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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경봉 기자
    고경봉 기자 편집국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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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신문 스타트업부장입니다.

  • [이슈프리즘] 무역 전쟁 시대…관(官)부터 전시체제로

    지난달 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국 백악관에서 210억달러의 대미 투자를 발표하는 장면은 여러모로 인상적이고 낯설다. 정 회장이 연단에 오르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마이크 존슨 미국 하원의장, 스티브 스컬리스 미국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와 옆에 나란히 섰다. 한국도 대통령이 외국 기업 경영자에게 대통령실을 투자 발표 장소로 내주고 그 옆에 국회의장, 여당 원내대표가 도열할 수 있을까.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특정 기업에 “위대하다”는 찬사를 보내는 것을 우리 국민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미국에서 종종 연출되는 이런 장면은 기업인과 금융인 출신으로 가득한 미국 행정부의 색깔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노회하게 에둘러 가는 기존 정치인의 화법과 다르게 효율을 우선하고 실리를 좇아 직진하는 방식 말이다.각국의 고위 관료 사회를 보면 언제부터인가 산업계, 금융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정부 수장들부터 남달라졌다. 트럼프는 부동산 사업가 출신이고,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정치 경험이 거의 없는 금융·테크 전문가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로스차일드에서, 지난해 중반까지 재임한 리시 수낵 전 영국 총리는 골드만삭스 등에서 업력을 쌓았다. 남미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에도 기업인이나 금융전문가 출신 집권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신(新)중상주의 흐름이 거세지며 나타난 현상이다.공직사회의 벽도 허물어지고 있다. 미국 행정부만 해도 기업인, 금융인 출신이 즐비하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투자사 최고경영자(CEO) 출신이고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2025.04.03 17:26
  • [이슈프리즘] 60대가 최고 부자 세대로 떠오르는 이유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부(富)의 이동’이 있었다. 60대가 50대를 제치고 처음으로 ‘최고 부자 세대’에 등극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60대 가구주의 평균 순자산은 5억2000만원이다. 50대는 5억1000만원, 40대는 4억5000만원, 30대는 2억5000만원 정도다.언뜻 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60대의 평균 재산은 50대는 물론 40대보다도 적었다. 한국은 은퇴 기반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퇴직 후 재산이 감소세로 돌아서는 게 일반적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후 빈곤율 1위라는 불명예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느닷없이 60대의 재산이 한창 돈 벌 나이인 50대를 넘어 최고 부자 세대가 됐다. 도대체 60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보유 주택 수, 보유 주식 규모, 자동차 구매 건수 등 부의 척도를 나타내는 세부 수치를 보면 이유가 보인다. 2010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부문에서 1위는 40대였다. 하지만 2010년 이후 50대가 추월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2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60대가 폭발적으로 재산을 늘리며 그 바통을 넘겨받고 있다. 지금 60대의 자산은 느닷없이 늘어난 게 아니다. 십수 년 전 최고 부자 세대인 ‘그 40대’가 50대를 지나 은퇴기인 60대에 접어들면서 생긴 현상이다. 1960년대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른바 86세대 얘기다.86세대가 한국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여러모로 남다르다. ‘단군 이래 가장 부자 세대’인 동시에 ‘가장 많은 인구수를 가진 세대’다. 굴곡진 1980~1990년대 몸을 던져 민주화를 끌어낸 주역이며, 한편으론 그 거대한 변화의 흐름

    2025.02.18 17:45
  • [데스크 칼럼] 韓 증시는 왜 '글로벌 꼴찌'가 됐나

    지난해 한국 증시 성적은 처참했다. 미국과 일본의 주요 지수가 사상 최고가 행진을 하는 동안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못난이 형제처럼 사이좋게 뒷걸음쳤다. 주요국 중 가장 부진했다. 기간을 늘려 보면 더 한숨이 나온다. 나스닥은 20년 전보다 9배 넘게 올랐다. S&P500은 5배, 닛케이225는 3.5배 뛰었다. 하지만 코스피는 2.7배, 코스닥은 1.8배 오르는 데 그쳤다.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증시의 성적표는 꽤 준수했다. 글로벌 주요 증시에 뒤처지지 않았다. 한국 증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2015년을 지나면서다. 그즈음 나스닥과 차이가 벌어졌고 2019년에는 S&P와도 멀어졌다. 2022년께부터는 닛케이에도 밀렸다. 결국 지난해 글로벌 꼴찌가 됐다. 도대체 지난 10년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10년간의 패착한국 증시가 저평가된 요인이 어디 한두 가지겠냐마는, 그래도 지난 10년간 한국 증시가 유난히 뒤처진 가장 큰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경상수지 흑자 폭이 역사적으로 가장 컸던 시기가 2015년이다. 달리 말하면 그 이후 경상수지는 계속 내리막을 탔다는 얘기다. 한국 수출산업이 그즈음 일제히 꺾였다. 휴대폰과 액정표시장치(LCD), PC 등 우리 주력 전자제품을 비롯해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이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섰다. 수출산업이 중국에 추월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에 성장률이 뒤지는 저성장 쇼크가 현실이 됐다. 사회 곳곳에서 구조개혁을 서둘려야 한다는 경고가 터져 나왔지만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19대 국회 후반기 여야는 역대급 정쟁에 여념이 없었고 경제 살리기 법안과 노동개혁 법안은 뒷전이 됐다.그해 일본과 미국의 설비 투

    2025.01.08 17:15
  • [데스크 칼럼] K증시의 복원력을 기대하며

    지난 3일, 잘 안 알려졌지만 국내 증시에선 깜짝 이벤트가 있었다. 외국인들이 주식 시장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증권주를 11년 만에 가장 많이 사들인 것이다. 이를 포함해 밸류업 대표주로 꼽히는 금융주를 대거 매수했다. 이날 외국인이 유가증권시장에서 모처럼 5000억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했는데, 이 중 3000억원이 금융주였다. 10개월 만의 최대 규모다.갑자기 막장에 볕이 드는 게 이런 기분일까. 드디어 밸류업 정책이 빛을 보는 것일까. 수개월째 국내 주식을 지긋지긋하게 팔아치우던 외국인들이 마침내 돌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장이 끝나고 7시간 뒤 허망하게 사라졌다. 하필 그날 밤, 난데없는 ‘비상계엄’ 소식이 전 세계 투자 시장을 덮쳤다. 이후 외국인들은 증권주를 포함한 금융주를 연일 ‘분노의 패대기’치고 있다. 마치 다시는 한국을 쳐다보지도 않을 것처럼. 금융 선진국 다시 멀어졌지만‘코리아 디스카운트’. 이 지긋지긋한 단어를 없애보겠다고 우리 기업과 금융회사들은, 대통령과 장관들은 수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해외 국가를 방문하고 얼마나 많은 투자자를 만났나. 얼마나 많은 정책을 손봤던가. 그렇게 전진한 끝에 금융 선진국의 자리가 눈앞에 다가왔다. 올해 한국 채권 시장이 세계 3대 채권지수인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되는 역사적 성과도 거뒀다. 금융 선진국의 마지막 관문이라는 MSCI 선진국지수 편입도 시간문제인 듯했다.하지만 우리는 그 수십 년의 노력을 하룻밤에 날려버렸다. 포브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결국 옳았다”는 냉소를 보냈고, 로이터는 “왜 한국 증시가 유독 부진한지를 상기시켜줬다”고 했

    2024.12.10 17:40
  • [데스크 칼럼] '국장은 못믿겠다'는 투자자들

    장면 1. 올해 1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벽두부터 한국거래소로 향했다. 그 자리에서 금융투자소득세가 증시 발전을 가로막는다며 폐지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시장은 뜨겁게 반응했을까. 정반대였다. 코스피지수는 이후 11일간 9% 가까이 하락했다. 금투세가 정말 폐지될지를 놓고 시장은 반신반의했다. 개인들은 혹시 세금을 물게 될까 봐 펀드 환매에 나섰고, 증권사들은 수십억원을 들여 금투세 대응 시스템을 구축했다. 혼란은 10개월 넘게 이어지다가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금투세 폐지 결론을 내자 그제야 일단락됐다.장면 2. 지난 7월 25일. 두산그룹주들이 금융감독원발 악재에 일제히 추락했다. 두산그룹은 지배구조 개편 차원에서 계열사 합병을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이날 금감원이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자 “금융당국이 합병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이후에도 두산그룹주들은 추가 정정 요구에 동반 하락하는 등 금감원 발표와 이복현 금감원장의 입에 따라 출렁였다. 그 학습 효과는 고려아연에서도 나타났다. 고려아연은 얼마 전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한 직후 주가가 추락했지만 다음 날부터 반등에 나섰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증자에 성공할지는) 금감원 얘기부터 들어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다. 줄줄이 밀리는 증시 부양책요즘 주식시장이 이렇다. 정부가 야심 차게 증시 부양책을 발표해도, 기업들이 경영 계획을 내놔도 투자자들은 ‘과연 될까?’ 하는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정부는 원내 과반 의석수를 차지한 야당의 허가를 구해야 하고, 기업은 금융당국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다. 그렇게 무산되거나

    2024.11.10 17:35
  • [데스크 칼럼] 회장님들의 이상한 '혈투'

    요즘 인수합병(M&A) 시장의 최대 화제는 단연 고려아연이다. 이 회사 경영권을 서로 갖겠다며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군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5조원 넘게 베팅했다. 거기에 MBK가 추가로 6000억원 정도를 레이즈(raise)했다. 국내 적대적 M&A 역사에 전례 없는 규모다.그런데 이 싸움을 가만 보면 뭔가 이상하다. 참가자 모두 얻는 것보다는 잃을 게 많아 보인다. 그런데도 브레이크를 밟을 생각 없이 폭주하고 있다.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은 고려아연 경영권을 뺏어 MBK파트너스에 넘겨주려고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이 얻는 이득은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자신의 고려아연 지분도 시장 가격보다 낮게 MBK에 넘겨주기로 했다. 달아오른 '세기의 분쟁'“고려아연의 견실한 성장을 위한 결정”이라는 변명은 궁색하다. MBK는 중후장대 기업을 인수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경험이 별로 없다. 장 회장이 MBK를 낙점한 진짜 이유는 ‘최 회장을 쓰러뜨릴 만한’ 실탄이 많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당하다.최 회장의 대응 방식도 쉽게 납득가지 않는다. 그는 베인캐피탈을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사실상 경영권을 내려놨다.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고, 특정 사유가 생기면 베인캐피탈이 자기 지분을 가져다 팔 수 있도록 했다. 경영권 싸움에 이기기 위해 경영권을 내놓겠다니…. 게다가 배임, 시세 조종 논란까지 무릅쓰며 고금리로 돈을 끌어다가 베팅하고 있다. 지금까지 장 회장과 최 회장의 행보를 보면 의도는 동일하다. ‘내가 죽을지언정 너에게는 못 준다’는 것이다.MBK의 행보도 뒷말이 많다. MBK의 고려아연 공개매수가는 현재 주당 83만원이다. 몸값을 1

    2024.10.08 17:39
  • 인구 재앙을 기회로…이민·노동규제 풀어야 '人·財·業' 모인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역사 속 초강대국들의 시작은 한결같이 미약했다. 최초의 대제국인 고대 로마, 세계 최대 영토를 일궈낸 중세 몽골, 현재 최강국으로 군림하는 미국도 주변국에 치이는 약소국이었다. 이들 나라는 그 한계를 깨고 무서운 속도로 인구를 늘리며 영토를 확장했다. 50만 명 남짓이던 고대 로마의 인구는 200여 년 만에 6000만 명 수준으로 불어났다. 중세 몽골은 정복 전쟁 초기 인구가 100만 명에 못 미쳤지만 100년 만에 1억 명이 넘는 대국으로 변모했다. 건국 당시 300만 명 정도이던 근대 미국 인구는 200여 년 만에 3억 명으로 급증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100~200년 기간에 인구가 100배 이상으로 늘어났다.이들 국가가 초강국으로 변신할 수 있던 힘, 그리고 그 국가체계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던 원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적은 인구’였다. 이들 국가는 인구 열위를 타개할 방안을 개방성과 포용성에서 찾았다. 피지배층과 외지인에게 시민과 군인이 될 기회를 주고 고위 관료 자리도 열어줬다. 인종과 문화가 다른 민족의 관습과 제도를 과감히 차용했다. 문화와 종교, 사회 시스템의 이종 결합이 곳곳에서 이뤄지자 세계 각지에서 인재가 몰려들었다. 그 길을 따라 돈이 흘러들고 다양한 산업이 생겨났다. ‘팍스 로마나’ ‘팍스 몽골리카’ ‘팍스 아메리카나’는 인구 대국의 소산이 아니었다. 적은 생산 인구와 낮은 생산성을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의 인(人)과 재(財), 업(業)이 모이도록 국가 시스템을 바꾼 데서 비롯했다. 인구 감소의 재앙이 시작됐다대한민국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를 내년에 맞는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

    2024.09.24 17:58
  • '초고령 국가→개방형 국가' 새 판 짜자

    대한민국의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이끈 주역은 동시대 청년들이었다. 2000만 명이던 인구가 1960~1970년대 3000만 명을 넘는 동안 해방둥이들이 산업 역군으로 중화학공업 육성에 몸을 살랐다. 인구 4000만 명 시대인 1980~1990년대는 고등교육의 수혜를 본 베이비붐 세대가 ‘1000억달러 수출’ 시대(1995년)를 활짝 열었다. 5000만 명대에 도달한 2000년대에는 디지털로 무장한 2차 베이비부머와 밀레니얼 세대가 한국을 정보기술(IT) 강국의 반석에 올려놨다. 하지만 노동력의 양적 투입과 제조업 중심 산업 구조를 기반으로 한 성장 모델은 이제 소임을 다했다. 대한민국은 내년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이 처음으로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2050년에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고령자 비중 40%’ 국가가 된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26년 뒤 ‘가장 노쇠한 국가’로 전락한다. 그 전후로 생산성 악화와 세대 간 갈등, 경제적 불평등, 연금 고갈, 의료체계 붕괴가 연이어 우리 사회를 덮칠 것이다.그동안의 성공 경로와는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고령화에 따른 빈곤과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것이다. 산업 생태계 전반에 인공지능(AI), 로봇, 사물인터넷(loT) 등 디지털 전환이 뿌리내리도록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인재상도 재정립해야 한다. 보다 많은 여성이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고령자와 ‘그냥 쉬는’ 청년들이 생산 현장에서 뛸 수 있도록 고용·연금·교육 체계를 수술해야 한다.동시에 한국을 개방형 국가로 전환해 전 세계의 인재와 자본, 기업이 몰려들게 해야 한다. 시스템을 찔끔 손보는 것으로

    2024.09.24 17:54
  • [데스크 칼럼] 총리보다 기사에 많이 등장한 공직자

    한국 공직자 중 최고의 뉴스 메이커는 누굴까.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고위 공직자들의 기사 게재 건수를 따져봤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한국경제신문 지면 기사에 헤드라인으로 등장한 경우를 기준으로 했다. 1위는 당연히 윤석열 대통령이다. 100건이 넘었다.윤 대통령을 제외하면 으뜸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다. 기사 제목에 그의 이름이나 멘트가 등장한 건수가 36건으로, 한덕수 총리(14건)와 경제 컨트롤타워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25건)을 압도했다. 주요 경제 부처 장관들은 비빌 수준이 안됐다. 전 산업을 쥐고 흔들겠다는 발상건국 이후 금융감독기관의 수장이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전례가 있었을까.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증시 밸류업 등 금융 관련 이슈가 부각된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의 거침없는 언행이 한몫했을 것이다. 상법 개정, 배임제도 폐지, 상속세 개편 등 금융감독 업무와 상관이 없는 뜨거운 이슈마다 강하게 자기 목소리를 냈으니 말이다.이 원장은 정부 의사 결정을 합리적으로 도출하기 위해 공직자들이 개별 의견을 내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 금감원과 금융위원회의 행보는 그 수위를 넘어섰다. 금융사 관리 감독을 넘어 한국 기업 전체에 대한 그립을 쥐겠다는 의지가 선명하다.금융당국이 과거에 그렇게 의욕을 앞세웠다가 주요 산업이 휘청인 적이 몇 번 있었다. 대표적 사례가 국제회계기준(IFRS)이다. 미국조차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며 도입을 미루는 사안을 금융위가 밀어붙였다. 2011년 IFRS가 시행되자 곳곳에서 혼란이 벌어졌다. 우리 산업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회계기준을 무리하게 적용한 탓에 조선사들은 부채 비

    2024.09.03 18:00
  • [데스크 칼럼] PEF 투자를 '선의'로 착각한 대가

    사모펀드(PEF·경영참여형 사모집합투자기구)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태동한 것은 1960년대 중반이다. 기업 경영권을 사들인 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쳐 몸값을 높인 후 되파는 바이아웃 기법이 뿌리내렸다.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선 차익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련의 과정을 얼마나 빨리해내느냐가 관건이었다. 임직원과 소액주주, 소비자 등 기업의 이해당사자들은 외면당하기 일쑤였고 기업의 장기 성장성도 평가절하됐다.20년쯤 지난 1980년대 중반이 되자 단기차익 극대화에 대한 탐욕은 ‘광기’로 변했다. 1988년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의 RJR내비스코 인수 건이 그랬다. KKR은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RJR내비스코를 헐값에 사들인 뒤 기업을 잘게 잘라서 팔아 막대한 차익을 거뒀다. 이 사건을 다룬 책 <문 앞의 야만인들>은 PEF를 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야만인으로 묘사한다. PEF의 이상한 대박 사례들한국도 PEF가 처음 도입된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어느덧 운용사가 1000곳에 달하고 전체 자산 규모는 150조원에 육박한다. 그동안 PEF의 성과는 눈부시다. 기업들의 성장을 위한 젖줄이 됐고, 구원투수 역할도 했다. 버거킹, 아웃백 등 죽어가는 기업을 되살린 사례도 부지기수다.하지만 광기 어린 ‘성인식’을 치른 미국처럼 스무 살을 맞은 한국 PEF에도 우려스러운 부작용이 발현되고 있다. 요즘 PEF의 대박 사례를 보면 그렇다. 투자한 기업이 잘나가서 덩달아 수익을 내는 게 아니라 기업이 어려울수록 돈을 버는 이상한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것도 시장의 예상 수준을 훨씬 웃도는 이른바 ‘약탈적 수익’을 얻고 있다. 기업에 투자할 때 걸어놓은 각종 옵

    2024.08.04 17:42
  • [데스크 칼럼] 부자가 떠나는 나라, 들어오는 나라

    중국 부자들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처음 느낀 것은 2010년대 중후반이다. 중국 정부가 시진핑 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해 경제, 사회 부문 통제를 강화하면서다. 관변 언론들은 ‘공동부유’를 외쳤고, 사정당국은 빅테크 규제에 착수했다. 그러자 불안함을 느낀 중국 부자들이 움직였다. 해외로 자산을 빼돌리는 ‘차이나 런’이 본격화한 것이다.아시아 각국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중국 부자 모시기’ 경쟁을 벌였다. 싱가포르가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였다. 경제 컨트롤타워인 싱가포르 경제위원회(EBD)는 2019년 패밀리 오피스 개발팀(FODT)을 구성해 중국 부자들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듬해엔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와 두바이가 움직였다. 패밀리 비즈니스에 세제 혜택을 주고 밀착 지원하는 가족 사업법을 마련했다. 세계는 '패밀리 오피스' 전쟁 중효과는 엄청났다. 2010년대 중반 50여 개 수준이던 싱가포르의 패밀리 오피스는 올해 1400개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싱가포르의 자산관리(WM) 규모는 1조달러(약 1399조원)나 불어났다. UAE의 가족 기업 설립 건수도 치솟았다. 중국에서 빠져나온 부자들은 싱가포르에 자산을 맡기고, 두바이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 부동산을 산다.비단 중국뿐만이 아니다. 요즘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부(富)의 이동은 유례를 찾기 힘든 수준이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각국의 정치 리스크가 부각되자 더 나은 곳을 찾아 수백조원의 자금이 국경을 넘나든다. 글로벌 투자자문업계에선 올해 역대 최대인 13만~15만 명의 ‘슈퍼 리치’가 다른 나라로 떠날 것이라고 한다. 싱가포르 UAE 호주 캐나다

    2024.07.02 17:38
  • [데스크 칼럼] 아무 기업이나 상장시킨 대가

    한국엔 세계 3대 성장주 전문 주식 시장이 있다. 역사를 따지면 미국 나스닥시장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한때는 아시아권 국가들이 그 거래 시스템을 배우겠다며 줄을 섰다. 그중엔 대만도 있었다. 살짝 듣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나. 2000년대 초반 코스닥시장이 정말 이랬다. 얼마나 잘나갔는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이 이곳으로 앞다퉈 옮기려 했고, 정부가 유가증권시장에 기업들을 묶어두려고 당근책을 내놓을 정도였다. 닷컴 붐을 타고 코스닥지수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절이었다. 기술주 랠리는 '남의 집 잔치'지금 전 세계의 기술주 랠리는 언뜻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올 들어 펄펄 끓는 기술주 덕에 나스닥을 비롯한 14개국 증시가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쯤 되면 그 열기의 한복판에 당연히 코스닥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코스닥은 그냥 그저 그런 시장이 됐다. 과거 최고 기록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 채 20년 넘게 옆걸음만 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코스닥의 시가총액 비중은 나스닥의 10%에 육박했다. 지금은 1.5%도 안 된다. 도대체 이 시장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문제를 열거하면 한두 가지겠느냐마는 본질은 단순하다. 검증이 안 된 기업들을 갖다 놓고 개인들끼리 사고팔라는 식의 구조가 20년 넘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성장성 특례다. 2018년 도입된 이 제도는 증권사가 특정 기업에 대해 ‘성장성이 있다’고 건의하면 이를 토대로 상장시켜주는 것이다. 기술 수준이나 재무제표는 제대로 따지지 않는다. 그렇게 상장한 기업이 지금까지 20곳이다. 하지만 5년이 되도록 제대로 흑자를 내는 기업이 없다. 절반가량은 매년

    2024.06.03 00:20
  • [데스크 칼럼] 경영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

    아워홈이라는 회사가 있다. 40년간 단체급식을 업으로 해온 회사다. 매출 2조원, 임직원이 1만여 명에 달한다. 지금 이 회사는 갈림길에 서 있다. 자립할지, 아니면 다른 곳에 팔지를 놓고서다. 그런데 그 중차대한 결정권을 쥔 사람은 회사 경험이 전무한 ‘전업주부’다.시작은 자녀들의 경영권 분쟁에서 비롯됐다. 지분 39%를 가진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과 20%를 보유한 막내 여동생 구지은 부회장이 다투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지분 20%를 가진 장녀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바로 그 주부 말이다. 3년 전엔 이 장녀의 지지 덕에 여동생인 구 부회장이 경영권을 얻었다. 하지만 최근 구 부회장이 신사업에 투자한다며 배당을 줄이자, 장녀는 회사를 매각하려는 오빠 편으로 돌아섰다. 그 장녀는 내친김에 사내이사로 참여했고, 여동생은 이사회에서 내쫓길 처지다. 주부와 아빠친구가 정한다?장녀의 결정은 주주로서 고유한 권리 행사다. 하지만 직원 가족과 협력업체를 합치면 수만 명의 생계가 걸린 회사의 운명을 경영 수업을 받아본 적 없고, 경험도 없는 이가 결정하는 상황을 임직원들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한미약품도 상황이 비슷하다. 한때 신약 수출 신화를 쓴 굴지의 제약사다. 51년간 갖은 풍파를 겪으며 성장해왔다. 하지만 창업자가 작고하자 기업의 앞날을 두고 딸과 아들들이 맞붙었다. 다른 회사와 통합하느냐, 아니면 사실상 사모펀드에 매각하느냐를 놓고서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정작 승부의 향방을 결정지은 인물은 따로 있다. 바로 ‘아빠 친구’다. 작고한 창업자의 절친이자 2대주주인 한 금형업체 오너가 아들들을 지지하면서 딸이 추진하던 통합작업은 무산됐다.

    2024.04.30 18:18
  • [데스크 칼럼] RSU에 덧씌워진 편견

    주가를 올리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 중 하나는 주가와 기업 오너·경영진의 보상을 연동하는 것이다. 주가에 따라 자신의 소득이 결정된다면 어느 경영진이 이를 방치할까. 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대책을 도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소액주주를 위해 주가는 올라야 하지만, 오너와 경영진이 부를 축적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율 배반적인 인식이 깊게 박힌 탓이다. 스톡옵션에 대한 우리나라의 규제 강도가 유난히 센 것도, 과도한 상속세가 주가를 억누르는 요인이 되고 있음에도 제대로 손보지 못하는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이래저래 경영진이 주가를 신경 써야 할 동기가 유난히 적은 게 우리나라다. 실리콘밸리를 키운 '숨은 힘'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을 보는 시선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이야 사회적으로 장려하는 분위기지만 지난 정부 때만 해도 배당 확대는 악(惡)으로 간주됐다. 대기업이 배당을 늘리면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황제 배당’ ‘승계 악용 수단’ 등의 표현을 쓰며 반발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배당소득세 감세 혜택을 없앴다. 심지어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는 “기업 현금이 주주 이익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막아야 한다”며 배당소득세 인상을 주장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 정부가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조성하면서 맨 먼저 시행한 조치는 지원 대상 기업의 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금지하는 것이었다.최근 양도제한 조건부 주식(RSU)을 놓고 제기되는 논란도 그런 왜곡된 프레임의 연장선에 있다. RSU는 성과를 내고 근속연수를 채운 임직원에게 주식을 나눠 주는 제도다. 대체로 5~10년가량 근속하면 그 이후 매년 조금씩 나눠준

    2024.03.31 18:08
  • [데스크 칼럼] 잡스가 말했다 "think big"

    2007년 6월 18일로 기억한다. 세계 증시가 유동성 파티를 즐기던 중이었다. 코스피지수는 이날 사상 처음 1800을 돌파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헤지펀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라는 상품에 투자했다가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전 세계가 동요하던 그 며칠 사이에 두 개의 제품이 시장에 연이어 나왔다. 하나는 엔비디아의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인 ‘쿠다’였고, 다른 하나는 애플의 ‘아이폰’이었다. 인공지능(AI)과 스마트폰 시대는 그렇게 금융위기와 함께 찾아왔다. 가보지 않은 길을 뚫은 기업들당시 엔비디아와 애플이 맞서야 할 상대는 정보기술(IT)업계의 ‘절대 지존’들이었다. 엔비디아가 몸담은 세계 반도체시장은 인텔 천하였다. 중앙처리장치(CPU) 분야에서 인텔 점유율이 80%에 달했다. 컴퓨터 제조사가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인텔 CPU가 장착됐다는 의미인 ‘인텔 인사이드’가 곧 브랜드였다. 그런 인텔에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만드는 엔비디아가 “CPU 시대를 끝내겠다”며 도전장을 냈다. 모두가 코웃음을 쳤다.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인텔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던 때였다.애플이 진출한 휴대폰 분야에선 노키아가 독주 중이었다. 글로벌 점유율이 2위 모토로라, 3위 삼성전자, 4위 소니에릭슨을 합친 것보다 높았다. 당시 애플도 빅테크 축에 속했지만, 노키아에 견줄 수준은 아니었다.가보지 않은 길은 험난했다. 엔비디아가 내놓은 쿠다는 수년간 ‘돈 먹는 하마’였다. 그 효용성이 주목받은 것은 6년이 지나서였다. 애플도 휴대폰의 강자 반열에

    2024.02.28 18:05
  • [데스크 칼럼] 코리아디스카운트의 본질

    이렇게 주가 띄우기에 열일 하는 정부가 있었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 국정 목표의 1순위가 ‘주가 부양’인 듯싶다. 대통령이 새해 첫 행보로 증시 개장식 참석을 택한 것 자체가 초유의 일이다. 여기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방침을 밝히더니 지난 17일에도 한국거래소를 찾아 고소득자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을 허용하고, 기업들에는 주가 부양 대책을 의무적으로 내놓으라고 했다. 지난해 말엔 공매도를 금지하고 대주주 주식 양도소득세 기준도 높였다. 그러면서 “자본시장 규제를 혁파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했다. 수급으로 지수 올리겠다는 발상이쯤 되면 새해 코스피지수가 호응해서 달릴 만도 하다. 그런데 공교롭게 국내 증시는 연초부터 내리막을 걷고 있다. 중국·대만 등 중화권 증시만 빼면 세계 주요국 중 하락 폭이 가장 크다. 장기적으론 다를 것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이런 정책으로 해소될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면 이미 십수 년 전 사라져야 했다. 수급을 조절해 증시를 올리겠다는 접근법부터 말이 안 된다. 국민연금만 봐도 답이 나온다. 10년 전 국민연금은 500조원이 채 안 됐다. 지금은 1000조원이 넘는다. 10년 전 100조원이던 퇴직연금은 300조원이 됐고, 생명보험사들의 자산도 100조원 넘게 늘었다. 10년 전 470만 명 남짓이던 개인투자자는 최근 1400만 명을 넘어섰다.이런데도 지난 10년간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고작 25%다. 미국과 일본 등의 증시가 2배 이상 치솟는 동안 말이다. 이런 상황에 부자들에게 연 4000만원짜리 ISA에 가입하라고 허용해주고, 공매도를 금지하고, 기업이 부양 대책을 내놓으면 주가가 오를까.과거 정부

    2024.01.28 18:05
  • [천자칼럼] 독재자들의 공갈

    “우리 군은 마침내 전 세계에 우뚝 섰다. 지난해 시작한 공세를 즐겁게 마무리할 준비가 됐다. 영국은 이제 붕괴할 것이다. 영웅들에게 감사한다.”아돌프 히틀러의 1941년 신년 연설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독일 국민을 열광시켰다. 하지만 이 연설을 한 것은 독일이 영국 침공 계획인 ‘바다사자 작전’을 포기한 직후다. 프랑스를 함락하고 나서 야심 차게 영국을 공격했다가 저항에 밀려 물러서기로 한 것이다. 서유럽을 모두 집어삼키겠다는 히틀러의 야욕은 사실상 무산됐다. 그런데도 승리 소식을 의심한 독일 국민은 없었다. 히틀러는 4년 후 독일이 패망하기 직전까지도 “승리가 눈앞에 있다”는 허언을 멈추지 않았다.전쟁이나 갈등 상황에서 독재자들의 메시지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구심점이 흔들리거나 여론이 악화할수록 메시지는 단호해진다. 승리와 영광이 눈앞에 있다는 기대, 영웅에 대한 헌사도 반복된다. 국민이 이런 ‘공갈’을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것은 외부 정보를 차단하고 언론을 통제한 상황에서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 발언을 검증하거나 견제할 정치 시스템도 부재한다.올해 연초부터 북·중·러의 지도자들이 일제히 강경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 무력을 포함해 모든 물리적 수단을 동원해 남조선을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에 온건한 목소리를 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대만 총통 선거가 다가오자 “조국 통일은 역사적 필연”이라며 발언 수위를 높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 차

    2024.01.01 17:34
  • [천자칼럼] 뜨거운 '워크 바이러스' 논쟁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친구가 울분을 터트리더군요. 딸이 학교에 다녀오더니 ‘조지 워싱턴은 건국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냥 노예 소유주에 불과하다’고 했답니다. 요즘 학교가 ‘정치적 올바름’이니 하면서 이런 걸 가르칩니다.”얼마 전 한 방송에서 이렇게 세태를 한탄한 주인공은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다. 그가 요즘 자주 쓰는 대표적인 표현이 ‘워크(woke) 바이러스’다. 워크는 ‘정치적 올바름(PC)’을 추구하고 인종, 성 정체성, 문화 등의 다양성을 지지하는 이른바 ‘깨어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 깨시민주의가 공격적으로 변질하고 바이러스처럼 증식하면서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머스크는 이런 워크 바이러스를 막는 방역 전사를 자처하고 있다. 워크주의에 적극적인 기업인 디즈니와 전면전을 벌이는 게 대표적이다. 디즈니가 머스크가 최대주주인 SNS 엑스(X)의 광고를 중단하자, 테슬라는 자사 전기차의 디즈니플러스 앱을 삭제했다.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수백 명의 흑인 노예를 두고 있었다는 점을 들어 교육 현장에서 벌어진 ‘국부(國父) 논란’에도 참전했다. 시대적 맥락을 외면한 채 업적을 폄훼한다고 일갈한 것이다.반(反)워크주의 소신은 그의 비즈니스에도 반영된다. 챗GPT 등 인공지능(AI) 챗봇들이 편향된 답변을 내놓는다고 비판해온 머스크는 반워크 성향을 자신한 챗봇 ‘그록’을 선보였다. 하지만 그록마저 워크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평가를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학습 정보에 스며든 PC주의의 그림자를 못 벗어났다는 평가다.워크주의 논쟁은 한국에서도 뜨겁다. 페미니즘, 환

    2023.12.24 17:35
  • [천자칼럼] 9회 말 투아웃 대타 한동훈

    안타를 치더라도 뚱뚱한 몸집 때문에 매번 1루에서 멈추던 타자가 있다. 한번은 마음잡고 휘두른 방망이에 공이 뻗어나가자 타자는 안 하던 짓을 한다. 1루를 돌아 2루로 향한 것. 하지만 그 순간 ‘선을 넘었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타자는 허둥지둥 1루로 몸을 돌리다가 넘어졌고 상대 수비진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반전은 그다음이다. 1루수가 타자를 일으켜 세우더니 2루 쪽으로 가라고 엉덩이를 툭 쳤다. 홈런을 쳤다는 사실을 타자 본인만 몰랐던 것이다. 영화 ‘머니볼’에서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이 장면은 자신이 그어놓은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한방’의 의미를 얘기한다.실제로 꽤 잘나가는 타자들도 중요한 타석에서 자신에 대한 불신에 자주 지배된다고 한다. 9회 말 투아웃과 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상대의 구종이 어떨지 고심하고, 내심 투수의 실투도 기대해본다. 공이 날아오는 것을 보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에 몸이 굳는다. 포수 미트에 공이 박히고 주심의 힘찬 삼진 콜이 울려 퍼진 후에야 한심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중심 타선의 중압감은 그렇게 크다.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직을 수락하면서 현 상황을 야구에 빗대 주목받았다. “9회 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았어도, 스트라이크인지 애매해도 후회 없이 휘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금 국민의힘은 꽤 큰 점수 차로 리드를 빼앗긴 상황이다. 안 그래도 팀은 연패로 패배 의식에 절어 있고, 선수단의 내홍에 팬들마저 등을 돌렸다.이런 상황에 한 전 장관이 나서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2023.12.22 17:50
  • [천자칼럼] 한·일 엔터 동맹

    “국내 영화산업이 홍콩 영화에 밀려 존립 위기에 처해 있는데, 막강한 자본을 갖춘 일본 영화까지 수입을 검토한다니 문화 종속이 우려된다.”1992년 7월 국내 일간지 기사의 한 대목이다. 이즈음 아시아 영화산업의 종주국은 단연 일본과 홍콩이었다. 각각 두 나라의 최대 배급사인 도호와 골든하베스트가 그 정점에 있었다. 영화 시작과 함께 나오는 이들의 로고는 아시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나타내는 심벌이었다. 골든하베스트 정문 앞에는 이 회사 영화를 들여오려는 한국 영화사가 줄을 섰다. 한국 정부가 일본 문화를 개방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도호에도 일본 영화를 선점하려는 한국 배급사와 대기업이 몰려들었다. 국내 영화산업은 곧 고사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30여 년 전 한국 문화산업의 열악한 상황을 곱씹다 보면, 최근 CJ ENM과 도호의 협약이 얼마나 상징적 사건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도호의 미국 법인이 CJ ENM의 미국 법인에 2900억원을 투자해 2대 주주에 올라서는 내용의 계약이다. 한국과 일본의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손잡고 미국 시장을 공동 공략하는 모양새지만, 실제론 도호가 CJ ENM에 “수업료를 낼 테니 해외 진출 경험을 공유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도호의 콘텐츠를 리메이크하거나 새로 만드는 작업도 CJ ENM이 맡을 계획이다.도호는 1950년대부터 <7인의 사무라이> <카게무샤> 등 세계적 반열에 오른 작품을 배급하며 글로벌 유통망을 뚫어왔다. 지금도 미야자키 하야오, 신카이 마코토 등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들의 작품 배급을 전담한다. 이런 회사가 이제는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노하우를 배우고, 자사의 콘텐츠를 재가공해 세계에

    2023.12.12 17:57
  • [천자칼럼] 200억원짜리 장갑차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는 프랑스의 슈퍼카 브랜드인 부가티가 2019년 내놓은 ‘라 부아튀르 누아르’라는 모델이다. 기본 가격이 150억원이고, 옵션에 따라 200억원까지 치솟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가격대의 차량이 있다. 출력은 1000마력으로 누아르의 1500마력보다 낮다. 속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 누아르는 최고 시속이 420㎞에 달하지만 이 차는 65㎞에 불과하다. 연비는 ‘기름 먹는 하마’ 수준인 L당 3㎞다. 그런데도 어떻게 세계 최고가 차량과 가격이 같을까.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차’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무기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고 탱크를 파괴하는 대전차 지뢰도 무력화한다. 심지어 날아오는 미사일도 탐지해 요격한다. 여기에 첨단 센서와 무인 작동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막강한 화력은 덤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내놓은 장갑차 ‘레드백’ 얘기다. 한화는 최근 호주 군에 레드백 129대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총 3조1500억원어치로, 대당 약 200억원 꼴이다. 항공기나 선박 등을 제외하고 지상의 ‘탈 것’으로만 한정하면 역대 최고가 수출품이다. 수주 과정도 극적이다. 호주 정부가 처음 장갑차 도입 계획을 발표한 2018년 당시 경쟁사인 독일 라인메탈의 장갑차 링스는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데 비해 한화는 도면조차 없었다. 한화 직원들이 장난감만 한 모형을 들고 설명회에 참여하면서 창피함에 고개를 못 들었다고 한다. ‘뭐 이런 회사가 있나’ 싶던 호주 군 장성들은 불과 10개월 후 자신들의 요구 내용을 꼼꼼히 담은 장갑차가 눈앞에 나타나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술력도 놀랍지만 전 세계에서 부품을 적시에 조달하는 비결이

    2023.12.08 17:58
  • [천자칼럼] 中 알리·테무의 공습

    한국 기업이 개발한 완구 중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은 아이템은 ‘그립볼’일 것이다. 1991년 한 중소기업이 내놓자마자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그해 세계 최다 판매 완구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그립볼이 뭐냐고? 벨크로(찍찍이)로 된 원형 판을 글러브처럼 손에 끼고, 캐치볼 하듯 공을 주고받는 놀이기구라고 하면 다들 알 것이다. 지금도 이 완구를 가지고 노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오리지널 제품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이걸 만든 국내 기업은 2년 후 부도를 맞았고 제품 명칭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중국산 모조품이 수출 시장과 국내 시장을 잠식한 탓이다. 30년 전 완구로 시작한 중국산의 국내 침공은 이제 전 산업을 집어삼킬 기세다. 주요 소비재에 이어 산업용 부품까지 장악하더니 대형마트, 홈쇼핑, 온라인 플랫폼 등 유통산업 전반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그 선두에는 각각 중국 1, 2위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와 핀둬둬의 쇼핑 앱인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소비자들이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중국산 제품을 직접 구매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저질 제품이 많았고 고객서비스(CS) 부문의 악명도 높았던 영향이다. 중간 유통 기업들이 검증된 제품을 골라 국내 쇼핑몰에 들여와 파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품질에서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붙자 중국 소비재 기업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자국 쇼핑 앱을 통해 각국 소비자를 직접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에서 중국 직구 앱의 인기는 열풍 수준이다. 알리의 국내 사용자는 지난 10월 기준 613만 명으로 1년 사이 두 배 넘게 늘었다. 지난 7월 국내에 상륙한 테무도 사

    2023.12.04 17:57
  • [고경봉 칼럼] 공항, 철도 따라 폭주하는 포퓰리즘

    아무리 봐도 희한하다. 광주광역시와 대구광역시를 잇는 철도를 만들겠다는 ‘달빛철도 특별법’ 말이다. 이 철도는 특별해서 건설할 때 남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공공사업을 할 때 경제성 등을 미리 검증하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시켜달란다. 그것도 모자라 철도 역사의 주변 개발 사업도 예타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건설 과정에서 지역 주민을 우선 참여시켜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담긴 44개 신규 노선 중 오로지 이 철도만 이렇게 대우해달라고 한다. 제일 황당한 대목은 정부 계획인 6조원짜리 단선 일반 철도는 성에 안 차니, 11조3000억원을 들여 복선 고속철도를 지어야겠다는 것이다. 국내 철도 건설 역사상 유례없는 특혜 조항들로 버무려진 이 특별법이 지금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그것도 무려 사상 최다인 261명의 국회의원이 공동 발의했다. 달빛철도의 경제성이 얼마나 낮은지는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다. 동일 노선을 오가는 광주대구고속도로만 봐도 답이 나온다. 이 도로의 하루 통행량은 전국 고속도로 평균 통행량의 절반 이하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광주 송정역에서 서대구역까지 2시간 정도면 간다. 기차를 타면 30~40분가량 단축되겠지만, 역까지 이동 시간 등을 감안하면 무의미한 차이다. 논란이 커지자 강기정 광주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이 “그럼 고속철도 대신 일반 복선 철도로 짓자”고 반발짝 물러섰다. 그런데도 건설비용이 기존 정부안보다 45% 많은 8조7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법안이 포퓰리즘의 ‘끝판왕’인 이유는 단순히 경제성이 낮은 공공사업에 세금을 쏟아붓기 때문만이 아니다. 문제는 ‘특별법’이라는

    2023.12.03 17:57
  • [천자칼럼] 중앙은행 폐쇄

    중앙은행은 정권에 마약과 같다. 기준금리를 정하고, 공개시장을 운영하고, 발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 필요할 때 돈을 풀 수단이 된다. 그렇게 정부가 중앙은행을 쥐락펴락하다가 물가가 폭등해 경제를 말아먹은 사례가 부지기수다. 주요 국가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절대 원칙으로 삼는 이유다. 그렇다고 중앙은행 역할을 금리와 통화량 조절로만 제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성장률과 일자리 지표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특히 국지적 금융위기의 세계적 확산 속도가 빨라지다 보니 중앙은행이 구원투수로 나서야 할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한국은행도 당초 ‘물가안정’만을 목표로 삼다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2011년 ‘금융안정’을 추가했다. 문제는 그 적정선을 지키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은행만 봐도 그렇다. 정부의 입맛에 따라 휘둘린다고 ‘기획재정부 남대문 출장소’라는 별명이 붙었다가, 통화정책이 정부 정책과 괴리되면 혼자 고고한 척한다고 ‘한은사(寺)’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세계 각국의 딜레마다. 그런 측면에서 중앙은행을 폐쇄하겠다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은 이래저래 주목받는다. 아르헨티나처럼 웬만큼 경제 규모를 갖춘 나라가 중앙은행을 두지 않는 사례는 사실상 없다. 밀레이 당선인의 얘기는 정부가 직접 통화정책의 그립을 쥐겠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팔라우 등 미국 달러를 쓰는 초미니 국가들이나, 유로를 도입한 유럽연합(EU) 회원국처럼 외부 통화를 쓰는 대신 통화정책을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얘기일까. 그는 실제로 아르헨티나 페소 대신 달러를 가져다 쓰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아직 뚜

    2023.11.26 17:39
  • [천자칼럼] 여야의 예타 농락

    대규모 공공사업에는 경제성 등을 따지는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미리 하도록 돼 있다. 긴급한 상황이나 정책적으로 필요한 사업에만 예외적으로 이를 면제해준다. 하지만 예타 면제는 취지와 다르게 선심성 카드로 남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에는 총선을 앞두고 각 지방의 공공사업 47건(36조원 규모)에 대해 예타를 면제해줬다. 지금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내용을 봐도 경제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거센 비난이 일었지만,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지방 균형 발전’ 논리로 깔아뭉갰다. “경제성만으로 평가하면 사람이 적은 지방 도시들은 불이익을 받게 되니 그런 곳의 사업들은 예타를 면제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민주당이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에서 눈길을 끄는 법안 하나를 강행 처리했다. “인구 50만 명 이상의 접경지역이 포함된 대도시권 광역교통시설 확충사업은 예타를 면제해준다”는 내용이다. 왜 50만 명이 기준인지는 설명조차 없다. 지방 도시도 안 된다. 오로지 서울과 맞붙은 접경지역의 50만 명 이상 도시만 광역교통시설을 확충해주겠다는 것이다. 경기 고양, 김포, 파주 등만 대상이다. 한마디로 “서울지하철 5호선의 김포 연장 사업을 예타 없이 해주겠다”는 것이다. 지난 총선 때는 “수도권에 비해 낙후된 지방만 예타를 면제해주겠다”고 했다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는 “수도권 도시만 예타를 면제해주자”고 했으니 얼마나 코미디 같은 노릇인가. 법안에 김포를 언급하지 않고 에둘러 표현한 것을 보면 본인들도 무안했나 보다. 또 황당한 것은 이 법안이 지난 2월 제안됐지만, 그동안 논의조차 안 됐다

    2023.11.24 17:40
  • [천자칼럼] 축하받은 '우주선 발사 실패'

    “우리에겐 딱 세 번 쏘아 올릴 정도의 여유 자금밖에 없습니다. 무슨 얘기인지 알죠?” 스페이스X가 첫 로켓인 팰컨1 발사를 앞두고 있던 2005년. 스페이스X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주요 기술 담당 직원들을 모아놓고 으름장을 놨다. 세 번 안에 무조건 성공하라는 지시였다. 하지만 첫 번째 로켓은 발사한 지 30초 만에 폭발했다. 이듬해 두 번째 발사와 세 번째 발사도 실패했다. 회사는 파산 위기에 몰린 상황. 머스크는 기술진을 회의실로 불렀다. 다들 머스크가 욕설을 쏟아내며 계획 중단을 선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스크는 “세 번이나 배웠다”며 “다시 한번 쏘아보자”고 격려했다. 회사의 운명을 건 이 네 번째 발사가 성공하면서 스페이스X는 로켓을 지구 궤도로 쏘아 올린 세계 첫 민간 기업이 됐다. 머스크는 직원들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워라밸’이라는 단어를 싫어하고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직원들에게 관대한 경우가 있다. 실패했을 때다. 성공에서 얻지 못하는 중요한 가치를 배울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한계가 어디인지,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 예상치 못한 변수는 무엇인지 오로지 실패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최근 스페이스X의 대형 우주선인 스타십이 2차 시험 비행에 실패했다. 240㎞ 상공까지 쏘아 올린다는 목표였지만 90㎞ 상공에서 폭발했다. 그나마 위안을 얻은 것은 지난 4월의 1차 때보다 4분가량 더 비행하면서 2단 로켓의 아랫부분을 분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스페이스X 사옥은 1차 실패 때처럼 ‘축제’ 분위기였다. 직원들은 우주선 폭발 광경을 보며 손뼉을 쳤고, 머스크는 자신의

    2023.11.20 18:04
  • [천자칼럼] '펜타닐'이 뭐길래

    독일의 전쟁 평론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명저 은 적의 힘을 약화하는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적의 전투력을 훼손하거나, 적의 후방 인프라를 파괴하는 식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방법은 물리력을 행사하는 대신 ‘정신력을 고갈시켜 피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 관점에서 전쟁을 본다면 미국에 역대 가장 심각한 타격을 준 나라는 중국이다. ‘사상 최악의 마약’으로 평가받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을 통해서다. 펜타닐은 천연재료에서 추출한 헤로인 등과 달리 각종 화학 재료를 합성해 만든다. 그만큼 만들기가 쉽다. 대부분 원료는 중국에서 생산된다. 그 뒤 제3국에서 합성을 거쳐 미국으로 넘어간다. 2000년대 들어 미국 내 펜타닐 중독자는 연일 쏟아지고 있다.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망자 수만 봐도 그렇다. 미국인이 가장 많이 사망한 전쟁은 2차 세계대전이다. 독일 이탈리아 등을 상대로 한 유럽 전선에서 28만 명, 일본을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에서 20만 명이 전사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합성 마약으로 사망한 사람은 30만 명을 훌쩍 웃돈다. 미국의 청장년층 사망 원인 1위가 펜타닐 중독일 정도다. 중국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총 칼 한번 휘두르지 않고 역대 전쟁 당사국들보다 미국에 심각한 타격을 준 셈이다. 여기에 각종 사회문제까지 더해진다.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의 유서 깊은 도시들은 대낮에도 펜타닐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이른바 ‘마약 좀비’가 넘쳐난다. 도시의 핵심 기반이 붕괴하고 범죄율은 치솟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현지시간) 열리는 정상회담에서 중국 내 펜타닐 원료 제조

    2023.11.15 17:48
  • [천자칼럼] '증시 불개미' vs '정치 개딸'

    “네가 대한민국 국민이냐?” “내 돈 어떡할 거야? 이 XX야.” 얼마 전 여의도 증권가에서 개인 주식 투자자들이 출근하는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둘러싸고 욕설을 퍼붓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 중년 남성은 어깨를 밀쳤고, 한 여성은 욱일기가 그려진 피켓을 들고 “매국노”라며 고함을 질러댔다. 이 애널리스트는 지난 4월 대표적인 ‘2차전지’ 관련주인 에코프로에 대해 “고평가됐다”는 보고서를 낸 한 증권사 연구원이다. 보고서 발간 후 이 증권사에는 ‘애레기’(애널리스트와 쓰레기 합성어)라는 항의가 이어졌고, 계좌 해지 건수도 급증했다. 요즘 개미 투자자들의 성향은 이처럼 공격적이다. 집단 시위를 하고 협박성 문자 폭탄을 날리는가 하면 직접 찾아가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최근 시끄러운 2차전지 분야에서 개미들의 배타적 성향은 특히 더하다. ‘매수’를 외치는 전문가와 유튜버들을 ‘추앙’하지만 업황을 깎아내리면 거침없는 비난을 쏟아낸다. 그 집단 린치의 수위를 따지면 인근 국회의사당 주변에 포진한 ‘개딸’들 못지않다. 정부가 최근 한시적 공매도 금지를 발표하면서 시스템 정비를 이유로 들었지만, 그 이면에도 과격한 언사로 정치권을 압박해온 극성 개미 부대가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공매도 금지 첫날인 지난 6일 2차전지 대표주들이 폭등했지만, 약발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후 3~4일간 급락하며 대부분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개미들은 이제 한술 더 떠 시장조성 역할을 맡은 증권사들의 공매도까지 금지해야 한다고 우기고 있다. 시장조성자는 주식 관련 상품의 거래 부진을 막기 위해 매수·매도호가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의 공매도를 막

    2023.11.10 18:01
  • [천자칼럼] 기업인의 수염

    “다음 인물들의 수염 중 누가 가장 멋진가.”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이 정보기술(IT)업계 거물들의 사진을 걸고 이처럼 뜬금없는 순위를 매긴 적이 있었다. 2008년이다. 2000년대 중후반 실리콘밸리 임원들 사이에 수염 열풍은 그만큼 거셌다. 스티브 잡스(애플 창업자), 래리 엘리슨(오라클 창업자), 스튜어트 버터필드(슬랙 창업자) 등 내로라하는 IT업계 거물들이 너도나도 수염을 기르던 시절이다. 수염은 ‘창의성’ ‘전문성’을 의미했고, 경영자에겐 ‘소탈함’과 ‘카리스마’의 상징이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수염을 처음 기른 것도 2006년, 카카오를 처음 꾸릴 때였다. 김택진(엔씨소프트 창업자), 송재경(넥슨 공동창업자) 등 국내 IT업계 거물들도 이즈음 수염투성이 얼굴로 활보하고 다녔다. 한국에서 수염의 후광 효과는 의외로 강렬하다. 일반 직장에선 좀처럼 허용되지 않다 보니 수염을 기르면 일단 ‘자유로운 영혼’이거나 조직에서 ‘웬만큼 높은 사람’을 의미한다. 정치인들에겐 곧잘 쓰이는 소품이다. 대통령 선거 출마를 앞두고 고뇌할 때는 수염을 기르는 게 다반사였다. 2016년 일선에서 물러나 네팔을 둘러봤던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민생 탐방에 나섰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그런 사례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도 칩거할 때는 관행처럼 덥수룩한 모습을 보였다. 수염의 효과 만큼 이를 깎는 행위가 주는 상징성도 크다. ‘쇄신’이자 ‘결단’이며 ‘부활을 위한 자기 파괴’다. 정치인이 출마 선언을 할 때나, 운동선수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수년간 길러온 수염을 미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다. 김범수 창업자도 면도하고 17년 만

    2023.11.07 17:51
  • [천자칼럼] 노동계 '파이터'들의 변신

    “민주노총의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권 퇴진 투쟁은 수없이 등장했는데 문재인 정부 때는 한 번도 없었다. …노란봉투법도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가진 거대 집권당 시절에 충분히 통과시킬 수 있던 법을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인제 와서 입법을 추진한다. 민주노총이 민주당의 하청을 받아 용역 투쟁을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내용만 보면 여당의 중견 정치인이 쓴 것 같지만 실제 이 글의 작성자는 강성 노동 운동가로 이름을 날렸던 정호회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변인이다. 최근 인터넷에 ‘나의 노동운동 실패기, 그리고 새로운 선택’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정 전 대변인은 2003년 화물연대를 조직해 파업을 주도한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노동 현장의 후배들에게 ‘뼈 때리는’ 질타를 하고 있다. 정 전 대변인은 과거 통합진보당 사태 때 보여준 노동계의 폭력성과 정치 편향성에 기가 질렸다고 한다. 여기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가 노동계를 떠나는 결정타가 됐다. 우리 편이 무조건 옳다는 진영논리가 충격이었다고 했다. 민주노총 조직실장 출신인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도 최근 기득권 노조의 구태를 비난하며 탈(脫)진보를 선언한 인물이다. 그는 “양대 노총 조합원 상당수는 이미 상위 50%의 기득권층”이라며 “재벌, 정부 탓만 하지 말고 먼저 무언가를 내놓겠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했다. 과거 노동운동가 중에서 보수진영으로 돌아선 사례는 왕왕 있다. 도루코 노조위원장 출신인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서울지하철공사 노조 설립을 주도한 배일도 전 한나라당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 전 대변인과 한 사무총장은 민주노총

    2023.11.0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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