를 보내줄 것을 요구하는 공공기관과 회사가 여전히 많다는 얘기다. 팩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식당에서 신용카드를 꺼낼 때마다 조마조마하다는 사람이 적잖다.‘아날로그 일본’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시기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2020년이다. 각국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백신 접종 증명을 요구했는데, 선진국 중 유일하게 자국민에게 종이로 된 증명서를 나눠준 나라가 일본이다. 코로나19 극복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다른 나라가 1주일 이내에 끝낸 재난지원금 지급에만 수개월이 걸렸다. 지원금 신청과 통보 등의 업무를 스마트폰 앱이 아니라 우편으로 처리한 탓이었다. 당시 일본에선 지원금을 나눠주는 데 1500억엔(약 1조5000억원)의 예산이 낭비됐다는 분석이 나왔다.하지만 챗GPT 충격 때문일까. 최근 일본은 차세대 디지털 기술인 인공지능(AI) 도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일본정보시스템·유저협회(JUAS)에 따르면 2025년 일본 기업의 생성형 AI 도입률은 41.2%다. AX(AI 전환) 속도만 따지면 한국보다 한 수 위다. AI 기업 육성에도 적극적이다. 일본 정부는 자국에 법인을 둔 AI 기업에 법인세 30% 감면 혜택을 주고 있다. 데이터센터를 지으면 450억엔(약 4500억원)에 달하는 보조금도 지급한다. 구글과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아시아 시장을 전담하는 법인을 일본에 설립하게 된 배경이다.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데도 한국은 제자리걸음이다. AI
영남권에서 며칠째 이어지는 산불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속출하면서 각지에서 구호 성금이 밀려들고 있다. 주요 기업은 물론 개인도 기부행렬에 동참하는 모양새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 국민이 성금 모금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건 위기가 닥쳤을 때 한마음으로 돕는 한국 특유의 미덕이다.달라진 것은 성금을 모으는 방식이다. 최근엔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주도하는 ‘디지털 기부’가 대세가 됐다. 23일부터 시작된 영남권 산불 관련 기부 캠페인의 경우 두 플랫폼을 통한 참여 인원만 100만 명이 넘는다. 어제 기준으로 이들이 낸 성금 총액은 주요 대기업 기부 총액과 엇비슷한 120억여원으로 불었다. 모금 시작 4일 만에 참여 인원과 모금액 등에서 플랫폼 기부 캠페인 신기록을 새로 썼다.디지털 기부 문화의 일등공신은 SNS다. 한 이용자가 자신의 SNS에 기부에 참여하게 된 사연과 플랫폼이 발급한 디지털 인증서를 올려 분위기를 띄우면, 그 밑으로 ‘동참하겠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는 식으로 캠페인이 확산한다. 연예인 등 유명인이 움직이면 파급력이 배가 된다. 팬클럽 회원을 자처하는 이용자들이 일제히 참여 의사를 밝힌다. BTS의 팬클럽 아미(ARMY)처럼 아예 자체 기부 페이지를 운영하는 곳도 있다.성금 모금 과정이 투명하고, 선택지가 많다는 점도 플랫폼을 통한 기부가 인기를 얻은 요인으로 꼽힌다. 사용자는 납부할 기관과 성금의 사용처를 직접 고를 수 있다. 산불 피해 주민을 돕고 싶은 이용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소방관 보호 장비 지원을 원하는 이용자는 전국재해구호협회 채널을 클릭하면 된다. 네이버 기준으로 산불 피해를 돕기 위한 기부 채널은 17개에 이른다.
미국 뉴욕의 명물인 노란색 택시 ‘옐로 캡’은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이다. 수많은 미국 이민자가 옐로 캡 기사를 꿈꿨다. 면허가 1만3000여 개로 제한돼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됐기 때문이다.옐로 캡 면허인 메달리온(medalion)이 가장 비쌌던 때는 2014년이다. 집 한 채 값인 100만달러(약 14억8800만원)는 줘야 면허를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우버, 리프트 등 승차 공유 서비스가 대중화하자 메달리온의 인기가 뚝 떨어졌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엔 고점 가격 대비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7만9000달러(약 1억1400만원)에 면허가 거래되기도 했다. 현재 시세는 13만달러(약 1억8800만원) 안팎이다.승차 공유 서비스가 택시를 대체하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호출의 편의성, 가격 등 여러 측면에서 승차 공유 플랫폼이 택시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각국 교통당국도 승차 공유 플랫폼을 선호한다. 택시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승객이 많아지면 영업을 목적으로 자기 차를 끌고 나오는 운전자도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구조다. 그러나 승차 공유 서비스를 허용하지 않는 한국에선 여전히 택시가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2020년 모빌리티 스타트업 타다가 승합차와 운전기사를 묶어서 빌려주는 방법으로 법망 우회에 나섰지만, 택시 기사들의 집단 반발로 결국 사업을 포기했다.국내 개인택시 면허 가격은 지금도 매년 조금씩 오르고 있다. 정년 후 두 번째 직업으로 개인택시 기사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아진 영향이다. 서울 수도권 기준 면허 가격은 1억2000만원 선이다. 65세가 넘은 고령자들이 시장에 집중적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지난해만 해도 1621명의 고령
지난 2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논란에 휩싸였다. 영화 ‘브루탈리스트’에 출연하면서 인공지능(AI) 기술로 발성을 교정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영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후 미국으로 이주한 헝가리 출신 유대인 건축가를 조명했다. AI 음성 기술을 사용해 브로디와 공동 출연자 펠리시티 존스의 헝가리 악센트를 교정했다. 작품 후반부에 나오는 건축 도면 제작에도 AI를 활용했다.AI의 도움을 받은 배우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주는 게 적절한지를 놓고 영화 애호가와 평론가들의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이제 대세가 된 만큼 AI 기술을 활용한 작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과 예술성을 평가하는 시상 행사에선 AI 영화를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찬성] 인공지능은 영화 발전시킬 신기술…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시도 되레 늘어‘브루탈리스트’와 관련한 AI 사용 적절성 논란은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헝가리어 악센트 등 영화의 극히 일부분에만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연기와 영어 대사 등은 온전히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몫이었다.신기술을 영화에 접목하는 시도가 처음 이뤄진 것도 아니다. ‘배트맨’, ‘스파이더맨’ 시리즈 같은 영웅물, ‘마션’과 ‘인터스텔라’로 대표되는 공상과학물엔 컴퓨터그래픽(CG)이 난무한다. 하지만 CG가 영화제 수상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관객과 평단이 CG를 영화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AI는 영화 제작의 미래를 바꿀 기술이다. 전통적 촬영과 편집 기술로는 만들 수 없거나, 비용 부담 때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이 29조2000억원으로 4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소식이다. 자녀들이 경쟁에서 한 발이라도 앞섰으면 하는 부모들의 마음이 사교육 열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실 사교육을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다.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실력을 높일 수 있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어서다. 획일적인 공교육으론 부족해 시장에서 더 나은 서비스를 구매하겠다는 학생과 학부모를 말릴 방법도 마땅치 않다.문제는 사교육 시장의 표적 연령대가 과도할 정도로 어려졌다는 데 있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선 ‘4세 고시’ ‘7세 고시’ ‘초등 의대반’이란 말이 보통명사로 쓰인다. 세 살 이전에 영어유치원 입학을 준비하고, 초등학교에선 의대를 겨냥한 수학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찍 배운 아이가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선행불패’가 학원들이 내세우는 공통된 논리다.하지만 조기 선행교육이 사교육의 장점인 ‘효율’을 항상 보장하지 않는다. 7세 때 한두 달이면 뗄 구구단을 3세 때 가르치면 똑똑한 아이라도 1년 이상 걸리는 게 보통이다. 학습에 필요한 인지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아서다. 학부모들은 배운 게 있으니 조금이라도 나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마거릿 버치날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 연구팀은 조기교육을 받은 만 3~5세 유아 4667명을 추적 분석한 연구를 지난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만 9세까지는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가 올라가지만, 그 이후엔 조기교육의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이 골자다. 6학년(만 11세)이 되자 조기교육을 받은 모집단에서 수학과 쓰기 능력이 뚝 떨어지거나, 반사회
“미래의 공장엔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만 일할 것이다. 개는 사람이 기계를 못 만지게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사람이 왜 필요하냐고? 개에게 먹이를 줘야 하니까.” 리더십 분야 석학인 워런 베니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가 농담처럼 던진 말이다. 하지만 로봇 전문가들은 이미 이 말이 절반쯤 현실화했다고 설명한다.몇 년 전만 해도 공장 완전 자동화는 먼 얘기였다. 여러 공정에 산업용 로봇이 쓰이기는 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한두 가지 일만 할 수 있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과업이 달라지면 아예 새 로봇을 들여와야 했다.사람 같은 로봇인 휴머노이드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 로봇은 손과 발은 물론 손가락까지 갖춰 사람이 하는 업무 대부분을 할 수 있다. 최근 등장한 제품의 성능은 입이 벌어지는 수준이다. 로봇의 전통적 강점인 힘과 스피드에, 달걀을 깨트리지 않고 다루는 정교함이 더해졌다.휴머노이드 로봇 가격은 소형 자동차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테슬라는 2023년 12월 다기능 휴머노이드 ‘옵티머스 2세대’를 공개하며 가격이 2만달러(약 2910만원)보다 저렴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유니트리는 지난해 대량 생산용 휴머노이드 가격으로 1만6000달러(약 2330만원)를 제시했다. 한국에선 근로자 한 명을 1년간 고용할 예산으로 로봇 두 대를 장만할 수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상용근로자 평균 연봉은 5053만원이다.휴식도 필요 없다. 사람 직원으로 공장을 24시간 돌리려면 최소 3개 조(8시간씩 근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휴머노이드는 1개 조로 충분하다. 로봇의 업무 효율이 사람과 동일하고 내구연한이 1년이라고 보수적으로
맞벌이 부부에게 3월은 ‘잔인한 달’로 통한다. 자녀들이 새 학년을 맞아 육아 부담이 부쩍 늘기 때문이다. 우선 몸이 바빠진다. 학교와 학원에서 수시로 부모를 호출하고, 제출해야 할 서류도 많다. 선생님과의 면담 일정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부부가 교대로 연차를 써도 일정을 쫓아가기 힘들다.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새로운 환경에 노출된 자녀들이 부쩍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할 때 항상 없다”는 아이들의 푸념은 부모의 가슴을 찌르는 비수가 된다.결국 학부모, 특히 엄마가 물러선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0~9세 자녀를 둔 직장 여성의 10%에 해당하는 4만5000명 안팎이 매년 퇴사(직장의료보험 해지)를 결정한다. 같은 조건의 남성 직장인 퇴사율의 두 배 수준이다. 직장 여성 퇴사가 집중되는 시기는 3월 신학기를 전후한 시점이다.한국은 지난해 기준으로 합계출산율이 0.75명에 불과한 나라다. 일과 육아의 병행이 쉽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출산을 포기하는 가정이 많아진 것이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 맞벌이 부부의 육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만 12세 이하 아동이 있는 가정에 돌보미가 찾아가 자녀를 돌봐주는 여성가족부의 ‘아이돌봄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수요에 비해 돌보미 공급이 턱없이 달린다는 데 있다. 이 서비스 대기 기간은 2020년 8.3일, 2021년 19.0일, 2022년 27.8일, 2023년 33.0일로 매년 늘고 있다. 인구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이 기관은 올해 필요한 예산 중 2%밖에 확보하지 못해 아파트 엘리베이터, 은행 등에 내보내던 출산 장려 광고까지 중단했다.출산율
1996년 미국 라이프지에 나이키 축구공을 한땀 한땀 바느질하는 한 파키스탄 소년의 사진이 실렸다. 소년의 나이는 12세, 그의 시급은 6센트에 불과했다. 이 보도 이후 나이키는 미성년자 노동 착취를 일삼는 악덕 기업으로 낙인찍혔고, 세계적인 불매운동에 시달려야 했다.20여 년 후인 2018년 나이키는 또 한 번의 보이콧을 겪는다. 백인 경찰이 흑인 용의자를 과잉 진압해 사망한 사건에 항의하며 국민의례를 거부한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을 광고모델로 기용한 것이 문제가 됐다. 보수 성향 소비자들은 나이키의 행보가 국민 갈등을 부추긴다며 이 회사가 만든 신발을 모아 불태웠다. 당시 1기 행정부를 이끌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끔찍한 메시지”라며 불매운동을 부추겼다.나이키의 사례는 보이콧 패턴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대다수 소비자가 공감할 만한 흠결이 드러났을 때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하지만 최근엔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보이콧의 타깃이 된다. 국내에도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다. 2022년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SNS에 ‘멸공’이라는 단어를 올린 후, 진보 성향 소비자들이 신세계 계열사를 겨냥해 불매운동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도마 위에 오른 기업은 테슬라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정부효율부(DOGE) 수장이 된 영향이다. 트럼프가 탐탁지 않은 진보 성향 소비자는 물론 DOGE 출범으로 불이익을 당하게 된 공무원들도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번 보이콧은 거칠기 짝이 없다. SNS가 아니라 현실 공간에서도 ‘무력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일 뉴욕의
미국엔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같은 한국 프랜차이즈 빵집이 즐비하다. ‘K베이커리’ 열풍이 빠르게 확산한 영향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미국에서 운영 중인 파리바게뜨 매장은 188곳이다. 뚜레쥬르 역시 138개의 매장을 두고 있다. 두 브랜드 모두 매년 30~40곳씩 점포를 늘려왔다. 다양한 상품 구색과 세련된 인테리어가 한국 프랜차이즈 빵집의 강점으로 통한다.‘K베이커리 속도전’이 가능했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부자 영주권’으로 통하는 투자이민 비자 EB-5(Employment-Based Immigration-5)가 한국인 사업자를 모으는 데 혁혁한 기여를 했다. 미국은 자국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EB-5 비자 제도를 시행 중이다. 90만달러(약 13억원) 이상을 투자해 1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면 본인과 가족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한국 투자자는 이 제도를 지렛대 삼아 국내 프랜차이즈 업체와 미국 시장에 동반 진출한 셈이다. 투자자들은 자금을 대고, 업체는 행정 지원과 컨설팅을 담당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미국에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는 권리와 미래 소득원을 동시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앞으론 미국 ‘빵집 이민’이 희귀해질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25일(현지시간) EB-5를 폐지하고 500만달러(약 71억원)에 영주권을 주는 ‘골드카드(Gold Card)’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영주권 가격으로 제시한 500만달러는 한국 0.1% 자산가의 순자산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EB-5 제도에 대해 “싼값으로 그린카드(영주권)를 갖는 방법으로 난센스이자 사기”라고 말했다.허들이 높아진 것은 투자이민만이
의인화한 동물이 등장하는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 ‘주토피아’. 나무늘보 플래시는 미국 DMV(자동차관리국)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다. 주인공 일행이 범죄 차량 조회를 위해 DMV를 방문하자, 답답할 정도로 느린 속도로 업무를 처리한다. 서류를 손에 쥐고 나니 이미 해가 졌을 정도다. 플래시는 업무 처리가 느린 미국 공무원을 비꼬기 위해 만든 캐릭터다.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플래시 같은 공무원을 솎아내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정부효율부(DOGE)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3일(현지시간) 200만 명이 넘는 공무원에게 ‘당신은 지난주 무엇을 했습니까’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발송했다. 한 주간의 성과를 5개 항목으로 정리해 제출하라는 게 골자다. 머스크 CEO는 SNS를 통해 “이메일에 응답하지 않으면 사직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혔다.불편한 이메일을 받은 미국의 주요 부처는 거세게 반발했다. 캐시 파텔 연방수사국(FBI) 국장 등 일부 기관 수장은 직원들에게 이메일에 절대 답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지난 1월 20일 행정명령을 통해 DOGE를 설립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공무원이 지나치게 많으며, 이들 중 상당수를 해고해도 된다고 보고 있다.공무원에 대한 시각이 곱지 않은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며 매년 공공부문을 키워 온 탓이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공무원은 122만1746명이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이어진 문재인 정부 시절에만 공무원 정원이 13만 명 늘었다.국민의 인식과는 별개로 국내에서 공무원은 인기 직종이다. 정년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보장된
정부와 정치권이 정신질환으로 교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교원에게 강제 휴직을 명령할 수 있는, 이른바 ‘하늘이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신질환을 앓아온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을 살해한 ‘고(故) 김하늘 양 피살 사건’의 재발을 막겠다는 취지다. 교사의 정신 건강 검사를 의무화하고 필요에 따라 강제로 업무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신 병력이 있는 교사가 진단서만으로 휴직과 복직을 반복할 수 없도록, 위원회의 심사를 받게 하는 내용도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는 교육감들의 의견과 당정 협의 결과 등을 바탕으로 이른 시일 내에 종합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찬성] 정신 병력 있는 교사 분리할 장치 필요…美·日은 정신질환 평가 프로그램 운영고 김하늘 양 피살 사건은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다. 40대인 가해 교사는 경찰에 “수업에서 배제돼 짜증이 났다” “어떤 아이든 살해하고 함께 죽으려 했다”고 진술했다. 흉악범죄자와 비슷한 정신 상태인 가해자가 오랜 기간 교육 현장에 머물렀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이 교사는 지난해 학생들의 등하교 안전을 책임지는 ‘새싹지킴이’ 업무까지 담당했다.우울증을 앓던 이 교사는 작년 12월 6일 ‘6개월 질병 휴직’에 들어갔지만 20여 일 만에 학교로 돌아왔다. “6개월 치료가 필요하다”던 병원 진단서가 불과 20여 일 만에 “일상생활 지장 없음”으로 바뀌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대구나 해당 교사는 더구나 문제의 교사는 동료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한 일로 살인 범행 당일 오전 교육 당국의 현장 조사까지 받았다.이
철제 무기, 대포, 총, 핵폭탄…. 역사 속에서 전쟁의 판도를 180도 바꿔 놓은 기술들이다. 선점한 국가나 세력이 그 시대의 지배자로 군림했다.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게임 체인저’로 불릴 만한 전쟁 기술이 하나 더 등장했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가 보급한 위성통신망 ‘스타링크’다.현대전에서 통신 시설은 폭격 1순위다. 적국의 작전 체계를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어서다. 통신망에 문제가 생기면 군사용 드론, 무인 항공기 등 실시간 위치 정보가 필요한 무기는 무용지물이 된다. 러시아도 이런 이유로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통신 시설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이때 스타링크가 깜짝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우크라이나는 스페이스X의 도움으로 통신을 되살렸고, 첨단 무기를 운용하며 러시아와 교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스타링크는 지상 300~1500㎞ 저궤도를 도는 위성을 기반으로 구동되는 통신망으로 2020년부터 구축되기 시작됐다. 초고속인터넷 수준의 속도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대신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좁다. 머스크 CEO는 이 문제를 위성 수천 기를 동시에 띄우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2027년까지 1만2000기의 위성을 띄우는 게 스페이스X의 목표다.향후 저궤도 위성통신망은 전쟁의 핵심 인프라가 될 전망이다. 지상 통신망이 파괴된 상황에서 전자전을 이어가려면 위성을 활용한 통신이 필수적이어서다. 최근 중국이 ‘궈왕(國網)’으로 불리는 중국판 스타링크 구축에 속도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스타링크는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진행되는 지금도 ‘미국의 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 지원의 대가
국내 금 가격이 국제 거래가를 20% 가까이 웃도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시장에서나 목격된 ‘김치 프리미엄’이 금 시장으로 옮겨간 양상이다.지난 13일 KRX금시장에서 그램(g)당 금 현물 가격은 런던귀금속거래소(LBMA) 가격보다 19.47% 비쌌다. 2014년 한국거래소의 KRX금시장이 생긴 뒤 가장 큰 격차다. 괴리율이 10%를 넘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 5% 안팎의 김치 프리미엄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한국 투자자는 해외에서 싼 가격에 비트코인을 사서 국내에 비싸게 파는 차익거래로 수익을 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가 국경을 넘는 자본 이동을 엄격히 통제해서다. 가상자산을 주식처럼 공매도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코인을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거래는 어렵다 보니 자연스럽게 웃돈이 붙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금은 사정이 다르다. 세계 어디서든 가치가 통용되는 자산으로, 괴리율이 높아지는 일이 드물다. KRX금시장의 현물을 대체하는 괴리율이 없는 상품도 많다. 국내에 상장된 상장지수펀드(ETF)만 봐도 가격 변동폭이 두 배인 ‘레버리지’, 하락하면 이익을 얻는 ‘인버스’ 등 금 관련 상품이 종류별로 마련돼 있다. 2014년부터 지난달까지 한국과 국제 금 가격 차이가 하루 평균 0.46%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괴리율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치솟은 것은 금값 상승에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일거에 몰린 영향으로밖에는 설명하기 어렵다. ‘지금 못 사면 가격이 더 오른다’는 불안심리가 ‘묻지마 매수’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주식시장 부진이 ‘금값 발작’으로 이어진 것이
종이로 만든 빨대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이 한창이던 2020년대 초반 스타벅스가 선보인 히트상품이다. 당시 케빈 존슨 최고경영자(CEO)는 2021년 연봉으로 전년보다 40% 가까이 오른 2040만달러(약 249억원)를 수령했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 빨대로 대체, 메탄가스 배출량을 줄여 환경보호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국내 외식업계에 종이 빨대 바람이 분 것도 이 무렵이다. 환경부는 2022년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규제하는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구상은 제도 시행 직전인 2023년 11월 백지화됐다. 빨대가 흐물흐물해지는 것을 막아주는 코팅 물질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영향이었다. 종이 빨대가 제조 과정에서 오히려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이후 종이 빨대는 ‘그린 워싱(green washing·위장 환경주의)’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현재 국내에선 스타벅스를 제외하면 종이 빨대를 쓰는 카페 매장이 거의 없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종이 빨대를 퇴출하는 것을 골자로 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는 소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플라스틱으로의 회귀’(back to plastic)를 주창하며 ESG를 강조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뒤엎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취임 직후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데 이어 두 번째로 나온 반(反) ESG 행보다. 플라스틱 빨대는 트럼프의 선거 캠페인 도구이기도 하다. 바이든과 붙은 재선 선거 운동 때 빨간색 플라스틱 빨대에 트럼프(TRUMP) 로고를 새겨 10개 묶음을 15달러에 팔아 1주일 만에 46만달러를 모금했다.트럼프 대통령의 영향으로 ESG 국제 공조가 흔들리고 있
세계 최대 명품 그룹인 프랑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유럽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되찾았다. 이 회사의 지난 17일 종가 기준 시총은 3453억유로(약 517조원). 다이어트약으로 유명한 덴마크 노보노디스크(3445억유로)를 14개월 만에 넘어섰다. 까르띠에 브랜드로 유명한 스위스 리치몬트도 15일 4분기 깜짝 실적을 발표하며 주가가 16.3% 급등했다. 구찌, 입생로랑 등을 보유한 프랑스 케링 역시 분위기가 좋기는 마찬가지다. 14일부터 3거래일 동안 몸값이 10%가량 뛰었다.지난해 명품 기업들은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최대 매출처인 중국이 비틀거렸기 때문이다. 명품 치장을 좋아하는 중국인이지만 자국 경기 침체와 부동산 위기 앞에선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시장 분위기가 바뀐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때문이다. 트럼프 2기 정부의 정책 방향이 달러 강세를 야기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면서 명품 기업 재평가가 이뤄졌다. 현재 유로화 등 주요 6개 권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110 수준이다. 100을 밑돌던 지난해 9월보다 달러의 상대 가치가 10% 넘게 뛰었다. 미국 소비자들이 환율 효과에 힘입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명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이미 시장에선 ‘미국발 훈풍’이 가시화하는 모양새다. 미국 씨티그룹이 지난해 12월 신용카드 지출을 분석한 결과 명품 분야 사용액이 2년 만에 처음으로 ‘플러스’로 전환했다. 2022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달러가 강세로 돌아섰을 때도 미국에서 명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루이비통과 크리스찬 디올, 불가리, 티파니 등 75개 브랜드를 보유한 명
2022년 취임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재임 기간은 44일이다. 역대 영국 총리 중 최단 기록이다. 야심만만한 40대 총리를 끌어내린 건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으로 불리는 공매도 세력이었다.채권 자경단은 1984년 미국 경제학자 에드 야데니가 처음 사용한 용어다. 국채 금리를 급등(채권 가치 하락)시켜 시장을 흔드는 세력을 말한다. 정부의 정책 방향에 항의하기 위해 행동을 취한다는 이유로 ‘자경단’이란 이름이 붙었다. 트러스 총리가 이들의 표적이 된 것은 경기 부양을 위해 꺼내 든 감세안 때문이다. 채권 자경단은 영국 정부가 줄어든 수입을 메우기 위해 채권 공급을 늘릴 것으로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영국 국채를 투매했다. 트러스 총리는 중앙은행을 동원해 채권을 매입했지만 급격한 국채 금리 상승과 파운드화 가치 급락을 막아내지 못했다.채권 자경단이 정부를 뒤흔든 사례는 그 외에도 여럿이다. 2010년부터 2012년 남유럽 경제위기 때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국채를 투매해 이 나라들의 재정을 한층 더 악화시켰다. 2022년 말부터 일본 채권 금리가 폭등한 것도 채권 자경단의 개입 때문이다.이들의 새로운 먹잇감은 미국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외신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채권 자경단 때문에 곤욕을 치를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법인세율을 15%까지 낮추는 등 기업과 개인의 세금을 대대적으로 감면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이미 ‘대대적인 감세→세수 부족→국채 공급 증가→금리 급등’ 공식이 작동 중이다. 미국 국채 10년 만기 금리는 지난 13일 기준으로 연 4.8%까지 치솟았다. 최근 14개월 사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외신들은
세계에서 몸값이 가장 비싼 방위산업 기업은 실리콘밸리 기반 빅데이터 회사인 팰런티어다.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1801억달러(약 266조원). 전통의 방산 기업인 록히드마틴(1159억달러)과 보잉(1352억달러)의 시총을 훌쩍 뛰어넘는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회사의 덩치다. 팰런티어 직원은 지난해 말 기준 3735명이다. 50개국에서 11만 명의 직원이 일하는 록히드마틴의 3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다윗이 골리앗을 압도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인공지능 시대 신흥강자들팰런티어의 무기는 전투기와 탱크가 아니라 데이터다. 미국 국방성과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등이 이 회사의 데이터 솔루션을 기반으로 전쟁이나 수사 전략을 마련한다. 팰런티어의 성공 사례는 방산 비즈니스의 중심이 하드웨어에서 인공지능(AI)과 데이터로 옮겨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 정부효율부(DOGE) 수장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록히드마틴의 스텔스 전투기 F-35 전투기를 “바보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한 점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금융산업에선 달러와 1 대 1로 가치가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 업체 테더가 업계를 놀라게 했다. 직원 수가 채 200명도 되지 않는 이 작은 회사는 지난 3분기 25억달러의 순이익을 냈다. 직원 2만 명을 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16억3100만달러)을 뛰어넘는 수익성이다.AI 혁명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빅테크 시장도 상황이 똑같다. 생성형 AI 시장의 ‘맹주’로 챗GPT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오픈AI는 작은 연구 조직에서 출발한 기업이다. 2위를 달리고 있는 기업 역시 여전히 스타트업 신분인 앤스로픽이다. 벤처캐피털 멘로벤처스의 지난달 집계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가 모처럼 반전 드라마를 썼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세운 창업기업 큐어버스가 지난달 이탈리아 제약사 안젤리니파마와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계약 규모가 3억7000만달러(약 5000억원)로, 출연연 기술수출 신기록을 경신했다. 큐어버스가 만든 신약 ‘CV-01’은 먹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다. 대학 동문의 10년 대계KIST의 기술 수출이 화제가 된 것은 출연연의 기술이 기업으로 흘러 들어가거나 해외로 수출되는 일 자체가 흔치 않아서다. 국민이 다 아는 성공 사례를 찾으려면 1996년 한국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통신망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CV-01도 기술 이전과 상용화, 수출에 이르는 과정이 험난했다. KIST는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했다. 기술 출자회사 큐어버스가 생겨나 CV-01 기술을 이전한 것은 이듬해인 2022년이다.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낸 것부터 따지면 성과가 나오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바이오는 출연 연구소의 기술 상용화가 녹록지 않다. 후보물질이 제대로 기능하는지를 다년간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을 개발한 연구소와 기술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소통하고 교류하지 않으면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기에 십상이다.그런 점에서 큐어버스는 운이 좋았다. 해당 연구를 총괄한 박기덕 KIST 박사와 사업을 진행한 조성진 큐어버스 대표는 연세대 생명공학과 동문으로 석사·박사 과정을 함께 밟은 친구 사이다. KIST의 기술이 큐어버스로 이전된 뒤에도 두 사람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후속 연구를 같이했다. 이런 과정이 임상 1상까지 이어지면서 기술 수출이라는 성과
‘IT(정보기술) 강국’은 한국을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 하나다. 빅테크가 글로벌 인터넷 서비스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한국 시장만은 예외여서 생긴 말이다. ‘검색’의 네이버와 ‘메신저’의 카카오가 ‘좌청룡 우백호’ 역할을 해왔다. 점유율에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두 서비스는 10년 넘게 국내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저물어 가는 K플랫폼 전성시대하지만 최근 2~3년 새 네카오 철옹성 곳곳에서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특히 국내 사용자가 플랫폼에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를 보여주는 체류시간 지표가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국내 사용자가 지난 9월 한 달간 네이버에 머문 시간은 평균 454시간이었다. 2022년 같은 기간 512시간, 지난해 9월 483시간 등과 비교하면 감소세가 뚜렷하다. 카카오톡도 2년 새 714시간에서 676시간으로 월평균 체류 시간이 급감했다.‘시간 도둑’의 정체는 글로벌 빅테크다. 특히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 네이버와 카카오의 빈자리를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지난 2년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의 월평균 체류 시간은 각각 2042시간에서 2433시간, 576시간에서 851시간으로 급증했다.과거 검색엔진은 ‘포털(관문) 사이트’로 불렸다.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든 한 번은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요즘은 검색엔진이 포털로 기능하지 않는다. MZ세대 이용자는 텍스트 검색엔진 대신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상품 및 여행 상품을 구매할 때도 마찬가지다. 검색엔진이란 중간 징검다리 없이 인스타그램에서 예약 사이트로 바로 움직이는 사용자가 급증하는 추세다.메신저 시장도 녹록지 않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시절 한국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나는 굶어도 자식들은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열이 빠른 인적자원 축적으로 이어졌고, 그 덕에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게 오바마 연설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그의 발언은 미국 교육 시스템을 질타하기 위한 것이었고, 과장과 오해도 섞여 있다. 하지만 한국의 고도성장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 중 하나가 교육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교육열을 발휘하는 주체를 국가와 기업으로 바꾸면 연구개발(R&D)이라는 대한민국의 성장 키워드가 나온다. R&D는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연구하는 활동이다. 오랜 기간 끈기 있게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 투입한 자본 중 얼마를 어느 시점에 회수할지 예상하기 힘들다는 점 등에서 교육과 일맥상통한다. GDP 5% R&D에 쏟는 대한민국한국은 정부, 기업 할 것 없이 R&D에 진심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율은 5.2%(2022년 기준)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다. 이 비율이 3%대에 머물러 있는 미국, 일본을 훌쩍 넘어선다. R&D에 쏟아붓는 절대 금액도 120조원대로 세계 6위를 달리고 있다. 순수 정부 예산만 가려내도 연간 30조원의 덩치를 자랑한다. 한국의 정부 R&D 예산은 2000년부터 2021년까지 640% 증가했다.한국에서 미래를 위한 기술 투자는 신념의 영역이다. 산업 기반이 없던 나라가 조선과 자동차,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서 세계를 주름잡는 것이 부단한 R&D 덕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주요 기업에도 기술 확보를 위해 고군분투한 일화들이 전설처럼 내려온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그룹 부회장으로 일하던 1980년대, 주말마
여러 물품을 한꺼번에 묶어 판매하는 ‘끼워팔기’는 인류가 상거래를 시작한 뒤 수천 년 동안 활용해 온 전통적인 세일즈 기법이다. 시금치와 콩나물을 같이 가져가면 1000원을 깎아주는 식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인다.끼워팔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 상품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사업자가 나쁜 마음을 먹었을 때다. 잘 팔리는 상품과 안 팔리는 상품을 묶음으로만 팔고, 개별적으로는 팔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골탕을 먹는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를 포함한 주요국 경쟁당국이 법령을 통해 끼워팔기를 단속하는 이유다.하지만 끼워팔기가 처벌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흔치 않다. 판매사의 시장 지배력이 얼마나 큰지, 끼워팔기 행위로 경쟁사업자가 배제되고 있는지 등 여러 요인을 두루 따지기 때문이다. ‘인질 마케팅’이란 신조어를 낳은 허니버터칩이나 포켓몬빵도 이렇다 할 제재를 받지 않았다. 소비자 부담 되레 늘어끼워팔기가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은 공정위가 제정을 추진 중인 온라인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 때문이다. 소수 독과점 플랫폼의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하고 끼워팔기와 자사 우대 등의 반칙 행위를 하면 강하게 처벌한다는 것이 이 법안의 핵심이다. 지난해 공정위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거대 플랫폼을 사전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들어 매출, 점유율 등을 기준으로 독점 사업자를 사후 확정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지만 나머지 내용은 그대로다.플랫폼법의 타깃으로 거론되는 네이버, 카카오 등의 끼워팔기 상품을 보면 추가 입법까지 해서 단속해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예컨대 네이버는 월 4900원짜리 유료 멤버십을 밀고 있다. 끼워팔기 구독
이달 초 글로벌 테크업계는 ‘인공지능(AI) 거품론’으로 몸살을 앓았다. ‘테크주 랠리’의 선봉이었던 엔비디아를 필두로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빅테크의 주가가 일제히 폭락했다. 테크 기업의 주가 회복세는 제각각이다. ‘곡괭이’(AI 인프라)를 만드는 엔비디아 주가는 어느 정도 반등했지만, ‘금 채굴’(AI 서비스)을 맡은 여타 빅테크의 주가는 낮은 포복을 이어가고 있다. AI가 ‘돈 먹는 하마’라는 시장의 우려가 투자심리를 억누르고 있는 모양새다. 美서 불거진 '돈 먹는 하마' 논란‘AI 거품론’의 진원지는 지난 6월 세쿼이아캐피털이 내놓은 ‘AI의 6000억달러 문제’란 제목의 보고서다. 빅테크가 AI 기술 투자 비용을 거둬들이려면 올해 적어도 6000억달러(약 797조원)의 매출을 올려야 하지만, 실제 예상되는 AI 관련 매출은 후하게 가정해도 1000억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이다.앞서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도 생성형 AI 기술의 확산하는 속도가 주춤해질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세상을 뒤흔드는 파괴적인 신기술은 ‘기술 촉발’ ‘과도한 기대의 정점’ ‘환멸의 골짜기’ 등의 단계를 거친 뒤 본격적으로 확산하는데, 지금은 AI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곳곳에서 현실적인 문제가 드러나는 ‘환멸의 골짜기’ 단계 초입이라는 설명이다.‘AI 투자 광풍’을 우려하는 미국 월스트리트가 손에 꼽을 법한 모범사례는 뜻밖에도 한국에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올해 상반기 1조5000억원대의 연구개발(R&D) 투자를 집행했다. 지난해 하반기보다 1500억원 넘게 줄어든 규모다. 2020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국가 의전 서열은 높다. 부총리인 기획재정부와 교육부 장관 바로 뒷순위인 15위로, 장관급 중 가장 앞서 이름이 적힌다. 다음 순서인 외교부 장관은 19위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이라는 두 개 분야를 아우르며 차관급 세 명을 휘하에 두고 있다. ‘지갑’도 두둑하다. 과기정통부가 연간 주요 대학과 연구소 등에 나눠주는 주요 연구개발(R&D) 예산은 24조원이 넘는다. 기술 트렌드 변화로 역할 커져과기정통부 장관의 존재감이 의전 서열만큼 컸던 것은 아니다. 부동산이나 세금, 대입제도처럼 국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업무가 많지 않고 상대적으로 미디어 노출도 적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맡는 분야의 특수성도 영향을 미쳤다. 과학기술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고 먼 미래의 일로 느껴진다. 정보통신 분야 역시 통신사를 관리하는 일상적인 업무처럼 여겨지기 쉽다.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을 총괄하는 부처가 덜 언급된 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지는 모습이다. 자유무역 기조가 힘을 잃고 기술 패러다임이 급변하면서 기술과 산업 정책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과거엔 기업과 연구기관이 선수, 정부가 박수부대 역할을 맡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유시장경제의 선봉을 자처하는 미국도 민간과 정부가 ‘이인삼각’으로 힘을 합친다. 국내 전문가들도 조연처럼 느껴졌던 과기정통부 장관이 주연 역할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제일 눈에 띄는 변화는 ‘챗GPT’ 등장이 촉발한 인공지능(AI) 기술의 대중화다. 전자기기와 인터넷 서비스 등 생활 곳곳에 AI가 빠르게 침투
벌써 여덟 번째 실패다. 정부가 주도하는 제4이동통신사 설립 계획 얘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7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스테이지엑스의 제4이동통신사 선정을 취소하겠다고 발표했다. 마감 시한까지 약속한 자본금을 내지 않았고, 주주 구성도 주파수 할당을 신청할 때와 다르다는 게 정부가 밝힌 취소 이유다. 아직 스테이지엑스 청문이 남았지만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제4이동통신사 설립은 여러 정부에서 추진한 사업이다. 통신 3사가 쥐락펴락하는 과점시장에 새로운 사업자를 투입해 가계 통신비를 줄이겠다는 것이 역대 정부가 공통으로 내세운 명분이었다. 매달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통신비를 줄여주겠다는 정책에 반대할 국민이 있겠느냐는 계산이었다. 15년간 여덟 차례 선정 무산첫 시도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에 이뤄졌다. 당시 한국모바일인터넷(KMI)이 이동통신시장에 도전장을 냈지만 자금 조달 능력을 미심쩍게 본 방송통신위원회가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이 회사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까지 여섯 차례 퇴짜를 맞았다. 일곱 번째 선정이었던 2016년엔 퀀텀모바일, 세종텔레콤, K모바일 등으로 후보군이 바뀌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여덟 번째 선정 작업은 ‘두 마리 토끼’를 노리고 이뤄졌다. 가계 통신비를 내리는 동시에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가 비용 부담을 이유로 반납한 28㎓ 주파수 대역을 되살리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이른바 ‘진짜 5세대(5G) 이동통신’으로 불리는 28㎓ 대역은 4세대 이동통신(LTE)보다 속도가 20배 빠르다. 대신 기지국을 훨씬 더 촘촘하게 설치해야 해 인프라 구축 비용
국제사회가 ‘정글’이었던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결국은 자국의 이익이 최우선이었다. 그나마 최근까지는 자유 시장경제의 원칙이 완충지대 역할을 했다. 이 원칙을 깨야 하는 상황이 오면 주변국과 국민에게 설명할 명분을 만들고, 자국의 관련 법령을 수정하는 등의 절차를 차근차근 밟았다. 힘 있는 선진국들도 ‘공정한 국가’라는 이미지는 지키고 싶어 했다는 얘기다.중국이 미국을 위협하는 ‘빅2’로 부상하고, 세계 경제가 인공지능(AI) 등 신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각국 정부는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명분을 쌓는 절차를 건너뛰는 사례가 부쩍 늘었고, 조치의 강도도 세졌다. 거친 정글이 된 국제사회무역장벽을 쌓고 차별적인 보조금을 살포하는 것은 기본이다. 미국 정부가 사전 예고 없이 중국산 전기차와 철강재 등에 부과했던 관세를 2~4배 올리기로 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자국 경제에 위협이 되는 해외 기업을 퇴출하는 경우도 등장했다. 최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중국 틱톡의 미국 사업권을 매각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이른바 ‘틱톡 퇴출 법안’에 서명했다.일본 정부가 라인야후에 자본 재검토를 요구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국가 기간 서비스 역할을 하는 메신저 라인의 보안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긴 했지만, 한국 기업인 네이버를 일본에서 퇴출하고 싶다는 게 일본의 본심이다. 라인야후는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함께 만든 회사로 일본에서 메신저와 전자결제, 원격의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국제사회가 약육강식의 장으로 바뀌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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