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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기훈 필진
    홍기훈 필진 머니이스트외부전문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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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력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 위원
    홍익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홍익대학교 메타버스금융랩 소장

    *소개글
    다양한 현안들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경제/금융 개념들과 지식들을 쉽게 풀어 설명하려 합니다. 제 컬럼을 통해 독자들이 금융에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전쟁 때문에 만들어진 영국 중앙은행 [홍기훈의 슬기로운 금융생활]

    1694년에 설립된 영란은행(BOE)은 스웨덴 국립은행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중앙은행입니다. 프랑스 루이 14세(1643~1715년) 치세의 후반기는 전쟁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1688년부터 1697년까지 지속되었던 아우크스부르크 동맹과의 9년 전쟁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에 대항했던 국가들의 막대한 재정 지출까지 초래했습니다. 당시 알사스 북부의 팔츠 공작가에 남자 계승자가 없는 것을 틈타 루이 14세는 팔츠의 영토를 요구했습니다. 동생인 오를레앙 공작의 부인이 팔츠가 출신임을 근거로 말이죠. 이에 신성로마제국, 네덜란드, 에스파냐, 스웨덴이 1686년 아우크스부르크 동맹을 맺고 프랑스에 대항하면서 전쟁은 시작됐습니다. 잉글랜드는 명예혁명 이후 전쟁에 참여했죠.  9년 전쟁 참전국들은 겉보기에 유럽 대 프랑스 구도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반프랑스의 중심은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였습니다. 신성로마제국과 에스파냐는 발칸반도에서 오스만투르크와 전쟁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1690년 비치헤드 해전에서 56척으로 이루어진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주력 해군이 75척의 프랑스 해군에게 패배하자 잉글랜드는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들이 패전한 곳이 바로 잉글랜드 남단의 도버해협이었기 때문입니다.이로써 프랑스는 일시적으로나마 도버해협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잉글랜드 남부는 프랑스 육군이 당장이라도 상륙할 것 같은 공포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잉글랜드 정부는 해전에서 상실한 함선을 다시 건조하고 해군을 재건하기 위해 120만파운드의 군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국채를 발행합니다. 문제는

    2022.05.02 06:49
  • '글로벌 금융위기' 한국은행은 어떻게 고비를 넘겼을까 [홍기훈의 슬기로운 금융생활]

    우리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1998년 -5.7%의 경제성장률을 경험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협력을 통한 금융·기업 부문 구조조정 단행, 자본시장 개방을 통한 외국 투자금 유치로 빠른 실물경기 회복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2003년 3월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을 기점으로 신용카드사 유동성 위기가 온 것을 제외하면 2008년까지 우리 경제는 글로벌화에 발맞추어 상대적으로 높고 안정된 경제 성장을 경험했습니다.당시 자본시장을 개방하고 경제가 글로벌화됨에 따라 해외자본 유출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로 인해 국내 자본시장의 불확실성은 확대됐습니다. 증가한 해외자본의 유출입은 국내 자본시장과 해외자본시장의 동조화를 가져왔습니다. 글로벌 경제환경 변화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또한 커졌습니다. 2008년 9월 미국의 4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리먼브라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시작한 금융위기는 전 세계를 덮쳤고 세계 금융시장의 유동성이 급격하게 줄어들며 경기가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국내금융시장도 리먼 사태의 영향으로 매우 불안정해졌고 자본시장의 유동성이 줄어드는 시그널이 포착됐습니다.2003년 신용카드사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었을 당시, 한국은행은 유동성 위기가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시장 안정 대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통해 2조원의 단기유동성을 지원하고 국고채 매입과 통화안정 증권의 조기상환을 통해 추가로 2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한 경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2022.04.04 06:42
  • 'IMF 외환위기' 한국은행의 위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홍기훈의 슬기로운 금융생활]

    한국은행은 아시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역할이 변했습니다. 한국은행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3월26일 외환위기 도래 가능성을 예상합니다. 이에 청와대와 재정경제원에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외화를 긴급차입하는 비상대책을 강구할 것을 건의합니다.그러나 한국은 외환위기를 미연에 방지하는 데 실패합니다. 결국 1997년 12월 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미국, 일본, 영국, 캐나다 등에서 총 55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게 됩니다. 구제금융과 동반해 민영화를 수반한 경제 전반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나게 됩니다. 경제 전반의 변화에 발맞추어 당해 12월31일 한국은행의 역할을 선진국들의 중앙은행 역할과 발맞추도록 한국은행법이 개정됩니다. 1997년 한국은행법 개정으로 한국은행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립기관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1990년대까지 행정부(기획재정부)는 한국은행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97년까지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 관련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핵심조직인 금융통화위원회의 위원장이 재무부 장관이다는 것만 봐도 한국은행에 대한 행정부의 개입 정도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1997년 개정으로 금융통화위원회의 위원장은 한국은행 총재가 겸임하게 됩니다. 또 통화신용정책이 신설되어 한국은행은 매년 정부와 협의해 물가 안정 목표를 정할 수 있게 됩니다. 이를 포함하는 통화신용정책 운영계획을 수립 및 공표하는 역할도 수행하게 됩니다.더불어 정부·국회와의 관계도 신설됩니다. 한국은행은 연 1회 이상 통화신용정책 수행 상황 보고서를 작성해 국회에 제출하고, 총재는 국회 또는 그 위원회

    2022.03.07 06:56
  • 개발도상국 시절, 한국은행은 어떤 일을 했을까 [홍기훈의 슬기로운 금융생활]

    지난 칼럼에서 전시 속 한국은행의 역할과 화폐개혁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면, 오늘은 한국이 개발도상국으로서 자리했을 당시 중앙은행이 수행한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2년 1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합니다. 농업 생산력 증대, 에너지 공급원 확충, 기간산업 및 사회간접자본 확충, 유휴자원 활용, 수출증대를 통한 국제수지 개선이 목표했습니다. 국가 경제 발전의 바탕이 되는 식량, 에너지, 사회간접자본 구축을 위해서 막대한 양의 투자가 필요했습니다.같은 해 5월 24일 경제개발 금융지원을 목적으로 한국은행법이 개정됩니다. 이로써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신용·외환에 관한 정책의 수립' 기능이 아닌 '통화·신용의 운영관리에 관한 정책의 수립' 기능을 수행하도록 그 권한과 업무 범위가 축소됩니다. 또 외환 정책 업무는 정부로 이관되고 한국은행은 재무부의 인가를 받은 외국환 업무만을 수행하게 되죠. 외환 정책의 주도권을 빼앗긴 겁니다.1962년 한국은행법 개정은 한국은행 독립성을 축소하는 결과를 이끌었습니다. 한국은행이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역할에 그치도록 한 것이죠. 이는 행정부가 경제성장에 필요한 투자 자금을 직접 조성하고 전략적으로 배분하는 과정을 수행토록 하려는 조치였습니다. 또 한국은행은 민간기업의 부채 보증을 통해 민간 신용도를 높여 기업이 투자금을 끌어올 수 있게 했습니다. 물론 투자 자금의 원천은 외국에서의 차관이었습니다.간단하게 말하자면 정부가 외국에서 자본을 직접 끌어와 한국은행과 금융기관에 전략적으로 배분하거나, 한국은행

    2022.01.31 09:00
  • 북한이 빼앗아간 금과 은, 한국은행은 어떻게 살아났을까 [홍기훈의 슬기로운 금융생활]

    지난 칼럼에서 한국전쟁 당시 한국은행이 보유했던 금은괴의 행방에 대해 알아봤다면 오늘은 전시 속 중앙은행이 수행했던 역할에 대해 보다 면밀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전쟁 발발 직후 피난으로 미처 챙기지 못한 16톤(t) 이상의 금과 은 그리고 다량의 조선은행권은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게 빼앗깁니다. 피난 중인 한국은행이 보유한 현금은 40억원가량. 조폐공장까지 북한이 점령하면서 전쟁을 수행하던 대한민국 정부는 재정난에 직면하게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은 노획한 조선은행권을 시중에 풀어 대한민국 정부가 보유한 조선은행권의 가치를 낮아지도록 조치합니다. 여기에 북한의 화폐인 인민권마저 남한 점령지에 통용하면서 전시 대한민국의 경제는 일대 혼란에 빠지죠. 안정적으로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고 화폐의 가치와 신뢰를 유지해야 하는데, 북한의 통화공작이 높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대한민국 정부가 이용해오던 조선은행권의 가치는 급락합니다. 조선은행권을 기반으로 하는 화폐경제의 신뢰까지 흔들리게 되죠. 이에 한국은행은 조선은행권 사용을 막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1950년 8월 28일 대통령 긴급명령 제10호로 '조선은행권 유통 및 교환에 관한 건'을 공포해 조선은행권의 유통을 금지합니다. 이후 조선은행권은 1대 1로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한국은행권으로 등가교환 될 수 있도록 합니다. 이 교환은 1950년 9월 15일을 시작으로 1053년 1월 16일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고, 당시 유통되던 조선은행권 총액 777억원 중 720억원이 한국은행권으로 교환됩니다. 1950년 시작된 화폐개혁은 화폐의 신뢰성 유

    2022.01.02 09:55
  • 한국은행에 있던 금괴·은괴는 어디로 갔을까 [홍기훈의 슬기로운 금융생활]

    일제 강점기 약 34년간 중앙은행의 역할을 담당했던 조선은행은 해방 후 미 군정청 소유로 넘어갔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에 이양되었습니다. 이후 환은통합과 한국은행법을 통해 1950년 6월12일에야 한국은행은 정식으로 업무를 개시할 수 있었죠. 저번 칼럼에서 한국은행의 설립과정에 대해 이해했다면 오늘은 한국전쟁 당시 한국은행이 보유했던 금은괴의 행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한국전쟁은 한국은행이 정식으로 업무를 개시한 지 2주가 채 되지 않아 발발했습니다. 당시 중앙은행이 보유 중인 금은괴의 행방은 경제 생태계 유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영역이었습니다. 당시 주한 외교관들이 한국은행 외국부에서 외화예금 65만달러를 인출한 뒤 출국을 시도하면서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가 사실상 바닥을 드러내는 위기를 맞기도 합니다.일제 해방 당시 한국은행은 금 1.3톤과 은 18.5톤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미발행은행권 105여억원까지 보유 중이었죠. 이 금은괴는 화폐와 금융질서 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산이었습니다. 이를 보호하기 위해 당시 구용서 한국은행 총재는 군 트럭을 이용해 한국은행 지하 금고에 있던 금괴 1.1톤, 은괴 2.5톤을 진해 해군 경리부 창고로 반출합니다. 이전 일본에서 인쇄된 조선은행권 3억원을 조선으로 공수해와 미군에 인계했던 경험에 따른 것이죠. 이후 한국은행 직원들이 서울에 남아 금융기관들의 철수를 도왔고 북한군이 서울에 진입하자 한강 인도교를 건너 철수합니다. 이들은 임시정부의 이동에 따라 대전, 대구를 거쳐 부산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금은괴와 함께 신라 금관 등의 국보 124점까지 인수해 진해 해군 경리부로

    2021.12.08 08:54
  •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은행은 어떻게 살아났나 [홍기훈의 슬기로운 금융생활]

    한국은행은 통화정책과 물가 안정을 통한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설립된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입니다. 정치적 중립을 통해 외부의 간섭없이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한국은행은 통화·신용 정책의 연구 및 결정, 국내외 경제·금융 조사, 금융 시스템 건전성 관리, 지급결제시스템 관리, 경제통계 산출, 원화 발권, 외환보유액의 관리, 국제금융기구와 협력 등의 업무를 수행하죠. 저번 칼럼에서 한국은행의 역할에 대해 이해했다면 오늘은 한국은행의 설립 과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05년 이전 대한제국(1897~1910) 시대에는 백동화와 엽전이 유통됐습니다. 1905년 종결된 러일전쟁 승리 후 대한제국에 화폐 발행권을 뺏어온 일본은 백동화와 엽전을 자국의 상업은행인 제일은행(第一銀行: 다이이치긴코)이 발행한 화폐로 대체하는 화폐정리사업을 실시했죠. 이때 일본 제일은행에 발행된 화폐가 조선 엔화입니다. 화폐정리사업을 통해 일제는 대한제국의 재정과 유통체계를 장악했습니다. 화폐정리사업이 마무리되던 1909년 10월 통감부가 설치한 대한제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제일은행의 발권 기능을 승계합니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난 후인 1911년 3월 조선은행법에 따라 개칭된 조선은행은 일제 강점기 약 34년 동안 중앙은행의 역할을 수행하죠.해방 후 미군정은 대한민국 원을 법정 통화로 정하고 조선 엔의 가치를 무효화시킵니다. 군정법령 21호에 의해 미 군정청 소유로 조선은행은 존속하게 되고 여전히 중앙은행의 역할을 수행하죠. 단, 일본인 소유의 모든 재산이 군정청으로 귀속되도록 해 조선은행은 군정청 직속 기관이 됩니다. 이후 1947년 6월 16일 외국과의 무역

    2021.11.03 08:25
  • 한국은행, 정부와의 갈등 피할 수 없다고? [홍기훈의 슬기로운 금융생활]

    중앙은행은 화폐 발행 및 통화량 조절, 금융 안정을 위해 운영되는 은행입니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는 하나의 중앙은행을 가지고 자국의 화폐를 관리하죠.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의 중앙은행은 한국은행입니다. 저번 칼럼에서 중앙은행이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살펴본 만큼 오늘은 한국은행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한국은행은 통화·신용 정책의 연구 및 결정, 국내외 경제·금융 조사, 금융시스템 건전성 관리, 지급결제시스템 관리, 경제통계 산출, 원화 발권, 외환보유액의 관리, 국제금융기구와 협력 등의 업무를 담당합니다. 대한민국의 GDP(국내총생산) 역시 한국은행에서 작성해 발표하죠. 한국은행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인 한국은행법은 한국은행의 목적, 형태, 정책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국은행법 제1, 2, 3조는 다음과 같습니다.제1조(목적)① 이 법은 한국은행을 설립하고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②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에는 금융안정에 유의하여야 한다.제2조(법인격) 한국은행은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한다.제3조(한국은행의 중립성)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도록 하여야 하며, 한국은행의 자주성은 존중되어야 한다.한국은행법을 통해 우리는 한국은행의 설립 목적이 통화정책, 물가안정을 통한 국민경제 발전에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은행의 정책은 정치적으로 중립 되어야 하며 외부의 간섭없이 자율적으로 집행되어야 한다는

    2021.10.02 07:26
  • '기준금리' 결정하는 중앙은행, 이것까지 한다고?[홍기훈의 슬기로운 금융생활]

    저번 칼럼에서는 코인이 화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통해 화폐의 기능과 본질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렇다면 화폐가 시작되는 곳, 즉 화폐 발행을 결정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중앙은행입니다. 한국의 중앙은행은 한국은행이죠.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지난 8월26일 기준금리를 0.5%에서 0.75%로 0.25% 인상하기로 결정한 곳이 바로 한국은행입니다.'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 교수는 자신의 경제학원론 교과서에 인류 3대 발명품 중 하나로 화폐(중앙은행제도)를 선택했죠. 미국의 유명한 배우이자 컬럼니스트인 윌 로저스(Will Rogers)는 인류의 3대 발명품으로 불, 바퀴, 중앙은행을 꼽았습니다. 윌 로저스는 중앙은행의 존재가 불과 바퀴의 가치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중앙은행은 화폐 발행 및 통화량 조절을 위해 운영되는 은행으로 일반적으로 한 국가는 하나의 중앙은행을 가지고 자국의 화폐를 관리합니다.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은 스웨덴 왕립 재정은행(Riksens Ständers Bank)으로 1668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스웨덴 왕립재정은행은 1656년 요한 팔름스트루흐가 설립한 스톡홀름 은행의 업무를 이어받았고 스톡홀름 은행은 유럽에서 최초로 지폐를 발행했죠. 흥미로운 사실은 유럽에서 최초로 전자화폐 발행을 선언한 중앙은행 또한 스웨덴의 중앙은행이라는 점입니다.1866년 스웨덴 국립은행(Sveriges Riksbank)으로 명칭을 변경한 뒤, 1897년에는 중앙은행으로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 스웨덴 국립은행의 본점은 스톡홀름에 있으며 유럽 중앙은행 체제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국립은

    2021.09.20 06:44
  • 코인은 미래 화폐가 될 수 있을까? [홍기훈의 슬기로운 금융생활]

    2021년 코인 시장은 뜨거웠습니다. 올해 비트코인의 가격은 2배 이상 급등했고 이더리움은 그 이상 폭등했었습니다. 도지코인을 포함한 알트코인의 가격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도지코인의 경우 한때 약 2만5000%가 상승한 경우도 있습니다.코인의 가격 변동성이 높아지자 코인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에 다시 코인이 화폐 또는 미래의 화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코인이 주목받을 때마다 코인이 법정 화폐를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을 보면 코인을 (원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궁극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디지털화폐로 삼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화폐의 기능이 무엇인지 그리고 화폐로 받아들여지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코인은 화폐일까?"라는 물음에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화폐의 기능과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 교수는 자신의 경제학원론 교과서에 인류 3대 발명품으로 불, 바퀴와 함께 화폐(중앙은행제도)를 꼽은 바 있습니다. 폴 새뮤얼슨은 화폐를 불과 바퀴만큼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만큼 화폐는 현대 경제시스템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 화폐를 이용하면 직접 물물교환을 하는 것보다 훨씬 간편하고 낮은 비용으로 거래할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화폐는 '교환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화폐는 물건의 거래를 싸고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물건을 사고파는 데 화폐를 이용하기 때문에 상품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2021.09.0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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