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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감된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특허권 신청에는 21개 기업이 몰렸다. 15년 만에 허용되는 신규 특허인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대기업 두 곳을 뽑는 일반경쟁 부문에는 7개 기업이, 중소·중견기업 제한입찰에는 14개 업체가 참가했다. 특히 대기업 면세점은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다. 참여 업체들은 평가에서 15%를 차지하는 ‘기업이익 사회환원 및 상생협력 노력’에서 만점을 받기 위해 사회적 공헌 계획을 발표하는 홍보전까지 벌이고 있다.中·日 달려가는데 규제정책만아주 정상적인 것 같은 이 모든 것이 코미디로 보이는 건 왜일까. 외국인 관광객, 특히 요우커(중국인 관광객)를 상대로 하는 면세점을 다루는 시각이 지나치리만치 국내적이기 때문이다. 면세점은 한국이 세계 1등을 달리고 있는 분야다. 지난해 매출이 8조3000억원이나 된다. 기업이라면 당연히 1등 자리를 지키기 위한 수성전략과 경쟁자들을 따돌릴 차별화전략을 짜고, 전사적 역량을 집중해야 마땅하다. 규제당국인 관세청이 칼자루를 잡고 있어서 그런지 면세점을 키우기는커녕 경제민주화와 대·중소기업 상생 등의 논리에 빠져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13년에 나온 ‘면세산업을 통한 중소기업 지원대책’은 중견·중소기업에 우선권을 주겠다는 게 골자다. 면세점 내 중소기업 제품 매장 비율을 25%로 늘리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산업 전체를 키우겠다는 그림은 전혀 없다.이러는 사이 경쟁국들은 한참 달려가고 있다. 면세점 세계 3등 중국은 지난해 9월 하이난섬 산야에 세계 최대 규모 면세점인 CDF몰을 열었다. 총면적 7만2000㎡로, 한국 최대인 롯데월드면세점의 여섯 배가
조선시대 당취(黨聚)라는 조직이 있었다.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승려의 지위가 땅에 떨어지자 떠돌이 중들이 모여 만들었다. 집단화하다 보니 몰려다니며 수행승이나 학승을 괴롭히기도 했다.그런데 이 당취가 세력이 강할 때는 불교의 감찰단 같은 역할도 했다. 사회적으로 큰 잘못을 저지른 중이 있으면 당취 승려가 체포해 금강산까지 끌고가 절벽에서 밀어뜨려 죽였다. 그런데 절벽 앞에서 반드시 행하는 마지막 의식이 있었다. 선문답이었다. ‘개에도 불성이 있는가’ 하는 식의 화두를 던졌다. 이 선문답에서 잡혀온 이가 당취승려보다 고승임이 확인되면 살려주었다. ‘깨달은 사람’에 대한 존중이다.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기가 그만큼 어렵다.불교에서 개인적인 깨달음을 중시하는 것이 선종(禪宗)이다. 중국 선종은 남북조시대 인도에서 건너온 달마대사로부터 시작됐다. 수행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참선이 주로 이용된다. 가만히 앉아 화두를 붙잡고 몰입하거나, 번뇌와 잡념을 없애는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요즘 쉬운 말로 하면 명상이다.명상의 가치는 이미 입증됐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명상에 빠진 일은 유명하다. 빌 게이츠도 매년 1주 정도는 ‘생각 주간’으로 정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명상을 한다.긍정심리학에선 명상을 행복추구활동으로 본다. ‘몰입(flow)’ 전문가인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어떤 일에 집중해 다른 생각 없이 몰입할 때 문득 행복해지는 순간이 온다”고 강조한다. 수년 전 그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몰입이 참선과 뭐가 다르냐”고 묻자, 그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기타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기억하는 팝송이 있다. 특히 ‘386세대’에 속하는 많은 남녀들에게 첫 블루스의 추억을 남긴 노래가 바로 ‘원더풀 투나잇’이다. 클럽이라는 문화가 아직 없던 1980년대 고고장에서 ‘블루스 타임’마다 흘러나오는 단골 레퍼토리였다. 이 감미로운 노래를 만들고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까지 부른 뮤지션이 에릭 클랩튼(70)이다.클랩튼은 원래 노래보다는 기타연주로 훨씬 유명하다. 그와 함께 지미 페이지, 제프 벡 등을 묶어 ‘세계 3대 기타리스트’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들은 모두 영국 출신이어서 ‘영국 3대 기타리스트’가 옳은 표현인 것 같다. 제프 벡 대신 미국 출신의 지미 헨드릭스를 넣어 ‘세계 3대 기타리스트’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어쨌든 클랩튼은 빠지지 않는다.록기타 역사에서 클랩튼은 ‘기타의 신’ ‘슬로 핸드’라는 별명만큼이나 신적인 존재다. 그만이 갖고 있는 리듬감과 포근하고 화사한 톤, 그리고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각종 연주기법 등은 세계 수많은 기타리스트가 밤을 새워가며 그의 연주를 따라하게 하는 이유다.그룹과 솔로 활동으로 수많은 히트곡을 냈지만 그의 인생에는 두 번의 곡절이 있었다. 1970년대 중반 그는 비틀스 멤버 조지 해리슨의 작업을 도와주게 된다. 그때 클랩튼은 해리슨의 아내인 패티 보이드와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이것이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인도문화와 명상에 빠져 가정을 등한시하는 해리슨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보이드의 질투 유발 작전이었던 것이다. 보이드와의 짧았지만 행복했던 시절에 만든 노래가 바로 ‘원더풀 투나잇’이다. 보
미국 LPGA 프로들이 한국 선수들에게 ‘다음 대회 때는 꼭!’ 하면서 사다달라고 부탁하는 물품이 2개 있다고 한다. 하나는 태양 아래서 경기해야 하는 여자선수들답게 비비크림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커피믹스다. 적절한 흥분상태가 필요해 커피를 챙겨 마시는 프로선수들에게 언제든 갖고 다니며 순식간에 뚝딱 타먹을 수 있는 믹스가 이미 ‘머스트 해브(must have)’ 아이템이 된 것이다.커피믹스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커피 상품을 만들어낸 한국의 혁신 사례다. 1976년 동서식품이 커피, 크림, 설탕을 적절하게 섞어 일회용으로 출시한 것이 최초다. 처음에는 직사각형이었다가 1987년께 스틱형으로 바뀌었고 1996년에는 설탕도 조절할 수 있게 개선했다. 2008년엔 쉽게 뜯을 수 있도록 디자인을 바꿨고 최근에는 원두커피만 넣은 상품도 나와 새로운 인기를 끌고 있다. 제조공정에서 절대 습기가 안 들어가게 해 가루가 굳지 않도록 하는 기술은 국내 업체들이 세계 최고다.커피믹스가 국민적 유행을 타게 된 것은 외환위기 때와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던 1990년대 말이다. 당시 ‘커피 타 줄 여직원’이 사라지는 바람에 일정한 커피맛을 보장하는 믹스가 직장을 중심으로 퍼져갔다. 그 사이 커피체인점이 많아지면서 원두커피를 선호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커피믹스의 인기는 여전하다. 지난해 국내 커피믹스 시장은 1조5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성인들이 커피를 1주에 12.2잔, 1년에 약 630잔 마시는데 이 가운데 40%가 믹스커피다. 믹스커피는 3일에 두 잔 정도를 마시는 셈이다.수출에서도 효자상품이다. 일본, 중국, 러시아, 베트남, 동남아 등지에 수출되는데 특히 중국은 ‘달달한’
티몬이란 이름으로 더 알려진 티켓몬스터는 청년 다섯 명이 3억원의 자본금으로 2010년 5월 창업한 벤처다. 출범과 동시에 놀라운 성과를 내던 이 회사는 1년3개월 만에 글로벌 소셜커머스업체인 리빙소셜에 팔렸다. 매각 대금이 3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눈부신 성공 이후 직장인들 사이엔 ‘티몬 현상’이란 게 생겼다. 아이디어만 좋으면 언제든 창업해서 갑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복잡성 높아지면 위기에 둔감묘한 것은 기업이 ‘티몬 현상’에 관심을 갖고 이를 회사 차원에서 활용해보려 한다는 얘기는 듣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대기업이라면 티켓몬스터 같은 벤처회사를 순식간에 수십 개 만들거나 인수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물론 이해는 간다. 미래가 확실히 보이지 않으니 해오던 일을 하는 게 낫다고 믿는 것이다.그러나 수년 전 노키아 사례를 생각해 보면 이런 태도는 정말 위험하다. 시장 점유율이 40%를 넘어 세계 1위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던 노키아가 2009년 갑자기 무너진 것은 기술 때문이 아니었다. 독자적인 기술이 아니라 협력 파트너들과 공생하는 생태계 경쟁력이라는 새로운 장이 펼쳐졌고 노키아는 외톨이로 떠돌다 망했다.연구에 따르면 수천년 이어온 문명도 붕괴될 때는 이렇게 하루아침에 망한다. 공통적인 패턴도 있다. 서서히 다가오는 위기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임기응변적으로 대응하다가 멸망의 사인이 갑자기 올 때는 거의 자포자기에 이른다는 점이다. 마야문명을 예로 들면 위기는 물 부족에서 왔다. 결국 전염병이 창궐하고 지하수까지 말라가자 난리가 났다. 마야문명 말기엔 기우제를 지내며 처녀는 물론 영아도
1945년 5월8일 오후 10시43분 베를린 소련군 사령부. 독일군 원수 빌헬름 카이텔이 소련의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를 비롯한 연합군 대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시차가 두 시간 빠른 모스크바 시간으로는 5월9일 0시43분이었다. 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일이 유럽 국가에선 5월8일, 러시아와 옛 소련 국가에선 5월9일로 서로 다른 이유다.독일군은 이보다 앞서 5월7일 프랑스 연합군 사령부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스탈린이 소련 대표가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베를린에서 서명해야 한다고 반발해 다시 이뤄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의 역할은 그만큼 컸다. 무엇보다 희생자가 많았다. 당시 소련 인구가 1억6000만명이었는데 2700만~2800만명이 전쟁 중 사망했다. 소련군은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바다 건너에서 구경하는 사이 동유럽 전선에서 고군분투했다. 100만명이 넘는 시민이 굶어 죽어가면서도 지켜낸 레닌그라드 봉쇄전, 독일군의 불패 신화를 깨뜨린 스탈린그라드 공방전 등이 2차대전의 승기를 잡는 분수령이었다. 전쟁 막바지 베를린 점령 작전에서만 소련군 1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러시아 전승기념일인 5월9일이 공식적인 2차 세계대전 승전일로 인정받고 있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서방국가들의 부채 의식이 있었다는 얘기다.그러나 스탈린 정권의 부패와 무자비한 숙청, 세력 확산을 위한 공포 및 정보 정치, 북한 등 위성국가 건설을 통한 이념전쟁 등 이후 소련이 저지른 악행들이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공헌을 점점 잊게 만들었다. 특히 서방과의 냉전 과정에서 러시아 전승기념일은 점점 잊혀져 갔다.러시아가 전승기념일을 외교무대로 활용하게 된 것은 베를린
‘의리’는 조폭의 단어다. 조폭이 아니더라도 특정한 조직의 내부 응집력에 대해 말할 때 의리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 사람 의리 있다”는 말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무언가를 희생한 사례들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이 독특한 단어를 통해 공동체의 내밀한 규칙이나 관습, 묵계를 지키는 어떤 행위를 상상한다.그러나 국가에 대해 의리를 지켰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국가에 대해서는 충성심이나 애국심이 있을 뿐이다. 애교심이나 애사심도 유사한 경우다.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뜻으로 의리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관계에 한정해서만 이 말을 쓴다. 그런 의미에서 의리는 공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책무가 아닌 개인들 간의 은밀한 협력 관계를 일컫는다.어떤 기업은 ‘의리’라는 단어를 사훈으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몇 번의 불미스런 사고가 터진 뒤 그 사훈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회사는 조폭과는 분명 구성 원리가 다르므로 직원의 행동규범으로 의리를 내세우는 것은 맞지 않는다. 충직이라는 말은 조직에 대한 헌신으로 대체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냐, 조직이냐 하는 점에서 의리와 충직은 적용 범위가 크게 다르다.성완종의 최후 진술에 소위 의리 4인방이 올라 화제다.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김태흠 4명이 그들이다. 성완종이 말하는 의리는 무엇일까. 조폭들이 의리를 지켰다고 말할 때는 주로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자백 아닌 침묵을 지킨 경우를 말한다. 이때의 의리는 자백 즉, 배신의 반대말이다. 성완종 메모에서의 의리도 필시 사적인 의리임이 분명하다. 전후 문맥을 보면 국회의원으로서 성실성이나 충직성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리스트가 일파만파의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다. 메모에 거명된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언론이 경쟁적으로 보도하면서 파장은 커져만 간다. 국민은 정치인들이 받았다는 억대가 넘는 돈 얘기에 혀를 찬다. 여론은 특히 뇌물에 민감하다.뇌물은 인류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미국 연방법원 판사를 지낸 존 누난은 뇌물의 역사에서 기원전 15세기 고대 이집트에서도 공정한 재판을 왜곡한다며 뇌물을 단속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적었다. 성경에도 ‘은밀히 안기는 선물은 화를 가라앉히고, 몰래 바치는 뇌물은 거센 분노를 사그라뜨린다’(잠언 21장 14절)고 기록돼 있다.우리 역사에서도 뇌물 얘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의 연개소문에게 억류됐다가 푸른색 베를 뇌물로 주고 풀려났다는 얘기부터 고려 조선시대 왕의 외척이나 지방 탐관오리들이 매관매직을 하면서 뇌물을 받았다는 얘기는 숱하게 나온다.중국에서 ‘관시(關係)’를 넓혀나가려면 선물과 뇌물은 기본이다. 중동에도 ‘와스타(wasta)’라는 게 있는데 아랍어로 인맥이란 뜻이다. 수수료와 뇌물, 그리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등을 의미하는 단어다. 상인들이 권력과 결탁하면서 뇌물의 종류는 점점 다양해졌다. 뇌물은 돈이나 선물이 전형적이지만 예전에는 고기나 쌀 같은 음식이 주로 사용됐다. 금덩어리는 단골 메뉴였고 최근에 와서는 그림, 주식 등이 뇌물로 쓰인다. 뇌물은 관례적으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기 때문에 칭찬이나 아부는 뇌물로 보지 않는다. 다만 성접대는 명백한 뇌물로 본다.현대에 와서는 국제 거래에서도 뇌물 단속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미국
서울시가 일본식 한자어 등 행정용어 23개를 순화해 쓰기로 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견출지는 ‘찾음표’로, 시말서는 ‘경위서’로, 식비와 식대는 ‘밥값’으로 바꾼다는 식이다.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재 잔재를 우리말로 순화하겠다는 뜻은 이해한다. 그러나 23개 용어 정도로 될 일이 아니다.연구에 따르면 민법에서 일본식 민법용어를 그대로 차용한 어휘가 60%나 된다. 우리가 쓰는 말에 일본식 한자가 이렇게 많은 것은 19세기 말~20세기 초 근대화 과정에서 한 발 앞선 일본이 서양 용어를 한자어로 먼저 번역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강점기간 동안 한국에 일본식 한자가 대량 유입됐다.일본은 서양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조어력이 좋은 한자를 사용해 수많은 개념어를 선점했다. 이 작업에는 후쿠자와 유키치, 니시 아마네 등 당대 학자들이 참여했다. 희랍어에 연원을 둔 필로소피(philosophy)를 밝은 학문이라는 뜻의 ‘철학(哲學)’으로, 에듀케이션(education)은 가르치고 기른다는 ‘교육(敎育)’으로 번역했다. 기존 한자어의 의미를 잃고 현대적 의미를 갖게 된 문화, 경제, 자유, 대학, 민주, 회사 등이 모두 일본식 한자다.일본은 조어법을 발전시키며 글로벌 용어들을 계속 번역해왔다. 원래 쓰이던 한자어에 새로운 의미를 넣는 방법을 보면 ‘죄인들을 놓아 보내다’는 말인 방송(放送)은 ‘전파를 활용한 매스컴’이란 뜻을 갖게 됐다. 초상화의 뜻으로 쓰였던 사진(寫眞)은 포토그라피(photography)를 번역하는 데 썼다. 각각의 한자를 합쳐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에어포트’를 번역하면서 하늘(空)과 항구(港)를 합쳐 공항이
노동유연성이란 어쩌면 간단한 얘기다. 기업이 직원을 쉽게 뽑을 수 있고, 또 언제든 내보낼 수 있을 때 ‘유연’하다고 말한다. 노동유연성이 높으면 기업이나, 일단 어디라도 들어가고 싶은 구직자에겐 좋은 일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보호하기 어려워지니 싫어한다. 한 번 입사하면 어지간해선 해고할 수 없는 ‘경직’된 규칙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노동유연성을 높이는 것을 포함한 노동시장 개혁을 노·사·정 합의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그래서 난센스다.일자리 만든 이케아, 효성ITX노·사·정 합의가 불발에 그쳤다고 시장이 멈춰 있는 건 아니다. 노동유연성을 높이려는 시장 주체들의 노력은 이미 시작됐다. 이케아는 최근 아르바이트 사원을 뽑으면서 시급을 1만원으로 높여 정규직과 비슷한 처우를 제시했다. 채용해서 일을 못하면 계약 만료 때 내보내면 되고, 잘하면 정규직으로 바꿔주면 된다. 구직자로서도 선택할 만한 차선이다. 사실 이런 글로벌 회사에서 잠시라도 경력을 쌓은 것이 나중에 더 보탬이 될 수도 있다.콜센터 운영업체인 효성ITX도 유연근무의 새로운 사례를 보여줬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일할 신입 상담사 94명 전체를 정규직 시간선택제 사원으로 뽑은 것이다. 이들은 오전이나 오후를 골라 하루 4시간30분만 근무하면 된다. 월급은 88만원밖에 안되지만 직원들의 만족도는 아주 높다. 이런 제도가 없었으면 육아 문제 등으로 아예 취업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사실 주변의 구직자들을 보면 딱딱한 기존 노동시장 구조로는 답이 안 나온다. 40~50대 주부, 50~60대 은퇴자들을 길게는 10년 이상 자리를 보장해주면
정통 시사·경제 논평 인터넷 방송인 정규재tv( jkjtv.hankyung.com )가 누적 방문자 수 2000만명을 돌파했다. 2012년 2월13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실 옆 작은 방에서 1인 미디어로 시작한 지 3년2개월 만이다. 8일 현재 누적 조회 건수는 2000만11건이다. 연예 콘텐츠가 아니어도, 또 지상파 등 방송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콘텐츠 리더십(contents leadership)을 발휘할 수 있...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덕분에 오랜만에 삼국유사를 다시 찾아보게 됐다. 그가 새정련의 개혁을 얘기하면서 웅녀(熊女) 얘기를 인용했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지난 29일 대표 취임 50일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단군신화에서 곰이 100일간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으로 변했지 않나. 우리 당도 앞으로 50일을 더 먹어야 제대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왜 하필 곰 얘기를 했을까. 삼국유사에 나오는 관련 대목은 정확히 이렇다.“이에 환웅이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그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그때 인간의 모습을 얻을 것이라(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받아서 먹었다. 삼칠일을 참아내자,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다. 호랑이는 참아내지 못하고 결국 인간의 몸을 얻지 못했다.”자세히 읽어봐도 특별히 이 신화로 전할 메시지는 없어 보인다. 삼국유사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단군의 모계혈통이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으로,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과의 경쟁에서 이긴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 민족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끈기의 덕성을 더 높은 가치로 본다는 해석을 하는 이들도 있다.문 대표는 새정련의 변화가 매운 마늘과 쓴 쑥을 먹는, 즉 신고(辛苦)의 과정을 겪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새누리당은 빠르게 변화하고 우리 당은 정체해 있다” “당원 평균 연령이 58세라니, 늙은 정당”이라고 부연설명한 대목을 보면 그의 절박한 심정이 느껴진다.그러니까 문 대표는 새정련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정당
은퇴하면 누구나 가는 곳이 산이다. 근교의 산은 입장료도 없고 어디라도 사람이 많아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친구라도 만나 막걸리에 파전이면 하루가 편하다. 그러나 은퇴 직후 프로그램으로 나홀로 등산은 권할 만하지 않다. 중장년이 돼 산에서 만나면 이제까지 살아온 실적과 영광은 사라지고 다 같은 처지가 된다. 회한만이 더 많아질 뿐이다.산이 정말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차라리 당구장을 갈 일이다. 당구는 비교적 싸게 즐길 수 있는 장점뿐만이 아니라 실력이 늘어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스포츠’다. 요즘은 당구 전용 텔레비전이 생겨 토브욘 브롬달 같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경기를 볼 수도 있다.당구는 나이가 들수록 실력이 나아지는 몇 안 되는 운동 중 하나다. 각도를 계산하고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운동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라도 20대 때 당구공이 잠잘 때 천장에서 왔다갔다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운동이었다. 많을 땐 전국에 4만개의 당구장이 있었을 정도다. 특히 재닛 리 등의 포켓볼이 유행할 때가 전성기였다.그러나 최근에는 당구장이 약 2만개로 줄었다. 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일까. 맞는 말이지만 원인은 당구장끼리의 경쟁이 아니었다. 바로 노래방, PC방, 실내 골프게임장 등이 경쟁 대상이었다. 중장년들은 당구장 대신 산으로 떠났다. 이런 대체재들에게 당구장은 손님을 빼앗긴 것이다.당구장만의 매력이 있는데도 왜 사람들은 떠나고 있을까.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당구장이 가족 또는 연인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남자들만의 공간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아내나 아이들, 애인이 같이 갈 수 없는 마초공간이 돼 버렸
기원전 206년 항우는 유방을 파촉(지금의 중국 쓰촨성) 땅으로 내쫓았다. 파촉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군사들이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잔도(棧道)를 따라 겨우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책사 장량은 이 잔도를 태워버렸다. 항우에게 중원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음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몇 년 뒤 대장군 한신이 먼 길을 돌아 초나라를 습격했다. 유방이 결국 패권을 잡게 되는 초한전은 이렇게 시작됐다.험로(險路)가 오히려 군사력을 키우는 기회가 된 것은 유방의 후손인 유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촉나라는 전혀 다른 운명을 맞는다. 제갈량까지 죽은 뒤 위나라 장군 등애가 3만명을 이끌고 음평도라는 험로를 넘어 침공해왔다. “등애는 사람이 살지 않는 땅 700여리를 행군했다. 산은 높고 골짜기는 깊어서 군량을 옮기는 일조차 버거웠다. 등애는 천을 몸에 둘둘 만 채 굴러서 산골짜기를 타고 내려갔다.”(위서 등애전)아무도 넘지 못한 길로 침공한 등애 군에게 촉나라는 항복했다. 험한 길은 오르는 사람에게는 힘이 들지만 그만한 보상이 반드시 있다.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은 최초의 장군인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그랬다. 로마인 누구도 예상 못한 길로 이탈리아에 들어선 한니발 군에게 로마는 멸망의 위기에까지 몰렸다.요즘에야 익스트림 스포츠라고 해서 아슬아슬한 모험과 묘기에 도전하는 게 프로스포츠로도 각광받고 있지만, 깎아지른 기암절벽에 올라선다는 것은 오금 저리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험한 길로 유명한 스페인의 ‘왕의 오솔길(El Camino Del Rey)’이 오는 26일 다시 개방된다는 소식이다. 20명이나 추락사해서 2000년 폐쇄됐던 이 길은 명성에 비해선 그리
지난해 가을 소위 ‘사이버 망명’이 화제가 됐다. 카카오톡 감청 논란이 일자 1주일 만에 160만명 이상이 텔레그램이란 외국 메신저로 옮겨간 것이다. 당초 이 사건은 2014년 6월 체포된 노동당 부대표가 묵비권을 행사하자 검찰이 그의 카톡 대화기록을 카카오 측에 요청해 확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검찰이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까지 만들자 메신저 사찰, 개인정보 보호 등의 이슈가 이어지면서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가 국정감사장에 출석하기도 했다.인터넷이나 메신저에 대한 정부 검열은 세계적으로도 핫이슈다. 미국은 에드워드 스노든이 2013년 국가안보국(NSA)에서 개인정보 수집 및 감시프로그램인 ‘프리즘’을 운영하고 있다고 폭로한 대로 세계 인터넷 사용자의 90% 가까이를 감시하고 있다. 중국은 10여년 전부터 ‘다칭바오(大情報)’라는 사이버 감시망을 운영하고 있다. 검열의 폭이 넓고 일방적이어서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이라고 비난받기도 한다. 러시아는 지난해 발효된 블로그법에 따라 하루 3000명 이상 방문하는 블로그는 정부에 등록해야 한다. 안보를 명분으로 정부의 사이버 검열이 강화되는 추세 속에서 개인의 사생활과 정보 보호는 전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더욱 문제 소지가 큰 것은 자발적인 폭로다. 최근 국내에서는 연예인들의 사적인 카톡 대화가 인터넷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이병헌 박시후 클라라 등 연예인이 관련된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은 모두 소송을 벌이는 상대방이 있고 법정에서 이기기 위해 낯뜨거운 내용도 여과없이 공개된다.문제는 어떻게 이런 자료들이 유출되고, 그
2004년 여름 샌프란시스코의 베트남 식당. 페이팔 출신 10여명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페이팔 공동창업자인 맥스 레브친의 29세 생일 파티였다. 누군가 ‘좋은 치과의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화제를 꺼냈다. 마침 자신들이 그런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며 러셀 시몬스와 제레미 스토펠만이 열심히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레브친은 이튿날 이 프로젝트에 100만달러를 투자키로 결정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소비자 평판 사이트 옐프(Yelp)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창업도 협업할 때 시너지 큰 것이날 모인 사람들이 ‘페이팔 마피아’다. 모바일 결제업체인 페이팔 출신 벤처기업가 또는 투자가들이다. 경제전문지 포천이 2007년 이들을 기사로 소개하면서 페이팔 마피아라고 처음 불렀다. 지난달 이 마피아의 대부 격인 피터 틸이 저서 제로 투 원 홍보차 방한하면서 국내에서도 다시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이들은 선배인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외톨이로 사업을 개척해 온 것과 달리 창업도 협업할 때 훨씬 큰 시너지를 낸다는 새로운 트렌드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투자하거나 창업해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이 된 기업이 이미 7개를 넘었다.페이팔은 틸과 레브친이 만든 컨피니티와 엘론 머스크가 세운 엑스닷컴이 합병한 업체다. 이 회사가 2002년 이베이에 15억달러에 매각되면서 페이팔 임직원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수십 명이 페이팔을 나왔지만 대부분 실리콘밸리를 떠나지 않고 기업을 창업하거나 신생벤처에 투자했다. 이들이 성공사례를 쌓아가면서 페이팔 마피아는 실리콘밸리만이 아니라 세계를 대표하는 파워그룹이 됐다.틸은 벤처캐피털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이메일 때문에 궁지에 몰렸다. 장관 시절 관용 이메일을 쓰지 않고 개인용 이메일만 사용했는데 이것은 연방기록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뉴욕타임스가 지난 주 보도한 뒤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급기야 클린턴은 그제 기자회견을 열고 “두 개의 메일을 사용하는 편이 더 현명했을 것”이라며 면피성 발언까지 했다.미 공화당은 이 논란을 ‘이메일 게이트’로 몰아가고 있다. 특히 클린턴 장관 재직 때 일어난 벵가지 사건 당시 이메일 기록을 공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벵가지 사건은 9·11 테러 11주년인 2012년 9월11일 리비아 무장반군이 일으킨 테러다. 벵가지의 미 영사관이 공격받아 대사를 비롯해 미국인 4명이 숨졌다. 이 사건 직후 이메일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며 고의 은폐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민주당도 반격에 나서 뉴욕타임스가 문제삼은 연방기록법은 클린턴 퇴임 이후에 발효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개정 연방기록법이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을 받은 것은 2014년 11월로 클린턴의 재직기간(2009년 1월~2013년 2월) 뒤라는 것이다. 민주당원들의 클린턴 지지도는 이메일 논란에도 꿈쩍않고 있다. NBC와 월스트리트저널 공동 여론조사에서 201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클린턴을 지지한다는 당원이 86%나 됐다. 클린턴이 위법 행위를 한 것은 아니어서 이번 논란은 대권 낙마를 부르는 게이트로는 확대되지 않을 전망이다.오히려 이번 이메일 논란은 이제 인터넷에 기반한 각종 소통수단들이 종이 문서 등 전통적 기록수단을 완전히 대체했다는 것을 뜻하는 중요한 변화로 해석된다. 관용 이메일의 의무 사용과 개인 이
“이미 기울어진 경기를 감독이 이기게 하기는 어렵지만 다 이긴 경기를 감독이 잘못해 망치는 경우는 숱하게 봤다.”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을 이끈 김인식 감독의 말이다. 그는 흐름을 중시한다. 이길 수 있는 경기라면 그 흐름이 좋았다는 것이고 거기엔 감독과 코치도 필요없을지 모른다. 나서지 않고 지켜보는 것, 이것은 어지간한 참을성이 아니면 어렵다. 선수 시절부터 이기는 방법을 보고 익힌 경험과 통찰력이 승리의 리더십으로 구체화된 것이다.기업에서는 어떨까. 직원들이 잘하고 있을 때 가만히 내버려둘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우선 상대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지는 경기인 스포츠와 달리 기업에서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 실제 시장에서 성과를 내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잘되고 있는지, 잘 못가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래서 경영자들은 조바심을 낸다. 간섭하고 통제하려 한다. 특히 신규 사업일수록 그렇다. 피터 드러커는 “50배는 벌어야 제대로 된 신규 사업”이라며 “그렇게 벌기 전까지는 기존 사업과 비교하지 말고 내버려두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대기업일수록 몇 달, 길어도 1년 내에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는 실패로 보는 경향이 있다.스포츠팀의 감독과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직업인들이다. 성공과 명예, 그리고 부의 상징이다. 감독과 CEO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감독은 선수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장단점을 살펴서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장점을 기를 수 있도록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 고된 훈련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대부분 젊은 선수들에게 감독은 아버지 같은 존재다. 이에 비하면 CEO는
설 연휴 동안 뉴스의 주인공은 단연 JP(김종필 전 국무총리)였다. 21일 별세한 부인 박영옥 여사의 빈소를 찾은 정·관계 거물들과 그가 나눈 대화 하나하나가 뉴스였다. 눈에 띄는 대목은 그의 ‘2인자론’이다. 충청권 정치 후배인 이완구 총리에게 그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여성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게 섬세하실 텐데, 입을 다물고 할 말이 있으면 조용히 가서 건의드려라. 밖에 나와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대통령에게 했다고 자랑하지 말라”고 충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총리가 만신창이가 된 끝에 인준을 받은 직후 ‘책임총리’를 언급하며 할 말을 하는 총리가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여 주위를 뜨악하게 했는데 이 문제를 대놓고 지적할 사람이 JP밖에 없었던 모양이다.JP는 2인자의 전형을 보여준, 한국 정치사에서는 보기 드문 정객이다. 두 차례 국무총리를 역임했고, 국회의원을 아홉 번 지냈다. 5·16 직후부터 소위 ‘혁명 동지’들로부터 견제를 받았고 1969년 3선개헌 이후에는 박정희로부터도 의심을 받았다. 그는 그 과정에서 2인자의 숙명을 깨달았을 것이다.그는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투옥됐을 때 그를 찾은 육사 후배 노태우에게 2인자론을 털어놓았던 적이 있다. 1인자에게 절대 밉보이지 말 것, 또 1인자가 서운하게 대하더라도 결코 서운한 표현을 하지 말 것 등이었다. 서운함을 드러낼 경우 주변에서 이간질하는 세력이 나타나 1인자와의 관계를 악화시킨다는 설명이었다. JP 자신이 그렇게 살았다. ‘3김’ 중에는 유일하게 대통령이 되지 못했지만 최후까지 남아 지금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지막 정객이 됐다.중국에는 역사적 2인자들이 많다. 멀리
푸른 바닷가에 주황색 죄수복을 입은 21명을 무릎 꿇리고 검은 복면의 테러범들이 칼을 겨누고 있다. 핏빛 바닷물을 보여주며 이슬람 음악이 흐른다. 수니파 급진주의 무장단체인 IS가 이집트 콥트교도 21명을 참수했다며 공개한 동영상이다. 제목은 ‘십자가의 국가에 보내는 피로 새긴 메시지’다. IS는 이 끔찍한 동영상을 통해 이슬람 대 기독교라는 종교 프레임으로 전선을 바꿔가려고 시도하고 있다. 십자가의 국가란 기독교 국가이고, 콥트교는 바로 이집트의 기독교다.콥트교는 아랍 세계에서 가장 큰 기독교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교도는 850만여명으로 이집트 인구의 약 10%다. 이집트의 나머지 90%는 수니파 이슬람교도들이다. 이집트 밖에도 100만여명의 교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단에 50만여명, 미국에 9만여명을 비롯해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 에티오피아 리비아 등에도 신도가 있다.이 종교는 마르코(사도 마가)가 서기 50년께 이집트 북부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세우면서 시작됐다. 콥트는 고대 그리스어로 이집트란 뜻이다. 콥트교가 로마교회에서 분리된 것은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로마교회가 이단으로 선언하면서였다. 콥트가 예수를 인간이면서 신으로 보는 로마교회와 달리 예수의 신적인 면만을 인정하는 단성설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641년 이집트가 이슬람화되기 전까지는 이집트의 민족종교였다. 이후 콥트교는 모진 박해를 받았다. 현대에 와서도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에게 자주 공격을 당했다. 2011년에는 알렉산드리아 콥트교회에서 차량 폭탄테러로 21명이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기독교 역사 속에서 콥트교는 초대교회의 신앙과 전통을 잘 보존해왔다는 평가를 받
“뜯겨 나간 닭 껍질들 찢어진 지도 같다/전쟁터 총기되어 쌓여가는 잔뼈 조각/수정동 날선 달동네 퀭한 바람 토한다”(‘산복도로 통닭집’ 중)지난해 계간지 나래시조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황란귀 씨(23)의 시조 한 대목이다. 전쟁이나 가난과는 거리가 먼 20대의 감성에도 부산 산복도로는 좋은 소재다. 산허리(山腹) 즉, 산기슭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좁디좁은 도로 옆에는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이 판자촌을 이루고 살았다. 대충 기름칠을 한 천막조각들로 지붕을 삼았고, 벽이랍시고 얼기설기 널빤지로 안팎을 구분했다. 드문드문 있는 수도와 공동화장실에는 항상 긴 줄이 북새통이었다.부산 6·25전쟁 가난 등의 단어가 나오면 국제시장과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산복도로다. 그런데 영화 ‘국제시장’에는 산복도로 비슷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부산을 잘 아는 중장년들이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오죽하면 “감독네 집은 그때 잘살았던 모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국제시장’이 지난 주말 누적 관객 1300만명을 넘으며 역대 2위 흥행기록을 세웠다. 외화를 포함해도 ‘명량’ ‘아바타’에 이어 3위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정치인들이 앞다퉈 이 영화를 관람했고 11일(현지시간)에는 미국 워싱턴DC 인근 극장에서 6·25참전 노병 재미동포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특별상영회도 열 예정이다. 국제시장은 집단기억의 끈을 되살렸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을 했다. 그러나 실화적 요소가 있는 만큼 좀 더 디테일에 충실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영화는 주인공 덕수가족이 흥남부두에서
“무섭고도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것, 그러면서 공포스러운 어떤 것, 두렵게 만드는 어떤 것이 거기에 있었다. (중략) 그것은 아름답고도 음란했다.”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는 화가 폴 고갱(1848~1903)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미학적 희생양으로 만들어버렸지만 고갱 일생의 줄거리는 잘 담겨 있다.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그린 벽화에 대한 느낌은 이렇게 섬뜩하게 묘사돼 있다.자화상에 나타난 얼굴 모습 그대로 강렬한 색채를 실험했던 화가 고갱은 피카소 마티스 뭉크 등 20세기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20대 초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결혼도 하고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작품 수집 취미로 미술을 접했다. 27세 무렵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리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와도 가까웠다. 둘은 그러나 어느 비평서 제목대로 ‘성난 고갱, 슬픈 고흐’였다. 전혀 성격이 달랐던 두 사람은 그림에 대한 생각이 달라 자주 다퉜고 화가 난 고흐가 스스로 자신의 귀까지 자르게 됐다. 그러나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한 고흐와 달리 고갱은 프랑스와 타히티를 오가며 화가로 살았다.폴리네시아의 원시를 동경한 그는 타히티에서 테하마나라는 처녀와 동거하며 지낼 때 가장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생활은 늘 곤궁했다. 가족들이 송금을 끊자 물감이 떨어졌고 그림색도 엷어졌다. 고갱은 이때 “고통이 너무 심할 때에는 천재성이 완전히 바닥나고 말 것이다”라고 자조했다고 한다. 유작을 남기겠다고 그린 그림이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였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갱은 &ld
삼성전자의 최근 변화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기업 간 거래(B2B) 시장 강화다.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챙기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8월에는 미국 시스템에어컨업체인 콰이어트사이드를, 9월엔 캐나다 프린팅 업체인 프린터온을 인수했다. 최근에는 브라질 최대 프린트 솔루션 업체인 심프레스 코메르시우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모두 B2B 업체들이다.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던 제조업체였다가 B2B 서비스기업으로 변신한 IBM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휴대폰 등으로 소비자시장(B2C)의 리더가 된 삼성이 글로벌 B2B 기업의 야망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사물인터넷 가전·자동차에 편중국방과 공공부문까지 포함하는 B2B 사업은 잦은 경기변동이나 치열한 경쟁에 휘둘리지 않고 중장기적인 계획 아래 진행할 수 있다. 전 세계 시장의 3분의 2가 B2B 영역이라고 보면 된다. 넓고 큰 영역이지만 그만큼 전문기업이나 거대 기업의 영역으로 여겨왔다. 선진 업체를 따라가기만 해도 성장할 수 있었던 재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아니 감히 생각하기 어려웠던 시장이다. 이제는 형편이 달라졌다.요즘 한창 뜨고 있는 사물인터넷(IoT)도 처음부터 B2B로 방향을 잡아야 더 큰 시장을 잡을 수 있다. TV 등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영역에 몰려가고들 있지만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들어찬 전장에서의 피 튀기는 경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시장은 B2B와 관련된 사물인터넷 시장이다. 영미권의 경우 산업용 사물인터넷을 IoT와 구별하기 위해 산업용(industrial)의 I자를 하나 더 붙여 ‘IIoT’라고 구별해 부르고 있다.컨설팅업체인 액센츄어는 최근 보고서에서 1990년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미식축구 등 구기 종목에는 필수 용품이 있다. 바로 공이다. 이 가운데 어떤 종목이 가장 시장이 클까. 축구와 야구 경기를 떠올려 보자. 축구는 공이 관중석으로 가도 돌려받는다. 야구는 홈런은 물론이요 파울이 나도 관중이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야구공 시장이 훨씬 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축구공에 비길 바가 못 된다.야구는 하는 나라 자체가 세계에서 10여개국으로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축구는 안 하는 나라가 없다. 축구공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는 역시 세계 메이저인 아디다스, 나이키, 푸마 등이다. 다만 남미의 경우는 브라질 연고인 페널티라는 업체가 지역 맹주 역할을 하고 있다.축구공을 포함해 경기용 공은 이제 동물 가죽으로 만들지 않는다. 동물 보호라는 명분도 있지만 워낙 수요가 많기 때문에 폴리우레탄(PU)을 원료로 한 합성피혁 원단으로 제조한다. PU는 부드러운 표면에다 내구성 가공성이 우수해 축구공 대중화 시대를 연 소재다.PU는 특히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소재다. 아이다스와 나이키 등의 축구공은 대부분 우리나라 업체들이 제조한 PU 원단으로 만든다고 보면 된다. 탄력성 가소성 등이 특히 우수한 것이 한국 PU 원단의 장점이다. (주)덕성 (주)정산인터내셔널 등이 대표적인 PU 원단 업체들이다.그런데 PU 축구공도 결정적 단점이 있다. 대부분의 합성고무나 수지 제품이 그렇듯이 실크인쇄 외에는 컬러인쇄가 어렵다. 실크인쇄는 20세기를 주도한 인쇄술이긴 하지만 일일이 덫칠하는 방식이어서 표현력이 떨어지고 환경문제도 일으킨다는 단점이 있다.(왼쪽 공) 피바노바(2002) 브라주카(2014) 등 월드컵 공인구들이 몇 가지 색으로만 이뤄진
소하(蕭何)는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개국 공신이다. 진나라 법을 기초로 구장율(九章律) 등 한나라의 법과 제도를 정비했다. 소하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된 사람이 조참(曹參)이다. 그런데 조참이 3년이 되도록 정사는 돌보지 않고 집에서 손님들과 술자리만 벌이자 2대 황제인 혜제는 화가 났다. 문책하려 부른 자리에서 조참은 이렇게 말했다.“고조 황제와 소하 승상은 천하를 평정하고 제도를 제정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제도와 법대로 일하면 됩니다. 그러면 실정은 아니합니다.”‘소하가 만들고 조참이 따른다’는 소규조수(蕭規曹隨)는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다. 전쟁과 나라가 바뀌는 변고를 겪은 백성들은 조참 덕분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개혁한다고 법·제도 양산 안될 일조참의 경우는 어쩌면 예외적일지도 모른다. 새로 권력을 잡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빛나는 무엇인가를 새로 만들고 싶어한다. 정부 정책이 대통령 공약에 따라 5년마다 춤을 춘다. 노무현 정부 때 국정 키워드였던 ‘혁신’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간판을 전부 내렸다. 또 이명박 정부가 내건 ‘녹색’은 새 정부 들어 금기어가 되고 말았다. 자원 외교를 심판하겠다는 국정조사도 가만 보면 같은 맥락이다.소규조수는 백년대계를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먼 장래를 내다보고 정책을 세워야 국민이 편히 산다. 그런 면에서 교육부는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을 할 자격을 이미 잃었다. 한국경제신문이 2013년 조사했을 때 교육부는 46년간 대학입시 제도를 38번이나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수능이 끝난 뒤엔 또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만큼 입시제도 개
프랑스의 올 새해맞이 행사는 요란했다. 수십만명이 12월31일 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는 동안 전국에서 940대의 차량이 불에 탔다. 새 차를 사려는 사람들이 기존 자동차를 불태우는 ‘전통’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지난해 1067대에 비하면 12%나 줄었다.지난 한 해를 깨끗이 잊어버리고 새해를 맞고 싶어하는 마음은 세계적으로 공통인 모양이다. 한겨울에 차디찬 얼음물에 뛰어드는 행사가 곳곳에 있다. 네덜란드와 캐나다에서 매년 1월1일 열리는 북극곰 수영대회가 유명하다. 우리나라도 매년 1월 초 부산 해운대에서 열리는데 벌써 28년째다. 브라질에도 해가 바뀐 직후 바다로 뛰어가 파도를 일곱 번 뛰어넘으면서 행운을 비는 행사가 있다.이탈리아에서는 신년 초 다리에서 다이빙을 한다. 2차대전 직후 귀국한 군인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17m 다리에서 묘기를 부린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물에 뛰어드는 것은 기독교에서 신도가 된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온몸을 물에 적시는 침례와 비슷한 것이다. 과거를 다 씻어버리는 의식인 셈이다.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신년 행사는 뉴욕 타임스스퀘어 광장에서 열리는 ‘크리스털 볼 드롭’이다. 공중에 매달려 있던 거대한 크리스털 공이 자정에 깃대를 타고 떨어지면 새해 소망이 적힌 수십만장의 색종이들이 하늘에 날린다. 올해 크리스털 공은 5386㎏이었고 색종이 무게만도 1t이나 됐다.우리 경우는 1989년 설날이 3일간의 공식 연휴로 지정된 이후 양력 1월1일은 명절 대접은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한 해를 시작하는 공식적인 날로 현대판 풍습은 적지 않다. 기업과 기관들이 대부분 평일인 2일 시무식을 시작하지만 정당
동창은 같은 창문을 이용했다는 뜻이다. 같은 문을 드나들어서 동문으로, 같이 공부했다고 동학이라고도 부른다. 같은 학교에서 함께 공부했기 때문에 유대감이 끈끈하다. 이해관계가 없는 관계였기에 추억도 공유된다. 이런 동류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만나는 것이 동창회다. 학교 밖 드넓은 세상에서 기억도 가물가물한 동창들을 만나면 우리는 행복해진다. 그러나 여기까지다.동창회가 무언가를 위한 모임으로 변질되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긴다. 사회 거물을 배출하면서 동창회는 아연 활기를 띤다.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동창회형 인간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서워진다. 학연이라는 것은 실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명문일수록 서로 간에 뒤를 봐주고 밀어주고 끌어준다면 더욱 문제다. 학연 조직은 지연 못지않은 폐쇄적 이익단체다. ‘대한민국 3대 조직에 해병전우회 호남향우회 고대교우회’라는 식이라면 나라 발전은 요원하다. 그러나 이 3대 조직은 소리만 요란할 뿐이고 진짜 조직은 따로 있다는 얘기도 많았다. 대한민국 최고 대학의 모 학과 동창회는 “차기 장관은 우리 중 누구를 시켜달라”고 청와대와 담판하고 다녔다는 ‘전설’도 있다.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이라는 서금회를 놓고 말이 많아지고 있다. 서금회 멤버인 이광구 씨는 논란 끝에 결국 우리은행장이 됐다. 2007년께 결성된 서금회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300여명 규모로 커졌다. 이덕훈 수출입은행장과 정연대 코스콤 사장을 배출하면서 주목받았다. 홍성국 신임 대우증권 사장도 회원이다. 서금회로선 성과 있는 한 해였지만 시선은 곱지 않다.엊그제 김재홍 전 산업부 1차관이 KOTRA 사장에 내정됐
전쟁은 전우의 시체를 넘어 적진에 들어가 깃발을 꽂아야 끝났다. 이런 전쟁은 이제 사라질 것 같다. 무인기인 드론이 폭격에 나서고, 아이언맨 같은 로봇이 시가전을 벌일 날이 머지않았다. 전쟁은 이미 여론전이나 외교전으로 바뀐 지 오래다. 국제 여론으로 몰아가고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경제 제재, 무력시위 등으로 압박한다. 맞붙는다 해도 무력충돌 없이 정보기술 싸움으로 상대국을 괴롭힌다.가상공간인 인터넷망과 컴퓨터 기술을 활용해 상대국의 주요 시설과 기반망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사이버 전쟁이다. 역사상 첫 사이버 전쟁은 2007년 4월27일 에스토니아에서 일어났다. 에스토니아는 하루아침에 국가 주요 웹사이트가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전면공격을 받았다. 대통령실을 비롯해 정부부처와 경찰 언론 은행 등의 인터넷망이 한 달 가까이 마비됐다. NATO 등은 러시아를 의심했으나 결정적 증거는 찾지 못했다.2010년 이란이 본 피해는 훨씬 심각했다. ‘스턱스넷’ 공격을 받아 주요 원자력발전소의 원심분리기 1000여대가 파괴됐다. 스턱스넷은 시설이 한 번 감염되면 복구 불능 상태로 망가져 ‘한 방(one-shot) 무기’로 불린다. 이 공격으로 이란은 1년간 사고 원전을 가동하지 못했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이라고 주장했지만 증거는 없었다.소니 영화 ‘인터뷰’를 놓고 벌어진 북한과 미국 간 갈등도 사이버 전쟁의 한 단면이다. 북한의 해킹으로 의심되는 국내 원전 내부 정보 유출 사건도 사이버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는 걸 보여준다. 북한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이란에 이어 세계 6위의 사이버전 강국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이버전 병력만도 우리보다 10배가 많은 6
1984년 73세의 나이로 재선에 도전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TV 토론회에서 민주당 월터 먼데일 후보로부터 “나이가 너무 많지 않으냐”는 공격을 받았다. 레이건은 영화배우 출신답게 부드러운 얼굴로 “나는 먼데일 후보의 젊음과 무경험을 부당하게 이용하지 않겠다”고 응수해 점수를 땄다. 재선에 성공했지만 레이건은 이미 고령이었다.3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엊그제 튀니지 대통령에 당선된 베지 카이드 에셉시 후보는 88세다. 임기 5년을 마치면 93세로 은퇴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다. 시몬 페레스는 84세였던 2007년에 이스라엘 대통령에 취임해 올해 91세로 퇴임했다. 노인정치(gerontocracy) 시대가 다시 열리는 셈이다.노인정치가 새로운 용어는 아니다. 옛 소련은 1980년대 말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기 전까지 20여년 넘게 노인정치 시대를 이어갔다. 브레즈네프와 안드로포프 시절 권력 주위엔 70대 정치국원이 가득했다. 고르비 시대는 노인정치의 종언이었다. 중국은 전직 국가 지도자들이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로정치’의 전통이 있어왔다. 사실상 노인정치였다. 엊그제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의 비서실장이던 링지화 통일전선정책부장의 낙마를 ‘중국 원로정치의 종언’으로 해석하는 보도가 많은 것은 의미심장하다.옛 소련과 중국의 노인정치가 혁명 1세대들의 권력 과점적 성격이 강했던 반면 최근의 노인정치는 평균수명이 늘면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100세 이상 인구가 서울에만 4522명, 전국으로 따지면 1만4592명이나 된다. 100세 이상이 평균수명이 되는 가위 ‘호모 헌드레드(Homo 100)’ 시대다. 성경에 나온 대로 &
산타클로스가 사실은 부모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철이 든다고 했던가. 요즘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깊은 밤까지 기다리지도 않는다. 크리스마스는 평소 갖고 싶던 물건을 선물로 받는 날이 돼버렸다.“1달러 87센트, 그것이 전부였다. 그 가운데 60센트는 잔돈이었다.” 미국 작가 오 헨리의 단편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소설의 내용은 누구나 안다. 그래도 다시 떠올려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뉴욕의 허름한 동네 월세방에 사는 제임스와 델라는 가난한 부부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인데도 서로에게 줄 선물을 준비 못 했다. 델라는 결국 아름다운 갈색머리를 잘랐다. 20달러에 팔아 제임스에게 줄 고급 시곗줄을 샀다.제임스는 아끼던 시계였지만 시곗줄도 없으니 팔아버리기로 한다. 언젠가 델라가 브로드웨이 진열장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사고 싶어했던 고급 머리빗을 선물로 샀다. 그날 밤 제임스가 귀가해 이미 짧은 머리가 된 델라를 보고 놀랐을 때, 델라는 눈물을 머금고 이렇게 말했다. “머리칼은 당신을 위해서 팔았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머리칼은 하나하나 셀 수 있을는지 몰라도 당신에 대한 제 애정은 누구도 셀 수 없을 거예요.”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팔 수 있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선물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이 소설의 원제는 ‘동방박사의 선물’이다. 크리스마스에 서로 거창한 선물을 교환하게 된 것은 상업적 이벤트가 많아진 최근 일인 것 같다. 원래 ‘크리스마스 선물(gift)!’이란 말은 ‘메리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주로 미국 남부의 흑인들이 1800년대 중반부터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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